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개발원/주요 국제 대회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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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학수(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연구소장)


적극적인 스포츠 문호개방도 서둘러야


만약 소치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3관왕 빅토르 안이 단 한 개의 메달도 따지 못했다면. 

수많은 역사에는 가정법이 없고 한번 벌어진 개인사를 다시 뒤집어 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빅토르 안의 경우 최악의 상황을 한번 가정하면 아마도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질 법하다. 하나도 메달을 획득하지 못했다면 한국과 러시아는 물론 세계 주요 언론에 주목을 전혀 받지 못했을 것이다. 부진한 성적표를 거머 쥔 빅토르 안의 러시아 귀화 도전은 실패로 끝나고 그는 세인들의 기억속에서 자취도 없이 사라질 수 밖에 없었을 게다. 그간 국적을 바꾼 많은 선수들이 성적을 내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듯이 말이다.

하지만 천부적인 소질을 자타가 인정한 빅토르 안은 한국에서 국가대표로 선발되지 못한 한을 되씹고 러시아 국가대표로 새 둥지를 찾아가 마침내 뜻을 이루었다. 그것도 한국 국가대표 시절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3관왕을 했던 것과 똑같은 성적을 내면서다. 한국과 러시아 언론보다 비교적 객관적인 논조를 보일 수 있는 미국 언론 기사 중에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빅토르 안이 남자 1000m 결승에서 1위로 통과, 첫 금메달을 딴 뒤 미국 신문 샌디에이고 유니언트리뷴은 “빅토르 안이 국적을 바꿔 올림픽에 출전한 첫 선수는 아니지만 그는 쇼트트랙에서 농구의 마이클 조던처럼 존경받는 선수”라며 칭찬한 뒤 “빅토르 안이 러시아로 귀화한 것은 조던이 미국 대표팀과 불화를 겪은 끝에 쿠바 대표로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일”이라고 보도했다. 그의 귀화가 한국과 러시아 모두에게 엄청난 충격파를 안겨주는 큰 사건이었음을 암시해주는 기사였다.


빅토르 안은 국가대표의 의미를 새롭게 이해하고 분석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는 점에서 사회학적으로 깊은 연구를 해볼만한 대상이다. 먼저 국가대표라는 개념이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유기체처럼 변이와 전환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한국 국가대표에서 탈락, 선수 생활에서 최대 위기를 만났던 빅토르 안이 꼭 재기에 성공하고 말겠다는 흔들리지 않는 신념과 정신을 갖고 좋은 조건으로 귀화제의를 한 러시아로 국적을 바꾼 것은 선수로서는 큰 모험이었고 국가대표 자격으로서도 큰 변이에 해당하는 일이다. 그것은 한국 스포츠가 사상 처음으로 맞는 최초의 반문이었으며, 한국 빙상 전체를 뒤흔드는 전복의 전주곡이었다.



그동안 한국 스포츠는 국가대표에서 물러난 선수를 이렇다하게 관리하지 않았다. 빙상연맹 자체도 토리노 올림픽을 뒤로 빅토르 안을 사실상 용도폐기처분하고 그의 뒤를 이을 유망주를 키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러시아로 귀화한 빅토르 안이 월드컵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잇달아 성적을 내면서 전성기의 기량을 보여주고나서야 잔뜩 긴장하게됐다. 연맹측 관계자들은 소치 동계올림픽직전 빅토르 안의 완전한 재기 가능성을 이미 내다보고 있었다.


한국스포츠가 간과한 것은 국가대표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점차 바뀌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계의 전체적인 이념적 흐름이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거쳐 세계주의, 개인주의로 옮아감에 따라 국민들도 출중한 기량을 발휘하는 스포츠 스타에게 열광하고 환호하는 분위기이다. 국가와 민족보다 선수 개인에게 주목하는 것이다. 마이클 조던, 데이비드 베컴, 크리스티 호나우도, 류현진, 김연아 등이 열광적으로 팬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국가대표에 대한 선수 개인들의 자세도 크게 변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고 정통성을 지켜 나가기 보다는 개인의 감성과 도전을 더 비중있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눈에띄게 늘어났다. 이념적으로 세상을 재단하기에는 세상이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모습을 띠고 있는 것이 이러한 변화를 촉발했다고 할 수 있다. 즉 거시적인 관점에서 미시적인 관점으로의 패러다임적 전환과 변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젊은 세대의 관심은 이미 정치에서 문화 소비 스타일같은 창조적인 영역의 세계로 이동했으며, 호흡이 짧고 감성대가 예민해져 자기 개인을 중시하고 자유스러운 생활을 구가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젊은 세대들에게 이데올로기나 국가, 민족 같은 얘기를 말해봐야 별 감응을 일으키지 않는다.


빅토르 안도 이런 젊은 세대들의 의식과 사고의 변화에 결코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 재기를 노리며 한국 국가대표 선발에서 탈락한 빅토르 안이 믿을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으며, 러시아로 귀화한 것도 결국은 자기의 도전을 기필코 성공시키려는 목표의 일환이었을지도 모른다.

소치 동계올림픽을 통해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한 빅토르 안은 한국과 러시아는 물론 전 세계에 국가대표 선수 관리, 국적 이적 등의 여러 가지 문제점과 과제등을 던져주었다. 특히 러시아에 빅토르 안이라는 ‘대어’를 넘겨준 한국 스포츠에게는 뼈아픈 자책과 반성을 하도록 했다. 

해방이후 남의 나라로부터 도움을 받는 척박한 나라에서 이제는 남의 나라를 도와주며 무역 규모 세계10위로 성장한 한국의 국력 성장에 걸맞게 한국 스포츠도 압축 성장을 해왔다. 동하계 종목에 걸쳐 세계 스포츠 강국으로 어여쁘게 자리잡은 한국스포츠는 이제 국가대표 관리도 선진국다운 시스템과 인식의 틀을 갖춰야한다.  밖으로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대외개방을 하고, 안으로는 인재관리와 발굴이 폭넓게 깊게 이루어지는 네트워크를 운영해야 할 것이다. 경제력, 스포츠 국력 등 전반적인 부분에 걸쳐 선진국 문턱에 들어선 한국이 세계무대의 중심에 서기 위해선 새로운 패러다임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할 때이다.


끝으로 프랑스의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가 한국이 2050년에 국민소득 8만달러의 국가가 될 것으로 예견하면서 한 가지 조건을 달았던 것을 소개하겠다.  세 개부분의 개방이 선결조건이라면서 가족개방, 교육개방, 이민개방을 들었다. 빅토르 안이라는 인재를 유출한 한국스포츠는 세계화시대를 맞아 스포츠 문호를 활짝 개방해 각 종목에 걸쳐 빅토르 안에 필적하는 뛰어난 스포츠 동량들을 받아들이는 전향적인 사고의 전환을 모색할만하다. 소치 동계올림픽이 끝나고 이제 평창 올림픽이 4년 앞으로 다가왔다. 길다고 길고, 짧다면 짧을 수 있다. 미리 미리 준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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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학수(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연구소장)


국가대표 개념과 인식의 틀 깨져

 

국가와 애국심. 누가 이 정의로운 개념에 이의를 달 수 있었을까. 국가주의에 도전하고 애국심이 흔들리는 국가대표 모습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들이라면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에 대한 헌신과 봉사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은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태릉훈련원에 입소하는 순간부터 태극기에 엄숙한 예를 표하고 애국가를 불러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자 책무였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등 중요 국제대회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하는 것은 개인의 영광이면서도 국위를 선양하는 가장 확실한 일이었다. 금메달을 딴 뒤 시상대에서 태극기가 올라가고 애국가가 울려퍼질 때 눈물을 흘리며 가슴 벅차하던 국가대표의 모습은 국민들에게 뜨거운 국가애를 느끼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한국의 국가주의와 민족주의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 강렬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일제 식민지배와 해방, 분단과 전쟁의 아픔 등으로 파란만장한 질곡의 역사를 거쳤기 때문이다. 외세의 지배를 다시 받지 않기 위해서 민족이라는 이름아래 하나로 뭉쳐야했고, 북한 공산주의의 위협과 예측할 수 없는 국제경쟁에서 버티기 위해선 국가의 정체성을 확고히 세워야 했던 것이다.


국가주의와 민족주의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났던 곳은 스포츠였다. 국가대표라는 이름을 갖고 말이다. 한국 스포츠는 19488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전에 이미 대한올림픽위원회(KOC)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정식 가맹국으로 가입해 런던올림픽에 국가대표를 출전시켰다. 이례적으로 스포츠조직체가 국가탄생보다 앞선 경우였다. 해방이후 첫 국가대표들이 참가한 1948년 런던올림픽은 신생국인 대한민국이 전 세계에 국가의 탄생을 알리는 신고식이었다. 당시 대한민국 선수단의 모습은 유일하게 취재진으로 참가한 서울중앙방송 아나운서 민정호의 라디오 방송멘트를 통해 잘 알 수 있었다.


런던 하늘에 태극기, 선수들 앞에도 태극기, 이 넓은 스타디움엔 10만이 넘는 사람들이 가득하건만 저 태극기를 눈물을 머금고 바라보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 것인가. 태극기도 입이 있어 말을 한다면 우쭐거리고 춤을 추면서 파란 많은 지난날을 눈물로 독백 하리라·”(김광희, 2001 여명)


당시의 해방세대는 국가의 상징인 태극기를 보면서 민족의 감성과 정서를 확인하고 느낄 수 있었다.

런던 올림픽을 시작으로 지난 수십년간 많은 국제 스포츠무대에 출전한 대한민국 선수단은 학혈연, 빈부의 차이, 이념과 정서로 나뉘고 갈등을 빚은 국민의 몸과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대표적인 정신적 상징물이었다. 국가대표만큼 국민의 밤잠을 설치게 하고 큰 감동과 기쁨, 안타까움과 슬픔 등 격정적인 감성과 정서의 순간들을 안겨준 것이 과연 있을까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레슬링의 양정모가 건국이후 첫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을 때, 전 국민은 마치 자신이 메달의 주인공이 된 마냥 좋아하고 환호했다. 1984LA올림픽에서 양궁 2관왕을 차지한 10대 소녀궁사 서향순이 엄마, 나 예뻐라며 앳되고 귀여운 모습으로 인터뷰하자, 그를 국민의 딸, 국민의 여동생으로 부르며 사랑을 듬뿍 주었다. 이념과 체제의 장벽을 넘어 세계 평화의 제전이 된 19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종합 성적 세계 4위를 차지한 것에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를 가슴속에 깊이 새기기도 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선 몬주익 영웅황영조가 일본 선수를 물리치고 일제시대인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우승한 손기정 이후 56년만에 마라톤 세계 제패의 꿈을 이루면서 온 국민을 감격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2002 한일월드컵에서 축구대표선수들이 승승장구하면서 꿈만같은 4강에 오르자, 5천만 국민이 태극전사가 돼 길거리 응원에서 ~필승 코리아’, ‘대한민국~짝짝짝을 소리쳐 외쳤다.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쇼트트랙에서 안현수가 3관왕에 등극할 때도 우레와 같은 갈채와 환호를 보냈으며,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서 김연아가 그림같은 예술적 연기력으로 '올림픽의 꽃이라는 피겨스케이팅서 당당히 금메달을 획득하고, 이상화, 모태범, 이승훈 빙속 트리오가 스피드 스케이팅서 나란히 금메달을 추가하자 동계스포츠 강국한국의 변화된 모습에 자랑스러워했다.

예전 식민지배의 영향으로 한국을 떠나 미국에 정착한 한국계 이민 후예인 전 미국 수영 국가대표 다이빙 선수 세미 리와 일본에서 활동한 재일동포 출신의 전설적인 야구 스타 장훈의 활약상도 한민족의 우수성과 탁월성을 입증해주는 본보기로 삼기에 충분했던 것이었다.



국가대표와 한국을 빛낸 해외속의 한국인에게 관심이 모아진 것은 이러한 관심이 국가와 민족의 통합적 기능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 사회적으로 다양한 의견을 공론의 장으로 전환시키는 정부, 언론, 정치, 국민 여론 등은 스포츠에서는 국가대표가 내세울 수 있는 이념과 가치로서 국민통합적 요소에 주목, 이를 널리 전파하는데 주력하는 것은 현대 국가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독일의 사회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개념화한 공론장은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교환하고 설득할 수 있는 기제, 타인의 낯선 생각을 접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성찰의 기회는 여러 형태의 통신과 의사를 공유하는 교통과 정보, 신문, 출판, 인쇄, 살롱, 커피 하우스 같은 공론장에서 생긴다는 사실은 사회 변혁에서 매우 커다란 의의를 지닌다. 국가대표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공론장이 국가주의, 민족주의 담론 일색으로 채색된 것은 한국이 갖고있는 역사적, 지리적, 환경적인 영향이 크게 작용했으리라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게 유추해 볼 수 있다. 과거의 역사가 국가와 민족에 대한 맹목적인 헌신과 봉사의 이념을 주입시켰으며, 일본, 중국, 러시아에 둘러싸인 지리적 환경과 국제 관계도 순혈주의를 넘어 국수주의마저 느끼게 하는 국면을 형성케했다.


하지만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새로운 영웅으로 떠오른 빅토르 안, 안현수의 모습을 보면서 이제는 기존의 국가대표 패러다임 인식의 틀도 큰 변화를 맞을 수 밖에 없게되리라는 생각이다. 한국과 한국민도 변했고, 세계와 세계인도 변했다. 국가가 불러주지 않으면, 원하는 국가를 스스로 찾아다니는 시대가 됐다. 정치인이든, 경제인이든 문화인이든, 스포츠인이든 모든 영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대적 현상이다디아스포라(DISAPORA), 그리스어로 흩어진 사람이라는 이 말이 전혀 낯설지 않는 것이다. 프로 스포츠가 주도하는 미국 스포츠 MLB, NBA 등은 국적을 바꾼 멀티 내셔널 플레이어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으며 아마추어 무대인 올림픽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은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빅토르 안을 프리랜서 올림피안’,‘올림픽 유목민이라고 부르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빅토르 안은 시대적 변화의 양상을 잘 드러내 보인 예이다. 이제는 개인이 국가보다 앞서며, 국가는 개인을 빛내는 하나의 상징적 제도이자 기구로 존재한다고 말 할 만도 하겠다


(3편에서 계속: http://www.sportnest.kr/20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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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학수(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연구소장)


소치 동계올림픽이 끝나고 한국과 러시아는 정부 주도의 메달리스트 축하잔치를 열었다.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 이상화, 쇼트트랙 2관왕 박승희, 피겨 은메달리스트 김연아 등이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고 지난 25일 귀국한 한국 선수단은 인천 국제공항 1층 밀레니엄홀 야외무대에서 선수단 해단식 및 2018 평창동계올림픽 대회기 인수 기자회견 행사에 참석했다.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정행 대한체육회장 등 체육계 고위관계자들이 참석한 귀국 환영행사에서 메달리스트를 비롯한 선수단은 따뜻한 환영과 축하를 받았다. 유진룡 장관은 이날 행사에서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한 선수들을 비롯한 모든 선수들이 대한민국의 국위선양을 위해 많은 공헌을 했다. 이제 세계의 이목이 평창에 집중된다"며 "정부는 평창 올림픽을 통해 한국이 동계 스포츠 강국으로 올라설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축하행사는 여느 때처럼 통상적인 것이었다. 이번에는 올림픽 2연패가 유력시됐던 김연아의 석연치 않은 러시아측의 판정 담합의혹으로 국민 여론이 비등한 가운데 열린 귀국 환영행사에서 관심을 더 모았을 정도이다.



한국 선수단의 귀국 환영행사가 열리기 하루전인 24일,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소치 올림픽에 출전한 자국 대표팀과 메달 수상자들을 모아 연회를 베풀면서 러시아로 귀화한 빅토르 안(안현수)를 포함한 49명에게 각종 훈장을 수여했다고 러시아 언론들이 보도했다. 이 중 빅토르 안이 받은 훈장은 경제-사회, 과학-기술, 문화-예술-스포츠 등의 분야에서 탁월한 기여를 한 사람에게 수여되는 ‘제4급 조국공헌 훈장’으로 알려졌다. 특히 푸틴 대통령은 빅토르 안에 대해 “특별한 언급이 필요하다”며 “쇼트트랙의 탁월한 거장인 빅토르 안이 러시아 대표로 출전해 우리에게 4개의 메달을 안겨주고 수백만 명이 쇼트트랙을 사랑하게 만들었다”고 극찬했다. 러시아로 귀화한 전 한국 국가대표 안현수는 소치 동계올림픽 남자 쇼트트랙에서 500m, 1000m, 5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1500m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며 러시아가 대회 종합 순위 1순위를 차지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러시아에서 한국인 메달리스트들가 포함된 환영행사를 보면서 필자는 전혀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 이미 세계 스포츠 강국으로 자리잡은 한국 스포츠의 세계화를 확인하는 순간이라고 해야할까. 그렇게 받아들이기에는 썩 개운치 않은 뒷맛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필자는  이러한 상황을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만들어진 결과물로 받아들이고 이를  한국 스포츠 사상 전례없는 ‘패러다임적 전환’으로 명명하고 싶다. 예전같으면 상상 할 수도 조차 없었던 일들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한국 국가대표 선수가 국적을 초개처럼 버리고 러시아 국가대표가 된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올림픽 시상식에서 러시아 국기에 예의를 표하고 러시아 국가를 부르는 빅토르 안을 보는 것 자체가 큰 충격이었다. 그동안 한국인들은 국가대표들이 국가를 위해 출전, 국위를 선양하는 것을 국가를 위해 하는 당연한 덕목이자 책무라고 여겨왔으니까. 한국에서 국가대표는 국가의 숭고한 목적과 개인의 이상을 실현하는 수단이었다. 이러한 기존 사고의 틀을 일거에 무너뜨린 빅토르 안은 한국인들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대표란 무엇인가? 국가와 개인은 어떤 관계인가? 등의 국가와 관련된 이념과 가치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전면 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빅토르 안은 한때 안현수라는 한국이름을 갖고 한국 쇼트트랙을 세계무대에서 빛낸 불세출의 스타였다. 고교 시절 천부적인 재능을 일찌감치 인정받아 국가대표로 선발된 안현수는 2006년 토리노 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를 따내며 역대 올림픽 사상 최고의 스타로 화려한 스타덤에 올랐다. 그러나 지난 2010년말 고질적인 부상으로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한 안현수는 소속팀인 성남시청 마저 해체되며 오갈데 없는 신세가 됐다. 러시아 빙상연맹의 부름을 받은 것은 이때였다. 정상적으로 선수생활을 할 수 있는 여건과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러시아 빙상연맹의 제의는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동력이 됐다. 쇼트트랙 선수로서 백년에 한번 나올까말까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안현수는 이름을 빅토르 안이라는 러시아식으로 바꾸고 부상재활훈련을 본격적으로 쌓으며 소치 동계올림픽을 대비했다. 빅토르 안은 세계선수권대회 등 각종 국제대회에 출전, 여러 메달을 획득하면서 전성기 시절의 재현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마침내 벼르던 소치 동계올림픽은 빅토르 안를 위한, 빅토르 안에 의한, 빅토르의 대회였다. 빅토르 안이 금메달을 연일 따내며 쇼트트랙에서 원맨쇼를 펼치자 러시아 언론은 “빅토르 안은 우리의 새로운 영웅이다. 소치의 최고 스타이다. 빅토르 안만큼 러시아를 빛낸 선수는 없다” 며 찬양일색으로 대서특필했다. 


빅토르 안의 위용에 가려 단 한 개의 메달을 획득하지 못한 남자쇼트트랙의 부진으로 쓸 꺼리가 궁했던 한국 언론에게 빅토르 안은 최고의 소재였다. 중앙일보는 ‘프리랜서 올림피안, 빅토르 안’, ‘도전받는 올림픽 국가주의’ 등의 제목을 달고 빅토르 안에 대해 상세하게 보도했으며 여타 신문과 방송 등도 큰 관심을 갖고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전했다. 한국을 떠나 러시아로 귀화한 것은 고질적인 한국빙상의 파벌싸움 때문이었다고 밝힌 빅토르 안과 그의 아버지가 한 예전의 인터뷰가 새삼 여론의 도마위에 올랐다. 박근혜 대통령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업무보고에서 “안현수 선수가 쇼트트랙 선수로서 최고의 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나라에서 선수 활동을 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며 “안 선수의 문제가 체육계 저변에 깔린 부조리에 따른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밝혀 본격적인 그의 국적귀화문제를 쟁점화했다. 이는 온라인상에서 험난한 여정과 부상의 고통을 극복하고 러시아의 영웅으로 부상한 빅토르 안에 대한 응원과 위로 격려가 줄을 잇게된 여론을 감안한 것이다.

한국언론과 여론의 빅토르 안 ‘영웅만들기’는 국가대표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기제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국가주의를 우선하는 과거의 이념과 가치 기준으로 본다면 조국을 버리고, 그것도 한때 적성국으로 여겨졌던 러시아로 귀화한 빅토르 안은 ‘국가의 적’이며, ‘공공의 적’이었다. ‘배반자’, ‘변절자’, ‘매국노’ ‘만고역적’ 같은 섬뜻한 단어들로 일방적으로 호도될만했던 것이다. 하지만 매도하고 비난하기보다는, 칭찬하고 격려하며 그를 영웅으로 치켜세웠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유도에서 일본 국가대표로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걸은 추성훈 경우만해도 직접 비교하기는 어려워도 빅토르 안과 같은 뜨거운 격려를 받지 못했다. 국내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탈락한 뒤 일본으로 귀화한 추성훈은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동포라는 점과 오랜 숙명적인 국가적 관계를 안고있는 일본이라는 점 등이 작용한 탓일 것이다.


소치 동계올림픽 기간중 나타난 러시아 이름 빅토르 안, 한국 이름 안현수에 대한  패러다임적 인식전환을 기회로 한국 사회에서 언론, 여론, 정치인 등 이른바 주도적 공론장을 형성하는 인식의 공간에서 국가대표라는 개념이 어떻게 형성됐고, 현재 어떻게 이해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지를 살펴보면서 한국스포츠의 심층을 들여다 볼 것이다.   


(②편에서 계속: http://www.sportnest.kr/2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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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영미(대한라켓볼협회 사무국장)

 

 

      스포츠 둥지 독자에게 월드게임은 다소 생소한 종합스포츠 이벤트일 것이다. 올해로 제9회를 맞이한 칼리 월드게임은 올림픽의 다음해에 4년마다 개최되는 스포츠 이벤트로서 올림픽에 채택되지 않은 스포츠의 종합스포츠 국제경기이다.

 

 

 

국제스포츠연맹기구(GAISF)가 주최하는 국제친선경기 대회이며, 본부는 모나코의 몬테카를로에 있다. 1981년 미국 산타클라에서의 제1회 대회를 시작으로 우리나라는 제1회 대회부터 지속적으로 참가하고 있다.

 

이번 대회는 85개국 4,000여명이 참가하여 당구, 볼링, 댄스스포츠, 핀수영 등 26개의 정식종목과 롤러로드, 우슈 등 5개의 초청경기에서 선의의 경쟁을 펼쳤으며, 다음개최지는 2017년 폴란드의 브로츠와프에서 열리게 될 예정이다.

 

 

<개회식 모습>

 

지난 7월 25일(목)부터 8월 4일(일)까지 11일간 콜롬비아 칼리에서 펼쳐지는 제9회 칼리월드게임에 대한민국 선수단이 파견되었다.
이번 대회에 파견된 대한민국 선수단은 당구, 볼링, 댄스스포츠, 핀수영, 에어로빅 체조, 라켓볼, 롤러, 클라이밍, 수상스키, 공수도 등 10종목 53명의 선수단(본부임원 3명, 경기임원 11명, 선수 39명)으로 구성되었다.

 

필자는 라켓볼 감독으로 대회에 파견되어 라켓볼에 대한 경기정보를 제공하고자 한다. 이번 월드게임에 참가하는 라켓볼부분의 선수 자격은 2012년도에 도미니카에서 열린 세계라켓볼 선수권대회에서 단식 16강 이내의 선수에게 초청자격이 부여되었고, 우리나라 라켓볼 선수로서는 여자부의 안정은 선수, 남자부의 김민규 선수가 초청되어 열띤 경기를 펼쳤다.

 

 

이번 대회에서 우리나라 라켓볼 선수단은 선전하였으나 세계의 벽을 실감하며 아쉽게 8강 진출에 실패하였다. 이번 대회에서는 이례적으로 라켓볼 종주국인 미국을 이기고 남녀부 모두 멕시코가 우승을 하였다. 남녀 우승국인 멕시코는 2000년부터 우수한 외국의 코치를 선임하여 주니어 육성에 힘을 기울인 바, 종주국인 미국을 넘어서서 라켓볼의 최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라켓볼은 현재 중남미 국가에서는 팬 아메리카 경기의 정식종목으로 각각의 남미 국가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상황이며 멕시코의 라켓볼에 대한 관심은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다른 중남미 국가의 도약도 눈이 부신 대회였다. 개최국인 콜롬비아의 크리스티나 아마야 선수(24)는 이번 라켓볼 대회의 파란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15번 시드로 경기에 출전하여 2번 시드인 캐나다, 7번 시드인 일본, 3번 시드인 미국의 선수를 차례로 이기고 준우승을 차지하여 개최국인 콜롬비아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찬사를 받기도 하였다. 콜롬비아 뿐만 아니라, 볼리비아, 베네수엘라, 과테말라 선수들도 훌륭한 경기로 관중들의 박수 갈채를 받기도 하였다.

 

이에, 우리나라 선수에게도 세계대회 및 주니어 세계대회의 국가적 지원이 절실하여 우리나라 선수들의 다양한 해외경기 출전경험을 쌓아나간다면 우리나라 라켓볼의 미래는 밝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대한민국라켓볼 선수단 : 좌로부터 이영미감독,김민규,안정은선수>

 

비인기 종목임에도, 비 올림픽 종목임에 국가나 사회적 관심에서 제외되어 있는 라켓볼 선수들임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우리나라 라켓볼 선수들에게 앞으로 많은 관심과 지지를 부탁한다.

이팅~ 라켓볼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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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철원

 

 

▲ 싱가포르 쇼트트랙 스페셜올림픽 어린이 및 관계자들과 함께

 

 

지난 20일, SCAPE에서 2013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을 향한 싱가포르 스페셜올림픽 팀의 출정식이 열렸다. 필자는 스페셜올림픽 쇼트트랙 팀 자원봉사 코치로 초청돼 출정식을 함께하게 됐다.

 

이번 출정식에는 싱가포르 스페셜올림픽 회장을 맡고 있는 Dr. Teo를 비롯해 싱가포르 문화부 장관인 Mr. Lawrence와 주 싱가포르 오준 대사가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오는 29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강원도 평창과 강릉일대에서 펼쳐지는 이번 대회는 아시아에서 세 번째, 한국에서는 최초로 열리는 대회이며 전 세계 120여 개국, 3,000여명의 선수가 참가할 예정이다. 싱가포르는 플로어 하키 15명, 쇼트트랙 5명의 선수를 비롯해 총 28명으로 구성된 선수단을 파견할 예정이다.

 

출정식을 통해 스페셜올림픽 회장 Dr. Teo는 “동계 스페셜올림픽은 아직까지 싱가포르에게 낯설긴 하지만 어린 선수들에게 큰 동기부여가 될 것이며, 쇼트트랙 종목에 최초로 참여하게 돼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이어 문화부 장관 Mr. Lawrence 역시 “쇼트트랙 선수들이 굉장히 열심히 훈련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쇼트트랙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길 바란다”며 선수들의 건승을 기원했다.

 

이어 주 싱가포르 오준 대사는 “많은 싱가포르 어린이들이 시합에 참가한다고 들었다. 처음으로 맞이하는 겨울이 될 텐데 한국의 추위만 잊어버린다면 모든 것이 흥미롭게 다가올 것이다”라고 말해 참석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또한, 오준 대사는 “동계 스페셜올림픽 역사상 가장 큰 규모로 개최될 이번 대회에 대한 한국의 관심 역시 매우 크다”며 “선수들이 승리를 하는 것도 좋지만, 승리를 하지 못하더라도 이번 대회를 통해 더 용감해 지기를 바란다”라며 싱가포르 어린이들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남겼다.

 

 

▲ 주 싱가포르 오준 대사

 


쇼트트랙 선수로 대회에 참가하는 Phil은 “이번 대회를 통해 많은 친구들을 사귐과 동시에 내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밝힘과 동시에 “처음으로 눈을 직접 보게 돼서 많이 설렌다”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지적장애를 가진 어린 선수들이 이번 대회를 통해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 나가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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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제갈현승 (스포츠둥지 기자)

 

           김봉수 코치가 가장 중요시 여기는 선수의 기본은 ‘인성과 예의’다. 선수들이 아무리 기량이 훌륭하다 한들 기본이 빠져있다면 여지없이 혼을 내는 것이 김봉수 코치의 기본철학이다. 또한 골키퍼의 훈련법도 기초부분을 상당히 중요시 여긴다. 줄넘기와 몸의 균형을 잡는 훈련, 골키퍼의 경기운영을 강조한다. 김봉수 코치의 ‘골키퍼학 개론’을 들어봤다.

 

 

‘유럽파 골키퍼’를 육성하기 위해 세운 김봉수 GK클리닉 ⓒ 제갈현승

 

 

# ‘인성과 예의’가 선수의 기본이다.

 

 어떻게 축구를 시작하게 되셨나요?

 남양주시 양정초에서 축구를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에서 4종목 (핸드볼, 배구, 육상, 축구) 주장을 역임했죠. 면목초에서 스카웃 제의가 왔어요. 한달에 교통비 8600원 준다며 제안했죠. 처음에는 양정초에서 반대했으나 설득으로 결국 면목초로 전학을 오게 되었죠. 전학 갈 때는 포지션이 공격수였어요, 근데 골키퍼가 부상당하는 바람에 제가 골키퍼를 봤어요. 그 당시 핸드볼 골키퍼였거든요. 그래서 감독님이 저에게 시키시더라고요. 곧잘 하니까 그대로 이어진 거에요.(웃음)
(김봉수 GK코치는 90년대 한국축구의 빼놓을 수 없는 골키퍼 중 한명이다. 만 18세 나이로 역대 최연소 골키퍼 A매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과거 GK 훈련교육이 많이 열악하였는데 국가대표팀까지 오르게 된 비결과 어떻게 GK 지도자가 되셨나요?

 국가대표팀 선배님들의 모습을 많이 따라하고 보고 배웠죠. 또 제 나름대로 시행착오를 통해 기른 훈련법을 통해 많이 연습했어요. 가령 줄넘기는 몸의 균형감각을 잡아주기 때문에 중요하고요, 제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했어요. 지금 선수들에게도 줄넘기를 하라고 가르치고 있어요. 또한 런던 대회 때 연습했던 미니 스킬볼 훈련은 제 나름대로 스스로 터득해서 만들어 낸 겁니다. 선수들이 이 훈련을 통해 집중력 효과를 봤다고 하더라고요. 지도자 길은 허정무 감독님께서 용인시 축구센터에서 골키퍼 코치가 필요하다고 해서 그때부터 들어섰죠. 그 이후에 전남드래곤즈 골키퍼 코치로 역임하다가 홍명보 감독님의 권유로 런던 올림픽 대표팀 GK코치가 되었습니다.

 

 

 

골키퍼의 능력은 ‘기본기’에서 비롯된다 ⓒ 제갈현승

 

 

 지도자를 준비하는 선수들에게 조언해주고 싶은 게 있다면?

 일단 제 생각은 지도자가 열정적이고 꿈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꿈이 없는 지도자는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중학교 지도자면 고등학교, 고등학교 지도자면 대학교, 대학교 지도자면 프로감독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이 있어야 되요. 우리가 선수시절에 국가대표 태극마크가 목표인 것처럼 말이죠. 선수들이 지도자에게 ‘우리 감독님이 많은 걸 가르쳐 주시는구나’라고 느껴야 됩니다.

 

  최근에 대한축구협회 KFA 필드 지도자 연수과정을 이수하셨는데요, 지도자 교육을 받고 난 느낌은 어떠셨는지요?

 지도자는 항상 공부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골키퍼 코치이지만 필드상황에서는 어떤 상황인지 인식해야 되고 심리적으로 많은 걸 배워야겠죠. 또 교육이수과정에서도 지도자들이 공부하려는 의지가 많이 느껴졌어요. ‘내가 더 분발해야겠구나’라고 생각했죠.

 

지도자 및 운동선수들에게 가장 필요한 교육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일단은 외국어와 멘탈리티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어는 선수들이 유럽에 진출할 때 가장 필요한 필수조건이라고 보고요, 멘탈리티 부분은 어린 나이 때에 조금만 잘하면 기고만장해지고 반대로 못하면 눌러 앉아 그대로 성장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재단에는 국내연수, 해외연수의 외국어교육과 스포츠멘탈코치 양성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저는 인성과 예의가 가장 중요한 선결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것을 지도자가 잘 관리해 주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또한 선수들은 ‘연구’하라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가르쳐준 것에 대해서만 습득하지 말고 혼자 더 공부하고 나은 방향으로 생각하라는 것이죠. 더해서 성실감, 책임감, 열정을 잊지 말고 꾸준히 마음 속에 가졌으면 좋겠어요.

 

최근 언론에 골키퍼를 육성하여 유럽 진출을 시키겠다고 말씀하였는데요, 이러한 목표달성을 하려면 개선해야할 점이 어느 것이 있을까요?

 아이들이 좀 더 편안하게 뛸 수 있는 운동장이 필요합니다. 골키퍼를 위한 전문적인 교육이 학원 축구에서 매우 부족해요. 비유하자면 학생들이 모의고사나 문제를 풀고 수능에 임하듯이 골키퍼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 나이대에 골키퍼도 훈련학습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초중고 때 골키퍼에 대한 전문적인 훈련이 부족하다 보니 실수하게 되고 위축되는 현상이 일어나게 되죠. 따라서 학원 축구 지도자분 및 관계자분들이 도와주어야 합니다. 실제 경기만 뛴다고 능사는 아니거든요. 전문적인 훈련법에 대해서 배우고 익혀야 되요.
 독일의 경우에는 유소년 클럽들이 모두 골키퍼 전문 코치가 있죠. 현재 학원 축구에서 골키퍼 코치가 현실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에 대해서 안타까움을 느껴요.

 

유소년선수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신데요. 골키퍼의 체격은 어느 정도가 적합한가요?

 신체조건은 180cm이상만 되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현대축구는 공간과 압박의 형태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어요. 따라서 골키퍼가 우선으로 갖추어야 할 조건이 순발력, 경기운영 능력입니다. 물론 신체조건이 중요하지만, 축구는 신체로 다 하는게 아니에요.
 그래서 어린선수들이 실망하지 말고 자기 나름대로 판단력, 경기운영 능력을 늘려야 된다고 봅니다. 또한 지도자들도 생각이 바뀌어야 되요. 무조건 키 큰 선수만 골키퍼를 쓰는 건 고정관념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이운재, 김병지가 유럽에서는 카시야스, 발데스가 모두 183cm정도입니다. 이들이 명골키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판단력경기운영능력이죠.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요?

 일단 하남과 정읍에서 아이들을 계속 가르칠 계획입니다. 그리고 이번 겨울에 해남과 정읍에서 베이스 캠프를 차려 한달간 골키퍼 훈련을 유소년들에게 지도할 예정입니다.  어린 나이 때에는 동계훈련이 중요한데 현실적으로는 골키퍼는 오전, 오후 필드게임만 뛰다보니 기본적인 훈련이 부족하죠. 이 시기에 체계적으로 훈련받을 수 있다면 좋은 선수로 성장할 수 있을 겁니다.

 

김봉수 코치에게 축구란 人生이다.

 

 런던 올림픽 대회 이후 김봉수 코치는 당장의 이익만으로 쉬운 길을 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목표했던 것(골키퍼 유럽진출)을 실현시키기 위해 유소년 교실을 열었다. 한국축구의 미래를 생각하는 마음과 진정성이 인터뷰 내내 느껴졌다. 


 “누군가는 길을 터야됩니다. 제가 사명감을 가지고 이러한 길을 만들어나가고 저의 후배들이 이어받아 좋은 골키퍼를 양성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김봉수 코치의 도전은 다시 한 번 시작되었다.

 

 

 

3년여의 준비 끝에 값진 동메달을 목에 건 올림픽 코칭스태프 ⓒ 사진제공 김봉수

 

 

하남과 정읍을 오가며 힘든 와중에도 불구하고 인터뷰 허락을 해주신

김봉수 코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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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제갈현승 (스포츠둥지 기자)

 

           축구에서 최후방을 지키는 골키퍼는 공을 막는 것 뿐 만 아니라 3선에 있는 수비라인조정, 팀의 안정성, 경기력 향상까지도 이룰 수 있는 아주 중요한 포지션이다.  런던 올림픽 B조 예선 4팀의 경우, 모두 와일드카드로 골키퍼를 선택했을 정도로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토너먼트 대회나 시즌 리그 모두 팀 향배가 골키퍼에 의해 좌우될 정도로 그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2012년 런던올림픽 남자축구 대회는 골키퍼의 중요성이 다시금 중요하게 부각된 대회였다. 정성룡의 안정감 있는 선방과 리딩 능력에서부터 이범영의 승부차기 선방까지 골키퍼의 맹활약이 없었더라면 이번 대회에서의 사상 첫 동메달 획득이라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김봉수 GK 코치는 이들 뒤에서 묵묵히 자신의 경기 노하우와 팀에 대한 분석까지 선수에게 전달해 주었다. 그 결과 올림픽 사상 첫 메달을 획득하고 한국 축구사를 새롭게 쓴 숨은 주역이 되었다. 2009년 12월 올림픽 대표팀 GK로 부임하여 2012년 런던올림픽 대회까지 맡았으며, 현재 골키퍼에 대한 육성을 위해 김봉수 GK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런던올림픽 축구국가대표팀 GK 코치 김봉수 ⓒ 제갈현승

 

 

# 축구인생을 건 ‘런던 올림픽’

 

올림픽대회 중에서도 축구는 가장 큰 인기종목 중 하나였는데요, 심리적으로 많이 부담되셨을 것 같습니다. 대회 치르기 이전 준비과정은 어떠했나요?

 2년 전 광저우 아시안게임 때 비난의 화살이 홍명보 감독님과 저한테 왔어요. 이기기 위해서 바꾼 건데 결과적으로 안 좋게 됐죠. 런던올림픽 대회에서 내 모든 축구인생을 다 걸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오기가 생기면 무서운 게 없어요. 그 뒤에 결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고 오직 이 대회만을 집중하려고 노력했어요. (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4강 UAE전에서 연장후반 120분, 통한의 결승골 내줘 한국팀은 결승 탈락했다. 승부차기에 대비하여 골키퍼를 교체(김승규<->이범영)하였던 홍명보호는 이 때 당시 많은 비난을 받았다)

 

 런던올림픽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심리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경험을 바탕으로 얘기해줬어요.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들이 열심히 했고, 실수하면 선생님 책임이다. 너희들은 편한데로 즐겨라.’라고 얘기해 줬습니다. 또 (정)성룡이에게 대회직전 수원에서 연이어 많은 실점(2경기 8실점)을 당하고 왔지만 그건 지난 일에 불과하고 홍명보 감독님과 나는 ‘너를 신뢰하고 믿는다’고 얘기해줬죠.

 

 8강 영국전이 최대 고비처였는데요. 승부차기 당시 때의 심정은 어떠셨나요?

 사실 (이)범영이가 긴장하더라고요. 제가 그래서 ‘네 축제인데 왜 즐기지 못해? 광저우 때 당해봤잖아? 즐겨라. 그때는 해보지도 못하고 당했지만 지금은 기회잖아. 난 너를 믿어. 내가 가르쳐 것에 대해서 잊지만 마.’ 이렇게 말하고 나서 결과는 이겼지만 사실 저에게 혼이 많이 났어요. 왜 1개 밖에 못 막았냐고요. 긱스 슛팅은 막을 수 있었거든요.(웃음)

 

 

김봉수 GK코치와 이범영선수에게 ‘힐링’이 된 8강 영국전 ⓒ 런던올림픽 조직위

 

 

이범영선수가 8강전(PK 스터리지 선방)에는 칭찬을, 4강전(3골실점)에는 비난을 받았는데, 경기 후 어떤 조언을 해주셨나요?

 경기 끝난 후 많은 생각을 했어요. 고심 끝에 선수에게 부담 안주기로 하고 농담식으로 ‘(이)범영아, 검색어 인기순위 올라갔냐?’라고 물었죠. 그랬더니 (이)범영이가 ‘선생님 전 두 번 올라갔어요. 영국전에서는 잘해서 올라갔고, 브라질전에서는 네가 선수냐며 올라왔어요’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그게 골키퍼의 운명이다. 천당과 지옥을 왔다가는 거고 이게 좋은 경험이 될거다’라고 위로해줬죠.

 

 런던올림픽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홍명보 감독님께서 일단 와일드카드선수들에게 절대 부담을 주지 않았어요. 홍명보 감독님도 선수시절 와일드 카드로 뽑혔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상당한 부담이 있다는 걸 알아요.
 그래서 3명(박주영, 김창수, 정성룡)의 선수들에게 ‘너희들은 뭔가 하지 말아라. 다른 선수들이 도와라. 3명의 선수들이 15명을 돕는 것보다 15명이 3명을 돕는것이 더 쉽다’라며 독려했어요. 분위기 자체도 좋았고 편하게 경기에 임했던 것 같아요. (홍명보감독은 시드니 올림픽 대회에서 와일드카드로 발탁이 되었으나, 부상으로 도중하차하게 된다.)

 

 선수들의 선후배 관계, 지도자와의 관계는 어떤가?

 박건하코치와 김태영코치가 선수들과 감독님의 가교역할을 해주었고요, 유럽파면 유럽파끼리 모이거나 이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어요. 서로 좋은 걸 얘기해주고 받아들이고 그런 점이 긍정적인 효과로 나타난거죠.

 

 대회가 끝나고 10월부터 하남과 정읍에 GK클리닉을 여시게 된 동기는.

 사실 GK클리닉을 예전부터 준비하고 있었어요. 올림픽 끝나고 골키퍼에 대한 관심도와 중요성이 많이 높아졌어요. 이 분위기를 밀고 가려면 빨리 시작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에 10월부터 GK클리닉을 열게 된 거죠.

 

 최종예선부터 런던올림픽 본선대회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다면 어떤 경기라고 생각하나요?

 올림픽예선 카타르 원정경기에요. (하)강진이가 몸 컨디션이 안 좋아서 선발로 내보낼 수 없는 상황이었죠. 근데 (이)범영이 본인이 불안한 심리였어요. 강진이를 선발로 내세울지 범영이를 선발로 정할 지 고민을 무척했습니다. 밤을 샜죠. 그리고 다음날 아침 홍감독님께서 ‘골키퍼 선발 정했냐’라고 물으시길래 ‘조금만 시간을 달라’며 말을 드리곤 생각에 잠겼죠.
 그리고 나서 전 ‘내가 이 선수를 믿지 못하면 어떡하겠니?’ 스스로 한테 물었어요. ‘선수를 믿고 한 번 해보자’라며 다짐 후 범영이에게 선발을 맡겼어요. 그 이후 상승세를 타서 홈경기 사우디戰까지 좋은 결과가 이어진게 된거죠. 좋은 지도자가 되려면 먼저 선수를 믿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대한민국 올림픽대표팀은 카타르 원정에서 1:1, 대한민국 홈에서 사우디를 1:0으로 승리했다)

 

 

 김봉수 코치는 인터뷰 내내 선수들과의 ‘믿음’, ‘신뢰’를 강조했다. 스승과 제자 사이의 허물없는 유대관계를 형성하고자 노력한 것이다. 그 결과가 선수들의 마음을 샀고 한국 축구역사상 올림픽 메달 획득이라는 쾌거를 낳은 것이다.

 

 

김보경의 득점 후 홀로 작전지시를 하고 있는 김봉수 GK코치 ⓒ 사진제공 김봉수

 

 

 김봉수 코치는 런던올림픽대회 내내 골이 터졌어도 기쁨을 선수들과 공유하지 못했다. 2년전 UAE전의 악몽이 떠올라 항상 다음 상황을 예측하고 수비수와 골키퍼에게 지시하는 버릇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후 동메달 결정전인 일본전이 끝난 뒤 응어리 맺힌 아픔을 씻어냈다.   런던올림픽이 끝난 뒤 현재 김봉수 코치는 한국 골키퍼들이 유럽으로 진출하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하나씩 단계를 밟아나가는 중이다.

 

 

 

2편에서 [‘인성과 예의가 먼저’ 김봉수 GK코치의 골키퍼학 개론]이 계속됩니다.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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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곽병혁 2012.11.06 22:37 신고

    이번 런던 올림픽 에서 뛴 선수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성적 기대할게요!
    화이팅

    • 병혁님~반갑습니다 ^_^ 너무 잘 뛰어준 우리 선수들~앞으로도 기대되고, 또 미래의 선수들도 기대되네요.함께 응원하고 지켜봐요 :)

 

 

 

글 / 이기원 (스포츠둥지 기자)

 


       “완벽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 노력할 뿐이지 감히 저는 완벽한 지도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최고의 지도자로 우뚝 서기 위한 포부와 함께 끊임없이 배우려는 곧은 마음가짐이 묻어난다. 대한민국 펜싱의 ‘마에스트로‘ 심재성 코치(46). 그가 프랑스 유학시절 배운 ‘10분 지도자’ 철학과 ‘단순함에서 복잡함, 복잡함에서 단순함으로 가는 길‘ 의 의미는 무엇일까. 프랑스 스포츠에서 우리나라가 배워야 할 점과 그가 가진 지도철학을 들어봤다.

 

 

런던올림픽 펜싱 국가대표 심재성 코치 인터뷰 모습 ⓒ 이기원

 

 

▶ 1993년도에 프랑스 펜싱 클럽(A,S Montigny)코치를 하면서 국내 최초로 프랑스 국립 펜싱 지도자(C,N.F.E)학교를 졸업했는데 프랑스의 체육환경은 우리와 어떤 부분이 다른가요?

   유럽은 펜싱이 아니라도 다양한 종목의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우리와 다른 것 같아요. 스포츠클럽이 활성화되어 있거든요. 누군가 펜싱은 우리나라에서 생활체육이 될 수 없다고 한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되물었는데, “배우고 싶어도 선수 말고는 가르치는 곳이 없다”는 게 이유였어요.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죠. 클럽이 활성화 되어 있으면 재미와 건강을 위한 생활체육으로도 펜싱을 하다가 선수가 하고 싶으면 엘리트 체육으로 전향하면 되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인프라가 없기 때문에 어려운 게 사실이죠. 이게 우리나라의 체육환경입니다.
   반면에 프랑스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클럽이 많아요. 펜싱의 경우 클럽을 운영하고 싶으면 동네 체육센터를 사용할 수가 있죠. 모든 스포츠 종목에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체육센터에 펜싱교실을 연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요. 수영과 헬스처럼 인기프로그램들만 운영되고 있죠. 그런 제도가 다른 것 같아요.


▶ 국내 펜싱 지도자가 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나요? 
   펜싱협회는 일 년에 한 번 지도자 강습회를 합니다. 긴 기간은 아니지만 이 과정을 이수하게 되면 현장에서 선수들을 지도를 할 수 있어요. 과거엔 선수생활을 오래 하다 그만두면 쉽게 지도자가 될 수 있었죠. 그래서 지도자들의 지도력은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이 없었어요. ‘선수시절에 잘 했던 사람이 잘 가르치겠지’ 하는 주먹구구식의 사고방식도 있었고요. 이 때문에 지도자들의 질적인 부분이 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자격제도를 통해 검증받지 못한 일선 지도자의 처우도 열악했었습니다.

  학교 체육교사들은 임용고시를 거쳐 자격을 받게 되죠. 요즘 경기지도자나 생활체육지도자 자격제도가 정착화 되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그 과정이 더욱 전문적으로 보완되고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스포츠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이론과 이수 후 일정 기간 팀이나 클럽에서의 지도연수 과정을 포함 하는 것이죠. 그렇게 된다면 어려운  과정을 이수한 지도자들에 대한 대우도 나아질 거구요. 여러 스포츠 협회나 정부차원에서 이런 부분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습니다.

 

▶ 지도자를 꿈꾸는 선수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프랑스 유학시절 제게 영향을 줬던 한 선생님이 있어요. 그 분이 하셨던 말이 너무 마음에 와 닿아 잊을 수 가 없습니다. 지도자가 운동 시작시간에 정확히 훈련장에 도착하면 ’공무원‘ 이다. 운동 시작 10분이 지나서 훈련장을 찾는 지도자는 ’나쁜 지도자‘ 라고. 선수보다 10분 먼저 훈련장에 나와 준비하는 지도자야 말로 ’진정한 지도자’ 라고 했습니다.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의 마음가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거죠.   
  실제로 선수들을 지도하다보면 다양한 기술적 심리적 문제가 나타납니다. 이를 좋은 방향으로 해결할 수 있게 돕는 것이 바로 지도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행여 자신이 그 문제를 모두 풀어나가지 못하더라도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해법을 찾고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지도자가 되기 위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신아람 선수도 지도자가 되겠다고 한 적이 있나요?

   본인은 농담조로 자기는 못할 것 같다고 해요. 하지만 그 친구(신아람 선수)는 창의성이 상당히 뛰어나요. 그런 면에서 보면 지도자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제가 그런 부분을 판단할 수는 없어요. 지도자의 자질은 배우며 만들어 질 수 있으니까요.

 

▶ 운동선수와 지도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교육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국제대회에 나가는 운동선수나 지도자들에게 기본적인 외국어 교육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각국의 지도자와 선수들이 모여 경험을 나누고 배우는데 언어가 통하지 않으면 소통을 할 수 없죠. 사람들은 대화를 하지 않으면 상대의 생각을 알지 못하자나요. 지도자의 외국어능력이 조금 보완된다면 국제무대에서 더 많은 교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면에서 재단의 외국어연수과정은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2006년 대한체육회에서 진행된 스포츠 외교과정을 이수했습니다. 우리나라 스포츠 외교 인력 양성을 위한 취지였죠. 스포츠 외교관이 되기 위해 필요한 내용, 영어와 인성 등을 공부했습니다. 당시 스포츠 외교에 열정을 가지신 교수님들, 스포츠 단체 국제 업무 담당 직원, 또 각 종목 지도자분들과 함께 1기로 참여해 많은 걸 배운 것 같습니다.

 

▶ ‘공부하는 학생선수‘ 어떻게 생각하나요?   

   가장 이상적인 것이 공부와 운동 이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것이겠죠. 사실 저는 운동을 잘하는 선수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요. 운동을 잘 하는 선수들은 공부에 흥미를 가지게 되면 엄청난 집중력을 보이거든요 학생 때부터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해요. 그런 면에서 재단(체육인재육성재단)의 ‘공부하는 학생선수‘ 모토는 운동선수들의 부족했던 부분을 현실성 있게 잘 적용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선 ‘운동하는 사람은 머리가 나쁘다’라는 인식이 있어요. 우리나라 스포츠계가 풀어 나가야 할 숙제이긴 합니다. 운동선수가 학창시절 공부하는 시간이 부족한 경우, 일반상식이나 기초학업능력이 부족한 경우는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경기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전략을 구사하고 승리하기 위해 엄청난 두뇌회전을 하는 일은 결코 머리가 나쁘면 할 수 없는 일이죠.

 

▶ 우리나라 스포츠 외교인재 양성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요?

   스포츠 외교 인력이 부족한 원인 중 하나는 관련 인재의 스포츠 경력과 지식수준의 불균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공부하는 사람은 공부만, 운동하는 사람은 운동밖에 못하는 것이 아쉬워요. 학교생활에서 스포츠를 등한시 하는 것 분위기도 문제죠.

   학생선수들 뿐만 아니라 다양한 꿈을 가진 많은 공부하는 학생들이 스포츠와 학업에 대한 흥미를 동시에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학생시절 스포츠를 즐기게 되면 선수가 세계수준의 경기력에 도달하기가 얼마나 힘든가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고, 스포츠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서는 지식수준도 높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되는 거죠. 학문과 스포츠 두 분야에서 인재를  고루 양성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 선수들이 운동을 포기하거나 좌절할 때 어떻게 동기부여를 하나요?

   경기 중간 지점에 조금 앞서있다고 가장 먼저 결승점을 지나는 건 아니자나요. 선수들이 목표를 버리지 않도록 격려합니다. 열심히 했는데도 성과가 나지 않는다면, 다른 진로를 찾을 수 있게 응원해요. 그동안 열심히 해왔던 걸 포기하는 것도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껏 해왔던 노력을 새로운 것에 기울인다면 꼭 성공할 수 있다고 격려하죠.

   제자들에게 체육인재육성재단이나 대한체육회에서 진행하는 은퇴선수 프로그램을 잘 활용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운동을 일찍 그만둔 선수들은 이런 프로그램을 잘 활용해요. 하지만 30대가 넘는 직업운동선수들은 그렇지 못한 편입니다. 운동을 그만두게 되면 경제적 바로 어려움과 직면하기 때문에 유학을 간다거나 1, 2년을 교육에 투자한다는 것은 어렵죠. 어릴 때부터 운동선수로서 은퇴 후의 목표를 잡을 수 있도록 돕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개인 홈페이지에 "펜싱은 단순함에서 복잡함으로 가는 길이다. 이는 최고 완성의 순간에서 다시 복잡함에서 단순함으로 되돌아오고자 함이다". 라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요?

   프랑스의 한 검술가가 쓴 글입니다. 펜싱경기에서 가장 처음 배우는 상대를 찌르는 기술은 참 단순해요. 그냥 찌르는 거죠. 처음 배우는 사람은 서로 그것만 해요. 근데 이게 너무 단순해서 어느 정도 지나면 상대에게 다 막히게 돼있어요. 그래서 한 번 돌아가고 두 번 돌아가고, 예비동작도 넣고 하면서 동작이 계속 복잡해지죠.

 그 경지에 오르면 이젠 굳이 필요 없는 동작들은 하나둘씩 빼게 되요. 결국 아주 잘하는 선수들은 단순한 동작으로 상대를 제압하죠. 펜싱에서는 아주 단순한 것이 완벽한 것이죠.

 

 

 

▶ 나에게 펜싱이란 이다.

   펜싱은 제게 이예요. 인생을 배우고 있습니다. 세계랭킹 1위의 선수도 30위 선수에게 질 수 있죠. 런던에서의 신아람 선수 경우와 같이 판정 하나로 울고 웃는 상황도 일어납니다.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많지만 이를 통해 기쁨과 배움을 얻습니다. 

 

 

   마에스트로(maestro).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나 명장을 지칭하는 말이다. 음악에서는 다양한 악기의 연주자를 이끄는 명지휘자를 부를 때 사용한다. 심재성 코치는 런던올림픽 ‘1초 오심’에는 유창한 외국어로 대한민국의 목소리를 보여줬다. 오심에 울었던 신아람 선수를 격려해 단체전 은메달과 함께 웃음을 찾을 수 있게 도왔다. 


 오케스트라의 ‘마에스트로’는 어떠한 상황에도 끝까지 연주를 잘 마칠 수 있게 이끌어야한다. 대한민국 펜싱의 ‘마에스트로’ 심재성. 그가 보여준 펜싱연주는 국민 모두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 스포츠둥지

 

 

 

스포츠 지도자. 심재성의 생각<1> http://www.sportnest.kr/1536

심재성의 펜싱이야기 홈페이지 http://user.chollian.net/~monch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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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님 2012.10.18 18:41 신고

    기사 잘읽었어요. 사실 올림픽 때 선수들을 보며 울고 웃고 했었는데 그뒤에서 선수들을 지도하는 분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됩니다. 심재성 코치님 처럼 멋진 지도자가 되고싶네요.

  • 임재윤 2012.10.19 04:02 신고

    심재성 코치의 followship과 leadership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대회 후에는 선수에 주목되기 마련인데 이렇게 멋진 코치에 대한 기사가 나와 많이 배우고 갑니다. 그리고 외국어에 대한 중요성도 다시 한 번 깨닫네요!

    • 재윤님~도움이 되셨다니 저도 기쁘네요! ^^ 뛰어난 선수 뒤에는 훌륭한 지도가자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심재성 코치님의 followship과 leadership, 외국어의 중요성은 스포츠뿐만 아니라 생활 속에서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 김솔별 2013.03.15 14:34 신고

    코치님의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와 닿네요. 우리나라 스포츠 외교 인력이 부족한 이유에 매우 공감합니다. 우리나라는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으로 딱 나눠져있는 것 같아요.(대학교에 진학에서 조차도..) 또한 우리나라도 유럽과 같이 스포츠클럽이 활성화되어서 펜싱등의 종목을 취미생활로도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

 

 

 

글 / 이기원 (스포츠둥지 기자)

 

 

         스포츠에서 꽃은 선수지만 그 꽃을 피워내기 위해 조련사 역할을 하며 기름진 토양을 일궈내는 것이 지도자이다. 음지에서 양지를 추구 하는 게 지도자이지만 때로는 선수 못지않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경우가 있다. 국가대표 펜싱코치 심재성(46). 그는 런던 올림픽 신아람(27, 계룡시청) 선수의 ‘1초 오심’에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며 훌륭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줬다. 국내 최초 프랑스 국립펜싱지도자 자격의 유학파 심재성. 그가 걸어온 스포츠 지도자의 길과 스포츠 외교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 어떻게 펜싱을 시작하게 됐나요? 
  그렇게 특별하진 않아요. 체육시간에 운동을 하는데 선생님이 “펜싱을 해보지 않겠느냐” 고 물으셨어요. 그때 우리학교에 펜싱부가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죠. 그렇게 펜싱을 시작했습니다.

 

▶ 펜싱 지도자가 되고자 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선수시절 올림픽에 나갈 정도로 잘 하지 못했어요. 유망주 소리는 들었지만 그게 성공은 아니었죠. 상무를 제대하고 프랑스 펜싱 국립지도자과정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때 ‘이왕 지도자 공부를 하는 거면 프랑스에서 한번 배워보자‘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개인사정이 있어 과정을 마치고 다시 한국에 돌아오긴 했지만 사실 그때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각오로 갔었죠.

 

▶ 외국어(프랑스, 영어) 공부는 어떻게 시작했어요?
   가장 먼저 프랑스어를 접하게 된 것은 레슬링 때문이에요. 당시 레슬링 해설을 하시는 ‘빠떼루 아저씨’가 있었죠.  ‘빠떼루 빠떼루’ 하는데, 무슨 뜻일까 하고 궁금해 했었죠. 프랑스어의 한국식 발음이었던 거예요. ‘바흐데흐’ 인데 발음하기가 어려우니까 우리식으로 그렇게 말했던 거죠. 비슷하게, 선수시절 펜싱을 하다 시작이라는 뜻인 ‘알레’ 가 궁금했었는데 역시 프랑스어였죠. 그러면서 점점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흥미를 가지게 됐어요. 영어도 자연스레 접하게 됐고요.

 

▶ 신아람 선수의 경기 중 심판에게 영어로 항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국제 대회에서 프랑스와 몇몇 국가를 제외하면 유렵국가, 아시아 국가는 의사소통언어로 영어를 사용합니다.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팀의 지도자라면 외국어 능력은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선수시절 꾸준히 불어와 영어를 공부했어요. 덕분에 국제 대회에서도 다른 국가선수와 지도자들과의 의사소통에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영어와 불어를 배우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 했던 거 같아요. 학원도 다녔고 외국어 방송 프로그램도 꼭 챙겨봤었죠. 선수촌에선 혼자 방을 쓰는데 프랑스 라디오를 계속 들었어요. 지금도 공부를 하고 있지만 ‘젊은 시절에 더 열심히 할 껄’ 하고 후회합니다.

 

▶ 런던올림픽 메달(28개) 중 펜싱에서 획득한 것이 6개(금 2, 은 1, 동 3)로 전체 메달의 21%를 차지하는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어떤 노력과 비결이 있었는지?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펜싱 종목이 획득한 메달은 남현희 선수의 은메달 1개뿐)

성공의 비결은 훈련양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상상하지 못 할 정도로 늘렸습니다. 베이징 올림픽 전에는 그렇게 많진 않았거든요. 지도자들은 경기를 할 때 생각을 하면서 뛰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 생각이 다릅니다. 생각은 이미 경기 전에 다 해놔야 하는 거죠. 경기장에서는 생각할 시간이 없어요. 온갖 스트레스가 있거든요. 자동적으로 몸을 움직이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A라는 공격이 오면 B처럼 움직여야 한다.’ 는 것이죠. 그렇게 되려면 완전히 동작이 자동화되어 있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수없이 반복해야 합니다. 

   개그 프로그램은 참 재미가 있어요. 즉흥적으로 재밌게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짜여진  각본을 반복해서 얻은 결과물이라고 생각해요. 오랜 연습을 통해 다양한 상황이 머릿속에 있기 때문에 예측하지 못한 순간이 와도 태연하게 ‘애드리브’로 또 다른 웃음을 줄 수 있죠. 선수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훈련이 되어있지 않으면 경기 중에 ‘애드리브’로 상대를 제압하기 어렵죠. 때문에 힘들고  고되지만 반복 훈련이 필요합니다. 선수들이 반복훈련을 성실히 잘 소화해줬어요. 그래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대한펜싱협회의 국제업무와 해외전지훈련 담당, 국제회의에 참석은 물론 국제대회에서도 심판으로 활약했습니다. 우리나라 스포츠 외교의 발전을 위해 보완해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국내펜싱연맹에서 불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했었어요. 당시 저는 선수생활을 마치고 프랑스에서 공부를 하고 왔었기 때문에 해외업무를 자연스럽게 담당하게 됐었죠. 각 종목에서 선수출신이 대외적인 업무를 하면 그 나름의 장점이 있어요. 국제총회에 가면 다른 국가 담당자들도 대부분 선수생활을 했던 사람들이거든요. 자연스레 공통된 이슈가 생기죠. 그러다보면 안면이 생기고 국제 연맹에도 진출하게 될 수도 있는 거죠. 오랜 시간 꾸준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런 것들이 곧 스포츠 외교라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되는 것은 없어요.

   스포츠계는 생각보다 보수적인 측면이 많은 것 같습니다. 현재 국제펜싱연맹이 사용하는 언어는 영어와 프랑스어입니다. 과거에는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였는데, 프랑스어 대신 영어를 하면 대부분 듣질 않아요. 그냥 무관심이죠. 일부러 듣지 않고 딴청을 부리는 펜싱원로들이 있어요. 결국 보수적이라는 건데, 이런 환경에 적응하고 세계적인 흐름에 맞춰 가려면  달갑지 않은 부분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해요. 그 사람들과 오랜 시간 지내면서 함께하는 것이 벽을 허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쉽게 보이지만 생각처럼 단기간에 만들어지지 않아요. 아무리 외국어를 잘 해도 분위기를 모르면 어려운 부분이 많이 있어요. 

 

▶ 영어를 잘하는 사람과 선수출신 중 누가 국제 스포츠업무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나요?
   저는 두 부분이 같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선수출신들이 잘 할 수 있는 역할은 안면이 넓다는 부분과 관련종목의 경험이죠. 거기에 외국어능력과 기본지식이 바탕이 된다면 더 말 할 것도 없죠. 학생선수시절에 그런 부분을 꾸준히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전공자 중에 외국어 실력이 뛰어나고 스포츠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을 스포츠 외교 인력으로 양성하는 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국제 스포츠 단체에는 메니지먼트, 이벤트, 법규 등 다양한 분야 있거든요. 이런 것들이 곧 파워가 될 수 있어요.

  공부하는 사람은 공부만, 운동하는 사람은 운동밖에 못하는 것이 아쉬워요. 스포츠 외교 인력이 부족한 원인 중 하나는 관련 인재의 스포츠 경력과 지식수준의 불균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학교생활에서 스포츠를 등한시 하는 분위기도 문제죠. 학생선수들 뿐만 아니라 다양한 꿈을 가진 많은 공부하는 학생들이 스포츠와 학업에 대한 흥미를 동시에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학생시절 스포츠를 즐기게 되면 선수가 세계수준의 경기력에 도달하기가 얼마나 힘든가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고, 스포츠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서는 지식수준도 높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되는 거죠. 학문과 스포츠 두 분야에서 인재를  고루 양성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포츠 지도자. 심재성의 생각 <2>편에서 계속됩니다.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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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초오심때 같이 울면서 경기 봤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 스포츠 외교의 중요성이 반짝 화두가 되었지만 또 올림픽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가면서 잠시나마 잊었었는데 다시금 일깨워주시는군요.! 좀 더 국제적인 업무를, 그리고 돌발 상황을 잘 대처할 수 있는 멋진 지도진분들과 선수분들이 많이 양성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 이햄뉘님~반갑습니다.^^ 저도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었는데요, 심재성 코치님과 인터뷰하면서 스포츠외교와 지도자육성에 대한 중요성이 더 크게 와닿았습니다. 우리 체육인재육성재단이 스포츠외교인재와 선수, 지도자 육성을 하는데 조금이나마 힘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 이아영 2012.10.18 12:18 신고

    이 글 너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하나가 다 좋은 말씀이시네요... 스포츠외교와 스포츠 지도자 분야에 있어서 선두주자로 잘 걸어나가시는 모습이 존경스럽습니다. 2편 얼른 보고 싶어요.

 

 

 

글 / 황혜진 (스포츠둥지 기자) 

 

       2012 런던올림픽에서 유도 금메달리스트 송대남과 ‘맞절 세리모니’로 유명해진 정훈 유도 국가대표팀 감독을 만난다는 것은 아주 즐거운 일이었다. 금메달리스트들 못지않은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정훈 감독을 직접 인터뷰를 통해 만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정훈 감독은 런던올림픽에서 선수들과 동고동락하며 기쁨과 슬픔을 같이 나눠 ‘형님 리더십’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유도 조준호가 납득할 수 없는 판정번복을 당했을 때는 눈물을 쏟았으며, 송대남의 결승전에서는 판정어필로 퇴장까지 당했다. 온 몸으로 저항하며 호소하는 그의 모습에 국민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훈련 중인 선수들의 모습 ⓒ황혜진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용인대에 도착을 하여 무도대학 건물에 위치한 유도 연습장에 들어서니 선수들이 한창 훈련에 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선수들의 지도에 열중하는 정훈 감독이 있었다.

 

 

정훈 감독 ⓒ 황혜진

 

 

선수, 그리고 지도자가 된 과정은?
 초등학생 때, 체육관에서 유도를 시작하게 되었고 중학교 2학년 때 스카웃이 되었다. 그 후에 광주체고로 진학하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욕심을 가지게 되었다. 우연찮게 고등학교 2학년 때에 전국 체전에 나가게 되었는데, 무차별전에서 금메달을 따게 됐다. 한번 일등을 한 뒤 고 3때까지 전승을 했다. 고3때에 국가대표선발전에서 뽑혀 태릉에 들어갔다. 10년간 태릉에서 생활하면서 대략 70~80번의 우승을 했다. 그런데 선수촌에 오랜 시간 있다 보니, 몸도 힘들고 정신적으로 힘든 부분이 많았다. 그때 당시 새벽 알람이 코리아나의 ‘손에 손 잡고’였는데 지금도 그 노래를 들으면 정신이 번쩍 든다(웃음). 사실 선수 생활을 4년은 더 할 수 있는 나이였음에도 쉬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그래서 28살에 선수생활을 그만 두게 되었다. 선수 생활을 그만두게 된 계기 중에는 27살에 교수를 하게 된 것도 있다. 당시에 경쟁자도 굉장히 많았는데 운이 좋게 이른 나이에 교수 발령이 되었다. 이후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됐다.

 

‘유도 국가대표 감독’ 정훈
 선수 생활 때의 노하우, 경험 등을 바탕으로 선수들을 지도했다. 예를 들면 쉴 땐 과감히 쉬고, 약속 시간도 확실히 지켰다. 이렇게 서로간의 신뢰를 쌓았다. 그러다 보니 성적도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되었다. 또, 지도자로서 선수들에게 입는 것, 먹는 것은 무엇이든 최고로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주말에는 전국으로 몸에 좋다는 것들을 구하러 다녔다. 자라도 잡으러 다녔고, 산삼도 캐러 다녔다. 닭발이 콜라겐이 많아서 무릎에 좋다는 말을 듣고는 닭발을, 상어 연골이 인대에 좋다는 말을 듣고는 상어 연골을 구하러 다녔다. 그래서 운동이 끝나면 직접 자르고, 다려서 선수들에게 주었다. 물론 운동은 강도 높게 이루어졌다. 모든 유도 선수들이 아침에는 육상선수, 오전에는 역도선수, 오후에는 유도선수처럼 운동했다. 이렇게 훈련한 결과 국제대회 80%에서 우승을 하게 되었다. 나와 선수들의 커뮤니케이션이 잘 이루어진 결과라고 생각한다.

 

현재 유도선수가 되는 시스템에 대해
 아무래도 체육관에서 뽑혀서 선수가 되는 경우가 많다. 또, 본인이 좋아서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유도는 타 종목 전향도 많은 편이다. 용인대 김미정 교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까지 육상을 하다가 유도로 전향했다. 선수들 중에는 투포환, 레슬링을 하다가 유도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은퇴 후에는 다양한 분야에 진출한다. 유도는 유독 석박사와 같은 고학력자들이 많다. 그래서 교직에 재직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유도와 전혀 관계없는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 선배 중에서는 ‘보험왕’인 사람도 있다. 운동을 통해 얻은 끈기나 대인관계를 원활히 하는 법을 통해 그쪽 분야에서도 끝까지 살아남는 것이다. 북극에 가서 에어컨을 팔 수 있고, 사막에 가서 온풍기를 팔 수 있는 사람들이 유도 출신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웃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그동안 용인대 유도 팀을 4년간 총감독으로 재임 했었고, 시드니 올림픽 때에는 코치 생활도 해보았다. 그리고 런던 때에는 감독까지 맡았다. 내가 지도자로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고 생각한다. 항상 박수칠 때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또, 우수한 후배들도 많고 신세대 기법으로 선수들을 끌고 갈 사람도 많다. 현재 학과장도 임명받은 상태이기 때문에, 후배들을 지도하면서 지낼 생각이다.

 

앞으로 한국 유도 전망은?
 이번에 송대남, 최민호 선수와 같은 훌륭한 선수들이 코치로 태릉에 들어가게 되었다. 워낙 뛰어난 선수들이기에 좋은 성적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재 올림픽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선수들도 많이 해이해져 있을 것이고, 은퇴 선수도 많아서 세대교체가 걱정이다. 하지만 선수들과 코치들이 하나가 돼서 열심히 훈련에 임한다면 분명히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정훈 감독 ⓒ 황혜진

 

나에게 유도란 인생이다.
유도 안에서 희노애락을 다 겪었기 때문이다. 유도 안에서 성장했고, 세계대회에서 메달을 따서 희열도 느껴보았으며, 지도자로서도 보람도 느껴 보았기 때문이다. 유도는 나에게 인생 그 자체이다.

 

 

 정훈 감독을 직접 만나 인터뷰를 진행해 보니, 감독의 ‘형님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조금은 낮은 위치에서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며, 때로는 형처럼 때로는 아빠처럼 선수들을 다독이고 격려하는 것.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 감독이 선수들과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모습에 온 국민들이 감동을 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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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되시길 바래요~

    • 어듀이트님~반갑습니다 ^_^ 이번에 체육의 날을 맞아서 정훈감독님이 지도자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훌륭한 선수와 지도자가 많이 육성되었으면 합니다. 어듀이트님도 스포츠와 함께 행복한 날들 보내세요~^_^

  

 

글/김학수(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 연구소장)

 

 

      런던 올림픽은 최고의 올림픽이었다. 인간의 능력은 무한하며 인간의 정신은 숭고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주었다. 일부 오심과 행정적 미숙에도 불구하고 런던 올림픽은 경이적인 광경과 영감을 안겨주었다. 2주간 기록적인 폭염 속에서 올림픽을 보며 행복감과 즐거움을 만끽했다. 거침없는 도전을 한 선수들에게는 화려한 성적이 영예로 돌아갔으며 뜻을 이루지 못한 많은 선수들은 미래의 영광을 기대하며 아쉬워했다.

 

런던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은 많은 이야기와 화제를 낳았다. 미국의 마이클 펠프스는 수영에서 3개 올림픽 연속 금메달을 따는 첫 선수에 등극하며 역대 개인 최다 메달인 22개의 메달(금 18, 은 2, 동 2개)을 기록하는 위대한 업적을 세웠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인 자메이카의 우샤인 볼트는 1, 2백m와 4백m 릴레이에서 3개의 금메달을 획득해 자신의 진가를 발휘했다. 볼트는 지난해 대구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충격적인 실격을 당한 바 있었는데, 런던 올림픽 3관왕으로 치욕의 멍에를 떨칠 수 있었다. 중국의 16세 소녀 예 시웬은 개인혼영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 2개를 획득, 세계를 놀라게 했다. 남자 선수에 육박하는 호기록을 세우고 우승한 예에 대해 한때 약물복용의 의구심을 떨구지 못했던 미국 등 각국의 수영관계자는 끝내 ‘무혐의’로 결론이 나자 멋쩍어 하기도 했다.

 

ⓒ대한체육회

 

 

한국 선수들도 원정 올림픽 역대 최고 성적으로 뜨거운 찬사와 격려를 받았다. 체조의 양학선은 자신만의 1,080도 회전하는 독자적인 ‘양 1’기술로 한국 체조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양궁과 사격에서 기보배와 진종오가 각각 2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는 등 각각 금메달 3개씩을 획득해 최고 효자종목으로 자리 잡았다. 펜싱과 유도에서 각각 금메달 2개를 추가했고, 태권도서 황경선이 금메달 1개를 획득했다.

 

금메달이 됐든, 은, 동메달이 됐든 메달은 고귀하고 값진 것이다. 각고의 노력과 힘을 쏟아 얻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계 각국에서 올림픽 메달 집계 방식이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나뉘어져 있어 세계화 시대에 적지 않은 혼선을 야기 시키고 있다. 세계는 하나인데 메달을 바라보는 눈은 둘인 셈이다. 메달 집계방식은 미국, 일본 언론이 발표하는 총 메달수 집계와 한국, 중국, 유럽 각국 언론이 채택하는 금메달 집계방식 등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미국과 일본 등은 총 메달수를 합해 각국의 메달 성적을 집계하는데 반해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금메달 수에 의해 국가 순위를 평가한다.

 

이러한 방식의 차이는 매 올림픽 때마다 상위권 국가의 순위가 제각각 다르게 나타나는 결과를 만들었다. 이번 런던 올림픽서도 또 다시 나타났다. 런던 올림픽서 미국의 최종 메달성적은 금 46, 은 29, 동 29개로 총 메달수 104개를 기록, 종합 1위를 차지했다. 중국은 금 38, 은 27, 동 22개로 총 메달수 87개를 획득, 미국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여기까진  금메달수와 총메달 수에서 국가별 순위에 변동이 없었다. 그러나 그 다음 순위에서 메달 집계 방식의 차이로 위, 아래 순위가 뒤죽박죽 엇갈렸다.

 

뉴욕 타임스, NBC 방송 등 대부분의 미국 언론들은 종전처럼 총 메달수로 순위를 매겼는데,  영국, 러시아, 한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헝가리, 호주, 일본 등은 집계방식의 차이에 따라 순위가 금메달 수를 우선하는 다른 나라 방식 등과는 뒤바뀌었다. 금메달 29개로 역사상 최다 금메달을 획득한 개최국 영국(금 29, 은 17, 동 19개, 총 메달수 65개)은 러시아(금 24, 은 25, 동 33개, 총 메달수 82개) 보다 뒤져 4위로 밀려났고, 한국(금 13, 은 8, 동 7개, 총 메달수 28개)은 일본(금 7, 은 14, 동 17개, 총메달수 38개) 보다 뒤져 이탈리아(금 8, 은 9, 동 11개)와 함께 공동 9위로 처졌다. 한국 등과 유럽 각국의 집계 방식대로라면 영국 3위, 러시아 4위, 한국 5위, 독일 6위, 프랑스 7위, 이탈리아 8위, 헝가리 9위, 호주 10위 등이며 일본은 11위로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미국의 모든 언론이 총 메달수 방식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CNN은 금메달수에 의한 집계방식을 채택, 미국의 다른 언론들과는 색다른 특색을 보였다. 미국언론도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이전에는 금메달수에 의한 집계 방식을 채택하다가 중국 등의 신흥강국이 ‘세계 넘버 1’ 자리를 위협했고, 실제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선 총 금메달 수에서 미국을 앞지르자 자국에 유리한 총 메달수 집계방식으로 바꾸었다. 어찌보면 미국의 ‘꼼수’가 이러한 메달 집계방식 뒤에는 숨어있는 것이다.

 

미국언론은 총메달수 집계방식이 공평하고 정정당당한 승부를 추구하는 올림픽의 이상에 부합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최고의 경쟁이 펼쳐지는 현재의 올림픽 무대에선 아무래도 금메달 수에 의한 메달 집계방식이 더 타당하다는게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 국가 언론들의 입장이다.

 

국제올림픽 위원회(IOC)는 공식적으로 메달 집계를 발표하지는 않지만 자체 홈페이지 등에선 금메달수에 의한 국가별 메달 순위를 집계하고 있다. ‘더 빠르게’, ‘더 높게’, ‘더 멀리’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올림픽이 메달집계 방식의 ‘불편한 차이’를 고수하는 각국 언론들의 시각을 하나로 통일시키기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지나친 상업주의와 자국 우월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한 힘들 것이다.

 

 

 

<한국, 중국, 유럽 언론 메달 최종 집계>

 국가

 금

은 

동 

총 메달수 

 1.미국

46

29 

29 

104 

 2.중국

38 

27 

22 

 87 

 3.영국

29

17 

22

 65

 4.러시아

24

25

33

 82

 5.한국

13

8

7

 28

 6.독일

11

19

14

 44

 7.프랑스

11

11

12

 34

 8.이탈리아

8

9

11

 28

 9.헝가리

8

4

 5 

 17

 10.호주

7

 16

12

 35

 11.일본

 7 

  14 

 17 

 38

 

 

<미국, 일본 언론 메달 최종 집계>

 국가

 금

은 

동 

총 메달수 

 1.미국

46

29 

29 

104 

 2.중국

38 

27 

22 

 87 

 3.러시아

24

25

33

 82

 4.영국

29

17

22

65

 5.독일

11

19

14

 44

 6.일본

14

17

 38

 7.호주

7

16

12

 35

 8.프랑스

11

11

12

34

 9.한국

13

8

 28

10.이탈리아

8

 9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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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박현애(이화여자대학교 및 동대학원 강사)

 

 

         뜨거운 태양이 수그러드는 저녁이 되면, 런던올림픽에 대한 국민의 열정이 한낮의 열기를 대신했다. 모든 국민들이 더위와 피로를 잊고 텔레비전 앞으로 몰려 앉아 선수들의 도전과 노력의 소산들에 박수를 보냈다. 지구촌 문화축제로서 각국에서 출전한 세계 정상급 선수들의 도전과 노력, 경이에 가까운 탁월한 플레이를 보며 올림픽을 만끽했다. 그러나 의혹을 만들어내는 심판의 판정(실수 혹은 편파판정), 경기 운영의 미숙함, 올림픽과 무관한 논란을 일으키거나 올림픽 본질을 흐리는 보도행태 등 런던올림픽은 관심만큼이나 하루가 다르게 떠들썩했다.

 

수많은 이슈들 틈에서도 올림픽을 가능하게 하고 이야기를 만들어 내며 스포츠를 보다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각 국에서 출전한 선수들이다. 흔히 올림픽의 꽃을 마라톤이라거나 육상이라며 특정 종목들을 언급하지만, 진정한 올림픽의 꽃은 올림픽에 출전한 세계 정상급의 모든 선수들일 것이다. 국가대표로서 긍지와 사명감을 가지고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은 개인의 영광에 그치지 않고 국민의 뜨거운 열정에 화답하기 위해서 더욱 열심히 경기에 임한다.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들 가운데 몇몇은 메달권에 진입하여 영예를 얻고, 또 몇몇의 선수는 아쉬운 패배를 경험하기도 한다. 또 다른 선수들은 의미 있는 참가에 의의를 두며 경주한다. 올림픽에 출전한 모든 선수들이 승리를 갈망하지만, 현실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때 승리는 소수에게만 허락되어있다. 노력의 양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도구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노력한 만큼의 적절한 대가가 주어지면 좋겠으나 인간사가 그렇듯이 성실과 노력은 기본이고 결과는 하늘에 달려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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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한 자에게만 찾아온다는 승리의 여신을 생각하며 선수들은 피와 땀으로 올림픽을 준비한다. 그러나 변덕에 가까운 승리의 여신 니케의 잔인한 장난에 허무함을 경험하기도 하고, 신도 어쩔 수 없는 판정의 시비에서 절망하고 주저앉기도 한다. 스포츠정신, 옳음에 대한 가치를 배우는 대신 세계연맹과 협회 등의 거대한 조직의 힘 앞에서 다중의 상처를 받기도 하고, 일방적인 매체의 조명에 마음을 다치기도 한다. 참가 자체로 자신의 한계,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지만 승리와 무관하면 자신 아닌 타인은 의미도 관심도 두지 않는다. 체력이 고갈되어 쥐어짤 듯 경기에 임해도 ‘헝그리 정신의 부재’, ‘배가 불렀다’는 비난이 정신마저 고갈 시킨다. 몇몇의 메달을 획득하지 못한 선수들이 SNS와 인터넷 댓글을 통해서 욕설의 대상이 되고 급기야 경기에서 졌다는 이유로 죄인이 된 것 같다(스포츠 동아, 2012년 8월 9일)고 하니 그들에게 올림픽에서의 패배는 쓰디쓴 아픔만 될 것 같아 우려된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나, 스포츠에서는 운이 작용한다는 알레아(aléa)라는 특징은 차치하더라도 스포츠에서는 경기에 승리한 선수가 있으면 당연히 패한 선수도 존재한다. 전 세계 상위 3위까지의 선수를 선발하는 과정에서 메달권을 제외한 다른 선수들은 패배자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승리한 선수가 받아야 할 영예와 관심은 당연하다. 그러나 경기에서 진 선수들에 대해서 관중과 매체가 자신의 시점에서 중심적인 판단을 하거나 폄훼하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당연할 수 없다.

 

선수들에게 있어 가치가 덜한 노력이 있을까, 그러니 메달이나 메달의 색깔로 그들의 노력 정도를 가늠할 수도 없을 것이다. 나아가 승리한 사람의 정신력이 패한 선수보다 항상 강한 것도 아닐 것이다. 인간에 의해 인간이 행하는 스포츠가 금, 은, 동메달의 물질을 획득했는가로 인간의 숭고함을 대신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올림픽을 지켜보는 우리들이 올림픽 기간 동안 기쁨과 환호를 주었던 선수들로 행복했다면, 메달을 획득하지 못한 선수들에게는 그래도 잘했다고, 당신은 이미 훌륭하다고 대가없이 받은 행복을 돌려줄 수 있어야 하겠다.

 

 

런던올림픽의 개막식 선수입장의 장면을 기억한다. 승리를 다짐하며 기대와 설렘, 기쁨에 웃음 가득한 얼굴들이 가슴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선수들이 경기를 마치고 돌아올 때에는 결과를 떠나서 의미 있는 경험이었고, 하나의 즐겁고 소중한 훈련이었다고 생각하며 돌아오길 바란다. 개막식에서의 기대와 설렘 대신 올림픽이 아니면 얻을 수 없었던 충만한 경험을 기쁨으로 새기고 돌아와 이후 스포츠 인생의 또 다른 개막을 시작하길 바란다. 그래서 올림픽 개막식 때와 같이 웃는 얼굴로 환향하기를 바란다. 이러한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올림픽에 대한 유종의 미로서 우리가 마지막으로 가져야할 열정일 것이다. 우리가 주목했던 올림픽, 스포츠, 선수들에 대한 관심과 시선을 건강하게 만드는 시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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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종세(스포츠동아 이사)

 

 

 

 

 

돌아온 런던의 영웅들…“이제 리우올림픽이다”
세계 인구 0.7%인 한국이 금메달 13개로 종합 5위

 

 

 

2012 런던올림픽 결산과 2016 리우올림픽 과제
 이제 리우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하계올림픽. 8월14일 런던의 영웅들이 돌아왔다. 태극전사들의 금의환향이었다. 금메달 13개, 은메달 8개, 동메달 7개로 금메달 순위 세계 5위. 4년 전 베이징올림픽에서 ‘톱 7’이었던 한국스포츠가 2012 런던올림픽에서 ‘톱 5’까지 치고 올라갔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세계4강에 들긴 했지만 원정 하계올림픽에서 ‘톱 5’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도 ‘톱 5’에 올랐던 한국스포츠는 이번의 쾌거로 명실상부한 ‘세계 스포츠 5강‘으로 떠올랐다. 세계인구의 0.7%에 불과한 나라치고는 경이로운 성과다. 그러나 정상의 반열은 오르기보다 지키기가 더 힘든 법. 2016년 리우올림픽을 위해 지금부터 준비해야한다. 총(사격), 활(양궁), 칼(펜싱)의 ‘최종병기’는 더욱 다듬고 부진했던 태권도와 역도, 수영, 배드민턴 등은 새로운 각오가 절실하다.

 

 

당초 목표 ‘10 -10’ 초과 달성…사격 양궁 펜싱 유도 효자종목
 대한체육회의 당초 목표는 ‘10-10(금메달 10개 이상, 종합10위 이내)’. 그러나 대회 전 해외 유력 외신들은 한국의 금메달을 7~9개로 예상하는 등 처음부터 과소평가했다. 8시간의 시차가 있지만 현지적응만 잘하면 금메달 15개에 종합5위도 가능할 것이라는 국내 전문가들의 전망과는 크게 엇갈렸다. 사실 한국은 대회 초반 수영 박태환과 양궁 남자단체, 유도 왕기춘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불안한 스타트였다.


 그러나 8월1일 유도 김재범이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선수단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다음날은 유도 송대남, 사격 김장미, 펜싱 김지연이 3개의 금메달을 쓸어 담았다. ‘골든 데이’. 한국이 중국, 미국에 이어 금메달 6개로 종합 3위까지 뛰어 오른 것이다. 세계가 깜짝 놀랐다. 이후 한국은 양궁 남녀 개인의 오진혁과 기보배, 펜싱 남자단체 사브르, 사격의 진종오가 금메달을 추가, 8월5일 10개의 금메달 목표를 일찌감치 달성했다.


 또 8월7일에는 한국 체조사상 처음으로 양학선이 뜀틀에서 감동의 금메달을 땄고 다음날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김현우가 8년 만에 한국의 올림픽 금맥을 되살렸다. 폐막 하루 전인 8월11일에는 황경선이 여자 태권도 올림픽 2연패의 위업을 이룩했다. 특히 이날은 한국축구가 올림픽 참가 64년 만에 처음으로 금메달 같은 동메달을 따 온 국민을 열광시켰다. 상대는 숙적 일본으로 2대0의 승리.


 이 같은 ‘대박’은 무엇보다 사격과 펜싱이 의외의 성적을 거두었고 세계 최강 양궁이 제 페이스를 유지해준데다 유도와 체조, 레슬링이 선전해 주었기에 가능했다. 이를 위해 현대차, KT, SK, 포스코 등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이들 경기단체를 지원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대목. 아울러 대한체육회가 선수들의 시차와 음식 적응을 위해 대회 한 달 전부터 런던의 브루넬 대학을 통째로 빌려 ‘런던의 태릉선수촌’을 운영했던 것도 크게 주효했다고 할 수 있다. 선수들이 런던까지 동반한 훈련파트너와 함께 먹고 자고 연습하다 대회 2, 3일 전 선수촌에 입촌, 경기에 임했던 것.

 

 

베이징 올림픽 ‘황금종목’ 태권도 역도 수영 등은 안타까운 부진
 그러나 아쉽고 안타까운 상황도 없지 않았다. 4년 전 베이징 올림픽에서 4개의 금메달을 독식했던 태권도가 금 1, 은 1에 그쳤고 두 체급은 아예 ‘노메달’ 이었다. 태권도가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처음 채택된 이래 동메달도 따지 못한 체급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자호구 채점 등 새로운 룰에 대한 적응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 태권도 종주국의 체면에 큰 손상을 입었다는 지적이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2개의 금메달을 땄던 역도 또한 적잖은 문제점을 노출한 채 ‘노메달’에 그쳤다. 오랜 기간 부상에 시달렸던 장미란과 사재혁의 대회 2연패 도전은 처음부터 무리였다는 것이 냉정한 평가다. 국내 언론이 장미란은 ‘아름다운 은퇴’로, 사재혁은 ‘불꽃 투혼’으로 미화했지만 부상선수를 아무 대책 없이 대표선수로 선발한 대한역도연맹의 책임 또한 크지 않을 수 없다. 차라리 장미란, 사재혁 대신 4년 뒤 리우올림픽을 겨냥, 2진급 선수를 파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수영의 박태환 역시 오심 파동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2개의 은메달을 따낸 것은 높은 평가를 받을만하다. 그러나 2년 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중국의 쑨양을 꺾었던 박태환이 이번 대회에서 밀린 것은 지난 2년간의 준비과정에 문제가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간발의 차로 남자복식 결승진출에 실패한 배드민턴은 이용대 정재성조가 동메달에 그쳤으나 이 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여자 복식조 2개 팀이 ‘져주기 파동‘으로 국제적 망신을 산 것이다. 이 때문에 코칭스태프와 해당선수는 자격정지 등 중징계를 받았다. 물론 국제배드민턴연맹의 대진 방식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승부의 세계에서 상식 밖의 행태를 보인 것은 매우 아쉬운 대목이다. 

 

 

리우 올림픽 대비…양학선 김장미 손연재 등 유망주 키워야
 그렇다면 4년 뒤 리우올림픽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하는가. 우선 런던올림픽에서 강세를 보였던 종목이라 하더라도 선수는 물론 코칭스태프까지 과감한 세대교체를 통해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야한다. 양궁 펜싱 유도 태권도 레슬링 복싱 탁구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다행히 우리에게는 2016년에도 가능성이 있는 체조 양학선(20) 사격 김장미(20) 남자양궁 김법민(21) 리듬체조 손연재(18) 남자역도 원정식(22) 등 유망주가 있다. 

 

이들이 제대로 뻗어 나갈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여기에 새로운 종목으로 추가되는 남녀 골프의 집중적인 육성과 함께 이번 대회에서 동메달을 따낸 남자축구가 더욱 분발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한다. 하지만 남자축구의 앞날은 만만치 않다. 1968년 멕시코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땄던 일본이 런던올림픽에서 44년 만에 동메달을 노렸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이 좋은 사례다. 또 이번 대회에서 아쉽게 4위에 그친 여자배구, 여자핸드볼도 전열을 재정비한다면 메달권 진입을 바라볼 수 있다. 특히 런던올림픽에서 ‘노골드’의 수모를 당했던 역도 수영 배드민턴의 금메달 프로젝트는 반드시 마련돼야한다. 종주국의 체면에 흠집을 낸 태권도의 명예회복도 이루어져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2013년 1, 2월에 이루어질 4년 임기의 대한체육회 및 가맹 경기단체 회장의 선거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루어져야한다. 정부의 입김이나 관권이 작용하는 선거가 돼서는 곤란하다는 이야기다. 체육계가 똘똘 뭉쳐 4년 뒤 리우올림픽에서 ‘톱 5’의 신화를 재창조해야 하기 때문이다.

 

 

 

런던올림픽 한국 메달획득 현황

 

금 메 달

은 메 달

동 메 달

사 격

(32)

진종오 남자10m공기권총

김장미 여자25m 권총

진종오 남자50m 권총

최영래 남자50m 권총

김종현 남자50m

소총 3자세

 

양 궁

(31)

여자 단체

(기보배 이성진 최현주)

기보배 여자 개인

오진혁 남자 개인

 

남자 단체

(오진혁 임동현 김법민)

펜 싱

(213)

김지연 여자 개인 사브르

남자 단체 사브르(김정환 원우영 구본길 오은석)

여자단체 에페(신아람 정효정 최인정 최은숙)

최병철 남자개인 플뢰레

정진선 남자 개인 에페

여자단체 플뢰레(남현희 정길옥 전희숙 오하나)

유 도

(21)

김재범 남자 81kg

송대남 남자 90kg

 

조준호 남자 66kg

태권도

(11)

황경선 여자 67kg

이대훈 남자 58kg

 

체 조

(1)

양학선 남자기계체조뜀틀

 

 

레슬링

(1)

김현우 그레코 66kg

 

 

수 영

(2)

 

박태환 남 자유형4m

박태환 남 자유형2m

 

탁 구

(1)

 

남자 단체

(오상은 주세혁 유승민)

 

복 싱

(1)

 

한순철 남자 라이트급

 

축 구

(1)

 

 

남자3,4위전 일본2-0

배드민턴

(1)

 

 

남자복식(이용대,정재성)

13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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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하남길(경상대학교 교수)

 

 

 

        런던에 거주하는 한 교포는 런던 올림픽 배드민턴 입장권 구매에 성공했다며 올림픽 전부터 자랑을 늘어놨다. 그리고 7월 31일 오후 5시부터 카카오톡으로 문자와 사진을 전송해왔다. “배드민턴 응원가요.“ “관중석에 앉았어요. TV 봐요! 혹시 알아, 내가 카메라에 잡힐지ㅋㅋ” 등이었다. 다음 날 보니 다른 내용도 남아 있었다. “응원할 필요가 없네.” “헉! 실격이래.” 그때서야 그 교포가 응원간 날이 바로 여자 복식 “져주기 게임”이 열리던 날이었음을 간파할 수 있었다. 애국심 탓인지 법조계 직업 탓인지 뒷날 통화에서 그 교포는 선수들을 옹호하며, 오히려 국제배드민턴연맹의 사전 조치 미흡 상황을 비판했다. “국가나 자신을 위해 올림픽 메달에 청춘을 건 선수들이 누가 메달을 놓치고 싶었겠어요?”라는 말이 뇌리에 남았다. 수긍이 가는 점도 있었다. 하지만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영국은 스포츠의 나라이고, 런던은 스포츠의 요람이다. 축구, 럭비, 테니스, 배드민턴, 골프 등 수많은 스포츠가 영국에서 탄생했지만 거기에 공통점이 하나 있다. 모든 게임은 신사계급에 의해 조직화되었고, 그러한 스포츠에는 계급문화에 걸맞은 철학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페어플레이, 스포츠맨십 등과 같은 용어가 신사도(紳士道)를 상징하는 그들의 철학이었다. 귀족 전통이 배어 있는 테니스, 배드민턴과 같은 스포츠에서 매너와 정정당당하게 최선을 다하는 태도는 더욱 강조된다. 배드민턴(Badminton)의 혈통은 인도․영국 혼혈이지만 종목 명칭부터 귀족이었던 뷰포트 공작의 동네이름에서 따온 것이며, 0점을 제로(zero) 대신 러브(love)라는 애칭을 사용하는 것도 그런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 배드민턴에서 승부조작과 버금가는 “져주기 게임”이 나왔으니 영국적 정서로는 용납될 수 없었을 것이다. 매스컴에 알려진 대로 여자복식 조별 리그 최종전에서 대한민국 두 복식조는 “져주기 게임”에 관련되면서 국제배드민턴연맹으로부터 실격처리 됐고, 여자 배드민턴 4인방과 대표 팀 코치는 선수촌에서 퇴출되어 귀국조치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사태의 발단이 된 것은 조별 리그방식의 도입과 중국 선수단의 꼼수였다. 조별 상위 두 팀만 8강에 오르는 상황에서 묘하게도 A조의 한국(정경은-김하나)과 중국(왕샤올리-위양), C조의 한국(하정은-김민정)과 인도네시아(멜리아나 자우하리-그레이시아 폴리)가 모두 2연승,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만 남긴 상황이었다. 8강 진출이 확정된 마당이라면 당연히 토너먼트 대진표를 염두에 두지 않을 까닭이 없었다. 이론상 2위 실력자가 1위 실력자를 8강전에서 만나 패하면 노메달이고, 최후에 만나면 패해도 은메달이다. 세계 랭킹 1위(왕샤올리-위양), 2위(텐칭-자우윈레이)는 금, 은메달을 독식하고 싶었을 것이다. 랭킹 1위 중국은 2위인 자국 팀과의 대진을 피하기 위해 한국(정경은-김하나)에게 져주기 게임을 했고, 그러한 심리는 도미노 현상을 일으켰다. 랭킹 1위의 중국팀이 조 2위가 되자 꼼수 심리는 C조의 한국(하정은-김민정)과 인도네시아(멜리아나 자우하리-그레이시아 폴리) 전으로 전이(轉移)되었다. 굳이 1위가 되어 토너먼트 초반에 강자를 만날 이유가 없었기 지기위해 힘을 쓰는 게임을 한 셈이다. 이해는 가지만 그것은 선수만 아닌 선수단의 일탈행위였다.


스포츠 현장에는 수없는 일탈 행위가 존재한다. 축구에서 의도적 반칙으로 상대 공격을 잘 끊을 때 흥분한 해설자는 영리한 플레이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체급경기 선수들은 체중감량을 통해 낮은 체급으로 이동하여 메달을 노린다. 흔한 관례적 일탈은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심판 매수나 승부조작 등은 조직적 일탈에 속한다. 지도자도 몰랐을 리가 없다. 원인 제공을 누가 했건 겉으로 드러난 조직적 일탈은 올림픽 정신의 계승이라는 대의명분 앞에서 용서받기 어려운 행위가 되고 만다. 런던 배드민턴 경기였다면 더욱 용서받기 어려웠을 것이다.


배드민턴은 셔틀콕 게임이다. 셔틀콕은 선수의 손놀림에 따라 천변만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셔틀콕을 프리마돈나라 부르기도 한다. 우리 배드민턴은 바르셀로나 올림픽부터 금메달을 따내온 효녀종목이었으나 12년만의 노 골드는 물론 “져주기 게임” 사태로 나라 망신의 주범처럼 몰리고 있다. 그야말로 프리마돈나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지도자들은 평소 셔틀콕의 천변만화하는 비행모습을 보며 잠시 생각을 잘못하면 언제 어떤 모습으로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인생의 원리를 알고, 가르치기도 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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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학수(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 연구소장)

 

 

      세계적인 신문인 뉴욕타임스 스포츠 기사를 보면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 신문과 많은 차이를 보인다. 전형적인 차이는 대부분 철저히 스토리 중심으로 기사를 쓴다는 것이다. 경기와 인물 위주로 기사를 쓰는 국내 언론과는 많이 다르다.

 

 


필자가 이번 런던 올림픽을 다루는 뉴욕 타임스의 인터넷판 지면에서 요즘 빼지 않고 보는 것이 있다. ‘올 더 메달리스트(전체 메달리스트)’라는 제목으로 특정 종목 올림픽의 기록을 과거와 현재까지 세밀히 분석하는 기사이다. 근대올림픽이 시작된 1896년부터 2012년 런던올림픽까지 116년의 올림픽기록을 다양한 그래픽과 해설자의 심층해설, 설명 기사 등 입체적인 편집으로 엮었다. 대상은 기록종목인 육상, 수영이었다. 현재의 세기적인 기록과 아직 깨지지 않는 불멸의 기록들이 포함돼 있다.


6일 새벽 벌어진 남자육상 1백m 결승에서 자메이카의 우샤인 볼트가 9.63초라는 올림픽 신기록으로 우승하자 ‘One Race, Every Medalist Ever(한 번의 경기, 역대 모든 메달리스트)’ 라는 제목으로 심층 기획기사를 실었다. 뉴욕타임스는 ‘볼트가 역대 모든 올림픽 메달리스트보다 얼마나 빨리 달리는가’라는 질문을 제시하며 1896년 이후 역대 1백m 우승자 기록을 그래픽에다 커리커처를 삽입한 도표와 함께 주요 선수의 사진등으로 자세하게 비교했다. 도표는 역대 올림픽 1~3위들이 볼트와 얼마나 차이가 나는 지를 나타내보였다. 이에 따르면 볼트는 1896년 아테네 올림픽 우승자 토마스 버크보다 20m 정도 앞섰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육상 3관왕으로 아리안족의 우월성을 과시하려했던 나치 히틀러의 코를 납작하게 한 제시 오웬스보다 8m 정도 먼저 앞서서 나갔다. 또 인류 사상 최초로 9.95를 기록, ‘마의 10초벽’을 깨뜨린 1968년 멕시코 올림픽 우승자 짐 하인즈는 5m 안팎으로 거리를 벌렸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2위를 했으나 캐나다의 벤 존슨이 약물복용사실이 적발돼 금메달이 박탈돼 1위를 차지한 칼 루이스는 3m 안팎으로 차이를 냈다. 1백년 이상의 올림픽 남자 육상 1백m 기록의 역사를 볼트를 기준으로 한 눈에 쉽게 비교할 수 있게한 것이었다.


육상 멀리뛰기 기록편집도 재미있다. ‘Bob Beamon's Long Olympic Shadow(밥 비몬의 오래된 올림픽 환영)’이라는 제목을 걸고 1968년 멕시코 올림픽 우승자 미국의 밥 비몬이 런던 올림픽 우승자 영국의 그렉 러더포드를 2피트차로 누를 것이라고 평가했다. 입체 그래픽은 44년간 밥 비몬의 아직 깨지지 않은 멀리뛰기 기록을 기준으로 역대 우승자와 비교했다. NBA 모형 농구코트 그래픽에 밥 비몬을 가장 정점에 세워놓고 역대 우승자가 그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를 보여주었다. 이 부분 세계최고기록(8m89)을 갖고 있는 밥 비몬의 기록은 아직도 난공불락인데  러더포드의 기록(8m31)은 물론 1904년 세인트루이스, 1906년 아테네 올림픽 우승자인 미국의 마이어 프린스타인, 1960년 로마 올림픽 우승자 랄프 보스턴, 1984년 LA, 1988년 서울, 1992년 바르셀로나,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등 4회 연속 우승자 칼 루이스 등과도 비교했다.


또 수영에선 가장 빠른 물개들의 경쟁장인 남자 1백m 자유형 기록을 다루었다. 'Racing Against History(역사에 맞서는 레이싱)‘이라는 제목기사로 ’런던올림픽 우승자 미국의 네이슨 아드리안의 기록이 역대 모든 메달리스트와 비교하면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역대 올림픽 우승자들이 수영하는 그래픽을 입체적인 도표로 꾸몄다. 역대 올림픽 우승자가 모두 겨뤘을 때 2008년 베이징올림픽 우승자 프랑스의 알랜 베르나드가 가장 앞서고 런던 올림픽 우승자 네이슨 아드리안이 뒤를 이을 것이란 설명을 달았다. 아드리안은 런던올림픽에서 47초52를 기록, 베르나드의 세계최고기록(47초50)을  깨지지 못했다. 베르나드의 최고기록은 1992년 바르셀로나, 1996년 애틀랜타 이 종목 2연패를 차지한 러시아의 알렉산더 포포프보다 3~4m 정도 차이가 났으며, 1972년 뮌헨올림픽 7관왕의 위업을 달성한 마크 스피츠도 10m 정도 앞섰다. 영화 ‘타잔’의 주인공으로 유명했던 1924년 파리, 1928년 암스테르담서 올림픽 2연패를 차지했던 자니 와이즈뮬러를 20m나 벌렸다. 차가운 바닷물에서 벌어진 1896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이 종목 첫 금메달을 획득한 헝가리의 알프레드 하요스보다는 무려 40m나 앞섰다.


이 기사물들을 보면서 뉴욕타임스의 올림픽 기록 자료 관리에 새삼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물론 여러 데이터들의 도움과 협조가 있었겠지만 역대 올림픽 기록을 한 눈에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한 편집 기획 노력은 우리 언론이 본받을만하다고 생각된다.


근대 올림픽이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라는 슬로건 아래 육체적인 힘과 기술을 겨루는 경쟁에 중점을 두면서 기록은 아주 중요하게 처리되고 관리되어야 한다는 것을 뉴욕타임스의 올림픽 기록 기획기사는 교훈으로 던져주었다. 앞으로 국내 언론들은 인터넷 동영상, 오디오 시스템, 스마트폰으로까지 이어지는 뉴미디어 흐름에 맞춰 한국 선수들을 비롯한 각국 선수들의 다양한 올림픽 기록을 3D 방식 등 입체적인 편집으로 다루어 독자들에게 더욱 많은 흥미와 관심을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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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학수(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 연구소장)

 

 

      지난 수십 년 사이 세계 스포츠에서 나타난 가장 근본적인 변화는 여성들이 대거 스포츠에 참여하게 됐다는 점이다. 이달 말 개막될 런던 올림픽은 여성 스포츠가 마침내 남자 스포츠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첫 역사적인 올림픽으로 자리를 잡게 됐다. 여자 복싱이 새롭게 올림픽 종목으로 추가됨으로써 남자 종목이 있는 전 종목에서도 여자 종목이 열리게 된 것이다. 1896년 아테네 올림픽이후 근대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양성 평등이 완벽하게 구현된 셈이다.

런던 올림픽에 참가하는 1만 500여명의 선수중 약 40%에 해당하는 4천200여명 정도가 여성 선수들이며 200여 참가국 모두 여성 선수들을 출전시켰다. 미국 선수단의 경우 이번에 사상 처음으로 여자 선수들이 남자선수들보다 많다. 미국은 여자 269명, 남자 261명의 선수들을 각각 출전시켜 더 이상 여성이 올림픽에서 차별받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대한민국 선수단은 남자 134명, 여자 111명을 각각 출전시켜 아직은 남자 선수비율이 다소 높은 편이다.


런던 올림픽에서 출전국 모두 여자 선수들이 참가할 수 있게 된 것은 사우디 아라비아, 카타르, 브루나이 등 3개 이슬람 국가들이 그동안 관행적으로 시행했던 여자선수의 올림픽 출전 금지를 전격적으로 해제했기 때문이다. 사우디 아리비아는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와 국제 사회 등의 설득과 압력으로 가장 늦게 여자 선수 2명을 올림픽에 사상 처음으로 출전시키기로 했다.

 

 

 

그동안 올림픽에서 여자 종목은 차별과 냉대로 소외를 당했다. 1984년 LA 올림픽 직전까지만해도 여자는 마라톤에 출전할 수 없었으며,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는 26개국의 출전국이 여자선수들을 참가시키지 않았다. 미국도 1972년 발효된 Title IX법[각주:1] 이전 만해도 여성들은 스포츠에서 차별을 많이 받았다. 교육개정법의 하나로 여성의 교육 참여 기회를 남성과 동일하게 만들자는 내용을 담고 있는 Title IX법의 시행으로 여성들의 스포츠 참가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

 

우리나라 여성스포츠도 험난한 길을 걸어왔다. 역대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가 적어 올림픽 성적이 남자에 비해 뒤떨어졌다. 64년 전인 1948년 런던올림픽에서 67명의 선수단 중 여성으로 단 1명이 출전했다. 유일한 여자선수로 육상 창던지기에 출전한 여고생 박봉식이 주인공이었다. 그녀는 국제대회의 경험이 전혀 없어 두 차례나 파울을 범하다가 마지막 한 번의 기회에서 33m80을 던졌다. 런던대회 여자 우승기록 41m92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하위권으로 밀렸다. 런던올림픽 이후에도 여자 선수들은 남자 중심의 선수단 운영으로 적은 인원이 출전했다. 여자가 올림픽에서 첫 메달을 딴 것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야 가능했다. ‘날으는 작은 새’로 불린 조혜정 등이 주축이 된 여자배구팀이 대한민국 구기 사상 처음으로 동메달을 획득했던 것. 몬트리올 대회에서 여자배구팀의 동메달은 의미가 컸지만 레슬링 양정모가 건국이후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바람에 다소 퇴색될 수 밖에 없었다. 첫 여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탄생한 것은 1984년 LA 올림픽에서였다. 첫 올림픽 정식종목이 된 양궁에서 서향순이 당시 세계 랭킹 1위 김진호와 중국 선수를 누르고 대망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서향순의 첫 금메달이 탄생한 이후 한국여성 스포츠는 그동안의 설움을 딛고 본격적으로 강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하계올림픽에서 26개의 금메달(배드민턴 혼합복식 포함)을 획득했으며 동계 스포츠에서는 전이경(1994년 릴리함메르 동계올림픽 2관왕), 나가노 동계올림픽 2관왕)과 김연아(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여자피겨 싱글 금메달)등을 배출했다. 구기종목에서도 1988년 서울올림픽과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여자핸드볼이 2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여성스포츠는 올림픽 이외에 여자 프로골프에서 1990년대 중반 박세리의 등장이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100승을 달성하기도 하며 최나연, 신지애, 서희경, 박인비 등이 세계 골프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이번 런던올림픽에서도 대한민국 여성 선수들의 선전이 예상된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여자역도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장미란은 2연패를 차지, 세계 최정상의 자리를 굳힐 기세이다. 장미란은 올림픽,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우승 등으로 이미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바 있다. 전통 강세종목인 여자 양궁의 기보배, 배드민턴의 성지현, 펜싱의 남현희 등도 올림픽 금메달에 도전할 전망이다. 한국 낭자들이 예상한 바대로 선전을 한다면 ‘10-10(금메달 10개, 종합 순위 10위)’ 목표 달성이 한층 수월할 것으로 기대된다.


런던 올림픽에서 세계 여성 스포츠가 많은 발전을 이루었지만 아직도 해결해야할 여러 과제들이 있다. 여자 복싱이 처음으로 메달 종목으로 채택됐으나 3개 체급에 불과해 남자(10개체급)에 비해 크게 적은 편이며 전통적인 여자종목인 소프트볼은 아예 종목에서 제외됐다. 여성의 상품화 현상도 여전해 배드민턴과 여자복싱은 한때 스커트를 착용할 것을 의무화했다가 반대에 부딪혀 선택적으로 운용토록 했다. 테스토스테론(남성호르몬) 성별 테스트 등의 새로운 IOC 성별 검사 등은 여자선수를 남성적인 잣대로 삼아 과학적인 검사보다는 사회적 통념에 의해 판별하는 인권 침해적인 요소가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올림픽 출전 종목에서 양성 평등이 실현됐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문제점들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올림픽에서 진정한 양성 평등은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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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Title IX란 무엇인가? Titile IX(9)은 1972년 6월 23일 美국회를 통과한 교육개정법의 하나로 여성의 교육 참여 기회를 남성과 동일하게 만들려는 노력의 구심점으로서 시작되었으며, '미국의 어떤 누구도 그의 성별에 근거하여 교육 프로그램 또는 연방 재정 보조 활동을 받는 혜택에 대한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연방의 재정 혜택을 받는 모든 교육기관은 이 법을 지켜야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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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박현애(이화여자대학교 및 동대학원 강사)

 

      일반적으로 스포츠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승패, 결과라고 생각하곤 한다. 스포츠에서의 승리는 인간 한계를 넘어서고, 끊임없는 도전, 고통스런 과정의 승화로 매우 숭고하게 여겨지는 반면, 승패는 그것에 연연하여 대중의 무지몽매함을 표면화 시킨다며 저급한 문화로 스포츠를 끌어 내리곤 하는 양날의 칼이다.

 

스포츠의 궁극은 승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재된 가치 및 아름다움에 있고, 승리는 작은 이벤트에 불과하다고 많은 체육학자들이 주장하지만, 이러한 측면은 여전히 간과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곧 있을 런던올림픽에서도 우리 선수들의 인생과 열정, 노력들은 금은동메달 이라는 성적에 의거하여 들여다보여지고 평가될 것이다. 이 또한 4위 이하의 선수들에게 허락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의 총 금메달 획득 개수에 따른 종합 순위에 시선이 떠나지 않을 것이며, 매체는 가끔 있을 비인기 종목의 승전보에 제 2, 제 3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영화를 재현하여 새로운듯하지만 종국엔 신파로 끝날 이야기들을 구성하고 선수들을 한시적 영웅, 혹은 강한 의지의 불쌍한 헝그리어들로 만들 것이다.

 

영화계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과 프랑수와 트뤼포 감독의 대담을 통해서 유명해진 이야기가 있다.

 

두 사람이 열차 안에서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가정합시다.
A: 선반 위에 있는 게 뭔가요?
B: 맥거핀입니다.
A: 맥거핀이 뭐죠?
B: 스코틀랜드 고지대에서 쓰이는 사자 잡는 도구입니다.
A: 스코틀랜드에는 사자가 없는데요.
B: 아, 그래요? 그럼 맥거핀은 아무 것도 아니군요.

 

맥거핀(Macguffin)이란 히치콕 감독이 종종 자신 영화의 서스펜스를 극대화 하기위해 사용한 것으로 영화 구성상의 속임수이며 스토리에서 중요하지는 않으나 마치 중요한 듯 노출하여 관객이 그에 주목하게 만드는 장치를 의미한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3에서의 ‘토끼발’과 같은 것을 맥거핀이라고 한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이를 찾아 헤매지만, 결국 그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되는지 영화의 결말부까지 드러나지 않는다. 토끼발은 그 영화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결국 맥거핀은 영화에 극적 몰입을 불어 넣는 인위적 장치인 것이다.

 

스포츠에서의 승리, 전적으로 맥거핀이라고 폄하할 수는 없다. 승리는 속임수도 아니고, 인위적으로 가공된 극적 장치는 더욱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포츠를 이야기하는 매체에서 간혹 스포츠의 승리를 맥거핀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한체육회

 

한때, 열정과 의지, 과학적인 훈련과정과 누구보다 강한 정신력으로 이겨낸 선수들을 우유가 먹고 싶은 라면소녀로, 어머니에게 강한 심장을 물려받은 해녀의 아들로, 가난한 가정에서 허리띠 졸라 멘 항상 배고팠던 소년으로 만들어내지 않았던가. 물론 이를 통해 많은 국민들이 힘을 얻고 불우한 가운데 지치지 않은 의지와 열정에 박수를 보냈지만, 동시에 성공한 운동선수의 상징을 전국민적인 동정과 연민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했다. 그들의 과학적인 훈련방법, 자신만의 인생관, 스포츠관, 운동에 대한 순수한 열정, 스포츠에서의 도와 예, 몸에 대한 남다른 이해 등의 다양한 시선대신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인간승리의 드라마를 위한 희생자로 고착시켰다.
 
매체가 주목하는 이러한 특성은 스포츠 영화에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비인기 종목 선수들의 애환이 담긴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과 그 외의 많은 영화는 비교적 진실된 스포츠 현장에 근거하고 그 안의 많은 이야기들을 의미있고 훌륭하게 이끌어 냈다. 그러나 동시에 스포츠 영화는 진부한 공식과 표현, 상투적으로 빠지는 클리셰(cliche)에 그치지 않은지 한 번 더 생각하게 한다. 스포츠와 운동선수에 대한 매체들의 조명은 이를 대하는 대중에게 많은 감동과 희망을 주고 스포츠에 대한 진심어린 관심을 자아냈다. 그러나 여기서도 여지없이 운동선수를 불쌍한 헝그리어로 그려낸다. 혹은 결핍된 인간의 고군분투, 성공기로 마무리하곤 한다.

 

물론 이러한 신파의 주인공이 되는 것도 한정되어 있다. 승자 혹은 메달권에 진입한 선수에 대한 이야기에 그치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매체는 스포츠를 자체로서 보기를 거부하는 듯하다.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공하고 날인한다. 지구촌의 축제라 찬사하면서 동시에 우리 선수들이 이겨야하고 우리나라가 몇 위를 했는지에 주목한다. 평화와 인류애에 대한 이야기는 개막식과 폐막식에만 존재하고 이내 사라진다. 이도 맥거핀이다. 스포츠 행위 자체나 행사의 목적의 의미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으며 스포츠에서의 승리는 일차적 생각에 멈춘다. 스포츠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감동이 승패에 의지하여 성립하니 스포츠의 목표도 승패에 머물 수 밖에 없는지 모를 일이다.
 
올림픽, 즉 스포츠를 통한 인류의 화합과 통합은 팀원 간, 국가 구성원 안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인간이 신체를 통하여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규칙을 준수하는 가장 순수한 상황에서 서로의 기량을 다투지만, 이는 순수한 상태에의 인간에 의한 가장 인간적인 이벤트이고 궁극적으로는 이를 통해 무기 없이 겨루고, 희생이나 살생 없이 화합하고 통합할 수 있는 인류애의 가능성을 시도해 보는 것이다. 세계적인 박람회나 예술제가 해낼 수 없었고 스포츠만이 희미하지만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며, 또한 종국에는 가능할 수도 있는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이라 여겨지는 것은 많은 의식 있는 스포츠팬(이들을 스포츠필리아sportphilia 라고 해야할까.. 영화에 남다른 애정으로 흥행이나 자극성보다 예술성과 작품성에 주목하는 이들을 시네필cinephile 이라고 일컫듯이)들은 매체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가공된 승리와 선수에만 주목하지 않는다. 매체에 의해 가공된 이슈들 외에도 자신의 가슴을 움직인 어느 선수의 플레이, 어느 한 게임에 주목하고 이를 인생의 아름다운 장면으로 가슴에 새겨 넣을 것이다. 그리고 혹자는 올림픽을 통해 평화와 인류애를 갈구하고 기원할 것이다.

 

 

런던 올림픽, 이번에는 올림픽에 대한 본질과 스포츠 고유의 아름다움, 내적 가치와 선수들에 대한 보다 진실한 이해가 함께 되는 첫 단추이길 조용히 그러나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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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상유 (명지대학교 체육학부 교수)

 

 

     2년전인 2010년 월드컵의 경영학이란 글을 쓴 적이 있다. 전 세계는 2년마다 한번씩 스포츠축제에 빠져든다. 2012년은 바로 올림픽의 해이다. 따라서 올해는 올림픽의 경영․경제적 가치에 대하여 짧게나마 소개하고자 한다. 올해 여름 나에게 가장 기대가 되는 것은 2012년 런던하계올림픽이다. 2012년 7월27일부터 8월12일까지 17일간은 전 세계인의 눈과 귀가 신사의 나라 런던으로 집중될 것이다. 런던은 1908년 4회 대회와 1948년 14회 대회에 이러 이번이 3번째 개최이다. 런던은 무슨 복을 받아 올림픽을 3번이나 치룰 수 있을까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사실 1984년 LA 올림픽 이전까지만 해도 올림픽은 경제적으로 남는 장사가 아니었다.

 

ⓒ대한체육회

 

 

 

올림픽의 상업화

 

올림픽은 단일 종목인 월드컵에 비하여 훨씬 많은 종목과 선수들이 참가하고, 인기종목보다는 비인기종목이 더 많으며, 아마추어들의 무대였기에 상업적으로 성공하기는 어려웠다. 따라서 상업적인 목적보다는 정치적 또는 국가위상을 위하여 선진국들 중 부국의 부자도시들이 유치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일부도시들은 올림픽 유치 후에 경제상황이나 시민들의 반대 등으로 올림픽을 반려한 경우도 있었다. 올림픽이 상업화가 되기 이전에 올림픽을 개최한 도시는 일본 도쿄와 멕시코의 멕시코시티뿐이다. 일본의 경우 2차 세계대전 패망 이전에는 전 세계에서 손꼽히던 강국이었으며, 올림픽을 개최한 1964년경에는 이미 선진국으로 재도약할 발판을 마련한 상태였다. 멕시코 역시 1962년 새로운 공업개발계획을 전개하는 등 경제적으로 상승세를 탄 상황이었기에 가능하였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은 당시 북미에서 가장 부자도시로 손꼽히던 몬트리올을 재정파탄 직전으로 몰고 가기도 하였다. 물론 몬트리올이 캐나다의 불어권 지방인 퀘백의 경제적 부를 과시하기 위하여 주경기장을 돔으로 짖는 등 무리한 투자를 하기는 하였으나, 이에 대한 부채를 30년이 지난 2006년에야 모두 갚았다는 사실은 놀랍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1984년 엘에이 올림픽을 기점으로 변화하였다. 당시 올림픽 조직위원장을 맡은 피터 유베로스(Peter Ueberroth)는 당시 북미에서 두 번째로 큰 여행사를 경영하던 경영자였다. 하지만 그는 단순한 경영전공자 아니라 학창시절 수영, 야구, 미식축구의 선수로 활동하였으며, 체육장학생으로 대학에 진학하기도 한 스포츠맨이었다. 또한 대학시절에는 선발되지는 못하였으나 수구(Water Polo)의 올림픽대표선발전에 출전하기도 하였다. 그는 스포츠와 경영을 아는 스포츠마케터였다.

 

1984년 올림픽의 경우 당시에 유치를 원하던 도시가 없었기 때문에 엘에이는 단독입후보신청을 하였고, 무난히 유치를 하였다. 또한 IOC(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와 협상과정에서 추가시설투자금지, 수익을 위한 모든 활동에 대한 권리 및 수익금의 독점 등 일방적인 계약을 이끌어냈다. 더불어 중계권 및 스폰서쉽 등을 획기적으로 개혁하고 비싼 값에 계약함으로서 막대한 흑자를 거둔 올림픽으로 기록되었다. 특히 이전까지의 방송중계권의 경우 올림픽 이념의 전파를 위하여 최대한 많은 사람이 시청할 수 있는 공익성에 중점을 두고, 가장 큰 방송사와 계약을 우선시 하였다. 이때 얻은 수익은 스포츠 진흥을 위하여 IOC와 NOC(National Olympic Committee), ISF(International Sports Federation)에 배분하였다. 그러나 피터 유베로스는 입찰을 통하여 얻어낸 3억달러의 중계권료중 2/3를 LAOOC(Los Angeles Olympic Committee)가 가져가도록하였다.

 

 

이 사건은 아마추어리즘을 최우선으로 삼았던 IOC와 사마란치 위원장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이후부터는 Top Program을 개발하여 실시하는 등 스폰서쉽 및 중계권료 협상 및 모든 상업적 계약을 IOC가 직접 운영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올림픽과 IOC는 철저한 상업화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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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학수(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 연구소장)

 

 

         1972년 뮌헨올림픽을 앞두고 김택수 대한체육회장은 금메달에 대한 강한 집념을 보였다. 각 종목 선수들의 경기력이 금메달을 획득할만한 수준에 올라설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김 회장이 금메달에 유난히 집착을 보인 것은 1948년 런던올림픽에 첫 출전한 이후 은메달, 동메달 등을 땄지만 금메달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일본이 이미 1964년 도쿄 올림픽을 개최하며 많은 금메달을 획득한데 비해 대한민국의 성적은 초라했다. 따라서 국가적 자존심과 체면을 살리기 위해서도 대한민국의 금메달 획득은 대한민국 스포츠의 최대 지상과제였다.


금메달을 염원하는 김 회장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금색의 선수단복이 마련됐다.  김 회장은 대한체육회로 경남모직 임원을 불러내  “선수단 단복을 금메달 색으로 만들라”고 지시했다. 경남모직은 김 회장의 형인 김한수씨가 경영하는 회사이며 김 회장도 이 회사 대주주의 한 사람이었다. 경남모직은 네 번이나 다시 작업을 한 끝에 겨우 회장의 취향에 가까운 색상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일부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들이 색깔이 눈에 확 띄지 않고 다소 칙칙하게 보일 것이라는 이유로 반대했으나, “ 온 국민이 올림픽 금메달을 목마르게 기다리는데 우리의 각오를 다지기 위해서라도 이 빛깔이 좋다”고 우겨 결국 약간 붉은 바탕에 노란색이 배합된 단복으로 낙찰되었다. 그때까지 역대올림픽의 대한민국 선수단 단복은 확실한 규정은 없었지만 옅은 스카이블루의 상의에다 흰색 바지였다.

 

뮌헨올림픽 선수단(좌), 몬트리올 올림픽 선수단(우) ⓒ대한체육회


15년 전 발간된 이야기 한국체육사 체육행정 1편 ‘금메달을  향한 기나긴 여정-한알의 밀알’(김광희 지음)에 소개된 일화이다. 김택수 회장은 4년 뒤인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레슬링의 양정모가 건국이후 첫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함으로써 올림픽에 대한 국민적 열망을 성취할 수 있었다. 양정모가 금메달을 획득할 때, 몬트리올 경기장 현장에선 김택수 회장, 정동구 레슬링 코치 등 한국 선수단과 임원들은 감격에 겨워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몬트리올 올림픽 선수단 단복도 뮌헨 올림픽 때 보다 진짜 금메달 색깔 같은 금색 복장이었는데, 김 회장의 염원이 대한민국 건국 역사상 첫 금메달로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양정모의 첫 금메달이후 한국 스포츠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까지 32년간 총 68개의 금메달을 획득해 세계 스포츠의 강국으로 떠올랐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 10개 이상으로 종합 10위를 목표로 하고 있는 대한민국 선수단 단복은 첫 금메달을 염원했던 40여년 전의 뮌헨 올림픽 때와 비교해보면 색상이나 디자인에서 많은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대한체육회 후원사인 제일모직 빈폴이 선수단에 제공하는 단복은 이번 런던올림픽이 해방 후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내걸고 처음 출전한 하계올림픽이라는 점을 고려해 ‘영광 재현 1948’을 콘셉으로 채택했다. 대한체육회 공식 파트너인 휠라(FILA)가 제작한 단복은 태극 문양과  한민족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단청'을 이미지화했다. 또 다양한 기능성 소재와 디자인 패턴을 적용해 신체의 작은 움직임에도 불편함이 없도록 설계됐다. 선수단은 개․ 폐회식에 단복을 입고 참가할 예정이다. 세계 7번째로 ‘20-50클럽(1인당 소득 2만달러, 인구 5천만명)’에 가입한 대한민국의 발전한 위상을 잘 보여주는 색상의 단복이다.

 

런던올림픽 선수단 단복 ⓒ체육인재


역대 대한민국 선수단 단복은 그 시대의 경제, 정치, 사회, 문화의 특색을 그대로 반영했다. 첫 대한민국의 올림픽이었던 1948년 런던 올림픽은 해방직후 물자부족에 시달리던 시대적 상황과 국제 감각의 부족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야기 한국체육사 체육행정 2 ‘여명-조선체육회, 그 세월과의 싸움’(김광희 지음)에 따르면 감색 상의와 흰색 바지라는 기준을 설정했으나 67명 선수단 단복 물량을 댈 수 없었다. 당시 물자가 빈약한 시장사정에서 확보할 수 있는 품목은 혼방으로 두껍고 투박한 옷감뿐이었으나 런던의 더위를 걱정하면서도 시간에 쫓기는 나머지 그대로 강행했다는 것이다. 또 한 번은 재일동포들이 보내준 회색양복지로 단복을 마련했다고 한다. 일본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신생독립국인 대한민국의 선수단은 선수 52명중 30세 이상이 31명이나 됐으며 임원 15명도 모두 노령이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영웅 손기정씨가 태극기를 맨 앞에서 들고 입장식에 들어선 대한민국 선수단은 해방이후 첫 올림픽 참가 그 자체에 큰 의미를 두었다.


1950년대와 1960년대는 국내외적으로 격변의 시기를 보내면서 올림픽을 맞았다. 1950년 한국전쟁과 1960년 4․ 19 혁명, 1961년 5․ 16 쿠데타 등 정치, 사회적으로 엄청난 지각변동을 겪은 속에서도 대한민국의 올림픽 출전사는 계속 이어졌다. 대한민국 선수단은 런던 올림픽 선수단 규모를 갖추고 1952년 헬싱키 올림픽, 1956년 멜버른 올림픽, 1960년 로마 올림픽에 출전했다. 헬싱키 올림픽에서는 곤색 상의에 회색 하의가 단복이었으며 멜버른 올림픽도 비슷한 색깔의 단복을 입고 출전했다. 로마 올림픽에는 감색 상의와 회색 하의에 붉은 넥타이를 맸다. 1964년 도쿄 올림픽은 가깝고도 먼 나라인 이웃 일본에서 열려 226명의대형선수단이 코발트색의 상의에 흰색 바지를 입고 참가했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선 푸른색 상의와 유니폼으로 단장했다. 전쟁과 기아에 허덕였던 가난한 나라 대한민국은 노 골드(메달) 속에서도 꾸준히 올림픽에 참가해 민족자존의 의지를 세계에 내세우며 명맥을 이어갔다.

 

서울올림픽 선수단 ⓒ대한체육회


1980년 동서냉전의 영향으로 모스크바 올림픽에 불참한 대한민국은 공산권국가가 빠진 1984년 LA 올림픽에서 푸른 상의에 흰색 하의를 입은 선수단은 금메달 6개로 금메달 다수확보에 성공하며, 일약 스포츠 강국으로 자리 잡았다. 동서화합의 제전이었던 1988 서울올림픽서 개최국이었던 대한민국의 선수단은 LA 올림픽 때와 비슷한 색깔의 단복을 입고 출전해 금메달 12개로 종합 4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 12개를 획득한 선수단의 단복은 산뜻한 복장인 흰색 상의에 곤색 하의였으며 금 7개를 딴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선 위아래 모두 흰색으로 복장에 푸른 리본이 달린 모자를 써 세련되고 국제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드니올림픽 선수단 ⓒ대한체육회

 

2000년대 이후 대한민국 선수단 복장은 글로벌화, 세계화를 리드하는데 손색없는 색상과 감각으로 세계화의 주역으로 주목을 받았다. 남북한 동시입장으로 세계평화를 바라는 세계 각국의 찬사를 받았던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 남북한 선수단은 군청색과 베이지색 상하의를 입고 참가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과 2008년 베이징 올림픽선 청색과 흰색, 흰색과 군청색등을 입고 출전했다.

 


역대 대한민국 올림픽 선수단의 단복은 성공을 기원하는 국민들의 염원과 메시지를 담고 정치, 경제적인 시대적 상황에 부합하는 의미와 내용을 담고 있다.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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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윤영길 (한국체육대학교 사회체육학부 교수)


대한민국 축구의 마지막 퍼즐 감독 허정무의 비상

유럽 메이저 무대에서 뛰고 월드컵 출전 경험을 쌓은 대한민국 선수, 월드컵을 거치면서 지방 곳곳에 만들어진 축구장, 그리고 축구와 관련된 제도 등 다양한 축구 인프라를 갖춰 왔다. 하지만 여전히 한 가지 세계 수준을 도전해보지 못한 영역, 월드컵 경험이 있는 지도자가 있기는 하지만 월드컵에서 승리 경험이 있는 국내 지도자는 없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허정무 감독의 1승과 16강을 간절히 바래왔다. 다행히 감독 허정무가 1승과 16강을 동시에 달성했다. 대한민국 축구의 건강한 생태계 구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축구 전체가 도약하기 위해서는 선수의 경기력이 확보되어야 하고 선수의 경기력 확보를 위해서는 선수를 지도하는 지도자의 수준이 달라져야 한다. 선수의 수준이 지도자의 수준을 넘어서기란 쉽지 않다. 설령 지도자의 수준을 넘어서는 선수가 나와도 지도자가 그 선수를 바로 보지 못하면 지도자를 넘어서는 부분은 용납할 수 없는 이단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지도자를 도약시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다행히 감독 허정무의 성공은 대한민국 축구 지도자로 하여금 우리도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간접 경험을 제공했고 감독 허정무가 제공한 간접 경험은 장기적으로 대한민국 축구 지도자 전체를 도약시킬 계기로 작동할 것이다.

 지단이 물러난 프랑스와 박지성이 물러날 대한민국

유럽예선을 억지로 통과하고 본선 1라운드에서 처참한 결과로 물러난 프랑스를 본다. 2006년 월드컵까지 전성을 구가하던 프랑스 축구가 단시간에 이렇게 무너질 수 있음을 확인했다. 지단, 프랑스 축구에서 지단의 그늘은 너무도 컸다. 90분 동안 경기장에서 팀 전체의 속도를 조절하고 리베리나 앙리에게 적절한 타이밍에 창의적인 방법으로 기회를 만들어주고, 때로는 자신이 직접 공격을 해결하던 그 지단이 사라진 팀은 팀 분위기조차 엉망이었다. 지난 10년 동안 프랑스는 지단의 팀이었던 것이다. 물론 축구가 어느 한 선수가 팀의 경기력 전체를 결정하는 종목은 아니지만 그래도 프랑스에서 지단의 영향력은 특별했다.

박지성의 대한민국이 겹쳐졌다. 이청용이, 박주영이 그렇게 공격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 지는데는 바로 뒤에서 공간을 만들어주고 기회를 만들어주는 박지성의 역할이 크다. 사실 축구경기에서 팀에 탁월한 선수 하나 둘이 있으면 공격 과정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해 팀 전체가 안정적인 경기운영을 하게 된다. 2010월드컵은 박지성이 선수로 최고의 가량을 발휘할 수 있는 월드컵이었다. 그래서 2010년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하지만 2014년까지 박지성을 고집하다 이청용을, 기성용을, 이승렬을 잃어 버려 결과적으로 2010 프랑스 같은 팀이 될지도 모른다. 2014월드컵은 이미 대한민국 대표팀에 약해지거나 사라진 박지성을 젊은 선수들이 어떻게 보완하게 하느냐의 과제를 부여했다. 
  

해가지면 아침이 오고


안정환, 이운재, 김남일, 이동국,..... 축구팬을 설레게 하는 이름이었다. 이제 더 이상 그 이름은 운동장에서 사람들을 설레게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김남일과 이동국의 짧은 등장으로 이전 세대들은 축구팬에게 작별을 고했다. 아마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축구의 과거를 추억할 때 가끔씩 등장하게 될 것이다. 스포츠는 뒷모습이 특별히 초라한 분야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선수는 어린 누군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자리를 내주곤 한다. 시간의 흐름에서 자유로운 선수는 없다.
 
이제 그 자리를 이청용이, 기성용이, 정성룡이 대신할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선배에게는 잔인한 일이지만 선배의 자리를 어떤 후배인가가 치고 올라오고, 그렇게 선배의 자리를 치고 올라왔던 후배들은 또 언젠가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주게 될 것이다. 그 것이 스포츠의 속성이다. 언제나 영원히 최고의 자리에 머무를 수는 없다. 다만 최고의 자리에서 대한민국 축구의 도약을 이끌었던 이들을 기억해주어야 한다. 이청용은 박지성을 보고 자랐고 박지성은 안정환을 보고 자랐다. 후배에게 자리를 내주는 선배들은 그렇게 다음 세대의 양분이 되어 왔다.

현재를 기준으로 과거를 판단하거나 미래를 예단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월드컵에서 뛰지 못한 노장 선수들이 있어 대한민국 축구가 성장했고, 한 경기도 들어가지 못한 어린 선수가 있어 대한민국 축구가 성장할 것이다. 대한민국 축구에 있어 모두 소중한 존재들이다.  


과거를 통해 미래를 본다


축구를 이야기 하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이 1986년 월드컵부터 2010월드컵까지 7회 연속 월드컵에 출전하고 있다고 자랑스러워한다. 7회 연속 월드컵 진출이 자랑이 될수록 개인적으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커진다. FIFA, JFA 등에서는 매 월드컵 마다 기술보고서나 월드컵 백서 등을 발간해 월드컵의 총체적인 기록을 남기고 있다. 하지만 KFA에서는 월드컵 이후 월드컵 기록을 공식적으로 남기지 않아 축구계의 자산이 될 소중한 경험 자원을 방치해왔다. 대회 기록은 월드컵뿐만 아니라 올림픽에서도 올림픽 준비와 출전 등의 기록을 보고서로 남기는 NOC는 경험을 통해 배우고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사실 2010월드컵을 통해 공인구의 변화가 초래하는 엄청난 결과를 확인했다. 어쩌면 독일이 선전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자블라니 적응 정도에 있는지도 모른다. 공인구를 개발하면서 독일 선수들은 지속적으로 공에 대한 내성을 키웠을 테고 그 내성이 다른 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볼 컨트롤이 좋은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극단적인 가정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작아 보이는 변화도 그간 공인구의 변화를 관찰했다면 예측 가능했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았지만 우리에게는 과거에 무엇이 어떠했는지 기억만 있을 뿐이지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대회를 준비했던 과정, 시간에 따른 선수들의 변화, 경기 상황에서의 경험, 대회가 남긴 교훈 등 실로 방대한 경험 지식을 고스란히 사장시켜 버린 현실이 너무도 안타깝다. 
   
이 월드컵을 시작으로 2010 대한민국 월드컵 백서의 제작을 신중하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월드컵 준비와 출전, 그리고 무형의 경험을 축구계 구성원이 공유한다면 엔트리 23명의 경험은 대한민국 축구선수 모두의 경험으로 확장될 것이다.
   

그래도 4년이 있다


월드컵이 끝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잠잠해진다. 붉은 물결이 일던 시청의, 강남의 바다는 바다였던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 붉은 악마는 다시 사람들로 돌아와 K리그, N리그는 뭐하는 리그인지 관심조차 없다. 야구장으로, 게임으로, 영화관으로 그렇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월드컵은 4년마다 여름밤 몇 일간 일어나는 마법이다. 마법이 풀리면 사람들은 다시 제자리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돌아온다. 그래도 다행이다. 대한민국 대표팀이 매번 월드컵에 출전하고 있어서 4년에 한번이라도 마법을 즐길 수 있어서 말이다. 영원히 대한민국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할 것이라고 낙관하지는 말자. 일본, 호주, 중국, 중동이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위협을 가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제 대한민국도 월드컵에서 16강에 올랐다는 생각을 한다. 개최국 특수 상황이 아니라 본선 진출국으로 정당하게 16강에 올랐다. 이 월드컵은 2002월드컵을 계기로 우리가 유럽 공포에서 벗어난 것처럼 남미 공포에서 벗어나는 계기의 출발점이 되었으면 한다. 아르헨티나의 대패를 보면서, 우루과이와 아쉬운 16강 경험을 통해 남미 축구도 별 것 아니라는 확신이 대한민국 축구선수의 유전자에 각인될 기회였다.


epilogue

2014년 월드컵 지역예선을 시작하면 또 말이 많을 것이다. 조금 이루게 되면 덜 열심히 하고 덜 최선을 다하게 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대한민국 선수들 역시 지역예선에서 덜 최선을 다하고 덜 열심히 할 것이다. 그냥 두자. 지칠 때는 쉬어가는 것도 방법이다. 그렇게 지역예선을 통과하는 것은 대한민국 축구가 지극히 건강하다는 증거이다.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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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윤영길 (한국체육대학교 사회체육학부 교수)


몇 해 전에 김호감독과 함께 일본에 다녀온 적이 있다. 나흘 동안 함께 지내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유독 아프리카 선수에 대한 평가가 흥미로웠다. 6시 저녁시간에 밥을 안먹고 9시 넘어서 밥을 달라고
하는 선수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6시에는 배가 안고팠다고 대답하더라는 이야기, 유럽 팀에서 계약금 받고 다시 아프리카 정글로 가버리는 이유가 힘들게 왜 그 일을 하냐고 대답했다는 이야기, 아프리카 선수는 포기가 빠르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래서 유럽팀에서는 그런 아프리카 선수를 바꾸기 위해 어린 선수를 홈스테이 시킨다는 이야기에 따스함이 아닌 비장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나이지리아 경기. 9시에 밥 달라고 하는 선수, 정글로 가버리는 선수, 빨리 포기하는 선수, 그런 선수만
출전했으면, 아니 유럽에서 홈스테이 해 성장한 선수가 출전하더라도 그 선수에게 빨리 포기해버려라는 주문을 걸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아르헨티나의 선물

아르헨티나와의 경기가 허망하게 끝나버렸다. 4:1, 한 수 아래 팀과의 경기에서 나오는 점수이다. 그렇게 굴욕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도약의 기회를 잃어버렸다. 분명 아르헨티나 경기는 세계 수준의 팀을
만나면 어떻게 경기를 풀어가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좋은 90분의
기회를 허둥대다 보내버렸다. 좋은 팀을 상대로 한 경기를 통해 선수는 도약한다. 경기에 출전한 선수는
물론이고 경기를 지켜본 많은 선수에게 그 경기의 영향력이 파급되는 것이 스포츠의 속성이다.

좋은 팀과의 경기, 그 좋은 팀과의 경기가 어떤 의미가 있고 좋은 팀과 경기를 성사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2010남아공 월드컵 B조라는 기회가 아니었다면 그 선수들이
모아진 팀과 경기를 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아르헨티나 경기에서 메시는 대한민국
축구에 드러난 위험은 치명적이지 않음을 확인시켰다. 현란한 드리블과 폭발적 드리블이라는 메시의
위험, 그 위험을 막는데 너무 많은 힘을 쏟아버렸다. 결과론이기는 하지만 메시의 플레이를 위축시키기
위한 전술적 선택은 실점을 않기 위한 수단이어야 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전에서는 메시 플레이의
위축 자체가 목표가 된듯했다.

메시는 대한민국 축구선수에게 드러난 위험은 치명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선물했고, 아르헨티나 팀은
대한민국 팀에 목표와 수단을 혼동하지 말라는 교훈을 남겼다.


위험 관리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팀은 경쟁력을 갖춘 팀 특유의 강점이 있다. 그 강점이 경기에 투영되고 강점이
투영된 경기는 특유의 색을 낸다. 그리스와의 경기에서는 선수 전체가 빠르게 움직이면서 공간을 확보
하는 우리 대표팀의 색을 분명하게 보였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전은 우리 색이 어떤 순간에도 나타나지
않아 무기력했다. 그리스 전과 아르헨티나 전은 대한민국 축구가 나가야 할 방향을 어렴풋하게나마
보여준다. 대한민국 색을 분명하게 보여주면 세계 표준으로 설수 있는 반면, 자신의 색을 분명하게
보여주지 못하면 한 수 아래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아프리카의 눈물을 보았다. 언제나 가정법은 공허하지만 카이타가 발길질을 하지 않았다면 문제는
단순해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 흐름 그대로였다면 무난하게 그리스를 꺾을 가능성이 높았던 나이지
리아였다. 그 카이타의 발길질 하나가 나이지리아는 물론 B조 판도를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어느 팀에
2라운드에 진출할지는 B조 경기가 완전히 끝나야 알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대한민국에, 나이지리아에, 그리스에 그리고 아르헨티나 모두에게 위험한 상황이다. 하지만 혼란스러운 상황은 모두를 성장시킬 것이다. 자연계에서 특정 환경에 가장 효율적으로 적응하여 번성을 이룬 생물종은 환경의 변화에
취약해 환경의 작은 변화에도 취약해져 도태되어 왔다. 축구 역시 그렇다는 사실을 지단이 사라진
2010 프랑스가 잘 보여준다.

아무리 철저히 대비해도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발생한 위험 상황을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의 문제가 대한민국 축구 유전자의 건강한 변이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움직이는 물체는 계속 움직이려고 하고 정지한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으려고 한다. 물리법칙으로 관성은 자리하고 있지만 우리의 마음에도 관성이 존재한다. 심리적 관성......  대한민국이나 나이지리아 모두 2010월드컵 B조 1라운드 2차전이 힘들게 끝났다. 대한민국은 아르헨티나와 후반 한점을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추격에 고삐를 당기다 2점을 실점하고 동력 자체가 심하게 약화되어 경기를 마쳤고, 나이지
리아 역시 앞서가다 카이타의 퇴장 이후 팀이 역전 당했고 심지어 카이타 선수가 살해 위협을 받는 지경
까지 이르렀다. 분명 두 팀 모두에게 어두움의 심리적 관성이 꼬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다. 그리고 양팀 모두에게 경기 초반 2차전의 심리적 관성이 나타날 것이다.

경기 초반 양팀 모두 이기기 위해 모든 것을 던질 것이다. 선취점이 중요하다. 아프리카 팀이 선취점을
얻으면 대한민국 선수는 더 열심히 뛸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다. 꼭 이겨야 한다는 부담 말고, 이
경기 잡을 수 있다는 낙관적인 생각으로 뛰어야 한다. 이겨야 한다는 부담은 몰입할 수 없게 하지만
잡을 수 있다는 낙관은 경기에 몰입할 수 있게 해준다. 반면 대한민국이 선취점을 얻으면 더 조여야
한다. 아프리카 선수는 포기할 줄 아는 선수들이다. 그래서 안된다는 생각을 하면 쉽게 포기해버린다.
그리스가 아르헨티나를 이겼다고 생각하고 경기를 풀어가야 한다. 盡人事而盡人事, 최선을 다해 뛰고
하늘의 명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뛰고 또 최선을 다해 뛰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남아공, 카메룬, 코트디부아르 등 아프리카 팀이 줄줄이 어려운 경기를 하고 있다.대륙의
경기력 관성이 존재하는 지도 모른다. 아니 대륙의 경기력 관성이 존재했으면 좋겠다. 


파부침주(破釜沈舟)

허정무감독의 출사표이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역설적이지만 선수들은 살기
위해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다. 이 경기에서 이기면 어떤 결과가 이어지는지 선수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기기 싶은 열망이 간절할 것이다. 이제 투지와 승부욕을 발휘해야 하는 순간이다.
더반의 경기장에서는 나이지리아를 응원하는 기운이 경기장을 덮는 어려운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아프리카 여서 그렇고 더반에 나이지리아인이 많아서 더 그럴 것이다. 1998년 네덜란드 전의 5:0
패배와 경기장을 가득 채웠던 오렌지색 응원을 기억한다.

破釜沈舟, 항우는 타고 왔던 배를 부수어 침몰시키고, 솥도 깨뜨리고, 주위의 집들을 모두 불태워버리고
병사들에게는 사흘 먹을 식량을 나누어 주었다. 살기 위해 병사들은 출진하라는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적진을 향해 돌진했다. 우리는 항우의 배, 솥, 집, 사흘 치 식량이 아닌, 출진 명령이 떨어졌을
때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병사들에 주목해야 한다. 심판의 휘슬이 울리는 동시에 선수들은 나이지리
아에 돌진해 경기 초반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 경기 초반 주도권을 잡아야 적어도 중립에 가까운
상황에서 경기를 운영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경기를 반전시켜 나이지리아 선수를, 나이지리아 관중을
잠재울 수 있다.  


그리고 VISION

우리 목표는 분명 16강이었다. 하지만 16강 이후의 VISION 역시 중요하다. 16강에 천착해 16강 이후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는 듯 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2002년 포르투갈과 경기를 앞두고 일본으로 건너
갔던 히딩크를 기억한다. 16강 상대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탈리아의 경기를 보기 위해 일본으로
간다고 했을 때 여기저기서 당황스러워 했다. 아직 1라운드 3차전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2라운드
경기를 준비한다고? 하지만 그 선택은 적중했다. 그 이탈리아를 16강에서 만났다.

솥을 깨고 배를 침몰시켜도 다음 수는 생각해야 한다. 허정무 감독이나 2010대한민국 대표팀에게는
2010 남아공 월드컵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하지만 대한민국 축구 전체를 보면 2010 남아공 월드컵
역시 하나의 과정이다. 대한민국 축구가 가야할 머나먼 여정의 하나, 그 여정의 하나인 2010월드컵에
대한민국 축구 모두를 걸어버리면 머나먼 여정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어쨌거나 또 한 번의 경험을
쌓았다. 그 경험이 상처를 남기더라도 그 상처로 대한민국 축구가 건강해진다면 대한민국 축구에게는
고마운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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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윤영길 (한국체육대학교 사회체육학부 교수)

그리스전은 전국을 흥분시켰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또 한 번의 도약을 아르헨티나 전에서 꿈꾸고
있다. 분명 그리스 전은 이전 월드컵 경기와는 완전히 다른 축구였다. 그도 그럴 것이 2010 대한민국 팀은
이전 팀과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변이가 일어난 팀이다.

아르헨티나전은 우리의 기대를 증폭시키고 있다. 그리스전의 여세라면 장밋빛 꿈을 꾸어볼 수도
있겠다. 브라질이 북한에 고전한 것처럼 아르헨티나를 다뤄볼 또 새로운 기회가 생겼다. 정대세의
눈물을 보았다. 이 눈물의 의미를 우리는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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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전 허가 없이 콘텐츠의 무단 사용을 금지합니다.


뚫린 방패 그리스

7분, 그리스전 전반 7분은 대한민국 월드컵 도전사에 새로운 기록을 남긴 출발점이다. 지금까지와 같은
탐색전은 7분까지였고 이정수의 골 뒤로는 완전히 경기를 지배했다. 그리고 박지성의 골은 대한민국
축구도 월드컵에서 상대를 등 뒤에 달고 장거리 드리블을 하고난 뒤 골키퍼까지 제압하고 완전한 골을
만들 수 있다는 희열을 우리에게 선물했다. 그 골을 넣기 위해서는 공을 컨트롤 하고 뒤에서 따라오는
수비를 견제하는 동시에 앞에서 다가오는 골키퍼의 움직임을 읽고 골문의 위치를 확인해야 하다. 그 것도
그 짧은 시간에 말이다. 그래서 그 골이 얼마나 어려운 골이었는지를 안다.

지금까지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이 출전해 이기고 있는 동안 조금 더 하면 골이 더 날 수 있겠
다는 기대를 하면서 지켜본 기억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리스전은 달랐다. 조금 더 하면 한 두골 더 날 수
있을 것 같은데, 일단 득점이 많아야 유리한데,...... 처음 경험한 월드컵에서의 호사였다. 아직 첫 경기
였지만 그 감동과 호사를 선물해준 대표팀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팀의 조화

이청용-기성용-정성룡의 출전과 안정환-이동국-이운재의 대기는 묘한 여운들 남겼다. 그리고 그
언저리 어디쯤에 자리한 김남일의 교체 역시 2010대한민국 대표팀을 잘 보여주고 있다. 어린 선수들
에게는 월드컵 경기에 출전하고 싶은 간절함과 선배를 밀어내고 자신이 뛴다는 자신감이 있다. 청용,
성용, 성룡의 기억에 정환, 동국, 운재는 어린 시절 우상이었다. 그 어릴 적 우상이 같은 팀에 있고
심지어 자신이 그 우상을 밀어내고 선발 출전을 했다. 어린 선수에게는 정말 대단한 일이고 자신감
넘치는 경험이다.

그 선배들은 월드컵 경기 출전에 욕심이 있겠지만 월드컵에 처음 출전한 어린 선수의 간절함에 비할
바는 아니다. 이제는 선수로 월드컵에 참여하기보다 선수 매니저로, 어린 선수를 관리하는 선수로
경기에 참가하는 것이 이들 경험 많은 선수에게는 의미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조부모가 있는 양육에
참여한 아동이 정서적으로 더욱 안정되어 있다. 2010 대한민국 대표팀 23명의 엔트리 중 벤치를 지키는
경험 많은 선수들이 가족에서 조부모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 월드컵 대표팀은 훨씬 안정적
이다.


팀의 구조

2010 대한민국 대표팀은 전술적으로 팀의 구조적으로 지금까지 월드컵 대표팀과는 다르다. 우선 팀을
대표하는 박지성은 2006년에는 아직 조금 부족했고 2014년에는 선수로는 나이를 많이 먹어버린다.
그야말로 2010년은 선수 주기 중 경기력이 최고조에 달해 있는 월드컵이다. 축구의 속성이 그렇다.
한 명의 선수가 전술적으로는 경기력을 결정하지는 못하지만, 심리적으로는 한명의 선수가 경기력을
결정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팀에 영향력이 큰 선수가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경기장에서 뛰고 있는
나머지 10명의 선수와 벤치에 있는 선수, 지도자까지 공명을 일으킨다. 지금 그 공명의 출발점인
박지성 개인의 경기력이 포화 시점이라는 사실이 이번 월드컵에 희망을 가지게 한다.

한편 이청용이나 정성용 같은 어린 선수들이 박지성의 플레이에 공명을 일으키는데 안정환이나 이운재,
이동국 같은 경험 많은 선수들이 보이지 않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들은 경기에는 뛰지 못하지만
1998월드컵부터 2006월드컵까지의 경험을 어린 선수들에게 고스란히 전수해 줄 수 있는 경력의 소유자
들이다. 경험이 많은 선수들은 월드컵 경기에서 어떻게 플레이를 해야 할지 알고, 경기가 없는 동안
무엇을 준비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지 알고 있다. 이런 자신의 소중한 경험을 공동의 목표를 위해 어린
후배들에게 팀 내에서 잠재적으로 전수해줄 수 있는 팀이다.


정대세의 눈물

브라질과의 경기를 시작하기 직전 정대세 선수의 눈물을 보았다. 아마도 운동 경험이 있다면 그 눈물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이다. 올림픽 시상대에서 금메달리스트가 흘린 눈물과 같은 눈물이었을 것이다.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여러 힘든 곡절도 있었을 것이고 축구선수로 최고의 영예인 월드컵 경기에
출전하고, 게다가 개인적으로 첫 상대가 브라질이었다는 사실은 개인에게 감동적인 사건이다. 그야
말로 세계 축구를 대표하는 선수들로 짜여 진 팀과 경기를 한다는 사실은 감동적이다. 그렇다. 정대세
에게 브라질 경기는 경쟁이 아니라 도전이다. 그래서 그 도전은 감동스러웠을 것이다.

아르헨티나와 경기를 한다. 물론 우리에게는 경쟁인 동시에 대한민국 축구를 보면 행운이다. 같은
조에 속해 있는 경쟁해 이겨야 할 팀,...... 하지만 생각을 조금만 바꾸어보자. 아르헨티나는 경쟁해서
굴복시켜야 하는 적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축구를 도약시킬 또 하나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세계 최고
수준의 팀과 경기를 하면서 세계 최고의 팀을 만났을 때 경기를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대한민국 축구
유전자에 새로운 경험을 각인시킬 기회이다. 아르헨티나와의 경기는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동시에 어떻게 강한 팀을 풀어가야 하는지 연습의 기회일 수도 있다. 아르헨티나와 경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은 대한민국 팀에 시련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을 축적할 수 있는 도약의 기회이다.


세계 표준을 꿈꾸며

어떤 일이든 간절하면 이루어진다. 어쩌면 대한민국의 축구는 세계 축구의 벽을 만들어놓고 스스로
그 벽을 넘으려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세계 축구의 벽을 박지성이,
이청용이, 허정무가 조금씩 허물고 있다. 선수가 서서히 세계 표준에 접근하고 있고, 지도자가 세계
표준에 접근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이제는 세계 축구에 대해 대한민국 축구 스스로 만들었던 벽을 
허물 차례다. 브라질이, 잉글랜드가 스페인이 아르헨티나가 세계 최고 수준의 팀이라는 우리의 믿음
자체가 이들 팀을 세계 최고이게 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네덜란드에 주목한다. 인구 1,600만의
유럽의 작은 나라에서 그렇게 좋은 지도자와 그렇게 좋은 선수가 많이 나오는 이유는 네덜란드 축구
스스로 만든 경쟁력이다. 네덜란드는 세계축구에서 전술의 새로운 세상을 여는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그 경쟁력이 권력의 중심에 네덜란드를 유지시키고 있다.

대한민국 축구가 세계 축구의 표준에 근접하기 위해서는 세계 축구의 표준을 따라가서는 불가능하다.
세계 축구가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하고 움직일 방향에서 미리 준비하고 기다려야 한다. 아르헨티나와의
경기는 대한민국팀에 세계 축구로 가기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어떤 노력을 앞으로 기울여야 할지 길을
알려줄 것이다. 그저 아르헨티나와의 승부에 매몰되어 대한민국 축구가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좋은 기회를 잃게 될 지도 모른다. 스포츠에서 승부보다도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 승리의 과정을 중시할 때 승리는 승리 이상의 가치가 있고, 패배를 승리르 위한 동력으로
활용할 수 있을 때 패배는 때로 승리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 그 동력이 언젠가 대한민국 축구를 세계
표준으로 이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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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윤영길(한국체육대학교 사회체육학부 교수)


2010월드컵, 드디어 대한민국의 1라운드가 시작된다. 대한민국이 반드시 이겨야 할 상대로 여기고 있는
그리스와의 경기다. 하지만 그리스 역시 그리 녹록한 팀은 아니다. 2002년 월드컵의 황홀한 기억이 대한
민국의 축구에 각인되어 있다면, 그리스 축구에는 유로2004의 찬란한 기억이 각인되어 있다.

양 팀 모두 과거의 화려한 시간을 추억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2010년이고 경기는 남아공에서 진행된다.
양 팀에게 월드컵과 유로대회의 아름다운 과거는 기억일 뿐이고 이제 누군가는 이겨야하는 상대로
맞서게 되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스포츠는 제도화된 규칙에 따른 경쟁 활동이다. 경쟁은 제한된 가치를
나눈다는 의미가 아니라 제한된 가치를 더 많이 갖기 위해 겨루는 상태이다. 경쟁의 본질을 감안한다면
스포츠의 의의는 참가가 아니다. 


                                          
                                   

                                                                                                           
첫 경기의 함정

월드컵에서 첫 경기만 잘 풀어 가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이야기를 자주한다. 그리고 첫 경기는
내가 응원하는 팀만 어려워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첫 경기에 기원을 담는다. 하지만 월드컵 본선의 경기
방식을 보면 첫 경기가 왜 모든 팀에게 어려운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월드컵은 1라운드 조별 리그를
거쳐 각 조의 1, 2위가 16팀이 2라운드 토너먼트 방식으로 대회가 진행된다. 그래서 1라운드에 탈락하
더라도 최소 3경기를 하게 되고 16강에 올라 결승까지 가면 최대 4경기를 더 치르게 된다. 그래서 경기
를 많이 하는 팀은 최대 7경기를 치르게 된다.

 
경기 수를 더해 가면 각 팀의 경기력에는 진화가 일어난다. 팀의 조직이 만들어지면서 전술의 완성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조별리그 2차전은 1차전 경기보다 나아지고, 조별리그 3차전은 2차전 보다 나아지고,
16강에 오르면 조별리그 3차전보다 경기력이 나아지고, 8강 역시 16강보다 나아진다. 하지만 딱 거기
8강까지이다. 4강에 오른 팀은 한결 같이 조별 라운드와 16강, 8강을 거치면서 누적된 피로와 부상
등으로 이미 상당한 수준의 상처를 입은 상태가 된다. 결승전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다.

결국 첫 경기가 어려운 이유는 모든 팀이 공통적으로 겪는 전술적 어려움의 다른 모습이다. 또한 전술
적인 미숙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는 축구선수는 물론 지도자, 팬들에게까지 첫 경기는 어렵다는 등식을
성립시켜 첫 경기는 어려운 경기라는 자기충족예언을 하게 한다. 그래서 실제로 첫 경기를 어렵게 하고
첫 경기의 어려움이 미신적으로 강화되어 종국에는 첫 경기 징크스를 만든다. 그래서 첫 경기는 계속
어렵고,...... 첫 경기 징크스가 있는 것이 아니라 첫 경기는 원래 어렵다. 첫 경기 후 2차전, 3차전, 16강,
8강 점점 쉬어지는 것이 월드컵 경기의 구조이다.


조용형 뛰어?

조용형이 몸이 불편하단다. 중앙수비수가 제 컨디션이 아니어서 큰일이라고 난리가 났다. 2002년 벤치
를 지키던 지단을 기억한다. 축구는 그런 종목이다. 23명의 월드컵 엔트리에서 부상이 있고 부상으로
 제 컨디션을 발휘하지 못하는 선수가 반드시 나오는 것이 정상이다. 선수가 자신의 선수 경력 기간
동안 신체적, 심리적 문제로 제 컨디션이 아닌 기간이 전체 선수 생활의 약 17%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매일 엔트리 23명의 17%인 4명 정도는 확률적으로 완전한 컨디션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조용형이 컨디션이 나쁜 날도 있고, 박지성이 컨디션이 좋지 않는 날도 있고, 허정무 감독이 컨디션이
좋지 않는 날도 있을 것이다.

모든 선수가 최상의 컨디션으로 매 경기에 준비된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엄연한 현실이다. 대한민국
에서 가장 필요한 선수가 제 컨디션이 아닐 수도 있고, 대한민국 상대팀에서 가장 필요한 선수가 정상
컨디션이 아닌 날도 반드시 있다. 따라서 누군가는 대회 기간 동안 불편한 몸을 호소할 것이고,
누군가는 불편이 지나쳐 출전 자체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선수의 출전 여부에 일희일비하지 말자.
누군가는 뛸 수 있겠지만 누군가는 뛸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래서 FIFA에 제출하는 월드컵 엔트리는
23명이다.


운재-정환-동국 : 청용-성용-승렬

2004년, 2008년 올림픽에 출전했던 내 지도학생이 있다. 2004년에는 배운다는 마음으로, 2008년에는
마지막으로 내 경력을 평가받는다는 마음으로 올림픽에 출전했다고 한다. 뜨는 해가 있으면 지는
해가 있다. 2010월드컵이 마지막 월드컵인 선수도 있고, 같은 월드컵이 시작인 선수도 있다. 이운재와
안정환은 지난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선수로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켜왔다. 이제는 찬찬히
월드컵의 세상에서 자신이 이룬 성과를 차분하게 후배들에게 전수하고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야 하는
전수자들이다. 이들에게는 1998년 월드컵과, 2002년의 경험이 있고, 2006월드컵 승리의 경험도 있다.
이 경험을 어떻게 후배들에게 전수할 것인가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2010월드컵에 출전한 경험이
많은 선수의 소명이다. 이제 화려한 기억을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아름답게 퇴장하는 모습을 보여줄
월드컵이다. 그 숙제를 이대회에서 풀어갈 때 우리는 환호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형들에 억압되었던 축구 본능을 깨워 경기에 투입해야하는 선수도 있다. 2010월드컵이
첫 출전인 이청용, 기성용, 이승렬, 김보경 같은 젊은 선수들은 2010년을 뛰면서 2014년을 꿈꾸어야
할 것이다. 어린 선수들은 까마득히 멀어만 보이던 대표팀 선배 선수들과 같은 팀, 그 것도 월드컵 팀에
함께 뛰고 있는 스스로를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자랑스러움이 자랑스러움으로 끝나서는
곤란하다. 2014년 팀의 주축으로 서기 위해 자신은 무엇을 얻고 무엇을 개선시켜야 하는지 경기장에서
느끼고 벤치에서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젊은 선수가 잘할 때도 그렇지만, 실수나 실패를
통해 무엇인가를 배우고 깨달을 때도 박수치고 격려해야 한다.

월드컵에서 승리는 무슨 의미일까? 단순히 점수 차이의 승패 문제가 아니라 선수들이 무엇을 얼마나
배우는지의 문제는 다음 세대를 위해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2010월드컵 첫 경기에서의 승리는
승리라는 과거의 기록만을 남기겠지만, 2010월드컵 첫 경기를 통해 배운 경험은 대한민국 축구선수의
집단무의식 속에 경기력으로 각인되어 미래까지 유전될 것이기 때문이다.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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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윤영길(한국체육대학교 사회체육학부 교수)


그렇게 기다리던 4년이 또 여지없이 이렇게 오고야 말았다. 4년 전 지단의 박치기로 그렇게 허무하게
끝내버리더니 모두를 기다리게 하고 다시 남아공에 모여들었다. 4년 전 그 선수들도 있고 젊고 새로운
선수도 있다. 메시나 호날두, 파브레가스처럼 풋내기로 겨우 2006 월드컵팀에 합류해있던 선수들이
그 4년 동안 변태(變態, metamorphosis)를 거쳐 세계 축구의 중심선수가 되어 있다. 짧아 보이는 4년은
이렇게 많은 변화를 세계 축구계에 남겨놓았다. 우리의 이청용과 기성용, 이승렬이 변태한 것처럼......
대~한민국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사진출처: 한국축구협회

만들어진 팀

1986년 박창선의 골로 시작해 2006년 원정 첫승, 그렇게 대~한민국은 월드컵에 연속적으로 출전해
흔적을 남겨왔다. 물론 대부분의 경기를 패배로 마무리했고 마치 남의 잔치에 잠깐 구경 온 것처럼
승패보다는 득점을 했다는 사실에 의미를 부여해오곤 했다. 그렇게 1986년부터 매번 월드컵에 무의미
하게 다녀온 것 같지만 월드컵에 다녀오면서 대~한민국은 잠재적 학습을 통해 시나브로 세계 축구의
표준에 대~한민국을 접근시켜왔다.

대~한민국 축구는 2002년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90분을 소화할 수 있는 체력을, 2002년과 2006년 월드컵
을 경험하면서 세계표준의 전술과 더불어 심리적 적응성을 축구선수의 유전자에 각인시켰다. 특히,
2002년과 2006년 양 대회에서 선수들이 얻은 세계 축구에 대한 자신감은 월드컵에 출전한 선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축구선수 모두의 집단 무의식에 각인되어 이제는 월드컵에서 정상적인 자기
플레이를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대~한민국 팀에는 얼마 전까지 나타나던 후반 중반 이후의 급격한 체력 저하도 더 이상 나타나지
않고, 후반 중반 이후 조커를 투입하는 전술운용이 정착되었고, 유럽팀 선수를 만나도 주눅 들지 않고,
경기력 향상을 위해 스포츠과학을 적용하려는 시도가 이어지는 등의 변화가 일고 있다. 이러한 최근의
변화 중 “심리적으로 만들어진 팀”이라는 대~한민국 대표팀의 특징은 이전의 대표팀과 구분되는
확연한 기준이다.


G 세대 “양박쌍용”

박지성과 박주영, 이청용과 기성용을 축구팬들은 양박쌍용으로 부른다. 척박한 땅에서 양박쌍용이
어떻게 자라났을까? 2000년대 초반으로 돌아가 보자. 박지성이라는 무명의 선수를 2002대표팀에 발탁
했을 때 박지성에 대한 평가는 “왜 육상선수를 뽑았냐”는 비아냥이 있었다. 그 박지성은 2002년
포르투갈전을 거치며 심리적인 도약을 경험한다. 우리의 뇌리에 생생하게 기억되고 있는 포르투갈전
그 골이 양박쌍용의 심리적 출발점이었다. 그 골은 박지성에게 경기장에서 어떤 상대를 만나도
여유를 선물했고 그 여유는 에레디비지에, 프리미어리그에서 성장하는 동력이 되었다. 그렇게 박지성
에게 대한민국 축구선수의 유전자에 각인되어온 세계축구에 대한 두려움 유전자에 변이가 일어났다.
그리고 그 변이는 공명을 일으켜 다른 축구선수의 유전자와 경기장에서의 행태에 변화를 일으켰다.

박지성을 위시한 다른 선수들의 변이는 새롭게 축구를 시작하는 어린 선수에게 유럽의 메이저 리그도
해볼만하다는 대리 경험을 통한 자신감 형성의 단초를 제공했고, 박지성의 성장에 고무된 어린 선수
들은 어렵지 않게 유럽리그를 꿈꿀 수 있었다. 한편 박주영에게 월드컵은 아릅답지 못한 기억이다.
2006년 스위스와의 경기에서 너무도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고, 그 무기력의 트라우마를 박주영은 2년
남짓 앓았다. 그렇게 심리적 좌절을 겪으면서 박주영은 성장했고 다시 팀의 주축으로 대~한민국에
섰다. 이 월드컵은 박주영의 축구 인생에 중대한 갈림길이 될 것이다. 자신의 플레이를 한다면 다시
도약을 일으키겠지만 혹 지난 스위스전의 트라우마가 덧난다면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청용, 기성용은 지금까지의 축구선수와는 다른 경로로 선수생활을 해오고 있다. 그래서 자유롭다.
대~한민국 축구선수에게 부족하다고 지적되었던 창의적 플레이, 생각하는 플레이의 답을 가진 선수들
이다. 중학교 때 이미 FC서울에서 훈련을 시작해 학원축구의 평준화된 훈련을 받은 선수와는 다르게
다른 축구를 보고 자랐고,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격려해주는 분위기에서 운동을 해왔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을 경기장에서 실현하는데 거침이 없다. 그리고 어떤 대~한민국 선수보다 볼 컨트롤이
좋다. 이렇게 유럽리그라는 개인적 목표와 박지성이라는 성공 사례, 개인의 역량이 어우러져 기술적,
전술적, 심리적 도약을 일으킨 진화된 선수가 성장하게 되었다. 이 도약의 발판에는 박지성의
포르투갈전 골이 있었고, 그 골의 영향은 수비를 완전히 읽고 상황을 점령해 만들어낸 이청용의
프리미어 리그 데뷔골에서 확인된다. 대~한민국 팀의 2010월드컵 최대의 수혜선수는 월드컵 경험만
추가하면 선수로 성장할 조건을 대부분 충족시키게 될 이청용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감독 허정무

2010월드컵의 보이지 않는 최대의 실험은 감독 허정무이다. 2002년 히딩크, 2006년 아드보카드에 이어
도약이 일어난 대~한민국 팀의 최초의 내국인 감독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2006월드컵 후 다음 월드컵
감독은 국내 지도자 중에 누군가를 선택했으면 하는 욕심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축구의 시설
인프라, 선수의 역량 등 축구 도약을 위한 제반 여건이 개선을 넘어 도약에 이르렀는데, 지도자
영역만이 오히려 정체되어 있는 현실적 제약이 너무도 크게 다가왔다. 결국 대~한민국 축구가 변화
하기 위해서는 팀이 변해야 하고, 팀이 변하기 위해서는 선수가 변해야하고 선수가 변하기 위해서는
지도자가 변해야 한다. 결국 경기력 향상 생태계의 출발점이 지도자이기 때문에 지도자가 변하지 않고
변화를 기대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낮다. 또한 월드컵의 승리나 성적의 결실 역시 대~한민국
 선수는 경험했지만 대~한민국의 지도자는 경험하지 못해 선수나 지도자의 괴리가 커져가는 치명적
문제로 작용한다.

허정무의 도전은 보이지 않지만 대~한민국 축구를 위해, 허정무의 성공은 대~한민국 지도자의 지도력
자신감을 향상시켜 주기에 의미가 크다. 또한 허정무의 도전 자체가 대~한민국 지도자의 상실감을
보상해주는 커다란 동인이 될 것이다. 2010 허정무의 경험은 대~한민국 지도자에게 지도자 스스로를
돌아보는 또 한 번의 계기를 제공할 것이고, 이 계기는 방향만 적절하다면 대~한민국 축구 도약의
촉매가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2010 허정무의 도전을 맹목적으로 지지해야 한다.


맹목의 진화와 퇴화

대~한민국 허정무에 대한 맹목은 어떤 결과를 낳을까? 허정무이기 때문에 맹목이 아니라 내국인
지도자이기 때문에 맹목이다. 내국인 지도자에 대한 지지는 편협한 국수주의라는 목적이 아니라
축구를 도약시키기 위한 대~한민국 지도자 변화의 수단이다. 붉은 악마를 기억한다. 맹목적으로
대~한민국 축구를 추종하던 그 붉은 악마에게 이제 맹목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기업에 점령당한
응원 공간을 서울시청에서 코엑스로 옮기기도 하고 기업이나 정치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맹목이
진화해 합리적 판단과 결정을 하곤 한다.

 
2002년 4강의 기억이 너무 강렬했던 탓일까? 대한민국 국민의 대~한민국 팀에 대한 기대수준은
4강에 맞추어져 있다. 그래서 16강 정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만도
대~한민국이 속한 조의 다른 세 팀의 FIFA 랭킹을 모두 더해도 대~한민국 랭킹보다는 작은 수가 되는
현실에서 세계 축구의 벽을 실감한다. 목표를 높게 잡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지나치게 높은 목표는
실패의 반복으로 이어지고 장기적으로 무력감을 형성해 목표 자체를 버리게 한다.

2010월드컵, 16강에 진출하면 정말 좋은 성과이고 혹시나 8강, 4강에 진출한다면 엄청난 성과이다.
붉은악마를 자처하면서 대한민국 대표팀의 월드컵 16강을 당연시 여기는 누군가가 있다면 현실과
가능성을 분명하게 인식시켜 주자. 대한민국 대표팀의 월드컵 중기목표는 16강! 또 배울 수 있는 기회
가 2010년 대~한민국 축구에 주어졌다. 월드컵 성과보다는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한 경기 한 경기 차분하게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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