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송형석(계명대학교 교수)

 

 

        스포츠도덕이란 어떤 것일까? 전통적 의미에서 스포츠도덕은 스포츠규칙의 자발적 준수를 의미하였다. 철학자 게르하르트는 스포츠는 규칙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에 선수들이 규칙을 충실하게 지키는 한에서만 스포츠를 한다고 말할 수 있다고 하였다. 즉 스포츠선수는 자신이 참가하는 스포츠경기에서 그것의 구성적 조건인 규칙을 충실하게 준수해야만 스포츠선수라는 것이다. 만일 그가 자신이 참가한 스포츠경기의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는 더 이상 스포츠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나아가 더 이상 스포츠선수도 아닌 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스포츠규칙을 준수하지 않는 모든 선수는 스포츠선수가 아닌 자가 되며 비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자가 되는 것인가?

 

 


만일 스포츠에서 도덕적 선수와 비도덕적 선수의 구별 기준, 참된 의미에서의 스포츠선수와 스포츠선수가 아닌 자의 구별 기준이 규칙의 자발적 준수에 있다면 대부분의 선수들은 비도덕적 선수 또는 스포츠선수가 아닌 자에 속하게 될 것이다. 현대 경쟁스포츠에서 규칙 위반은 예외가 아니라 일상에 속하기 때문이다. 경기 장면을 관찰해보면 규칙 위반은 비도덕적 행위라기보다는 오히려 경기의 일부처럼 보인다. 심판은 규칙을 위반한 선수에게 규칙 위반의 정도에 따라 경고, 패널티 부여, 퇴장 같은 벌칙을 부과한다. 선수들이 위반해도 스포츠선수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하등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 규칙들도 있다. 그래서인지 경기에서 규칙 위반은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이와 같은 현실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전통적 의미에서 스포츠도덕의 준수를 강력하게 주장한다면 그와 같은 주장은 현실을 무시하는 처사이며 잠재적으로 모든 선수들을 비도덕적인 인간으로 만드는 것과 같다.


현실적 스포츠상황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다. 전통적 스포츠윤리는 정정당당한 승리, 스포츠맨십, 페어플레이 등을 강조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상대를 속이는 행위라고 할 수 있는 태권도, 축구, 핸드볼, 농구 등에서 페인트모션은 비도덕적인 행위가 된다. 그러나 현실적 스포츠상황에서 이와 같은 행위는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태권도경기에서 페인트모션, 축구경기에서 파울을 유도하기 위한 과장된 제스처, 하키선수들의 폭력 등은 비도덕적 행위라기보다는 오히려 경기의 일부라는 인상을 준다. 현실적으로 페인트모션을 썼다고 비난을 받거나 제재를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규칙 위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관중들은 적절한 시기에 규칙을 위반한 선수들에게 박수갈채를 보내기도 한다. 물론 모든 규칙 위반에는 그에 상응하는 페널티가 부과되지만 그 이상의 도덕적 비난은 없다. 주지하다시피 경쟁적 스포츠종목들에서 일종의 속임수인 페인트모션은 승리하기 위한 기술의 주요 부분이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스포츠규칙 일반에 대한 절대적 준수를 강조하는 스포츠도덕은 비현실적이다.


한 번 더 강조하지만 전통적 도덕 정의는 스포츠의 도덕을 구별하지 않고 뭉뚱그려 다루었기 때문에 스포츠상황에서 도덕적으로 행위 하라는 요청은 준수하기 쉽지 않은 요청이 되었다. 필자는 여기서 스포츠의 작은 도덕과 큰 도덕의 구별, 즉 경기에서 위반이 어느 정도 용인될 수 있는 규칙과 결코 허용되어서는 안 되는 규칙의 구별을 제안하고자 한다. 위반이 어느 정도 용인될 수 있는 규칙은 스포츠경기에서 구체적인 규칙을 준수하는 일과 관련이 있다. 예컨대 축구경기에서 골키퍼를 제외하고 손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작은 도덕이다. 이렇듯 작은 도덕은 규칙의 존중이나 규칙에 대한 공정한 태도를 의미한다. 한편 경기에서 그 위반이 결코 용인되어서는 안 되는 큰 도덕은 경기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금지된 수단이나 물질을 사용하거나 승부조작에 개입하는 일과 관련된다. 도핑이나 승부조작 금지 요청에 대한 기대는 경기 상황에서의 경기규칙 준수 요청에 대한 기대보다 크기 때문에 전자를 큰 도덕이라고 했고, 후자를 작은 도덕이라고 했다.


도덕 커뮤니케이션은 존중과 무시라는 주도적 코드에 따라 작동하는데, 작은 도덕의 경우 이 코드가 적용되는 대상이 특정 행위 영역에 속한 인격에게만 국한되는 경향이 있지만 큰 도덕의 경우 전 인격과 관련이 된다. 쉽게 말해 한 선수가 작은 도덕을 위반했을 때, 예컨대 경기규칙을 어겼을 때 선수로서 그의 인격에만 파울, 경고, 퇴장 같은 제재가 가해지지만 큰 도덕을 위반했을 때는 선수이자 일반인으로서 그의 인격 전체에 선수자격박탈, 벌금, 사회적 비난, 법적 처벌 같은 제재가 가해진다. 도핑 금지 외에 승부조작 금지도 스포츠의 큰 도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스포츠도덕의 구별은 스포츠의 문제를 조금 더 현실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현재 스포츠에서 가장 논란거리가 되는 것은 큰 도덕의 위반이다. 특히 도핑과 승부조작이 여기에 해당한다. 앞에서 설명하였듯이 작은 도덕의 위반은 경기의 일부로 볼 수도 있다. 작은 도덕의 위반은 경기를 흥미롭게 만들어주기조차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작은 도덕의 위반은 크게 문제시될 것이 없다. 그러나 큰 도덕의 위반은 심각한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흔히 스포츠를 일컬어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한다. 영화나 연극, 소설은 이미 결론이 정해져 있다. 그러나 스포츠에서는 그렇지 않다. 이것이 스포츠를 매력적이게 만든다. 예측을 불허하는 결과, 한 순간에 뒤바뀐 승부는 관중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그러나 만일 승부가 사전에 조작된 것이라면, 승리가 속임수를 동원해서 얻은 것이라면 관중의 실망은 클 것이다. 그에 따라 그들의 스포츠에 대한 관심은 크게 반감될 것이다. 스포츠를 가장 매력적이게 만드는 요인이 사라지기 때문에 스포츠는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이유에서 스포츠단체들은 도핑이나 승부조작 같은 큰 도덕의 위반에 대해 매우 강경한 태도로 반응한다.


만일 우리가 실천해야만 할 도덕을 큰 도덕에만 국한하여 볼 경우에 우리에게 중요한 도덕실천이란 페인트모션을 하지 않거나 경기 중에 파울을 범하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승리하는 그런 행동의 실천에 대한 요구가 아니다. 선수들이 도핑을 하지 않게 만드는 일, 선수들이 승부조작의 유혹을 뿌리치고 여기에 가담하지 않게 만드는 일이 우리의 관건이다.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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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태구 2014.03.04 14:59 신고

    작은 도덕과 큰 도덕 인상적인 설명이네요. 학교현장에서 결국 스포츠맨십의 교육은 작은 도덕의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글 제미있게 보았습니다.

 

 

 

글/송형석(계명대학교 교수)

 

 

           근대올림픽이 시작된 이후 경쟁스포츠는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꾸준하게 발전해왔으며, 현대인의 여가생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스포츠는 이 과정에서 아마추어리즘, 스포츠맨십, 페어플레이 같은 가치들을 표방함으로써 사회의 제 영역들로부터 긍정적 평가를 받았으며, 이에 힘입어 언론과 방송 같은 대중매체, 정치, 경제, 학문, 교육 등의 사회영역들과도 튼튼한 연결망을 형성하였고, 이 영역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사회의 필수적인 부분이 되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부터 경쟁스포츠는 그 동안 지녀왔던 긍정적 이미지를 점차 상실하고 있으며, 비판적 학자들과 진보적 언론으로부터 온갖 비리와 기만의 온상으로 지목되고 있고, 다른 사회영역들과 맺었던 협력적 관계도 점차 느슨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경쟁스포츠는 사회의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밀려날 우려가 있으며, 대중과 사회영역들로부터 외면당할 가능성이 높다.


경쟁스포츠가 각종 비리와 기만의 온상으로 지목받고 있는 중요한 이유는 승부조작과 도핑 같은 일탈 행위 때문이다. 특히 도핑은 그동안 스포츠가 지녀왔던 공정하고 건강한 이미지를 한 순간에 무너뜨림으로써 경쟁스포츠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호의를 크게 떨어뜨리고 있다. 도핑스캔들이 일간지와 TV 같은 대중매체를 통해 빈번하게 터져 나오면서 도핑은 우연적이며 일회적인 일탈형식이라는 대중의 믿음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신문구독자들이나 TV시청자들은 이와 같은 깨달음을 통해 공정함이나 건강 같은 긍정적 가치들과 결부되었던 경쟁스포츠를 기만, 약물, 질병, 죽음 같은 부정적 가치들과 결부시켜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여 스포츠의 긍정적 이미지를 자사의 상품 광고에 이용해왔던 기업들은 스포츠에 대한 계속적인 재정지원을 주저하고 있으며, 스포츠의 재현 기능에 기대어 평판과 지지율을 상승시키려고 노력해왔던 정치단체들 역시 스포츠에 무심해지고 있고, 교육 행정가들은 학교체육수업에서 ‘비-교육적’ 경쟁스포츠를 배제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IOC는 이와 같은 위기적 상황을 벗어나고자 도핑과의 전쟁을 선포했으며, 학계, 법조계, 정계, 대중매체 등 사회의 여러 영역들과 협력하여 경쟁스포츠에서 도핑을 근절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그 동안 기울여진 도핑 방지노력은 그다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도핑혐의가 인정된 사이클 황제 랜스 암스트롱

 

IOC가 도핑과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WADA가 창설되었고, 도핑검사기술은 획기적으로 발전했으며, 국가별로 운동선수들에 대한 반-도핑 교육도 강화되었고, 도핑을 자행한 선수들에 대한 처벌 규정도 한층 엄격해졌다. 그러나 도핑적발건수는 오히려 해를 거듭할수록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현재 도핑은 전문적인 선수들의 영역을 넘어서 아마추어선수들과 스포츠동호인들에게까지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다. 지금까지 기울여온 도핑방지노력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동안 학계는 도핑의 원인을 분석하고 방지대책을 마련하는 일과 관련하여 윤리적 차원과 법적 차원에 국한하여 논의를 진행해왔다. 윤리적 차원의 논의는 도핑의 원인을 운동선수 또는 경쟁스포츠관련자 개인의 윤리 의식 결핍에서 찾고, 이들의 윤리 의식을 강화시키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여기서 윤리 의식의 강화는 주로 반-도핑 교육과 반-도핑 홍보를 통해 이루어졌다. 한편 법적 차원의 논의는 운동선수 내부의 감시자, 즉 윤리의식이나 스포츠맨십 같은 운동선수의 양심만으로는 도핑 근절이 어렵다는 판단 하에서 민법이나 형법에 의한 처벌 같은 외적 제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한다고 주장해왔다. 윤리적 차원의 논의와 법적 차원의 논의는 서로 뉘앙스는 다르지만 도핑의 원인과 책임을 철저하게 운동선수나 코치, 스포츠단체 관련자, 스포츠의학자 같은 개인에게 귀속시키는 개인화전략을 구사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개인화전략은 문제의 소재와 책임 전가를 분명하게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이에 근거하여 문제 해결 방법을 쉽게 도출해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유용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복잡하게 얽혀있는 도핑현상을 적절하게 이해하고, 그것에 대한 효과적 방지 대책을 세우기 위한 전략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개인화전략이 가정하고 있는 것처럼 경쟁스포츠의 도핑은 쉽게 이해될 수 있거나 쉽게 설명될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도핑은 다양한 관점들과 이해관계가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매우 복잡한 현상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당신이 축구에 대해 …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가정해보자. … 이제 당신은 … 한 스타디움의 관중석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 주심을 제외하고 모든 선수가 당신에게만 보이지 않는 마법의 외투를 입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 당신은 무엇을 보고 있는가? 검은색 반바지 차림으로 잔디밭을 이리저리 분주하게 뛰어다니며, 노란색 카드를 공중에서 휘두르기도 하고, 호루라기를 부르고, 대화를 하기도 하고(혼잣말?), 욕설을 내뱉고, 주의를 주고, 얼굴을 찡그리고 거친 몸짓을 하는 남자를 보며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는가? … 당신은 그가 나사가 하나 풀리고, 신진대사가 불균형하거나, 또는 정신적으로 뭔가 혼란스러운 사람이라고 추측할 것이다”(박현용 역, 2010)

 

위의 예는 개인의 행위가 심리적 과정보다는 사회적 맥락을 통해서 더 잘 설명될 수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기존의 윤리학 및 법학적 논의는 도핑 같은 일탈행위가 이루어지는 복잡한 사회적 맥락을 행위자 개인의 자유의지에 따른 결정이자 이기적인 동기로 감축시켜 설명한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물론 기존의 논의 가운데는 도핑 같은 일탈행위의 원인으로 경쟁스포츠의 구조적 특성인 승리지상주의를 지목하고 해법으로 그것의 약화 또는 제거를 제안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관점 역시 경쟁스포츠와 연결되어 있는 더 넓은 사회적 맥락들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이해를 돕기 위해 앞의 예를 조금 더 진행시켜보자. 이제 선수들을 가렸던 투명망토가 벗겨졌다고 상상해보자. 이제 당신은 심판의 행동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즉 그가 왜 뛰어다니고 소리치고 인상을 쓰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심판이 특정 팀에게만 유리하게 판정을 내린다는 것을 깨달게 되었다. 그리고 이에 대해 분노하면서 그가 정신이 나갔거나 실수했을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판정실수가 반복될 경우 또 다시 그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렵게 될 것이며, 그에 대해 화를 내거나 자질을 탓할 것이다. 그러나 다음 날 언론 보도를 통해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던 그의 통장에 일주일전 거액의 돈이 입금되었으며, 돈의 출처는 그가 유리하게 판정했던 팀을 후원하는 기업이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면 의심스러웠던 그의 행동들이 이해가 될 것이다.

 

이 예가 말해주고 있듯이 개인의 행동은 행동이 이루어지는 체계의 기대구조에 의해 영향을 받을 뿐만 아니라 그 체계와 구조적으로 연동되어 있는 다른 사회체계(위 예에서는 경제)의 기대구조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도핑 같은 일탈행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핑을 자행한 개별 행위자의 동기뿐만 아니라, 그와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 여러 사회체계들의 관계가 폭 넓게 분석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사회적 맥락들을 충분하게 고려하지 않고 제시된 도핑의 원인 분석과 방지 대책은 설명력이 빈약할 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효과를 거두기도 어렵다. 도핑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개인화전략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금지조처 이외에도 경쟁스포츠와 직간접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사회체계들의 기대구조, 상호침투, 교란 등에 대한 폭넓고 심도 있는 분석이 요구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체계들 상호간의 조정과 간섭 전략을 개발해내는 일이 필요하다.

 

 

ⓒ 스포츠둥지

 

 

 

박현용 역(2010). 축구의 미학: 세계 석학들 축구를 논하다. 초록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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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준한 2013.05.26 19:25 신고

    사람마다 생각하는것이 다르겠지만 이글 하나를 읽으면서도 여러가지 생각이듭니다.
    그것은과연 도핑이 나쁜것인가 괜찮을것도 같은데 라는 생각입니다.
    요즘에 성폭행범이 활개를 치고 있는데 반해 법적인 제제를 가해도 하루에 하나씩 꼭 기사를 보게됩니다.모든 법은 불법을 막기위한 해결책이라고 하지만 성폭행범들에게 한시간 강의를 해서 '성폭행을 줄일수 있을것이다'라는 생각은 크게 와닫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형시켜야한다. 종신형이다' 라고 하지만 현재 법으로는 이를 막을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의 사고방식, 윤리적, 도덕적 책임을 법으로 막는 다는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인것같습니다. 물론 조금이나마 도움은 되겠지만 말입니다. 이런것도 생각을 해봅니다. 한선수당 도핑횟수를 제한하는 겁니다. 아예 못하게 하지말고 횟수에 제한을 둔다든지 모든선수들에게 도핑을 허용한다든지 다른 방법을 모색해보는것이 좋겠지만 가장중요한것은 현재 사회에서 추구하는 실태에서 선수들에게 윤리의식 굘핍을 보안하여 도핑을 막을 방법을 찾아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쉽게 없애는 방법중하나는 스포츠를 그냥 즐기고 스포츠경쟁사회를 없앤다면 사라질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 안중섭 2013.05.27 18:54 신고

    안녕하십니까 대학원 2학기차 안중섭입니다.
    이 글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스포츠에 있어 악의 축인 도핑에 대해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했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통해서 도핑과 같은 일탈행위가 단순히 개별 행위자의 동기에 의해 자행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한 명의 선수 혹은 심판이 도핑과 같은 일탈행위를 저지르는 상황 그 뒤에는 아주 복잡한 사회체계(사회적 맥락)가 뒷바침되고 있으며, 이를 막기 위해서는 단순히 윤리나 법과 같은 체제적인 부분만을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도핑에 관한 문제는 선수 개개인을 떠나 그 선수의 뒤에 있는 기업 혹은 사회 전체를 아울러 보는 눈을 통해 그에 대한 합당한 처벌 혹은 대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도핑을 자행한 선수의 잘못뿐만 아니라 그 선수가 왜 도핑이라는 악을 선택하게 되었는지를 아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김대원 2013.05.27 22:58 신고

    안녕하십니까. 1학기생 김대원입니다.
    경쟁스포츠가 각종 비리와 기만의 온상으로 지목받고 있는 중요한 이유는 승부조작과 도핑 같은 일탈 행위 때문이다.
    경쟁스포츠의 도핑은 쉽게 이해될 수 있거나 쉽게 설명될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도핑은 다양한 관점들과 이해관계가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매우 복잡한 현상이다.
    도핑 같은 일탈행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핑을 자행한 개별 행위자의 동기뿐만 아니라, 그와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 여러 사회체계들의 관계가 폭 넓게 분석되어야 한다.
    도핑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개인화전략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금지조처 이외에도 경쟁스포츠와 직간접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사회체계들의 기대구조, 상호침투, 교란 등에 대한 폭넓고 심도 있는 분석이 요구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체계들 상호간의 조정과 간섭 전략을 개발해내는 일이 필요하다.


    저 역시 도핑과 일탈행위의 원인과 책임은 개인과 사회 구조 두 곳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윤리적 차원의 논의와 법적 차원의 논의의 무게를 좀 더 높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프로선수들은 2개월에 한번씩 무조건적으로 도핑검사나 약물검사를 주기적으로 받거나, 간접적 내용의 설문지로 성향테스트를 주기적으로 하는것, 법적으로는 벌금과 파직이 아닌 구치소로 형벌을 받는것으로 무게를 주는것입니다.

    그리고, 개인화전략을 기반으로 한다고 하셨는데, 전 개인이 왜 했는지는 궁금해하지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도핑과 승부조작을 한 이유의 최종목적은 최고의 자리를 원하거나 경제적인 문제 때문 일것입니다.
    선수, 심판, 감독 누구이든 이유없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도핑을 하거나 승부조작을 한 순간 뭐든 파직을 시켜야된다고 생각합니다. 각자의 개인적인 사정은 개인의 것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포츠상에서 안된다는 걸 알면서 한다는 것은 다양한 사회체계의 성격과 스포츠맨십, 아마추어리즘 정신이 없으므로 그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경쟁스포츠와 직간접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사회체계들의 기대구조, 상호침투, 교란 등 현재까지 도핑과 관련된 사회체계들의 사건들을 알고 싶고, 체계들 상호간의 조정과 간섭 전략을 개발해내는 일을 진행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 이병규 2013.05.28 18:14 신고

    도핑은 스포츠라는 작은 사회속에서 발생하는 가치, 규범등에 위반적인 행위입니다.
    스포츠에서의 도핑은 공정성이나 선수의 건강, 그리고 그것을 보는 타인들까지도 피해를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스포츠라는 작은 사회속에서 윤리와 법만으로 도핑을 막는다는것은 교실에 떠드는 학생에게 벌을 주는것과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학생에게 벌을 준다면 잠시는 조용할지 모르지만 떠드는 행위를 계속 통제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것은 학생의 사고의 변화, 즉 스포츠라는 사회자체의 가치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거기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며, 스포츠를 가치중심의 문화로 이끌어 나가려면 사회적인 정책과 제도, 그리고 신념같은 부분이 앞서야 할 것이며, 개인의 의지와 가치관들은 많은 교육이 바탕이 되어야 도핑을 예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최승구 2013.05.28 23:27 신고

    안녕하십니까 3학기생 최승구 입니다.
    개인적인 견해로서 저는 꼭 도핑이 나쁘다라고 생각하기에는 부족하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서로 이익만을 추구하게 되는 상황으로서 나쁘다라고 본다면 여태 밝혀지지 않는 불법적인 부분들로 인해 얻은 이익들은 다 무효가 되고 인정하지않아야 되는게 아닌가 합니다.
    이 글을 읽으며 "악법도 법이다." 소크라테스의 명언이 기억이 납니다.
    주관적으로 보았을 때 도핑은 매우 비신사적인 행위지만, 이것 또한 알려지지 않는다면 개인과 사회에 크나큰 이익과 홍보 및 엄청난 흑자 창출을 이끌 것이라 봅니다.
    도핑방지, 윤리, 법안 등 부정적인 시선들로마 보는게 아니라 긍정적인 시선들로 바라본다면, 언젠가는 그 긍정적인 부분으로 인해 비신사적이고 비도덕적인 행위가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라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 마수현 2013.05.29 00:24 신고

    안녕하십니까?

    1학기생 마수현입니다.

    이번게 게재된 교수님의 글을 읽고 느낀 점은 어떤 현상을 관찰할 때 지엽적으로 보

    지 말고 그 현상 뒤에 숨겨진 배경속에서 본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승부조작과 도핑 같은 일탈행위의 책임을 개인에게만 귀속시킨다

    는 것은 우리 모두가 반성해야 되는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화 전략이 계속 되는 한 악순환은 반복될 것이며,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경쟁

    스포츠의 뒤에 숨어 있는 배경을 분석하여 그에 맞는 전략을 개발해야 될 것입니다.

  • 정성원 2013.05.29 10:49 신고

    안녕하십니까. 1학기생 정성원입니다.
    "윤리와 법만으로 도핑 방지는 어렵다!"라는 본문의 글을 읽고 저 역시 도핑문제는 도핑을 한 개인의 선수에게 원인과 책임이 있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아니다 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뒤에는 본문에서 본 축구심판의 승부조작 또는 자사의 이윤을 남기기 위한 기업, 스포츠를 계속적으로 재정지원을 해주는 지지자들을 통해서 승부조작과 도핑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불법을 막기위해 존재하는 법적, 윤리적 차원의 논리를 조금 더 강력하게 대응하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도핑을 해서는 안된다고 더욱 본인들이 잘 알고 있는 선수들을 법적으로 강력하게 대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왜 도핑을 하게 되었는지 그 뒤의 배경을 정확하게 알고 대처를 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경쟁스포츠로 인해서 스포츠의 스포츠맨십, 페어플레이, 아마추어리즘과 같은 가치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그리고 스포츠에서 오로지 일등만 인정해주는 그런 사회적인 인식을 개선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조금더 긍정적인 마인드와 사고를 통해서 선수들이 눈치를 보지않고 편안하게 운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지금 모든 사람들이 해야 할 과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 이재민 2013.05.29 18:47 신고

    근대 올림픽 이후에서 볼 수 있듯이 스포츠는 스포츠맨쉽, 페어플레이등으로 인하여
    긍정적 효과를 통해 사회의 여러 영역과 연계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점들을 잊은채
    단순히 개인의 기록, 명예, 돈 등을 위해 도핑을 하게 됩니다. 물론 개인의 잘못과 사회체계적, 법등의 문제점도 있지만 선수들의 윤리의식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핑을 통해 개인의 이익을 만들 순 있지만 차 후에 문제가 발생하면
    개인의 처벌 및 몰락뿐만아니라 스포츠계 전체에 많은 악 영향을 가지고 오게 됩니다.
    물론 사회에서 경쟁스포츠를 하는 선수들은 어떠한 방법을 써서라도 좋은 성적을 내야만 한다는 인식을 가지게 한거도 있지만 선수들의 의식 부족이 가장 크다고 생각됩니다. 앞으로 윤리와 법 강화 뿐만아니라 스포츠와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 사회체계 등다각적인 면에서 도핑을 줄 일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 우동혁 2013.05.29 23:59 신고

    안녕하십니까! 1학기생 우동혁입니다.
    저는 승부조작과 도핑문제에 대한 뉴스를 항상 그 선수에 대한 원인, 책임, 처벌에 대한 보도만 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 선수에게만 고정관념으로 집중을 하였었습니다. 솔직히 우리가 알고있는 것은 이 선수의 스타성으로 선수만을 알고있고 이 선수의
    에이전트, 연관된 기업, 지원을 해주는 지지자들에 대해서는 모릅니다. 그래서 이 선수가 얼마나 처벌을 받고 있는지, 얼마나 반성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만 볼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법적 처벌 규정이 너무 약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선수나, 연관된 지지자들 및 기업들에게 정말 껌값에 지나지 않는 벌금과 금방 처리할 수 있는 처벌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돈만 내면 끝인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서로 연관된 사회구조체계들이 정말 긍정적 마인드와 경쟁스포츠에서 좋은 것들만 생겨나고 발전될 수 있는 먼가 강력한 처벌규정과 대응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업, 지지자들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되고 그들의 손에 놀아나는 선수들이 아닌 경쟁스포츠에서 정정당당히 승복할 줄 아는 스포츠세계가 만들어 졌으면 좋겠습니다.

  • 정현도 2013.05.30 00:11 신고

    안녕하세요? 저는 4학기생 정현도입니다.
    교수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위의 글 중에서 "개인의 행동은 행동이 이루어지는 체계의 기대구조에 의해 영향을 받을 뿐만 아니라 그 체계와 구조적으로 연동되어 있는 다른 사회체계의 기대구조에서도 영향을 받는다."는 말처럼 이러한 복잡한 관계속에서 문제의 본질, 배경과 이유 관계들이 폭 넓게 이해가 되어야 비로소 문제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개인적인 측면에서 도핑을 한 선수만을 처벌하고 넓은 사회적 맥락들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해결하려 든다면 이같은 현상들이 지속될 것입니다.

    충분한 이해와 노력하에서 선수 자신 스스로의 올바른 윤리판단이 같이 선다면 도핑을 막을 수 있는 최선의 길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올바른 사회적인 체계가 확립될 수 있도록 개인과 사회의 복잡한 관계를 먼저 이해하고 접근한다면 건강한 경쟁스포츠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 강민성 2013.05.30 00:51 신고

    안녕하십니까 1학기생 강민성입니다.

    예전 스포츠는 현대인의 여가생활이라든지 페어플레이, 스포츠맨십 등 긍정적인 평가로 여러 분야 영역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사회의 필수적인 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인 경쟁스포츠는 각종 비리, 승부조작, 도핑 같은 일탈 행위로 스포츠의 건강한 이미지가 퇴색되고 대중의 믿음도 무너져 내렸습니다.
    아무리 윤리 의식이 좋은 선수라 할지라도 도핑은 좋은 성적을 내야하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선수들에겐 ‘악마의 속삭임’처럼 달콤한 유혹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입니다.
    교수님의 글을 읽기 전에는 도핑은 좋은 성적을 내고 싶은 선수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본문 글을 읽고 도핑 같은 일탈행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핑을 자행한 개별 행위자의 동기부여가 아니라 그와 연결되어있는 여러 사회체계들의 관계가 폭 넓게 분석되어야 한다고 생각이 듭니다.
    경쟁스포츠로 인해 선수들은 일등을 할 수 밖에 없는 심적 부담감이 더할 것입니다.
    더 이상 승부조작과 도핑 같은 일탈행위를 한 개인선수의 잘못으로만 보지 말고, 경쟁 스포츠와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되어있는 코칭스태프, 스포츠 관련자, 기업 등이 어떻게 관련 되었는지 파악하고 그에 대한 대책이나 처벌을 해야 승부조작이나 도핑이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 개인에 잘못으로만 치부하게 되면 그 악순환은 계속반복 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 백상우 2013.05.30 10:51 신고

    안녕하십니까 1학기생 백상우 입니다.
    경쟁스포츠가 전 세계로 확산되어 발전함에 따라 현대인들에게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그로인해 대중매체 및 사회적 시선에 의해 경쟁이라는 스포츠요소를 갖춘 경쟁스포츠의 본질과 목적이 점차 위배되었고 현대의 스포츠는 건강함, 공정함, 스포츠맨십과 같은 긍정적 이미지와 결합되어 있지만, 그 속에는 도핑과 승부조작 이라는 현대스포츠의 가치를 훼손시키는 범죄행위가 연결되어 있다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도 도핑을 하는 선수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위 글을 읽고 난 후에는 그 뒤로 배경이 되고 있는 사회적 시선과 끊임없이 자신을 재촉하여 더 많은 성과를 내도록 강제하는 성과사회의 문제가 가장 큰 문제 같았습니다. 위 글에서 알 수 있듯이 도핑 같은 일탈행위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선수들이 도핑을 하겠다는 동기뿐만 아니라, 그와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 여러 사회체계들의 관계를 폭 넓게 분석을 하여 도핑의 원인과 방지 대책을 세워야 조금이나마 도핑이라는 스포츠의 가치를 훼손시키는 범죄행위가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이형섭 2013.05.30 16:03 신고

    안녕하십니까 1학기생 이형섭입니다. 경쟁스포츠가 발저함에따라 현대인들의 여가생활에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스포츠가 그 욕구를 충족시켜왔다. 스포츠의 기본바탕인 페어플레이 스포츠맨쉽과 같은 긍정적인 요인들이 스포츠 발전에 큰 밑거름이 되엇다. 그러면서 대중매채또한 스포츠에대한 관심이 증가하여서 더욱 스포츠가 인기있어졌다. 하지만 경쟁스포츠에는 도핑과 승부조작이라는 어두운 측면이 있다는것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도핑과 승부조작은 범죄를 일으키는 개인에게도 분명한 문제가 있지만 더 큰범위로는 그 선수나 감도들이 속해있는 집단의 이해관계를 생각해보지 않을수 없다. 경쟁스포츠의 목표인 승리가 중요시되면서 이기기위한 방법으로 약물복용이나 승부조작들을 하게된 것이라고 볼수있다. 이것들을 개인이나 스포츠 집단의 도덕적문제로만 여겨서는 안되고 지금 사회가 흘러가는 방향과 또 그 승부를 지켜보는 우리의 자세에서도 반성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도핑과 승부조작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선수 나 감독 개인의 도덕적 가치관확립도 중요하지만 승패만을 중요시 여기는 스포츠체계와 성과위주로 선수나 감독을 판단하는 관점을 함께 변화시켜야만 도핑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김상협 2013.05.30 16:26 신고

    안녕 하십니까 1학시생 김상협 입니다.
    교수님 글 잘읽어습니다.
    승부조작과 도핑을 나쁘게 보고있는 사람중 한사람 입니다.
    하지만 저는 도핑 및 승부조작한 소속단체가 나쁘지만 그보다더 매체(방송&신문)가 더 나쁜것 같습니다.
    이런한 매체는 한사건이 나오면 좋은 내용은 작게 적고 나쁜쪽으로 더 부각 시켜서
    더 악질처럼 만드는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매체가 간섭하고 비판적으로 다가오면 이문제를 해결할수 없다고 봅니다.
    사람들은 좋은것보다 나쁜걸 먼저 습득 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예를들면 외국인 들인 처음 배우는 한국말이 욕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외국인들이 바라보는 욕이 체음에는 재미있고 신기해서 먼저 배우지만 나중에는 이게 안좋은것인지 알고 이해하지만 그래도 습관 처람 사용을 합니다.
    이처럼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시작을 했다가 나중에는 버른 처럼 행동을 하는데 이게 누가 하지말라고 하면 더하고싶다는(청개구리)성격이 큰게 작용을 하는것 같습니다.
    협회나 단체에서 교육을 하고있지만 매체가 조금 더 다른 시각으로 보고 좋은 쪽으로 도와주면 더크고 좋게 효과가 있을것 같습니다.

  • 양세정 2013.05.30 17:11 신고

    안녕하십니까?
    양세정입니다.
    교수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도핑은 개인의 윤리의식에 가장 큰 문제점을 두고 있지 않나 생각했는데 이 글을 읽고 개인의 윤리의식 뿐만 아니라 사회체계와의 관계, 작게는 개인의 사생활 문제까지 관여되어 있다는것을 알게되었습니다. 보통 선수들의 도핑이 확인되고 문제로 떠오르면 사람들의 질타는 고스란히 선수들의 몫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그 속을 보면 오로지 선수 개인의 잘못된 판단뿐 아니라 그 선수가 속해있는 팀과 그 팀의 스폰서가 깊숙히 관여되어 있다는 겁니다. 도핑이라는 문제가 불거져 나올 때마다 선수 개인의 양심이나 가치관만을 문제 삼는것이 아니라 그 뒤의 큰 배경들의 문제를 하나씩 끄집어 내어 해결하고 교육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 서정학 2013.05.30 17:34 신고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1학기생 서정학입니다.
    교수님 글을 잘 읽었습니다. 저도 교수님의 의견처럼 도핑과 승부조작으로 인해서
    지금의 스포츠는 많은 이미지 실추와, 대중에서 많은 실망을 안겨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로 인해 대중에게 외면을 받게 되면, 기업에서의 스폰서쉽도 끊어지게 될것이고, 그렇게 되면 스포츠계의 어려움이 많아질것 같아서 걱정이 앞섭니다.
    그리고 IOC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도핑이 줄지 않고 늘어나는것은, 교수님 말씀처럼 개인화 전력을 기반으로 해서 보다 폭 넓은 방법으로 다가가야할것 같습니다.
    먼저 경쟁스포츠로 인한 선수가 처해진 상황과, 직간접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사회체계들의 기대구조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기울려야할것 같습니다. 이런 사회적 흐름과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다면, 도핑을 하는 선수는 없어지지 않을꺼 같습니다. 그리고 도핑 뿐 아니라 승부조작같은 경우는 선수혼자만의 문제라기 보다는 감독 혹은 팀 전제의 문제가 될수 있고, 함께 고민해야될 문제 인거 같습니다.

  • 허민지 2013.05.30 17:45 신고

    안녕하십니까 1학기생 허민지입니다.

    교수님의 글을 읽으며, 이때까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들을 다른 방향으로 돌아볼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저도 처음 도핑이라는 부분을 접했을 때 당연히 불법적인 것이며, 선수의 과욕으로 발생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글을 읽고 다른 방향으로 접근해 보았을 때 그 선수는 왜 그런 욕심이 생겨나고 불법적이며 자신의 몸을 망치는 행위까지 해야 했을지 그 과정에는 물질만능주의와 승리만이 목표가 되는 메달의 색깔에만 취중되는 사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핑이라는 행위가 단순히 개인의 불법적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의 구조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페어플레이, 스포츠맨쉽, 건강 등 스포츠를 접했을 때 떠오르는 대표적 이미지들이 사회의 기대구조로 인해 부정적으로 변화되어 가는 부분이 안타깝습니다.
    이 문제를 법이라는 도구로 단순히 개인에게 가해지는 처벌로 해결해 나갈 수 있기 보다는 성과주의사회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최규창 2013.05.30 17:49 신고

    안녕하십니까 1학기생 최규창입니다.

    항상 교수님의 글을 읽으며 모든 글의 내용들이 겉보기만이 아닌 한번 더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도핑이 개인만의 이해관계가 아닌 여러 복잡한 관계가 있다는 것에 대해 잠깐 부정적인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도핑을 하게 된 이유는 자신의 승리를 목표로한 것 이기에 지는 경기를 위해 도핑을 하는 선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경쟁적인 사회 구조와 함께 승부조작을 부추기는 주변의 환경과 분위기가 먼저 완화 되면서 분위기를 바꿔나가는 것이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도핑, 승부조작 등 선수 개인과 경기게 개입된 문제만이 아닌 사회적인 면에서 큰 틀안에서 다뤄야 할 문제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조성우 2013.05.30 18:00 신고

    안녕하십니까 3학기생 조성우 입니다.

    항상 사람들은 도핑이라고 하면 나쁜것이다, 그 선수는 추방 당해야 된다고 생각들을 하고있습니다. 저 또한 그런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교수님 글을 읽고 난 후 그 선수만의 잘못이 아닌 성과주의라는 사회적 측면으로 인해 선수 스폰서나 매스컴 등 에서 무언의 압박이 개입이 됐는지를 먼저 찾고 그 해결방안을 마련을 해야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이런 악순환 들이 반복될것이고 도핑 이란 약물복용을 계속 할수밖에 없는 상황이 초래할것입니다.

  • 박병준 2013.06.01 01:07 신고

    안녕하십니까. 체육교육전공 1학기생 박병준입니다.

    이번 주제의 글을 읽고 나서 도핑에 대하여 다시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습니다.
    먼저 스포츠에서 선수들은 왜 도핑을 할까 생각해봤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도핑은 운동선수들에게 마지막 수단이 아닌가 생각해보았습니다.
    인간은 끝 없는 노력을 해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수들은 그 한계 에서 도핑이라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 하고 약물복용 또는 투여하여 자신의 신체적 한계 능력을 뛰어 넘어 스포츠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선수들은 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 스포츠가 지녀왔던 공정하고 건강한 이미지를 한 순간에 무너뜨리고 경쟁스포츠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호의를 크게 떨어뜨리고 있을까 그이유는 바로 현재의 사회와 대중매체 두가지가 선수들을 도핑의 유혹에 빠져들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뭐든지 1등만 인정받고 1등만이 스포츠 세계에서 살아 나갈 수 있습니다. 2등선수, 3등선수는 인정 받지못하는 것이 현실 입니다.
    이러한 사회와 대중매체들이 변화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전세계 스포츠 에서는 도핑이 사라 질 수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스포츠정신에서 도핑은 분명 잘못되고 올바르지않지만, 먼저 우리의 사회와 대중매체의 변화가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송형석(계명대학교 교수)

 

            흔히들 스포츠는 사회의 거울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스포츠에 그 스포츠가 수행되고 있는 사회의 가치들이 반영되어 있다는 뜻일 것이다. 스포츠가 교육활동과 접목되어 활용될 수 있게 된 데에는 이와 같은 가정이 큰 몫을 하였다. 한 사회에서 다양한 가치들이 생겨나고, 이 가치들은 그 사회에서 수행되고 있는 스포츠에 반영된다. 그리고 스포츠에 참여하는 사회구성원들은 스포츠 사회화과정을 통해 이러한 가치들을 습득함으로써, 이 가치들은 다시 그것이 발원한 사회로 돌아간다. 이렇게 사회의 가치와 스포츠의 가치는 서로 순환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 ‘스포츠는 사회의 거울이다’라는 테제에 함축되어 있다. 그렇다면 사회로부터 스포츠로 유입되고, 스포츠로부터 다시 사회로 복귀하는 가치는 어떤 것일까? 그리고 그것은 누구에게나 권장해도 될 만큼 좋은 가치일까? 먼저 첫 번째 물음부터 살펴보자.

 

스포츠에 내재된 대표적인 가치로 언급되는 것들은 대개 경쟁, 팀워크, 자신감, 자기규율, 건강 같은 가치들이다. 그러나 스포츠참여를 통해 습득되는 가장 확실한 가치는 경쟁뿐이다. 팀워크나 자신감, 자기규율, 건강 같은 가치들은 습득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참가 경험을 통해 오히려 이기적으로 된 이도 있고, 자신감을 잃어버린 이도 있다. 또한 더욱 폭력적이 되거나 건강을 상실한 이도 드물지 않다. 이렇게 볼 때 이 가치들은 스포츠의 구성적 요소라기보다는 우연적 요소일 뿐이다. 반면에 오직 승리에만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스포츠의 특징을 고려할 때 경쟁이라는 가치는 스포츠의 구성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스포츠는 승패를 가리기 위해 인간의 감각기관으로는 도저히 식별 불가능한 근소한 기량 차이까지도 밝혀내는 장비까지 개발하였다. 이렇게 스포츠에서 승리에 대한 관심은 절대적이며, 이로부터 스포츠에 참가하는 자는 누구나 예외 없이 경쟁심이 강화된다.

 

 

이제 두 번째 물음에 대해 알아보자. 경쟁은 좋은 가치일까? 스포츠비판가들은 스포츠에 구성적인 가치인 경쟁을 매우 부정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경쟁은 인간을 소외시킨다고 믿기 때문이다. 즉 경쟁은 누군가를 패배시키고자하는 열망이며, 심한 경우 타인을 해치고자하는 충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아직 가치관이 확고하게 정립되어있지 않은 청소년기에 이러한 가치를 내면화하는 일은 피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이에 근거하여 학교교육에서 경쟁을 부추기는 스포츠를 금지해야한다고 강변하기도 한다. 미국 학교체육에서 시작된 소위 뉴-스포츠운동이라는 것이 이와 같은 경쟁 가치의 비판에서 출발하였다. 정말로 스포츠의 경쟁이 절대적으로 부정적인 것일까?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스포츠의 경쟁은 토마스 홉스가 『리바이던』에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묘사했던 무자비한 경쟁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스포츠상황을 꼼꼼히 살펴보면 경쟁과 함께 또 다른 가치가 경쟁스포츠에 붙박여 있으며, 이 가치는 경쟁이 특정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도록 지휘하고 통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철학자 드류 하이랜더는 『스포츠의 철학』에서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예를 들고 있다.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길거리 농구장에 여러 아이들이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앉아있다. 다른 팀과 경기를 해서 이긴 팀은 계속해서 경기장을 사용할 수 있지만 진 팀은 물러나야 한다. 인종차별주의자인 한 아이는 차례를 기다리는 아이들 중 다섯 명을 추려 팀을 꾸려야한다. 그런데 백인 아이만으로 한 팀을 꾸릴 경우 계속해서 경기장을 차지할 수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흑인 중에 기량이 뛰어난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과연 당신은 실력이 다소 부족한 백인 아이들만으로 팀을 꾸릴 것인가 아니면 마음에 들진 않지만 기량이 뛰어난 흑인 아이들도 함께 섞어서 팀을 꾸릴 것인가?

 

위 물음에 대한 답변은 명백하다. 백인 아이는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기량이 뛰어난 흑인 아이도 함께 섞어서 팀을 꾸려야만 한다. 그래야만 경기를 계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예는 스포츠가 경쟁심을 부추기는 활동이지만 그 밑바탕에는 공정이라는 매우 긍정적인 가치가 깔려 있다는 점을 일깨워주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스포츠의 경쟁을 부정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대인에게 적극 권장할만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치철학자 존 롤즈도 사회 정의의 원리로서 ‘공정한 경기의 이념’을 제안한 바 있다. 우리는 스포츠를 하면서 경쟁심을 갖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갖게 된 경쟁심은 공정성을 그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경쟁심이라는 점을 알아야만 한다. ‘공정한 경쟁’이라는 가치는 무한경쟁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절실하게 요구되는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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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하남길(경상대학교 교수)

 

 

 

        런던에 거주하는 한 교포는 런던 올림픽 배드민턴 입장권 구매에 성공했다며 올림픽 전부터 자랑을 늘어놨다. 그리고 7월 31일 오후 5시부터 카카오톡으로 문자와 사진을 전송해왔다. “배드민턴 응원가요.“ “관중석에 앉았어요. TV 봐요! 혹시 알아, 내가 카메라에 잡힐지ㅋㅋ” 등이었다. 다음 날 보니 다른 내용도 남아 있었다. “응원할 필요가 없네.” “헉! 실격이래.” 그때서야 그 교포가 응원간 날이 바로 여자 복식 “져주기 게임”이 열리던 날이었음을 간파할 수 있었다. 애국심 탓인지 법조계 직업 탓인지 뒷날 통화에서 그 교포는 선수들을 옹호하며, 오히려 국제배드민턴연맹의 사전 조치 미흡 상황을 비판했다. “국가나 자신을 위해 올림픽 메달에 청춘을 건 선수들이 누가 메달을 놓치고 싶었겠어요?”라는 말이 뇌리에 남았다. 수긍이 가는 점도 있었다. 하지만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영국은 스포츠의 나라이고, 런던은 스포츠의 요람이다. 축구, 럭비, 테니스, 배드민턴, 골프 등 수많은 스포츠가 영국에서 탄생했지만 거기에 공통점이 하나 있다. 모든 게임은 신사계급에 의해 조직화되었고, 그러한 스포츠에는 계급문화에 걸맞은 철학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페어플레이, 스포츠맨십 등과 같은 용어가 신사도(紳士道)를 상징하는 그들의 철학이었다. 귀족 전통이 배어 있는 테니스, 배드민턴과 같은 스포츠에서 매너와 정정당당하게 최선을 다하는 태도는 더욱 강조된다. 배드민턴(Badminton)의 혈통은 인도․영국 혼혈이지만 종목 명칭부터 귀족이었던 뷰포트 공작의 동네이름에서 따온 것이며, 0점을 제로(zero) 대신 러브(love)라는 애칭을 사용하는 것도 그런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 배드민턴에서 승부조작과 버금가는 “져주기 게임”이 나왔으니 영국적 정서로는 용납될 수 없었을 것이다. 매스컴에 알려진 대로 여자복식 조별 리그 최종전에서 대한민국 두 복식조는 “져주기 게임”에 관련되면서 국제배드민턴연맹으로부터 실격처리 됐고, 여자 배드민턴 4인방과 대표 팀 코치는 선수촌에서 퇴출되어 귀국조치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사태의 발단이 된 것은 조별 리그방식의 도입과 중국 선수단의 꼼수였다. 조별 상위 두 팀만 8강에 오르는 상황에서 묘하게도 A조의 한국(정경은-김하나)과 중국(왕샤올리-위양), C조의 한국(하정은-김민정)과 인도네시아(멜리아나 자우하리-그레이시아 폴리)가 모두 2연승,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만 남긴 상황이었다. 8강 진출이 확정된 마당이라면 당연히 토너먼트 대진표를 염두에 두지 않을 까닭이 없었다. 이론상 2위 실력자가 1위 실력자를 8강전에서 만나 패하면 노메달이고, 최후에 만나면 패해도 은메달이다. 세계 랭킹 1위(왕샤올리-위양), 2위(텐칭-자우윈레이)는 금, 은메달을 독식하고 싶었을 것이다. 랭킹 1위 중국은 2위인 자국 팀과의 대진을 피하기 위해 한국(정경은-김하나)에게 져주기 게임을 했고, 그러한 심리는 도미노 현상을 일으켰다. 랭킹 1위의 중국팀이 조 2위가 되자 꼼수 심리는 C조의 한국(하정은-김민정)과 인도네시아(멜리아나 자우하리-그레이시아 폴리) 전으로 전이(轉移)되었다. 굳이 1위가 되어 토너먼트 초반에 강자를 만날 이유가 없었기 지기위해 힘을 쓰는 게임을 한 셈이다. 이해는 가지만 그것은 선수만 아닌 선수단의 일탈행위였다.


스포츠 현장에는 수없는 일탈 행위가 존재한다. 축구에서 의도적 반칙으로 상대 공격을 잘 끊을 때 흥분한 해설자는 영리한 플레이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체급경기 선수들은 체중감량을 통해 낮은 체급으로 이동하여 메달을 노린다. 흔한 관례적 일탈은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심판 매수나 승부조작 등은 조직적 일탈에 속한다. 지도자도 몰랐을 리가 없다. 원인 제공을 누가 했건 겉으로 드러난 조직적 일탈은 올림픽 정신의 계승이라는 대의명분 앞에서 용서받기 어려운 행위가 되고 만다. 런던 배드민턴 경기였다면 더욱 용서받기 어려웠을 것이다.


배드민턴은 셔틀콕 게임이다. 셔틀콕은 선수의 손놀림에 따라 천변만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셔틀콕을 프리마돈나라 부르기도 한다. 우리 배드민턴은 바르셀로나 올림픽부터 금메달을 따내온 효녀종목이었으나 12년만의 노 골드는 물론 “져주기 게임” 사태로 나라 망신의 주범처럼 몰리고 있다. 그야말로 프리마돈나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지도자들은 평소 셔틀콕의 천변만화하는 비행모습을 보며 잠시 생각을 잘못하면 언제 어떤 모습으로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인생의 원리를 알고, 가르치기도 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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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이병진 (국민생활체육회 정보미디어부장)


남아공월드컵으로 지구촌이 떠들썩하다. 세상이 온통 축구공으로 보일 정도다. 눈을 뜨면 뉴스에서
축구이야기부터 시작한다. 회사에서도, 학교에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술좌석에서도 축구가 주 메뉴다.
도대체 축구가 뭐길래, 축구공이란 놈은 어떤 존재길래 우리를 이토록 흥분시키는가.



                                               콘텐츠출처: 오픈애즈(http://www.open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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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는 종교보다도 이데올로기보다도 강하다

축구공은 마법을 지니고 있다. 함께 뛰어 놀 땐 즐거운 놀이인데, 함께 응원할 땐 종교가 된다. 선수가
드리블하거나 트래핑 할 때면 주위의 모든 시선은 온통 공 하나에 쏠린다. 마치 블랙홀처럼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을 빨아들인다. 어떤 이는 독수리의 눈으로 공을 노려보고, 더러는 몽환의 세계에 빠져
감각을 잃는다. 질식이라도 한 듯이 호흡이 멈추고, 손과 발이 마취된다.

주사바늘로 약을 투여하지 않고도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일순간에 정지시킬 수 있다니. 정말이지
축구는 ‘발의 미학’이니 ‘그라운드의 예술’이라느니 이딴 표현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비의 묘약을
갖고 있다. 어느 종교가 이보다 더 강한 믿음을 갖게 하며, 또 어느 이데올로기가 이토록 강한 힘을
갖고 있으랴.

잠시 공 흐름이 바뀌고 한숨 돌린다. 그러다가 이내 다시 빨려 든다. 골이 들어갔다. 우리는 기뻤다.
박수로는 그 기쁨, 그 열광을 쏟아낼 수가 없어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 흘리고 감격했다.

한 골 먹었다. 순간 세상이 너무 슬퍼졌다. 그 슬픔을 표현하는 방법은 너나 우리가 모두 비슷하다.
한없는 절망감에 빠졌다가, 이내 화가 치밀어 오르고, 야수처럼 난폭해진다. 다시 평정심을 찾으면
저마다 판사가 되어 선수 한 명 한 명에게 형량을 부가한다. 그렇게 쉼 없이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축구는 우리네 인생이다.


각본 없는 드라마, 우리는 숙명처럼 공을 찬다

축구공은 절대군주다. 녹색 잔디 위에 공 하나만 던져 놓으면 모두가 그 공을 따라 움직인다. 말이
필요 없다. 독재자는 총칼로 사람을 움직이지만, 축구공은 스스로 움직이게 만드는 카리스마, 아니
권능을 갖고 있다. 축구경기장에서는 공이 굴러가는 대로 무조건 움직여야 한다. 언어와 인종, 종교
따윈 필요가 없다.

모두가 동일한 조건이다. 마치 잘 만들어진 시나리오에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선수들은 호흡을
맞춘다. 유명배우의 연기나 발레리나의 안무,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축구는 각본 없이 감동을
만들어 낸다. 넘어지고 무릎 깨어지고 가슴 터질 듯 뛰고, 거친 숨을 몰아 쉬고, 숙명처럼 공을 찬다.

월드컵축구대회와는 달리, 생활체육 현장에서 몸으로 느끼는 축구는 자못 진지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다소 느슨하다. 동네 아이들이나 어르신들, 여성축구도 그러하고, 조기축구회 아저씨들의 표정에는
익살이 묻어나고, 작은 실수마저 기쁨이 된다. 아이들에게 있어 축구공은 날개 없는 천사다. 공을 차며
아이들은 쑥쑥 자란다. 여성들은 축구를 하면서 저마다 하나쯤 갖고 있을 상처를 달랜다.

삶의 무게에 짓눌린 이 땅의 아버지들은 축구장이 아니면 어디서 큰 소리 한번 쳐 보려나. 어르신들은
축구공 하나가 곧 희망의 끈이다. 놓치고 싶지 않은 세월, 되찾고 싶은 젊음을 고스란히 축구장에서
쏟아낸다.


축구든 인생이든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가 있다

축구공은 인생살이다. 우리는 둥글둥글한 세상을 꿈꾼다. 아무리 세게 부딪혀도 주눅 들지 않는 탄력
있고 옹골찬 삶을 꿈꾼다. 축구공은 둥근 세상, 야무진 삶을 가르쳐 주는 인생의 좌표다. 공을 몰고 쏜살
처럼 달려갈 땐 발끝에 달린 공이 희망이 되고 믿음이 된다. 이기고 있다고 해서 자만해서도 안 되지만
패색이 짙다고 해도 섣불리 좌절할 필요도 없다. 언제든 인터셉트를 해서 바람처럼 달려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골 먹으면 우리도 한 골 넣으면 되고, 패스를 잘못해 공을 빼앗기면 후방 수비수가 도와준다. 슈팅이
빗나갔다고 하더라도 기회는 얼마든지 다시 온다. 왼쪽 공격이 막히면 오른쪽에서 공격하고, 측면이
뚫리지 않으면 중앙으로 공격하면 된다. 상대편 수비수가 밀집해 있으면 과감하게 중거리 슛을 날려야
한다.

최종 수비수는 절대 안전하게 볼을 다뤄야 하고, 불행의 싹은 미드필드에서 아예 잘라버려야 한다.
학교공부도 마찬가지고, 기업경영도 마찬가지다. 세상은 변화가 심해 정형화된 방법이 없다. 숱한
응용의 연속이다.

다만 몇 가지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 페어플레이 해야 한다는 것, 합심 단결
해서 움직여야 한다는 것, 상대선수도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것 등. 이것들은 축구든 인생이든
공통으로 적용되는 불변의 가치다.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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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윤강로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 원장)

1988년 서울올림픽은 물론 2002년 한국-일본 FIFA월드컵 공동개최에 따른 한국축구의 4강 신화, ‘붉은
악마 응원단’을 통해 전 세계에 보여준 대한민국의 막강한 응집력과 단결력은 스포츠를 통한 국가
브랜드 파워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표출하여 주었다.

 
해당 종목 별 스타 선수는 예외 없이 일반 스포츠 팬(Fan)을 광적으로 끌어들이는 스포츠 브랜드
파워의 원천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피겨의 김연아 선수, 수영의 박태환 선수, 축구의 박지성 선수,
야구의 이승엽, 추신수, 김태균 선수, 골프의 신지애, 박세리, 양영은, 최경주, 박지은, 미셀 위 등을
비롯하여 기라성 같은 올림픽 메달리스트 등은 그 좋은 예다.


                                                 (세계골프 여제 소렌스탐과 함께)


이러한 스타 선수들이 출전하는 국제스포츠 브랜드 파워는 지역적, 국가적, 글로벌 상품가치와 홍보
효과 그리고 부가가치 또한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이와 연관된 스폰서와 TV 등 미디어의 지원 등에
힘입어 국제스포츠이벤트는 지구촌 ‘황금 알 낳는 거위(a goose that lays golden eggs)’의 등용문이
되고 있는 추세다.

스포츠를 통한 국제관계 및 국제소통 그리고 올림픽 유치나 올림픽대회 조직 운영의 핵심요소는
“국제협력”이다. 국제협력에 있어서 개인적 접촉과 개별 인간관계는 오랫동안의 상호 신뢰와 우정이
밑바탕이 되어 협력체계가 형성된다. 사마란치 前 IOC위원장도 올림픽대회 성공의 관건은 “국제협력”
이라고 강조하곤 한 바 있다. 국제 협력 없이는 TV, 마케팅, 엔트리(참가신청), 언론, 안전, 회의, 홍보,
심판과 경기, 수송, IT(정보 기술) 등 제반 분야의 소통과 원만한 진전(進展)이 이루어 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국제협력’의 중심이 ‘스포츠외교’인 것이다.


올림픽의 “공용어”는 다름 아닌 “스포츠” 그 자체다. 올림픽의 “이념”은 “올림피즘(Olympism)”이다.
올림피즘이란 우리 인간의 신체, 의지, 마음이 전체적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함께 발전되도록 이끌어
주는 생활 철학이다.(Olympism is a philosophy of life, exalting and combining in a balanced whole the qualities of body, will, and mind.)

올림피즘은 스포츠를 문화와 교육에 접목하여 노력하는 가운데 얻는 즐거움, 모범적 사례를 통한 교육적
가치 추구, 그리고 보편타당 하면서 기본적이고 윤리적인 원칙을 존중하는 정신을 근간으로 하는 생활
방식을 창출하도록 이끌어 준다.(Olympism seeks to create a way of life based on the joy of effort, the educational value of good example and respect for universal fundamental ethical principles.)

올림피즘의 “목표”(Goal)는 스포츠를 통하여 어디서나 인간의 조화로운 발전을 꾀하며 그럼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보존하는데 주력하는 평화로운 사회를 건설하도록 하는데 있다. (The goal of Olympism
is to place everywhere sport at the service of the harmonious development of man, with a view to encouraging the establishment of a peaceful society concerned with the preservation of human dignity.)

올림픽운동의 목표는 스포츠를 통한 청소년교육으로 이 세상을 평화롭고 보다 더 살기 좋도록 이바지
하는 것이다. 스포츠는 어떠한 종류의 차별도 없이 행해져야 하고, 우정과 단결 그리고 페어플레이
(공명정대)정신에 입각한 상호이해가 근간이 되는 올림픽정신이 깃들여야 한다. (The goal of the
Olympic Movement is to contribute to building a peaceful and better world by educating youth through
sport practiced without discrimination of any kind and in the Olympic spirit which requires mutual understanding with a spirit of friendship, solidarity and fair- play.)



올림픽의  “가치”(Values)는
  “우수성(Excellence)”, “우정(Friendship)”, 그리고 “존중(Respect)”이다.

올림픽의 “정신”(Spirit)은 “우정(Friendship)”, “단결(Solidarity)”, 그리고 “정정당당(Fair Play)”이다.

올림픽의 “표어”(Motto)는 “보다 빠르게(Citius/Faster)”, “보다 높게(Altius/Higher)”, “보다 강하게(Fortius/Stronger)”다.

올림픽의 “신조”(Creed)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승리가 아니고 각고의 노력이듯이 올림픽대회
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승리하는 것이 아니고 참가하는 것이다. 필수불가결한 일이란 정복해 내는 것
보다는 잘 싸워 내는 것이다.’(The most important thing in the Olympic Games is not to win but to take
part, just as the most important thing in life is not the triumph but the struggle. The essential thing is
not to have conquered but to have fought well.)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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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송형석 (계명대학교 체육대학 교수)


알맹이가 중요할까 껍데기가 중요할까? 당연히 알맹이가 중요하지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하느냐고 핀잔듣기 십상인 물음이다. 껍데기는 단순히 알맹이에 부수하여 그것을 돋보이고
꾸며주는 보조적인 역할만을 수행하기 때문에 알맹이가 껍데기보다 중요함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 알맹이보다 껍데기가 중시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현금의 소비 경향을 일컬어 “상징적 소비”라고 표현한다. 사용가치나 교환가치 때문이 아니라
상징가치나 기호가치 때문에 상품을 구매한다는 의미이다. 예컨대 성능 때문이 아니라 외관과
디자인 때문에 자동차, 냉장고, 청소기 같은 상품을 구매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옷의 경우에
이러한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의복의 본질적 기능, 즉 사용가치는 보온과 보호, 가림 기능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요즘은 색상이나 디자인 또는 상표 때문에 의복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많다.
소위 “명품”의 구매 심리에 이러한 경향이 잘 반영되어 있다.

오늘날 껍데기를 중시하는 경향은 모든 사회 영역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경제 영역을 넘어서
정치, 나아가 개인의 일상 영역에까지 파죽지세의 기세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2006년 서울시장
후보에 올랐던 오세훈과 강금실의 대결에서 오세훈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이유를 생각해 보자.
그의 훤칠한 외모와 멋진 몸매가 유권자들에게 막연한 기대를 심어주었고, 주저 없이 그에게
한 표를 던지도록 만들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비밀이다. 당시 대중매체는 이를 두고
“감성정치”의 시대가 열렸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이미지, 상징, 외관 등으로 표현될 수 있는 껍데기는 일상생활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배우자 선택에서부터 신입사원 선발, 나아가 사회적 성공에 이르기까지 외모가 차지하는
비중은 해를 거듭할수록 커지고 있다. 능력 있는 사람보다는 능력 있어 보이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보다는 건강하게 보이는 사람이, 진실한 사람보다는 진실하게 보이는 사람이, 즉 알맹이가
견실한 사람보다는 껍데기가 번지르르 한 사람이 선호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이에 따라 껍데기를 가꾸는 일은 일생생활에서 중요한 덕목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러한 시대적
경향을 잘 반영하고 있는 영화가 있다. 2006년 말 개봉되어 수 개월간 박스오피스 1위를 고수했던
 “미녀는 괴로워”가 그것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가수이다. 가수에게 있어 알맹이는 목소리와
가창력이다. 반면에 날씬한 몸매와 아름다운 외양은 목소리와 가창력을 돋보이게 해주는 일종의
껍데기에 불과하다. 양자를 모두 겸비했다면 이상적이겠지만 전통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꼭 날씬한
몸매와 아름다운 외모를 갖추어야만 가수로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자, 심수봉 등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들은 대개 날씬한 몸매와 아름다운 외모를 갖추지는 못했지만 타고한 미성과
풍부한 가창력으로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미녀는 괴로워”에서 진짜 가수는 찬밥
신세고, 붕어처럼 입만 뻐끔대는 립싱크가수가 인기를 독차지 한다. 진짜는 적절한 껍데기를 갖추지
못했기에 푸대접을 면치 못했고, 가짜는 껍데기가 좋아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 결국 껍데기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깨달은 주인공은 껍데기를 바꾸기로 결심하고 성형과 스포츠로 자신을 완전히
재포장하여 신상품으로 거듭난다는 것이 이 영화의 줄거리다.

   

                        

이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껍데기가 중시되는 사회에서는 스포츠의 역할도 바뀌기 마련이다.
스포츠는 다양한 몸짓으로 이루어진 일련의 활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단순한 몸짓의
활동으로 그치지 않고 몸짓을 통해 내면적인 그 무엇을 고양시키는 활동으로 이해되어 왔다.
“스포츠맨십”, “페어플레이”, “협동심”, “인내심”, “극기의 정신” 등이 전통적으로 스포츠라는
일련이 몸짓을 통해 고양시키려고 했던 내면적인 그 무엇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스포츠로부터
기대하는 바가 “내면적인 것”에서 “외면적인 것”으로, 즉 알맹이에서 껍데기로 뚜렷하게 바뀌고 있다.
“날씬한 몸”, “근육질의 몸”, “에로틱한 몸”이 스포츠참여의 궁극적인 목표가 된 것이다.

 
 

포장 제조기로서의 스포츠 역할은 비단 개인의 몸 가꾸기에만 한정되지는 않는다. 지역 사회나
국가 같은 집단은 물론이고 전 지구적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경제체재를
포장하여 결국에는 인정과 승인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재현 및 상징 기제의 역할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의 월드컵 4강은 단순한 월드컵 4강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그것은 은근히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4강의 의미로까지 확장되어 해석된다. 100m 세계기록갱신은 단순한 선수 개인의
영광이 아니다. 그것은 근대 자본주의체재가 추구하는 비가시적 인류 진보를 가시화시켜 주는
사건으로 재해석된다. 이미 오래 전부터 스포츠는 개인과 집단, 나아가 전 인류에게 기존 자본주의
질서를 믿고, 받아들이도록 만들어 주는 환상적인 껍데기 역할을 담당해왔다.

탈주술화, 합리화, 세속화의 기치 아래 효율성과 효용성이 모든 가치의 척도 역할을 해왔던
근대화과정에서 이와 같이 신비주의화, 미학화 경향이 가속화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르크스는 근대 자본주의 경제 질서에 이미 그러한 속성이 내재되어 있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소비자가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이유는 그 상품이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켜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대와 현실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큰 맘 먹고 산 상품이 기대와는 다르게 전혀 자신의 욕망을 채워주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소비자에게 상품의 구매는 일종의 모험일 수밖에 없다. 기대는 해석의
 방식이다. 그것은 가시적인 상품의 외관이 제공하는 데이터를 매개로 이루어진다. 판매자는
잠재적인 구매자에게 가능한 한 많은 기대를 제공해 줌으로써 그로 하여금 결국 자신의 상품을
구매하도록 유혹할 필요가 있다. 구매자를 유혹하는 가장 대표적인 전략은 상품의 외관을
미학적으로 구성하는 일이다.

앞서 설명하였듯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 미학의 논리는 모든 영역에 침투하여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모든 영역에서 껍데기의 중요성이 역설되고 있다. 한편 껍데기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면서 과대 포장이 등장하였고, 나아가 알맹이와는 상관없는 껍데기, 소위
“탈맥락적 이미지”라고 부를 수 있는 껍데기 아닌 껍데기가 등장하였다. 이러한 껍데기는
더 이상 알맹이를 지시하거나 재현하지 않는다.

껍데기가 알맹이를 몰아내고 주인행세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플라톤이 이야기했던
가사세계와 가시세계, 원본과 이미지, 진리와 허구, 진짜와 가짜의 전도 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포이에르바하는 껍데기를 중시하는 현대 사회의 경향과 관련하여 “확실히 기호화되는 물건보다
기호 자체가, 원본보다 복사본이, 현실보다 환상이, 본질보다 외관이 더욱 선호되는 오늘날의
시대에는 … 오직 환상만이 신성한 것이고 진실은 세속적인 것이다. 아니 오히려 진리가 감소되고
환상이 증가되는 정도에 비례하여 신성성은 더욱 고양된다고 여겨지고 있고, 그 결과 최고도의
환상이 최고도의 신성성이 되고 있다.”고 썼다.

알맹이가 중시되었던 문화에서 스포츠철학자들은 스포츠가 인격 같은 알맹이를 가꾸는 적절한
수단이라고 애써 주장했다. 그렇다면 이제 껍데기가 중시되는 문화에서 우리는 스포츠가 껍데기를
만드는 데 탁월한 수단이라고 주장해야만 할 것인가? 아니면 전통적 입장에서 이러한 경향을 싸잡아
 비난할 것인가?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니고 이러한 현상을 적절한 언어로 설명함으로써 개인에게
 성찰의 기회를 제공해주는 역할에 만족할 것인가?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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