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이철원

 

 

 

 

지난 12월, 이틀간 태국 방콕에서 ‘King of Speed’라는 쇼트트랙 시합이 개최됐다.

 

ISU(국제빙상경기연맹) 레프리가 참석해 국제대회 규모로 진행된 이번 시합에는 태국과 말레이시아, 싱가폴 쇼트트랙 대표팀이 참가했으며, 헤드코치 썬단단과 싱가폴체육과학연구원에 근무하며 쇼트트랙 어시스턴트코치로 활동하는 필자가 이끄는 Team Singapore이 전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번 시합을 통해 얻게 된 것이 참 많다. 헤드코치의 감기몸살로 이번 대회에서는 필자가 임시로 헤드코치를 맡아 선수들을 지도하게 됐는데, 특히 코칭 현장에서의 ‘영어 회화’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

 

사실, 세계선수권대회 통역을 두 차례 다녀온 후 코칭스텝과 선수들의 영어실력에 대한 중요성을 너무나 뼈저리게 깨닫게 됐다. 이후, 후배 선수들에게 영어의 중요성을 항상 강조하는 입장이지만 선수와 코치 입장에서 느끼게 될 영어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을 해줄 때에는 딱히 마땅한 예시가 없어 난감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대회를 통해 후배들에게 확실하게 설명해줄 수 있는 경험을 쌓게 됐다.

 

싱가폴 쇼트트랙 대표팀의 에이스(Ace) 루카스가 1,000m 경기에 참가했을 때다. 코칭을 하고 있는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한 바퀴가 남으면 심판들이 종을 쳐서 선수에게 알려줘야 하는데 종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선수가 9바퀴를 타고 경기를 끝낸 상황에서도 심판진은 경기를 끝내지 않고 있었다. 이상함을 느낀 루카스도 코치박스의 나를 쳐다보며 어찌할 줄 모르고 있는 상황이 벌어졌다. 말레이시아와 태국 측 코치는 그저 ISU 레프리만 쳐다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심판들이 경기를 끝내지 않은 상황이기에 우선 계속해서 시합을 진행하고 있으라는 신호를 보낸 후 곧장 심판석으로 달려갔다. 태국 빙상연맹 측에서 나온 심판들에게 “마지막 바퀴를 남겨두고 종도 안쳤고, 이미 선수는 9바퀴를 탔는데 왜 계속해서 시합을 진행하고 있냐!”며 강력하게 항의를 했다. 태국 측에서 제대로 된 답변을 해주지 못하자 ISU 레프리가 달려왔다. 그는 나에게 “싱가폴 코치는 우선 돌아가 있어라. 내가 확인하겠다”라며 나를 제지했다. 이에 나는 “ISU 레프리와 태국 심판 4명이 있는데도 9바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확인 전에 당장 시합부터 끝내고 우리 선수를 밖으로 내보내 달라!”고 항의했다. 결국 ISU 레프리가 곧장 시합을 종료시키고 선수들을 내보낸 후 토의에 들어가게 됐다. 토의 끝에 루카스가 2등으로 판정되기에 “루카스가 다른 선수들을 한 바퀴 잡았는데 왜 2등이냐”고 다시 항의를 해서 순위를 수정받게 됐다. 루카스가 다른 선수들을 한 바퀴 따라잡자 심판에 익숙하지 않은 태국 측에서 선수를 헷갈렸던 것이다.

 

 

 

▲ 국제시합에서 헤드코치가 해야 할 역할은 상상 이상으로 많았다

 

 

다음날 시합이 진행될 때 아이싱에 문제가 생겨 시합이 지연되게 되자 태국 연맹 직원이 나에게 달려와 지연된 사정을 설명하며 정중히 사과를 했다. 또, 조 편성에서 문제가 생기자 곧장 달려와 사과를 하며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그리고는 시합이 종료되는 그 순간까지도 잘못된 상황이나 변경된 상황이 있으면 Team Singapore에 가장 먼저 달려와 양해를 구했다. 제대로 된 항의 한 번에 팀(Team) 전체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이다.

 

시합이 끝난 후 문득 ‘만약 그 상황에서 ISU 레프리와 태국 측에 제대로 된 항의를 하지 못했다면 루카스는 몇 바퀴를 더 돌았을까? 또 잘못된 결과가 나왔을 때 상황설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면 판정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국제시합 현장에서의 코칭은 거창한 영어실력을 요하지 않는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내가 항의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만 전달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역할은 코치가 선수보호를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의무인 것이다.

 

물론, 국제시합에서 심판의 판정을 존중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지만, 결과에 잘못된 것이 있다고 느껴질 때는 정당하게 이의를 제기해볼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 이것 역시 코치의 필수덕목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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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성호 (한양대학교 영문학 명예교수)   

 

 

김연아  ⓒ대한체육회

*2011 세계선수권대회 사진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 1 쇼트 프로그램의 ‘그로테스크한 음악 지젤’
   김연아는 ‘지젤(Giselle)'과 ‘오마주 투 코리아 (Homage to Korea)'를 러시아에서 열연했다. 지난해 4월 30일 모스크바의 메가 스포츠 아이스 링크에서 열린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프리 스케이팅’과 그 하루 앞서 거행된 ‘쇼트 프로그램’에서였다.

 

 김연아는 쇼트 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 합계 194.50점을 얻어 195.79점의 안도 미키(일본)에 1.29점차로 뒤져 애석하게도 우승을 놓쳤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숫자의 차이가 아니라 내용이다. 두 프로그램의 종합 점수는 기술 점수와 예술 점수로도 나누어지는데, 가령 김연아가 기술에서 실수를 하여 가산점을 못 받았다고 해서 훌륭히 해낸 예술적 표현까지 묵살되는 것은 곤란하다. 

 
 쇼트 프로그램에서 김연아의 배경음악은 지젤 무용곡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 ‘솔베지의 노래’가 노르웨이의 구드브란스달 계곡에 사는 트롤(Troll) 민담과 관계가 있듯이, 이 무용곡도 독일 라인강 계곡의 민담을 바탕에 깔고 있다. ‘솔베지의 노래’가 극작가 입센이 쓴 극시 ‘페르 귄트(Peer Gynt)’에 작곡가 그리그가 부대 음악을 붙여서 태어났듯이, 지젤은 하이네(Heinrich heine)의 시 ‘독일과 윌리스 마녀들의 묘사(De l'Allemagne and its depiction of the Willis)’를 근거로 아돌프 아담 (Adolphe Adam)이 곡을 붙였다.


 노르웨이의 트롤이 그렇듯이 지젤의 내용도 유럽 북쪽에서 볼 수 있는 초자연적 요정이 끼어드는 남녀의 사랑 이야기다. 이 이야기가 한편 낯설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유연하게 이어지는 것이 우리 정서와 많이 닮아서 쉽게 우리 마음에 와 닿는다. 서양문화에서 볼 수 있는 직선적인 사랑보다는 우리 문화의 은근한 정 (情)적인 사랑 이야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휘여 감기는 스토리를 김연아가 쇼트 프로그램에서 훌륭하게 표현한 것이다. 


 지젤은 라인 강가 포도밭 계곡 마을에 사는 시골 처녀다. 여기에 가을 포도가 익으면 왈츠가 흐르는 포도축제가 열린다. 공작 신분을 숨긴 한 시골 청년이 이 축제에 끼어든다. 지젤은 알브레흐트(Albrecht of Silesia)라는 이 청년과 사랑에 빠지지만, 운명적으로 곧 그의 약혼녀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의 신분도 밝혀진다. 이 충격은 순진한 지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다음 막으로 이어진다. 지젤이 묻힌 묘지다. 여기의 윌리스(Willis)라는 처녀 망령(Spirits)들이 이곳을 찾아오는 남자들과 밤새도록 춤을 추어 급기야는 죽게 만든다. 지젤에게 사과하려고 찾아온 알브레흐트도 덫에 걸려들었다. 그러나 지젤은 춤을 독차지하여 추면서 그를 구해낸다. 하지만 날이 밝자 그녀는 다시 무덤으로 돌아가야 했다.


 김연아는 2분 50초 동안 홀로 춤을 추었다. 마치 윌리스 망령들 틈에서 사랑하는 알브레흐트를 구하려는 지젤처럼. 반 어깨띠의 검은 드레스를 입고 왼손을 왼쪽 옆구리위로 뻗쳐들고 연기를 시작한 김연아는 당차게 스텝을 밟더니 변신하듯 스핀을 돌고 우아하게 플립을 치다가 이제 자신의 무덤을 향해 돌아 가야하는 지젤처럼 이내 오른손을 오른쪽 옆구리위로 뻗쳐들고 고뇌에 찬 모습을 인상적으로 연출했다. 어째서 거짓말을 했느냐고 따지고 미워하는 사랑이 아니라, 죽음을 겪고도 이어가는 둥근 정을 김연아는 나무랄 데 없이 해냈다. 우아하게 이어가는 몸짓은 실로 일품이었다.

 

 

# 2 프리 스케이팅의 ‘사랑 노래 오마주 투 코리아’
  쇼트 프로그램에 이어 프리스케이팅에서도 김연아는 아리랑을 주제로 한 ‘오마주 투 코리아’를 배경음악으로 둥근 정을 잘 살리며 열연했다. 아리랑은 우리의 대표적인 민요다. 정선 아리랑으로 시작하여 그 가지 수도 여럿이다. 그러나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라는 가사를 모두 그 바탕에 깔고 있다. 이를 두고 혹자는 ‘저주의 노래’라고 말하기도 하고 또 혹자는 ‘한 (恨)’의 노래’라고도 하지만 이는 터무니없는 소리다. 세상을 풍미했던 ‘다빈치 코드 (DaVinci Code)’를 2003년에, 그리고 6년 후에 ‘잃어버린 심벌(Lost Symbol)’를 출간한 작가 댄 브라운이 아리랑을 잘 부르고 이에 대한 일가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바로 그가 때때로 한국 사람들이 아리랑을 두고 ‘저주’니 ‘한’이니 또는 ‘이별’이니 하는 말을 붙이면 크게 웃어댔다고 전한다. 그의 웃음으로 미루어보아 아리랑이야말로 한국적 정이 넘치는 사랑의 노래라고 그가 확신했던 것 같다. 가령, 아리랑을 영어로 ‘저주의 노래(A Cursing Song)냐 또는 ‘사랑의 노래(A Love Song)’냐 라고 묻는다면 ‘사랑의 이야기’라고 대답했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 문화에는 저주라는 말이 없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도 있다.


 우리의 삶에서 우러나온 민요 아리랑을 가만히 귀 기울여보면 이 노래는 우리방식대로 우여곡절을 겪으며 찐득찐득하게 이어지는 삶의 노래임이 틀림없다. 아리랑은 그 삶의 일부인 사랑의 가락이다. 그 후렴을 들어보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3-3-4 음절로 이어지는 이 가락은 우리의 삶을 정겹게 나타내는 흥얼거림이다. 사실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는 저주가 아니라 ‘내 곁에 있어주시오’라는 표현의 반어법이다. 김소월의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어찌되었든 김연아는 이렇게 흐르는 우리의 정을 뛰고 돌고 미끄러지며 잘 보여줬다. 중간에는 조국의 발전을 나타내는 듯한 짧은 박자 춤을 소개하기도 했다. 문제는 ‘오마주 투 코리아’라는 배경음악의 제목이었다.


 영어 ‘homage’는 프랑스어 ‘hommage'의 차용어로서 존경(respect)을 뜻한다. 그런데 프랑스어 ‘hommage’는 중세 유럽의 그 흔한 성주에 대한 ‘충성의 맹세’ 또는 ‘헌신적 봉사’의 의미를 사실 그대로 안고 있다. 그래서 현대 민주사회 또는 국제사회에서는 잘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렇게 번역한 것을 보기도 했지만, ‘조국에 대한 감사’ 또는 ‘그리움’을 나타내려고 했지만 국제대회에서 그렇게 들릴지는 의문이다. 


 ‘오마주 투 코리아’라는 음악 자체는 좋았다고 생각된다. 중간에는 소리꾼의 가락이 끼어들어 더욱 우리의 정갈한 마음을 나타냈다. 마치 안익태의 ‘코리안 환타지’가 적어도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과 같다. 그러나 경쟁을 벌이는 국제무대에서도 ‘한국에 대한 충성 음악’이 같게 들릴지는 의문이다. 이 음악의 주제는 많이 알려진 ‘아리랑(Arirang)’으로, 그리고 부제를 붙인다면 ‘아리랑, 한국의 사랑노래 (Arirang, a love song of Korea)’ 였으면 김연아가 우승을 했을까? 모르겠다.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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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권 2012.11.20 21:32 신고

    피겨여왕이 작년세계선권출전에 앞서 성원해준 조국에대한 국민에대한 감사에 오마쥬를! 다른장르에 도전을위해 지젤을썼다고했지요 그당시 순위는 중요치않았읍니다 그게중요했다면 승부기질이있는 피겨여왕이 심판들에생소한 한국음악을 쓰진않았을겁니다 우린그런뜻을 저버리고 금메다노쳤다고 말함부로했었지요 지금생각하니 나이어린 아가씨지만 부끄럽습니다 저런아가씨가 이나라에있다는것이 얼마나 다행입니까! 지켜볼수록 존경스럽기까지합니다 글잘봤읍니다

 

 

 

글 / 이철원 (스포츠둥지 기자)

 

 

              1990년대 세계 유도의 정점에 섰던 남자, 싱가폴 유도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는 전기영(39. 용인대)의 새로운 도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전기영, 전 세계 유도계에서 아직까지도 ‘업어치기의 교본’이자 ‘한판승의 사나이’로 불리고 있는 그의 경력은 화려하다 못해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다. 1993년부터 1997년까지 세계선수권대회 3연패(두 체급 석권)와 1995년 아시아선수권대회 우승,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금메달,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과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유도 국가대표팀 코치. 그리고 용인대학교 유도경기지도학과 사상 처음으로 비용인대 출신으로써의 교수임용까지.

 

1년간의 교환교수 형식으로 싱가폴에서 유도 대표팀을 지도하고 있는 전기영과 두 시간에 걸쳐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눠봤다.

 

 

전기영 Ⓒ 이철원

 

 

▶ 싱가폴에서 뵙게 되서 더 반갑습니다. 우선, 싱가폴 생활은 만족스러우신가요?
싱가폴에 온지 벌써 반년이 넘었네요. 참 살기 좋은 곳인 것 같습니다. 큰 불편함 없이 낮에는 영어 과외를 받고 저녁에는 선수들을 지도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중국어도 배워보고 싶었는데 영어 하나만으로도 벅차서 아직 중국어는 시도를 못하고 있습니다.

 

▶ 이곳 선수들을 지도해보니 어떻습니까?
우선, 어릴 적부터 체계적으로 배운 선수가 없다보니 기본기가 약합니다. 그리고 동남아 선수들의 타고난 신체적 열세와 부족한 운동시간 등이 많이 아쉽습니다. 선수들이 열심히 따라주고는 있습니다만 훈련시간을 늘릴 수 없는게 가장 안타깝습니다. 하루에 두 시간 정도 훈련해서 어떻게 국제무대에서의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 그래도 최근에는 성과가 조금씩 나오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최근에 베트남 오픈대회에 참가해서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지난 10년간 이곳 유도 대표팀이 국제시합에 나가서 금메달을 딴 적이 없었기에 이곳 관계자들이 상당히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아시안게임 같이 큰 대회에서 경쟁력을 가지기에는 부족합니다. 처음에 선수들을 데리고 국제대회에 참가했을 때가 생각납니다. 경기 중에 영어로 코치를 해야 하는 것이 부담 되서 긴장하고 있었는데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한판 패를 당해버리더군요. 정말 ‘딱지치기’하는 것처럼 말입니다(웃음).

 

▶ 챔피언 출신으로써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것 같습니다
정말 시합장에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선수들이 큰 시합만 나갔다하면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 나가떨어지니까요. 사실, 처음에 싱가폴 측 제의를 받았을 때 계약기간만 채우고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교환교수도 일 년까지 밖에 안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휴직계를 이용해서라도 일 년 정도 더 지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지금 이 상황은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들이 다가오는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과 그 이후의 올림픽에서 ‘전기영’에게 배운 실력을 뽐내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휴직을 하면 경제적으로도 많은 부담이 따르기 때문에 쉽게 결정을 내릴 수는 없지만 싱가폴 측에서 합당한 대우를 약속한다면 일 년 정도 시간을 더 투자해보고 싶습니다.

 

▶ 싱가폴 유도의 전망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도 스케이트 대표팀을 가르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싱가폴에서 유도는 비인기 종목입니다. 탁구나 수영 같은 인기 종목에 비할 수는 없습니다만 유도 연습장에 에어컨조차 없는 현실은 아직도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처음에는 그냥 지도만 하는데도 땀이 너무 많이 흘러서 4KG이 빠지더군요(웃음). 또한, 이곳 선수들의 신체적 조건이 좋진 않기 때문에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키고 싶었습니다. 특이하게도 이곳 선수들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지 않더군요. 그래서 싱가폴 체육회에 있는 체육관을 쓰고 싶다고 요청했는데 사용승인을 해주지 않더군요. 분명 몇몇 종목의 선수들은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말입니다.

 

또한, 남자선수들의 군복무는 정말 대책이 필요합니다. 2년간의 공백기도 문제지만 시합에 참가하는 것 자체가 어렵습니다. 지도하는 선수 중 그나마 가장 소질이 있어 보이는 친구에게 훈련 시간을 더 늘릴 수는 없냐고 물어봤더니 군인이기 때문에 힘들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럼 국제대회에라도 자주 참가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것도 허가를 안 해주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이곳 사정상 훈련을 일주일에 3~4번 정도 하고 있는데 그마저도 선수들이 불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곳 교육부의 지침 상 선수들이 수업과 시험을 끝낸 후에만 훈련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포츠 정책과 교육에 대한 개혁이 절실해 보입니다.

 

▶ 스포츠정책과 학생선수의 교육정책은 균형을 맞추기 힘든 부분이 많습니다
후배(필자)도 선수생활을 해봤으니 알겁니다.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또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을 따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 투자가 필요한지 말입니다. 물론, 이곳에서 영어를 배우면서 ‘아...학생 때 수업에 자주 참여했으면 지금 이렇게 고생하진 않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제가 그때 수업에 매일같이 참여를 했더라면 올림픽 금메달은 정말 힘들었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교수의 입장으로써도 ‘선수의 미래를 위해서 어떻게 교육을 시켜야하는가?’는 여전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한국은 선수들에게 공부를 조금 더 시킬 필요가 있어 보이고, 싱가폴은 공부를 조금 줄일 필요가 있어 보이는 참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 문제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끊임없이 머리를 맞대봐야 할 것 같습니다.

 

▶ 화제를 돌려보겠습니다. 은퇴 후 체육과학연구원과 공동연구를 하신 걸로 알고있습니다
2000년대 초 김영수 박사님이 진행하신 ‘탈란투라’라는 프로젝트였는데 전 세계의 유도 강자들의 영상을 다 모아서 자료화시키는 작업이었습니다. 각 선수의 특기와 사용하는 기술 등 유도에 대한 모든 정보를 세분화시킨 후 키워드만 입력하면 유도에 대한 모든 정보를 영상으로 검색해서 볼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이었습니다. 지금과는 달리 선수들의 영상을 쉽게 검색해볼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해외 강자들과 자주 맞붙어본 선수들은 상대편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것과 실제 영상을 보며 기술을 하나하나 다시 파악하는 것은 큰 차이를 가져옵니다. 아주 작은 차이가 결과에서 큰 차이를 가져오는 겁니다.

이게 바로 스포츠 과학입니다. 처음에는 효과가 미미하기 때문에 일선의 지도자들이 이런 연구를 많이 불편해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훈련하기도 바쁜데 선수들을 불러서 테스트를 진행하고 피를 뽑는 등 번거로운 일이 많아지니 짜증이 나지요. 하지만, 그런 과정을 겪지 않으면 절대 장기적인 발전을 가져올 수는 없습니다. 2004년 아테네 대회부터 지난 런던 올림픽까지 유도 대표팀이 계속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데는 분명 체육과학연구원의 노력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 마지막으로, 영어 공부에 많이 집중하고 계신 것 같은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은퇴 후 일본에서 1년 정도 머물며 공부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경력 때문인지 한국에 돌아오니 일본 측에서 손님만 왔다하면 저를 부르더군요. 운동만 하던 사람이 고작 1년 공부해서 어떻게 통역을 하겠습니까? 정말 진땀 흘릴 일이 많았습니다(웃음). 그때가 자꾸 생각나서 영어 공부에 더 몰두하고 있습니다. 해외에서 유도 관련 업무로 한국에 방문하는 손님들이 있으면 그들과 통역 없이 의사소통을 하는게 제 목표입니다. 계약연장을 생각하는 최우선적인 이유는 선수를 육성하는 것이지만 할 수 있을 때 영어를 더 배워보고 싶은 욕심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곳에 와서 선수들을 지도하다 보니 처음 계약과 다른 상황들에 부딪히게 되더군요. 제가 영어를 좀 더 구사할 수 있었더라면 시작단계부터 계약조건을 꼼꼼히 살폈을 것이고, 지금 상황에서도 더욱 능숙하게 어필을 할 수 있었을 겁니다. 늦은 나이에 영어문법부터 다시 시작하는게 쉽지는 않습니다만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목표를 정했으면 꼭 이뤄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배움, 그 자체의 재미가 쏠쏠합니다. 제가 싱가폴 생활에서 가장 기쁠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아내가 “당신 요즘 영어 많이 좋아진 것 같다”고 말해줄 때입니다(웃음).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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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아영 (스포츠둥지 기자)

 

 

알펜시아 스타디움 내에는 평창 올림픽 개최 기원을 위한 국민들의 염원을 쓴 리본조형물이 있다. 이아영

 

 

       최근 봅슬레이가 올림픽 메달을 획득하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관심을 많이 받고 있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많이 생소한 종목이지만 미디어를 통해 자주 비춰지다 보니 이제는 많이들 알게 됐다. 그 한 몫을 한 것이 바로 MBC 예능버라이어티 [무한도전]이다.

 

 

무한도전 봅슬레이 특집 MBC 무한도전

 

 

 

종목의 매력과 열악한 현실에 대해서 낱낱이 알려주면서 감동을 선사했다. 봅슬레이수준은  아직까지는 세계 랭킹에서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하지만 경기장 하나 없는데도 불구하고 늦게 시작해 경기장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 선수들과 같은 대열에 올라서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능성을 높게 평가할 수 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스키점프 경기가 펼쳐질 알펜시아 스타디움 이아영

 

 

둥지가 생겼다. 떠돌이 신세 청산!
봅슬레이는 소위 효자종목이 아니다. 아직까지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 등에서 메달권에 진입할 수 있을 만큼 연륜이 오래돼지 않고 선수층도 두텁지 않다. 그동안 가장 큰 문제는  실제 경기를 할 수 있는 아이스 트랙이 없다는 것인데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가 확정 나면서 자연스레 해결되었다.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경기장 내 봅슬레이 스타트 훈련장 모습 이아영

 

 

현재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에는 스키점프, 바이애슬론, 스켈레톤 & 봅슬레이 & 루지 스타트 훈련장 등이 완공된 상황이고 스키점프 경기장 건물에는 동계종목의 국가대표 선수들이 훈련할 수 있는 웨이트 트레이닝 훈련장과 물리치료실 등이 갖춰져 있다. 또 하나의 태릉선수촌이라고 할 수 있는 이곳은 동계 선수들이 훈련할 곳이 마땅치 않아  해외로 유랑생활을 하는 신세를 청산할 수 있게 했다.

 

 

동계스포츠 국가대표 선수들을 위한 알펜시아 스타디움 내에 위치한 물리치료실 이아영

 

 

평창 올림픽 유치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사실 살림살이가 좋지 않았다. 경기장이 없어 걱정할 필요가 없는 타 종목들에 비해 봅슬레이는 국내 아이스 트랙도 스타트 훈련장도 없었다. 매번 많은 돈을 들여 미국, 캐나다, 독일 등 봅슬레이 강국으로 떠났다. 전지훈련의 기회는 자주 있는 것이 아니었다. 봅슬레이 장비도 없어서 현지에서 늘 빌려서 경기에 출전하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2인승, 4인승 봅슬레이는 물론 선수들 개개인의 헬멧과 유니폼 그리고 스파이크까지 갖춘 상태이다. 선수들이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좋은 환경이 갖추어져 가고 있다. 예전의 열악한 환경과 비교해 달라진 오늘의 모습에서 2018년 평창에서 밝은 소식으로 되돌아올 것 같은 긍정의 기운이 느껴졌다.

 

 

렌트카로 F1경기 출전
 필자는 2008년 국내 여자선수로서는 처음으로 봅슬레이를 시작했다. 여자 선수를 위한 장비가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유니폼과 스파이크는 체구가 큰 남자 선배들로부터 빌려 입고 경기에 출전했다. 초보자들은 운전에 능숙하지 못해 많은 부상을 입는다는 말에  큰 옷 속에 옷을 여러 겹 끼어 입었다. 춥기도 춥고 부딪히면 아프니까 축구선수용 정강이 보호대 중 가장 큰 사이즈를 사서 팔을 감싸기도 했다. 봅슬레이가 얼음에 살짝만 부딪혀도 선수는 봅슬레이 내부 벽에 좌우로 부딪히며 팔다리가 시퍼렇게 멍이 든다. 하지만 잘하는 선수일수록 운전에 능숙하여 경기장 벽에 잘 부딪히지 않고 멍 때문에 고생하지도 않는다. 봅슬레이는 경기에 앞서 1시간 전에 자신들의 썰매를 정비완료 후 뒤집어서 날이 하늘을 보게 한 다음 일종의 주차장과도 같은 곳인 경기 출발대 옆에 두어야 한다. 경기 시작 전 세계봅슬레이협회 국제심판들이 장비에 부정한 장치를 하지는 않았는지, 장비상태가 위험하여 경기에 출전할 수 없는지 여부에 대한 점검을 하기 때문이다.


봅슬레이는 장비 구입부터 300kg이 넘는 썰매 운반 등 경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소위 ‘귀족스포츠’라고 알려져 있다. 세계 랭킹 1위 자리는 동계 스포츠강국인 독일, 미국, 캐나다 선수들이 주축이 되어 치열한 다툼을 갖는다.  필자가 선수로 활약하던 당시 남자 선수용 2인승, 4인승 봅슬레이는 구비된 상태였지만 여자선수용 봅슬레이는 없었다. 따라서 초창기 남자 선수들과 같이 현지에서 대여를 했다. 스폰서 스티커가 가득 붙어 있는 강국 선수들의 봅슬레이 사이에 빌린 썰매를 주차하고 나오면 기분이 묘했다. 얼마나 사용하지 않았는지 내부에는 먼지가 쌓여 있고 외부에는 부딪힌 흔적이 많아 테이프로 덧댄 흔적도 많았다. 1000분의 1초를 다투는 경기에서 빌린 장비로 경기를 한다는 것은 렌트카로 F1 경기에 나가는 것과 같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운동을 했었는데 이제 더 이상 ‘렌트카’로 경기에 출전하지 않아도 된다니 대한민국 봅슬레이의 미래가 밝다.

 

 

봅슬레이는 하는 사람이 없어서 아무나 국가대표 하는 거 아닙니까?
영화, 방송 등 미디어의 힘은 크고 강렬하다. 스키점프를 소재로 한 영화 [국가대표]를 보면 선수들의 초창기 환경을 각색하여 자칫 잘못하면 ‘아무나 국가대표가 될 수 있다’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게 만든 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무한도전 봅슬레이 편에서도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서 선수가 부족해 일반인들이 경기에 참가했다. 하지만 국가대표로 선발된 선수들은 운동의 기본기가 잘 닦아진 여러 종목에서 10여년 가량 활동한 소위 엘리트 선수 출신들이었다. 체력조건은 좋은데 부상을 입어서 은퇴한 선수, 여러 종목에서 성적이 부진한 선수 등이 봅슬레이로 많이 전향한다. 주로 역도나 투척(투포환, 창, 원반, 해머)선수들이 전향을 많이 했고 축구, 레슬링 등 타 종목 선수출신도 많다. 하는 사람이 없다고 해서 아무나 국가대표가 되는 것은 아니란 걸 국민들이 알아야 한다. ‘할 거 없는데 나도 봅슬레이나 해볼까? 하기만 하면 다 국가대표 되는 거 아냐? 공짜로 외국 나갈 수 있나? ‘등의 무지한 질문은 더 이상 남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웨이트 트레이닝장을 갖춘 스키점프 경기장 일원에서 워밍업을 하는 봅슬레이 국가대표선수들 이아영

 

 

시작이 반이다
 봅슬레이 경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을 하나만 꼽으라면 스타트라고 할 수 있다. 정지된 상태의 봅슬레이를 선수들이 전력질주하며 밀고 달려 속력이 붙는다. 4인승을 기준으로 봅슬레이의 무게는 평균 300kg이상에 달하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힘을 내며 달릴 수 있는 기본기가 필요하다. 순간적인 힘을 주로 쓰는 역도, 투척, 럭비 선수들이 많이 선호된 이유이기도 하다. 빠르기만 해도 안 되고 힘만 좋아도 안 된다. 적당히 빠르고 적당히 체중도 나가고 적당히 힘도 좋아야 한다. 그래야만 초반에 스타트 기록이 빠르고 결국 그 가속도가 후반부 기록에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한국 속담인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꼭 들어맞는다.

 

 

국내 최초 봅슬레이 스타트 경기장 이아영
(실제 얼음에도 봅슬레이 날을 끼울 수 있는 홈이 파여져 있다.)

 

 

체중도 적당히 나가야 좋다. 봅슬레이 운행을 하는 동안 선수들의 체중이 얼음과 마찰되는 날에 안정적으로 실려야 하기 때문이다. 4인승 봅슬레이에서 두 번째 혹은 세 번째에 탑승하는 선수가 주로 체중이 많이 나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가운데서 앞, 뒤의 무게중심을 잡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봅슬레이의 양 날개를 밀며 달린다고 하여 ‘푸셔’라고 부른다. 첫 번째에 탑승하는 선수는 ‘파일럿’으로 불린다. 파일럿은 봅슬레이를 조종하는 역할을 한다. 봅슬레이 운행 중 다른 선수들은 공기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 코스에 맞게 몸을 맞춘다.

 

네 번째 탑승하는 선수를 ‘브레이크맨’이라고 부르는데 그의 주요 임무는 봅슬레이를 정지하기 위해 내부에 있는 브레이크를 상단으로 잡아당겨 뾰족한 브레이크를 얼음에 박아 썰매를 멈춘다. 브레이크맨은 브레이크를 잘 잡기 때문에 마지막에 앉는 것이 아니다. 선수들 중 가장 마지막에 탑승하기 때문에 달리는 시간이 가장 길다. 즉 가장 발이 빠른 선수를 마지막 주자로 선정하는 것이다. 필자는 국제 경기에 출전했을 때 미국 브레이크맨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나 클 수가 있나 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럭비선수 출신들이 유난히 많은 미국 봅슬레이 브레이크맨들은 파일럿들 보다 더 중량훈련을 많이 하고 체력증진보충제도 많이 섭취했다. 하지만 몸이 너무 커도 불리할 수 있다. 점프하며 봅슬레이 안으로 쏙 들어가야 하는데 몸집이 크면 꽉 끼여서 힘들기 때문이다. 예전에 모 국가대표 선수는 4인승 봅슬레이 탑승 시 박자가 어긋나서 탑승을 못한 채 동료들을 떠나보내야만 한 적이 있었다(실제 경기 시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두 선수가 피니시 라인을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격처리가 된다).

 

또 모 국가대표 선수는 4인승 봅슬레이 탑승을 했는데 평상시 두는 곳에 다리를 둘 곳이 없어서 운행 내내 앞 선수의 등을 자신의 스파이크로 찌르기도 했다. 그 좁은 봅슬레이 안에서 함께 호흡을 맞추기 위해서는 협동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래서 예전에는 체조장에 있는 트램플린(일명 퐁퐁)으로 함께 뛰어 들어가며 호흡을 맞추기도 했고 선수들끼리 서로 눈을 감고 동시에 서로의 신호에 맞춰 박수를 짝! 치며 호흡을 맞추는 연습을 하기도 했다.

 

 

4인승 봅슬레이 스타트 훈련 모습 이아영

 

 

세계신기록이 없는 특이한 종목
봅슬레이는 유럽의 산악지역인 스위스 생모리츠(St. Moritz)에서 시작됐고, 눈이 많고 추운 유럽의 여러 국가들에서 크게 발달됐다. 캐나다 밴쿠버 올림픽 경기장인 휘슬러 경기장을 비롯해 현재 전 세계에 15여개의 경기장이 있다. 보통 산에 경기장이 있는데 지형과 주변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전 세계의 모든 코스가 다 다르다. 총 길이, 커브의 개수, 개별 커브 길이나 경사도 등 어느 하나 똑같은 경기장이 없다. 그래서 봅슬레이는 세계신기록이 없다.  경기장마다 보유 최고기록만 존재할 뿐이다. 대한민국은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확정 후 현재까지 아이스트랙이 국내에는 없지만 2016년쯤 경기장이 완공될 예정이다. 경기장이 생기고 나면 가장 먼저 대한민국 선수들이 시승을 할 것이고, 대한민국 선수들만의 훈련이 가능해질 것이다.

 

봅슬레이는 나이가 들수록 더 잘할 수 있는 종목상의 특징이 있다. 초반 스타트에서 밀고달리는 기능만 저하되지 않는다면 선수생활을 오래 지속할 수 있다. 운전은 하면 할수록 늘기 때문에 감각적인 부분에 있어서 더 섬세해지고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다. 또 오랜 선수생활을 통해 많은 경기장에서 경기를 해 여러 코스에서 쉽게 적응해 좋은 성적을 낼 수도 있다. 대한민국 봅슬레이 국가대표 선수들은 현재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다. 기존 국가대표인 김동현 선수를 제외하고는 올림픽 이후 등장한 신인선수들의 경력이 2년 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난 2011-2012시즌(동계스포츠의 시즌은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이기 때문에 두 개 년도를 한 시즌으로 묶어서 부른다. 즉 2011년 10월부터 2012년 4월까지 열리는 시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에서 주목할 만한 성적을 올렸다.

 

 

빌린 썰매는 옛날 얘기! 우리 썰매로 은메달 땄다!
 세대교체 이후 대표팀은 지난해 11월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아메리카컵 3~4차 대회에서 연달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올해 2월에는 미국 레이크플래시드에서 열린 2012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FIBT)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1~4차시기 합계 3분42초27의 기록으로 17위에 올랐다. 이는 한국 봅슬레이 역사상 최고의 성적이다. ‘파일럿’ 원윤종의 기대 밖의 선전으로 대표팀 이용 코치(33)는 “한국 봅슬레이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고 대륙 챔피언 자리까지 차지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탁월한 코스 분석 능력이 장점으로 꼽히는 원윤종은 지난 시즌 파일럿 MVP부문에서 2위를 차지할 정도로 실력을 입증 받았다. 첫 번째 은메달을 보고선 기적이라고 생각했지만 두 번째, 세 번째 은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는 실력이란 걸 알았다. 정말 아쉬운 것은 그 중 한 번은 1위와 0.1초라는 미세한 기록차이로 은메달을 땄다는 것이다.

 

파워와 순발력 단련을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있는 원윤종 선수 이아영

 

평창올림픽의 미래는 밝다. 
 대한민국 봅슬레이 인구는 여전히 적다. 하지만 훈련할 수 있는 여건만 제대로 갖춰진다면 많은 선수들을 확보할 수 있다. 현재는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집중을 하며 선수 선발보다는 육성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많은 좋은 선수들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 발굴한 좋은 선수들을 잘 키워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봅슬레이 선수 경력 2년이라면 시즌이 진행되는 7개월 동안만 실제 경기장에서 탈 수 있기 때문에 타 종목에서의 2년과는 다르다. 또한 그 7개월 중에서도 훈련할 수 있는 날이 정해져 있고 하루에 탈 수 있는 횟수에는 제한적이기 때문에(여러 국가 선수들이 하나의 트랙을 함께 사용하기 때문에 연습도 경기처럼 외국 선수들과 순서에 맞추어 출발해야 하는 규칙이 있다.) 그 2년이 진짜 2년이 아니다. 국내에 트랙이 없는 상황에서 체력조건이 좋은 새로운 선수로 계속 교체만 했다. 새로운 선수들에게 밀린 기존의 선수들은 은퇴를 해야 했다. 새로운 선수들에게 처음부터 다시 가르치며 육성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반복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선수들을 믿고 육성한 결과 기술적인 부분이나 체력적인 부분에서 많이 좋아졌다. 선수들의 스타트 기록이 단축된다는 것은 실제 트랙에서 기록이 많게는 2~3초 이상 단축 될 수 있다는 의미다. 1000분의 1초를 다투는 경기에서 스타트 기록 단축은 그야말로 희소식이다.

 

 

이번 2012-2013 시즌에서 쌓이게 되는 선수들의 경기 포인트는 2014년 소치 올림픽 출전 결정과는 아직 상관이 없지만 이번 시즌에서 좋은 경기를 펼쳐야만 높은 포인트 점수로 월드컵이나 세계선수권에서 상위권 점수를 만들 수 있고 그러한 포인트 점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포인트를 많이 받을 수 있는 규모 있는 경기에 출전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기기 때문에 이번 시즌은 중요하다. 소치에서 남자 2인승, 여자 2인승, 남자 4인승 모두 출전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능성의 나라 대한민국……. 평창 동계올림픽이 앞으로 6년이나 남았지만 살림을 들여다보니 정말 살림살이가 나아졌다는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 대박을 기원하며 봅슬레이에 대한 응원을 팍팍 해줘야겠다는 느낌을 가진다.

 

 

 대한민국 봅슬레이 파이팅!!

 

 

 

* 개인적으로 독자들에게 부탁이 있다. 봅슬레이가 외래어라서 그런지 아직도 용어사용에 대한 실수가 많다. ‘곱슬레이’나 ‘복슬레이’라고 부르거나 심지어는 ‘복술래이’라고 하시는 분들까지 만났다. 필자가 봅슬레이 선수출신인지라 모르시는 분들에게 설명을 할 기회가 많았었는데 이렇게 용어 실수를 하시는 분들이 한 두 분이 아니었다. 앞으로 봅슬레이로 세계를 정복할 대한민국이기 때문에 영어식 표현으로 '밥슬레이(Bobsleigh)' 혹은 '밥슬레드(Bobsled)'로 사용하는 것도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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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아영 (스포츠둥지 기자)

 

 

대한민국 역도의 살아있는 전설 장미란 선수 이아영

 

 

대한민국 역도 간판 장미란 선수의 경기가 있었던 지난 새벽, 대한민국은 또 한 번의 기적을 기대하며 두 손을 모았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세계신기록을 갈아치우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국민 영웅 장미란 선수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살아있는 전설적인 존재이다. 모든 선수들의 경기가 다 끝나고 자기 스스로와의 싸움을 펼쳤던 감동의 베이징 올림픽! 국민들은 기적의 순간을 또 한 번 기대하며 그녀를 기다렸다.

 

 

런던올림픽 결단식 현장에서 스포츠 둥지 기자를 보며 웃어 주는

역도 대표팀 김순희(코치), 장미란, 양은혜, 임지혜 선수 이아영

 

 

기다리던 장미란 선수가 무대에 등장하자 그녀를 기다렸던 대한민국 국민들의 함성이 경기장을 뒤덮었다. 영국에서 열리는 경기였지만 대한민국에서 시합할 때 못지않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장미란을 응원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한국 관중들이 있었던 건지 감히 상상이 안 갈 정도였다.

 

인상 1차시기 120kg에 도전하는 장미란은 평소처럼 진중한 표정으로 경기에 임했다. 늘 그랬듯이 흔들림 없는 자세로 가뿐히 성공했고 2차시기에 125kg로 증량하여 또 다시 성공시켰다. 하지만 129kg에 도전했던 3차 시기에서 위험한 장면이 잠시 연출되었다. 마지막 기구를 받아내는 동작에서 기구의 중심이 뒤로 넘어가다가 애매한 위치에서 멈추는 바람에 앞도 뒤도 아닌 그녀의 어깨 위로 떨어진 것이다. 하지만 유연한 대처로 끝까지 기구를 놓치지 않았고 고개를 숙여내며 안전하게 빠져나왔다. 중량급 중에서도 최고중량급 경기다 보니 기구의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

 

경기를 하다보면 이러한 위험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하는데 자칫 잘못하면 큰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에 지켜보는 수많은 사람들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사실 며칠 전 남자 77kg급의 기대주였던 사재혁 선수 팔꿈치 부상으로 안타까운 장면이 연출되었기에 대한민국은 순간 아찔할 수밖에 없었다. 메달을 따며 좋은 성적을 내는 것도 좋지만 국민들은 우리 선수들이 다치지 않고 스스로가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고 또한 그 것에 만족하는 모습을 기원할 것이다. 내 몸처럼 아끼는 마음으로 말이다. 

 

우려했던 부상은 없었다. 장미란은 3번의 시기 중 두 번을 성공하며 2차시기의 도전 기록이었던 125kg으로 인상경기를 마무리했다. 사실 이 무게는 140kg을 성공하며 세계신기록을 경신했던 베이징 올림픽 당시보다 15kg이나 낮은 무게였다. 쏟아지는 매스컴 보도와 장미란 선수 중계 자막은 내심 올림픽 2연패를 기대하는 눈치였지만 장미란 선수는 사실 금메달 경쟁을 하기에 몸이 부상에서 온전히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자신을 믿고 기다려주는 국민들에게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쉬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괜히 올림픽 3회 연속 출전이 아니었다. 역시 대단한 사람이었다.

 

 

태릉선수촌 역도장 구석에는 선수들 몸에서 떼어낸 것으로 만든 테이핑 공이 있다.

이는 선수들이 얼마나 부상의 고통에 시달렸는지 말해주고 있다. 이아영

 

 

 

라이벌 경기가 다 끝난 후 올림픽 신기록을 갈아치우며 홀로 경기를 치렀던 베이징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장미란 선수의 모든 시기가 다 끝나고도 두 명의 선수가 더 남아 있었다. 바로 그녀의 세계신기록(326kg)을 이미 2011세계선수권과 2012유럽선수권에서 차례로 갈아치운 러시아의 타티아나 카시리나(21)와 중국의 주룰루(24)였다. 예상은 했었지만 그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좋아진 모습이었다. 세계 최고의 자리를 양보해야만 하는 입장에서 그들의 경기를 보는 것이 썩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이 번갈아 나오며 세계신기록을 경신하는 모습을 보니 박수를 아낄 수는 없었다. 특히 타티아나 카시리나 선수는 인상에서 151kg을 성공하면서 인상 종목에서의 1위를 확정지었고, 여자 역도선수 사상 처음으로 인상에서 150키로 대열에 진입을 하게 되었다. 하룻밤 사이에 새 역사가 미친 듯이 쏟아져 나왔다.

 

 장미란은 인상에서 5위의 기록을 안고 용상으로 넘어갔다. 155kg을 1차시기로 신청했고 이내 작전을 변경하여 158kg에 도전했다. 장미란의 컨디션과 인상 경기 결과를 두고 보았을 때 1,2위와는 많은 격차가 있었기에 동메달 싸움을 준비해야했다. 동메달을 쟁탈하기 위해서는 1,2위 두 선수를 제외하고 인상에서 3~4kg의 기록으로 두 명의 선수가 앞서고 있었기에 용상에서 3번의시기를 모두 성공해야만 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무리한 도전은 실격을 유발할 수도 있기에 코치진은 안전한 작전으로 시합을 진행했다. 1차시기에 도전했던 158kg은 가뿐히 성공했고 이어서 164kg으로 2차시기에 도전해 김순희 코치의 화끈한 비명소리와 함께 짜릿한 성공을 알렸다.

 

 

 

용상 2차 시기에서 164kg을 성공한 모습 Ⓒ 대한체육회

 

 

 

동메달을 두고 각축을 벌였던 아르메니아의 쿠루슈디안은 그녀의 마지막 도전에서 장미란이 들어 올렸던 164kg보다 무려 2kg나 더 무거운 166kg을 성공시키며 장미란을 압박시켰다. 장미란은 마지막 시기가 남은 상태에서 동메달 획득을 위해서는 한 가지 선택밖에 없었다. 인상에서 4kg, 용상에서 2kg이나 앞서있는 쿠루슈디안를 합계(295kg)에서 이기기 위해서 종전 무게보다 6kg을 더 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만약 장미란 선수가 170kg에 성공할 경우 합계 기록에서 쿠루슈디안와 같은 기록인 295kg를 기록하며 체중이 덜 나가는 유리한 조건으로 경기에서 이길 수 있었다. 용상의 첫 번째 동작인 클린(Clean)에서 실수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장미란은 두 번째 동작인 저크(Jerk)에서 약간 걱정이 되었다. 부상 부위가 바로 좌측 어깨였기 때문이다. 사실 인상 3차시기 동작에서 위험한 동작이 연출되었던 것도 마무리 동작에서 어깨가 순간적으로 파고들어가며 확실하게 잡아주지 못한 부분도 기여를 했다. 부상 재활에서 온전히 회복하지 못한 터라 용상 2차시기도 약간은 빠듯해 보이는 무게였다. 그러나 우린 기적을 믿었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하며 응원했다.

 

 그녀에게 마지막 올림픽, 마지막 시기였다. 경기장 내에는 장미란 선수가 호명되었고 그 순간 1분 카운트가 시작되었다. 김순희 코치의 마지막 지시를 듣고 계단을 올라갔다. 탄산마그네슘 가루를 펴 바르며 마인트 컨트롤을 했다. 관중들은 하나 되어 장미란 파이팅을 연신 외치기 시작했다. 드디어 무대에 섰고 마지막 기합을 쏟아냈다. 숨 막히는 순간, 먼저 데드리프트(땅에서 바를 끌어 올리는 동작), 그리고 클린을 하며 앉았다 일어나는데 잠시 중심이 뒤로 빠지며 앞발이 살짝 들렸으나 이내 중심을 찾으며 일어섰다. 절반의 성공이었다. 두 번째 저크 동작! 하지만 장미란 선수의 어깨는 무게를 견디지 못했고 아쉽게도 기구가 뒤로 떨어졌다. 관중들은 탄식을 자아내며 미처 다 밀어내지 못한 우측 팔꿈치의 힘겨운 사투를 보며 아쉬운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경기가 끝났다. 메달을 딸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은 쿠루슈디안 선수에게 양보하고 4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장미란은 무대를 곧바로 내려가지 않았다. 올림픽 3연속 출전에 첫 노메달이었지만 무대 뒤로 물러 나와 응원해주신 팬들에게 보답하기 관중을 향해 감사의 큰 절을 올렸다. 그 후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인 무릎 꿇고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벨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손 키스를 선사했다.

 

 

 

 

운동을 할 수 있어 행복했었다는 마지막 올림픽 무대에서 고마운 바벨에게

손 키스를 선사한다.  Ⓒ 대한체육회

 

 

전 세계에서 힘이 가장 센 여자들의 마지막 축제는 접전 끝에 스무 네 살 어린나이의 주룰루(중국) 선수가 차지했다. 합계 세계신기록을 두고 신기록 경신을 거듭했던 치열했던 마지막 승부가 종료되었다. 다행인 점은 베이징 올림픽 당시 장미란 선수가 세웠던 용상 올림픽 신기록인 187kg은 깨어지지 않았다. 주룰루가 타이기록에 도전해 성공 후 190kg에 도전했으나 실패하면서 용상 부문 세계 최강자라는 타이틀은 지켜냈다. 장미란 선수는 비록 시상대에 올라서지 못했지만 그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서 잘 싸웠다. 그녀는 세계선수권대회 4연패와 아테네올림픽 은메달,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등 올림픽,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대회와 같이 출전할 수 있는 모든 국제대회를 제패한 '그랜드슬래머'라는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 세계 여자역도의 최강자 자리에서 물러났다.

 

 

자랑스러운 KOREA 대표선수 장미란 이아영

 

 

 

부상의 아픔을 딛고 일어나 자신이 다 할 수 있는 최고의 노력을 이루어 낸 그녀는 우리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경기 직 후 믹스트 존에 모습을 보인 장미란은 눈물을 훔치며 취재진들을 울게 했고, “베이징올림픽 때보다 한참 못 미치는 기록이 나와서 나를 응원하고 사랑해주시는 분들을 실망시켜 드렸을 것 같아 염려스럽다.”며 오히려 국민들을 걱정했다.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올림픽을 준비할 수 있어서 행복했고 부족한 저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셔서 과거에 큰일을 해낼 수 있었다”고 말하며 취재 내내 감사하고 행복하다는 말을 거듭했다.

 

 경기는 끝났지만 대한민국은 잠들지 못했다. 그녀에게 감동받은 한 여성 네티즌은 “임산부이기에 밤새 올림픽을 보는 것도 자제해왔는데 장미란 선수의 경기는 놓칠 수 없었고 마지막 순간 메달을 획득하지는 못했지만 감사 기도와 바벨 키스를 보며 가슴이 뭉클하여 함께 울었다.”고 했다. 지난 새벽 육상 100m 달리기 우사인 볼트가 올림픽 신기록을 갈아치우며 금메달을 땄음에도 불구하고 장미란 선수를 응원하는 글로 인해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그녀의 이름 세 글자는 실시간 검색 순위 1위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선수 장미란은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매력쟁이다. 혜성처럼 등장하여 국민들의 혼을 흔들어 놓고 대한민국의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다. 평소 심성이 곱고 정이 많기로 유명한 장미란은 자신의 이름을 건 재단을 설립하여 운영 중이며 비인기 종목이나 어려운 환경에서 훈련하는 꿈나무 선수들을 돕고 있다. 그러나 사실 장미란 선수는 재단이 설립되기도 훨씬 이전부터 몰래 선행을 베풀고 있었다.

 

모 선수로부터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장미란에게 선행을 당한(?) 모 선수는 처음으로 국가대표로 발탁이 되어 국제시합을 출전하게 되었는데 출국 날 아침 장미란 선수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고 했다. 개인별 공항 소집이었던지라 무거운 짐을 홀로 운반해야 했던 그 선수를 걱정하며 장미란은 직접 공항버스 정거장까지 차로 데려다 주며 오전 휴식 시간을 반납했다. 그리고는 헤어지면서 빨간색 편지봉투를 건네었다. 그 선수는 분위기 상 용돈을 주는 줄 착각하고 죄송한 마음에 거절을 했지만 장난끼 섞인 표정으로 편진데 왜 거절을 하느냐며 오히려 반문하자 받을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녀가 떠난 후 홀로 남아 봉투를 열었던 그 선수는 봉투 속 들어있던 깨알 같은 손 편지와 달러를 보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진심은 항상 통하기 마련이다.

 

 

 

장미란 선수가 후배 선수들을 격려하며 쓴 감동의 손 편지  이아영

 

 

 

주변 사람들이 모두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인정하는 장미란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그녀의 겸손함과 감사할 줄 아는 태도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녀는 찬사를 받아 마땅한 사람이다.

 

경기가 끝나고 6시간 후 4년간 그녀의 곁을 함께 했던 장미란 전담 코치 김순희의 페이스북에는 이런 글이 올라왔다. “4년여의 시간을 이 선수와 함께 걸어올 수 있게 해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비록 메달을 목에 걸진 못했지만 고개 숙이거나 눈물 흘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장미란이란 이름만으로도 이미 역도계에선 소중하고 값진 보물이며 많은 국민들에겐 영웅입니다. 미란아, 너의 세 번째 올림픽을 함께 준비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고 그 도전은 너무도 멋졌다……. 고맙고 사랑한다.!!”

 

 

즐겁게 분위기 속 훈련을 시작하는 김순희 코치와 장미란 선수의 모습  이아영

 

 

 

 

태릉선수촌 역도훈련장의 장미란 선수 자리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STRONG IS HAPPY"
강하지만 부드러운, 부드럽지만 강한! 역도계의 살아있는 전설! 장미란은 우리 가슴 속에서 진한 감동으로 오래토록 남을 것이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말 "STRONG IS HAPPY" 이아영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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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혈여아 2012.08.07 11:47 신고

    장미란 선수 경기보면서 너무 안타까웠는데, 기자님 글을 보니 눈물이 나려고 그러네요. ㅠㅠ 고생했어요 장미란선수~~! 당신은 영원한 국민영웅입니다~~!
    (선수들 몸에서 떼어낸 것으로 만든 “테이핑 공”도 인상깊네요)

  • 이아영 2012.08.08 14:44 신고

    열혈여아님~^^
    기사 잘 보셨다니 감사합니다! 테이핑 공 정말 뭉클하더라구요^^ 앞으로도 장미란 선수 응원 많이 부탁드립니다!!!

 

                                                                                               글 / 이종세 (경희대학교 객원교수)

올 세계선수권에서 48년 만에 ‘노 골드’ 수모...누적된 자만의 결과
사람들은 태권도하면 한국을 떠 올리고 유도하면 일본을 떠 올린다. 한국과 일본이 각각 태권도와
유도의 종주국이기 때문이다. 작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은 태권도에 4명의 선수가 참가,
전원 금메달을 따냈다. 한국이 금메달 13개로 종합7위를 차지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해낸 것이다.
일본 유도 역시 올림픽이든 세계선수권대회든 세계 최강이었다. 그런 일본이 올 세계유도선수권대회
남자부에서 48년 만에 ‘노 골드’의 수모를 당했다. 누적된 자만의 결과였다. 내분이 그치지 않은 한국
태권도가 일본 남자 유도의 몰락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1961년 이후 처음으로 금메달 못 따...한국은 금 2로 남자 종합1위
지난 8월30일은 네덜란드 로테르담 아호이 센터에서 닷새간 열린 2009년 제26회 세계유도선수권대회
마지막 날. 한국 남자 유도는 이미 2개의 금메달(왕기춘, 이규원)을 따낸 뒤라 남자부 종합 1위의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일본은 이날의 -100kg급과 +100kg급에서 모두 우승해야 한국을 제치고
남자부 종합 1위에 오를 수 있는 절박한 상황.
일본은 1956년 제1회 세계유도선수권대회(도쿄)가 출범한 이후 1961년 제3회 대회(파리)에서
네덜란드의 안톤 헤싱크에게 금메달을 내줘 ‘노 골드’를 기록한 적은 있으나 이후 한번도 금메달을
놓친 적이 없다. 세계유도선수권대회는 1회부터 3회까지 체급제한 없이 1체급만 열렸고 4회 대회 때
4체급, 5회부터 9회 대회까지 6체급, 10회 대회(1979년)이후 8체급이 열리다가 올해부터 7체급으로
줄었다. 하지만 일본 남자 유도는 이날 두 체급 모두 결승 진출에 실패, 1961년 이후 48년 만에
금메달을 하나도 따지 못하는 불명예를 감수해야 했다.
마침 이날은 일본 총선에서 1955년 이후 집권해온 자민당이 야당인 민주당에 대패, 54년 만에
정권을 내줘 일본 남자유도와 함께 몰락의 쓴잔을 든 날이기도 했다.

6회, 8회 대회에서는 6개 전 체급 석권...‘전설’ 야마시타 203연승 신화
사실 일본 남자 유도는 세계선수권대회 창설 이후 지난 50여 년간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강이었다.
특히 1969년 제6회 멕시코시티 세계선수권대회와 1973년 제8회 스위스 로잔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6개 전 체급 우승을 독차지했고, 8체급으로 늘어난 1979년 파리대회이후에도 20년간 4체급 이상의
정상을 지켜 종주국의 면모를 이어왔다.
일본 남자 유도는 야마시타 야스히로로 대변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 스포츠의 ‘살아있는 전설’로
1977년부터 1985년까지 세계선수권대회 3연패,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우승, 전(全) 일본 유도선수권대회
9연패 등의 위업을 이루면서 무려 203연승의 대기록을 세워 ‘장엄한 유도 기계’로 불리기도 했다.

올해는 금 없이 은1,동1 초라한 성적...일본 유도계 내분 반목이 원인
그러나 일본 남자유도는 야마시타 은퇴이후 쇠락의 조짐을 보이더니 1989년 베오그라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체급이 3개로 줄었고 1997년 파리대회에서는 한국(금메달 3개)보다 적은
2개의 금메달을 따는데 그쳤다. 이어 2001년 뮌헨 대회와 2007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에서는
겨우 1체급에서 우승하는 퇴조를 보였으며 마침내 올해에는 48년 만에 금메달 없이 은, 동메달
각 1개로 대회를 마감하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까. 일본 유도는 올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여자부 금메달 3개로 남녀 종합
순위에서는 가까스로 한국에 앞서 1위를 지켰으나 종합 2, 3위를 차지한 한국과 프랑스 등에
언제 종합 우승을 넘겨 주어야할지 아무도 모른다.
물론 일본 남자 유도의 재기 가능성이 전무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일본 남자 유도의 조락은
경쟁국들의 기량 향상 못지않게 일본 유도계의 내분과 무관하지 않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일본 유도연맹의 집행부 구성과정에서 파벌다툼이 일었고 이 여파가 국가대표선수 훈련과 선발과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국 태권도, 베이징 올림픽 종합 1위...국기원 등 파벌싸움 위험 수위
필자는 일본 남자 유도의 최근 상황을 지켜보면서 한국 태권도의 장래에 대한 우려도 금할 수 없다.
우리나라가 주도하고 있는 세계태권도연맹(WTF)의 총재 선출과 관련, 한국인들끼리 반목하고 있다는
듣기 거북한 잡음이 들려오고 있고 세계태권도의 본산인 국기원도 주도권 싸움에 난파선의 위기를
맞고 있다. 대한태권도협회 또한 거물급 정치인을 잇달아 회장으로 추대하고 있지만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불협화음이 태권도의 국제적 위상에 치명타가 될 수 있고, 국가대표선수들의
경기력 저하와도 직결될 수 있다는 점이다.

2008 베이징 올림픽 태권도에서 한국에 4개의 금메달을 안긴 임수정 손태진 황경선 차동민(왼쪽부터) 

태권도계 분규 종식...경기 규칙 개선 등으로 종주국 위상 지켜야 
지난 2000년 시드니 올림픽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돼 우리나라 메달 획득의 효자종목 역할을
톡톡히 해온 태권도. 하지만 유도와는 달리 아직도 올림픽 무대에서 퇴출 위협을 받고 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까지는 보장돼있으나 2020년 올림픽에서 가라테 등과 겨뤄 살아남으려면
경기 규칙의 객관화 등 보완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있다.
또 종주국 한국의 경기력에 거세게 도전하고 있는 경쟁국들에 대한 우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각고의
훈련과 공정한 대표 선발 등 부단한 준비과정이 필요하다.
당장 10월14일부터 덴마크에서 열리는 2009년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도 만만치 않다. 작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종합 1위를 했다고 해서 이번 세계대회에서 자만했다가는 일본 남자 유도와 같은 결과가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설사 이번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 해도 궁극적으로 세계태권도연맹이나 국기원, 대한태권도협회
등 관련 기관 단체의 분란이 계속된다면 한국태권도의 경기력은 치고 올라오는 신흥 태권도 강국의
도전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음을 깊이 새겨야 할 처지다.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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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관관계 2009.10.14 22:29 신고

    안녕하세요. 이종세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다만 제 생각에는 이건 단순한 기사거리라고 생각됩니다. 즉 좋은 자료들을 저희에게 제공해주신거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자료들은 저희가 쉽게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는 자료들인데
    이렇게 나열하는 것보다는 일본 유도가 금메달을 따지 못한이유와 지금 한국 태권도가 그런 이유를 겪고 있다는 식의 설득이 필요해보입니다.

    스포츠둥지를 통해서 얻고자 하는점은 스포츠 현상이 아닌 그 현상을 교수님 혹은 산업에 계신분은 어떻게 바라보는지 다양한 시각을 배우고자 하는점을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 상관관계님 반갑습니다.
      좋은 지적 감사 드립니다.
      다만, 야구, 축구 등은 다른 사람들에
      관심을 많이 받고 있지만, 육상, 태권도 등
      비인기 종목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분들이
      그 기사조차도 모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는 글도 당연히
      다루어야 하지만,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이런 포스트도 좋을 꺼라 생각합니다.
      또한, 오픈한지 이제 한달이 넘었습니다.
      아직 미흡한 점이 많으니 앞으로 더 노력할꺼예요~
      지켜봐 주세요 ^ ^

글 / 문영진 (국민진흥공단 체육과학연구원)


 

지난 베이징 올림픽에서 역도는 최고의 효자 종목이였고,
그만큼 온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장미란 선수와 사재혁 선수의 금메달과 윤진희 선수 은메달로
자랑스러운 한국의 역사들은 한국 역도 사상 최대의 경기력을 발휘하였고,
만약 이배영 선수의 다리에 쥐가 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최소 은메달이 하나 더 추가되었을 것이다.


1992년 바로셀로나 올림픽에서 전병관 선수의 금메달 이후
2000년 시드니 올림픽까지 노메달의 수모를 겪어왔고,
2004년 여자 75+ 급에서 중국의 탕공홍 선수에게 아쉽게 금메달을 넘겨주었던
순간이 있었지만 2008년 결국 금메달을 목에 건 장미란 선수를 비롯해서
멋진 경기로 역도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선수들이 얼마나 열심히 혹독하게
올림픽을 준비하였는지 옆에서 지켜보았던 필자로서 선수, 코치들에게
큰 환호와 칭찬과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올림픽에서는 단하나의 메달을 따기 위해서도 피나는 노력과 남다른 방법들이
동원되고 그리고 그것들이 조화롭고 치밀하게 운영
되어야만 한다.
코치와 선수들 사이의 원만한 관계와 무한한 신뢰, 선수개인의 심리통제, 행동의 자제,
영양관리, 스포츠과학의 접목 등 여러 요인들이 함께 완벽히 어우러져야 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조화롭게 운영된 팀이 바로 역도종목이었고 2008년이 그 결실의 해였다.
선수촌에서 항상 모범이 되고, 잘 돌아간다는 칭찬을 도맡아 온 역도팀 이었기에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여 주었다고 판단된다. 

 



필자는 체육과학연구원 소속으로 역도종목 코디네이터이며 기술부분을 담당하여
과학적 지원을 수행해 왔다. 
지난 베이징올림픽을 대비하여 장미란 선수를 토대로 어떤 내용으로
스포츠과학이 현장에 적용
되었는지에 대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장미란 선수는 앉아받기시 오른발이 뒤로 빠지는 문제점이 있었다.
이러한 동작은 중·고등학교부터 시작된 잘못된 기술훈련에 기인됐다.<그림 1 참조>
앉아받기시 오른발이 뒤로 빠지는 문제로 인해 동작이 틀어지면서
왼쪽 승모근을 시작으로 골반, 팔꿈치 손목 등에서 통증을 호소하는 문제점이 발생
되었다.
사이벡스 테스트를 통해 대퇴내전근, 외전근, 허리신근 등
좌우근력의 차이를 검증하였고,
그 결과 근력의 좌우 발란스가 많이 틀어져 있고 이러한 결과가 동작을
틀어지게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따라서 좌우 근력의 발란스를 맞추는 훈련을 실시하였고
점차적으로 근력의 좌우 발란스가 균형을 이루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동작은 틀어져 수행되었다.
또 다른 원인이 존재했던 것이다. 

  

바벨이 고관절을 지나면서 오른팔을 오른 상체를 많이 활용함으로 인해
전체적으로 왼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동작에 의해 앉아받기시 바벨의 중량이 왼쪽으로 쏠리게 되고,
특히, 왼쪽 승모근에 큰 무리가 발생되고 있는 상태였다.



EMG(근전위활동) 분석을 실시하여 어느 정도 왼쪽 승모근에서 힘이 발현되는지에 대한
검증을 수행하였다.

그 결과 오른쪽 승모근보다 왼쪽 승모근이 약 4-5배 정도
더 큰 근력이 발현되는 것을 알아냈다<그림 3>.

이는 장미란 선수의 왼 어깨부위에 부상당할 위험성이 크다는 것을 암시해 주는 것이었다.
따라서 주 운동을 잠시 정지하고 다시 상체근력을 보강, 좌우 근력 균형 맞추기,
라스트풀 동작이후 자세가 틀어지는 동작을 수정하기 위한 지속적인 인지훈련을 실시하였다.


즉, 몸이 틀어지지 않도록 거울을 보고 훈련하거나 옆에서 지속적으로
점검해주거나 카메라 촬영을 통해 즉각적 인지를 위한 피드백을 제공하였다.
그 결과 위 그림처럼 처치후 동작으로 바뀌게 되고 이러한 결과로 인해
무사히 베이징 올림픽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앞으로 2009년 세계선수권대회(한국 일산에서 개최),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2012년 런던 올림픽을 대비해서 장미란 선수에게 넘어야 할 산이 있다.
2009년 7월에 개최된 한중일 대회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아직도 좌우 발란스가 많이 틀어져 있으며,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바벨이 무릎을 지난 후
고관절에 이어 라스트 풀동작을 수행할 때 고관절이 뒤로 빠져 있음으로 인해
가장 힘을 폭발적으로 힘을 써야 할 부분에서 제대로 쓰지 못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기술적으로 고관절과 바벨이 좀 더 가깝게 붙을 수 있도록 하고,
이러한 현상을 없애주는 근력강화 측면에서 상체근력(광배근, 승모근, 삼각근, 허리신근 등)을
강화시키는 노력이 꾸준이 진행되어야 할 것
이다.
또한, 좌우근력 발란스를 맞추는 작업도 계속해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올림픽메달은 선수 하나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선수뿐만 아니라 감독, 행정지원 등이 서로 조화롭게 어우러져야 하며
앞에서 보여주었듯이 스포츠과학 역시 튼튼한 버팀목으로서 선수의
경기력 향상을 위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여야 한다.
 
이제 올림픽은 선수들만의 경쟁이 아니라 선수를 매개로 하는 각국의
스포츠 첨단과학의 경쟁이기도 하다.
따라서 역도종목에서 확연히 보았듯이 스포츠과학의 발전과 현장에서의 접목을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의 지원 및 지지노력, 국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절실히 요구된다.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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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미란 선수의 경우 저희들의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좌우 밸런스 불균형의 문제가 발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발의 정렬이 올바르지 못하면 웨이트 트레이닝(근력운동), 스트레칭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많은 선수들의 밸런스 문제와 경기력 향상을 위해 발을 서포트하고 있는 만큼 기회가

    된다면 장미란선수 뿐만아니라 많은 선수들의 선수생명 및 경기력 향상과 국내 스포츠

    발전을 위하여 선수들을 상대로 저희 장비로 몇가지 측정을 해 보고 싶은 바램입니다.

    • 김원태님 안녕하세요.
      깊은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필진 선생님과 한번 논의해 보시는 게
      어떤가요? 좋은 방법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 김현수 2010.03.24 10:20 신고

    트레이닝 방법론 발표 수업에 한 예로 들었습니다 ^^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글 / 이종세 (경희대학교 객원교수)



마라톤 스타들
, 세계선수권대회 외면 경향도

지난 8월24일 베를린에서 막 내린 제12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는
‘육상의 꽃’인 마라톤에서 두 가지의 뚜렷한 변화가 감지됐다.

우선 8월의 무더위 때문에 그동안 순위경쟁을 펼쳤던 남자 마라톤이 이젠 기록경쟁으로 바뀌었다.
또 하나는 세계 최고의 마라톤 스타가 ‘기록의 산실’인 9월의 베를린국제마라톤 참가를 위해
세계 정상을 가리는 세계선수권대회를 잇달아 외면한 점이다.

이 같은 변화는 작년 8월 베이징올림픽에 이어 1년 만에 다시 나타난 것으로
국제마라톤계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평가다.

한 여름 레이스에서도 2시간 6분대 기록 속출...종전엔 2시간 8,9분대

8월 22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주변 순환코스(10km 코스를 네 바퀴 돔)에서 벌어진
제12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마라톤은 2시간 6분 54초의 대회 최고기록을 작성한
케냐의 아벨 키루이가 우승했다.
또 37km 지점까지 키루이와 함께 뛴 팀 동료 엠마누엘 무타이(케냐)가 대회 최고기록인
2시간 7분 48초로 2위에 올랐다.

키루이와 무타이의 대회 최고기록은 2003년 제9회 파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모로코의 자우드 가립이 세운 2시간 8분 31초를 6년 만에 경신한 것으로,
키루이는 1분 37초, 무타이는 43초를 각각 단축했다.

1983년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이 제1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헬싱키에서 개최한 이래
이 대회는 1991년까지 4년마다 한 번씩 열어오다 1993년 대회부터 2년에 한번 씩 개최,
올해 12회를 맞았는데 개최시기는 가장 무더운 8월이 대부분이었다.

    왼쪽에서 부터 아벨 키루이(케냐),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에티오피아), 사무엘 완지루(케냐
                                                                                             미지출처<연합뉴스>

종전엔 기록경쟁 엄두 못내... 베이징올림픽부터 스피드 경쟁 불붙어


이 때문에 개최지 기온에 매우 민감한 마라톤은 기록경쟁보다는 순위경쟁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섭씨 30도가 넘는 무더위 속에 2시간 5, 6분대를 겨냥해 달리다가는
쉽게 지쳐 중도 포기가 불가피하기 때문. 따라서 선두 그룹의 레이서들은 곁눈질로 경쟁자들의
스피드와 컨디션을 살펴가며 힘을 최대한 아꼈다가 40km 지점 이후의 막판에 승부수를 걸어왔다.

1991년 제3회 도쿄 세계육상선수권 남자마라톤에서 조국에 세계육상선수권 첫 금메달을 바친
일본의 ‘국민 마라토너’ 다니구치 히로미(谷口浩美)도 폭염을 이기지 못해 순위경쟁을 벌이다
2시간 14분 57초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맨 먼저 통과, 일본 열도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다니구치의 우승기록은 올 대회 우승자 키루이의 기록에 비해 8분 03초가 뒤지는 것으로
거리로 따지면 2.4km나 된다.

혹서기 레이스에서 2시간 6분대의 기록이 처음 나온 것은 작년 8월 24일 베이징 올림픽 남자마라톤.
당시 케냐의 사무엘 완지루가 예상을 깨고 2시간 6분 32초의 기록으로 우승한 것.
완지루의 기록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포르투갈의 카를로스 로페스가 수립한
2시간 9분 21초의 대회 최고기록을 24년 만에 2분 49초 앞당겨 마라톤 전문가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 때문에 그 동안 ‘봄, 가을의 국제마라톤에서는 기록경쟁,
한여름의 세계선수권대회나 올림픽에서는 순위경쟁’이라는
마라톤 레이스의 개념이 바뀌고 있어 이에 대한 한국마라톤의 대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게브르셀라시에 작년부터 올림픽, 세계선수권 외면... 대회권위 흠집

한편 2009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는 매년 9월 하순에 열리는 베를린 국제마라톤에서
세계최고기록 경신을 노리는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참가를 외면, 대회 권위에 흠집을 남겼다.

작년 2008 베를린국제마라톤에서 2시간 3분 59초의 세계기록을 세웠던
에티오피아의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는 2009 베를린국제마라톤에서
자신의 세계기록 경신을 위해 2009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마라톤 출전을 포기했다.

게브르셀라시에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마라톤에도
“베이징의 공기 오염 때문에 참가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1개월 뒤 열릴
베를린국제마라톤을 의식해 올림픽 참가를 거부한 것.
베이징올림픽은 혹서 때문에 기록경신이 어려운데다 베이징 올림픽을 뛸 경우
체력 회복을 위해 적어도 3개월은 쉬어야하기 때문.
여기에 베를린국제마라톤 조직위가 지급하는 막대한 참가비와 우승상금 역시 놓치기 아까운 호재.

작년 올림픽 우승자 완지루도 올 세계선수권대회 참가 외면

이 여파는 작년 베이징올림픽에서 2시간 6분 32초의 놀라운 기록으로 우승한
완지루에게도 미쳐 완지루의 2009년 세계선수권대회 마라톤 출전을 포기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마라톤 세계 기록보유자인 게브르셀라시에가 베를린 국제마라톤 참가를 겨냥,
작년 베이징 올림픽에 이어 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도 불참하자
완지루도 올 세계선수권대회 대신 9월20일의 베를린국제마라톤에 나가기로 한 것.

세계마라톤 기록의 산실인 베를린 국제마라톤은 9월 20일 세계최고기록 보유자인
게브르셀라시에와 2008년 베이징올림픽 우승자인 완지루가 ‘세기의 대결’을 펼치게 됐지만
세계최고의 권위를 지켜온 올림픽과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마라톤은 그 위상이 흔들릴 수밖에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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