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신승환 (해군사관학교 전임강사)

 

      우리는 체육학에서 배운 내용을 현실에서 효과적으로 적용하기 위해 늘 고민하고 탐구한다. 그럼에도 실험연구가 아닌 다수를 대상으로 적용하다 보면 언제 얼마나 훈련시키는 것이 적정한지 고민하게 되고, 설령 프로그램을 과학적으로 설계하더라도 참여자의 참여도 등 여러 원인으로 적용에 한계를 느끼게 된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과학적 원리는 전문가들이 선수들에게만 적용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포기하기 쉽다.

 

 본 고는 강군 양성이라는 부담을 가지고 있는 군의 기초군사훈련을 적정한 훈련시기의 배치와 훈련시간이라는 측면에서 분석한 흥미로운 결과를 제시하고자 한다. 이는 연구설계의 기초자료 뿐 아니라 일반 보건소나 상업 프로그램 작성에도 참고가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지금까지의 연구들은 일정기간 특정한 훈련방법에 따른 효과를 입증하는데 중점을 두었을 뿐, 훈련시기의 배치나 시간의 적정성을 연구한 사례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참여자의 훈련 전 체력은 유사하였고, 모든 프로그램은 훈련주차별, 일과별, 체력수준별로 다음과 같이 동일하게 구성하였다. 훈련주차별로 점진적으로 훈련강도를 높이고(40~90%HRmax), 일과별로는 아침일과시에는 몸풀기, 얼차려시에는 근지구력 육성, 체력단련시에는 강인한 체력육성을 목표로 하였다. 체력수준별로는 환자와 비만, 저체력자를 구분하여 그에 적합한 훈련강도와 방법을 적용하였다. 

 

 

 

 훈련시기는 총 4가지로 배치하였고, 훈련시간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구 분

훈련 배치시기

훈련시간

수영훈련 시기

체력결과

비 고

1그룹

1~4주까지 분할

190h

2

1

 

2그룹

1~3주까지 집중

190h

미시행

4

 

3그룹

2~4주까지 집중

160h

2

2

동일 프로그램에서

수영훈련시기만 조정

4그룹

2~4주까지 집중

160h

3

3

 * 1,3,4그룹은 1주차에 앉았다일어서기 등 파워존 적응에 중점, 2그룹은 초기부터 행군 등 훈련시행 

 

 

분석결과는 첫째, 1주차에 파워존 육성 등으로 신체를 적응시킨 후 2주차부터 본격적으로 훈련하는 것이 효과가 있었고, 둘째, 적정하게 훈련강도를 설정하더라도 초기부터 훈련량을 집중시키는 것은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들며, 셋째, 수영훈련은 인체의 부하를 최소화하여 체력을 향상시킬 수 있고, 넷째, 수영훈련 후 기타 신체훈련을 하는 것이 반대의 사례보다 환자 감소 등에 효과가 있었다.
 
 요약하면, 훈련강도를 적정하게 설정하더라도 1주차에는 신체가 훈련에 적응하고, 심신의 피로가 누적되는 2주에는 수영훈련 등으로 피로를 회복시킨 후, 훈련을 지속하는 것이 초기부터 강한 훈련을 집중하는 것보다 체력향상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결과는 강군 육성을 위한 훈련 뿐 아니라 단시간에 체력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을 때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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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엄혁주(고려대학교 강사)

 

 

             초등학생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선생님은 단연 체육을 많이 해주는 선생님이다. 그러한데는 아이들의 타고난 움직임에 대한 욕구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다양한 신체활동은 단순히 움직임을 통해 신체 발달만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아이들의 신체적, 정의적 그리고 사회적 영역을 골고루 발달시킨다. 초등학교 체육교육의 목표가 아동의 심동적, 정의적, 인지적 영역의 고른 발달을 통해 전인으로의 성장을 도모하는 것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다른 교과와 달리 체육교과는 그 어떤 교과보다도 자라나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꼭 필요하고 의미있는 과목이 된다. 그러나 실제 초등학교 현장은 체육의 중요한 가치들을 무색케 할 정도로 체육수업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초등학교는 중․고등학교와는 달리 담임교사에 의해 체육수업이 이루어진다. 몇몇 학교에서 체육전담교사를 운영하기도 하기만 그들 중 거의 대부분이 비 전공교사들이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실제로 초등학교에서 체육수업을 운영하는 교사들은 운동 종목과 수업모형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며, 단조로운 수업운영을 하고, 타교과목으로 대체하거나 학생들에 대한 통제의 도구로 운영하기도 한다.


초등학교 교사들이 모여서 체육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 항상 나오는 것이 “막상 체육수업을 하려고 하면 잘 몰라서 그런지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수업모형은 적용하기에 너무 어려워요.”등과 같이 수업 진행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최근 초등학교 체육수업모형과 관련된 연구를 살펴보면, 대부분이 새로운 모형을 적용한 것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실제 수업현장에 적용하려고 하면 초등학교 교사들에게는 너무 부담이 크다. 왜냐하면 초등학교 교사들은 전 과목을 가르치므로 한 과목에 집중해서 연구할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초등학교 체육수업에서 개인차를 고려한 지도나 다양한 평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초등교사들이 체육수업에 쉽게 적용할 수 있는 수업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Kagan 구조(Kagan Structures)

Kagan은 교사들과 수 십년 간의 연구들을 통해 현장에 바로 적용가능하며 쉽게 배울 수 있는 수업방법인 Kagan 구조를 고안해내었다. 협동학습의 구조적 접근에서 시작한 Kagan 구조(Kagan Structures)는 단시간에 적용할 수 있는 수업방법으로 간단한 구조들의 절차를 재구성하고 활용하는데 많은 노력 없이 쉽게 활용할 수 있다. 또한, Kagan 구조는 기존의 학습 방법에 삽입하여 활용할 수 있어 매우 현실적인 학습 방법으로 보고되고 있다(Kagan, 2001).


여기서 말하는 “구조”는 Kagan의 구조에서 가장 핵심이 된다. 이는 하나하나의 독립된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어 특정한 내용과 상관없이 수업활동을 위한 청사진을 제공한다.

 

 

 

 

“구조”수업을 ‘어떻게(how) 가르칠 것인가?’ 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내용”은 ‘무엇을(what)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구조에 내용을 담아 학습 활동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 때 교사는 구조와 내용을 학습 목표에 맞게 잘 선택하여 ‘학습활동’을 이끌어낸다<그림 1>.


그러나 여기에는 다음의 4가지 요소(PIES)가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Kagan & Kagan, 1998).

 

 

P

긍정적인 상호의존(Positive Interdependence)

I

개인적 책임(Individual Accountbility)

E

동등한 참여(Equal Participation)

S

동시다발적 상호작용(Simultaneous Interaction)

 

 

Kagan(1989)은 이 4가지 개념이 포함되어 있는 200여 가지의 구조들을 소개하며, 수업을 계획하는데 PIES 개념은 자연스럽게 수업 활동 속에 구성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학생들은 스스로 과제를 해결하고 이것이 보상이 되어 스스로 성취감을 느끼게 된다. 특히 이러한 활동은 학생들을 몰입(Flow)하게 하여 수업에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 낸다.

 

 

체육수업에서 적용가능한 Kagna 구조

체육교과는 타 교과와 다른 특성을 갖고 있으므로 <표 1>과 같이 사고-공유-수행(Think-Share-Perform), 짝-점검-수행(Pairs-Check-Perform), 직소 수행(Jigsaw Perform)등과 같은 구조로 재구성하여 활용하여야 한다(Dyson & Grinescki, 2001). 일반교과에서 활용할 수 있는 구조를 <표 1>에서와 같이 체육수업에서 적용 가능하도록 재구성해 보았다.

 

 

 

 

정확한 이해를 돕기위해, 생각-공유-수행을 예로 설명을 해보자.


생각-공유-수행은 짝과 함께 나눈 생각을 토대로 공유한 생각을 수행하는 구조로서, 생각하기, 생각 나누기, 협의하기, 수행 등을 통한 방법이다. 특히, 이 구조는 게임 및 스포츠 참여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업내용에 적합한 구조이다(Dyson & Grinescki, 2001). 그러므로 도전과 흥미를 유발하는데 적합하며, 자기표현같은 댄스에 활용하면 그 효과가 극대화된다.


수업의 절차로는
첫째, 교사는 학생들로 하여금 도전을 장려한다.
둘째, 학생들은 각자가 해결책이나 방법을 구상한 후, 짝과 함께 해답을 나눈다.(Think)
셋째, 학생들은 각자 짝과 함께 최소 한 가지의 해답을 수행하고 활동에 있어서 어떤 해답을 수행할 것인지 결정한다.(Share)
넷째, 결정한 수행을 실시한다.(Perform)
이처럼, 수업절차도 방법도 어렵지 않게 바로 적용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Kagan 구조의 가장의 장점이 된다.

 

초등학생 시기는 가족 간의 사랑, 학교에서 동료와 교사의 사랑 그리고 주변 환경 속에서 만나게 될 다양한 사람들의 사랑을 느끼고 만끽하며 부정적인 감정의 자극을 감소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즉, 혼자가 아닌 함께 어울리는 신체활동을 통해 긍정적인 경험을 하게되고, 이러한 경험들이 신체성장 뿐만 아니라 아동들의 정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Orlick(1982)은 즐거움과 재미가 있는 움직임 활동이나 게임을 통해 아동들은 선경험(early experience)을 경험하게 되고 이것은 결국 대인관계 기술(Personal to Personal Interaction skill), 사회 기술(Social Skill) 그리고 삶의 기술(Life Skill)의 성장과 발달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하였다. 이처럼 중요한 체육의 가치가 허울뿐인 외침이 되지 않기 위해선 현장의 교사에게만 책임을 물을것이 아니라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여야 하겠다. Kagan 구조를 통해 체육수업이 쉽고 재밌게 운영됨으로써, 체육은 교사들에게도 어렵지 않고 참여하는 학생들에게도 즐거움과 재미를 느끼는 행복의 장(場)이 되어야 하겠다.

 

 

 

<참고문헌>

Dyson, B. & Grineski, S.(2001). Using Cooperative Learning Structures in Physical Education. Journal of Physical Education, Recreation & Dance, 72(2), 28-31.
Kagan, S.(1989). The structural Approach to Cooperative Learning. Educational Leadership; Academic Research Library, 47(4), 12-15.
Kagan, S. & Kagan, M. (1998). Multiple intelligences: the complete MI book. San Clemente: Resources for Teachers.
Kagan, S.(2001). Kagan Structure: Research and Rationale. Kagan Online Magazine, Spring 2001.
Orlick, T.(1982). The second cooperative sports and games book. New York:Phantheon.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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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신승환 (해군사관학교 전임강사)

 

 

 

        우리는 체육학을 공부하면서 알게 된 많은 원리들, 예를 들면 Karvonen 공식에 따라 목표심박수를 산출하여 체계적으로 트레이닝을 시키는 것이 효과가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 스스로가 운동할 때에는 준비운동의 필요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잘 하지 않는 것처럼 이러한 원리들이 선수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본 고는 신병 훈련에 카르보넨 공식을 활용하여 훈련강도를 산출하고 훈련기간별로 점진적으로 상향 적용하며, 무릎 위~허리 아래의 ‘POWER ZONE’을 집중 육성함으로써 부상을 예방함과 동시에 체력을 향상시킨 사례를 소개하여 실용학문으로써의 체육학의 적용 범위를 넓힐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신병 훈련은 총 4주로 주/일과별/체력수준별 훈련체계를 다음과 같이 구성하였다. 훈련강도는 운동처방시 일반적으로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적용하는 40%에서 시작하였다. 연령은 20세를 기준으로 하여 심박수를 산출하였다.


 

□ 주별 훈련 체계

구 분

목 표

훈련강도

목표 심박수(/)

입영주

‘POWER ZONE' 육성

40~70%

122~161

1

훈련적응

50~70%

135~161

2, 3

체력육성

60~80%

148~174

4

체력강화

70~90%

161~187

 

□ 일과별 훈련 체계

구 분

목 표

훈련강도

종 목

방 법

아침일과

몸풀기 및

POWER ZONE’육성

40%(122/)

~70%(161/)

스트레칭, 팔굽혀펴기,

앉았다일어서기, STEP TEST

15~30

횟수 조절

저녁 체력단련

강인한 체력육성

60%(148/)

~90%(187/)

구보, PT 체조

5~10% 강도 조절

수시체력단련

지구력 육성

50%(135/)

~70%(161/)

팔굽혀펴기, PT 체조,

앉았다일어서기

15~50

횟수 조절

 

□ 맞춤형 체력관리

구 분

목 표

훈련강도

종 목

방 법

환자

부상부위

기능회복

40%(122/)

~80%(174/)

앉았다 일어서기,

STEP TEST, 속보

STEP TEST 속도

(분당1530) 증가

저체력 / 비만소대

조기 체력육성

40%(122/)

~80%(174/)

STEP TEST,

속보, 구보

주차별 STEP TEST 시간(310) 증가

일반소대

강인한 체력육성

60%(148/)

~90%(187/)

구보, PT 체조

주차별 강도

(5~10%) 상향

 

 

4주간의 훈련결과는 다음과 같다. 주별로 체계적으로 체력을 육성한 결과 구체적인 수치는 언급하기 어려우나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 3km 달리기 등 체력검정 전 종목에서 10% 이상 향상을 보였다. 일과별로는 아침일과시 훈련으로 인해 누적된 피로를 회복할 수 있도록 몸풀기 및 파워존을 육성한 결과 정형외과 환자가 기존에는 1000명 기준으로 4주간 300명 정도 발생하던 것이 80명 수준으로 급감, 유지되고 있다. 체력수준별로 체력육성한 결과는 저체력 및 비만소대의 3km 달리기 기록이 기존에 향상되던 것보다 30% 이상 향상되었다. 특히, 저체력소대(3km 달리기 하위그룹)는 일반소대와 유사한 기록을 보임으로써 수료시에는 더 이상 저체력이 아닐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하였다. 이는 앉았다일어서기와 스텝테스트가 심폐지구력과 파워존의 근지구력을 강화시킨 효과로 판단된다.

 

 국민들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실용적인 체육학의 영역을 넓히는 것이다. 본 사례는 군과 같이 다수 인원을 대상으로도 우리가 배운 원리들의 적용이 가능함을 입증한 것이다. 이를 토대로 우리 주변에서 적용 가능한 경우들을 찾아 실용화한다면 체육학이 일반인의 옆에 있다는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하게 되고, 더 많이 활용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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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송형석(계명대학교 교수)


 

체육학이 학문공동체 내에 뿌리를 내린 이후 체육학의 당면문제로서 지적되어온 내용 가운데 한 가지는 이론과 실천의 괴리이다. 이러한 주장에 따르면 체육학자와 체육인은 함께 공조해야만 하는데 실제는 그렇지 못하고 따로 놀며, 그러다보니 체육 이론은 설명력이 약하고 탁상공론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진단으로부터 체육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체육 현장과 더욱더 밀착해야만 하며, 체육학자는 체육인 및 체육단체와 거리를 좁혀야만 한다는 주장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주장에 부응하듯 체육학은 체육 현실과 다양한 방식으로 교류하며 상호 간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고 있다. 예컨대 체육학자 중에는 체육단체가 제공하는 지원금과 연구비를 수주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가 적지 않으며, 어떤 이는 체육단체의 비상근 임원으로 위촉되어 각종 의사결정에 참여하기도 한다. 이들이 수행하는 연구 주제는 대개 경기력 향상과 관련된 내용이거나 체육단체가 추진하는 체육정책을 정당화하는 일과 관련된다. 이와 같은 이론과 실천의 밀착 경향은 체육학분야뿐만 아니라 소위 응용학문으로 불리는 다른 학문분야들에서도 드물지 않게 발견되는 현상이다. 다수의 학자들은 이와 같은 경향을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밀착은 학문의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학문이 적절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대상에 대한 적절한 거리두기가 전제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현대 학문은 점점 더 자신의 전제조건인 대상과의 거리를 잃어가고 있다. 이와 같은 거리의 실종과 거리두기 능력의 상실이 어떤 부정적인 결과를 야기 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학자들이 경고한 바 있다. 거리두기능력을 상실한 학문은 더 이상 학문이 아니다. 거리를 둔 후에나 가능한 지식의 생산이 그러한 학문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학문은 철저하게 현실 종속적이 되며, 더 이상 진리에는 관심이 없다. 그것은 오직 자신의 뒤를 돌보아주는 사회 현실을 선전하고, 정당화하는 일에만 관심이 있다. 제약회사와 밀착된 학문은 그 회사가 생산하는 약품의 효능을 선전하고 정당화하는 일에만 몰두한다. 이 과정에서 약품의 부정적 기능에 관한 데이터는 고의적으로 누락시키거나 삭제시키고, 긍정적 효과만을 부각시킨다. 이들의 관심은 객관적 진리가 아니라 제약회사의 이익 증진이기 때문이다. 정당과 밀착된 학문 역시 그 정당의 정치활동을 선전하고 정당화하는 일에만 관심이 있다. 모든 정치적 결정은 긍정과 부정이라는 양면적 결과를 동시에 생산하지만 이 학문은 자신이 옹호하는 정당의 정치적 결정이 생산한 결과의 양 면 가운데 긍정적인 면만을 부각시켜 다룰 뿐이다. 여기서 우리는 과거로 회귀하는 학문, 역사적으로 퇴보하는 학문을 볼 수 있다. 중세 이후 힘겨운 투쟁 끝에 종교와 정치라는 외압으로부터 독립하여 독자적인 길을 걸어왔던 자유 학문, 고유한 작동논리에 따라 기능하는 자율적 사회체계로 분화한 자유 학문이 다시금 자발적으로 종속의 길로 들어서고 있음을 본다. 돈과 권력의 하수인, 기업과 정당의 하청업자로 전락하는 학문을 본다. 체육학 역시 예외는 아니다.

체육학이 지금까지 추구해온 행로는 한 마디로 실천에 의한, 실천을 위한, 실천의 이론이다. 응용학문으로서 체육학이 표방함직한 슬로건이다. 그러나 진실로 실천을 위한 이론이기를 원한다면 실천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만 한다. 거리두기는 모든 학문의 필수적 전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금의 체육학은 거리두기를 포기한 듯하다. 명성 있는 체육학자들은 대개 학문 외적 이유에서 체육단체와 이권단체, 행정단체 주변을 맴돈다. 이들의 바람은 단 하나, 돈 또는 권력의 획득이 그것이다. 체육관련 단체와 조직으로부터 지원비와 연구비 명목으로 돈을 타내거나 아예 그곳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 각종 의사결정에 참여하며 권력을 행사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학자들에게서 질 높은 학문적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먹이를 던져주는 손은 물지 않는다. 이로부터 체육학의 학문적 중립성이 훼손될 위험이 생겨나게 된다. 이들이 생산해 낸 지식은 객관적이기 어렵다. 그것은 이 단체들의 존재와 활동, 그리고 결과들을 정당화시켜준다는 점에서 편파적이다.

체육실천을 정당화시켜주는 이론으로서 체육학은 여러 가지 복잡성 감축방식을 통해 체육과 체육단체의 기능과 역할을 과대 강조한다. 복잡성 감축방식이란 체육과 체육단체가 야기 시킨 복잡한 결과들 가운데 자신과 체육단체의 입맛에 맞는 결과만을 선택하여 그것이 모두인양 주장하는 방식이다. 학문의 사태관찰도 복잡성감축이지만 서로 사용하는 관찰코드가 다르다. 학문이 진리/비진리라는 이분법적 코드에 의존해서 사태를 관찰한다면, 사태 종속적 학문은 정당성/비정당성, 권력습득/권력상실, 연구비수주(지불)/연구비 비수주(비지불), 높은 반향력/낮은 반향력 같은 구별들에 의존하여 관찰한다. 이러한 학문에게 진리/비진리 코드는 이차적일뿐이며, 이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면만 볼뿐 보고 싶지 않은 면은 외면한다.

체육학이 참된 의미에서의 학문이고자 한다면 하청업자의 역할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특히 테크놀로지의 생산과 무관한 체육인문학은 더더욱 안 된다. 하청업자는 의뢰자의 요청에 근거하여 의뢰자의 관점에서 사태를 관찰하기 때문에 그의 관찰은 객관적이기 어렵다. 하청업자는 의뢰자가 설정한 애초의 목적에 이의를 제기해서는 안 된다. 그럴 경우에 하청이 중단될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그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도록 노력한다. 재판에 이김으로써 의뢰인을 보호하는 것을 최상의 목적으로 삼고 있는 법조인으로부터 정의를 기대하기 어렵듯이 관련영역의 요청에 따라 그것을 정당화하고 감싸주는 학자로부터 진리를 기대하기 어렵다.

기존의 체육학 발전방향 담론이 체육 현장과의 친밀성을 강조하지만 참된 의미에서 학자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대상에 대한 낯설음이다. 체육학계에서 늘 강조하는 현장과의 연관성이나 실용성을 생각하면 이와 같은 진술은 듣는 이를 당혹스럽게 만들 수 있다. 그렇지만 학자에게 낯설음이 필요하다는 말은 쉽게 설명될 수 있다. Stichweh의 말을 빌리자면 학문은 낯설음의 관점이 분화한 것이다. 즉 학문은 일상적인 자명성과 인과관계에 대한 추정을 의심하며 오랫동안 익숙했던 것들을 전혀 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또는 전혀 이해될 수 없는 것으로 취급할 수 있어야만 한다. 스포츠에 대한 낯설음이 스포츠에 대한 무관심 또는 스포츠의 특수성에 대한 무지와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학문의 본분은 정당화가 아니라 회의주의다. 체육학은 이와 같은 회의주의적 관점을 회복해야만 한다. 특히 비-테크놀리적 지식의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체육인문학은 이 점을 명심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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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준수 2013.03.13 13:26 신고

    안녕하십니까 교육대학원 1학기생 금준수입니다.
    이 글의 주된 내용은 물질만능주의와 이기주의로 인한 사회적문제점의 현상을 잘 설명해주는 글 인거 같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오랜 옛날부터 시작하여 경제와 산업이 발전하면서 오늘날 까지 이르게 된 것 같으며 현재 정치, 경제, 사회, 학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간의 가치는 작업의 성과나, 수행능력에 의해 평가를 받으며 이로 인해 스스로를 상품화하는 게 당연시하게 되었고 자신의 무능함을 감추기 위해 자기보다 약한 자를 밟고 일어서지 않으면 안 되는, 즉 개인의 입신양면을 추구하는 사회가 되어 버린 거 같습니다.
    그리고 체육학을 공부하는 학생의 입장에서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문 연구의 목적을 달리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부와 명예 그리고 특정단체의 이익증진을 위한 목적이 아닌 본문에서 나와 있듯이. 체육학자와 체육인 여러 단체와 서로간의 소통과 공유를 통하여 옳고 그림을 판단하여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누구나 유익하게 활용할 수 있는 학문을 연구한다면 부와 명예는 자연스럽게 올 것이며 체육학의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거 같습니다.

  • 임종대 2013.03.13 15:36 신고

    안녕하십니까? 교육대학원 1학기생 임종대입니다.

    현대 사회로 접어들면서 대부분의 분야가 결과 중심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것 같
    습니다. 이러한 현상으로 체육이라는 분야또한 결과가 중요시되고 더나아가서 상업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변화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이에따른 체육학의 이론과 실천의 과제는 결국은 사회적 위치나 금전적인 부분에서 편파적인 결과를 초래하는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체육학자와 체육인의 대립에 서로 학문적 분야에 대하여 공유하며 체육학자 뿐만아니라 체육인도 함께 이론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로간의 이익만 쫒는 것이 아니라 체육이라는 큰 숲을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 허민지 2013.03.13 15:59 신고

    안녕하십니까 교육대학원 1학기생 허민지입니다.
    교수님 글을 읽고 체육인으로써 지금까지 생각해 보지 못한 관점에서 체육과 학문에 대해 생각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금 사회가 이익추구를 위해 부정적인 면을 배제하고 긍정적인면만 보여준다는 부분에서 많이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물질만능주의와 명예, 권력을 위해 학문이 쓰여진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학문이 그 기능을 다하기 위해 거리두기능력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체육과 학문에 다가간다면 더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듭니다. 체육인으로서 저 또한 반성하고 이익보다 학문의 기능과 체육에 기능에 대해 더 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 강민성 2013.03.13 16:09 신고

    체육교육전공 강민성 입니다

    체육학의 이론과 실천을 위해 체육현장과 밀착하면서, 체육학자들은 학문 외적인 이유에서 부정적인 부분은 찾아 볼 수 없고 긍정적인 부분만 부각 시키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돈과 권력에 매수되어 학문을 연구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질 높은 학문을 위해 반성하고 체육학 발전만을 생각하는 학문을 연구해야 합니다.
    물론 체육학자와 체육인이 거리두기는 힘들지만 학자라면 학문에 중립성, 다양성을 위해 점점 노력 해 나가야 합니다.

  • 유용재 2013.03.13 18:15 신고

    안녕하십니까 교육대학원 1학기생 유용재 입니다.
    체육학자와 체육인이 같이 공존 해야하는데 공전하지 못하는 점에서 문제가 있는걸 알았으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위해서 체육단체의 지원와 체육정책을 통해서 해결해 나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체육에 대한 역사와 학문의 바탕으로 명예와 권력 또한 이익을 위해서 하는 것에 대해서 많은 문제점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런한 문제점 들을 변화하기 위해서는 지금 자리 위치에있는 체육학자님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21세기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해결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체육인으로써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많이 부족하다느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양세정 2013.03.13 19:03 신고

    안녕하십니까? 5학기생 양세정입니다.
    교수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제목을 보고 거리두기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도 적당한 거리가 없다면 덮어놓고 맹목적으로 되는것 같습니다. 그런 관계 때문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기도하고 도리에 맞지 않는다는걸 알면서도 어물쩍 넘어가기도 하며 자신에게 해가 되지 않으면 굳이 얼굴을 붉히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기도 합니다. 그런 무책임한 행동때문에 타인이나 공공의 이익에 해가 될수도 있을 것입니다. 인간관계와 마찬가지로 체육 이론과 실천이 순수한 거리를 뒀을때 함께 긍정적으로 공존할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 김기태 2013.03.13 19:27 신고

    안녕하십니까 김기태입니다.
    체육의 본질은 운동을 통한 교육이다. 그러나 이와같은 이상화된 이론을 주장하는 체육학자들과 현실과 타협하여 상업화된 체육계의 괴리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가장 큰 스포츠 이벤트인 올림픽과 프로스포츠들 특히 최근 한국의 4대 메이저 프로스포츠에 승부조작이 있었다는 충격적인 문제가 대두되었다. 근복적인 체육교육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장된 최의창 교수님의 "하나로 체육모형"은 체육 내에서의 지덕체를 강조하며 이론과 실천의 괴리를 타파하기 위한 한가지 방법으로 제시되었다. 하지만 이와같은 이론과 실천의 괴리는 비단 교육이나 엘리트 스포츠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다. 스포츠 현장에서 경영자와 실무자들의 입장 차이도 큰 문제가 된다. 경영자들은 이윤을 위해 체육을 돈을 벌기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그 예이다. 우리 체육인들의 숙제는 진정한 체육의 의미를 이해하고 이론과 실제의 "합의점"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 한미주 2013.03.13 19:40 신고

    안녕하십니까 교육대학원 4학기생 한미주 입니다.
    우선 이런글을 접할수 있는 기회를 주신 교수님께 감사 드림니다.
    저는 태권도를 전공했고,지금은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는 학생으로서 체육인의 자세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할수 있었습니다.
    이 글을 여러번 읽으면서 "돈 또는 권력...라인의 중요성..." 을
    언급한 대목이 제일 가슴에 와닿고, 현 시대의 경기인들에게
    가장 큰 문제점이란 생각이 듬니다. 선수를 먼저 생각하기 이전에...
    심판과 코치의 관계, 코치들간의 관계...
    모두가 학연 혹은 지연으로서 그 벽을 넘지 못하는 과제인듯 합니다.
    현장에서 매번 부딪히면서 고민하는 문제점인데 그 답을 아직 찾지 못해
    늘...안타까워했었던점을....
    이번 한학기동안그 해답을 찾고 진정한 체육 학자의 길이 무엇인지 많이 배우고 노력하겠습니다!
    감사 드림니다^^

  • 조민영 2013.03.13 20:52 신고

    안녕하십니까 체육교육 신입생 조민영 입니다.
    이 글을 읽고 체육학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던 문제점에 대해 알게되고 생각하게 되어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현장에서 활동하는 체육인들과 체육학자들은 공생관계가 되어서는 안되고 적절히 거리를 둘 수 있어야 서로에게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지만 현장의 체육인들은 스스로가 전문인이라 생각하는 요즘 학자들의 지도보다는 자신들의 정책에 대해 정당화하거나 긍정적인 면모만 보여주기를 원하며,학자들도 자신의 부와 명예, 권력을 탐하며 자리보존에 전전긍긍하며 대상의 하청업체에 불과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점에서 피해를 입는 것은 고객과 학습자가 될 것입니다. 고객과 학습자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체육학자와 체육인들의 결탁이 근절 될 수 있는 제도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정현도 2013.03.13 22:34 신고

    안녕하십니까? 교육대학원 4학기생 정현도입니다.
    우선 교수님께서 쓰신 "체육학의 덕목으로서 거리두기"를 잘 읽었습니다.

    글을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며 체육의 정의에 대해 되짚으며 생각했습니다.
    직접 아이들을 가르치고 체육학을 공부하고 배우는 입장으로써 체육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뒤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체육학자와 체육인은 함께 공조해야하며 상호간의 거리를 좁힘으로 인해 현실적으로 체육학의 발전에 일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나타납니다.
    저는 체육학이 돈이나 권력 획득의 목적으로 학문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없게 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변질되어 개인의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해지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위의 예시에서 약품의 부정적 기능에 관한 데이터는 고의적으로 누락시키거나 삭제시키는 행위는 "눈 뜬 장님" 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의미와 목적성을 잊은 채 현실 앞에 무릎꿇고 정당화하는 일은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하는 장님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앞을 볼 수 있어도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앞을 볼 수 있으면 봐야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당연한 원리에도 의미를 상실한 채 현실의 이익을 챙기기에 바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이 순수한 "적정한 거리두기"는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학문의 진정한 의미가 변질되지 않도록 거리를 두고 의심하고 비판하고 되돌아보고 검토해야만 합니다. 적정한 거리두기를 잘하고 있다 생각할지라도 회의적인 관점으로 되짚어보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거리를 두는 것이 매우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생각만큼 현실은 호락하지 않고, 달콤한 권력의 유혹이 이 사이를 좁히기 위해 자꾸 위협하려 들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육인 그리고 체육학을 공부하는 모든 이들이 이를 위해 노력하고 체육학의 참된 의미를 실천해야지만 이 현실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앞이 보여도 보지 못하는 "눈 뜬 장님"이 되지 않도록 체육학의 진정한 의미를 잘 되새기고 실천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교육자가 진정한 교육자의 기본자세라고 생각해봅니다.

  • 이형섭 2013.03.13 23:08 신고

    안녕하십나까 체육교육학과 신입새 이형섭입니다.우선 이렇게 늦은시간에 올리게되서 죄송합니다.

    저는 교수님이 쓰신글을 읽고 체육현장에서 활동하고있는 제자신은 지금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있는지를

    돌아보게되었습니다. 학자와 전문인 이둘사이의 관계는 서로 다른분야의 직업군이아닌 하나의 이상향을향해가는

    동반자의 관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자들의 연구와 현장전문인들의 경험과지혜를 하나로 모을수만있다면

    진정한 의미로써의 체육학이 이루어질수있지만 우리사회가 지향하는 부와명예라는 필요악의 존재때문에 순수한

    의미로서의 체육학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부와명예또한 우리가 누려야할 하나의 필요조건

    이기때문에 학문으로서의 체육과 실천으로서의 체육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않고 공생하면서 인간답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부와명예의 노예가아닌 활용할수있는 방법을 모색해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윤문희 2013.03.13 23:29 신고

    현제 체육학의 문제점은 체육학자와 체육인이 공조하지 못하며 교류가 없다는것입니다.
    실종과 거리두기능력이 상실된 학문은 더이상 학문이 아닙니다.
    명성,부,직위를 쫒는 체육학자들의 객관성은 모호하며 학자들의 부,명성,직위를 뒷받침해주는 단체들의 존재와 활동, 그리고 결과들을 정당화시켜준다는 점에서 편파적입니다.
    체육학은 실천에 의한,실천을 위한,실천의 이론 이라는 슬로건을 갖고있습니다.
    체육학이 참된 의미를 갖고자 한다면 현장과의 연관성이나 실용성을 갖고 연구하며 정당화가 아닌 학문의 본분인 회의주의적 관점을 회복하여여합니다.

    부와 명성이아닌 스포츠 학문으로서의 발전을 도모하며
    체육학의 덕목으로서 거리두기를 통하여 더 객관적인 연구,
    스포츠 인들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하여 주관적 통찰을 꾀함으로서 학자다움을 중요시하고,체육학 발전을 위해 선전해나가야 할것입니다.

  • 김지현 2013.03.13 23:33 신고


    안녕하십니까. 체육교육 3학기생 김지현 입니다.
    우선 이 글을 읽고 체육이라는 학문을 공부하는 학생으로 체육학의 근본정신에 대하여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체육의 이론이 탁상공론이 될 수 밖에없는 이유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온전한 체육학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체육학은 순수한 학문으로서 그 기능을 발휘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 현실에서의 체육학자는 때때로 순수한 학문적 기능보다 경영의 의미를 가지고 체육학을 바라보고 있는 이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체육이라는 학문을 통해 순수한 '보람'만이 아니라 경제적인 수익을 생각하고 이 경제적인 수익이 곧 체육학의 발전이 되리라 생각하는 것이지요. 체육학자로서 학문의 발전을 위해 이상적인 가치와 현실적인 가치를 함께 실현하는것은 위의 본문에서도 알수있듯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 생각됩니다. 체육학문을 배우는 학생으로서 다시금 체육학의 근본, 학자의 자세에 대하여 고민하여보고 중용의 자세로 학문의 본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 이재민 2013.03.14 10:16 신고

    안녕하십니까 체육교육학과 2학기생 이재민 입니다. 체육교육학을 전공하고 있는 학생으로써 체육학에 대해 돌아보고 한번더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예전부터 그래왔지만 체육학과 단체간의 관계가 밀착되어야 발전이 있다는 말씀에 많은 공감을 느낍니다. 거리가 너무 있다보니 체육인과 단체간에 비리 착취 등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생기는거 같습니다. 체육인은 체육인대로 체육학자들은 학자대로 따로 놀게 된다면 지금 현재에 머무르며 발전이 기대 하기 힘들며 나아가 수준 높은 체육학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앞으로 서로간에 교류를 통해 당장의 이익과 권력을 생각하지 않고 멀리보면 함께 공생하는 체육학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 입니다

  • 윤재현 2013.03.14 12:42 신고

    ‘한국체육학회장 선거 대리투표 논란’,
    ‘문대성 IOC위원 논문 표절의혹’
    '그 밖의 체육 안 밖으로 일어나는 파벌싸움'

    모든 학문은 자유를 바탕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사회적 제한이 개입할 수 없지만, 현 시점에서 체육학은 그 본질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체육학자와 체육인간의 상호관계가 체육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부와 명예 돈과 권력 앞에 수단을 정당화 시키고 있습니다.
    체육학을 공부하는 근본적인 목적을 상실한 채, 발전과 협동이 아닌 탈락과 경쟁을 통해 살아남은 존재들이기에 이는 인생의 고비에서 낙오자를 쏟아내는 대한민국 전체 특징이기도 합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입니다. 세속적인 욕망과 비윤리적인 타협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체육학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며 이러한 관행은 계속될 것입니다.
    연구자 역시 어떠한 힘에 의해서도 학문의 자유를 박탈당해서는 안 될 것이며, 스스로 자기 학문의 조건을 개척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할 것입니다.

  • 김상협 2013.03.14 17:53 신고

    송형석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체육교육 1학기생 김상협 입니다.
    교수님의(체육학의 덕목으로서 거리두기)글을 잘 읽었습니다.
    지금 기간계 초등 수업을 하고있어서 그런지 이문장 이 가슴에 와닿아습니다.
    *체육학이 참된 의미에서의 학문이고자 한다면 하청업자의 역할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학교에서 요구 하는 상황 과 제의교육가치관이 맞지 안는 부분이 많이있지만
    저에의견은 반영이 안되는것을 보고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열심히 공부를 하고 많이 느께야 될 것 같습니다.
    한학기 동안 잘부탁드립니다 저도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 권민경 2013.03.14 19:42 신고

    안녕하십니까. 체육교육학과 3학기생 권민경입니다.
    체육학자와 체육인은 실천과 이론처럼 적당한 거리를 두고 공존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것 같습니다. 물질만능주의인 현대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부와 권력의 획들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는데 체육학자들 또한 체육단체의 주변을 맴돌며 학문의 순수함을 잃고 부와 권력을 위해 쫓아가며 그 수단을 정당화시키고 있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자신만의 철학이 있고 비윤리적이라는 것을 알지만 권력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진다면 앞으로의 체육학 발전은 미비할 것입니다. 체육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체육학자와 체육인이 각자의 사명감을 가지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공존하기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입니다.

  • 안중섭 2013.03.15 10:01 신고

    안녕하십니까 체육교육전공 2학기차 안중섭입니다.
    먼저 늦게 댓글을 달게 되어 죄송하단 말씀드립니다.
    위 글을 읽고 참 많은 것을 생각해보고 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체육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또 나아가 체육현장에서 학생들에게 체육을 가르칠 사람으로서 학문으로써 체육학이 가지고 있는 그 학문적 본질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끔 만드는 글이었습니다. 또한 체육학이 학문으로서의 순수함을 잃어버린채 퇴색되어가고 있는 현실을 다시 한번 볼 수 있었습니다.
    이와 함께 이 글을 통해서 많은 체육학을 전공한 사람들에게 학문으로서의 체육학의 본질과, 체육현장에서의 체육학을 본래의 의미를 되살 릴 수 있을까 하는 과제도 던져주는 것 같습니다.
    위 교수님의 글 중 체육학이 참된 의미에서의 학문이고자 한다면 하청업자의 역할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라는 말이 참 와닿습니다. 하청업자가 아닌 체육학의 본질을 스스로 찾아가고 학문에 대해 항상 회의주의적인 관점을 가진 깨어있는 체육인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공부를 하면서 이 점을 잊지 않고 늘 새기며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송형석 2013.03.21 17:53 신고

      본질이라는 말이 조금 신경을 자극합니다. 아무튼 생각한 바를 꾸준히 실천해나갈 수 있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 박병준 2013.03.15 10:07 신고

    안녕하십니까 교육대학원 1학기생 박병준 입니다.
    교수님 께서 쓰신 체육학의 덕목으로서 거리두기 라는 주제의 글 잘읽었습니다.
    이글을 읽고 많은 것 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선 이 글에서는 현재 우리 대한민국의 체육학의 문제점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 하고 있는거 같습니다.
    현재 우리 체육학연구 뿐만 아니라 모든 단체들이 자신들이 소속된 단체의 발전과 물질 적인 부분만 바라보고 연구하지 진정으로 자신들의 분야의 발전을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현재 교사를 꿈꾸는 모든 사람들이 왜 체육교사를 목표로 하냐고 물어본다면 많은 사람들이 체육의 발전과 학생들에게 자기 자신이 가진 지식을 나누어주고 봉사하겠다는 것 이 아니라 교사 라는 직업이 안정적이고 편안하고 연봉이 높아서 교사를 목표로 하고 있다 라고 말 할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의 글처럼 체육학의 참된의미에서 학문의 발전을 생각 한다면 체육학 연구자들과 교사를 목표하고 있는 사람들은 물질적인 부분을 생각하지않고 자신의 발전과 사회에 발전이 될 수 있도록 자부심과 사명감을 가지고 연구하고 공부해야한다고 생각 합니다.

    • 송형석 2013.03.21 17:52 신고

      사고의 응용이 다소 과장되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어쨋든 글이 생각을 자극하여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생각을 촉발시켰다는 점에서는 가치가 있는 글 읽기였다고 생각합니다.

  • 박규나 2013.03.20 12:31 신고

    안녕하세요
    체육교육대학원 2학기생 박규나입니다.
    태권도학과 학부생을 졸업하고 다시 한번 교수님 철학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되어서 너무 좋습니다. 글을 읽는 동안 어떠한 문제점을 제기하고, 어떠한 문제점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학문과 사회기관, 권력과 지식, 부와 명예,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익숙하게 반복되는 현실이라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아차, 그럴 수 있겠군’ 이라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글이 였습니다.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이 제가 전공하였던 태권도 였습니다.
    과연 태권도 학문을 연구하고 있는 연구자들은 태권도의 진정성, 역사, 발전방향, 가치 등 이러한 순수 연구의 목적만 가지고서 연구가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외부의 압력은 없는 것일까, 현장에서 활동을 하는 즉, 보여지는 대외적인 인물들과 경기장 고위관계자들, 이들 또한 시합의 공정성과 경기자체의 퀄리티를 두고만 경기를 진행해 나갈 것인가. 경기를 출전하는 소속팀의 대표들과 선수들 사이의 오고가는 것은 과연 경기능력일 뿐일까,
    1년 365일 중 260일의 전국 모든 경기를 관리하는 독보적인 프로그램 업체는 어떠한 압력도 없었을까, 교수님의 글은 학문이 가진 성격과 학문의 역할만을 이야기해주셨는데, 읽으면서 당연시 여겨지고, 그러려니..라고 생각되던 백그라운드가 하나씩 하나씩 입체적인 물음표로 드러났습니다.

    현장을 중요시 여기는 체육이긴 하지만 그 모든 것의 바탕은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학문이 가진 성격을 파악하고, 학문이 그 원칙의 길로만 간다면..현장과는 거리가 생기겠지만 학문과 현장이 서로서로의 의견을 뒷받침 해주는 역할과 함께 서로의 가치를 상승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또 하나는 교육기관의 모습이 였습니다. 실제로 교육을 이행하는 학교의 실태와 그 학교와 교직원을 아우르는 상위기관인 교육청, 그리고 연구의 연구를 거듭하는 교육연구기관의 의견과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은 조금씩 다르다고 생각됩니다.
    교직원 선생님들은 승진을 하기 위해서는 학교업무 이외에 교육청에서 하는 일도 하여야합니다. 여러 행사와 부장직을 도맡아하며 교육청을 서류업무를 하면서 과연 학생들에게 어떻게 질 높은 교육을 바랄 수 있을까. 선생님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학문을 전달하는 것이 선생님이라는 직업의 목적과 목표,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현장과 밀착되어서 교육을 시행하면 학생들의 사고와 수업방식, 시대의 흐름을 알아서 발전적이기는 하나, 조금씩 그것이 권력의 하수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것 입니다.
    사회의 구조가 그러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였고, 앞으로도 일어날 일이고, 혹시 제가 겪을지도 모른다는 것에 몇 번씩 다시 읽고 보며, 생각이 많아지는 시간이 였습니다.

    학문을 전달하는 학자들뿐 아니라 관련된 모두가 학문의 발전과 투명성을 위해서 생각을 조금만 달리하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가지며..
    저의 미흡하고 부족한 생각을 한 학기간 교수님의 수업과 다양한 생각을 듣고 질문하고 생각하게끔하여,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있는 사고와 생각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 송형석 2013.03.21 17:49 신고

      생각이 깊어졌군요. 글도 좋습니다. 하나를 가르치면 둘을 안다는 옛 말을 떠오르게 하는군요. 응용력이 뛰어납니다. 수업시간에 조금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할까합니다.

                                                                                                   글 / 김경숙(한국체육대학교) 


내가 처음 특수체육이라는 학문을 전공하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을 때만해도 국내에서 대다수의
체육학자들은 특수체육이 ‘체육학 범주에 포함될 수 있는 것인가?’ ‘과연 장애인들이 체육은 할 수
있는 것인가?’ 란 질문들을 끊임없이 던지며 특수체육을 체육학으로 인정하기 꺼려했었다. 하지만
‘88 서울파랄림픽’ 이후 장애인 체육에 관한 관심도가 서서히 높아지면서 국내 장애인 스포츠 현장의
발전은 물론 학문도 발전해 왔다. 최근 체육분야 학술지들을 보면 여러 분과에서 장애인들을 대상
으로 한 연구들을 자주 볼 수 있어 국내 특수체육학의 초기 전공자로서 매우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연구들을 살펴보면 대다수의 연구자들이 가장 중요한 것을 간과하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장애를 갖은 대상자’가 아닌 그들의 장애특성에 대한 이해인 것이다. 즉 장애의 특성이나 장애
정도에 대한 이해 없이 과거에 비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던 연구를 대상자만 장애인으로
바꾸어 재 연구 해 놓은 것들이다. 이러한 연구들은 장애인들의 독특한 요구와 특성을 모르는 사람
들에겐 의미 있는 연구로 비춰질 수 있으나 특수체육 전공자나 장애인 당사자들이 보았을 때는
무용지물인 연구일 수밖에 없다.


 

                                                                                   사진출처: 대한장애인체육회


예를 들어 지적장애인을 연구대상으로 선정하여 운동기술이나 체력 향상에 대한 연구들이 다양한
체육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 결과를 신뢰하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다. 연구 대상자를
선정하는 기준에 있어서 장애 등급을 분류 시 정확한 지적능력과 적응행동능력의 측정 없이 단순히
장애인복지카드에 명시된 장애등급에 따라 대상자를 분류하고 있다. 장애인 복지카드에 명시된
장애등급은 어떠한 기관에서 진단하였느냐에 동일한 사람이라도 장애등급의 편차가 크기 때문에
연구대상자의 특성을 복지카드에 명시된 장애등급 만으로 분류하는 것에는 문제가 따른다.

또한 몇몇의 지적장애인들은 운동기술이나 체력능력이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평가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평가의 결과가 저조하게 나오거나 그날의 컨디션에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에 평가
결과의 신뢰가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들의 고려 없이 비장애인들에게 평가하는 방식
그대로 지적장애인들에게 적용하여 얻은 결과를 발표한 연구들이 발표되고 있다.

특수체육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수체육 관련 연구를 볼 때 연구 참여자의
향상된 결과자체 보다는 어떠한 방법으로 지도하고 어떠한 프로그램을 적용했더니 운동기술이나
 체력이 향상됐더라 하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와 같이 연구를
하는데 있어 장애인들을 얼마나 이해하고 그들의 특성을 고려하여 어떠한 과정으로 연구가
이루어졌는지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면 더욱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연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정명은(1995)은 사회학, 생리학, 역학 등의 학문을 인간의 움직임에 관련시키지 않으면 스포츠
영역의 학문으로서의 의미가 없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살펴보면 다양한 체육 전공영역
에서 하고 있는 특수체육 연구를 장애인의 이해가 없이 연구 되어 진다면 특수체육학으로서의
의미가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특수체육학은 Sherrill(1993)의 말처럼 교차학문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교차학문적
성격도 장애인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장애인들의 신체활동에 교육학, 사회학, 생리학, 역학과 같은
개별과학이 접목되어야하는 것이다. 따라서 특수체육학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
들과의 최적화된 교류와 협력이 필요하며 특수체육 전공자들의 역할 제고뿐만 아니라 함께하려는
자세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다양한 학문과 연구 방법들을 통합할 수 있는 패러다임의
모색과 다양한 측면에서 학문간 협력과 교류 방식을 특수체육에 적용하는 것이 특수체육의 성장과
발전에 필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Sherrrill, C.(1993). Adapted physical activity, recreation, and sport: Cross-disciplinary and lifespan
(4th ed.) Dubuque, IA: WCB/McGraw-Hill.
김정명(1995). 연구논단: 진정한' 체육학' 과 그 방법론.
한국체육학회회보, 62, 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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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안용규 (한국체육대학교 교수)


북유럽에서는 체육전공의 분야에 진학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현재 대학 지원율이 점점 낮아
지는 영역은 전통적으로 학문성이 높았던 의학, 약학, 기계공학 등인데, 체육분야는 이미 그 위를
올라선 상태이다.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도 더 계속될 전망이다.

 
전통적인 학문은 늙어서도 남을 위하여 고된 일은 계속해야만 하는데, 이 나라의 GNP는 이미 3만
5천불을 넘어섰고, 실직수당도 신입사원 초봉에 버금가는 실정이다. 따라서 먹고 사는 문제가 그다지
큰 관심사가 아니다. 단지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라는 삶의 질이 첫 번째 관심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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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전 허가 없이 콘텐츠의 무단 사용을 금지합니다.

현재 체육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의 대부분이 스포츠산업, 경영, 관리, 운동처방, 의학 등을 연구하는
머리가 좋은 학생들이다. 뛰고, 달리고, 숨을 헐떡이고, 땀 흘리며 흡족해 하는 건강에 대한 비방은
이들 체육전공자들이 가지고 있다. 이들이 바로 사회체육의 선두주자들이다. 우리에게 삶을 살아가는
길은 이길 저길 다양하겠지만 삶의 질로 따지자면 아무래도 몸 건강, 마음 건강을 수반하는 체육학
전공이 제1순위이다.

 
체육을 전공하는 모든 이에게 꼭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그것은 기쁜 삶과 슬픈 삶을 기술한
『홍범(洪範)』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중국 성인인 기자(箕子)가 쓴 글인데, 사서삼경(四書三經) 중
서경(西經)에 들어있는 한 편이다. 홍범은 오행학설사에서 획기적인 저작이다. 음양(陰陽)과
오행(五行)이 융합되기 이전에 <홍범>은 오행에의 순응을 핵심으로 하는 경세의 대법칙을 체계적
으로 표현하였다. 일반적으로 음양과 오행을 함께 붙여 말하지만, 이론적 발생은 다르다. <홍범>은
기자가 임금에게 진상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그 내용을 보면, 홍범구주에서는 아홉 가지 범주를
논하며 오행을 가장 앞세워 이야기하고 있다.

 
오행을 가장 앞세우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 인간과 우주를 연결하는 매개이자 구성요소이기 때문이다.
그 이후 오행설은 한대에 이르러 주역의 음양설과 더불어 생성되고 전개되었다. 그래서 오행을 논하지
않고서는 동양철학을 논하기 어렵다. 동양철학의 기본적 사유구조의 문화 유산은 오행의 패러다임을
바탕으로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홍범구주는 “그 첫 번째 것을 오행이라고 한다”고 하여 오행을 첫머리로 다루고 있다. 오행의 순서,
오행의 성질, 오행의 맛은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첫 번째는 수(水)이고, 두 번째는 화(火)이며, 세 번째는 목(木)이다. 그리고 네 번째는 금(金)이고,
다섯 번째는 토(土)이다. 수는 아래로 젖어들고, 화는 위로 타오르며, 목은 휘어지거나 곧은 것이며,
금은 마음대로 구부릴 수 있고, 토는 곡식을 생산할 수 있다. 수는 짠맛을 띠고, 화는 쓴맛을 띠며, 목은
신맛을 띤다. 그리고 금은 매운맛을 띠고, 토는 단맛을 띤다.” 우리가 흔히 아는 물=수(水), 불=화(火),
목(木)=나무, 금(金)=쇠, 토(土)=흙 그대로이다. 오행의 성질이나 맛은 상징이나 은유지만,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오행의 체계는 동양사 2천년 동안 모든 사람들의 의식에 뿌리를 내리며
사고의 한 코드로서 존재하고 있다.

 
인체의 장부에 오행을 배속하여 상생, 상극, 상모, 상화의 작용력을 통해 의학적 원리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오행의 질서란 자연의 질서이며, 동양철학 고유의 기호논리학적 체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중국에서 책명 끝에 ‘경(經)’자가 들어간 것은 신이 읊은 내용을 사람이 받아 쓴 글이라고 해서 ‘책중의
책’이라고 하며, 대단히 난해한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홍범의 끝 부분에 체육철학을 전공하는 자에게
주는 글귀가 있다. 그 글을 살펴보면, 건강을 지녀야 오복(五福)이요, 건강을 잃으면 육극(六極)이라는
암시를 강하게 제시하는 내용이다. 그 외에도 선현들이 말했듯이 “재산을 잃거나 명예를 잃는 것은
부분을 잃는 것이요, 건강을 잃는 것은 전부를 잃는 것이다”라는 의미의 홍범의 오덕, 육극과 맥을
같이하는 건강의 논리이다.

 
이러한 전제를 놓고 본다면, ‘삶의 질’과 체육 전공의 상관관계가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다. GNP가 2만불 이상 넘어가는 현재 우리는 체육을 전공하여 미래에서 가장 유망한 직종과 함께
가장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운 위치에 있는 것이다. 건강을 전도하고, 건강을 실천하여, 미래에는 체육
전공자가 가장 각광받는 전공이자 직업이 될 수 있도록 우리는 만반의 준비를 해야만 할 것이다.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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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저도 꾸준히 공부를..^^ 행복한 하루되세요!

  • 체육학부생 2010.05.27 01:35 신고

    교수님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옛 고전을 통해 현대사회의 체육전공자들이 나갈 길을 잘 지시 해주신것 같군요
    하지만, 다만 좀 아쉽다면, 좀더 구체화된 방향을 제시하거나,. 미래의 로드맵정도를
    기대해서 그런지 아쉽습니다., ^^

    • 말씀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 글의 핵심은 말씀하신대로 체육전공자들에게 체육의 미래성을 알려드린다는 점에 보다 큰 가치를 둔 내용입니다. 더군다나 미래에는 체육의 직업군이 더욱 확대될 것이기에 체육학 전공자들은 행복한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를 하게 되면 더욱 좋은 미래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지요. 따라서 구체적인 방향성은 본인의 전공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또한 로드맵은 공부의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또한 학생에게 적절한 충고를 해주실 수 있는 분은 학생을 가장 잘 아는 선생님과 면담을 해보면 더욱 정확한 길이 모색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부디 미래의 멋진 일꾼이 되시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