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필(아칸소대 건강과학과 교수)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한 이래 스마트폰 시장은 급속히 확장되었다. 올 2분기 전 세계 매출량이 4억 2천만대였다. 폭발적인 성장세이다. 기하급수적인 확장성은 ‘손 안의 컴퓨터’로 불리는 스마트폰의 다양한 기능성에 기초한다. Wi-Fi, 3G, 4G 기능은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고, 손가락 터치만으로 입맛대로 애플리케이션을 내려 받을 수 있는 것이 스마트폰의 최대 강점이다. 미국의 대표적 IT연구기업인 가트너사의 추정이다. 2012년에만 460억의 애플리케이션 다운로드가 이루어지고 2016년 그 추세는 3,100억 정도로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 스마트폰은 모든 분야의 혁명적 변화를 연출하고 있으며, 스포츠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에서는 '더블에스시대 (SS Age)시대'라는 말이 나왔다.


더블에스(SS)스마트 스포츠(Smart Sport)의 이니셜이다. 스포츠 마케팅 시대를 맞아 스마트폰이 스포츠 참여와 관람 형태에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용어이다. 주요경기의 티켓 구매는 물론이고 관중석, 집의 화장실, 놓쳐버린 결정적인 장면까지 어디서나 스마트폰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관심 있는 팀이나 선수의 기록, 순위, 동영상 등에 대한 정보도 언제 어디서라도 접속 가능하다. 자신의 의견을 실시간으로 소셜 네트워킹에 올릴 수도 있고, 심지어 관중석에서 매점으로 핫도그나 음료수 등의 주문도 가능하다.

스마트폰은 관람스포츠 뿐만 아니라 스포츠 참여 형태에까지 급격한 변화를 주고 있다. 운동량을 꼼꼼히 체크해주는 워크아웃 애플리케이션이나 골프 라운딩에서 볼의 위치나 거리를 안내해주는 GPS가 대표적인 예이다. 스마트폰과 스포츠의 융합은 스포츠의 관람 및 참여 형태를 급격히 변화시켰고, 그 결과는 스포츠산업 시장에서 새로운 가치 창출을 위한 움직임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경우 치열한 스포츠 시장에서 스마트폰을 통한 다양한 마케팅 기법과 전략의 개발이 스포츠 마케터들에게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최근 미국의 스포츠 구단들은 더불에스(SS) 시대를 맞아 애플리케이션 개발 경쟁에 나서고 있다. 애플리케이션은 스마트폰 시장 성장의 원동력이다. 애플리케이션은 앱스토어나 앱마켓을 통해 무료, 혹은 저렴한 가격으로 다운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애플리케이션 개발비 또한 저렴하다. 100불이면 애플 아이폰의 앱스토어에 애플리케이션을 등록할 수 있다. 이런 점에 착안하여 미국의 프로 구단들은 실시간 경기정보나 일정부터 후원기업의 프로모션 행사정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애플리케이션 콘텐츠를 개발하여 팬 참여 기회를 높여가고 있다. 2008년부터 모바일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NHL의 피츠버그 펭귄즈는 팬들이 아이폰뿐만 아니라 안드로이드나 블랙배리에서도 쉽게 애플리케이션을 다운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2010년에 출시한 구단 애플리케이션은 홈경기장인 컨솔에너지센터(Consol Energy Center)의 관중들을 위해 기본적인 경기정보는 물론 다른 각도에서 본 6가지 경기장면을 실시간으로 제공해주고 있다. 그리고 구단전용 애플리케이션에 후원기업의 로고, 제품, 브랜드를 광고함으로써 기업과의 후원계약 체결을 보다 손쉽게 이끌어 내고 있다. 프로구단뿐만이 아니다. 애플리케이션은 올림픽, 월드컵, PGA 메이저 골프대회 등과 같은 메가 스포츠 이벤트의 홍보수단으로도 빠르게 활용되기 시작했다. 미국의 NBC는 지난 벤쿠버 동계올림픽과 런던 하계올림픽에서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각종 경기결과 및 일정을 실시간으로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팬들이 함께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커뮤티케이션 공간도 제공했다. 그 외 애플리케션의 활용은 팬들과 쌍방향 커뮤티케이션을 위한 팬 데이터 확보에 있어서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10년 후의 세상 변화를 예측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스포츠 시장도 변하고 있다. 스마트폰과 스마트폰 구성의 핵심인 애플리케이션은 ‘저’비용으로 ‘고’마케팅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스포츠 산업 성장의 핵이 될 전망이다. 대한민국 스포츠 관련 단체들은 ‘더블에스(SS)시대’의 도래를 예측하며 어떤 준비를 해가고 있을까?

미국에서는 스포츠관련 전문 애플리케이션 개발회사들과 각종 스포츠 단체들이 ‘더블에스(SS)’시대에 발맞추어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고 있다. 스포츠는 기본적으로 기록, 순위, 영상 등 많은 데이터를 양산하는 산업이기에 IT산업과 찰떡궁합을 이룬다. 대한민국도 스포츠 산업시장의 질적·양적 성장을 위해서는 스마트폰이라는 뉴미디어를 수익성만 추구하는 공급자의 입장이 아닌, 팬들과의 소통을 최우선시하는 수요자의 입장을 고려한 다양한 콘텐츠 개발에 앞 다투어 나서야 할 때이다. 스포츠 산업뿐이겠는가? 꿈을 지닌 모든 스포츠맨은 ‘더블에스시대’라는 말을 깊이 인식하지 않는다면 자기분야에서 살아남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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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하남길(경상대학교 교수)

 

 

            5년만의 대통령 선거철이다. 후보 반열에 오른 인물들은 제각기 국정 운영능력과 도덕적 신뢰감을 돋보이게 할 묘안 찾기에 바쁘다. 후보 주변의 전문가 그룹은 보통 사람들의 표심을 자극하는 포퓰리즘 공약을 쏟아낸다. 보통사람의 표가 더 많기 때문이다. 국민 또한 자신의 삶과 직결된 공약에 깊은 관심을 갖게 마련이며, 체육인이 체육정책 공약에 관심을 갖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부각된 체육정책이나 스포츠 복지정책 공약은 잘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 후보군에 스포츠 애호가가 없는 탓일까? 참모진에 체육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자의 부재 탓일까?

 

선진국의 지도자들은 스포츠 애호가가 많았고, 일찍이 체육 진흥 정책과 스포츠 문화 창달 정책을 펼쳤다. 영국 국왕 헨리 8세와 제임스 1세는 탁월한 스포츠맨이었던 탓에 스포츠를 적극 권장했다. 특히 17세기의 국왕 제임스 1세는 《왕의 스포츠 교서》를 내리고, 국민의 건전한 스포츠 참여를 적극 권장했다. 왕실의 운동경기애호주의(athleticism) 전통은 19세기 ‘영국 스포츠 혁명’으로 이어졌고, 스포츠 교육을 통해 형성된 영국 젊은이들의 역동적인 기질은 대영제국 건설의 자양분이 되었다. 섬나라라며 늘 깔보았던 영국이 세계 최강이 된 배경에 스포츠가 있었다는 것을 간파한 프랑스 지도층은 영국 스포츠를 교육체계 속에 적극 수용하는 개혁을 단행했다. 영국이 아닌 프랑스에서 올림픽이 제창되고, FIFA가 탄생한 것도 역사적으로 같은 맥락이다. 20세기 최강국 미국의 대통령들도 스포츠를 더욱 즐겼으며, 체육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케네디대통령의 체육 가치관?

 

 

미국 초대 대통령 워싱턴은 사냥과 승마 광이었다. 2대 애덤스는 세일링, 레슬링, 수영, 스케이팅 애호가였다. 제퍼슨(T. Jefferson)은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라는 존 로크의 충고를 예로 들며 국민에게 체육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가장 뚜렷한 체육 가치관을 지닌 대통령은 케네디(J. F. Kennedy)였을 것이다. 그는 “연약한 미국인(Soft American)”이란 기고문에서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부처는 체육 진흥과 체력 증진이 미국의 기본적이고 일관된 정책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국가 건설에 있어서 정신적, 지적 자질에 건강과 신체적인 활력이 필수적으로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신념이 진리라는 것은 어떤 다른 나라의 역사보다 미국의 역사가 생생하게 증명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 역사에도 문무겸전(文武兼全)의 상징인 정조(正祖)와 같은 훌륭한 국왕이 있었으나 20세기 지식인들이 체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 것은 일제의 조선강점 직전이었다. 민족주의 역사학자 문일평은 체육은 국가의 운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그러나 서양에서 이미 근대 올림픽이 개화했을 무렵 테니스를 접한 황제는 “저렇게 힘든 일을 손수하다니 참으로 딱하오, 하인에게나 시킬 일이지…’ 라며 혀를 찼다. 조선의 문약(文弱)한 전통이 계승되어졌던 대한민국이 1960년대부터나마 체육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군부 정권이 탈정치화 수단으로 스포츠를 이용했다는 비난도 있다. 하지만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체육과 스포츠의 진흥은 국가발전과 국민의 건강, 그리고 국민의 행복지수 제고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으며, 미래에도 체육과 스포츠의 순기능이 유지될 것이라는 점에서 대통령 후보도 체육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는 인물이어야 한다.

 

 

21세기 체육진흥정책과 스포츠 복지정책은 국민성 강화 운동이며, 국민 건강 증진 운동이자 국민의 행복 추구 운동이다. 대통령 후보는 우선적으로 국민의 고달픔이나 일자리 걱정을 해야겠지만 삶의 질과 직결된 국민의 건강과 행복 걱정도 해야 한다. 대통령 후보가 케네디 대통령처럼 체육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갖고 21세기형 체육진흥정책이나 스포츠 복지 정책을 공약으로 낸다면 많은 국민이 행복해할 것이다. 투표권을 가진 많은 국민이 스포츠맨이거나 스포츠 애호가들이고, 자신의 건강과 행복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오동섭 외 2(2001). 체육세계사. 서울 : 형설출판사. 383.
이규태(1969). 개화백경. 서울 : 신태양사. 378-379.
태극학보 1906. 5. 12; 李學來(1990). 韓國近代體育史硏究. 서울 : 지식산업사. 39.
하남길(2007). 국민체육진흥운동의 방향 설정에 관한 시론. 한국체육학회지 46(1). 1-20. 
Adams, J.(1961). Diary and Autobiography of John Adams, L. H. Butterfield, (ed.) Vol. I.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61). 100.
Davis, Thomas R.(1970). "Sport and Exercise in the Lives of Selected Colonial Americans: Massachusetts and Virginia, 1700-1775," Unpublished Ph. D. dissertation, University of Maryland.
Sports Illustrated, 1962.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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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하남길(경상대학교 교수)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산다.”라는 말이 있다. 외길 인생을 살아가라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모두에게 인생의 선택은 자유이다. “끝나기 전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야구 선수 요기 베라의 말처럼 인생은 다 살아봐야 아는 것이다. 시냇물이 굽이굽이 돌며 흐르듯 인생의 굽이마다 다양한 선택의 기회가 올 수 있고, 새로운 선택도 할 수도 있다. 씨름 스타 강호동은 연예계로 진출하여 일단은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준 셈이다. 앞으로 그러한 사례는 더 늘어날 것이다. 스포츠맨 정치인도 나와야 한다. 정치란 종합 예술과 같은 것이어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집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근 한 태권도 스타의 정계진출 과정은 표절 시비로 파열음을 내고 있지만 외국의 경우 성공사례가 많으며 밥 마티아스(Bob Mathias, 1930–2006)의 변신은 스포츠맨이 정치가가 되고자하면 어떤 자세로 운동을 해야 했는지를 보여준다.

 

 

정치가가 된 스포츠 영웅 밥 마티아스

 

마티아스는 1948년 제14회 런던 올림픽 육상에서 17세의 최연소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 강한 유연성이 요구되는 체조 같은 특수 종목이라면 몰라도 육상 중에서도 가장 힘겹다는 10종 경기에서 청소년이 우승을 안았으니 모두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930년 캘리포니아의 툴라(Tulare)에서 네 자녀 중 둘째로 태어난 마티아스는 유년기부터 미식축구와 육상에 탁월한 자질을 보였다. 그는 단번에 10종 경기 미국 선수권자가 되어 올림픽 출전권을 얻었고, 만 18세가 되기 전인 1948년 런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던 것이다.

 

금메달리스트로서 미국 최고의 아마추어 선수로 선정되었던 밥 마티아스의 진군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학구적인 자세를 견지하며 육상선수에서 미식축구선수, 배우, 정치가로 변신했다. 금메달리스트가 된 이후 연습 때문에 학업성적이 나빠지자 과감하게 운동을 쉬고 펜실베이니아 기숙학교 키키스쿨로 옮겨 공부에 전념했다. 그리고 스탠포드대학으로 진학했다.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하며 육상과 미식축구 선수를 겸했다. 1951년 로즈볼에서 스탠포드 대학의 풀백을 맡았다. 그리고 1952년 핀란드 헬싱키 올림픽 10종경기에 출전하여 912점을 획득, 최초의 올림픽 10종경기 연속 제패 자가 되었다. 더 큰 올림픽 영웅이 된 그는 육상 은퇴를 선언하고 1952 미식축구 선수로 활동을 재개했다.

 

1953년 스탠퍼드 대학을 졸업한 그는 미식축구 드래프트에서 워싱턴 레드스킨스의 지명을 받았으나 포기하고, 결혼을 한 그는 부부가 영화계로 나섰다. 1954년 영화 『밥 마티아스 스토리(The Bob Mathias Story)』에 출연했고, 해군 복무를 마친 이후 1960년까지 국무성 친선대사로 활동했다. 그리고 존 웨인(John Wayne)에게 고용되어 영화 『차이나 돌(China Doll)』에 출연했다. 인기를 얻은 그는 존 웨인과 함께 TV 시리즈에도 출연하며 또 다른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1966년 마티아스는 다시 변신했다. 정계를 노크한 것이다. 하원의원에 출마한 그는 14년 동안 의원직을 유지했던 거물 정치가 하겐(Harlan Hagen)을 11% 포인트 앞서며 당선되었고, 어려움 없이 재선에도 성공했다. 정계에 진출한 그가 늘 승리만 한 것은 아니었다. 1974년 그의 지역구가 변하면서 근소한 차로 크렙스(John Hans Krebs)에게 패했고, 1976 제너럴 포드 재선운동에 가담했으나 실패로 끝나며 정치 인생을 접었다. 1976년엔 이혼을 겪기도 했다. 1988년 시골 프레스노 카운티로 돌아와서 살다가 목에 생긴 종양으로 투병하다가 사망했다. 그러나 한 스포츠 영웅은 그의 생을 통해 많은 것을 보여주었다. 1998년 6월 6일 그의 고향 툴라에는 첫 금메달 획득 50주년 기념행사 "어크로스 필드 오브 골드(Across the Fields of Gold),"가 열렸고, 명사 300여명이 모여 그를 추모했다.

 

 

스포츠 영웅, 밥 마티아스가 스포츠맨에서 배우, 정치가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은 기초에 충실했기 때문이었다.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충실히 받았고, 언제나 학구적인 자세를 견지했던 것이다. 운동선수가 금메달을 따려면 기초체력이 튼튼해야 하듯이 우리의 스포츠 영웅들이 훌륭한 학자, 국제적인 스포츠 행정가, 성공적인 정치가가 되기 위해서는 기초 교육을 충실히 받아야 한다. 그럴 기회를 놓쳤다면 항상 지식을 쌓고, 덕성을 계발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허상을 감추고 스포츠 영웅으로서의 인기만 앞세워 어설픈 도전을 했다가는 “송충이는 솔잎만 먹어야한다.”는 국민의 비아냥거림을 살 것이다. 설사 한번 쯤 성공하더라도 자신과 많은 체육인들에게 상처까지 남기게 될 것이다. 스포츠 영웅이 정치에 뜻을 두려면 마티아스의 일대기라도 읽고, 고해성사를 하고, 자신의 인격 닦기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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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하남길(경상대학교 교수)



지리, 학적 환경 속에서 생계나 생존을 위해 생성된 신체 활동이 하나의 문화로 정착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정치사회적 구조와 이념이었다. 정치의 형태나 정치인의 성향에 따라 스포츠 문화는 시들기도 하고, 개화하기도 했다. 예컨대 로마의 검투사 경기는 전제 군주가 귀족집단의 정치적 무관심을 촉진하기 위해 빵과 함께 제공한 서커스의 일부로 발달된 관중 스포츠 문화였다. 중세 봉건사회의 스포츠 문화도 그러한 사실을 보여준다. 정교일치(政敎一致) 시대에서 쾌락적인 놀이 문화는 금욕적 생활을 요구한 정치와 종교 체제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고, 다만 지배계급이었던 기사(騎士) 집단의 토너먼트나 쥬스트와 같은 마상경기가 대표적인 운동경기였다. 잉글랜드 튜더 왕가에서 왕들의 스포츠 애호전통으로 인해 론 테니스(lawn tennis)의 전신인 레알 테니스(Real tennis)가 발달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근대 스포츠의 발달과정에서도 사회적 구조와 의식의 변화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시골 서민 계급이 도시로 이동했고, 그들은 무역이나 상업으로 돈을 벌어 신흥 중산계급으로 등장했다. 그들도 신사계급처럼 자녀를 좋은 학교에 보내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서민의 놀이 문화가 중산계급의 엘리트 교육기관으로 스며들어 하나의 스포츠로 체계화되었다. 축구의 진화과정은 사회계급 구조의 변화와 직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수백 년 동안 지배계급이 천시했던 서민의 군중 축구(mob football)가 엘리트 교육기관이었던 퍼블릭 스쿨(public school)로 유입되어 럭비 스쿨에서 럭비풋볼(rugby football), 케임브리지 대학에서는 오늘날 사커(soccer)의 전신인 케임브리지 룰 풋볼(Cambridge rule football)로 탄생했다. 농구와 배구의 출현은 의식의 변화도 새로운 스포츠 문화의 생성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통적으로 미국의 신교도는 일요일에 스포츠 활동을 금하는 잉글리시 선데이(English Sunday) 전통을 지켜 왔으나 19세기 말 미국 YMCA가 이러한 전통을 깨고 영국의 강건한 기독교주의 사상을 수용하게 되었으며, 일요일에도 운동경기를 즐기는 애슬레틱 선데이(Athletic Sunday) 전통을 세웠다. 미국 YMCA가 농구와 배구를 창안한 것은 이러한 역사와 직결되어 있다
.

세상의 모든 사물은 아는 것만큼 보인다. 스포츠맨은 스포츠의 역사를 확대해서 볼 수도 있어야 하고 축소해서 볼 수도 있어야 한다. 시선의 초점을 다양한 각도에서 맞추어 볼 줄 알면 더욱 좋다. 스포츠의 의미 파악과 보는 즐거움이 한 층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각종 스포츠 종목의 역사를 현미경으로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것이나 전체의 흐름을 읽을 수 없다면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사람처럼 스포츠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스포츠 문화사의 큰 흐름을 확대경으로 비추어보면 뚜렷이 잡히는 생성과 진화의 변수는 인간의 생계와 생존, 지리생태학적 환경, 정치사회적 구조와 의식의 변화 등이다.(hng5713@g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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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이승건 (서울대학교 강사)


현대철학자들 중에는 현대화의 과정을 이성을 통한 합리화의 과정이라고 보곤 한다. 특히 이러한 합리화의 가장 빛나는 실현은 과학․공업․기술의 발전을 통한 자연의 정복을 꼽기도 한다. 그러나 현대화의 합리성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을 자멸의 수렁으로 몰고 갔다는 패러독스 또한 지적되고 있다.

즉 지금까지 과학적 학문과 기계적 발명의 발전을 인간 상태를 구제해 주는 가장 확실한 수단으로 찬양해 온 모더니스트들이 관점에 대해 반-모더니스트들은 기계의 인간화가 인간성의 기계화라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고 있다는 우려의 진단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기계화에 대한 해독제로서의 예술에 대해 그 현대적 기능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기술(技術)과 예술(藝術)은 서로 대척점에 서 있는 불구대천의 원수관계처럼 보인다. 아니, 기계화의 과학시대에 대해 예술의 감성(pathos)이 온전치 못한 사회 상태를 치유하고 있는 듯한 형국이다. 언제부터 이러한 관점이 나타난 것일까?



                                     우리 전통문화에서 기술(공예)를 상징하는 치우천황



원래 예술이라는 용어는 그리스어 ‘테크네(technē)’를 번역한 라틴어 ‘아르스(ars)’에서 유래했다. 그러나 테크네와 아르스가 오늘날 ‘아트’와 동일한 의미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리스 시대의 테크네 ― 로마와 중세, 심지어는 근대 초기인 르네상스 때까지도 쓰였던 아르스 ― 는 솜씨, 즉 물품, 가옥, 동상, 배, 침대, 단지, 옷 등을 만드는 데 필요한 솜씨뿐만 아니라 군대를 통솔하고 토지를 측량하며 청중을 사로잡는데 필요한 솜씨까지를 뜻했다. 이 모든 솜씨들이 ‘테크네’라 지칭되어 건축가, 조각가, 도공, 양복장이, 전략가, 기하학자, 변론가 등의 ‘테크네’라 불렸던 것이다.
 

이와 같은 예술의 용어에 관한 현대 이전의 개념 속에는 예술과 기술의 구분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이때의 솜씨는 규칙에 대한 지식에서 발휘되는 것이어서 규칙과 법칙 없이는 테크네도 존재할 수 없었던 터라, 예술 또한 지식의 결과로서 즉 이성(logos)의 산물로서 과학기술과 구별될 수 없었다. 결국, 현대화의 합리성으로서 기술에 대한 경계는 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나타난 현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기술을 상징하는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



그렇다면 스포츠에 있어서 기(技)와 예(藝)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스포츠가 기술의 결과인지 예술의 결과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스포츠 경기를 관람할 때 열광하며 박수를 보내기도 하고 아쉬워하며 야유를 보내기도 한다. 스포츠의 어떤 면이 우리를 이와 같은 상태로 이끌고 있는 것일까? 바로 스포츠맨의 경기를 이끌어가는 플레이와 플레이로서 진행되는 경기 그 자체가 우리를 열광케 하는 것이다. 즉 어떤 때는 스포츠맨의 멋진 플레이에 매혹당해 그에게 그리고 경기 자체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며, 또 어떤 때는 어처구니없는 그의 플레이에 실망하여 그 경기에 대해서도 비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때의 스포츠맨의 플레이는 기술로 읽어야 하는가? 아니면 예술로 읽어야 하는가? 모든 스포츠맨은 자신의 분야에서 경기력 향상을 위해 경기기술을 갈고 닦을 것이다. 또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여 연마하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할 것이다. 스포츠맨은 스포츠 경기와 관련된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을 담금질하여 관중 앞에서 경기를 치른다고 말할 수 있다. 이 경우 스포츠는 스포츠맨에 의한 경기기술의 완벽한 소화라는 명제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스포츠는 예술적인 측면에서 이해되기도 한다. 본디 예술은 창작자와 감상자 그리고 그 창작의 결과로서 작품이라는 기본 구조 속에서 성립된다. 스포츠 또한 경기수행자로서 스포츠맨과 관중 그리고 관람꺼리로서 경기 자체라는 구조를 갖고 있다. 따라서 스포츠맨은 마치 예술분야에서의 창작자가 그러하듯이 숙련된 기술과 결합된 결과로서 경기 그 자체를 만들어 낸다. 여기에 관중들은 스포츠맨들에 의해 제공되는 관람꺼리로서 경기를 관전하며 즐거워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하는 감정의 체험을 겪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포도의 표현으로 감성(예술)을 
                                         상징하는 디오니소스




따라서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스포츠에 있어서 기(技)와 예(藝)는 현대철학자들의  주장처럼 서로 어울릴 수 없는 두 성질로서 따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는 이심동체(異心同體)인 것이다. 마치 이것은 그리스 신화 속에서의 기술을 상징하는 헤파이스토스처럼, 그의 기술력이 만든 올림포스의 신전과 공예품들이 더 없이 아름다웠다고 하는 찬사 속에서 확인되는 사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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