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학수 (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연구소장)



지난 5일 심장병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뜬 포르투갈의 ‘흑표범’ 에우제비우의 부고를 전하는 미국 뉴욕 타임스 기사에서 눈에 확 들어온 문장이 있었다. 

“Eusebio played down racial and national politics, praised others and denied stories about him that could have been turned into legend."

이 문장은 에우제비우는 인종과 민족적인 정치를 작게 다루고, 상대 선수를 칭찬하며 전설이 될 수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부인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게다. 1960년대 펠레와 함께 세계 축구를 호령했던 슈퍼스타였던 그의 새로운 면을 알게 한 부분이다.


기사 작성자인 뉴욕 타임스의 원로 칼럼니스트 조지 벡시가 에우제비우를 뛰어난 축구실력 뿐 아니라 따뜻한 인간애를 지닌 이로 평가한 것은 아주 신선한 의미로 다가왔다. 벡시는 에우제비우가 생전에 훌륭한 인품을 보여주며 여러 번 자신의 소신과 의지를 밝혀  부고 기사에서 충분히 인종주의와 식민주의를 싫어했다고 써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1968년부터 뉴욕 타임스에서 스포츠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벡시는 축구, 농구, 권투 등 다양한 스포츠에 관한 기사를 써오며 전문적이고 날카로운 안목을 보여 왔는데, 이번 에우제비우 부고 기사 역시 베터랑 저널리스트다운 수준 높은 글이었다. 


보통 스포츠팬들이나 저널리스트들이 사실보다는 서사적인 무용담이나 이야기를 더 좋아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선수를 넘어서 한 인간의 인생철학에 대한 세부적인 일면을 상세하게 보여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벡시가 얼마나 철저하게 취재를 했으며, 선수에 관해 많은 자료를 갖고 있는 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월드컵 축구대회를 8번이나 취재를 한 바 있는 벡시는 다른 어느 매체도 범접하지 못하는 뉴욕 타임스의 자랑인 부고기사(Obituary)에서 에우제비우에 대한 심도 깊은 기사를 쓰는 역량을 발휘하는 개가를 올린 것이다. 벡시의 부고 기사를 통해 천부적인 재능과 실력, 의지 등을 갖춘 위대한 축구스타인 에우제비우는 비단 스포츠에서 이기고, 지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인생의 가치를 추구한 이로 스포츠사에 결코 잊을 수 없는 불멸의 스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 같다.


벡시의 기사를 보면서 필자를 비롯한 국내 스포츠 저널리스트들은 자성의 기회를 가져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기사 각도와 보도방법 등에서 큰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다. 국내 언론들은 에우제비우에 대한 부고기사를 대체적으로 선수활동 경력 등에 초점을 두고 보도했다. 1960∼70년대 펠레와 함께 세계 최고의 공격수로 이름을 날린 전설적 인물로 1942년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모잠비크에서 태어났으며 1960년부터 15년 동안 포르투갈 벤피카에서 활약하고 무려 11차례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어냈고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9골을 터뜨리며 포르투갈의 3위 달성을 이끌었다는 정도의 내용이었다. 

좀 더 자세한 기사는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북한과의 준준결승에서 전반 25분까지 0-3으로 뒤지다 혼자 4골을 터뜨려 5-3의 극적인 역전승을 이끌었고, 1970년도 한국을 방문해 35m 대포알 같은 프리킥 슛을 성공시켜 당시 대표팀 골키퍼 변호영이 “그의 슛은 내가 겪은 가장 무서운 것이었다.”고 했던 것을 소개하는 정도였다. 모 신문에서는 그의 자서전 ‘내 이름은 에우제비우’의 일화 등을 소개하며 ‘헝그리 정신’을 극복한 스포츠 스타의 상징으로 뻔한 스토리를 전했다.


이 정도로 그에 대한 부고기사를 처리하는 게 과연 합당한 것인가. 50대 이상들에게 유세비오라는 영어식 발음으로 더 많이 알려졌던 1970년대 펠레와 함께 국내에서  최고의 세계 스포츠 스타로 인기를 한몸에 받았던 에우제비우라는 점을 고려할 때, 뭔가 아쉬운 부분이 많다.

1991년 포르투갈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 남북청소년 단일팀이 출전했을 때, 필자를 비롯한 많은 국내 보도진이 에우제비우를 포르투갈 현지에서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당시 에우제비우는 벤피카 유소년 축구팀을 지도하는 고문을 맡았는데, 대회 스폰서인 코카콜라 측의 주선으로 한국 보도진과 격의 없이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차돌같이 단단한 몸이지만 키는 다소 작았다. 실제 축구선수로서 그의 키는 175cm 정도이지만 탄탄한 근육질로 체격이 더 커 보였다. “북한전이 내 인생에서 최고의 경기였으며 그 경기를 통해 축구선수로서 정점을 찍었다”며 에우제비우는 인터뷰한 기자들과 일일이 개인적으로 사진을 찍어주는 친절과 아량을 베풀었다.


(지난 1991년 포르투갈 세계청소년 축구선수권대회 취재갔을 때 에우제비우와 찍은 모습. 에우제비우는 세계축구를 호령한 슈퍼스타였지만 다정다감한 이웃 아저씨같이 좋은 인상과 마음씨를 가졌다. ⓒ김학수)



에우제비우가 국내 보도진에게 다시 얼굴을 보인 것은 2002년 한· 일 월드컵 때였다. 포르투갈 TV 해설자로 방한한 에우제비우는 예선에서 한국과 한 조에 속한 포르투갈에 대한 전력을 묻는 국내 언론 취재진에게 전문적인 코멘트를 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불가능한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던 북한과의 잉글랜드 월드컵 8강전에서의 인상적인 경기를 기화로 세계축구의 ‘흑표범’으로 불렸던 에우제비우는 다른 어떤 선수들보다 많은 얘깃거리를 가졌던 스타였다. 1960년대 유럽축구무대에서 드물었던 흑인선수로서 세계적인 스타로 첫 주목을 받았으며 훨씬 연봉을 많이 주는 이탈리아에서 활동하지 않고 고국처럼 여겼던 포르투갈 축구를 지켰다. 경기가 끝나면 상대 선수들의 뺨을 만져주고, 포옹하는 따뜻한 우정을 주고받았던 그는 미국 프로야구 최초의 흑인 선수 재키 로빈슨에 비교되기도 했고, 글로벌 스타로 크게 성공한 디디에 드로그바의 롤모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가난, 흑인, 식민주의를 극복한 한편의 인간승리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그의 삶에 가려져있던 개인의 이면들을 국내 언론들은 제대로 들춰내지 못했다. 특히 남북한과 깊은 관련이 있는 위대한 축구 스타 에우제비우의 부고를 접하면서 느낀 점은 앞으로 국내 언론들이 좀 더 심층적이고 다양한 관점으로 선수의 인간적인 부분에 대한 기사를 많이 취급해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선수이기 이전에 인간이 먼저라는 사실을 에우제비우는 이 세상을 떠나면서 말을 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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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2014.01.21 15:15 신고

    글쎄요, 물론 부고기사가 남북한관련, 기록관련해서 뉴스가 나왔지만

    제가 읽은 기사중에서
    에우제비오에 대해서 축구선수의 인간적인 면에 대한 기사도 많았습니다.

    아래와 같이 링크합니다

    http://mnews.joins.com/news/article/article.aspx?total_id=13573945

    http://www.fourfourtwo.co.kr/interview/interview_view?idx_B=1140&RNUM=72

    http://m.sports.naver.com/worldfootball/news/read.nhn?oid=032&aid=0002427879

    한국 저널리스트들은 획일성에 대해서 비판하시는데 뉴욕타임즈의 백시같은 저널리스트들이 나오려면 한국스포츠언론이 어떻게 하면 더 심층적일수있는지 방법론을 제시해야되는거아닐까요?

 

 

글/김학수(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 연구소장)

 

        스포츠에 대한 글을 마음껏 써 보고 싶다는 그의 버킷리스트를 듣고 모두들 놀랐다. 77세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결코 식지않는 배움의 열정을 보이며 손자뻘되는 대학생들과 함께 교육생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젊은이에 결코 뒤지지 않는 학구욕을 보인 그는 자신의 소개와 교육 참가 소감을 밝히며 만족감과 행복감으로 넘쳐 보이는듯했다. 만학도의 진정성 있는 모습에 감복한 대부분의 교육생들은 존경의 박수를 보냈다.

 

 

지난 14일 한국체육대 본관 모 강의실에서 열린 예비 스포츠 저널리스트를 위한 1차 언론교실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한 김종철씨는 단연 화제의 주인공이었다.  30여명의 교육생 가운데 최연장자인 그는 맨 앞자리에 앉아있다가 자신의 소개 순서가 되면서 강단에 올랐다. 그는 “나이와 상관없이 스포츠와 관련한 글을 제대로 써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신문에서 스포츠 언론교실 교육생 모집 공고를 보고 뒤도 안돌아보고 신청했다”며 “독학으로 스포츠 글쓰기를 하고 있었는데 이번 교육이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근 스포츠 블로그를 만든 그는 언론교실에서 배운 스포츠 글쓰기와 취재, 편집 등의 스포츠 저널리스트의 전문적 기술을 잘 활용해 블로그를 보기좋게 꾸며보겠다는 계획이다. 체육의 중요성을 잘 모르는 일반 대중에게 자신이 갖고 있는 체육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간결하고 쉽게 설명하는 글을 많이 써 볼 참이다. 

 


 서울체고 축구 및 사이클 감독을 지내며 30여년간 체육교사로 활동한 바 있고, 서울시 교육청 장학사, 교육과학부 파견근무 등 체육교육자로서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는 그는 대단한 향학열을 보이기도 했다. 1967년 경남대 상학과를 졸업한 뒤 고려대 교육대학원, 서울시립대 경영대학원 석사를 이수하고 숭실대 대학원 박사과정도 수학을 한 바 있다. 오랫동안 교육계에 봉직하면서 그는 체육교사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운동을 한다고 하면 무조건 무식하게 보는 경향이 많았다. 체육교사도 공부를 하지 않아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는 인식들이 있었다. 이러한 잘못된 풍토는 운동을 하는 사람 스스로 자초한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주위로부터 ‘꼴통’소리를 듣지 않기위해서 시간이 나면 공부를 하려고 노력했고, 지금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을 맍이 갖는다”고 말했다.


그는 스포츠가 과거에 비해 모든 면에서 크게 확대되고 발전하고, 인터넷 환경에 의해 언론도 많은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요즘, 새롭게 공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갖고 언론교실 교육을 충실히 받을 각오이다.
 “전반적인 커리큘럼을 신문사, 방송사 전현 부장님과 국장님들이 강사로 직접 나서 지도하기 때문에 경험적이고 실제적인 강의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이론적으로 하는 여느 미디어 강의와는 달리 실용적인 부분이 많다. 충실히 배우기만 하면 스포츠 저널리스트로의  꿈을 이루며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겠다”고 기대했다.
같은 나이의 어르신들에 비해 월등한 건강과 체력을 갖고 있어 직접 차를 운전하고 다니면서 수업에 참여할 그는 “젋은 대학생들과 같이 공부를 하면 몸과 정신도 훨씬 젋어질 수 있겠다”며 “부족한 것은 대학생들에게 배우고, 인생의 선배로서 상담이 필요하면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고 밝혔다.


일부 교육생들은 “경기침체 속에 취업난이 심각해지면서 취업과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이른바 ‘3포세대’가 만연하고 있으나 어르신같이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열심히 사시는 모습에 놀라움과 감탄을 금치 못했다”며 “훌륭한 분과 함께 공부를 같이 하게 돼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입을 모았다. 황혼기의 나이에 새롭게 스포츠 저널리스트로서의 삶에 도전하는 그에게 많은 교육생들이 큰 자극과 격려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한국체대 산학협력단 산하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 주관으로 국대 대학으로서는 처음으로 마련된 스포츠 저널리스트 전문교육 프로그램인 제 1회 언론교실은 14일부터 다음달 18일까지 매주 월, 수, 금요일 저녁 수업이 진행된다. 총 교육시간은 30시간이다. 스포츠 미디어 이론은 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초빙교수)이, 스포츠 저널리스트 세계에 대한 교육은 정영재 중앙일보 체육부장, 김유석 SBS 스포츠부 선임기자, 한광섭 MBC 스포츠 캐스터, 손상진 전 KBS 스포츠 본부장, 김창율 스포츠 코리아 대표가 각각 맡으며,  △글쓰기 △기사 작성 △취재 인터뷰 △스포츠 칼럼쓰기 등 스포츠 미디어 실제 입문교육은 장환수 전 동아일보 체육부장, 유병철 일요신문 편집위원 등이 지도한다.


제 1회 언론교실에는 한체대, 고려대, 한양대, 순천향대, 해외대학 등 체육계열 대학생과 홍익대, 서울시립대 등 스포츠 미디어에 관심이 많은 일반학과 대학생들이 참가하고 있다. 대학 스포츠 전공학과에 진학해 스포츠 저널리스트의 꿈을 갖고 있는 고교생 1명도 교육생에 포함돼 있다.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는 지난 해 체육인재육성재단의 지원을 받아 스포츠 방송 해설자 교육을 위한 스포츠 미디어 아카데미를 실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핸드볼 임오경, 홍정호, 조은희, 차재경. 레슬링 박장순, 사격 김일환, 이종현, 배구 신선호 등이 교육을 수료해 런던올림픽 TV 방송과 각종 방송 미디어에서 뛰어난 해설역량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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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학수(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 연구소장)

 

ⓒ스포츠경향

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1301040600026&sec_id=510201&pt=nv

 

 

         새해 벽두 한 스포츠 신문에 실린 사진이 눈에 확 띄었다. 잠실구장에서 손에 든 태극기를 바라보며 오는 3월 월드베이스클래식(WBC)에서 활약을 다짐하는 두산 투수 노경은의 모습이다. 간단해 보이는 이 한 장의 사진에서 중요한 의미를 읽을 수 있었다. 태극기에 경의를 표하는 이 사진은 국가에 대해 충성하며 선수로서 뛰어난 경기력을 발휘해 WBC에서 야구 한국의 면모를 과시해 보이겠다는 뜻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신문이 WBC에 출전하는 대표팀 에이스로 주목받고 있는 노경은에게 자의적인 모습으로 태극기 세리모니를 연출한 것은 국민들에게 뜨거운 감동을 주었던 수년전의 명장면을 연상시키기 위함이다. 2006년 3월15일 미국 애너하임 에인절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제1회 WBC 8강 한· 일전에서 한국은 마무리 투수 오승환(삼성)이 1점차 리드를 지켜 숙적 일본을 2-1로 누르고 4강진출을 확정했다. 이때 서재응(KIA)은 태극기를 마운드에 꽂은 뒤 환호했다. 이 장면은 한국야구가 세계 중심에 섰다는 의미로 외신을 타고 전 세계에 강렬한 인상을 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재응의 태극기 세리머니는 WBC 4강 단골 세리모니가 됐다. 3년 뒤 2회 대회에서도 봉중근(LG)이 샌디에이고 펫코파크에서 일본을 누르고 4강 진출을 확정짓자 똑같은 세리머니로 결승진출을 자축했다.


야구팬들을 열광케 했던 태극기 세리모니의 재현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기위해 이 신문은 상징적 이미지 연출을 시도했다. 이미지 연출을 한 것은 스포츠 저널리스트들이었다. 사진 및 취재기자들은 혹독한 한파가 몰아친 지난 연말 잠실구장에서 아직 눈이 남아 꽁꽁 얼어붙은 마운드에 노경은을 불러서 태극기를 잡게했다. 특히 이 신문의 사진기자는 2013년 야구계의 최대 화두가 될 WBC 대회에서 한국의 영광 재현을 기대하며 노경은에게 태극기 세리모니를 하게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사진을 보면서 25년전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새해 이맘 때가 떠올랐다. 일간스포츠 체육기자였던 필자는 서울올림픽 금메달 유망주였던 탁구의 현정화, 양궁의 김수녕 2명과 함께 사진기자를 대동하고 강화도 마니산 정상 참성단으로 갔다. 1면 톱 사진을 찍기위해서였다. 마니산은 우리 민족의 신화적 인물 단군 왕검이 하늘에서 내려온 것으로 알려진 영적인 산으로 전국체육대회 성화를 매년 참성단에서 채화하고 개천절에 제전을 올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두 금메달 기대주가 이러한 마니산의 정기를 받아 서울올림픽에서 금메달 고지를 밟아야 한다는 절절한 국민적 소원을 담기위해 참성단 사진 이미지가 필요했던 것이다. 울퉁불퉁한 비탈길과 계단을 비지땀을 쏟으며 올라간 뒤 대형태극기를 들고 참성단 위에서 우뚝 선 현정화, 김수녕의 상징적인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고 이 사진은 새해 일간스포츠 1면을 크게 장식했다. 현정화, 김수녕은 사진의 상징적 효과가 주효했던지, 서울올림픽에서 나란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태극기 세리모니가 어떤 진정한 사실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경우는 드물다. 대개 자의성과 당위성의 차원에서 행해지는 하나의 담론적 행위인 경우가 많다. 다소 과장된 행동을 하면서도 태극기 세리모니는 정당화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노경은, 현정화 등의 경우 모두 작위적으로 연출된 사진들이었지만 독자들에게 크게 무리한 느낌을 주지 않으리라는 판단하에 이루어졌다. 국가를 위해 충성을 하고 애국을 한다는데 같은 한국사람이라면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공식 행사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도 하지않고 애국가도 부르지 않는 일부 종북 좌파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하지만 애국심에 호소하는데 태극기를 활용하는 행동은 사실 여러 각도에서 분석, 해석, 비판을 받아야 한다. 태극기 세리모니가 도를 넘어설 경우 맹목적, 배타적 애국주의를 지칭하는 쇼비니즘, 국수주의로 변질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2012년 런던올림픽 축구 3~4위전에서 일본을 물리치고 한국이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2-0으로 승리하면서 동메달을 획득한 이후 박종우가 한 관중이 들고 있던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한국어 문장과 태극기가 그려진 피켓을 건네받고 세리모니를 하게되면서 큰 물의를 빚었다. 박종우의 세리모니는 독도는 한국의 영토로 일본이 어떠한 논의와 주장을 펼쳐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사실을 축구라는 스포츠의 한일 경기를 통해 밝히려고 했던 것이다.  IOC는 올림픽 이념에 위배되는 정치적 문구를 사용했다며 그의 시상식 불참을 권고하였고 대한체육회는 이에 수긍하고 박종우에게 시상식에 참석하지 말 것을 지시했었다. 박종우의 예는 태극기 세리모니를 첨예한 외교적 이슈와 결부시켜 행했던 것으로 이것이 가져온 파장은 단순한 세리모니보다 훨씬 컸다.


태극기 세리모니 사진의 조작적 이미지와 진정한 이미지는 그 이미지가 어떤 가치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느냐에 따라 여러 각도로 해석이 가능하다. 태극기 세리모니가 지시하는 이미지는 일단 결정적인 의미를 유보하고 현상 뒤에 숨은 이미지의 의미작용을 잘 파악하는데 주력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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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학수(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 연구소장)

 

 

                  2012년도 어느덧 노루꼬리만큼 짧게 남았다. 12월들어 송년모임을 갖자는 연락이 자주 오는 것을 보면 또 한 해를 보내게 됐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맘 때면 대학 졸업반 학생들은 큰 장애물을 맞닥트린다. 최근 극심한 취업난으로 젊은 학생들의 고민은 더 깊어진 것 같다.

진로를 놓고 고민하던 대학 졸업반 학생이 내 연구실을 찾았다. 체육을 전공하는 이 학생은 스포츠 저널리스트가 되기 위해선 어떤 준비를 해야하는지를 문의했다. 체육 관련 직업을 찾는 일반 학생들에 비해 다소 이례적이었다. 운동 신경이 좋아 웬만한 스포츠는 다 잘한다는 학생은 스포츠 저널리스트가 꼭 되고 싶다고 했다. 질문의 요지는 신문방송학과를 전공하지 않아도 스포츠 저널리스트가 될 수 있는가였다. 물론 내 대답은 당연히 “할 수 있다”였다.

 

이 학생처럼 스포츠 미디어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라면 미래에 훌륭한 스포츠 저널리스트가 되겠다는 꿈을 한번쯤 가져봄즉하다. 이러한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를 해야한다. 먼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저널리즘 공부와 병행해서 특별한 전문분야를 습득하라는 점이다.

 

30여년전 필자가 스포츠 기자로 입문할 때만해도 스포츠 상식만 갖고도 충분했다. 복잡한 농구룰, 생소한 골프 용어 등을 알지 못해도 스포츠 기자가 되는데 큰 문제가 없었다. 글쓰기 능력과 어느 정도의 스포츠 상식만 확보하면 있으면 됐다. 당시 스포츠 기자중에는 체육학과 출신이 거의 없었다. 신문방송학과, 국문과, 사학과, 영문과 등 인문· 사회과학 전문 출신이 많았다. 스포츠 기자가 되는 데 체육 전문 지식이 그다지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이 많이 변했다. 스포츠 영역도 전문화, 세분화가 이루어지며 전문성을 갖춘 저널리스트가 아니면 경쟁력을 갖추기 힘든 시대가 됐다. 과거처럼 스포츠 상식만 갖고 활동하던 저널리스트가 버티기 힘든 상황이 된 것이다. 좋은 스포츠기자가 되려면 전문분야를 훤히 꿰고 있을 정도의 스페셜리스트가 돼야한다. 복잡다단한 스포츠 현상을 제대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적 시각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피상적으로 보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자신의 의견인양 전하는 종전의 스포츠 기자들은 일단 전문가를 빰칠 정도로 많은 정보를 접하며 눈높이가 크게 높아진 수용자(독자나 시청자)를 만족시킬 수가 없다.


예전에도 전문가에 못지않은 스포츠 기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학창시절 태권도 선수로도 활동한 바 있던 모 선배기자는 경기인 못지않은 전문성과 지식을 갖고 태권도 행정가와 일선 지도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 정보와 기사를 제공했다. 아이스하키 선수출신 선배기자는 후배 선수들의 어려움을 다른 이들보다도 잘 이해하고 공감이 가는 기사를 작성하고 협회 행정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운동 생리학 박사출신 기자는 육상 선수의 운동량과 체력소모에 대한 기획기사를 시리즈로 연재해 스포츠 과학을 전공하는 연구자들에게 귀감이 되기도 했다.


전통적인 신문, 라디오, TV가 주도하던 올드 미디어 시대가 인터넷, 컴퓨터, 페이스북, 트위터, 유투브 등 뉴미디어 시대로 바뀌면서 미디어의 지형도 크게 바뀌었다. 상식에 근거해 판단하고, 해석하는 거시담론보다는 세분화하고 파편적인 미시담론쪽으로 대중들의 정서가 흘러가게됐다. 컴퓨터를 통해 온갖 정보를 쉽게 접하게되면서 과거와 같은 상식적인 기사는 수용자의 환영을 받지 못한다.
 
스포츠 기사의 경우 다양한 스포츠 안팎의 이야기를 전문적인 시각을 담아 보도해야 기사의 완성도와 이용자의 만족도를 충족시킬 수 있다. 예를들어 스포츠 평론가나 칼럼니스트가 되려고 한다면 전문분야로 스포츠 법이나 스포츠 의학 등을 전공하면 심층적인 진단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프로 선수의 계약과 스포츠 마케팅권리에 대한 다양한 법적 분쟁에 대한 전문가적 견해를 가져야 하며, 선수들의 부상과 약물 복용등과 관련한 제반 스포츠 의료 사고나 일탈행위에 날카로운 비평과 매스를 가해야 한다. 스포츠 경기 취재를 위해서도 많은 변화가 불가피하다. 경기력 위주의 취재를 하던 방식에서 탈피해, 경기중 선수들의 심리적인 측면과 경기 이면의 부분까지 세밀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식견과 지식이 확보되지 않고서는 좋은 기사를 작성하기가 힘들다.


미디어 빅뱅, 컨버전스시대를 맞아 스포츠 저널리스트들이 다양한 매체를 직접 컨트롤 수 있는 실무적인 전문성도 쌓아야한다. 종전처럼 신문기자와 방송기자가 분리된 형태로 활동하던 것과는 달리 카메라, 마이크를 직접 사용하고 영상 편집도 함께 할 수 있는 다용도의 멀티 스포츠 저널리스트 세상이 곧 다가올 것이다. 


앞으로 스포츠 세계가 더욱 전문화, 세분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스포츠 저널리즘 분야도 스포츠 지식과 정보를 훤히 꿰고 있고 다양한 매체를 활용할 수 있는 전문가 저널리스트가 활개를 치게 될 것은 분명하다. 스포츠 저널리즘의 세계에 새로 뛰어들 미래의 스포츠저널리스트들에게는 새로운 기회의 장이 마련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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