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학수(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연구소장)


소치 동계올림픽이 끝나고 한국과 러시아는 정부 주도의 메달리스트 축하잔치를 열었다.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 이상화, 쇼트트랙 2관왕 박승희, 피겨 은메달리스트 김연아 등이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고 지난 25일 귀국한 한국 선수단은 인천 국제공항 1층 밀레니엄홀 야외무대에서 선수단 해단식 및 2018 평창동계올림픽 대회기 인수 기자회견 행사에 참석했다.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정행 대한체육회장 등 체육계 고위관계자들이 참석한 귀국 환영행사에서 메달리스트를 비롯한 선수단은 따뜻한 환영과 축하를 받았다. 유진룡 장관은 이날 행사에서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한 선수들을 비롯한 모든 선수들이 대한민국의 국위선양을 위해 많은 공헌을 했다. 이제 세계의 이목이 평창에 집중된다"며 "정부는 평창 올림픽을 통해 한국이 동계 스포츠 강국으로 올라설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축하행사는 여느 때처럼 통상적인 것이었다. 이번에는 올림픽 2연패가 유력시됐던 김연아의 석연치 않은 러시아측의 판정 담합의혹으로 국민 여론이 비등한 가운데 열린 귀국 환영행사에서 관심을 더 모았을 정도이다.



한국 선수단의 귀국 환영행사가 열리기 하루전인 24일,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소치 올림픽에 출전한 자국 대표팀과 메달 수상자들을 모아 연회를 베풀면서 러시아로 귀화한 빅토르 안(안현수)를 포함한 49명에게 각종 훈장을 수여했다고 러시아 언론들이 보도했다. 이 중 빅토르 안이 받은 훈장은 경제-사회, 과학-기술, 문화-예술-스포츠 등의 분야에서 탁월한 기여를 한 사람에게 수여되는 ‘제4급 조국공헌 훈장’으로 알려졌다. 특히 푸틴 대통령은 빅토르 안에 대해 “특별한 언급이 필요하다”며 “쇼트트랙의 탁월한 거장인 빅토르 안이 러시아 대표로 출전해 우리에게 4개의 메달을 안겨주고 수백만 명이 쇼트트랙을 사랑하게 만들었다”고 극찬했다. 러시아로 귀화한 전 한국 국가대표 안현수는 소치 동계올림픽 남자 쇼트트랙에서 500m, 1000m, 5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1500m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며 러시아가 대회 종합 순위 1순위를 차지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러시아에서 한국인 메달리스트들가 포함된 환영행사를 보면서 필자는 전혀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 이미 세계 스포츠 강국으로 자리잡은 한국 스포츠의 세계화를 확인하는 순간이라고 해야할까. 그렇게 받아들이기에는 썩 개운치 않은 뒷맛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필자는  이러한 상황을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만들어진 결과물로 받아들이고 이를  한국 스포츠 사상 전례없는 ‘패러다임적 전환’으로 명명하고 싶다. 예전같으면 상상 할 수도 조차 없었던 일들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한국 국가대표 선수가 국적을 초개처럼 버리고 러시아 국가대표가 된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올림픽 시상식에서 러시아 국기에 예의를 표하고 러시아 국가를 부르는 빅토르 안을 보는 것 자체가 큰 충격이었다. 그동안 한국인들은 국가대표들이 국가를 위해 출전, 국위를 선양하는 것을 국가를 위해 하는 당연한 덕목이자 책무라고 여겨왔으니까. 한국에서 국가대표는 국가의 숭고한 목적과 개인의 이상을 실현하는 수단이었다. 이러한 기존 사고의 틀을 일거에 무너뜨린 빅토르 안은 한국인들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대표란 무엇인가? 국가와 개인은 어떤 관계인가? 등의 국가와 관련된 이념과 가치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전면 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빅토르 안은 한때 안현수라는 한국이름을 갖고 한국 쇼트트랙을 세계무대에서 빛낸 불세출의 스타였다. 고교 시절 천부적인 재능을 일찌감치 인정받아 국가대표로 선발된 안현수는 2006년 토리노 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를 따내며 역대 올림픽 사상 최고의 스타로 화려한 스타덤에 올랐다. 그러나 지난 2010년말 고질적인 부상으로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한 안현수는 소속팀인 성남시청 마저 해체되며 오갈데 없는 신세가 됐다. 러시아 빙상연맹의 부름을 받은 것은 이때였다. 정상적으로 선수생활을 할 수 있는 여건과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러시아 빙상연맹의 제의는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동력이 됐다. 쇼트트랙 선수로서 백년에 한번 나올까말까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안현수는 이름을 빅토르 안이라는 러시아식으로 바꾸고 부상재활훈련을 본격적으로 쌓으며 소치 동계올림픽을 대비했다. 빅토르 안은 세계선수권대회 등 각종 국제대회에 출전, 여러 메달을 획득하면서 전성기 시절의 재현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마침내 벼르던 소치 동계올림픽은 빅토르 안를 위한, 빅토르 안에 의한, 빅토르의 대회였다. 빅토르 안이 금메달을 연일 따내며 쇼트트랙에서 원맨쇼를 펼치자 러시아 언론은 “빅토르 안은 우리의 새로운 영웅이다. 소치의 최고 스타이다. 빅토르 안만큼 러시아를 빛낸 선수는 없다” 며 찬양일색으로 대서특필했다. 


빅토르 안의 위용에 가려 단 한 개의 메달을 획득하지 못한 남자쇼트트랙의 부진으로 쓸 꺼리가 궁했던 한국 언론에게 빅토르 안은 최고의 소재였다. 중앙일보는 ‘프리랜서 올림피안, 빅토르 안’, ‘도전받는 올림픽 국가주의’ 등의 제목을 달고 빅토르 안에 대해 상세하게 보도했으며 여타 신문과 방송 등도 큰 관심을 갖고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전했다. 한국을 떠나 러시아로 귀화한 것은 고질적인 한국빙상의 파벌싸움 때문이었다고 밝힌 빅토르 안과 그의 아버지가 한 예전의 인터뷰가 새삼 여론의 도마위에 올랐다. 박근혜 대통령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업무보고에서 “안현수 선수가 쇼트트랙 선수로서 최고의 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나라에서 선수 활동을 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며 “안 선수의 문제가 체육계 저변에 깔린 부조리에 따른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밝혀 본격적인 그의 국적귀화문제를 쟁점화했다. 이는 온라인상에서 험난한 여정과 부상의 고통을 극복하고 러시아의 영웅으로 부상한 빅토르 안에 대한 응원과 위로 격려가 줄을 잇게된 여론을 감안한 것이다.

한국언론과 여론의 빅토르 안 ‘영웅만들기’는 국가대표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기제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국가주의를 우선하는 과거의 이념과 가치 기준으로 본다면 조국을 버리고, 그것도 한때 적성국으로 여겨졌던 러시아로 귀화한 빅토르 안은 ‘국가의 적’이며, ‘공공의 적’이었다. ‘배반자’, ‘변절자’, ‘매국노’ ‘만고역적’ 같은 섬뜻한 단어들로 일방적으로 호도될만했던 것이다. 하지만 매도하고 비난하기보다는, 칭찬하고 격려하며 그를 영웅으로 치켜세웠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유도에서 일본 국가대표로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걸은 추성훈 경우만해도 직접 비교하기는 어려워도 빅토르 안과 같은 뜨거운 격려를 받지 못했다. 국내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탈락한 뒤 일본으로 귀화한 추성훈은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동포라는 점과 오랜 숙명적인 국가적 관계를 안고있는 일본이라는 점 등이 작용한 탓일 것이다.


소치 동계올림픽 기간중 나타난 러시아 이름 빅토르 안, 한국 이름 안현수에 대한  패러다임적 인식전환을 기회로 한국 사회에서 언론, 여론, 정치인 등 이른바 주도적 공론장을 형성하는 인식의 공간에서 국가대표라는 개념이 어떻게 형성됐고, 현재 어떻게 이해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지를 살펴보면서 한국스포츠의 심층을 들여다 볼 것이다.   


(②편에서 계속: http://www.sportnest.kr/2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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