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신승환 (해군사관학교 교수)

                                 




 Outdoor Education에는 육상에서 하는 등산, 캠핑 등도 있지만, 바다에서 생존을 기본으로 하는 요트, 카약 등의 해양스포츠도 있다. 여러 연구들은 종목에 따라 배우는 가치들이 다르다는 것을 보고하고 있고, 종목중에서도 해양스포츠로 길러지는 개척정신, 도전정신, 리더십, 협동심 등은 전인교육에 매우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해양스포츠는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시설부족, 안전, 프로그램 제한 등 여러 이유로 교과과정에 포함되어있지 않지만, 일본과 미국의 교과과정에는 이미 포함되어있을 만큼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해양스포츠는 국가의 신성장동력분야로 채택되어 지금보다는 앞으로 더욱 활성화 될 것이고, 이를 통해 배우는 창의성과 도전정신은 곧, 국가의 생존성으로 연계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그럼에도 해양스포츠와 관련된 선행연구들은 대부분 개별종목의 교육방안이나 프로그램 만족도 분석에 국한되는 경향이 있어 해양문화 입문차원에서의 접근과 교육 필요성이 보고되고 있기 때문에, Outdoor education으로써의 해양스포츠가 갖는 가치에 대해 서구의 연구결과들과 경험을 바탕으로 탐구해보고자 한다.


 첫째, Outdoor education에 대해 서구에서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하고 있다.  초기에는 문제해결을 어려워하지만 결국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움직이게 된다고 보고하고 있다. 실제로 해양스포츠는 해상이라는 환경에서 생존을 위해 팀웍이 필요하며, 순간순간 대응하는 창의력이 길러지면 다음단계에서는 보다 더 높은 도전정신을 갖게 되는 교육효과를 보이는 특징이 있다. 


 둘째, Outdoor education에서는 장소가 매우 중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인들은 완벽하게 만들어진 환경에서 생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해결능력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으나, outdoor education에서는 문제들에 자연스럽게 부딪치면서 극복하는 능력을 배우게 된다. 강(江)은 그 자체만으로도 교육에 좋다는 보고가 있을 만큼 해양스포츠는 일반스포츠와 다른 환경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배우는 가치가 다르다. 

예를 들어, outdoor education을 레크레이션과 모험교육으로 구분해볼 때 래프팅은 두가지 효과를 모두 충족시켜줄 뿐 아니라, 순간적인 판단력과 태도, 가치를 체득시켜주는데 이는 장소의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급류와 거친 파도의 위험으로부터 체득한 생존기술은 평생 삶의 기술이 되며, 새로운 난관을 만났을 때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준다. 노르웨이에서도 씨카약(Sea Kayak)을 배우면서 사회문화적 적응을 배운다고 보고된 바 있는데, 이는 단순히 해양스포츠 실기교육이 아닌 outdoor education 가치 측면에서 교육프로그램의 내실화를 강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요트 교육의 사례를 보면, 겁을 이겨내고 30m 높이의 마스트에 올라가고, 함께 배 구석구석의 먼지를 치우며, 험난한 파도를 헤치고 조함해봄으로써 성취감 등을 체득할 수 있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요트에 참여한 사람들이 더 좋은 구성체를 만들고 창조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또한, 해양스포츠는 남성보다 여성의 분노, 좌절 등을 다루는 데 더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나 강인한 여성을 육성하는 데에도 효과적인 것으로 사료된다. 이는 망망대해에서 신체적, 정신적 위험을 이겨낼 때 체득할 수 있는 가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해양스포츠는 충분한 연습시간과 위험으로부터 완전한 안전보장을 바탕으로 시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안전에 대한 의식 뿐 아니라 철저한 준비정신을 길러준다. Outdoor education 관련 사고의 30%는 익사로 알려져 있으며, 1993년에 영국에서 발생했던 카약의 전복사고는 빠른 성과를 요구하였기 때문이라고 보고된 바 있다. 따라서 충분한 연습시간이 필요하고, 대학생들이 포함된 사고사례들도 있기 때문에 항상 유의해야 한다. 


 한편, 해양스포츠가 가지는 outdoor education 측면에서의 가치는 외국에서는 경영학의 세부영역인 인사조직학에서도 네트워크분석을 통한 연구, 임파워먼트, 협력 등 다양한 연구가 이뤄질 만큼 가치를 인정받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주 영역인 체육학 분야에서도 해양스포츠가 갖는 outdoor education으로써의 가치를 연구하여 해양스포츠 활성화를 위해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선진국의 사례를 볼 때, 골프 다음의 여가패턴이 해양스포츠이기 때문에 곧 국내 해양스포츠의 인기가 상승할 것이고, 해양스포츠를 통해 길러지는 국민의 도전적인 기풍은 국가발전의 초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험난한 바다를 극복하며 살아온 민족과 농사를 지어온 민족 중 어떤 민족의 도전정신이 강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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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윤강로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 원장)

1988년 서울올림픽은 물론 2002년 한국-일본 FIFA월드컵 공동개최에 따른 한국축구의 4강 신화, ‘붉은
악마 응원단’을 통해 전 세계에 보여준 대한민국의 막강한 응집력과 단결력은 스포츠를 통한 국가
브랜드 파워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표출하여 주었다.

 
해당 종목 별 스타 선수는 예외 없이 일반 스포츠 팬(Fan)을 광적으로 끌어들이는 스포츠 브랜드
파워의 원천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피겨의 김연아 선수, 수영의 박태환 선수, 축구의 박지성 선수,
야구의 이승엽, 추신수, 김태균 선수, 골프의 신지애, 박세리, 양영은, 최경주, 박지은, 미셀 위 등을
비롯하여 기라성 같은 올림픽 메달리스트 등은 그 좋은 예다.


                                                 (세계골프 여제 소렌스탐과 함께)


이러한 스타 선수들이 출전하는 국제스포츠 브랜드 파워는 지역적, 국가적, 글로벌 상품가치와 홍보
효과 그리고 부가가치 또한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이와 연관된 스폰서와 TV 등 미디어의 지원 등에
힘입어 국제스포츠이벤트는 지구촌 ‘황금 알 낳는 거위(a goose that lays golden eggs)’의 등용문이
되고 있는 추세다.

스포츠를 통한 국제관계 및 국제소통 그리고 올림픽 유치나 올림픽대회 조직 운영의 핵심요소는
“국제협력”이다. 국제협력에 있어서 개인적 접촉과 개별 인간관계는 오랫동안의 상호 신뢰와 우정이
밑바탕이 되어 협력체계가 형성된다. 사마란치 前 IOC위원장도 올림픽대회 성공의 관건은 “국제협력”
이라고 강조하곤 한 바 있다. 국제 협력 없이는 TV, 마케팅, 엔트리(참가신청), 언론, 안전, 회의, 홍보,
심판과 경기, 수송, IT(정보 기술) 등 제반 분야의 소통과 원만한 진전(進展)이 이루어 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국제협력’의 중심이 ‘스포츠외교’인 것이다.


올림픽의 “공용어”는 다름 아닌 “스포츠” 그 자체다. 올림픽의 “이념”은 “올림피즘(Olympism)”이다.
올림피즘이란 우리 인간의 신체, 의지, 마음이 전체적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함께 발전되도록 이끌어
주는 생활 철학이다.(Olympism is a philosophy of life, exalting and combining in a balanced whole the qualities of body, will, and mind.)

올림피즘은 스포츠를 문화와 교육에 접목하여 노력하는 가운데 얻는 즐거움, 모범적 사례를 통한 교육적
가치 추구, 그리고 보편타당 하면서 기본적이고 윤리적인 원칙을 존중하는 정신을 근간으로 하는 생활
방식을 창출하도록 이끌어 준다.(Olympism seeks to create a way of life based on the joy of effort, the educational value of good example and respect for universal fundamental ethical principles.)

올림피즘의 “목표”(Goal)는 스포츠를 통하여 어디서나 인간의 조화로운 발전을 꾀하며 그럼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보존하는데 주력하는 평화로운 사회를 건설하도록 하는데 있다. (The goal of Olympism
is to place everywhere sport at the service of the harmonious development of man, with a view to encouraging the establishment of a peaceful society concerned with the preservation of human dignity.)

올림픽운동의 목표는 스포츠를 통한 청소년교육으로 이 세상을 평화롭고 보다 더 살기 좋도록 이바지
하는 것이다. 스포츠는 어떠한 종류의 차별도 없이 행해져야 하고, 우정과 단결 그리고 페어플레이
(공명정대)정신에 입각한 상호이해가 근간이 되는 올림픽정신이 깃들여야 한다. (The goal of the
Olympic Movement is to contribute to building a peaceful and better world by educating youth through
sport practiced without discrimination of any kind and in the Olympic spirit which requires mutual understanding with a spirit of friendship, solidarity and fair- play.)



올림픽의  “가치”(Values)는
  “우수성(Excellence)”, “우정(Friendship)”, 그리고 “존중(Respect)”이다.

올림픽의 “정신”(Spirit)은 “우정(Friendship)”, “단결(Solidarity)”, 그리고 “정정당당(Fair Play)”이다.

올림픽의 “표어”(Motto)는 “보다 빠르게(Citius/Faster)”, “보다 높게(Altius/Higher)”, “보다 강하게(Fortius/Stronger)”다.

올림픽의 “신조”(Creed)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승리가 아니고 각고의 노력이듯이 올림픽대회
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승리하는 것이 아니고 참가하는 것이다. 필수불가결한 일이란 정복해 내는 것
보다는 잘 싸워 내는 것이다.’(The most important thing in the Olympic Games is not to win but to take
part, just as the most important thing in life is not the triumph but the struggle. The essential thing is
not to have conquered but to have fought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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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최의창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과 교수)


학교체육의 정당화

학교에서 체육을 가르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는 두 가지 종류의
대답이 주어질 수 있다. 하나는 경험적 이유를 제시하고, 다른 하나는
논리적 이유를 들려주는 것이다. 전자는 경험적, 사실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이유를 늘어놓는 것이다. 체력이 좋아진다, 스트레스가 해소된다, 기억력이 향상된다.
태도가 좋아진다 등등. 사람의 오감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이유, 계량적으로 측정하거나
기록할 수 있는 방식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이유들이다.

후자는 논리적이고 개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다.
전자는 이해하기가 쉽지만, 후자는 조금 어려우며, 전자는 우리의 경험에 근거하여
다소 명확하게 판별이 가능하다. 하지만, 후자는 어떤 개념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절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전자는 반대되는 결과가 나오면
언제라도 반박될 수 있다. 하지만 후자는 일단 받아들여지면 반박될 수 없다.
학교체육이 교육으로서 가치가 있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전자보다는
후자가 훨씬 더 확고부동한 정당화방식이다. 하지만, 이해하기 어렵고 납득하기 어렵다.
우리는 어떤 방식을 선호해야 할까?

학교체육의 적대자들

학교체육을 삐딱하게 보는 사람들이 있다. 학교체육의 신체적, 정신적 가치를
모조리 무시한 채, 학교에서 가르쳐지는 체육의 근본적 가치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학교 안에서의 체육은 재미도 없고 의미는
더욱더 없다고 주장한다. 체육수업 시간에 배우는 것들이 교육적으로 별반
가치 없는 내용들이고, 그것들이 실제로 학생들에게 배워지는지 조차도 확인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체육교과의 가치라고는 꽉 막힌 교실에서 있다가 확 트인 운동장에
나와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정도일 뿐이라고 한다. 이런 정도는 교과가 아닌
쉬는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기능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들은 학교체육의 무용성을 이런 방식으로 주장한다. “학교체육에서는 인지적,
심동적, 정의적 영역의 목표를 추구한다. 체육교육은 학생의 지적 능력을 향상시켜주고,
체력과 운동기능을 증진시키며 사회성과 감수성을 길러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재 이런 주장이 실지로 어느 정도나 실현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체육수업에
열심히 참여해서 머리가 똑똑해진다든가, 전에는 미약했던 운동기능과 체력이
훨씬 좋아졌다던가, 또는 말도 안 듣던 학생이 눈에 띄게 착한 행동을 한다는 등의
결과가 나타났는지 의문이다. 그동안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학교체육은 이러한
목표를 실현하지 못한다는 결론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므로 학교체육은 별 가치가 없다.”
대략 이런 논지이다.

학교체육의 수호자들

반면, 학교체육의 수호자들은 이런 반박을 펼친다. “체육수업 시간에 이 같은 목표가
성취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긍정적인 결과를 얻어내는
연구들도 많이 있다. 그리고 현장에서 실지로 목표가 성취되지 않는 이유는 제대로
가르치치 못하는 체육교사가 많기 때문이며, 만약 제대로 가르치기만 한다면 인지적,
심동적, 정의적 영역의 목표들을 만족할 만한 정도로 성취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교과로서의 체육이 가치가 없다고 하는 것은 부당하며, 다만 좀더 제대로된
체육수업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지적은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라고 반론한다.

 
적대자와 수호자들의 갑론을박은 이런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치지 않다.
서로 다른 이론적 근거 위에서 행해진 연구들은 서로 상반되는 결과를 제시하고
있으며, 현장에서의 체험담도 각기 다른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런 이유로
학교체육의 유용성에 대해서는 최종적이고 결정적인 결론이 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학교체육은 이런 상황에서 교과로서의 지위를 유지해나가고 있다. 쓸모가 있다는
증거가 확정적으로 나와 있는 상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와 반대로 쓸모가 없다는
판정도 최종적으로 나오지 않았으며, 기존에 이미 학교에서 가르쳐지고 있으므로
기득권자의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소극적 정당화와 적극적 정당화

학교체육을 이처럼 경험적 방식으로 증명하려는 시도는 이 같은 결과만을 낳을 뿐이다.
이 같은 결과란 학교체육을 긍정하든 부정하든, 어떤 판정을 확정적으로 내리지
못하는 결과를 말한다. “무엇 무엇이다”라는 방식으로 확정적인 결과에 의해서
근거를 정당화하는 것, 가치를 인정받는 것을 “적극적 정당화”라고 한다.
그런데, 이처럼 “무엇 무엇이다”도 확실히 인정받지 못하고, 그렇다고 “무엇 무엇이
아니다”라고 부정적인 증거를 발견해서 정당화 근거를 박탈당하거나 부정당하지
못한 것도 아닌 상태로 정당성을 유지 받는 것을 “소극적 정당화”라고 한다.

소극적이란 말은 자신의 가치를 긍정적으로 드러내어 인정받지 못하고, 단지 적극적으로
부정되지 못해서 마지못해, 혹은 어쩔 수 없어서 인정되는 경우를 말한다.
학교체육의 좋은 점이 인정되어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나쁜 점이 확실히 인정되지
못해서 잔류되는 것을 말한다.

 
교과로서의 학교체육은 적극적으로 정당화되어야 한다. 학교체육의 가치는 적극적
방식으로 인정되어야만 한다. 이 말은 체육수업이 학교에서 행하는 교육의 한
영역으로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 인정되어야 함을 말한다. 절대적으로
있어야 한다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이다.

학교에서 체육을 가르치지 않는 한, 학교교육은 “교육”으로서의 조건을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한다.
학교가 교육이라는 특별한 인간활동이 진행되는 장소가 되려면,
반드시 체육을 가르쳐야만 한다는 것이다. 학교가 교육의 개념적 조건을 만족시키는
곳임을 강조하는 정당화방식이다. 학교라는 곳은 개념적으로 교육을 하는 장소이며,
교육의 개념적 의미에는 체육도 포함되어 있음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내재적 정당화와 외재적 정당화

이런 방식으로 체육의 가치를 정당화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물론, 학교체육의
수호자 그룹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다만, 이들은 아까처럼 어떤 경험적 연구결과를
증거로 내세우는 방식을 채택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부분의 수호자들과는 다르다.
이들은 학교체육의 가치를 개념적 또는 논리적으로 정당화하려고 한다.
개념적 정당화는 어떤 것의 의미를 명료하게 드러내고, 그 의미 자체가 가치 있음을
밝힘으로써 그 가치를 인정하려는 시도이다. 의미(개념)에 의존하여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개념적 정당화”라고 하며, 논리적 방식으로 가치를 밝힌다는 점에서
“논리적 정당화”라고 한다.

 
학교가 “훈련”이 아니라 “교육”을 하는 곳이라는 의미를 갖는 한, 학교체육의 가치를
개념적으로 정당화하면 체육교과는 그 의미의 한 부분으로 학교교과의 하나로서
정당한 입지를 확보하게 된다. 즉, “체육은 교육의 한 부분이다. 학교는 교육을
하는 곳이다. 따라서 학교에서는 체육을 가르쳐야만 한다”는 말이다.

이 말을 다소 풀어본다면, “교육은 그 의미의 한 부분으로 체육을 포함하고 있다.
학교는 그 개념상 교육을 하는 곳이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말해서, 학교는 반드시
체육을 가르쳐야 한다.” 개념적 정당화는 내재적 정당화라고도 불리운다.
그것은 정당화하려는 대상에 붙박혀 있는 의미 안에서 그 가치를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의미 바깥의 것에 의존해서 가치를 인정받으려고 하는 노력은 외재적
정당화라고 한다. 체육은 내재적 정당화에 의해서만 학교교과로서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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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최의창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과 교수)

학교체육에의 요구

학교체육이 갖는 신체적 가치와 정신적 가치는 통상적으로 학교체육의 철학을 '신체의 교육'과 '신체를 통한 교육'의 두 방향에서 바라보도록 하였다. 전자는 신체적 가치를, 후자는 정신적 가치를 더욱 강조하는 것이다.
물론 이 두 철학은 신체적, 정신적 가치를 모두 추구하지만, 주와 종, 선과 후가 무엇이냐에 대한 생각이 다른 것이다. 학교체육의 가치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이 두 철학의 사이를 오고가며 운동을 반복해왔다.

한 때는 신체적 가치를, 한 때는 정신적 가치를 더욱 강조하면서 지난 동안을 보내왔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신체를 통한 교육으로서의 체육이 강조되면서 전인교육의 통로로서 학교체육의 중요성을 더욱 두드러지게 부각시켜 왔지만, 가장 최근에는 사회가 변하고, 생활이 변하고, 모든 것이 급격히 바뀌게 되면서, 학교체육에 대한 변화의 요구가 급격히 번지고 있다.

활동적 생활스타일

최근 들어 가장 강력하게 요청되는 것은 학교체육이 성인이 되었을 때의 건강과 활기찬 삶을 위한 준비기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의학계와 운동생리학 전문가들은 성인으로서의 삶이 의미있고 건강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생활의 스타일이 신체활동을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방식으로 이끌어내야 한다고 한다. '활발한 생활방식'(active lifestyle)의 습관을 몸에 익히도록 해주어야 하고, 또한 그것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은 바로 학령기라는 것이다.
 
최근의 이론에 따르면 활발한 생활방식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체력(physical fitness)보다는 활동(physical activity)이 더 근본적인 중요성을 갖는다고 한다. 그래서 근력과 지구력을 위한 엑서사이즈만이 강조되던 방식에서 벗어나, 일상생활 속에서 다양한 신체활동을 충분한 강도로 활달하게 지속적으로 행해주는 기초습관과 기술을 키워주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요구는 “신체의 교육” 철학의 가장 최근 버전이 분명하다. 신체적인 측면(이전에는 체력이었으나 지금은 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학교체육에서 집중적으로 길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포츠 문화에의 입문

다른 한편으로, '신체를 통한 교육' 부류에 속하는 최근 주장도 당연히 있다. 이것은 학생들을
스포츠문화에 올바로 입문시키는 기회로 학교체육의 지향점을 삼는 것이다. 스포츠문화에의
입문이란 복합적인 의미가 들어있다. 스포츠문화는 스포츠라는 게임 활동이 만들어내는 직접적,
간접적 문화현상들을 모두 포함하여 말한다.

스포츠 게임만이 아니라 스포츠를 내용으로 하는 패션, 디자인, 영화, 음악, 미술, 건축, 문학, 종교 등
모든 문화 활동과 현상들을 총망라한다. 예를 들어, 축구에 입문한다는 것은, 축구게임 자체만을
잘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축구에 관련된 영화, 음악, 건축, 문학, 미술, 패션 등의 모든 문화
활동들을 다양하게 체험해봄으로써 축구를 입체적, 총체적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문화로서의 스포츠 활동을 체험하고 그것에 입문해야하는 이유는 총체적으로 스포츠를 체험하는
것이야 말로 스포츠를 제대로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운동기능을 숙달하고 게임만을
잘 하는 것으로는 스포츠를 부분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부분적으로 알게 되는 것은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니며, 제대로 아는 것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좋은
효과들을 모두 얻지 못하게 되는 부작용이 생긴다. 단순 게임 활동이 아닌 문화로서의 스포츠
활동에 입문하게 되면, 그 사람(학생)은 문화 활동 속에 담긴 좋은 것들을 습득하게 되며 그를
통하여 참 좋은 사람(전인, whole person)으로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철학자인 Alasdair McIntyre는 인간의 활동 가운데 '실천전통'(a practice)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부류의 것들이 있으며, 이 실천 활동들은 그 안에 내재된 가치들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실천전통에 입문하는 것이 교육의 주된 목적이고, 입문한다는 것은 바로 그 내재된 가치들을
몸과 마음속에 체득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 실천전통에 속하는 한 가지가 바로 스포츠 활동이며,
실천전통의 가장 가까운 형태로 우리 앞에 주어진 스포츠의 모습이 바로 문화 활동으로서의
스포츠인 것이다. 게임시합은 실천전통의 편린에 불과하다.

현대사회에서의 학교체육의 가치

현대사회 속에서 교육의 기회는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온라인 교육이 일반화되고 대안 교육적
방안도 많고, 사회교육기관도 무수하며 학원도 부지기수이다. 배울 수 있는 통로가 무척이나
다변화되었다. 학교가 모든 학습의 최고 원천 역할을 하던 이전 시대와는 완전히 달라졌으며,
이런 상황 속에서 학교교육에 대한 기대는 점차로 감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학교체육의 현실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학교 안에서 제공되는 체육의 양과 질은 학교 밖에서
체험할 수 있는 체육의 양과 질에 비해서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차이가 난다.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교육과정에서 제시하는 제한된 범위 내에서 한정된 시간에 별로 흥미 없는 내용을 가지고
무서운 선생님이 가르치는 체육수업을 좋아할 학생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반면, 체육관이나 스포츠센터에서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을 다정한 강사선생님이 즐겁게 가르쳐주는
생활체육 활동은 너무도 하고 싶어진다.
 
학교체육은 사회의 변화, 생활스타일의 변화, 학생특성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그러한 변화는 물론 활발한 생활방식의 습관화를 위하는 것으로 초점이 잡혀야 할 것이다.
기존의 체력 단련과 기능훈련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방식, 즉 “신체의 교육”의 고전적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신체의 교육의 중요한 측면을 받아들여야만 하며, 새로운 시대적 요청에
맞도록 그 측면을 강조해야 한다.
그리고 또 다른 한편, 학교체육은 스포츠문화에의 입문이라는 시대의 요구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스포츠 문화에의 올바른 입문을 통하여 보다 나은 사람, 보다 온전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발견과 자아실현을 위한 중요한 매개체로서 학교체육의 역할을
강화시켜야 한다. 이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할 때, 학교체육은 교과의 하나로서 존재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학생을 전인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교육의 주요 목적이라고 할 때, 체육교과는
신체활동을 통하여 그 일을 하는 교과이다. 그럼으로써 “신체를 통한 교육”으로서의 학교체육의
위상을 확고히 할 수 있게 된다.

두 가치의 통합적 성취

지금 우리의 학교체육은 이 두 가지 어려운 일을 모두 해내야만 되는 힘겨운 상황에 놓여져 있다.
신체의 교육과 신체를 통한 교육, 이 두 지향점 모두를 성취해내야 하는 험난한 지경에 처해 있지만,
사실 이런 어려운 지경에 있었던 것이 이번만은 아니다.

가만히 되돌아보면, 학교체육은 기원전부터 바로 이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실현해내야만 하는
어려운 일을 도맡았다. 때로는 성공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제 우리는 또 다시, 이 일을 명백히 해내야만 하는 그러한 시점에 와있다.
현대사회에서 학교체육이 당면하고 있는 분명한 당면과제이다. 활발한 생활방식과 스포츠문화에의
입문, 신체의 교육과 신체를 통한 교육, 이런 두 가지 학교체육의 가치를 통합적으로 성취해내는
창의적인 방법을 찾아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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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현철 2009.10.07 10:02 신고

    좋은 글이군요.

  • dalrinda 2013.11.17 12:17 신고

    다 좋으나 실상 현장과의 괴리가 너무 큽니다. 초등은 교사들이 체육에 관심이 없고, 중등은 너무나 열악한 체육인프라에 교사들이 모두 지쳐 열정이 식고 있습니다. 체육계가 하나로 뭉쳐 큰소리로 외쳐야 합니다.

                                                                            글 / 최의창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과 교수)


학교체육의 탄생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학교”는 기원전부터 있었던 제도이다.
교육사 서적을 뒤져보면 그리스와 중국에서 오래전부터 공적인 방식으로 어린 아이들을 가르쳤던
기록이 나오는데, 이런 오래된 기관들은 공적이기는 하지만 특정 계층의 아동들만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폐쇄적이었다.

오늘날처럼 개방적이고 의무교육적인 차원에서 학교제도가 운영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800년대 후반 산업혁명으로 막대한 노동력이 필요하게 되었고 왕정이 마감되면서 만인이 평등하게
대우받는 근대 민주주의가 출현하면서부터이다.
모든 이들이 최소한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본 권리를 가지는 것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895년 <교육입국조서>의 공포와 함께 각종 학교의 학제를 마련하여 운영하였다.
1894년 갑오경장을 통하여 근대국가의 모습을 갖추려고 노력하기 시작한 바로 직후이다.
체육은 학교 교과목으로 처음부터 함께 해왔던 교육활동이었다. 체육과목도 구한말과 일제시대에는
“체조”라는 교과명으로 불렸다.
제2차 세계대전시기에는 “체련”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모두 필수과목으로 가르쳤다.
“체육”은 해방되면서부터 부르기 시작한 교과명칭이다. 체육은 근대학교에서는 물론이고 기원전부터
(물론,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었지만) 교과목의 하나였다.
그리스의 김나지움이나 중국의 대학 등의 학교들에서도 체육활동은 다양하게 가르쳐져 왔다.

학교체육의 가치

체육이 이렇듯 교육의 중요한 일부분으로 지속적으로 가르쳐져 온 것은 그 가치가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어린아이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임을 사람들이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체육활동이 갖는 다양한 가치를 잘 알고 있었다.
이 가치들은 가장 커다란 수준에서 두 그룹으로 재분류될 수 있으며, 그것은 신체적 가치와
정신적 가치이다.

첫째, 체육의 신체적 가치는 건강과 체력에 증진시켜 주는 것이다.
체육활동을 가르치는 이유는 아이들의 온몸이 건강하게 되고 신체적 능력이 향상되는 것이다.
활발하게 전신을 움직이면서 신체를 사용하고 몸의 각 부위를 단련함으로써 육체의 기능이
나아지는 것이다.

둘째, 체육은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적 차원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정신적 차원에는 지성, 감성, 덕성, 영성(지정의, 지인용 등으로도 나눌 수 있다)이 관여된다.
체육활동은 인지적, 정의적, 영성적 측면들에 골고루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우리는 신체활동을 통해서 사람의 안쪽을 균형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지게 만들어낼 수 있다.
신체활동은 사람을 육체적은 물론 정신적으로도 훌륭하고 좋은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체육활동을 제대로 해내면 머리가 좋아지고, 성품이 나아지고, 감정이 풍부해지며, 영혼이 맑아지는
효과를 맛볼 수 있게 된다.
이런 이유로 체육교과는 “전인교육”을 해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게 된다.


신체적 가치

체육교과의 주요 내용이 신체활동인 한, 학교체육이 학생들의 육체에 뭔가 좋은 것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생각은 당연한 것이다.
체육활동은 유희적인 것과 단련적인 것이 있다. 전자는 스포츠나 게임을 행함으로써 즐거움과
건강을 유지하도록 해준다. 후자는 유희활동이 아니라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엑서사이즈(운동)을 통해서
육체의 생리학적 발달을 가져다준다.
유희적인 신체활동은 유희적 과정을 통해서 간접적인 방식으로 육체기능의 향상을 도모하는 작용을 한다. 단련적인 신체활동은 신체의 기능과 작용을 직접적으로 향상시키려는 노력이다.
어떤 방식이던지 체육활동이 우리 몸에 기능적 발달을 가져다준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사실, 과거와 현재의 학교교육에서는 신체적 가치를 높이 쳐주었기 때문에 교과의 하나로 체육이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정신적 가치

체육교과가 훌륭한 점은 금상첨화하는 교과이기 때문이다.
체육은 신체적 가치는 물론이고, 정신적 가치를 함께 추구할 수 있는 매우 드문 학교 교과이다.
단련적이고 유희적인 활동은 팔과 다리만 쓰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정신적 측면들이 관여하는 통합적인
과정이다. 체육활동은 활발한 정신작용이 필요한 인지활동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유희적 활동은
스포츠나 게임을 말하는데, 이들은 모두 경쟁을 활동맥락으로 삼는다.
상대방에 대적해서 승부를 가리는 것이다. 대적은 몸싸움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싸움은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한꺼번에 폭발하는 지정의 활동이다.
정신의 모든 측면들이 관여하는 통합적 내면활동이 반드시 함께 한다.

 
이런 점에서 체육을 지성, 감성, 덕성, 영성이 모두 연계되어 있는 교과라고 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전략을 생각하면서 나의 전술을 준비하며, 불리한 상황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의지를 발휘한다. 주먹을 맞바꾸던 상대방과 진정한 우정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보다 더 위대한 존재의 은혜를 체험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분석적 사고능력과 판단력, 인내심과 자신감, 스포츠맨십과 우정,
그리고 자기발견과 신앙심이 길러지고 확인되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들은 우리 역사와 사회 속에서 언제나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들이며. 시간의 고금과 장소의
동서를 막론하고 인류가 귀중하게 이어나가고 북돋우기 위해서 애쓰는 가치들이다.
학교체육은 신체활동을 통하여 바로 이런 가치들을 체계적으로 함양하는 일을 목적으로 한다. 

 
학교체육의 이상

학교는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훌륭한 제도 가운데 하나이며,  체육은 인류가 창안해낸
가장 아름다운 활동 가운데 하나이다.
이 두 가지 아이디어가 하나로 만나게 된 것이 바로 학교체육이다.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교육받을 수 있는 곳, 소수의 선택된 계층만이 누리던 혜택을 만인에게
돌아가도록 한 곳, 그리고 체육활동을 통해서 그 교육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도록 한 곳.
이것이 바로 학교체육의 이상인 것이다.
의무교육으로 주어지는 학교체육은 계층과 성별을 막론하고 훌륭한 사람으로의 성장이라는 자유교육의
이상을 누구나 시도해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자 환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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