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송형석(계명대학교 교수)

 

 

        스포츠도덕이란 어떤 것일까? 전통적 의미에서 스포츠도덕은 스포츠규칙의 자발적 준수를 의미하였다. 철학자 게르하르트는 스포츠는 규칙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에 선수들이 규칙을 충실하게 지키는 한에서만 스포츠를 한다고 말할 수 있다고 하였다. 즉 스포츠선수는 자신이 참가하는 스포츠경기에서 그것의 구성적 조건인 규칙을 충실하게 준수해야만 스포츠선수라는 것이다. 만일 그가 자신이 참가한 스포츠경기의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는 더 이상 스포츠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나아가 더 이상 스포츠선수도 아닌 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스포츠규칙을 준수하지 않는 모든 선수는 스포츠선수가 아닌 자가 되며 비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자가 되는 것인가?

 

 


만일 스포츠에서 도덕적 선수와 비도덕적 선수의 구별 기준, 참된 의미에서의 스포츠선수와 스포츠선수가 아닌 자의 구별 기준이 규칙의 자발적 준수에 있다면 대부분의 선수들은 비도덕적 선수 또는 스포츠선수가 아닌 자에 속하게 될 것이다. 현대 경쟁스포츠에서 규칙 위반은 예외가 아니라 일상에 속하기 때문이다. 경기 장면을 관찰해보면 규칙 위반은 비도덕적 행위라기보다는 오히려 경기의 일부처럼 보인다. 심판은 규칙을 위반한 선수에게 규칙 위반의 정도에 따라 경고, 패널티 부여, 퇴장 같은 벌칙을 부과한다. 선수들이 위반해도 스포츠선수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하등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 규칙들도 있다. 그래서인지 경기에서 규칙 위반은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이와 같은 현실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전통적 의미에서 스포츠도덕의 준수를 강력하게 주장한다면 그와 같은 주장은 현실을 무시하는 처사이며 잠재적으로 모든 선수들을 비도덕적인 인간으로 만드는 것과 같다.


현실적 스포츠상황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다. 전통적 스포츠윤리는 정정당당한 승리, 스포츠맨십, 페어플레이 등을 강조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상대를 속이는 행위라고 할 수 있는 태권도, 축구, 핸드볼, 농구 등에서 페인트모션은 비도덕적인 행위가 된다. 그러나 현실적 스포츠상황에서 이와 같은 행위는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태권도경기에서 페인트모션, 축구경기에서 파울을 유도하기 위한 과장된 제스처, 하키선수들의 폭력 등은 비도덕적 행위라기보다는 오히려 경기의 일부라는 인상을 준다. 현실적으로 페인트모션을 썼다고 비난을 받거나 제재를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규칙 위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관중들은 적절한 시기에 규칙을 위반한 선수들에게 박수갈채를 보내기도 한다. 물론 모든 규칙 위반에는 그에 상응하는 페널티가 부과되지만 그 이상의 도덕적 비난은 없다. 주지하다시피 경쟁적 스포츠종목들에서 일종의 속임수인 페인트모션은 승리하기 위한 기술의 주요 부분이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스포츠규칙 일반에 대한 절대적 준수를 강조하는 스포츠도덕은 비현실적이다.


한 번 더 강조하지만 전통적 도덕 정의는 스포츠의 도덕을 구별하지 않고 뭉뚱그려 다루었기 때문에 스포츠상황에서 도덕적으로 행위 하라는 요청은 준수하기 쉽지 않은 요청이 되었다. 필자는 여기서 스포츠의 작은 도덕과 큰 도덕의 구별, 즉 경기에서 위반이 어느 정도 용인될 수 있는 규칙과 결코 허용되어서는 안 되는 규칙의 구별을 제안하고자 한다. 위반이 어느 정도 용인될 수 있는 규칙은 스포츠경기에서 구체적인 규칙을 준수하는 일과 관련이 있다. 예컨대 축구경기에서 골키퍼를 제외하고 손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작은 도덕이다. 이렇듯 작은 도덕은 규칙의 존중이나 규칙에 대한 공정한 태도를 의미한다. 한편 경기에서 그 위반이 결코 용인되어서는 안 되는 큰 도덕은 경기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금지된 수단이나 물질을 사용하거나 승부조작에 개입하는 일과 관련된다. 도핑이나 승부조작 금지 요청에 대한 기대는 경기 상황에서의 경기규칙 준수 요청에 대한 기대보다 크기 때문에 전자를 큰 도덕이라고 했고, 후자를 작은 도덕이라고 했다.


도덕 커뮤니케이션은 존중과 무시라는 주도적 코드에 따라 작동하는데, 작은 도덕의 경우 이 코드가 적용되는 대상이 특정 행위 영역에 속한 인격에게만 국한되는 경향이 있지만 큰 도덕의 경우 전 인격과 관련이 된다. 쉽게 말해 한 선수가 작은 도덕을 위반했을 때, 예컨대 경기규칙을 어겼을 때 선수로서 그의 인격에만 파울, 경고, 퇴장 같은 제재가 가해지지만 큰 도덕을 위반했을 때는 선수이자 일반인으로서 그의 인격 전체에 선수자격박탈, 벌금, 사회적 비난, 법적 처벌 같은 제재가 가해진다. 도핑 금지 외에 승부조작 금지도 스포츠의 큰 도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스포츠도덕의 구별은 스포츠의 문제를 조금 더 현실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현재 스포츠에서 가장 논란거리가 되는 것은 큰 도덕의 위반이다. 특히 도핑과 승부조작이 여기에 해당한다. 앞에서 설명하였듯이 작은 도덕의 위반은 경기의 일부로 볼 수도 있다. 작은 도덕의 위반은 경기를 흥미롭게 만들어주기조차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작은 도덕의 위반은 크게 문제시될 것이 없다. 그러나 큰 도덕의 위반은 심각한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흔히 스포츠를 일컬어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한다. 영화나 연극, 소설은 이미 결론이 정해져 있다. 그러나 스포츠에서는 그렇지 않다. 이것이 스포츠를 매력적이게 만든다. 예측을 불허하는 결과, 한 순간에 뒤바뀐 승부는 관중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그러나 만일 승부가 사전에 조작된 것이라면, 승리가 속임수를 동원해서 얻은 것이라면 관중의 실망은 클 것이다. 그에 따라 그들의 스포츠에 대한 관심은 크게 반감될 것이다. 스포츠를 가장 매력적이게 만드는 요인이 사라지기 때문에 스포츠는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이유에서 스포츠단체들은 도핑이나 승부조작 같은 큰 도덕의 위반에 대해 매우 강경한 태도로 반응한다.


만일 우리가 실천해야만 할 도덕을 큰 도덕에만 국한하여 볼 경우에 우리에게 중요한 도덕실천이란 페인트모션을 하지 않거나 경기 중에 파울을 범하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승리하는 그런 행동의 실천에 대한 요구가 아니다. 선수들이 도핑을 하지 않게 만드는 일, 선수들이 승부조작의 유혹을 뿌리치고 여기에 가담하지 않게 만드는 일이 우리의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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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태구 2014.03.04 14:59 신고

    작은 도덕과 큰 도덕 인상적인 설명이네요. 학교현장에서 결국 스포츠맨십의 교육은 작은 도덕의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글 제미있게 보았습니다.

        

                                                                                    글/윤여탁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 교수)

스포츠 경기문화에서 비윤리적 행위의 주체는 사람이다. 스포츠 경기문화라는 생활세계 내에서
심판, 선수, 지도자, 학부모, 관중 등에 의해서 비윤리적 상황들이 연출된다.
특히, 경기지도자는 비윤리적 행위의 중심에서 윤리적 딜레마를 겪게 되는 중심주체가 된다.
이성을 가진 인간은 칸트의 의무론적 윤리인식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생활세계 내에서
무수히 많은 윤리적 판단의 기로 즉 윤리적 갈등을 경험하게 된다. 특히 스포츠 경기지도자들은
승패의 키를 쥐고 있는 심판의 권력으로 인해. 윤리적 갈등 상황에 자주 직면하게 된다.

심판 판정의 공정성을 주제로 한 최근의 조사들을 살펴본 바에 따르면,
경기지도자들이 인식하는 심판 판정의 공정성의 문제는 긍정적 측면보다는 부정적 측면이
강하게 나타나 있고, 경기지도자들의 불만과 갈등은 최고조에 달해 있다.


저자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심판 권력으로 인한 경기지도자(태권도종목)의 윤리적 갈등은
5가지의 요소
로 귀결된다.

첫째, ‘심판 판정의 희생양’이 됨으로 윤리적 갈등을 겪는다.
심판 판정의 오심으로 희생양이 되는 선수의 땀과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고 있으며, 그로인해 경기지도자의 길에 회의를 느끼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였다.

둘째, ‘자신의 능력에 대한 회의: 선수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인해 윤리적 갈등을 겪는다.
선수들이 시합에 나가서 ‘심판 판정의 희생양’이 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면 경기지도자는
억울한 마음과 함께 자신의 능력 부족으로 선수가 오심을 당하게 됐다는 생각으로 갈등하며
선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심판 판정을 자신의 팀과 선수에게 유리하게 하는 것도 하나의 능력인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에 대한 갈등이 있었다. 이런 경우 팀과 선수들에게 마음속으로
죄책감까지 느끼는 갈등을 겪게 된다고 하였다.

셋째, ‘판정에 대한 항의 그러나 허공을 치는 메아리, 되돌아오는 화살’의 상황을 갈등한다.
경기에서 오심을 당했을 때, 심판에 대한 항의가 무의미함을 경기지도자들은 공통적으로 말한다.
아니 무의미함을 떠나 판정에 대한 항의는 역으로 버릇없는 지도자라고 낙인찍혀 되돌아오는
화살에 맞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넷째, ‘인사와 로비’의 윤리적 갈등을 겪는다.
심판의 주관적인 득점기준이 승패를 좌우하는 경기(태권도)에서 심판과의 관계는
결정적인 상황에서 힘을 발휘하게 된다. 그러므로 심판과의 관계형성은 경기지도자의
또 다른 능력이 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따라서 경기지도자들은 심판에게 인사와 로비를 한
직․간접적인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팀이 인사와 로비를 안 하면 다른 팀에게
억울하게 질 것이기에 어쩔 수 없이 때가 되면 인사와 로비를 해야 하는 갈등을 하게 된다고 한다.
이는 수인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 상황과 비슷한 양상이라 할 수 있다.

다섯째, ‘경기지도자, 학부모, 심판의 삼각관계 형성’의 윤리적 갈등을 겪는다.
스포츠 경기문화의 비윤리적인 문제는 학부모들에게 까지 영향을 주어 선수를 스카우트 할 때,
이제 학부모들이 먼저 경기지도자에게 심판들과 줄이 닿아 있는가? 라고 묻기도 한다고 했다.
이러한 학부모의 요구로 인해 경기지도자는 심판과의 관계 형성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상황을 갈등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윤리(倫理, ethic)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의 이치(理致)” 또는 “사람이 지켜야할 도리(道理)”
곧 “삶의 길 또는 방법”,이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스포츠 경기문화 안에서 경기지도자와
심판, 선수, 학부모와의 관계에서 이치와 도리가 지켜지지 않고,
윤리적 삶에 반하는 비윤리적 양태들이 발생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심판 권력으로 인한 경기지도자의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을 3가지로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심판의 윤리적 강령을 철저히 감시하고 실시해야 한다.
심판은 체육인 윤리강령의 ‘제10조 권한 남용과 금품 수수 등의 방지’에 명시되어 있듯이
자신이나 특정인의 이익을 위하여 자신에게 부여된 권리를 부당하게 이용하여서는 안 되며,
특히 업무 수행과 경기 심판 또는 각종 회의 활동 등에서 결정권자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일방을 편들거나 금품수수, 향응 및 각종 편의를 제공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유념해야 하며,
철저히 지켜야 할 것이다.

둘째, 새로운(객관적인) 심판제도의 실행이다.
의도되지 않은 오심이 경기의 일부라는 논리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의도된 오심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객관적인 심판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태권도 종목의 경우 전자호구와 비디오 판독 등은 확대되고 계속적으로 시행되어야 할 제도인 것이다.

셋째, 경기지도자의 신분제도 변화이다.
현재 경기지도자의 임용과 해임은 단순히 성적을 통해 결정됨으로 현 제도 하에서는 경기지도자들이
심판권력의 지배를 받을 밖에 없는 모순이 발생한다.
그러므로 경기지도자들에게 안정적 신분을 보장하고 그들을 전문 스포츠교육자로 대우해주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함으로 심판 권력으로 인한 윤리적 갈등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 국회에서 운동부 지도자의 처우에 관한 공청회 등 운동부 경기지도자의 처우에 관한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고 이슈화 되는 현상은 아주 바람직한 현상이며,
계속적으로 운동부 경기지도자에 대한 관심과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스포츠 윤리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도덕성 및 양심의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의 제도, 정책, 문화 등의 다양한 사회 윤리적 맥락을 통한 문제해결이 가능하다.
이와 같은 견지에서 스포츠 경기문화의 윤리성 회복을 위해 심판과 지도자가
모두 회복되고 상생할 수 있는 제도를 우리는 고민해야 할 것이다.

ⓒ 스포츠 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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