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이부영 (스포츠둥지 기자)

 

             투르드코리아(Tour de Korea) ‘팀 통역’은 ‘님도보고 뽕도따는’ 기회였다. 전국 여행을 하면서 외국 선수들을 위해 통역을 했기 때문이다. 대회 시작 하루 전, 영국의 라파콘도르JLT팀을 만나는 날. 처음 본 사람들과 잘 친해지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쉽게 범접할 수 없는 포스가 느껴졌다. 라파콘도르팀과 함께 할 10일간의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라파콘도르는 6명의 선수와 2명의 마사지사, 자전거 정비사, 코치등 총 10명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들 모두 로드사이클 전문가들이다. 라파콘도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들의 컨디션이다. 팀 통역은 주로 팀 버스로 마사지사들과 함께 레이스 중간 보급지점에서 보급을 도와준다. 보급이 끝나면 결승점에 돌아가 선수들과 레이스 내내 선수들 뒤를 따르며 코칭했던 감독차를 기다렸다가 숙소까지 안내해 주는 역할을 한다.

 

경기는 매일 10시에 시작되는데 경기 시작 한 시간 전 출발지점에 도착해 선수들은 몸을 풀고(라파콘도르팀은 따로 몸을 잘 풀지 않았다. 주로 앉아서 선크림도 바르고 긴장을 푸는 대화들을 즐겨했다), 마사지사들은 레이스 중 사용할 물, 도시락, 얼음을 배급받는다. 경기시작 30분 전 선수들은 싸인보드에 서명을 하는 세레모니를 갖고 준비가 거의 완료되는 시작 15분 전, 마사지사들과 팀가이드를 태운 팀버스는 먼저 보급지점으로 출발한다.


 평균 하루 4시간 이상씩 달리는 선수들을 위해 마사지사들은 선수들이 보급지점에서 먹을 간식들과 경기 후 영양보충을 할 음식을 준비한다. 우리팀 마사지사들은 다른팀에 비해 더욱 간식에 신경을 많이 써 다른팀에 비해 마트를 자주 갔었다. 처음 마트에 간 날 다른팀들은 빵, 과일, 시리얼등을 사느라 바쁜데 우리팀이 찾는건 다른게 아니라 ‘쿠쿠밥통’이었다.  차라리 햇반을 사자는 제안을 했지만 그들의 선택은 밥통! 작년 대회 때 ‘쿠쿠밥통’을 샀었는데 기능도 너무 좋고 선수들 영양보충에 밥만큼 좋은게 없었다며, 대회 내내 흔들리는 버스안에서 우린 밥에 간장, 참치를 넣고 비벼 만든 ‘간장밥’을 준비했다. 예상대로 선수들은 기가막히게 잘 먹었다. 경기 도중엔 에너지바, 초컬릿 등 단 간식만 먹었으니 짭쪼름하고 담백한 간장밥이 그들에겐 꽤 괜찮은 영양보충식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다가가기 힘들었던 팀 식구들과 밥도 같이 만들고 사이클에 ‘사’자도 모르던 내가 경기에 관심을 갖게 되며 선수들의 경기에 대해 같이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점점 라파콘도르팀과 친해지게 되었다. 가끔 날씨가 안 좋은날엔 결승점에 선수들이 흙범벅이 되어 돌아온다. 그 모습이 얼마나 대견하고 멋지던지.

 

 역시 스포츠는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 이부영

 

만약 우리팀에서 일등으로 들어온 선수 혹은 전날 레이스에 비해 월등하게 기록이 상승하지 않는 한 도핑 받을 확률이 낮기 때문에 별 일 없는 한 바로 숙소로 돌아가게 된다. ‘원 앤 굳 레스트(‘won and good rest’ 이기고 잘 쉬자)’! 이겼든 졌든 일단 경기가 끝났으면 숙소로 들어가 선수들은 마사지를 받으며 절대 안정을 취한다. 매 레이스마다 지역이 바뀌기 때문에 그 지역 명소, 맛집을 관광할 법도 한 데, 절대 관광이란 없다. 매 레이스가 끝나갈 무렵 팀 모두 경기도중 피곤했을텐데 경기가 끝나고 나서부터는 마사지사들과 정비공의 본격적인 임무가 시작된다. 마사지사들은 선수들의 노곤했던 몸을 풀어주고, 정비공들은 경기내내 선수들과 함께 했던 자전거를 정비한다.

 

모래알만한 크기의 자갈도 다 잡아 빼내는 James!! (좌),  라파콘도르팀과 함께(우) Ⓒ 이부영

 

마사지와 자전거수리가 끝나면 석식시간이 돌아온다. 모든 팀들이 한 장소에 테이블별로 나눠 앉아 저녁을 한다. 저녁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며 오늘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하며 웃고 떠들며 긴장을 풀기도 한다. 하루는 선수들에게 궁금한 점이 생겼다. 4시간 이상씩 레이스를 할 때 용변은 어떻게 해결하냐는 질문에, 선수들은 그냥 길에서 용변을 볼 수 밖에 없다는 충격적인 답변을 해줬다. 혼자 용변을 해결하기 어려워 뒤에서 등을 한 대 툭 쳐주면 그 힘에 시원하게 볼 일을 본다는 재미있는 이야기까지 스스럼없이 해준다.

 

매 코스가 너무아름다운 절경인데, 혹시 구경은 하냐는 질문에 그들은 솔직히 직선구간(스프린트)에서는 여유가 없지만 굽이진 구간에서는 여유가 있어 한국의 아름다운 절경을 감상하며 경기에 임한다고 한다. 하지만 절대 경기기술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저녁 식사가 끝나면 7시반쯤, 전략회의를 통해 선수들의 부족했던 점을 지적하며 내일의 레이스를 준비한다. 물론 본 경기때는 감독차(팀카)에 자리가 없어 경기를 가까이서 볼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선수들이 경기하는 모습을 한번만 봤으면 좋겠다는 나의 간절함이 감독에게 전해졌는지 TTT(Time trial test. 단체구간독주;특별경주)때 팀카를 탈 수 있도록 허락이 떨어졌다.

 

자전거 정비를 맡고있는 제임스(James)는 레이스 중 자전거 타이어의 문제가 생기면 단 20초 내외로 교체 한 후 선수들이 레이스 페이스를 되찾아 경기를 할 수 있게 돕는다고 한다. 타이어 교체시간은 단 20초 내외. 영화배우로 착각할 정도로 잘생긴 라파콘도르팀의 코치 탐(Tom)은 시작과 함께 평소때와 다른 매서운 눈빛으로 변한다. 레이스 중 좀처럼 선수들이 힘을 내지 못할 땐 쓴 소리도 서슴지 않게 내 뱉었지만, 오르막길처럼 힘든 코스에서 선수들이 포기하고 싶어질 때는 목청껏 힘내라고 응원해주던 진정한 멋진 코치. 고단했던 레이스를 끝내고 돌아온 선수들에게 다가가 “오늘 잘했다고, 우리팀이 최고였다”며 자신감을 힘껏 불어넣어줘 선수들의 사기진작을 충족시킬 줄 알았다.

 

 선수들의 자전거를 세세하게 정비해줬던 제임스와 선수들의 피로를 풀어줬던 팀(Tim)과 롭(Rob)덕분이었는지 평균 6위쯤 하던 우리팀이 5일째가 넘어가는 레이스부터 껑충 상위권으로 뛰어들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결국엔 영국의 라파콘도르팀이 프로컨티넨탈팀들을 제치고 당당히 1위를 거머쥐었다. 선수들의 땀, 경기에 대한 부담감과 좌절감, 성취감을 함께 느꼈기에 그들의 1위는 곧 나의 1위기도 했다.

 

우리팀 의젓한 귀염둥이 마이크가 시상대에 올라가 개인 종합우승을 나타내는 옐로우저지를 입었을 때 여전히 식지 않은 그들의 땀 만큼이나 뜨거운 눈물이 내 눈에서 흐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대회 종료 후 다음날 떠날 영국 라파콘도르 팀을 위해 한국팬들이 2013 콘도르 바비큐 파티를 준비했다. 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팀과 함께 숙소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마이크는 대회가 끝나고 난 후의 허전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물론 레이스 뿐만 아니라 경기 후 쏟아지는 인터뷰 세례, 도핑 등 피곤한 점들이 많았지만 정신없는 일상에서 내일이면 다시 조용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서글프다고 털어놨다. 그들이 떠난 후 페이스북 등을 통해 연락을 주고 받았다. 여전히 다음 대회를 위해 오늘도 열심히 페달을 밟고 있다는 라파콘도르팀.

 

 

경기가 시작되면 마음으로 선수들과 함께 달렸던

2013 투르드코리아 팀 통역 식구들, 대교CSA, KSPO식구들과 함께. Ⓒ이부영

 

 

팀 통역. 단순한 통역이 아닌 레이스를 위해 팀과 함께 달리고, 응원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때로는 쳐진 분위기를 웃음바다로 만들 수 있는 나는 라파콘도르 팀의 7번째 선수였다.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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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진경 (스포츠둥지 기자)

 

 

시작은 전화선을 타고
5월 어느 날, 아는 교수님으로부터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너 이번에 인천에서 하는 동아시아농구대회에서 통역으로 일 해볼래?” 순간 떠오른 생각들, 평소에 좋아하던 국가대표 농구선수들을 직접 볼 수 있겠구나. 경기도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으려나? 하고는 싶은데 과연 내 영어실력으로 될까? 등등. 하지만 영어를 잘하진 못해도 두려워하지 않기에 의사소통에는 문제없다는 믿음과 농구에 대한 열정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점을 내세워서 과감하게 오케이했다. 이렇게 나의 통역기는 시작되었다.


업무를 시작하기 전부터 나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있었다. 8일 동안 선수들과 같은 숙소에 머무르기 때문에 짐을 싸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었던 것. 결국에 큼지막한 짐가방 하나가 가득 찼다. 꼭 해외여행 가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좋았던 기분도 잠깐, 무거운 캐리어를 질질 끌면서 집인 분당에서 송도에 위치한 대회 기숙사까지 가는 길은 결코 해외여행 길의 비행기에서 느끼는 안락함은 아니었다. 그래도 어렵게 도착한 숙소는 깔끔하고 좋아서 고생한 보람은 있었다. 뉴욕주립대의 송도캠퍼스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였는데 새로 지어서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훌륭했다.

 

깔끔한 숙소 시설과 식사중인 홍콩 팀 ⓒ최진경

 

 

홍콩 팀과의 첫 만남

아이러니하게도 첫 업무를 위해 향한 곳은 인천공항. 숙소에 던져놓고 온 캐리어를 다시 끌고 입국구역이 아닌 출국구역으로 향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면서 난 일주일동안 내가 맡을 팀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 입국 게이트 앞에서 생전 본적도 없는 외국인들을 기다리자면 도대체 어떻게 서로 알아볼까 하는 궁금증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기다리는 이들은 홍콩 국가대표 농구선수! 그것도 국가대표! 문을 나오는 순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결코 작은 키가 아닌 (181cm) 본인을 난쟁이로 만들어 버리는 장신 둘이 문 뒤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반갑게 홍콩 국가대표 팀인지를 물었더니 역시나. 뒤이어 줄지어서 같은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과 스탭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들이 나의 8일 일정을 좌지우지할 사람들이기 때문에 주의 깊게 그들을 스캔. 다행히도 첫 느낌은 대단히 좋았다. 나이도 나랑 비슷한 또래로 보이고 까다롭지 않을 것 같은 느낌? 그중에서도 나와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될 팀매니져 앤디는 왠지 영화에서 본 것 같은 호의가 가득한 선량한 중국인 아저씨? 좋아. 홍콩 팀 첫인상 굿!

 

 홍콩 팀과 같이 숙소에 도착해서 배정된 숙소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 왠지 익숙한 사람들이 같이 엘리베이터에 탑승, 그들이 나누는 대화가 들리는데 정현이형 이라는 소리가 들린다. 정현이형? 이정현? 하고 옆을 보니 빡빡민 머리에 미처 못 알아 봤던 KGC 이정현이 내 옆에 서있다. 꽤나 신기한 상황이지만 나는 일하러 온 사람이니 마치 이정현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듯 새침하게 엘리베이터 상황판만 응시. 평소에 유명인과 사진을 찍거나 싸인을 받는 취미는 없기에 그런 생각은 안 들지만 주제넘게 농구 경기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 농구는 볼 때 보다 직접 같이 해보면 실력이 확실히 느껴지는데 국가대표랑 같이 뛰면 어떤 느낌이 들려나.

 

대한민국 농구의 제자 홍콩농구

이정현이 속해 있는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연습은 못 보지만 홍콩 팀이 연습하는 걸 보면서 대리만족을 삼을까. 사실 이번 대회 전에 홍콩팀은 마카오와 함께 최약체라는 확인 안 된 정보가 떠다니는 것을 입수했기 때문에 크게 기대는 안했다. 그런데 연습하는 걸 보니 역시 국가대표는 국가대표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훈련하는 방식이나 몸 푸는 모습이 어딘가 되게 낯이 익는 느낌이다. 농구 연습이야 전 세계가 다 똑같으려니 생각하던 찰나 맞은편에서 훈련하고 있는 마카오 팀은 전혀 익숙하지가 않다.

 

 때 마침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인상 좋은 앤디 아저씨, “이 훈련법들은 한국인 코치로부터 배운 거다. 신동한, 신동한 아니?” 라고 물으며 신동한 코치와 같이 찍은 사진까지 보여준다. 아련한 기억에 옛날에 그런 이름을 가진 선수가 있었던 것도 같아서 알 것 같다고 했더니 대단히 좋아한다. 그러면서 얘기를 계속하는데 들어보니 신동한 코치가 홍콩에 한국식 농구를 가르쳐서 그들의 기량이 많이 향상된 모양이다. 그러면서 한국 농구는 자신들의 스승이라고 말하는 앤디의 말투에는 분명히 그에 대한 고마움, 나아가 대한민국에 대한 고마움이 서려있었다. 이것이 바로 살아있는 스포츠외교가 아닐까 생각됐다.

 

 안 그래도 마음에 들었던 홍콩 팀이 우리 대한민국의 제자 팀과 같다 하니 홍콩 팀에 대한 애정이 더욱 듬뿍 생겼다. 기왕이면 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뒀으면 하고 바랬다. 첫 날 세 번째 경기로 펼쳐질 홍콩의 상대는 중국. 중국 팀을 숙소 식당에서 봤는데 진짜 엄청나게 컸다. 역시 20억 분의 사나이라고 할 만 해. 궁금해서 프로필을 찾아보니 센터 두 명이 219cm, 214cm...... 홍콩 팀 최장신 선수가 207cm 엄청나게 큰 키인데 12cm가 더 크다. 내 기준으로 생각하면 내가 193cm짜리 선수를 상대해야 한다는 얘긴데 애초에 게임이 안 된다.

그래도 왕년의 NBA스타 아이버슨이 말했다. 농구는 신장이 아닌 심장으로 하는 거라고!

 

대회 시작. 기자회견 통역까지

오후 6시에 열리는 경기에 앞서서 4시에는 한국과 일본의 경기가 있었다. 이번 대회에서 최부용 감독이 가장 신경써서 준비한 상대로 일본을 꼽고 방열 대한농구협회장이 승리의 필요성을 역설했을 정도로 중요한 경기였다. 보고 싶었는데 마침 홍콩 팀도 한국 팀의 경기를 보고 싶다고 한다. 역시 스승의 경기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이유가 뭐든 나로서는 Thank you! 재밌는 경기를 기대하며 관중석에 홍콩선수단과 앉았다. 그런데 경기는 예상과는 다르게 원사이드. 한국의 압도적인 경기력. 특히 KGC 듀오 박찬희와 이정현의 속도가 압권. 굳이 같이 해보지 않아도 느껴지는 국가대표의 위엄. 같이 뛰어보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이어서 열린 홍콩과 중국의 경기, 전혀 기대하지 않은 채로 벤치에 앉았다. 내가 살면서 농구 팀 벤치, 그것도 홍콩 국가대표팀의 벤치에 앉을 줄이야. 그런데 경기는 예상과는 다르게 대 접전! 도대체 홍콩이 최약체라는 정보는 어디서 나온 유언비어였던 거냐. 심지어 전반이 끝난 시점에서 리드하고 있는 팀은 홍콩이었다. 재밌는 건 내가 이게 무슨 상황이야 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홍콩 선수들도 그랬던 것 같다. 홍콩 선수와 스탭 대다수가 전반전 스코어를 본인의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결과적으로 경기 결과는 후반전에 본 실력을 발휘한 중국의 완승이었다. 하지만 홍콩 선수단의 분위기는 승리 팀인 중국보다 더 좋았다. 경기 후 기자회견실에서 오늘 맹활약한 에이스 로우이탱과 감독의 인터뷰가 있었다. 이번 일을 시작하기 전에 유일하게 걱정한 자리인 만큼 상당한 긴장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여기서 15년 농구인생이 빛을 발했다. 까다로울 수 있는 질문에도 포스트업과 페이스업 같은 농구 용어를 사용해서 알아듣기 쉽게 질문했고 이런 단어를 알고 있는 기자들 또한 나의 통역에 만족하는 눈치였다. 생에 첫 기자회견장은 다행히도 성공이었다.

 

홍콩과 중국의 경기장면 ⓒ최진경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승복하는 우리는 '아마추어'다.
다음날 이어진 대회 둘째 날 경기. 실질적으로 홍콩에겐 결승과도 같은 몽고와의 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홍콩으로서는 어차피 대회 우승보다는 5위까지 주어지는 아시아대회 진출이 목표였다. 몽고를 이겨서 결선리그에 진출하면 자동적으로 4위를 확보한다. 입국한 날부터 내내 미소를 잃지 않던 홍콩 팀이었지만 이날만큼은 진지했다. 이날 경기에 앞선 훈련에서 몽고와 같은 시간에 배정된 것을 두고 클레임을 걸 만큼 경기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덕분에 나도 경기 스케줄을 조정하기 위해서 양쪽과 소통하느라 애를 먹었다. 재밌는 건 어느새 나도 모르게 홍콩 팀의 입장에서 그들을 대변하고 있었다. 홍콩 땅 한번 밟아보지 못한 내가 3일 만에 홍콩편이 되다니 역시 스포츠는 흥미롭다.

 

그렇게 비장하게 시작한 대 몽고전, 경기는 시종일관 시소게임이었다. 게다가 이번 대회 대한민국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응원단을 보유한 몽고의 일방적인 응원은 더욱 경기를 불타오르게 만들었다. 자신들의 모국 팀이 수천킬로 떨어진 우리나라에까지 와서 경기를 하는 모습이 좋게 보일 법도 하지만 난 이미 반은 홍콩인, 상당히 보기 싫었다. 아무리 통역의 신분이긴 하지만 어쨌든 한 팀의 벤치에 앉아 있는 일원으로서 몽고팬의 목소리에 맞서서 열심히 파이팅을 외쳤다. 나의 파이팅이 힘이 된 것인지 결국 경기는 홍콩의 신승! 경기 후 감독이 경기장에서 홍콩을 응원한 유일한 사람이었다고 고맙단다. 정말 나이스한 사람들이다. 이러니 응원을 할 수 밖에.

 

경기 후 인터뷰는 결선리그에서 만나게 될 한국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홍콩 팀은 한국과 본인들의 기량차를 인정했다. 하지만 홍콩의 주전 센터 던칸의 대답은 상당히 마음에 와 닿았다. “우리는 그들과는 다르다. 아마추어다. 우리 팀 선수들은 한명을 제외하고는 다들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다. 학생이거나 아니면 학교에서 운동을 가르친다. 프로로서 농구에만 집중하는 한국 팀을 이기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최선을 다 할 것이다. 이기고 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홍콩에서 또 봐요.
이어진 경기에서 홍콩은 역시나 한국에게 완패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말대로 최선을 다했다. 한국이 중국을 상대로 수비전술을 연습하기 위해서 홍콩 팀을 불쌍할 정도로 압박했지만 그들은 끝까지 자기들의 농구를 했다. 이어진 일본과의 3,4위전 또한 마찬가지였다. 일본은 객관적인 전력에서 홍콩이 이길 수 없는 팀이지만 또다시 그들만의 농구로 경기를 3쿼터까지 접전으로 이끌었다. 결국엔 패배했지만 홍콩 팀의 표정은 최선을 다했다는 뿌듯함이 묻어났다. 프로스포츠의 특성 상 승패에 연연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승리에 집착한 나머지 여러 가지 안 좋은 얘기들이 많이 들리는 대한민국 스포츠의 팬 입장에서는 꽤나 부러운 모습이었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 공항까지 배웅을 나가는 게 업무의 마지막이기도 하고 꼭 일이 아니더라도 내가 그렇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끝까지 자기들이 알아서 갈 수 있다고, 농담으로 우리 똑똑하다고 왜 공항까지 오냐고 한다. 끝까지 나이스한 홍콩 팀이다. 결국 숙소에서 이별을 고하고 간단하게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홍콩에 오면 꼭 연락하란다. 자기가 통역해 준다고. 이거 통역사 대동하는 기분을 느껴보기 위해서라도 꼭 홍콩에 가야할 것 같다.

 

조만간 홍콩에서 만나요. 즐거운 홍콩 팀과 통역 ⓒ앤디(홍콩 팀매니저)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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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백종석

 

              흔히들 ‘통역’이라 하면 원어민 수준의 외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능력으로 생각하기 십상이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고, 따라서 영국을 떠나기 전, 영국 생활을 마치고 돌아올 때 기대되는 나의 영어 능력으로 통역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그 정도 수준으로도 통역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 20대 후반에 외국에 나간데다 4년이 채 안 되는 해외 체류기간으로도 통역 일을 할 수 있었던 까닭은 향상된 내 영어 실력보다는 다른 쪽에 더 큰 이유가 있었다.

 

ⓒ백종석

 

 

3년 전인 지난 2009년 겨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첼시 FC에서 지도자 연수를 하셨던 국내 지도자 선생님을 도우며 한달 동안 개인 통역을 맡았던 것이 통역에 대한 공식적인 첫 경험이지만 1대 1로 통역을 하는 것이 아닌 여러 사람들 앞에서 공식적인 강의를 동시통역한 것은 2010년 11월에 파주에서 열린 2010/11 1차 AFC P급 지도자 교육과정이 처음이었다. 귀국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영어에 대한 감은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최상위 축구 지도자 과정답게 수강생으로 오셨던 분들의 유명세는 나로 하여금 부담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이론강의나 실기수업 모두 마찬가지로 영국인 강사 분께서 두세 문장을 말씀하시면 내가 곧바로 치고 들어가 빠르게 풀어내어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는데 그 기라성 같은 분들이 모두 내 입을 쳐다보는 것 같았다. 아니, 실제로 그랬다. 내가 어떻게 통역을 하는지에 따라 이 중요한 과정의 성패가 갈린다는 생각에 처음에는 긴장도 많이 하고 실수도 했던 것 같다. 워낙 집중도가 필요한 일이라 원래 협회에서 통역을 맡고 계신 과장님과 교대로 일을 했는데 초반에는 더러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많이 조언해주시고 도와주신 덕분에 3주 가까이 되는 기간 동안 큰 사고없이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 후 현장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다 1년 뒤 다시 같은 선생님들 앞에서 3차 교육과정에 대한 통역을 맡았고 싱가포르에서 1년 지내다 이번 겨울, 그 다음 기수의 새로운 선생님들과 1차 교육을 함께 했다. 3년에 걸쳐 세 번의 같은 과정을 거치며 통역에 대한 능력도 더 자연스러워졌음을 느꼈다. 개인적으로 나 역시 그 분들과 같은 수업을 듣게 되는 셈이었던 터라 더할 나위 없는 공부와 경험이 되었음은 당연했다.

 

스스로 꼽는 내가 이 일을 생각보다 잘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이 분야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테크닉’과 ‘스킬’처럼 축구에서는 뜻이 구분되지만 한국말로는 딱히 달리 표현하기 쉽지 않은 것처럼, 영국에서의 지도자 과정을 통해 습득하고 익숙해져 있지 않았더라면 빠른 순간에 적절하게 풀어내기가 힘들었을 만큼 축구 관련 표현과 용어들은 축구에 특화된 것들이 꽤 있었다. 또한 전술적인 상황이나 공과 선수들의 움직임에 대한 표현, 그리고 훈련 시 사용하는 은어에 가까운 표현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영어에서의 표현을 직역하기 보다는 우리가 쓰는, 그래서 지도자 분들이 더 이해하기 쉬운 한국식 표현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공을 가진 우리 편 선수에게 상대 수비수가 다가갈 때 경고해줄 수 있는 말, 공을 흘린다거나 슛하는 척 하면서 접는 동작, 수비 라인을 전체적으로 올리거나 내리는 상황, 수비 시 넓게 벌어져 있는 선수들을 안으로 좁힌다거나 공격수가 수비수를 상대로 등을 지는 표현, 훈련의 구성이나 방법, 성격 등에 따라 구분되는 훈련의 종류들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요새는 중계를 통해서도 핸들링, 센터링, 루즈타임 등 과거 정체가 불분명하거나 의미가 통하지 않는 용어들의 사용을 지양하는 추세인데 강의 도중, 아무래도 영어식 표현을 한국말로 그대로 바꾸기 힘들다거나 한국어의 문법적 특성 때문에 영국에서 쓰는 표현이 아니지만 이미 한국식으로 통용되거나 대체된 표현들을 유연하게 통역해야 하는 상황이 더러 생겼다. 강의 중에 강사님이 ‘백포’라고 설명하시면 내가 ‘포백’이라고 단어의 순서를 바꿔서 말한다거나, ‘헤더’라고 표현하시면 한국적 의미인 ‘헤딩’이라는 단어로, ‘코너’라고 말씀하시면 ‘킥’을 덧붙여 ‘코너킥’으로 통역했던 것은 비록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강의를 듣는 지도자 선생님들께서 더 알아듣기 쉽도록 나름대로 노력한 부분이다.


강의를 통역하는 것은 결국 외국어를 듣고 이해한 후 한국말로 표현해 내는 것이기 때문에 해당 외국어를 말하는 것보다는 듣고, 이해하는 능력이 우선이고 이를 바탕으로 얼마나 완성된 문장으로 만들어내 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그렇기에 (외국어)말하기보다는 듣기가, 듣기보다는 (한국어)말하기가 중요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강의가 몇 시간에 걸쳐 이어지면 집중력이 약해지고 놓치는 부분이 생기는데 이 때에는 듣기도 듣기지만 (한국어)말하기 능력이 매우 중요해진다. 순간 놓치는 부분이 있었더라도 그 단어나 표현이 전체적인 맥락에서 그리 중요한 부분이 아니라면 자연스러운 진행을 위해 강사에게 되묻지 않고 이해한 것으로부터 부드럽게 포장해 말을 만들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상황은 최소화 시켜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가끔씩 생기는 이러한 상황에서의 순발력과 위기관리(?) 능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강사의 말하고자 하는 의도와 맥락을 이해하고 있는지, 내가 말하고 있는 문장의 완성도는 높은지, 주술관계는 들어맞는지 등 단순히 몇 문장씩 따로 떨어뜨려 통역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흐름을 따라가며 직역이 아닌 약간의 의역으로 한국말 자체를 잘 꾸미는 것이 중요하다. 결과적으로 수강생들이 듣는 것은 영어가 아니라 내가 말하는 한국말이기 때문이다.

 

해당 분야의 지식과 경험, 언어와 문화적 차이를 해석해 의역할 수 있는 융통성, 설사 놓치는 부분이 있더라도 전체적인 문장을 잘 만들어낼 수 있는 순발력. 이 세 가지가 영어 실력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특정한 분야의 통역을 할 수 있는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전문 통역사는 아니었지만 축구 지도자 교육에 대한 통역만큼은 영어실력이 비슷하다면 다른 어떤 사람과도 경쟁력을 갖추었다고 생각한다. 외국에서 무언가를 공부하고 경험했다면, 그곳에서 익혔던 언어와 지식을 나와 같은 방법으로 써먹을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다. 축구가 아닌 다른 종목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스포츠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영어를 잘 한다고 어떤 분야에서나 통역을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영어실력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어느 정도’라는 것이 생각보다 낮다고 말하고 싶다. 유학을 하며 그 나라의 언어를 공부하는 까닭은 언어의 습득 그 자체보다는 해당 학문에 더 쉽고 깊게 다가가기 위한 수단이자 도구로서의 기능이 크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꼭 통역의 역할을 맡는 것이 아니더라도 외국어를 통해 느끼고 이해하는 바를 한국어로 받아들여 제 3자에게 쉽게 전해 줄 수 있다면, 외국에서 힘들게 공부한 보람이 훨씬 크지 않을까? 지식과 경험의 전파와 공유는 물리적으로 떨어진 두 곳 사이의 학문적, 문화적 간극을 좁혀줌은 물론 그 분야를 발전시키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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