글/ 김학수 (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연구소장)



지난 5일 심장병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뜬 포르투갈의 ‘흑표범’ 에우제비우의 부고를 전하는 미국 뉴욕 타임스 기사에서 눈에 확 들어온 문장이 있었다. 

“Eusebio played down racial and national politics, praised others and denied stories about him that could have been turned into legend."

이 문장은 에우제비우는 인종과 민족적인 정치를 작게 다루고, 상대 선수를 칭찬하며 전설이 될 수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부인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게다. 1960년대 펠레와 함께 세계 축구를 호령했던 슈퍼스타였던 그의 새로운 면을 알게 한 부분이다.


기사 작성자인 뉴욕 타임스의 원로 칼럼니스트 조지 벡시가 에우제비우를 뛰어난 축구실력 뿐 아니라 따뜻한 인간애를 지닌 이로 평가한 것은 아주 신선한 의미로 다가왔다. 벡시는 에우제비우가 생전에 훌륭한 인품을 보여주며 여러 번 자신의 소신과 의지를 밝혀  부고 기사에서 충분히 인종주의와 식민주의를 싫어했다고 써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1968년부터 뉴욕 타임스에서 스포츠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벡시는 축구, 농구, 권투 등 다양한 스포츠에 관한 기사를 써오며 전문적이고 날카로운 안목을 보여 왔는데, 이번 에우제비우 부고 기사 역시 베터랑 저널리스트다운 수준 높은 글이었다. 


보통 스포츠팬들이나 저널리스트들이 사실보다는 서사적인 무용담이나 이야기를 더 좋아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선수를 넘어서 한 인간의 인생철학에 대한 세부적인 일면을 상세하게 보여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벡시가 얼마나 철저하게 취재를 했으며, 선수에 관해 많은 자료를 갖고 있는 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월드컵 축구대회를 8번이나 취재를 한 바 있는 벡시는 다른 어느 매체도 범접하지 못하는 뉴욕 타임스의 자랑인 부고기사(Obituary)에서 에우제비우에 대한 심도 깊은 기사를 쓰는 역량을 발휘하는 개가를 올린 것이다. 벡시의 부고 기사를 통해 천부적인 재능과 실력, 의지 등을 갖춘 위대한 축구스타인 에우제비우는 비단 스포츠에서 이기고, 지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인생의 가치를 추구한 이로 스포츠사에 결코 잊을 수 없는 불멸의 스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 같다.


벡시의 기사를 보면서 필자를 비롯한 국내 스포츠 저널리스트들은 자성의 기회를 가져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기사 각도와 보도방법 등에서 큰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다. 국내 언론들은 에우제비우에 대한 부고기사를 대체적으로 선수활동 경력 등에 초점을 두고 보도했다. 1960∼70년대 펠레와 함께 세계 최고의 공격수로 이름을 날린 전설적 인물로 1942년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모잠비크에서 태어났으며 1960년부터 15년 동안 포르투갈 벤피카에서 활약하고 무려 11차례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어냈고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9골을 터뜨리며 포르투갈의 3위 달성을 이끌었다는 정도의 내용이었다. 

좀 더 자세한 기사는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북한과의 준준결승에서 전반 25분까지 0-3으로 뒤지다 혼자 4골을 터뜨려 5-3의 극적인 역전승을 이끌었고, 1970년도 한국을 방문해 35m 대포알 같은 프리킥 슛을 성공시켜 당시 대표팀 골키퍼 변호영이 “그의 슛은 내가 겪은 가장 무서운 것이었다.”고 했던 것을 소개하는 정도였다. 모 신문에서는 그의 자서전 ‘내 이름은 에우제비우’의 일화 등을 소개하며 ‘헝그리 정신’을 극복한 스포츠 스타의 상징으로 뻔한 스토리를 전했다.


이 정도로 그에 대한 부고기사를 처리하는 게 과연 합당한 것인가. 50대 이상들에게 유세비오라는 영어식 발음으로 더 많이 알려졌던 1970년대 펠레와 함께 국내에서  최고의 세계 스포츠 스타로 인기를 한몸에 받았던 에우제비우라는 점을 고려할 때, 뭔가 아쉬운 부분이 많다.

1991년 포르투갈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 남북청소년 단일팀이 출전했을 때, 필자를 비롯한 많은 국내 보도진이 에우제비우를 포르투갈 현지에서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당시 에우제비우는 벤피카 유소년 축구팀을 지도하는 고문을 맡았는데, 대회 스폰서인 코카콜라 측의 주선으로 한국 보도진과 격의 없이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차돌같이 단단한 몸이지만 키는 다소 작았다. 실제 축구선수로서 그의 키는 175cm 정도이지만 탄탄한 근육질로 체격이 더 커 보였다. “북한전이 내 인생에서 최고의 경기였으며 그 경기를 통해 축구선수로서 정점을 찍었다”며 에우제비우는 인터뷰한 기자들과 일일이 개인적으로 사진을 찍어주는 친절과 아량을 베풀었다.


(지난 1991년 포르투갈 세계청소년 축구선수권대회 취재갔을 때 에우제비우와 찍은 모습. 에우제비우는 세계축구를 호령한 슈퍼스타였지만 다정다감한 이웃 아저씨같이 좋은 인상과 마음씨를 가졌다. ⓒ김학수)



에우제비우가 국내 보도진에게 다시 얼굴을 보인 것은 2002년 한· 일 월드컵 때였다. 포르투갈 TV 해설자로 방한한 에우제비우는 예선에서 한국과 한 조에 속한 포르투갈에 대한 전력을 묻는 국내 언론 취재진에게 전문적인 코멘트를 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불가능한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던 북한과의 잉글랜드 월드컵 8강전에서의 인상적인 경기를 기화로 세계축구의 ‘흑표범’으로 불렸던 에우제비우는 다른 어떤 선수들보다 많은 얘깃거리를 가졌던 스타였다. 1960년대 유럽축구무대에서 드물었던 흑인선수로서 세계적인 스타로 첫 주목을 받았으며 훨씬 연봉을 많이 주는 이탈리아에서 활동하지 않고 고국처럼 여겼던 포르투갈 축구를 지켰다. 경기가 끝나면 상대 선수들의 뺨을 만져주고, 포옹하는 따뜻한 우정을 주고받았던 그는 미국 프로야구 최초의 흑인 선수 재키 로빈슨에 비교되기도 했고, 글로벌 스타로 크게 성공한 디디에 드로그바의 롤모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가난, 흑인, 식민주의를 극복한 한편의 인간승리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그의 삶에 가려져있던 개인의 이면들을 국내 언론들은 제대로 들춰내지 못했다. 특히 남북한과 깊은 관련이 있는 위대한 축구 스타 에우제비우의 부고를 접하면서 느낀 점은 앞으로 국내 언론들이 좀 더 심층적이고 다양한 관점으로 선수의 인간적인 부분에 대한 기사를 많이 취급해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선수이기 이전에 인간이 먼저라는 사실을 에우제비우는 이 세상을 떠나면서 말을 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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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2014.01.21 15:15 신고

    글쎄요, 물론 부고기사가 남북한관련, 기록관련해서 뉴스가 나왔지만

    제가 읽은 기사중에서
    에우제비오에 대해서 축구선수의 인간적인 면에 대한 기사도 많았습니다.

    아래와 같이 링크합니다

    http://mnews.joins.com/news/article/article.aspx?total_id=13573945

    http://www.fourfourtwo.co.kr/interview/interview_view?idx_B=1140&RNUM=72

    http://m.sports.naver.com/worldfootball/news/read.nhn?oid=032&aid=0002427879

    한국 저널리스트들은 획일성에 대해서 비판하시는데 뉴욕타임즈의 백시같은 저널리스트들이 나오려면 한국스포츠언론이 어떻게 하면 더 심층적일수있는지 방법론을 제시해야되는거아닐까요?


글/김학수 (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연구소장)



스포츠는 언듯보면 속도를 경쟁하는 듯이 느껴진다. 육상 트랙종목의 경우 빠른 스피드를 앞세워 출발지점에서부터 도착지점에 누가 빨리 가느냐로 승부가 갈라진다. 비록 육상이 아니더라도 순간 스피드를 활용해 힘과 탄력을 발휘할 경우, 어떤 종목이든 유리할 수 있다. 속공이나 돌파후에 빠르게 이어지는 농구의 레이업슛, 네트 옆으로 낮은 토스에 이어 신속하게 이루어지는 배구의 속공, 순간 스피드를 이용해 화려한 공중묘기를 선보이는 체조와 피겨스케이팅 등. 스포츠 종목들은 속도의 경기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잔잔히 살펴보면 스포츠는 ‘빠름’ 보다는 ‘느림’쪽에서 참 묘미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전체적으로 빠른 동작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 하나의 몸 동작이 이어져 만들어진다. 스피드는 완벽한 신체동작이 전제가 됐을 때만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겉과 속이 다른 스포츠가 갖고있는 역설이다.


히딩크 감독이 2002 한일월드컵 축구 대표팀을 이끌었을 때이다. 월드컵이 열리기 1년전 유럽 원정에 나선 한국팀은 체코팀에 5-0으로 대패했고, 한국에서 열린 컨페더레이션컵서 1998 프랑스 월드컵 우승팀인 프랑스에게 5-0으로 완패했다. 큰 점수차로 패배한 히딩크 감독에게 ‘오대영’이라는 닉네임이 따라붙었다. 한국팀의 패인을 전반적으로 분석한 히딩크 감독은 한국축구의 최대 강점인 특유의 스피드가 오히려 최대 문제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경기 초반 오버페이스를 할 정도로 죽어라고 뛰어다니는 한국 선수들은 경기가 거듭될수록 스피드가 뚝뚝 떨어져 스피드 안배를 철저하게 하는 유럽팀들에 맥없이 무너졌던 것이다. 일순간 빠른 축구를 한 것처럼 보였을 뿐, 경기 전체적으로는 오히려 ‘굼벵이 축구’를 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 선수들이 유럽 선수들에 비해 결코 빠른 축구를 하는게 아니다”며 “한국축구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필요할 때 스피드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 축구의 문제점을 간파한 뒤 스피드 완급을 조절하는 훈련에 돌입했다. 공격수들은 무리하게 스피드를 앞세워 돌진하지 않도록 했으며 수비수도 볼만 쫓느랴 체력을 소모하지 않도록했다. 전체적으로 스피드와 체력안배를 조절할 수 있었던 한국축구팀은 월드컵 직전 유럽팀과 대등한 전력을 확보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세계축구에서 특급공격수로 인정받고 있는 메시 등의 플레이를 자세히 보면 왼발, 오른발로 툭툭치며 느릿하고 정교한 발기술로 현란한 개인기를 발휘한다. 상대 수비수가 급하게 달려들다가 어느 순간 개인기에 말려들어 헛발질을 해대며 수비가 뻥 뚫리는 경우가 많다. 메시 같이 테크닉이 뛰어난 공격수들은 상대 수비수의 발동작을 보며 볼컨드롤을 엇박자로 구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속도전을 펼치는 마라톤도 엄밀히 보면 제 페이스를 얼마나 잘 지키느냐가 승부의 관건이다. 세계 최고의 기록을 갖고 있는 선수일지라도 초반부터 질주하는 경쟁자를 따라가다가는 오버페이스로 곤두박질치는 수가 많다. 따라서 느린 거북처럼 컨디션을 꾸준히 이어나가야 자기 기록을 낼 수 있고,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다. 


내년 2월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맞붙게될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의 라이벌 대결도 어떻게 보면 느림의 승부가 될 듯하다. 2010 밴쿠버 올림픽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던 김연아는 예술적 표현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아사다의 도전을 뿌리칠 수 있었다. 한 발을 들고 나비처럼 활짝 몸을 펼치는 빙판 연기는 마치 슬로우 비디오를 보는 것 같았으며 공중에서 연속 도는 회전묘기는 탁월한 표현력으로 압권을 이루었다. 이에반해 아사다는 빠른 스피드와 트리플 악셀 연기를 펼쳤으나 예술적 표현력에서는 김연아보다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김연아와 아사다의 결정적인 차이는 고도의 기술을 얼마나 잘 표현하는가에서 갈렸다. 김연아는 세부 동작 하나 하나를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했던 반면, 아사다는 마치 벼락치기 공부를 한 수험생마냥 모든 동작을 마치 암기해서 하는듯한 부자연스러운 동작을 보였던 것이다. 





밴쿠버 올림픽 우승이후 한때 부상 등으로 인해 은퇴를 결심했던 김연아가 세계 선수권대회 우승에 이어 최근 골든 스핀 오브 자그레브에서 다시 정상을 차지하며 건재를 과시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이 갖고있는 느림의 내공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소치 올림픽서도 김연아가 빠른 스피드를 앞세운 아사다보다 속내를 드러내보이는 진짜 실력을 보여준다면 올림픽 2연패를 차지할 수 있다고 본다.


우생마사’(牛生馬死)란 사자성어가 있다. 홍수 때 말은 발버둥치며 물길을 거슬러 헤엄치다 힘이 빠져 죽지만 소는 물에 몸을 맡긴 채 둥둥 떠다니다가 살아남는다는 뜻이다. 일이 꼬이더라도 무리해서 억지로 풀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무조건 앞만보고 빨리 달린다고 스포츠에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스피드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연스럽고 정밀하게 구사하는  테크닉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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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아영 (스포츠둥지 기자)

 

            첫날 강의부터 가슴이 뛰었다. TV에서 봤던 잘 생긴 아나운서가 수업을 해 부끄러워 강사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전날 밤을 새고 출석해 내심 졸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흥미로운 강의를 듣다보니 잠잘 틈도 없었다.

 

 

SBS 이승윤 아나운서 ⓒ 이아영

 

 

첫 시간 강의를 맡은 SBS 이승윤 아나운서는 발성법과 표준발음 등 전문방송인으로서 배운 많은 지식을 공유했다. 해설위원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겁먹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갑자기 자기소개를 시키는데……. 괜히 앞에 앉아 있다가 일찍 매를 맞았다. 교정을 시작한지 3개월 차였던 나는 한참 대인기피현상을 겪고 있었다. 입술로 교정기를 가리는 습관이 생겨 소심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그래서인지 목소리에 자신이 없고 몇 개의 발음이 부정확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원래 자신 있게 말을 잘하는데 교정을 하느라 그렇다 고백을 하니 동료 교육생들은 부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교정기를 꼈으니 환하게 웃고 자신 있게 말하라고 용기를 주었다.

 

 

스포츠 미디어 아카데미 2기 개강식 ⓒ 이아영

 

 

체육인재 육성재단이 주관하고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가 교육을 맡은 스포츠 미디어 아카데미 2기 교육은 9월1일부터 시작돼 10주간 실시됐다. 나는 교육생의 일원으로 열심히 교육을 받았다. 매주 토요일을 공부하는데 투자하느라 지인의 결혼식에 못 간적도 있었다.  10주가 지난 지금 되돌아보니 대인기피증 증상은 사라지고 자신 있게 웃고 자신 있게 말하는 습관이 몸에 배었다. 주변에 그런 섬세한 부분까지 신경 쓰는 동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난 5월 개설된 1기 교육생 중 몇 명은 실제 런던올림픽 경기에 해설위원으로 참가했다. SBS에 서울시청 핸드볼 임오경 감독과 삼성생명 레슬링 박장순 감독이 해설위원으로 활약했고, MBC에 핸드볼 홍정호(전 국가대표 선수) 해설위원이 기용됐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인 NAVER 스포츠에서 활약하고 있는 핸드볼 조은희 해설위원 역시 1기 교육생으로서 스포츠 미디어 아카데미 과정을 수료했다.

 

 

SBS 핸드볼 임오경 해설위원 ⓒ 방송캡쳐화면

 

 

이렇듯 1기에는 소위 말해 “잘나가는” 교육생들로 포진되어 있었기에 지원서를 냈던 나는 면접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면접은 잘 봤다고 생각했는데 떨어지니 서운했다. 그러나 1기 교육생 명단을 확인하고 나니 쿨하게 인정할 수 있었다.


이아영 기자! 왜 스포츠 미디어 교육생이 되었나?

 

“이아영씨는 현재 스포츠코칭 대학원생이고...

 체육인재육성재단에서 기자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스포츠 미디어 아카데미도 들으려고요? 너무 욕심이 많은 거 아니에요?”

 

 

 면접에서 이런 질문을 받고는 나는 자신도 모르게 “제가 얼른 커야 하니까요”라고 대답을 했다. 얼마나 당황스러운 대답이었던지 함께 면접에 들어갔던 동료가 나중에 그 얘기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스펙을 쌓고 싶어서 교육에 참가하려던 것이 아니었다. 이 교육은 내 인생에서 필수코스라고 생각했다. 3년 전 나는 스물네 살로 갓 대학을 졸업한 사회초년생이었다. 당시 스켈레톤 국가대표였던 나는 어울리지도 않는 MBC 방송국 스튜디오에 앉아 있었다. 세계선수권 중계라는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지고 해설위원 자리에 앉았다.

 

MBC 해설위원 당시 모습 ⓒ MBC SPORTS 방송 캡쳐화면

 

 

당시 국내에서 스켈레톤에 대한 경험이 있거나 지식이 있었던 사람이 부족하다보니 얼떨결에 하게 되었다. 해설은 꿈에서도 해 본적이 없었기에 어떻게 해야 할 지 눈앞이 캄캄했다.  하지만 막상 큐 사인이 들어오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마음이 편해졌다. 함께 했던 MBC 김완태 아나운서가 대답하기 쉬운 질문을 위주로 잘 맞춰주었기 때문이다. 당시 너무 민망한 나머지 내가 나오는 TV를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다. TV에 나오는 것은 너무나도 재미있고 신나는 일이었지만 좀 더 전문적으로 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그것이 바로 내가 교육에 지원하게 된 동기였다. 그 말을 하고 싶어서 “제가 빨리 커야 하니까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나는 심사위원들을 당황시킨 후 지원 목적에 대해 설명할 수 있었고 앞으로 6년 남은 평창 동계올림픽을 준비하는 개최국으로서 준비된 해설자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 말했다.

 

 사실 아무도 나에게 마이크를 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기회는 준비된 사람이 잡을 수 있다는 말을 믿으며 교육에 집중했다. 맹목적으로 교육을 받은 것이 아니라 ‘나중에 꼭 해설위원이 되면 꼭 써먹어야지’라는 마음으로 임하다 보니 밤을 새고 와도 수업이 지루하지 않았다. 수업은 알찼지만 종종 점심을 먹은 후 수업을 들으며 헤드뱅잉을 하다 딱 걸린 적도 있었다. 책에 침은 안 묻어서 다행이다.

 


“조금 전에 나한테 말한 것처럼 편안히 하면 잘 할 텐데요?”

 

 교육 6주차인 10월 6일의 강의 주제는 <방송 인터뷰론>이었다. 강사는 현재 SBS에서 스포츠 취재부장인 김유석씨였다. 그날의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어떻게 하면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를 잘 할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해설위원이랑 인터뷰랑 무슨 상관이겠냐는 생각을 했었지만 요즘은 해설 중 멘트도 기사화 되는 세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를 할 때 앵글을 주시하면 시청자가 불편함을 느끼기 때문에 인터뷰 기자의 눈을 보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고 했다. 김유석씨의 강의는 나를 집중하게 만들었다.

 

지난 10월 12일 금요일에 방송촬영 일정이 있었기 때문에 6일을 앞둔 그 시점에서 인터뷰에 대한 교육은 내게 사막의 오아시스 같았다. 나는 ‘희망 국민들과의 대화’라는 주제로 KBS, KTV에 방영된 대통령 라디오 100회 특집 방송에 출연했다. 방송을 처음 해보는 것은 아니었지만 스포츠 관련 방송이 아니었고 또 대통령과 함께 공영방송에 출연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김유석 부장의 수업이 모두 끝나고 나는 잽싸게 뛰어나가 내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달라고 부탁했다. 내게 방송의 목적, 출연하는 이유 등을 묻고는 진행자처럼 질문을 시작했다. 편안한 분위기였던지라 하고 싶은 말과 생각을 모두 꺼낼 수 있었다. 그는 내게 “걱정할 것이 없겠다. 조금 전에 나한테 말한 것처럼 편안히 하면 잘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또한 “말을 길게 한다고 해서 방송에 다 나가는 것이 아니다. 꼭 해야 하는 말을 메모해두고 필수적인 대답만 하는 것이 좋겠다”라는 조언을 했다. 그 덕분에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차분하게 방송을 마칠 수 있었다.

 

 

청와대 상춘제 앞에서 진행된 “희망 국민과의 대화” 촬영 당시 ⓒ 이아영 

 

수업을 듣는 10주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멘트는 바로 “해설은 발로 하는 겁니다”라는 말이었다. 전KBO 사무총장 하일성 해설위원은 해설을 하면서 깨달은 사실은 현장에서 발로 뛰며 많은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청자가 봐도 뻔히 알 수 있는 내용을 설명하는 것은 해설위원이 아닌 캐스터의 역할이다. 해설자는 전문가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보다 전문가적인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여러분 미안합니다. 앞으로 3주 동안 못생긴 제 얼굴만 봐야 합니다.”


전 KBS 캐스터 유수호씨가 한 말이다. 우리는 7주간의 이론 강의를 들은 후 남은 3주를 해설 실습을 하는데 보냈다. 3주 동안 유수호 전 캐스터와 보내야 한다는 사실에 교육생들은 기뻐했고 그는 두 손을 곱게 모아 미안하다고 했다. 이유는 못생겼기 때문이었다. 얼굴 표정 하나 안 변하고 유머를 날리는 바람에 교육생들은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빵! 터졌다. 스스로 못생겨서 미안하다 말했지만 수료하는 교육생들에게는 단연 인기스타였다.

교육생 이광섭씨와 유수호씨의 모습 (좌) 수료식 장면을 페이스북에 업로드 하고 있는 유수호씨의 센스 (우) ⓒ 이아영

 

 

해설 실습을 한 첫 날에는 유수호씨가 캐스터 역할을 해주고 교육생들은 해설자 역할을 했다. 준비를 잘해온 몇몇 교육생들은 당장 현장에 투입해도 될 것 같다는 찬사를 받았다. 반면 준비가 미흡했던 교육생들은 실습에 앞서 자신감이 없었다. 그러나 유수호씨는 전문가였다. 상대방이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은 피하고 언제 질문 받아도 편안히 답변할 수 있는 질문을 했다. 전현직 해설가도 있고 앞으로 해설가를 꿈꾸는 교육생들도 있었다. 마치 진짜 해설을 하는 느낌이 들어서 너무 설레었다는 반응이 많았다.

 

 

여성캐스터 탄생시대가 온다! 

 2주차에는 교육생들이 짝을 이뤄 한 명은 캐스터, 한 명은 해설자 역할을 하도록 했다. 이 날 나는 사격 국가대표 출신 한혜경씨와 함께 2012 런던패럴림픽 복사 사격(엎드린 자세에서 사격)경기를 진행했다.

 

전 사격 국가대표 한혜경씨 ⓒ 이아영

 

 

사격 선수 출신인 한혜경씨에 비해 종목 이해도가 낮았던 나는 실습에 앞서 여러 번 경기 영상을 시청했다. 캐스터 역할을 해야 하는 입장으로서 준비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실수가 많이 연발되는 바람에 여러 번 폭소를 터트렸다. 중계를 하는 것이 아니고 둘이서 경기 보러가서 대화하는 거냐는 질문도 받았다. 내 종목이 아니었기 때문에 상당 부분 부족함을 느꼈다. 파트너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우리 덕분에 나머지 교육생들이 웃을 수 있어서 기뻤다. 아마 수명이 몇 년은 연장되었을 것이다. 내가 캐스터 역할을 해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성 스포츠 해설위원은 본 적이 있는데 여성 캐스터는 왜 본 적이 없지?” 
 이번 교육을 계기로 나는 그 동안 한 번도 고민해보지 않았던 문제를 고민 하게 되었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오른쪽에 앉아 있는 사람은 남자일 때도 여자일 때도 있었다. 그러나 왼쪽에 앉아 있는 사람은 한 번도 여자였던 적이 없었다. 시대는 변한다. 앞으로 여성 캐스터의 탄생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을 보는 누구라도 관심이 있다면 당장 캐스터가 되기 위해서 도전해보길 기대한다. 아무도 우리에게 먼저 마이크를 내밀지는 않을 것이다.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주인공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스포츠 미디어 아카데미를 수료하면서 지난 10주간의 추억을 영상으로 만들어보았다. 수업을 진행했던 강사들의 주옥같은 메시지와 실제로 카메라 실습을 했던 교육생들의 모습을 담아보았다.

 

 

 

 

 

또 한 번 교육된 27명의 예비 전문 해설가들이 배출되었다.

체육인재육성재단을 거쳐 간 NEST POWER 인재들의 미래가 기대된다.  ⓒ 이아영

 

 

* 깨알 같은 이기자 수첩 [NEST POWER?]

 

NEST(Next Generation Sport Talent)는 체육인재육성재단을 뜻한다. NEST POWER는 체육인재육성재단에서 양성하는 모든 체육인재를 일컫는 말이다.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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