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윤동일 (국방부)

 

        1936년 LA 올림픽 육상 5000m 결승 경기에서 핀란드의 라우리 라티넨과 미국의 랄프 힐이 접전을 벌였다. 결승선을 얼마 남겨놓지 않고 라티넨이 한 발 앞서 달렸고 그 뒤를 힐이 바짝 추격했다. 힐이 사력을 다 해 라티넨을 앞서려고 바깥쪽으로 빠져 나오려는 순간이었다. 라티넨이 힐의 앞을 가로 막는 것이었다. 멈칫하던 힐은 다시 방향을 고쳐 안쪽으로 추월하려 했다. 그러자 라티넨이 또 그 쪽으로 몸을 트는 것이었다. 주춤할 수 밖에 없는 힐이었고 그렇게 라티넨과 힐은 거의 동시에 골인했다. 사진 판독 결과 라티넨의 우승으로 결정이 났다. 그러나 관중석에서 야유의 함성이 이는 것이었다. 달리기 경주에서 앞지르려는 선수의 길을 막으면 실격으로 처리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관중들이 라티넨의 우승을 비난하는 것이었다. 마지막에 힘이 달려 비틀거렸을 뿐인 라티넨은 관중들이 왜 소란을 피우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필름을 보고서야 당시의 상황을 알게 된 라티넨은 얼굴이 붉어졌다. 분명한 진로 방해였던 것이다. 라티넨은 그 즉시 힐에게 달려가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했다. 그러나 힐은 오히려 민망해 하며 라티넨의 우승을 축하해 주는 것이었다. 곧 이어 시상대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진풍경이 펼쳐졌다. 자신이 우승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라티넨은 힐을 한사코 맨 윗자리로 밀었고, 힐은 어림없다는 표정으로 사양하는 것 아닌가. 이 둘의 실랑이를 관중석에서도 다 볼 수 있었다. 당시 메인스타디움에서 관전하던 모든 관중들은 이 들의 아름다운 스포츠 정신에 뜨거운 박수와 갈채를 보냈다. 


  2004년 아테네국제육상선수권대회에서 남자 마라톤에서 결승점을 눈앞에 두고 넘어져 우승을 놓친 유명한 사례가 있다. 브라질 선수 리마는 결승점 4Km를 남겨 두고 선두를 달리다 한 아일랜드 종말론자에게 밀쳐 넘어졌다. 그대로 속도를 유지하면 우승은 문제없는 상황에서 벌어진 이변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4년을 준비해 금메달을 눈앞에서 놓친 것이다. 아니 도둑 당했다는 것이 옳을지 모르겠다. 화가 날 법도 하건만, 결승점에 도착한 그는 얼굴에 천진난만한 웃음과 멋진 세리모니를 보여 주었고, 시상대에서 그렇게 고대하던 금메달이 아닌 동메달을 목에 걸고도 그 어떤 원망이나 몸짓도 없었다. 후일 아일랜드 정부는 그를 초청하여 국민적 사과와 함께 국빈의 예우를 보여 주었다. 아래 사진에 보는 것처럼 은메달도 아닌 동메달을 목에 걸면서 보여준 밝은 모습은 개인적으로 모든 스포츠에서 성공했던 그 어떤 선수보다 행복한 모습 그 자체로 쉽게 잊혀 지지 않는 역사적인 장면으로 기억한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마라톤에서 관중이 뛰어 들어 역주하는 반다라이 리마를 방해하는 장면과 3위로 골인하면서도 천진난만한 모습을 잃지 않는 그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다음 내용은 앞서 소개한 랜스 암스트롱의 사례이다. 최근 금지약물 복용으로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그의 이야기 가운데 2003년에 열린 ‘투르 드 프랑스대회’는 유난히 특별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사이클 구간 독주 경기로 피레네 산맥을 횡단하는 코스를 20구간으로 나누어 20일 동안 경기가 치러지며 각 구간의 기록을 합산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개인독주 경주다. 당시 15일까지 선두를 달리던 랜스 암스트롱은 응원을 나온 꼬마 아이의 가방을 피하려다 넘어지게 되었다. 당시 2위로 불과 15초 차이로 뒤를 쫒던 독일의 얀 울리히는 암스트롱 때문에 만년 2인자로 있었기에 이 불의의 사고는 그에겐 곧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만년 2위에서 1위로 우승을 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무슨 일인지, 그는 추월하지 않았고, 오히려 암스트롱이 다시 일어나 레이스를 재개할 때까지 페달을 멈추고는 기다려 주었다. 결과는 암스트롱이 1위, 얀 울리히가 2위를 차지했다.

 

경기가 끝난 후, 울리히의 입장을 잘 알고 있었던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그는 기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물론 나는 기다릴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불운을 이용하여 이 경주에서 승리하였다라고 한다면 그러한 경주는 승리할 가치가 없었을 것입니다." 당시 이 장면은 세계에 알려졌고, 우리나라의 한 시인(박노해)은 “1위로 달리던 암스트롱이 응원하는 아이의 가방을 피하려다 그만 넘어져 나뒹굴었습니다. 겨우 15초차로 뒤쫓던 독일의 울리히 선수는 만년 2위의 한을 벗어 던질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멈췄습니다. 암스트롱이 다시 일어나 달리기 시작할 때까지 그는 묵연히 멈춰서 있었습니다. 숨 가쁘던 피레네 산맥도 멈출 줄 모르고 질주하던 지구 위의 사람들도 울리히와 함께 숙연히 멈춰선 것만 같았습니다.”라고 표현했다. 만년 2인자의 자리를 선택한 울리히야 말로 진정한 스포츠맨십을 보여 준 귀감이 되었다. 랜스 암스트롱은 암 선고를 받고도 긴 투병생활과 함께 7연패의 위업을 달성하며 당대 최고의 선수로 평가되었고, 얀 울리히는 평생 동안 염원했던 정상의 자리를 정도(正道)가 아니라 하여 스스로 포기했다. 이 날의 경기는 두 선수에게도 변화를 주었는데 그동안 서로에게 정상의 자리를 노리는 라이벌의 관계를 뛰어 넘어 진정한 평생의 친구이자 동반자가 되었다.

 

암스트롱의 역경 스토리는 1996년 고환암과 세포 종양 선고를 받으면서 시작하여 수술과 화학요법을 병행하면서 1999년부터 2005년까지 7연패의 위업을 달성했고, 기간 중 ABC, AP통신, ESPN, Sports Illustrated 등이 주관하는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다. 그는 2005년 투르 드 프랑스를 마지막으로 은퇴한 후, 2007년 자신이 설립한 재단 활동에 몰입했는데 앤드레아 애거시, 무하마드 알리, 앤드레아 예거, 알론조 모닝, 제프 고든 등의 유수의 스포츠 스타들과 함께 재단(Athletes for Hope)을 확대했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2008년 현역에 다시 복귀하여 2009년 투르 드 프랑스 대회에 출전하여 그간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3위를 차지하는 놀라운 기록을 보였다. 다음은 그의 인터뷰 내용이다. “죽음의 문턱까지 다가가 보면 주변의 모든 것들이 깨끗하게 정리가 되면서 그 다음에 찾아오는 것은 찬란하게 빛나는 깨달음이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실감하고 나면, 매일 아침 신선한 기분으로 깨어나 내게 특별한 또 하루의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활기차고 목적의식이 뚜렷한 하루하루를 이어가자고 다짐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누가 내게 오로지 사이클에만 매달려 장대비 속에서도 여섯 시간씩 높은 산을 오르내리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면, 그게 바로 내 대답이다.” 얼마나 진한 감동의 순간인가? 이것이 다른 영역과 구별되는 스포츠의 진정한 힘일 것이다.

 

 

2003년 투르 드 프랑스대회에서 넘어진 랜스 암스트롱(미국, 사진의 왼쪽)을 기다려 준 얀 울리히(독일, 사진의 오른쪽)가 레이스를 마치고 악수를 나누고 있다. 이 대회를 계기로 둘은 진정한 친구가 되었고, 독일의 얀 율리히는 암스트롱 못지않은 세계적인 관심과 주목을 받았다.

 

스포츠의 본질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최고가 되기 위해 정진하는 자기 자신과 그리고 대적한 라이벌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한다. 그러나 경쟁에 비겁한 방법은 허용되지 않으며, 비록 라이벌에 비해 부족하더라도 인정되는 수단과 방법으로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결과는 그 다음의 문제인 것이다. 전쟁에서의 적은 영원히 그 적대감정이 지속되지만, 스포츠에서 건전한 경쟁을 겨루었다면 경기 후에는 모두가 친구이며 동반자이다. 그리하여 스포츠에서는 승자만 칭송받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한 패자에게도 아낌없는 박수와 무한의 후원을 보내는 것이다.

 

 

 

 

ⓒ 스포츠둥지

 

 

 

Comment +1

  • 정태승 2013.08.28 21:45 신고

    그 간의 글들 중 기억에 남는 씨리즈를 다시 읽어봤습니다.
    스포츠둥지 윤동일님께서 요즘에 많이 바쁘신가보네요.
    글들이 1달 가까이 올라오지 않는 것을 보니.

 

 

글/송형석(계명대학교 교수)

 

 

        스포츠도덕이란 어떤 것일까? 전통적 의미에서 스포츠도덕은 스포츠규칙의 자발적 준수를 의미하였다. 철학자 게르하르트는 스포츠는 규칙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에 선수들이 규칙을 충실하게 지키는 한에서만 스포츠를 한다고 말할 수 있다고 하였다. 즉 스포츠선수는 자신이 참가하는 스포츠경기에서 그것의 구성적 조건인 규칙을 충실하게 준수해야만 스포츠선수라는 것이다. 만일 그가 자신이 참가한 스포츠경기의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는 더 이상 스포츠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나아가 더 이상 스포츠선수도 아닌 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스포츠규칙을 준수하지 않는 모든 선수는 스포츠선수가 아닌 자가 되며 비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자가 되는 것인가?

 

 


만일 스포츠에서 도덕적 선수와 비도덕적 선수의 구별 기준, 참된 의미에서의 스포츠선수와 스포츠선수가 아닌 자의 구별 기준이 규칙의 자발적 준수에 있다면 대부분의 선수들은 비도덕적 선수 또는 스포츠선수가 아닌 자에 속하게 될 것이다. 현대 경쟁스포츠에서 규칙 위반은 예외가 아니라 일상에 속하기 때문이다. 경기 장면을 관찰해보면 규칙 위반은 비도덕적 행위라기보다는 오히려 경기의 일부처럼 보인다. 심판은 규칙을 위반한 선수에게 규칙 위반의 정도에 따라 경고, 패널티 부여, 퇴장 같은 벌칙을 부과한다. 선수들이 위반해도 스포츠선수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하등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 규칙들도 있다. 그래서인지 경기에서 규칙 위반은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이와 같은 현실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전통적 의미에서 스포츠도덕의 준수를 강력하게 주장한다면 그와 같은 주장은 현실을 무시하는 처사이며 잠재적으로 모든 선수들을 비도덕적인 인간으로 만드는 것과 같다.


현실적 스포츠상황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다. 전통적 스포츠윤리는 정정당당한 승리, 스포츠맨십, 페어플레이 등을 강조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상대를 속이는 행위라고 할 수 있는 태권도, 축구, 핸드볼, 농구 등에서 페인트모션은 비도덕적인 행위가 된다. 그러나 현실적 스포츠상황에서 이와 같은 행위는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태권도경기에서 페인트모션, 축구경기에서 파울을 유도하기 위한 과장된 제스처, 하키선수들의 폭력 등은 비도덕적 행위라기보다는 오히려 경기의 일부라는 인상을 준다. 현실적으로 페인트모션을 썼다고 비난을 받거나 제재를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규칙 위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관중들은 적절한 시기에 규칙을 위반한 선수들에게 박수갈채를 보내기도 한다. 물론 모든 규칙 위반에는 그에 상응하는 페널티가 부과되지만 그 이상의 도덕적 비난은 없다. 주지하다시피 경쟁적 스포츠종목들에서 일종의 속임수인 페인트모션은 승리하기 위한 기술의 주요 부분이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스포츠규칙 일반에 대한 절대적 준수를 강조하는 스포츠도덕은 비현실적이다.


한 번 더 강조하지만 전통적 도덕 정의는 스포츠의 도덕을 구별하지 않고 뭉뚱그려 다루었기 때문에 스포츠상황에서 도덕적으로 행위 하라는 요청은 준수하기 쉽지 않은 요청이 되었다. 필자는 여기서 스포츠의 작은 도덕과 큰 도덕의 구별, 즉 경기에서 위반이 어느 정도 용인될 수 있는 규칙과 결코 허용되어서는 안 되는 규칙의 구별을 제안하고자 한다. 위반이 어느 정도 용인될 수 있는 규칙은 스포츠경기에서 구체적인 규칙을 준수하는 일과 관련이 있다. 예컨대 축구경기에서 골키퍼를 제외하고 손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작은 도덕이다. 이렇듯 작은 도덕은 규칙의 존중이나 규칙에 대한 공정한 태도를 의미한다. 한편 경기에서 그 위반이 결코 용인되어서는 안 되는 큰 도덕은 경기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금지된 수단이나 물질을 사용하거나 승부조작에 개입하는 일과 관련된다. 도핑이나 승부조작 금지 요청에 대한 기대는 경기 상황에서의 경기규칙 준수 요청에 대한 기대보다 크기 때문에 전자를 큰 도덕이라고 했고, 후자를 작은 도덕이라고 했다.


도덕 커뮤니케이션은 존중과 무시라는 주도적 코드에 따라 작동하는데, 작은 도덕의 경우 이 코드가 적용되는 대상이 특정 행위 영역에 속한 인격에게만 국한되는 경향이 있지만 큰 도덕의 경우 전 인격과 관련이 된다. 쉽게 말해 한 선수가 작은 도덕을 위반했을 때, 예컨대 경기규칙을 어겼을 때 선수로서 그의 인격에만 파울, 경고, 퇴장 같은 제재가 가해지지만 큰 도덕을 위반했을 때는 선수이자 일반인으로서 그의 인격 전체에 선수자격박탈, 벌금, 사회적 비난, 법적 처벌 같은 제재가 가해진다. 도핑 금지 외에 승부조작 금지도 스포츠의 큰 도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스포츠도덕의 구별은 스포츠의 문제를 조금 더 현실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현재 스포츠에서 가장 논란거리가 되는 것은 큰 도덕의 위반이다. 특히 도핑과 승부조작이 여기에 해당한다. 앞에서 설명하였듯이 작은 도덕의 위반은 경기의 일부로 볼 수도 있다. 작은 도덕의 위반은 경기를 흥미롭게 만들어주기조차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작은 도덕의 위반은 크게 문제시될 것이 없다. 그러나 큰 도덕의 위반은 심각한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흔히 스포츠를 일컬어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한다. 영화나 연극, 소설은 이미 결론이 정해져 있다. 그러나 스포츠에서는 그렇지 않다. 이것이 스포츠를 매력적이게 만든다. 예측을 불허하는 결과, 한 순간에 뒤바뀐 승부는 관중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그러나 만일 승부가 사전에 조작된 것이라면, 승리가 속임수를 동원해서 얻은 것이라면 관중의 실망은 클 것이다. 그에 따라 그들의 스포츠에 대한 관심은 크게 반감될 것이다. 스포츠를 가장 매력적이게 만드는 요인이 사라지기 때문에 스포츠는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이유에서 스포츠단체들은 도핑이나 승부조작 같은 큰 도덕의 위반에 대해 매우 강경한 태도로 반응한다.


만일 우리가 실천해야만 할 도덕을 큰 도덕에만 국한하여 볼 경우에 우리에게 중요한 도덕실천이란 페인트모션을 하지 않거나 경기 중에 파울을 범하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승리하는 그런 행동의 실천에 대한 요구가 아니다. 선수들이 도핑을 하지 않게 만드는 일, 선수들이 승부조작의 유혹을 뿌리치고 여기에 가담하지 않게 만드는 일이 우리의 관건이다.

 

 

 

ⓒ 스포츠둥지

 

 

 

Comment +1

  • 이태구 2014.03.04 14:59 신고

    작은 도덕과 큰 도덕 인상적인 설명이네요. 학교현장에서 결국 스포츠맨십의 교육은 작은 도덕의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글 제미있게 보았습니다.

 

 

 

글/ 윤동일 (국방부)

 

 

               하나 뿐인 목숨을 걸고 하는 고대 검투사들의 ‘토너먼트(tournament)’나 중세 기사들의 마상창시합 ‘쥬스팅(jousting)’, 미국 서부 개척 당시 일대일의 ‘결투(duel)’도 있기는 했으나 일반적인 스포츠는 전장의 상황을 가정하더라도 생명을 걸지 않고, 서로의 힘과 체력 그리고 기예를 견주는 것으로 승부를 판가름해 보는 것이다. 무예의 실력을 규칙에 따라 간접적으로 견주어 보고 그 결과에 승복한다. 스포츠가 무예를 대신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간접적인 투쟁이기 때문에 무예처럼 곧이 곧대로 승복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여러 가지 규칙들을 정해 놓고 결과에 승복하도록 강요하게 되는데 그것이 스포츠맨십이다.

 

더 간단히 말하면 졌으면 졌다고 깨끗이 승복하고 물러나라는 말이다. 물론 무예에서는 그러한 용어가 필요치 않다. 왜냐하면 목숨은 하나 밖에 없고, 단판 승부이기 때문이다. 죽은 자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따라서 패장의 변명은 진 것보다 더 수치스러운 것으로 여겼다. 결국 스포츠에서 승패는 곧 생사와 직결되는 전쟁에서처럼 승복해야 하는 절대적 속성을 갖는다. 스포츠에서 절대승복 해야 것은 결과만이 아니다. 엄정한 규칙도 마찬가지다.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이변이라면 세계적인 톱스타들의 몰락을 들 수 있다. 매일 진행되는 경기의 일정을 알리는 팜플렛의 표지 모델은 그날 주요 경기의 우승후보가 표지모델로 등장하는데 많은 선수들이 고배를 마셔야 했다. 매스컴에서는 “데일리 프로그램의 저주”라고 불렀는데 첫날 남자 장대높이뛰기의 ‘스티브 후커’로부터 남자100미터의 ‘우사인 볼트’, 남자110미터허들의 ‘로블레스’ 그리고 여자장대높이뛰기의 ‘이신바예바’에 이르기까지 매일 표지모델로 올랐던 선수들이 줄줄이 떨어졌다. ‘라이트닝 볼트’로 불리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우사인 볼트는 새로 적용된 규칙 때문에 실격하여 경기조차 뛰지도 못했다. ‘부정출발’로 결승전에서 아예 제외되었다. 우리나라 김국영 선수도 마찬가지다. 번개처럼 빠른 그에게 기록상 대적할만한 상대도 없었는데 신기록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 찰라의 순간에 스타팅블록을 박차고 일어서는 바람에 실격되었다. 이전에는 두 번까지 부정출발(2 false starts)이 허용되었다가 워낙 경기가 지연되는 문제가 있어 규칙을 바꿔 2001년에는 한 번으로 줄었다. 한 선수가 부정출발하면 경고로 그치지만 다음엔 그 어떤 선수의 부정출발도 허용되지 않는다(straight red rule). 그러자 스타트 느린 선수들이 의도적으로 스타트가 빠른 선수들에게 심리적 압박을 주기 위해 부정출발을 악용하는 사례가 발생하자 다시 규칙을 개정하게 되었다.

 

2010년부턴 단 한 번이라도 부정출발을 하는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 ‘즉시 실격 규칙(instant dis-qualification rule)’을 도입하였다. 물론 이 규칙은 선수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했고, 경기력 향상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대구 대회 이후 폐지되었다. 남자 110미터 허들의 강력한 우승후보 쿠바의 로블레스는 결승점을 통과한 뒤 멋진 세러모니를 했지만 허들을 넘으면서 라이벌 중국 류상을 방해한 것으로 판정되어 금메달을 박탈당했다. 허들경기는 1미터가 조금 넘는 허들(정확한 허들의 높이는 1.067미터이다.)을 넘어뜨려도 규칙위반은 아니다. 그러나 허들에 닿는다면 달리는 순간 속도는 떨어지기 마련이다. 특히, 리듬과 균형을 잃어 달리기 연속된 템포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회복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 대부분의 트랙경기에 적용되는 규칙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경쟁자 보다 앞서기 위해 상대를 밀치거나 진로를 방해하는 행위를 실격으로 규정하고 있다. 로블레스의 금메달 박탈은 소위 ‘rule 163.2’로 불리는 규칙에 적용된 것이다.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100미터에서 단 한 번의 부정출발로 실격된 우사인 볼트와 김영국 선수는 경기에 출전조차 하지 못했다.


 

스포츠에는 경기규칙 말고도 도핑(doping)으로 알려진 약물복용 금지 규정도 준수해야 한다. 도핑은 운동선수가 일시적으로 경기 능력을 높이기 위하여 흥분제 · 호르몬제 등의 약물을 복용하는 것으로 건강을 해치고 스포츠 정신에도 위배되기 때문에 각종 경기연맹에서 금지하고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남자 100미터 경기는 미국의 인간탄환 ‘칼 루이스’와 캐나다의 마하인간 ‘벤 존슨’의 세기의 대결로 세계적인 관심이 집중되었다. 결승전에서는 벤 존슨이 9.79초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내며 우승하였으나 경기 종료 후 실시된 도핑테스트에서 금지약물을 복용한 사실이 드러나 금메달이 박탈되었고, 2년간 국제대회 출전 자격이 정지되었으나 이후에도 약물에 의존한 것이 밝혀지면서 더 이상 그의 질주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사실 올림픽사(史)에서 있어 금지약물 복용에 대한 규제는 예상한 것 보단 그 역사가 오랜 편이다. 1960년 로마올림픽 사이클 100km 도로경기에서 덴마크의 ‘크루트 젠센’이 각성제 암페타민을 과다 복용하여 사상 최초로 약물 중독에 의한 사망사고가 발생하였다. 이 충격으로 덴마크 사이클 선수단은 남은 경기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복귀하였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금지약물을 규정하고, 이를 복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1972년 삿포로동계올림픽부터 도핑테스트를 실시하였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미국의 여성육상 스타 메리언 존스는 3관왕에 올랐지만 약물복용으로 메달이 박탈되었고, 법정 위증 혐의로 수감되기까지 했으며 2008년 베이징올림픽 공기권총에서 은‧동메달을 딴 북한의 김정수 선수 역시 메달을 반납해야 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100미터 결승에서 제일 먼저 결승점을 통과한 벤 존슨은 경기 후 도핑테스트에서 금지약물 복용으로 실격 처리되었다.

2004년 올림픽 우승과 1999∼2005년까지 투르드프랑스에서 7회 연속 우승한 랜스 암스트롱은 오랜 법정공방 끝에 모든 성적이 박탈되었다.

 

과학의 발전과 함께 선수들의 도핑 추세는 날로 지능화되어 가고 있고, 반대로 이를 밝히고자 하는 도핑테스트 역시 올림픽이 회를 거듭할수록 횟수와 범위가 함께 증가하는 추세다. 2013년 초부터 세계 스포츠인 아니 세계인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준 사건들이 이어졌다. 2월 중순, 여자친구 살해 혐의로 기소된 남아공 출신 의족 스프린터 피스토리우스 소식이 전해졌는데 개인적으로 이보다 더 충격적인 사건은 암과 투병하면서도 ‘사이클 황제’로 칭송되는 전설적인 체육인의 몰락이었다. 이 사건은 세계적인 프로 로드 사이클 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le Tour de France)’에서 1999년부터 2005년까지 7년 동안 역대 최다 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는 랜스 암스트롱(Lance Armstrong)이 그동안 제기된 금지약물 복용을 시인하면서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투르 드 프랑스는 한 신문기자의 아이디어로 1903년에 시작하여 100년이 넘은 유서 깊은 대회로 프랑스 전역을 일주해 우승자를 가리는데 일부 경기는 이탈리아, 독일 심지어 영국이나 아일랜드에서도 거행될 정도로 인기 있는 대회이다. 무려 3천km 이상의 거리를 시간당 평균 30∼40km의 속도로 3주 동안이나 달려야 하다 보니 구간 중 많은 오르막은 물론이고, 산악을 넘어야 하는 등 고통과 인내가 요구되어 참가자의 15∼20%가 포기하는 극한의 스포츠로 알려져 있다. 암스트롱은 1996년 고환암과 세포종양의 전이로 수술과 재활을 통해 심각한 고통을 이겨내고, 1999년부터 출전한 투르 드 프랑스에서 그가 이룬 위대한 업적은 2010년부터 팀 동료의 고발로 제기된 의혹은 2012년 8월 법정공방을 포기했고, 그 결과 1998년 8월부터 대회에서 세운 모든 성적이 박탈되었으며 미국반도핑기구(USADA)에서도 영구 제명되었다.

 

 

 

ⓒ 스포츠둥지

 

 

 

 

Comment +4

 

 

 

글/송형석(계명대학교 교수)

 

 

           근대올림픽이 시작된 이후 경쟁스포츠는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꾸준하게 발전해왔으며, 현대인의 여가생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스포츠는 이 과정에서 아마추어리즘, 스포츠맨십, 페어플레이 같은 가치들을 표방함으로써 사회의 제 영역들로부터 긍정적 평가를 받았으며, 이에 힘입어 언론과 방송 같은 대중매체, 정치, 경제, 학문, 교육 등의 사회영역들과도 튼튼한 연결망을 형성하였고, 이 영역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사회의 필수적인 부분이 되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부터 경쟁스포츠는 그 동안 지녀왔던 긍정적 이미지를 점차 상실하고 있으며, 비판적 학자들과 진보적 언론으로부터 온갖 비리와 기만의 온상으로 지목되고 있고, 다른 사회영역들과 맺었던 협력적 관계도 점차 느슨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경쟁스포츠는 사회의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밀려날 우려가 있으며, 대중과 사회영역들로부터 외면당할 가능성이 높다.


경쟁스포츠가 각종 비리와 기만의 온상으로 지목받고 있는 중요한 이유는 승부조작과 도핑 같은 일탈 행위 때문이다. 특히 도핑은 그동안 스포츠가 지녀왔던 공정하고 건강한 이미지를 한 순간에 무너뜨림으로써 경쟁스포츠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호의를 크게 떨어뜨리고 있다. 도핑스캔들이 일간지와 TV 같은 대중매체를 통해 빈번하게 터져 나오면서 도핑은 우연적이며 일회적인 일탈형식이라는 대중의 믿음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신문구독자들이나 TV시청자들은 이와 같은 깨달음을 통해 공정함이나 건강 같은 긍정적 가치들과 결부되었던 경쟁스포츠를 기만, 약물, 질병, 죽음 같은 부정적 가치들과 결부시켜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여 스포츠의 긍정적 이미지를 자사의 상품 광고에 이용해왔던 기업들은 스포츠에 대한 계속적인 재정지원을 주저하고 있으며, 스포츠의 재현 기능에 기대어 평판과 지지율을 상승시키려고 노력해왔던 정치단체들 역시 스포츠에 무심해지고 있고, 교육 행정가들은 학교체육수업에서 ‘비-교육적’ 경쟁스포츠를 배제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IOC는 이와 같은 위기적 상황을 벗어나고자 도핑과의 전쟁을 선포했으며, 학계, 법조계, 정계, 대중매체 등 사회의 여러 영역들과 협력하여 경쟁스포츠에서 도핑을 근절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그 동안 기울여진 도핑 방지노력은 그다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도핑혐의가 인정된 사이클 황제 랜스 암스트롱

 

IOC가 도핑과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WADA가 창설되었고, 도핑검사기술은 획기적으로 발전했으며, 국가별로 운동선수들에 대한 반-도핑 교육도 강화되었고, 도핑을 자행한 선수들에 대한 처벌 규정도 한층 엄격해졌다. 그러나 도핑적발건수는 오히려 해를 거듭할수록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현재 도핑은 전문적인 선수들의 영역을 넘어서 아마추어선수들과 스포츠동호인들에게까지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다. 지금까지 기울여온 도핑방지노력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동안 학계는 도핑의 원인을 분석하고 방지대책을 마련하는 일과 관련하여 윤리적 차원과 법적 차원에 국한하여 논의를 진행해왔다. 윤리적 차원의 논의는 도핑의 원인을 운동선수 또는 경쟁스포츠관련자 개인의 윤리 의식 결핍에서 찾고, 이들의 윤리 의식을 강화시키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여기서 윤리 의식의 강화는 주로 반-도핑 교육과 반-도핑 홍보를 통해 이루어졌다. 한편 법적 차원의 논의는 운동선수 내부의 감시자, 즉 윤리의식이나 스포츠맨십 같은 운동선수의 양심만으로는 도핑 근절이 어렵다는 판단 하에서 민법이나 형법에 의한 처벌 같은 외적 제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한다고 주장해왔다. 윤리적 차원의 논의와 법적 차원의 논의는 서로 뉘앙스는 다르지만 도핑의 원인과 책임을 철저하게 운동선수나 코치, 스포츠단체 관련자, 스포츠의학자 같은 개인에게 귀속시키는 개인화전략을 구사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개인화전략은 문제의 소재와 책임 전가를 분명하게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이에 근거하여 문제 해결 방법을 쉽게 도출해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유용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복잡하게 얽혀있는 도핑현상을 적절하게 이해하고, 그것에 대한 효과적 방지 대책을 세우기 위한 전략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개인화전략이 가정하고 있는 것처럼 경쟁스포츠의 도핑은 쉽게 이해될 수 있거나 쉽게 설명될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도핑은 다양한 관점들과 이해관계가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매우 복잡한 현상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당신이 축구에 대해 …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가정해보자. … 이제 당신은 … 한 스타디움의 관중석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 주심을 제외하고 모든 선수가 당신에게만 보이지 않는 마법의 외투를 입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 당신은 무엇을 보고 있는가? 검은색 반바지 차림으로 잔디밭을 이리저리 분주하게 뛰어다니며, 노란색 카드를 공중에서 휘두르기도 하고, 호루라기를 부르고, 대화를 하기도 하고(혼잣말?), 욕설을 내뱉고, 주의를 주고, 얼굴을 찡그리고 거친 몸짓을 하는 남자를 보며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는가? … 당신은 그가 나사가 하나 풀리고, 신진대사가 불균형하거나, 또는 정신적으로 뭔가 혼란스러운 사람이라고 추측할 것이다”(박현용 역, 2010)

 

위의 예는 개인의 행위가 심리적 과정보다는 사회적 맥락을 통해서 더 잘 설명될 수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기존의 윤리학 및 법학적 논의는 도핑 같은 일탈행위가 이루어지는 복잡한 사회적 맥락을 행위자 개인의 자유의지에 따른 결정이자 이기적인 동기로 감축시켜 설명한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물론 기존의 논의 가운데는 도핑 같은 일탈행위의 원인으로 경쟁스포츠의 구조적 특성인 승리지상주의를 지목하고 해법으로 그것의 약화 또는 제거를 제안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관점 역시 경쟁스포츠와 연결되어 있는 더 넓은 사회적 맥락들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이해를 돕기 위해 앞의 예를 조금 더 진행시켜보자. 이제 선수들을 가렸던 투명망토가 벗겨졌다고 상상해보자. 이제 당신은 심판의 행동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즉 그가 왜 뛰어다니고 소리치고 인상을 쓰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심판이 특정 팀에게만 유리하게 판정을 내린다는 것을 깨달게 되었다. 그리고 이에 대해 분노하면서 그가 정신이 나갔거나 실수했을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판정실수가 반복될 경우 또 다시 그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렵게 될 것이며, 그에 대해 화를 내거나 자질을 탓할 것이다. 그러나 다음 날 언론 보도를 통해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던 그의 통장에 일주일전 거액의 돈이 입금되었으며, 돈의 출처는 그가 유리하게 판정했던 팀을 후원하는 기업이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면 의심스러웠던 그의 행동들이 이해가 될 것이다.

 

이 예가 말해주고 있듯이 개인의 행동은 행동이 이루어지는 체계의 기대구조에 의해 영향을 받을 뿐만 아니라 그 체계와 구조적으로 연동되어 있는 다른 사회체계(위 예에서는 경제)의 기대구조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도핑 같은 일탈행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핑을 자행한 개별 행위자의 동기뿐만 아니라, 그와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 여러 사회체계들의 관계가 폭 넓게 분석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사회적 맥락들을 충분하게 고려하지 않고 제시된 도핑의 원인 분석과 방지 대책은 설명력이 빈약할 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효과를 거두기도 어렵다. 도핑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개인화전략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금지조처 이외에도 경쟁스포츠와 직간접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사회체계들의 기대구조, 상호침투, 교란 등에 대한 폭넓고 심도 있는 분석이 요구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체계들 상호간의 조정과 간섭 전략을 개발해내는 일이 필요하다.

 

 

ⓒ 스포츠둥지

 

 

 

박현용 역(2010). 축구의 미학: 세계 석학들 축구를 논하다. 초록물고기.

 

 

 

 

Comment +21

  • 이전 댓글 더보기
  • 박준한 2013.05.26 19:25 신고

    사람마다 생각하는것이 다르겠지만 이글 하나를 읽으면서도 여러가지 생각이듭니다.
    그것은과연 도핑이 나쁜것인가 괜찮을것도 같은데 라는 생각입니다.
    요즘에 성폭행범이 활개를 치고 있는데 반해 법적인 제제를 가해도 하루에 하나씩 꼭 기사를 보게됩니다.모든 법은 불법을 막기위한 해결책이라고 하지만 성폭행범들에게 한시간 강의를 해서 '성폭행을 줄일수 있을것이다'라는 생각은 크게 와닫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형시켜야한다. 종신형이다' 라고 하지만 현재 법으로는 이를 막을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의 사고방식, 윤리적, 도덕적 책임을 법으로 막는 다는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인것같습니다. 물론 조금이나마 도움은 되겠지만 말입니다. 이런것도 생각을 해봅니다. 한선수당 도핑횟수를 제한하는 겁니다. 아예 못하게 하지말고 횟수에 제한을 둔다든지 모든선수들에게 도핑을 허용한다든지 다른 방법을 모색해보는것이 좋겠지만 가장중요한것은 현재 사회에서 추구하는 실태에서 선수들에게 윤리의식 굘핍을 보안하여 도핑을 막을 방법을 찾아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쉽게 없애는 방법중하나는 스포츠를 그냥 즐기고 스포츠경쟁사회를 없앤다면 사라질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 안중섭 2013.05.27 18:54 신고

    안녕하십니까 대학원 2학기차 안중섭입니다.
    이 글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스포츠에 있어 악의 축인 도핑에 대해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했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통해서 도핑과 같은 일탈행위가 단순히 개별 행위자의 동기에 의해 자행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한 명의 선수 혹은 심판이 도핑과 같은 일탈행위를 저지르는 상황 그 뒤에는 아주 복잡한 사회체계(사회적 맥락)가 뒷바침되고 있으며, 이를 막기 위해서는 단순히 윤리나 법과 같은 체제적인 부분만을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도핑에 관한 문제는 선수 개개인을 떠나 그 선수의 뒤에 있는 기업 혹은 사회 전체를 아울러 보는 눈을 통해 그에 대한 합당한 처벌 혹은 대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도핑을 자행한 선수의 잘못뿐만 아니라 그 선수가 왜 도핑이라는 악을 선택하게 되었는지를 아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김대원 2013.05.27 22:58 신고

    안녕하십니까. 1학기생 김대원입니다.
    경쟁스포츠가 각종 비리와 기만의 온상으로 지목받고 있는 중요한 이유는 승부조작과 도핑 같은 일탈 행위 때문이다.
    경쟁스포츠의 도핑은 쉽게 이해될 수 있거나 쉽게 설명될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도핑은 다양한 관점들과 이해관계가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매우 복잡한 현상이다.
    도핑 같은 일탈행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핑을 자행한 개별 행위자의 동기뿐만 아니라, 그와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 여러 사회체계들의 관계가 폭 넓게 분석되어야 한다.
    도핑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개인화전략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금지조처 이외에도 경쟁스포츠와 직간접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사회체계들의 기대구조, 상호침투, 교란 등에 대한 폭넓고 심도 있는 분석이 요구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체계들 상호간의 조정과 간섭 전략을 개발해내는 일이 필요하다.


    저 역시 도핑과 일탈행위의 원인과 책임은 개인과 사회 구조 두 곳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윤리적 차원의 논의와 법적 차원의 논의의 무게를 좀 더 높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프로선수들은 2개월에 한번씩 무조건적으로 도핑검사나 약물검사를 주기적으로 받거나, 간접적 내용의 설문지로 성향테스트를 주기적으로 하는것, 법적으로는 벌금과 파직이 아닌 구치소로 형벌을 받는것으로 무게를 주는것입니다.

    그리고, 개인화전략을 기반으로 한다고 하셨는데, 전 개인이 왜 했는지는 궁금해하지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도핑과 승부조작을 한 이유의 최종목적은 최고의 자리를 원하거나 경제적인 문제 때문 일것입니다.
    선수, 심판, 감독 누구이든 이유없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도핑을 하거나 승부조작을 한 순간 뭐든 파직을 시켜야된다고 생각합니다. 각자의 개인적인 사정은 개인의 것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포츠상에서 안된다는 걸 알면서 한다는 것은 다양한 사회체계의 성격과 스포츠맨십, 아마추어리즘 정신이 없으므로 그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경쟁스포츠와 직간접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사회체계들의 기대구조, 상호침투, 교란 등 현재까지 도핑과 관련된 사회체계들의 사건들을 알고 싶고, 체계들 상호간의 조정과 간섭 전략을 개발해내는 일을 진행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 이병규 2013.05.28 18:14 신고

    도핑은 스포츠라는 작은 사회속에서 발생하는 가치, 규범등에 위반적인 행위입니다.
    스포츠에서의 도핑은 공정성이나 선수의 건강, 그리고 그것을 보는 타인들까지도 피해를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스포츠라는 작은 사회속에서 윤리와 법만으로 도핑을 막는다는것은 교실에 떠드는 학생에게 벌을 주는것과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학생에게 벌을 준다면 잠시는 조용할지 모르지만 떠드는 행위를 계속 통제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것은 학생의 사고의 변화, 즉 스포츠라는 사회자체의 가치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거기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며, 스포츠를 가치중심의 문화로 이끌어 나가려면 사회적인 정책과 제도, 그리고 신념같은 부분이 앞서야 할 것이며, 개인의 의지와 가치관들은 많은 교육이 바탕이 되어야 도핑을 예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최승구 2013.05.28 23:27 신고

    안녕하십니까 3학기생 최승구 입니다.
    개인적인 견해로서 저는 꼭 도핑이 나쁘다라고 생각하기에는 부족하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서로 이익만을 추구하게 되는 상황으로서 나쁘다라고 본다면 여태 밝혀지지 않는 불법적인 부분들로 인해 얻은 이익들은 다 무효가 되고 인정하지않아야 되는게 아닌가 합니다.
    이 글을 읽으며 "악법도 법이다." 소크라테스의 명언이 기억이 납니다.
    주관적으로 보았을 때 도핑은 매우 비신사적인 행위지만, 이것 또한 알려지지 않는다면 개인과 사회에 크나큰 이익과 홍보 및 엄청난 흑자 창출을 이끌 것이라 봅니다.
    도핑방지, 윤리, 법안 등 부정적인 시선들로마 보는게 아니라 긍정적인 시선들로 바라본다면, 언젠가는 그 긍정적인 부분으로 인해 비신사적이고 비도덕적인 행위가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라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 마수현 2013.05.29 00:24 신고

    안녕하십니까?

    1학기생 마수현입니다.

    이번게 게재된 교수님의 글을 읽고 느낀 점은 어떤 현상을 관찰할 때 지엽적으로 보

    지 말고 그 현상 뒤에 숨겨진 배경속에서 본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승부조작과 도핑 같은 일탈행위의 책임을 개인에게만 귀속시킨다

    는 것은 우리 모두가 반성해야 되는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화 전략이 계속 되는 한 악순환은 반복될 것이며,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경쟁

    스포츠의 뒤에 숨어 있는 배경을 분석하여 그에 맞는 전략을 개발해야 될 것입니다.

  • 정성원 2013.05.29 10:49 신고

    안녕하십니까. 1학기생 정성원입니다.
    "윤리와 법만으로 도핑 방지는 어렵다!"라는 본문의 글을 읽고 저 역시 도핑문제는 도핑을 한 개인의 선수에게 원인과 책임이 있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아니다 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뒤에는 본문에서 본 축구심판의 승부조작 또는 자사의 이윤을 남기기 위한 기업, 스포츠를 계속적으로 재정지원을 해주는 지지자들을 통해서 승부조작과 도핑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불법을 막기위해 존재하는 법적, 윤리적 차원의 논리를 조금 더 강력하게 대응하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도핑을 해서는 안된다고 더욱 본인들이 잘 알고 있는 선수들을 법적으로 강력하게 대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왜 도핑을 하게 되었는지 그 뒤의 배경을 정확하게 알고 대처를 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경쟁스포츠로 인해서 스포츠의 스포츠맨십, 페어플레이, 아마추어리즘과 같은 가치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그리고 스포츠에서 오로지 일등만 인정해주는 그런 사회적인 인식을 개선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조금더 긍정적인 마인드와 사고를 통해서 선수들이 눈치를 보지않고 편안하게 운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지금 모든 사람들이 해야 할 과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 이재민 2013.05.29 18:47 신고

    근대 올림픽 이후에서 볼 수 있듯이 스포츠는 스포츠맨쉽, 페어플레이등으로 인하여
    긍정적 효과를 통해 사회의 여러 영역과 연계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점들을 잊은채
    단순히 개인의 기록, 명예, 돈 등을 위해 도핑을 하게 됩니다. 물론 개인의 잘못과 사회체계적, 법등의 문제점도 있지만 선수들의 윤리의식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핑을 통해 개인의 이익을 만들 순 있지만 차 후에 문제가 발생하면
    개인의 처벌 및 몰락뿐만아니라 스포츠계 전체에 많은 악 영향을 가지고 오게 됩니다.
    물론 사회에서 경쟁스포츠를 하는 선수들은 어떠한 방법을 써서라도 좋은 성적을 내야만 한다는 인식을 가지게 한거도 있지만 선수들의 의식 부족이 가장 크다고 생각됩니다. 앞으로 윤리와 법 강화 뿐만아니라 스포츠와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 사회체계 등다각적인 면에서 도핑을 줄 일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 우동혁 2013.05.29 23:59 신고

    안녕하십니까! 1학기생 우동혁입니다.
    저는 승부조작과 도핑문제에 대한 뉴스를 항상 그 선수에 대한 원인, 책임, 처벌에 대한 보도만 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 선수에게만 고정관념으로 집중을 하였었습니다. 솔직히 우리가 알고있는 것은 이 선수의 스타성으로 선수만을 알고있고 이 선수의
    에이전트, 연관된 기업, 지원을 해주는 지지자들에 대해서는 모릅니다. 그래서 이 선수가 얼마나 처벌을 받고 있는지, 얼마나 반성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만 볼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법적 처벌 규정이 너무 약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선수나, 연관된 지지자들 및 기업들에게 정말 껌값에 지나지 않는 벌금과 금방 처리할 수 있는 처벌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돈만 내면 끝인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서로 연관된 사회구조체계들이 정말 긍정적 마인드와 경쟁스포츠에서 좋은 것들만 생겨나고 발전될 수 있는 먼가 강력한 처벌규정과 대응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업, 지지자들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되고 그들의 손에 놀아나는 선수들이 아닌 경쟁스포츠에서 정정당당히 승복할 줄 아는 스포츠세계가 만들어 졌으면 좋겠습니다.

  • 정현도 2013.05.30 00:11 신고

    안녕하세요? 저는 4학기생 정현도입니다.
    교수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위의 글 중에서 "개인의 행동은 행동이 이루어지는 체계의 기대구조에 의해 영향을 받을 뿐만 아니라 그 체계와 구조적으로 연동되어 있는 다른 사회체계의 기대구조에서도 영향을 받는다."는 말처럼 이러한 복잡한 관계속에서 문제의 본질, 배경과 이유 관계들이 폭 넓게 이해가 되어야 비로소 문제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개인적인 측면에서 도핑을 한 선수만을 처벌하고 넓은 사회적 맥락들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해결하려 든다면 이같은 현상들이 지속될 것입니다.

    충분한 이해와 노력하에서 선수 자신 스스로의 올바른 윤리판단이 같이 선다면 도핑을 막을 수 있는 최선의 길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올바른 사회적인 체계가 확립될 수 있도록 개인과 사회의 복잡한 관계를 먼저 이해하고 접근한다면 건강한 경쟁스포츠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 강민성 2013.05.30 00:51 신고

    안녕하십니까 1학기생 강민성입니다.

    예전 스포츠는 현대인의 여가생활이라든지 페어플레이, 스포츠맨십 등 긍정적인 평가로 여러 분야 영역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사회의 필수적인 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인 경쟁스포츠는 각종 비리, 승부조작, 도핑 같은 일탈 행위로 스포츠의 건강한 이미지가 퇴색되고 대중의 믿음도 무너져 내렸습니다.
    아무리 윤리 의식이 좋은 선수라 할지라도 도핑은 좋은 성적을 내야하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선수들에겐 ‘악마의 속삭임’처럼 달콤한 유혹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입니다.
    교수님의 글을 읽기 전에는 도핑은 좋은 성적을 내고 싶은 선수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본문 글을 읽고 도핑 같은 일탈행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핑을 자행한 개별 행위자의 동기부여가 아니라 그와 연결되어있는 여러 사회체계들의 관계가 폭 넓게 분석되어야 한다고 생각이 듭니다.
    경쟁스포츠로 인해 선수들은 일등을 할 수 밖에 없는 심적 부담감이 더할 것입니다.
    더 이상 승부조작과 도핑 같은 일탈행위를 한 개인선수의 잘못으로만 보지 말고, 경쟁 스포츠와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되어있는 코칭스태프, 스포츠 관련자, 기업 등이 어떻게 관련 되었는지 파악하고 그에 대한 대책이나 처벌을 해야 승부조작이나 도핑이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 개인에 잘못으로만 치부하게 되면 그 악순환은 계속반복 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 백상우 2013.05.30 10:51 신고

    안녕하십니까 1학기생 백상우 입니다.
    경쟁스포츠가 전 세계로 확산되어 발전함에 따라 현대인들에게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그로인해 대중매체 및 사회적 시선에 의해 경쟁이라는 스포츠요소를 갖춘 경쟁스포츠의 본질과 목적이 점차 위배되었고 현대의 스포츠는 건강함, 공정함, 스포츠맨십과 같은 긍정적 이미지와 결합되어 있지만, 그 속에는 도핑과 승부조작 이라는 현대스포츠의 가치를 훼손시키는 범죄행위가 연결되어 있다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도 도핑을 하는 선수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위 글을 읽고 난 후에는 그 뒤로 배경이 되고 있는 사회적 시선과 끊임없이 자신을 재촉하여 더 많은 성과를 내도록 강제하는 성과사회의 문제가 가장 큰 문제 같았습니다. 위 글에서 알 수 있듯이 도핑 같은 일탈행위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선수들이 도핑을 하겠다는 동기뿐만 아니라, 그와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 여러 사회체계들의 관계를 폭 넓게 분석을 하여 도핑의 원인과 방지 대책을 세워야 조금이나마 도핑이라는 스포츠의 가치를 훼손시키는 범죄행위가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이형섭 2013.05.30 16:03 신고

    안녕하십니까 1학기생 이형섭입니다. 경쟁스포츠가 발저함에따라 현대인들의 여가생활에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스포츠가 그 욕구를 충족시켜왔다. 스포츠의 기본바탕인 페어플레이 스포츠맨쉽과 같은 긍정적인 요인들이 스포츠 발전에 큰 밑거름이 되엇다. 그러면서 대중매채또한 스포츠에대한 관심이 증가하여서 더욱 스포츠가 인기있어졌다. 하지만 경쟁스포츠에는 도핑과 승부조작이라는 어두운 측면이 있다는것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도핑과 승부조작은 범죄를 일으키는 개인에게도 분명한 문제가 있지만 더 큰범위로는 그 선수나 감도들이 속해있는 집단의 이해관계를 생각해보지 않을수 없다. 경쟁스포츠의 목표인 승리가 중요시되면서 이기기위한 방법으로 약물복용이나 승부조작들을 하게된 것이라고 볼수있다. 이것들을 개인이나 스포츠 집단의 도덕적문제로만 여겨서는 안되고 지금 사회가 흘러가는 방향과 또 그 승부를 지켜보는 우리의 자세에서도 반성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도핑과 승부조작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선수 나 감독 개인의 도덕적 가치관확립도 중요하지만 승패만을 중요시 여기는 스포츠체계와 성과위주로 선수나 감독을 판단하는 관점을 함께 변화시켜야만 도핑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김상협 2013.05.30 16:26 신고

    안녕 하십니까 1학시생 김상협 입니다.
    교수님 글 잘읽어습니다.
    승부조작과 도핑을 나쁘게 보고있는 사람중 한사람 입니다.
    하지만 저는 도핑 및 승부조작한 소속단체가 나쁘지만 그보다더 매체(방송&신문)가 더 나쁜것 같습니다.
    이런한 매체는 한사건이 나오면 좋은 내용은 작게 적고 나쁜쪽으로 더 부각 시켜서
    더 악질처럼 만드는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매체가 간섭하고 비판적으로 다가오면 이문제를 해결할수 없다고 봅니다.
    사람들은 좋은것보다 나쁜걸 먼저 습득 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예를들면 외국인 들인 처음 배우는 한국말이 욕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외국인들이 바라보는 욕이 체음에는 재미있고 신기해서 먼저 배우지만 나중에는 이게 안좋은것인지 알고 이해하지만 그래도 습관 처람 사용을 합니다.
    이처럼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시작을 했다가 나중에는 버른 처럼 행동을 하는데 이게 누가 하지말라고 하면 더하고싶다는(청개구리)성격이 큰게 작용을 하는것 같습니다.
    협회나 단체에서 교육을 하고있지만 매체가 조금 더 다른 시각으로 보고 좋은 쪽으로 도와주면 더크고 좋게 효과가 있을것 같습니다.

  • 양세정 2013.05.30 17:11 신고

    안녕하십니까?
    양세정입니다.
    교수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도핑은 개인의 윤리의식에 가장 큰 문제점을 두고 있지 않나 생각했는데 이 글을 읽고 개인의 윤리의식 뿐만 아니라 사회체계와의 관계, 작게는 개인의 사생활 문제까지 관여되어 있다는것을 알게되었습니다. 보통 선수들의 도핑이 확인되고 문제로 떠오르면 사람들의 질타는 고스란히 선수들의 몫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그 속을 보면 오로지 선수 개인의 잘못된 판단뿐 아니라 그 선수가 속해있는 팀과 그 팀의 스폰서가 깊숙히 관여되어 있다는 겁니다. 도핑이라는 문제가 불거져 나올 때마다 선수 개인의 양심이나 가치관만을 문제 삼는것이 아니라 그 뒤의 큰 배경들의 문제를 하나씩 끄집어 내어 해결하고 교육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 서정학 2013.05.30 17:34 신고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1학기생 서정학입니다.
    교수님 글을 잘 읽었습니다. 저도 교수님의 의견처럼 도핑과 승부조작으로 인해서
    지금의 스포츠는 많은 이미지 실추와, 대중에서 많은 실망을 안겨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로 인해 대중에게 외면을 받게 되면, 기업에서의 스폰서쉽도 끊어지게 될것이고, 그렇게 되면 스포츠계의 어려움이 많아질것 같아서 걱정이 앞섭니다.
    그리고 IOC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도핑이 줄지 않고 늘어나는것은, 교수님 말씀처럼 개인화 전력을 기반으로 해서 보다 폭 넓은 방법으로 다가가야할것 같습니다.
    먼저 경쟁스포츠로 인한 선수가 처해진 상황과, 직간접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사회체계들의 기대구조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기울려야할것 같습니다. 이런 사회적 흐름과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다면, 도핑을 하는 선수는 없어지지 않을꺼 같습니다. 그리고 도핑 뿐 아니라 승부조작같은 경우는 선수혼자만의 문제라기 보다는 감독 혹은 팀 전제의 문제가 될수 있고, 함께 고민해야될 문제 인거 같습니다.

  • 허민지 2013.05.30 17:45 신고

    안녕하십니까 1학기생 허민지입니다.

    교수님의 글을 읽으며, 이때까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들을 다른 방향으로 돌아볼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저도 처음 도핑이라는 부분을 접했을 때 당연히 불법적인 것이며, 선수의 과욕으로 발생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글을 읽고 다른 방향으로 접근해 보았을 때 그 선수는 왜 그런 욕심이 생겨나고 불법적이며 자신의 몸을 망치는 행위까지 해야 했을지 그 과정에는 물질만능주의와 승리만이 목표가 되는 메달의 색깔에만 취중되는 사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핑이라는 행위가 단순히 개인의 불법적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의 구조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페어플레이, 스포츠맨쉽, 건강 등 스포츠를 접했을 때 떠오르는 대표적 이미지들이 사회의 기대구조로 인해 부정적으로 변화되어 가는 부분이 안타깝습니다.
    이 문제를 법이라는 도구로 단순히 개인에게 가해지는 처벌로 해결해 나갈 수 있기 보다는 성과주의사회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최규창 2013.05.30 17:49 신고

    안녕하십니까 1학기생 최규창입니다.

    항상 교수님의 글을 읽으며 모든 글의 내용들이 겉보기만이 아닌 한번 더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도핑이 개인만의 이해관계가 아닌 여러 복잡한 관계가 있다는 것에 대해 잠깐 부정적인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도핑을 하게 된 이유는 자신의 승리를 목표로한 것 이기에 지는 경기를 위해 도핑을 하는 선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경쟁적인 사회 구조와 함께 승부조작을 부추기는 주변의 환경과 분위기가 먼저 완화 되면서 분위기를 바꿔나가는 것이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도핑, 승부조작 등 선수 개인과 경기게 개입된 문제만이 아닌 사회적인 면에서 큰 틀안에서 다뤄야 할 문제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조성우 2013.05.30 18:00 신고

    안녕하십니까 3학기생 조성우 입니다.

    항상 사람들은 도핑이라고 하면 나쁜것이다, 그 선수는 추방 당해야 된다고 생각들을 하고있습니다. 저 또한 그런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교수님 글을 읽고 난 후 그 선수만의 잘못이 아닌 성과주의라는 사회적 측면으로 인해 선수 스폰서나 매스컴 등 에서 무언의 압박이 개입이 됐는지를 먼저 찾고 그 해결방안을 마련을 해야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이런 악순환 들이 반복될것이고 도핑 이란 약물복용을 계속 할수밖에 없는 상황이 초래할것입니다.

  • 박병준 2013.06.01 01:07 신고

    안녕하십니까. 체육교육전공 1학기생 박병준입니다.

    이번 주제의 글을 읽고 나서 도핑에 대하여 다시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습니다.
    먼저 스포츠에서 선수들은 왜 도핑을 할까 생각해봤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도핑은 운동선수들에게 마지막 수단이 아닌가 생각해보았습니다.
    인간은 끝 없는 노력을 해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수들은 그 한계 에서 도핑이라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 하고 약물복용 또는 투여하여 자신의 신체적 한계 능력을 뛰어 넘어 스포츠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선수들은 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 스포츠가 지녀왔던 공정하고 건강한 이미지를 한 순간에 무너뜨리고 경쟁스포츠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호의를 크게 떨어뜨리고 있을까 그이유는 바로 현재의 사회와 대중매체 두가지가 선수들을 도핑의 유혹에 빠져들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뭐든지 1등만 인정받고 1등만이 스포츠 세계에서 살아 나갈 수 있습니다. 2등선수, 3등선수는 인정 받지못하는 것이 현실 입니다.
    이러한 사회와 대중매체들이 변화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전세계 스포츠 에서는 도핑이 사라 질 수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스포츠정신에서 도핑은 분명 잘못되고 올바르지않지만, 먼저 우리의 사회와 대중매체의 변화가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송형석(계명대학교 교수)

 

 

             2011년 7월 한 법학도는 스포츠둥지에 투고한 글 「도핑과 lex sportiva(스포츠법률) 흑과 백」에서 “자정능력이 없는 스포츠의 불공정함은 외부의 메스가 필요하다”고 썼다. 이 법학도에 따르면 사람들은 스포츠가 필연의 영역(공적 영역)이 아니라 자유의 영역(사적 영역)에 속해 있기 때문에 스포츠세계에서는 사적 자치를 우선시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사적 자치란 경기장에서 일어난 일은 경기장내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한다는 의미이며, 문제 해결의 기준이 되는 것이 소위 스포츠법률(lex sportiva)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법학도가 보기에 경기장내에서 통용되고 있는 스포츠법률만으로는 경기장에서 일어난 일들을 해결할 수 없다. 도핑 같은 불공정한 행위들이 스포츠의 일상이 된 이유도 스포츠법률에만 의존했기 때문이란다. 따라서 그는 스포츠법률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스포츠의 사적 자치에 반대한다고 하였다.

 

그의 주장을 조금 더 부연하자면 스포츠에서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일반법, 즉 민법이나 형법의 도입을 적극 고려해야한다는 것이다. 스포츠의 문제 해결을 위한 일반법의 도입을 요청하는 법학도의 주장을 접하고 두 가지 의문이 들었다. 첫째, 과연 그가 주장하고 있듯이 경기장 밖의 논리를 경기장 안으로 도입한다면 과연 그와 같은 조처를 통해 경기장내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이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을까? 즉 법이 간섭할 경우에 스포츠에 만연해있는 도핑 같은 일탈행위는 근절될 수 있을까? 둘째, 법이 스포츠에 간섭할 경우에 부수적으로 다른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까? 첫 번째 의문과 관련하여 저자는 법의 간섭으로도 스포츠의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두 번째 의문과 관련하여 저자는 오히려 법의 간섭을 통해 스포츠의 긍정적 이미지가 더욱 크게 훼손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말하겠다.


먼저 첫 번째 관점부터 살펴보자. 법의 간섭을 통해 스포츠의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은 일상적 경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한 사회 내에서 법적 처벌의 수위가 아무리 높아져도 범죄는 사라지지 않는다. 법은 결코 불법을 사라지게 할 수 없다. 오히려 법의 증가는 필연적으로 불법의 증가를 동반한다. 법은 불법과의 차이를 통해서만 자신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법은 사회생활에서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을 과대평가한다. 따라서 문제의 원인과 책임을 행위자 개인에게 귀속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범죄발생율과 사회적 불평등 정도 사이에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경험적 연구결과들은 범죄의 원인이 개별 행위자에게 뿐만 아니라 사회구조에도 있다는 점을 암시해주고 있다. 스포츠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도핑 같은 일탈행위는 법적 제재 조치만으로 방지될 수 없다. 그와 같은 일탈행위의 원인은 행위자 개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범죄 유발을 암묵적으로 조장하는 경쟁스포츠와 그 주변체계들에게 더 큰 원인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은 도핑 같은 일탈행위의 원인과 책임을 오직 행위자 개인에게만 귀속시킨다.

 

 

다음으로 법적 간섭을 통한 스포츠 자체 내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자칫 스포츠의 긍정적 이미지를 더욱 훼손시킬 우려가 있다. 법의 코드에 입각하여 스포츠를 관찰할 경우 불법적 스포츠의 지칭은 필연적이다. 합법의 증가는 불법의 증가를 필연적으로 동반하며, 스포츠가 합법과 연결될 가능성과 함께 불법과 연결될 가능성도 함께 증가한다. 이것은 경쟁스포츠가 법적 커뮤니케이션의 사슬에 등장할 경우에 피할 수 없는 결과이다. 현대 경쟁스포츠는 공정, 건강, 스포츠맨십 같은 가치들과 결합되면서 긍정적 이미지를 갖게 되었으며, 이러한 이미지에 힘입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도핑이나 승부조작 같은 일탈행위로 인하여 경쟁스포츠는 기만, 죽음, 범죄 같은 가치들과 결합되었으며, 그 결과 애초에 갖고 있던 긍정적 이미지가 훼손되고 있다. 이와 같은 경향에 더하여 스포츠를 대상으로 한 법적 관찰이 일상화될 경우 스포츠의 부정적 이미지는 더욱 확산될 것이다. 사회의 기능체계로서 법은 오직 합법과 불법이라는 주도적 코드에 기초하여 스포츠를 관찰하며, 이 과정에서 스포츠와 불법적 이미지의 결합은 필연적이다. 법에 의해 불법적 스포츠가 커뮤니케이션되고, 이로부터 각종 기능체계들의 반향이 뒤따를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법에 의해 지칭된 불법적 스포츠는 대중매체에 의해 스캔들로 부각될 것이며, 다양한 종류의 기고들이 등장할 것이다. 그리고 그 필연적인 결과는 “불법적 스포츠” 커뮤니케이션의 확산이다. 법적 간섭 보다 우선되어야할 것은 스포츠에서 일탈행위를 조장하는 스포츠 내적 및 외적 기대구조들의 완화이다.

 

 

 

 

ⓒ 스포츠둥지

 

 

Comment +26

  • 이전 댓글 더보기
  • 우동혁 2013.04.23 23:45 신고

    안녕하십니까~ 1학기생 우동혁 입니다.
    저는 스포츠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은 스포츠 법률에서 전적으로 처리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선수들과 팬들에서의 폭력, 도핑 등 몇 가지에서는 외부의 법을 이용하여 강한 처벌을 내려야 되지만 스포츠 법률에서 처리할 수 있는 일까지 외부의 법을 도입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운전을 하다가 아무런 죄가 없고 잘못한 것도 없는데 순간 경찰을 보면 이상하게 뜨끔하게 됩니다. 이런 조금의 거리감이 있는 외부적 법률이 사소한 것에서도 사람의 마음에 때로는 크게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너무 과도한 외부의 법률까지 이용을 하면 공정, 건강, 스포츠맨십, 팬들의 열광하는 이런 좋은 커뮤니케이션들도 피해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정성원 2013.04.24 14:40 신고

    안녕하십니까 1학기생 정성원입니다.
    저는 스포츠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위들이 스포츠 법률로써 처리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반 민법이나 형사법의 도입과 함께 해결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도핑과 승부조작을 예로 들자면 스포츠 법률로서는 제재를 할 수는 있겟지만 완전히 사라질 수 있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민법이나 형사법을 같이 도입하여 처벌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물론 개별 행위자에게 모든 것을 돌리지만 사회배경이나 사회구조에 있어서 그렇게 만든게 아닌가 한번은 되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스포츠 법률로서만 제재를 가한다면 더욱 도핑이나 승부조작과 같은 일탈행위들이 줄어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스포츠 법률로서 경기장 안에서의 모든행위들을 통제를 할 수 있다면 너무나 좋겠지만 그러기에는 한계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과도한 법률까지 적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스포츠 법률과 일반 민법이나 형사법을 같이 도입하여 적절하게 사용하면 경쟁스포츠에서의 공정, 건강, 스포츠맨십 같은 긍정적 이미지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조민영 2013.04.24 15:05 신고

    안녕하십니까, 1학기생 조민영입니다.
    저 역시 일반법을 시행한다고 해서 도핑, 승부조작 같은 불공정한 행위들이 사라진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일반법을 시행함으로써 스포츠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확산되는 것도 불보듯 뻔한 일이지만, 모든 불공정한 행위들이 스포츠 법률에 의해서 해결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들고 법의 심판없이 사적자치를 우선시해서 스포츠 외적 내적 완화를 기대하는것 역시 어려운 일인 듯 합니다.

  • 최규창 2013.04.24 20:58 신고

    교육대학원 1학기생 최규창입니다.
    스포츠에 불공정한 행위들을 스포츠 법률 안에서만 해결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승리 지상주의로 인해 경쟁 구도가 심해짐에 따라 발생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황금만능주의의 사회적 구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스포츠 법률 안에서 불공정한 행위들을 근절 시킬 수 있는 처벌이 이루어 지고, 처벌을 스포츠 법률 안에서 강화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위의 글에서 보듯이 '법은 결코 불법을 사라지게 할 수 없다. 오히려 법의 증가는 필연적으로 불법의 증가를 동반한다.' 라고 말 한것 처럼 사회적으로 스포츠에 대한 법을 만든다면 그것이 근절 되지는 않고 불법의 증가를 뜻하기에 각 종목의 스포츠 법률 안에서 불공정한 행위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엘리트 선수나 공인으로 있는 스포츠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유년 시절부터의 불 공정한 행위에 대한 정서적 교육이 이루어 지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 조성우 2013.04.24 20:58 신고

    교육대학원 3학기생 조성우 입니다!
    스포츠라는 자체에서 승리지상주의적인 경쟁구도의 요소를 빼버린다면 과연 스포츠로서의 기능을 가질 수 있는가 의심해봅니다.
    일탈행위를 조장하는 스포츠 내적 및 외적 기대구조의 완화도 중요하지만 기대 자체만 완화 해버린 스포츠로는 가치가 급격히 떨어 질 것이다.
    기대감을 낮춘다기 보다 메스컴을 통한 캠패인 및 불법적 스포츠를 막는 국민적인 운동을 조성해야한다.
    그리고 엘리트 선수들의 정신적인 교육을 체계적이고 심도있게 하는것이 불법적 스포츠의 발생을 감소시키는 긍정적인 측면이 되지 않알까 생각합니다.

  • 백상우 2013.04.24 21:22 신고

    안녕하십니까 1학기생 백상우입니다.
    저는 스포츠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위들은 스포츠 법률로써 처리 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경기중에 일어난 일은 경기룰에 따라 중재를 하는 심판이라는 존재도 있기때문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도핑과 승부조작을 예로 들자면 이 문제들은 따지고 보면 경기중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경기전에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경기전에 일어난 일들은 일반법률로써 따져야 될 문제인것 같습니다.경기중에 도핑이나 승부조작이란 사실이 밝혀지면 스포츠 법률로써 제재를 할 수는 있겟지만 이러한 문제들은 사전에 일반법률로엄격히 다스려야 사전에 예방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포츠 경기를 보면 시합중에 비신사적인 행위, 경기룰에 어긋나는행위,들은 경기룰에 따라 페널티가 부여됩니다. 하지만 시합중 선수들간 살인을 저지른다던가 이러한 문제는 없기때문에 일반 민법이나 형법까지 스포츠경기에 도입되야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스포츠법률 에서 룰을 어길시 더많은 페널티를 부여해주고 경기뿐아니라 선수들을 사전에 교육함으로서 문제들을 사전에 예방을 해야된다고 생각합니다.

  • 정현도 2013.04.24 22:34 신고

    안녕하십니까? 4학기생 정현도입니다.
    합법과 불법은 상관관계이며 돈이라는 목적이 스포츠 이미지를 높이거나 훼손시키는 큰 원인이 됩니다. 이러한 문제점은 외부에서 발생되어 내부로 들어오기 때문에 스포츠의 합법, 불법이라는 코드로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만약에 불법이 되는 도핑, 승부조작 등이 민법으로 처리가 될 경우 스포츠의 부정적 이미지 는 더 확산되어 제2의 법에 간섭을 받아 스포츠 내의 자생력, 기반이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스포츠의 문제들이 스포츠의 법안에서 해결되면 가장 좋겠지만 그러지 못한 부분에서는 민법의 강력한 부분을 부분도입하여 스포츠법으로서 처벌이 되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어느 한 곳으로 치우치면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최소화시키면서 말입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이런 불법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구조를 변화시켜야 합니다. 어린선수시절부터 안전한 학습 환경이 보장 되어 인성 및 윤리교육을 바탕으로 한 교육이 철저히 이루어져 스포츠 윤리관을 갖도록 해야 할 것이고, 잘못된 승부 조작이나 도핑 등이 악습 되지 않도록 건강한 스포츠의 근간을 교육시켜야합니다.
    합법-불법의 주도적 코드에 기초하여, 불법적 스포츠의 필연적 근절을 위해 적절한 법의 심판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스포츠 내에서 선수들이 자신의 기량만으로 평가 받을 수 있는 합법적인 구조화를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 마수현 2013.04.25 00:04 신고

    1학기생 마수현입니다.

    법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을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떤 사회든 또는 어떤 분야든 법이 등장하면 그 동안 행해져 왔던 것들은 더욱 더 음성적으로 변해 법의 망을 교묘하게 피해갈 것입니다.

    법률적 마인드(리걸마인드)사고에서는 법적 사고력만이 가장 우선시되고, 그 외의 요소들은 부차적인 것들로 중요시 되지 않습니다.

    법률적 마인드로 스포츠 분야를 바라보고 외부의 메스를 사용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들이 더욱 더 깊은 곳으로 숨어 마치 암세포처럼 더욱 악화될 것입니다.

    마지막 수단인 법...이 전에 근본적으로 스포츠에서 일탈행위를 조장하는 스포츠 내적,외적 기대 구조들을 완화하면서 예방하는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 박준한 2013.04.25 00:31 신고

    2학기생 박준한입니다.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법대생이 쓴글을 반론하는 글을 썼다고 해주신말씀만으로 어떤내용일것인지 생각했었는데 거의 맞아떨어진것같습니다.
    법대생은 스포츠도 민법이나 형법으로 스포츠안의 법을 다스려야한다고 하는데 여기에는 작은도덕과 큰도덕이 적용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스포츠안에는 룰이라는것이있습니다. 선수가 시합중규칙을 어긴다고해서 징역살이를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시합안의 룰이 아닌 큰도덕(예를들면 승부조작)일경우는 얘기가 달라집니다.프로농구팀의 모감독은 형법에 따라 징영2년이라는 구형을 선고받은바 있습니다.
    법대생은 오로지 생각을 스포츠를 자신의 관점에서만 해석을 했기때문에 무조건적으로 법이면 다 해결된다는 생각을 하는것같습니다. 그 생각이 잘못된것은 아니지만 운동을 하는 스포츠관계자들은 다르게 생각을 할수있다는것입니다.
    니콜라스 루만의 사회체계에 따르면 보는관점에 따라 생각하는것도 달라지기 때문에 법을 적용했을때 이런생각 저런생각들이 나올수있을것이고 법대생의 생각에 반론하는 교수님의 생각또한 이차등급관찰에 따라 관찰하는 관찰자중 한명의 생각일것이라고 생각합니다.자본주의 사회의 어쩔수 없는 현상인것같고 정답은 있을수 없고 단지 스포츠하는 선수들이 경기규칙에 맞게 최선을 다해준다면 법은 규칙에 다가서지 못할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 박병준 2013.04.25 00:31 신고

    안녕하십니까 1학기생 박병준입니다.
    제 생각에는 스포츠경기 안에서 이루어 지는 법적인 부분과, 스포츠경기 밖에서 이루어지는 적인 법적인 점을 구분하여,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포츠경기 안에서 이루어지는 선수, 코치, 감독 들이 일으키는 돌발적인 행동은 경기중 경기규칙에 따라 심판이 그에 따르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 옳고, 경기장 밖에서 이루어지는 도핑, 승부조작, 대학입시비리 등은 민법을 통해 그에 맞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옳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구분을 지어 시행 한다면, 현재 우리나라 스포츠에서 발견되고 있는 도핑, 승부조작, 대학입시비리, 선수폭행 이러한 부분들은 하루 빨리 해결 할 수 있을 것 이고, 현재 우리가 스포츠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생각, 이미지를 벗어 날 수 있을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 임종대 2013.04.25 11:04 신고

    1학기생 임종대 입니다.
    스포츠의 사적자치로서 스포츠는 경기가 일어난 경기장 내에서 해결된다고 하였습니다. 불공정한 행위들이 일어나는 이유가 스포츠 법률만으로 해결을 하려한다는 점인데 스포츠는 각 스포츠마다 규칙이있고 룰이 있습니다. 축구경기에서 심한반칙에 범한 선수는 경고또는 퇴장을 적용하므로서 페널티를 주고 심한경우는 심판과 리그관계자들의 협의하에 벌금또는 몇경기 출장 정지라는 벌칙을 주게됩니다. 이런 반칙을 범한 선수에게 스포츠규칙이아니라 민법,형법을 적용할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민법과 형법을 적용하지만 그 적용범위를 정하고 경기장 내부의 문제는 선수들이 경기중에 일어나는 일들뿐이며 도핑과 승부조작등은 이미 경기가 진행되기 전에 발생한 외부에서 발생한 점을 고려한다면 당연히 민법,형법이 적용되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경기의 내부외부를 잘 따져보아 경기내의 경기 규칙의 위반인지 경기외적으로 다른 누군가가 개입하여 이루어지는 불법행위 인지를 잘 따져보고 시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법은 그행위가 정당한지 불법인지만을 보고 판단하기 때문에 스포츠 법률과 잘 ㅅ생각해보고 판단하여 행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안중섭 2013.04.25 11:21 신고

    안녕하십니까 2학기생 안중섭입니다.
    위 글의 법학도가 주장한 내용에 따르면 스포츠에 있어 도핑 같은 불공정한 행위들이 만연하는 이유는 스포츠법률에만 의존했기 때문이며,스포츠법률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스포츠의 사적 자치에 반대한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스포츠의 본래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하고, 그 의미를 훼손하고 있는 것이 생각합니다. 비록 현대 사회의 스포츠가 도를 넘는 경쟁 속에서 의미가 퇴색되어가고 있긴 하지만 스포츠는 경쟁과 유희성을 가진 신체운동 경기라는 의미를 토대로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도핑과 같은 불공정한 행위들이 스포츠에서 만연하는 것은 위 글에서 언급했듯이 운동선수 개인의 문제라기 보다는 경쟁을 부추기고 스포츠 도박과 같은 사회적 배경들이 그 이유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민법의 대상으로 여긴다면 법의 기본 원리에 따라 선수 개개인에게 그 책임을 떠 넘기게 되고 이는 결국 스포츠의 공적 자치를 넓힌다고 한들 해결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스포츠에 민법을 도입하는 것, 즉 스포츠에 공적 자치의 영역을 넓히는 것은 스포츠 본래의 의미를 퇴색시켜 '불법적 스포츠'를 만연케 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 곽푸름 2013.04.25 14:00 신고

    안녕하세요 1학기생 곽푸름 입니다.
    역시나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본문의 마지막내용, '법적 간섭 보다 우선되어야할 것은 스포츠에서 일탈행위를 조장하는 스포츠 내적 및 외적 기대구조들의 완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부분에서 답을내기가 참 어렵습니다.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길은 참 여러가집니다.
    걸어서 한달이 걸려 도착을하느냐,자동차를 훔쳐서 하루만에 가느냐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봅니다... 만약 문제가 시간을 다투는일이라면
    후자의 방법도 고려할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주변에서 손가락질 받습니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피해는 막을수 있습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위해서 지금당장의 피해를 무시할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법적제재로 인한 스포츠 이미지에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두려워해서 지금당장 피해를보는 선수들을 외면할수는 없다고생각합니다.

    내외적 구조의 변화를 유도함으로써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나 그 결과로 가기전까지의 공백을 메워줄 임시방편또한 무시할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얻기위해선 작은부분의 희생을 감수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이병규 2013.04.25 15:32 신고

    안녕하십니까? 대학원생 이병규 입니다.
    스포츠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으며, 규칙요소를 빼버린다면 그것은 놀이에 속한다는 사실을 배운적이 있습니다. 놀이에서 발전한 것은 맞지만 앞서 말했듯 스포츠에는 공정, 건강, 스포츠맨십 같은 가치들과 결합되면서 긍정적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는것은 부정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모든 사회에서 집단을 이룰 때 소수 몇%는 악의 집단을 이룬다고 합니다. 스포츠와 법률이 동반하게 된다면 스포츠의 본질의 의미와는 거리가 더욱 멀어질 것이라 판단되며, 스포츠에 위반되는 행위들은 합법이냐 불법이냐에 관계하는것이 아니라 단지 스포츠에 도덕적 의미를 위반되느냐 안되느냐 이것이 문제의 틀로 기준을 잡아야하며 그에따른 문제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고쳐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앞으로의 스포츠에 또 다른 문제점들을 예방할 수 있는 근본적인 문제가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 정문주 2013.04.25 16:26 신고

    안녕 하십니까? 대학원 1학기생 정문주 입니다.
    법적 간섭을 통한 스포츠 자체 내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자칫 스포츠의 긍정적 이미지를 더욱 훼손시킬 우려가 있다. 법의 코드에 입각하여 스포츠를 관찰할 경우 불법적 스포츠의 지칭은 필연적이다. 합법의 증가는 불법의 증가를 필연적으로 동반하며, 스포츠가 합법과 연결될 가능성과 함께 불법과 연결될 가능성도 함께 증가한다. 이것은 경쟁스포츠가 법적 커뮤니케이션의 사슬에 등장할 경우에 피할 수 없는 결과이다. 라는 이말에 공감을 하고 있습니다. 사회가 사람을 자꾸 불볍적으로 만들어 가며 과정보다는 결과만을 생각하고 그결과를 위해서라면 불법적인 도핑또는 승부조작이 계속 일어 날것입니다. 법적으로 다막는 다고 해서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여러 방법을 도입해서 스포츠 세계에서 불법적인 인들이 살아 졌으면 합니다.

  • 김상협 2013.04.25 16:39 신고

    안녕 하십니까 교수님 1학기생 김상협 입니다.
    저의 생각은 스포츠경기에 이루어지는 법적인 점은 구분하여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복싱경기중에 한선수가 사망을 하였을경우 때른 선수는 승리하고 법적 조치는 없다 하지만 민법 형법으로 가면 피해를 입히면 구속및 벌금 형에 처합니다.
    이처럼 경기에 맞는 규정과 규칙이 있기때문에 저는 구분이 명학하게 되여야 된다고 봅니다.

  • 윤재현 2013.04.25 18:03 신고

    안녕하십니까. 2학기생 윤재현 입니다.
    승부조작, 도핑 등의 불법행위가 스포츠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훼손시킨 점에 대해서는 다른 이견이 없습니다. 하지만, 법학도의 몇 가지 사례를 예로 스포츠법률에 반대한다는 말에는 설득력이 부족한것 같습니다.
    스포츠를 대상으로 한 법적 관찰이 일상화될 경우 스포츠의 부정적 이미지와 더불어 불법적 스포츠 커뮤니케이션은 더욱 확산될 것이며, 제1 제2제의 승부조작 사건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정춘엽 2013.04.29 14:41 신고

    첫째, 법의 간섭이 스포츠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행위자 개인에게만 책임을 묻게하는 일은 좋지 않은 일인것 같습니다.
    둘째, 하지만 부정적인 면을 너무 감추는 일도 스포츠의 발전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긍정적인면과 부정적인면의 커뮤니케이션이 잘 조합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최승구 2013.04.30 11:02 신고

    안녕하십니까 3학기생 최승구 입니다.
    법의 간섭을 통해 스포츠의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점에 동의하는 바입니다.
    스포츠 외적인 부분에서 간섭이 들어 온다면 스포츠 자체의 이미지 훼손 우려가 됩니다. 그렇다고 부정적인 면을 감추려고만 하는 것도 문제는 있다고 봅니다.
    외적 요소가 들어오려면 내적요소와 적절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 져야 하고, 하지만 아무리 긍정적이 커뮤니케이션이 되어도 스포츠의 어두운 면들은 깨끗히 사라지기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선수들의 경각심을 일깨워 선수와 지도자 개개인의 부단한 노력과 스포츠를 지키려는 문화적 마인드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 허민지 2013.05.25 16:51 신고

    안녕하십니까 1학기생 허민지입니다.

    스포츠가 스포츠법률 외의 법으로 간섭받게 된다면 그 법을 피하기 위한 또 다른 불법이 생겨날 것이고, 그것으로 인하여 부정적인면이 노출되면서 스포츠 외의 다른 시선들이 스포츠를 더욱 부정적 모습에서부터 관찰을 시작하게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그 전 글에서 접했던 도핑을 비롯한 모든 스포츠의 불법적인 모습이 개개인의 잘못만으로 판단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습니다.
    스포츠 법률이 아닌 다른 법으로 불법적행위를 한 선수를 관찰하게 된다면 우리사회가 점점 물질만능주의와 승리가 먼저인 사회로 변화해간다는 사실은 인식되어지지 못한채 선수 개인에게 단지 그 불법적행위에 대한 처벌만 내려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된다면 불법적행위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악순환이 계속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스포츠 관한 문제는 법의 간섭보다는 스포츠법률 안에서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글 / 오화석(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세상에 한 영혼이라도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지금이야 이러한 생각에 모두가 동의하겠지만 인종차별의 역사는 가깝게는 20년 전, 구 유고 보스니아 내전 당시로만 거슬러올라가도 그 참혹함을 들여다 볼 수 있으리라.

 

필자가 미 연방하원의회에서 인턴을 하던 때였다. 미의회 의사당의 거대한 돔아래 중앙 지하공간은 마치 돌로 지은 지하성당(crypt)과 흡사한 석조아치 양식으로 되어 있다.  상원의회와 하원의회를 가로지르는 이 지하공간을 지나다 보면, 길 한편에 한 외국인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그의 이름은 라울 발렌베리(Raoul Wallenberg)라고 했다. Raoul Wallenberg 은 스웨덴 사람인데, 미국 정치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공간에 외국인의 흉상이 이채롭기만 하다. 그 흉상을 도드라지게 소개하는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장 톰 랜토스 의원의 부인이다. 해마다 대한민국 국회에서 8명을 선발하여 미국 연방하원의회와 인턴 교환교류가 있는데, 톰 랜토스 의원의 부인은 항상 한국 출신 인턴들을 대동하고 연방의회 건물을 설명해주는 가이드 역할을 아무 조건없이 맡아주고 있다. 그녀 역시 톰 랜토스 의원의 보좌관으로 연방하원의회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기도 했다.

 

라울 발렌베리를 추모하는 미국 발행우표, 사진출처: www.umich.edu

 

 

톰 랜토스 의원과 그의 부인은 모두 유태계 미국인이다. 이들은 모두 헝가리에서 태어났다. 홀로코스트 박해시절, 톰 랜토스라는 청년은 한 스웨덴 외교관에 의해 목숨을 건져 미국까지 건너와 버클리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의회 외교의 수장인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위원장이 된다. (미국의 대외관계는 의회의 몫이다. 다만 미국 헌법상 국무부에 의회의 권한을 위임한 것이다. 여전히 조약비준권은 상원의 고유한 권한으로 남아있는 것이 의회 외교권의 흔적이기도 하다.) 그 스웨덴 외교관이 바로 Raoul Wallenberg 이다. 이미 영화로도 널리 알려진 유태인 구명 기업인인 오스카 쉰들러(Oscar Schindler) 말고도 인종청소라는 폭압앞에 헌신적인 구명활동을 한 외국인이 또 한명 있었다.

 

Raoul Wallenberg 는 사실 평생을 호의호식할 수 있는 스웨덴 최고 기업집단과 관련이 있다.  스웨덴 최고의 갑부가문인 Wallenberg 가문의 일원이기도 했다. Wallenberg 가문은 은행으로 시작해 현재도 스웨덴 GDP 의 40% 를 생산한다. 한때는 세계 3대 이동통신회사였던 Eriksson 과 자동차그룹까지 거느리고 있었다. 애초부터 가문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의도하에서 유태인 구명운동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오랫동안 두드러지게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사회적 책임을 실천해온 가문의 기풍에서 발현된 자연스러운 사명감이라고 설명한다고 해서 지나치지는 않을 것이다.

 

2012년 라울 발렌베리 탄생 100주년 기념 스웨덴 발행우표, 출처: www.kofiannanfoundation.org

 

 

스포츠계에서도 독일계 유태인이면서 홀로코스트의 직격탄을 맞은 여자 펜싱선수가 있었다. 그녀는 Helene Mayer 로 1930년대 당시 세계 최고의 여류검객이었고, 세계 선수권자 였다. 1933년 나치가 집권하게 되면서 그녀는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그러나 36년 베를린 올림픽 개최국으로서의 성적을 중시하던 나치정부는 유태인인 그녀를 다시 불러들여 독일국적으로 뛰게 했다. 당시 펜싱종목중 foil 에만 여자금메달이 걸려 있었다. 그러나 정작 올림픽 무대에서 헝가리 선수에게 지고, 은메달 획득에 만족해야 했다. (당시 헝가리는 1차 세계대전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공화국에 속해 있었고, 오스트리아는 올림픽 이후, 1936년 독일과 합병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대독일이라고 볼 수 있다.)

 

시상대에 오른 Helene Mayer 가 국기가 올라가는 장면에서 오른팔을 펴서 어깨위로 치켜드는 특유의 나치식 경례를 하는 장면에서 시선이 멈춘다. 정말로 존경하는 마음에서 ‘Heil’ 을 외쳤는지 의심이 든다. 마치 슬픈 표정아래 올리브나무 묘목으로 가슴에 달린 일장기를 가린 고 손기정 옹의 사진이 오버랩 되는 듯 하다. 독일정부는 1972년 뮌헨에서 다시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1968년 Helene Mayer 를 기리는 우표를 발행했다. 자국민이었지만,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박해했고, 그래서 본국을 떠나야만 했던 선수에 대한 사과의 표시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1968년 헬렌 마이어 기념 독일 발행 우표, 출처: http://en.wikipedia.org

 

 

많은 사람들이 박해에서 살아 남아, 훌륭한 족적을 남기면서 그 과정에서 인류애를 잃지 않았던 사람들을 생생하게 증언해주었고, 스포츠분야에서도 이러한 인물열전을 통해 스포츠가 정치에 의해 오염되었던 시기에서도 스포츠맨십을 잃지 않은 진정한 영웅들이 있다. 전쟁, 1936년의 독일, 1992년의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1984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를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 스포츠둥지

 

 

 

Comment +0

 

 

 

 

글/하남길(경상대학교 교수)

 

 

 

        런던에 거주하는 한 교포는 런던 올림픽 배드민턴 입장권 구매에 성공했다며 올림픽 전부터 자랑을 늘어놨다. 그리고 7월 31일 오후 5시부터 카카오톡으로 문자와 사진을 전송해왔다. “배드민턴 응원가요.“ “관중석에 앉았어요. TV 봐요! 혹시 알아, 내가 카메라에 잡힐지ㅋㅋ” 등이었다. 다음 날 보니 다른 내용도 남아 있었다. “응원할 필요가 없네.” “헉! 실격이래.” 그때서야 그 교포가 응원간 날이 바로 여자 복식 “져주기 게임”이 열리던 날이었음을 간파할 수 있었다. 애국심 탓인지 법조계 직업 탓인지 뒷날 통화에서 그 교포는 선수들을 옹호하며, 오히려 국제배드민턴연맹의 사전 조치 미흡 상황을 비판했다. “국가나 자신을 위해 올림픽 메달에 청춘을 건 선수들이 누가 메달을 놓치고 싶었겠어요?”라는 말이 뇌리에 남았다. 수긍이 가는 점도 있었다. 하지만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영국은 스포츠의 나라이고, 런던은 스포츠의 요람이다. 축구, 럭비, 테니스, 배드민턴, 골프 등 수많은 스포츠가 영국에서 탄생했지만 거기에 공통점이 하나 있다. 모든 게임은 신사계급에 의해 조직화되었고, 그러한 스포츠에는 계급문화에 걸맞은 철학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페어플레이, 스포츠맨십 등과 같은 용어가 신사도(紳士道)를 상징하는 그들의 철학이었다. 귀족 전통이 배어 있는 테니스, 배드민턴과 같은 스포츠에서 매너와 정정당당하게 최선을 다하는 태도는 더욱 강조된다. 배드민턴(Badminton)의 혈통은 인도․영국 혼혈이지만 종목 명칭부터 귀족이었던 뷰포트 공작의 동네이름에서 따온 것이며, 0점을 제로(zero) 대신 러브(love)라는 애칭을 사용하는 것도 그런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 배드민턴에서 승부조작과 버금가는 “져주기 게임”이 나왔으니 영국적 정서로는 용납될 수 없었을 것이다. 매스컴에 알려진 대로 여자복식 조별 리그 최종전에서 대한민국 두 복식조는 “져주기 게임”에 관련되면서 국제배드민턴연맹으로부터 실격처리 됐고, 여자 배드민턴 4인방과 대표 팀 코치는 선수촌에서 퇴출되어 귀국조치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사태의 발단이 된 것은 조별 리그방식의 도입과 중국 선수단의 꼼수였다. 조별 상위 두 팀만 8강에 오르는 상황에서 묘하게도 A조의 한국(정경은-김하나)과 중국(왕샤올리-위양), C조의 한국(하정은-김민정)과 인도네시아(멜리아나 자우하리-그레이시아 폴리)가 모두 2연승,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만 남긴 상황이었다. 8강 진출이 확정된 마당이라면 당연히 토너먼트 대진표를 염두에 두지 않을 까닭이 없었다. 이론상 2위 실력자가 1위 실력자를 8강전에서 만나 패하면 노메달이고, 최후에 만나면 패해도 은메달이다. 세계 랭킹 1위(왕샤올리-위양), 2위(텐칭-자우윈레이)는 금, 은메달을 독식하고 싶었을 것이다. 랭킹 1위 중국은 2위인 자국 팀과의 대진을 피하기 위해 한국(정경은-김하나)에게 져주기 게임을 했고, 그러한 심리는 도미노 현상을 일으켰다. 랭킹 1위의 중국팀이 조 2위가 되자 꼼수 심리는 C조의 한국(하정은-김민정)과 인도네시아(멜리아나 자우하리-그레이시아 폴리) 전으로 전이(轉移)되었다. 굳이 1위가 되어 토너먼트 초반에 강자를 만날 이유가 없었기 지기위해 힘을 쓰는 게임을 한 셈이다. 이해는 가지만 그것은 선수만 아닌 선수단의 일탈행위였다.


스포츠 현장에는 수없는 일탈 행위가 존재한다. 축구에서 의도적 반칙으로 상대 공격을 잘 끊을 때 흥분한 해설자는 영리한 플레이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체급경기 선수들은 체중감량을 통해 낮은 체급으로 이동하여 메달을 노린다. 흔한 관례적 일탈은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심판 매수나 승부조작 등은 조직적 일탈에 속한다. 지도자도 몰랐을 리가 없다. 원인 제공을 누가 했건 겉으로 드러난 조직적 일탈은 올림픽 정신의 계승이라는 대의명분 앞에서 용서받기 어려운 행위가 되고 만다. 런던 배드민턴 경기였다면 더욱 용서받기 어려웠을 것이다.


배드민턴은 셔틀콕 게임이다. 셔틀콕은 선수의 손놀림에 따라 천변만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셔틀콕을 프리마돈나라 부르기도 한다. 우리 배드민턴은 바르셀로나 올림픽부터 금메달을 따내온 효녀종목이었으나 12년만의 노 골드는 물론 “져주기 게임” 사태로 나라 망신의 주범처럼 몰리고 있다. 그야말로 프리마돈나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지도자들은 평소 셔틀콕의 천변만화하는 비행모습을 보며 잠시 생각을 잘못하면 언제 어떤 모습으로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인생의 원리를 알고, 가르치기도 했어야 했다.

 

 

 

ⓒ 스포츠둥지

 

 

 

 

 

 

Comment +0

 

 

글 / 최진범 (스포츠둥지 기자)

 

 

     ‘스포츠 공화국’은 기본적으로 군사정권 체제 역량의 바탕아래 진행된 교육정책과 몇몇 핵심 지도자들의 스포츠와 관련된 일련의 경험, 체육관 등이 반영된 제3공화국 스포츠·체육 정책에 의해 탄생한다. 실제 당국(제3공화국)은 체육 행정의 개편 및 강화 방안을 마련하고, 국민체육진흥법을 공포하는 등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국가 엘리트 스포츠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한편, 몬트리올 올림픽 당시 레슬링 코치였던 본 재단의 정동구 이사장은 청와대 귀국보고회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엘리트 스포츠의 중요성과 체육대학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그 해 말 대통령령으로 한국체육대 설립근거가 마련됐다.


 따라서 본 호에서는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그 당시 ‘대표적인 체육 지도자’를 사례로 삼아 국가 및 사회체육에 마련된 제도와 기구에 대한 기원과 정착 과정을 살피는 한편, 그 역사적 의의와 한계까지도 면밀히 검토해 보고자 한다. 다음은 본 재단의 정동구 이사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정동구 이사장이 전하는 그때 그 시절!>

 

체육인재육성재단 정동구 이사장 ⓒ 최진범

 

 

당시 제3공화국이 수립한 스포츠-체육 정책의 기본 요소들은 여러 방면에서 최근까지도 우리나라 스포츠-체육 정책의 근간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즉 ‘국가가 전적으로 관리하고 지원(과거~현재)’하는 엘리트 스포츠의 측면에서, 과거와 어떤 공통점 및 차이점이 있나요?

 제3공화국에 들어와서 ‘체력은 국력이다’라는 마인드로 정부는 ‘국민체력 고취’를 위한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에 1963년 국민체육진흥법을 제정하여 직장체육, 학교체육, 엘리트체육 등 분야별 정책 및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첫 금메달을 획득했고, 엘리트 스포츠의 중요성과 체육대학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가운데, 그해 말 대통령령으로 한국체육대가 설립됐다. 

 한편, 그 당시 엘리트 스포츠는 일종의 ‘애국운동’이었으며 사실 이 같은 스포츠 애국정신은 해방 전후부터 이어져왔던 우리나라 특유의 민족성에 기인한다. 1936년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에서 우승하며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계기가 됐고, 1947년 보스톤 마라톤 대회에서 서윤복씨가 또 다시 우승하면서 당시 세계 각국의 UN대표들에게 대한민국을 각인시켰다. 이처럼 우리나라 스포츠·체육은 개개인의 건강과 행복추구에 앞서 국가와 조국을 위한 애국정신의 산물이었던 셈이다.


 물론, 제3공화국 시대에 시행된 스포츠-체육 정책과 구축된 제도가 정치 의존적 스포츠의 부정적 유산을 낳기도 했으나 최근 프로스포츠 승부조작 및 파벌싸움, 선수담합 등의 문제로 얼룩진 국가 스포츠의 현 상황에서, ‘제3공화국의 스포츠 애국정신’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의 첫 금메달.

무려 13년 만에 이룩한 쾌거인데, 당시 상황에 대해 좀 더 상세히 알고 싶습니다.
 ‘무중생유(無中生有):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다!’
정부의 관련 인프라 지원이 매우 열악한 가운데, 4년 동안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여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4~5개 대학에서 훈련을 했고, 겨울에는 미국에서 훈련과 시합을 병행하는 등 선수 및 코치진 스카우트에서 외국교류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모든 과정을 독자적으로 수행해 나갔다.


 한편, 세상일이란 것이 운도 있겠지만, 그에 따른 피나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 당시의 일념은 이후 내 삶 가운데, 큰 원동력이 됐다. 즉, 아무리 어려운 여건이라도 포기하거나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 시대는 바뀌었지만, 그때 그 정신만큼은 현재 국가체육인재육성을 위한 나의 확고한 신념이기도 하다.

 

 

엘리트 스포츠의 산실(産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그곳 ⓒ 최진범

 

 

무중생유(無中生有)에 기인한 스포츠 애국정신.

현재 우리 스포츠인들이 지녀야 할 스포츠 정신은 정확히 무엇인가요?
이는 곧 ‘스포츠맨십(Sportsmanship)’을 의미한다. 최선을 다하는 것, 정정당당해 지는 것, 심판 판정에 복종하는 것. 사실 스포츠맨십의 내용은 일반 시민사회의 덕이었던 ‘젠틀맨십(Gentlemanship)’과도 같은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건전한 스포츠 정신 함양은 체육인에서 체육인재로 도약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기재로 작용할 것이다.

 

 

 

최근 국민체육진흥공단(KSPO)에서는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금메달 지상주의에서 벗어나 대표팀의 경기력 향상과 사기 진작의 일환으로 은메달, 동메달리스트의 연금 점수를 대폭 올렸습니다. 한편, 제3공화국 당시에도 각 종목에서 업적을 이룬 선수들의 보상이 상당했는데, 국가 엘리트 스포츠 진흥에 있어 이러한 ‘체육연금 및 병역특례’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당시 혁명정부는 1973년 ‘병역의무의 특별규제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고, 대한체육회는 이듬해 국제 대회 입상 가능자의 병역 면제를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또한 1974년부터 올림픽,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에 대한 ‘종신연금’ 계획을 확정하여 이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했다.


 사실 그동안 엘리트 스포츠선수에 대한 연금 및 병역특례에 대해 상당히 말들이 많았다. 그러나 우리는 영국이나 미국 같은 200년 역사의 민주주의 강국들과는 분명 다르다. 해방 직후 얼마 안 있어 민족전쟁을 치렀고, 이후 한강의 기적을 이룩하기 위해 국민 모두가 피나는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한 상황에서 이 같은 제도와 관련해서 당시의 문화적·사회적 분위기는 한국 스포츠계에 커다란 애국적 동기를 불어넣어 사회 통합 및 국민의 용기를 고취하게 하는 실질적 계기가 됐다.


 따라서 이러한 스포츠의 다양한 사회적·문화적인 영향의 여파가 현대 사회에서도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국위 선양에 기여한 사람들에 대한 대우는 당연한 것이다.

 

 

 

현재 엘리트 스포츠가 지향하는 스포츠·체육인의 인재상은 분명 과거와 다릅니다.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요?
제3공화국 스포츠-체육정책은 대내적으로 국민 총화의 실현, 경제 발전을 위한 성장 동력을 마련하는 가운데 대외적으로는 국위 선양과 스포츠 외교를 지향했다. 이처럼 스포츠·체육 자체가 가지는 정치적·사회적 파급효과가 매우 컸기에 결과적으로 기록-성적만능주의를 생산했고, 그에 따른 경제적 보상과 사회적 명상이 스포츠의 순수한 이념과 정신이 비운 자리를 대체하는 수단이 됐다.


 그러나 21세기 정보화 시대의 한국형 체육인재는 ‘공부하는 선수, 운동하는 일반학생’을 지향하는 가운데, 스포츠의 글로벌화를 인식하고 통합성에 기초한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급격히 변화하는 스포츠 현상에 창조적으로 도전하며, 올바른 인성과 리더십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글로벌 역량의 체육인재를 의미한다.


 한편, 이러한 의미에서 현대 스포츠의 흐름은 점차 ‘부국강병(나라가 부유하기 위해선 강한 군대가 필요하다)’정책에서 ‘건민부국(국민이 건강해야 나라가 부유하다)’정책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 이는 곧 스포츠·체육의 전문화와 대중화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엘리트 스포츠의 산실(産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그곳 ⓒ 최진범

 

 

긴 세월동안 엘리트 스포츠와 함께 격동의 역사를 지내오셨는데, 혹시 개인적으로 아쉽거나 후회되시는 부분이 있나요?
 제3공화국의 스포츠-체육정책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스포츠·체육이 가지는 영향력은 실로 엄청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실제 체육전공자들은 전문가 대접을 못 받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가 앞으로 세계 속 스포츠 강국으로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체육인들이 전문가 그룹으로 대접받아야 할 것이다.

 

 

<르네상스>는 ‘고대 그리스 문화의 재생과 부활’을 의미합니다.

본 재단이 지향하는 <스포츠 르네상스>의 의미는 정확히 무엇인가요?
 기본적으로 르네상스란 14세기부터 16세기 사이에 일어난 문예부흥운동을 말한다. 여기서 문예부흥이란 구체적으로 14세기에서 시작하여 16세기 말에 유럽에서 일어난 문화, 예술 전반에 걸친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명의 재인식과 재수용을 의미한다. 중요한 것은 르네상스는 혁명이나 쿠데타가 아니다. 즉, 이는 중세 암흑시대 동안 파괴됐던 인간의 존엄성을 고대 문화 재현을 통해 다시 회복하는 자연스러운 시대적 정신운동인 셈이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스포츠 르네상스>란 스포츠 강국에서 ‘스포츠 선진국’으로의 회복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단순한 메달 획득을 통한 국위선양을 넘어 스포츠·체육이 가지는 잠재력과 비전을 파악하고, 국민 모두가 스포츠·체육을 통해 건강한 심신을 단련하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 스포츠둥지

 

 

 

 

Comment +0



                                                                                                             글/이강은(한양대학교)



              <상대 선수의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때리는 시뮬레이션 액션을 펼치는 선수>

지난 9, AFC 챔피언스 리그 81차전 전북현대와 세레소 오사카와의 경기에서 일본 선수가 한국 선수에게 반칙을 저질러 넘어뜨린 후, 마치 한국 선수가 발길질을 했다는 듯이 갑자기 정강이를 잡고 나뒹구는 연기를 펼쳤다. 이 장면은 유투브를 통해 순식간에 수십만 명에게 전해져 많은 네티즌들이 댓글을 통해 허탈감과 분노를 표출했다.

반칙 판정을 유도하여 페널티킥 및 프리킥을 얻어내기 위해 선수가 심판을 속이는 동작을 흔히
할리우드 액션이라고 한다. 이에 대한 정확한 명칭은 시뮬레이션 액션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에서는 9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심판이 선수의 속임수에 넘어가는 사태가 심각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이에 따라 2002년 한일월드컵부터는 150만원에 상당하는 벌금과 함께 옐로카드 및 정도에 따라 레드카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상대방의 반칙을 통해 얻게 되는 페널티킥이나 프리킥이 큰 변수로 작용하는 축구에서 할리우드 배우를 뺨치는 연기력을 가진 선수들이 나타나는 것은 필연인지도 모른다. 영국 프리미어 리그의 통계에 따르면 상대팀의 반칙을 통해 페널티 킥을 얻어낼 경우 팀이 승리할 가능성이 18% 증가한다고 한다. 이만하면 누구나 한번쯤 스치기만 해도 다리를 부여잡고 오만상을 찌푸리고 싶어지지 않을까.
중동 일부 국가 대표팀이 침대 축구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면서도 경기 진행 방식을 바꾸지 않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잉글랜드 포츠머스대 폴 모리스 심리학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축구선수들이 태클에 걸려 넘어지는 할리우드 액션은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1. 상대방에게 부딪히지 않았지만 특정 부위를 부여잡고 쓰러지거나, 2. 그라운드에서 구를 때 한 바퀴를 더 구르거나, 3. 한두 발자국 중심을 잃은 듯 행동하다가 넘어지는 동작, 그리고 4. 다리를 굽힌 양 팔을 벌리고 넘어지는 등의 동작이 있다고 한다. 정상적으로 넘어지는 사람은 팔이 땅으로 향하기 때문에 마지막 동작은 의도하지 않고서 절대 나올 수 없는 자세라고 한다. 모리스 교수는 심판들이 이런 동작들을 공부하면 할리우드 액션을 구별하여 오심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심판에게 들킬 경우 잃는 것에 비해 성공했을 때 얻는 것이 많은 이상 선수들은 계속해서 골 찬스를 따내기 위한 열연을 펼칠 것이다. 심판이 모든 경우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축구에도 영상 판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이 역대 최악의 오심 월드컵이라는 비난을 받은 후 FIFA 회장 제프 블레터는 '판정은 인간의 영역으로 남겨둬야 한다'는 말로 자신의 임기 중에 영상 판독이 도입될 가능성이 없음을 시사했다.

허나 시뮬레이션 액션에 대한 처벌이 강화된 이후로도 심판이 가진 판단력의 한계를 이용한 일부 선수들의 만행이 경기의 공정성과 스포츠맨십을 저해한다면 마냥 두고 볼 수만은 없을 것이다. 물론 축구처럼 흐름이 중요한 스포츠에는 영상 판독이 경기의 흐름을 끊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도 있다. 그렇다 해도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말로는 할리우드 액션으로 얻어낸 페널티 킥에서 나온 역전골 때문에 억울하게 결승에서 패배하는 팀의 팬과 선수들을 위로할 수 없을 것이다. 경기의 흐름을 끊지 않고 사후에 영상판독을 실시한 후 선수생활에 지장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엄중한 징계를 내릴 수 있도록 한다면 좀 더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가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네티즌들의 의견에 귀가 솔깃해진다.

 

 


                                                                                                                             ⓒ 스포츠둥지

 


Comment +0


                                                                                     글 / 송형석 (계명대학교 체육대학 교수)


알맹이가 중요할까 껍데기가 중요할까? 당연히 알맹이가 중요하지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하느냐고 핀잔듣기 십상인 물음이다. 껍데기는 단순히 알맹이에 부수하여 그것을 돋보이고
꾸며주는 보조적인 역할만을 수행하기 때문에 알맹이가 껍데기보다 중요함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 알맹이보다 껍데기가 중시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현금의 소비 경향을 일컬어 “상징적 소비”라고 표현한다. 사용가치나 교환가치 때문이 아니라
상징가치나 기호가치 때문에 상품을 구매한다는 의미이다. 예컨대 성능 때문이 아니라 외관과
디자인 때문에 자동차, 냉장고, 청소기 같은 상품을 구매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옷의 경우에
이러한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의복의 본질적 기능, 즉 사용가치는 보온과 보호, 가림 기능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요즘은 색상이나 디자인 또는 상표 때문에 의복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많다.
소위 “명품”의 구매 심리에 이러한 경향이 잘 반영되어 있다.

오늘날 껍데기를 중시하는 경향은 모든 사회 영역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경제 영역을 넘어서
정치, 나아가 개인의 일상 영역에까지 파죽지세의 기세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2006년 서울시장
후보에 올랐던 오세훈과 강금실의 대결에서 오세훈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이유를 생각해 보자.
그의 훤칠한 외모와 멋진 몸매가 유권자들에게 막연한 기대를 심어주었고, 주저 없이 그에게
한 표를 던지도록 만들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비밀이다. 당시 대중매체는 이를 두고
“감성정치”의 시대가 열렸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이미지, 상징, 외관 등으로 표현될 수 있는 껍데기는 일상생활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배우자 선택에서부터 신입사원 선발, 나아가 사회적 성공에 이르기까지 외모가 차지하는
비중은 해를 거듭할수록 커지고 있다. 능력 있는 사람보다는 능력 있어 보이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보다는 건강하게 보이는 사람이, 진실한 사람보다는 진실하게 보이는 사람이, 즉 알맹이가
견실한 사람보다는 껍데기가 번지르르 한 사람이 선호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이에 따라 껍데기를 가꾸는 일은 일생생활에서 중요한 덕목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러한 시대적
경향을 잘 반영하고 있는 영화가 있다. 2006년 말 개봉되어 수 개월간 박스오피스 1위를 고수했던
 “미녀는 괴로워”가 그것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가수이다. 가수에게 있어 알맹이는 목소리와
가창력이다. 반면에 날씬한 몸매와 아름다운 외양은 목소리와 가창력을 돋보이게 해주는 일종의
껍데기에 불과하다. 양자를 모두 겸비했다면 이상적이겠지만 전통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꼭 날씬한
몸매와 아름다운 외모를 갖추어야만 가수로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자, 심수봉 등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들은 대개 날씬한 몸매와 아름다운 외모를 갖추지는 못했지만 타고한 미성과
풍부한 가창력으로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미녀는 괴로워”에서 진짜 가수는 찬밥
신세고, 붕어처럼 입만 뻐끔대는 립싱크가수가 인기를 독차지 한다. 진짜는 적절한 껍데기를 갖추지
못했기에 푸대접을 면치 못했고, 가짜는 껍데기가 좋아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 결국 껍데기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깨달은 주인공은 껍데기를 바꾸기로 결심하고 성형과 스포츠로 자신을 완전히
재포장하여 신상품으로 거듭난다는 것이 이 영화의 줄거리다.

   

                        

이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껍데기가 중시되는 사회에서는 스포츠의 역할도 바뀌기 마련이다.
스포츠는 다양한 몸짓으로 이루어진 일련의 활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단순한 몸짓의
활동으로 그치지 않고 몸짓을 통해 내면적인 그 무엇을 고양시키는 활동으로 이해되어 왔다.
“스포츠맨십”, “페어플레이”, “협동심”, “인내심”, “극기의 정신” 등이 전통적으로 스포츠라는
일련이 몸짓을 통해 고양시키려고 했던 내면적인 그 무엇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스포츠로부터
기대하는 바가 “내면적인 것”에서 “외면적인 것”으로, 즉 알맹이에서 껍데기로 뚜렷하게 바뀌고 있다.
“날씬한 몸”, “근육질의 몸”, “에로틱한 몸”이 스포츠참여의 궁극적인 목표가 된 것이다.

 
 

포장 제조기로서의 스포츠 역할은 비단 개인의 몸 가꾸기에만 한정되지는 않는다. 지역 사회나
국가 같은 집단은 물론이고 전 지구적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경제체재를
포장하여 결국에는 인정과 승인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재현 및 상징 기제의 역할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의 월드컵 4강은 단순한 월드컵 4강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그것은 은근히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4강의 의미로까지 확장되어 해석된다. 100m 세계기록갱신은 단순한 선수 개인의
영광이 아니다. 그것은 근대 자본주의체재가 추구하는 비가시적 인류 진보를 가시화시켜 주는
사건으로 재해석된다. 이미 오래 전부터 스포츠는 개인과 집단, 나아가 전 인류에게 기존 자본주의
질서를 믿고, 받아들이도록 만들어 주는 환상적인 껍데기 역할을 담당해왔다.

탈주술화, 합리화, 세속화의 기치 아래 효율성과 효용성이 모든 가치의 척도 역할을 해왔던
근대화과정에서 이와 같이 신비주의화, 미학화 경향이 가속화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르크스는 근대 자본주의 경제 질서에 이미 그러한 속성이 내재되어 있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소비자가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이유는 그 상품이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켜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대와 현실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큰 맘 먹고 산 상품이 기대와는 다르게 전혀 자신의 욕망을 채워주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소비자에게 상품의 구매는 일종의 모험일 수밖에 없다. 기대는 해석의
 방식이다. 그것은 가시적인 상품의 외관이 제공하는 데이터를 매개로 이루어진다. 판매자는
잠재적인 구매자에게 가능한 한 많은 기대를 제공해 줌으로써 그로 하여금 결국 자신의 상품을
구매하도록 유혹할 필요가 있다. 구매자를 유혹하는 가장 대표적인 전략은 상품의 외관을
미학적으로 구성하는 일이다.

앞서 설명하였듯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 미학의 논리는 모든 영역에 침투하여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모든 영역에서 껍데기의 중요성이 역설되고 있다. 한편 껍데기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면서 과대 포장이 등장하였고, 나아가 알맹이와는 상관없는 껍데기, 소위
“탈맥락적 이미지”라고 부를 수 있는 껍데기 아닌 껍데기가 등장하였다. 이러한 껍데기는
더 이상 알맹이를 지시하거나 재현하지 않는다.

껍데기가 알맹이를 몰아내고 주인행세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플라톤이 이야기했던
가사세계와 가시세계, 원본과 이미지, 진리와 허구, 진짜와 가짜의 전도 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포이에르바하는 껍데기를 중시하는 현대 사회의 경향과 관련하여 “확실히 기호화되는 물건보다
기호 자체가, 원본보다 복사본이, 현실보다 환상이, 본질보다 외관이 더욱 선호되는 오늘날의
시대에는 … 오직 환상만이 신성한 것이고 진실은 세속적인 것이다. 아니 오히려 진리가 감소되고
환상이 증가되는 정도에 비례하여 신성성은 더욱 고양된다고 여겨지고 있고, 그 결과 최고도의
환상이 최고도의 신성성이 되고 있다.”고 썼다.

알맹이가 중시되었던 문화에서 스포츠철학자들은 스포츠가 인격 같은 알맹이를 가꾸는 적절한
수단이라고 애써 주장했다. 그렇다면 이제 껍데기가 중시되는 문화에서 우리는 스포츠가 껍데기를
만드는 데 탁월한 수단이라고 주장해야만 할 것인가? 아니면 전통적 입장에서 이러한 경향을 싸잡아
 비난할 것인가?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니고 이러한 현상을 적절한 언어로 설명함으로써 개인에게
 성찰의 기회를 제공해주는 역할에 만족할 것인가?

ⓒ 스포츠둥지


Comment +2

                                                                             글 / 김혁출(국민생활체육회 전략기획실장)



오늘날 사회 환경은 확실히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리더십과 리더를 요구하고 있다. 마치 뱀이
허물을 벗지 못하면 죽는 것처럼 시대는 리더에게 새로운 변화를 주문하고 있다. 인간적으로
더 합리적인 리더십, 경영적으로 더 투명한 리더십, 주위 환경보다 더 빠르게 체질 개선된
리더십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문득 여가시대를 맞아 스포츠 리더십을 떠올린다.

스포츠 리더십과 기업 리더십은 본질적으로 같아

한국야구팀이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화려한 성적을 거두면서, 김인식 감독의
리더십이 장안의 화제가 된 적 있다. 절대 넘침이 없는 시기에 선수를 교체하고, 간부(코치)들의
권한을 극대화한 위임의 리더십... 상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에서 놀라운 성과를 올린 그는 성공
CEO의 모델로 극찬을 받았다.




이에 앞서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축구대회에서 보여준 히딩크 감독의 리더십은 스포츠
차원을 뛰어넘어 경영학적인 연구대상이 되기도 했다. 스포츠 리더십이 주목받는 것은, 스포츠
리더십이 일반 기업의 리더십과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 없으면서도 다른 영역보다 대체적으로
설득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즉, 운동경기라는 쉽고도 생생한 사례를 갖고 설명하기 때문에
전하기도 쉽고 받아들이는 쪽에서도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스포츠에서 경영 화두를 도출하는 것은 미국에서는 이미 하나의 트랜드로 자리 잡았다.
스포츠 감독들이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이나 NBA 프로그램에서 인기 연사가 돼 빌 게이츠 등
기업 CEO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슈퍼볼 우승 감독은 우승을 하는 그 다음날부터 출판과
강연 요청에 파묻히고 프로농구 우승감독의 경우는 어엿한 성공CEO로 대접받기도 한다.


훌륭한 스포츠 팀에는 훌륭한 리더가 있어

많은 사람들은 유수의 그룹 총수들이 겪어야 하는 번민을 보면서 경외와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냉정한 약육강식의 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잠 못 이루는 CEO는 드라마나 영화
소재로도 자주 등장한다. 번민하기는 스포츠 감독 역시 기업 CEO에 못지않다.

흔히들 TV화면에 나타난 스포츠 감독의 화려한 몸짓을 보면서 그것이 마치 감독의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기도 한다. 실상 스포츠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 감독이 펼쳐야 하는 용병술과
그 과정에서의 고뇌는 가히 생을 건 한판 승부다. 한 유명 프로스포츠 감독은 중요 경기 한 게임
끝날 때 마다 체중이 몇 ㎏씩 줄어들었다고 고백한 적 있다.

스포츠 감독이 해야 할 일은 많다. 팀 선수들의 조직을 극대화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상대편에
대한 치밀한 연구, 경기 외적인 관리에 이르기까지 리더가 해야 할 일은 문자로 일일이 나열할
수가 없다. 경기 순간순간이 선택의 연속이며, 선수기용 그 자체가 검을 휘두르는 검투사의
그것이다.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감독만의 권한이자 책임이다.

그래서 감독은 외롭다. 경기가 끝났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경기에 이겼다고
하더라도 교훈을 찾아야 하고, 패배한 경기는 그 원인을 분석하고 대응책을 찾아야 한다.
승리를 하면 그 결과는 선수들에게 돌아가지만 패하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감독의 몫이다.
그래서 어떤 종목을 막론하고 훌륭한 팀에는 반드시 훌륭한 지도자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스포츠 참여과정에서 배우는 리더십

근대 스포츠의 발상지 영국 ‘이튼 스쿨’은 영국에서 가장 많은 지도자를 배출한 명문이다.
이 학교에선 체육을 가장 중요한 교과 중 하나로 보고 학생의 스포츠 참여를 의무화하고 있다.
이유는 스포츠가 페어플레이 정신․공동체 의식․준법정신․약자에 대한 배려․책임감 등
지도자적 자질을 함양하는데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자녀를 ‘리더십 있는 아이’로 키우고자 스포츠활동을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스포츠를 통해 리더십을 함양하는 데는 반드시 기억할 게 있다. 스포츠에서 과정보다
결과를 강조하다 보면 자칫 일그러진 리더십이 형성될 수 있다. 따라서 부모나 교사는 스포츠를
순수한 교육적 도구로 인식하고 결과보다는 과정에 초점을 둬야 한다. 그래야 자녀들이 스포츠에
내재되어 있는 순수한 정신을 제대로 배우면서 진정한 리더십을 가진 리더로 성장할 수 있다.

스포츠 과정을 배우는 것은 바로 스포츠맨십(sportsmanship)을 배우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경기장에 서면 승리를 열망하게 된다. 그러나 어떤 방법으로 승리를 쟁취하느냐에 따라
이기고도 진 게임이 될 수 있고 지고도 이긴 게임이 될 수 있다. 그것을 가르는 중요한 잣대가
바로 스포츠맨십이다.

스포츠에 임하는 선수들은 어떤 종목이나 상황을 막론하고 페어플레이 정신, 자기편이나
상대방에 대한 예의, 선의의 경쟁을 위한 강력한 투지, 그리고 승패를 흔쾌히 수용할 수 있는
아량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스포츠맨십과 리더십은 유아시절부터 스포츠참여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체득해야 한다.

스포츠 참여과정에서 얻어지는 리더십은 다른 어떤 지식이나 학습방법보다도 훨씬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인성교육이다. 아이들은, 또래들과 함께 어울려 생활체육을 즐기는 과정에서 부모나
선생님으로부터 얻지 못하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그 새로운 체험은, 올곧은 리더십을
형성시키고 나아가 국가와 사회를 건강하게 선도하는 훌륭한 자양분이 될 것이다.

ⓒ 스포츠 둥지


Comment +2

  • 열혈여아 2010.01.21 09:19 신고

    스포츠맨십에 반대되는 말이 게임즈맨십(gamesmanship)이라고 하더군요. 이기기 위해서 수단방법을 안가리는.. 물론 경기의 목표는 승리지만, 그렇게 이기고 나면 떳떳히 말하기는 힘들겠어요. "이기고도 진 게임이 될 수 있고 지고도 이긴 게임이 될수 있다". 명언인 것 같습니다. 스포츠 경기뿐만 아니라 인생을 살면서 겪을수 있는 좋은 말입니다.

    • 열혈여아님 반갑습니다.
      승리를 떠나 정정당당히 최선을 다한사람이
      진정한 승리자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부탁드립니다^^

글 / 권오륜 (부산대학교 스포츠과학부 교수)



 
우리나라의 열악한 점프스키계의 일화를 영화화한 ‘국가대표’라는 영화가
얼마전 극장가에 개봉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물론 관객의 재미를 더하기 위하여 일부 과장되거나 영화 특유의 허구성이 가미되기는 했지만
우리나라 스키점프의 국가대표 5명(처음 시작할 때 5명이 현재도 5명이라는 점이 강조된)이
이루어낸 각종 국제대회의 성적이 자막으로 처리되어 소개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슬픔을 넘어 감동적이기까지 하였다.

한편 로마의 승전보를 기대했던 박태환의 수영성적에 대해 우리 국민 모두는
실망감과 더불어 넋이 빠진 허탈감을 느끼기에 충분하였다.
우리는 왜 이렇게 스포츠의 승패에 연연하며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것인가?

스포츠는 경기종료를 알리는 그 순간 승리와 패배의 명암이 분명히 가려진다.
승리의 감격과 환호성이 있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패배의 슬픔과 좌절감 또한 경기장에 남는다.
이것이 스포츠가 갖는 최대 매력이다.

승패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승리의 감격은 더욱 극적인 것이 되고
패배의 아픔은 모두의 상실감으로 전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스포츠란 우리에게 있어서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스포츠 그 자체는 가치중립이다.
승패에 따라 웃고 우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의 가치를 부여하고 그 결과가 본인가치의 충족여부에 따라
희비가 교차
하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 이진수 교수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스포츠 그 자체는 몰가치(free value)하다는 사실 때문이다.
스포츠는 어디까지나 사람들이 품고 있는 인생의 가치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용되는 것이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스포츠 혹은 다른 신체운동은 궁극적 가치나 수단적 가치의 요구를 채우기 위해 이용될 수 있는
단순한 하나의 매체라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한국고대스포츠연구, 1996:433).

즉 스포츠는 현대 사회에서 인간이 스스로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 낸
고품격 문화의 일종
이라는 사실이다.
한·일전의 결과가 특히 민감한 것은 민족 간의 감정의 상처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의 문화의 소산(똑같은 축구경기이지만 터키와의 경기를 관전하는 우리의 마음은 어떠한가?)
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좀 더 이성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결국 우리가 스포츠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운동선수(스포츠맨)와의 감정이입에서 발생하는 심리적 공감대의 정점일 것이다.
물론 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승리추구이다.

스포츠맨이 승리를 위하여 자신이 지닌 신체의 아레테(덕, 탁월성)를 최대한 발휘하며
최선을 다할 때 소위 말하는 스포츠맨십이 그곳에 현재(顯在)하는 것이다.
즉, 스포츠맨십은 신체의 아레테를 추구하는 스포츠장면을 매개로 하여 느끼는
자신과 타자의 감정의 흐름
인 것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스포츠에 내재하는 선이나 탁월성을 실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스포츠를 통해 한 인간이 인격적으로 보다 완숙한 단계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체적 인간 삶의 선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게 된다.(오현택, 스포츠인문학, 2008:147).

그리고 이러한 전체적 인간 삶의 공동선 추구는 스포츠장면과 공동체가 상호교감하면서
시민의식을 고양하는 것이며 그 핵심이 바로 스포츠맨십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현대 스포츠는 하나의 볼거리 그 이상의 의미를 찾기 어렵게 되었다.
이미 상품과 마케팅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자본의 논리에 지배를 받게 되었다.
운동선수는 스포츠마케팅 혹은 광고의 대상으로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이제 운동선수는 보다 높이, 보다 빠르게, 보다 멀리를 위하여 필사적인 몸부림의 현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그 가운데 상업주의와 민족주의 그리고 폭력, 도핑, 경기조작 등 비윤리적 문제들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이학준, 스포츠인문학, 2008:173).

결국 이러한 스포츠현장의 비윤리적 상황의 중심에는 남이 아닌 우리가 있으며
우리들의 도덕적 가치관이 그대로 투영된 결과이다.

이제 우리는 스포츠장면에서 선수들의 스포츠맨십을 평가하기 앞서
우리 자신과 공동체의 도덕적 가치관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므로 ‘스포츠맨십 어디로 갔나’ 라는 명제는 ‘스포츠맨십 어디로 보냈는가’ 라는
우리 자신의 도덕적 가치관의 주체적인 인식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Comment +0

글 / 김선일 (구현고등학교 체육교사)



 

경쟁(競爭, competition)은 둘 이상이 무언가를 놓고 겨루는 것을 말한다.
경쟁은 보통 제한된 자원을 가진 환경에 공존하는 생물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이를테면, 짐승은 물, 먹잇감, 짝짓기 대상을 두고 경쟁하며,
사람들은 부, 명예, 신임을 두고 경쟁한다.
경쟁이란 단어는 왠지 긴장되고 비인간적인 느낌이 들어 사람들은 흔히 ‘선의의 경쟁’이라는 말을 한다.

선의의 경쟁이란 정정당당한 경쟁을 의미한다.
즉 반칙이나 규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고,
자신의 장점을 살리고 최선을 다해 목표를 이루려는 행동을 말한다.
이 ‘선의의 경쟁’ 정신을 표현하는 데는 '스포츠맨십(sportsmanship)'이란 단어가 참 잘 어울린다. 

스포츠맨십을 가진 사람은 정정당당한 경쟁을 하기 위해 도덕적으로 비난 받을 행동을 하지 않는다.
즉 상대방에게 비겁한 행위나 불쾌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또한 최선을 다하는 행동으로 강자 앞에서 비굴하지 않고,
남을 배려하는 태도로 약자를 업신여기지 않는다.
경쟁과 승부를 떠나 이 스포츠맨십은 오늘날의 사회생활에 있어서도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이루는데
반드시 필요한 정신이다.

이렇게 경쟁 활동 스포츠를 통하여 우리는 스포츠맨의 정신과 태도를 배울 수 있으며,
경쟁 활동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치는 어떤 것이 있는지 다음과 같은 스포츠의 예를 통해 알아보자.

1. 리더십

1966년 월드컵에서 ‘프란츠 베켄바워’는 준우승의 주역으로 떠오른다.
당시 베켄바워는 수비형 미드필더의 역할을 부여받았음에도 월드컵이라는 큰 대회에서
무려 4골을 기록했다.
당시만 해도 공격과 수비의 개념이 명확히 분리돼 있었기에 수비수는 수비만을 전문으로 하는
선수를 의미했다.
하지만 베켄바워는 ‘공격에 참가하는 수비수’라는 혁신적인 개념을 창조해 냈다.
바로 ‘리베로’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수비수임에도 경기를 지휘했으며 이끌어나갔다.
수비수이면서도 경기를 지휘하고 지배하는 베켄바워의 압도적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그를 ‘황제Kaiser)’라고 불렀다.
그는 선수로서 그리고 감독으로서 철저한 ‘리베로 리더십’의 소유자였다.
그가 만들어 낸 새로운 개념 ‘리베로(Libero)’란 이탈리아어로 ‘자유인’이라는 뜻이다.

즉 리베로는 수비수이나 수비수가 아니고, 공격수가 아니나 공격수이며,
아무자리도 없으나 모든 자리에 있는
런 역할을 부여받는 자리이다.
때문에 리베로였던 그는 경기장의 모든 곳을 꿰뚫고 있어야 했으며 따라서 시합을 통찰할 수밖에 없었다.
경기의 흐름을 읽었고 공을 갖지 않은 선수들의 움직임을 살폈으며 수비수와 공격수의 호흡을 조절했다.

황제의 리더십 그 리더십의 핵심은 바로 지위(Position)에 구속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경기장
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전체를 지휘할 수 있어야 한다.
수비수가 필요하다면 수비수가 돼야 하고 공격수가 필요하다면 공격수가 되어야 한다.
리더로서 고정된 지위를 갖고 다른 동료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로 하여금 고정된 역할을 수행케 하고 이들을 성공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쉴 새 없이 움직이며 흐름을 통찰해야 한다.

황제의 리베로 리더십은 기품 있게 헤엄치는 오리의 수면 밑 두발을 닮았다.
진정한 황제는 멋지게 골을 넣고 포효하는 스트라이커가 아니다.
모든 동료들의 성공을 위해 물밑에서 쉴 새 없이 두발을 움직이는 모습이 바로 진정한 리베로 리더십,
황제의 리더십인 것이다.  (Le
derpia 2008 August에서 발췌 및 요약)

 

2. 경기 예절(스포츠맨십)

사이클의 황제라 불리는 ‘랜스 암스트롱’이란 선수가 있다.
사이클 대회 중 가장 권위 있는 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를 7연패한 선수이다.
그런데 이 세계적인 선수에게 라이벌이 있었다.
‘울리히’란 선수이다. 울리히는 암스트롱이 나타나기 전 이 대회의 우승자이기도 했지만,
암스트롱이 워낙 탁월하여 울리히는 늘 2인자가 되었다.


지난 2003년 투르 드 프랑스가 열렸을 때의 일이다.
그 때도 역시 맨 앞엔 암스트롱이 달리고 있었고 울리히는 바로 뒤에서 3위로 달리고 있었다.
언덕 위로 올라가던 중 구경하던 어린 아이의 가방이 불쑥 앞으로 나오면서
암스트롱과 2위로 달리던 선수가 그만 뒤엉켜 넘어졌다.
그러자 울리히가 선두가 되었다. 순간 울리히는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울리히는 일단의 선수들이 앞서 지나가도록 속도를 내지 않고 천천히 달렸다.
잠시
후 넘어졌던 암스트롱이 일어나 다시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오르기 시작하여,
넘어지기 전 암스트롱이 울리히 보다 앞선 거리까지 나가자,
울리히는 다시 속도를 높여 암스트롱과 경쟁을 시작했다.

그 경기도 울리히가 2위, 암스트롱이 1위로 끝이 났다.
그 전 2001년 대회 때 울리히가 언덕 아래로 달리다 넘어지자
암스트롱은 울리히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경주를 시작하였던 일이 있었다.
울리히는 그에 대한 고마움과 보답으로 똑 같은 스포츠맨십을 보여준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경쟁은 야만적인 동물의 세계와 같지만,
이같이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있는 정정당당한 경쟁은 인간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3. 폴로우십(동료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여자 핸드볼 3,4위전 경기에서
우리나라는 경기 종료 1분을 남기고 헝가리를 5점 차이로 앞서고 있었다.
이 때 우리나라 감독은 작전 타임을 부르고 그동안 한국의 핸드볼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고,
이 대회를 끝으로 은퇴하는 고참 선수들로 선수들을 교체하였다.

이 경기를 끝으로 다시는 이러한 승리의 감동을 경기장에서 맛볼 수 없는
나이 많은 고참 선수들에게 동메달을 확정짓는 감격을 누릴 수 있도록
주전 선수들인 후배들이 승리의 순간을 양보한 것이다.

이것을 바라보는 관중들이나 벤치에 있는 선수들, 코트에서 승리의 순간을 맞이한 고참 선수들은
모두 하나 같이 진정한 동료애를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다.

                                                                                                                                 ⓒ 스포츠둥지

Comm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