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42

 

 

 

글 / 이영미 (대한라켓볼협회 사무국장)

 

 

 

운동하기 좋은 매년 봄 가을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
각종 스포츠용품 회사의 마라톤대회, 걷기대회 뿐만 아니라 많은 스포츠 이벤트 행사가 열리는 계절이기도 하다.

 

 

<핑크리본 사랑마라톤의 2013년 로고>

 

그 중 필자는 핑크리본 사랑마라톤을 다녀왔다.
핑크리본은 유방암 예방 캠페인의 일환으로 자가진단 및 유방암의 치료에 후원을 하는 등의 사회공헌에 관심을 두고 있는 비경쟁적 마라톤대회라 할수 있다.
이 행사는 매년 4월에 지방에서 시작하여 10월에 서울대회를 마지막으로 개최된다. 이 대회의 특징은 참가비 전액이 한국유방건강재단에 기부되는 대회이기도 하다.
핑크리본 캠페인은 미국에서 1991년부터 시작되어 올해로 21년째를 맞이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13회째 대회를 맞이하고 있다.

 

 

 <마라톤 출발모습> 

 

<경기종료 후의 무대행사>


대회장소에는 각종 이벤트 부스가 마련되어 있어 유방암 자가검진 방법등을 알려주기도 하고 간단한 검진을 시행하기도 한다. 또한 병원단위로 구성이 된 유방암 환우회도 자리를 잡고 여러 가지 봉사와 후원을 하고 있었다.

 

 

 

   

<각종이벤트 부스>

 

다양한 이벤트 중 필자의 눈에 띈 것은 참가자들 스스로 기부를 하고 자가검진 서약서를 작성하여 나무에 매달며 자신과 주변인의 건강을 스스로 지키고자 하는 이벤트에 참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핑크리본서약서 나무>                                       <핑크리본 조형물>

 

이 핑크리본 캠페인으로 유방암을 직접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자신과 주변인의 건강에 관심을 가지고 자가검진을 통한 유방암을 조기발견으로 환자의 생존율을 높일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었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으로 기부와 후원을 통한 환자에게 도움을 주며 치료제의 개발에 큰 역할을 한다고 한다. 이렇게 시작한 행사가 이제는 남녀노소 모두 즐기며 건강에 대한 의식을 고취 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필자는 이 행사에 다녀오며 스포츠 이벤트가 사회뿐 아니라 개개인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음에 다시금 기분이 상쾌했던 하루였다.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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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태구(부천 상동고등학교 교사)

 

 

The Team Hoyt !

‘나는 아버지입니다’라는 동영상은 유튜브에서 1,50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본 영상입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이미 잘 알려진 매우 유명한 동영상입니다.

 

아버지 닉 호이트는 제대로 걷지 못하는 중증 장애인 아들 릭 호이트의 ‘달리고 싶다’는 소망을 이뤄주기 위해 아들을 휠체어에 태워 마라톤을 완주하고 허리에 고무보트를 묶고 강을 건넜고 특수 자전거를 타고 철인 3종경기에 참가하여 6회 완주하였습니다. 그 후 마라톤 64회, 단축 철인 3종경기 206회, 보스턴 마라톤 24회 연속 완주의 대기록을 달성하였습니다. 이 아버지와 아들은 마라톤 대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달리 둘이 동시에 출전하기 때문에 The Team Hoyt라고 부릅니다.

 

http://youtu.be/vRYZxfqqiDw ⓒ유튜브

 

현재 닉 호이트는 The Team Hoyt 재단을 만들어, 릭과 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돕고 있으며, 닉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어려운 환경과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격려하는 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사토리 선생님과의 만남

팀 호이트는 어떻게 마라톤과 철인 3종 경기등에 출전하여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게 되었을까요? 그 시작에는 사토리 선생님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장애를 가진 자식을 둔 모든 부모들처럼 닉 호이트는 아내와 함께 릭 호이트를 키우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런 가운데 장애교육시설에서 사토리 선생님이라는 분을 만나게 됩니다. 사토리 선생님은 릭 호이트에게 큰 사랑을 주면서 교육적 노력을 기울입니다. 어느날 토요일에 있는 매우 짧은 자선 단축 마라톤에 아들 릭을 데려갈 것을 아버지 닉에게 제안합니다. 말이 단축 마라톤이지 사토리 선생님이 그냥 릭의 휠체어를 밀어주는 개념입니다. 이러한 경험은 릭에게 없는 경험이고, 릭이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은 매우 신경이 쓰이는 일이라, 아버지 닉은 가족 회의를 통해 릭이 대회에 출전하는 것을 허락합니다. 그리고 대회가 있는 토요일 아침 사토리 선생님은 릭의 집에 직접 방문하여 자신의 차에 릭의 휠체어와 릭을 태우고 대회에 참가합니다. 대회에 참가한 후 아들 릭은 너무도 좋아했습니다. 그렇게 외부에 나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없는 몸인데 사토리 선생님을 통해 외부의 공기를 마쉬며 마라톤을 경험하는 것을 아들 릭은 너무도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아들 릭은 아버지 닉에게 말합니다. “달리고 싶어요.” 이렇게 하여 The Team Hoyt는 탄생합니다.

 

The Team Hoyt는 세계적으로 유명하지만, 이 팀이 만들어지는데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사토리 선생님은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도 교사이다보니 자신의 토요일을 반납하고 자신의 학생을 자신의 차로 태워 대회에 참가한 그의 열정이 그냥 지나쳐지지 않습니다.

 

제2의 사토리가 되었으면....

사토리는 그 후에도 아들 릭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가집니다. 교사로서 사명감을 가진 모습을 계속적으로 보여줍니다. 당연히 릭의 부모들은 교사 사토리를 존경합니다. 2013년 지금 아버지 릭은 70세가 넘었고, 아들 닉은 50세가 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전 세계에는 제2, 제3의 The Team Hoyt가 생겨나고 있다고 The Team Hoyt 재단을 통해 그러한 사례들이 홍보되고 있습니다. 많은 제2, 제3의 The Team Hoyt들이 재단에 연락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사토리처럼 교사입니다. 사토리 선생님도 저와 같이 주말에는 가정에서 아이들과 쉬고 싶어했을까요? 아마도 그러리라 추측해 봅니다. 그러나 때론 자신의 교육에 사명감으로 대해야 했던 일들도 있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매주 토요일에 할 수는 없으니까요.

 

요즘 전국의 스포츠클럽대회 담당 체육교사들은 주말을 포기하고 계속적으로 학생들과 같이 스포츠클럽대회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교내스포츠클럽대회를 위해서는 중식과 석식시간에 다양한 리그 시합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때론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스포츠클럽대회를 꼭 이렇게 해야하나 생각도 해 봅니다. 너무 개인적으로 힘들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주말에 계속 나가니 아내도 뭐라고 합니다. 수당이나 나오냐고 합니다. 전 5,000원 나온다고 말합니다. Ha, Ha, Ha

 

누군가는 제2의 사토리가 되어야 하겠고, 그로 인해 또 누군가는 The Team Hoyt가 될 것입니다. 교육이란 그러한 기대를 갖는 것 아닐까요? 이러한 기대는 아무런 현실적인 대가가 없습니다. 이런 이상적이고 교육적인 기대가 포기되어질 때 아마 교육을 통한 진정한 인간의 변화는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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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동일 (국방부)

 

        1936년 LA 올림픽 육상 5000m 결승 경기에서 핀란드의 라우리 라티넨과 미국의 랄프 힐이 접전을 벌였다. 결승선을 얼마 남겨놓지 않고 라티넨이 한 발 앞서 달렸고 그 뒤를 힐이 바짝 추격했다. 힐이 사력을 다 해 라티넨을 앞서려고 바깥쪽으로 빠져 나오려는 순간이었다. 라티넨이 힐의 앞을 가로 막는 것이었다. 멈칫하던 힐은 다시 방향을 고쳐 안쪽으로 추월하려 했다. 그러자 라티넨이 또 그 쪽으로 몸을 트는 것이었다. 주춤할 수 밖에 없는 힐이었고 그렇게 라티넨과 힐은 거의 동시에 골인했다. 사진 판독 결과 라티넨의 우승으로 결정이 났다. 그러나 관중석에서 야유의 함성이 이는 것이었다. 달리기 경주에서 앞지르려는 선수의 길을 막으면 실격으로 처리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관중들이 라티넨의 우승을 비난하는 것이었다. 마지막에 힘이 달려 비틀거렸을 뿐인 라티넨은 관중들이 왜 소란을 피우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필름을 보고서야 당시의 상황을 알게 된 라티넨은 얼굴이 붉어졌다. 분명한 진로 방해였던 것이다. 라티넨은 그 즉시 힐에게 달려가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했다. 그러나 힐은 오히려 민망해 하며 라티넨의 우승을 축하해 주는 것이었다. 곧 이어 시상대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진풍경이 펼쳐졌다. 자신이 우승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라티넨은 힐을 한사코 맨 윗자리로 밀었고, 힐은 어림없다는 표정으로 사양하는 것 아닌가. 이 둘의 실랑이를 관중석에서도 다 볼 수 있었다. 당시 메인스타디움에서 관전하던 모든 관중들은 이 들의 아름다운 스포츠 정신에 뜨거운 박수와 갈채를 보냈다. 


  2004년 아테네국제육상선수권대회에서 남자 마라톤에서 결승점을 눈앞에 두고 넘어져 우승을 놓친 유명한 사례가 있다. 브라질 선수 리마는 결승점 4Km를 남겨 두고 선두를 달리다 한 아일랜드 종말론자에게 밀쳐 넘어졌다. 그대로 속도를 유지하면 우승은 문제없는 상황에서 벌어진 이변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4년을 준비해 금메달을 눈앞에서 놓친 것이다. 아니 도둑 당했다는 것이 옳을지 모르겠다. 화가 날 법도 하건만, 결승점에 도착한 그는 얼굴에 천진난만한 웃음과 멋진 세리모니를 보여 주었고, 시상대에서 그렇게 고대하던 금메달이 아닌 동메달을 목에 걸고도 그 어떤 원망이나 몸짓도 없었다. 후일 아일랜드 정부는 그를 초청하여 국민적 사과와 함께 국빈의 예우를 보여 주었다. 아래 사진에 보는 것처럼 은메달도 아닌 동메달을 목에 걸면서 보여준 밝은 모습은 개인적으로 모든 스포츠에서 성공했던 그 어떤 선수보다 행복한 모습 그 자체로 쉽게 잊혀 지지 않는 역사적인 장면으로 기억한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마라톤에서 관중이 뛰어 들어 역주하는 반다라이 리마를 방해하는 장면과 3위로 골인하면서도 천진난만한 모습을 잃지 않는 그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다음 내용은 앞서 소개한 랜스 암스트롱의 사례이다. 최근 금지약물 복용으로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그의 이야기 가운데 2003년에 열린 ‘투르 드 프랑스대회’는 유난히 특별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사이클 구간 독주 경기로 피레네 산맥을 횡단하는 코스를 20구간으로 나누어 20일 동안 경기가 치러지며 각 구간의 기록을 합산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개인독주 경주다. 당시 15일까지 선두를 달리던 랜스 암스트롱은 응원을 나온 꼬마 아이의 가방을 피하려다 넘어지게 되었다. 당시 2위로 불과 15초 차이로 뒤를 쫒던 독일의 얀 울리히는 암스트롱 때문에 만년 2인자로 있었기에 이 불의의 사고는 그에겐 곧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만년 2위에서 1위로 우승을 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무슨 일인지, 그는 추월하지 않았고, 오히려 암스트롱이 다시 일어나 레이스를 재개할 때까지 페달을 멈추고는 기다려 주었다. 결과는 암스트롱이 1위, 얀 울리히가 2위를 차지했다.

 

경기가 끝난 후, 울리히의 입장을 잘 알고 있었던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그는 기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물론 나는 기다릴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불운을 이용하여 이 경주에서 승리하였다라고 한다면 그러한 경주는 승리할 가치가 없었을 것입니다." 당시 이 장면은 세계에 알려졌고, 우리나라의 한 시인(박노해)은 “1위로 달리던 암스트롱이 응원하는 아이의 가방을 피하려다 그만 넘어져 나뒹굴었습니다. 겨우 15초차로 뒤쫓던 독일의 울리히 선수는 만년 2위의 한을 벗어 던질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멈췄습니다. 암스트롱이 다시 일어나 달리기 시작할 때까지 그는 묵연히 멈춰서 있었습니다. 숨 가쁘던 피레네 산맥도 멈출 줄 모르고 질주하던 지구 위의 사람들도 울리히와 함께 숙연히 멈춰선 것만 같았습니다.”라고 표현했다. 만년 2인자의 자리를 선택한 울리히야 말로 진정한 스포츠맨십을 보여 준 귀감이 되었다. 랜스 암스트롱은 암 선고를 받고도 긴 투병생활과 함께 7연패의 위업을 달성하며 당대 최고의 선수로 평가되었고, 얀 울리히는 평생 동안 염원했던 정상의 자리를 정도(正道)가 아니라 하여 스스로 포기했다. 이 날의 경기는 두 선수에게도 변화를 주었는데 그동안 서로에게 정상의 자리를 노리는 라이벌의 관계를 뛰어 넘어 진정한 평생의 친구이자 동반자가 되었다.

 

암스트롱의 역경 스토리는 1996년 고환암과 세포 종양 선고를 받으면서 시작하여 수술과 화학요법을 병행하면서 1999년부터 2005년까지 7연패의 위업을 달성했고, 기간 중 ABC, AP통신, ESPN, Sports Illustrated 등이 주관하는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다. 그는 2005년 투르 드 프랑스를 마지막으로 은퇴한 후, 2007년 자신이 설립한 재단 활동에 몰입했는데 앤드레아 애거시, 무하마드 알리, 앤드레아 예거, 알론조 모닝, 제프 고든 등의 유수의 스포츠 스타들과 함께 재단(Athletes for Hope)을 확대했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2008년 현역에 다시 복귀하여 2009년 투르 드 프랑스 대회에 출전하여 그간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3위를 차지하는 놀라운 기록을 보였다. 다음은 그의 인터뷰 내용이다. “죽음의 문턱까지 다가가 보면 주변의 모든 것들이 깨끗하게 정리가 되면서 그 다음에 찾아오는 것은 찬란하게 빛나는 깨달음이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실감하고 나면, 매일 아침 신선한 기분으로 깨어나 내게 특별한 또 하루의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활기차고 목적의식이 뚜렷한 하루하루를 이어가자고 다짐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누가 내게 오로지 사이클에만 매달려 장대비 속에서도 여섯 시간씩 높은 산을 오르내리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면, 그게 바로 내 대답이다.” 얼마나 진한 감동의 순간인가? 이것이 다른 영역과 구별되는 스포츠의 진정한 힘일 것이다.

 

 

2003년 투르 드 프랑스대회에서 넘어진 랜스 암스트롱(미국, 사진의 왼쪽)을 기다려 준 얀 울리히(독일, 사진의 오른쪽)가 레이스를 마치고 악수를 나누고 있다. 이 대회를 계기로 둘은 진정한 친구가 되었고, 독일의 얀 율리히는 암스트롱 못지않은 세계적인 관심과 주목을 받았다.

 

스포츠의 본질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최고가 되기 위해 정진하는 자기 자신과 그리고 대적한 라이벌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한다. 그러나 경쟁에 비겁한 방법은 허용되지 않으며, 비록 라이벌에 비해 부족하더라도 인정되는 수단과 방법으로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결과는 그 다음의 문제인 것이다. 전쟁에서의 적은 영원히 그 적대감정이 지속되지만, 스포츠에서 건전한 경쟁을 겨루었다면 경기 후에는 모두가 친구이며 동반자이다. 그리하여 스포츠에서는 승자만 칭송받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한 패자에게도 아낌없는 박수와 무한의 후원을 보내는 것이다.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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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태승 2013.08.28 21:45 신고

    그 간의 글들 중 기억에 남는 씨리즈를 다시 읽어봤습니다.
    스포츠둥지 윤동일님께서 요즘에 많이 바쁘신가보네요.
    글들이 1달 가까이 올라오지 않는 것을 보니.

 

 

글/ 윤동일 (국방부)

 

            전쟁과 스포츠는 흔히 영역을 넘어 상대 영역을 은유한다. 이는 곧 영역 간 유사상과 차이점이 공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포츠는 전쟁에서 유래했지만 본질적으로는 ‘흥겹게 노는 행위(고대 영어의 display에서 유래했다.)’를 통해 부정적인 마음을 없애고, 인간성과 사회성을 완성하기 위한 활동이기 때문에 어떤 측면에선 전쟁과는 다른 성격의 활동으로 보인다. 이런 본질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상반된 의지를 가진 지적(知的)인 상대와 벌이는 무한경쟁 속에서 최고를 추구하는 공통점 때문에 실전에선 서로에게 훌륭한 스승이자 가이드를 제공해 준다. 반면에 상호 경쟁적인 신체활동은 적(enemy)으로부터 생명을 보존(to survive)하기 위한 전쟁과는 달리 서로가 합의한 규칙에 따라 페어플레이 정신을 준수하여 상대방(rival)과 경쟁하고, 비록 지더라도 깨끗하게 승복하며 다음을 기약한다. 전쟁과 마찬가지로 승리(victory)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지만 패했더라도 최선을 다해 겨뤘다면 아낌없는 박수와 찬사를 보내며 경쟁 자체를 즐기는(to enjoy) 행위로 간주하는 것은 둘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따라서 ‘규범성’은 스포츠와 전쟁을 구분하는 특징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특징이 된다.


  앞서 육상 종목에서 최근 발생한 이슈를 사례 중심으로 살펴보았는데 과연 마라톤은 어떨까? 비교적 익숙하지 않은 마라톤의 규칙과 이를 어긴 사례가 있다면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일반적으로 마라톤에 적용되는 규칙과 반칙에 대한 규정은 타 종목에 비해 비교적 간단하다. 아래 표에 보는 것처럼 경기에 준수해야 할 것 3개 조항과 범하지 말아야 할 7개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라톤은 수영처럼 자신만의 코스가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쇼트트랙스케이팅처럼 충돌이 있을 염려도 없는 경기이다. 그저 정해진 코스를 달리기만 하면 되는 경기이기 때문에 이변이 생길 일도 없어 보이는데 사실 올림픽의 역사에는 다른 종목과는 다른 다양한 상황에서의 이변이 많은 편이다. 1904년 제3회 세인트루이스올림픽의 마라톤 경기에서는 미국의 프레드 로쓰가 선두로 메인스타디움에 들어서자 장내는 환성의 도가니로 변하였고, 루즈벨트 대통령의 딸 아리스가 로쓰에게 월계관을 수여하였다. 그러나 로쓰는 반환점인 20㎞지점에서 지나가는 자동차의 도움으로 메인스타디움에 골인한 사실이 폭로 되었고, 본인은 물론 주최국 미국은 곤혹을 치러야 했다. 우승은 그로부터 약 1시간 후 미국의 토마스 힉스가 지칠대로 지쳐서 골인한 덕에 다행히 미국이 금메달을 잃지는 않았다. 1908년 4회 런던올림픽 마라톤에 출천한 이탈리아의 ‘피에트리 도란도’는 결승선 50미터 앞까지 여유롭게 선두로 질주했으나, 긴장이 풀려서인지 점점 휘청거리더니 결승선을 불과 10여 미터 앞두고 쓰려졌다. 이걸 애처롭게 여긴 심판들과 경기진행요원들이 도란도를 부축해서 질질 끌면서 결승선을 통과시켰다. 잠시 뒤에 2등으로 들어온 존 헤인즈가 격렬히 항의해서 도란도는 결국 실격 처리되었다. 기절해 있다가 병원에서 깨어난 도란도는 “나는 다른 사람의 도움 따위는 원하지 않았다.”면서 항의했지만 규정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어설픈 친절이 사람하나 망친 사례로 사진에서 도란도 왼쪽을 부축한 심판은 ‘셜록 홈즈’의 작가 코난 도일이다. 이때 도움을 준 심판들은 미국 선수가 우승하는 것을 두고만 볼 수 없어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이유야 어찌 되었던 그의 행동은 몇 되지 않는 마라톤의 규칙을 어긴 결과로 자국 선수의 실격을 조장한 셈이 되었다.

 

<표 4> 마라톤 규칙 

(1) 경기규칙
  1. 지정된 장소를 달리며,
  2. 참가자는 전문의사의 건강진단서를 제출하여야 하고,
  3. 음식물은 주최 측이 준비하되, 코스의 출발점에서부터 11km의 지점에 준비하고, 5km마다 두도록 되어 있다.
    선수는 자기가 희망하는 음식물을 신청하여 허락을 받으면 지정된 공급소에서 이용할 수 있다.
(2) 반칙에 대한 규정
  1. 다른 주자를 고의적으로 방해하는 행위
  2. 도구를 이용해 편법으로 뛰는 행위(고무줄을 발에 건다던가 하는 행위)
  3. 마라톤을 뛰기 전에 금지된 약물복용 행위
  4. 경기 중 의사나 타인으로부터 응급조치를 받는 행위
  5. 타인으로 부터 도움을 받는 행위
  6. 동반자와 함께 달리는 행위
  7. 자신의 그룹을 벗어나 앞 그룹에서 뛰는 행위 등  이 모든 행위는 실격으로 처리된다. 

 

누구나 한번쯤은 학창시절 체력검정을 포함하여 장거리를 달려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장거리를 달리는 경우 도중에 벌어지는 불의의 사고는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단순히 미끄러지거나 휘청대는 행위조차도 전체적인 리듬을 끊어 버리기 때문에 다시 회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 넘어지기라도 하는 날엔 그야말로 물 먹은 솜처럼 축 늘어진 몸을 빠른 시간에 다시 일으켜 원래의 페이스로 돌아가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것도 종반에 접어들면 더욱 그러하다. 2011년 대구국제육상선수권대회 의 첫 경기로 시작된 여자마라톤은 케냐 선수들의 잔치가 되었다. 40km까지 선두에서 뛰던 키플라갓은 대회조직위원회에서 제공하는 급수대 앞에서 물병을 잡으려다 팀 동료인 체롭과 다리가 뒤엉키면서 땅바닥에 무릎을 찧은 것이다. 체롭은 더 이상 뛰지 않고, 넘어진 그녀에게 다가가 상태를 걱정하면서 도움을 주었다. 규칙상 타인의 도움을 줄 수 없기 때문에 말로 격려와 가이드를 했다. 3위로 뛰던 젭투 역시 키플라갓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넘어진 키플라갓이 다시 일어나 뛰기를 시작하자, 나머지 두 명도 합세하여 무리를 이루어 역주했고, 막판까지 더 이상의 이변 없이 넘어지기 전의 순서대로 골인했다. 결국 케냐가 마라톤 역사상 최초로 같은 국가 선수들이 1위, 2위, 3위를 모두 차지하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이들은 대회전부터 “우리는 한 팀으로 뛸 것”을 선언했으며 이를 행동으로 지켰다. 당시 체롭은 “친구이자 팀 동료인 키플라갓이 쓰러진 것을 보고 그냥 뛸 수 없었다.”고 추월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던 기자들에게 답변했다. 이들의 팀웍과 우정은 결승점에 먼저 도착한 키플라갓이 이어서 도착한 젭투와 체롭을 껴안고 기쁨과 고마움을 나누는 감동의 장면을 연출하였다. 마라톤은 분명 개인경기임에 틀림없지만 이들은 마치 단체경기처럼 팀으로 달렸다.

 

1908년 런던올림픽 마라톤에서 경기진행 요원들이 부축하여 실격한 피에트리 도란도의 골인 장면과 이를 주제로 제작된 영화의 한 장면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1∼3위를 차지한 케냐 여자 마라톤 선수들과 40km지점에서 넘어진 후에도 1위로 골인한 키플라캇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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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동일 (국방부)

 

 

               하나 뿐인 목숨을 걸고 하는 고대 검투사들의 ‘토너먼트(tournament)’나 중세 기사들의 마상창시합 ‘쥬스팅(jousting)’, 미국 서부 개척 당시 일대일의 ‘결투(duel)’도 있기는 했으나 일반적인 스포츠는 전장의 상황을 가정하더라도 생명을 걸지 않고, 서로의 힘과 체력 그리고 기예를 견주는 것으로 승부를 판가름해 보는 것이다. 무예의 실력을 규칙에 따라 간접적으로 견주어 보고 그 결과에 승복한다. 스포츠가 무예를 대신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간접적인 투쟁이기 때문에 무예처럼 곧이 곧대로 승복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여러 가지 규칙들을 정해 놓고 결과에 승복하도록 강요하게 되는데 그것이 스포츠맨십이다.

 

더 간단히 말하면 졌으면 졌다고 깨끗이 승복하고 물러나라는 말이다. 물론 무예에서는 그러한 용어가 필요치 않다. 왜냐하면 목숨은 하나 밖에 없고, 단판 승부이기 때문이다. 죽은 자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따라서 패장의 변명은 진 것보다 더 수치스러운 것으로 여겼다. 결국 스포츠에서 승패는 곧 생사와 직결되는 전쟁에서처럼 승복해야 하는 절대적 속성을 갖는다. 스포츠에서 절대승복 해야 것은 결과만이 아니다. 엄정한 규칙도 마찬가지다.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이변이라면 세계적인 톱스타들의 몰락을 들 수 있다. 매일 진행되는 경기의 일정을 알리는 팜플렛의 표지 모델은 그날 주요 경기의 우승후보가 표지모델로 등장하는데 많은 선수들이 고배를 마셔야 했다. 매스컴에서는 “데일리 프로그램의 저주”라고 불렀는데 첫날 남자 장대높이뛰기의 ‘스티브 후커’로부터 남자100미터의 ‘우사인 볼트’, 남자110미터허들의 ‘로블레스’ 그리고 여자장대높이뛰기의 ‘이신바예바’에 이르기까지 매일 표지모델로 올랐던 선수들이 줄줄이 떨어졌다. ‘라이트닝 볼트’로 불리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우사인 볼트는 새로 적용된 규칙 때문에 실격하여 경기조차 뛰지도 못했다. ‘부정출발’로 결승전에서 아예 제외되었다. 우리나라 김국영 선수도 마찬가지다. 번개처럼 빠른 그에게 기록상 대적할만한 상대도 없었는데 신기록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 찰라의 순간에 스타팅블록을 박차고 일어서는 바람에 실격되었다. 이전에는 두 번까지 부정출발(2 false starts)이 허용되었다가 워낙 경기가 지연되는 문제가 있어 규칙을 바꿔 2001년에는 한 번으로 줄었다. 한 선수가 부정출발하면 경고로 그치지만 다음엔 그 어떤 선수의 부정출발도 허용되지 않는다(straight red rule). 그러자 스타트 느린 선수들이 의도적으로 스타트가 빠른 선수들에게 심리적 압박을 주기 위해 부정출발을 악용하는 사례가 발생하자 다시 규칙을 개정하게 되었다.

 

2010년부턴 단 한 번이라도 부정출발을 하는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 ‘즉시 실격 규칙(instant dis-qualification rule)’을 도입하였다. 물론 이 규칙은 선수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했고, 경기력 향상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대구 대회 이후 폐지되었다. 남자 110미터 허들의 강력한 우승후보 쿠바의 로블레스는 결승점을 통과한 뒤 멋진 세러모니를 했지만 허들을 넘으면서 라이벌 중국 류상을 방해한 것으로 판정되어 금메달을 박탈당했다. 허들경기는 1미터가 조금 넘는 허들(정확한 허들의 높이는 1.067미터이다.)을 넘어뜨려도 규칙위반은 아니다. 그러나 허들에 닿는다면 달리는 순간 속도는 떨어지기 마련이다. 특히, 리듬과 균형을 잃어 달리기 연속된 템포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회복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 대부분의 트랙경기에 적용되는 규칙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경쟁자 보다 앞서기 위해 상대를 밀치거나 진로를 방해하는 행위를 실격으로 규정하고 있다. 로블레스의 금메달 박탈은 소위 ‘rule 163.2’로 불리는 규칙에 적용된 것이다.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100미터에서 단 한 번의 부정출발로 실격된 우사인 볼트와 김영국 선수는 경기에 출전조차 하지 못했다.


 

스포츠에는 경기규칙 말고도 도핑(doping)으로 알려진 약물복용 금지 규정도 준수해야 한다. 도핑은 운동선수가 일시적으로 경기 능력을 높이기 위하여 흥분제 · 호르몬제 등의 약물을 복용하는 것으로 건강을 해치고 스포츠 정신에도 위배되기 때문에 각종 경기연맹에서 금지하고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남자 100미터 경기는 미국의 인간탄환 ‘칼 루이스’와 캐나다의 마하인간 ‘벤 존슨’의 세기의 대결로 세계적인 관심이 집중되었다. 결승전에서는 벤 존슨이 9.79초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내며 우승하였으나 경기 종료 후 실시된 도핑테스트에서 금지약물을 복용한 사실이 드러나 금메달이 박탈되었고, 2년간 국제대회 출전 자격이 정지되었으나 이후에도 약물에 의존한 것이 밝혀지면서 더 이상 그의 질주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사실 올림픽사(史)에서 있어 금지약물 복용에 대한 규제는 예상한 것 보단 그 역사가 오랜 편이다. 1960년 로마올림픽 사이클 100km 도로경기에서 덴마크의 ‘크루트 젠센’이 각성제 암페타민을 과다 복용하여 사상 최초로 약물 중독에 의한 사망사고가 발생하였다. 이 충격으로 덴마크 사이클 선수단은 남은 경기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복귀하였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금지약물을 규정하고, 이를 복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1972년 삿포로동계올림픽부터 도핑테스트를 실시하였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미국의 여성육상 스타 메리언 존스는 3관왕에 올랐지만 약물복용으로 메달이 박탈되었고, 법정 위증 혐의로 수감되기까지 했으며 2008년 베이징올림픽 공기권총에서 은‧동메달을 딴 북한의 김정수 선수 역시 메달을 반납해야 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100미터 결승에서 제일 먼저 결승점을 통과한 벤 존슨은 경기 후 도핑테스트에서 금지약물 복용으로 실격 처리되었다.

2004년 올림픽 우승과 1999∼2005년까지 투르드프랑스에서 7회 연속 우승한 랜스 암스트롱은 오랜 법정공방 끝에 모든 성적이 박탈되었다.

 

과학의 발전과 함께 선수들의 도핑 추세는 날로 지능화되어 가고 있고, 반대로 이를 밝히고자 하는 도핑테스트 역시 올림픽이 회를 거듭할수록 횟수와 범위가 함께 증가하는 추세다. 2013년 초부터 세계 스포츠인 아니 세계인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준 사건들이 이어졌다. 2월 중순, 여자친구 살해 혐의로 기소된 남아공 출신 의족 스프린터 피스토리우스 소식이 전해졌는데 개인적으로 이보다 더 충격적인 사건은 암과 투병하면서도 ‘사이클 황제’로 칭송되는 전설적인 체육인의 몰락이었다. 이 사건은 세계적인 프로 로드 사이클 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le Tour de France)’에서 1999년부터 2005년까지 7년 동안 역대 최다 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는 랜스 암스트롱(Lance Armstrong)이 그동안 제기된 금지약물 복용을 시인하면서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투르 드 프랑스는 한 신문기자의 아이디어로 1903년에 시작하여 100년이 넘은 유서 깊은 대회로 프랑스 전역을 일주해 우승자를 가리는데 일부 경기는 이탈리아, 독일 심지어 영국이나 아일랜드에서도 거행될 정도로 인기 있는 대회이다. 무려 3천km 이상의 거리를 시간당 평균 30∼40km의 속도로 3주 동안이나 달려야 하다 보니 구간 중 많은 오르막은 물론이고, 산악을 넘어야 하는 등 고통과 인내가 요구되어 참가자의 15∼20%가 포기하는 극한의 스포츠로 알려져 있다. 암스트롱은 1996년 고환암과 세포종양의 전이로 수술과 재활을 통해 심각한 고통을 이겨내고, 1999년부터 출전한 투르 드 프랑스에서 그가 이룬 위대한 업적은 2010년부터 팀 동료의 고발로 제기된 의혹은 2012년 8월 법정공방을 포기했고, 그 결과 1998년 8월부터 대회에서 세운 모든 성적이 박탈되었으며 미국반도핑기구(USADA)에서도 영구 제명되었다.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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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동일 (국방부)

 

         개인적으로 “인간은 도전할 때 가장 인간다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표현에 동의한다. 이런 측면에서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스포츠는 본질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인간성을 완성하고자 하는 대표적인 영역이다. 아래 표는 앞서 소개한 많은 스포츠 영웅들의 경구들을 정리해 본 것인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새삼스레 그들의 이야기를 되새겨 보는 것은 이를 통해 진정한 스포츠의 진목을 느껴 보고자 함이다.

 

 

스포츠 영웅들의 말 말 말 

- 카로리 타카스(헝가리, 속사권총) 
  : 내겐 아직 왼 손이 남아 있다. 오른손이 했는데 왼손이 못할 이유가 없다.


- 리차드 로스(미국, 수영)
  : 금메달을 따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지 수술이나 받으려고 온 것이 아니다.


- 아베베 비킬리(에티오피아, 마라톤) 
  : 더 이상 내 다리는 달릴 수 없지만 나에겐 아직 두 팔이 있다. 나의 조국이 강인하게 시련을 이겨냈다는 사실을 세계에 알리고 싶었다.


- 알 오터(미국, 원반던지기) 
  : 누군가가 내 갈비뼈를 뽑아내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처럼 고귀한 것은 없다.
   어떤 직업, 아무리 막강한 권력이나 돈도 올림픽의 경험에 비하면 보잘 것 없다.


- 이봉주(대한민국, 마라톤) 
  : 마라톤을 즐기지 못했다면 진작 은퇴했겠지만 달리는 게 좋아서 그냥 뛰다 보니 20년이 흘렀다.


- 피스토리우스(남아프리카공화국, 육상 400m) 
  : 패배자는 경주에서 맨 마지막에 들어오는 자가 아니다. 앉아서 구경만 하고 뛰어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 바로 패배자 이다.


- 아크와리(탄자니아, 마라톤) 
  : 내 조국은 레이스에 출전만 하라고 7000마일이나 떨어진 이곳에 보내지 않았다. 조국은 레이스를 끝내고 오라고 여기에 보낸 것이다.


- 호이트팀(미국, 마라톤/철인3종경기) 
  : 난 아들 없이는 달리지 않는다.(릭 호이트) 단 한 번만이라도 휠체어에 아버지를 태우고 내가 밀어 드렸으면  한다.(딕 호이트)


- 에밀 자토펙(체코, 육상 5천·1만/마라톤) 
  : 우리가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은 그가 4개의 금메달을 따냈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도 평범한 인간이었으며 자유와 존엄성을 위해 온몸을 던진 투사였기 때문이다.(국제육상연맹회장의 애도사)


- 알랑 미뭉(알제리, 마라톤)
  : 식민지 조국 알제리의 국민과 이 기쁨을 나누겠다.


- 손기정(대한민국, 마라톤) 
  : 기쁘기도 기쁘나 실상은 웬일인지 이기고 나니 기쁨보다 알지 못할 설움만이  복받쳐 오르며 울음만 나온다.   남승룡과 함께 사람 없는 곳에 가서 남몰래 서로 붙들고 몇 번인가 울었다. 이곳의 동포들이 축하하는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눈물만 앞선다. 지금 젊은 사람들은 나라 없는 설움에 대해서 모른다. 내가 우승한  뒤 일본 국가가 연주될 때, 나는 고개를 떨궜다.  

 

 

 

카로리 타카스(헝가리) 피스토리우스(남아프리카공화국) 호이트팀(미국)

에밀 자토펙(체코)과 알랑미뭉(알제리) 손기정(대한민국)

 

 

전쟁의 속성을 고려해 볼 때,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신체적 장애는 허용되지 않는다. 각 나라마다 전투군인을 선발하기 위한 조건은 엄격한 신체기준을 포함하여 까다롭고,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의 공무원에게 적용되는 정년은 적용되지도 않는다. 이는 전쟁이 극한의 고통이 수반되고, 이를 굳건히 견뎌야하기 때문이다.


  각색된 내용이기는 하지만 영화 300에서 스파르타의 군인이 되기를 희망했던 꼽추가 등장한다. 그는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며 레오니다스의 근위대에 입대하기를 희망했지만 방패를 들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한다. 고대 전쟁에서 방패는 칼이나 창에 비해 더욱 중요하다. 고대의 전투는 방진(Phalanx) 이라는 밀집대형을 갖추어 집단 대 집단이 격돌하는 전투양상을 보였다. 이 집단대형 안에서 방패의 역할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인접한 전우들의 생명을 온전히 보호하는 데 있다. 다시 말해 고대 그리스의 방패는 전쟁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수단이지만 이보다 집단전투의 대형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 우선이다. 따라서 고대의 전투에 있어 모든 전투원은 잘 쓰는 손과 무관하게 왼손에 방패를 들었고, 오른손에는 창이나 칼을 들었다. 고대의 전사는 전투에서 모두 오른 손잡이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교전하게 되면 두 집단은 서로 엉켜 오른쪽으로 돌게 되는 방향성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중요했던 방패를 들지 못하는 전사란 있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전쟁의 역사 가운데 가장 불굴의 의지로 장애를 극복한 사례가 있다.


  이 이야기는 열국지에 등장하는 마릉전투와 관련된 내용이다. 스승 귀곡자(鬼谷子)의 문하생으로 방연(龐涓)과 함께 수학한 손빈(孫賓)은 스승의 가르침대로 이름을 바꾸었다. ‘손님 빈(賓)’ 자에 ‘달 월(月)’을 합하면 전혀 다른 뜻이 되는데 ‘다리 자르는 형벌’을 의미하는 ‘빈(臏)’ 자로 개명하였다. 결국 그는 친구이자 동문수학한 위(魏)나라 방연의 시기와 질투 때문에 다리를 잘리게 되었고, 옥살이까지 하게 된다. 이 때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 미친 짓을 하게 되었고, 이를 본 방연은 손빈에 대한 경계심을 풀었다. 이 틈을 타 손빈은 스승의 도움을 받아 탈출에 성공하여 적국 제(齊)나라로 도주하였다.

적국의 군사(軍師)가 된 손빈은 이제 방연과의 일전을 위해 말 대신 가마를 타고 출전하였다. 성미가 급한 방연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손빈은 군사들의 야전 아궁이 터를 줄여 나가는 방법(‘감조<減灶>전술’이라 함)을 사용하여 방연의 조바심을 부추겼고, 급기야는 정예 군사를 차출하여 소수의 병력만을 이끌고 추적에 나선 방연을 함정에 빠뜨렸다. 허겁지겁 추격한 방연의 정예군이 도착한 ‘마릉(馬陵)’이라는 분지에는 손빈의 지시대로 모든 나무를 베어 내고 한 그루만 세워 두었고, 껍질을 벗겨 밤에도 쉽게 눈에 띌 수 있도록 하였다. 추격 중에 허허벌판에 우뚝 서 있는 나무 한 그루는 방연의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했고, 여기에 새긴 글씨를 보기 위해 횃불을 들자 손빈이 미리 배치해 둔 궁수들의 수많은 화살이 시위를 떠났고, 방연의 최후는 그렇게 종말을 고했다. 나무에는 어떤 내용이 적혀 있었을까? 내용은 이렇다. “방연이 이 나무 아래서 죽다.(방연사차수하<龐涓死此樹下> - 군사손빈<軍師孫臏>)” 이를 본 방연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이 이야기는 기원전 중국의 전국시대와 진(秦)나라를 배경으로 한 ‘열국지(列國志)’에 등장하는 유명한 ‘마릉(馬陵)전투’로 군인들에겐 ‘감조전술(減灶戰術)’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아마도 손빈은 기원전 전장에서 유일하게 중증장애(두 다리가 잘린)를 딛고 군사(軍師)에 오른 대표적인 인물일 것이다.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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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선경 (스포츠둥지 기자)

 

            올해로 13회째를 맞는 여성 마라톤 대회가 5월 12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 공원에서 열렸다. ‘우리가족 안전한 세상 만들기’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마라톤 대회는 주제에 맞게 다양한 안전 관련 부스들이 마련되었다. 서울시에서는 싱글여성 홈 방범서비스 등 여성 안전과 관련한 정보를 참가자들에게 제공했고, 보라매 아이윌센터에서는 청소년들의 인터넷 중독 예방을 위한 올바른 인터넷 이용법을 소개했다. 또한 대한적십자사 서울지사는 마라톤이 펼쳐지면서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한 안전교육을 진행했고, 색동회 동화구연연구회는 어린이 안전을 위해 동화를 이용한 클레이 체험 부스를 운영했다.

 

서울특별시와 여성신문에서 주최한 제 13회 여성 마라톤 대회 포스터 ©서울특별시

 

 

식전 행사로 어린이 난타공연과 경찰악대의 관악합주가 펼쳐져 분위기를 띄우고 이후 참가자들은 동원대학교 휘트니스 건강관리과 학생들의 지도에 맞춰 준비운동을 시작했다. 필자는 여성 마라톤 대회에 직접 참가해 그 열기를 현장에서 느낄 수 있었다.


10km? 아니면 3km? 내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코스선택!

 

마라톤에 앞서 필자는 준비운동으로 몸을 풀었다. ⓒ최선경

 

평상시 ‘숨쉬기 운동’이 전부인 사람들에게 마라톤은 너무나 힘들게 느껴지는 운동이다. 그래서 마라톤을 어렵게 인식하거나 아예 도전할 생각조차 안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이번 여성 마라톤 대회는 그렇게 겁먹을 만큼 부담스러운 코스가 아니었다. 참가자 건강상태에 따라 다양한 코스를 고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 운동을 자주하고 마라톤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지 않은 참가자는 10km를 선택했고, 10km가 너무 부담스러운 참가자는 5km, 어린 자녀와 함께 마라톤에 참가한 가족들은 걷기 코스인 3km를 선택해 누구나 쉽게 완주할 수 있도록 마라톤 코스가 구성되어 있었다. 필자는 바쁘다는 핑계로 평소 운동을 게을리 했고 또한 마라톤에 처음 도전해보기 때문에 부담스럽지 않은 5km를 선택했다.
 

여성 마라톤 대회라고 해서 여성만 참가하나요? Oh No~!

 

아이를 무등태운 한 아빠 참가자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마라톤메일

 

흔히들 여성 마라톤 대회라고 하면 ‘여성’들만 참가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것은 오해일 뿐! 이번 여성 마라톤 대회에는 남녀노소 불문으로 참가가 가능했으며 히잡을 쓴 외국인 여성부터, 유모차를 끌고 남편과 함께 뛰는 참가자도 있었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함께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다. 여자 친구와 함께 처음 마라톤에 참가한 김지훈씨는 “마라톤을 통해 여자친구와 좋은 추억을 함께 나눌 수 있을 것 같다”는 소감을 밝혔다. 또한 중학교 2학년인 아들과 함께 참가한 우미영씨는 “마라톤 대회 전 날까지 매일 아들과 함께 운동하면서 자연스럽게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사춘기를 겪고 있는 아들이라 그동안 사이가 멀어졌었는데 이번 마라톤 대회를 통해 아들과의 거리가 좁혀진 것 같다”며 미소를 띄었다.


그리고 50대 후반의 나이로 생전 처음 10km를 뛴 참가자 함보영씨는 “정말 가다가 주저앉고 싶은 순간이 많았지만 이를 악물고 뛰었다. 골인을 했을 때의 그 희열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 성취감 그 자체였다. 앞으로 계속 참석하고 싶어서라도 건강관리를 철저히 해야겠다”며 완주소감을 밝혔다.

 

마라톤 5km 완주 후 받은 기념메달 ⓒ최선경

 

 

마지막으로 필자 또한 처음으로 마라톤에 도전한 것이라 쉽지만은 않았다. 사실 기록에 욕심이 나 처음부터 무리하다가 나중에 지쳐서 걷기도 했다. 오히려 처음부터 기록에 연연하지 않고 천천히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뛴 참가자들이 나중에 좋은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필자의 마라톤 기록은 비록 좋지 못했지만 완주 후 기념메달을 받고나니 기록의 아쉬움보다는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냈다는 성취감이 더 컸다. 오랜만에 무언가를 해냈다는 뿌듯함을 느낀 시간이었다.

 

마라톤은 몸에 어떻게 좋은가?

 

2013 여성 마라톤에 참가한 시민들이 힘차게 뛰고 있다 ©마라톤메일

 

2009년 미국 로렌스버클리연구소에서 실시한 건강 자료 분석 결과 1년에 두 번 이상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성인 남성은 마라톤을 하지 않는 성인 남성에 비해 고혈압 발병률이 41%, 고지혈증 위험은 32%, 당뇨병 발병률은 87%나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마라톤이 심장과 폐 기능을 향상시켜 전신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이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외에도 뼈의 칼슘 수요를 높여 칼슘이 빨리 흡수될 수 있도록 체질을 개선하여 골다공증과 각종 성인병 예방에도 탁월한 것으로 드러났다.

 

올해 마라톤에 도전해보는 건 어떠세요?

대회

일정

장소

녹색성장 제 6회 일요마라톤

62일 일요일

서울 광진구 뚝섬유원지 수변마당

4회 국토사랑 건설경제

하프마라톤

62일 일요일

서울 마포구 월드컵공원 평화의 광장

10회 새벽강변

국제 마라톤 대회

62일 일요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강공원

2013 스마일 마라톤

62일 일요일

서울 송파구 잠실트랙경기장

5회 한강서울마라톤대회

66일 목요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강공원

김대중 평화마라톤

615일 토요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강 시민공원

11회 국제평화 마라톤대회

103일 목요일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12회 러브미 농촌사랑

마라톤 대회

105일 토요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강공원 이벤트광장

에너자이저 나이트 레이스 2013

1012일 토요일

서울 마포구 월드컵 공원 평화의 광장

2013 핑크리본 사랑마라톤

1013일 일요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공원

 

 새해에 다짐했던 다이어트와 운동을 잠시 게을리 하고 있다면 마라톤 대회에 한 번 참가해보는 것은 어떨까?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 있듯, 처음부터 무리하지 말고 차근차근 운동을 시작하다보면 2013년 마지막 즈음엔 새해에 다짐했던 것들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6월과 10월 서울 지역에서 많은 마라톤 대회가 열릴 예정이다. 마라톤 동호인들과 마라톤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 건강도 다지고 추억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누리기를 바란다.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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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권순철 (스포츠둥지 기자)

 

         달리기 붐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달리기를 즐기고 있다. 과거 무작정 달리는 것과 달리 최근에는 달리는 법 부터 올바른 복장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한번 달릴려면 알아야 될 지식과 준비해야될 용품들이 너무나 많다. 이런 고민들을 한방에 날려버릴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해서 직접 찾아가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HI 잠실 마라톤

 

Q. 만나서 반갑습니다. ‘HI 잠실 마라톤’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 드립니다.

 전 국가 대표였던 훌륭한 감독과 코치를 통해 체계적이며 과학적인 훈련 프로그램에 맞추어 운영되고 있습니다. 매주 화요일 금요일 잠실 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 및 한강 잠실지구에 모여서 훈련을 하고 있으며, 개개인의 능력 향상은 물론 회원 상호간 친목을 도모하는 수준 높은 마라톤 동호인 육성에 최선의 노력을 다 하고 있는 동호회 입니다.

 

동호회 회원 유원영(이하 ‘유’)씨와 김명세(이하 ’김‘)씨의 인터뷰를 통해 ’HI 잠실 마라톤‘과 러닝 프로그램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 볼 수 있었다.

 

둥지 피켓을 들고 친절하게 인터뷰에 응해주신 HI 잠실 마라톤 회원,  (좌) 유원영  (우) 김명세   ⓒ 권순철

 

 

Q. 어떻게 처음 러닝 동호회를 접하게 되셨으며, 함께 운동하시면서 가장 기대 되었던 부분이 있으신가요?

(김) : 마라톤을 하지 않다가 클럽에 들어 오게 되면서 처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2001년에 시작해서 벌써 13년 째 마라톤을 하고 있을 만큼 매력에 푹 빠져 있습니다.

(유) : 운동을 좋아해서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혼자서 운동을 하다 보니 많은 어려움을 느끼고 클럽을 찾던 중 HI 잠실 마라톤을 알게 되어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클럽에 가입하면서 가장 기대했던 부분은 기록 향상이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훈련에 임하였는데, 체계적으로 배우고 서로 피드백을 주고 받다보니 실제로도 기록이 향상 되었습니다.

 

Q. 훈련 프로그램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요?

(김) : 우리 클럽의 경우 주 2회(화, 금) 저녁 8시에 한강이나 보조경기장에 모여서 2시간 가량 훈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정기적인 주 2회 훈련 외에도 일요일에 LHD 라는 장거리 훈련을 통해 기록 향상에 힘쓰고 있습니다.

(유) : 체조부터 시작해서 정해진 커리큘럼에 따라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혼자 운동할 때는 몰랐던 마라톤 기록향상을 위한 ‘호흡법’을 배웠던 점이 좋았습니다. 뛰면서 동작이 이상할 경우 서로 지적해 주며 끊임없이 피드백 제공하는데 이 훈련법 또한 더욱 훈련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 외에도 스피드를 올리기 위한 ‘인터벌 훈련’과 같이 자신이 부족한 점을 보완 할 수 있는 훈련 프로그램이 구성되어 있을 정도로 체계적으로 운동하고 있습니다.

 

Q. 이런 훈련을 통해 기록향상이 되면 대회에도 참여하시나요? 대회에 참여하시면 같은 동호인들끼리 무리를 이루어서 함께 뛰나요?

(김) : 큰 대회인 조·중·동 대회에 포커스를 맞춰서 훈련하고 있습니다.

(유) : 네 물론입니다. 큰 대회 뿐만 아니라 사이사이에 있는 하프 대회(MBC)에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습니다. 최근 4월달에는 천안 상록 마라톤 대회에 참여하여 좋은 경험과 추억을 만들고 왔습니다.
대회에서는 다 같이 무리를 이뤄서 뛰지는 않습니다. 개개인 마다 실력 차가 있기 때문에 상-중-하로 나뉘어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동호인들과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뛰게 됩니다,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과 함께 달리기 때문에 서로에게 파이팅 및 동기부여가 됩니다.

 

대회에 참가한 HI 잠실 마라톤 회원들 권순철

 

Q. 처음 러닝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은 부상의 위험에 대해 말합니다. 특히 관절에 좋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시나요?

(김) : 'Enjoy RUN'을 모토로 삼고 뛰고 있습니다. 건강을 위해 하는 운동이기에 부상자가 발생하지 않게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선수가 아니기에 기록에 너무 연연하지 않고 자신과의 레이스라 생각하고 즐기다 보면 부상 발생 확률도 줄어들 것입니다. 자신에게 맞게 운동을 한다면 더욱 건강해 지는 운동이라 생각 됩니다.

(윤) : 저도 처음 시작하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무릎과 허리가 좋지 않아서 정형외과를 찾아가 검사도 해 보았으나 특별한 이상이 없었습니다. 병원에서 운동부족에 의해 아픈 것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다시 운동(마라톤)을 시작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우려와 달리 운동을 하다 보니 근육량이 늘어나면서 무릎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항상 올바를 자세로 러닝을 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자세교정 효과를 통해 허리 또한 많이 좋아졌습니다. 선입견에 잡혀 있지 말고 직접 나와서 운동을 하면 보다 건강한 신체를 유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다른 운동과 비교해서 러닝만의 장점이 있다면?

(김) : 마라톤을 하면 ‘러너스 하이’를 느끼게 됩니다. (※ 러너스 하이 : 통상 30분 이상 달릴 때 얻어지는 도취감, 혹은 달리기의 쾌감) 직접 달리면서 겪어보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는 ‘러너스 하이’를 매번 러닝 때 마다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마라톤만의 매력이자 장점이라 생각합니다.

(윤) : 마라톤을 시작하기 전에는 등산과 탁구를 즐겼으나,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너무 많이 받아 제대로 즐길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러닝은 운동복과 운동화만 있으면 시간과 장소에 크게 구애 받지 않고 운동 할 수 있다는 점이 최고의 장점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모든 운동의 기본 운동이기 때문에 기본기가 다져 지는 것 같으며, 운동을 하다 보면 굳어 있던 몸이 풀리는 느낌이 나서 가장 좋습니다.

 

Q. 나에게 마라톤이란?

(김) : 마라톤이란 ‘나의 인생’이다. 마라톤이나 인생이나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기 마련이다. 힘들지만 잘 견뎌내면 끝(피니쉬 라인)이 보이기 때문이다.

 

Q. 러닝 동호회 가입을 망설이고 있는 분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윤) : 러닝의 경우 타 종목에 비해 준비해야 될 것들이 많지 않아 초기비용이 저렴합니다. 운동화와 운동복만 있으면 되는데, 운동화의 경우 보통 1년에 2켤레 정도 사용 합니다.
운동복은 클럽 활동을 하게 되면 대회 참가로 많은 운동복을 지급 받게 되고 나중에는 처치곤란 할 만큼 많이 생깁니다. 그러니 망설이지 마시고 집 근처 러닝 동호회에 찾아가 보세요!

2시간 가량의 훈련 후에도 지치지 않고 밝은 모습으로 단체사진 찰칵 권순철

 

마음만 먹으면 함께 달릴 수 있다.

전국에 2000여개의 동호회가 있으며 참여 인원 또한 6만명 가까이 된다.(2010. 체육백서) 이처럼 누구나 집 근처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러닝 동호회는 신입회원을 양팔 벌려 환영한다.
동호회에 가입 하는 것이 어렵다면 스포츠 회사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 또한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N사의 TR / N사의 에너지런)

어디든 좋다. 함께 달려보면 혼자 달릴 때와 큰 차이점을 느낄 수 있다.


갑갑한 피트니스센터에 비싼 돈을 내고 운동 하는 것 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마음 맞는 사람들과 멋진 경치와 함께 좋은 공기를 마시면 러닝 하는 것은 어떨까?

 

 

※ 이 글을 읽고 러닝 동호회 및 프로그램에 참여 하실 독자 분은 참고하세요

1. 전국 마라톤 동호회 현황 ( http://www.marathon.pe.kr )
이 홈페이지 좌측 카테고리에 ‘동호회’를 선택하면 각 지역별 동호회 현황을 볼 수 있으니 함께 달리고 싶은 분은 참고 하길 바란다.

 

2. 러닝 프로그램
- N사의 TR (http://blog.naver.com/thehumanrace)
- N사의 에너지 런 (http://nbrun.tistory.com)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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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동일 (국방부)

 

           마라톤은 혼자서 하는 경기라는 것은 모두가 잘 안다. 하지만 아버지와 아들이 한 팀을 이뤄 34년째 달리는 이들이 있다. 사람들은 이들 부자의 이름을 따서 ‘호이트 팀(Team Hoyt)'이라고 부른다. 둘이 달리지만 다리는 넷이 아니라 둘 뿐이다.


  아들 딕은 탯줄이 목에 감겨 뇌에 산소 공급이 막히면서 뇌성마비와 경련성 전신마비의 선천성 장애를 갖고 태어나 다른 사람들의 도움 없이는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장애인이 된다. 의사들은 정상적인 삶을 살 가망이 없다고 했지만 아버지 릭은 포기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처럼 학습능력이 있음을 증명하기 시작한 수년이 지나서야 13살의 나이로 초등학교에 입학시킬 수 있었다. 그러던 중 한 대학 연구팀의 기증으로 받은 특수 컴퓨터(Tuffs University의 엔지니어들의 도움으로 생각을 화면에 글로 나타낼 수 있는 컴퓨터 장치)를 통해 아들과 처음 의사소통이 가능해 졌다. 컴퓨터를 배운 아들이 처음 쓴 글은 운동경기를 보자는 것이었고, 처음 경기장을 찾았던 아들은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도 달리고 싶어요.” 그동안 한 번도 함께 뛰어 본 적 없는 아버지와 아들의 달리기는 이날부터 시작되었다.

 

아들이 15살이 되던 해(1977년)에 이들은 8km 자선 달리기 대회에 나가 꼴찌에서 두 번째로 완주하였다. 경기 후 아들은 “처음으로 제 몸에서 장애가 사라진 것 같다.”는 메시지를 남겼고, 당시 공군 중령이었던 아버지는 아들의 그 느낌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직장도 포기한 채, 아들이 탄 휠체어를 밀면서 달리고 또 달렸다. 1981년 처음으로 보스톤 마라톤대회에 출전했지만 10km에서 포기했고, 이듬해에 다시 도전하여 완주하였다. 이렇게 시작한 마라톤에서 완주한 기록은 모두 68회나 되었고, 특히 보스톤마라톤은 24회 연속 완주의 대기록도 가지고 있다. 이 팀의 최고 기록은 2시간 40분 47초였다. 개인적으로 마라톤에 참가했거나 완주한 기록은 없지만 20km와 30km를 완주한 경험에 비춰볼 때 정상인이 혼자 달렸을 때의 기록과 크게 차이가 없는 수준으로 이해된다. 앞서 언급했지만 마라톤 선수들조차 호이트팀처럼 그렇게 많은 완주 기록을 가진 사람은 없다. 정상인이 그 기록을 달성하려면 2∼3년 정도의 전문교육을 받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정말 믿기 어렵다. 그러나 호이트팀의 도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호이트 부자가 마라톤에 출전하여 역주하는 모습. 처음 마라톤을 시작할 당시 어린 딕 호이트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마라톤을 시작한 지 4년 만에 아들은 ’철인 3종 경기‘에 도전하고 싶어 했지만 수영도 할 줄 몰랐고, 자전거는 어떻게 타는 지도 잊었을 정도였던 아버지는 난감했다. 아버지를 걱정했던 주변 사람들이 “아들을 더 힘들게 할 것”이라며 만류했지만 아버지는 이내 세계 철인들 앞에 그 모습을 나타냈다. 잘 아는 바와 같이 철인 3종 경기는 수영 – 사이클 – 마라톤 순으로 진행되며 거리만 따져도 226.295km를 이동해야 하는 경기다. 출발신호가 울리자 모두가 물살을 헤치며 나갈 때 아버지는 아들을 보트에 태워 자신의 몸과 밧줄로 연결한 후, 뒤늦게 배운 수영으로 3.9km의 바다를 헤치며 전진한다. 기진맥진 뒤늦게 도착한 지점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두 손에 든 아들이 떨어지지 않도록 자전거를 개조해 마련한 시트에 고정시키고는 자신도 복장을 챙겨 입고 마운트에 올라 180.2km의 거리를 밟아 나아간다. 이제 자전거에서 아들을 내려 휠체어에 옮기고는 운동화를 신고 50kg의 아들을 밀면서 마지막 42.195km의 거리를 사력을 다해 달린다. 어둠이 깔린 한 참 뒤에야 이들 부자가 결승점을 통과했다. 경기시작을 알리는 총성이 울린 지 무려 16시간 14분이 지나서 도착한 결승점에는 이들을 맞이하기 위해 늦은 밤까지 자리를 지킨 관객들이 가득 매우고 있었다. 그날 결승점에 있었던 모두는 1위로 골인한 선수 보다 더 큰 박수와 갈채를 보냈으며 지켜 본 두 눈에선 뜨거운 감동의 눈물이 한 없이 흘러 내렸다.(유튜브에 실린 동영상을 보고 필자가 느낀 감정을 토대로 작성하였음.) 단축 경기를 포함하여 2011년까지 총 238회의 철인 3종 경기를 완주했으며 최고 기록은 13시간 43분 37초였다. 이들은 인류의 역사를 통털어 진정한 아이언맨(철인, iron man)으로 더 이상의 설명도 필요치 않다. 2011년까지 이들이 참가한 크고 작은 경기에 참가한 횟수는 무려 1,000회가 넘는다.

 

 

호이트 부자의 철인3종경기에 출전해 역주하는 모습

 

  여기에 1992년에는 총 6,010km의 거리를 사이클로 달려 미국 전역을 횡단하기도 했다. 이 경이적인 기록에 대해 스포츠계에서는 “혼자 달리면 세계 최고 기록을 낼 것”이라며 마라톤 전향을 정식으로 제안할 정도했지만 아버지는 “난 아들 없이는 절대 달리지 않는다.”며 단호히 거절하기도 했다. 한편 보스톤 대학을 졸업한 아들 릭은 아버지에게 받기만 했다며 “단 한 번만이라도 휠체어에 아버지를 태우고 내가 밀어드렸으면 한다.”는 소원을 키우고 있다. 2013년 현재, 아버지 릭 호이트(Rick Hoyt)는 72세, 아들 딕 호이트(Dick Hoyt)는 51세의 할아버지 팀이 되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아들 릭의 나이라면 할아버지 취급을 받아도 무난한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올해 보스톤 마라톤을 비롯해 장애인대회 등 매년 참석하는 일정은 예정대로 치른다고 한다. 과연 두 할아버지들의 도전은 어디가 끝일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한 아버지와 아들에 관한 이 이야기는 책은 물론이고, 유튜브나 오프라 윈프리 쇼 등 여러 매체에서 다루면서 세계로 전파되었고, 눈물바다를 만들었던 유명한 실화가 되었다. 피스토리우스의 말처럼 패배자는 경주에서 가장 늦게 들어오는 주자가 아니라 앉아서 구경만 하고 뛰어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사람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1992년 사이클로 미국을 횡단하는 모습(좌)  2012년 호이트 부자의 모습(우)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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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병구(전국육상연합회)

 


자신의 발에 맞는 운동화를 선택하자.
마라톤은 딱딱한 지면 위에서 장시간 동안 달려야 하는 운동종목이다. 이로 인해 많은 동호인들이 저마다 크고 작은 부상들을 경험한다. 이에 부상을 최소화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예방법으로 자신에 발에 맞는 운동화를 선택하도록 권유하고 싶다.


초보 마라토너들은 마라톤 선수들이 신는 마라톤화(경량화)가 가장 좋은 운동화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발상이다. 보통 마라톤화로 제작된 운동화는 마라톤 42.195km를 달리는 극한 상황에서 더 빨리 뛰고자 관절이나 근육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 보다는 스피드를 내는데 주안점을 두고 제작되었다. 그래서 초보자들이 가벼운 운동화(마라톤화)을 선택하여 착용할 경우, 부상 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운동화는 걷거나 달릴 때, 우리 몸에 전해지는 충격을 완화해 주는 유일한 장비이다. 선행 연구보고에 따르면 달리는 도중, 발에 전해지는 체중의 무게가 약 3-4배가량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적절한 쿠션기능을 제공하는 신발 즉, 신체 보호 기능이 많이 들어 있는 일반 운동화를 선택하는 것이 적합하다.


또한 운동화는 발이 가장 커지는 시간인 늦은 오후에 사러 구입하는 것이 가장 좋다. 양발 모두 착용할 뿐더러 신발 끈도 매어 보는 등 제대로 고르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하나 팁을 더 준다면, 운동화 착용 시 발가락이 불편하지는 않은지, 발등에 압박감은 없는지 그리고 발 뒤꿈치가 꽉 끼지는 않은지 등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 다음 조금 걸어 보고 가볍게 뛰어 보았을 때, 발 전체가 부드럽게 감싸지는 느낌이 들면 본인에게 좋은 운동화이다.


한편, 지나치게 적은 치수의 운동화는 자칫 자신의 발에 무리를 가져올 수 있다. 그렇다고 너무 큰 운동화를 선택한다면, 발이 신발 안에서 놀게 되어 발바닥에 물집이 생기거나 차고 나가는 동작에서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발의 특징

일반적으로 발은 3가지 특징으로 분류된다. 정상적인 발, 아치가 평평한 평발 그리고 아치가 높은 요족형 발이 있다. 보통 우리 발은 달릴 때, 먼저 발의 뒤꿈치 바깥면이 지면에 닿고 발가락과 뒤꿈치가 있는 가상의 중심선을 기준으로 안쪽으로 회전한다. 이를 회 내전(rolling in)이라고 한다. 회 내전은 발에 가해지는 충격을 완화해 주는 역할을 한다. 반대로 회 외전은 발바닥 전체가 지면에 닿았다가 발의 안쪽으로 치고 나가는 동작을 한다.


정상적인 아치를 형성하고 있는 발은 회 내전과 회 외전이 효과적으로 발생되어 피로도가 낮고, 부상에 대한 위험도 떨어진다. 그러므로 이러한 유형의 발은 안정성을 확보해 주는 운동화를 선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쿠션이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은 운동화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한편, 평발은 회 내전 현상이 정상보다 많이 일어나게 된다. 회 내전 현상이 과도하게 일어나면 발목, 무릎, 심하면 허리 부상까지 초래한다. 그러므로 평발에 가까운 사람은 과도한 회 내전을 보정해 주는 운동화를 선택해야 한다. 참고로 이러한 운동화는 보통 바닥의 쿠션이 적고, 외피가 약간 딱딱한 편이다.


마지막으로 요족형 발은 회 내전보다는 회 외전이 심하게 나타난다. 이는 쿠션을 완화해주는 역할을 하는 회 내전이 적게 일어나기 때문에 이를 보완해 주는 쿠션이 많은 운동화를 추천한다.

 

 

 

올바른 운동화의 관리

새 운동화를 구입한 후, 어느 정도 길들여지기 전까지 짧은 거리를 달릴 때만 신는 것이 좋다. 처음부터 긴 거리를 달릴 때 신으면 자칫 물집이나 염증 등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운동화는 가장 우수한 보호막이 되는 동시에 상해를 가져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설령 우수한 지지성과 쿠션을 제공하는 좋은 운동화를 구입했다고 할지라도 장시간 동안 러닝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보통 운동화는 800km의 기능성 수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혹, 그 이상을 신었을 경우에는 아무리 외관상에 이상이 없어도 이미 그 운동화의 탄력성이 거의 소진되었다고 보면 된다. 그러므로 쿠션 부분을 손으로 눌렀을 때, 복원이 늦거나 원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 경우에는 교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편, 운동화의 세탁은 부드러운 솔이나 타월 등으로 가볍게 세탁하는 것이 좋다. 이때, 너무 강한 솔로 세게 문지르면 운동화가 손상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여야 한다.

 

올바른 양말 선택

양말은 발과 신발의 마찰을 줄여 주고 운동 중 발생하는 땀을 흡수하여 빨리 건조시키는 기능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양말은 가볍게 달릴 경우에는 면소재의 부드러운 양말을 착용하여도 괜찮지만, 장거리를 달릴 경우에는 가급적 이러한 양말을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면은 운동 중 배출되는 습기를 머금고 있어 불편함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합성섬유로 된 기능성 소재의 양말은 땀을 빨리 흡수해 밖으로 배출하므로 발이 항상 건조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한편, 겨울철에는 양말에 쿠션이 보강되거나 보온성이 있는 것이 좋다. 그러나 반대로 여름철에는 땀 배출이 용이하고, 통풍이 잘 되는 양말을 추천한다.

 

올바른 유니폼 선택
달리기 초보자의 경우에는 반바지에 반팔 티셔츠만으로도 훌륭한 운동복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좀 더 빨리 달리기를 원하는 분이라면, 유니폼에도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보통 마라톤을 완주하기 위해서는 장시간 동안 똑같은 동작으로 반복하여 달리기 때문에 재질이나 마감재가 좋지 않으면 신체가 심하게 쓸릴 수가 있다. 그러므로 안감이 부드러워야 하며, 입었을 때 착용감이 좋아야 한다.


한편, 마라톤을 하면 시간당 1-3리터의 땀을 흘리고 더운 날씨라면 2배 이상 늘어날 수 있다. 그래서 운동복의 필수 조건은 발산 기능과 통기성이 있는 기능성 옷을 착용하는 것이 좋다.

 

올바른 타이즈의 선택

허벅지 사이가 벌겋게 달아오르는 소위 쓸림 현상은 양 허벅지 안쪽이 마찰을 일으켜 생기는 질환이다. 연한 피부들이 벗겨져 건드리기만 해도 따가울 정도로 쓰리고 아픈 것이 특징이며, 특히 마른 사람보다는 살이 많거나 허벅지가 두꺼운 사람들이 이런 경험을 많이 겪게 된다. 우선 쓸림 현상은 마찰이 원인이므로 조금이나마 통증을 줄이기 위해서는 윤활성이 좋은 바셀린 로션을 바르기는 것이 좋다. 그러나 이것도 일시적인 것으로 땀을 많이 흘리게 되면 씻겨 내려가 소용이 없다.


따라서 허벅지 쓸림 현상이 발생되지 않기 위해서는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러한 현상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타이즈를 입는 것이 좋다. 타이즈는 탄력성이 뛰어나고 몸에 밀착성이 높아서 쓸림 현상을 막아 준다. 게다가 근육의 미세한 흔들림을 막아 피로도도 낮추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타이즈의 밀착성이 너무 강하면 운동할 때 답답함을 줄 수 있으며, 반대로 너무 약하면 근육을 조여 주는 기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그러므로 착용했을 때, 적당한 강도로 조여 주는 느낌이 있는 타이즈를 추천한다.


한편, 몸에 착 달라붙는 타이즈만 입기가 어색하다면 그 위에 반바지 스타일의 운동복을 입거나 땀이나 물에도 씻겨 내리지 않는 쓸림 방지 전문 제품을 사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달리기에 필요한 필수 아이템]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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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니나 2013.05.20 21:31 신고

    후속 글은 언제 투고되나요? 이분 따로 알려면 어떻게 해야되나요? 육상전문가이신가요?

  • 안녕하세요.
    개방형 포털 "줌(zum.com)" 입니다.

    본 포스트가 zum.com의 스포츠허브 스포츠 종합 영역에 5월 22일 13시부터 소개되어 알려 드립니다.
    운영 정책 상 해당 포스트의 노출 시간이 단축되거나 연장될 수 있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만약, 노출을 원하지 않으시거나, 저작권 문제 등이 우려되신다면 아래 고객센터로 문의 바랍니다.

       zum 고객센터 - http://help.zum.com/inquiry/hub_zum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글/ 윤동일 (국방부)

 

         역사적으로 약소민족에게 있어 스포츠는 피지배에 대한 설움을 달래고 침략국에 대하여 공공연하게 저항하고, 복수할 수 있었던 유일한 수단이 되어 왔다. 스케이트 살 돈이 없어서 돈이 들지 않는 마라톤을 선택했던 고 손기정 선수가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딴 금메달은 일제 치하에 있던 우리 민족에게 한없는 감동을 주었다. 비록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42.195km를 달렸지만 마지막 골인하는 순간에 보인 선명한 태극기와 시상대에서 조차 금메달을 목에 걸고서도 기미가요가 흐를 때 고개를 떨어뜨렸던 장면(황영조 선수와 대담에서 "지금 젊은 사람들은 나라 없는 설움에 대해서 모른다. 내가 우승한 뒤 일본 국가가 연주될 때 나는 고개를 떨구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은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의 가슴속에는 여전히 벅찬 감동이자 비장함이다. 이 날 관중석에는 골인장면을 지켜보면서 목이 터지도록 애국가를 부른 안익태 선생도 있었다. 손기정 선수의 금메달은 마라톤 1인자라는 단순한 의미를 뛰어 넘어 국민들에게 일제에 항거하는 정신적 상징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의 인터뷰에도 잘 나타나 있다. "기쁘기도 기쁘나 실상은 웬일인지 이기고 나니 기쁨보다 알지 못할 설움만이 복받쳐 오르며 울음만 나옵니다. 남승룡과 함께 사람 없는 곳에 가서 남몰래 서로 붙들고 몇 번인가 울었습니다. 이곳의 동포들이 축하하는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눈물만 앞섭니다."(1936년 8월 9일 인터뷰) 특히, 김구 선생은 나라 없는 한국청년이 올림픽에서 우승했다는 나라 잃은 설움과 그 청년이 지원병으로 필리핀전에 참전하여 전사했다는 소식(일본이 허위 유포한 소문)에 그리고 올림픽 우승의 장대한 기록이 독립되지 않으면 그냥 묻힐 것이기에 독립의 감격으로 세 번 울었다고 밝히기도 했다.(1946년, 베를린올림픽마라톤 우승 10주년 기념식에서)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일장기를 달고 입상한 손기정·남승룡 선수의 모습

 


  예로부터 스포츠 선수 특히, 마라토너들은 외국의 압제에 맞서 싸웠던 군인이자 용감한 투사였다. 이런 현상은 약소국가이면서 외국의 침략을 받은 나라일수록 두드러진 공통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이제부터 세계 여러 나라의 손기정 선수들을 만나보자.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나 가난한 구두공장에서 생계를 꾸려 나갔던 인간 기관차 ‘에밀 자토펙’은 나찌의 점령기를 거치며 힘없는 나라의 현실을 체험하면서 종전 후 해방조국의 군대에 자원하여 입대하였다. 완전군장을 매고 달리기 연습에 매진했던 청년 자토펙은 전후 처음 열린 1948년 런던올림픽에 출전하여 10,000미터에서 우승하였다. 그의 명성을 드높인 것은 4년 뒤 열린 1952년 헬싱키대회에서 지금까지 그 누구도 달성하지 못했던 5,000미터, 10,000미터 그리고 마라톤까지 장거리 세 종목을 석권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올림픽에서 장거리 종목을 모두 석권한 사례는 자토펙 이전은 물론이고, 그 이후에도 없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은 육상 계에서 전설 그 자체가 되었다. 명실상부한 스포츠 영웅으로 이름을 남기고 현역에서 은퇴한 그는 육군의 육상팀 코치를 맡았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독일에 이어 조국을 강점한 소련에 항거한 그는 체코 독립선언(1968년 ‘2천어 선언’이라 함) 가담하여 반소민주화 운동과 ‘프라하의 봄’을 적극 지지했다. 소련군의 힘을 빌려 정권을 잡은 체코 공산당은 그를 육군 코치에서 해임하였고, 이로 인해 그는 1990년 체코 민주화 이후까지 유배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2000년 겨울 프라하에서 국장(國葬)으로 치러진 그의 장례식에서 당시 국제육상연맹회장(라미네 디아크)의 애도사는 많은 것을 생각게 한다. “우리가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은 그가 4개의 금메달을 따냈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도 평범한 인간이었으며... 자유와 존엄성을 위해 온몸을 던진 투사였기 때문이다.”

 

영원한 라이벌이자 친구였던 자토펙과 알란미뭉

 


  늘 자토벡의 그늘에 가려 만년 2위의 자리에 있었던 알제리 출신의 한 무명 선수가 있었다. 알제리는 역사적으로 지단, 앙리 등 유명한 축구선수를 배출한 나라로 스포츠에서 만큼은 자부심이 강한 나라였다. 그러나 1830년 프랑스에 점령당하여 무려 132년 동안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다. 한일 합방을 전의 기간까지 포함하면 약 반세기 정도였던 우리보다 무려 세 배의 기간이나 되었기 때문에 그 핍박과 설움의 정도는 가히 짐작이 된다. 1954년 전국에서 무력봉기를 시작으로 무려 8년의 독립전쟁을 통해 1962년에 비로서 프랑스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때문에 우리의 손기정 선수처럼 프랑스 국기를 달고 뛰었던 선수들이 많았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알랑 미뭉’이었다.  세 번의 올림픽에 도전했던 그는 1948년 런던에서는 1만미터에서 1952년 헬싱키에서는 5천미터와 1만미터에서 체코의 영웅 자토벡의 산을 넘지 못하고 만년 2위의 자리를 지켰다.

마지막 도전은 자토벡과 함께 1956년 멜버른대회에 마라톤으로 출전하였다. 늘 막판에 자토벡에게 역전당했던 그는 레이스 도중에 줄곧 뒤를 돌아보며 자토벡의 위치를 확인하려 했으며 영원한 리이벌 차토벡을 뒤로 하고 선두로 골인했다. 우승한 미뭉에게 다가와 뜨거운 축하의 포옹을 한 사람은 바로 자토펙이었고, 이 두영웅은 영원한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기자들에게 “식민지 조국의 국민과 이 기쁨을 함께 하겠다.”고 심정을 밝히기도 했다. 앞서 소개했던 맨발의 군인 아베베 하사(下士, 병사 보다는 위이지만 장교보다 아래인 간부의 계급)는 식민지였던 조국 에티오피아와 민족의 한을 가슴에 품고, 그들을 침공한 이탈리아를 징벌하였다. 1960년 로마올림픽에서 마라톤은 유서 깊은 콜로세움을 출발하여 로마의 시내와 교외를 돌아 베네치아 광장에 이르는 코스에서 진행되었는데 결승점인 베네치아 광장은 과거 무솔리니가 2차 세계대전을 알리며 에티오피아를 정복하겠다고 선언하며 이탈리아 국민과 장병들을 선동했던 바로 그 장소였다. 양을 치던 한 목동이 12살 어린 나이에 황실 근위병에 선발되어 하사 계급장을 달고, 맨발로 로마를 정복하여 민족의 한을 풀었던 당대의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나의 조국이 강하게 시련을 이겨냈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었다.”고 전했고, 이후 우리나라에도 방문하여 “나는 어려서 한국전쟁에 참전하지는 못했지만 황실 근위대 선배들이 참전하여 용맹을 떨쳤던 것을 알고 있으며 이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며 한국에 대한 남다른 감정을 강조한 바 있었다.


  손기정과 남승룡 선수를 비롯하여 자토펙, 알랑 미뭉, 아베베에 이르는 이들은 모두 풍전등화와 같은 조국과 민족을 구하기 위해 죽기를 각오하고 달렸던 피디피데스의 후예들이다. 우리가 특별히 마라톤의 우승자에게 ‘영웅’이란 칭호를 붙여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나치 홍보를 위해 히틀러의 지시에 따라 베를린올림픽을 기록영화로 제작한 리펜슈탈 여성 영화감독은 손기정·남승룡 두 선수의 기록을 남기며 “진짜 묘한 느낌이었다... 승자가 그토록 영광스러운 순간에 어떻게 세상에서 가장 슬픈 표정을 지었는지 모르겠다.”고 진솔한 감정을 털어놨다. 히틀러의 의도대로 독일의 약소국 침략을 정당화해야 했던 그녀는 어쩌면 스케이트 살 돈이 없어서 마라톤을 선택해 온갖 고난과 수모를 겪으며 골인한 그들이 왜 가슴의 국기를 손으로 가리고, 고개를 떨 군 채 시상대에 올라야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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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태승 2013.05.17 22:54 신고

    그 동안 바빠서 스포츠둥지 사이트 방문이 뜸했네요.
    그 간의 글들이 많이 올라와 있어 흐뭇했습니다.
    마라톤에 대해 이렇게 장대한 스토리를 작성하신 것에 대해 놀랐습니다.
    특히 마지막 스토리 '민족과 국민의 설움과 희망을 가슴에 품고 달려 세계에 알리다'에서는 약간의 감동이 일었습니다.
    손기정 선수가 일제 시대에 양정고보(지금의 양정중고등학교)에서 마라톤 훈련을 본격적으로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제가 양정중학교 82회 졸업생이라 당시 양정중고등학교 내에 손기정기념관이 있었는데 그곳에 손기정 선수의 기념물들을 점심 시간에 친구들과 함께 관람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화이팅 부탁드립니다!

 

 

글/ 윤동일 (국방부)

 

        마라톤은 극한의 체력과 정신력을 요구하는 운동이다. 마라토너는 대회 3∼4달 전부터 식이 요법을 병행하면서 하루 수십 킬로미터씩 달리는 지옥훈련을 이겨내야 한다. 또 마라톤은 인간의 몸 전체에 무리가 아닐 수 없다. 너무 많이 뛰면 무릎과 발목이 약해지고 스피드가 떨어지며 결국 선수로서의 생명력이 바닥나게 된다. 이러다 보니 세계 유명 선수들도 통상 공식대회를 15번 정도 참가해 완주한 후에는 은퇴를 하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선수 가운데 공식 대회에 무려 43회나 출전해 41회를 완주한 선수가 있다. 2009년 10월 데뷔 20년 만에 은퇴한 이봉주 선수다. 1990년 전국체전에서 마라토너로 데뷔한 그는 20년 후 같은 대회에서 우승하며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불혹(不惑)을 눈앞에 둔 마라토너의 대회 참가 자체가 뉴스였는데 그는 젊은 선수들을 제치고 우승까지 차지했다. 그는 짝발이면서 평발이다. 마라토너에게 치명적인 신체 조건이다. 왼발이 오른발보다 작아 뛸 때마다 몸이 왼쪽으로 기울고, 평발이라 다른 선수들에 비해 체력 낭비도 심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약점을 의식하지 않았다. 마라톤에서 선천적 천재성보다 후천적 노력이 훨씬 중요하다고 믿고, 달리고 또 달렸다. 그 결과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 2001년 세계 최고 권위의 보스톤마라톤 우승,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및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2연패 등을 이뤄냈다. ‘봉달이’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치열한 승부 근성과 집념으로 유명하다. 한 번도 올림픽 금메달을 딴 적이 없지만 그 덕에 계속 도전해야겠다는 목표 의식을 가질 수 있었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했기 때문에 힘든 훈련도 참았다. “마라톤을 즐기지 못했다면 진작에 은퇴했겠지만 달리는 게 좋아서 그냥 뛰다 보니 20년의 세월이 흘렀다”며 스트레스 해소법조차 가볍게 뛰면서 음악을 듣는 일이라고 말했다. 아직도 국내 남자 마라톤 최고 기록은 2000년 도쿄마라톤에서 짝발과 평발을 가진 그가 세운 2시간 7분 20초에 머물러 있다.

 

 

이봉주 선수(2001년)          에티오피아의 아베베 선수(1960년, 1964년)          탄다니아의 아크와리선수(1968년)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의 고원지대(아비시니아)에 위치하고 있어서 폐활량 키우기에 유리한 지리적 특성 때문에 케냐와 함께 장거리 육상과 마라톤의 강국이다. 선수층은 얇지만 현재 세계 신기록(2시간 3분 39초)을 갖고 있을 정도로 마라톤에 관한 한 자신 있는 에티오피아에는 아프리카 흑인으로는 처음으로 올림픽을 제패한 맨발의 기관차 ‘아베베 비킬라’가 있다. 아베베는 정식으로 훈련을 받은 전문 마라토너가 아니라 그는 황실 근위대에 소속된 군인이었다. 이런 그가 1960년 로마올림픽에 처음 출전해 당시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선수들을 제치고, 그것도 맨발로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하였고, 4년 뒤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준비하던 중 맹장제거 수술을 받았으나 불가능이라 했던 예상을 깨고, 운동화를 신고 마라톤 사상 처음 2연패를 달성했다.(다른 한 명은 1976년과 1980년 올림픽에서 연속 우승한 옛 동독의 발데마르 치에르핀스키이다.) 이 공로로 그는 하사에서 중위로 진급했다. 1968년 세 번째 올림픽 도전에서 그는 여전히 강해 보였다. 그런데 약 17km 지점에서 갑자기 아베베가 길가를 벗어나 경주를 포기했다. 로바 코치는 나중에 기자회견에서 아베베가 경기 전 몇 주 동안 왼쪽 다리 골절상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이 공개돼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아베베의 팀 동료였던 마모 월데 선수는 그의 부상을 알고 있었고, 아베베가 레이스를 포기하고 난 후 마치 그의 거울 속 이미지인양 도로를 질주해 1위로 골인했다. 후에 마모 월데 선수는 그의 우상이었던 아베베에게 그 영광을 돌렸다. 자신이 금메달을 따지는 못했지만 조국의 3연패를 일구며 돌아온 그는 대통령에게 하사받은 고급 승용차를 몰다가 사고로 그만 하반신을 못 쓰게 되었다. 그는 이렇게 올림픽에서 마라톤 도전은 막을 내렸다.

그러나 그의 올림픽 도전이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베베는 불굴의 군인정신으로 “더 이상 내 다리는 달릴 수 없지만 나에겐 아직 두 팔이 있다.“며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장애인 올림픽의 전신이 되는 스토크맨더빌 휠체어 대회에서 양궁과 탁구종목에 출전했고, 탁구에선 정상에 올랐으며 노르웨이 장애인올림픽에서는 썰매경주에서 금메달을 따기도 하였다. 그가 딴 금메달은 모두 네 개로 사고 전에 두 개와 사고 후에 두 개를 따며 불굴의 의지를 가진 인간 승리의 대명사가 되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1968년 멕시코올림픽의 마라톤경기는 한 편의 드라마 그 자체였다. 이 날의 경기는 앞서 부상을 입은 아베베가 레이스를 포기한 반면 팀 동료 웰데가 결승선을 통과했고, 그 뒤를 이어 대부분의 선수들이 모두 골인하면서 경기는 마무리되고 있었다. 어느 취재 기자의 보도기사는 당시의 상황에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이제 관중석엔 불과 수천의 관중들이 남아 있을 뿐이었고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엔 호루라기와 오토바이 소리 그리고 비상등의 불빛이 어둡고 차가운 멕시코시티의 저녁에 스산한 기운까지 느끼게 만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기자들이 다시 몰리면서 「이제 이번 마라톤경기의 마지막 주자가 오고 있습니다.」 라는 장내 아나운서의 발표가 있었다. 탄자니아의 존 스티븐 아크와리 선수가 경기장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의 다리에는 붕대가 감겨져 있었고, 붉은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한 발짝, 한 발짝을 고통으로 비틀거리면서 달리는 그에게 방금 전까지 조용하기만 했던 수천 명의 관중들은 서서히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아크와리는 트랙을 돌면서 고통스런 경주를 계속했고, 관중들의 환호는 점점 더 커져갔다. 그가 다리를 절면서 결승점을 지났을 때, 관중들은 마치 그가 금메달을 딴 것처럼 환호성을 질렀다.”

한 기자는 그의 경기에 대하여 이렇게 적기도 했다. “오늘 우리는 인간 정신의 가장 순수한 것을 형상화 한 아프리카의 한 젊은 마라토너를 보았다. 스포츠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진정한 의미를 부여한 행동이었다. 스포츠는 성숙한 인간이 하는 경기라는 스포츠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주었고, 용기라는 말에 진정한 의미를 부여한 행동이었다. 이 모든 영예를 탄자니아의 존 스티븐 아크와리 선수에게 바친다.” 경기를 마친 후 가진 인터뷰에서 왜 그런 고통을 견뎠는지, 왜 포기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많은 질문을 받았다. 아크와리 선수는 그 질문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으며 “당신들이 이해를 못 하고 있는 것 같다. 내 조국은 나에게 레이스에 출전만 하라고 7,000마일이나 떨어진 이곳까지 보낸 것이 아니라 레이스를 끝내고 오라고 나를 보낸 것"이라며 기자들을 꾸짖는 듯이 대답하고는 치료를 위해 병원으로 실려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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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개방형 포털 "줌(zum.com)"입니다.

    본 포스트가 zum.com의 스포츠허브 스포츠 종합 영역에 5월 12일 09시부터 소개될 예정임을 알려 드립니다.
    운영 정책 상 해당 포스트의 노출 시간이 단축되거나 연장될 수 있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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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글/ 윤동일 (국방부)

 

         유럽을 잉태한 마라톤 전투의 위대한 가치만큼이나 마라톤 영웅들의 다양한 스토리는 인생 그 자체이다. 2시간을 넘게 쉬지 않고 달려야 하는 경기다 보니 초인적인 능력이 필요한 것이 현실이지만 42.195km의 긴 여정에 도전하는 이들의 스토리는 우리의 다양한 삶의 모습만큼이나 다양하다. 어떤 이는 조국을 구하기 위해 죽음을 불사하고 달렸고, 어떤 이는 나라 잃은 약소민족의 희망을 위해 달렸으며 어떤 이는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서 달렸다. 그리고 어떤 이는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마라톤에 도전했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마라토너들의 진한 감동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몸이 불편한 것이지, 정신이 불구(不具)는 아니다.
  2011년 대구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가장 개인적인 관심을 끌었던 선수는 우사인 볼트도(자메이카 단거리 스피린터), 이신바예바(러시아 장대높이뛰기)도 아니었다. 선천적으로 종아리뼈가 없어서 생후 11개월 만에 두 다리의 무릎아래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아 의족에 의지한 채 정상인들과 함께 400미터 육상경기에 출전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블레이드 러너(블레이드 의족을 달고 달리는 것에서 유래한 별명)’로 불리는 의족 스프린터 오스카 피스토리우스[각주:1]였다. 양쪽 혹은 한 쪽 다리가 없는 장애 세계기록을 보유한 그의 기록은 45.07초로 휠체어 경기의 세계 일인자 중국의 장리신과 같은 기록이다. 비장애인 경기의 세계기록인 미국의 마이클 존슨이 1999년에 세운 43.18초에는 2초 이상 늦은 기록이지만, 한국 기록(손주일 선수가 1994년에 세운 45.37초) 보단 0.2초 빠른 기록이다. 다시 말하면 기록만으로 볼 때, 휠체어와 의족에 의존한 그들과 겨뤄 이길 수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에는 없다고 보면 된다.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남아공의 피스토리우스 역주 모습

400미터 육상 세계기록 비교

 

 

스포츠에는 불구(不具)의 몸으로 또는 심각한 부상을 극복하며 세계 정상에 선 초인들의 역사는 무수히 많다. 올림픽에 국한하여 소개하더라도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요약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초기 올림픽에는 정식종목 가운데 지금은 없어진 스탠딩 육상종목이 있었다. 말 그대로 제 자리에 서서 높이뛰기, 멀리뛰기, 세단뛰기를 하는 경기이다. 미국의 ‘레이 어리’는 소아마비로 평생을 휠체어에 실려 살기 싫어서 시작한 체조와 점프 덕분에 대학 육상부 주장까지 맡으면서 1904년부터 4개 대회에세 모두 10개의 금메달과 3개의 신기록을 수립하였고, 미식축구 선수로도 뛰었다.

 

미국의 검은 진주 ‘윌마 루돌프’는 가난한 흑인 가정에서 22명의 형제 중 20번째로 태어나 성홍열, 소아마비, 폐렴을 앓으며 11살까지 목발에 의지하며 살았다. 친구들처럼 뛰어 놀 수 없어서 바구니에 농구공을 던지며 놀았던 그녀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걷는 연습을 했고, 결국 중학교 농구선수가 되었다. 이후 육상에 관심을 보인 그녀는 16살의 나이로 1956년 멜버른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땄고, 1960년 로마올림픽에서는 단거리 종목(100미터, 200미터, 400미터 계주)에 출전하여 세 종목 모두 세계 신기록으로 우승하였다. 그밖에도 1952년 헬싱키올림픽에서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한 미국의 ‘월터 데이비스’도 휠체어에 의지했던 소아마비였고, 1984년 로스엔젤레스올림픽 800미터에서 금메달을 딴 ‘조아킴 크루즈’는 오른발이 왼발에 비해 짧았다.

 

이 올림픽 영웅들은 소위 말하는 ‘절름발이들’이었다. 아예 손과 발이 없었던 선수들도 있었다. 헝가리 권총사격 국가대표였던 ‘카로리 타카스’는 군인으로 1938년 훈련 중에 불의의 수류탄 폭발사고를 당했다. 오른손잡이 사격선수가 오른 손을 잃었으니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슬픔과 좌절을 딛고, 주변의 걱정과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오른손이 한 것을 왼손이 못할 이유가 없다며 다시 권총을 잡았다. 익숙하지 않은 왼손을 오른손처럼 사용하며 균형을 잡고 새로운 사격감각을 만드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지만 그의 피나는 노력은 불과 1년 만에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이라는 기적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는 올림픽 우승을 목표로 맹훈련에 돌입했다. 그의 노력은 10년 만에 달성되었다. 그는 1948년 런던올림픽에 출전하여 속사권총에서 금메달을 따냈고, 1952년 헬싱키올림픽에서도 42살의 적지 않은 나이로 2회 연속 정상에 올랐다. 그가 젊었을 때 오른 손이 하지 못했던 일을 선수로는 중‧노년기에 들어 왼손이 세계를 제패한 것이다.

 

또 다른 헝가리의 신화는 수구(水球) 선수 ‘올리버 할라’이다. 11살 때 전차(tram)에 치어 한 쪽 다리의 무릎을 절단해야 했던 그는 재활 프로그램으로 시작한 수영에 몰두하여 유럽선수권대회 1,500미터 경기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수구로 전향하여 헝가리 국가대표의 주전으로 96경기에 참가하였다. 올림픽은 1928년 암스텔담대회부터 모두 세 번을 출전하여 금메달 2개와 은메달 1개를 목에 걸었다. 소위 외팔과 외다리 선수들이 정상인들을 물리치고 세계 정상에 우뚝 선 것이다.

 

그런가하면 경기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심각한 부상이나 예기하지 못한 상황을 강인한 정신력과 투혼으로 극복한 사례도 많다. 1896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싸이클 도로경기는 아테네에서 출발하여 마라톤까지 왕복하는 87km 구간에서 열렸다. 그리스의 ‘콘스탄틴 티니디스’는 마라톤까지 선두를 유지했으나 돌아오는 길에 다른 선수와 충돌하며 자전거는 부서졌고, 부상도 입었다. 응급치료를 받고 나서 그는 경기 보조원의 자전거를 빌어 타고 다시 달렸다. 아테네에 들어서며 그에게 또 다른 시련에 직면한다. 길에 나온 사람을 피하려다 또 벽을 들이 받았는데 자전거는 망가졌고, 부상도 심했다. 대충 치료를 받고 난 그는 이번엔 관중의 자전거를 얻어 타고 1위로 골인했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그의 몸은 땀과 먼지로 얼룩져 있었고, 그의 표정에는 수많은 고난을 겪은 흔적이 역력했다.”고 적었다.

 

1908년 런던올림픽 남자수영 800미터 계영경기에 출전한 헝가리 팀은 2위 영국 보다 상당히 앞서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영자(泳者)인 ‘졸탄 할메이’는 레이스 도중 발생한 근육경련으로 갑자기 물속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근육경련은 정도와 무관하게 일단 한 번 발생하면 더 이상의 경기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할메이는 세 번씩이나 텀벙거리면서도 포기하지 않았고, 사력을 다해 2위로 골인한 후 완전히 정신을 잃었다. 그가 다시 눈을 뜬 것은 그로부터 몇 시간이 지나서였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권투 라이트급에 출전한 헝가리 ‘임레 하란기’는 국내 경기에서 다친 코 때문에 수술을 권유 받았지만 올림픽을 앞둔 그는 수술을 미뤘다. 올림픽을 마친 후 코의 부상은 더욱 악화되었지만 시상대의 가장 위에 설 수 있었다.

 

1956년 멜버른에서 1960년 로마대회까지 투원반 올림픽챔피언이었던 미국의 ‘알 오터’는 1962년 국내 경기 중 목뼈를 다쳐 1년 넘게 깁스를 하고도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1964년 도쿄올림픽을 일주일을 앞두고 겨우 깁스를 풀긴 했으나 여전히 부목에 붕대를 감은 채 경기에 출전했다. 좋은 자세와 높은 집중력이 필요한 경기에 부자연스런  부목과 붕대는 행동을 제한했기 때문에 성적은 좋을 리 없었다. 세 번째 시기를 앞두고 오터는 붕대를 풀어 부목을 제거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마치 누군가가 내 갈비뼈를 뽑아내는 것 같았다.”라고 털었던 그의 성적은 세계 신기록이었다. 그 후로도 그는 1968년 멕시코올림픽까지 석권하며 16년간 올림픽 4회 연속 세계 신기록으로 금메달리스트가 되면서 기네스북에 올랐다.

 

1964년 도쿄올림픽 남자혼영의 강력한 우승 후보인 미국의 ‘리차드 로스’는 경기 이틀 전 심한 복통으로 병원에 급히 후송되었다. 맹장염을 판정한 의사들은 당장 수술을 권유했으나 이 17살의 청년은 “수술이나 받으러 여기 온 것이 아니다.”라며 수술은 물론 진통제도 거부하고, 얼음찜질만으로 경기에 임하여 자신의 기록을 무려 3초나 단축하면서 신기록으로 우승했다. 미국의 다이빙 황제 ‘그렉 루가니스’는 88올림픽의 가장 영웅적인 선수로 평가된다. 그는 1982년부터 1987년까지 세계대회에서 19연승을 기록했고, 1984년 LA올림픽에서는 스프링보드와 다이빙 두 종목을 석권했던 우승후보 영순위였다. 그런데 예선전에서 도약대에 머리를 부딪쳐 8바늘을 꿰매는 부상을 입고 말았다. 대부분 이런 경우라면 경기를 포기했을 법한데 그는 머리에 붕대를 감고 다이빙에서 최초로 올림픽 연속 우승의 위업을 달성했다.

 

그렉 루가니스(1988년, 미국 스프링보드)  카로리 타카스(1948·1952년, 헝가리 속사권총) 

윌마 루돌프(1960년, 미국 육상) 알 오터(1960·1964년, 미국 원반던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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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피스토리우스는 1986년 생으로 100미터, 200미터, 400미터 세계기록을 보유하고 있고, 2012년 런던 페럴림픽에서는 400미터 계주에서 세계신기록을 경신하며 우승하며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으나 2013년 2월 14일, 여자 친구 살해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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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동일 (국방부)

 

 

3. 마라톤에 숨은 엄청난 이야기

마라톤은 올림픽의 꽃 그 이상이다.
 마라톤은 쿠베르탱과 뜻을 같이 해 올림픽 제정에 참여한 한 통역자 마이클 브레알(Michel Breal)이 올림픽에 장거리 달리기 종목을 넣어보자는 제의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러나 처음엔 쿠베르탱도 42km가 넘는 장거리를 쉬지 않고 달리는 것 자체가 인간의 한계를 극복해야하기 때문에 반대했었다고 전한다.


  유전적으로 심장이 큰 경우도 있겠지만 마라톤 선수들의 심장은 일반인에 비교해 매우 다르다. 크기는 일반인에 비해 1.5배 이상(심장의 좌우 직경은 일반인이 평균 10cm내외인 반면, 마라톤 선수들의 심장은 평균 16cm에 이른다.) 큰 편이지만, 심장 박동수는 일반인의 절반(일반인 심장 박동은 분당 70회 정도이나 마라토너들은 분당 40회로 황영조 선수의 경우는 분당 38회였다고 한다.) 수준에 불과하다. 의학계에서는 마라톤 선수들처럼 강한 심장을 부를 때 ‘스포츠 심장(Athletic Heart)’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선천적으로 강한 심장을 물려받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개는 후천적인 훈련과 노력에 의해 마라톤에 특화된 신체구조와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신체도 바뀔 정도로 초인간적인 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마라톤이 기원에서부터 가장 올림픽의 정신을 대변하는 경기로 인식되었고, 소위 ‘올림픽의 꽃’이란 별명도 얻게 된 것이다. 인간으로서 한계에 대해 도전하고 그 열정을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가장 큰 감동을 전하는 마라톤 경기를 올림픽의 모든 경기 가운데 가장 마지막 순간에 진행하는 것도 후천적으로 피나는 노력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는 초인간의 경지를 달성해야하기 때문이다. 약간의 상상력을 보탠다면 앞서 언급했던 고대 올림픽에서도 전투복장을 착용하고 무기를 휴대한 채로 달리는 경기(무장달리기)도 역시 가장 마지막 순서에 진행했던 것과 연장선에서 이해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며 마지막 결승점을 통과하면서 느끼는 성취감 또한 신에게 자신을 바치는 의미에서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을 얻은 신과 동일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또한 역사적 관점에서 주목하는 것은 마라톤이 앞서 소개한 아테네의 밀티아데스와 5천 결사대의 승리는 단순한 스포츠 경기 이상의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는 점이다. 오늘날 지중해의 지리적 중요도와는 달리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에 있어 그리스의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당시 중동지역에서 이집트, 바빌로니아까지 거대 제국을 건설했던 페르시아에겐 그리 구미 당기는 곳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리우스 1세로부터 시작한 그리스 원정의 꿈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일반적으로 그리스와의 교역과 도시국가들을 접수하면서 맛 본 자유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는 점을 꼽는다. 절대군주의 권력과 힘을 가졌던 다리우스는 자신 이외의 자유인은 없었다. 왕족이 아닌 신분으로 쿠테타에 의해 세운 자신의 세계 제국에 그리스의 자유분방한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이 미칠 영향에 대해 걱정했고, 자신의 권력유지에 커다란 장애물로 인식하며 두려워했던 것이다. 때문에 전혀 아쉬울 것 없었던 대제국의 통치자는 자신의 발아래 모든 그리스 국가들을 두기를 원했던 것이다. 마치 프랑스 혁명 사상이 전파될 것을 두려워 한 열강들이 나폴레옹에 대항하여 대불동맹을 형성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런 다리우스의 염원은 마라톤의 패배로부터 시작되어 3차 원정에서도 실패했고, 결국은 제국의 멸망으로 이어졌다.

 

반면에 세계 최초로 동양과 서양의 일대 격전에서 그리스의 승리는 곧 전 세계에 그리고 인류 문명사에 있어 유럽의 시작을 알리는 첫 신호탄이 되었다. 결과론적으로 마라톤에서부터 시작하여 테르모필레로 이어진 승리는 조국 아테네와 스파르타만 지켰던 것이 아니라 유럽 전체를 외세로부터 굳건히 지켜낸 역사적 사건(영국 군사전략가 퓰러는 마라톤전투에서 그리스의 승리는 “유럽이라는 아기가 탄생하면서 낸 소리였다.”고 평가했다.)으로 유럽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후일 로마의 정치가이자 철학자였던 키케로(M.T.Cicero, BC 106∼43)는 아테네의 5천 결사대와 스파르타의 300근위병들의 주검 앞에서 "조국에 충성을 다하고, 여기에 누운 위대한 전사"로 칭송하기도 했다. 이제 외침으로 조국의 국운이 풍전등화에 있었던 절체절명의 순간에 마라톤 평원에서의 승리와 아테네 5천 중장보병들의 투혼 그리고 죽기를 각오하고 달려 승전보를 전한 피디피데스의 숭고한 정신은 1896년 아테네에서 열린 제1회 하계올림픽에서 재현되었다. 비록 1천년 이상 지속된 고대 올림픽에서는 정식종목으로 거행되지는 못했지만 이제는 올림픽의 정식종목으로 전 세계인들이 어디서나 즐겨 하는 대중스포츠로 자리 잡게 되었다.


  오늘날 유럽을 잉태한 고대의 최대 사건으로 높이 추앙하는 입장에 반해 대제국의 소멸을 지켜봐야 하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참담하고 암담한 기억이 아닐 수 없다. 때문에 페르시아 국가들의 입장에서 마라톤 경기는 그리 탐탐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 사라진 페르시아의 후예인 이란에서는 ‘터부’로 인식하는 오랜 전통이 있어 국가 차원에서 금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1974년 이란의 테헤란에서 열린 제7회 아시안게임에 마라톤 경기는 열리지 않았다.

 

제1회 올림픽 포스터         제1회 올림픽 경기장(그리스 파나티나이코)           제1회 올림픽의 마라톤 경기 장면

 

마라톤은 올림픽 종목 중에서 가장 고되고 힘든 종목이다. 다른 육상경기와는 다르게 경기장을 출발하여 도심지와 교외를 따라 야외에서 경기를 진행하며 다시 경기장으로 돌아와 경주를 마친다. 일단 풀코스를 완주하면 평균적으로 4kg의 체중감량이 수반되고, 경기 도중에 포기하거나 여러 가지 부상은 물론 드물게는 기절하거나 심장을 비롯한 신체에 많은 부하가 가해져 사망에 이르는 사례까지 생긴다. 또한 다른 종목과는 달리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종목이고 경기가 2시간 넘게 진행되기 때문에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엄청난 지루함을 느끼게 해준다. 보는 것도 하는 만큼이나 어지간한 근성 없이는 보는 것 자체가 괴로울 정도다. 그러나 그렇게 힘들게 뛰고 난 뒤 결승선에 들어가면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여 불굴의 의지를 갖고, 초인적인 능력과 인내를 요구하는 마라톤 경기의 특성 때문에 개인 종목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종목들에 비해 전하는 감동이 많은 종목이기도 하다. 승전보를 알리고 그 자리에 쓰러져 죽을 수밖에 없었던 한 군인의 절박함에서부터 신체적 결함과 온갖 고통을 참고 인내하며 모진 역경을 극복해낸 믿지 못할 이야기와 온 나라 아니 전 세계인을 감동시켜 눈물짓게 만든 이야기도 있으며 나라 잃은 설움과 울분을 가슴에 담고 민족의 희망을 위해 달리는 마라토너들도 있었다. 이제 마라톤 영웅들이 전하는 진한 감동의 스토리들을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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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병구 (영서초등학교)

 

 

       벚꽃이 만연한 요즘, 봄기운을 절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가 전국각지에서 개최되고 있다. 특히 스포츠와 결합된 이벤트의 경우, 국민의 건강과 복지 측면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많은 동호인들이 참가하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동호인들이 체계적인 운동교육을 접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부족하여 많은 안전사고가 해마다 발생되고 있다. 이에 국민생활체육회에서는 동호인들이 선호하는 종목들을 선별하여 올바른 자세 및 안전사고 예방교육 등을 전문지도자를 통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필자가 속한 전국육상연합회에서도 사업운영권을 위임받아 전국 11개소(청소년달리기 3개소 포함)에서 달리기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달리기교실’은 예년에 비해 사업시기가 늦었지만(그래서 10개월→9개월로 단축) 서울, 경기, 전남, 전북등 총 4개 지역 8개소(서울대학교, 인천 서곶 근린공원, 경기 평택 세교동 동북천, 경기 수원시종합운동장, 경기 부천 상동호수공원, 경기 성남공설운동장, 전북 군산대학교대운동장, 전남 목포 유달경기장)에서 정상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별도로 참가제한을 두고 있지는 않으며, 입문반과 초급반으로 분류하여 수준별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이로 인해 원활한 수업진행을 위하여 각 교실마다 강사를 2명 배치하고 있으나 모든 국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매달 12회(선착순 30명, 연장불가)에 한해서 2시간가량 교육혜택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일선 학교현장에서 진행되고 있는 ‘청소년 달리기교실’은 지도자가 직접 해당 학교(서울 숭덕초등학교, 염창초등학교, 석촌중학교)에 방문하여 한 학기(24회 강습) 동안 학생들이 올바른 달리기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현재 서울지역 3군데 초등학교에서 사업이 시행되고 있으며, 방과후 수업시간을 활용하여 달리기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자 료> 달리기학교 교실 공식 포스터

 

 

이와 같은 프로그램을 보급하려는 근본적인 목적은 단연 선진 체육복지 국가 실현에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명목도 있을 수 있으나 국민이 요구하는 생활체육 수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건전한 여가생활을 도모하려는 이유가 단연 크다. 이로 인해 필자가 속한 전국육상연합회에서는 달리기교실을 담당하는 지도자들의 전문성 및 생활체육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하여 별도의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지도자 및 동호인들에게 육상에 대한 동기부여를 제공하고자 순회지도자(오인환 前마라톤국가대표감독)를 통해 사업이 시행되고 있는 8개소로 방문하여 매달 1회씩 올바른 달리기 교수법을 강의하고 있다.

 

 

<자 료> 달리기학교 지도자 세미나 관련 사진

 

 

하지만 일부 달리기교실을 경험한 수강생들이 연속으로(=이월) 교육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단점이 있어 이에 대한 논의가 시급히 필요하다. 이는 매번 수강생을 모집하여야 된다는 번거로움이 있어 달리기학교 지도자들의 운영에 대한 어려움이 예상될뿐더러 교육을 수강하는 수강생들도 지속적인 지도를 받지 못한다는 문제점들을 노출하고 있다.


현재 네이버와 스마트폰 어플 등에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달리기교실은 예비 육상 동호인들이 손쉽게 정보를 습득할 수 있어 많은 동호인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달리기교실에 참가하는 수강생 전원에게 운동에 필요한 T셔츠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어 사업이 종료되는 시점까지 수강하는 이들이 늘어날 전망이다.


마지막으로 참가방법은 달리기교실 홈페이지(www.runschool.or.kr)에 방문하여 가입 후, 자신의 거주 지역에서 가까운 달리기교실로 등록하면 올바른 달리기 방법을 무료로 배울 수 있다.

 

 

<자 료> 달리기학교 신청 방법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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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동일 (국방부)

 

 

 

2. 마라톤에 숨은 엄청난 이야기


 마라톤 평원에서의 대격돌, 마라톤전투!
  그리스 정벌을 위해 다리우스는 정예군 4만 명을 태운 페르시아 함대를 이끌고 에게해를 넘어 지중해를 향해 진격해 오고 있었다. 당시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거대한 제국 페르시아에 대부분이 미리 겁을 먹고, 항복한 상태였다. 용맹한 전사들의 나라, 스파르타도 종교제전(카르네이아)과 지역내 반란 진압을 이유로 적시 참전이 불가능함을 통보해 온 상태였다. 많은 도시국가들 가운데 오직 아테네만이 ‘결사항전’과 ‘항복’을 두고 원로원에서 격렬한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대부분의 주화(主和)파는 비굴하지만 페르시아의 대군을 당해낼 수 없다며 전쟁은 피하고 항복을 주장했지만 장군이자 전략가였던 밀티아데스를 주축으로 한 주전(主戰)파들은 싸워 보지도 않고 항복할 수 없다며 결사항전을 주장했다.

시시각각으로 페르시아의 위협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원로원은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격론으로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이 때 싸워 보지도 않고 항복할 수 없다고 생각한 밀티아데스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그는 원로원에 “우리가 지게 되면 그때 성문을 열어도 늦지 않다.”는 비장한 메시지를 남기고 아주 비밀스럽고 급작스럽게 소집된 5천여 명의 자원병들만을 이끌고 페르시아군의 예상 상륙지점으로 향했다. 에레트리아를 지원하기 위해 동원되었던 다른 도시국가들과 플라타이아인들이 합세하여 가까스로 1만 명의 군사를 동원할 수 있었다. 아테네의 양분된 상황을 비교적 잘 파악한 다리우스의 작전계획은 이러 했다. 그는 아테네의 중심지인 팔레론을 직접 지향하지 않고, 병력을 둘로 나누어 1차로 마라톤에 상륙하여 아테네의 주력을 유인한 후, 예비대를 주력이 빠진 팔레론으로 진격시켜 아테네 원로원을 접수한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당시 다리우스의 전략은 아테네의 상황과 군사적 능력을 감안해 볼 때 매우 탁월한 선택으로 군사전략적 측면에서도 매우 높게 평가된다. 최종의 군사목표에 직접적으로 압박을 가하지 않고, 상대가 반드시 응할 수밖에 없는, 비교적 원거리에 위치한 마라톤을 1차 목표(이를 ‘대용목표’라 한다)로 선정함으로써 상대의 전력과 노력을 분산시키고, 가장 최소한의 전투와 희생으로 궁극적인 목표(팔레론)를 달성한다는 전략은 매우 탁월했었다. 전쟁의 오랜 역사 가운데 가장 탁월한 전략으로 평가되는 ‘간접접근(Indirect approach)' 방식을 구사한 것으로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는 고대에 간접전략을 처음 사용한 군사적 천재였던 셈이다.

 

  마라톤 평원에서의 전투 경과는 대략 이렇다. 아래 전투 상황도에 보는 바와 같이 2만 5천명의 페르시아군과 1만여 명의 아테네군은 바다에 수직으로 포진했다. 병력면에서 우세한 페르시아군은 중앙에 정예보병이 위치했고, 좌·우익에 궁수와 방패병들을 균등하게 배치했다. 반면 열세한 아테네군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측면을 감안해 당시 보편적인 전투대형을 포기하고, 새로운 전투대형을 갖췄다. 앞서 페르시아군의 대형처럼 정면과 좌우 측면의 전투밀도를 균등하게 유지하는 것이 전장의 상식이었으나 아테네의 밀티아데스는 중앙의 병력을 줄이고 좌우 측면의 병력을 더욱 보강했다. 그리하여 중앙군은 일반적인 8열에서 4열로 줄여 편성했고, 여기서 절약한 병력을 양 측익에 배치해 평소 보다 두 배로 증강해 상대적인 편성을 맞췄다.

전투가 시작되자 정면의 우세한 페르시아중앙군은 아테네군의 정면을 쉽게 돌파했고, 열세한 아테네군은 페르시아의 중앙군에 밀려 후방으로 후퇴하는 듯 보였다. 초전의 승리도 잠시, 중앙에서의 성공에 도취된 페르시아군이 돌파구를 확장하고, 아테네군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기 위해 더 많은 전력을 투입하는 동안 측익의 변화는 심상치 않았다. 먼저 페르시아군의 우익이 아테네군에 의해 붕괴되기 시작했고, 이어서 좌익도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중앙군의 전진과 양 측익의 후퇴로 전선은 자루의 형상을 띄게 되자, 이번엔 자루처럼 생긴 포위망에 갇힌 페르시아군을 격멸하기 위한 아테네군의 반격이 이어졌다. 전황의 불리함을 인식한 페르시아군의 주력은 전투대형이 와해되어 도주했고, 아테네군의 추격이 시작되었다. 습지로 패주한 페르시아군의 대부분은 아테네군의 추격에 전멸 당했고, 바다를 향해 도주한 잔병들은 정박한 함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전투의 결과로 페르시아군은 약 6,400여명이 전사한 반면, 아테네의 피해는 고작 190여명에 불과했다. 참고로 전투현장을 답사해 전투장면을 재현한 델브루크에 의하면 아테네군이 선택한 마라톤 평원의 폭은 1.6km에 불과하여 정상적인 병력배치가 불가하여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매복의 형태로 배치할 수밖에 없었고, 이를 본 다리우스 대왕은 소수인 아테네군의 비정상적인 병력배치를 가볍게 보고는 쉬운 승리를 장담했다. 정면의 중앙군은 밀렸지만 좌우 경사로에 매복한 측익에 의해 바위나 통나무를 굴려 내리면서 기습적인 타격을 가함으로써 페르시아는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살육당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페르시아의 완패는 전장평가의 차이에 기인한 문제로부터 기인되었다고 볼 수 있다.

 

 

 

 
 ▶마라톤전투(BC492)
  페르시아왕 다리우스의 2차 원정에서
  아테네군과 치른 육상전투
▶전력비교(페르시아 : 아테네 = 4 : 1)
  -페르시아군(다리우스1세)
    : 2.5만명, 경보병, 궁수, 기병
  -아테네군(밀티아데스)
    : 1만명, 중보병, 창병, 기병 없음
▶전투경과(아테네군 중심)
  -중앙을 뒤로 물려 페르시아군 유인
  -좌·우익을 포위
  -정면견제와 양익포위로 페르시아군을
    격멸, 페르시아군 퇴각
▶전투결과 : 아테네군 승리
▶전투피해(추정)
  -페르시아군 : 6,400여명 전사
  -아테네군 : 190여명 전사
※지중해의 지배권을 유럽이 장악
  최초 간접접근전략, 양익포위전술 구사

미리톤전투(BC490)의 개관

 

 

 페르시아 주력에 상당한 피해를 입히면서 마라톤 전투에서 승리를 얻기는 했으나 페르시아의 함대가 출발하는 것을 막지 못했던 밀티아데스의 고민은 이제부터였다. 이 함대가 만약 변변한 군대 하나 없었던 아테네의 심장부를 직접 공략한다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아테네 점령을 위해 해상에서 대기 중인 페르시아군(1.5만)에게 하시라도 성문을 열고 항복할 준비가 되어 있는 원로원에 승전보를 알려 ‘항복하지 말고 항전(抗戰)’할 것을 알려야만 했다.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그가 택할 수 있었던 것은 단 한 가지 뿐 이었다. 가장 빨리 달릴 수 있는 자를 선발해 승전보와 장군의 항전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가장 발이 빠른 전령(傳令, 명령을 전달하는 병사)으로 하여금 “우리가 이겼으니 페르시아 군이 공격해도 절대 항복하지 말고 지켜라. 그리고 우리가 배후에서 협격하면 이길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도록 했다. 국가의 안위가 달린 승전의 메시지를 갖고 달리기 위해 선발된 전령, 피디피데스(전령의 이름이나 달린 거리 등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분분하다.)는 마라톤으로부터 아테네에 이르는 거리를 쉬지 않고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달렸다. 이처럼 절박한 상황이 그로 하여금 죽기를 각오하고 달리게 한 이유였다.

밀티아데스는 마라톤에서 승전의 기쁨을 누릴 여유가 없었다. 그는 잔여 병력들을 이끌고 서둘러 아테네로 돌아와야 했다. 해상에 정박해 있는 페르시아 해군과 마라톤에서 도주한 적의 육군이 아테네를 공격한다면 지금의 노력도 수포로 돌아갈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와 아테네군 모두는 무장을 고쳐 입고, 달리기 시작했고, 페르시아가 공격하기 이전에 아테네에 도착했으며 페르시아 함대는 완전히 철수했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승전보를 알린 것도 말고도 아테네 중장보병들의 빠른 이동속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당시 아테네군 중장보병의 약 32kg의 갑옷을 착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를 착용한 채로 마라톤 평원에서 약 1.5∼2km를 거의 달리는 속도로 공격해 페르시아 육군을 격멸하고,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전열을 정비한 후, 마라톤에서 아테네까지 무려 33km의 거리를 빠른 보속으로 돌아와 페르시아의 상륙에 대비할 수 있었다.

이는 이미 기원전에 아테네군의 전령과 중장보병이 보여 준 능력은 오늘날까지 역사상 존재했던 그 어떤 군대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수준이었다는 점에서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유추해 보건대, 늘 상대적으로 열세한 전력을 가지고도 결정적인 승리를 쟁취한 배경에는 고대 올림픽을 통해 달리기를 기본으로 체력을 단련하고, 전장에서 필요한 다양한 전투기술을 습득했다는 것이다. 무기나 전투 장비를 개발하고, 체계적인 군사훈련을 통해 개인 및 조직의 전투기술을 연마하는 것과는 별개로 운동을 통해 단련한 강한 신체의 덕을 톡톡히 본 것 같다. 특히, 마라톤 전투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갑옷을 입은 채로 아니면 적어도 중장보병들이 들었던 방패를 휴대한 채로 달리는 경기가 있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어찌 되었건, 페르시아는 마라톤 전투에서 패한 후로부터 약 10년 동안 그리스에 대한 그 어떤 야욕도 갖지 못했다.

 

 

승전보를 전하는 전령(올리비에메르송 작)     마라톤전투의 아테네군 전사자 무덤     피디피데스의 청동상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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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동일 (국방부)

 

 

 

마라톤에 숨은 엄청난 이야기
즐겁게 노는 행위를 통해 인간성과 사회성을 추구하는 스포츠는 평시 전쟁 준비태세를 점검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현대 스포츠의 원형인 고대 올림픽 경기는 종교와 스포츠가 결합된 종합 축제이지만 군사적 측면에서만 본다면 평시의 전쟁 준비태세를 점검하고, 전사들의 전투기술과 능력을 일정 규칙에 따라 견주어 보는 일종의 군사훈련의 시험장이었다. 전장에서 적보다 빨리 원하는 지점으로 이동(육상트랙경기‧스키)하고, 적과 만나면 무찌르고(펜싱‧사격‧활쏘기‧격투종목), 물을 건너(수영‧조정) 성을 공격하거나 방어(육상필드경기)하며 전장에 유용한 말을 다루는 기술(승마‧마장마술‧폴로‧마상격구) 등은 전승을 보장하는 유용한 전투기술들이다. 전장이동기술과 사격 등 전투기술을 혼합한 종합경기(근대5종경기‧바이애슬런)와 ‘올림픽의 꽃’으로 불리는 마라톤(Marathon)과 수영‧사이클‧마라톤을 합친 철인 3종경기 등은 모두 장거리 경주종목들로 전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가운데 마라톤은 실제 있었던 전쟁에서 유래했다는 말을 한 번 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이 전쟁은 지중해의 패권 쟁탈을 위해 중동의 대제국 페르시아가 진출하면서 그리스와 벌인 세 번의 원정 가운데 두 번째 원정에서 비롯되었다.


※ 지금부터 소개할 전쟁 이야기는 역사적 기록에 의해 밝혀진 내용은 아니다.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역사기록은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가 쓴 몇 줄이 고작이다. 그나마도 그가 직접 현장을 본 것도 아니고, 전해오는 이야기와 각종 자료를 참고해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여기에 소개하는 내용은 독일의 군사학자로 프레데릭 대왕의 군사고문을 지낸 델부르크의 연구(그는 직접 현장을 방문해 당시 상황을 가정하고, 지형을 고려해 기동로, 병력배치 등을 재현함으로써 군사사<軍事史>적 가치를 높게 평가받은 바 있다.)를 기초로 작성한 것임을 밝혀둔다.

 

 

 

 ▶페르시아전쟁(BC492-479)
  페르시아와 그리스가 지중해의 패권
  쟁탈을 위해 벌인 전쟁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페르시아의 사신을
  살해하자 페르시아가 원정을 하게 됨.
▶전쟁경과
  -1차원정(BC492)
    : 폭풍우로 실패
  -2차원정(BC490)
    : 마라톤전투 아테네 승리
  - 3차원정(BC480∼479)
    : 테르모필레전투에서 지연(9일)
     → 살라미스 해전에서 아테네 승리
▶페르시아 원정 실패, 그리스 패권 장악
* 마라톤전투 : 마라톤의 유래
* 테르모필레전투 : 영화 ‘300’의 배경으로
  스파르타와 페르시아의 전투

페르시아전쟁(BC492-479)의 개관

 

 

마라톤의 역사적 배경 : 페르시아 전쟁
  마라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대 중동과 아시아 지역의 맹주였던 페르시아와 그리스 간에 벌어진 ‘페르시아 전쟁’에 대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 페르시아 전쟁은 페르시아와 그리스가 지중해의 패권을 두고 기원전 492년에서 479년까지 13년간 지속된 고대 세계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다. 전쟁의 발단은 중동지역에서 세력을 확장한 페르시아가 세계제국을 꿈꾸며 에게해를 넘어 지중해 일대의 그리스 도시국가를 통합하려는 의지를 펼치면서부터였다. 150여 도시국가로 구성된 그리스 지역의 대부분은 이미 페르시아 제국의 영향력에 복속되었고, 기원전 499년부터 493년까지 유일하게 이오니아가 페르시아에 반기를 들어 반란을 도모했지만 결국은 실패로 돌아갔다. 페르시아의 황제 다리우스(Darius) 1세는 반란의 책임을 물어 이오니아를 초토화했고, 계속해서 그리스 쪽으로 진격해 트라키아와 스키타이 그리고 마케도니아를 평정했다. 다리우스 대왕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여세를 몰아 지중해 전역을 자신의 발아래 두기 위해 페르시아의 무적 군대를 진군시켰다. 이제 남은 것은 이오니아 반란에 원정군을 보내며 끝까지 항전을 고집했던 에레트리아와 아테네 그리고 스파르타뿐이었다. 이들을 평정하기 위해 10년 넘게 지속된 페르시아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첫 원정은 기원전 492년 사위인 마르도니오스의 지휘 하에 원정군을 보냈지만 에게해를 건너면서 아토즈 부근에서 만난 폭풍우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회군했다. 이듬 해 다리우스는 다시 사절을 보내 복종에 대한 상징적 의미로 흙과 물을 보내라고 요구했는데 아테네는 사신들을 재판에 세워 사형에 처했고, 스파르타는 한술 더 떠서 우물에 빠뜨려 “거기서 실컷 땅과 물을 퍼 가라.”고 했다. 이에 격분한 다리우스는 에레트리아와 아테네를 우선 제압하기 위해 기병을 포함하여 대군을 이끌고 직접 2차 원정길에 나섰다.

그러나 마라톤(Marathon) 평원에 이르러 아테네의 장군이자 전략가인 밀티아데스(Miltiades)에게 예상치 못한 일격을 당하고는 또 다시 실패하고 만다. 결국 다리우스는 두 번의 원정에 실패하면서 지중해 진출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이어 황제에 오른 크세르크세스는 이집트를 비롯한 주변의 반란국들을 진압한 뒤, 선조들의 염원을 계승하기 위해 지중해로 대규모 원정에 나섰다.

 

페르시아에게는 세 번째가 되는 원정에서 크세르크세스는 막강 육군을 해상으로 투입하여 도시국가를 쓸어버리려는 계획을 갖고 출발했지만 육전이 시작됨과 동시에 테르모필레라는 협곡에서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Leonidas)가 이끄는 소수 정예군(고대 올림픽 종목들을 소개하면서 언급한 것처럼 종교제전에 대한 참가 규정으로 인해 당시 종교제전 중에 있었던 스파르타는 근위병 300명만 보낼 수 있었다.)을 비롯한 그리스 연합군을 만나면서 쉽게 극복하지 못하고 3일의 시간을 지체하더니 급기야는 아테네의 테미스토클레스 계략에 휘말려 협소한 살라미스의 해협에 1천 2백여 척의 주력을 투입하는 실책을 범함으로써 원정의 파국을 맞이했다.

영화 ‘300’의 배경이 되어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한 ‘테르모필레 전투’는 약 7천여 그리스 연합군이 20만명의 페르시아 대육군을 테르모필레라는 좁은 협곡(Hot Gate : 좁은 통로를 의미함)에 몰아넣어 그리스에 시간을 벌어 줌으로써 페르시아의 3차 원정이 파국을 맞게 되는 불씨를 제공했다. 마라톤 평원에서의 패배에 이어 테르모필레에서의 실수가 페르시아가 유럽 진출에 실패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기원전 5세기 중동을 거점으로 세계를 호령했던 페르시아 대제국은 3차 원정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지중해 진출의 숙원을 달성하지 못하고, 그리스에 이어 지중해의 맹주로 새롭게 등장한 신흥국 마케도니아의 도전을 받아 위대한 맞수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다 기원전 330년 알렉산드로스에게 무릎을 꿇고 결국 제국의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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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동일 (국방부)

 

               지난 연재에서 고대올림픽을 통해 오늘날까지 이어진 스포츠 종목의 대부분이 전쟁으로부터 유래하여 전쟁과 직접 또는 간접적인 관련성이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또한 달리기 종목을 비롯해 원반이나 창던지기 등 투척경기와 레슬링을 비롯한 격투경기 등 고대 올림픽 정식 종목들은 고대 그리스가 지중해의 패권을 두고 주변의 열강들과 벌인 전쟁에서 생존하고, 적을 무찌르기 위해서 필요했던 전투기술과 전투상황을 상정해 스포츠로 승화시켰음을 확인하였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와 페르시아 두 라이벌 간의 숙명적인 대결이자 고대 세계사 가운데 가장 역사적인 사건(전쟁)에서 유래하여 오늘날까지 세계적인 관심 속에 거행되고 있는 종목이 하나 있다. 그러나 이 종목은 고대 올림픽에서 정식으로 거행되었다는 기록은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올림픽 종목 가운데 가장 먼 거리를 달려야 하는 마라톤(Marathon)은 고대가 아니라 근대올림픽에 처음 소개된 후로 오늘날까지 존속되고 있고, 올림픽 정신을 상징하는 의미로 가장 마지막 순서에 거행되어 ‘올림픽의 꽃’이라 불린다. 이제부터 마라톤이라는 스포츠 종목에 얽힌 엄청난 역사적인 배경과 사건들, 그리고 마라톤 영웅들이 만든 성공과 실패의 이야기들을 살펴보고, 마라톤이 인류에게 미친 위대한 발자취와 그 의미를 되새겨 보려 한다.

 


1. 인간은 ‘타고 난 마라토너’다.
  인간은 외형의 신체기능만 본다면 다른 동물에 비해 나약하기 그지없다. 인간은 새처럼 날 수 없고, 사자처럼 강하지도 않으며 치타처럼 빠르지도 않고, 심지어 누처럼 다산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은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선택했고, 그에 걸 맞는 여러 능력을 허락했다. 동물과 다른 많은 능력 가운데 사고하는 능력과 함께 허락된 직립보행은 특별하고도 단연 으뜸이 된다. 특히, 두 발로 걸으면서 특화된 손과 발의 기능을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위대하다.


  엄지손가락을 구부려 다른 네 손가락에 맞대어 보면 그리 어렵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이런 신체능력은 인간을 비롯해 일부 침팬지와 같은 영장류에게만 허락된 특별한 능력이다. 물론 지상에서 생활하는 모든 동물의 앞발에는 쉽게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고, 하늘을 나는 새의 날개에도 심지어 박쥐에게서도 날개에 인간의 엄지와 같은 것이 있기는 하나 대부분 그 기능은 퇴화되었다. 독립된 엄지손가락은 구조상 다른 손가락과 대칭이 된다. 물론 손에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고된 훈련을 통해 손 이외의 신체를 단련해 보다 더욱 정교한 능력을 갖는 경우를 제외하면 일반인에게 엄지손가락이 없는 일상생활은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다. 엄지손가락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두꺼운 테이프로 붙여 놓고 실험을 해 보라. 아래 첫 번째 그림에서처럼 어떻게 커피 잔을 들고, 연필은 어떻게 잡을 것이며 뜨개질은 과연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농구, 탁구, 야구 등 손으로 하는 스포츠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이 실험을 해 본 사람이면 누구든 우리에게 엄지손가락이 없다면 지금 우리가 영위하고 있는 의식주 생활은 물론 모든 생활습관이 바뀌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 다른 동물에게서는 볼 수 없는 유일한 이 특징은 아래 두 번째 그림에서 보듯이 물체를 잡을 수 있게 하고, 무언가를 높은 곳에 매달 수 있게 해 준다. 나아가 물체를 잡은 손에 힘을 배가시켜 몇 배의 힘을 배가하고, 잡은 물체나 도구를 이용하여 정교하고도 정밀한 작업을 가능하게 해 주며 다양한 표현(제스쳐)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이는 앞서 언급한 다른 네 손가락과의 대칭적 신체구조상의 특징과 그 기능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Opposable Thumb’이라 부른다. 아마 인류가 창조한 모든 것이 엄지손가락에서 발현되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엄지손가락의 기능

 

과연 인간의 다리는 문명을 이끈 손에 견줄 만할까? 아래의 그림과 표에서 보는 것처럼 인간은 다른 동물과 같은 조건에서 경쟁한다면 빨리 달릴 수 없다. 인간 중에서 가장 빨라 번개로 불리는 사나이 ‘우사인 볼트(100미터 세계기록 보유자)’의 기록(9.58초)도 치타(3.3초)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동물들에 비교도 되지 않으며 심지어 곰(6.4초), 기린(7.1초), 하마(8.0초)나 코끼리(9.2초)처럼 우둔해 보이는 덩치 큰 동물에 비해서도 결코 빠르지 않다. 달리기 뿐 아니다. 인간의 멀리뛰기 세계 기록(8.95미터)은 임팔라(12미터)나 눈표범(15미터)에 미치지 못하고, 높이뛰기는 2미터의 신장에도 불구하고 고작 2.5미터에 불과하며 장대를 쓰더라도 6미터 정도인데 이는 고작 1미터 남짓한 신장을 가진 클립스프링거가 도약하는 높이(8미터)에는 미치지 못한다.

 

물론 모든 동물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인간은 비슷한 체구의 다른 네발 동물에 비해 약한 편인데 여기에는 신체구조상 한계와 비밀이 숨겨져 있다. 대부분 네 발로 달리는 동물들은 두 다리(앞발)로는 체중을 분산하고, 나머지 두 다리(뒷발)로는 추진력을 내며 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두 발만으로 달리는 것은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또한 다리 근육은 통상 속근(速筋, fast twitch)과 지근(持筋, slow twitch)으로 구분하는데 속근은 빨리 수축해 순간적인 파워와 속도를 발휘하지만 쉽게 피로하고 지치는데 반해, 지근은 수축이 느려 힘이나 속도는 떨어지지만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동물들에게는 주로 속근이 발달해 있어 속근과 지근이 절반씩 구성된 인간은 순간적이고 폭발적인 힘과 스피드를 발휘하는데 불리한 것이다.

 

 

인간과 동물의 100미터 달리기

 

 그러면 장거리는 어떨까? 늑대나 리카온(아프리카의 개) 등 몇 몇 동물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포식자들은 오래 달리면 급상승 하는 체온 때문에 5분에서 길어봐야 10분 이상을 달릴 수 없다. 그러나 동물들의 이런 신체적 특징은 대부분의 포식자들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때문에 가젤을 사냥하면 10번 중 7번은 성공한다는 치타도 200미터 이내에서 결판을 지어야 하고, 덩치 큰 사자에게도 뛸 수 있는 거리는 고작해야 300미터 이내가 된다. 이 한계를 넘기게 되면 제아무리 동물의 왕 사자도 위험에 처하게 되며 특히, 치타는 생명을 잃는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반면, 인간은 네 발에서 두 발로 진화하면서 다른 네 발 동물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튼튼한 아킬레스건과 강한 심장 그리고 정교한 체온조절 능력을 갖게 되었다. 강한 심장과 빠른 신진대사로 적정 체온을 유지하면서도 근육의 피로도를 줄여 비교적 빠른 속도로 장거리를 이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남아메리카에 사는 원주민 ‘타라우마라(Taraumara)’족[각주:1]은 변변한 운동화도 없이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허접하기 짝이 없는 샌달(sandal)만 신고도 150km의 거리를 달려 사슴을 사냥한다고 한다. 지금처럼 뛸 때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기능성 운동화는 찾아 볼 수도 없다. 아래 사진처럼 신발이라 해야 동물 가죽 한 장이 전부인지라 거의 맨발로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바위를 오르내리며 이틀 동안 사슴을 추적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냥이 개시된 초기에는 쉽게 도망가던 사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양상은 달라진다. 지루한 도망과 추적이 시작된 지 이틀째, 막다른 길에 몰린 사슴은 더 이상 달리기를 포기하고 제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이미 사슴의 발은 형편없이 찢겨지고 너덜거렸지만 타라우마라족 사냥꾼의 발은 멀쩡하기만 하다. 마지막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는 사슴의 심장은 무리한 나머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몸은 이틀 동안 쌓인 피로를 풀지 못한 채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한다. 그러나 인간 사냥꾼의 몸은 피로로 인해 무거워보였지만 약간의 휴식과 음식만 있다면 달리기를 이어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 이들 원주민에게는 그들의 언어로 ‘라라무리(raramuri)’ 즉, ‘달리는 사람’이라는 별명이 있기도 하다. 분명 인간의 장거리 달리기 능력은 다른 동물들의 그것에 비해 탁월하다.

 

 

가죽 샌달을 신고 뛰는 타라우마라(Taraumara)

 

 

신은 인간에게 ‘사고하는 능력’과 ‘도구를 사용하는 능력’ 그리고 ‘오래 달리는 능력’을 허락하였다. 네 발로 빠른 달리기를 포기하고 직립보행을 하며 정교한 손과 오래 달릴 수 있는 능력(튼튼한 다리와 신체구조)을 허락받았다. 네 발에서 두 발로 서고, 걸으며 달리는 진화과정을 통해 놀라운 질주본능과 잠재력을 갖게 된 것이다.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며 인간은 달린다.” 체코의 올림픽 영웅이며 ‘인간 기관차’로 불리는 자토펙의 말이다. 지구상에 태어난 인간은 먹기 위해 달렸고, 동시에 먹히지 않기 위해 달렸다. 그리고 사랑을 얻고, 보다 나은 인생을 위해 달렸으며 동시에 나의 생존을 위협하는 적을 무찌르고, 그 승전보를 알리기 위해 달려 왔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타고 난 장거리 달리기 선수로 우리 모두는 마라토너(Marathoner)인 셈이다. 그리하여 필자는 원주민 표현을 빌어 달리는 인간 ‘호모 라라무리(homo raramuri)’라 부르고 싶다.

 

 

 

ⓒ 스포츠둥지

 

 

  1. 타라우마라족의 사례는 크리스토퍼 맥두걸(Christopher Mcdougall)이 쓴 2009년의 베스트셀러 ‘Born to Run’에 실린 내용을 재작성 하였하였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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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종세(용인대학교 객원교수)

 

 

 

샛별 성지훈(남자), 김성은(여자) 두각
2013 서울국제대회에서 개인기록 크게 단축

 

한국마라톤에도 ‘봄’은 오는가.
 기록 기근에 허덕이던 한국마라톤이 모처럼 기지개를 켰다. 그 무대는 지난 3월17일 서울 광화문~잠실 주경기장 간 42.195km 코스에서 열린 2013년 서울국제마라톤 겸 제84회 동아마라톤대회. 한국마라톤의 기대주 성지훈(22 ․ 한국체대)과 김성은(24 ․ 삼성전자)이 각각 2시간12분53초와 2시간27분20초로 자신의 최고기록을 경신하면서 국내 남녀부 1위에 올랐다. 특히 이들은 자신의 개인기록을 앞당기며 우승해 더욱 돋보였다.

성지훈은 2011년 자신의 첫 풀코스(서울국제마라톤) 도전에서 세운 최고기록 2시간18분27초를 5분34초나 단축했고 김성은 역시 2010년 서울국제마라톤에서 수립한 2시간29분27초의 개인기록을 2분7초 경신했다. 국내 남자부 2위를 한 김영진(30 ․ 삼성전자)도 2분58초 앞당긴 2시간13분49초, 남자부 3위인 신예 오진욱(21 ․ 한국체대) 역시 6분32초를 단축한 2시간14분9초를 기록했다. 국내 여자부 2위를 마크한 김선애(35 ․ 합천군청) 또한 2시간36분41초로 자신의 기록을 1분4초 줄였다.

 

 

2013 서울국제마라톤 국내 남자부 우승을 차지한 성지훈(한국체대). 그는 자신의 최고기록을 5분34초나 앞당겨 한국마라톤 기대주로 떠올랐다. <스포츠동아 제공>

 

 

 성지훈, 사실상 국내 1인자…김영진 오진욱 김선애도 기록 경신 성공 
 성지훈의 이번 대회 기록은 지난해 서울국제마라톤에서 정진혁(23 ․ 한전 ․ 당시 건국대)이 수립한 2시간11분48초(2012년 국내 랭킹 1위)에 1분5초 뒤진다. 하지만 정진혁은 최근까지 족저근막염 등 부상으로 정상적인 컨디션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2010년 광저우 아시아 경기대회 남자마라톤 우승자인 지영준(32 ․ 코오롱)은 현역선수 가운데 최고인 2시간8분30초의 기록을 갖고 있으나 부상 등을 이유로 2011년부터 3년째 마라톤대회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사실상 국내 제일의 현역마라토너로 성지훈을 꼽는 이유다. 여기에 성지훈의 1년 후배로 이번 대회에서 자신의 기록을 무려 6분 이상 단축하며 3위에 오른 오진욱도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보였다.

 

 

2013 서울국제마라톤 겸 제84회 동아마라톤 국내 남자부 1위를 차지한 성지훈(한국체대·왼쪽)과 지도자상을 받은 정남균 한국체대 코치. 정코치는 2000년 이 대회 국제 남자부 우승 주역이다.<동아일보 제공>

 

 ‘용장 밑에 약졸 없다’ 2000년 우승자 정남균코치, 성지훈 오진욱 지도 
 이들은 모두 2000년 서울국제마라톤에서 1997년과 1999년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인 스페인의 아벨 안톤 등을 꺾고 우승한 한국체대 정남균(35)코치의 지도를 받고 있다. 2008년부터 한국체대 선수들을 지도하고있는 정코치는 “성지훈, 오진욱 두 선수 모두 부상이 없고 뛰어난 지구력이 강점이다. 스피드만 보완하면 2시간 10분 벽도 돌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성지훈은 5,000m 14분34초87, 10,000m 30분38초24가 최고기록으로 스피드를 보강해야한다는 지적을 받고있다. 최경렬 대한육상경기연맹 전무와 김복주 한국체대 교수는 “이들 선수가 내년 3월 서울국제마라톤에서 2시간 8, 9분대를 뛰어낸다면 9월의 인천아시아경기에서 우승도 바라볼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1958년 도쿄(이창훈) 1982년 뉴델리(김양곤) 1990년 베이징(김원탁) 1994년 히로시마(황영조) 1998년 방콕(이봉주) 2002년 부산(이봉주) 2010년 광저우(지영준) 등 7차례 아시아경기 남자마라톤에서 우승했다.       

 

 

2013 서울국제마라톤 국내 여자부 1위를 차지한 김성은(삼성전자). 그는 2시간27분20초를 기록, 1997년 권은주가 수립한 한국기록 2시간26분12초에 1분8초차로 다가섰다.<스포츠동아 제공>

 

 

 국내 여자부 우승 김성은, 16년 묵은 한국기록 경신 가능성 가장 높아
 지난해 런던올림픽에서 2시간46분38초의 부진한 기록으로 107명의 완주자 가운데 96위에 그쳤던 김성은. 그가 이번 대회에서 자신의 기록을 2분 이상 단축하면서 국내 여자부 2연패(국제부문 4위)에 성공했다. 김성은이 이번 대회에서 기록한 2시간27분20초는 1997년 권은주가 수립한 한국기록(2시간26분12초)과는 불과 1분8초 차. 거리로는 300여m다. 정윤희(30 ․ K-water) 임경희(31 ․ SH공사) 이선영(29 ․ SH공사) 최경희(32 ․ 경기도청)등 선배들과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16년 묵은 한국여자기록의 경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선수다. 김성은은 지난해 12월 새로 부임한 황규훈 감독의 지도아래 제주에서 70일간 하루 3시간씩의 강훈을 소화해내면서 기량이 크게 늘었다는 평가다. “종전에는 25km지점부터 힘들었는데 훈련량을 늘린 결과 이번 대회에서는 35km지점에서도 견딜만했다.”는 것이 김성은의 말이다. 대한육상경기연맹 부회장도 맡고있는 황규훈 감독은 “현재 한국 남녀선수의 기록으로 미루어볼 때 13년째 깨지지 않고 있는 이봉주의 남자 한국기록(2시간7분20초)보다는 권은주의 여자기록 경신 가능성이 훨씬 높다.”면서 그 중심에 김성은이 있음을 내비쳤다.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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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개방형 포털 "줌(zum.com)" 입니다.

    본 포스트가 zum.com의 스포츠허브 스포츠종합 영역에 03월 27일 16시부터 소개되어 알려 드립니다.

    운영 정책 상 해당 포스트의 노출 시간이 단축되거나 연장될 수 있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만약, 노출을 원하지 않으시거나, 저작권 문제 등이 우려되신다면 아래 고객센터로 문의 바랍니다.

       zum 고객센터 - http://help.zum.com/inquiry/hub_zum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글/송형석(계명대학교 교수)

 

             근대 이후 대두되기 시작한 서구의 합리주의가 인간의 삶을 전면적으로 지배하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욕구의 직접적 충족을 추구하는 감성의 기능은 끊임없이 축소되어 왔다. 특히 18세기 이후 서구 사회에 만연된 고전적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는 청교도적 금욕주의를 강조함으로써 인간의 삶에서 감성적이고, 쾌락적인 요소를 철저히 배격하게 된다. 산업이 고도화된 사회일수록 이러한 경향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러나 최근 들어 본능적 욕구를 자유롭게 발산하려는 시도들이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형식으로부터의 탈피, 구속으로부터의 해방, 억압으로부터 자유를 추구하는 본능적 욕구의 노력은 현대 산업사회에서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과열된 소비경향에서, 바뀌고 있는 결혼풍속도에서, 성의 상품화 경향에서, 여가 지향적 삶의 양식 속에서 이러한 경향이 목격되고 있다. 사회 자체가 금욕, 절제, 생산을 미덕으로 여기던 고전적 자본주의체제에서 쾌락, 소비, 레저를 즐기는 후기 자본주의체제로 현저하게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세태를 반영하듯 잘 일하기 위해 노는 것이 아니라 잘 놀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우리는 지성지수보다 감성지수를, 고통스러운 것보다는 쾌락적인 것을, 싫은 것보다는 좋은 것을, 안전한 생활보다는 모험을, 욕구를 참기보다는 분출하는 것을 선호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문화사회학자 슐체(Schulze)는 이러한 경향, 이와 같은 시대적 흐름을 체험사회(Erlebnisgesellschaft)라고 표현하였다.

 


체험사회에서는 육체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한다. 육체는 우리가 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가장 기본적인 지각기관이자 감각기관으로서 모든 체험의 필수적 전제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체험사회에서는 스포츠, 성, 건강 등과 같이 육체를 구성적 조건으로 하는 분야가 매우 중요시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체험사회에서는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하는데 그 이유는 일상생활에서 육체와 육체활동이 점차 의미를 잃어 가면서 다양한 육체활동으로 이루어진 스포츠는 특별한 체험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큰 관심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슐체의 지적처럼 현대사회에서 체험은 점차 높은 가치를 획득하고 있다.

 

스포츠 역시 이러한 경향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 현대스포츠에서 체험, 즐거움, 놀이, 모험 등이 점차 강조되고 있는 경향은 이러한 사회 전반적인 경향의 한 단면이다. 스카이다이빙, 패러글라이딩, 번지점프, 리프팅, 스킨스쿠버, 카빙스키, 스노보드, 암벽등반, 마라톤 등은 추구하는 가치가 지금(now), 여기(here)에서의 특별한 체험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안전한 미래보다는 바로 이 순간을 체험하고 즐기자는 것이 이러한 스포츠의 최고 목적이다. 체내에 축적된 모든 글리코겐을 소진시킴으로써 전혀 생소한 몸의 상태를 체험하게끔 해주는 마라톤을 비롯해서 추락의 공포와 속도감을 동시에 맛볼 수 있도록 해주는 번지점프, 위험스런 장애를 극복하며 성취감을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리프팅, 공중을 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패러글라딩, 바다 속의 새로운 환경을 접할 수 있는 스킨스쿠버, 모험심을 자극하는 암벽등반 등이 이러한 스포츠의 몇 가지 예이다.

 

사회학자 리트너(V. Rittner)는 이런 종류의 스포츠를 체험스포츠라고 명명했다. 체험스포츠는 전통적인 스포츠와 비교할 때 동기와 수행방식에 있어서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전통적인 스포츠가 욕구의 지연된 만족이라는 금욕주의적 태도를 통해 특징 지워질 수 있다면, 체험스포츠는 욕구의 즉각적인 만족이라는 쾌락주의적 태도를 통해 특징 지워질 수 있다. 리트너는 모험을 목적으로 하는 스포츠와 한계 체험을 목적으로 하는 스포츠, 재미와 즐거움을 목적으로 하는 스포츠를 체험스포츠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다. 그에 따르면 체험스포츠에는 체험사회의 근본 원리 세 가지가 내재되어 있다. 그 세 가지 원리란 첫째, 경쟁, 성취 등과 같은 전통적 스포츠규범의 퇴조, 둘째, 스포츠참여자가 갖는 개별적 동기의 전문화 및 자명화, 셋째, 자기 체험을 강화하려는 경향, 즉 오랜 시간이 걸리는 스포츠사회화 또는 조직사회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스포츠의 효과를 직접적으로 향유하려는 경향 등이다. 한 마디로 체험스포츠에서 관건은 재미있는 체험을 쉽고, 직접적으로 맛보는 것이다. 전통적인 스키를 대체하고 있는 카빙 스키나 점차 면적이 넓어지고 있는 테니스 라켓, 또는 번지점프, 패러글라이딩, 급류타기 등과 같이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스포츠는 이러한 경향을 잘 대변해 준다. 사람들은 더 이상 힘들고, 지루하며,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하는 스포츠사회화과정을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초보자수준에서도 쉽게 성공감과 즐거움을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렇게 볼 때 체험스포츠는 욕구의 억압보다는 직접적 충족을 통해 특징 지워질 수 있는 것이다.

 

 

체험스포츠는 늘 “뻔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여러 가지 “색다름”을 체험하게 함으로써 삶에 활력소로 작용할 수 있고, 입시위주의 생활에 빠져 있는 청소년들에게 일상의 지루함으로부터 탈피하여 긴장감을 맛보게 해 줄 수 있으며, 그들에게 다양한 모험 기회를 제공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교육적으로도 가치 있는 활동이다. 이렇게 볼 때 현재 우리 사회에서 점차 그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체험스포츠는 스포츠정책의 차원에서 더욱 권장되고 보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체험스포츠가 가진 역기능적 측면 역시 만만치 않다. 체험이란 철저하게 현재 지향적 개념이기 때문에 체험에 몰입할 경우에 극기, 인내, 근검, 절약 등과 같은 미래 지향적 삶의 태도가 희석될 가능성이 높다.

 

틸레(J. Thiele)는 체험추구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현재 지향적 삶의 태도는 두 가지 대가를 요구한다고 말한다. 물질적 대가와 정신적 대가가 그것이다. 물질적 대가란 체험을 위해 적지 않은 돈이 지불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며, 정신적 대가란 체험 후에 어김없이 찾아오는 정신적 공황 상태를 의미한다. 특히 끊임없이 체험만을 추구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늘 색다르고 강력한 체험을 찾아 나서며, 체험공백기에는 참기 어려운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 체험이 청소년의 교육과 기성세대의 삶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기 위해서는 반성의 과정을 거쳐 체험 주체의 삶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만 한다. 삶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지 못한 체험은 무의미할 뿐이다.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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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종세(용인대학교 객원교수)

 

 

 

조중동,국제마라톤 기록경쟁도 뜨겁다
선두 동아에 중앙, 조선 거센 도전…근소한 격차 뒤집힐 수도

 

국내 신문시장의 ‘빅3’ 조 중 동 3대 일간지가 펼치는 자존심 대결.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가 개최하는 국제마라톤대회의 기록경쟁이 뜨겁다. 동아마라톤으로 불리는 서울국제마라톤이 선두자리를 지키고 있으나 중앙일보 주최 중앙서울마라톤과 조선일보 춘천국제마라톤의 도전 또한 만만치 않다. 이들 3개 신문이 아프리카 흑인 선수들을 앞세워 벌이는 마라톤 선두다툼이 침체 상태의 한국마라톤을 되살리는 중흥의 밑거름으로 작용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케냐의 에루페(오른쪽)가 쾀바이(케냐) ⓒ동아일보

 

중앙마라톤, 동아에 13초 뒤져…호시 탐탐 기록 추월 노려
 2012년 국내개최 국제마라톤대회는 11월4일 중앙서울마라톤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그런데 마지막 대회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케냐의 제임스 킵상 쾀바이(29)가 2시간05분50초의 기록으로 우승했기 때문이다. 그는 2009년 로테르담 마라톤에서 2시간04분27초의 좋은 기록으로 2위를 했으나 작년 중앙서울마라톤에서는 2시간08분15초의 부진한 기록으로 우승, 주위의 실망을 샀다. 하지만 지난 3월18일 동아일보의 서울국제마라톤에서 윌슨 로야니에 에루페(24 ․ 케냐)에 이어 2시간06분03초로 2위에 올라 가능성을 보였고 이번 중앙서울마라톤에서 2시간05분50초의 기록을 세움으로써 대회의 위상을 크게 높였다. 이로써 중앙서울마라톤은 역대 세계 9위의 우승 기록을 보유한 서울국제마라톤의 대회기록(2시간05분37초)에 13초차로 따라 붙어 국내 1위 자리도 넘볼 수 있게 됐다. 

1999년 하프코스대회로 출범, 2002년 풀코스대회로 변신한 중앙서울마라톤은 2시간08분13초(2006년 ․ 제이슨 음보테 ․ 케냐)가 대회기록으로, 매년 2시간8분대나 9분대를 기록했을 뿐 한번도 2시간6분대나 7분대에 진입하지 못했었다. 특히 2010년에는 조선일보 춘천국제마라톤이 2시간07분54초(벤자민 콜룸 ․ 케냐)의 기록으로 중앙서울마라톤을 밀어내고 서울국제마라톤에 이어 국내개최 마라톤 대회기록 2위로 올라섰다. 그러나 이번 쾀바이가 대회기록을 2분23초나 앞당김으로써 중앙서울마라톤은 단숨에 국내개최 대회기록 2위 자리를 되찾게 됐다.

 

조선마라톤도 동아에 86초차 접근…언제든 선두 진입 가능
 그동안 2시간9분대에서 2시간19분대를 오가며 중앙서울마라톤의 기록에도 미치지 못했던 조선일보 춘천국제마라톤도 2010년 코스 개선 등을 통해 2시간7분대 진입에 성공한 뒤 작년에는 2시간07분03초(스텐레이 비웟 ․ 케냐)의 우승 기록을 작성, 2시간6분대 진입을 눈앞에 두기도 했다. 이 기록은 당시 국내대회 최고기록인 서울국제마라톤의 2시간06분49초(2010년 ․ 슬리베스터 테이멧 ․ 케냐)에 14초 뒤진 것. 이에 따라 올해 2시간5, 6분대 진입을 노린 조선일보는 지난4월 대구국제마라톤에서 2시간07분57초로 우승했던 케냐의 데이비드 켐보이 키엥(29)을 초청, 기록 경신에 도전했다.

하지만 더운 날씨 등으로 그의 우승 기록은 2시간10분05초에 그치고 말았다. 현재 조선일보 춘천국제마라톤 대회기록은 서울국제마라톤 대회기록에 1분26초 뒤지고 있다. 하지만 올해 중앙서울마라톤에서 대회기록을 2분23초 단축한 것을 감안하면 조선일보 춘천국제마라톤도 국내개최 마라톤대회 최고기록 경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평가다.

 

동아는 국내대회 최고기록 계속 경신…2시간4분대 진입 계획
 올해 83회 대회를 치른 동아일보의 서울국제마라톤은 1994년 포르투갈 마누엘 마티아스가 2시간8분대에 진입한 뒤 2004년 2시간7분대(거트 타이스 ․ 남아공), 2010년 2시간6분대(테이멧 ․ 케냐), 2012년 2시간5분대(에루페 ․ 케냐)를 기록, 국내개최 국제마라톤의 최고기록을 계속 경신해 나가고 있다. 서울국제마라톤은 여자부도 2시간19분51초(2006년 ․ 저우춘슈 ․ 중국)의 국내대회 최고기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서울국제마라톤도 중앙서울마라톤과 조선일보 춘천국제마라톤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어 언제 국내대회 기록 1위의 자리를 내줄지 모르는 상황. 올해 2분23초를 단축한 중앙서울마라톤에는 13초, 작년 2시간07분03초를 기록한 조선일보 춘천국제마라톤에는 1분26초 앞서있지만 1, 2분의 격차는 쉽게 뒤집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서울국제마라톤은 내년 대회에서 2시간4분대 진입을 전제로 다양한 전략을 마련, 중앙과 조선의 도전에 대비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2007년 창설한 경주국제마라톤이 올해 2시간06분46초의 좋은 기록을 내 조선일보, 중앙일보와의 기록경쟁에서 다소 유리한 입장.

 

 

케냐 3인방, 내년 조중동 대회 참가 전망…대리전 양상 띨 듯
 올해 동아일보는 윌슨 에루페를 서울국제마라톤과 경주국제마라톤에 내세워 2시간5, 6분대의 기록을 수확했고 중앙일보는 제임스 쾀바이를 중앙서울마라톤에 초청, 2시간5분대의 기록을 얻어냈다. 하지만 조선일보의 데이비드 키엥은 2시간10분을 넘겨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들 케냐 3인방은 내년에도 조 중 동 3개 일간지의 마라톤대회에 참가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들의 치열한 기록경쟁이 한국마라톤 중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다. 우리나라 육상계는 올 남자 최고기록이 2시간11분48초(서울국제마라톤 ․ 정진혁 ․ 건국대)에 머문 한국마라톤이 2시간5, 6분대의 흑인 선수들과의 경쟁을 통해 재기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자사 종편으로 마라톤 중계 움직임…TV조선 올 대회 생방 성공
 한편 작년 12월 종합편성 채널을 개국했던 조 중 동 3사는 그동안 KBS나 MBC에 의존해오던 중계방송을 자사 종편으로 대체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조선일보의 TV조선은 지난10월 춘천국제마라톤을 성공적으로 생중계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러나 동아일보의 채널A와 중앙일보의 JTBC가 내년부터 자사 마라톤대회를 생중계할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KBS는 11월4일 중앙서울마라톤을, 이에 앞서 MBC는 3월의 서울국제마라톤과 10월의 경주국제마라톤을 각각 생중계했었다. 

 

2012년 국내개최 국제마라톤 우승 기록

날 짜

대회 이름

우승자

기 록

0318

서울 국제

윌슨 로야니에 에루페(케냐)

2시간0537

1104

중앙 서울

제임스 킵상 쾀바이(케냐)

2시간0550

1021

동아 경주

윌슨 로야니에 에루페(케냐)

2시간0646

0408

대구 국제

데이비드 켐보이 키엥(케냐)

2시간0757

1028

조선 춘천

데이비드 켐보이 키엥(케냐)

2시간1005

 

동아 조선 중앙 마라톤 연도별 우승 기록

<2003년~2012년>

연도

동 아

조 선

중 앙

2012

윌슨 에루페(케냐)

2:05:37

데이비드 켐보이 키엥(케냐)

2:10:05

제임스 킵상 쾀봐이(케냐)

2:05:50

2011

압델라힘 굼리(모로코)

2:09:11

스탠레이 키플레팅 비웟(케냐)

2:07:03

제임스 킵상 쾀바이(케냐)

2:08:50

2010

슬리베스터 테이멧(케냐)

2:06:49

벤자민 콜룸(케냐)

2:07:54

데이빗 켐보이 키엥(케냐)

2:08:15

2009

모세스 아루세이(케냐)

2:07:54

무르게타 와미(에티오피아)

2:09:50

프란시스 라라발(케냐)

2:09:00

2008

새미 코리르(케냐)

2:07:32

조르헤 키마니(케냐)

2:19:01

솔로몬 몰라(에티오피아)

2:08:46

2007

이봉주(한국)

2:08:04

빅토르 망구쇼(케냐)

2:14:01

조슈아 첼랑가(케냐)

2:08:14

2006

제이슨 음보테(케냐)

2:11:41

엘리자 무타이(케냐)

2:13:46

제이슨 음보테(케냐)

2:08:13

2005

윌리엄 킵상(케냐)

2:08:53

엘리자 무타이(케냐)

2:09:27

윌리엄 키플라가트(케냐)

2:08:27

2004

거트 타이스(남아공)

2:07:06

엘리자 무타이(케냐)

2:14:31

로스쿠토브(에스토니아)

2:09:34

2003

거트 타이스(남아공)

2:08:42

엘리자 무타이(케냐)

2:13:54

로스쿠토브(에스토니아)

2:09:15

 

 

지난3월 서울국제마라톤에서 2시간05분37초의 대회 최고기록으로 우승한 케냐의 에루페(오른쪽)가 쾀바이(케냐)와 선두를 다투고 있다. 쾀바이는 2시간06분03초로 2위에 머물렀으나 11월 중앙서울마라톤에서는 2시간05분50초의 기록으로 우승했다. 에루페는 10월 동아일보 경주국제마라톤에서도 2시간06분46초로 정상에 올랐다.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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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학수(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 연구소장)

 

 

              지난 11월 4일 오전. 뉴욕의 심장 센트럴파크에는 수천명의 마라톤 애호가들이 울긋불긋한 조깅복 차림으로 모여들었다. 청명한 가을 날씨속에 마라톤을 하기 위해서였다. 일부는 이날 경기를 ‘음지의 레이스(shadow race)' 또는 ‘지하의 마라톤(underground  marathon)'이라고 불렀다. 많은 이들은 이 대회를 어떻게 불러야할지 몰랐다. 공식 대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가 있고 세계적으로도 가장 큰 규모인 뉴욕 마라톤대회가 대회 직전 전격 취소됐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마라토너들은 아쉬움속에 ’그들만의 마라톤‘을 뛰었다. 뉴욕 마라톤 대회의 시설들은 철거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센트럴파크 서쪽에 설치된 파란색과 오렌지색의 골인라인에는 간이 화장실과 오렌지색 매대, 기자석 등이 있었다. 비록 대회는 취소됐지만 조직위 사람들은 경찰에게 마라톤을 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했으며, 경찰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날 센트럴파크 공원 주위를 뛴 마라토너들은 진짜 대회에 참가한 기분으로  손뼉을 치고 환호하며 즐거워하는 모습들이었다. ‘아버지를 사랑합니다’라고 쓴 플래카드를 가슴에 단 어린이, 미리 제작된 뉴욕마라톤 참가 셔츠를 입고 걷는 여성들도 있었다. 골인지점 앞에서 많은 참가자들은 팔을 번쩍 들어 완주의 기쁨을 나타냈으며 카메라폰과 비디오폰으로 연신 찍기에 바빴다. 비록 정식 대회는 아니었지만 마라톤을 하면서 모두들 흥분하고 행복해하는 모습들이었다.

 

뉴욕 마라톤대회 취소 전후의 과정은 스포츠 PR의 위기관리 사례를 잘 보여준 것으로 연구를 해볼만하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그 위기를 극복하고 효과적으로 상황을 반전시키는 것이 스포츠 PR의 위기관리법이다. 뉴욕 마라톤대회는 갑작스런 외부환경의 변화로 인해 대회 개최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했다. 뉴욕을 비롯한 미국 동부지역을 강타한 허리케인 샌디로 인해 엄청난 피해가 발생하면서 ‘하느냐, 마느냐’로 논란을 빚게됐다. 샌디는 뉴욕 주위의 도시를 일순간에 황폐화시켰으며 도시 교통체계를 마비시켰다. 뉴욕시 사망자만 40명이 넘고 수십만 가구가 정전상태에서 생활에 큰 불편을 겪었다.


뉴욕시와 대회조직위는 샌디 엄습직후 고통을 겪은 이재민들에게 통합된 힘을 보여주기 위해 정상적으로 대회를 개최한다는 입장이었다. 마이클 블롬버그 뉴욕 시장은 샌디 피해직후 어려운 시기에 희망을 주기위해 노력하는 시의 능력을 통합의 상징으로 보여주자고 밝혔다. 1970년이후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는 뉴욕 마라톤대회는 2001년 9‧ 11 테러 때도 열렸을 정도였으니 대회 개최 의지의 열정은 남다를 수 밖에 없었다. 이번 뉴욕 마라톤 대회의 경우 4만7천여명의 참가선수, 8천여명의 자원봉사자, 1천명의 대회 관계자와 2백만명의 TV 시청자들은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줄 수 있는 호재였다. 대회 참가자들이 자선기금을 마련해 경제적으로 곤경에 빠진 이재민을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다는게 대회 개최 찬성측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대회 개최 반대의 주장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뉴욕 시민들과 마라톤 구간에서 피해를 당해 깊은 시름에 빠진 사람들을 맞닥트려야 하는 많은 대회 참가자들은 대회 개최를 반대했다. 반대자들은 파괴된 도시 기능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투입되어야 할 경찰력과 소방인력이 대회 개최에 동원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발끈했다.


블롬버그 시장 등 뉴욕시관계자와 마라톤 조직위 관계자들은 여론이 악화되자 대회 이틀전인 2일 대회 취소를 전격 결정했다. 뉴욕 타임스 등은 많은 참가자들이 대회 취소의 충격속에 이를 일찍 결정하지 않은 뉴욕시를 성토하고 있다며 시리즈 기사를 내보냈다. 뉴욕 마라톤 취소로 충격에 빠진 것은 이미 뉴욕에 도착한 4만명의 참가자들이었다. 거액의 돈을 들여 미 전역과 세계 각국에서 날아 온 참가자들은 크게 낙담하는 표정들이었다. 뉴욕시와 대회 조직위측은 시와 대회의 이미지를 관리하는데에만 신경을 씀으로해서 실책을 하게 됐다. 여론의 향방을 사전에 미리 충분히 읽지 못했고, 대회 주최측의 입장에서만 판단했던 것이다. 좀 더 종합적으로, 거시적으로 대회 개최 문제를 검토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뉴욕 마라톤 대회 취소 과정을 지켜보면서 2001년  9‧ 11 테러 여파로 취소됐던 LPGA CJ 나인브릿지 골프대회가 떠올랐다. 당시 체육부장으로 근무하던 스포츠 투데이가 LPGA로부터 5년간 운영권을 따내 한국 제주도에서 첫 대회를 준비중이던 때 9‧ 11 사태가 터졌다. 이때 미 LPGA는 선수들의 안전을 이유로 대회 취소를 일방 통보했다. 그동안 많은 노력을 해왔던 대회 주최측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느닷없이 일어난 일에 당황했다. 부랴 부랴 신문에 대회 취소 사실을 보도하고 관련 스폰서측에 정중히 양해를 구해야 했다.


이처럼 정해진 대회가 자연 재해 및 큰 사건 등으로 큰 위기를 맞는 경우가 스포츠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이럴 때 적극적인 PR 활동으로 일방적으로 흘러가는 여론을 막아야한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홍보활동으로 조속한 사태해결에 신경을 써 관련된 이들로부터 신뢰성 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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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종세(스포츠동아 이사)

 

 

 

 

대한육상경기연맹, 케냐 윌슨 에루페 귀화 추진 움직임
빠르면 2014 인천아시아경기부터 참가 가능성

 

           까만 피부의 아프리카 선수가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이나 아시아 경기의 마라톤 레이스를 펼친다면….

우리나라에도 흑인 국가대표 마라토너가 탄생할 수 있을까. 침체에 침체를 거듭하고 있는 한국 마라톤이 케냐선수를 귀화시켜 국가대표로 기용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내 마라톤 활성화를 위한 고육지책의 일환이다. 이미 카타르 바레인 등에서는 귀화한 케냐나 모로코 선수들이 아시아경기대회 육상에서 금메달을 따내고 있고 다민족으로 구성된 미국은 물론 독일 일본의 경우도 많은 종목에서 귀화선수들이 국가대표로 활약하고 있다. 빠르면 2014년 인천아시아 경기대회, 늦어도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태극마크를 달고 레이스를 펼칠 마라토너. 그는 바로 올 서울국제마라톤과 경주국제마라톤에서 거푸 우승한 케냐의 윌슨 로야나에 에루페(24)다.

 

지난 10월21일 2012 경주국제마라톤에서 1위로 골인하는 윌슨 로야나에 에루페 ⓒ동아일보

 

 

올 서울 ․ 경주국제마라톤 우승한 24세의 신예…2시간05분37초 최고기록 보유 
에루페 그는 누구인가

 그는 1988년생으로 1m75에 61kg의 체격. 작년 봄 케냐 뭄바사 마라톤대회에 데뷔, 2시간12분47초의 기록으로 1위에 오른 이후 4번의 풀코스 대회를 잇달아 석권한 무쇠다리다. 작년 10월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타고 우리나라 경주국제마라톤에 나선 에루페는  난코스의 어려움에도 막판 스퍼트로 2시간09분23초를 기록, 첫 해외 원정을 우승으로 장식했다.


그로부터 5개월. 그는 올 3월18일 열린 서울국제마라톤에서 한국 마라톤 대회사상 가장 좋은 기록인 2시간05분37초의 대기록을 수립했다. 이 기록은 11월1일 현재 역대 세계51위(이봉주의 한국기록 2시간07분20초는 229위)이며 올해 세계 랭킹은 16위, 그리고 올 각종 국제마라톤대회 우승 기록으로는 7위다. 특히 가장 지칠 수밖에 없는 35~40km구간에서 14분11초, 마지막 2.195km에서도 6분12초의 놀라운 뒷심을 발휘했다.

 

 

 

<에루페 풀코스 마라톤 우승 기록>

대 회

기 록

비 고

  2011 뭄바사

2시간1247

풀 코스 첫 도전

2011 경 주

2시간0923

해외대회 첫 참가

2012 서 울

2시간0537

대회최고기록 수립

2012 경 주

2시간0646

경주대회 2연패

 

지난 3월18일 2012서울국제마라톤에서 우승테이프를 끊는 윌슨 로야나에 에루페

 

 

풀코스 4번 뛰어 모두 우승한 불패의 주인공…뛰어난 후반 스퍼트 주무기  
 에루페는 지난 10월21일 열린 2012 경주국제마라톤 역시 2시간06분46초(역대 세계 160위)로 이 대회를 2연패, 한 시즌 두 번  우승의 진기록을 세웠다. 올 경주마라톤에서도 30~35km구간은 14분33초, 35~40km구간은 14분20초, 마지막 2.195km는 6분19초에 주파, 막판에 강한 면모를 다시 한번 입증해 보였다. 


특히 올 시즌 봄과 가을 두 차례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 두 번 모두 2시간06분46초 이내의 기록을 작성한 마라토너는 전 세계에 에루페를 포함, 6명뿐이다.

 

 

카타르 바레인 등 ‘귀화 용병‘ 수두룩…미국 독일 일본에도 많아
외국의 ‘귀화 용병’ 사례

2006년 12월10일 도하 아시아경기대회 남자마라톤에서 2시간12분44초로 우승한 카타르의 무바라크 하산 샤미(카타르)는 케냐 출신의 ‘귀화 용병’. 그는 2007년 오사카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마라톤에서도 준우승했으며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에서는 한국의 지영준(금메달)과 경합을 벌이다 동메달을 땄다. 2006년 도하 아시아경기에서는 2005년 케냐에서 카타르로 귀화한 다함 나짐 바샤이르가 남자 1,500m에서 3분38초06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중동의 바레인 역시 모로코에서 귀화한 다레크 무바라크 살렘과 하산 마부브가 각각 2006년 도하 아시아경기 남자 3,000m장애물경기와 남자 10,000m에서 우승했다. 또 모로코 출신인 바레인의 라쉬드 람지는 2005년 헬싱키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800m와 1,500m에서 금메달을 땄으나 도하 아시아경기 1,500m에서는 카타르의 바샤이르에 뒤져 은메달에 그쳤다.


 여러 나라 민족으로 구성된 미국의 경우 어느나라 보다 귀화한 국가대표가 많다. 한때 세계마라톤 기록(2시간05분38초)을 보유했던 할리드 하누치는 모로코 출신이며, 2007년 오사카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마라톤에 미국대표로 뛰었던 음바락 후세인 등도 케냐 출신이다. 2008년과 2009년 런던마라톤 여자부를 연패한 독일의 이리나 미키텐코 역시 카자흐스탄 출신. 육상은 아니지만 일본의 경우 1994년 라모스, 1998년 로페즈, 2002년에는 산토스 등 브라질 출신 선수들을 귀화시켜 월드컵 축구대회 국가대표 선수로 기용했다.

 

 

등록선수 모두 1백여 명 불과한 최악의 상황…기록도 남녀 모두 중하위권  
한국마라톤 현실

1936년 베를린올림픽(손기정 우승, 남승룡 3위)과 1950년 보스턴 마라톤(함기용 우승, 송길윤 2위, 최윤칠 3위)에 이어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황영조 우승)과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이봉주 2위)에서 주목을 받았던 한국마라톤이 침체의 늪에 빠진 것은 1997년 이후. 지난 16년간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이렇다 할 기록은 물론 동메달 하나도 따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
특히 지난해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남자부는 정진혁이 2시간17분04초로 23위, 여자부는 김선경이 2시간37분05초로 28위에 그쳐 국민들에게 큰 실망을 안겼다.


 한국마라톤은 올 들어서도 부진을 면치 못했다. 85명이 완주한 8월의 런던올림픽 남자부에서 이두행이 2시간17분19초로 32위, 장신권은 2시간28분20초로 73위, 정진혁은 2시간38분45초로 82위에 머물렀다. 107명의 선수가 완주한 여자부에서도 정윤희가 2시간31분58초로 41위, 임경희가 2시간39초03초로 76위, 김성은이 2시간46분38초로 96위를 마크했다. 남녀 대표 6명이 모두 완주한 것만도 다행이었다.


 올 국내에서 개최된 국제대회에서도 외국선수들은 세계적인 기록을 쏟아 냈으나 한국선수들은 기대이하였다. 서울국제마라톤(3월18일)에서는 정진혁이 2시간11분48초, 김성은이 2시간29분53초, 대구국제마라톤(4월8일)에서는 이두행이 2시간14분05초, 임경희가 2시간32분49초로 각각 남녀부 1위를 했다. 경주국제마라톤(10월21일)에서는 오서진이 2시간17분02초, 최보라가 2시간40분20초, 춘천국제마라톤(10월28일)에서는 박주영이 2시간19분49초, 박유진이 2시간42분55초로 국내 남녀부 1위를 각각 기록했다. 11월4일 열린 중앙마라톤에서도 김영진과 최경희가 2시간17분00초. 2시간39분19초로 각각 남녀부 우승을 차지했다.


한마디로 현재 한국마라톤은 최악의 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 1백여 명 이상의 남녀 엘리트선수가 참가하던 국내대회에 남자 20~30명, 여자 6~8명이 참가할 만큼 선수난에 허덕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기록이나 아시아 기록은 물론 한국기록 경신도 까마득한 실정이다. 이봉주의 남자기록 2시간07분20초(역대 세계229위)는 12년 넘게 요지부동이며 권은주의 여자기록 2시간26분12초 역시 15년 동안 깨지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마라톤은 “이제 더 이상 추락할 곳도 없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2012 국내개최 국제마라톤대회 한국 우승선수 기록>

날짜

대회

남 자 부

여 자 부

03/18

서울

정진혁(건 국 대) 2시간1148

김성은(삼성전자) 2시간2953

04/08

대구

이두행(고양시청) 2시간1405

임경희(SH 공사) 2시간3249

10/21

경주

오서진(체육공단) 2시간1702

최보라(경산시청) 2시간4020

10/28

춘천

박주영(한국전력) 2시간1949

박유진(삼성전자) 2시간4255

11/04

중앙

김영진(삼성전자) 2시간1700

최경희(경기도청) 2시간3919

 

 

 

본인의 의사 중요…한국실업팀 입단 후 대한체육회 심사 등 절차 거쳐야
귀화 가능성과 득실

 대한육상경기연맹은 작년부터 3번이나 우리나라 국제마라톤에 참가, 모두 우승한 에루페를 한국에 귀화시켜 마라톤 활성화의 기폭제로 삼으려는 움직임이다. 대한육상경기연맹의 고위관계자는 최근 “국내마라톤 활성화를 위해 에루페의 귀화를 조심스럽게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에루페를 귀화시켜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에 내보낼 경우 우승가능성이 매우 높고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도 메달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에루페가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에서 우승할 경우 국내 마라톤 붐 조성에도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990년대 황영조 이봉주 김재룡 김완기 등이 기록경쟁을 벌이면서 올림픽과 아시아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냈고 한국 남녀기록도 잇달아 경신됐으며 마라톤 붐도 일어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시민마라톤인 마스터스마라톤이 처음 시작된 것은 1994년 황영조 등이 한창 활약했을 때였다. 현재 4~5백 만 명으로 추산되는 한국 달리기 동호인의 급속한 증가의 시발점이 바로 이 시기였다.

 

 

 

 

 


 그러나 에루페의 귀화가 쉽지만은  않다. 먼저 에루페 본인의 의사가 매우 중요하며 에루페가 귀화 의사를 밝히더라도 그를 받아 줄 국내 실업팀이 있어야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해당 실업팀과 에루페가 상당한 액수의 계약금에 합의해야하는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 이어 대한체육회가 에루페 귀화에 따른 심의를 통과시켜야한다. 대한체육회는 지난여름 프로축구 전북의 에닝요 귀화요청을 부결시킨바 있다. 그러나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규정에는 에루페가 한국에 귀화, 2014년 인천아시아경기에 참가해도 문제가 없다. 종전에는 귀화한지  3년이 지나야 국가대표선수로 뛸 수 있었으나 전 소속국가에서 국가대표선수로 뛰지 않았을 경우는 귀화한 나라에서 바로 국가대표선수로 활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케냐 현지에서 에루페를 발굴, 조련해온 오창석 백석대 스포츠과학부 교수는 “아직 대한육상경기연맹으로부터 공식적인 제의를 받은 적이 없다. 제안이 오면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이다”고 말했다. 오교수는 “에루페가 귀화해 국내 선수들과 합동훈련할 경우 유 무형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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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흑인 최초로 태극만크를 단 마라톤 선수가 탄생할 수 있을 지 기대가 되네요~!
    에루페 선수의 귀하를 통해 우리나라마라톤이 활성화 됬으면 좋겠습니다^^

    • Mr.Zon 님~ 조금은 침체되어 있는 우리의 마라톤이 활성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많은 분들이 마라톤 대회에 참여하고 있지만, 선수는 부족한 실정이니까요 ^^

  • 개인적으로 국가대표만큼은 순혈주의를 유지했으면 하는 한사람입니다.
    편협한 시각일지는 몰라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선수는 흑인이든 백인이든 혼혈이든, 귀화인이 아닌 한국인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도플갱어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가대표가 한국인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귀화선수에 대한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고, 조금은 어렵고도 민감한 부분이네요 ^^ 모두의 공통된 기대는 마라톤에 대한 관심의 증가로 선수들도 많이 증가해서 다시 예전처럼 뛰어난 기록도 나와서 마라톤이 활성화되었으면하는 바램입니다 :)

    • 순혈주의라니... 나찌의 베를린 올림픽 생각이 ㅠㅠ

 

 

 

글/하남길(경상대학교 교수)

 

 

 

마라톤을 탄생시킨 미셀 브레알

 

 

         스포츠 역사책의 종목별 스포츠는 그 기원이 알쏭달쏭한 것도 있고, 알쏭알쏭한 것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컨대 골프 역사책 첫 쪽에 등장하는 “최초의 골퍼는 목동이었다.”라는 이야기는 아리송하다. 반면 농구나 배구 역사책의 기원에 관한 내용은 명백하다. 바스켓볼 메이커는 네이스미스, 발리볼 메이커는 모건이라고 적혀있다.

 

마라톤의 기원은 알쏭달쏭한 부분도 있고, 알쏭알쏭한 부분도 있다. 마라톤 유래에 관한 이야기는 아리송하지만 실제로 마라톤 경기를 탄생시킨 주인공은 명확하다. 오늘날 수많은 인파가 즐기고 있는 마라톤의 아버지는 프랑스의 언어, 문헌학자 브레알(Michel J. A. Bréal, 1832–1915)과 올림픽 제창자 피에르 쿠베르탱이었다.


제1회 아테네 올림픽을 통해 마라톤이라는 종목이 세상에 처음 등장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브레알과 쿠베르탱의 공조관계 덕택이었다. 쿠베르탱은 회고록에 브레알을 프렌드(friend)라고 적었지만 한국적 의미의 평범한 친구의 관계는 아니었다. 브레알은 학계의 추앙을 받는 저명한 교수였다. 쿠베르탱이 31살이나 어렸다. 쿠베르탱은 브레알에게 편지를 쓸 때 깎듯이 “디어 써(Dear. Sir)"라고 적었다(Müller, 2008). 고대 올림픽의 부활을 꿈꾸던 쿠베르탱에게 고대사에 깊은 식견을 지닌 브레알 교수는 중요한 인물이었다. 쿠베르탱은 15년 동안(1894~1909) 의문이 생길 때마다 브레알과 교신했다Müller, 2008). 브레알은 쿠베르탱의 스승 같은 존재였으며, 고대 올림픽의 부활 사업의 동지 같은 관계였다.


고대 언어 강의를 맡기도 했던 브레알 교수는 그리스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그가 페르시아 전쟁의 고사를 모를 리 없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 플루타르크의 《윤리론》, 루키아노스의 《진실된 역사》도 알았을 것이다. 학자들의 이야기에도 매력을 느꼈을 것이다. 거기에 필리피데스를 예찬한 낭만시인 브라우닝의 “찬미가(1879)”나 조각가 메르송의 “필립피데스상”도 브레알에게 큰 영감을 받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1894년 9월 15일 스위스에 머물던 62세의 브레알은 31세의 쿠베르탱에게 편지를 보내 마라톤 경기의 올림픽 채택을 제안했다. 제안서는 “그리스 병사(Greek soldier)”가 달렸던 그 길에서 새로운 기록을 세울 수 있다며, 마라톤의 기원에 대한 설명을 덧붙인 편지였다. 거기에는 고대 올림픽과 근대 올림픽의 연계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내용과 마라톤 전쟁사에 대한 자기 확신도 담겨있었다(Müller, 2008). 그는 글에서 필립피데스라는 전령의 이름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그 그리스 병사는 필립피데스를 뜻하는 것이었다. 결국 마라톤 경기는 페르시아 전쟁의 일화에 브레알의 픽션 스토리를 토대로 탄생한 셈이다.


브레알의 마라톤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 실버컵을 기증하고, 거액의 기부금까지 내겠다고 했으며, 실제로 냈다. 1892년부터 근대 올림픽 제창을 위해 동분서주했던 쿠베르탱은 1894년 9월의 브레알 편지 내용에 솔깃했다. 그러나 난감하기도 했다. 그가 제안한 거리는 약 42~44km이었고, 전문가들도 과도한 거리라며 채택을 꺼려했다(Müller, 2000). 쿠베르탱은 1894년 말 올림픽 준비를 위해 그리스를 방문하여 가상의 마라톤 코스를 직접 확인까지 하였다. 많은 고민 끝에 쿠베르탱은 브레알의 제의를 받아들이게 된다. 1896년 3월 10일 12명의 선수가 참가한 마라톤 시범경기가 열렸고, 1896년 4월 10일 아테네 올림픽 마라톤 경기가 열리게 되었다. 공식적으로 마라톤 경기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의 마라톤을 만든, 마라톤 메이커는 브레알과 쿠베르탱이다.

 

 

 

참고문헌
Müller, Norbert(2008). “Michel Bréal (1832-1915: The Man Behind the Idea of the Marathon: Critiques and Discourse in Olympic Research,” Ninth International Symposium for Olympic Research.
Müller, Norbert(2000). Pierre de Cobertin Olympism. Switzerland : Cmite International Olympique.
Bréal, M.(1891). De l`enseignement des langues ancients. Paris: Hachette.
Lennarts Karl(1999). "That Memorable First Marathon", Journal of Olympic History. 7(1).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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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하남길(경상대학교 교수)

 


     스포츠 종목 중에는 기원이 뚜렷한 종목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종목도 있다. 기원이 안개 속에 가려진 종목이 있는가하면 꾸며진 이야기로 되어 있는 종목도 있다. 육상 종목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예컨대 ‘근대5종경기’는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을 앞두고 쿠베르탱이 제안하여 탄생된 종목이다. 단거리 종목의 경우 고대 올림픽을 통해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으나 언제, 누가 가장 먼저 달리기 경주를 한 것인지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라톤의 기원도 전설 같은 이야기로 꾸며져 있다.

 

 

 

 


마라톤은 그리스의 마라톤 평원에서 벌어졌던 페르시아 전쟁사의 한 사건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종류의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는 아테네의 전령 필리피데스가 약 40킬로를 쉬지 않고 달려 “우리 아테네 군이 이겼습니다.”라는 승전보를 전한 직후 숨을 거두었으며, 그 뒤, 필리피데스를 기리기 위하여 고대 그리스에서 마라톤 경기가 시작되었다고 적혀 있다. 1896년 쿠베르탱의 제안으로 제1회 아테네 올림픽부터 정식종목이 되었다는 내용도 함께 담겨져 있다(황정현 등, 2011). 역사 교과서는 아니지만 역사적 사실처럼 적혀있다. 필리피데스의 죽음을 부른 달리기가 마라톤의 기원이라는 이야기는 사실일까? 한 마디로 만들어진 신화 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마라톤이란 경기 종목의 채택을 제안한 인물이 쿠베르탱이란 기술 내용도 사실과 다르다. 마라톤 경기의 올림픽 채택을 최초로 제안한 인물은 미셀 브레알이었다.


마라톤의 기원에 얽힌 이야기가 완전 허구는 아니다. 역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헤로도토스(BC 484~425?)의 저서《역사》에 필리피데스란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필리피데스가 페르시아 전쟁터였던 마라톤에서 아테네로 귀환한 여정에 대한 언급은 찾을 수 없다. 당시의 전령들은 고도로 훈련받은 자들이었고, 25마일 정도를 달리고 죽을 체력이었다면 전령다운 전령도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도 필리피데스의 신화는 헤로도토스의 서사시와 아테네군의 행군이 결합되어 조금씩 꾸며진 것으로 보인다(Lendering, 2010). 당시 전령의 실제 이름도 필리피데스(Philippides), 페이디피데스(Pheidipides), 피디피데스(Phidippides) 등 다양하게 회자되어 왔다(Sekunda, & Hook, 2002).


필리피데스가 승전보를 전하고 죽었다는 이야기와 유사한 고사는 페르시아 전쟁 500년 이후에 나온 플루타르크(Plutarch)의 《윤리론(Moralia)》에 등장한다. “만세! 우리가 승리를 거둔(Hail! we are victorious!)”이라는 외마디를 남기고 탈진해서 죽음을 맞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플루타르크의 글 속에 나오는 전령은 필리피데스가 아니라는 게 학자들의 분석이다(Henderson, 2005). 현재의 마라톤 기원설과 가장 가까운 이야기는 2세기경 루키아노스(120~180?)가 만들어냈다. 그는 필리피데스가 승전보를 전한 전령이었다고 썼다. 하지만 그의 글은 페르시아전쟁 600년 이후에 나온 것이다(Lucas, 1973; 토르 고타스, 2011). 사실로 믿기 어렵다. 루키아노스는 풍자 작가였을 뿐 역사학자도 아니었다. 미국 아테네 고전연구학회(ASCSA) 이사였던 고고학자 짐 머리(Jim D. Muhly)는 루키아노스의 저서 《진실된 역사》는 어떠한 역사적 가치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Cumming, 2011).

 


마라톤의 기원설이 근거 없이 통째로 꾸며진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역사적 사실로 믿기는 어려운 것이다. 19세기 후반까지 플루타르크가 쓴 글의 내용을 토대로 다양한 설화가 구전되었고, 1894년 그리스 역사에 심취해 있었던 프랑스 소르본 대학의 교수, 미쉘 브레알(Michel Bréal, 1832-1915)이 마라톤 경기의 올림픽 채택을 쿠베르탱에게 제안함으로서 제1회 아테네 올림픽을 통해 하나의 운동 종목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마라톤의 기원설이 꾸며진 것이라면 마라톤 경기의 탄생지는 옛 그리스의 전쟁터 마라톤 평원이 아닌 프랑스 파리가 되는 셈이다.

 

 

 


참고 문헌
Lendering, Jona(2010). Battle of Marathon
Sekunda, Nicholas & Richard Hook(2002). Marathon 490 BC: The First Persian Invasion of Greece. Oxford: Osprey Publishing Ltd.
Henderson, Jeffrey(2005). PLUTARCH: MORALIA. Ⅳ. Cambridge : Havard  Univ. Press.
Lucas, John A.(1973). "A History of the Marathon Race. Journal of Sport History, 3(2).
토르 고타스/석기용(2011). 러닝-한편의 세계사. 서울 : 책세상.
황정현 등(2011). 초등학교 국어: 읽기 5-1. 서울 : 미래엔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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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 마라토너 정진혁, 삼성 입단제의 뿌리치고 한전과 계약
육상계, “신선한 충격…선수들 장래 위해 바람직한 선택”

 

 

 

 글 / 이종세(스포츠동아 이사)

 

 

 

 

 

거액의 계약금보다는 평생직장을 택했다. 

 

2012 런던올림픽 남자 마라톤 국가대표 정진혁(22 ‧ 건국대 4년)이 수 억 원의 계약금을 제시한 삼성육상단의 제의를 뿌리치고 최근 계약금 없이 4천만 원의 연봉만 주는 한국전력 육상단(단장 ․ 신창환)과 입단계약을 체결, 육상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해 서울국제마라톤에서 2시간09분28초의 기록으로 전체 2위(국내 1위)를 차지, 지영준(31 ‧ 코오롱 ․ 2시간08분30초)에 이어 국내 현역선수 랭킹 2위에 오른 정진혁. 그는 지난해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이어 올 서울국제마라톤에서도 국내선수 1위를 지켜 사실상 한국마라톤의 간판스타로 자리매김했다.


 때문에 이봉주의 은퇴로 전력에 공백이 큰 삼성육상단을 비롯 코오롱 등 실업팀들이 작년부터 정진혁의 영입을 위해 많은 공을 들여왔다. 하지만 스카우트 비용이 한 푼도 없는 공기업 한전의 경우는 언감생심 정진혁의 영입을 꿈꿀 수도 없었다. 한전은 규정상 삼성, 코오롱 등 실업팀처럼 스카우트 비용이 없어 아예 고졸 출신만 뽑고 대졸 선수의 영입은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1962년 4월에 창단, 50년 전통을 지닌 한전육상단은 이상훈, 이창훈, 이명정, 유명종, 김차환, 최경렬, 김재룡, 백승도 등이 1960년대부터 1990년대 까지 한국마라톤을 호령했으나 코오롱과 제일제당 동양나일론 등 실업팀이 창단되면서 밀리기 시작했고 2000년대에는 재벌 기업 삼성이 육상단을 창단하면서 더욱 위축, 겨우 명맥만 이어왔다. 이는 회사 사정상 몇 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이르는 선수 스카우트 비용을 마련할 수 없어 우수선수를 뽑지 못했기 때문. 다만 장점이라면 공기업이어서 선수은퇴 후에도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러나 황금만능주의, 배금주의의 풍조가 만연한 요즘 세태에 평생직장보다는 당장 몇 억 원의 계약금을 받기위해 많은 우수선수들이 한전 같은 공기업보다는 삼성 등 실업팀을 선호해왔다.

 

 

 지난해 3월 서울국제마라톤에서 2시간09분28초의 기록으로 전체 2위(국내 1위)를 차지한

정진혁이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스포츠동아 제공>

 

 

삼성육상단 작년부터 계약금 3억원 제의…연봉 4천만원의 한전에 입단 
사실 삼성육상단은 지난해 3월 서울국제마라톤에서 2시간05분30초의 최고기록을 보유한 모로코의 압델라힘 굼리(36)와 접전을 벌이다 17초차로 2위에 머문 정진혁에 대해 3억 원의 계약금을 제시하며 입단을 권유했었다. 지난 2000년 6월 코오롱팀을 이탈한 이봉주 선수와 오인환 감독 등 코칭스태프를 패키지로 영입해 육상단을 창단했던 삼성은 이번에도 정년을 앞둔 황규훈 건국대감독을 함께 받아들이기 위한 작업을 병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작 본인인 정진혁의 생각은 달랐다. 우선 3억 원이란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삼성에 입단했을 경우 각종대회에서 성적을 올려야하는 부담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고 무엇보다 현역 은퇴 후 안정적인 직장을 보장받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2009년 삼성에서 은퇴한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를 비롯 많은 삼성 육상단 출신 선수들이 현역에서 물러난 뒤 마땅한 생업을 찾지 못한 것을 눈여겨보았던 것이다. 고민하던 정진혁은 자신의 진로 결정을 아버지 정범석씨(58 ․ 충남 예산군 광시면 서초정리)에게 위임했고 아들의 의중을 꿰뚫은 정씨는 수소문 끝에 지난 4월경 58세까지 정년이 보장되는 한전육상단에 아들을 입단시키기로 했다. 이에 따라 지난달 13일 정진혁은 계약금 없이 연봉 4천만 원을 받는 조건으로 한전과 입단 계약을 체결한 것.

 

 

정진혁 부친, “거액의 계약금은 선수에 부담…은퇴 후 평생직장 보장도 안돼” 
 정범석씨는 “내 입장에서는 진혁이가 마음 놓고 훈련할 수 있는 팀을 찾아야했다.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부담스러운 선수생활을 하다 은퇴하면 갈 곳이 없는 것보다 평생직장을 찾다 보니 한전으로 가게 됐다.”며 “진혁이가 고교시절에도 한전이나 조폐공사를 가고 싶다고 했었다.”고 설명했다.


 한전육상단의 최경렬감독은 “우리는 사규상 그동안 선수들에게 단 한 푼의 계약금도 줄 수 없어 고졸유망주만 선발, 현재 7명의 선수가 있는데 전혀 예상치 않았던 진혁이가 입단해 육상단 전체가 상당히 고무돼있다.”면서 “스포츠에 관심이 많은 김중겸 한전사장님이 육상단 사기 앙양을 위해 힘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진혁의 한전육상단 입단과 관련, 육상계는 “실업팀이 50개가 넘어 우리나라보다 마라톤 저변이 넓고 수준도 한 단계 위인 일본의 경우 대졸 선수들이 거의 평생직장으로 진로를 결정, 은퇴 후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면서 “정진혁이 계약금 욕심을 버리고 공기업으로 간 것은 후배들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선택이다.”고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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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race 2012.07.24 12:59 신고

    전 선수는 아니지만 체육관련전공자로서 주위에 운동을 중간에 그만두거나 은퇴시 다른 직업. 진로를 찾지못하고 도퇴되는 사람들을 몇몇 보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정진혁 선수의 결정이굉장히 현명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 grace님~ 맞습니다 :) 은퇴선수들을 위한 지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정진혁선수도 은퇴 후가 보장되는 길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은퇴선수 지원에도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

  • famer 2015.09.07 21:50 신고

    정진혁 선수 런던 올림픽 이후 소식이 궁금했는데 한전에 입사했다니 고맙군요. 기본 스피드는 있는 선수이니 은퇴 전에 한국신기록 작성해주면 좋겠어요.
    창원 64세 농부가.

 

 

 

 

글 / 강동균 (스포츠둥지 기자)

 

 

 

38선이 그어진 한반도기를 눕히니 탁구대가 되는 놀라운 경험
최근 개봉한 영화 <코리아>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남북의 문제를 다룬 영화다. 남북의 모습을 그려낸 다른 영화들과의 가장 큰 차이는 남북의 문제를 스포츠로 다루었다는 점이다. 영화는 1991년 사상 최초의 남북 탁구 단일팀을 다룬 실화였다. 41회 세계선수권 대회를 46일을 앞두고 남북한의 냉전 분위기를 와해하고 화해를 시도하고자 탁구 단일팀이 결성되며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이야기를 주로 담고 있었다.


 

<코리아> 공식 블로그

 

대략적인 줄거리는 아래와 같다. KAL기 폭파사건 이후 급격히 경색된 남북 간의 분위기를 와해하고 화해를 시도하고자 열린 1990년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체육 교류를 통해 정치적 긴장을 해소하고자 했던 남한과 북한은 당시 한창 붐이 일었던 탁구와 축구의 단일팀 구성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으며, 이에 사상 최초로 남북 탁구 단일팀을 결성하게 된다. 처음으로 함께 대면한 자리, 단지 남과 북이라는 이유만으로 서로에 대한 마음을 여는 게 쉽지 않았던 그들은 서로 다른 말투와 생활방식, 그리고 이전까지 늘 라이벌로 마주했기에 더욱이 쉽게 경계를 풀 수 없었기에 하나의 팀을 이루는 것 그 자체가 큰 도전이었다.

 

이렇듯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더 많은 남과 북의 선수들이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 없이 억지로 한 팀이 되어 금메달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가는 과정에서 ‘탁구’라는 스포츠가 가지는 역할은 상당히 중요했다. 쉽게 하나가 되기 어려웠던 남과 북을 하나로 묶어주는 매개체가 바로 스포츠였다. 서로의 생각이 다르고 사상이 달랐지만, 탁구를 통해 드디어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었다. 스포츠라는 장르는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뜨겁게 하는 힘이 있다. 남북 탁구 단일팀 결성은 남과 북의 국민들이 스포츠가 가지는 외교적인 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도 ‘국가대표’다
‘국가대표’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종목은 아마 축구대표팀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 <국가대표>에서는 우리에게 생소한 스키점프 대표팀을 다루고 있다. 스키점프는 비인기 종목이었지만 영화를 통해 사람들에게 알려져 이제는 누구나가 다 아는 종목이 되었다.

 

 

<국가대표> 공식 홈페이지

 

영화는 1996년 전라북도 무주,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정식 종목 중 하나인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이 급조되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스키점프가 뭔지도 모르지만 한때 스키 좀 타봤다는 이유로 뽑힌 이들이 모이면서 대한민국 최초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이 결성된다. 그러나 스키점프(Ski Jump)의 스펠링도 모르는 코치와 경험 전무한 국가대표 선수들의 훈련은 험난 하기만하다. 변변한 연습장도 없이 점프대 공사장을 전전해야 했고 제대로 된 보호장구나 점프복도 없이 오토바이 헬멧, 공사장 안전모 등 만을 쓰고 맨몸으로 훈련에 임해야 했다. 과정이야 어쨌든, 엉겁결에 나가노 동계 올림픽 출전 자격을 얻게 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은 나름 금의환향하며 올림픽 진출의 꿈에 부푼다. 그러나 한국은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에 끝내 탈락하게 되고,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은 해체 위기에 처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스키점프라는 생소한 스포츠 종목이 많이 알려졌다’가 아니다. 물론,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비인기 종목의 선수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알 수 있게 해준 좋은 계기였다. 하지만 <국가대표> 역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전철을 똑같이 밟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잊혀졌다. 오히려 주목할 점은 스포츠의 역할이다. 즉, 스키점프라는 스포츠를 통해서 국가대표가 된 선수들이 기대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들은 단순히 유명해지기 위해 국가대표가 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스키점프를 통해서 자신의 꿈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스포츠를 통해 흥미와 쾌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좀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스포츠는 사람들에게 어느 드라마보다 더욱 드라마 같은 감동을 전해주기도 하지만 영화 <국가대표>처럼 어떤 누군가에게는 꿈을 심어준다.

 

백만불의 사나이? 아니 백만불짜리 다리
"초원이 다리는 백만불짜리 다리~" 이 대사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말아톤>은 장애와 마라톤이라는 소재를 통해 많은 반향을 불러왔다.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길고 험한 길, 마라톤을 장애인이 완주를 하는 감동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영화 속 주인공 초원이는 엄마의 헌신적인 도움을 받아가며 완주에 성공하게 된다. 영화 <말아톤>은 마라톤이라는 스포츠를 통해서 장애와 같은 사회적 문제를 동정 어린 시선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현실적인 삶의 문제로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의 장애에 대한 편견을 없애주는 역할까지 소화했다.

 


스포츠의 역할은 단순히 여가를 즐기는 수준의 스포츠, 흥미를 느끼는 수준의 스포츠가 아니다. 정치적인 문제나 사회적인 문제를 좀 더 다가서기 쉽게 다루기도 하고, 꿈을 심어주고, 감동을 주고, 편견을 제거해주는 역할을 가지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꼭 잊지 말아야 할 점이 하나 있다. 스포츠가 아무리 다양하고 좋은 역할을 하더라도, 우리의 관심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스포츠의 다양한 역할에 대해 생각하며 다시 한 번 스포츠에 대한 관심을 가져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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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김윤환 (고려대학교)
 


바야흐로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는 계절이다
. 예년과는 달리 몹시도 포근한 요즘 가을 햇볕 아래서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마라톤에 대한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특별한 운동 기구가 필요 한 것도 아니고 꾸준한 체력관리만 한다면 누구나 참여 할 수 있는 것 또한 마라톤의 매력일 것이다. 성인 남녀는 물론 주부, 70대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연령층과 성별도 다양하다. 때로는 사이좋게 부부가 함께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전국적으로 마라톤은 동호인 수만 200 만 명이 넘고 전국적으로 크고 작은 대회를 다 합쳐서 80여개나 된다.

                        <2011 세계육상선수권 성공개최 기원 알몸 마라톤 대회 사진 출처 연합 뉴스‘>

예전부터 달리리가 건강에 좋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다. 마라톤은 심장과 폐 기능을 강화 시키는 전신 운동이다. 체육과학연구원의 연구 결과 지속 적인 마라톤을 한 성인 남자는 그렇지 않은 남성에 비해 고혈압 발병률이 41%, 당뇨병 발병률 84%, 고지혈증 발병률은 32%나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신진대사의 활성화로 성인병 예방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또한 바른 자세로 지속적인 달리기를 할 경우 다이어트는 물론 척추 교정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또한 노화 방지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마라톤의 진짜 묘미를 느끼기 위해서는 각자의 체력수준에 맞는 코스에 참가해서 완주를 해봐야 할 것이다. 마라톤 대회의 코스는 보통 풀코스(Full course), 하프 코스(Half course), 10km 코스, 5km 코스로 나뉘어져 있다. 풀코스는 42.195km를 모두 뛰는 코스고 하프 코스는 그 절반인 21.0975km를 뛰는 코스이다. 적은 투자로도 많은 효과를 볼 수 있는 마라톤이지만 제대로 달리기를 하지 않으면 몸이 상할 수도 있다. 올바른 달리기 요령과 주의사항에 대해서 잠시 알아보도록 하자.

1. 달리기 전 사진의 몸 상태부터 살핀다.

심장이나 혈관에 이상이 있는 사람은 오히려 달리기가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상시에 무릎. 허리를 비롯한 관절부분에 통증이 있는지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많이 차는지, 운동할 때 가슴 주변에 통증이 있는지, 고혈압, 당뇨병 등의 성인병이 있는지 운동하다가 실신한 적이 있는지 기타질환이나 정형외과적인 문제가 있는지를 우선 살핀다.

2. 달릴 때 주의사항

자신에게 알맞은 러닝화를 선택한다.

-발목이 높은 농구화나 테니스화 에어로빅화를 신고 달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강항 충격을 흡수해 줄 수 있는 안전한 뒤꿈치를 염두에 두지 않고 디자인되었기 때문에 좋지 않다.가격이 부담되더라도 달리기에 적합한 운동화를 구입한다. 가급적 두 켤레의 신발을 구입해 번갈아 가며 신는 것이 좋은데 한 신발만 계속 신으면 땀에 밴 신발이 건조 될 시간이 부족하고 체중에 눌린 신발의 쿠션 기능이 제대로 회복될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차로에서 헤드폰은 끼지 않는다.

-달리기와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서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달리곤 한다. 그러나 바깥을 달릴때는 다가오는 차, 개와 같이 위험요소에 덜 민감하게 되므로 피한다

 차의 흐름을 마주 보고 달린다.

도로에서 달릴 때는 차의 흐름을 마주보고 달리고 운전자에게 잘 보이도록 가벼운 색깔이나 반사되는 옷을 입는다. 요즘은 달리는 주자를 위한 경광등도 시판하고 있다. 이를 부착하여 도로, 특히 밤중의 차로에서 자신의 이치를 알려 사고를 피해야 한다.

어둡고 외진 지역은 달리지 않는다.

직장일로 바쁘다 보면 늦은 저녁 시간을 이용해 달리기도 한다. 이때 외진 공원이나 산길은 피하고 불이 밝혀져 있고 사람들이 많은 곳을 달려 만일의 사고에 대비한다. 저녁늦게 달릴 경우 동반자와 함께 운동하는것도 한 방법이다.

15~20분마다 적절한 양의 수분을 보충한다.

운동 전 최소 두컵, 운동 중에는 매 15~20분 마다 빈 컵이나 한 컵, 운동 후에는 세 컵을 마시는 것이 좋다.

3. 골인직후 사고가 의외로 많다.

대회에서는 자신의 페이스를 흐트려 달리게 된다. 빠른 사람의 페이스에 휘말리거나 가족이나 친친구들의 응원이나 주위로부터 응원에 자신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 무리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페이스를 흐트려 달리기 때문에 후반에서 탈진해 버리거나 몇시간 몇분의 기록으로 완주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간에 구애되어 무리하게 되어 상처나 부상을 초래하는 경우도 많다. 실제 골인 직후에 사고가 많다. 대회에 참가하는 것을 목표로 두어 매일 조깅을 계속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너무 무리해서 부상을 초래하면 결과적으로 몇 개월 동안 달릴 수 없게 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자신의 운동 경력과 체력 수준, 컨디션에 맞춰서 알맞은 코스를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초보자라면 5km10km, 마라톤 동호인이라면 하프나 풀코스를 추천한다. 11월에 열리는 마라톤 대회들을 모아봤다.


4. 대회 요강을 잘 검토하자.

아직 달리기인구 저변이 넓지 않은 국내에서는 드문일이나 보통 거리외에 남녀별, 연령별로 구성되는 경우도 있다. 대회의 종목에 학생부, 장년부, 노년부 등등 나눠져 있는 등 대회에 따라 변화가 있다. 그러나 아직 국내에서는 대부분 나이나 성별에 상관없이 자신의 실력에 맞추어 신청하면 별 문제는 없다.

대회주최측에서는 대회를 앞두고 요강, 코스지도, 거리표시 등을 이해하기 쉽게 신청서와 함께 요강을 배포하며 인터넷 보급과 더불어 대회마다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하여 안내하기도 하므오 이를 자세히 살펴 보아야 한다. 그리고 대회 개최시기, 신청 마감일도 주의를 기울여 살펴두어 마감을 넘기는 일이 없도록 해야한다.

대략 신청접수는 대회1개월 전에 마감되는 경우가 많고 지방의 대회는 보다 더 임받해서 신청을 마감한다. 아직까지 인구가 증가하고있는 실정이므로 참가인원수로 제하는하는 경구는 많지 않지만 대회 장소의 협소한 경우는 종목별로 참가자수를 제한 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요강을 잘 살펴보고 미리 신청할 필요도 있다.

 5. 대회 참가는 이런 즐거움이 있다.

매일하는 조깅의 실력을 알아보고 같은 취미를 지닌 많은 사람들과 함께 달리고 새로운 친구를 만드는 등 대회에 참가하면서 갖는 즐거움은 여러 가지 이다. 지역의 풍물이나 경치를 즐길수 있는 지방 마라톤 참가도 다른 경험이다.

여행이 취미인 사람이라면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다 가보고 싶다고 생각한 곳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해 보는 것은 매우 큰 즐거움이다. 여행의 즐거움은 요리에서 찾는 사람들도 있다. 레이스후에 그 지방의 명물 요리를 맛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이다. 달리기에 더해 가을의 풍경과 맛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대회를 선택하면 즐거움은 배가된다.

 6. 참가상도 다양한다.

-대회에 나가면 참가기념으로 기념품을 주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도 매우 다양하다. 기념 t셔츠는 물론이고 가방, 모자 등 대회명이 인쇄되어있는 오리지널 물품들이 많이 제공되기 때문에 추억이 있는 기념품으로 간직하는 재미도 있다. 또 특정지역에서는 그 지방의 특산품을 주는 대회도 있어 지방에 따라서는 지역홍보도 겸하는 경우도 있다.

대회의 재미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1차적인 기쁨과 보람에 더 하여 부가적으로 주어지는 여러 가지 환경에 맞추어 참가자 각자가 즐기는 방법을 발견 하므로써 달리기 생활이 더욱 즐겁고 생활의 윤활유가 될 수가 있다

 

※ 참고자료 : 마라톤 온라인 www.marathon.pe.kr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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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이강일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가정의 달 5월을 맞이해서 서울시와 여성신문에서 주최하는 올해로 11번째를 맞이한 ‘2011 하이서울 여성마라톤대회’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제1회에는 아줌마 마라톤 대회로 시작하였으나, 3회때부터 여성마라톤이라고 대회명을 변경하고 매회 다른 주제와 테마로 여성과 가족을 위한 마라톤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번 11회대회의 테마는 여성이 행복해야 가족이 행복하다는 Happy Family, Happy Women이였는데, 단순한 체육행사를 넘어서 여성과 함께 하는 건강한 가족, 그리고 더 나아가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여성만을 위한 마라톤이냐? 그것은 아니다.

15,000명 중 약 69%로 여성 참가자의 수가 많긴 하였지만 남성 마라토너들을 위한 시상도 하였고 가족에 대한 대회이기도 하였다.  5월8일(일)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든 마라토너들이 화사하고 사랑스러운 분홍색 티셔츠로 뜻깊은 어버이날에 상암동 월드컵공원 평화의광장에서 열렸다. 08:30분부터 평화의 광장에 마라토너 한명 한명 집결하였고 09:00시에 모두 모여서 준비운동을 한 후 여성신문사 김효선 사장의 개회사가 끝남과 동시에 하프코스, 10Km코스, 5Km코스, 3Km걷기코스의 경주가 시작되었다. 각 코스마다 달리는 코스가 다르지만 평화의 공원을 출발하여 가양대교와 마포대교를 반환점으로 하여서 홍제천을 거쳐 평화의 공원에 다시 골인하는 코스이다.

                     <여성마라톤 경기 출발>                           <평화의 광장에 몰린 마라토너들>


다양한 협력업체의 지원!

마라톤 대회는 단순히 마라톤 경기뿐만이 아닌 다양한 협력업체의 참여의 장도 제공한다. 이번 서울여성마라톤 대회를 위해 대학생 재능기부 단체 ‘비욘더마인드’, 명지대 마술 동아리 ‘La-Luz’, 을지대학교 스포츠 물리치료 동아리 ‘Primera’,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여성취업 상담버스‘일자리부르릉버스’, 동원대학 휘트니스 건강관리과, MJ타로, 서울마포아동보호전문기관, 종이문화재단, 한국수공예기능인협회, 발반사학회 등 다양한 협력업체가 평화의 광장에서 여성과 가족들을 위한 봉사를 하였고, 다양한 기업들이 참가하여 각 기업의 소비자층이 주로 여성인 제품을 소개하고 판촉하는 행사를 하고 있었다.

                  <여성 마라톤 협력 단체>                                    <다양한 기업의 참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축제의 대회!

경기 중간 이벤트와 다양한 단체의 참여도 하나의 볼거리였는데, 아빠, 엄마와 함께 온 아이들을 위한 놀이 공간은 물론이고, 평화의 공원에 호수는 마라톤 대회의 또다른 즐거움이였다. 11시부터는 제11회 여성마라톤 대회 홍보대사인 ‘뽕브라더스’(개그콘서트 - 김재욱, 이상호, 이상민)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을 위한 놀이 공간>                        <‘뽕브라더스’ 의 축하공연>

날씨가 굉장히 화창하였지만, 저러한 빤짝이 의상을 입기에는 굉장히 후덥지근한 날씨였는데, 세 분 모두 보는이로 하여금 정말 최선을 다해주셔서서 마라토너 참가자들이 마라톤 대회의 축제를 즐기게 해주었다. 국군 사관학교에서 근무하는 현역 군인분들도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였는데, 축하공연이 많이 아쉬운듯 하였다. 뜨거운 날씨가 더해져 더욱 열정적이였던 '뽕브라더스‘의 공연이 끝난 후엔 시상식이 이어졌다. 하프코스, 10km코스, 5km코스의 1등부터 5등까지의 수상자들에게 소정의 상금과 기념품을 증정하였다.

                    <여자 10Km 수상자>                                      <남자 10Km 수상자>

필자가 수상자 사진을 찍고 있을 무렵 굉장히 가냘픈 여성 마라토너가 1위 자리에 서있었다.

                                                         <우승자 황순옥 마라토너>

10Km에서 1등을 차지한 ’황순옥‘ 마라토너인데, 황순옥 마라토너는 안산로드레이스팀 출신으로 0:40:12기록으로 1등을 기록하였다. 마라톤을 시작한지 약 8개월도 채 안되었지만 지난해 경기 여주마라톤대회 10㎞ 준우승, 경기  파주평화마라톤대회 10㎞ 우승에 이어 세 번째 우승을 차지하였다.
평소 네일아트의 직업으로 비염 때문에 마라톤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여성으로서 뜻깊은 행사인 ’여성마라톤대회‘에 참가하게 되어 우승까지 거머쥐어 정말 기쁘고 올 연말에는 하프코스에 도전하겠다고 하였다.

6월부터는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목적으로 마라톤이 많이 개최될 예정이다.
자세한 대회 정보는마라톤온라인(
www.marathon.pe.kr)에서 찾을 수 있다.

화창한 주말, 헬스장이나 운동장에서 뛰는 달리기가 아닌, 공기 좋고 자연과 함께 달리는 마라톤을 해보는건 어떨까?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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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김주영 (국민대학교 대학원 운동 생화학 석사과정)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목표를 이뤄 건강한 삶을 영위하길 바란다. 지속적으로 운동을 하기 위해 좋은 동기 부여 요소를 찾아 행동으로 옮기는 노력을 하고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용기를 불어 넣어주면서 심리적인 요인까지 조절하기도 한다. 때로는 운동 프로그램에 변화를 주고자 강도를 높이지만 운동 강도에 저항할 수 있는 자신의 신체적 수준이 한계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무분별하게 더 무거운 무게를 들거나 반복 횟수를 늘리는 등의 어리석음을 범한다. 이것은 자신에게 심각한 건강상의 문제를 나타내는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하는데 대표적으로 운동유발성 횡문근융해증이 있다. 운동유발성 횡문근융해증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잘 인지하고 있지 못하지만 운동 이후, 초기에 발견하지 못해 치료하지 않은 상태로 두게 되면 신체의 기능 장애를 초래하거나 생명에 치명적일 수 있을 만큼 위험하다.


운동유발성 횡문근융해증을 보고한 대부분의 사례는 이전까지 강도 높은 훈련이 연속인 군인이 중심이었으나 최근에는 트레이너와 함께 운동했던 일반인이 강도 높은 운동 프로그램을 수행하고 난 뒤에 운동유발성 횡문근융해증을 나타낸 사례가 보고되었다. 자격을 공인받은 트레이너와 함께 운동을 실시한 후에 이러한 결과를 나타낸 것으로 일선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트레이너와 지도자에게 의미있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군인, 운동선수 뿐만 아니라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어느 특정 대상을 불문하고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으며 자신의 신체적 수준 이상의 운동 프로그램 수행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운동은 우리에게 항상 좋은 점만 가져다주지 않는다. 운동의 이면에는 운동유발성 횡문근융해증과 같은 커다란 부작용도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아두어야 한다. 운동유발성 횡문근융해증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운동유발성 횡문근융해증?

운동유발성 횡문근융해증은 과도하고 격렬한 운동으로 정상적인 근육이 손상을 받게 되면서 근육 내에 존재하던 마이오글로빈, 크레아틴 키나제, 칼슘, 칼륨 등이 혈액으로 유출되는 양이 많아지면서부터 발생한다. 특히, 혈액 내에 마이오글로빈이 많아지면 이것이 체외로 배출되고자 신장으로 운반되어지고 날카로운 특성을 가진 마이오글로빈이 신장의 세뇨관을 손상시키게 되면서 신장의 기능 정지(급성 또는 만성신부전)을 초래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근육 내로 칼슘이 과도하게 유입되면서 저칼륨혈증이라는 전해질 대사 장애를 유발할 수 있고 근육을 추가적으로 손상시키는 단백질과 지방의 분해 효소를 만들어내는 현상을 보여준다. 칼륨도 심장의 박동을 방해하면서 혈액순환을 불가능하게 할 수 있다.

                                  (운동유발성 횡문근융해증은 과도한 운동이 주된 원인이다.)

운동유발성 횡문근융해증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운동유발성 횡문근융해증의 진단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초기 증상이다. 자칫 일반적인 근육통으로 보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근육통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운동유발성 횡문근융해증에 의해 동반되는 근육통은 우리의 신체활동에 영향을 미쳐 제대로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콜라 또는 차와 같은 색깔을 보이는 적은 양의 소변도 운동유발성 횡문근융해증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증상이다. 극심한 근육통과 함께 정상적이지 못한 소변을 확인했다면 운동유발성 횡문근융해증을 의심해야 한다. 이외에도 권태감, 열, 구역 및 구토 등의 증상을 동반한다.
운동유발성 횡문근융해증을 좀 더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는 지표에는 혈액의 크레아틴 키나제와 마이오글로빈 등이 있지만 진단 검사 장비를 가지고 있는 병원 외에서는 측정이 불가능한 단점이 있다.

운동유발성 횡문근융해증의 예방을 위한 가이드라인

1. 운동을 시작하기 전 자신의 체력수준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과거 병력(수술, 정형외과 및 내과적 질환 등)을 다시 살펴봐야 하고 기초 체력 요인을 측정하여 체력수준을 정확하게 파악한 뒤 운동에 참여하도록 한다. 전문적인 지식과 측정 기술 등을 갖춘 운동사를 찾아 상담 및 지도를 받는 것을 권장한다. 

2. 운동 프로그램의 실행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운동 프로그램에 우리 신체가 충분하게 적응된 이후에는 운동 강도와 시간을 늘려야 하는데 갑작스럽게 변화시키기 보다는 일정 기간 간격을 두는 것이 좋다. 특히, 운동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나 운동에 오랫동안 참여하지 않은 사람의 경우에는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3. 감기나 유행성 플루(flu)와 같은 전염성이 있는 질환에 노출되거나 비슷한 증상을 나타내면 운동 시 조심해야 한다.

-횡문근융해증은 독감 바이러스와 그로 인해 복용하게 되는 약물 등으로도 발생할 수 있다. 여기에 과도한 운동까지 더해진다면 치명적일 수 있다. 비록 운동이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었지만 2009년, 전국적으로 유행한 ‘신종 플루’ 에 감염되어 병원에서 ‘타미플루’ 를 처방 받아 복용했던 한 여고생의 사망 원인은 바로 횡문근융해증이었다. 횡문근융해증을 진단하는 혈액 지표인 크레아틴 키나제의 정상 범위가 22~198 U/L인데 반해 당시 여고생은 정상범위의 30배가 넘는 수치를 보였다
(2009년 11월 19일, SBS 뉴스 보도).

 
4. 실외에서 운동을 하게 될 경우라면 환경적인 요소를 고려하여야 한다.

-특히, 한여름 같이 극단적인 더운 날씨는 조심해야 한다. 높은 고온과 습도를 이겨낼 수 있는 내성을 운동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가지진 않는다. 높은 고온과 습도는 운동유발성 횡문근융해증을 일으키는데 기여하는 요인들로 알려지고 있다. 외부에서 장시간 강도 높은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경우, 운동 시작 전 고온과 습도의 정확한 측정이 필요하며 가능하면 피부를 노출시켜 땀이 잘 배출될 수 있도록 한다. 면과 같은 소재의 옷을 착용하거나 바람이 잘 부는 환경에서 운동을 하는 것이 권장되는데 바람이 불게 되면 피부가 접촉할 수 있는 공기 분자가 많아져 신체 온도를 적절하게 유지시켜 줄 수 있다.

5. 모든 운동 시간 동안 수분을 잘 섭취한다.

-장시간 고강도 운동을 하게 되면 신체는 온도를 낮추고자 하는 항상성 작용 때문에 많은 땀을 배출해내면서 탈수를 일으키게 된다. 많은 땀 손실은 전해질과 무기질까지도 배출시킨다. 이런 변화는 운동유발성 횡문근융해증을 일으키는 중요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수분과 스포츠 음료의 지속적인 섭취는 신체에서 일어나는 정상적인 수분 대사 작용을 도와줄 수 있다.

6. 적절하고 균형적인 영양섭취가 이루어지도록 한다.

-우리 몸은 운동 시 영양이 부족하면 그것을 인지해서 단백질과 같은 근육의 구성물질을 에너지로 사용하게 된다. 단기간 체중을 감량하기 위해서 다이어트를 하는 일반인이나 보디빌딩, 레슬링, 유도, 체조 등과 같이 극단적인 체중조절이 필요한 종목에 있는 운동선수는 특히 조심하여야 한다. 국내와 국외의 많은 운동유발성 횡문근융해증 사례에서 영양결핍과 관련한 위험성을 강조하고 있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비타민, 무기질 등의 영양소 중 어느 하나 부족하지 않게 잘 섭취하여야 한다.

7. 근육의 스트레스를 보호할 수 있는 항산화제를 섭취한다.

-우리가 운동을 하게 되면 활성산소가 신체 내에서 발생한다. 많은 활성산소는 근육을 둘러싸고 있는 막을 손상시킨다. 운동 이후 비타민 A, C, E 등과 같은 항산화제를 섭취해서 운동유발성 횡문근융해증이 일어날 가능성을 최소화하도록 하자.


                                    (작은 실천이 운동유발성 횡문근융해증을 예방할 수 있다)

운동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운동유발성 횡문근융해증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긴 하지만 쉽게 간과하기 쉬운 부분을 조금 신경써준다면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다. 운동을 하려는 사람들이라면 위에서 제시한 예방 가이드라인을 잘 숙지하도록 하자.   
 
운동은 약이다(Exercise is Medicine)’ 라는 표어가 외국은 물론 국내에서 자주 인용되고 있을 정도로 운동에 대한 관심과 애정, 그리고 참여가 앞으로도 꾸준하게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운동에 대한 맹신과 자만은 금물이다. 운동은 언제나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다. 운동을 하려는 당신이여, 당신의 선택은 앞면인가 뒷면인가.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Tip! 이런 운동이 위험할 수 있다.

1. 마라톤, 트라이애슬론

장시간 고강도 운동으로 알려진 위 두 운동은 운동유발성 횡문근융해증을 일으킬 수 있는 대표적인 운동이다. 이미 외국의 많은 사례에서 보고되고 있으며 특히, 실외의 고온에 쉽게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온도와 옷에 더욱 신경써야 한다. 준비기간 없이 무턱대고 친구나 직장 동료들을 따라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려는 사람들은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2. 보디빌딩

그야말로 몸만들기의 대명사로 알려져 남녀 모두 많은 참여비율을 보이고 있는 운동이지만 근육이
손상될 가능성 또한 높다. 낮은 무게로 몸을 충분히 준비시키도록 하자.

3. 크로스핏

최근 매스미디어의 주목을 받고 있는 고강도 운동 중의 하나이다. 많은 운동량과 칼로리 소모로 다이어트에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히 매력이 있지만 외국에서는 심심치 않게 크로스핏에 의한 운동유발성 횡문근융해증의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고강도 운동이 능사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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