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44

 

글 / 조아라 (국민체육진흥공단 국제스포츠인재양성 해외연수생)

 


안녕하세요! 2017 US Open의 2부 기사를 이어가게 된 국민체육진흥공단 GLSP(Global Sports Leadership Program) 9기 해외 연수생 조아라입니다.

 

1부의 내용은 대회 소개 및 경기장 입장까지의 과정이었고, 지금부터는 경기 결과 및 경기장 내부 및 외부에 대한 설명으로 기사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앞서 1부에서 언급했던 것과 같이 이번 2017 US OPEN은 겨루기와 품새 모두 세계태권도연맹이 승인한 올림픽 출전 랭킹점수가 부여되는 G2 대회로 높은 수준의 경기이며, 최근 개정된 겨루기 경기규칙과 선수 본인이 창작한 품새를 음악에 맞추어 겨루는 종목인 프리스타일 품새 종목이 추가된 대회로써, 주의 깊게 봐야할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겨루기는 미국, 품새는 한국과 대만, 아시아권 국가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이에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낸 원동력과 대회와 미국 태권도의 의미를 알아보고자하여 남·녀(개인/페어/단체)를 통틀어 품새 종목에서 가장 많은 메달(12개)을 획득한 대만 대표팀의 이진호 감독(용인대 졸업)과 주최국이자 겨루기 종목에서 강세를 보인 미국 대표팀의 진정환 코치(이글태권도)를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먼저, 이번에 대만 국가대표 감독으로 새로 부임한 이진호(용인대 졸업) 감독에게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낸 원동력을 알아보기 위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대만 국가대표 감독으로 새로 부임한 이진호(용인대 졸업) 감독과의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낸 원동력을 알아보기 위한 인터뷰 내용입니다.

 

6-1. 대만 국가대표 품새 감독 인터뷰 - 이진호

 

(제26회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태권도 국가대표-금메달, 제6회 코리아오픈국제태권도대회 단체전-동메달, 대만 국가대표 품새 감독)

 

① 현재 대만에서 태권도 인지도는?
- 대만의 태권도는 현재 겨루기, 품새 모두가 일찍부터 활성화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선수층이 두껍고, 대만의 겨루기는 이미 많은 여자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이 존재하고, 국제무대에서도 인정받고 있습니다.

 

② 이진호 감독만의 훈련 방식은?
- 많이 경험해보는 것이 중요하고, 연습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대만에 와서 선수들을 보았을 때, 지금도 잘하고 있지만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많은 훈련량과 다양한 대회 참가 경험을 통해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루 발차기 500번, 기본동작, 품새, 자기 정비 시간(1:1 코치와 선수의 피드백 시간), 개인 연습시간(온전히 자기 자신의 개인 연습시간)등을 통해 단체 및 개인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많은 선수들이 학생선수이기 때문에 학기 중에는 오후/저녁, 방학기간에는 오전/오후/저녁 다소 부담이 될 수도 있는 빠듯한 훈련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으며, 슬럼프에 빠지지 않도록 꾸준한 동기부여를 해주고 있습니다.

 

③ 앞으로의 계획?
- 이번 대회에서 훌륭한 기량을 발휘해 준 친구들 덕분에 목표한 메달 수보다 많은 메달을 획득해 기분이 좋은데요. 일단 오늘은 즐기고 싶습니다. 그리고 대만에 돌아가면 계속해서 바뀌는 채점 기준과 트렌드에 맞추기 위해 기본훈련에 집중할 것이며, 다가오는 아시안 게임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또한 힘들게 운동한 만큼 좋은 성적을 내어 기쁨을 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저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은 미국 국가대표 코치 진정환 사범님을 통해 미국 내에서의 태권도에 대한 인식을 알아보겠습니다.

 

6-2. 미국 국가대표 품새팀 코치 진정환 사범

 

(페루 세계대회 미국 국가대표팀 코치 / Eagle Taekwondo Califonia Grand Master)

 

① 2017 US OPEN의 의미는?

우수한 선수들과 꾸준히 나오는 선수들이 많아 선수층이 두꺼운 경기입니다. 또한 올해 시합이 더욱 의미 있는 이유는 겨루기 종목에서 개정된 경기규칙과, 품새 종목에서 G2로 승격된 큰 변화 때문에 더욱 의미 있는 경기였습니다. 더불어 선수들에게 있어서도, 국제 시합 경험과 올림픽 무대로의 발판이 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② 미국 태권도만의 강점은?

태권도가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더 많은 사범과 수련생들이 전 세계적으로 뻗어나가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그 중에서도 미국은 태권도 보급이 가장 많이 된 나라 중 하나로, 초창기 원로 선배님들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각 주/도시별로 네트워크 형성이 잘 되어 있다는 강점이 있습니다.


③ 수련생들에게 동기부여 방법?

선수 자신이 직접 동기 부여를 받고, 필요에 의한 참여를 하게 도와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달리 미국은 조금 더 즐기는 스포츠를 추구하기 때문에 스파르타보다는 조금 더 자율적으로 훈련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들이 좋아서 하는 선수들이 많고, 대표팀의 경우에도 지원을 받지 못하더라도 사비를 들여 경기에 참여하는 등의 의지를 볼 수 있습니다.

더불어 미국에서의 태권도는 정신적인 것과 비전을 보여주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운동하기 때문에 선수들에게 왜 선수가 훈련을 원하는지 그리고 이를 통해 얻고자하는 목표설정을 명확히 하도록 하고 그 과정 뒤 비전을 통한 새로운 길을 보여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도자는 선수가 이러한 동기부여를 받을 수 있도록 옆에서 다양한 기술뿐 아니라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대회 결과 및 인터뷰에 대해 소개했다면, 지금부터는 부대시설(시상식, 메디컬 센터, 용품점 등) 그리고 경기장 한 편에 자리 잡은 미디어와 스폰서에 이르기까지 대회 진행 간 직접 경험했던 경기장 안팎의 환경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7. 시상식

 

시상식은 메인 경기장 기준 시합장 맨 왼쪽에 위치해 있었으며, 각 체급 및 종목별로 메달을 시상해주고 있었습니다. 대회 종료 후 열린 공간에서 시상식이 진행되는 한국과 달리 각 부문(겨루기 체급별, 품새 종목별)의 순위가 선별되면 닫힌 공간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과 축하를 나누기 어려웠지만 시간단축과 조금 더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시상이 진행되었습니다. 이외에도, 시상식 포토 존 밖에는 포토 프린트 존이 마련되어 있어, 원하는 배경과 사진을 자신이 직접 선택하여 유료로 프린트 해주는 서비스를 통해 선수들에게 또 다른 추억을 선물하고 있었습니다.

 

 

                                                         시상식 배경                                                      메달(왼쪽부터 금/은/동)

 

                                                          대회 시상                                                           시상식 주변 포토존 1

시상식 주변 포토존 2

 

8-1. 부대 시설

 

2017 US OPEN은 선수 대기실과 계체시설, 심판석, 장비 검사실, 메디컬센터, 12개의 시합 코트, 중앙본부 등의 대회 운영에 꼭 필요한 적정시설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리조트’를 경기장으로 사용함으로써 편의 시설 이용이 편리하였습니다. 또한 경기장과 관람객석이 한 층에 같이 위치해있어 조금 더 경기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관광도시에서 개최함으로써 교통 및 유동인구가 많아 대회 활성화에 기여하였습니다.

반대로 아쉬웠던 점은 전용 경기장이 아닌 리조트 시설을 사용함으로서 경기 필수 시설이 미흡하였습니다. 또한, 각 리조트 계약 만료시 경기장으로 사용할 리조트가 고정되지 않아 다소 불편할 수 있으며, 홍보의 미흡으로 일반인들에게 인지도가 높지 않았습니다.

 

8-2. 메디컬 센터

 

아래는 메디컬 센터의 사진으로 본 대회는 메디컬 시스템이 잘 되어 있었습니다. 한국의 경우 메디컬 센터가 경기장 내에 위치해 있지만, 테이핑의 경우 유료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미국의 경우에는 메디컬 센터 내에 카이로 프랙틱(수기 치료사), 테이핑, 정형외과 닥터 등 각 분야의 담당자들이 대기하고 있었으며 부상자 관리를 담당하였습니다. 또한 2개 코트마다 메디컬 닥터 1명, 응급처치 도구 및 스태프들의 배치와 신속한 처리는 선수들에게 안전과 부상예방을 제공하였습니다.

 

 

                                                  메디컬 센터 외부                                                          메디컬 센터 내부1

 

                                                                         메디컬 센터 내부2                                        메디컬 팀

 

8-3. 용품점

 

다음으로, 경기장 밖에 위치한 용품점에는 WTF(World Taekwondo Federation) 규정 도복과 서적 외 다양한 머천다이징 상품들이 판매되고 있었습니다. 중앙 홀을 지나 선수등록과 계체 시설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용품점, 수선&마킹 존이 위치해 있었습니다. WTF의 공식 겨루기, 품새 도복 진열 및 태권도 용품, 서적, 장비, 도복, 악세사리(키링, 패치, 메달, 핀 등) 판매와 수선, 띠와 유니폼에 자신의 이름을 마킹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일정 금액 지불 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었고 선수들과 일반 관람객들이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WTF 공식 유니폼 진열(용품점 전면)                                          용품점의 전반적인 배치

 

                                                    태권도 관련 서적                                                             머천다이징

 

9-1. 미디어 존

 

미디어 존은 선수대기실, 장비 점검실 및 중앙 본부석과 인접해 있었습니다. 메인 경기장은 12개의 코트 중 유일하게 높이의 차이를 두어 다른 경기 코트보다 높게 올라와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또한 US OPEN 라이브 서비스를 통해 대회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http://www.teamusa.org/USA-Taekwondo/Features/2017/January/30/Watch-US-Open-2017-LIVE

 

 

9-2. 스폰서십

 

이번 US OPEN대회는 7개의 스폰서십이 있었으며, 리조트를 경기장으로 사용하여 편의시설 및, 대회 붐 조성, 관광 등을 보다 활성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메인 경기장 설치 배너                                                       US OPEN 배너 1

 

                                                                   US OPEN 배너 2                                                        US OPEN 배너 3

 

                                                    US OPEN 배너 4                                                           US OPEN 배너 5

 

                                                                  US OPEN 배너 6                                                           US OPEN 배너 7

 

10. 결론

 

국내 대회와 비교한다면, 16년 경주 코리아오픈의 경우, 경찰, 소방, 병원 등 유관기관 업무협의를 통해 안전한 대회진행을 위해 노력했고 380여명의 안내공무원, 자원봉사자, 서포터즈를 통해 참가선수들을 지원하여 선수와 관람객들을 위해 봉사하였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관광명소 중 하나인 경주의 특징을 살려서 개최한 대회였습니다. US OPEN의 경우, 따로 자원봉사를 선발하지 않고 미국, 국제 심판 자격을 가진 심판들이 자원봉사를 통해 대회에 기여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리조트를 경기장으로 사용하여 편의시설 및, 대회 붐 조성, 관광 등에 보다 활성화시킬 수 있었으며, 선수와 관람객들에게 친화적인 대회였습니다.

 

2부를 마치며,

 

“US OPEN”이지만 전 세계 태권도인 누구에게나 참가의 기회가 열려있으며 모두가 함께 참가와 관람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이번 시합을 보며 깨달았던 점으로는 한국과 미국 시스템의 장점을 적용하고 보완하여 선수들과 여러 사람들이 오래 머무를 수 있는 시합장이 되도록 하는 것이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할 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또한, 자신의 경기가 끝이 나고 선수가 곧바로 퇴장하는 것이 아니라 축구와 야구처럼 즐겁게 경기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할 수 있는 다양한 볼거리가 많은 시합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습니다. 이는 앞으로 우리 태권도인들이 함께 풀어나가야 할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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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링국가대표 정명수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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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등학교때 이양반한테 볼링 배우면서 참 많이 두들겨 맞고 쌍욕도 많이 먹었었는데... 요즘선수들한테 그렇게하면 뉴스에 나오겠죠

1탄 # [리듬체조 국가대표팀] 이경희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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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슈 국가대표인터뷰 2탄 ★ 안희만 감독 & 김태호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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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다. 국가대표로서 시드니올림픽 은메달,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영광을 얻었고 지도자로서도 경험을 쌓았다. 또한, 상임심판 교육과정에 참여하게 되어 치열하게 세상에 부딪힐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필사즉생 필생즉사,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하면 죽을 것이다, 김정철 심판에게 가장 어울리는 말이지 않을까.

 

# 필드하키선수에서 심판이 되기까지 

 

33살에 은퇴 후 3개월간 말레이시아에 용병으로 있었다. 그 후 한국체육대학교에서 5년 동안 지도자로서 입지를 다졌고, 2009년부터 심판을 시작했다. “지도자 대부분이 심판이었어요. 지도자로서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심판을 도전하게 되었고, 2014년 상임심판이 되었습니다.”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키에서는 상임심판이 단 2명이다. 대한하키협회에서 상임심판 선별 시 자체기준을 강화했기 때문에 상임심판이 된다는 것 자체가 어렵고 힘들다. 김정철 심판은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전 국가대표, 김정철 심판)

 

# 국제심판 양성사업 상임심판 전문교육과정을 듣고 생각했다. 이거다..!

 

체육인재 육성재단 홈페이지에서 상임심판관련 정보를 찾고 주변의 권유도 받으면서 교육과정에 입문하게 되었다. 심판이 되기까지 맘고생이 심해 이미 지친상태였다. 그런 그에게 동기부여와,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해주어 변화를 만들 수 있었다고 했다. “위기대처 방법과 self leadership 수업은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고, 협상과 인내를 통해 긍정적으로 상황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어요.”라고 말했다. 또한, 영어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외국에서 진행되는 경기와 세미나에서는 의사소통이 필수적인데 재단에서의 영어교육은 유명학원에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질적, 양적 모두 뛰어났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그 말을 뒷받침 하듯이 교육과정에서 영어우수상을 받기도 했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2기 교육과정에도 꾸준히 참석하며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 “재단의 영어선생님들, 장형겸 과장님, 그리고 직원 분들에게 감사하다고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좀 더 나은 저를 찾는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특히, 에리카 선생님, 글로리아 선생님, 그리고 릴리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재단의 교육과정을 좀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것 같다며 진한 아쉬움을 남기면서 그는 다시 교육을 받으러 돌아갔다. 상임심판님들의 열정을 누가 말릴 수 있을까..

 

# 대한민국 필드하키 위상에 걸맞지 않는 인기..

 

(출처: Sports muntra/ 여자 하키 대표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시점으로 필드하키는 상승세에 올랐다. 그 후,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남자팀의 은메달로 인기는 최고조로 도달했다. 그러던 것도 잠시 2000년 이후 성적과 무관하게 인기가 하락세로 접어들었고, 많은 중학교, 고등학교 팀의 해체로 위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여자 필드하키는 강세이며 월드리그 여자 3라운드 대회 및 올림픽 예선전에서도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다가오는 2016년 리우올림픽 티켓을 이미 획득한 여자팀에게 선전할 수 있도록 응원과 사랑을 보내주었으면 좋겠다.


한국의 경기력에 걸맞게 지변을 넓히기 위해서 대한하키협회는 유소년을 대상으로 장비후원과 주말리그를 시작하였다. 시, 도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하였고 서울시 시장기가 다가오는 주말에 열린다. 보통 중학교부터 하키선수로서 시작하는데 그 전에 흥미를 유발하는 것이 최대의 목적이다. 특히, 부상을 예방하기 위해 스틱과 공도 안전하게 제작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걱정되는 것이 장비 문제였다. 중학생, 고등학생이 사용하는 하키스틱은 평균 30-40만원이고, 고등부 이상은 40-50만원을 호가한다. 하지만, 걱정과 무관하게 각 학교 또는 소속팀에서 모두 후원한다.

 

# 심판이면 다야?

 

그렇다. 선수, 지도자, 관중, 그리고 심판이 있어야 경기의 완전체가 된다. 무엇이든지 하나가 빠진다면 탄산이 빠져버린 콜라와 같다. 그런데 웃기다. 잘해도 본전, 못하면 욕먹는 사람이 심판이다. 종목과 상관없이 심판의 고충은 항상 같다. 여기 저기 요구를 다 듣다보면 공정하고 정확한 심판을 내리기가 힘들어지고, 결국에는 공공의 적이 되어 있기도 하다. 물론, 심판도 사람인지라 오심이 나올 수도 있고 실수할 수도 있다. 그만큼 노력해야 하는 것도 심판의 몫이다.

 

 심판들도 선수들이 실수하기만을 기다리지 않을뿐더러 응원하고 아낀다. “냉정한 판단만이 아닌 공명정대한 조력자가 되고 싶어요.”라고 김정철 심판은 말했다. 누구보다 선수들을 이해할 수 있는 그이기에 항상 마음이 쓰인다고 했다. 이렇게 힘든 순간도 있지만 보람 있는 순간들이 더 많다. 경기가 종료된 후 지도자와 선수들에게 격려를 받을 때는 세상누구보다 행복감을 맞본다.

 

 


# 국제심판이 되어 메이저급 경기에서 심판을 보는 것이 목표인 김정철 상임심판.
그에게 하키란?

 

하키는 “해리포터의 검은 망토” 입니다. 해리포터가 검은 망토를 둘렀을 때는 아무도 그를 볼 수 없어요. 그는 단지 자기가 해줄 수 있는 일이 할 뿐이죠. 저 역시 검은 망토처럼 보이지 않지만 든든하게 지켜줄 수 있는 조력자가 되고 싶습니다.

 

2016년 리우올림픽에 우리나라 여자 국가대표팀이 출전한다. 그들의 승패와 관계없이 지속적인 사랑과 응원을 가졌으면 좋겠다. 대한민국 하키의 영광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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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태권

 

 

 

  약 1년이 지났다. 작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개인 도마 동메달과 남자 단체전 은메달을 따며 이름을 알렸던 체조 국가대표 박민수(22∙한양대)가 다시 한번 일을 낼 준비를 하고 있다. 박민수는 10월 24일부터 11월 2일까지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세계 기계체조선수권대회에 출전한다.


 주종목인 평행봉과 철봉 이외에 다른 4가지 종목도 두루 잘해, ‘포스트 양학선’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박민수는 지난 7월 국가대표 기계체조 선발전에서 1위를 차지해 이번 세계선수권에 출전하게 되었다. 공교롭게 국가대표 에이스 양학선이 부상으로 인해 참가하지 못한 가운데, 이번 대회에서 단체전 8위까지 주어지는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야 하는 상황이다.

 

가능성을 보인 10년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체조를 시작한 박민수는 올해로 딱 10년차에 접어들었다. 태껸 관장님의 권유로 체조를 시작했다는 박민수는 처음 접하는 체조가 마냥 재미있었다고 한다. 부단한 노력 끝에 체조 명문으로 불리는 수원 농생명과학고에 진학해 기량을 성장시켰다. 고1때부터 국가대표 에 발탁된 그는 2012 중국 푸텐 아시아선수권대회, 2013 벨기에 앤트워프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면서 국제무대 경험을 쌓은 끝에, 작년 아시안게임 단체전 은메달과 개인전 안마종목에서 동메달을 거머쥐었다.

 

인천 아시안게임 도마 동메달을 딴 박민수

 (출처 : 박민수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insu1121)

 

 

힘겨웠던 슬럼프
박민수는 초등학교 때부터 하루 평균 8시간의 연습으로 여행은커녕 학교에서 가는 수학여행, MT, 소풍을 한번도 가지 못했다. 어린 마음에 이런 부분이 아쉬울 법도 하지만, “그만큼 연습을 하면 좋은 선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 정도는 감수해야죠” 라는 말에서 담담함이 묻어났다. 이렇듯 체조선수로서의 프로의식을 가지고 있는 박민수이지만, 그에게도 슬럼프는 힘들었다.


“고등학교 1학년때 국가대표에 발탁 되었는데, 6개월만에 퇴촌 당했어요. 그때 첫번째 슬럼프가 왔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체조가 이제는 성적을 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체조연기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때부터 가진 기량에 비해 대회마다 성적이 잘 나지 않으면서 멘탈이 약한 선수로 낙인 찍혔다.
부상도 박민수를 가만두지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때 손가락 골절로 인해, 주종목인 평행봉과 철봉 연습이 어려웠다면, 고등학교 3학년때는 척추 측만증, 척추 분리증, 척추 전방전위증이 합병증으로 나타나 선수생명이 끝날 위기에 처했었다.


“그땐 정말 (운동을) 그만두려고 했어요. 그냥 생활하는 것 조차 힘들었거든요. 나이가 어려서 병원에서도 수술을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재활을 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어요. 다행히 재활을 하고, 주변 근육이 잘 버텨준 덕분에 체조를 계속 할 수 있었어요.”


박민수는 재활을 하면서, 정신적인 면으로도 성숙해졌다. 성적에 대한 압박감에서 벗어나 실수를 해도 다음에 잘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졌다. 재활을 하면서 뒤떨어졌다는 생각을 덜어버리기 위해 ‘내가 최고다’ 라는 이미지트레이닝을 했다. 또한 작년부터는 선수촌 내 심리 클리닉에 다니면서 마음을 다잡고 있다.

 

롤모델은 우치무라 고헤이
박민수의 롤모델은 일본의 체조 영웅 우치무라 고헤이(25)다. 몸이 뻣뻣한 자신에 비해 훨씬 유연하게 체조연기를 펼치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루 링 평행봉 철봉 도마 안마 가릴 것 없이 고루 잘해 작년까지 세계선수권 개인종합 5연패를 달성했다.

 

          일본의 체조영웅 우치무라 고헤이 (출처: 연합뉴스)

 

 박민수는 우치무라와 2013년 세계선수권에서 만난 적이 있다. 당시 박민수는 개인종합 22위에 그친 반해 우치무라는 금메달을 차지했다. 반면 박민수가 메달을 땄던 작년 아시안게임에서는 우치무라가 불참하면서 대결이 성사되지 않았다. 이번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다시 한번 롤 모델과 경기를 앞두게 된 박민수로서는 각오가 남다르다.

 

박민수의 그림자 지우기

`박민수의 뒤에는 ‘물음표 (?)’와 ‘제 2의 양학선’이라는 단어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작년 인천아시안 게임에서도 상대적으로 우치무라 등 탑 클래스의 선수들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메달을 땄다는 평가도 있다. 올해 열린 광주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도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7위에 머무르며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박민수는 광주 유니버시아드 대회가 끝난 후, 이번 세계선수권대회를 겨냥해 8월에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 출전을 포기하고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데에 집중했다.

 

최근에는, 지난달 열린 전국체전에서 주종목인 철봉과 평행봉 1위를 차지하며, 자신감을 찾았다. 독일에서 전지훈련을 마치고 16일 글래스고에 입성한 박민수는 컨디션 조절을 하며, 현지 적응 훈련중이다. 과연 박민수는 이번 세계선수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수식어를 지워낼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출처 : 박민수 인스타그램 https://instagram.com/minso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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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선우 (스포츠둥지 기자)

 

              어느덧 여름방학이 끝났다. 사상 유례가 없는 혹독한 무더위와 싸워야 했던 올 여름을  학생선수들이 어떻게 보냈을까 궁금하다. 집에서, 학교에서, 훈련장에서 저마다 자신들을 위한 시간을 가진 학생선수들의 여름방학 나기를 알아본다.

 

여름방학 관련 사진 ⓒflicker

 

비시즌?
  다양한 종목 중에서도 학생선수들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홈 앤드 어웨이 리그제로 운영되고 있는 대학 축구, 농구, 배구리그는 방학 동안에는 운영되지 않는다. 즉, 비시즌이란 이야기인셈이다. 그럼 해당 종목의 학생선수들은 완전한 자유일까? 그렇지 않다. 주축이 되고 있는 것은 리그인 것이 사실이나 '제 10회 KBS N 전국 추계 1,2학년 대학 축구대회', ‘2013 프로-아마 농구 최강전’ 등의 대회로 바쁜 생활을 보냈다. 또한 한양대 배구부 등은 상반기에 아쉬웠던 부분을 보완하기 위한 전지훈련 등을 가졌다. 경기대 배구부의 경우에는 비치발리볼 대회에도 참가해 이색적인 경험을 쌓기도 했다. 비치발리볼 대회에 참가한 경기대 문중현(2학년, 라이트)은 “주 종목인 배구를 살려 비치발리볼에 도전하게 되어 새롭고 뜻깊은 경험이었다.”며 소감을 전했다.

 

꿀맛 같은 휴가
  학생선수들에게는 방학이라는 개념보다는 휴가라는 개념이 더 익숙한 듯 하다. 실제로 많은 학생선수들은 상반기 당시, 다가올 휴가를 위해 힘이 들어도 참고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만큼 이들에게 휴가가 가지는 의미는 직장을 다니고 있는 사회인 못지않은 간절함이었다. 대체적으로 학생선수들은 일주일 정도의 휴가를 받았다. 경우에 따라 2차, 3차 휴가까지 받은 학교들도 있었다. 이들은 꿀맛 같은 휴가를 어떻게 보냈을까.

 

- ‘집으로’ 유형
  연세대, 고려대, 경희대 등 많은 운동부들이 수도권에 위치하고 있는 반면, 학생선수들의 출신 지역은 서울에서 제주까지 전국적으로 다양하게 분포되고 있기 때문에 해당 학교에서 고향이 멀어 자주 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나마 근처에 사는 학생선수들은 주말에 받는 외출, 외박 등을 이용해 집을 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1년에 많아야 3번 정도 갈 수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한다. 이에 ‘집으로’ 유형이 가장 많이 나타났다. 가족들과 고향 친구들을 만나며 ‘힐링’을 하고 재충전을 가진 이들은 역시나 집 밥이 최고의 보양식이라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 ‘떠나자’ 유형
  휴가를 2번 이상 받았거나 비교적 학교와 가깝게 살아 자주 집에 방문한 학생선수들은 부산, 가평, 워터파크 등 여행을 떠나 휴식을 취하기도 하였다. 가족, 친구, 선후배, 동기 등 다양한 구성원들로 여행을 떠난 이들은 개인 SNS 계정 등을 통해 행복한 휴가를 보내고 있음을 알리기도 하였다. 유니폼을 입은 모습이 가장 익숙한 학생선수들이지만 각자 사복으로 또래 친구들과 계곡, 바다 등에서 해맑게 웃으며 즐기고 있는 모습은 영락없는 대학생이었다.

 

- ‘숙소가 최고야’ 유형
  휴가 동안 숙소를 지킨 이들도 있었다. 주로 집이 너무 멀거나 재활 운동을 하거나 전력 보강 등의 이유였다. 이들은 보강 운동도 하고 그동안 못 본 프로그램들을 다운받아 보기도 하고 늘어지게 잠도 자보고 평소 규칙적으로 짜여 있는 스케줄과는 다르게 일명 ‘폐인 모드’를 살아보았다며 소감을 전했다. 그러나 이내 휴식도 지겨워 운동을 안 하니 몸이 근질거려 체육관을 향하게 되었다는 이들도 있었다. 천상 운동선수인 것 같다.

 

 

배구 DRAFT ⓒ김선우 

 

두 차례의 드래프트
  방학 기간 동안 졸업을 앞둔 4학년 선수들에게는 인생 최대의 순간이 있기도 하였다. 바로 배구와 야구에서의 드래프트이다. 지난 8월 12일과 8월 26일에 각각 프로배구와 프로야구의 드래프트가 있었는데 학생선수들의 취업 관문이기도 하다. 드래프트를 통해 프로에 입단하거나 대학원 진학, 스포츠 관련 다른 직업 탐색 등 진로를 향한 시간을 갖기도 하는 뜻 깊은 방학이 되었을 것이다.

 

위선양

이번 여름방학에는 대학 학생선수들에게 큰 이벤트가 있었다. 바로 ‘2013 카잔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이다. 대학생들의 올림픽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번 대회에 참가해 배드민턴 등에서 활약하며 종합순위 4위로 활약을 펼쳤다. 이번 대회 배구 종목에서 주전 레프트로 활약한 송명근은 대회 준비를 하면서 대학경기도 함께 소화해야 했기 때문에 힘든 부분들이 있었지만 동료들과 최선을 다해 임했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 경험이었다.”며 소감을 전했다. 이 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제대회 등에서도 대학생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프로팀 선수들과 어깨를 견주며 농구국가대표로 참가한 김민구, 이종현 등은 대학생 학생선수를 대표하여 당당히 국위선양을 하고 돌아와 대학스포츠의 저력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방학의 뜻은 ‘배움을 놓다’라는 뜻으로 휴식기를 뜻하지만 갈수록 높아지는 취업난으로 인해 대학생들은 방학에도 끊임없이 어학, 전공 학습 등을 보강하며 바쁘게 살아간다. 이처럼 학생선수들 또한 다양한 방식으로 여름방학을 보냈고 2학기를 맞이하였다. 선착순 방식인 수강신청을 성공하기 위해 학교 근처 PC방을 찾고, 시간표를 짜는 등 일반학생과 다를 것 없는 대학생들이었지만 대학생의 신분을 유지하면서도 각자의 꿈을 위해서는 짧은 휴가로 대체해 방학을 반납하는 모습까지도 보인 이들을 보며 반성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이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아직은 열악한 점도 많지만 점차 개선이 되고 대학스포츠의 시장이 확대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학생선수들의 하반기 시즌이 시작되었다. 9월 2일부터 진행된 ‘대학농구 플레이오프’와 3일부터 열린 ‘대학배구 추계대회’를 시작으로 많은 대학스포츠가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하반기에도 계속될 이들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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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성철(원종고등학교 교사)

 

           2013년 1월 첫 주 어느 날, 나는 평소의 일상처럼 원종고등학교 방과후학교 체대진학반 수업을 위해서 학교에 출근을 했다가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 사람은 자신을 한 인터넷 뉴스의 기자라고 밝혔다. 그 기자는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는 학생선수에 관한 나의 박사논문을 보았다고 했다. 그리고 공부하는 학생선수에 관해서 나와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하였다. 나는 ‘고교 운동부 감독의 공부하는 학생선수 만들기 실천과정’이라는 연구를 진행하면서 우리사회가 학생선수들로 하여금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도록 지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절감했기에 그 기자의 인터뷰 요청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이 통화를 한 뒤 며칠 후에 인터넷 뉴스 기자는 약속한 날에 내가 근무하고 있는 원종고등학교에 방문했다. 학교의 체육건강부에서 오후 4시부터 시작된 인터뷰는 5시 반이 넘어서야 마무리되었다. 기자는 내가 2010년부터 2011년까지 원종고등학교 사격부 감독으로 재직하면서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는 사격부 학생선수를 위해서 실행했던 노력들에 대해서 질문하였고 나는 최대한 성실하게 대답해주었다. 내가 이야기하는 말을 기자는 빛의 속도로 노트에 정리했다. 나는 일선학교의 학생선수들에게 관심을 갖고서 학교에 찾아와 준 기자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어서 최선을 다해서 기자의 질문에 대답을 했다.


기자와 인터뷰를 마칠 즈음에, 나는 기자로부터 ‘공부하는 운동선수’에 대한 연재기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그 연재기사를 꼭 읽어보고 싶었다. 드디어 오늘 나는 공부하는 학생선수에 관한 연재기사 중에 첫 번째 기사를 읽게 되었다. 그 첫 번째 기사는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고 있는 수영 올림픽 메달리스트 박태환(24, 단국대 대학원), 스포츠클라이밍 리드 종목 세계 1위 김자인(25, 고려대 대학원), 여자 프로권투 최초 8대 기구 통합 챔피언 김주희(27,중부대 대학원)에 관한 것이었다. 기사에 정리되어있는 이들의 학업이야기는 공부하는 학생선수에 관심이 많았던 나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박태환, 김자인, 김주희(출처 : 노컷뉴스)

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2374670

 


기사를 보면 박태환과 김자인은 2012년 3월 석사과정 2학기에 들어가고 두 사람 모두 전공이 스포츠심리학으로 같다고 한다. 그리고 김주희는 교육행정을 전공하고 박사과정 3학기를 들어간다고 한다. 이 기사에서 국내외훈련과 각종 대회 일정만으로도 빠듯해 보이는 세 선수가 두 가지를 병행하는 이유를 ‘은퇴 후 삶을 준비하기 위해서'라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2011년에 교생실습을 하면서 '교수가 되겠다.'는 꿈을 구체화했어요. 대학원 공부는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 중 하나에요." (박태환)

 

"선수생활을 오래 하면서 심리적인 부분의 중요성을 알게 됐어요. 스포츠심리학을 공부하면 은퇴하고 지도자 생활을 할 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김자인)

 

"지금은 세계챔피언이지만 '권투선수'가 평생 직업이 될 수 없고, 은퇴했을 때 진로를 바로 결정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어요." (김주희)

 

 

 최근에 나는 한 국가대표 체조선수 출신의 고등학교 스포츠강사 자살에 관한 기사를 접했다. 그 기사에 따르면, 그 스포츠강사는 한 때 국가대표 체조선수로 활약하며 91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여홍철 선수가 한국 체조역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 같은 날 한국 선수들의 불모지였던 도마 종목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고 한다. 이렇게 그는 엘리트선수로서 한국 체조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으나, 은퇴이후울산지역에서 체조 코치로 살아가다가 최근에는 월 140만원의 임금을 받으며 10월 동안 근무하는 비정규직인 학교 스포츠강사로 불안하고 열악한 삶을 살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엘리트 스포츠 환경은 학생선수들이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많은 스포츠교육학과 스포츠사회학 학자들이 연구를 통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리고 TV 방송국, 라디오, 신문 등의 미디어를 통해서 자주 다른 선진국의 학생선수들이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는 것에 비해, 우리나라의 학생선수들은 학업보다는 운동에 더 집중하면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지적하였다. 이렇게 학업보다는 운동에 집중했던 우리나라의 엘리트선수들은 은퇴 이후에 사회에서 적응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2008년 여름에 방영되었던 KBS 1TV 시사기획 '쌈'은 올림픽 특집 '슬픈 금메달' 편에서는 올림픽 금메달의 영광 뒤에 존재하는 어두운 그림자를 조명하였다. 이 특집 방송은 금메달이 올림픽에 젊음을 바친 선수들에게 빛나는 미래를 주기도 했지만 많은 시련과 좌절을 맛보게 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이들도 있지만 금메달을 따고도 인생의 가시밭길을 피해 가지 못하는 이들도 많았다고 하였다. 이 방송에서는 은퇴 후 사회 적응에 실패하고 방황하고 있는 금메달리스트, 사업 실패와 이혼, 자살까지 시도했던 금메달리스트 등 화려했던 선수 생활 이면에 가려진 가슴 아픈 사연들이 소개되었다. 

 

은퇴이후를 준비하기 위해서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는 박태환, 김자인, 김주희의 사례는 일선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의 수많은 학생선수들에게 좋은 귀감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공부와 운동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자하는 스포츠 스타들이 더 많아지길 기대한다. 그리고 이렇게 학업과 운동을 묵묵하게 병행하고 있는 스포츠 스타들에 대한 소식들 더 많이 들을 수 있기를 바란다.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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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 전국체육교사모임에서 '스포츠 진로교육'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는데, 우연히도 바로 오늘 이 글이 스포츠둥지에 올라와 반갑네요! 60분이 넘는 체육교사들이 부족한 저의 강의를 경청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체육교사들과 코치를 포함한 운동부 지도자들이 앞장 서서 공부하는 학생선수를 만드는데 함께 힘을 기울였으면 좋겠습니다.

  • muo2 2013.01.23 18:38 신고

    언제나 선생님의 노력을 보면서, 느끼는 점이 많은 사람입니다.
    언제나 응원합니다.^^

  • 모두 모두 감사합니다! 공부하는 학생선수 문화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는 않겠지만, 스포츠둥지를 비롯한 많은 단체, 학자, 교사, 코치들의 노력과 학생선수와 학부모들의 노력으로 공부하는 학생선수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안녕하세요. 개방형 포털 'zum.com' 입니다.

    본 포스트가 beta.zum.com의 스포츠허브에 2월 28일 09시에 소개되어 알려 드립니다.
    만약, 노출을 원하지 않으시거나, 저작권 문제 등이 우려되신다면 아래 고객센터로 문의 바랍니다.

       zum 고객센터 - http://help.zum.com/inquiry/hub_zum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 thwls 2013.04.26 02:08 신고

    잘보고갑니다! 원종고등학교가 두 곳이 있는데 어느곳에 있는 학교인가요? 부천?

 

 

 

글/ 김동현

 

 

        이 글은 “어느 한 운동선수의 삶과 그 의미”를 전제로 시작한 네 번째 이야기이다. 이 글에서는 가까스로 실업팀에 들어간 그의 경험을 토대로 그려진다.

 

 

 

 

 

실업선수에서 실업자가 된 나: 새로운 시작, 그리고 운동선수로서의 삶의 끝
실력으로 들어가기보다는 대학교 감독님과 코치님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실업팀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짧다고 하기에는 너무 길게 느껴진 1년 3개월을 보내게 되었다. 대학졸업 이후 바로 실업팀으로 들어갔던지라 나이도 가장 어렸고, 대학 4학년 최고 대장에서 다시 막내의 생활이 시작되었기에 더욱 그랬다. 실업팀에 가면 이런 위계질서에서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실업팀에는 학창시절 때와는 다른 위계질서가 존재하고 있었다. 학창시절에는 입학을 하면 3년이나 4년간 무난하게 생활할 수 있었지만, 실업팀은 당장 그 다음날에도 해고될 수 있었다. 아니 쫓겨날 수도 있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그 실업팀에서 나의 직급은 계약직 8급이었기 때문이다. 팀의 모든 선수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반 이상이 계약직 8급이었다. 

 

나: 형, 계약직 8급이 뭐예요?
팀 선배: 그것도 모르냐? 한마디로 일용직이야. 그래서 우리 사원증에는 직급이 없는 거야. 좋은 말로 계약직 8급이지 알바 같은 거야,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다는 말이지
나: 그런데 oo이 형 사원증에는 계약직 5급이라 적혀있던데요. 왜 우리랑 달라요?
팀 선배: oo이 형은 국가대표잖아. 메달도 많고, 너도 국가대표가 되거나 대표선발전 입상하면 계약직 될 수 있어. 그러니까 열심히 잘해. 제일 먼저 쫓겨나기 싫으면 감독이나 코치들한테도 잘 보이고.......   

 

실업팀에서의 또 다른 위계질서는 바로 이런 것이었다. 당연히 시합에서 꾸준히 메달을 따는 사람들은 열외겠지만, 그 외의 사람들은 언제든지 퇴사의 가능성을 가지고 운동선수로서의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마치 약육강식이라는 위계질서에 따라 적자생존의 법칙이 존재하고 있었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대학교에서 실업팀으로까지 올라갈수록 선발하는 인원이 줄어지듯이, 실업팀에 들어가고 나면 더욱 살아남기가 힘들어지는 것이다. 팀의 선전을 위해서는 잘하는 선수를 영입해야 하고, 잘하는 선수를 받기 위해서는 팀 내에서 제일 실력이 낮은 선수들을 해고해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와 함께 입사한 두 명의 동기 중 한명은 3개월, 다른 한명은 10개월도 채 되지 않아서 권고사직을 당했다.


그러한 삶 속에서 나는 운동보다도 실업팀선수로서 삶의 지속여부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지도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행동했다. 국가대표정도의 실력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경우 대부분이 지도자들의 선택에 의해 해고냐 아니냐가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운동시간에는 지도자들이 잘 보이는 곳에 가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부각시켰고, 운동 외에 시간에는 실업팀의 막내로서 청소, 빨래 등을 앞장서서 하면서 나의 성실함을 부각시켰다.

 

그렇게 나는 1년을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1년 3개월이 되던 봄, 국가대표출신선수가 우리 팀에 들어올 수도 있다는 소문이 들렸고, 내가 나가야 될 때가 됐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몰라도 주위의 형들이나 지도자들의 반응도 평소와는 다르다고 느껴졌고, 나와의 거리를 두고 있음이 느껴졌다. 운동을 마치면 항상 나와 농담을 주고받던 형들은 나를 피하기 시작했고, 나에게 항상 빨래나 청소 등을 매일 지적하던 지도자는 그 선수가 들어온 이후부터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며칠 후, 지도자 중 한명이 나를 사무실로 불렀고, 테이블위에는 종이 한 장과 펜이 놓여 있었다. 나는 그 순간이 아직도 기억 속에 뚜렷하다. 나는 펜을 들고 지도자가 불러주는 데로 적기 시작했다. 그것이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처음 쓰게 된 ‘사직서’이다. 친구들이 이력서를 쓸 때에 나는 벌써 사직서라는 것을 접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운동선수로서 나의 삶은 10년간의 우여곡절 끝에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를 받았고, 나는 바로 짐을 싸서 숙소를 나왔다. 순간적으로 권고사직 당했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고, 인생의 낙오자라는 기분도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동안 운동선수로서 살아온 내 삶에 대한 후회와 앞으로의 나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눈앞을 가렸다. 너무 갑작스러웠고, 사회초년생이었던 나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렇게 실업팀 숙소에서 나와서 내가 처음 찾아간 곳은 선배가 지도자로 있는 운동부기숙사였고, 그곳에서 며칠을 묵으면서 매일같이 술을 마시고 일어나서 다시 또 술을 마시고 그렇게 허송세월을 보냈다.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워야 했지만, 생각처럼 되질 않았다.


“정신을 차려야지!”라고 마음을 먹을 때면 운동선수였던 시절의 기억이 주마등같이 지나갔고, 내가 운동을 그만뒀다는 것이 꿈만 같았다. 그리고 내가 원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쫓겨났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그래도 내 미래에 대해 답을 찾기 위해서 은사님들도 찾아가고 교수님들도 찾아갔지만, 그 누구도 나에게 해답을 제공해주지 못했다.


그렇다고 은사님이나 교수님들이 내가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어야 하는 의무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는 나의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인해 그들마저도 나를 인생의 낙오자로 만든 죄인들로 단정 지으며 원망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앞으로의 삶에 대한 불안과 걱정으로 살아갔고, 걱정이 커지는 만큼 운동선수로서 살아온 나의 10년에 대한 후회감은 더욱 커져갔다.


운동을 하지 말았어야 된다는 생각, 내가 운동을 왜 했을까 라는 생각, 운동을 안했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나는 미래에 대해 방향을 잡기보다는 ‘운동’이라는 그것에 대해 원망하고 스스로 자책하며 시간을 보냈다. 

 

 

 

◆ 이 글은 <김동현(2012). 나에게 운동은 무엇이었나?: 운동선수로서의 삶과 그 의미에 관한 내러티브 탐구. 체육과학연구, 23(2), 343-359.>의 내용을 발췌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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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ㅁㅁ 2015.02.03 23:49 신고

    안녕하세요. 지나가다가 검색하고 들어왔습니다. 지금 제 상태가 위 글에서 김동현님이 실업팀 그만두신 상태라서, 이후에 어떻게 진로를 변경하셨나 문의드립니다..어떻게 마음을 추수리셨는지, 진로는 어떤 기준으로 새로 찾으셨는지 조언 부탁드립니다.

    • 김동현 2017.05.02 15:57 신고

      답변이 너무 늦었습니다. 저는 운동을 그만두고 오로지 안정적인 삶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아직도 찾고 있는 중입니다. 운동선수 그 이후의삶이란 참...힘이 듭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삶도 그리 평탄치만은 않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마음을 추스리고 앞으로의 미래만 생각하는것이 중요합니다. 지나가버린 어두움은 잊고 밝은 미래만 생각하세요. 원하는 답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글/ 김동현

 

       이 글은 “어느 한 운동선수의 삶과 그 의미”를 전제로 시작한 세 번째 이야기이다. 이 글에서는 체육특기자로 대학에 진학한 그의 경험을 토대로 그려진다. 

 

대학교에서의 나: 운동선수로서 삶의 딜레마
중학교 때는 고등학교를, 고등학교 때는 대학교 진학을 목표로 문제없이 달려왔다. 그렇게 내 인생은 성공적이라고 생각했었지만, 대학에 들어와서 나는 많은 갈등을 겪게 되었다. 막상 내가 운동선수 생활을 마치고 뭘 해야 할지, 그리고 운동으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하고 생각했다. 간단하게 국가대표가 되어서 올림픽메달을 따게 되면 나의 진로는 문제없이 해결되겠지만, 나는 그 정도의 실력이 아니라는 것은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야만 했다. 실업팀을 가도 평생 운동선수생활을 할 수 없었고, 코치로 전향한다 해도 그것 역시 처우가 보장되는 직업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고민은 좀처럼 해결되지 않았다. 변명에 그칠 수도 있지만 이러한 고민들로 인해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처럼 운동에 매진할 수 없었고, 운동에 점점 소홀해지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운동을 시작한 것에 대해 후회하게 되었고, 내가 운동을 한 것에 대해 원망을 하기에 이르렀으며, 운동을 시작할 때 더 과감하게 나를 말리지 않으셨던 부모님과 선생님들에게 섭섭한 마음까지 들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원인은 바로 내가 역할모델로 삼을 수 있었던 선배들도 없었고, 나의 진로에 대해 충고를 해주는 지도자들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초, 일찌감치 대학을 갈 수 있는 조건을 구비한 나는 여러 대학들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었고, 그러한 손길에 현혹되어 나는 운동선수로의 대학진학 외에는 아무것도 보지도 않고, 듣지도 않았던 것 같다. 당장 명문대학의 입학을 위해 대학졸업이후의 상황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대학을 결정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나에게 어떠한 충고를 해줬던 사람도 없었다. 내가 모델로 삼을 수 있었던 선배들도 없었다. 나와 같이 여느 다른 선배들도 메달을 따고는 자신을 스카우트 하는 대학 중에서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대학을 선택하기에 바빴고, 나도 그러한 선배들의 모습만을 봐왔기 때문에 그러한 행동들을 그대로 답습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계속해서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었고, 운동을 그만둔 일부 친구들을 보며 부러워하기까지 했다. 운동은 그만뒀지만 사범대학교에 입학해서 졸업하게 되면 체육교사 자격증을 받을 수 있는 친구, 그리고 대학에서 운동선수가 아니라 일반학생으로 미래를 위해 정진하는 친구들, 거기다 덤으로 운동을 그만두고 캠퍼스의 낭만을 즐기는 것을 나에게 자랑하는 친구들까지, 나는 오히려 운동을 그만둔 그들을 부러워하고 있었던 것 같다. 운동으로 인해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없었던 그때의 상황과 운동을 한다 해도 성공이 보장되지 않았던 그때의 삶이 나를 너무 힘들게 만들었다. 

 

운동을 했다는 것에 원망하고 방황을 거듭하던 그때, 더 큰 짐 하나가 나의 어깨를 짓눌렀다. 이것으로 인해 나는 한가롭게 방황에 빠져있을 수도 없었다. 학교에서 운동부들의 경기성적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체육특기자의 인원을 감축한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내가 있던 운동부도 1년 안에 의무적으로 운동부원 중 한명을 일반학생으로 전환시켜야 했고 동시에, 체육특기자로서의 장학금 혜택을 박탈해야 했다. 당시에 누가 나가게 될지는 결정되어 있지 않았지만, 딱히 내놓을만한 경기실적이 없던 나도 유력한 후보 중의 한명이었다.


운동선수로서 삶을 시작한 것이 후회되고, 앞으로의 나의 삶에 대해 갈등도 많이 느끼던 상황이었지만, 나는 가만히 신세한탄에 빠져 있을 수만은 없었다. 무엇보다도 체육특기자 자격이 박탈되는 불명예는 갖고 싶지 않았고, 그로인한 경제적 부담도 안기 싫었다. 그리고 당시 2학년이라 앞으로의 2년이 더 남았었기에 더욱 절실했다. 그런 절실함으로 인해 나는 가까스로 전국대학연맹전에서 3등을 할 수 있었고, 체육특기자로서 2년이 보장받을 수 있었다.


그 이후, 나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여 운동선수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대학원으로의 진학을 결심했다. 그리고 이러한 결심에 대해 감독선생님과 코치님에게 말씀드렸고, 나는 운동보다는 공부에 더욱 치중할 수 있었다. 단, 체육특기자로서 일부 운동과 시합에는 의무적으로 참가해야만 했다.
 
하지만 4학년이 되던 해에 어느 주말, 나의 생각은 다시 한 번 운동으로 기울었다. 부모님께서 함께 등산을 가자고 하셨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따라나섰다. 그때 부모님은 내가 이렇게 운동을 그만두는 것에 대해 겉으로 아쉬움을 표현하시지는 않았지만, 내심 아쉬워하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 이후로, 나도 그동안 운동했던 것이 아쉬웠고, 포기하기 아깝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결국 아쉬운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감독님을 찾아가 운동을 계속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게 됐다. 대부분의 실업팀들이 거의 스카우트가 끝난 상황이었지만 감독님과 코치님의 도움으로 나는 어렵사리 실업팀에 들어갈 수 있었다.

 

 

 

◆ 이 글은 <김동현(2012). 나에게 운동은 무엇이었나?: 운동선수로서의 삶과 그 의미에 관한 내러티브 탐구. 체육과학연구, 23(2), 343-359.>의 내용을 발췌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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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격대 2012.12.06 11:59 신고

    참.. 한 편의 드라마처럼 다음 편이 궁금해지네요.
    빨리 다음 편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저도 이 분야에 관심이 많습니다.
    2009년 체육과학연구원의 연구보고서(2009-09) '학생선수의 진로경로연구' 결과에 의하면, 운동을 시작할 때는 본인의 의지가 40%, 지도자의 권유가 28.9%, 부모님의 권유가 13.3%로 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운동을 그만둘 때는 본인의 의지가 83.9%, 부모님의 권유가 18.3%, 지도자의 권유가 2.2%로라고 합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에 대한 연구도 꾸준히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유격대님 말씀처럼, 학생선수에 대한 연구도 꾸준히 이루어졌으면 좋겠네요. 곧 4편이 게재되고, 5-6편은 다음주 목요일에 게재 예정입니다. ^^

    • 김동현 2012.12.07 12:46 신고

      유격대님 감사합니다. 글을 쓸 때 저의 개인사에 그치지 않을까 많이 고민했었는데...같이 공감하시는 것 같아 기쁨니다. ^^

 

 

 

글/ 김동현

 

        이 글은 “어느 한 운동선수의 삶과 그 의미”를 전제로 시작한 두 번째 이야기이다. 이 글에서는 체육고등학교에 진학한 그의 경험을 토대로 그려진다. 

 

 

 

 

고등학교의 나: 대학진학을 위한 생활, 운동 또 운동
체육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지만, 고등학교 때 나의 모습도 중학교 때와 연일 다를 바는 없었고, 환경마저도 내가 운동만 하기를 도와주었다. 3년간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 조금 부담되기도 했지만, 모든 것이 국가의 지원 아래 무상이었고, 그곳의 교실분위기는 나를 운동에만 매진하게 만들어 주었다. 학교의 건립 취지에 맞게 모두가 국가대표 운동선수를 꿈꾸며 공부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우리에게 수업시간은 새벽훈련으로 인한 피로를 푸는 시간이었으며, 오후운동을 준비하기 위한 휴식시간이었다. 그리고 선생님들도 우리들을 수업시간에 깨워가며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으셨다.


역시 운동만으로 대학에 가는 학생들이라 그랬던 것일까?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학업과 운동을 꿈꾸던 나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중학교 시절에 좋은 고등학교 진학을 꿈꾸듯이, 그때의 나는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를 꿈꾸는 여러 운동선수 중의 한명이 된 것이다.


결국 나는 공부에는 손을 댈 수조차 없었다. 그곳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부끄러움이었기 때문이다. 그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학생들은 다쳐서 운동을 못하는 학생이나, 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운동을 할 생각은 없이 높은 내신 성적을 노리고 들어온 학생들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모든 학교생활을 운동만을 위해서 노력했다.

 

한편, 고등학교 시절, 나에게 찾아 온 변화는 나를 너무 힘들게 만들었다. 운동부내에서의 선후배 관계에 대해서 익히 이야기는 들어왔지만, 중학교시절 운동을 시작할 때는 2학년 말쯤이라 선배의 입장에서 학교생활을 해왔을 뿐, 후배로서의 생활은 감지하지 못한 채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랬던 탓에, 나는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특히 기숙사에서 합숙을 한다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월요일 아침에 일주일간의 옷이나 기타 짐을 싸서 기숙사에 입사해서 토요일까지 일주일간 선배, 동기들과 동고동락했고, 그때의 3년은 내가 집에 있는 시간보다도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이 차지했다. 특히, 1학년 때의 생활은 나에게 너무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다.


새벽 6시에 새벽운동을 나가기 위해 눈을 뜨자마자 선배들을 깨우고, 선배들의 운동복이나 운동화 등을 미리 대령해야 했고, 혹시라도 전날 밤 미리 준비하지 못하고 잠든 날이나, 선배를 깨우는 과정에서 선배의 심기를 건드리는 그날 하루는 꽤나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리고 수업 틈틈이 쉬는 시간에는 선배들이 시키면 선생님들의 눈을 피해 학교 앞 슈퍼마켓으로 달려가 각종 과자나 음료수를 사오는 첩보전을 치러야 했으며, 혹시라도 감독선생님에게 걸리게 되는 날에는 모두 내가 뒤집어 써야 했다. 감독선생님에게 혼나는 것보다도 선배들이 감독선생님에게 혼나 나에게 되돌아오는 화살이 더욱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운동으로 지친 3학년 선배들의 피로를 풀어주기 위하여 스포츠마사지는 기본으로 할 줄 알아야 했고, 마사지를 하면서 선배들의 귀를 기분 좋게 해주는 아부는 센스 있는 후배로서의 기본 조건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이 두 가지를 잘하는 후배는 각종 심부름, 청소 및 빨래 등에서 열외 되는 혜택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학교시절 후배생활을 접해보지 못했던 나에게 이러한 센스는 전혀 없었다. 그랬던 탓에 매일 저녁 심부름, 빨래, 청소 등은 내가 거의 다 맡아서 해야 했다.


야간운동이 끝나면 점호시간 전까지 선배들이 사오라고 시킨 간식들을 모두 사서 들어가야 했고, 이후에는 선배들의 방과 담당구역을 깨끗하게 청소해야 했다. 혹시라도 이 중 한 가지라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그날 저녁은 쉽게 잠들 수 없는 날이 되었고, 눈물 젖은 베개를 베면서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때로는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 나는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동기들과 함께 ‘무단이탈’을 감행하기도 했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 나는 1학년이라는 딱지를 뗄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나는 대학진학에 대한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비록 운동을 시작하기 전, 나의 목표는 공부와 운동의 병행이었지만, 운동을 시작하면서 나는 단지 좋은 상급학교로의 진학이라는 단일목표로 변경하였다. 고등학교진학이라는 중학교 때 목표에 이어,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운동시간에는 어떠한 생각도 하지 않고 오로지 운동에만 집중했고, 공부시간에는 운동시간에 운동을 더 열심히 할 수 있게 잠을 청하였으며, 학업을 포기한다는 것은 운동을 위한 선택이자, 좀 더 나은 상급학교진학을 바라는 나의 당연한 결정이었다. 그렇게 나는 운동에만 매진했고, 남들이 자는 새벽시간까지 몰래 일어나서 경쟁자들을 이기기 위해서 개인운동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운동에만 매진했던 노력에 대한 보답이었을까? 나는 3학년 첫 전국대회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하였고, 내가 가고 싶은 대학을 선택해서 갈 수 있는 권한까지 얻게 되었다. 그때의 심정을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노력에 대한 보답’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적당할 것 같다. 무엇보다도 나는 대학진학을 위한 조건을 만족시켰다는 것에서 많은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더욱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내가 1학년에서 3학년까지 오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봐왔기 때문이다. 입학하자마자 유망주로 코치님들에게 관심을 받아왔으나 결국 메달이 없어서 대학진학을 포기한 선배, 대회 때마다 8강의 문턱에서 전전긍긍하던 선배, 그리고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지만 결국 메달이 없어서 자신이 원하던 대학에 갈 수 없게 된 선배까지 너무 많은 모습을 보았기에, 그때의 1등은 대학진학과 관련된 모든 고민을 떨쳐버릴 수 있게 해주었다. 그때의 1등은 나의 노력에 대한 보답이었고, 나는 그 보답으로 대학생으로의 생활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 이 글은 <김동현(2012). 나에게 운동은 무엇이었나?: 운동선수로서의 삶과 그 의미에 관한 내러티브 탐구. 체육과학연구, 23(2), 343-359.>의 내용을 발췌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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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제갈현승 (스포츠둥지 기자)

 

 

        ‘질문있습니까, 없으면 여기서 수업 마치겠습니다.’ 대학교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종종 들어보았을 것이다. 질문이 없는 수업분위기 때문에 어느 교수님은 가산점을 주어 질문을 독려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이렇게 단편적인 사례만 보아도 한국사회에서 스스럼없이 소통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시각을 스포츠분야로 돌려 보면 ‘소통의 힘’으로 성공한 사례들이 많다.

 

 

10년만에 재회한 히딩크 감독과 TEAM 2002 ⓒ 연합뉴스

 

 

먼저 단체종목을 보자면 2002년 한일월드컵 감독 거스 히딩크는 확실한 의사표현을 요구했다. 히딩크 감독은 선수들이 할 얘기를 가슴에 담아두기 보다는 해줄 것을 원했다. 선수들은 처음엔 히딩크 감독의 주문에도 불구하고 말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말들도 많아졌고 연습 때도 목청 높여 소리를 지르곤 했다. 속에 있는 걸 털어내고 구성원 모두가 가슴을 열어젖혔을 때 조직의 전력은 극대화된다. 또한 히딩크 감독은 자기 전술에 대해 곧이 곧대로 움직이는 선수들을 보면서 크게 화를 내었다. 선수가 창의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감독의 의중대로 끌려간다면 그것 선수의 성장을 멈추게 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감독에게 전술적으로 묻고 의견을 피력하는 것을 좋아했다.

 

또한 이전 대표팀 문화는 식사자리에서 선·후배 테이블이 구분되어 있었다. 히딩크감독은 선·후배를 모두 같은 테이블에다 섞어 놓았고 감독이 자리를 뜰 때까지 선수들은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자연스럽게 선수들 간의 소통하는 문화가 생겼다.


 10년 뒤인 2012년 런던올림픽 축구대표팀도 이 같은 소통 문화가 이어져왔다. 주장에서 감독으로 변신한 홍명보 감독은 선수들이 수동적으로, 기계적으로 축구하는 걸 지양했다.   팀의 중심인 구자철을 중심으로 하여 모든 선수들에게 경기 전날 공평하게 발언할 기회가 주어졌다. 대화가 부족하면 사소한 오해가 생길 수 있는데 이러한 것을 미리 차단하고 팀을 더욱 돈독히 만든 것이다.

 

 

2008년, 2010년, 2012년 메이저대회 3관왕을 휩쓴 스페인 축구대표팀도 마찬가지다. 혹자들은 스페인 대표팀 멤버들 사비와 이니에스타의 화려함으로 대회 3관왕을 거머쥐었다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유로2008 이전에는 스페인 대표팀은 실상 둘로 쪼개졌다. 카탈루냐출신과 스페인출신선수간의 갈등으로 인해 여러차례 불협화음이 일어났다. 하지만 루이스 아라고네스 감독은 이같은 선수들의 갈등을 한데로 묶었고, 부진할 때마다 감독은 선수들을 보호해 주었다. 이러한 감독의 세심한 배려덕분에 선수들은 감독에게 신뢰감이 쌓였고 항상 우승후보이지만 탈락의 고배만 마시던 스페인이 유로2008 우승한 계기였던 것이다.

 

아라고네스의 핵심포인트는 적절한 순간에 필요한 말을 하는 능력이었다.  “감독님은 뛰지 못한 선수와도 이야기를 많이 나누셨어요. 하루는 30분 훈련 뒤에 저를 부르셔서는 저와 같은 포지션에서 뛰었던 자신의 선수생활 일화를 이야기 해주셨어요. 그 이야기는 아주 인상적이었고 큰 도움이 됐어요. 저와 이야기를 많이 하셨죠”  -파브레가스

-서적 ‘스페인 대표팀의 비밀’ 발췌 

 

앤디와 최경주 ⓒ SK텔레콤 조직위원회

 

개인종목으로 가보면, 골퍼 최경주 선수는 2004년 앤디 프로저를 영입하면서 그의 실력이 향상되었다. 앤디와 함께 PGA투어 6승, 종합 16승이라는 쾌거를 얻어내었다. 캐디의 역할은 단순히 골프백만 옮겨주는 사람이 아니다, 선수보다 한발 앞서 코스답사를 해서 전반적인 사항을 미리 파악하고 있어야 하고, 뿐만 아니라 선수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냉정하게 조언하는 역할도 한다. 따라서 선수와 캐디간에는 소통이 원활이 이루어져야 신뢰감이 쌓인다. 또한 선수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잠잘 때는 어떤 자세인지 표정만 보고 그날의 컨디션을 파악할 정도다. 최경주는 캐디에 대해서 ‘경기중에 선수에게 조언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캐디밖에 없다. 코스에서 캐디는 유일한 내 편인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캐디와 선수는 신뢰가 두터워야 되며 상호간의 의사소통이 활발히 이루어져야 됨을 짐작할 수 있다.

 

 

볼코치와 대화를 나누는 박태환 ⓒ 런던올림픽공동취재단

 

박태환 선수의 경우에는 2009년 로마 세계선수권 대회 실패 이후 볼 코치와 만나게 된다. 절치부심하여 2012년 런던올림픽 자유형 400m 예선에 참가하였으나 실격처리되고 만다. 절망하고 있던사이 볼 코치는 조직위로부터 4시간여만에 실격처리에서 판정번복을 이끌어낸다. 그 와중에는 박태환에게 평상시대로 하라고 조언하고 평상심을 유지할 것을 강조해주었다. “예선 때 있었던 일은 빨리 잊자. 이제부터 결승만 준비하자” 선수에게 긍정적인 마인드를 심어주었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무너질 것 같았던 박태환에게 2위라는 성적을 거두게 해주었다. 2009년 이후에 박태환은 일종의 ‘경쟁불안’상태였다. 경쟁불안이란 개인종목에서 많이 일어나는 현상이다. 심리적, 생리적. 신체적으로 ‘남보다 뒤처지지 않을까’하는 경쟁심에서 비롯된 불안이다. 이러한 것을 볼 코치가 심리상태를 잘 해소해 주어 박태환을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다. 현재 박태환은 볼 코치와 함께 2014 인천 아시안게임을 준비중에 있다.

 

 위 사례들 뿐만 여러 가지 이야기들로 감독과 선수사이에서 소통으로 일구어낸 일화들이 많이 있다. 이러한 소통의 문화를 한국 스포츠가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더 발전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100여가지 전술보다 말 한마디의 함축된 힘이 더 클 수 있기 때문이다.

 

 

 

* 참고서적

스페인 대표팀의 비밀, 미겔 앙헬 디아스 지음

코리안 탱크, 최경주 지음

홍명보의 미라클, 국영호 전광열 지음

이기려면 기다려라, 이운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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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아영 (스포츠둥지 기자)

 

            첫날 강의부터 가슴이 뛰었다. TV에서 봤던 잘 생긴 아나운서가 수업을 해 부끄러워 강사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전날 밤을 새고 출석해 내심 졸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흥미로운 강의를 듣다보니 잠잘 틈도 없었다.

 

 

SBS 이승윤 아나운서 ⓒ 이아영

 

 

첫 시간 강의를 맡은 SBS 이승윤 아나운서는 발성법과 표준발음 등 전문방송인으로서 배운 많은 지식을 공유했다. 해설위원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겁먹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갑자기 자기소개를 시키는데……. 괜히 앞에 앉아 있다가 일찍 매를 맞았다. 교정을 시작한지 3개월 차였던 나는 한참 대인기피현상을 겪고 있었다. 입술로 교정기를 가리는 습관이 생겨 소심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그래서인지 목소리에 자신이 없고 몇 개의 발음이 부정확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원래 자신 있게 말을 잘하는데 교정을 하느라 그렇다 고백을 하니 동료 교육생들은 부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교정기를 꼈으니 환하게 웃고 자신 있게 말하라고 용기를 주었다.

 

 

스포츠 미디어 아카데미 2기 개강식 ⓒ 이아영

 

 

체육인재 육성재단이 주관하고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가 교육을 맡은 스포츠 미디어 아카데미 2기 교육은 9월1일부터 시작돼 10주간 실시됐다. 나는 교육생의 일원으로 열심히 교육을 받았다. 매주 토요일을 공부하는데 투자하느라 지인의 결혼식에 못 간적도 있었다.  10주가 지난 지금 되돌아보니 대인기피증 증상은 사라지고 자신 있게 웃고 자신 있게 말하는 습관이 몸에 배었다. 주변에 그런 섬세한 부분까지 신경 쓰는 동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난 5월 개설된 1기 교육생 중 몇 명은 실제 런던올림픽 경기에 해설위원으로 참가했다. SBS에 서울시청 핸드볼 임오경 감독과 삼성생명 레슬링 박장순 감독이 해설위원으로 활약했고, MBC에 핸드볼 홍정호(전 국가대표 선수) 해설위원이 기용됐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인 NAVER 스포츠에서 활약하고 있는 핸드볼 조은희 해설위원 역시 1기 교육생으로서 스포츠 미디어 아카데미 과정을 수료했다.

 

 

SBS 핸드볼 임오경 해설위원 ⓒ 방송캡쳐화면

 

 

이렇듯 1기에는 소위 말해 “잘나가는” 교육생들로 포진되어 있었기에 지원서를 냈던 나는 면접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면접은 잘 봤다고 생각했는데 떨어지니 서운했다. 그러나 1기 교육생 명단을 확인하고 나니 쿨하게 인정할 수 있었다.


이아영 기자! 왜 스포츠 미디어 교육생이 되었나?

 

“이아영씨는 현재 스포츠코칭 대학원생이고...

 체육인재육성재단에서 기자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스포츠 미디어 아카데미도 들으려고요? 너무 욕심이 많은 거 아니에요?”

 

 

 면접에서 이런 질문을 받고는 나는 자신도 모르게 “제가 얼른 커야 하니까요”라고 대답을 했다. 얼마나 당황스러운 대답이었던지 함께 면접에 들어갔던 동료가 나중에 그 얘기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스펙을 쌓고 싶어서 교육에 참가하려던 것이 아니었다. 이 교육은 내 인생에서 필수코스라고 생각했다. 3년 전 나는 스물네 살로 갓 대학을 졸업한 사회초년생이었다. 당시 스켈레톤 국가대표였던 나는 어울리지도 않는 MBC 방송국 스튜디오에 앉아 있었다. 세계선수권 중계라는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지고 해설위원 자리에 앉았다.

 

MBC 해설위원 당시 모습 ⓒ MBC SPORTS 방송 캡쳐화면

 

 

당시 국내에서 스켈레톤에 대한 경험이 있거나 지식이 있었던 사람이 부족하다보니 얼떨결에 하게 되었다. 해설은 꿈에서도 해 본적이 없었기에 어떻게 해야 할 지 눈앞이 캄캄했다.  하지만 막상 큐 사인이 들어오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마음이 편해졌다. 함께 했던 MBC 김완태 아나운서가 대답하기 쉬운 질문을 위주로 잘 맞춰주었기 때문이다. 당시 너무 민망한 나머지 내가 나오는 TV를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다. TV에 나오는 것은 너무나도 재미있고 신나는 일이었지만 좀 더 전문적으로 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그것이 바로 내가 교육에 지원하게 된 동기였다. 그 말을 하고 싶어서 “제가 빨리 커야 하니까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나는 심사위원들을 당황시킨 후 지원 목적에 대해 설명할 수 있었고 앞으로 6년 남은 평창 동계올림픽을 준비하는 개최국으로서 준비된 해설자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 말했다.

 

 사실 아무도 나에게 마이크를 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기회는 준비된 사람이 잡을 수 있다는 말을 믿으며 교육에 집중했다. 맹목적으로 교육을 받은 것이 아니라 ‘나중에 꼭 해설위원이 되면 꼭 써먹어야지’라는 마음으로 임하다 보니 밤을 새고 와도 수업이 지루하지 않았다. 수업은 알찼지만 종종 점심을 먹은 후 수업을 들으며 헤드뱅잉을 하다 딱 걸린 적도 있었다. 책에 침은 안 묻어서 다행이다.

 


“조금 전에 나한테 말한 것처럼 편안히 하면 잘 할 텐데요?”

 

 교육 6주차인 10월 6일의 강의 주제는 <방송 인터뷰론>이었다. 강사는 현재 SBS에서 스포츠 취재부장인 김유석씨였다. 그날의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어떻게 하면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를 잘 할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해설위원이랑 인터뷰랑 무슨 상관이겠냐는 생각을 했었지만 요즘은 해설 중 멘트도 기사화 되는 세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를 할 때 앵글을 주시하면 시청자가 불편함을 느끼기 때문에 인터뷰 기자의 눈을 보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고 했다. 김유석씨의 강의는 나를 집중하게 만들었다.

 

지난 10월 12일 금요일에 방송촬영 일정이 있었기 때문에 6일을 앞둔 그 시점에서 인터뷰에 대한 교육은 내게 사막의 오아시스 같았다. 나는 ‘희망 국민들과의 대화’라는 주제로 KBS, KTV에 방영된 대통령 라디오 100회 특집 방송에 출연했다. 방송을 처음 해보는 것은 아니었지만 스포츠 관련 방송이 아니었고 또 대통령과 함께 공영방송에 출연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김유석 부장의 수업이 모두 끝나고 나는 잽싸게 뛰어나가 내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달라고 부탁했다. 내게 방송의 목적, 출연하는 이유 등을 묻고는 진행자처럼 질문을 시작했다. 편안한 분위기였던지라 하고 싶은 말과 생각을 모두 꺼낼 수 있었다. 그는 내게 “걱정할 것이 없겠다. 조금 전에 나한테 말한 것처럼 편안히 하면 잘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또한 “말을 길게 한다고 해서 방송에 다 나가는 것이 아니다. 꼭 해야 하는 말을 메모해두고 필수적인 대답만 하는 것이 좋겠다”라는 조언을 했다. 그 덕분에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차분하게 방송을 마칠 수 있었다.

 

 

청와대 상춘제 앞에서 진행된 “희망 국민과의 대화” 촬영 당시 ⓒ 이아영 

 

수업을 듣는 10주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멘트는 바로 “해설은 발로 하는 겁니다”라는 말이었다. 전KBO 사무총장 하일성 해설위원은 해설을 하면서 깨달은 사실은 현장에서 발로 뛰며 많은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청자가 봐도 뻔히 알 수 있는 내용을 설명하는 것은 해설위원이 아닌 캐스터의 역할이다. 해설자는 전문가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보다 전문가적인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여러분 미안합니다. 앞으로 3주 동안 못생긴 제 얼굴만 봐야 합니다.”


전 KBS 캐스터 유수호씨가 한 말이다. 우리는 7주간의 이론 강의를 들은 후 남은 3주를 해설 실습을 하는데 보냈다. 3주 동안 유수호 전 캐스터와 보내야 한다는 사실에 교육생들은 기뻐했고 그는 두 손을 곱게 모아 미안하다고 했다. 이유는 못생겼기 때문이었다. 얼굴 표정 하나 안 변하고 유머를 날리는 바람에 교육생들은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빵! 터졌다. 스스로 못생겨서 미안하다 말했지만 수료하는 교육생들에게는 단연 인기스타였다.

교육생 이광섭씨와 유수호씨의 모습 (좌) 수료식 장면을 페이스북에 업로드 하고 있는 유수호씨의 센스 (우) ⓒ 이아영

 

 

해설 실습을 한 첫 날에는 유수호씨가 캐스터 역할을 해주고 교육생들은 해설자 역할을 했다. 준비를 잘해온 몇몇 교육생들은 당장 현장에 투입해도 될 것 같다는 찬사를 받았다. 반면 준비가 미흡했던 교육생들은 실습에 앞서 자신감이 없었다. 그러나 유수호씨는 전문가였다. 상대방이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은 피하고 언제 질문 받아도 편안히 답변할 수 있는 질문을 했다. 전현직 해설가도 있고 앞으로 해설가를 꿈꾸는 교육생들도 있었다. 마치 진짜 해설을 하는 느낌이 들어서 너무 설레었다는 반응이 많았다.

 

 

여성캐스터 탄생시대가 온다! 

 2주차에는 교육생들이 짝을 이뤄 한 명은 캐스터, 한 명은 해설자 역할을 하도록 했다. 이 날 나는 사격 국가대표 출신 한혜경씨와 함께 2012 런던패럴림픽 복사 사격(엎드린 자세에서 사격)경기를 진행했다.

 

전 사격 국가대표 한혜경씨 ⓒ 이아영

 

 

사격 선수 출신인 한혜경씨에 비해 종목 이해도가 낮았던 나는 실습에 앞서 여러 번 경기 영상을 시청했다. 캐스터 역할을 해야 하는 입장으로서 준비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실수가 많이 연발되는 바람에 여러 번 폭소를 터트렸다. 중계를 하는 것이 아니고 둘이서 경기 보러가서 대화하는 거냐는 질문도 받았다. 내 종목이 아니었기 때문에 상당 부분 부족함을 느꼈다. 파트너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우리 덕분에 나머지 교육생들이 웃을 수 있어서 기뻤다. 아마 수명이 몇 년은 연장되었을 것이다. 내가 캐스터 역할을 해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성 스포츠 해설위원은 본 적이 있는데 여성 캐스터는 왜 본 적이 없지?” 
 이번 교육을 계기로 나는 그 동안 한 번도 고민해보지 않았던 문제를 고민 하게 되었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오른쪽에 앉아 있는 사람은 남자일 때도 여자일 때도 있었다. 그러나 왼쪽에 앉아 있는 사람은 한 번도 여자였던 적이 없었다. 시대는 변한다. 앞으로 여성 캐스터의 탄생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을 보는 누구라도 관심이 있다면 당장 캐스터가 되기 위해서 도전해보길 기대한다. 아무도 우리에게 먼저 마이크를 내밀지는 않을 것이다.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주인공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스포츠 미디어 아카데미를 수료하면서 지난 10주간의 추억을 영상으로 만들어보았다. 수업을 진행했던 강사들의 주옥같은 메시지와 실제로 카메라 실습을 했던 교육생들의 모습을 담아보았다.

 

 

 

 

 

또 한 번 교육된 27명의 예비 전문 해설가들이 배출되었다.

체육인재육성재단을 거쳐 간 NEST POWER 인재들의 미래가 기대된다.  ⓒ 이아영

 

 

* 깨알 같은 이기자 수첩 [NEST POWER?]

 

NEST(Next Generation Sport Talent)는 체육인재육성재단을 뜻한다. NEST POWER는 체육인재육성재단에서 양성하는 모든 체육인재를 일컫는 말이다.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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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철원 (스포츠둥지 기자)

 

 

              1990년대 세계 유도의 정점에 섰던 남자, 싱가폴 유도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는 전기영(39. 용인대)의 새로운 도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전기영, 전 세계 유도계에서 아직까지도 ‘업어치기의 교본’이자 ‘한판승의 사나이’로 불리고 있는 그의 경력은 화려하다 못해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다. 1993년부터 1997년까지 세계선수권대회 3연패(두 체급 석권)와 1995년 아시아선수권대회 우승,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금메달,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과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유도 국가대표팀 코치. 그리고 용인대학교 유도경기지도학과 사상 처음으로 비용인대 출신으로써의 교수임용까지.

 

1년간의 교환교수 형식으로 싱가폴에서 유도 대표팀을 지도하고 있는 전기영과 두 시간에 걸쳐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눠봤다.

 

 

전기영 Ⓒ 이철원

 

 

▶ 싱가폴에서 뵙게 되서 더 반갑습니다. 우선, 싱가폴 생활은 만족스러우신가요?
싱가폴에 온지 벌써 반년이 넘었네요. 참 살기 좋은 곳인 것 같습니다. 큰 불편함 없이 낮에는 영어 과외를 받고 저녁에는 선수들을 지도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중국어도 배워보고 싶었는데 영어 하나만으로도 벅차서 아직 중국어는 시도를 못하고 있습니다.

 

▶ 이곳 선수들을 지도해보니 어떻습니까?
우선, 어릴 적부터 체계적으로 배운 선수가 없다보니 기본기가 약합니다. 그리고 동남아 선수들의 타고난 신체적 열세와 부족한 운동시간 등이 많이 아쉽습니다. 선수들이 열심히 따라주고는 있습니다만 훈련시간을 늘릴 수 없는게 가장 안타깝습니다. 하루에 두 시간 정도 훈련해서 어떻게 국제무대에서의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 그래도 최근에는 성과가 조금씩 나오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최근에 베트남 오픈대회에 참가해서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지난 10년간 이곳 유도 대표팀이 국제시합에 나가서 금메달을 딴 적이 없었기에 이곳 관계자들이 상당히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아시안게임 같이 큰 대회에서 경쟁력을 가지기에는 부족합니다. 처음에 선수들을 데리고 국제대회에 참가했을 때가 생각납니다. 경기 중에 영어로 코치를 해야 하는 것이 부담 되서 긴장하고 있었는데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한판 패를 당해버리더군요. 정말 ‘딱지치기’하는 것처럼 말입니다(웃음).

 

▶ 챔피언 출신으로써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것 같습니다
정말 시합장에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선수들이 큰 시합만 나갔다하면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 나가떨어지니까요. 사실, 처음에 싱가폴 측 제의를 받았을 때 계약기간만 채우고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교환교수도 일 년까지 밖에 안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휴직계를 이용해서라도 일 년 정도 더 지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지금 이 상황은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들이 다가오는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과 그 이후의 올림픽에서 ‘전기영’에게 배운 실력을 뽐내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휴직을 하면 경제적으로도 많은 부담이 따르기 때문에 쉽게 결정을 내릴 수는 없지만 싱가폴 측에서 합당한 대우를 약속한다면 일 년 정도 시간을 더 투자해보고 싶습니다.

 

▶ 싱가폴 유도의 전망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도 스케이트 대표팀을 가르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싱가폴에서 유도는 비인기 종목입니다. 탁구나 수영 같은 인기 종목에 비할 수는 없습니다만 유도 연습장에 에어컨조차 없는 현실은 아직도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처음에는 그냥 지도만 하는데도 땀이 너무 많이 흘러서 4KG이 빠지더군요(웃음). 또한, 이곳 선수들의 신체적 조건이 좋진 않기 때문에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키고 싶었습니다. 특이하게도 이곳 선수들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지 않더군요. 그래서 싱가폴 체육회에 있는 체육관을 쓰고 싶다고 요청했는데 사용승인을 해주지 않더군요. 분명 몇몇 종목의 선수들은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말입니다.

 

또한, 남자선수들의 군복무는 정말 대책이 필요합니다. 2년간의 공백기도 문제지만 시합에 참가하는 것 자체가 어렵습니다. 지도하는 선수 중 그나마 가장 소질이 있어 보이는 친구에게 훈련 시간을 더 늘릴 수는 없냐고 물어봤더니 군인이기 때문에 힘들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럼 국제대회에라도 자주 참가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것도 허가를 안 해주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이곳 사정상 훈련을 일주일에 3~4번 정도 하고 있는데 그마저도 선수들이 불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곳 교육부의 지침 상 선수들이 수업과 시험을 끝낸 후에만 훈련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포츠 정책과 교육에 대한 개혁이 절실해 보입니다.

 

▶ 스포츠정책과 학생선수의 교육정책은 균형을 맞추기 힘든 부분이 많습니다
후배(필자)도 선수생활을 해봤으니 알겁니다.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또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을 따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 투자가 필요한지 말입니다. 물론, 이곳에서 영어를 배우면서 ‘아...학생 때 수업에 자주 참여했으면 지금 이렇게 고생하진 않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제가 그때 수업에 매일같이 참여를 했더라면 올림픽 금메달은 정말 힘들었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교수의 입장으로써도 ‘선수의 미래를 위해서 어떻게 교육을 시켜야하는가?’는 여전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한국은 선수들에게 공부를 조금 더 시킬 필요가 있어 보이고, 싱가폴은 공부를 조금 줄일 필요가 있어 보이는 참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 문제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끊임없이 머리를 맞대봐야 할 것 같습니다.

 

▶ 화제를 돌려보겠습니다. 은퇴 후 체육과학연구원과 공동연구를 하신 걸로 알고있습니다
2000년대 초 김영수 박사님이 진행하신 ‘탈란투라’라는 프로젝트였는데 전 세계의 유도 강자들의 영상을 다 모아서 자료화시키는 작업이었습니다. 각 선수의 특기와 사용하는 기술 등 유도에 대한 모든 정보를 세분화시킨 후 키워드만 입력하면 유도에 대한 모든 정보를 영상으로 검색해서 볼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이었습니다. 지금과는 달리 선수들의 영상을 쉽게 검색해볼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해외 강자들과 자주 맞붙어본 선수들은 상대편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것과 실제 영상을 보며 기술을 하나하나 다시 파악하는 것은 큰 차이를 가져옵니다. 아주 작은 차이가 결과에서 큰 차이를 가져오는 겁니다.

이게 바로 스포츠 과학입니다. 처음에는 효과가 미미하기 때문에 일선의 지도자들이 이런 연구를 많이 불편해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훈련하기도 바쁜데 선수들을 불러서 테스트를 진행하고 피를 뽑는 등 번거로운 일이 많아지니 짜증이 나지요. 하지만, 그런 과정을 겪지 않으면 절대 장기적인 발전을 가져올 수는 없습니다. 2004년 아테네 대회부터 지난 런던 올림픽까지 유도 대표팀이 계속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데는 분명 체육과학연구원의 노력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 마지막으로, 영어 공부에 많이 집중하고 계신 것 같은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은퇴 후 일본에서 1년 정도 머물며 공부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경력 때문인지 한국에 돌아오니 일본 측에서 손님만 왔다하면 저를 부르더군요. 운동만 하던 사람이 고작 1년 공부해서 어떻게 통역을 하겠습니까? 정말 진땀 흘릴 일이 많았습니다(웃음). 그때가 자꾸 생각나서 영어 공부에 더 몰두하고 있습니다. 해외에서 유도 관련 업무로 한국에 방문하는 손님들이 있으면 그들과 통역 없이 의사소통을 하는게 제 목표입니다. 계약연장을 생각하는 최우선적인 이유는 선수를 육성하는 것이지만 할 수 있을 때 영어를 더 배워보고 싶은 욕심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곳에 와서 선수들을 지도하다 보니 처음 계약과 다른 상황들에 부딪히게 되더군요. 제가 영어를 좀 더 구사할 수 있었더라면 시작단계부터 계약조건을 꼼꼼히 살폈을 것이고, 지금 상황에서도 더욱 능숙하게 어필을 할 수 있었을 겁니다. 늦은 나이에 영어문법부터 다시 시작하는게 쉽지는 않습니다만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목표를 정했으면 꼭 이뤄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배움, 그 자체의 재미가 쏠쏠합니다. 제가 싱가폴 생활에서 가장 기쁠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아내가 “당신 요즘 영어 많이 좋아진 것 같다”고 말해줄 때입니다(웃음).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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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종세(스포츠동아 이사)

 

 

 

 

대한육상경기연맹, 케냐 윌슨 에루페 귀화 추진 움직임
빠르면 2014 인천아시아경기부터 참가 가능성

 

           까만 피부의 아프리카 선수가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이나 아시아 경기의 마라톤 레이스를 펼친다면….

우리나라에도 흑인 국가대표 마라토너가 탄생할 수 있을까. 침체에 침체를 거듭하고 있는 한국 마라톤이 케냐선수를 귀화시켜 국가대표로 기용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내 마라톤 활성화를 위한 고육지책의 일환이다. 이미 카타르 바레인 등에서는 귀화한 케냐나 모로코 선수들이 아시아경기대회 육상에서 금메달을 따내고 있고 다민족으로 구성된 미국은 물론 독일 일본의 경우도 많은 종목에서 귀화선수들이 국가대표로 활약하고 있다. 빠르면 2014년 인천아시아 경기대회, 늦어도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태극마크를 달고 레이스를 펼칠 마라토너. 그는 바로 올 서울국제마라톤과 경주국제마라톤에서 거푸 우승한 케냐의 윌슨 로야나에 에루페(24)다.

 

지난 10월21일 2012 경주국제마라톤에서 1위로 골인하는 윌슨 로야나에 에루페 ⓒ동아일보

 

 

올 서울 ․ 경주국제마라톤 우승한 24세의 신예…2시간05분37초 최고기록 보유 
에루페 그는 누구인가

 그는 1988년생으로 1m75에 61kg의 체격. 작년 봄 케냐 뭄바사 마라톤대회에 데뷔, 2시간12분47초의 기록으로 1위에 오른 이후 4번의 풀코스 대회를 잇달아 석권한 무쇠다리다. 작년 10월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타고 우리나라 경주국제마라톤에 나선 에루페는  난코스의 어려움에도 막판 스퍼트로 2시간09분23초를 기록, 첫 해외 원정을 우승으로 장식했다.


그로부터 5개월. 그는 올 3월18일 열린 서울국제마라톤에서 한국 마라톤 대회사상 가장 좋은 기록인 2시간05분37초의 대기록을 수립했다. 이 기록은 11월1일 현재 역대 세계51위(이봉주의 한국기록 2시간07분20초는 229위)이며 올해 세계 랭킹은 16위, 그리고 올 각종 국제마라톤대회 우승 기록으로는 7위다. 특히 가장 지칠 수밖에 없는 35~40km구간에서 14분11초, 마지막 2.195km에서도 6분12초의 놀라운 뒷심을 발휘했다.

 

 

 

<에루페 풀코스 마라톤 우승 기록>

대 회

기 록

비 고

  2011 뭄바사

2시간1247

풀 코스 첫 도전

2011 경 주

2시간0923

해외대회 첫 참가

2012 서 울

2시간0537

대회최고기록 수립

2012 경 주

2시간0646

경주대회 2연패

 

지난 3월18일 2012서울국제마라톤에서 우승테이프를 끊는 윌슨 로야나에 에루페

 

 

풀코스 4번 뛰어 모두 우승한 불패의 주인공…뛰어난 후반 스퍼트 주무기  
 에루페는 지난 10월21일 열린 2012 경주국제마라톤 역시 2시간06분46초(역대 세계 160위)로 이 대회를 2연패, 한 시즌 두 번  우승의 진기록을 세웠다. 올 경주마라톤에서도 30~35km구간은 14분33초, 35~40km구간은 14분20초, 마지막 2.195km는 6분19초에 주파, 막판에 강한 면모를 다시 한번 입증해 보였다. 


특히 올 시즌 봄과 가을 두 차례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 두 번 모두 2시간06분46초 이내의 기록을 작성한 마라토너는 전 세계에 에루페를 포함, 6명뿐이다.

 

 

카타르 바레인 등 ‘귀화 용병‘ 수두룩…미국 독일 일본에도 많아
외국의 ‘귀화 용병’ 사례

2006년 12월10일 도하 아시아경기대회 남자마라톤에서 2시간12분44초로 우승한 카타르의 무바라크 하산 샤미(카타르)는 케냐 출신의 ‘귀화 용병’. 그는 2007년 오사카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마라톤에서도 준우승했으며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에서는 한국의 지영준(금메달)과 경합을 벌이다 동메달을 땄다. 2006년 도하 아시아경기에서는 2005년 케냐에서 카타르로 귀화한 다함 나짐 바샤이르가 남자 1,500m에서 3분38초06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중동의 바레인 역시 모로코에서 귀화한 다레크 무바라크 살렘과 하산 마부브가 각각 2006년 도하 아시아경기 남자 3,000m장애물경기와 남자 10,000m에서 우승했다. 또 모로코 출신인 바레인의 라쉬드 람지는 2005년 헬싱키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800m와 1,500m에서 금메달을 땄으나 도하 아시아경기 1,500m에서는 카타르의 바샤이르에 뒤져 은메달에 그쳤다.


 여러 나라 민족으로 구성된 미국의 경우 어느나라 보다 귀화한 국가대표가 많다. 한때 세계마라톤 기록(2시간05분38초)을 보유했던 할리드 하누치는 모로코 출신이며, 2007년 오사카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마라톤에 미국대표로 뛰었던 음바락 후세인 등도 케냐 출신이다. 2008년과 2009년 런던마라톤 여자부를 연패한 독일의 이리나 미키텐코 역시 카자흐스탄 출신. 육상은 아니지만 일본의 경우 1994년 라모스, 1998년 로페즈, 2002년에는 산토스 등 브라질 출신 선수들을 귀화시켜 월드컵 축구대회 국가대표 선수로 기용했다.

 

 

등록선수 모두 1백여 명 불과한 최악의 상황…기록도 남녀 모두 중하위권  
한국마라톤 현실

1936년 베를린올림픽(손기정 우승, 남승룡 3위)과 1950년 보스턴 마라톤(함기용 우승, 송길윤 2위, 최윤칠 3위)에 이어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황영조 우승)과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이봉주 2위)에서 주목을 받았던 한국마라톤이 침체의 늪에 빠진 것은 1997년 이후. 지난 16년간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이렇다 할 기록은 물론 동메달 하나도 따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
특히 지난해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남자부는 정진혁이 2시간17분04초로 23위, 여자부는 김선경이 2시간37분05초로 28위에 그쳐 국민들에게 큰 실망을 안겼다.


 한국마라톤은 올 들어서도 부진을 면치 못했다. 85명이 완주한 8월의 런던올림픽 남자부에서 이두행이 2시간17분19초로 32위, 장신권은 2시간28분20초로 73위, 정진혁은 2시간38분45초로 82위에 머물렀다. 107명의 선수가 완주한 여자부에서도 정윤희가 2시간31분58초로 41위, 임경희가 2시간39초03초로 76위, 김성은이 2시간46분38초로 96위를 마크했다. 남녀 대표 6명이 모두 완주한 것만도 다행이었다.


 올 국내에서 개최된 국제대회에서도 외국선수들은 세계적인 기록을 쏟아 냈으나 한국선수들은 기대이하였다. 서울국제마라톤(3월18일)에서는 정진혁이 2시간11분48초, 김성은이 2시간29분53초, 대구국제마라톤(4월8일)에서는 이두행이 2시간14분05초, 임경희가 2시간32분49초로 각각 남녀부 1위를 했다. 경주국제마라톤(10월21일)에서는 오서진이 2시간17분02초, 최보라가 2시간40분20초, 춘천국제마라톤(10월28일)에서는 박주영이 2시간19분49초, 박유진이 2시간42분55초로 국내 남녀부 1위를 각각 기록했다. 11월4일 열린 중앙마라톤에서도 김영진과 최경희가 2시간17분00초. 2시간39분19초로 각각 남녀부 우승을 차지했다.


한마디로 현재 한국마라톤은 최악의 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 1백여 명 이상의 남녀 엘리트선수가 참가하던 국내대회에 남자 20~30명, 여자 6~8명이 참가할 만큼 선수난에 허덕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기록이나 아시아 기록은 물론 한국기록 경신도 까마득한 실정이다. 이봉주의 남자기록 2시간07분20초(역대 세계229위)는 12년 넘게 요지부동이며 권은주의 여자기록 2시간26분12초 역시 15년 동안 깨지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마라톤은 “이제 더 이상 추락할 곳도 없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2012 국내개최 국제마라톤대회 한국 우승선수 기록>

날짜

대회

남 자 부

여 자 부

03/18

서울

정진혁(건 국 대) 2시간1148

김성은(삼성전자) 2시간2953

04/08

대구

이두행(고양시청) 2시간1405

임경희(SH 공사) 2시간3249

10/21

경주

오서진(체육공단) 2시간1702

최보라(경산시청) 2시간4020

10/28

춘천

박주영(한국전력) 2시간1949

박유진(삼성전자) 2시간4255

11/04

중앙

김영진(삼성전자) 2시간1700

최경희(경기도청) 2시간3919

 

 

 

본인의 의사 중요…한국실업팀 입단 후 대한체육회 심사 등 절차 거쳐야
귀화 가능성과 득실

 대한육상경기연맹은 작년부터 3번이나 우리나라 국제마라톤에 참가, 모두 우승한 에루페를 한국에 귀화시켜 마라톤 활성화의 기폭제로 삼으려는 움직임이다. 대한육상경기연맹의 고위관계자는 최근 “국내마라톤 활성화를 위해 에루페의 귀화를 조심스럽게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에루페를 귀화시켜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에 내보낼 경우 우승가능성이 매우 높고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도 메달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에루페가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에서 우승할 경우 국내 마라톤 붐 조성에도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990년대 황영조 이봉주 김재룡 김완기 등이 기록경쟁을 벌이면서 올림픽과 아시아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냈고 한국 남녀기록도 잇달아 경신됐으며 마라톤 붐도 일어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시민마라톤인 마스터스마라톤이 처음 시작된 것은 1994년 황영조 등이 한창 활약했을 때였다. 현재 4~5백 만 명으로 추산되는 한국 달리기 동호인의 급속한 증가의 시발점이 바로 이 시기였다.

 

 

 

 

 


 그러나 에루페의 귀화가 쉽지만은  않다. 먼저 에루페 본인의 의사가 매우 중요하며 에루페가 귀화 의사를 밝히더라도 그를 받아 줄 국내 실업팀이 있어야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해당 실업팀과 에루페가 상당한 액수의 계약금에 합의해야하는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 이어 대한체육회가 에루페 귀화에 따른 심의를 통과시켜야한다. 대한체육회는 지난여름 프로축구 전북의 에닝요 귀화요청을 부결시킨바 있다. 그러나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규정에는 에루페가 한국에 귀화, 2014년 인천아시아경기에 참가해도 문제가 없다. 종전에는 귀화한지  3년이 지나야 국가대표선수로 뛸 수 있었으나 전 소속국가에서 국가대표선수로 뛰지 않았을 경우는 귀화한 나라에서 바로 국가대표선수로 활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케냐 현지에서 에루페를 발굴, 조련해온 오창석 백석대 스포츠과학부 교수는 “아직 대한육상경기연맹으로부터 공식적인 제의를 받은 적이 없다. 제안이 오면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이다”고 말했다. 오교수는 “에루페가 귀화해 국내 선수들과 합동훈련할 경우 유 무형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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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흑인 최초로 태극만크를 단 마라톤 선수가 탄생할 수 있을 지 기대가 되네요~!
    에루페 선수의 귀하를 통해 우리나라마라톤이 활성화 됬으면 좋겠습니다^^

    • Mr.Zon 님~ 조금은 침체되어 있는 우리의 마라톤이 활성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많은 분들이 마라톤 대회에 참여하고 있지만, 선수는 부족한 실정이니까요 ^^

  • 개인적으로 국가대표만큼은 순혈주의를 유지했으면 하는 한사람입니다.
    편협한 시각일지는 몰라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선수는 흑인이든 백인이든 혼혈이든, 귀화인이 아닌 한국인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도플갱어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가대표가 한국인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귀화선수에 대한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고, 조금은 어렵고도 민감한 부분이네요 ^^ 모두의 공통된 기대는 마라톤에 대한 관심의 증가로 선수들도 많이 증가해서 다시 예전처럼 뛰어난 기록도 나와서 마라톤이 활성화되었으면하는 바램입니다 :)

    • 순혈주의라니... 나찌의 베를린 올림픽 생각이 ㅠㅠ

 

 

 

 

글 / 이아영 (스포츠둥지 기자)

 

 

알펜시아 스타디움 내에는 평창 올림픽 개최 기원을 위한 국민들의 염원을 쓴 리본조형물이 있다. 이아영

 

 

       최근 봅슬레이가 올림픽 메달을 획득하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관심을 많이 받고 있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많이 생소한 종목이지만 미디어를 통해 자주 비춰지다 보니 이제는 많이들 알게 됐다. 그 한 몫을 한 것이 바로 MBC 예능버라이어티 [무한도전]이다.

 

 

무한도전 봅슬레이 특집 MBC 무한도전

 

 

 

종목의 매력과 열악한 현실에 대해서 낱낱이 알려주면서 감동을 선사했다. 봅슬레이수준은  아직까지는 세계 랭킹에서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하지만 경기장 하나 없는데도 불구하고 늦게 시작해 경기장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 선수들과 같은 대열에 올라서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능성을 높게 평가할 수 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스키점프 경기가 펼쳐질 알펜시아 스타디움 이아영

 

 

둥지가 생겼다. 떠돌이 신세 청산!
봅슬레이는 소위 효자종목이 아니다. 아직까지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 등에서 메달권에 진입할 수 있을 만큼 연륜이 오래돼지 않고 선수층도 두텁지 않다. 그동안 가장 큰 문제는  실제 경기를 할 수 있는 아이스 트랙이 없다는 것인데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가 확정 나면서 자연스레 해결되었다.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경기장 내 봅슬레이 스타트 훈련장 모습 이아영

 

 

현재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에는 스키점프, 바이애슬론, 스켈레톤 & 봅슬레이 & 루지 스타트 훈련장 등이 완공된 상황이고 스키점프 경기장 건물에는 동계종목의 국가대표 선수들이 훈련할 수 있는 웨이트 트레이닝 훈련장과 물리치료실 등이 갖춰져 있다. 또 하나의 태릉선수촌이라고 할 수 있는 이곳은 동계 선수들이 훈련할 곳이 마땅치 않아  해외로 유랑생활을 하는 신세를 청산할 수 있게 했다.

 

 

동계스포츠 국가대표 선수들을 위한 알펜시아 스타디움 내에 위치한 물리치료실 이아영

 

 

평창 올림픽 유치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사실 살림살이가 좋지 않았다. 경기장이 없어 걱정할 필요가 없는 타 종목들에 비해 봅슬레이는 국내 아이스 트랙도 스타트 훈련장도 없었다. 매번 많은 돈을 들여 미국, 캐나다, 독일 등 봅슬레이 강국으로 떠났다. 전지훈련의 기회는 자주 있는 것이 아니었다. 봅슬레이 장비도 없어서 현지에서 늘 빌려서 경기에 출전하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2인승, 4인승 봅슬레이는 물론 선수들 개개인의 헬멧과 유니폼 그리고 스파이크까지 갖춘 상태이다. 선수들이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좋은 환경이 갖추어져 가고 있다. 예전의 열악한 환경과 비교해 달라진 오늘의 모습에서 2018년 평창에서 밝은 소식으로 되돌아올 것 같은 긍정의 기운이 느껴졌다.

 

 

렌트카로 F1경기 출전
 필자는 2008년 국내 여자선수로서는 처음으로 봅슬레이를 시작했다. 여자 선수를 위한 장비가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유니폼과 스파이크는 체구가 큰 남자 선배들로부터 빌려 입고 경기에 출전했다. 초보자들은 운전에 능숙하지 못해 많은 부상을 입는다는 말에  큰 옷 속에 옷을 여러 겹 끼어 입었다. 춥기도 춥고 부딪히면 아프니까 축구선수용 정강이 보호대 중 가장 큰 사이즈를 사서 팔을 감싸기도 했다. 봅슬레이가 얼음에 살짝만 부딪혀도 선수는 봅슬레이 내부 벽에 좌우로 부딪히며 팔다리가 시퍼렇게 멍이 든다. 하지만 잘하는 선수일수록 운전에 능숙하여 경기장 벽에 잘 부딪히지 않고 멍 때문에 고생하지도 않는다. 봅슬레이는 경기에 앞서 1시간 전에 자신들의 썰매를 정비완료 후 뒤집어서 날이 하늘을 보게 한 다음 일종의 주차장과도 같은 곳인 경기 출발대 옆에 두어야 한다. 경기 시작 전 세계봅슬레이협회 국제심판들이 장비에 부정한 장치를 하지는 않았는지, 장비상태가 위험하여 경기에 출전할 수 없는지 여부에 대한 점검을 하기 때문이다.


봅슬레이는 장비 구입부터 300kg이 넘는 썰매 운반 등 경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소위 ‘귀족스포츠’라고 알려져 있다. 세계 랭킹 1위 자리는 동계 스포츠강국인 독일, 미국, 캐나다 선수들이 주축이 되어 치열한 다툼을 갖는다.  필자가 선수로 활약하던 당시 남자 선수용 2인승, 4인승 봅슬레이는 구비된 상태였지만 여자선수용 봅슬레이는 없었다. 따라서 초창기 남자 선수들과 같이 현지에서 대여를 했다. 스폰서 스티커가 가득 붙어 있는 강국 선수들의 봅슬레이 사이에 빌린 썰매를 주차하고 나오면 기분이 묘했다. 얼마나 사용하지 않았는지 내부에는 먼지가 쌓여 있고 외부에는 부딪힌 흔적이 많아 테이프로 덧댄 흔적도 많았다. 1000분의 1초를 다투는 경기에서 빌린 장비로 경기를 한다는 것은 렌트카로 F1 경기에 나가는 것과 같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운동을 했었는데 이제 더 이상 ‘렌트카’로 경기에 출전하지 않아도 된다니 대한민국 봅슬레이의 미래가 밝다.

 

 

봅슬레이는 하는 사람이 없어서 아무나 국가대표 하는 거 아닙니까?
영화, 방송 등 미디어의 힘은 크고 강렬하다. 스키점프를 소재로 한 영화 [국가대표]를 보면 선수들의 초창기 환경을 각색하여 자칫 잘못하면 ‘아무나 국가대표가 될 수 있다’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게 만든 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무한도전 봅슬레이 편에서도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서 선수가 부족해 일반인들이 경기에 참가했다. 하지만 국가대표로 선발된 선수들은 운동의 기본기가 잘 닦아진 여러 종목에서 10여년 가량 활동한 소위 엘리트 선수 출신들이었다. 체력조건은 좋은데 부상을 입어서 은퇴한 선수, 여러 종목에서 성적이 부진한 선수 등이 봅슬레이로 많이 전향한다. 주로 역도나 투척(투포환, 창, 원반, 해머)선수들이 전향을 많이 했고 축구, 레슬링 등 타 종목 선수출신도 많다. 하는 사람이 없다고 해서 아무나 국가대표가 되는 것은 아니란 걸 국민들이 알아야 한다. ‘할 거 없는데 나도 봅슬레이나 해볼까? 하기만 하면 다 국가대표 되는 거 아냐? 공짜로 외국 나갈 수 있나? ‘등의 무지한 질문은 더 이상 남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웨이트 트레이닝장을 갖춘 스키점프 경기장 일원에서 워밍업을 하는 봅슬레이 국가대표선수들 이아영

 

 

시작이 반이다
 봅슬레이 경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을 하나만 꼽으라면 스타트라고 할 수 있다. 정지된 상태의 봅슬레이를 선수들이 전력질주하며 밀고 달려 속력이 붙는다. 4인승을 기준으로 봅슬레이의 무게는 평균 300kg이상에 달하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힘을 내며 달릴 수 있는 기본기가 필요하다. 순간적인 힘을 주로 쓰는 역도, 투척, 럭비 선수들이 많이 선호된 이유이기도 하다. 빠르기만 해도 안 되고 힘만 좋아도 안 된다. 적당히 빠르고 적당히 체중도 나가고 적당히 힘도 좋아야 한다. 그래야만 초반에 스타트 기록이 빠르고 결국 그 가속도가 후반부 기록에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한국 속담인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꼭 들어맞는다.

 

 

국내 최초 봅슬레이 스타트 경기장 이아영
(실제 얼음에도 봅슬레이 날을 끼울 수 있는 홈이 파여져 있다.)

 

 

체중도 적당히 나가야 좋다. 봅슬레이 운행을 하는 동안 선수들의 체중이 얼음과 마찰되는 날에 안정적으로 실려야 하기 때문이다. 4인승 봅슬레이에서 두 번째 혹은 세 번째에 탑승하는 선수가 주로 체중이 많이 나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가운데서 앞, 뒤의 무게중심을 잡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봅슬레이의 양 날개를 밀며 달린다고 하여 ‘푸셔’라고 부른다. 첫 번째에 탑승하는 선수는 ‘파일럿’으로 불린다. 파일럿은 봅슬레이를 조종하는 역할을 한다. 봅슬레이 운행 중 다른 선수들은 공기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 코스에 맞게 몸을 맞춘다.

 

네 번째 탑승하는 선수를 ‘브레이크맨’이라고 부르는데 그의 주요 임무는 봅슬레이를 정지하기 위해 내부에 있는 브레이크를 상단으로 잡아당겨 뾰족한 브레이크를 얼음에 박아 썰매를 멈춘다. 브레이크맨은 브레이크를 잘 잡기 때문에 마지막에 앉는 것이 아니다. 선수들 중 가장 마지막에 탑승하기 때문에 달리는 시간이 가장 길다. 즉 가장 발이 빠른 선수를 마지막 주자로 선정하는 것이다. 필자는 국제 경기에 출전했을 때 미국 브레이크맨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나 클 수가 있나 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럭비선수 출신들이 유난히 많은 미국 봅슬레이 브레이크맨들은 파일럿들 보다 더 중량훈련을 많이 하고 체력증진보충제도 많이 섭취했다. 하지만 몸이 너무 커도 불리할 수 있다. 점프하며 봅슬레이 안으로 쏙 들어가야 하는데 몸집이 크면 꽉 끼여서 힘들기 때문이다. 예전에 모 국가대표 선수는 4인승 봅슬레이 탑승 시 박자가 어긋나서 탑승을 못한 채 동료들을 떠나보내야만 한 적이 있었다(실제 경기 시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두 선수가 피니시 라인을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격처리가 된다).

 

또 모 국가대표 선수는 4인승 봅슬레이 탑승을 했는데 평상시 두는 곳에 다리를 둘 곳이 없어서 운행 내내 앞 선수의 등을 자신의 스파이크로 찌르기도 했다. 그 좁은 봅슬레이 안에서 함께 호흡을 맞추기 위해서는 협동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래서 예전에는 체조장에 있는 트램플린(일명 퐁퐁)으로 함께 뛰어 들어가며 호흡을 맞추기도 했고 선수들끼리 서로 눈을 감고 동시에 서로의 신호에 맞춰 박수를 짝! 치며 호흡을 맞추는 연습을 하기도 했다.

 

 

4인승 봅슬레이 스타트 훈련 모습 이아영

 

 

세계신기록이 없는 특이한 종목
봅슬레이는 유럽의 산악지역인 스위스 생모리츠(St. Moritz)에서 시작됐고, 눈이 많고 추운 유럽의 여러 국가들에서 크게 발달됐다. 캐나다 밴쿠버 올림픽 경기장인 휘슬러 경기장을 비롯해 현재 전 세계에 15여개의 경기장이 있다. 보통 산에 경기장이 있는데 지형과 주변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전 세계의 모든 코스가 다 다르다. 총 길이, 커브의 개수, 개별 커브 길이나 경사도 등 어느 하나 똑같은 경기장이 없다. 그래서 봅슬레이는 세계신기록이 없다.  경기장마다 보유 최고기록만 존재할 뿐이다. 대한민국은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확정 후 현재까지 아이스트랙이 국내에는 없지만 2016년쯤 경기장이 완공될 예정이다. 경기장이 생기고 나면 가장 먼저 대한민국 선수들이 시승을 할 것이고, 대한민국 선수들만의 훈련이 가능해질 것이다.

 

봅슬레이는 나이가 들수록 더 잘할 수 있는 종목상의 특징이 있다. 초반 스타트에서 밀고달리는 기능만 저하되지 않는다면 선수생활을 오래 지속할 수 있다. 운전은 하면 할수록 늘기 때문에 감각적인 부분에 있어서 더 섬세해지고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다. 또 오랜 선수생활을 통해 많은 경기장에서 경기를 해 여러 코스에서 쉽게 적응해 좋은 성적을 낼 수도 있다. 대한민국 봅슬레이 국가대표 선수들은 현재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다. 기존 국가대표인 김동현 선수를 제외하고는 올림픽 이후 등장한 신인선수들의 경력이 2년 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난 2011-2012시즌(동계스포츠의 시즌은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이기 때문에 두 개 년도를 한 시즌으로 묶어서 부른다. 즉 2011년 10월부터 2012년 4월까지 열리는 시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에서 주목할 만한 성적을 올렸다.

 

 

빌린 썰매는 옛날 얘기! 우리 썰매로 은메달 땄다!
 세대교체 이후 대표팀은 지난해 11월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아메리카컵 3~4차 대회에서 연달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올해 2월에는 미국 레이크플래시드에서 열린 2012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FIBT)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1~4차시기 합계 3분42초27의 기록으로 17위에 올랐다. 이는 한국 봅슬레이 역사상 최고의 성적이다. ‘파일럿’ 원윤종의 기대 밖의 선전으로 대표팀 이용 코치(33)는 “한국 봅슬레이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고 대륙 챔피언 자리까지 차지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탁월한 코스 분석 능력이 장점으로 꼽히는 원윤종은 지난 시즌 파일럿 MVP부문에서 2위를 차지할 정도로 실력을 입증 받았다. 첫 번째 은메달을 보고선 기적이라고 생각했지만 두 번째, 세 번째 은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는 실력이란 걸 알았다. 정말 아쉬운 것은 그 중 한 번은 1위와 0.1초라는 미세한 기록차이로 은메달을 땄다는 것이다.

 

파워와 순발력 단련을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있는 원윤종 선수 이아영

 

평창올림픽의 미래는 밝다. 
 대한민국 봅슬레이 인구는 여전히 적다. 하지만 훈련할 수 있는 여건만 제대로 갖춰진다면 많은 선수들을 확보할 수 있다. 현재는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집중을 하며 선수 선발보다는 육성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많은 좋은 선수들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 발굴한 좋은 선수들을 잘 키워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봅슬레이 선수 경력 2년이라면 시즌이 진행되는 7개월 동안만 실제 경기장에서 탈 수 있기 때문에 타 종목에서의 2년과는 다르다. 또한 그 7개월 중에서도 훈련할 수 있는 날이 정해져 있고 하루에 탈 수 있는 횟수에는 제한적이기 때문에(여러 국가 선수들이 하나의 트랙을 함께 사용하기 때문에 연습도 경기처럼 외국 선수들과 순서에 맞추어 출발해야 하는 규칙이 있다.) 그 2년이 진짜 2년이 아니다. 국내에 트랙이 없는 상황에서 체력조건이 좋은 새로운 선수로 계속 교체만 했다. 새로운 선수들에게 밀린 기존의 선수들은 은퇴를 해야 했다. 새로운 선수들에게 처음부터 다시 가르치며 육성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반복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선수들을 믿고 육성한 결과 기술적인 부분이나 체력적인 부분에서 많이 좋아졌다. 선수들의 스타트 기록이 단축된다는 것은 실제 트랙에서 기록이 많게는 2~3초 이상 단축 될 수 있다는 의미다. 1000분의 1초를 다투는 경기에서 스타트 기록 단축은 그야말로 희소식이다.

 

 

이번 2012-2013 시즌에서 쌓이게 되는 선수들의 경기 포인트는 2014년 소치 올림픽 출전 결정과는 아직 상관이 없지만 이번 시즌에서 좋은 경기를 펼쳐야만 높은 포인트 점수로 월드컵이나 세계선수권에서 상위권 점수를 만들 수 있고 그러한 포인트 점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포인트를 많이 받을 수 있는 규모 있는 경기에 출전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기기 때문에 이번 시즌은 중요하다. 소치에서 남자 2인승, 여자 2인승, 남자 4인승 모두 출전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능성의 나라 대한민국……. 평창 동계올림픽이 앞으로 6년이나 남았지만 살림을 들여다보니 정말 살림살이가 나아졌다는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 대박을 기원하며 봅슬레이에 대한 응원을 팍팍 해줘야겠다는 느낌을 가진다.

 

 

 대한민국 봅슬레이 파이팅!!

 

 

 

* 개인적으로 독자들에게 부탁이 있다. 봅슬레이가 외래어라서 그런지 아직도 용어사용에 대한 실수가 많다. ‘곱슬레이’나 ‘복슬레이’라고 부르거나 심지어는 ‘복술래이’라고 하시는 분들까지 만났다. 필자가 봅슬레이 선수출신인지라 모르시는 분들에게 설명을 할 기회가 많았었는데 이렇게 용어 실수를 하시는 분들이 한 두 분이 아니었다. 앞으로 봅슬레이로 세계를 정복할 대한민국이기 때문에 영어식 표현으로 '밥슬레이(Bobsleigh)' 혹은 '밥슬레드(Bobsled)'로 사용하는 것도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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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제갈현승 (스포츠둥지 기자)

 

         런던올림픽에서 한국 양궁은 다시 한 번 '효자'종목, 양궁강국으로서 위상을 세계에 널리 알렸다. 일각에서는 한국 양궁의 독주체제가 무너지고 다수의 메달 획득에 회의적이라 예상했지만 한국양궁대표팀은 경쟁자들을 차례로 이겨내며 남자 단체전 동메달, 여자 단체전 금메달, 남자 개인전 금메달, 여자 개인전 금메달을 얻는 쾌거를 기록하였다.


1점차이로 승부가 갈라서는 양궁이니 만큼 운이 많이들 작용한다고 하지만 그 1점을 위해서 양궁대표팀은 피나는 노력과 땀의 결실로 맺어진 것이다. 물리적으로는 1점에 불과하지만 경쟁자들이 수 십년째 못 넘어서고 있는 큰 산인 것이다. 

 

이렇게 보는 이 조차도 슛팅 순간 떨게 만드는 양궁을 88년 서울 올림픽부터 굳건히 양궁강국으로서 지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양궁의 'KEY' 기보배 ⓒ 대한체육회

 

 

- 활을 잘 쏘는 민족이라서 양궁을 잘한다? NO

흔히들 한국 양궁의 우수성을 찾는데 있어서 ‘우리가 활을 잘 쏘는 민족이다’, ‘외세의 침략에 대비해 활을 쏘는 능력이 있어왔다’라며 말하곤 한다. 하지만 한국 양궁의 위력은 이러한 ‘역사적 DNA’보다도 체계적인 훈련법과 선수육성, 훈련 개발등의 조건이 갖추어져 한국양궁의 역사를 쓴 것이다.


실제로 유럽형 활인 양궁은 신체적으로 동양인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게 되어있다. 활 시위를 당길 때 동양선수보다 서양선수가 팔 길이가 전체적으로 길어 일직선으로 쭉 뻗을 수가 있어 동양인이 시위를 당기기엔 서양인보다 힘든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한국양궁에서 ‘역사적DNA’를 논하는 것은 어느 정도 연관성이야 있겠지만 올림픽 성적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없다.

 

 

- 기본적인 훈련 프로그램
한국 양궁의 강한 이유는 초등학교부터 양궁기술에 대한 기본적인 기술을 훌륭하게 습득하였다. 이러한 배경에는 우리나라 양궁 지도자들이 1980년대 '궁우회'라는 조직을 결성하여 활동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조직에서 양궁 기술과 관련된 내용들을 수 없이 토론하면서 양궁의 기본적인 슈팅 기술을 정립하여 선수들에게 적용시켰다. 그 결과 지금은 우리나라 양궁선수들의 슈팅 기술은 흠 잡을 곳 없이 견고하다.


 

또한 기본적으로 양궁은 ‘멘탈리티’싸움이 강하다.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것인데 국가대표팀에 선발된 선수들을 여러 훈련을 통하여 혹독하게 다룬다. 이를 테면 UDT훈련, 최전방 보초, 번지점프 등을 통해 담력을 길러내어 진정한 국가 대표선수로 길러내는 것이다.

 

 

 어느 상황에 닥쳐도 이겨낼 수 있게끔 훈련하는 대표팀(야구장에서 훈련) ⓒ 대한양궁협회

 


- 파벌없는 깨끗한 국가 대표 선발시스템

실력과 원칙대로의 양궁선발 때문에 스포츠 종목 중 파벌이 없는 종목이다.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은 1년 동안 남녀 랭킹 1등에서부터 100등까지만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주며, 10개월 동안 7차전까지 치룬 후 남녀대표를 선발하게 된다. 1위부터 100위까지의 실력이 크게 나지 않기 때문에 자만하다가는 대표팀에서 떨어질 수 도 있다. 올해 대표팀에서 늦깍이로 데뷔한 최현주선수도 이 같은 공정하고 합리적인 원칙에 따라 선발된 것이다. 하지만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컨디션 난조를 보이면서 대표팀에서 제외하자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한국 양궁이 지켜낸 공정한 선발규칙으로 최현주선수를 런던까지 끌고 올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 여자 단체전 7연패라는 어마어마한 업적을 쌓는데 보탬이 되었다.

 

 

시드니올림픽 당시 여자 개인전 금, 은, 동은 모두 한국이었다 ⓒ IOC

 

 

 - 미리 예측하는 경기규칙과 대비

지금쯤이면 양궁대표팀은 또 다시 다음대회를 미리 준비 하고 있을 것이다. 한국의 독주체제를 막기 위하여 수시로 변경하는 양궁의 룰 때문에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갖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한다. 이를테면 이번 런던올림픽은 개인전 교대발사의 발사 시간이 기존 30초에서 20초로 줄었다. 베이징 올림픽 때는 경기 룰이 8개월 전에 바뀌는 경우도 생겼다.(기존의 40초에서 30초로 변경) 그만큼 실수확률을 높이면서 실력차를 줄이겠다는 국제양궁연맹의 목적이다. 1발을 쏘는 데 허용되는 시간, 세트제, 화살 발수 등 모든 상황에 대비해 양궁대표팀은 훈련한다.

 

 

11개국에서 활약 중인 한국 코치들 ⓒ 연합뉴스

 

- 해외로 나가는 한국 양궁 지도자들

한국 양궁의 우수성을 배우고자 하는 팀들이 많아 각 국에서는 한국 지도자들을 영입하는데 애를 쓰고 있다. 실제로 37개 참가국 중에 11개국이 한국 지도자를 영입하여 수준과 기술을 높이는데 있다. 멕시코의 경우 사상 처음으로 메달획득을 이루었고, 대회를 거듭날수록 실력차가 줄어드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 대표팀으로서는 기술과 노하우를 빼앗긴다는 점도 있지만 역으로 꾸준한 정상에서의 위협을 받음으로써 항상 더 노력하고 훈련개발에 매진하는 강점도 있는 것이다.

 

 

매 번 올림픽마다, 양궁은 ‘무조건 금’이라는 생각에 그들이 얼마나 훈련을 열심히 하고 체계적으로 길러져 온 사실을 안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또한 정상을 지속적으로 유지한 채로 신화를 써내려 가는 것은 대단한 업적이다. 양궁의 종주국도 아니며, 신체적 조건의 불리함을 극복하고 세계 정상에 우뚝 선 양궁 대표팀은 피와 땀이 맺힌 훈련과 갖가지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정상에서 내려오지 않는 것이다. 다음 올림픽에도 양궁대표팀의 선전을 기대해 본다.

 

 

 

 

<88올림픽부터 런던올림픽까지 한국양궁대표팀 기록>

88 서울올림픽 대회

여자개인

여자단체

남자개인

남자단체

1위 김 수 녕(한국)

2위 왕 희 경( “ )

3위 윤 영 숙( “ )

1위 한 국

2위 인도네시아

3위 미 국

1BARRS (미국)

2위 박 성 수(한국)

3ECHEEV (소련)

4위 전 인 수(한국)

1위 한 국

2위 미 국

3위 영 국

92 바르셀로나 올림픽

여자개인

여자단체

남자개인

남자단체

1위 김 수 녕(한국)

2위 왕 희 경( “ )

3위 윤 영 숙( “ )

1위 한 국

2위 인도네시아

3위 미 국

1BARRS (미국)

2위 박 성 수(한국)

3ECHEEV (소련)

1위 한 국

2위 미 국

3위 영 국

96 애틀란타 올림픽

여자개인

여자단체

남자개인

남자단체

1위 김 경 욱 (한국)

2HEYING (중국)

3SADOVYCHA (우크라이나)

1위 한 국

2위 독 일

3위 폴란드

1HUISH (미국)

2PETERSSON(스웨덴)

3위 오 교 문 (한국)

1위 미 국

2위 한 국

3위 이탈리아

2000 시드니 올림픽

여자개인

여자단체

남자개인

남자단체

1위 윤 미 진(한 국)

2위 김 남 순( “ )

3위 김 수 녕( “ )

1위 한 국

2위 우크라이나

3위 독 일

1WEATHER(호주)

2WUNDERLE (미국)

3ALTEN(네덜란드)

 

1위 한 국

2위 이탈리아

3위 미 국

 

2004 아테네 올림픽

여자개인

여자단체

남자개인

남자단체

1위 박 성 현(한 국)

2위 이 성 진( “ )

3WILLIAMSON (영국)

1위 한 국

2위 중 국

3위 대 만

1GALIAZZO(이탈리아)

2YAMAMOTO (일본)

3CUDDIHY (호주)

1위 한 국

2위 대 만

3위 우크라이나

2008 베이징 올림픽

여자개인

여자단체

남자개인

남자단체

1Juan Juan(중국)

2위 박 성 현(한국)

3위 윤 옥 희(한국)

1위 한 국

2위 중 국

3위 프랑스

1Victor(우크라이나)

2위 박 경 모 (한국)

3Bair (러시아)

1위 한 국

2위 이탈리아

3위 중 국

2012 런던 올림픽

여자개인

여자단체

남자개인

남자단체

1위 기 보 배

2위 로만(멕시코)

3위 아비티아(멕시코)

1위 한국

2위 중국

3위 일본

1위 오 진 혁(한국)

2위 타카하루(일본)

3위 다이 샤오샹(중국)

1위 미국

2위 이탈리아

3위 한국

 

 

참고자료 : 서거원 저, 따뜻한 독종
               김병현 저, 국가대표 심리학
               대한양궁협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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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박현애(이화여자대학교 및 동대학원 강사)

 

 

         뜨거운 태양이 수그러드는 저녁이 되면, 런던올림픽에 대한 국민의 열정이 한낮의 열기를 대신했다. 모든 국민들이 더위와 피로를 잊고 텔레비전 앞으로 몰려 앉아 선수들의 도전과 노력의 소산들에 박수를 보냈다. 지구촌 문화축제로서 각국에서 출전한 세계 정상급 선수들의 도전과 노력, 경이에 가까운 탁월한 플레이를 보며 올림픽을 만끽했다. 그러나 의혹을 만들어내는 심판의 판정(실수 혹은 편파판정), 경기 운영의 미숙함, 올림픽과 무관한 논란을 일으키거나 올림픽 본질을 흐리는 보도행태 등 런던올림픽은 관심만큼이나 하루가 다르게 떠들썩했다.

 

수많은 이슈들 틈에서도 올림픽을 가능하게 하고 이야기를 만들어 내며 스포츠를 보다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각 국에서 출전한 선수들이다. 흔히 올림픽의 꽃을 마라톤이라거나 육상이라며 특정 종목들을 언급하지만, 진정한 올림픽의 꽃은 올림픽에 출전한 세계 정상급의 모든 선수들일 것이다. 국가대표로서 긍지와 사명감을 가지고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은 개인의 영광에 그치지 않고 국민의 뜨거운 열정에 화답하기 위해서 더욱 열심히 경기에 임한다.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들 가운데 몇몇은 메달권에 진입하여 영예를 얻고, 또 몇몇의 선수는 아쉬운 패배를 경험하기도 한다. 또 다른 선수들은 의미 있는 참가에 의의를 두며 경주한다. 올림픽에 출전한 모든 선수들이 승리를 갈망하지만, 현실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때 승리는 소수에게만 허락되어있다. 노력의 양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도구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노력한 만큼의 적절한 대가가 주어지면 좋겠으나 인간사가 그렇듯이 성실과 노력은 기본이고 결과는 하늘에 달려있지 않은가.

 

 

ⓒ대한체육회

 

 

준비한 자에게만 찾아온다는 승리의 여신을 생각하며 선수들은 피와 땀으로 올림픽을 준비한다. 그러나 변덕에 가까운 승리의 여신 니케의 잔인한 장난에 허무함을 경험하기도 하고, 신도 어쩔 수 없는 판정의 시비에서 절망하고 주저앉기도 한다. 스포츠정신, 옳음에 대한 가치를 배우는 대신 세계연맹과 협회 등의 거대한 조직의 힘 앞에서 다중의 상처를 받기도 하고, 일방적인 매체의 조명에 마음을 다치기도 한다. 참가 자체로 자신의 한계,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지만 승리와 무관하면 자신 아닌 타인은 의미도 관심도 두지 않는다. 체력이 고갈되어 쥐어짤 듯 경기에 임해도 ‘헝그리 정신의 부재’, ‘배가 불렀다’는 비난이 정신마저 고갈 시킨다. 몇몇의 메달을 획득하지 못한 선수들이 SNS와 인터넷 댓글을 통해서 욕설의 대상이 되고 급기야 경기에서 졌다는 이유로 죄인이 된 것 같다(스포츠 동아, 2012년 8월 9일)고 하니 그들에게 올림픽에서의 패배는 쓰디쓴 아픔만 될 것 같아 우려된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나, 스포츠에서는 운이 작용한다는 알레아(aléa)라는 특징은 차치하더라도 스포츠에서는 경기에 승리한 선수가 있으면 당연히 패한 선수도 존재한다. 전 세계 상위 3위까지의 선수를 선발하는 과정에서 메달권을 제외한 다른 선수들은 패배자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승리한 선수가 받아야 할 영예와 관심은 당연하다. 그러나 경기에서 진 선수들에 대해서 관중과 매체가 자신의 시점에서 중심적인 판단을 하거나 폄훼하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당연할 수 없다.

 

선수들에게 있어 가치가 덜한 노력이 있을까, 그러니 메달이나 메달의 색깔로 그들의 노력 정도를 가늠할 수도 없을 것이다. 나아가 승리한 사람의 정신력이 패한 선수보다 항상 강한 것도 아닐 것이다. 인간에 의해 인간이 행하는 스포츠가 금, 은, 동메달의 물질을 획득했는가로 인간의 숭고함을 대신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올림픽을 지켜보는 우리들이 올림픽 기간 동안 기쁨과 환호를 주었던 선수들로 행복했다면, 메달을 획득하지 못한 선수들에게는 그래도 잘했다고, 당신은 이미 훌륭하다고 대가없이 받은 행복을 돌려줄 수 있어야 하겠다.

 

 

런던올림픽의 개막식 선수입장의 장면을 기억한다. 승리를 다짐하며 기대와 설렘, 기쁨에 웃음 가득한 얼굴들이 가슴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선수들이 경기를 마치고 돌아올 때에는 결과를 떠나서 의미 있는 경험이었고, 하나의 즐겁고 소중한 훈련이었다고 생각하며 돌아오길 바란다. 개막식에서의 기대와 설렘 대신 올림픽이 아니면 얻을 수 없었던 충만한 경험을 기쁨으로 새기고 돌아와 이후 스포츠 인생의 또 다른 개막을 시작하길 바란다. 그래서 올림픽 개막식 때와 같이 웃는 얼굴로 환향하기를 바란다. 이러한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올림픽에 대한 유종의 미로서 우리가 마지막으로 가져야할 열정일 것이다. 우리가 주목했던 올림픽, 스포츠, 선수들에 대한 관심과 시선을 건강하게 만드는 시작이 될 것이다.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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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성호 (한양대학교 영문학 명예교수)

 

 

      “꽁뜨르 아따끄 (역공)와 꽁뜨르 빠라드 (막고 찌르기)를 번갈아 썼다. 잠시라도 멈춰 있으면 다리가 떨릴 것 같아 부지런히 삐스뜨 (경기대)를 뛰었다. 그러다보니 끝났다. 금메달이었다.”


이는 2012 런던 올림픽 펜싱 사브르 여자 단식 결승 경기를 막 끝낸 금메달리스트 김지연 선수의 우승소감이다. 최선을 다하는 이런 모습은 아름답다. 물론 유럽 검투를 모델로 삼은 펜싱 경기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다. 꽁뜨르니 아따끄니 삐스뜨니 하는 용어는 낯선 프랑스 말이다. 그러나 김 선수가 우주복 같은 운동복을 얼굴부터 내려쓰고 앞뒤로 내다르며 칼끝을 내찌르는 몸놀림은 날렵했다. 경기 용어를 잘 몰라도 좋다. 그저 그 날렵한 몸짓으로 뛰어다니는 진실함을 볼 수 있었기에 좋았다. 이런 진실한 모습은 우리에게 깊숙한 충격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김지연 선수는 시상식이 끝난 뒤 또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깜짝 금메달’이라고 한다. 사실 내가 더 깜짝 놀랐다. 내가 미쳤나보다.”

 

ⓒ대한체육회

 

“내가 미쳤나보다.” 바이론 연상케 한 김지연 선수의 여유
잘 알려진 일화지만,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바이론(Lord Byron)은 지중해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긴 서사시 <차일드 해롤드의 유랑>를 완성했다. 그 다음날 모여드는 사람들을 보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보니 내가 유명해져 있었다.(I woke one morning to find myself famous.)” 


앞서 김 선수가 자기 심경을 토로한 이야기는 바이론의 이 설명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만일 경기 내내 유지했던 진지함의 연장선상에서 “코치에게 감사하고 부모님에게 영광을 돌리겠다.”는 틀에 박힌 말을 했다면 이 얼마나 썰렁했을까. 그는 이제 “열심히”라는 말로 요약되는 진지함을 끝내고 “사실 내가 더 놀랐다.”라는 여유를 보여주었다. 다부진 결심으로 경기하는 진지한 모습은 아름답다. 하지만 여기에 여유로움으로 이어지는 차분한 모습은 더욱 아름답다.  


대회 초반 경기를 치른 신아람 펜싱 선수의 경우는 다르다. 신아람 선수는 오심으로 패배했다. 연장전 1초를 남겨두고 스코어는 5-5. 이대로 끝나면 우선권을 쥔 신 선수의 승리로 끝날 수 있었다. 그러나 상대 선수의 네 번째 공격이 성공할 때까지 시간은 가지 않고 1초 그대로 남아 있었다. 실의에 찬 신 선수는 1시간 동안 삐스뜨에 그대로 주저앉아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는 게임에서 졌기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었다. 유럽 경기인 펜싱에 도전하는 신흥 한국의 선전을 견제하려는 냉엄한 국제 스포츠 현실을 질타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공정을 내세우는 거창한 올림픽 정신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도 아니었다. 오직 최선을 다하겠다는 진지함이 외부요건에 의해 훼손되었기 때문이었다. 틀림없이 진지함의 완성을 이룰 수 없었다는 자괴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의 눈물은 스포츠 경기의 진지함을 완성할 수 없었다는 사실에 대한 어필이다. 그는 그 후 단체 경기에서 은메달을 따고 엷은 웃음을 보였지만 진정한 여유를 보인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걸릴 것이다.

 

 

“우물쭈물하다 이럴 줄 알았다” 버나드 쇼의 뛰어난 유머 감각
속 깊은 선수들은 경기결과에 연연하지 않는다. 온 힘을 다 할뿐이다. 이런 선수들도 경기에서 지고나면 눈물을 보일 때가 있다. 이 눈물은 그러나 ‘속 좁음의 들통 나기’가 아니다. 오히려 진지함의 뒤풀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곧 눈물을 거두고 잔잔한 미소를 보일 수 있다. 그 미소는 여유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나는 이런 미소를 보면 세상이 확 트이는 환희를 느낀다.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도 그런 모습을 보았다. 수영에서 역도에서 높이뛰기에서 실점을 하고나서 눈물을 떨어뜨리다가도 곧 마음을 보듬는 웃음을 보였다.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을 듣는 기분이다.


진지하게 살면서도 유머를 통해 여유를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아직도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고 있는 영국의 윈스턴 처칠 경은 뛰어난 유머감각을 갖고 있었다. 어느 날 국회 등원 길에 계단에서 넘어졌다. 이를 본 의원들이 깔깔대며 웃어대자 그는 “그렇게 즐거우시면 한 번 더 넘어지겠습니다.”라고 농담을 건넸다.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그의 정치적 진지함에다 여유로운 유머감각까지 갖추고 있었기에 그는 고인이 된 뒤 아직까지도 인기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아일랜드 출신의 영국 극작가 버나드 쇼(Shaw George Bernard) 의 비문은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라는 우리말 번역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오래 살다보면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내 진작 알고 있었다.(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정도로 번역하면 족할 것 같은데, ‘우물쭈물’이라는 말이 끼어들어 더 유머러스하게 되었다. 많은 업적을 남기며 진지하게 살다가도 죽음에 대해서까지 여유를 보이는 유머다.

 


산다는 것은 운동경기 하듯 열심히 길을 걷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걷다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둘러보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운동선수가 미소를 짓듯, 죽음이라는 끝자락이 보이더라도 ‘우물쭈물하다가 여기까지 왔구나!’하며 미소를 짓는 여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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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종세(스포츠동아 이사)

 

 

 

 

 

돌아온 런던의 영웅들…“이제 리우올림픽이다”
세계 인구 0.7%인 한국이 금메달 13개로 종합 5위

 

 

 

2012 런던올림픽 결산과 2016 리우올림픽 과제
 이제 리우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하계올림픽. 8월14일 런던의 영웅들이 돌아왔다. 태극전사들의 금의환향이었다. 금메달 13개, 은메달 8개, 동메달 7개로 금메달 순위 세계 5위. 4년 전 베이징올림픽에서 ‘톱 7’이었던 한국스포츠가 2012 런던올림픽에서 ‘톱 5’까지 치고 올라갔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세계4강에 들긴 했지만 원정 하계올림픽에서 ‘톱 5’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도 ‘톱 5’에 올랐던 한국스포츠는 이번의 쾌거로 명실상부한 ‘세계 스포츠 5강‘으로 떠올랐다. 세계인구의 0.7%에 불과한 나라치고는 경이로운 성과다. 그러나 정상의 반열은 오르기보다 지키기가 더 힘든 법. 2016년 리우올림픽을 위해 지금부터 준비해야한다. 총(사격), 활(양궁), 칼(펜싱)의 ‘최종병기’는 더욱 다듬고 부진했던 태권도와 역도, 수영, 배드민턴 등은 새로운 각오가 절실하다.

 

 

당초 목표 ‘10 -10’ 초과 달성…사격 양궁 펜싱 유도 효자종목
 대한체육회의 당초 목표는 ‘10-10(금메달 10개 이상, 종합10위 이내)’. 그러나 대회 전 해외 유력 외신들은 한국의 금메달을 7~9개로 예상하는 등 처음부터 과소평가했다. 8시간의 시차가 있지만 현지적응만 잘하면 금메달 15개에 종합5위도 가능할 것이라는 국내 전문가들의 전망과는 크게 엇갈렸다. 사실 한국은 대회 초반 수영 박태환과 양궁 남자단체, 유도 왕기춘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불안한 스타트였다.


 그러나 8월1일 유도 김재범이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선수단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다음날은 유도 송대남, 사격 김장미, 펜싱 김지연이 3개의 금메달을 쓸어 담았다. ‘골든 데이’. 한국이 중국, 미국에 이어 금메달 6개로 종합 3위까지 뛰어 오른 것이다. 세계가 깜짝 놀랐다. 이후 한국은 양궁 남녀 개인의 오진혁과 기보배, 펜싱 남자단체 사브르, 사격의 진종오가 금메달을 추가, 8월5일 10개의 금메달 목표를 일찌감치 달성했다.


 또 8월7일에는 한국 체조사상 처음으로 양학선이 뜀틀에서 감동의 금메달을 땄고 다음날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김현우가 8년 만에 한국의 올림픽 금맥을 되살렸다. 폐막 하루 전인 8월11일에는 황경선이 여자 태권도 올림픽 2연패의 위업을 이룩했다. 특히 이날은 한국축구가 올림픽 참가 64년 만에 처음으로 금메달 같은 동메달을 따 온 국민을 열광시켰다. 상대는 숙적 일본으로 2대0의 승리.


 이 같은 ‘대박’은 무엇보다 사격과 펜싱이 의외의 성적을 거두었고 세계 최강 양궁이 제 페이스를 유지해준데다 유도와 체조, 레슬링이 선전해 주었기에 가능했다. 이를 위해 현대차, KT, SK, 포스코 등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이들 경기단체를 지원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대목. 아울러 대한체육회가 선수들의 시차와 음식 적응을 위해 대회 한 달 전부터 런던의 브루넬 대학을 통째로 빌려 ‘런던의 태릉선수촌’을 운영했던 것도 크게 주효했다고 할 수 있다. 선수들이 런던까지 동반한 훈련파트너와 함께 먹고 자고 연습하다 대회 2, 3일 전 선수촌에 입촌, 경기에 임했던 것.

 

 

베이징 올림픽 ‘황금종목’ 태권도 역도 수영 등은 안타까운 부진
 그러나 아쉽고 안타까운 상황도 없지 않았다. 4년 전 베이징 올림픽에서 4개의 금메달을 독식했던 태권도가 금 1, 은 1에 그쳤고 두 체급은 아예 ‘노메달’ 이었다. 태권도가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처음 채택된 이래 동메달도 따지 못한 체급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자호구 채점 등 새로운 룰에 대한 적응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 태권도 종주국의 체면에 큰 손상을 입었다는 지적이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2개의 금메달을 땄던 역도 또한 적잖은 문제점을 노출한 채 ‘노메달’에 그쳤다. 오랜 기간 부상에 시달렸던 장미란과 사재혁의 대회 2연패 도전은 처음부터 무리였다는 것이 냉정한 평가다. 국내 언론이 장미란은 ‘아름다운 은퇴’로, 사재혁은 ‘불꽃 투혼’으로 미화했지만 부상선수를 아무 대책 없이 대표선수로 선발한 대한역도연맹의 책임 또한 크지 않을 수 없다. 차라리 장미란, 사재혁 대신 4년 뒤 리우올림픽을 겨냥, 2진급 선수를 파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수영의 박태환 역시 오심 파동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2개의 은메달을 따낸 것은 높은 평가를 받을만하다. 그러나 2년 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중국의 쑨양을 꺾었던 박태환이 이번 대회에서 밀린 것은 지난 2년간의 준비과정에 문제가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간발의 차로 남자복식 결승진출에 실패한 배드민턴은 이용대 정재성조가 동메달에 그쳤으나 이 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여자 복식조 2개 팀이 ‘져주기 파동‘으로 국제적 망신을 산 것이다. 이 때문에 코칭스태프와 해당선수는 자격정지 등 중징계를 받았다. 물론 국제배드민턴연맹의 대진 방식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승부의 세계에서 상식 밖의 행태를 보인 것은 매우 아쉬운 대목이다. 

 

 

리우 올림픽 대비…양학선 김장미 손연재 등 유망주 키워야
 그렇다면 4년 뒤 리우올림픽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하는가. 우선 런던올림픽에서 강세를 보였던 종목이라 하더라도 선수는 물론 코칭스태프까지 과감한 세대교체를 통해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야한다. 양궁 펜싱 유도 태권도 레슬링 복싱 탁구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다행히 우리에게는 2016년에도 가능성이 있는 체조 양학선(20) 사격 김장미(20) 남자양궁 김법민(21) 리듬체조 손연재(18) 남자역도 원정식(22) 등 유망주가 있다. 

 

이들이 제대로 뻗어 나갈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여기에 새로운 종목으로 추가되는 남녀 골프의 집중적인 육성과 함께 이번 대회에서 동메달을 따낸 남자축구가 더욱 분발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한다. 하지만 남자축구의 앞날은 만만치 않다. 1968년 멕시코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땄던 일본이 런던올림픽에서 44년 만에 동메달을 노렸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이 좋은 사례다. 또 이번 대회에서 아쉽게 4위에 그친 여자배구, 여자핸드볼도 전열을 재정비한다면 메달권 진입을 바라볼 수 있다. 특히 런던올림픽에서 ‘노골드’의 수모를 당했던 역도 수영 배드민턴의 금메달 프로젝트는 반드시 마련돼야한다. 종주국의 체면에 흠집을 낸 태권도의 명예회복도 이루어져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2013년 1, 2월에 이루어질 4년 임기의 대한체육회 및 가맹 경기단체 회장의 선거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루어져야한다. 정부의 입김이나 관권이 작용하는 선거가 돼서는 곤란하다는 이야기다. 체육계가 똘똘 뭉쳐 4년 뒤 리우올림픽에서 ‘톱 5’의 신화를 재창조해야 하기 때문이다.

 

 

 

런던올림픽 한국 메달획득 현황

 

금 메 달

은 메 달

동 메 달

사 격

(32)

진종오 남자10m공기권총

김장미 여자25m 권총

진종오 남자50m 권총

최영래 남자50m 권총

김종현 남자50m

소총 3자세

 

양 궁

(31)

여자 단체

(기보배 이성진 최현주)

기보배 여자 개인

오진혁 남자 개인

 

남자 단체

(오진혁 임동현 김법민)

펜 싱

(213)

김지연 여자 개인 사브르

남자 단체 사브르(김정환 원우영 구본길 오은석)

여자단체 에페(신아람 정효정 최인정 최은숙)

최병철 남자개인 플뢰레

정진선 남자 개인 에페

여자단체 플뢰레(남현희 정길옥 전희숙 오하나)

유 도

(21)

김재범 남자 81kg

송대남 남자 90kg

 

조준호 남자 66kg

태권도

(11)

황경선 여자 67kg

이대훈 남자 58kg

 

체 조

(1)

양학선 남자기계체조뜀틀

 

 

레슬링

(1)

김현우 그레코 66kg

 

 

수 영

(2)

 

박태환 남 자유형4m

박태환 남 자유형2m

 

탁 구

(1)

 

남자 단체

(오상은 주세혁 유승민)

 

복 싱

(1)

 

한순철 남자 라이트급

 

축 구

(1)

 

 

남자3,4위전 일본2-0

배드민턴

(1)

 

 

남자복식(이용대,정재성)

13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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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아영 (스포츠둥지 기자)

 

 

대한민국 역도의 살아있는 전설 장미란 선수 이아영

 

 

대한민국 역도 간판 장미란 선수의 경기가 있었던 지난 새벽, 대한민국은 또 한 번의 기적을 기대하며 두 손을 모았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세계신기록을 갈아치우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국민 영웅 장미란 선수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살아있는 전설적인 존재이다. 모든 선수들의 경기가 다 끝나고 자기 스스로와의 싸움을 펼쳤던 감동의 베이징 올림픽! 국민들은 기적의 순간을 또 한 번 기대하며 그녀를 기다렸다.

 

 

런던올림픽 결단식 현장에서 스포츠 둥지 기자를 보며 웃어 주는

역도 대표팀 김순희(코치), 장미란, 양은혜, 임지혜 선수 이아영

 

 

기다리던 장미란 선수가 무대에 등장하자 그녀를 기다렸던 대한민국 국민들의 함성이 경기장을 뒤덮었다. 영국에서 열리는 경기였지만 대한민국에서 시합할 때 못지않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장미란을 응원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한국 관중들이 있었던 건지 감히 상상이 안 갈 정도였다.

 

인상 1차시기 120kg에 도전하는 장미란은 평소처럼 진중한 표정으로 경기에 임했다. 늘 그랬듯이 흔들림 없는 자세로 가뿐히 성공했고 2차시기에 125kg로 증량하여 또 다시 성공시켰다. 하지만 129kg에 도전했던 3차 시기에서 위험한 장면이 잠시 연출되었다. 마지막 기구를 받아내는 동작에서 기구의 중심이 뒤로 넘어가다가 애매한 위치에서 멈추는 바람에 앞도 뒤도 아닌 그녀의 어깨 위로 떨어진 것이다. 하지만 유연한 대처로 끝까지 기구를 놓치지 않았고 고개를 숙여내며 안전하게 빠져나왔다. 중량급 중에서도 최고중량급 경기다 보니 기구의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

 

경기를 하다보면 이러한 위험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하는데 자칫 잘못하면 큰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에 지켜보는 수많은 사람들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사실 며칠 전 남자 77kg급의 기대주였던 사재혁 선수 팔꿈치 부상으로 안타까운 장면이 연출되었기에 대한민국은 순간 아찔할 수밖에 없었다. 메달을 따며 좋은 성적을 내는 것도 좋지만 국민들은 우리 선수들이 다치지 않고 스스로가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고 또한 그 것에 만족하는 모습을 기원할 것이다. 내 몸처럼 아끼는 마음으로 말이다. 

 

우려했던 부상은 없었다. 장미란은 3번의 시기 중 두 번을 성공하며 2차시기의 도전 기록이었던 125kg으로 인상경기를 마무리했다. 사실 이 무게는 140kg을 성공하며 세계신기록을 경신했던 베이징 올림픽 당시보다 15kg이나 낮은 무게였다. 쏟아지는 매스컴 보도와 장미란 선수 중계 자막은 내심 올림픽 2연패를 기대하는 눈치였지만 장미란 선수는 사실 금메달 경쟁을 하기에 몸이 부상에서 온전히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자신을 믿고 기다려주는 국민들에게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쉬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괜히 올림픽 3회 연속 출전이 아니었다. 역시 대단한 사람이었다.

 

 

태릉선수촌 역도장 구석에는 선수들 몸에서 떼어낸 것으로 만든 테이핑 공이 있다.

이는 선수들이 얼마나 부상의 고통에 시달렸는지 말해주고 있다. 이아영

 

 

 

라이벌 경기가 다 끝난 후 올림픽 신기록을 갈아치우며 홀로 경기를 치렀던 베이징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장미란 선수의 모든 시기가 다 끝나고도 두 명의 선수가 더 남아 있었다. 바로 그녀의 세계신기록(326kg)을 이미 2011세계선수권과 2012유럽선수권에서 차례로 갈아치운 러시아의 타티아나 카시리나(21)와 중국의 주룰루(24)였다. 예상은 했었지만 그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좋아진 모습이었다. 세계 최고의 자리를 양보해야만 하는 입장에서 그들의 경기를 보는 것이 썩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이 번갈아 나오며 세계신기록을 경신하는 모습을 보니 박수를 아낄 수는 없었다. 특히 타티아나 카시리나 선수는 인상에서 151kg을 성공하면서 인상 종목에서의 1위를 확정지었고, 여자 역도선수 사상 처음으로 인상에서 150키로 대열에 진입을 하게 되었다. 하룻밤 사이에 새 역사가 미친 듯이 쏟아져 나왔다.

 

 장미란은 인상에서 5위의 기록을 안고 용상으로 넘어갔다. 155kg을 1차시기로 신청했고 이내 작전을 변경하여 158kg에 도전했다. 장미란의 컨디션과 인상 경기 결과를 두고 보았을 때 1,2위와는 많은 격차가 있었기에 동메달 싸움을 준비해야했다. 동메달을 쟁탈하기 위해서는 1,2위 두 선수를 제외하고 인상에서 3~4kg의 기록으로 두 명의 선수가 앞서고 있었기에 용상에서 3번의시기를 모두 성공해야만 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무리한 도전은 실격을 유발할 수도 있기에 코치진은 안전한 작전으로 시합을 진행했다. 1차시기에 도전했던 158kg은 가뿐히 성공했고 이어서 164kg으로 2차시기에 도전해 김순희 코치의 화끈한 비명소리와 함께 짜릿한 성공을 알렸다.

 

 

 

용상 2차 시기에서 164kg을 성공한 모습 Ⓒ 대한체육회

 

 

 

동메달을 두고 각축을 벌였던 아르메니아의 쿠루슈디안은 그녀의 마지막 도전에서 장미란이 들어 올렸던 164kg보다 무려 2kg나 더 무거운 166kg을 성공시키며 장미란을 압박시켰다. 장미란은 마지막 시기가 남은 상태에서 동메달 획득을 위해서는 한 가지 선택밖에 없었다. 인상에서 4kg, 용상에서 2kg이나 앞서있는 쿠루슈디안를 합계(295kg)에서 이기기 위해서 종전 무게보다 6kg을 더 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만약 장미란 선수가 170kg에 성공할 경우 합계 기록에서 쿠루슈디안와 같은 기록인 295kg를 기록하며 체중이 덜 나가는 유리한 조건으로 경기에서 이길 수 있었다. 용상의 첫 번째 동작인 클린(Clean)에서 실수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장미란은 두 번째 동작인 저크(Jerk)에서 약간 걱정이 되었다. 부상 부위가 바로 좌측 어깨였기 때문이다. 사실 인상 3차시기 동작에서 위험한 동작이 연출되었던 것도 마무리 동작에서 어깨가 순간적으로 파고들어가며 확실하게 잡아주지 못한 부분도 기여를 했다. 부상 재활에서 온전히 회복하지 못한 터라 용상 2차시기도 약간은 빠듯해 보이는 무게였다. 그러나 우린 기적을 믿었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하며 응원했다.

 

 그녀에게 마지막 올림픽, 마지막 시기였다. 경기장 내에는 장미란 선수가 호명되었고 그 순간 1분 카운트가 시작되었다. 김순희 코치의 마지막 지시를 듣고 계단을 올라갔다. 탄산마그네슘 가루를 펴 바르며 마인트 컨트롤을 했다. 관중들은 하나 되어 장미란 파이팅을 연신 외치기 시작했다. 드디어 무대에 섰고 마지막 기합을 쏟아냈다. 숨 막히는 순간, 먼저 데드리프트(땅에서 바를 끌어 올리는 동작), 그리고 클린을 하며 앉았다 일어나는데 잠시 중심이 뒤로 빠지며 앞발이 살짝 들렸으나 이내 중심을 찾으며 일어섰다. 절반의 성공이었다. 두 번째 저크 동작! 하지만 장미란 선수의 어깨는 무게를 견디지 못했고 아쉽게도 기구가 뒤로 떨어졌다. 관중들은 탄식을 자아내며 미처 다 밀어내지 못한 우측 팔꿈치의 힘겨운 사투를 보며 아쉬운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경기가 끝났다. 메달을 딸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은 쿠루슈디안 선수에게 양보하고 4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장미란은 무대를 곧바로 내려가지 않았다. 올림픽 3연속 출전에 첫 노메달이었지만 무대 뒤로 물러 나와 응원해주신 팬들에게 보답하기 관중을 향해 감사의 큰 절을 올렸다. 그 후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인 무릎 꿇고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벨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손 키스를 선사했다.

 

 

 

 

운동을 할 수 있어 행복했었다는 마지막 올림픽 무대에서 고마운 바벨에게

손 키스를 선사한다.  Ⓒ 대한체육회

 

 

전 세계에서 힘이 가장 센 여자들의 마지막 축제는 접전 끝에 스무 네 살 어린나이의 주룰루(중국) 선수가 차지했다. 합계 세계신기록을 두고 신기록 경신을 거듭했던 치열했던 마지막 승부가 종료되었다. 다행인 점은 베이징 올림픽 당시 장미란 선수가 세웠던 용상 올림픽 신기록인 187kg은 깨어지지 않았다. 주룰루가 타이기록에 도전해 성공 후 190kg에 도전했으나 실패하면서 용상 부문 세계 최강자라는 타이틀은 지켜냈다. 장미란 선수는 비록 시상대에 올라서지 못했지만 그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서 잘 싸웠다. 그녀는 세계선수권대회 4연패와 아테네올림픽 은메달,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등 올림픽,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대회와 같이 출전할 수 있는 모든 국제대회를 제패한 '그랜드슬래머'라는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 세계 여자역도의 최강자 자리에서 물러났다.

 

 

자랑스러운 KOREA 대표선수 장미란 이아영

 

 

 

부상의 아픔을 딛고 일어나 자신이 다 할 수 있는 최고의 노력을 이루어 낸 그녀는 우리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경기 직 후 믹스트 존에 모습을 보인 장미란은 눈물을 훔치며 취재진들을 울게 했고, “베이징올림픽 때보다 한참 못 미치는 기록이 나와서 나를 응원하고 사랑해주시는 분들을 실망시켜 드렸을 것 같아 염려스럽다.”며 오히려 국민들을 걱정했다.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올림픽을 준비할 수 있어서 행복했고 부족한 저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셔서 과거에 큰일을 해낼 수 있었다”고 말하며 취재 내내 감사하고 행복하다는 말을 거듭했다.

 

 경기는 끝났지만 대한민국은 잠들지 못했다. 그녀에게 감동받은 한 여성 네티즌은 “임산부이기에 밤새 올림픽을 보는 것도 자제해왔는데 장미란 선수의 경기는 놓칠 수 없었고 마지막 순간 메달을 획득하지는 못했지만 감사 기도와 바벨 키스를 보며 가슴이 뭉클하여 함께 울었다.”고 했다. 지난 새벽 육상 100m 달리기 우사인 볼트가 올림픽 신기록을 갈아치우며 금메달을 땄음에도 불구하고 장미란 선수를 응원하는 글로 인해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그녀의 이름 세 글자는 실시간 검색 순위 1위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선수 장미란은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매력쟁이다. 혜성처럼 등장하여 국민들의 혼을 흔들어 놓고 대한민국의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다. 평소 심성이 곱고 정이 많기로 유명한 장미란은 자신의 이름을 건 재단을 설립하여 운영 중이며 비인기 종목이나 어려운 환경에서 훈련하는 꿈나무 선수들을 돕고 있다. 그러나 사실 장미란 선수는 재단이 설립되기도 훨씬 이전부터 몰래 선행을 베풀고 있었다.

 

모 선수로부터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장미란에게 선행을 당한(?) 모 선수는 처음으로 국가대표로 발탁이 되어 국제시합을 출전하게 되었는데 출국 날 아침 장미란 선수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고 했다. 개인별 공항 소집이었던지라 무거운 짐을 홀로 운반해야 했던 그 선수를 걱정하며 장미란은 직접 공항버스 정거장까지 차로 데려다 주며 오전 휴식 시간을 반납했다. 그리고는 헤어지면서 빨간색 편지봉투를 건네었다. 그 선수는 분위기 상 용돈을 주는 줄 착각하고 죄송한 마음에 거절을 했지만 장난끼 섞인 표정으로 편진데 왜 거절을 하느냐며 오히려 반문하자 받을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녀가 떠난 후 홀로 남아 봉투를 열었던 그 선수는 봉투 속 들어있던 깨알 같은 손 편지와 달러를 보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진심은 항상 통하기 마련이다.

 

 

 

장미란 선수가 후배 선수들을 격려하며 쓴 감동의 손 편지  이아영

 

 

 

주변 사람들이 모두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인정하는 장미란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그녀의 겸손함과 감사할 줄 아는 태도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녀는 찬사를 받아 마땅한 사람이다.

 

경기가 끝나고 6시간 후 4년간 그녀의 곁을 함께 했던 장미란 전담 코치 김순희의 페이스북에는 이런 글이 올라왔다. “4년여의 시간을 이 선수와 함께 걸어올 수 있게 해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비록 메달을 목에 걸진 못했지만 고개 숙이거나 눈물 흘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장미란이란 이름만으로도 이미 역도계에선 소중하고 값진 보물이며 많은 국민들에겐 영웅입니다. 미란아, 너의 세 번째 올림픽을 함께 준비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고 그 도전은 너무도 멋졌다……. 고맙고 사랑한다.!!”

 

 

즐겁게 분위기 속 훈련을 시작하는 김순희 코치와 장미란 선수의 모습  이아영

 

 

 

 

태릉선수촌 역도훈련장의 장미란 선수 자리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STRONG IS HAPPY"
강하지만 부드러운, 부드럽지만 강한! 역도계의 살아있는 전설! 장미란은 우리 가슴 속에서 진한 감동으로 오래토록 남을 것이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말 "STRONG IS HAPPY" 이아영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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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혈여아 2012.08.07 11:47 신고

    장미란 선수 경기보면서 너무 안타까웠는데, 기자님 글을 보니 눈물이 나려고 그러네요. ㅠㅠ 고생했어요 장미란선수~~! 당신은 영원한 국민영웅입니다~~!
    (선수들 몸에서 떼어낸 것으로 만든 “테이핑 공”도 인상깊네요)

  • 이아영 2012.08.08 14:44 신고

    열혈여아님~^^
    기사 잘 보셨다니 감사합니다! 테이핑 공 정말 뭉클하더라구요^^ 앞으로도 장미란 선수 응원 많이 부탁드립니다!!!

 

 

 

글 / 이아영 (스포츠둥지 기자)

 


         2012년 7월, 드디어 조정 국가대표팀이 꿈의 무대 런던에 입성했다. 이번 런던 올림픽에 참가한 조정 국가대표선수는 남자 싱글스컬 김동용(대구대학교 4학년), 여자 싱글스컬 김예지(서울체고 3학년), 여자 경량급 더블스컬 김명신(화천군청 29세), 김솔지(포항시청 24세) 이렇게 4명이다. 이들은 지난 4월, 충주에서 열린 런던올림픽 조정 아시아 예선대회에 참가해 런던 행 티켓을 거머쥔 주인공들이다. 이번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들은 모두 올림픽 무대가 처음인지라 모든 것이 신기하고 기대감에 차 있었다.

 

태릉선수촌 밥 한 번 못 먹어봤던 조정대표팀
조정 국가대표팀에게는 사연이 참 많다. 사람들은 국가대표라면 누구나 태릉선수촌에서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충북 진천군에 소재하고 있는 진천선수촌이 완공되기 전까지 조정 국가대표 선수단은 한 번도 태릉선수촌에 입촌하여 훈련한 적이 없었다. 물이 꼭 있어야 하는 훈련의 특성상 선수촌에서 훈련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매번 촌외훈련(선수촌이 아닌 타 지역에서 국가대표 합숙훈련)을 실시했었다. 경기도 하남 미사리 경기장, 강원도 화천 조정경기장, 충북 충주 탄금호 조정경기장(2013 세계선수권 대회 개최 예정지)등 전국을 누비며 전지훈련을 했던 조정 대표팀은 태릉선수촌에서 생활하는 국가대표 선수들의 생활과는 다른 생활을 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조정대표선수들은 다른 종목 선수들이 태릉선수촌 밥이 그렇게 맛있다고 하던데 먹어본 적이 없다며 궁금해 하기도 했다. 항상 여관이나 호텔을 숙소로 사용하고 경기장 주변 식당에서 식사를 했었기 때문에 매일 선수촌 내에서 생활하는 선수들에 비해서 국가대표가 된 것에 실감을 덜 느끼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이제 드디어 선수들은 국가대표 선수촌에서 생활을 하며 일반 투숙객이 머무는 숙소와 일반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는 생활을 청산했다. 선수촌에서 영양가 높은 양질의 식사를 하며 1인 1실의 숙소에서 보다 더 안락한 휴식을 할 수 있게 되었고 타 종목 선수들과 매일 마주하며 생활하기 때문에 동기부여도 심심찮게 받을 것이라 예상된다.

 

 

진천선수촌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대표팀의 모습 ⓒ이아영

 

미친 체력의 종결자
어느 종목이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조정은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인간 이상의 체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초인적인 힘을 순간적으로 폭발해내는 역도는 순발력과 파워가 좋아야하고, 마라톤과 같은 스포츠는 오랜 시간동안 지치지 않는 심장과 끈질긴 집중력을 요한다.  그런데 조정은 역도선수가 가지고 있는 순발력과 파워도 필요하고, 마라톤 선수가 가지고 있는 근지구력과 끈질긴 집중력을 모두 갖춰야 하기 때문에 보통 힘든 운동이 아니다. 견딜 만 할 정도로 힘든 것이 아니라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전력질주를 멈추지 않고 해야 하기 때문에 도착해서 쓰러지는 선수들이 한둘이 아니다.

 

요즘 같은 여름 날씨에는 선수들이 죽음의 훈련을 한다.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에 한 번, 물에 반사되는 태양에 한 번 온 몸이 구워진다. 그래서 모자와 고글로 얼굴을 숨겨도 강한 자외선은 오랜 시간 태양에 노출된 선수들을 녹여버린다. 한여름 훈련에 긴 팔, 긴 타이즈를 입는데 이는 바로 살갗이 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얼마나 더울까! 선수들은 뜨거운 태양을 피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이른 새벽부터 배를 타거나 늦은 오후에 배를 탄다. 대표팀 선수들은 새벽 훈련을 위해 5시가 되면 기상을 하는데 보통의 종목들은 기상을 하고 선수촌 내 체육관이나 운동장까지 나가는데 5분도 안 걸리는 반면 조정 대표팀은 전용 버스를 타고 충주에 위치한 탄금호 경기장까지 1시간을 달린다.

 

 

매일 왕복 2시간 거리를 버스로 이동해야 하는 조정 국가대표팀 ⓒ이아영

 

 

그렇게 이른 새벽부터 기상하여 훈련장으로 와서 체조를 하고 배를 타기까지 2시간이나 소요된다. 7시가 되어서야 훈련에 돌입하는 선수들은 약 2시간 30분 동안 훈련을 한다. 이들은 정말 보통이 아닌 것 같다. 훈련 스케줄이나 이동 스케줄이나 어느 것 하나 정말 보통이 없다. 선수들의 미니홈피나 SNS에는 이러한 죽음의 훈련을 피해가기 위해 다음날 비가 많이 오게 해달라는 글이 남겨져 있을 정도니 말이다. 기나긴 새벽훈련은 오전 10시가 넘어서야 마친다.

 

 

늦은 아침 식사를 하는 대표 선수들의 모습 ⓒ이아영

 

 

그렇게 아침을 먹기에 많이도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인근 식당에서 늦은 아침식사를 한다. 보통 사람들도 일어난 지 5시간이나 지나면 자연스레 배가 고프기 마련인데 고된 훈련을 하는 선수들은 오죽할까! 선수들은 뱃속에서 노를 젓느라 뱃속 사정은 뒷전이다. 정말 미친 체력의 종결자들이다. 나의 꼬르륵이 부끄러워질 정도로 말이다.

 

어이! 어디가? 나? 조정가!
2011년 여름을 뜨겁게 만들었던 무한도전 조정특집을 본 사람이라면 아마 선수들이 레이스 직후 탈진하는 장면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조정이라는 종목을 대한민국에 널리 알려준 무한도전으로 인해 많은 국민들이 조정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어느덧 경기용어나 룰을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생겨났다. 이것이 바로 매스컴의 힘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는 주로 프로스포츠 위주의 보도가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축구, 야구, 농구, 골프와 같은 스포츠를 제외하고는 TV에서 구경하기가 좀처럼 쉽지가 않다. 언제부터인가 스포츠 속에 기업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대중매체의 불평등 현상이 시작되었다. 소위 말해 돈이 되는 스포츠 종목이 TV 편성표를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타 매력 있는 스포츠라 하더라도 전파를 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핸드볼, 레슬링, 봅슬레이 등 비인기 종목의 대중화를 위해 끝없이 도전하는 무한도전 덕분에 조정도 어느덧 국민 스포츠로 자리매김하고 있는듯하다. 조정을 위한 노래까지 탄생될 정도니 말이다.

 

 

 

 

무한도전 조정특집 ⓒ이아영

 

 

 

하지만 사실 아직까지도 선수들의 피부에까지 와 닿을 만큼 조정이 인기 종목은 아닌 듯 보인다. 우리 국민들은 4년에 한 번씩 TV앞에 두 손 모아 선수들을 위해 기도한다. 희한하게도 대한민국의 냄비근성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집중적으로 응원 열기가 대단하고 끝나면 무섭게 사라진다. 이 또한 매스컴의 반짝 취재 때문은 아닐까? 매스컴의 꾸준한 관심은 곧 국민들의 꾸준한 관심이 될 테니 말이다.

 

무한도전은 단 몇 편의 특집 방영만으로도 조정이라는 스포츠를 대 국민에게 강력하게 알렸다. 김태호 PD와 같은 천재 프로듀서 덕분에 그나마 몇몇 스포츠들은 숨을 쉬었는데 여전히 우리 스포츠는 더 많은 산소통이 필요하다. 예능프로에만 목숨을 걸고 방영을 할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스포츠 소식을 전하고 ‘불멸의 국가대표’와 같은 스포츠 관련 프로그램을 많이 편성해야 국민들의 다양한 스포츠에 대한 알권리도 많이 존중해주는 것이다.

 

선수들은 국민들에게 바라는 것이라고는 한 가지 밖에 없다. 꾸준한 관심과 사랑뿐이다. 무한도전 조정특집이 방영된 지 1년이 지난 지금 경기장을 찾는 관중들이 좀 더 늘기는 하였으나 이 정도 가지고는 안 된다. 올림픽이 끝나고 나면 2013년 충주에서 조정 세계선수권이 열리게 된다. 선진 국가에서도 좀처럼 구경하기 힘든 세계선수권(올림픽 다음으로 최고 규모의 국제시합)을 우리나라에서 직접 볼 수 있는 그야말로 대박기회이다. 부디 대한민국의 아들딸들이 기죽지 않도록 직접 가서 목이 터져라 응원하기를 기원한다.

 

 

“솔지야, 너는 정말 못타는데 열심히 타는 거 보면 신기해”
 우리가 주목해야하는 선수가 하나 있다. 바로 포항시청 소속 김솔지(25)선수이다. 김솔지 선수는 이번 올림픽에 경량급 더블스컬로 팀의 맏언니인 김명신(29) 선수와 호흡을 맞추게 되었다. 대표팀 4년차 김솔지 선수는 아직도 대표팀에서 훈련하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말한다. 고등학교 시절, 그리고 대학교에 입학한 직후까지도 그다지 잘하는 선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김솔지 선수를 처음 만난 것은 그녀가 대학교에 처음 입학했던 2008년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솔지 선수는 뛰어난 경기력을 갖고 있지 않았다. 대학에 입학한 후 첫 시합에 출전하여 7명 중 6등을 하는 정도의 실력으로 많은 사람들이 주목해주지 않았던 선수였다. 하지만 2012년 4월, 나는 대학 졸업한 후 3년 만에 처음으로 김솔지 선수를 스포츠 뉴스에서 만날 수 있었다. 아시아 예선전에서 2위로 통과하며 올림픽 행 티켓을 따냈다는 소식으로 말이다. 그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대학생활 동안 운동을 어떻게 했기에 경기력이 저렇게 좋아졌을까?’라는 생각에 한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꼴찌에서 두 번째로 들어오던 아이가 어떻게 국가대표가 되었으며, 어떻게 올림픽에 선발이 되었을까?


 어린 시절부터 힘이 남달랐던 그녀는 친척들과 하는 팔씨름에서 모조리 이겼다. 그런 그녀를 보고 용인대학교 유도선수 출신인 아버지는 딸에게 계속 유도를 시키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했지만 어린 솔지가 유도를 시작하게 하는데 실패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친구로 인해 조정을 알게 되었고 미사리에서 배 타고 왔다 갔다 잘 타기만 하면 한국체육대학교에도 갈 수 있다고 말하며 솔지를 설득했다. 어린 시절부터 한국체육대학교 인근에서 자라온 탓에 항상 ‘한국체육대학교’ 하면 뭔가 멋있어 보인다는 생각에 로망을 가지고 있었던 그녀는 중학교 3학년 시절, 한국체대 진학을 목적으로 조정을 하기로 마음을 조정했다. 중, 고등부 시절 내내 은메달만 따는 만년 2등 선수였던 김솔지 선수는 국가대표가 되고 싶다거나 1등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그다지 없었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 후 첫 시합에서 7명 중 6등을 하자 주변 사람들로부터 한국체대에 진학한 것이 실패의 원인이라는 충고를 들었다. 마치 예상이 적중되기라도 한 것 마냥 말하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자신의 로망이었던 학교에 진학 한 그녀는 너무 행복했었다. 좋은 친구들이 많이 생기고 대한민국 최고의 체육 대학교에 입학한 것이 마냥 기쁘기만 한데 자신이 못하는 탓을 학교의 탓으로 돌리니 오기가 생기게 되었고, 악착같이 열심히 노력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김솔지 선수는 새벽운동 시간에 에르고미터(실내에서 조정훈련을 할 수 있는 웨이트머신)를 타는데 사실 진짜 못타는데 정말 열심히 했다. 생리통이 있는 당일만 쉬고 한 번도 안 쉬었다. 오빠들이 심지어 “솔지야, 너는 정말 못타는데 열심히 타는 거 보면 신기해”라는 우스갯소리도 그저 기분이 좋았다.

 

 

솔지를 떨리게 했던 사람 두 남자
 대학교 1학년 시절 어느 날 운동이 끝난 후 모두 모인 자리에서 강동균 조교선생님께서 선수들이 다 듣는 앞에서 갑자기 “솔지는 언젠가 자기가 노력한 만큼 꼭 돌려받을 거야.” 라고 말했다. 그 순간 솔지는 마음속으로 많이 놀랐다. 선수들도 많고 자신은 경기력이 낮은 선수였기에 관심도 없을 줄로 생각했는데 ‘선생님이 나를 지켜보고 계셨구나!…….’라는 생각에 너무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그 후로부터 열정이 더 활활 타오르게 되었다.

 

김솔지 선수는 서울체육고등학교 재학시절부터 지금까지 2000일 넘게 사겨온 남자친구가 있다. 현재 서울시청 소속 조정선수인 이선수 선수이다. 사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사람들 몰래 사귀느라 힘든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대학에 막상 와보니 연애하는데 있어 터치하는 사람이 없었고 편안하게 공개연애를 할 수 있었다. 한 살 터울의 선수오빠랑 함께 운동 하고, 함께 밥 먹고, 함께 학교생활 하는 것이 너무 재밌어서 대학생활이 즐거웠다. 그야말로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며 조정을 즐기며 하는 시기가 찾아왔다. 선생님의 기분 좋은 칭찬으로 가슴 설레고, 든든한 남자친구와의 일상으로 떨리는 삶이었다. 그런 모든 것들이 그녀가 최선을 다해 조정을 사랑할 수 있도록 시너지 효과를 내주었던 것이었다.

 

 

항상 보고 싶은 남자친구의 이름과 자신의 이름을 새겨 만든 컬러점토 하트 ⓒ이아영

 

 

누가 보던 안 보던 스스로 최선을 다했던 그녀는 첫 시합에서는 6등을 했다. 하지만 두 번째 시합에서는 5등을 했고, 그 다음번 시합은 4등을 했다. 자신의 실력이 향상되고 있는 것을 느끼는 재미에 솔지 선수는 조정이 힘들지만 너무 좋아지기 시작했다. 매 시합마다 강동균 조교선생님은 솔지에게 다정하게 다가와서 “솔지야~ 이번에는 몇 등 할 거야?”라고 묻곤 하셨다. 그렇게 선생님의 질문에 매번 5등 할래요. 4등 할래요. 라고 줄곧 대답을 했는데 신기하게도 내뱉는 대로 결과가 나왔다. 그렇게 1학년 시절 내내 상승세를 유지하다가 전국체전이 열린 10월에는 송파구청 소속 선수와 호흡을 맞추어 더블스컬에서 4등을 기록했다. 1년을 뒤돌아보니 그녀의 실력은 어느덧 메달권에 가까워져 있었다.

 

 

어차피 나가봤자 꼴찌였던 대표 선발전에서 그만…….
 2학년이 되자 조정 지도교수인 변원태 교수님께서는 그녀에게 해마다 열리는 국가대표선발전에 참가하기를 권유하셨다. 김솔지 선수는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가하는 것은 생각도 해본 적 없는 일이라 많이 얼떨떨했고 어차피 나가봤자 꼴찌일거라고 생각했다. 교수님이 출전하라고 하시니까 그냥 마음을 비우고 시합에 출전하기로 했다. 당시 싱글스컬 경량급 부문에 출전을 하게 되었는데 대표팀 3명이 선발될 계획이었다. 당시 기존 대표팀이었던 3명의 선수가 출전 예정이었던지라 들러리만 될 게 뻔 한 대회였다. 절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생각해오던 김명신, 지유진, 고영은 선수가 같은 경기에 참가하였는데 고영은 선수가 체중 때문에 중량급으로 출전하게 되었다. 그래서 몇 몇 선수들은 남은 한 자리에 기대를 걸었지만 솔지는 가능성이 아예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기대를 전혀 하지 않았다. 그저 늘 그랬듯이 자신의 레이스에 집중을 할 뿐이었다. 시간이 다다랐고 드디어 출발선에 섰다.

 

 

‘두근두근’
심박 수가 점점 올라갔다.
항상 그렇듯 이 곳에만 오면 떨리는 가슴은 주체하기가 어려웠다.

 

스타트 소리가 울리고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기존 기록상 지유진 선수가 1등, 김명신 선수가 2등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경기였다. 그런데 스타트를 하고 나니 김명신선수가 그녀의 시야 앞에 있었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노를 저을수록 그 격차가 조금씩 벌어지며 김솔지 선수가 결국 2등으로 골인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김솔지 선수가 국가대표 선발 된 것이다. 항상 ‘1등해야지’ 라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던 그녀였다. ‘선수생활 그냥 중간으로 길게 가자’라는 생각으로 살아왔고 그런 생각이 그냥 좋았다. 욕심도 없었고 1등 보다 2등이 더 좋았던, 늘 2등만 하던 선수였는데 자기도 모르게 국가대표라는 자리에 발탁이 되어 버렸다. 넘을 수 없는 벽이라 여겨왔던 김명신 선수가 그 날 컨디션이 안 좋았던 게 분명했다는 그녀의 말에서 여전히 겸손의 기운이 느껴졌다.

 

"명신언니는 또 다른 저의 몸이에요."
김명신 & 김솔지 선수는 어쩌다 파트너가 되었을까? 런던 올림픽 더블스컬 파트너를 선발하기 위해 국가대표 코치진은 김솔지, 김명신, 지유진, 박연희 이렇게 4명의 선수를 서로  돌아가며 2인 1조로 호흡을 맞추게 하여 가장 기록이 우수한 구성팀을 선정해 아시아 예선전 출전팀을 선발키로 했다. 앞에 타는 선수(스트록)가 레이스를 주도하고 뒤에 타는 선수(바우)가 스트록을 잡아주며 호흡을 맞추며 경기를 하는 더블스컬 시합은 두 사람이 마치 복제인간인 것처럼 동작이 일치해야 한다. 스트록 포지션을 하는 지유진, 김명신과 바우 포지션을 하는 박연희 김명신 중 누구하나 모자랄 것이 없었던 최고 기량의 선수들이었는데 그 중 특히 지유진 선수는 베이징 올림픽에도 출전했던 무서운 에이스였다. 호주 전지훈련과 국내 자체평가전을 거듭한 후 김명신 & 김솔지 선수가 최종 선발이 되었다.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지옥훈련을 하는 김명신 & 김솔지 ⓒ이아영 

 

 

김솔지는 지유진, 박연희, 김명신 선수와 모두 배를 타 보았는데 사실 오랫동안 대표팀 생활을 해오며 높은 경기력을 가진 지유진 선수와 김명신 선수가 자신 보다 나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이 올림픽에 출전할 가능성은 희박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그녀는 올림픽에 너무 나가고 싶었고 이 기회가 자기 인생에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이미지트레이닝을 엄청나게! 과하게! 심하게! 강렬하게 했다고 당시 기분을 토해내며 눈빛을 초롱거렸다. 너무나 간절했던 것이었다. 김명신 선수는 뒤에 타면서 늘 자신이 체중을 더 빼주는 역할을 하는 바우 10년차 베테랑 선수다. 그녀는 훈련이 끝나자마자 엄청난 갈증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얼려온 보리차 물통을 김솔지 선수에게 먼저 던져주었다. 파트너는 곧 내 몸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4살이나 더 어린 김솔지 선수는 스트록 역할로써 앞에서 레이스를 리드를 해야만 한다. 한국 정서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지만 언니에게 요구를 해대는 어린 동생을 다 받아주는 김명신 선수는 진정 프로다.

 

 

“언니 저도 진짜 힘든데요, 둘 다 힘내서 가 봐요!”
“응! 알았어! 좀 더 해볼게!”
“언니! 10개만 더 차봐요! 동용이한테 잡히지마요!”
“알았어! 가자!!!”

 

명신 선수는 동생 솔지에게 “아까 네가 해보라는 대로 해봤는데 이번엔 어땠어? 괜찮았어?”라고 물어온다. 두 사람은 이렇게 훈련 중에도 훈련 후에도 항상 피드백을 주고받는다. 김솔지 선수는 우리 팀은 파이팅이 좋은 것이 장점인 것 같다고 말한다. 사실 앞에서는 자기 스타일대로 타면 되는데 뒤에 타는 사람은 힘든 레이스 과정에서 스트록이 요구하는 것을 다 받아주고 리듬도 잘 잡아주고 피치도 잘 잡아줘야 하는 어려운 포지션이다. 올림픽에 다가갈수록 두 사람은 팀웍이 더 잘 맞아간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올림픽이라서 그런지 언니는 동생을 더 잘 챙겨준다. 원래 파트너는 같이 자야 되고, 같은 곳을 봐야 할 정도로 마음이 서로 일치해야 하는 팀이다.

 

“명신언니는 제 어떤 요구도 다 받아줘요. 뒤에 타는 사람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정말 존경스럽다고 말할 수 있죠. 리듬을 맞춰 준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뒤에 타보고 난 후에야 느꼈다니까요. 명신 언니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으면 날 이렇게 잘 잡아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 정도에요.”

 

 

모자부터 슬리퍼까지 틀린 구석이 하나 없는 완벽 콤비의 모습 ⓒ이아영

 


광저우 아시안게임에도 출전하여 동메달을 획득했던 김명신 & 김솔지 콤비! 그들은 지금 서로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말하며 서로를 믿어주고 있다.

 

“바보같이 그 한마디에 온 정신이 무너지면서 눈물이…….”
 대한민국 조정 국가대표팀에는 세 명의 지도자가 있다. 그 중 여자선수들을 쥐락펴락하는 호랑이 코치 장현철이 있다. 남자 지도자든지 여자 지도자든지 간에 모든 지도자들의 영원한 숙제는 바로 여자 선수들을 컨트롤하는 일이다. 남자선수들 보다 감정적으로 훨씬 예민하기 때문에 말 한마디에 감정의 변화가 큰 선수들이 바로 여자선수들이다. 장현철 코치는 선수들에게 칭찬을 남발하는 지도자가 아니다. 솔직히 선수의 입장에서도 지도자의 칭찬이 잦으면 ‘아~저 분은 평소에 칭찬을 많이 하는 사람이구나.’라 여기고 정작 진짜 칭찬을 해도 선수들에게는 그다지 많이 와 닿지 않는다. 그렇지만 칭찬에 인색한 장현철 코치님이 칭찬을 해주면 선수들의 기분은 날아다닌다. 하루는 힘들게 훈련을 하고 있는데 배에 있는 무전기를 통해서 “솔지 잘한다.~~~~!”라고 말하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온 몸에 힘이 쫘-악 들어오면서 자기도 모르게 명신언니에게 “언니가자!!!!!! 할 수 있어!!!!!”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했다.

 

 

 

무전기를 통해 선수들의 자세를 지적해주는 장현철 코치님의 모습 ⓒ이아영

 

 

선수들은 코치님을 좋아하지만 가장 무서워하는 지도자로 손꼽았다. 얼마나 무서운지 다음 훈련 스케줄은 무엇인지, 이번 주에 외박은 주시는지 미리 물어보지도 못할 정도로 말이다.


 장현철 코치님은 중요한 시합이 다가올수록 더 무서워진다. 운동을 하면서 필요하다면 험한 말도 가리지 않는다. 물론 선수들은 자신들이 싫어서 말을 험하게 하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선생님의 큰 목소리를 들으면 순간 몸이 경직이 되기도 했단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의 등장만으로도 긴장을 하게 되고 훈련에 정신 바짝 차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사실 중요한 시즌이 다가오면 그 누구보다 예민한 사람이 바로 선수들이다. 그래서 가끔은 감정적으로 많이 지쳐서 코치님이 순간 미울 때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시합에서 좋은 결과를 얻은 후 선생님의 밝은 미소를 보거나, “잘했어”라는 한마디를 들으면 힘들었던 모든 감정이 한 방에 날아간다.


 

 

 

선수들을 밀땅 하는 남자 “장현철” ⓒ이아영

 

 

사실 올해 4월, 올림픽 티켓이 걸려있었던 아시아 지역 예선전을 준비할 때는 코치님이 최고로 무서웠었다고 했다. 심지어 코치님이 너무 무서워서 마주치는 것도 두려웠다. 훈련은 매일 힘들고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있었는데 하루는 코치님이 솔지 선수의 눈을 바라보며 “힘들었어?”라고 말을 걸었다. 그러자 그녀는 바보같이 그 한마디에 온 정신이 무너지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을 보고 코치님이 소리 없이 안아주셨는데 그 때 이후로 하루 종일 울었다. 선수들은 코치님이 칭찬하면 모두 하늘 위로 솟을 만큼 기분이 좋아진다. 특정 어느 선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선수들이 그렇다. 아마 호랑이 코치님의 말 한마디에 영향이 엄~~~~~청 크긴 큰가 보다. 고백하건데 김솔지 선수는 장현철 코치님이 자신들을 컨트롤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대표팀 장현철 코치님은 그 무서움의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조정은 정말 힘든 운동이에요. 말이 2000미터지 실제로 타보면 정말 마지막 순간에는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싶을 정도에요. 그래서 정신력이 정말 중요해요. 사실 저도 우리 선수들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래서 좋은 말만 해주고 싶고 칭찬도 많이 해주고 싶지만 저는 그들을 이끌어가야 하는 지도자이기 때문에 이렇게 엄격하게 대할 수밖에 없죠. 가끔 미안하지만^^…….”

 

영국의 명문 사립고등학교 이튼 스쿨 내에 위치한 이튼도니 조정경기장에 들어선 선수들은 올림픽을 난생 처음으로 느껴보았다. 관중의 규모나 올림픽이라는 세계최대의 올림픽 축제 속에서 또 다른 꿈을 가슴에 품었다. 더 높이 날아오르겠다는 다짐을 말이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메달권 진입은 희박한 것이 확실하지만 대한민국 조정 국가대표팀은 이제 서서히 비상하고 있다. 올림픽이 끝나도 선수들을 쉴 수 없다. 곧바로 해외 전지훈련과 시합, 또 시합 계속 훈련의 연속이다. 목표는 올림픽에서 그치지 않는다. 2013년 대한민국에서 열리게 되는 충주 조정 세계선수권 대회를 다음 타겟으로 삼고 뜨거운 태양을 온 몸으로 다 받아내는 그들은 진정한 챔피언이다.

 

대한민국 조정 국가대표 선수단 김동용, 김예지, 김명신, 김솔지 선수 화이팅!!!!!!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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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철원 (스포츠둥지 기자)

 

 

     ‘오심도 경기의 일부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 말을 사용할 수 없을 것 같다.

 

 

런던 올림픽 공식 홈페이지

 

지난 28일 오후 7시(한국시간), 런던 아쿠아틱 센터에서 런던올림픽 수영 남자 400m 자유형 예선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박태환이 힘차게 스타팅블록을 박차고 나갔다. 결과는 예선 3조 1등이자 전체 4위로 가볍게 결승진출을 확정. 하지만, 전광판에 뜬 박태환의 공식기록은 DSQ(실격)이었다. 출발 전 미세하게 몸이 움직였다는 이유로 부정출발 판정이 내려진 것이다.

 

그리고 몇 시간 뒤, FINA(국제수영연맹)가 사상초유의 판정번복을 선언했다. 우여곡절 끝에 결승에 진출한 박태환은 자랑스런 은메달을 목에 걸며 올림픽 2회 연속 입상이란 쾌거를 이뤄냈다.

 

사실, FINA 사상초유의 판정번복은 한국 선수단의 철저한 준비가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 김동성과 양태영 사건, 준비부족이 뺐어간 그들의 금메달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승에 진출한 김동성이 결승선을 1위로 통과한 후 DSQ실격을 받고 금메달을 미국의 안톤 오노에게 넘겨줬다. ISU(국제빙상경기연맹)의 실격 조항인 크로스트랙(Cross Track)의 투스텝(Two Steps)으로 오노의 진로를 방해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사실, 오노의 액션은 선두로 있는 김동성에게 임패딩(Impeding) 반칙을 가하지 않기 위해 했던 행동이었다. 심판이 오노의 액션을 잘 못 받아들인 것이었다. 하지만, 경기 결과가 번복되지는 않았다.

 

당시 현장에 능숙한 영어로 항의를 할 수 있는 빙상 관계자도 배치 되어있지 않았고, 심판이 오심을 했다는 증거물도 불충분했기 때문이다. ISU에서도 이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한국 선수단은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공식 제소했다. 하지만, CAS역시 ISU 자료를 바탕으로 오심에 대한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제소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남자 체조에 출전한 양태영이 중간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평행봉에서 그의 10점 만점 연기는 9.9점으로 판정됐고, 미국의 폴햄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양태영을 동메달로 밀어내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후에 국제체조연맹(FIG)이 오심을 인정하고 당시 심판진 3명에게 중징계를 내렸지만 이미 금메달은 양태영을 떠난 후였다. 당시 한국 선수단이 공식적으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시간 내에 서면으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공식 항의 절차를 숙지하지 않고 있었던 한국 선수단의 무지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 당할만큼 당했다. 두 번 다시 오심으로 인한 눈물은 없다
시간이 흘러 2012년 런던 하계올림픽, 박태환의 석연치 않은 실격 판정 후 한국 선수단은 이의신청 접수 시간에 맞춰 서면으로 이의신청서를 제출했다. 심판위원회가 박태환의 실격 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답하자 한국 선수단은 즉각적으로 2차 항소를 준비했다. 결국 비디오판독 끝에 FINA 상소위원회는 박태환의 움직임이 기록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었다고 발표하며 판정번복을 선언했다. FINA가 사상초유의 판정번복을 선언하기 까지 채 3시간도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전 세계가 주목한 이 사건은 이미 두 개의 금메달을 강탈당했던 경험이 있는 한국 선수단의 철저한 준비에서 이뤄진 일이었다.

 

판정번복이 선언된 후 이기홍 선수단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양태영 사건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번 대회를 앞두고 각 종목 관계자들에게 판정에 따른 현장 항의 절차를 확실히 숙지시켰다"고 밝히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와 별도로 한국 선수단은 각 종목마다 영어에 능통한 관계자를 배치해 의사소통으로 인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선수단이 현장에서의 즉각적인 이의신청을 준비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CAS 역시 판정에 관한 문제는 해당 국제연맹의 의견을 존중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2004년 양태영 사건이 불거졌을 때 매튜 리브 CAS 사무총장은 "점수를 매기는 것과 판정 관련 분쟁이 있다면 이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라며 "우리는 경기 판정을 리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CAS는 최근 몇년 간 판정시비에 관련된 제소는 안건조차 받지 않고 있을 정도로 각 연맹과 심판의 고유권한을 침범하는 것을 꺼려한다. CAS를 관리하는 국제스포츠중재위원회(ICAS)의 근거 조항에 '최우선적으로 해당 경기연맹의 규정에 따라 판정을 하고, 그 결과에 불복할 시 중재재판법에 의해 판정을 내린다'는 내용이 있을 만큼 현장에서 해당 연맹의 판정이 우선시되기 때문이다.

 

박태환이 오심사건으로 인해 4년간의 노력을 제대로 보상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박태환 덕분에 국가대표 선수들이 훗날 열릴 올림픽에서 '땀과 눈물'을 제대로 보상받을 수 있는 방법을 확실히 깨닫게 됐다.

 

대회 첫 날, 한국 선수단은 금메달보다 값진 올림픽 유산을 획득하게 됐다.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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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철원 (스포츠둥지 기자)

 

 

      해마다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국가대표의 음주사건이 또 다시 연달아 발생했다. 예전과는 달리 태극마크의 의미가 다소 가볍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이철원

 

▶ 요트 대표팀, 올림픽 직전에 코치를 잃다


대한요트협회는 대표팀의 출국을 일주일 앞두고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유도 동메달리스트인 조재기 대한체육회 경기력강화위원장을 초빙해 요트 대표팀에 특강을 실시했다. 이 자리를 통해 조 위원장은 후배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올림픽에 출전하는 마음가짐과 국가대표로서의 필수 사항을 전달했다.

 

하지만, 2012년 런던 올림픽 개막을 이틀 앞둔 지난 25일(현지시간)에 요트 국가대표 이재철 코치가 런던 현지에서 음주운전으로 경찰에 적발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코치는 요트 경기가 열리는 영국 남부 웨이머스(Weymouth)지역 시장이 요트 선수들을 위해 연 만찬회에서 와인을 마신 후 음주운전을 했고, 현지경찰이 이를 적발 해 벌금 400파운드를 부과한 것이다. 이에 이기흥 한국선수단장은 긴급 상벌회를 열어 '국가대표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이 코치를 즉각 귀국조치 시켰다. 요트 대표팀은 경기를 5일 남겨둔 시점에서 코치를 잃게 된 것이다.

 

요트 경기가 열리는 웨이머스 지역은 런던에서 175km나 떨어져있다. 올림픽의 주 무대 지역인 런던 워터루(Waterloo)지역으로 이동하려면 유일한 교통편인 열차(National Rail)로 세 시간이나 가야하는, 올림픽의 열기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외딴 곳이다. 그렇기에 이 코치가 자신에게 주어진 국가대표로서의 임무와 사명을 잠시 잊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 빙상 스타, 빙판이 아닌 도로를 질주하다


지난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에 14년 만의 값진 메달을 선사한 이강석, 그가 지난 6월 16일 새벽에 음주운전을 하다 면허가 취소된 것이 최근 한 매체를 통해 보도됐다. 이 사건이 더욱 충격적인 이유는 이강석이 국가대표로서의 소양교육을 받은지 불과 2주 밖에 안 된 시기에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은 이강석이 음주운전을 하기 불과 2주 전인 6월 5일, 태릉선수촌 빙상장 내 회의실에서 빙상 국가대표(스피드스케이팅,쇼트트랙,피겨) 통합 워크샵을 실시했다. 이 워크샵에는 ‘한국 쇼트트랙의 전설’ 전이경을 비롯해 대학 교수들이 강사로 참석해 국가대표로서의 국가관 확립과 소양 및 인권교육 등을 실시했다.

 

당시 워크샵에 참석했던 현 빙상 국가대표 남·녀 선수 2명은 필자와의 전화통화를 통해 당시 음주에 관련된 직접적인 강의는 없었지만 국가대표로서 언행에 주의해야한다는 내용이 분명히 전달됐다고 밝혔다.

 

 

 

▶ 태극마크는 단순한 문장이 아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건국 이후 첫 금메달을 조국에 선사한 레슬링 국가대표 양정모를 지도했던 정동구 체육인재육성재단 이사장(당시 국가대표 코치)은 아직까지도 국가대표 출신 후배들에게 언행주의와 용모단정을 강조한다. 국가와 국민을 대표했던 사람으로서의 소양은 평생 가져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기 때문이다.

 

1970년대 한국 여자농구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며 현재 여성 최초로 KBL(프로농구연맹) 심판위원장을 맡고 있는 강현숙 심판위원장은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이 끝난 후 필자와 만난 자리에서 이런 아쉬움을 토로했다. “예전에는 태극마크를 달았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자부심이 대단했다. 하지만, 지금 후배들은 그런 것 같지 않다”라고.

체육계 선배들의 이런 외침이 소수의 국가대표 선수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국가대표 선수들의 유니폼 좌측 상단에는 대게 가로 6cm x 세로 4cm정도 크기의 태극기가 박혀있다. 이 조그마한 태극마크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책임감과 의무를 동반한다.

 

그 의미를 잊어버린 자는 스스로 되새겨보길 바란다.

 

 

첫 태극마크를 달고 기쁨에 넘쳐 밤잠 이루지 못하고 그 유니폼을 만지작거렸을 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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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수연 2012.07.26 16:02 신고

    사진 선택이 잘못 된것 같습니다....
    내용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꼭 이규혁선수와 모태범선수중 한분이 음주운전을 하신줄 알겠어요.... 제가 주제넘게 말하면 기사내용과 관계없는 사진은 사용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 최수연님~오해의 소지가 있었던 부분에 대해서 사과드립니다. 다음부터는 그런부분을 고려하여 사진을 올리도록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글 / 이아영 (스포츠둥지 기자)

 

 

 

      개막을 16일 앞둔 7월 11일 수요일, 2012년 런던 올림픽 대한민국 선수단은 올림픽 공원 내 올림픽 홀에서 결단식을 가졌다. 우리 선수들이 꿈을 펼칠 무대가 있는 런던은 올림픽 역사상 올림픽을 세 번이나 개최하는 첫 번째 도시가 된다. 대한민국은 런던을 약속의 땅이라고 말한다. 1948년 런던올림픽에서 역도의 김성집(95) 선수가 따낸 동메달이 바로 대한민국 올림픽 역사상 최초의 메달이었기 때문이다. 그 설레는 역사의 현장 속으로 입장하게 될 우리 선수들은 이제 올림픽을 실감하는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결단식 현장에 늠름한 모습의 양궁국가대표팀 이아영

 

올림픽은 모든 운동선수들의 꿈의 무대이다. 총 소리 나지 않는 국가 간의 전쟁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만큼 올림픽에서 펼쳐지는 경쟁은 참으로 치열하고 긴박감이 넘친다. 이번 올림픽에서는 과연 어떤 장면들이 펼쳐질지 상상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2008 베이징 올림픽 경기에서 장미란 선수는 +75kg급에 출전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6번의시기를 모두 성공하면서 여자역도 사상 올림픽 첫 금메달을 국민들에게 안겨주었다. 성공의 순간 국민들은 마치 자기일인 것 마냥 함께 기뻐하고 함께 소리친다. 베이징 올림픽 당시 한국체육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나는 기숙사에서 경기를 봤는데 살면서 그렇게 재미있었던 한 달이 또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난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대부분의 종목이 교내 종목에 있었기 때문에 기숙사 휴게실에서 여러 종목의 동료들과 함께 TV를 시청했다. 양궁을 볼 때에는 양궁부 선수들이, 펜싱을 볼 때에는 펜싱 선수들이 그 누구보다도 격렬하게 응원을 하고 있고 또 그 옆에서 관람하다보면 해설위원보다 더 정확하고 신속한 정보를 들으며 경기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간대에 여러 종목이 중계되는 경우에는 다른 종목이 궁금할까봐 채널을 돌려보지 않아도 된다. 2층에서 역도부와 함께 역도를 보고 있으면서도 3층에서 유도를 보는 유도부들의 반응으로도 경기의 결과를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미란 선수의 금메달이 확정되었을 때 나는 마치 내 일인 것 마냥 뛸 듯이 기뻐하고 축하했다. 건너편 남자 기숙사에도 경기를 보고 있었는지 층별로 있는 휴게실에서 동시에 지르는 함성이 하나로 모여 엄청난 함성이 되어 날아왔다. 가끔 금메달을 따는 등의 좋은 소식이 들리면 기숙사 사감선생님의 특별 청소 면제나 소등 시간 연장 서비스가 주어지기도 해서 손에 땀을 쥐고 기도하는 것은 올림픽의 묘미이다.

 

 

결단식에 참가하여 밝은 미소를 보이고 있는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 선수단 이아영

 

 국민들이 4년간 기다려 온 올림픽이 드디어 2주 가량 남았다. 결단식 현장에는 올림픽에 참가하는 국가대표 선수단을 격려하기 위해 많은 분들이 올림픽홀을 찾아주었다.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가장 앞자리에 앉아 계시는 체육인재육성재단의 정동구 이사장님의 모습도 찾아볼 수 있었다. 정동구 이사장님은 대한민국 올림픽 역사상 최초의 금메달인 양정모(레슬링)선수를 키워낸 훌륭한 지도자이다. 올림픽이라고 하면 그 누구보다도 애정이 많으신 이사장님의 눈빛이 인상 깊었다.  

 

 

체육인재육성재단 정동구 이사장님의 결단식 참석 모습 이아영

 

 

생방송으로 진행되었던 결단식에 참석하기 위해 선수들은 관광버스를 이용해 단체로 이동하였다.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위치한 태릉선수촌에서 한 팀, 충북 진천군에 위치한 진천선수촌에서 한 팀 이렇게 흩어져 살림살이 했던 대한민국 국가대표 식구들이 한 장소에 모두 모였다. 운동복이 아닌 올림픽 공식 단복을 맞춰 입고 같은 모습을 하고 앉아 있는 선수들은 멀리서보면 다 똑같은 모습이었지만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단복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종목의 특성에 맞는 체형 덕분에 누가 무슨 종목인지 금방 들통이 났다. 특히 역도부가 말이다. 역도에 +105kg급에 출전하는 전상균(31. 조폐공사) 선수는 이번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단 중에서 최중량 선수로 몸무게 165kg을 기록한 바 있다.

 

 

역도 염동철 코치(가운데), 최경량급 지훈민(좌), 최중량급 전상균(우) 선수 이아영

 

 

최중량 선수만 있는 것이 아니다. 2012 런던 올림픽에 기수로 선정된 핸드볼 윤경신 선수는 이번 올림픽 참가 선수단 중 최고령과 최장신 부문 그리고 올림픽 최다 출전 부분에서도 1위였다. 윤경신 선수는 203m의 장신이며, 1973년 7월 7일 행운의 SEVEN DAY에 태어난 럭키가이다. 1992년 바르셀로나, 2000년 시드니, 2004년 아테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이버 이번이 5번째 올림픽 출전인 전설적인 인물인 것이다. 등번호도 77번인 윤경신선수! LUCKY GUY가 있는 남자 핸드볼 대표팀의 활약이 정말 기대된다.

 

 

핸드볼 국가대표 최종 평가경기 전 윤경신 선수의 모습 이아영

 

 

선수단은 오늘 만큼은 운동은 제쳐두고 왔다. 휴식을 싫어하는 선수는 없기에 조정 국가대표 선수인 김명신 선수에게 “오늘 하루 운동 쉬어서 좋겠다.”고 물어봤지만 김명신 선수는 오히려 운동 하는 것보다 이런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 더 힘들다고 말했다. 생각해보니 조정팀은 진천선수촌에서 생활하는 선수들인지라 태릉팀보다 출발도 더 빨랐고 차로 이동하는 시간도 더 길었을 것이다.

 

 

조정 국가대표 김명신(더블스컬) 선수 이아영

 

 

오히려 운동을 하고 나면 덜 피로하다고 말하는 우리 대표팀은 올림픽을 향해갈수록 체력의 급격한 소진이 예상되는 듯하다. 선수들은 올림픽 홀에서 결단식을 가지느라 오후 시간을 다 썼고, 결단식이 끝난 6시에는 SBS 공개홀로 이동하여 올림픽 개막 전 방영되는 녹화방송을 촬영하기 위해 4시간 동안 촬영에 임했다. 태릉선수촌에서 생활하는 대표팀들은 10시가 넘어서야 도착을 했고, 그 시간 진천선수촌 팀들은 여전히 도로 위를 달리며 충북으로 향했다. 지도자들은 내일이 걱정된다며 선수들의 몸 상태를 챙기느라 여념이 없어보였다. 해가 없는 새벽훈련 시간을 틈타 체력훈련을 하기 때문에 일찍 자야하는 선수들은 수면시간을 많이들 놓쳤다. 몸은 피로하지만 이렇게 올림픽 결단식과 같은 행사를 직접 하고나면 선수들은 다시 올림픽이 돌아왔다는 것을 또 피부로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이 날 올림픽 홀 1층에는 국가대표 선수들로, 2층에는 선수들을 취재하기 위해 모여든 취재진들과 팬들로 꽉 찼다. 선수촌 내부에서 훈련만 하는 선수들은 TV를 볼 시간도 많지 않아서 국민들의 응원 열기를 직접 느껴볼 기회가 없는데 이러한 행사를 통해 팬들을 만나고 분위기를 실감할 수 있어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사격 국가대표 진종오 선수의 올림픽 찬가 제창 모습 이아영

 

 

런던올림픽에 참가하는 한국선수단은 총 22개 종목, 374명(임원 129명, 245명)으로 구성됐다. 245명의 선수는 210명이 출전한 1984년 LA올림픽 이후 가장 작은 규모다. 농구와 남자배구와 같은 구기종목과 테니스, 승마, 카누에서 출전권을 따내지 못하여 선수단 규모가 줄었다. 하지만 메달 목표에는 큰 무리가 없다고 대한체육회는 전했다. 금메달 10개로 10위권 진출이 목표인 대한민국 대표 선수단의 10-10 작전이 꿈의 무대 런던에서 꼭 이루어지길 기원한다.

 

 

임정우 코치와 여자하키 국가대표선수들의 결단식 참가 모습 이아영

 

 

대한민국 선수단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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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성수 (스포츠둥지 기자)

 

 

 

 

 

브라질

 

축구의 나라 브라질. 브라질의 축구실력이 세계 최강이라는 것에 의문부호를 다는 이는 없을 것이다. 브라질은 전세계 국가 중 유일하게 모든 월드컵대회에 참석하였으며, 총 5회 우승으로 세계 최고의 월드컵 우승횟수를 자랑한다. 또 펠레, 지코, 호나우도, 호나우딩요 등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들의 고향이며, 1970년 멕시코 월드컵 우승 이후엔 국기에 축구공을 그려 넣자는 제안이 국회에 상정되기도 했다. (이 제안은 국회에서 부결됐다.)

 

이렇듯 브라질에서 축구는 단순한 운동이 아닌 그들의 삶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브라질인들은 굉장히 낙천적이다. K리그 용병들 중 대부분은 브라질인들인데 그들은 특유의 쾌활함으로 팀의 분위기메이커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이러한 성향은 축구에도 나타나며, 브라질 축구는 현란한 개인기와 전광석화 같은 패스, 날카로운 슈팅 등으로 공격 위주의 플레이를 선보인다. 축구에서 최고의 쾌감은 골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축구는 항상 즐거워야 하고, 시원스런 공격으로 상대를 눌러야 한다.

 

실제로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 브라질을 우승으로 이끈 파레이라 감독은 수비적인 축구를 했다는 이유로 우승을 하고도 감독직에서 해임되어야 했다. 브라질에 이러한 즐거운 축구가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배경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슬픈 역사에서 나온다. 브라질은 과거 앙골라에서 흑인 노예를 수입했고, 이 흑인 노예들은 거의 착취를 당하시피 하며 커피농장에서 일했다.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적은 임금 등으로 슬픔에 잠겨있던 이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즐거워지기 위해 노력해야 했고, 그 결과 ‘삼바’ 라는 춤이 탄생했다. 이 삼바는 축제로도 발전해 오늘날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리우 카니발’이란 이름으로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무술을 개발했는데 이것이 브라질 전통 무술인 ‘카포에이라’ 이다. 카포에이라엔 ‘징가’라는 특유의 스텝이 있는데 이 스텝은 축구에도 응용 되어 브라질 선수들의 현란한 개인기에 밑바탕이 되고 있다. 그리고 이 징가는 현재 브라질을 후원하고 있는 나이키의 광고에서 소개되기도 했다.

 

브라질인들은 미신을 중요하게 여긴다. 1950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우루과이에 패해 준우승에 그치자, 당시에 입고 있던 흰색이 불길하다 하여, 노란색으로 교체했고, 그 후 1958년, 1962년 월드컵을 잇달아 제패하자 노란색 유니폼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20세기 중반, 브라질 최고의 골키퍼로 추앙받던 바르보사는 1950년 월드컵에서 2-1로 패하자 패배의 원흉으로 지목되었고, 흑인인 바르보사로 인해, ‘흑인 골키퍼는 골문을 지키면 절대 안된다’ 는 인식이 생겨 2003년 넬슨 디다가 나타나기 전까지 그 어떤 흑인도 브라질 대표팀 골문을 지킬 수 없었다. 한편 바르보사는 최우수 골키퍼상도 수상할 정도로 실력 있는 선수였지만, 그 경기 하나 때문에 여전히 고통 받고 있고, 재정적으로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해진다.


 사실 이러한 것들도 브라질 특유의 낙천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낙천적인 사람들은 일이 잘 풀릴 때는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지만, 벽에 부딪칠 경우 그 실망감이 평소보다 몇 배는 더 크기 마련이다. 그 덕에 한번 패배의 원흉으로 지목된 선수는 오랜 시간 동안 비판을 받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낙천성과 즐거움이 사라진다면 브라질 특유의 매력적인 축구도 사라질 것이다. ‘타고난 자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라는 격언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브라질. 브라질의 즐기는 축구가 앞으로도 세계를 지배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스페인

 

유럽 남서쪽 이베리아반도에 위치한 정열의 나라 스페인. 현재 그들은 짧고 정확한 패스 축구를 앞세워 유로2008과 2010월드컵을 잇달아 제패하며, 피파랭킹 1위에 올라 있다. 과거에는 메이저대회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며 ‘메이저대회 울렁증’이라는 비아냥을 받기도 했지만, 현재 그들은 세계 최강 자리에 위치해 있다.

 

사실 그들이 과거엔 전력이 약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스페인 축구를 넘어 그들을 대변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지역감정이다. 스페인은 카스티야, 카탈루냐, 바스크, 안달루시아 등 다양한 지역으로 이루어졌는데, 과거 프랑코가 내전에서 승리하며 집권하자 마드리드가 위치한 카스티야 지방을 노골적으로 밀어주고 타 지방을 탄압했다. 그 덕에 카스티야를 제외한 다른 지방은 불만을 가질 수 밖에 없었고, 이는 스페인 대표팀이 하나로 단결하는데 어려움으로 작용했다. 결국 스페인 대표팀은 화려한 스쿼드에 비해 눈에 띄는 성적을 내지 못했지만, 오히려 클럽 축구는 성장하는 결과를 낳았다. 특히 가장 많은 탄압을 받았던 카탈루냐 지방은 그들을 대표하는 FC바르셀로나를 강하게 지지하면서 카스티야를 대표하는 레알 마드리드를 이겨주길 바랬고, 매 경기 치열한 접전이 이어졌다. 그 덕에 레알 마드리드와 FC바르셀로나의 대결은 ‘엘클라시코’ 라는 이름으로 세계 최고의 더비중 하나로 평가 받고 있다.

 

 스페인의 축구는 미드필드를 중요시 하며 짧은 패스와 화려한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아름다운 축구’를 기반으로 한다. 실제 스페인의 축구를 보면 현란한 패스워크와 상대 수비수 한명쯤은 기본으로 제칠 수 있는 개인기 등 연신 감탄사를 쏟아내는 플레이를 볼 수 있다. 스페인에 이러한 축구가 자리 잡을 수 있게 된 배경은 바로 기후에 있다. 스페인은 지중해성 기후로 여름엔 굉장히 덥고 건조하며 온도가 최고 47.2 °C 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이렇게 더운 날씨에서 선수들이 많은 활동량을 보이기엔 어렵기 때문에 패스를 활용해 공을 움직여서 경기를 풀어나가는 축구가 자리 잡을 수 있다. 덕분에 화려함과 볼을 오랫동안 소유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축구는 골을 넣어야 이기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때론 ‘화려하지만 실속은 없다’는 비아냥을 들을 때도 있다.

 

 현대축구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미드필드를 잘 활용해 세계축구를 지배하고 있는 스페인. 그들은 과정과 결과를 모두 잡은 가장 이상적인 팀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들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축구’가 앞으로도 계속 지배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독일

 

유럽 중부에 위치한 나라 독일. 그들은 잉글랜드와 비슷하게 강인한 축구를 앞세워 세계 축구계에 한 획을 그었다. 독일은 월드컵에서 총 7회 결승진출로 브라질과 함께 월드컵 최다 결승진출국으로 남아 있다. 독일 축구의 특징은 화려한 기술보단 강한 신체조건을 바탕으로 효율적인 축구를 구사하며 유기적인 조직력으로 상대를 압박한다.

 

독일에 이러한 축구가 자리 잡을 수 있게 된 배경은 그들의 근현대사에서 찾을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독일은 서독과 동독으로 나뉘어졌고, FIFA로부터 대외 경기를 금지당하는 등 고립상태에 놓였다. 결국 축구는 독일 내에서 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당시 선수들 역시 병사 출신이 많아서 뛰어난 조직력이 자리 잡는데 안성맞춤인 조건이었다.

 

그 덕에 독일축구는 보수성도 강하다. 독일 국가대표팀의 감독은 선수 시절 스타플레이어였던 인물이 맡는 경우가 많고, 한번 감독 자리에 앉으면 꽤 오랜 시간 감독직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한때는 ‘젊은 선수들은 독일대표팀에 입성하기 힘들다’는 인식이 있을 정도로 실력과 경력을 함께 겸비한 선수들이 대표팀에 올랐고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당시 독일대표팀의 평균연령은 무려 31세였다.

 

그리고 한때는 ‘게르만 순혈주의’를 앞세워 독일 대표팀에는 항상 독일출신 선수들만 존재했고, 2006년 독일월드컵 당시 독일대표팀을 이끌었던 위르겐 클린스만이 여러 가지 변화를 시도하려 하자, 많은 이들이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독일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게르만 순혈주의’ 탓에 독일 선수들만 존재했던 대표팀에는 루카스 포돌스키, 제롬 보아텡, 메수트 외질 등 타국 출신 선수들도 독일 대표팀에서 뛰고 있으며, 젊은 선수들에게도 많은 기회를 주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독일 대표팀의 평균연령은 25.4세였는데 이는 출전국중 가나 다음으로 어린 연령대다. 그리고 마르코 마린, 마리오 괴체등 뛰어난 기술을 보유한 선수들이 등장하면서, 독일 축구에 신선한 변화를 주고 있다.

 

물론 이 같은 변화가 모두에게 환영받은 것은 아니다. 지난 2010년 독일의 일부 극우주의자들은 독일대표팀을 ‘잡탕’에 비유하며, 현 대표팀에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독일의 변화되고 있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다. 독일인들도 잉글랜드인들처럼 단순하고 보수적인 기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훗날 독일대표팀이 소개될 때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세계인들에게 소개될 지 도 모를 일이다. 

 

 

 

 

※참고문헌-축구는 문화다. 홍대선, 손영래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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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강동균 (스포츠둥지 기자)

 

 

 

38선이 그어진 한반도기를 눕히니 탁구대가 되는 놀라운 경험
최근 개봉한 영화 <코리아>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남북의 문제를 다룬 영화다. 남북의 모습을 그려낸 다른 영화들과의 가장 큰 차이는 남북의 문제를 스포츠로 다루었다는 점이다. 영화는 1991년 사상 최초의 남북 탁구 단일팀을 다룬 실화였다. 41회 세계선수권 대회를 46일을 앞두고 남북한의 냉전 분위기를 와해하고 화해를 시도하고자 탁구 단일팀이 결성되며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이야기를 주로 담고 있었다.


 

<코리아> 공식 블로그

 

대략적인 줄거리는 아래와 같다. KAL기 폭파사건 이후 급격히 경색된 남북 간의 분위기를 와해하고 화해를 시도하고자 열린 1990년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체육 교류를 통해 정치적 긴장을 해소하고자 했던 남한과 북한은 당시 한창 붐이 일었던 탁구와 축구의 단일팀 구성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으며, 이에 사상 최초로 남북 탁구 단일팀을 결성하게 된다. 처음으로 함께 대면한 자리, 단지 남과 북이라는 이유만으로 서로에 대한 마음을 여는 게 쉽지 않았던 그들은 서로 다른 말투와 생활방식, 그리고 이전까지 늘 라이벌로 마주했기에 더욱이 쉽게 경계를 풀 수 없었기에 하나의 팀을 이루는 것 그 자체가 큰 도전이었다.

 

이렇듯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더 많은 남과 북의 선수들이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 없이 억지로 한 팀이 되어 금메달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가는 과정에서 ‘탁구’라는 스포츠가 가지는 역할은 상당히 중요했다. 쉽게 하나가 되기 어려웠던 남과 북을 하나로 묶어주는 매개체가 바로 스포츠였다. 서로의 생각이 다르고 사상이 달랐지만, 탁구를 통해 드디어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었다. 스포츠라는 장르는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뜨겁게 하는 힘이 있다. 남북 탁구 단일팀 결성은 남과 북의 국민들이 스포츠가 가지는 외교적인 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도 ‘국가대표’다
‘국가대표’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종목은 아마 축구대표팀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 <국가대표>에서는 우리에게 생소한 스키점프 대표팀을 다루고 있다. 스키점프는 비인기 종목이었지만 영화를 통해 사람들에게 알려져 이제는 누구나가 다 아는 종목이 되었다.

 

 

<국가대표> 공식 홈페이지

 

영화는 1996년 전라북도 무주,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정식 종목 중 하나인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이 급조되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스키점프가 뭔지도 모르지만 한때 스키 좀 타봤다는 이유로 뽑힌 이들이 모이면서 대한민국 최초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이 결성된다. 그러나 스키점프(Ski Jump)의 스펠링도 모르는 코치와 경험 전무한 국가대표 선수들의 훈련은 험난 하기만하다. 변변한 연습장도 없이 점프대 공사장을 전전해야 했고 제대로 된 보호장구나 점프복도 없이 오토바이 헬멧, 공사장 안전모 등 만을 쓰고 맨몸으로 훈련에 임해야 했다. 과정이야 어쨌든, 엉겁결에 나가노 동계 올림픽 출전 자격을 얻게 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은 나름 금의환향하며 올림픽 진출의 꿈에 부푼다. 그러나 한국은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에 끝내 탈락하게 되고,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은 해체 위기에 처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스키점프라는 생소한 스포츠 종목이 많이 알려졌다’가 아니다. 물론,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비인기 종목의 선수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알 수 있게 해준 좋은 계기였다. 하지만 <국가대표> 역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전철을 똑같이 밟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잊혀졌다. 오히려 주목할 점은 스포츠의 역할이다. 즉, 스키점프라는 스포츠를 통해서 국가대표가 된 선수들이 기대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들은 단순히 유명해지기 위해 국가대표가 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스키점프를 통해서 자신의 꿈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스포츠를 통해 흥미와 쾌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좀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스포츠는 사람들에게 어느 드라마보다 더욱 드라마 같은 감동을 전해주기도 하지만 영화 <국가대표>처럼 어떤 누군가에게는 꿈을 심어준다.

 

백만불의 사나이? 아니 백만불짜리 다리
"초원이 다리는 백만불짜리 다리~" 이 대사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말아톤>은 장애와 마라톤이라는 소재를 통해 많은 반향을 불러왔다.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길고 험한 길, 마라톤을 장애인이 완주를 하는 감동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영화 속 주인공 초원이는 엄마의 헌신적인 도움을 받아가며 완주에 성공하게 된다. 영화 <말아톤>은 마라톤이라는 스포츠를 통해서 장애와 같은 사회적 문제를 동정 어린 시선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현실적인 삶의 문제로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의 장애에 대한 편견을 없애주는 역할까지 소화했다.

 


스포츠의 역할은 단순히 여가를 즐기는 수준의 스포츠, 흥미를 느끼는 수준의 스포츠가 아니다. 정치적인 문제나 사회적인 문제를 좀 더 다가서기 쉽게 다루기도 하고, 꿈을 심어주고, 감동을 주고, 편견을 제거해주는 역할을 가지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꼭 잊지 말아야 할 점이 하나 있다. 스포츠가 아무리 다양하고 좋은 역할을 하더라도, 우리의 관심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스포츠의 다양한 역할에 대해 생각하며 다시 한 번 스포츠에 대한 관심을 가져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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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백진선(인하대학교)       


최근 3년간 살펴보면 과거에 비해 스포츠 스타들의 인식이 크게 바뀌었다. 과거에는 운동선수를 스포츠 종목 안에서만 활동하는 선수들로 인식하였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선수들은 체육관뿐만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 그리고 CF활동까지 그 활동영역을 크게 넓혀가고 있다. 이는 선수의 화려한 성적과 더불어 대중들에게 스포츠 스타로 자매김하고 있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노력이 값진 결과를 만들고, 그 결과 사람들은 그 운동선수들을 대중매체를 통해 더 자주 보길 원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에 소개할 선수는 위의 사례의 대표적인 선수로 수영 국가대표로 한국의 마린 보이라 불리우는 
박태환 선수이다
.
그의 노력은 국내는 물론 국제의 최고기록을 수립하고 또한 스포츠에만 그친 사람들의 관심을 예능으로까지 연결시킨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의 프로필을 살펴보자면 2007 유네스코 서울협회 올해의 인물 선정, 2009 자넷에반스 인비테이셔널수영대회 남자 자유형 200m 금메달, 2010 뉴사우스 웨일스 스테이트 오픈대회 남자 자유형 100m, 200m, 400m 우승, 2010 팬퍼시픽수영선수권대회 남자 자유형 400m 금메달,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수영 남자 자유형 100m 200m 400m 금메달,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수영 남자 800m 400m 계영 동메달 400m 혼계영 은메달, 2011 산타클라라 국제그랑프리대회 남자 자유형 100m 200m 400m 우승, 2011 14FINA 세계수영선수권대회 남자 자유형 400m 금메달 등 한국 수영의 위상을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박 선수가 이러한 결과를 만들 수 있었는지 그의 노력을 살펴보고자 한다.

  한 번의 실패에 무너지지 않는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운동하면서 슬럼프에 한번쯤은 빠지곤 한다. 이 때 고난을 어떻게 넘기느냐에 따라서 선수의 미래는 확연히 달라진다. 박 선수도 슬럼프에 빠진 시절이 있었다. 2009년 로마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거듭 저조한 기록을 만들어내자 그는 극심한 좌절감을 맛보았다.
그 당시 그는 "밑바닥까지 떨어졌던 마음과 몸을 다시 회복하는데 쉽지 않았다."라고 표현하였다.

이렇게 극한의 좌절을 겪었지만 부담감을 떨쳐버리고 그가 사랑하는 수영을 하며 연습하고 또 연습하며 수영만을 거듭 반복하였다. 그리고 그의 멘토인 마이클 볼 코치와 두터운 신뢰감을 바탕으로 힘든
수영 훈련을 하루하루 이겨냈다
. 그 결과 2010 아시안 게임에서 3관왕이라는 값진 결과를 만들 수 있었다.

보통 운동선수들이 슬럼프에 빠질 경우 앞이 보이지 않고 감정 깊숙이 부정적인 생각에 안 좋은 상상들을 쌓아가곤 한다. 그 어두운 감정의 늪은 한번 빠져나오기 힘들어 대개 은퇴를 결심하곤 한다. 하지만 그는 그 고비를 견뎌내고 강한 정신력으로 버텨내어 성공의 열매를 맛볼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을 믿는 강한 정신력. 지키기 어려운 말이지만 그것을 실행할 수 있었기에 박 선수는 지금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심리적인 압박감을 극복한다
.

운동 수행 능력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심리적인 요소이다내적인 요동은 0.01초를 결정하는 종목에서 단연 중요한 부분인 것이다박태환 선수는 심리적인 부분을 극복하기 위하여 경기 중에 헤드셋을 끼며 음악 감상하는 모습을 한번쯤은 tv를 통해 봤을것이다. 이는  심리적인 압박감에 벗어나기 위함이다. 그는 사실 한 경기, 한 경기 큰 심리적인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 이것이 그가 운동하면서 가장 힘든 부분이라고 손꼽을 정도이다.

그 스스로가 수영을 즐기면서 최선을 다하지만 주위 사람들이나 국민들의 기대가 때로는 너무 커서 운동하며 심리적인 압박감이 크다고 한다. 따라서 박태환 선수는 매번 심리적인 요동을 잠재우려 노력하고 압박에 벗어나려 노력하고 있다.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박태환선수가 잘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을 항상 기대한다. 이러한 기대치에 부응하기 위한 심리적인 압박은 선수 자기자신과의 싸움에 커다란 부담감이 될 수 있다. 때문에 우리는 박태환 선수가 이러한 부담감을 안고 항상 경기에임한 다는 것에 큰 응원을 보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승부욕은 그의 동기

"역시 운동선수들은 승부욕이 강해." 이 또한 박 선수에게 지나칠 수 없는 문구이다. 박 선수는 훈련뿐만 아니라 여가를 즐길 때에도 특유의 승부 근성을 발휘한다. 전지훈련지에서 주말마다 모여 축구게임 위닝 일레븐을 즐기는데 그가 선수하는 팀은 FC바르셀로나이다. 전담 팀들과 함께 게임을 즐기면서 한골이라도 주게 되면 그는 바로 화난 반응을 보이며 게임에 집중한다. 그리고 결국 자기 팀을 승리로 이끌게 된다.

이렇게 매 활동에서 나타나게 되는 그의 열정은 훈련으로도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