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오화석(서울대학교 법과대학원)

 

 

           제가 속한 컬링동호회에는 남자팀 3개조, 여자팀 3개조가 가을, 겨울시즌에 일주일에 한번정도 모여 태릉 빙상장에서 연습하고 경기도 가집니다. 컬링은 4명이 한팀으로 경기를 하며, ‘핍스’라고 하여 선수운영상 교체등을 감안해 5번째 선수도 엔트리에 포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톤을 던지는 라인을 잡고, 총체적인 공격 전략을 짜며, 매 엔드(End) 마다 마지막 슛을 쏘는 선수를 스킵이라고 하는데, 저희 동호회 팀중에는 특이한 조가 있습니다. 스킵을 제외하고는 모두 청각장애를 가진 젊은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그들이 제1회 서울특별시장배 컬링대회에 출전하여 엘리트팀인 서울체고와 자웅을 겨룬다기에 지원차 태릉국제스케이트장을 찾았습니다. 이 경기에 뒤이어 있었던, 역시 또다른 의미를 전해준 여고부 결승전을 소개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컬링경기의 승패는 양팀이 총 8개의 스톤을 던진후 동심원 정중앙에서 가장 가까운 장소에 스톤을 놓는 것으로 결정됩니다. 스톤을 던진 후에 같은 팀의 선수가 스위핑(Sweeping)을 하는 것은 거친 빙판면을 고르게 하여 스톤이 진행하는 거리를 더 길게 하기 위한 목적이 있습니다. 스킵은 같은 팀 선수가 투구한 스톤의 속도를 보면서 목표지점에 정확히 도달하기 위해 약속된 신호를 고함치며 스위핑이 필요할 때 명령을 내립니다. 저희 동호회의 청각장애인 팀은 이런 소리를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손짓으로 스위핑 명령을 내립니다. 그러면 스톤이 진행하는 방향을 따라가던 같은 팀 선수가 스킵을 보고 있다가 바로 스위핑을 하면서 모든 팀원이 혼연일체가 되어 목표지점에 스톤을 놓게 되는 것이죠.

 

저희 동호회 청각장애인팀은 서울체고팀을 맞아 최선을 다했고, 모두가 하나되어 1시간 30여분에 걸친 6엔드 경기동안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같은 시트(Sheet, 동심원이 그려진 컬링경기장을 의미합니다.)에서 연이어 여고부 결승이 있었습니다. 서울 창동고등학교와 서울 삼성학교팀간의 경기였습니다. 서울 삼성학교 팀은 스킵을 포함한 모든 팀원이 청각장애를 지니고 있습니다. 첫 엔드를 0:0 팽팽하게 마친 이들은 2엔드에서 창동고등학교가 2점을 선제득점하여 앞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3엔드에서 삼성학교 스킵의 활약으로 1점을 획득하여 추격의 발판을 마련하였습니다. 삼성학교 팀도 서서히 몸이 풀렸는지 샷의 정확도가 높아지고 있었습니다. 승부의 분수령이 되었던 4엔드에서 창동고등학교의 실수가 있었습니다. 동료가 투구한 스톤을 따라가며 스위핑하던 팀동료가 그 스톤을 건드려 스톤 진행방향이 달라졌고, 그로인해 동심원 정중앙에 가장 가까이 위치해 있던 삼성학교의 노란색 스톤을 동심원 밖으로 쳐내었기 때문입니다. (컬링 용어상, 자신의 스톤으로 상대팀의 스톤을 타격하여 동심원 밖으로 밀어내는 것을 ‘테이크아웃’, take-out 이라고 합니다.)

심판장이 시트에 내려와 컬링규칙에 따라 밖으로 나간 스톤을 원래 자리로 복귀시켰고, 이 때 스톤이 원래위치에 놓였는지를 두 팀이 모두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스톤이 놓여진 자리에 대해서 삼성학교의 스킵이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만, 말로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심판이 매 투구마다 자석 말판으로 스톤의 위치를 철판에 표시해 놓고 있기 때문에 심판은 이 말판에 따라 스톤의 위치를 조정해 주었고, 이 때가 되어서야 스킵은 안도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이 경기가 앞선 경기와 다른 점은, 앞 경기에서도 두 번에 걸쳐 스킵이 심판에게 스톤과 동심원 중앙과의 거리 측정 요청이 있었습니다만, 이 때 스킵은 비 청각장애인이었기 때문에 심판과 의사소통의 문제가 전혀 없었습니다. 스킵은 자기 팀원과 수화로 대화할 수 있어서 경기운영에 대해 요구사항을 정확히 심판에게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그렇지만 이번 여고부 경기는 전원이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어, 혹 비청각장애인들과의 경기에서 심판에게 요청사항이나 요구사항이 있을 때, 심판이 수화를 알아 듣지 못해 애초부터 그러한 요청조차 포기해버리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동갑내기 친구들과의 한판승부에서, 정정당당하게 겨룬 삼성학교팀은 4, 5, 6엔드 연거푸 실점하여 창동고등학교 팀이 우승하였지만, 저는 삼성학교팀을 향해 더 크게 박수를 쳤습니다. 두 경기모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한팀이 되어 팀워크를 다지기도 하고, 비장애인은 청각과 시각 모두 활용하여 의사소통을 주고 받으면서 경기를 할 때, 오로지 시각만으로 신호를 주고 받아야 하는 모습도 있었습니다. 어찌되었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하나되는 아름다운 장면임에는 틀림없었습니다. 똑같은 조건으로 경쟁하였기에 장애인팀의 도전에 더더욱 놀랍기 그지 없습니다. 경기장을 나서면서 이제는 저와 같은 비장애인이 장애인들이 내민 손에 맞잡아야 할 시점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다음 경기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들간의 경기에 수화도 가능한 심판을 기대하는 것은 제 지나친 욕심뿐일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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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성철(원종고등학교 교사)

 

          내가 테리 팍스 런을 알게 된 것은 대학원에서 특수체육 수업을 들었을 때이었다. 특수체육수업 시간에 교수님으로부터 테리 팍스라는 장애인이 있었고 그가 22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서 어떤 일을 했는지 알게 되었다. 한번은 집에서 아내와 테리 팍스 동영상을 함께 보면서 한 동안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테리 팍스는 태평양 건너 한국에서 체육교사로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나는 그 영향을 학생들에게 전해주곤 했다. 인터넷 위키백과는 테리 팍스에 대해서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암 연구 기금 마련을 위해 캐나다 종주 마라톤을 하고 있는 테리 팍스

 

테리 폭스(영어: Terry Fox, CC, 1958년 6월 28일~1981년 6월 28일)는 캐나다의 인도주의자, 운동선수, 암 연구 활동가이다. 수술로 절단한 오른쪽 다리에 의족을 달고 1980년에 암 연구를 위한 자선 마라톤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의 몸 속에 크게 자란 종양이 마라톤을 그만두게 하였다. 폭스가 143일 동안 움직인 거리인 5,373km의 마라톤이 암 연구의 중요성을 세계에 알렸다.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 1981년부터 매년 60개 이상이 국가가 테리 폭스 달리기(Terry Fox Run)를 개최하며, 수 만명이 참석한다. 현재 테리 폭스 달리기는 세계에서 가장 큰 암 연구를 위한 1일 자선 운동이며, 그의 이름으로 5억 캐나다 달러 이상을 모금하였다.
폭스는 그의 모교, 포트 코퀴틀람의 고등학교와 사이몬 프레이저 대학교를 다닐 당시 계속해서 장거리 주자, 농구 선수로 활약하였다. 그의 오른쪽 다리가 골육종을 앓은 바람에 1977년에 수술로 절단하였다. 그래도 인공 다리로 계속 달렸고 밴쿠버에서 휠체어 농구 선수로 활약하여, 국가 경기를 3번 우승하였다.
그는 1980년에 스스로 캐나다 전국을 횡단하는 희망의 마라톤(Marathon of Hope)을 시작하였다. 테리 폭스는 전 캐나다인에게 1달러씩 기부해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는 4월에 세인트존스에서 조그마한 응원으로 시작하여, 매일 공식 마라톤 거리 정도의 거리를 달렸다. 온타리오 주에 도착했을 때, 테리 폭스는 캐나다의 국민 스타가 되었고, 여러 사업가, 운동선수, 정치인과 공공 출연도 하며, 그의 노력으로 모금을 하였다. 하지만 그는 암이 폐까지 전이되어, 선더베이 외곽에서 중단해야 했다. 9개월 뒤 그가 세상을 떠남에 따라, 질병을 극복하는 그의 소망은 이어지지 못했다. 그리고 그가 진행한 희망의 마라톤은 진행할 수 없었다.

 

 

              캐나다인의 영웅 테리 팍스                     테리 팍스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한 동상

 

 

마라톤 풀코스(Full course)를 연속으로 달린다는 것은 전문 마라톤 선수에게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것도 143일 동안 한쪽 다리를 절단하고 의족을 한 상태에서 마라톤 풀코스를 매일 달렸다는 것은 인간적인 한계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의심을 갖게 할 정도이다. 테리 팍스는 의족을 한 다리로 달리기위해 수개월동안을 자신만의 달리는 주법을 만들기 위해 연습을 했다고 한다.


1981년 6월 28일 테리 팍스는 22세의 젊은 나이로 눈을 감게 되었고, 그의 죽음은 북미의 수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시었다. 테리 팍스의 이런 숭고한 노력을 기리기 위해서 캐나다를 비롯한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 그를 기리는 암 연구 기금 모금 마라톤 대회인 ‘테리 팍스 런(Terry Fox Run)’ 또는 ‘희망의 마라톤(Marathon of Hope)’이라는 이름으로 열리고 있다.

 

 

한강시민공원에서 열렸던 테리 팍스 런 대회 모습(출처 : 뉴시스 2006년 9월 17일)

 


나는 테리 팍스의 뜻을 내가 지도하는 학생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1년에 한번은 테리 팍스를 소개한다. 테리 팍스가 캐나다 종주하는 영상을 보여주고 느낀 점을 적게 한다. 학생들은 테리 팍스가 평범하지 않은 독특한 주법으로 달리는 모습을 보고 여러 가지를 생각한다. 그리고 학생들은 테리 팍스의 짧지만 의미있는 삶을 대하면서 자신의 삶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실내에서 테리 팍스 런 영상을 보는 장면과 학생들이 작성한 학습지

 

 

 

참고문헌

The Terry Fox Foundation(http://www.terryfox.org)

위키백과(http://ko.wikipedia.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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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리 팍스가 보여준 용기와 실천력을 다시 한번 생각해봅니다.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테리 팍스는 캐나다 대륙을 마라톤으로 횡단하겠다는 놀라운 용기와 143일 동안 마라톤을 했다는 대단한 실천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가 달렸던 캐나다 땅을 상상해봅니다.

  • 여석기 2013.03.05 23:39 신고


    우연히 들어오게되었고 처음으로 테리 팍스 런을 알게 되었습니다,
    좋은 글 마음속에 담아갑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글/김기홍(용인대학교 특수체육교육과 교수)

 

             특수체육을 지도하자면 반드시 유자격에 한하는 것이 맞다. 흔히 체육을 그냥 놀이 정도로만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던 과거는 그것이 바로 학교 현장에서 체육을 지도하는 선생님들의 큰 잘못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다. 늘 학교에서 공만 던져주고 마는 그런 선생님 밑에서 지도를 받았던 사람들이 체육을 어찌 보겠는가? 마찬가지로 특수체육에서도 전문화되지 않은 교과과정이나 혹은 임기응변적 체육활동으로 장애학생을 지도한다면 똑같은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장애학생이 잘 이해를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혹은 운동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져 있음을 핑계로 최소한의 움직임 정도로만 신체활동을 구성한다면 이는 곧 특수체육의 전문화와는 위배되는 사항이다.

 

 

 

 

특수체육에 한해서는 우리나라가 어떤 선진국에 비해서도 뒤쳐짐이 없다고 본다. 특수체육의 본고장이라고 말 할 수 있는 미국의 경우에도 1977년 주정부의 법률로 특수체육 지도는 자격증, 면허증, 등록증 혹은 관련서비스 분야에 적용할 만한 자격요건을 충족하도록 명시하였지만 오늘날까지 자격제도를 정식으로 정립한 주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에 반하여 우리는 특수체육교육교사의 자격을 부여하는 국가임을 자부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자격은 자격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단히 그 전문성을 갈고 닦음이 맞다. 이러한 견지에서 특수체육을 지도하는 각자는 스스로의 자격에 부끄러움이 없는 지를 늘 반성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지속적인 전문화 수련이 필요하다. 이는 대학원의 활성화 그리고 학위과정을 통한 전문가로써의 성장을 특수체육 지도자들의 교육적 패턴으로 자리 잡혀야 한다.


2004년 미국장애인교육법 IDEA(The Individuals with Disabilities Education Act)에서는 특수체육을 특수교육의 한 구성요인으로 간주하였다. 3세에서 21세의 모든 장애학생들에게 적절한 체육활동을 무상으로 제공해야만 한다는 내용으로 PL94-142에서 마련된 LRE(Least Restrictive Environment: 최소제한환경)를 토대로 하는 것이다. 특수체육은 양질의 맞춤 서비스로 제공되는 질 높은 체육이며 동시에 특수체육의 교과과정은 다음과 같은 체육의 교과기준에 합당해야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장애학생을 포함한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특수체육교사는 체육교과의 내용을 장애학생에게 적절하게 적용하기 위하여 적절하고도 차별되는 방법의 교과과정을 개발해야만 한다. 차별적 교육방법이란 별스러운 것이 아니라 양질의 교과내용을 토대로 장애학생의 수준에 맞추면 족하다. 간단히 다음의 네 가지 요소가 강조된다. 첫째, 교과내용(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둘째, 지도과정(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셋째, 지도환경(어디에서 가르칠 것인가). 그리고 마지막 넷째, 학습평가(학생의 학습결과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해당된다.


비록 미국이 특수체육을 특수교육의 일환으로 전제한 법적 근거를 토대로 교과과정을 운영한다고 할지라도 그 근본은 체육에 중심을 두고 있음이 분명하다. 특수체육과 체육의 관계를 우리는 분명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간혹 특별한 전공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특별한 직업과 바로 연관이 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특별해야만 특별한 곳에서 특별히 안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스스로에게 족쇄를 채우는 일일 것이고 그 족쇄로 인하여 고립되어 진다는 사실은 혹시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를 특수체육의 현장에서 고려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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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석기 2013.03.07 01:16 신고

    좋은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특수체육에 관하여 조금이나마 생각하게 되었고, 더욱더 공부하여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김기홍(용인대학교 특수체육교육과 교수)

 

               특수체육은 특별한 체육이 아니다. 특수체육을 특수교육적인 측면에서 해석하고자 하는 경향도 있지만 특수체육은 특별한 교육도 아니다. 특수체육은 장애인을 위한 적절한 체육일 뿐 유별난 것도 특별난 것도 아니다.

 

특수체육 분야에 몸담고 있으면서 가장 흔하게 들어온 소리가 “특별한 일을 한다, 좋은 일 한다, 매우 바람직한 일을 한다, 희생적이다, 봉사정신이 투철하다, 등등” 그중에서 매우 고무적인 말은 바로 비전이 있어 보인다란 말이었다. 10년전 에도 전도양양한 즉, 비전 있는 전공이었고 20년 전에도 똑같은 소리를 들었다. 아니 그 이전 30년 전에도 바로 그런 소리를 들었다. 그 비전은 언제 찾아온단 말인가? 과연 특수체육의 비전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그와 같은 이야기는 어제 오늘 계속되어온 것만도 아니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그렇게 칭찬인지 연민인지 모를 소리를 계속 들어야 한다면 이는 바람직한 것일까? 그와 같은 현상은 사회복지학 분야에서도 있을 법하다. 장애인을 위한 일이 곧 사랑, 박애, 봉사를 전제로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왜 환자를 위한 의학도는 그런 소릴 듣지 않는 것인가?

 

 

 

 

특수체육! 이는 봉사를 바탕으로 헌신하는 종교적 가치를 토대로 평가받을 분야이기 보다는 지식과 기술 및 경험을 전문화하여 특수체육을 필요로 하는 대상자에게 가장 바람직한 교육을 제공하기 위함이 강조되어야 한다. 사범대학의 학과 편성에서 특수체육교육은 엄연히 교사를 양성하는 기관이다. 그러므로 학과목인 국어 영어 수학 과학처럼 특수체육 또한 학과목의 명칭이 맞다. 그러나 현재 특수학교의 현장에서는 특수체육교사의 위치가 매우 애매모호하게 되었다. 특수학교의 체육교사들은 무엇을 지도하고 있는가? 특수체육교사의 위치가 굳건한 현장도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많은 학교들이 체육교사라는 명칭으로 특수학교에 교사를 임용하고 있지 않음이 현실이다.

 

체육! 그 자체에 대한 범국가적 및 국민적 인식이나 의식이 매우 도태된 것의 영향일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특수교육 대상자인 장애학생들의 입장에서 진정으로 체육이 요구되어지지 않는다면 현재의 상황들을 접수하고 인정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특수체육을 통하여 장애학생들이 매우 즐거워하고 만족스러워하며 또한 그 교육적 효과도 탁월한 것이 분명하다. 장애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신체활동을 근간으로 교육이 이루어지는 체육활동이 어려운 것일까? 특수체육의 본질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이는 절대로 어려운 것이 아님을 삼척동자도 알 것이다. 장애학생들이 특수체육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를 바라고 있을 순 없다. 당사자의 입장에서 주장하기 어려운 장애학생들을 누가 대변할 것인가? 특수체육에 몸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책임일 수 있다. 특수체육은 그 전문성을 바탕으로 학교 현장에서 입지를 확고하게 다져야 할 것이며 이 또한 장애학생을 위한 바람직한 교육임이 강조되어야한다.


특수체육(adapted physical education)을 정의하자면 장애학생들의 체육을 강조하는 체육학의 하위 학문분야이다. 또한 특수체육이란 용어는 학교현장에서 이루어지는 학교교육프로그램과 관련이 있는 포괄적 용어에 해당된다. 동시에 장애인신체활동(adapted physical activity)라는 용어는 학생들이 학교 현장을 떠나서 사회인의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졸업 후의 프로그램을 포함한 생애체육에 해당되는 용어로서 그 의미는 보다 장기적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장애인 스포츠 활동이 바로 이러한 용어에 모두 포함될 수 있지 않을까 본다.

 

비록 체육과 특수체육의 목표가 동일하다 할지라도 특수체육에 있어서 먼저 고려되는 사항은 다양성이라고 할 수 있다. 특수체육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동시에 특수교육현장에서 가장 특성화된 것이라 말 할 수 있는 개별화 교육프로그램(IEP: Individual Educational Programs)이다. 예로써, 모든 학생들이 건강관련 체력운동을 한다고 할지라도 근육장애를 갖고 있는 학생에게 중요한 목표는 수준이 낮은 건강관련 체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낮은 수준의 체력 목표는 일반적으로 건강한 학생들에게는 너무 하위 수준이라 목표로 설정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것일 수 있다. 동일한 내용의 예를 한 가지 더 지적하자면 학습장애가 있는 학생 혹은 뇌병변 장애가 있는 학생에게 운동기능 발달은 체육의 중요한 목표가 될 수 있지만 행동장애가 있는 학생에게는 사회성발달이 더 중요한 사항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다양성이 바로 특수체육의 독특함이라고 말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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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철원 (스포츠둥지 기자)

 

 

 

 

디자인을 전공하던 평범한 여대생이 있었다. 하지만, 뇌병변이라는 장애를 갖고 태어난 그녀에게 사회의 벽은 높기만 했다. 장애에 대한 편견의 벽에 지쳐갈 때 즈음,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뒤바꾸는 길을 걸어가게 된다.

 

지난 2006년, 재활을 위해 수영을 배우기 시작한 그녀는 그해 열린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4관왕 차지하며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발견했다.

 

순식간에 장애인스포츠계의 스타로 떠오른 그녀는 2008년 베이징 장애인올림픽 결선진출에 이어 2010년 광저우 장애인아시안게임 동메달, 전국장애인체육대회 5관왕 및 대회 MVP를 휩쓸며 절정의 기량을 뽐냈다. 또한, 2008년 베이징 장애인올림픽을 앞두고 프로야구 시구자로 나서며 국민적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됐다.

 

장애인스포츠의 간판스타이자 ‘수영 얼짱’으로 불리는 김지은(30.부산시장애인체육회)의 인생 스토리다. 런던 장애인올림픽을 두 달여 앞둔 지난 27일,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장애인체육종합훈련원(장애인국가대표 선수촌)에서 김지은을 만났다.

 

 

백이현, 이철원

 

 

▶ 우선 올림픽 얘기부터하자. 두 번째 올림픽에 참가하게 된 소감은?

아무래도 조금 더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베이징 대회 때는 많이 긴장했었지만 지금은 한결 여유로움을 갖고 참가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올림픽은 원래 부담감이 큰 무대인지라 편하게 느낀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베이징대회 때 보다는 담대하게 경기를 치를 수 있을 것 같다.

 

▶ 지난 장애인올림픽에서는 출전 전 종목 결선진출에 성공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번 대회 전망은?

베이징 장애인올림픽에선 나름 성과가 있었지만 이후 광저우 장애인아시안게임에선 출전선수가 적었던 탓에 여러 등급이 통합 돼 나에게 불리했었다. 나보다 신체기능이 월등한 선수들과 함께 경기를 펼치니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장애인올림픽은 출전 선수가 많기 때문에 등급이 통합되는 일은 드물다. 이번 대회에서 등급통합만 되지 않는다면 지난 대회처럼 출전 전 종목에서 결선에 진출하고 싶고, 그 이후에 메달 욕심을 내보겠다.

뚜렷한 성적이라기 보단 내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달려 나가고 있는 모습을 알리고 싶다. 장애인이 아닌 인간 김지은의 성장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 수영 시작 후 승승장구 했지만 소속팀을 구하지 못해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장애인선수로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베이징 장애인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여기까지만 하자라는 마음이 들었는데 그게 쉽지가 않더라. 주변의 기대와 격려 등, 내가 운동을 그만하자고 해서 그만할 수 있는게 아니더라(웃음). 그때 그만뒀다면 장애인선수를 위한 실업팀 입단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때 그만두지 않았던 것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의 실업팀 입단에도 작은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 실업팀에 입단한 이후 달라진 점이 있나?

생활이 안정적이게 됐고 좀 더 운동에만 매진할 수 있게 됐다. 솔직히 일반 실업팀에 비해서는 부족하지만 현실적으로 한국에서 장애인선수가 일반선수와 같은 처우를 요청하기도 힘든 것이 사실이다. 뭔가 변화가 필요한 상황임에는 분명하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나에겐 정말 큰 힘이 되고 있다. 이번 장애인올림픽에서 좋은 성과를 거둬 소속팀의 지원과 응원에 보답하고 싶다.

바람이 있다면 장애인 선수들도 비장애 선수들처럼 안정적으로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점차 조성됐으면 좋겠다.

 

 

 

 

 

 

▶ 재활을 위해 시작했던 수영인데 이로 인해 삶이 많이 바뀐 것 같다

어릴 적에 부모님이 나를 친구들과 어울리게 해주려고 잠시 수영을 시키신 적이 있었다. 그때 경험이 있었기에 다시 시작할 때 겁 없이 도전할 수 있었다.
수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며 내 인생은 180도 바뀌었다 시작 전에는 운동에 관심자체가 없었다. 하지만, 운동을 시작하면서 전공도 바뀌었고 내 스스로 장애에 대한 벽을 허무는 등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스포츠가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

스포츠를 통해 얻을 수 있는건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한다.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나 역시 그랬고 이곳에 있는 장애인국가대표 선수 모두가 마찬가지일 것이다. 물음표를 갖고 시작한 일이지만 이 일을 통해 내 자신을 가두고 있던 벽을 깼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은게 있다. 스스로의 선입견을 먼저 깨야 타인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꾼다는 것이다. 스포츠가 아니더라도 좋다. 장애를 가진 친구들이 자신을 가두고 있는 벽을 깰 수 있는 계기를 찾아내고 스스로의 삶을 위해 달려 나갔으면 좋겠다.

 

 

 

 

 

지금은 내 스스로도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 내 자신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는 과정인데 이번 대회를 통해 그 해답을 조금이나마 찾아보고 싶다.

 

내가 선수가 아닌 다른 삶을 살아가더라도 많은 분들께서 나를 기억해주시면 좋겠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데 도움이 됐던 김지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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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노형규 (한국체육대학교 특수체육교육과 교수)
 

약간은 생소하게 들릴 수도 있는 장애인스포츠는 말 그대로 다양한 형태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경기에 참여하여 서로간의 우열을 겨루는 경쟁적인 활동을 의미한다.

장애인스포츠가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이어서
개최된 서울 장애인올림픽(paralympics)이다. 그 때까지만 해도 우리 국민들에게
장애인스포츠라는 것은 그저 올림픽을 치루기 위한 곁다리 행사 정도로만
인식되었을 수도 있다. 실제로 그 당시 우리나라는 올림픽에 참가할 장애인
선수들을 찾기가 어려워 여기저기 흩어져 운동을 하고 있던 건강한 장애인들을
급조하여 국가 대표팀을 만들고 국가차원의 집중 훈련을 통해 경기에 출전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On world one dream, 2009)


국제적으로도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이전까지는 장애인올림픽이 일반 올림픽과는
별개로 개최되었고 단순히 장애인들의 이벤트성 국제 행사 개념
이 강했다.
즉 최근의 장애인올림픽과 같이 조직화, 체계화되어 개인과 국가 간의 치열한
경쟁의 개념은 크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례로 서울 장애인올림픽 직전 대회였던
제7회(1984) 영국 에일즈베리 장애인올림픽에서는 참가국과 참가인원이 41개국 2500여명
수준에서 2008년 열린 13회 베이징 장애인올림픽에서는 148개국 7383명의 선수단이
참가하며 명실상부한 국제 올림픽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장애인올림픽의 변화는 단순히 외형적 규모만은 아니다. 더 중요한 변화는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들의 경기력에 대한 것이다. 지난 2008년 베이징 장애인올림픽에서
279개 장애인 세계기록과 339개 장애인올림픽 기록이 갱신되었다는 것은 최근
장애인스포츠의 급격한 질적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경기의 방식은
다르지만 역도의 4개 종목에서는 일반 올림픽의 기록을 앞지르는 경우도 나타났다. 

 

 

                                                           (사진: 조세현, 2009)


이미 매스컴을 통해 알려진 바 있는 남아공 출신의 육상선수 피스토리우스는
아테네 장애인올림픽에서 두 다리가 없는 상태로 10초 91을 기록하여 우사인
볼트가 2008년도에 베이징에 올림픽에서 세운 100m 세계 신기록 9초 69의
육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밖에도 적지 않은 장애인올림픽의 종목 기록들은 이미 일반 올림픽의 기록에
육박하고 있으며 국제대회가 거듭될 때마다 계속해서 신기록이 갱신되고 있다.


이제 장애인스포츠는 단순히 장애인들의 친목도모나 참가의 의미만 두던 시대는 지났다.
또한 장애인들의 스포츠 참여가 감성적 측면의 인간승리나 역경극복의 가십(gossip)
정로만 치부되던 시대도 끝나가고 있다. 장애인스포츠는 이제 엄연한 스포츠로서의
경기력을 겨루고 있으며, 우리 모두가 그러한 경기력 향상을 위한 선수들의
도전에 대해 진정한 승자로서의 박수
를 쳐야할 때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지난 몇 년 간 장애인체육의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행정적, 조직적 변화의
노력을 지속해 왔다. 국민체육진흥법을 통해 장애인체육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대한장애인체육회의 설립을 통해 장애인체육 지원에 기반을 마련한 것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국내 장애인스포츠는 최고의 경기력 향상이라는
당면과제를 효과적으로 풀어나가지는 못하고 있는 듯하다. 향후 국제 장애인스포츠에서의
국가적 위상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이제 경기력 향상 차원의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가 되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On world one dream, 2009)


우리나라 장애인스포츠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과학적 접근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비장애인 스포츠 종목과의 적극적인 교류를 통해 과학적 훈련 방식과
기술을 획득하고 장애인스포츠에서 사용되는 스포츠 장비의 개발은 가장 시급하게
진행되어야 할 사항이다. 이와 함께  장기적인 차원에서 경기력을 체계적으로 쌓을
수 있는 장애인생활체육 저변확대와 다양한 국제대회 참가 기회 확대도 장애인 선수들의
경기력을 높일 수 있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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