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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축구, 건강한 상호의존성이 경쟁력이다

 

 

 

 

 

남북한 축구가 오랜만에 최근 일본 도쿄에서 맞대결을 가졌다. 2017 동아시안컵에서 남북한은 남녀 각각 경기를 가져 1승씩을 주고 받았다. 남자에서는 한국이 1-0으로 이겼고, 여자서는 북한이 1-0으로 승리했다. 남녀가 대등하게 1승씩을 나눠가진 셈이다. 이번 남북한 축구 대결은 남북한 안보 상황 위기가 최고조로 치달은 상황에서 벌여져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2017 동아시안컵 중국전에서 득점에 성공한 김신욱과 이재성 - 출처 : 대한축구협회>

 

 

남북한은 해방이후 정치적, 군사적으로 첨예하게 대결했다. 6· 25 전쟁에서 많은 희생자를 낳았고, 천여만명이 이산가족의 아픔을 겪었다. 북한에 의한 수많은 도발로 한국은 혼란과 위기상황을 맞기도 했다. 남북한은 지난 수십년간 적대적 관계를 심화시켰다. 최근에는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감행하며 남북대결 국면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정치적으로는 해로운 상호관계에 놓인 남북한이지만 스포츠, 특히 축구서는 건강한 상호의존성으로 함께 발전해와 대조를 이룬다. 남북한이 축구라는 시스템에서 모든 부분을 함께 성장해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축구에서만큼은 남북한이 상호 건강하게 경쟁하며 발전을 해왔다.

 

 

북한 축구는 세계최고 무대인 월드컵에서 한국보다 먼저 세계인들을 놀라게 했었다. 북한은 한국보다 경제력과 국력이 전반적으로 우세했던 1960년대 세계 축구의 중심에 우뚝 섰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아시아 대표로 출전해 예선에서 강호 이탈리아를 1-0으로 물리치고 사상 처음으로 8강에 진출하는 성과를 이뤘다. 북한 축구의 영웅 박두익을 중심으로 한 북한 축구는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사다리 전법이라는 세계 축구사에 특이한 전형을 만들어 세계 강국들과 자웅을 겨뤄 손색없는 전력을 보여주었다. 북한 축구가 세계 8강에 오른 것은 북한 사람 전체를 하나로 묶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북한 축구의 약진에 자극받은 한국은 1960년대말 중앙정보부에서 직접 축구팀을 운영하면서 대표팀 육성에 적극 나섰다. 1970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한국 축구는 북한과의 축구 대결에서 자신감을 갖고 정면 승부를 펼쳤다. 1978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공동우승을 차지한 남북한 축구는 이후 대표팀, 청소년팀 등에서 여러 차례 대결을 했는데, 거의 대등한 실력을 보였다.

 

                                     <2017 동아시안컵 순위 (1차전) - 남자부,여자부 -출처 : 동아시아축구연맹><2017 동아시안컵 순위 (1차전) - 남자부,여자부 -출처 : 동아시아축구연맹>

 

 

남북한 축구가 대결만 한 것은 아니었다. 1990년 북경아시안게임 직후 남북한 관계가 호전되면서 남북한 축구는 남북을 하나로 잇는 평화의 상징이 됐다. 1990년 말 통일축구가 평양에서 벌어졌으며, 1991년 포르투갈 세계청소년 축구선수권대회에 남북 단일팀을 구성해 참가, 8강에 오르는 쾌거를 이룩했다.

남북한 경기를 통해 좋은 경기력을 쌓았던 한국축구는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사상 초유인 4강 성적을 올리며 전 국민을 열광하게 했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한국축구대표팀은 당초 16강을 목표로 했으나,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각각 꺾고 4강에 진출할 수 있었다. 히딩크 감독의 뛰어난 지도력,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 국민적인 성원이 큰 힘이 됐던 것이다. 남북한간의 지속적인 경쟁관계도 한국축구를 강하게 만드는데 적지않은 활력소가 됐던 것이 사실이다. ·일월드컵 4강 진출은 북한이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8강에 진출했던 것처럼 한국민들을 하나로 통합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5천만 국민이 붉은 악마로 태극기를 휘날리며 거리응원으로 하나가 됐다.

 

 

<2017 동아시안컵 북한과 일본의 경기모습 - 출처 : 동아시아축구연맹>

 

그동안 남북한 축구는 북한 국적의 재일동포 선수들이 한국 프로축구에서 활약하며 실질적인 교류를 가져왔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북한 대표로 출전해 개막전에서 감동의 눈물을 흘렸던 정대세는 K리그 수원 삼성에서 뛰기도 했다. 정대세는 한국 국적 아버지와 북한 국적 어머니 사이에서 난 재일동포로 한국프로축구에서 수년간 활동하다가 은퇴, 현재는 한국 TV에서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 일본 오카야마현 출신으로 북한 국적을 가진 안영학은 부산 아이파크와 수원 삼성에서 그라운드를 누볐다.

2017 동아시안컵에서도 북한팀에는 재일동포 3명이 포함돼 있었다. 효고현 출신의 마치다 젤비아 팀 중앙수비수 김성기(29), 로아소 구마모토의 전방 공격수 안병준(27), 오사카 태생으로 현재 가마타마레 사누키의 수비수로 활약 중인 리용직(26) 등이다.

 

 

기업철학자인 미국의 도브 사이드먼은 건강한 상호 의존성을 가진 시스템에서는 그것을 구성하는 모든 부분이 함께 발전하고, 해로운 상호의존성을 지닌 시스템에서는 모두가 함께 추락한다고 말했다.

남북한 관계를 살펴보면 정치에서는 남북한이 극심한 대결로 미국, 일본, 중국 등 다른 나라들로부터 우려와 걱정을 주지만, 축구라는 스포츠 경기를 통해서는 건강하게 상호 의존적인 관계를 작동하며 함께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남북한이 축구만큼만 하면 좋을텐테, 현재 돌아가는 안보상황은 결코 그렇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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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학수

 

 

한국의 이상화, 노르웨이의 하버드 홈메요르드, 독일의 모리츠 가이스라이터(왼쪽으로부터). 뉴욕타임스 제공

 

 

  “ 동계올림픽 시즌마다 모두가 숨겨진 보석을 찾고 있습니다. 올 시즌은 파란색 유니폼입니다.”
  세계빙상 강국 네덜란드의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간판스타 다이 다이 탭의 말이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서 강력한 금메달 후보로 예상되고 있는 그는 “승리가 가장 큰 목표이기 때문에 파란색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하는 것이 유리하다면 전통적인 오렌지색 유니폼을 입는 네덜란드도 변화를 고려해 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올 동계시즌 난데없이 ‘파란색 유니폼’ 논란이 뜨겁다. 지난 12월 12일자 미국 뉴욕타임스 인터넷판은 “파란색이 가장 빠른 색”이라며 한국, 노르웨이, 네덜란드 등 스피드스케이팅 강국의 선수들 사이에서 파란색 유니폼 입기가 유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을 두 달여 앞두고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은 아니지만 파란색 유니폼을 입으면 빠른 스피드를 내기가 유리하다는 믿음이 메달이 유력한 일부 국가 선수들 사이에서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노르웨이 스타방게르에서 벌어진 올 시즌 첫 월드컵 대회에서 한국의 이상화를 비롯해 노르웨이, 독일 선수 등 톱랭커들이 파란색 유니폼을 입고 출전, 스피드스케이팅 팬들과 다른 경쟁 선수들의 주목을 끌었다. 그동안 한국 선수들은 전통적으로 파란색 유니폼을 입었지만, 노르웨이, 독일 선수들은 다른 색 유니폼을 착용했다.


  오랫동안 붉은색 유니폼을 입었던 노르웨이 선수들이 파란색으로 바꾼 것은 충격이었다. 역대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에서 네덜란드(금 105개)에 이어 금 80개를 획득해 종합 2위를 유지하고 있는 세계적 강국 노르웨이가 국가대표 유니폼 색깔을 바꿨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이는 미국 메이저리그 최강 뉴욕양키스가 전통적인 줄무늬 유니폼을 물방울 유니폼으로 교체한 것과 같은 ‘이변’이라고 전했다.


  네덜란드의 스프린터 하인 오터스피어는 “노르웨이 선수들의 전통적인 색깔은 빨간색이었다. 사람들은 현재 파란색이 다른 색보다 더 빠르다고 말하고 있다”며 “약간 이상한 이론같지만 그들은 이것을 시험해 보고, 결과적으로 붉은 색보다 파란 색이 더 낫다는 결론을 얻었을 것이다”고 밝혔다.

 

  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는 1만m 경주를 벌이고, 단거리에서는 100 분의 1 초 단위로 금메달 색깔이 결정된다. 세계 각국은 스케이트 날과 부츠를 연결하는 경첩의 구성에서부터 유니폼 후드의 공기 역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가능한 과학적 이점을 확보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경쟁을 벌인다. 새로운 장비가 나오면 여러 번의 테스트를 거쳐 실전에 투입한다. 지난 2014 소치동계올림픽에선 미국 항공기 제조사 록히드 마틴이 경기용 슈트를 개발, 미국 선수들에게 착용토록 했고, 언더웨어업체 언더아머는 울퉁불퉁한 소재의 유니폼을 선보이기도 했다.


  파란색이 더 빠르다는 새로운 개념에 대해 선수들 사이에선 찬반이 엇갈리고 있는 모양이다. 일부 선수들은 전혀 터무니없다고 반발하고, 많은 선수들은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노르웨이 스케이터 헤지 보코는 지난 달 새로운 파란색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가진 뒤 “빨간색때보다 더 빠른 것 같다. 나도 파란색 유니폼의 효과를 믿는다”며 “단정적이지는 않지만 파란색이 더 유리하다. 한국과 독일 선수들도 파란색을 입는 것이 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밝혔다.


  색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하는 전문가들도 파란색 논란에 확증적으로 유리하다고 밝히지는 않지만 심리적인 효과는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미국 노스캐로라이나주립대 렌조 새미 교수는 “동일한 성질을 가진 유니폼이 색깔에 따라 다른 공기역학 반응을 일으킬 지 여부는 상상하기가 어렵다”며 “하지만 파란색이 더 빠르다는 이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기도 결코 쉽지 않다”며 심리적인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을 가능성을 얘기했다.


  영국 리즈대학교 색과학 교수 스티븐 웨스트랜드는 “색깔과 유니폼의 물리학 사이에는 연관성이 불분명하지만 많은 연구 결과는 색이 심리적 관점에서 성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미국팀 정비기술자이며 전 스키대표선수였던 크리스 니드햄은 수년 전 미국 뉴욕 레이크플래시드 올림픽훈련센터에서 한 스키선수에게 “왜 많은 스키 선수들이 오렌지 색 유니폼을 입느냐?”고 물었다. 선수의 대답은 간단했다. “오렌지 색이 더 잘 날으니까”였다.


  백분의 1초, 간발의 차이로 승부가 갈라지는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강력한 경쟁 상대들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색깔을 입고 좋은 경기력을 발휘한다면 심리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에서 한국의 이상화를 비롯해 홈링크의 선수들이 파란색을 입고 금메달에 자신감을 내비친 것이 독일, 노르웨이는 물론 네덜란드 등 한국의 경쟁 선수들에게도 심리적으로 적지않은 부담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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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학수

 

 

  파란눈, 갈색머리의 러시아 여대생과 빅토르 안, 평창동계올림픽이 잘 어울렸다. 러시아에서 유학 온 20대 초반의 이국적인 여성은 동영상에서 배시시 웃으며 또렷한 한국말로 말했다. 4년전 소치동계올림픽에서 한국에서 러시아로 귀화한 빅토르 안 때문에 러시아가 종합 1위를 차지한 뒤 한국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한국 유학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고 설명하며 평창동계올림픽이 소치처럼 새로운 감동을 낳기를 기대했다. 1분 안팎의 짧은 동영상이었지만 잘 다듬어진 스토리와 적절한 등장 인물, 배경 화면 등은 수준급이었다.


  한국스포츠미디어학회(회장 원영신 연세대 교수)는 지난 11월 24일 연세대 스포츠과학관에서 평창동계올림픽 붐 조성을 위한 UCC 공모전 시상식을 가졌다. 스포츠미디어학회는 지난 9월말부터 1개월간 전국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평창동계올림픽을 알리기 위한 홍보 동영상 공모전을 통해 수상작을 선정했다. 이날 대상은 아주대학교의 임승현, 보트칙 나탈야(러시아)가 차지해 상금 1백만원과 상장의 영예를 안았다. 우수상은 연세대 강승우 등 7명이 공동 수상, 상금 50만원과 상장을 받았으며, 장려상은 상명대 김승재 등 3명, 동양미래대 정수희 등 2명이 각각 수상, 상금 30만원과 상장을 각각 받았다.


  3개월여 앞으로 다가 온 평창동계올림픽 홍보를 위한 대학생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출시된 동영상들은 1분 또는 30초 안팎으로 평창동계올림픽 홍보마케팅에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수준작이었다는게 심사위원들의 대체적인 평가이다.


  대상을 차지한 아주대팀은 러시아 유학생 나탈야가 직접 동영상에 출연해 귀엽게 재미있는 표정으로 한국과 동계올림픽과 관련한 개인적 인연을 설명하며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을 기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나탈야는 동영상에서 “4년전 소치올림픽에서 쇼트트랙 빅토르 안 선수 때문에 러시아가 종합 1위를 했어요. 올림픽은 모르는 사람을 서로 가깝게 만들어요. 소치올림픽을 보고 한국이 더 좋아졌어요. 지금 저는 한국의 아주대학교에 유학왔어요. 한국에 오는 저의 꿈이 이루어졌어요,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소치처럼 새로운 감동을 기대해요”고 말했다.


  아주대 경영대에서 공부하는 나탈야는 수상 소감에서 “대상을 받을 줄은 정말 몰랐다. 한국이 더욱 좋아졌다”며 “100만원이라는 큰 돈을 상금으로 받으니 너무 기쁘다. 같이 동영상을 제작한 한국 친구와 같이 수상 축하 외식을 하고, 남은 돈으로 내년 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경기 입장권을 사서 직전 경기를 보고 싶다”며 환한 표정을 지었다.


  우수상을 받은 연세대 학생팀이 제작한 동영상은 대학생 특유의 발랄함과 재치가 묻어났다. 나무블럭으로 하는 ‘젠가’놀이로 알아보는 평창동계올림픽이라는 제목으로 두 여학생이 슬로건을 재미있고, 슬프게 말하기, 경기종목 더 많이 말하기. 평창올림픽 응원하기 등의 게임을 펼친 뒤 ‘내년 2월 평창으로 오세요’라며 마지막 멘트를 했다.


  장려상의 상명대팀은  ‘2018 평창을 당신에게’라는 제목의 동영상에서 그동안 평창동계올림픽의 유치과정과 스피드스케이팅, 봅슬레이 한국 선수단의 훈련모습을 보여주며 피와 땀과 눈물로 준비한 평창동계올림픽을 국민 모두가 한마음으로 응원을 하자는 내용을 담았다.


  장려상의 동양미래대팀은 ‘GO PYEONGCHANG AND SHARE THE PASSION!’라는 제목을 달고 어린 유망주들이 아이스하키, 스피드스케이팅, 컬링, 피겨스케이팅 등 좀목에서 훈련에 몰두하며 미래 동계올림픽을 꿈꾸는 내용을 종목별로 삽화 그림과 함께 정감있게 표현했다.


  원영신 한국스포츠미디어학회장은 “1988년 서울올림픽에 이어 30년만에 한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인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을 위해 국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성원을 모으기 위해 공모전을 마련했다”며 “기대 이상으로 좋은 작품들이 많았다. 대학생들이 평창동계올림픽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대상을 받은 작품은 세계화, 글로벌화하는 한국의 위상을 잘 표현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스포츠미디어학회는 이번 공모전에서 수상한 동영상 등을 유튜브, SNS와 네이등 포탈사이트 등을 통해 많은 이들을 공유할 수 있도록 배포할 계획이다. 

 

 

(대상) 아주대학교

 

(우수상) 연세대학교

 

(장려상 1) 상명대학교

 

(장려상 2) 동양미래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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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종열

 

 

  체험은 책이나 인터넷에서는 얻을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 눈앞의 현장을 직접 보고 들음으로써 마음속에 깊은 인상을 남기기 때문이다. 이제 막 학교를 졸업하여 예비사회인이었던 나에게 이번 해외연수는 더 큰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힘들었던 순간 잠시나마 짐을 내려놓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큰 꿈을 꾸어볼 수 있었다. 체육인재아카데미 ‘체육인재 해외 선진스포츠 체험 연수’ 후기를 소개한다.

 

1. 연수배경
  올해 6월부터 9월까지 약 13주 동안 체육인재아카데미의 챌린저코스를 수강했었다. 체육전공자들의 사회진출을 도와주기 위해 마련된 이 과정에서 출석과 진로계획 발표를 참작하여 총 7명의 우수교육생이 선발되었다. 나 또한 그 중 한 명에 포함돼 ‘체육인재 해외 선진스포츠 체험 연수’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2. 연수내용

  연수는 11월 25일부터 12월 2일까지 총 6박 8일의 일정으로서 3일은 캐나다, 3일은 미국에서 진행되었다. 단순 방문이 아닌 시설 매니저와의 투어, UBC 대학 학과장과의 면담, 프로 스포츠관람, 국내 교환 교수님의 강의 등 입체적으로 선진스포츠를 체험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경험을 대학스포츠, 생활스포츠, 엘리트스포츠 3분야로 나누어서 소개하고자 한다.

 

 

  1) 학생 스포츠 환경을 위한 대학의 노력 _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사진1 _ UBC 실내 빙상경기장 앞에서 단체사진                                    사진2 _ UBC 실내수영장 견학 중인 모습

 

 

  첫째, 각 스포츠시설 관리자들의 전문성이 눈에 띄었다. 특히 Aquatics Centre 수영장을 소개해준 Stephane Delisle 매니저가 인상 깊었다. 그는 건물의 특징부터 다양한 수영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깊이 있는 지식으로 수영장 구석구석을 소개해 주었다. 수영장 내에 위치한 스터디 룸, 커뮤니티 시설 등을 그가 직접 기획했다고 한다. UBC 스포츠 시설에는 이러한 역량 있는 매니저들이 팀 단위로 근무하고 있었다. 대학에서 스포츠 시설 관리 인력에 아낌없는 투자를 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둘째, UBC의 스포츠 기반 환경이다. 우리 연수생 모두는 UBC에 들어서며 다양한 스포츠 시설들에 놀라는 동시에 부러움을 느꼈다. 겉으로 보이는 잔디운동장만 하여도 10여 개 정도 되었고 종합스포츠센터 안에는 3개의 빙상경기장이 선수용과 학생용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물론 모든 학생이 무료로 빙상경기장과 수영장을 사용할 수 있었다.

 

  UBC 방문을 통해 국내 대학의 스포츠 환경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국내 대학의 경우 스포츠 시설의 절대량 자체가 적다. 스포츠 시설이 있다 하더라도 일반 학생용이 아닌 운동선수들에 한정되어 개방된 공간이 많다. 스포츠 시설을 더 짓기를 고민하기보다 다른 건물을 짓기 위해 없애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학생들은 대학에서 스포츠를 접할 기회가 적어지게 되고 스포츠에 대한 흥미도 떨어지게 된다. 국내 대학에서도 스포츠 환경을 적극적으로 보장해주길 바라는 희망과 함께 대학평가에 스포츠 환경이 포함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2)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올림픽 유산 _ Richmond Olympic Oval

                                    사진3 _ OVAL앞에서 단체사진                                              사진4 _ 관중석을 피트니스 시설로 개조한 모습
 


  Richmond Olympic Oval 경기장 견학은 평창올림픽의 유산활용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시설 매니저를 만나 Oval의 시설들과 올림픽 박물관을 견학하였다. Oval은 밴쿠버 올림픽 때 빙상경기장으로 사용된 경기장이다. 김연아 선수가 피겨스케이팅 금메달을 딴 장소이기도 하다. 리치먼드 지방정부는 올림픽이 끝난 후 이 빙상경기장을 적극적으로 개조하여 지역주민들에게 개방하고 있었다. 가장 눈에 띄었던 점은 빙상경기장을 과감하게 없앤 점이었다. 빙판이 있던 위치에는 지역주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농구장, 탁구장, 미니 아이스하키장과 같은 스포츠 시설들이 들어와 수입을 창출하고 있었다.

 

  관람석이 있던 자리에는 피트니스 시설과 올림픽 박물관이 들어와 있다. 리치먼드 지역주민의 경우 이러한 시설들을 연간 약 250달러의 회원비로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Oval을 견학하며 자연스럽게 평창올림픽의 유산활용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남은 시설에서 어떻게 수익을 창출할 것인지가 지금의 가장 큰 화두일 것이다. 지역의 사무는 그 지역에서 담당해야 지역 특색에 맞는 행정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과 캐나다의 경우 지자체가 올림픽 시설을 민간에 위탁하여 더욱 전문적인 스포츠 센터로 운영하기도 한다고 한다. 평창올림픽 이후의 강원도 각 자지 단체가 수입창출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민하여 Oval 와 같이 성공적인 올림픽 유산으로 남길 희망해 보았다.

 

 

  3) 구단의 콘텐츠화 _ LA 다저스 스타디움

                               사진5 _ 다저스 스타디움 관람석에서 단체사진                                         사진6 _ 투어가이드와 역사관 탐방     

 

 

   다저스 투어가이드와 함께 스타디움의 역사관, 중계석, 그라운드 등을 견학하였다. 다저스 구단은 구단의 모든 역사를 콘텐츠화 시켜놓고 있었다. 티켓의 역사, 수상기록, 역사적 해설가 등을 다저스 스타디움 역사관에서 기념하여 팬들에게 단순한 야구관람 이상의 스토리를 전해주고 있었다. 그러한 스토리가 있기에 미국 어린이들의 우상이 되고, 누군가에겐 삶의 일부가 되기도 하는 것일 것이다. 또한, 스타디움은 시합을 단순히 보기만 하는 장소가 아닌 시간을 보내기 위한 장소로 역할을 하고 있었다. 1층에는 경기 전후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카페테리아가 마련되어 있었고 2층에는 vip룸이 마련되어 있었다. 


  한국 프로스포츠 구단도 시설 측면에서는 LA 다저스와 크게 다를 점이 없다고 느꼈다. 오히려 국내 구단 시설이 더 좋게 느껴졌다. 예를 들어 SK 와이번스의 전광판이나 인천유나이티드의 VIP룸, 경기 관람을 동시에 이용할 수 있는 반 지하 카페테리아 등이 그러하다. 하지만 콘텐츠에서만큼은 국내 구단에서 더 노력해야 할 것으로 생각했다. 물론 구단에서 노력을 하고 있겠지만 아직 소비자들에게 구단의 역사, 역사적 사건 등이 잘 전달이 되고 있지 않음을 느낀다.

 

  이번 다저스 스타디움 방문을 통해 다저스의 구단의 콘텐츠화를 위한 노력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경기장이 단순한 경기를 위한 장소가 아닌 시민들이 시간을 보내는 여가 공간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3. 연수소감
  이번 연수과정에서 좋았던 점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다양성
  생활 스포츠, 엘리트 스포츠, 대학 스포츠 모두를 균형 있게 견학할 수 있었다. 우리 연수생 모두는 각자 관심 있는 진로 분야가 조금씩 달랐다. 엘리트 스포츠와 관련된 진로를 희망하는 사람도 있었고 나처럼 생활 스포츠에 더욱 관심이 많은 사람도 있었다. 어떤 한 분야에 편향되지 않게끔 프로그램이 짜였던 점이 연수생 모두에게 도움이 되었다.

 

둘째, 전문성
  주요 탐방 시설을 담당 매니저들과 함께하였다.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 질문을 통해서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었다. 또한, 인솔자로 함께 간 공단 관계자분들의 추가적인 질문과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현업을 바탕으로 나오는 질문이기에 연수생들에게 놓친 질문들을 해주어 큰 도움이 되었다.

 

마치며...
  나를 포함해 연수생 7명 모두는 스포츠 업계로 사회진출을 희망하는 예비사회인이었다. 우리는 선진스포츠 환경을 보고 부러움을 느낌과 동시에 한국 스포츠 환경에 대해 아쉬움을 느꼈다. 하지만 어쩌면 그러한 아쉬움이 가장 큰 소득이었지 않나 싶다. 언젠가 한국스포츠 환경도 변화할 수 있다는 큰 꿈, 그리고 그것이 우리 연수생들이 도전해야 할 일임을 마음속에 담아왔기 때문이다. 이제 챌린저 코스의 수료생들은 이름 그대로 모두 도전자이다. 한국 스포츠의 더 나은 미래를 향한 모든 수료생의 도전을 응원한다. 끝으로 예비사회인들에게 좋은 기회를 주신 국민체육진흥공단 스포츠개발원 체육인재아카데미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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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학수

 

 

  때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 사격 여자 공기소총에 출전한 강초현은 한국선수단에 첫 은메달을 선사했다. 본선서 397점을 기록하며, 올림픽 타이기록을 갖고 1위로 결승에 오른 강초현은 결선 8번째발까지 1위로 달렸지만 9발째 사격에서 미국의 낸시 존슨에게 동점을 허용하고 마지막 한발에서 0.2점차로 밀려 역전을 당하고 말았다. 그녀가 은메달을 확정하는 순간, 고개를 떨구고 안타까운 모습으로 눈물을 흘리던 모습을 많은 국민들은 TV로 지켜봤다. 시상대에서는 환한 표정으로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던 그녀는 경기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초롱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이후 엄청난 신드롬을 일으키게 되는 순간이었다.

 

 

 

 

  해방이후 처음 올림픽에 출전한 1948년 런던올림픽에서부터 가장 최근 열린 2016년 리우올림픽까지 한국이 지난 68년동안 동·하계 올림픽 출전에서 획득한 금메달수는 총 115개로 집계됐다. 선수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얻어진 값진 결과물인 올림픽 금메달에는 역사적, 사회적 상황에 따른 여러 스토리가 담겨있다. 지난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해방이후 첫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 레슬링의 양정모는 일약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으며, 2012 런던올림픽에서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한국의 올림픽 100번째 금메달을 차지했을 때, 대부분의 국민들은 한국이 스포츠 강국으로 우뚝 섰음을 느낄 수 있었다.

 

  수많은 금메달리스트가 쏟아졌음에도 불구하고 2000 시드니올림픽 은메달리스트 강초현이 많은 국민들의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당시 언론들이 그녀를 크게 보도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경기장 안팎에서 다양한 화제를 불러 일으키며 많은 주목을 받게 되면서 아직까지도 사람들의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보다도 더 국민들의 사랑을 받은 강초현 사례는 올림픽 보도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생각하게 한다.

 

  그동안 신문과 TV 방송으로 대표되는 빅 미디어를 중심으로 한국 언론은 많은 올림픽을 보도하면서 국민들의 올림픽에 대한 인식과 태도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 언론은 운동 선수들의 최고 무대인 올림픽에서 다양한 이데올로기와 이미지를 생산해냈다. 언론이 주체가 돼 국민들을 상대로 다양한 담론을 만들어낸 것이다.

 

  한국 언론은 어떻게 올림픽 대상에 대한 보도를 하며, 보도를 통해 어떤 담론을 생산하는가?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의 이론에 따르면 언론들은 각 시대와 사회의 필요에 따라 기사를 통해 사람들의 생각과 의식을 내면화시킨다고 한다. 사람들의 사고영역을 특징짓는 담론은 시대적, 역사적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데 언론들은 기사라는 장치를 통해 사람들에게 특정한 담론을 전파한다는 것이다.

 

  한국 언론은 그간 올림픽 참가국간의 경쟁을 유도하며 메달 집계에 주력하고, 올림픽 스타를 영웅화시키고, 민족주의, 국가주의를 부각하며 상업주의를 전파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언론 보도의 담론적 유형은 크게 민족주의, 국가주의, 세계주의, 개인주의로 요약해 볼 수 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레슬링의 양정모가 첫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기이전까지는 올림픽은 참가하는데 의의를 두면서 민족과 국가의식을 고취하는 기사를 많이 보도했다. 언론들이 태극기, 우리 선수단, 조국등의 단어를 많이 보도한 게 이러한 반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84LA올림픽에서부터 본격적인 금메달이 쏟아지기 시작하면서 언론들의 보도 경향은 세계화, 글로벌화에 대한 시각을 넓히는 방향으로 옮겨갔다. ‘세계 최강, 일등주의, 별중의 별, 진정한 올림픽 영웅등으로 단지 정보를 전달하는 차원을 넘어서 세계적인 수준과 대등한 한국스포츠의 위상을 부각시켰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다채널, 다매체 시대를 맞은 2000년대 들어서는 올림픽 보도의 주체였던 언론의 상황에 많은 변화에 일어나면서 올림픽 보도 양상에도 새로운 흐름이 등장했다. 국민들도 TV와 신문 등을 보면서 인터넷, 스마트폰 등을 통해 자신들의 생각과 의견을 밝히면서 담론 형성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것이다. 언론들이 개인 선수들의 스토리를 발굴, 보도하며 국가 중심, 메달 중심, 목표 중심에서 선수 중심, 인간 중심으로 옮겨가는 모습은 이러한 변화의 일례이다.

 

  세계는 이제 하나의 사상, 하나의 시대정신이 지배하던 시대는 아니다. 올림픽에서 이기고, 지는 것 못지않게 얼마나 가치있는 인간적 행위를 하느냐에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며 성 소수자, 장애인, 인종 차별 등 여러 사회적, 문화적 요인들이 중요한 문제로 자리잡았다.

 

  앞으로 한국 언론은 올림픽 보도에서 국가주의, 민족주의, 세계주의 등 거대 담론의 보편주의를 넘어서 숭고한 인간적 가치와 품격을 높이는 주체적인 생각과 사유를 깊게 하는 방향으로 시각을 옮겨가기를 바란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 이어 30년만에 개최하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따뜻한 인간미 넘치는 보도가 많이 쏟아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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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은애

 

 

  30년 넘게 운동을 좋아하긴 했지만 “리더”라는 단어는 너무나 생소했던 나에게 우연한 계기로  여성스포츠리더 육성사업을 알게 되었다. 항상 스포츠인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여성 스포츠에 ‘리더’라는 단어는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 역시 리더는 당연히 ‘남자’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다.


  2년 전 지인의 소개로 여성리더 교육과정에 대해 들었지만 올해 교육을 지원하고 면접을 기다리는 순간에도 나는 망설였다. 너무나 다양한 경력의 교육생들이 모인다는 것도 나를 움츠러들게 하였지만 지방에서 서울까지 10주간의 주말교육을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 때문이었다. 교육 기간동안 세 명의 자녀들은 어디다 맡기고 가야하며 태권도학원을 운영하며 품새 심판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주말마다 있을 행사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등 설렘보다는 수 백 가지 고민을 안고 한 번 부딪쳐 보자라는 생각으로 시작된 교육이 나의 고민들과는 달리 너무나 새로운 경험들로 눈 깜짝 할 사이에 지나가버렸다. 교육도 너무 좋았지만 그보다도 각 종목의 선후배님을 알게 되었고, 평생 잊지 못 할 해외연수까지 선물로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2017 여성스포츠리더 육성사업의 5기 해외연수팀은 이은지(남양주시체육회), 김혜리(한국스포츠개발원), 한유경(서울시장애인체육회)은 정말 여성 리더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은 훌륭한 여성체육인들이다. 포항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고 있는 나로서는 만날 기회조차도 없는 각 분야 리더들과 함께 하게 되어 너무 영광이었다.


  체육 강국인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그 이름자체만으로도 너무나 가슴 뛰는 여정을 다함께 공유하기 위해 글로서 적어본다. 이번 연수의 첫 방문기관인 쾰른 독일체육대학교는 휴일에도 불구하고 대학 내 스포츠시설에는 많은 사람들이 운동 중이었다. 국제시합 규격을 갖춘 수영장과 다이빙 전용 풀장, 장애인을 위한 섬세한 체육시설들도 인상 깊었지만 무엇보다도 지역주민들에게 대학 내 시설을 개방한다는 점이 너무나 놀라웠다. 우리나라에서 지역주민들에게 생활체육을 위한 시설개방은 전혀 상상을 할 수 없는 일인데 말이다.

 

 

 


  독일체육대학교의 다양한 시설들을 본 이후 방문한 라인 에네르기 슈타디온(Rhein Energie Stadion) 축구장은 정말 웅장하였다. 독일 스포츠&올림픽박물관(Deutsches Sport & Olympia Museum)은 생각보다 작았지만 150년 스포츠 역사의 1,000건이 넘는 사건과 관련한 스포츠유물 및 기록물이 전시되어 있었고, 전문큐레이터의 재치 있는 설명이 박물관의 지루함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 하였다.
 
  1984년 LA올림픽에서 선수 재활 등의 문제 해결을 위해 시작한 헤센올림픽훈련진로센터 (Olympiastützpunkt Hessen e.V)는  엘리트 선수를 위한 스포츠 의학, 물리치료, 체력 측정, 상담 등 체계적인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어서 우리나라에도 스포츠 선수들의 역량 강화를 위해 이러한 시스템들이 꼭 도입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에서 오스트리아로 넘어간 우리는 동계올림픽을 2번이나 개최한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로 향했다.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곧 개최되는 평창 동계올림픽 때문이었을까 팀원들 모두 피곤함보단 설렘으로 가득 찬 모습이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눈 앞에 펼쳐진 멋진 풍경들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며 베르크이젤 스키 점프대와 악사머리즘 스키장(Axamer Lizum)의 웅장함은 도저히 말로 표현 할 수가 없다.


  인스부르크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잘츠부르크의 KADA Dual Career로 향하였다. KADA Dual Career는 선수의 이중경력 지원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있는 곳이다. 그 곳에서는 너무나 멋진 여성 CEO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KADA는 운동선수들이 현역선수생활을 하면서도 은퇴 후의 인생설계를 하는 정말 멋진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헤센올림픽지원센터에서의 Dual career창시자와 오스트리아 KADA의 여성CEO는 내 인생에 평생 기억에 남을 듯하다. 엘리트선수들이 가장 큰 고민은 누구나 은퇴 후의 진로 및 경력단절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여성이라는 이름과 엄마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꿈을 접고 자신의 재능을 다 펼치지 못하는 한국의 여성 스포츠인에게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Dual career는 너무나 지금 절실한 시스템이다. 현역선수로서 늘 생각해오던 프로그램을 현실로 성공시킨 두 사람처럼 나도 우리나라 스포츠인의 미래를 생각하는 진로시스템과 교육환경을 만드는데 새로운 역할을 하기 위하여 더 많이 공부하고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이 번 연수 기간 내내 들었다.


  세 딸아이의 엄마로서 그냥 평범하게 살아오던 나에게 ‘할 수 있다.’ 라는 또 다른 시작의 메시지를 던져준 여성 스포츠 리더 교육과 해외연수의 기회는 나 하나의 생각이 대한민국 스포츠미래를 이끌어갈 방향을 제시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해주었으며, 짧은 기간이었지만 보고 느끼는 것들이 많았던 시간이었다. 나의 세 딸들도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여성스포츠리더로 성장하길 기대해 본다.

 

 


세딸들과 함께할수 있었던 여성스포츠리더과정 워크샵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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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학수

 

 

  ‘가을 야구시즌이 돌아왔다. 미국, 일본, 한국 등 이른바 야구 삼국에서 정규 시즌을 마치고 최종 승자를 가리는 플레이오프가 한창이다. 이 맘때 야구장의 모습은 상쾌한 한 밤의 수채화와 같다. 화려한 불빛, 짙은 갈색의 잔디속에서 하얀 공이 날아가고 깨끗한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필드와 다이아몬드를 질주하는 멋진 장면을 연출한다. 친구, 연인, 가족들이 올망졸망 모이는 야구장은 낭만과 추억의 장소이다. 서로의 감성을 확인하고 삶의 즐거움을 느끼며 흘러가는 시간을 되돌려 야구장에서 수놓아진 희미한 추억의 그림자를 떠오르기도 한다.

 

  사실 야구(野球)’라는 용어 자체에는 낭만의 이미지가 숨어 있다. 한문으로 들을 의미하는 ()’와 공을 표현하는 ()’를 합성해 들에서 공을 갖고 하는 종목이라는 뜻이다. 거친 운동의 세계를 감성적인 언어로 잘 포장했던 것이다. 일본에서 유래된 야구라는 용어의 역사를 더듬어보면 문학가들의 섬세한 정서를 찾을 수 있다.

 

일본 도쿄의 대표적인 공원인 우에노 공원에 야구라는 용어를 만들어 전파시킨 메이지 시대의 대표적인 국민 문학가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시비에는 시키의 대표적인 하이쿠(俳句) ‘春風やまりをげたき가 새겨져 있다. 우리 말로는 봄 바람, 공을 던지고 싶은 풀밭이라는 뜻이다.

 

일본 도쿄 우에노 공원 옆에 자리잡은 일본 메이지 시대의 대표적인 시인 마사오카 시키를 기념하는 야구장

 

 

  들과 공을 합성시킨 마사오카 시키의 문학성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와 함께 메이지 시대의 낭만주의 문학을 이끌었던 시키는 1888니혼신문에 쓴 베이스볼이라는 문장 속에서 야구 술어를 번역했다. 타자, 주자, 직구, 사구 등이 그것이며, 이미 오늘날까지 일본과 한국에서 쓰는 용어들이 시키에 의해 만들어졌다.

 

  당시 후쿠자와 유키치와 모리 아리노리와 같은 메이지 초기의 사상가들은 밀려드는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며 체육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됐다. 이들은 부국강병책의 일환으로 개인의 신체는 곧 국가의 신체라는 국가주의적 관점에서 여러 용어들과 개념들을 주체적으로 만들었다.

 

  야구라는 용어는 시키의 필명 마사오카 노보루에서 노보루의 일본어 발음 ()’보루(ball의 일본식 발음)를 절묘하게 묶어 만들어졌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일본 야구 초창기 선수로서 활약했던 마사오카 시키는 고향인 시코쿠 마쓰야마에 야구를 전파하고 그 묘미를 세상에 널리 알렸다. 시키의 야구 전파에 영향을 받아 시코쿠의 여러 도시들은 이후 일본 야구를 대표하는 많은 선수들을 배출해 야구의 고장으로 명성을 날렸다.

 

  시인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제시하고 평상시에 쓰는 말로 표현해야 한다는 사실주의 표현을 고수한 그는 도쿄제국대학에서 공부를 하면서도 결핵으로 약해진 자신의 몸을 추스르기 위해 야구라는 운동을 즐기면서 야구에 문학적 감성을 불어넣기 위해 힘을 썼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절친한 친구 나쓰메 소세키도 그의 건강을 걱정하면서도 자산의 문학 작품 대표작 나는 고양이로 소이다에 야구를 서양 문화의 대표적인 요소의 하나로 소개하기도 했다.

 

  야구가 만들어진 역사를 살펴보면 일본 근대 문학가들의 섬세하고 감성적이면서도 국가를 개화시키려는 의지를 느낄 수 있다. 미국에서 건너 온 베이스볼을 받아들이며 새로운 문물을 일본인의 관점에서 내재화시켜 국민들이 이용토록 했기 때문이다.

 

  일본과 같이 정신적인 영역을 중시하는 동양국가이면서도 중국은 일본과 다른 정서를 갖고 있었다. 야구를 봉구(捧球)’라고 표기하는데 막대기 봉를 치는 경기라는 뜻이다. 지적인 낭만을 느낄 수 없고, 눈에 보이는 현상대로 이름을 붙였다. 한국은 1905년 미국인 선교사 질레트가 황성기독청년회 회원들로 구성된 YMCA야구단을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야구가 소개됐는데, 그 당시에는 야구를 타구(打球’)라고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봉구와 비슷한 의미의 단어였다. 한국은 일본이 합병한 이후 일본인들이 만든 야구라는 말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됐으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국내 야구팬들이 야구 용어에서 유래된 지적 낭만을 느끼며 올 가을 야구의 묘미를 더 흠뻑 즐겼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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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학수

 

 

미국스포츠 전문 웹사이트 더 애슬렉틱공동 창업자인 알렉스 매더와 애담 한스만. (뉴욕타임스 제공)

 

  다매체 다채널의 미국 언론시장에서 새로운 스포츠 전문 웹사이트가 태풍의 눈으로 등장했다. 최근 뉴욕타임스보도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더 애슬렉틱(The Athletic)’이라는 스포츠 전문 웹사이트와 앱이 구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으며 인기리에 운영되고 있다. 이 인터넷 신문은 광고를 전혀 게재하지 않고 순수한 스포츠 기사로만 구성됐다는 게 특징이다. 각 지역신문 스포츠면 기사와 프로스포츠 전문 기자들의 기사를 컨텐츠로 올려 미국과 캐나다의 주요 도시에서 성업중이다.

 

  ‘더 애슬렉틱은 지난 20161월 시카고에서 처음 시작했으며 샌프란시스코, 클리블랜드, 디트로이트, 미네소타, 필라델피아, 피츠버그, 세인트루이스 등 미국 8개 도시와 캘거리, 애드먼턴, 몬트리올, 오타와, 토론토, 밴쿠버, 위니펙 등 캐나다 7개 도시 지역 스포츠 섹션을 각각 운영중이다. 미 전역의 스포츠 독자들을 위해서 대학스포츠와 프로스포츠 전문기자를 영입, 수준높은 스포츠면도 꾸려놓았다. 대학미식축구 전문가인 전 폭스스포츠 기자 스튜어트 맨델, 대학농구 전문가인 전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 기자 세스 데이비스, MLB 전문가인 전 폭스스포츠 기자 켄 로센탈, NHL 전문가인 캐나다의 피에르 르브론 등을 주요 필진으로 내세워 심층적인 기사를 매일 올린다.

 

  ‘더 애슬렉틱은 편집 방침으로 독자들이 좋아하는 팀에 대한 독점적인 기사’, ‘미끼 기사, 광고, 팜업 광고 등이 없는 질 높은 저널리즘’, ‘최고의 지역 및 전국 기자들이 제공하는 특별한 컨텐츠’, ‘웹사이트와 모바일 앱을 통한 이용자 친화적인 읽을거리’, ‘전 종목, 도시와 팀에 대한 심층 보도’, ‘회원제 토론과 선수 보도등을 표방, 기존 미디어와 차별화를 모색하고 있다.

 

  ‘더 애슬렉틱은 운동 동호인들과 선수들을 연결해주는 소셜네트워크인 스트라바(Strava)’에서 같이 일했던 알렉스 매더(37)와 애담 한스만(29)이 공동으로 창업, 현재 65명의 편집진이 운영하는 미국 최대의 스포츠 미디어 회사이다. 매더 등은 우리의 야망은 미국 전역 도시에 지역 스포츠 기사를 보도하는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둘은 광고 유치의 어려움을 겪지 않고 고품질의 스포츠 기사로 운영하는 인터넷 스포츠 신문에 승부를 걸기로 하고 함께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좋은 보도와 기사를 위주로 광고없는 깨끗한인터넷 신문을 만든다면 년간 60달러를 기꺼이 내고 싶어하는 열정적인 스포츠팬이 수십만에서 수백만명은 있다고 믿었다. 둘은 벤처 캐피탈로 800만 달러를 모으는데 성공하고 고정적인 구독료를 받는 운영체계를 만들 수 있었다.

 

  ‘더 애슬렉틱이 앞으로 3, 5, 7년 동안 잘 생존할 수 있을까?, 그와 같은 비즈니스 모델이 경쟁력을 갖고 이어갈 수 있을까?라는 의문들이 미국 언론 시장에서 많이 거론되고 있기는 하다.

 

  ‘신문은 죽었다고 말할 정도로 신문은 현재 큰 위기에 처해 있다. 신문은 방송에 이어 인터넷, 모바일 매체에 밀려 점차 구독율이 떨어지고 있다. 젊은이들은 신문을 거의 읽지 않고, 50대 이상의 장년 및 노인층에서만 신문을 보는 현재의 신문 구독 상황은 점차 악화되리라 예상된다. 하지만 더 애슬렉틱창업자들은 신문의 위기 상황을 기회로 반전시킬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 한다. 이들은 기존 신문 구독자들이 하나의 섹션만 읽고도 전체 섹션에 대한 구독료를 낸다며 그동안 저평가된 스포츠면을 좀 더 고급화, 대중화시키면 각 도시마다 다른 섹션에 신경 쓰지 않는 스포츠 팬이 신문 구독을 취소하고 더 애슬렉틱을 이용하게 될 것이라고 에상했다.

 

  ‘더 애슬렉틱이 앞으로의 사업 전망을 밝게 보는 이유는 미국 전역 지역 신문들의 열악한 상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미국 지역신문들은 심각한 재정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기자들에게 임금인상을 해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많은 양의 기사 생산을 강요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스포츠 기자들은 자신들이 커버하는 선수나 팀에 대해 가장 많은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향력 있는 기사를 쓸 기회를 제대로 갖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ESPN,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야후 스포츠, 폭스 스포츠, 블리처 리포트 등 전문 스포츠 사이트 등도 경영난으로 유능한 스포츠 기자들을 금년 봄과 여름 대거 내보냈다. 따라서 스포츠 기자들은 자신의 장래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고 새로운 탈출구를 찾고 있다.

 

  ‘더 애슬렉틱스창업자들은 모든 지역 신문이 무너지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매 순간마다 최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재능있는 스포츠 기자들을 대거 영입하고 지역 신문의 사업들을 극도로 어렵게 만들게 하겠다고 말한다.

 

  ‘더 애슬렉틱는 글로벌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인 스포츠파이(Spotify)’나 회원제 주문형 비디오 웹사이트인 넷플릭스(Netflix)’와 같이 스포츠 웹사이트로 성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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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학수

 

 

  태릉선수촌 선수회관 앞에는 민관식 전 대한체육회장(1981~2006)의 흉상이 서 있다. 2007년 1월 세워진 흉상은 체육발전에 공이 큰 고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대한체육회장을 지낸 고인의 최대 역작은 지난 1966년 개촌한 태릉선수촌이었다. 세계 스포츠에서 변방에 속했던 대한민국 스포츠가 세계 스포츠 10대 강국 대열에 오를 수 있을 정도로 국력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태릉선수촌의 역할이 큰 힘이 됐다.

 

 

 태릉선수촌에 세운 민관식 전 대한체육회장 흉상 (사진 = newsis)

 


  반세기 동안 국가대표 메달의 산실 역할을 했던 태릉선수촌은 역사 속으로 이름을 남기고 새로 개촌한 진천선수촌으로 국가대표 훈련장의 임무를 넘겨줬다. 생전에 대한민국 스포츠의 발전에 온 몸을 불사르며 ‘영원한 대한체육회장’으로 불리기를 좋아했던 그는 흉상으로나마 태릉선수촌이 국가대표 훈련장으로서 반세기의 역사를 성공리에 마감하는 것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듯하다.


  스포츠 기자를 할 때 생전의 그를 1990년대 중반 딱 한번 만나 만찬을 가진 적이 있었다. 평소 친하게 지냈던 김동건 아나운서의 고등학교(경기고 전신 경성고보) 선배인 그를 보면서 보통 사람과 다른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 70대 중반의 나이에도 팔뚝 두께가 웬만한 젊은이 못지않게 두꺼웠으며 술실력도 만만치 않았다. 정치인, 교육자보다는 한국 스포츠 근대화의 초석을 다진 체육인의 풍모를 느낄 수 있었다. 테니스를 즐기고 걷기 운동도 많이 하며 강골 체력을 다진 그는 활달한 성격으로 와인을 따라주며 “술도 잘 마셔야하고, 일도 잘해야 한다”며 격려해 주었다. 여러 체육 행사 등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여러 번 만난 적은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때 만남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태릉선수촌을 만든 것은 기적같은 일이었다. 선수촌 계획부터 부지선정, 공사 등 어느 하나 쉬운 일이 없었지만 그는 불가능한 일을 무서운 추진력으로 가능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선수촌 계획이 구상됐던 1965년만해도 대한민국은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 국제스포츠대회에 참가하는 나라치고는 아주 작은 국가였다. 박정희 대통령의 군사혁명으로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던 당시 모든 것이 빈약했다. 스포츠서도 제반 여건이 갖춰져 있지않았으며 가진 것이라고는 선수 자원뿐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대한체육회장으로서 그의 개인적 능력을 신뢰해 체육 입국에 대한 전권을 맡겼다. 1964년 도쿄올림픽에 한국선수단장으로 다녀온 그는 일본과 미국 등 선진체육을 직접 보고 ‘선체력 후기술’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국가대표 전용 훈련장 건설 계획을 세워 대통령을 찾아갔다. 체육을 통해 국력의 성장을 도모하려 한 박정희 대통령이 문화재관리국 소유의 태릉에 선수촌을 건립하겠다는 그의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선수촌 공사는 본격화됐다. 태릉부지 9천7백여평에 3천3백만원의 공사비를 들여 공사 개시 1년만인 1966년 6월 태릉선수촌은 개촌을 하게 됐다.


  원래 대한민국 스포츠 정책은 소련, 동독 등 사회주의 국가들이 스포츠에서 월등한 성적을 올리는 방식을 차용했다. 국가가 주도해 스포츠에 적극적인 투자와 지원을 해 스포츠 경기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방법이었다. 특히 당시는 북한과의 국력 경쟁에서 뒤지고 있었고, 스포츠마저도 열세를 면치 못했던 상황이었던만큼 스포츠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것은 국가적인 과제였다. 태릉선수촌도 이러한 정책의 결과물이었다.


  태릉선수촌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해방이후 첫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레슬링의 양정모(1976년 몬트리올 하계올림픽)부터 피겨여왕 김연아(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등 숱한 금메달리스트이 피와 땀, 눈물을 흘리며 금메달을 만드는 영광의 훈련장이 됐으며, 한국스포츠가 1984년 LA 올림픽부터 최근까지 세계 10대 스포츠 강국으로 자리를 잡는 데 큰 힘이 됐다.


  역대 대통령들은 각종 국제스포츠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국민적인 자부심과 애국심을 불러 일으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태릉선수촌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3공화국 시대 박정희 대통령에 이어 5공화국의 전두환 대통령은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있을 때마다 태릉선수촌을 방문, 선수들을 격려했으며, 최근까지 여러 대통령들이 대표선수들의 훈련을 챙기며 수시로 태릉선수촌을 찾았다.


  일본과 미국 등 선진국 들은 태릉선수촌의 성공 비결을 캐기 위해 직접 관계자들을 보내 견학하기도 하고 자국에 태릉선수촌과 같은 국가대표 전용훈련장을 세우기도 했다. 태릉선수촌이 국제적으로도 성공모델로 인정을 받았던 것이다.


  시대적 필요성과 민관식이라는 스포츠 선각자에 의해 탄생된 태릉선수촌 신화는 이제 역사속으로 남게됐다. 대한체육회는 태릉선수촌의 상징성을 역사 속으로 남기기 위해 문화재 유산 등록 등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태릉선수촌과 태릉선수촌을 만든 민관식 회장은 수많은 영광의 드라마를 연출하며 한국스포츠 역사 속에 중요한 한 페이지로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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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학수

 

 

 

  한국과 일본 야구의 초창기 모습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최고 인기스포츠가 된 오늘날에는 상상하기 어려울 지 모르나 발상지 미국으로부터 건너 올 때의 모습은 적어도 스포츠라는 의식 보다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외계 문화’를 보는 듯 했다. 그 때의 모습을 살펴 보는 것은 한·일 야구가 그동안 어떻게 변했는가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한국과 일본에 야구에 들어 올 때의 상황은 영화, 책 등에서 주로 확인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보성고 운동장에서 열린 야구 경기. 지금의 조계사 자리이다.

사진출처=<보성백년사>

 

 


  먼저 한국야구. 한국야구의 기원은 지난 1905년 미국인 질렛트가 황성기독교청년회(YMCA) 회원들에게 지도한 데서 비롯됐다. 최초의 야구경기는 1906년 2월11일 황성기독청년회원과 덕어(德語·독일어)학교의 두 팀이 훈련원 마동산에서 가졌다. 지난 2002년 제작한 스포츠영화 ‘YMCA 야구단’은 신문물인 야구에 눈뜬 양반 자제 호창(송강호 분)과 신여성 정림(김혜수 분)의 연정을 매개로 당시의 모습을 잘 재현했다. 역사적인 사실과 가공의 인물을 잘 가미시키면서 이 영화는 근대 야구의 초창기 상황에 관한 많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당시 과거제도가 폐지되면서 할 일없는 선비들은 서당을 운영하면서 밀려드는 세계의 새로운 문물에 본격적으로 눈을 떴다. 쇄국정책으로 폐쇄됐던 문호가 열리면서 야구 등 각종 스포츠의 도입에 선도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다. 영화 ‘YMCA 야구단’에서 정림(김혜수 분)이 “운동 좋아하십니까” 묻자, 호창(송강호 분)이 몸을 쓰는 활동은 낮은 신분의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듯 “나 선비 올시다”며 점잖함을 빼면서도 야구에 관심을 보이는 장면이 나온다. 양반의 ‘에고’가 흔들리면서 야구를 통해 보편적인 평등 의식이 싹트는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조선 시대 철저한 계급의식을 갖고 살았던 선비들이 새로운 세계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을 야구 등 근대스포츠의 도입을 통해 느끼게 됐다. 야구는 주로 학교의 교외활동의 일환으로 보급되면서 일제시대에 점차 대중화되었다.

 

 

 

 

영화 ‘YMCA 야구단포스터.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일본 야구는 우리나라보다도 훨씬 빠른 1872년 도쿄 카이세이 아카데미 영어교수 미국인 호레이스 윌슨에 의해 학교스포츠로 처음 소개됐다. 첫 성인야구팀은 1878년 창설된 심바시 선수클럽이었다. 일본 언론은 도쿄 이치코 고등학교팀이 1896년 요코하마에서 벌어진 경기에서 요코하마 컨트리클럽 외국인팀을 물리친 것을 특보로 전하면서 학교스포츠로서 야구가 인기를 얻는데 이바지했다. 야구가 대중들의 주목을 받게 되면서 소설가를 비롯한 일부 지식인들은 외국문화의 무분별한 도입을 걱정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일본의 국민작가 나쓰메 소세키는 1905년 발표한 그의 대표작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야구에 대한 인상기를 비유적인 표현을 담아 적었다. 당대 교양주의의 중심으로서, 지식인이 비판적 교양인이라는 관념을 뿌리내리게 한 그는 야구를 우세한 군사력을 보유한 서양의 신문물로 간주하며 군사적인 매개물로 비유하는 표현을 썼다.

 

 

일본 국민작가 나쓰메 소세키 대표작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사진출처=<네이버 도서>

 


  "일렬종대로 늘어선 전원이 함성을 질렀다. 일렬종대에서 오른쪽으로 약간 떨어진 운동장 쪽에는 포대가 요충지를 차지한 채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한 장군이 와륭굴을 향한 채 커다란 나무공이를 들고 대기하고 있었다. 이와 10미터 간격을 두고 또 한 사람이 서 있고, 나무공이 뒤에 또 한 사람이 서 있는데 이 사람은 와륭굴을 향하고 우뚝 서 있다. 이처럼 일직선으로 나란히 맞서고 있는 것이 포대다. 어떤 사람의 주장에 따르면, 이는 베이스볼 연습이지 결코 전투준비가 아니라고 한다. 나는 베이스볼이 뭔지 모르는 문외한이다. 그러나 듣자 하니 이는 미국에서 수입된 유희로, 오늘날 중학 이상의 학교에서 행해지는 운동 중에서 가장 유행하는 것이라 한다. 미국은 이상 야릇한 것만 생각해내는 나라라서 포대로 착각하는 것도 당연하고, 이웃에 폐를 끼치는 유희를 일본인에게 가르쳐줄 만큼 친절했는지도 모른다."


  나쓰메가 소설적인 재미를 위해 야구를 군사적인 면으로 부각시키려 했을 수도 있다. 야구장 마운드를 ‘포대’로, 타자를 ‘장군’으로 각각 묘사함으로써 일본이 미국 페리 함대의 ‘흑선’에 의해 개항된 이후 만연화되는 서양문화에 수입을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나쓰메의 시각은 점차 밀려드는 서구의 물결에 대비해 일본인의 주체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스포츠는 사회의 거울이라고 한다. 사회의 여러 가치를 스포츠가 반영해 보여주기 때문이다. 오래 전 사회를 지금의 시각으로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한국과 일본의 초창기 야구 모습은 그 당시 사람의 생각과 관점이 담겨있는 듯하다. 당시 한국과 일본의 지식인들은 근대화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면서도 주체적인 민족의식을 결코 잃지 않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었다.


  스포츠는 시간에 따라 변한다. 현재 야구는 한국과 일본 모두 초창기 때와는 많이 달라져 있다. 모두 프로화에 성공하며 양국 최고 인기스포츠로 자리잡았고, 발상지 미국에 못지않은 실력을 갖출 정도가 됐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 야구는 스스로 성장했다기 보다는 현명하고 영리한 양국민들의 주체적인 의식과 뜨거운 관심에 힘입은 바가 크다는 것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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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학수

 

 

  우리나라 체육 언론은 오랫동안 외형적 숫자에 집착하는 보도 성향을 벗어나지 못했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대회에서의 성적을 근거로 스포츠의 성장을 평가했다. 우리나라 체육이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양적, 질적으로 크게 성장했기 때문이었다. 올림픽 등에 처음에는 수십명의 소규모 선수단를 파견했다가 최근에는 수백명의 대규모 선수단를 참가시키는 정도가 규모가 커졌다. 국가별 순위도 사다리를 타듯 단계별로 껑충껑충 뛰어 올랐다. 대한민국은 1948년 런던올림픽에 처음으로 참가한 이후 1988년 서울올림픽 종합 4위에 오른 것을 기회로 세계 10위권의 엘리트체육 강국으로 자리잡았다.

 

  엘리트 체육이 성장하는 역사적 과정을 지켜본 체육 언론은 메달 숫자, 국가별 순위 등을 빠지지 않고 중요 대회때마다 보도하며 대한민국 체육의 우수성을 국민들에게 알렸다. 독재, 권위주의 시대나 민주시대나 숫자를 근간으로 한 체육 언론의 보도 행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엘리트 체육은 성적으로 모든 것을 말해준다는 것을 굳게 믿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같은 숫자이면서도 체육행정의 돈문제에 대해서만은 뒷전으로 미뤄놓는 경우가 많았다. 경제인과는 달리 공정성과 순수성을 우선시 하는 체육인은 돈에 관해서는 문외한이라는 고정된 인식이 한 몫 더했다. 그동안 체육단체들의 돈문제가 드러나지 않은 데는 체육 언론들의 이러한 분위기가 많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지난 해 3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도적으로 전문체육 전담기관인 구 대한체육회와 생활체육 전담기관인 국민생활체육회를 1년여만에 무리없이 통합시켰다. 문체부 관리들은 처음에는 통합문제가 꼬일 것을 전전긍긍하다가 의외로 잘 풀린 것에 놀라는 분위기였다. 이는 돈문제 보도를 소홀히 한 체육언론이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고, 체육인들이 돈에 대해 주체적인 의지를 갖지 않음으로써 가능했다.

 

 

지난 해 구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를 통합한 대한체육회 이사회 모습.

 

 

  통합 대한체육회는 체육단체의 재정자립에 대한 고민이 없이 체육단체 통합을 이루다 보니 재정 규모는 커졌으나 재정자립도는 더욱 떨어지는 기형적인 모습을 보이게 됐다. 2015년 기준, 재정자립도에서 구 대한체육회는 4.6%, 국민생활체육회는 4.5%를 기록해 가맹경기단체(54.7%) 보다 훨씬 열악한 수준이었는데, 통합이후 상황은 더 나빠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것이다.

 

  대한체육회는 그동안 재정의 90% 이상을 국고와 기금으로 의존하는 운영해 자율성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관변 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15년 구 대한체육회의 연간 수입은 총 2,176억원이었으며, 수입금 중 국민체육진흥기금이 2,062억원으로 전체 수입의 95%를 차지했다. 자체 수입은 총 96억여원으로 총 수입의 4.6%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대한체육회가 임원 선출, 규정및 제도 등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에서 고위직을 지낸 양재완 한국체대 초빙교수는 지난 8한국 체육단체의 재정건전성 및 재정 결정요인이라는 제목의 박사학위논문을 발표, 주목을 끌었다. 문체부와 대한체육회 재정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그는 대한민국 스포츠가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체육단체 통합의 시스템 선진화도 필요하지만 이보다는 체육단체의 재정자립이 더 중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연구를 하게됐다고 밝혔다.

 

  그는 체육단체가 자율성을 회복하고 자생력을 제고해 체육을 선진화시키기 위해서는 재정건전성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체육단체의 재정 자립도를 제고하기 위한 체육단체 재정현황 및 재정 결정요인을 분석해 문제점 및 이에 대한 대책을 제시하는 연구는 매우 필요할 뿐 아니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우리나라 체육단체의 재정 건정성 및 재정의 결정요인에 관한 연구는 별로 없었기 때문에 그의 이번 연구는 의미가 있고 통합 대한체육회 출범 직후에 이뤄져 시기적절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논문에서 한국과 비교 분석하기 위해 스포츠 선진국 미국과 일본의 재정 현황을 소개했다. 2015년 미국올림픽위원회의 수입은 14,127만달러(1,609억원)으로 수입의 대부분을 자체 수입(권리 수입, 라이선싱 로열티 수입, 중계권및 관련 수입)으로 충당해 재정자립도는 72.8%에 이른다.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교부금은 14백만달러로 전체 수입의 10.2%에 불과하다. 일본체육협회는 2014년 기준, 전체 경상수입이 43억엔(457억원)이었으며, 이 중 자체 수입이 24억엔(258억원)으로 재정자립도가 전체 경상수입의 56.4%를 차지했다. 일본체육협회는 재원확보를 위해 자체 수입사업과 마케팅 사업으로 충당했다. 일본올림픽위원회는 2014년 전체 예산 81억엔(867억원) 중 사업수익으로 35.4억원(372억원)을 충당하는 등 전체 예산의 60.1%를 자체 수입으로 마련했다.

 

  그는 우리나라 체육단체의 재정자립도를 높이기 위해 체육단체가 적극적인 마케팅과 다양한 수익사업의 발굴을 통한 자체 수입을 확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들었다. 그는 세 가지 방안을 제안했는데, 첫째 미국과 일본 등의 마케팅 프로그램을 벤치 마킹해 체육단체가 보유하고 있는 다양한 재산권과 자산을 활용하는 다양한 수익사업 창출과 스폰서를 발굴하고, 둘째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체육단체 재정자립도 제고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셋째 체육단체가 엘리트체육의 국제적 성과와 생활체육의 저변확대의 중요성에 대해 과학적으로 입증하고 홍보하며, 이를 재정확대와 연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오랫동안 체육과 관련한 공직에 몸을 담고 다양한 현장 경험과 탄탄한 이론적 뒷받침을 통해 마련된 그의 체육단체 재정건전성 확보 방안이 앞으로 실제적으로 반영돼 한국이 스포츠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기회를 갖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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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학수

 

 

  골이 터지면, 그 뒤를 바로 이어서 TV와 라디오 스포츠 캐스터들이 해설자와 함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이구동성으로 박진감 넘친 환호성을 지른다. “고올~~~~~~~”. 거의 30초간씩 2골노래를 선사한다. 골 맛을 본 관중들도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했으며, 시청자나 청취자들도 캐스터들이 전하는 골 세리모니에 흠뻑 빠져들어 가는 것 같았다.

 

  필자가 수십년전 스포츠 취재기자로 활동했던 때, 스페인어권 국가로 출장을 가면 축구경기장에서 스페인어를 잘 알아듣지는 못하면서도 골잔치때의 인상적인 캐스터들의 흥분에 넘친 소리는 잘 들을 수 있었다. 이같은 모습은 당시 국내와는 아주 달라 흥미롭게 지켜봤었다.

 

  국내서는 골이 들어가더라도 스페인 방송인들보다는 그렇게 요란하게 떠들지는 않았다. “이라며 잠깐 목소리를 한 템포 올리고 해설자와 함께 골장면을 설명하는게 일반적이었다.

 

  스페인어권 국가들에서는 축구에서뿐 아니라 배구, 야구 등에서도 극적인 순간에는 주의를 끌기 위해 캐스터들이 열정적인 목소리로 강조 화법을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배구에서 통쾌한 스파이크가 터지면, “스파이크~~”를 몇초간 길게 늘어 뽑기도 하고, “블로킹~~‘도 엿가락 늘이듯 발음하기도 한다. 야구서는 홈런이 터질 때 극적인 멘트가 등장한다. 홈런 친 타자가 1루에서 2, 3루를 돌아 홈베이스로 올 때, ”홈런~~“을 연호하며 극적인 효과를 높인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열정적인 야구 중계로 이름을 날린 펠로 라미네즈가 2013년 LA 다저스의 쿠바출신 야시엘 푸이그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그는 최근 94세로 세상을 떠났다. (뉴욕 타임스)

 

 

  지난 2494세를 일기로 타계한 미 프로야구 마이애미 말린스구단 라디오의 스페인어 캐스터 펠로 라미네즈는 극적인 소리효과를 잘 활용한 이로 알려져 있다. 그는 청취자에게 여러분의 심장에 문제가 있다면 지금 당장 라디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요라며 축구캐스터가 을 길게 연발하듯 홈런을 계속 목소리로 흘려 보냈다. 죽기 3개월전까지 마이크를 잡았던 그는 마치 청취자들이 경기장에 있는 듯 한 느낌을 줄 정도로 실감나게 방송을 했다. 선수들이 출생이후 모든 생활을 환히 아는 것처럼 그는 일반적인 캐스터와는 다르게 선수들에 대한 모든 것을 설명하려 노력해 구단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는 많은 월드시리즈와 올스타 게임을 중계했는데, 푸에르토리코 출신으로 월드시리즈 최우수선수로 선정된 바 있던 로베르토 클레멘테의 통산 3천안타 , ‘홈런왕행크 아론의 715호 홈런, 1956년 월드시리즈에서 퍼펙트 게임을 작성한 돈 라르센의 역사적인 순간 등을 생생한 육성으로 전해 주었다.

 

  그는 2001년 팜비치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뉴욕 양키즈와 브루클린 다저스와의 월드시리즈경기에서 라르센이 퍼펙트 경기기록을 세웠던 것을 회고하며, “주심이 마지막 스트라이크를 선언하는 팔을 올리는 것이 눈에 선하다. 포수 요기 베라가 그에게 달려들어 점프를 할 때 조그만 소년을 보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장면을 직접 보고, 전했다. 또 순간과 함께 생활했고 궁극적으로 즐겼다고 말했다.

 

  스페인 스포츠캐스터들이 극적인 순간을 독특한 어법으로 부각시키는 이유는 시청자나 청취자의 관심을 유도하고 집중력을 높이려는 효과를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낙천적이고 정열적인 기질을 공통적으로 가진 스페인인이나 스페인어권 사람들은 스포츠를 즐기는 데 있어서도 공통적인 특징을 보인다. 따라서 골이 터지거나 극적인 순간에 극도의 흥분과 기쁨을 발산하며, 스포츠캐스터들은 열띤 감정을 실어 생생하게 육성으로 전달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지난 8월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TV 스포츠방송에서 소리효과의 인지적 과정이라는 제목의 박사학위논문에서 권영성씨(서울대 뇌과학 연구소 연구원)방송의 소리와 화면 등에 의해 시청자와 청취자들이 많은 영향을 받는다며 방송중계와 수용자의 영향에 대한 연구결과에 대해 말했다.

 

  그는 논문에서 방송 매체가 다채널, 다매체로 바뀌는 현 시점에서 이용자의 만족도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양한 기술이 활용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포커스그룹(초점집단) 인터뷰와 설문지 방식의 기존 연구방법이 아닌 뇌공학, 뇌이미지기술, 인지심리학 방법의 새로운 연구방법을 이용해 축구 중계 골 장면에 나타나는 수용자들의 인지반응을 검증한 결과, 그는 극적인 골 장면과 캐스터 육성이 수용자에 유의미한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앞으로 팬들과 시청자들이 모바일과 컴퓨터 스크린을 통해 다양한 스포츠 중계를 즐길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극적인 골 장면과 캐스터의 적극적인 역할은 더욱 활성화될 전망이다. 캐스터들은 새롭고 다양한 중계 기법을 선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스페인어권 방송의 원조라 할 수 있는 펠로 라미네즈는 전설로 사라졌지만, 그 뒤를 이어 고울~~”, “홈런~~‘을 개성있고 격정적으로 외치는 캐스터들의 등장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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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학수

 

 

  지난 727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스테픈 커리 라이브 인 서울행사에는 농구팬 2천여명이 몰려들었다. 미국프로농구를 대표하는 최고 스타인 스테픈 커리(29· 골든스테이트)는 동생 세스 커리(27· 댈러스)와 함께 한국 유소년 선수들을 상대로 농구 기술을 가르치고 장애물 경기 퍼포먼스에도 함께 참여했다. 스테픈은 유소년 선수들과 농구 스타출신 우지원 해설위원, 주희정(전 삼성), 이미선(전 삼성생명) 등이 스테픈팀과 세스 팀으로 나눠 벌어진 55 경기 도중 직접 코트로 나서 화려한 드리블, 패스, 3점슛을 선보이며 팬들을 즐겁게 했다.

 

  이 행사는 스포츠용품브랜드 언더아머 코리아가 마련한 것이었는데, 평소 커리를 좋아하는 고객들에게 행사에 참여할 기회를 줬다. 언더아머 제품을 5만원 이상 구매한 고객 중 추첨을 통해 1천명에게 행사 입장권 2매씩을 줬다. 추첨에 응모하고도 당첨되지 못한 팬들은 행사장에 들어가지 못해 밖에서 동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 그만큼 국내에서 커리의 인기가 많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언더아머와 커리 (CJmall 홈페이지)

 

 

  언더아머는 커리와 지난 9년간 정식 계약을 맺고 커리의 시그니처 상품을 개발, 신발 커리 원이 기록적인 판매를 기록하며 세계 1위 나이키를 바짝 추격했다. 2014년 기준으로 총수익 308천만달러이며, 순이익은 16천만달러로 나이키에 이어 아디다스를 제치고 미국내에서 많은 인지도를 쌓았다. 메릴랜드 대학교 미식 축구 선수였던 케빈 플랭크가 대학을 졸업한 1996, 23세의 나이로 워싱턴 D.C 할머니 저택의 지하실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플랭크는 선수시절 땀을 많이 흘리는 체질이었던 탓에 유니폼 아래 덧입던 내의를 자주 교체해 불편을 느꼈는데, 땀을 흡수하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는 합섬섬유 티셔츠를 제작하게 되면서 사업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언더아머가 처음 대중들에게 알려진 것은 미국 전국지 'USA TODAY'에 당시 NFL 오클랜드 레이더스 쿼터백 제프 조지가 언더아머 테틀넥 제품을 입은 사진을 찍은 것이 발단이 됐다. 이후 대학 미식축구선수들의 호평과 입소문을 타고 사세가 급속히 성장했다. 언더아머 케빈 플랭크 회장은 올해 1월 국제전자제품박람회 CES 2017에서 운동선수들에게 최적의 휴식과 회복을 선사하기 위해 고안안 애슬릿 리커버리 슬립웨어라는 신제품을 선보여 새롭게 주목을 끌었다.

 

  언더아머는 날로 경쟁이 치열해지는 세계스포츠브랜드시장에서 이단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이키, 아디다스, 리복 등이 분할했던 시장을 비집고 들어가기가 매우 힘든 상황에서 언더아머는 기능성 의류라는 새로운 컨셉의 제품을 개발하고, 스테픈 커리라는 새로운 스타를 앞세우는 스타마케팅으로 새로운 브랜드로 자리를 잡았다.

 

  국내스포츠 관계자들은 언더아머의 성공신화를 지켜보면서 국내 스포츠시장에서 경쟁력있는 글로벌 스포츠브랜드가 등장하지 않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 1988 서울올림픽, 2002 한일월드컵,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2015 광주유니버시아드를 성공적으로 열고 2018평창동계올림픽 개최를 앞둔 한국은 그동안 우수한 스포츠브랜드를 탄생시키지 못해 스포츠강국으로서의 자존감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은 1964 도쿄올림픽과 1972년 삿포로올림픽을 치르면서 미즈노, 아식스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웠으며, 2000년들어 데쌍트가 골프의류에서 명성을 올리며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올림픽 등 국제종합대회 경험이 한국보다 적은 중국은 이미 리닝, 361 등이 세계적인 브랜드로 이름을 올렸다.

 

  한국은 서울올림픽이후 프로스펙스가 국내 시장을 발판으로 국제무대에 도전했으나 브랜드파워가 아직은 미약한 편이다. 프로스펙스의 한해 매출은 1,500억원 정도로 세계적인 브랜드에 견줄 바가 안된다. 여자골프의 성공으로 일부 골프브랜드가 최근 성장을 보이고 있기는 하나 글로벌 스포츠브랜드를 키우려면 적극적인 시장개척과 제품개발이 이어져야 할 것이다.

 

  남자골프 간판 왕정훈의 의류스폰서를 전담하고 한국엘리트체육을 이끄는 한국체육대학교와경기력 향상 업무협약을 체결한 기능성 스포츠웨어 전문브랜드 애플라인드 김윤수 대표는 우리 회사의 경우 한때 언더아머에 주문자생산방식(OEM)으로 많은 제품을 공급했다. 한국의 섬유 기술은 기술력과 생산성에서 이미 세계적인 수준이라며 마케팅 전략을 잘 세우고 해외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한다면 한국에서도 세계적인 브랜드가 탄생할 수 있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현대사회에서 스포츠브랜드는 스포츠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스포츠의류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사회적 트랜드를 이끌어나가는 문화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한국의 스포츠브랜드를 입고 활보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한국의 국격과 문화는 그만큼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스포츠에서 성공신화를 이룬 한국이 이제는 글로벌 스포츠브랜드 만들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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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학수

 

 

  오래 전 대학과 실업, 프로팀 지도자를 취재할 때 선수들이 지도자를 부르는 말이 서로 달랐다. 대학 지도자들은 ‘감독 선생님’, 실업및 프로지도자들은 ‘감독님’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똑같은 지도자 명칭이 차이가 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대학교에서 활동하는 지도자들은 팀을 이끄는 감독과 함께 학생들의 인성을 가꾸는 교육자 등 두 가지 역할을 하기 때문에 ‘감독 선생님’이라고 불렀던 듯하다. 대학 선수들에게 지도자는 감독님이면서 선생님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한 선수들에게 실업팀이나 프로팀은 더 이상 학교라는 인식이 없었던 것 같았다. 선수들은 성적에 따라 개인 연봉 등 성과급이 달라지는 현실에 적응해가며, 팀 지도자를 학교 때와는 달리  ‘감독님’으로 불렀다. 선수들은 지도자가 성적 때문에 교체되는 모습들을 자주 보면서 이러한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됐을 것이다. 실업 및 프로지도자들은 성적에 일희일비하며 감독의 역할을 최우선으로 할 수 밖에 없었던 듯하다.
 
  사실 지도자는 이상적으로 감독과 선생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노력하는데, 성공하는 이들은 별로 많지 않다. 성적도 올리고, 뛰어난 덕성을 발휘해 선수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독님과 선생님은 어찌보면 지도자로서 공통적으로 갖춰야 하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실천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당시 선수들로부터 존경을 받으며 감독의 권위까지 갖춘 대학 지도자가 실업 및 프로지도자들보다 더 좋다는 말이 나돌기까지 했다.


  실제 스포츠 현장에서는 두 역할을 잘 수행해내는 이들이 등장해 지도자의 귀감으로 추앙받기도 한다. 지난 24일 10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미국 농구의 명지도자 존 쿤드라는 감독 선생님의 롤모델이 아니었나 싶다. 훌륭한 감독이면서 탁월한 선생이었던 것이다.

 

 

1952년 마이칸의 무등을 타고 첫 미국 프로농구 우승을 차지했던 쿤드라 감독 모습.


  그는 ‘잊혀진 전설’이었다. 지난 1995년 농구의 최고 영예인 네이스미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그는 헌액자로서 최고령 멤버였었다. 역대 최고의 센터중 하나였던 조지 마이칸 등 대부분의 제자들이 세상을 먼저 떠났다는 것으로 미루어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쿤드라는 1996년 NBA 출범 50년을 기념해 선정한 역대 최고의 지도자 10명 가운데 포함됐다. 10명 가운데는 농구팬들에게 잘 알려진 필 잭슨을 비롯해 돈 넬슨, 팻 라일리, 레니 윌킨슨, 레드 아우어바흐, 척 데일리, , 빌 피치, 레드 홀즈만 등이 선정됐다.


  쿤드라는 명문 LA 레이커스 전신인 미니애폴리스 레이커스에서 감독 데뷔해인 1948년과 1949년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해, 미국 프로농구 지도자로는 유일한 기록을 갖고 있고 1952, 53, 54년 3년 연속 패권을 안아 3연패를 이룬 최초의 지도자가 되기도 했다.


  그는 24초 룰이 적용되기 전, 대부분의 선수들이 프리드로를 밑에서 위로 던지는 언더핸드방식으로 넣을 때 미국농구를 좌지우지 했던 명조련사였다. 하지만 팀성적만 최고로 올렸던 것이 아니다. 대부분에 성적에 연연하던 일반적인 지도자와는 달리 선수들을 교육시키는데 많은 신경을 썼던 것이다. 그는 개인플레이를 하지 않고 기본기에 충실한 선수들을 좋아했으며, 선수들을 잘 이해하는 지도자였다.

 


  1948년 미니애폴리스 레이커스에 입단했던 그의 대표적인 제자 마이칸(2005년 작고)은 "감독님은 경기 중 소리를 지르지 않았고 매우 온순했다. 우리가 소리 지르려고 하면 느슨해지기를 바랬다"며 "나와 경기중 이런 문제 때문에 부딪히곤 했는데, 감독님이 보낸 메시지는 우리 팀에 아무도 흥분하거나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고 생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마이칸이 개인상을 독차지하는 바람에 다른 동료 스타플레이어들이 기회를 많이 갖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모든 선수들을 행복하게 해주었다. 그가 개인의 역할의 중요성을 모든 팀 선수들에게 강조하며 좋은 연봉을 받도록 하는 데 힘을 썼기 때문이다. 또 선수들의 개인적인 고민과 심리상태 등을 잘 파악해 자상하게 상담하며 감독이기 이전에 훌륭한 심리학자 역할도 했다.


  선수와 지도자간의 관계가 사회의 변화에 따라 많이 달라졌다. 핵가족화와 개인화 현상이 전반적으로 두드러지며 선수와 지도자 관계가 형식적이고 수직적인 형태가 된 게 일반적인 모습이다. 사제간에는 신뢰와 믿음을 바탕으로 훈훈한 끈끈한 관계를 보이는게 바람직하지만, 실제 스포츠 현장에서 이러한 모습을 접하기는 쉽지 않다.


  '아마도 예전에 본 대학스포츠 문화는 '감독님'으로 쓰고, '감독 선생님'으로 부른다'는 말이 돌 정도로 선수와 감독간 관계는 비교적 원만했던 것 같다. 아직도 대학스포츠 문화는 이럼 분위기가 남아 있다. '감독님'과 '선생님'은 단어 자체에서 갖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승자 독식시대'의 현대스포츠이지만 감독님과 선생님 역할을 두루 잘 해내는 지도자는 마땅히 존경받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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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학수

 

 

  10년만에 방한한 북한 태권도 시범단은 화끈했다. 2017 무주 태권도세계선수권대회에서 보여준 북한 태권도 시범은 남한 태권도와 많이 달랐다. 온 몸을 무기로 삼아 격파 위주의 호신술로 일관했다. 시범단은 음악이나 안무도 없이 손기술 위주의 격파만을 선보였다. 한 동작, 한 동작에 절도있는 자세와 힘을 실어 공격적인 시범을 연출했다.


  이에 반해 남한 태권도 시범은 발기술 위주로 음악과 안무가 어울어진 ‘종합 예술’을 보는 것 같았다. 호신술이라기 보다는 상상력을 가미한 다양한 율동과 리듬을 살리는 ‘매스게임’ 연기에 가까웠다. 여러 사람이 태권도 동작을 이용해 부드럽고 자연스런 선과 공간을 활용하는 예술적 행위를 하는 듯했다.


  남북태권도는 남북한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했다. 한 핏줄이면서도 체제의 벽에 가로 막혀 반백년 이상 다른 세상에서 사는 모습이 태권도라는 스포츠를 통해 잘 드러났다. ‘선군정치’로 대표되는 권위주의체제의 북한은 태권도를 철저히 체제에 훈육화된 종목으로 바꿨다. 자유화, 민주화의 기치를 내세운 남한은 태권도를 개성과 창의성을 살리는 스타일로 세계화에 성공했다.


  WTF(세계태권도연맹)와 ITF(국제태권도연맹)는 남북한 체제 경쟁이 극심했던 지난 1960, 70년대 탄생했다. WTF는 박정희 대통령의 적극적인 지원을 발판으로 청와대 비서실에 근무했던 초대 총재 김운용씨가 창설을 주도했다. ITF는 남한에서 군장성을 지내고 말레이시아 대사까지 지낸 최홍희씨가 원래 남한에서 창설했다가 1972년 박정희 대통령과 정치적 갈등을 겪게 됨에 따라 캐나다로 망명하게 되면서 북한의 지원을 등에 업으며 WTF의 라이벌 단체로 부상했다. 

 
  WTF와 ITF는 남북한 체제의 바로미터이기도 했다. WTF는 해외 태권도 사범을 대거 파견하며, 세계선수권대회, 지역선수권대회, 국제친선대회및 국제지도자강습회, 국제심판강습회, 시범경기 등을 정기적으로 열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서 시범경기로 채택된 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정식종목이 발돋음하면서 세계적인 종목으로 자리잡았다. IOC가 인정하는 태권도 종목의 국제경기연맹도 WTF다.


  WTF가 이처럼 스포츠로 발전했던데 반해, ITF는 무술의 형태로 바뀌어갔다. 최홍희씨가 펴낸 육군 태권도 교본에서부터 시작된 ITF는 북한의 지원과 관심을 받으며 WTF와는 다른 길을 걸어갔다. 2002년 최홍희씨의 사후 분열양상을 보였던 ITF는 최홍희씨의 아들 최중화가 이끄는 일파, 북한 IOC 위원 장웅계가 주도하는 일파 등으로 나뉘어 있으나 실질적으로 북한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ITF는 WTF의 위세에 눌려 동유럽, 중앙아시아, 몽골, 중국 등 구 공산권 국가들에 해외 시범단을 파견하는 정도에 머물며 크게 위축된 상태이다.


  WTF는 세계화 시대를 맞아 경기규칙과 용어 등을 새롭게 바꾸고, 종목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지난 1973년부터 사용되는 영문 약칭 WTF를 WT로 변경을 검토하는 것도 이러한 변화 작업의 일환이다. 그동안 영어 이니셜 WTF가 영어권의 가장 흔한 비속어 약자인 ‘What the fudge(What the fuck을 조금 순화한 말)’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이미지에 악영향을 끼쳐 개명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2017 무주 태권도 세계선수권대회 기간중 영국 BBC가 보도했다.


  조정원 WTF 총재는 “디지털 시대에 WTF라는 단어는 조직의 기대와 상관없이 부정적인 이름으로 많이 쓰인다. 세계 태권도팬들과 소통과 공감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며 “세계적인 종목으로 자리잡아가는 태권도의 위상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 WTF 명칭을 새로 바꿀 계획”이라고 밝혔다.


  BBC에 따르면 2015년부터 단체 명칭에 관한 브랜드 변경 작업을 해왔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지난 24일 전북 무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개막을 앞두고 열린 총회에서 관련 논의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지난 수십년간 따로 성장한 WTF와 ITF이지만 사실 엄밀히 말하면 한 뿌리라고 말할 수 있다. 남북한이라는 이질적인 체제와 시대의 변화로 인해 각각 다른 행보를 걸어왔지만 태권도의 세계화라는 관점에서 앞으로 밝은 미래를 위해 이제는 상생과 통합의 길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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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학수

 

 

 

  30일 끝난 2017 무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는 세계화에 성공한 국기 태권도의 현 주소를 잘 보여주었다. 170개국에서 1,900명의 각국 선수들이 참가, 대회 역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이번 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함으로써 태권도의 종주국으로서의 위상을 확립했으며, 지구촌 스포츠로서 태권도가 자리잡았음을 입증했다.


  태권도는 더 이상 한국만의 종목이 아니다. 축구가 발상지 영국만의 종목이 아니듯, 태권도는 이미 종주국의 수준을 넘어서 세계적인 종목이 됐다. 태권도가 이처럼 세계적인 스포츠로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태권도 보급을 위해 물 설고, 낯 설은 이역만리로 날아가 온갖 고생을 마다하고 굿굿히 어려움을 이겨낸 해외 태권도 사범들의 큰 역할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년간 해외 사범들은 각국의 언어를 익히며 현지 생활에 적응하고 태권도의 정착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해외 사범들은 도장을 차리고 각종 대회를 개최하며 태권도 붐을 일으켰다. 현지어를 배우면서도 한국인의 얼과 철학이 담긴 스포츠인 태권도의 정신을 잃지 않았다. ‘차려’, ‘경례’ 등 태권도 종주국인 한국어를 공식 언어로 사용토록 했다. 태권도의 한글 용어는 이미 세계 각국의 태권도 선수들과 동호인은 물론, 여러 각국 국민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대학원 시절 축구와 관련한 논문을 썼던 영국의 세계적인 사회학자 앤소니 기든스는 세계는 점차 스포츠를 통하여 ‘무정부적이고(anarchistic) 자유분방한(haphazard)’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스포츠가 세계 각국의 민족들을 이어주고 공유하며 소통하게 하는 ‘만국 공통어’이자 ‘국제어’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는 의미이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초지능’, ‘초연결성’의 시대를 맞는 요즘 유투브 스트리밍 등을 통해 스포츠를 매개로 한 교류가 시간, 공간을 넘어서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볼 때 적절한 분석인 것 같다.


  스포츠 매니아들은 프리미어리그, 메이저 리그, NBA 등을 실시간으로 즐기며 다양한 삶을 구가하는게 요즘 모습이다. 한국의 젊은 스포츠팬은 해외에서 활약하는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나 팀의 경기를 보고 환호하고 자신의 본 감상을 SNS 등에 올려 놓기도 한다.


  세상에는 많은 스포츠가 존재한다. 축구, 태권도를 비롯해 야구, 농구, 배구, 골프, 탁구, 육상 등 육상 스포츠는 물론 요트 등 해상 스포츠도 수없이 많다. 70억 이상의 지구촌 사람들은 여러 스포츠를 함께 즐기고, 이념, 민족, 종교, 인종 등의 차이를 극복하며 공감을 이끌어간다. 비록 각기 다른 언어 때문에 말을 주고 받지는 못하지만 스포츠에서만은 서로 이해하고 호흡을 같이 나눌 수 있다.


  세계화 시대를 맞아 각 종목의 대표적인 스타플레이어들은 자국어 뿐 아니라 세계적인 공통언어인 영어 등을 통해 각국 선수와 팬들과 소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축구 스트라이커 손흥민은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일찍이 배운 영어로 팀 소속 선수들과 교류하며 언론 인터뷰에 갖기도 한다. 골프 여왕 박인비는 리우올림픽 골프 여자부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능숙한 영어로 세계 각국 언론과 인터뷰를 가졌다. 미 메이저리그의 류현진 등 한국출신의 선수들도 비시즌이나 훈련이 없을 때는 영어교육을 집중적으로 받아 영어실력이 많이 나아지고 있는 편이다.


  이는 운동에만 전념하고 언어와 담을 쌓고 지냈던 수십년전의 상황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과거에는 선수들이 외국에 진출할 때나 국제대회에서 인터뷰를 할 때 통역이 전담했으나 이제는 웬만한 것은 선수들이 혼자서 처리할 정도로 외국어와 가깝게 지내는 경우가 많다.


  사실 스포츠와 외국어는 상호 연관성이 매우 깊다는게 학자들의 정설이다. 스포츠가 두뇌와 몸을 동시에 움직여 행동으로 이루어지듯이 외국어 공부도 두뇌와 발성근육을 움직여서 표현하는 이치가 비슷하다는 것이다. 몸을 움직여 단련하는 스포츠처럼 외국어도 발성기관과 두뇌활동을 단련시키면 표현력을 익히는데 효과적이라는 분석이다. 스포츠를 몸에 익히듯 외국어를 배우면 언어 경쟁력을 어렵지 않게 키울 수 있다는 말이다.


  세계화 시대에서 국가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영어를 국어와 함께 공영어로 정해 어학교육을 전국민이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역대 정부에서 제기됐었다. 하지만 영어를 공영어로 정하기보다는 초중고에서 학생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스포츠 종목을 1개씩 선택해 자연스레 스포츠 활동의 기본 문형을 외국어로 익혀 나간다면 교육적 효과가 매우 높을 것이다.


  스포츠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스포츠는 국경 없는 외국어이다  문재인 정부가 새롭게 출범하고,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의 통합 모델이 본격가동하는 현재 상황이 학생들의 ‘스포츠 1인 1기’ 교육이 정착시키는 좋은 기회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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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성민

 

 

“운동하는 놈이 운동만 잘하면 됐지. 공부는 해서 뭐 해”

 

  내가 운동할 때는 주위에서 이런 말을 하던 시대였다. 부끄럽지만 난 고등학교 3년 내내 단 한 번도 수업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 같은 반 친구가 누구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시간에 운동을 하거나 숙소에서 잠을 잤다. 때론 오락실에서 신나게 조이스틱을 두드린 적도 있었다. 그때는 우리 학교 축구부 누구나 다 그랬다. 그냥 운동만 열심히 하면 그걸로 족했다. 그래도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인생의 황금기를 너무 허무하게 흘려 보냈다. 공부도 친구도 아무것도 얻은 게 없이 말이다.

 

  운동선수의 삶은 달콤한 유혹이다. 성공하면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거머쥔다. 그래서 너도나도 이 도박판에 판돈을 밀어 넣는다. 그 순간 모두가 잭팟의 주인공을 꿈꾼다. 하지만 운동으로 성공하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 초등학교 때 축구를 시작해 프로선수(K리그 클래식)가 될 확률은 0.8%. 내셔널리그, K3를 포함해도 약 3%에 불과하다. 지금도 많은 학생선수와 학부모들이 이런 무모한 확률의 도박에 모든 걸 건다.


  좋다. 실력이 특출나거나 천운을 타고나 0.8% 안에 들어간다고 치자. 그렇다 해도 진짜 고수들과의 진검 승부는 그때부터 시작이다. 프로에는 전국에서 날고 기는 타짜들이 다 모인다. 게다가 국내 타짜들 보다 더 뛰어난 외국인 선수들도 으르렁거린다. 이런 무시무시한 정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펼치다 대부분의 선수가 1~2년 안에 강제 퇴거 조치를 당한다.

 

준비 없는 은퇴는 치명적이다. 아무런 준비 없이 운동 하나만 보고 달려온 선수들은 은퇴할 즈음에 서야 뭔가 잘못됐다는 걸 인지한다. 사회라는 또 다른 정글에 나가 싸울 무기가 변변치 않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해 남들은 최첨단 스텔스 폭격기와 미사일로 무장했는데, 은퇴 선수들은 딱총 한 자루로 싸우니 게임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나서 '학창 시절에 왜 공부를 하지 않았을까', '왜 준비를 하지 않았을까' 땅을 치며 후회한다. 나도 20대 중반에 아무 준비 없이 은퇴를 했다. 10년 이상 신었던 축구화를 갑자기 벗고 나니 할 게 없었다. 뭘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눈에 보이는 건 캄캄한 암흑이었다. 

 

결국 교육이 답이다. 지금은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교육의 중요성을 모르는 선수와 지도자들이 많다. 험난한 경쟁 사회에서 낙오자가 되지 않으려면 교육이 필요하다. 은퇴 후 삶을 왜 준비해야 하는지 어떻게 진로 설정을 할 것인지 학생 선수들에게 일깨워줘야 한다. 그래야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거듭날 수 있다. 세상을 바꾸는 건 사람이지만 사람을 바꾸는 건 교육이다.

 


By failing to prepare, you are preparing to fail
준비를 실패하면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다
- 벤자민 프랭클린 –

 

 

※ 본 교육은 대한체육회가 주관한다. 대한체육회가 양성한 선수출신 전문강사들이 학교에 직접 방문해 은퇴 후 성공적인 사회진출을 도모할 수 있도록 진로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학생선수들에게 운동과 학업의 병행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자존감을 고취해 스스로 목표 설정을 할 수 있도록 동기 부여를 해주는 것이 이 교육의 주된 목표다.

 

 

 

 

 

 

운동하면서 공부하는 게 너무 힘든 아이들


“얘들아 요즘 열심히 공부하고 있지?”

“선생님, 공부할 시간이 없어요 운동하느라 너무 피곤해요.”

“그래. 나도 안다. 얼마나 힘드니. 새벽에 운동하랴. 오전 오후에 수업 들으랴. 수업 끝나면 또 운동하랴. 때로는 저녁에 개인운동까지. 운동만 해도 힘들어 죽겠는데 이 와중에 공부까지 하라니.”

 

 

<성재 학생의 발표 동영상>

 

 

  이렇게 아이들이 힘들어서 공부를 소홀히 하고 싶어 할 때쯤, 2002월드컵 영웅 이영표 해설위원을 불러낸다. 나보다 이영표 같은 슈퍼스타가 말해주는 한마디가 아이들에게 훨씬 강력한 동기부여를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영표 위원은 “학창시절에 공부와 운동을 병행 하는 건 힘든 일이다. 하지만 오히려 안 힘들면 그게 더 이상한 거다. 지금 힘들다고 느껴진다면 아주 잘하고 있는 중이다”라고 말한다.

 

 

<초중고 선수들에게 들려주는 이영표의 축구이야기 영상>

 

 

  요즘 운동부 대부분은 정규수업을 다 받고 훈련에 참여한다. 어떻게 보면 내가 운동했을 때가 더 편했던 것 같다. 그때는 학업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운동만 하면 됐으니까. 좋다. 그럼 편했다고 그게 정상인가. 완벽한 비정상이었다. 학생이 공부를 우선시 해야 하는 건 당연지사인데 우리나라의 엘리트 체육 시스템이 이런 비정상화를 조장했다. 물론 엘리트 시스템 덕에 메달도 많이 땄다. 하지만 그 부작용으로 인해 수많은 운동선수들이 은퇴 후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축구부도 전교 1등 한다
  운동하며 공부도 하고 책까지 읽는 건 무척 힘든 일이다. 그래도 그걸 이겨낼 수 있어야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거듭날 수 있다. 이렇게 힘든 상황 속에서도 운동과 학업의 놀라운 성취를 이룬 친구가 있다.

 

  대동세무고 3학년 염철현 학생은 지난 중간고사에서 전교 1등을 했다. 축구부가 전교 1등을 하다니. 살다 살다 이런 특이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수업 후 철현이를 만나 그 동안 무엇을 어떻게 해서 그 비결을 물어봤다.

 

  “제가 축구를 4학년 때 시작했는데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공부를 게을리 해 본적이 없어요. 좋은 성적을 받는 조건하에 축구를 하겠다고 부모님과 약속했거든요.” 

 

  철현이 부모님은 처음에 철현이가 축구 하는 걸 심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들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그 대신 조건을 걸었다. ‘기말고사 전과목 100점’. 철현이는 이 기회를 살려 진짜 기말고사 전과목 모두 100점을 맞아 축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제가 좋아하는 축구를 계속 하려면 좋은 학업성적을 유지해야 했어요. 그래서 아무리 몸이 피곤해도 공부를 열심히 할 수 밖에 없었고요. 그리고 제 주변에 계신 축구부 감독님, 학교선생님, 체육부장님들이 공부 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셨어요. 중학교 때는 전교 2등까지 해봤고 고등학교 와서도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하다 이번에 처음으로 1등을 했어요.”

 

  대동세무고 체육부장 선생님은 “철현이는 밤늦게 까지 교실에서 공부한다. 학구열이 대단한 아이”라며 칭찬했다.

 

 


<3학년 1학기 중간고사 1등한 염철현 학생의 성적표>

 

 

  그 순간 철현이가 뛰어난 학업 성취를 했기에 운동실력은 그리 뛰어나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만큼 운동과 학업 모두 좋은 성과를 내기가 말만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 주장이었어요. 서울시대표로도 뽑혔었고요. 전국대회에 나가서 3위, 주말리그 준우승도 했어요. 그리고 고등학교에 와서는 1학년 후반기 때부터 제가 주전 골키퍼로 뛰었습니다.”

 

 

<서울시 대표 선발, 서울시대표 VS 일본 동경시대표>

 

 

  만약 철현이가 공부만 잘하고 운동은 못했다면 전교 1등이라는 성적은 빛이 바랬을 것이다. 하지만 운동 실력도 이렇게 출중하니 철현이의 학업 성취가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운동하느라 몸이 피곤할 때가 많죠. 그럴 때는 공부를 좀 소홀히 하고 싶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럴 때마다 제 꿈을 생각해요. 지금 조금 힘들어서 쉰다면 나중에 꿈을 이루지 못했을 때 큰 후회를 할 것 같아요. 지금 잠깐의 나태함이 미래에 영향을 미칠 거라는 생각을 하면 열심히 안 할 수가 없어요.”

 

공부를 하면 운동실력이 정체될까

  일부 지도자와 선수들은 ‘한창 운동할 나이에 공부에 시간을 많이 투자하면 운동실력이 발전하지 않는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공부하는 걸 탐탁지 않게 여긴다. 이런 생각에 대해 철현이는 단호하게 본인의 주장을 펼쳤다.

 

  “공부와 운동을 같이 해서 운동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건 다 핑계라고 생각해요. 저는 지금껏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면서도 실력이 발전했거든요. 팀 성적도 좋았고요. 고등학교 와서는 오히려 공부 양을 늘렸음에도 더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공부든 운동이든 자기가 집중해서 노력하는 것만큼 나오는 것 같아요.” 

 

  철현이의 목표가 궁금했다. 이렇게 운동도 공부도 열심히 하는 사람은 분명 자신의 확고한 목표가 있기 마련이다.

“일단 프로선수가 되고 국가대표가 될 거에요. 그 후 은퇴를 하면 체육행정가나 교수가 되어서 우리나라의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을 바꿔보고 싶어요. 제 주변 선배들 보면 좀 안타까울 때가 있어요. 운동만 하다가 대학교 가서 그만두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럼 그때부터 뭘 해야 될지 모르더라고요.”

 

철현이가 운동과 공부 2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부모님의 꾸준한 관심과 독려.
2 지도자와 학교선생님의 도움과 배려.
3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 

 

  철현이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학부모의 관심과, 지도자와 선생님의 도움, 본인의 노력이 합쳐져야 공부하는 운동선수가 계속 나올 수 있다. 앞으로 이와 같은 사례가 많이 나와서 은퇴선수들이 사회의 리더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염철현 학생의 인터뷰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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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성민

 

 

“운동하는 놈이 운동만 잘하면 됐지. 공부는 해서 뭐 해”

 

  내가 운동할 때는 주위에서 이런 말을 하던 시대였다. 부끄럽지만 난 고등학교 3년 내내 단 한 번도 수업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 같은 반 친구가 누구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시간에 운동을 하거나 숙소에서 잠을 잤다. 때론 오락실에서 신나게 조이스틱을 두드린 적도 있었다. 그때는 우리 학교 축구부 누구나 다 그랬다. 그냥 운동만 열심히 하면 그걸로 족했다. 그래도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인생의 황금기를 너무 허무하게 흘려 보냈다. 공부도 친구도 아무것도 얻은 게 없이 말이다.

 

  운동선수의 삶은 달콤한 유혹이다. 성공하면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거머쥔다. 그래서 너도나도 이 도박판에 판돈을 밀어 넣는다. 그 순간 모두가 잭팟의 주인공을 꿈꾼다. 하지만 운동으로 성공하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 초등학교 때 축구를 시작해 프로선수(K리그 클래식)가 될 확률은 0.8%. 내셔널리그, K3를 포함해도 약 3%에 불과하다. 지금도 많은 학생선수와 학부모들이 이런 무모한 확률의 도박에 모든 걸 건다.


  좋다. 실력이 특출나거나 천운을 타고나 0.8% 안에 들어간다고 치자. 그렇다 해도 진짜 고수들과의 진검 승부는 그때부터 시작이다. 프로에는 전국에서 날고 기는 타짜들이 다 모인다. 게다가 국내 타짜들 보다 더 뛰어난 외국인 선수들도 으르렁거린다. 이런 무시무시한 정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펼치다 대부분의 선수가 1~2년 안에 강제 퇴거 조치를 당한다.

 

  준비 없는 은퇴는 치명적이다. 아무런 준비 없이 운동 하나만 보고 달려온 선수들은 은퇴할 즈음에 서야 뭔가 잘못됐다는 걸 인지한다. 사회라는 또 다른 정글에 나가 싸울 무기가 변변치 않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해 남들은 최첨단 스텔스 폭격기와 미사일로 무장했는데, 은퇴 선수들은 딱총 한 자루로 싸우니 게임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나서 '학창 시절에 왜 공부를 하지 않았을까', '왜 준비를 하지 않았을까' 땅을 치며 후회한다. 나도 20대 중반에 아무 준비 없이 은퇴를 했다. 10년 이상 신었던 축구화를 갑자기 벗고 나니 할 게 없었다. 뭘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눈에 보이는 건 캄캄한 암흑이었다. 

 

  결국 교육이 답이다. 지금은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교육의 중요성을 모르는 선수와 지도자들이 많다. 험난한 경쟁 사회에서 낙오자가 되지 않으려면 교육이 필요하다. 은퇴 후 삶을 왜 준비해야 하는지 어떻게 진로 설정을 할 것인지 학생 선수들에게 일깨워줘야 한다. 그래야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거듭날 수 있다. 세상을 바꾸는 건 사람이지만 사람을 바꾸는 건 교육이다.

 

 


By failing to prepare, you are preparing to fail
준비를 실패하면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다
- 벤자민 프랭클린 –

 

 

 

※ 본 교육은 대한체육회가 주관한다. 대한체육회가 양성한 선수출신 전문강사들이 학교에 직접 방문해 학생선수들의 은퇴 후 성공적인 사회진출을 도모할 수 있도록 진로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학생선수들에게 운동과 학업의 병행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자존감을 고취해 스스로 목표 설정을 할 수 있도록 동기 부여를 해주는 것이 이 교육의 주된 목표다.

 

 

 

© kvrkchowdari, 출처 Pixabay

 

# 운동선수의 뻔한 진로
  오늘은 운동선수의 진로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이다.

  잠깐 여기서 진로의 사전적 의미를 알아보자. 진로(進路)는 한자의 나아갈 진(進)자와 길로(路)자를 합쳐 앞으로 나아갈 길을 의미한다. 간단히 말하면 어떤 인생을 살 것 인가에 대한 계획을 세워보는 것이다. 학생선수의 진로 계획은 일반 학생과는 너무나 다르다. 일반 학생들은 자신의 적성과 흥미에 따라 진로 계획을 세우기 때문에 다양한 길을 갈 수 있다. 반면 학생선수들의 진로는 무척 단조롭다. 운동에 발을 들여놓은 그 순간부터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고 봐야 한다.


1 대학교 진학 → 2 프로 / 실업 진출 → 3 은퇴 → 4 지도자 / 자영업

  우리나라 운동선수 대부분이 이런 길을 걸어왔다. 선배들이 이런 길을 닦아왔으니 후배들도 그 길을 자연스럽게 따라갔다. 2014년 대한체육회와 조선일보가 공동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은퇴운동선수의 진로는 지도자와 자영업의 비율이 압도적이었다. 사실 이 자료가 아니더라도 고개를 돌려 은퇴선수들이 하고 있는 일을 찾아보면 비슷한 답이 나온다.

 

 


대한체육회 조선일보 공동 설문조사

 

 

# 지도자 or 자영업
  지도자 비율이 높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평생 운동만 해왔기에 다른 걸 하고 싶어도 사회에 나가면 경쟁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너도나도 은퇴하고 나면 지도자 자리부터 알아본다. 그나마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게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도자 취업 시장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괜찮은 자리는 국가대표 타이틀을 달아본 선수들이 이미 다 차지하고 있다. 국가대표를 해보지 못한 20대 초중반의 은퇴 선수들은 보통 초등학교나 중학교 코치부터 시작하는데 이들을 보통 새끼 코치라고 부른다. 처우는 월 150만원 이하가 대부분이다. 내가 아는 후배는 월급 50만원 받으며 지도자 일을 시작했다. 게다가 그나마 남은 지도자 자리도 거의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언제 짤릴지 모르는 상황에 놓여 있다. 

 

  자영업의 비율은 지도자를 넘어선다. 괜찮은 지도자 자리는 이미 포화 상태이기에 여기서 탈락한 선수들은 자영업 시장으로 눈을 돌린다. 100만원 받고 지도자 할 바에야 어디 가서 다른 일을 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 맨땅에 헤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다. 은퇴 선수들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역량을 갖추지 못했기에 취업보다는 자영업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 이게 바로 은퇴 운동선수들이 눈앞에 마주한 현실이다.

 

 

발표지도 ⓒ임성민

 

 

# 발표는 너무 힘들어
  본론인 수업 얘기로 다시 들어가 보자. 진로에 대해서 글로 써보고 직접 발표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에게 발표를 해보라고 하니 무척 힘들어했다. 선수생활을 하면서 앞에 나와서 발표해 본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얘들아 아무리 잘 나가는 선수도 30대 중반이면 은퇴하잖아. 그러니 너희들이 은퇴 후 해보고 싶은 일을 한번 써봐. 그걸 바탕으로 발표할거야. 단 선택할 때는 크게 3가지 정도를 생각해야해.

1. 좋아하는 일인지
2. 잘할 수 있는 일인지
3. 앞으로 전망이 밝은 일인지

"다 썼어? 발표 해 볼 사람?" 선뜻 나서는 친구들이 없다. 이럴 때는 어쩔 수 없이 지목해야 한다. 뒤쪽에 앉은 가장 산만한 아이를 불러냈다. 그 많은 사람 중에 왜 나냐는 표정이었다.

"저는 축구 코치가 되고 싶습니다" 예상은 어느 정도 했지만 발표를 하는 아이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너무 없었다.

"발표 할 때는 큰소리로 자신감 있게 해야지. 그래야 너 이야기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여주지." 이렇게 말을 해도 아이의 시선은 계속 땅으로 꺼지고 목소리는 기어 들어갔다.

"좋아. 얘들아 이렇게 답변해보자.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합니다'라고 말했을 때에는 그 이유를 설명 해줘야 해. 그래야 좀 더 설득력 있는 답변이 될 수 있어. 예를 들어 저는 은퇴 후 축구 코치가 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축구를 좋아합니다. 또한 지금까지 제가 해왔던 축구를 가르친다면 익숙한 일이라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발표하고 있는 아이들 ⓒ임성민

 

 

  발표력은 성공적인 사회 생활뿐만 아니라 대학교 생활에 있어서도 필수 요소다. 이제 대학에서도 예전처럼 운동부라고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최순실 정유라 부정입학 여파로 운동선수들에게도 일반 학생들과 똑같은 잣대를 들이댄다.

 

  게다가 2017년부터 최저학력제, 소위 ‘C제로 룰’을 시행하고 있다. 평균학점이 C제로 미만인 선수들은 경기에 출전할 수 없는 규정이다. 올해 연세대 축구부는 28명의 학생 중 14명이 C제로 룰에 걸리자 아예 U리그 참가를 포기했다. 이렇듯 운동부 선수들도 각종 수업 과제 제출은 물론 발표도 많이 해야 한다. 발표를 잘 하는 선수들은 분명 학점 취득에 유리한 시대에 접어들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건 대학생이나 직장인들에게도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나는 운동선수라서 발표 같은 건 못해도 괜찮다'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어려워도 자꾸 해봐야 는다. 어렵다고 안 하면 평생 못한다. 처음부터 베테랑이 어디 있나. 부끄러워도 꾸준히 발표를 하다 보면 점점 익숙해진다.

 

  비록 짧은 교육 기간이지만 아이들이 점점 발표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가려고 한다. 계속 질문을 던지고 좋은 답변이 나오도록 유도하면 분명 말하기 실력이 향상된다. 그래서 아이들이 대학에 가서 "아 그때 임선생님과 같이 했던 발표 시간이 많은 도움이 되었어"라고 말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인터뷰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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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우효동

 

                                                    

                                       그림 1.                                                                     그림 2.

     

                         

 

  이야기 하나, 초당 7만 장을 찍고 적외선을 감지하는 특수 카메라를 통해 테니스 스윙이 시작되어 끝날 때까지 관절 각도와 속도를 분석한다. 피부 표면에 붙인 작은 조각들은 언제, 얼마나 힘을 쓰고 있는지를 측정해 훈련 참여자가 적절하게 힘을 사용하고 있는지 혹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지는 않는지 분석한다. 뿐만 아니라 군용 레이더와 같은 기능을 가진 탄도추적시스템은 공의 회전과 속도, 높이, 각도, 궤적 등에 대한 정보를 분석해 얼마나 멀리 또 정확하게 날아가는지 판단한다.

 

  이야기 둘, 분석된 자료들은 인공지능 컴퓨터에 의해 자동으로 음성, 이미지의 형태로 변환되어 훈련 참여자에게 제공되고, 여기에는 부족한 부분과 보완해야 할 부분, 향후 연습방향 등이 전부 포함된다. 이때, 인공지능 컴퓨터는 최대한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비교해 테니스에 대한 모범답안을 도출하고 이를 고려한 피드백을 참여자에게 전달한다.

 

  스포츠과학이 낮선 사람들은 마치 먼 미래의 일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첫 번째 이야기는 현재 실험실에서 전문운동선수들의 동작을 분석할 때 사용되는 장비들에 대한 설명이다. 비록 아직은 해당 장비들이 고가인데다가 운용에 어려움이 있어 대중화되지는 않았지만, 기술의 발전과 적용속도를 생각하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지는 않다. 또한 이미 예상했겠지만, 두 번째 이야기는 미래를 가정하여 꾸며낸 이야기다. 하지만 인공지능에 대한 수많은 전문가들의 전망을 살펴보면 이 또한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향후 고급 스포츠기술의 대중화가 이루어지고, 또 인공지능 컴퓨터와의 결합이 이루어지면 스포츠현장에는 과연 어떤 영향을 미칠까? 먼저, 기술과 인간이 공존하게 될 교육현장을 한 번 비교해보자.

 

 

                                그림 3.                                                                그림 4.

      

 

 

인공지능 : “뒤에서 라켓을 조금 더 내리고, 이때 손목의 각도를 20cm 아래로 내리세요!” “힘을 좀 빼고, 부드럽게 하셔야 합니다. 힘을 쓰는 순간을 2초 더 늦추세요!” “자꾸 네트에 걸리죠? 조금 더 높게 보고~ 공에 회전을 30% 정도 더 주시면 되요! 무릎을 아래로 30cm 더 구부리고요!”

 

지도자 : “

 

  애석하지만, 운동기술에 대해 분석하고 조언하는 것에 관해서는 미래의 인공지능 컴퓨터가 사람보다 나으면 나았지 더 못할 것 같지는 않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피사리데스와 스티글리츠, 초대형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의 저자인 유발 하라리 교수 등 언제부터인가 전 세계 내로라하는 석학들이 입만 열면 하는 얘기가 있다. 가까운 미래에 과학기술의 발달이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할 것이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과연 스포츠 현장에서는 어떨까? 과학기술의 발전이 스포츠 지도자들의 자리를 위협하는 날이 올까? 결론부터 말하면, 10년 간 엘리트 선수로 활동했고, 8년 간 스포츠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는 필자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지금부터 필자는 어째서 미래에도 스포츠 지도자들이 굳건히 건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지 살펴보자.

 

 

                                      그림 5.                                                        그림 6.

   

                                                                                                   

 

  첫째, 모든 사람은 성별부터 나이, 신체능력, 추구하는 스타일까지 완벽하게 다르다. “21세기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의 테니스 동작은 너무나 아름답고 훌륭하기에 로저 페더러 처럼 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 이는 일부는 맞고, 일부는 완전히 틀린 이야기다. 근처 테니스장을 지나가다 노란 공이 너무 예뻐 큰 맘 먹고 시작한 30대 주부, 몇 년 전 다친 무릎이 아직 완전하지 않은 40대 남성,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과 같이 모여 경기를 하는 데 자꾸만 실수가 나와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연습하고 싶은 50대 남성은 페더러의 동작이 아름답고 훌륭해보일지언정 결코 그와 같이 되고자 하는 노력을 하고 싶지도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이 즐기고자 하는 테니스, 그들이 할 수 있는 테니스는 각도와 속도, , 높이에 있지 않다. 즐거운 경험, 본인의 신체 상태에 맞는 적당한 운동 강도, 본인의 부족함을 보완할 수 있는 맞춤형 운동까지 그 주제와 내용이 천차만별이다. 이는 다시 말하면, 모든 사람은 운동에 참여하는 이유가 다르고 시작점이 다르며 목표가 다르다는 것으로, 주어진 모든 정보를 종합하고 적절하게 대응하여 최적의 판단을 내리는 것은 분명 인공지능이 아닌 인간이 더욱 잘 할 수 있는 일이다.

 

 

                                     사진 7.                                                   사진 8.

   

                                                                                                                                                   

 

  둘째, 스포츠 기술에는 완벽한 하나의 정답이 있을 수 없다. 앞서 언급했던 페더러의 방식이 훌륭하다고 평가받을 수는 있지만 누구나 따라야 할 정답으로 받아들여질 수는 없는데, 나달이나 조코비치 등 다른 훌륭한 모범 답안이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의 정답을 인정하고 거기에 초점을 맞춰 교육을 진행한다고 해도 관절가동범위나 근력, 유연성 등의 차이로 인해 결코 같은 결과가 도출되지 않는다. 이로 인해 현장의 지도자는 본인의 레슨회원을 페더러나 나달처럼 만들기보다 자신의 경험을 녹여내 그 사람만의 정답을 만들어 나간다. 반면 최적의 값을 설정하고 지금 앞에 있는 사람이 해당 값으로부터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 편차를 측정한 뒤, 그것을 줄여나가고자 하는 과학적 접근은 매번 새로운 정답을 만들어 가는 일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무엇보다 저마다 각기 다른 정답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대단히 과학적이지 않다!). 그러나 완벽하게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의 정답을 강요하는 건 체형이 각기 다른 사람들에게 한 사이즈의 옷을 입혀야 하는 것과 같다. 인공지능 컴퓨터가 인간처럼 절충하고 타협하여 각기 다른 사람에 맞는 여러 가지 정답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가정하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으나 과연 어디까지 해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림 9.                                                                       그림 10.

 

 

 

  셋째,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분석내용을 습득해야 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스포츠교육은 무엇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바로 적용되지 않는다. 분석과 조언을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깨달음은 그리 오랜 시간 지속되지 않는다. 입력한 대로 바뀌고 잊어버리지 않는 건 인간이 아닌 로봇이나 가능한 일이다. 실제 스포츠 현장에서는 뭔가 되는 것 같고 완전히 감을 잡은 것 같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잊어버리고 또 다시 되찾고 잊어버리는 일들이 수없이 반복된다. 결국 수없이 많은 반복을 통해 몸에 완전히 익히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자신의 것이 되는데, 그 과정은 생각보다 느리고 요원하다. 이러한 과정에 필요한 것은 분석결과가 아닌 따뜻한 말 한마디와 감정적 배려, 바로 사람의 공감능력이다.

 

  그렇다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사회의 바람직한 스포츠 지도자란 어떤 능력을 가진 사람일까? 20여 년 간 스포츠 현장을 경험했던 필자는 이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그림 11.                                         그림 12.

   

 

 

  첫째, 세심한 관찰자이자 사람과 상황을 모두 고려하는 면밀한 설계자

지도자들은 관련된 지식을 알고 이를 회원들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끝낼게 아니라 회원 각자의 관심과 수준에 따라 지도하는 내용과 방식을 달리 설계해야한다. 20대 학생, 30대 주부, 40대 직장인, 60대 은퇴자 등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전해야 할 내용이 달라지고, 어떤 목적으로 운동에 참여하는지도 고려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레슨회원의 신체상태가 어떤지, 감정적으로는 어떤지를 반영해서 교육진행 계획을 조절해야 하고, 교육진행에 따른 회원들의 반응을 살펴 미래의 교육목표와 강도를 조정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림 13.                                                                               그림 14.

    

 

 

  둘째, 기술과 사람을 조율해 최적의 결과를 이끄는 탁월한 협상가

나날이 발전하는 과학적 분석을 교육내용에 반영하되, 저마다 다른 신체능력과 목표를 반영해야 한다. 이때 많은 경험을 지닌 지도자의 시선과 조언은 정성적인 과학의 일부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분석과 평가는 어디까지나 현재상태가 어떤지, 어떤 기술적 특성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과 앞으로 어떤 정답을 만들어 가면 좋을지 고민하는 참고자료가 되어야 하며, 지도자는 기술과 사람의 관계에서 균형을 잡고 양측을 적절히 조율해 그 사람만의 정답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림 15.                                                    그림 16.

     

 

 

 

  셋째, 오랜 친구 같은, 편안한 감정적 동반자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인공지능이 탄생해도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배우는 것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작은 성취에 기뻐하고 때로는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아 좌절하기도 하는 감정곡선을 갖는 것이 사람이다. 따라서 바람직한 지도자란 단지 분석하고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먼저 다가가 귀를 기울이고 감정적인 부분들까지 함께 어루만지는 소통과 공감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를 넘어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해 유발 하라리 교수는 자신이나 타인의 감정을 인지하고 잘 다스려 원하는 것을 이루어 내는 감정지능이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의 강점으로 중요하게 될 것이라고 전한 바 있다.

 

 

                                                               그림 17.                                            그림 18. 

         

 

 

  자연선택 과정에서 분자들이 단계적으로 증가하고 통합된 수십억 년의 산물이자 춤추는 수 십 억 개의 세포들 내의 도로를 따라 미끄러지는 유액과 화학물질로 구성된 창조물, 그리고 수조개의 시냅스들간의 대화가 동시에 이루어지고 미크론 두께의 회로를 가진 커다란 계란 모양의 조직이 현대과학에서는 꿈도 못 꿀 알고리즘으로 운영되는 기계, 셀 수 없이 많은 뉴런의 활동들, 또한 셀 수 없이 많은 신경 다발들의 움직임, 눈에 보이지 않는 크기의 입자들이 존재하는 이것은 다름아닌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인코그니토 중, 데이비드 이글먼).

 

  많은 사람들이 과학기술의 발전과 인공지능의 등장이 미래에 엄청난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인간의 존재 또한 그 자체로 신비하고 위대한 존재임이 틀림없다. 비전공자로서 인공지능과 과학기술에 대한 지나친 비약을 했다는 생각이 없지 않지만, 오랜 시간 스포츠지도 현장에서 보고 느꼈던 것들을 정리하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스포츠 지도자들이 어떤 일들을 해왔고 또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그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했다. 과연 과학기술과 인공지능의 발전이 스포츠 현장에 어떤 변화를 불러오게 될까.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분명 사람과 기술이 한데 어우러진, 오늘보다 더 발전된 모습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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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학수

 

 

경기 중인 타이거 우즈의 모습 (출처 : pixabay)

 

 

  타이거 우즈가 처음 프로무대에 섰을 때, 세계 골프계는 경악했다. 19974월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마스터스대회에서 우즈는 2위보다 무려 12타차나 앞서며 프로 첫 우승을 차지했다. 골프에서 흑인은 안된다는 백인들의 고정 관념을 일거에 무너뜨리고 골프의 구세주로 전격 등장했던 것이다. 우즈에게 골프를 하게 한 그의 아버지 얼 우즈조차 선택된 사람이라고 아들을 말하며 그동안 어떤 사람도 하지 못한 성과를 올렸다고 극찬했다. 골프전문가들은 당시 우즈 전성시대를 점치며 그를 범접할 선수가 등장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우즈가 주요 대회를 석권해 나가자 여러 대회 골프장들은 좀 더 길고, 까다롭게 코스를 개조했으나 그의 강세는 좀처럼 꺾일 줄 몰랐다. 코스를 힘들게 하면 다른 선수들은 더욱 악전고투했던 반면, 우즈는 탁월한 경기력으로 유유자적, 우승행진을 이어 나갔던 것이다. 마치 공원에서 편하게 산보하듯이 우즈는 우승컵과 상금을 휩쓸었다.

 

  골프는 선수들이 장비를 갖고, 대회 운영자들은 핀위치를 쉼없이 조정하는게 가능한 대표적인 인공스포츠이다. 게임을 때로는 쉽게도, 어렵게도 할 수 있는 종목이다. 우즈의 일방독주를 막으려 했던 것은 종목의 특성을 살려 경기의 재미와 흥행을 이끌어 내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즈의 신들린 경기력 앞에서는 인간의 인위적 조정도 결코 쉽지 않았던 것이다. 우즈가 나중 무너진 것은 여자 문제 등의 복잡한 사생활과 나이, 부상 등이 겹치면서였다.

 

  골프에 비해 다른 종목들은 움직일 수 있는 여지가 골프만큼 많지 않다. 예를 들어 육상은 팬들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서 신기록 작성을 기대하고 있지만 인간의 육체적 한계 때문에 여의치 않다. 최고기록이 깨지는 속도는 점차 무뎌지고 있으며 기록순위도 근소한 차이로 이루어진다. 신기록이 많이 나올수록 기록의 정직성에 대한 의심이 늘어나는 게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육상은 인간의 탁월함을 겨루는 대표적인 종목이다. 가장 강하고, 가장 빠르고, 가장 멀리, 가장 적합한 승자를 가리는 순수한 경쟁스포츠이다. 최고의 성취를 위해 부자연스러운 방법을 동원하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루어졌던 일이다. 따라서 부정한 행위를 단속하기 위한 연맹체 등의 노력도 함께 따랐다.

 

 

 

2013 런던올림픽에서 경기 후 세레머니를 하고 있는 우사인 볼트 (출처 : wikipedia)

 

 

  현재 세계 단거리 1인자 우사인 볼트는 별난 선수라고 할 수 있다. 폭발적인 질주를 전매특허로 내세운 볼트는 보통의 스프린터보다 키가 월등히 크다. 높이가 단점이 될 수 있지만 그는 묘하게도 이를 잘 극복했다. 볼트는 전에 볼 수 없었던 방법으로 인간 역사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로 올림픽을 3연패했다. 볼트 이전 최고의 육상선수로 불렸던 1936년 베를린올림픽 4관왕 제시 오웬스가 현존한다하더라도 볼트에게는 기록상에서 밀려 1인자 자리를 결코 넘볼 수 없을 것이라는게 국제육상전문가들의 가정이다.

 

  스포츠는 사실 순수 인간적인 능력을 향상시키고 부정한 행위는 방지하는 이중적인 기준에 의해 발전했다. 이를 주도해 나간 것이 슈퍼스타들이었다. 하지만 과학적 기술의 발달로 인해 인공적인 기술의 접목이 점차 늘어나면서 스포츠 자체를 파멸시킬 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1920년대와 1930년대는 경기력 향상을 위해 수주에서 많게는 수개월간 훈련을 하는 것 자체를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행위로 받아들이고 대회 당일날 순수하게 누가 더 나은 가를 겨루는 것이 진정한 스포츠라고 인식하던 고전적인 시대였다. 지금은 훈련이 경기력 향상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좋은 것으로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었다.

 

  우즈, 볼트 등 최고의 선수들은 과거보다 훨씬 강한 존재들이다. 초인간적인 선수들은 완벽을 추구하며 각본없는 스포츠의 드라마를 새롭게 쓰고 있다. 이들은 어떻게 보면 별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적인 노력에 의해 슈퍼스타의 입지에 오른 이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과 경탄의 대상이 된다. 마이클 조던, 펠레, 타이거 우즈 등은 한때 신과 같은 경이의 대상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들은 보통 사람들과는 분명 다르다. 하지만 앞으로 기술적 진보 속에서 엘리트 선수들은 결코 일반인과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서 있을 지도 모른다. 인공적인 장점을 추구하며 스포츠가 창출할 수 있는 가치가 있다면 그 가치를 기반으로 새로운 스포츠 형태가 탄생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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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학수

 

 

 

  2017 FIFA U-20 월드컵 대회 개막을 며칠 앞두고 모 대학교 체육관련과목 수업 때 축구선수인 한 학생에게 스페인의 세계적인 명문구단 바르셀로나에서 활동중인 이승우, 백승호 선수가 국내 선수와 어떤 점이 다르냐?”라고 물었다. 학생은 화려한 개인기와 폭발적인 돌파력, 높은 골결정력으로 상대 선수들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자신감있게 경기를 풀어가는 담대한 모습이 인상적이다라며 만약 두 선수가 국내서 선수생활을 계속했다면 지금과 같은 능력을 갖추지 못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코치의 철저한 통제하에 훈련과 실제 경기를 해야하는 국내 환경에서는 개성이 강한 이승우, 백승호가 나오기 힘들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2017 U-20 월드컵 아르헨티나 전에서 골을 넣고 세레머니를 하는 백승호(오)선수와 축하해주는 이승우(왼)선수 (출처 : KFA)

 

  이번 대회 아르헨티나와의 예선전에서 이승우는 역동적이고 빠른 돌파력과 개인기를 보여주었다. 하프라인부터 치고 들어가 수비수 4명과 골키퍼를 제치고 골을 넣었다. 백승호는 아르헨티나 경기에서 페널티킥을 골키퍼와 반대방향으로 차넣어 상대의 허를 찌르는 심리전술에 강한 일면을 과시했다. 백승호는 페널티골을 기록한 뒤 양 손가락으로 네모 모양을 그리는 멋진 골 세리모니를 했는데, 이는 조 추첨식에서 아르헨티나가 한국과 같은 조에 속한 것을 기뻐했던 마라도나를 상대로 마치 그거 뽑고 좋았죠하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해주었다.

 

  한국축구에서 둘은 많은 무리 속에서 고고한 빛을 발하는 군계일학과 같은 존재이다. 둘은 예전 한국 선수들에게서 볼 수 없었던 자유분방한 플레이를 펼쳤다. 공이 발에 붙어 다니는 듯한 드리블과 거친 야생마처럼 몰아붙이는 스피드를 구사하는 둘의 모습을 보노라면 마라도나와 메시같은 세계 정상급 선수들의 경기와 흡사하다는 느낌을 준다. “한국 선수 같지 않다는 말을 팬들로부터 듣는 것은 한국축구에서 보지 못했던 새로운 스타일의 축구를 하기 때문이다.

 

  둘이 국내 한국선수들과 다른 감각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일찍이 명문 바르셀로나에 입단해 부모님의 강력한 관심 속에 기본기를 착실히 배우며 경쟁력을 높였기 때문이다. 이승우의 아버지는 안양의 유소년클럽에서 형을 따라 축구를 배워 두각을 나타내던 그를 포천에 있는 김희태 축구학교, 홍명보 감독이 운영하는 수원 FCMB로 보내 축구를 가르쳤다. 이승우는 열 세 살이던 2011년부터 바르셀로나 유소년팀에서 축구를 익혔다. 2009년 초등학교 시절 18경기에서 30골을 넣으며 차범근 축구대상을 수상하는 등 빼어난 유망주로 일찍이 재능을 발휘한 백승호는 2010년 수원 삼성 유소년팀인 매탄중에서 잠시 뛰다가 바로 바르셀로나 유소년팀으로 이적했다. 백승호의 아버지 백일영 연세대 체육교육과 교수는 필자와 ROTC 동기로 훈련이 세기로 유명한 특전사에서 함께 근무했었다. 백승호는 테니스 선수출신인 아버지의 운동소질과 어머니의 자상한 뒷받침으로 부모의 DNA를 잘 이어나가는 유망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바르셀로나의 유소년 육성시스템은 둘을 화려하게 꽃피웠다. 라 마시아(La Masia· 스페인어로 농장이라는 뜻)라고 불리는 육성시스템은 선수 이전에 사람이 되야한다는 원칙을 갖고 인성과 자기개발을 위한 교육에 주력하면서 축구는 하루 1시간 반 정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방법을 고수하는 것은 학교생활을 제대로 해야 창의적 축구를 할 수 있다는 실천 목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바르셀로나는 유망주 시절부터 즐겁게 축구를 익히게 하면서 드리블, 패스, 트래핑 등 기본적인 기술을 터득토록 한다. 패스 위주의 정교한 스페인 축구 티카티카(스페인어로 탁구공이 왔다갔다한다는 의미)’를 몸에 자연스럽게 배어들도록 하는 것이다. 한국의 축구환경처럼 코치가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며 체력적으로 강한 면을 요구하는 것과는 아주 비교된다.

 

  메시, 사비 에르난데스, 퓨욜 등 축구 레전드들이 바르셀로나의 장기간에 걸친 집중 교육으로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일찍이 유망주로 발탁된 선수들이 오랜 시간을 두고 철저한 훈련시스템에 의해 관리되며 자신들의 기본 소질 뿐 아니라 숨은 재능까지 찾아내 슈퍼 선수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기본과 원칙을 소홀히 하고, 이기는데 필요한 기술과 전술을 배우는 한국 축구의 교육 생태계와 개성을 존중하며 가치있는 축구선수를 키우는 바르셀로나 육성시스템에서 두 나라의 축구 실력차만큼 축구 문화가 크게 다르다는 것을 실감케 한다.

 

  기본기에 충실하고 다양한 규율속에서 축구 재능을 향상시키는 이승우와 백승호가 메시에 못지않은 세계 축구의 지존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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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성민

 

 

“운동하는 놈이 운동만 잘하면 됐지. 공부는 해서 뭐 해”

 

  내가 운동할 때는 주위에서 이런 말을 하던 시대였다. 부끄럽지만 난 고등학교 3년 내내 단 한 번도 수업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 같은 반 친구가 누구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시간에 운동을 하거나 숙소에서 잠을 잤다. 때론 오락실에서 신나게 조이스틱을 두드린 적도 있었다. 그때는 우리 학교 축구부 누구나 다 그랬다. 그냥 운동만 열심히 하면 그걸로 족했다. 그래도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인생의 황금기를 너무 허무하게 흘려보냈다. 공부도 친구도 아무것도 얻은 게 없이 말이다.

 

운동선수의 삶은 달콤한 유혹이다. 성공하면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거머쥔다. 그래서 너도나도 이 도박판에 판돈을 밀어 넣는다. 그 순간 모두가 잭팟의 주인공을 꿈꾼다. 하지만 운동으로 성공하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 초등학교 때 축구를 시작해 프로선수(K리그 클래식)가 될 확률은 0.8%. 내셔널리그, K3를 포함해도 약 3%에 불과하다. 지금도 많은 학생선수와 학부모들이 이런 무모한 확률의 도박에 모든 걸 건다.

 

  좋다. 실력이 특출나거나 천운을 타고나 0.8% 안에 들어간다고 치자. 그렇다 해도 진짜 고수들과의 진검 승부는 그때부터 시작이다. 프로에는 전국에서 날고 기는 타짜들이 다 모인다. 게다가 국내 타짜들 보다 더 뛰어난 외국인 선수들도 으르렁거린다. 이런 무시무시한 정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펼치다 대부분의 선수가 1~2년 안에 강제 퇴거 조치를 당한다.

 

  준비 없는 은퇴는 치명적이다. 어느 사회든 준비가 안된 사람은 찬밥 신세다. 아무런 준비 없이 운동 하나만 보고 달려온 선수들은 은퇴할 즈음에 서야 뭔가 잘못됐다는 걸 인지한다. 사회라는 또 다른 정글에 나가 싸울 무기가 변변치 않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해 남들은 최첨단 스텔스 폭격기와 미사일로 무장했는데, 은퇴 선수들은 딱총 한 자루로 싸우니 게임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나서 '학창 시절에 왜 공부를 하지 않았을까', '왜 준비를 하지 않았을까' 땅을 치며 후회한다. 나도 20대 중반에 아무 준비 없이 은퇴를 했다. 10년 이상 신었던 축구화를 갑자기 벗고 나니 할 게 없었다. 뭘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눈에 보이는 건 캄캄한 암흑이었다. 

 

  결국 교육이 답이다. 지금은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교육의 중요성을 모르는 선수와 지도자들이 많다. 험난한 경쟁 사회에서 낙오자가 되지 않으려면 교육이 필요하다. 은퇴 후 삶을 왜 준비해야 하는지 어떻게 진로 설정을 할 것인지 학생 선수들에게 일깨워줘야 한다. 그래야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거듭날 수 있다. 세상을 바꾸는 건 사람이지만 사람을 바꾸는 건 교육이다.

 


By failing to prepare, you are preparing to fail
준비를 실패하면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다
- 벤자민 프랭클린 -

 

 

 

※ 본 교육은 대한체육회가 주관한다. 대한체육회가 양성한 선수출신 전문강사들이 학교에 직접 방문해 은퇴 후 성공적인 사회진출을 도모할 수 있도록 진로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학생선수들에게 운동과 학업의 병행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자존감을 고취해 스스로 목표 설정을 할 수 있도록 동기 부여를 해주는 것이 이 교육의 주된 목표다.

 

 

 

은퇴 후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있는 아이들 ⓒ임성민

 

 

  초침이 2시를 가리키자 축구부 학생들이 하나둘씩 강의실로 내려왔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동기 부여를 해줘야 할지 가슴이 뛰었다. 그 동시에 막중한 책임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고등학교 운동선수들에게 '은퇴 후 인생'이라는 단어는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강의를 통해 한두 명이라도 미래의 대해 깊이 고민한다면 그건 성공이었다. 나도 축구 선수였고 다양한 스포츠 분야에서 일을 해왔다는 소개를 하니 학생들이 좀 더 친근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 같았다. 

 

  "여러분 이 교육의 목적은 은퇴 후의 삶을 미리 생각해보고 지금부터 조금씩 계획을 세워 보는 거야." 학생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들의 표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고등학생들에게 은퇴는 말도 안 되는 단어다. 이 나이 때 선수들 모두 손흥민처럼 유럽에 나가 휘황찬란한 미래를 꿈꾼다. 그러니 은퇴가 도대체 무슨 말인가. 은퇴는 꿈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래도 아이들에게 교육을 해야 한다. 운동과 학업을 병행해야 하는 그 이유를 조금이라도 마음에 와 닿게 해줘야 한다. 그래야 조금 더 일찍 준비할 수 있다. 그 동시에 아이들의 꿈을 꺾으면 절대 안 된다. 꿈은 꿈대로 쫓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학업과 적성 개발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줘야 한다.

 

 

 

은퇴 후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발표 ⓒ임성민

 

 

  “만약 여러분이 부상이나 기타 이유로 운동을 그만두게 된다면 뭐 할 거야?”

  “요리사요, 전 동물 사육 사요, 김치 판매요.” 예상외로 다양한 답변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요즘 아이들의 생각은 확실히 내가 운동했을 때와는 달리 자유분방했다. 시대가 변한 만큼 아이들의 생각도 많이 열려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입을 떼지 못했다. 그래서 몇몇 아이에게 질문을 던졌더니 “글쎄요. 생각해 본 적 없는데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찌 보면 당연한 대답이었다. 아직도 많은 학생선수들은 은퇴 후 뭘 해야 할지 깊이 고민해 보지 않는다. 지도자도 학부모도 은퇴 후 삶의 대해서 아이들에게 적극적으로 교육을 하지 않는 것 같아 보였다. 

 

  “안타깝지만 너희들 중에 프로나 실업선수가 될 확률은 10% 미만이야. 자 여기 대한체육회 체육정보센터 통계자료 보이지. 여기 32명이 있으니까 직업 운동선수가 될 확률은 많아야 3명 정도 되겠네.” 그러자 몇몇 아이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특히 3학년 아이들이 조금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느낌이었다. 사실 축구 선수만 놓고 보면 10%가 아니라 약 3%. K리그 1부 리그인 'K리그 클래식'은 0.8%까지 줄어든다. 하지만 0.8%라고 하면 너무 사기를 꺾는 것 같아서 전 종목을 조사한 대한체육회 수치를 인용했다. 

 

"선생님도 너희들 모두 국가대표가 되고 스타가 됐으면 좋겠어.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아." 

그렇다. 현실은 생각보다 냉정하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일찍 운동과 학업을 병행해야 하는 이유를 느끼게 해줘야 한다.

2시간 동안 다양한 통계와 시청각 자료를 통해 아이들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했다. 강의가 마음에 와 닿았는지  1학년 1명, 2학년 1명, 3학년 1명이 나를 찾아왔다.

 

  “선생님, 대한축구협회는 어떻게 들어가요? 뭘 준비해야 하나요? 협회에서는 무슨 일을 하죠?”

 

  의외였다. 이런 질문을 받을지 생각지도 못했다. 그래서 축구협회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것저것 설명해줬다. 미래 진로에 대해 이 정도만 관심을 갖게 해준 것 만도 대성공이었다. 아이들에게 "운동해서 피곤할 텐 데 강의 듣느라 수고했다"라고 했더니 "아니에요. 아주 유익한 내용이었습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남은 5회의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어떤 도움을 줘야 할까. 이게 내게 남겨진 가장 중요한 숙제다.

 

 

 

동영상 : 대동세무고 주장 오지훈 인터뷰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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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학수

 

 

출처 :  Obama White House Archives

 

 

 

 

  세계 어느 대통령이건 대통령의 중요한 역할로 국민과의 소통을 잘 하는 것을 꼽는다. 대통령이 국민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국민들의 의견과 비판을 직접 들을 수 있고, 이를 대통령의 정책에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국민과의 만남이 대통령 동정의 최우선 순위로 여겨지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대통령이 스포츠 스타나 우승팀을 초청, 성대한 환영식을 갖는 것도 국민들에게 자신의 대중적인 존재감을 알리는 홍보 방법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가 가장 성공한 미국에서 대통령이 집무실인 백악관에서 스포츠팀과 공식 만남의 행사를 갖는 것은 매우 오랜된 전통이다. 남북전쟁 직후인 1865년 8월30일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앤드류 존슨 대통령은 브루클린 애틀랜틱스와 워싱턴 내셔널 아마추어 야구팀을 백악관으로 초청했다. 존슨의 뒤를 이은 율리시스 그란트 대통령은 1869년 첫 프로야구팀인 신시내티 레드 스토킹스를 초대팀으로 불렀다. 첫 월드시리즈 우승팀이 백악관을 방문한 것은 1924년 워싱턴 시네이터로 우승 다음 해인 1925년 캘빈 쿨리지 대통령의 초청에 의해서였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1963년 1월 NBA 우승팀 보스턴 셀틱스를 사상 처음으로 백악관으로 초청했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1976년 4월 NCAA 남자농구 우승팀인 인디애나 대학팀을 처음으로 초청했으며, 지미 카터 대통령은 1980년 2월 슈퍼볼 우승팀으로는 처음으로 피츠버그 스틸러스와 월드시리즈 우승팀 피츠버그 파이어러츠를 동시에 초청하는 행사를 가졌다.


  로날드 레이건 대통령은 미국 프로스포츠 우승팀을 정규 백악관 이벤트로 만들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1987년 2월 뉴욕 자이언츠의 라인배커 해리 카슨으로부터 쿨러에 담은 팝콘을  건네받아 그 유명한 게토레이 (Gatorade) 행사를 연상케했다. 다음 해 슈퍼볼 우승팀 워싱턴의 와이드리시버 리키 샌더스에게 레이건 대통령은 패스하는 모션을 보여주기도했다. 1991년 6월 조지 부시 대통령은 NHL 우승팀 피츠버그 펭긴스를 처음으로 백악관으로 초청했다.


  뒤늦게 백악관의 초청을 받은 팀들도 있었다. 1985년 NFL 우승팀 시카고 베어스는 2011년 10월 오바마 대통령의 초청으로 백악관을 방문했다. 1986년 2월 우주왕복선 챌린저호의 폭발사고로 백악관 행사가 취소됐던 시카고 베어스는 '시카고 명예시민' 오바마 대통령의 특별 배려로 때늦은 행사를 갖게됐던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당시 "내가 대통령이 되는 것만큼 시카고 베어스팀에게 백악관을 방문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백악관 방문행사는 운동선수가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고 말했다.


  매년  수많은 프로 우승팀, 전국대회 우승팀과 주요 대학팀들이 백악관을 방문한다. 최근 퇴임한 오바마 대통령은 조지 부시 대통령이 만든 NCAA 남녀 우승팀 방문행사의 전통을 계속 이어 나갔다. 많은 팀들은 워싱턴을 방문할 때 지역봉사 활동을 같이 하기도 한다. NFL 볼티모어 레이븐스는 워싱턴 지역 고교팀에 미식축구 장비를 제공했고, NBA 샌안토니오 스퍼스는 부상군인들과의 만남행사를 가졌다. 미국여자축구팀은 청소년 건강 클리닉을 열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 시절 백악관 대변인을 지냈던 프랭크 베네네티는 "각종 대회에서 우승한 챔피언팀들이 백악관을 방문할 때, 대통령은 국가와 사회를 위해 기여한 그들의 공로를 축하한다"며 "대통령의 바쁜 일정 속에서 경기장 안팎에서 국민적 화합을 이끄는데 기여한 챔피언팀들을 축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여러 스포츠팀의 백악관 방문행사에 개인적인 이유나, 대통령과 정치적인 견해를 달리하는 선수들이 불참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지난 19일 올 슈퍼볼 우승팀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MVP 톰 브래디를 비롯 대니 아맨도라 등 간판 스타들이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이 초청한 백악관 방문행사에 빠져 논란을 빚었다. 쿼터백 톰 브래디는 가족문제를 이유로 들어 불참했으며, 아맨도라는 장례식 참가로 인해 참가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도 1991년 시카고 불스를 처음으로 NBA 우승으로 이끈 뒤 팀과 함께 백악관에 초대받았으나 골프를 즐기느랴 불참하기도 했다.


  대개 개인적인 사정으로 불참하지만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지지하지 않기 때문에 백악관 행사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었다. NHL 보스턴 브루인스 골리 팀 토마스는 2012년 1월 스탠리컵 우승 후 백악관 초대 행사를 거부하면서 "연방정부가 인권, 자유, 시민의 사유재산권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다. 이것은 정치나 당의 문제가 아니다. 내 의견으로는 양당 뿐아니라 국가적으로도 많은 책임이 있다"고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밝혔다. 2013년 슈퍼볼 우승팀 볼티모어 레이븐스의 하바드대학출신 센터 매트 버크는 오바마 대통령의 계획된 부모에 대한 복지정책의 지지를 거부하면서 백악관 행사에 불참했다.


  대한민국 대통령도 스포츠팀이나 국가대표 선수들의 청와대 방문행사를 갖는다. 올림픽, 아시안게임, 유니버시아드 등에서 국위를 선양한 대표선수들이나 특별한 활동을 한 프로스포츠 스타들을 청와대로 초청, 격려행사를 벌인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 초청 행사를 청와대에서 가졌다. 이 행사에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 파면의 원인제공을 했던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가 승마 단체전 금메달리스트로 참석했다는 것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 행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숨은 조력자 최순실의 관계가 드러난 계기가 됐던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과 스포츠인들의 만남은 개성과 자유를 존중하고 이견과 비판을 허용하는 민주적인 장치로서 국민들에게 군림하는 것이 아닌, 진솔하게 다가서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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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학수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 안에 송재 서재필(1864~1951) 선생 동상과 독립문이 함께 세워져 있다. 말쑥한 양복 정장차림에 코트를 걸치고 훤칠한 키에 탄탄한 몸매. 우뚝 선 채 입을 앙다물고 있는 그의 동상에서 시대의 선각자로서의 호연지기를 느끼게 한다. 서재필 동상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신문인 독립신문을 오른손에 쥐고 독립문을 향해 손을 들고 있는 모양새이다. 이같은 모습은 서재필 선생이 독립신문, 독립문과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독립신문 창간자로 독립협회를 주도하고 국민적 계몽의 씨앗을 뿌리고 애국지사와 국민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아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을 본 떠 독립문을 건립하도록 했다.

 

어릴 적 서울 시내에는 많은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광화문 이순신 동상, 남산공원 백범 선생 동상, 안국동 로터리 민영환 선생 동상 등 주요 로터리나 공원, 광장 등에 역사를 빛낸 위인들의 동상이 우뚝 서 있었다. 민족주의 사관과 국가주의를 통치이념으로 삼은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통학을 하면서 서재필 선생 동상과 독립문을 보며 자연스럽게 구한말 역사공부를 했던 것이 떠오른다. 버스를 타고 등하교 때 보게 되는 서재필 선생 등의 기념물은 구한말의 시대적 상황과 역사속의 인물을 어렴풋이 알게 했다.

 

서재필 선생과 독립문은 한국 근현대사의 상징적인 존재이다. 그는 구한말 가장 깊고 폭넓은 삶을 살았다. 그의 생애는 금맥같은 스토리로 웅대한 스케일의 TV 대하드라마 같은 일대기로 점철됐다. 갑신정변 쿠데타 주역, 무인, 연설가, 독립투사, 기업인, 의학자, 언론인·. 특히 그는 한국인 최초의 서양의사이며 첫 미국 시민권자였다. 1884년 개화와 부국강병을 도모하기 위해 김옥균 등과 함께 약관의 나이로 갑신정변을 주도했으나 실패한 뒤 역적으로 몰려 생면부지의 땅 미국으로 망명해 낯선 영어를 익히며 한국인 최초로 서양의사가 됐다.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한 필자 예를 들지 않더라도 이 정도의 역사적 사실은 웬만한 한국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을 듯하다. 하지만 최근 언론인 출신 고승철씨의 장편 소설 서재필을 읽으면서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알고 흥분을 금할 수 없었다. 그가 체육인이었다는 사실이다. 서재필 선생의 행적을 사료와 증언에 따라 재구성하고 확인되지 않은 대목은 문학적 상상력으로 채운 소설 서재필에서 그가 체육인이었다는 사실이 세세하게 잘 설명돼 있었다.

 

  고승철씨는 책머리말에서 서재필은 자전거를 처음 갖고 와 탔고 야구도 최초로 보급했다. 아마 골프도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치지 않았을까하며 그가 체육인임을 분명히 밝혔다. 서재필 선생이 체육인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아마도 이 책을 통해서 처음이 아닐까 싶다. 한국체육사의 최고 전문가 이학래 전 한양대 교수의 대표적인 책 한국현대체육사에도 서재필 선생의 체육활동 경력은 전혀 언급이 없었다.

 

소설에서 미국 해리 힐먼 고등학교 재학 시절 서재필 선생은 야구에 뛰어난 솜씨를 보였다. 제구력이 뛰어난 투수로 활약하며 학교 대표로 이름을 날렸다. 교장 부인의 친정아버지 권유로 골프를 치기도 했다. “힘껏 휘둘렀으나 허공을 치고 말았다. 얼굴이 뜨거워졌다. 곰곰 따져보니 검법원리와 같다. 기를 모으려면 인위적인 힘을 넣어서는 안된다. 단전으로 호흡하며 골프채를 살며시 들어 올렸다 일순간 쉬는듯하다가 채를 경쾌하게 휘둘렀다. 원심력을 이용했다. 휘익! 바람을 가르며 공이 솟아 250야드나 날아갔다.”(188) 야구경기장면도 소개했다. 갑신정변으로 미국으로 망명한 뒤 대학을 졸업하고 사면을 받아 귀국한 서재필 선생이 1896년 배재학당에서 아펜젤러 목사와 학생이었던 이승만 전 대통령과 야구를 하는 모습이었다. “서재필이 투수를, 아펜젤러가 포수를 맡아 공을 던지고 받았다. 학생들이 돌아가며 배트를 쥐고 타자 역할을 맡도록 했다. 이승만은 배트를 열심히 휘둘렀으나 번번이 헛 스윙했다. 소박하나마 이것이 이 땅에서 야구가 처음 소개되는 광경이었다.”(285)

 

1945년 해방 후 미군정의 고문으로 특별 귀국한 서재필 선생은 좌우익 대립이 극심한 소란한 정치집회는 참석을 거절하는 대신 체육단체에서 초청하면 기꺼이 응했다. 대한체육회가 창설될 때 고문으로 모시겠다는 제의가 들어와 흔쾌한 수락했다.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야구대회에서 시구를 맡기도 했다. 투수마운드에 서재필이 야구 모자를 쓰고 올라서자 2만여 관중이 우레 같은 박수를 쳤다. 여든이 넘은 노인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그의 몸은 유연했다. 힐먼 고등학교에 다닐 때 배운 투구 포즈를 잊지 않았다. 글러브에 공을 서너 번 툭툭 던지고 꺼낸 다음 오른팔을 쭉 뻗어 우아한 포즈로 공을 던졌다.” (429) 서재필 선생은 의사 경험을 토대로 마라톤 선수 최윤칠(1950년 보스턴마라톤 3)의 과학적인 근육 관리를 지도했으며, 김계현 전 야구대표팀 감독에게 미국 야구 이론책을 건네주기도 했다.

 

서재필 선생의 체육인 활동 경력은 체육인들에게 새로운 감동과 흥미를 느끼게 하며 역사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는 귀중한 사료이다. 뒤늦었지만 체육인으로서의 재발견을 기화로 서재필 선생에 대한 체육인으로서의 삶을 새롭게 조명할 것을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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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체육이 ‘PL(Physical Literacy)’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김학수소장

 

 

"내가 알아야 할 도덕과 의무는 골키퍼를 통해 배웠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소설가 알베르 카뮈가 한 유명한 말이다. 실존주의 작가였던 카뮈는 원래 축구선수였다 17세 때까지 프랑스령 알제리의 지역 축구팀에서 골키퍼로 뛰었다. 결핵을 심하게 앓지만 않았으면 그는 작가의 길보다는 축구선수의 길을 선택했을 것이라고 생전에 말했다. 축구를 통해서 그는 기회와 평등의 개념을 배웠고, 규칙이라는 틀 안에서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을 익힐 수 있었다. 카뮈는 축구에서 경험했던 여러 철학적, 사회적 생각과 개념들을 대표작 ‘이방인’, ‘페스트’, ‘시지프스 신화’ 등에 담아 현대 사회의 대표적인 ‘지성’이 됐다.

 

최순실씨의 체육계 이권개입과 그의 딸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승마 입시비리 논란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체육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잘못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부끄러움과 함께 실망감이 들었다. 카뮈와 같은 운동선수 출신의 지성의 출현은 기대하기는 거의 힘들고, 현 체육계를 더 나쁘게만 하지 않았으면 하는 자조적인 생각을 갖게 했다.

사실 그동안의 우리 체육의 행태를 지켜 봤을 때, 최순실씨 모녀가 행한 일탈된 모습은 예상가능했던 일이었다. 승리 지상주의와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하며 이기기 위해 탈법, 불법, 부정을 서슴치 않는 체육계의 혼탁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최순실씨 일가 사건은 체육계의 보이지 않는 부분이 드러난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체육계의 비리가 터질 때 마다 체육인들 대부분은 죄인이 된 기분이 들었다고 얘기한다. 체육의 기본과 원칙을 무시하고 승부조작, 편파판정, 폭력 등에 연루된 체육인들이 적발되면서 안겨준 실망감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체육인들은 한국체육에 대한 문제점을 치유하기 위한 자성의 목소리를 내면서 이제는 근본적인 시스템과 의식의 개혁이 필요한 때라는데 뜻을 같이한다. 박주한 대한체육회 학교체육위원장(서울여대 체육학과 교수)은 “그동안 우리 체육은 성과주의 위주로 성장해 엘리트스포츠에서 국위선양을 하며 민족적 자부심을 키우는데 기여했다”며 “하지만 선진국과 비교해볼 때 인간에 대한 관심을 소홀히 하고, 개인의 신체를 소중히 가꾸는 문화를 등한시 했다”고 말했다. 체육을 육체와 정신을 함양하는 인간의 근본적인 가치에 기여하는 것으로 보다는 결과 위주의 성과로만 활용했다는 설명이다.

 

최근 일부 체육학자들이 요즘 영국, 캐나다,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 선진국에서 행하고 있는 ‘PL(Physical Literacy)’에 관심을 갖는 것은 우리 체육의 기본 틀을 바꿀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PL 개념을 주도적으로 연구하는 최의창 서울대 교수는 최근 한국체육학회보에 기고한 글에서 “우리 체육은 0세부터 100세까지 이르기까지, 학교체육, 생활체육, 전문체육을 관통해서 한국체육의 핵심적 줄기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정신이 필요하다“며 “PL을 국민체육진흥의 새로운 지향처를 찾는 GPS로 활용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최 교수는 기고글에서 21세기로 넘어오면서 기존의 낡은 체육 패러다임을 대체할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점에서, 새롭게 이끌어갈 효과적인 개념으로 PL이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신체활동은 소설을 읽고 음악을 듣는 것처럼 교양인으로서 반드시 수행할 수 있어야 하는 것으로 점차 인식되어가고 있는게 세계 선진국들의 추세이다. 체육은 건강을 유지하고, 질병을 예방하고, 무엇보다도 즐거움과 행복감을 만끽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원천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PL’은 곧 사람들이 보통의 삶을 살기 위해서, 그리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글을 다룰 수 있는 리터러시나 셈을 할 수 있는 ‘뉴머러시(numeracy)’처럼, 신체활동과 연관된 리터러시를 말한다. 피지컬 리터러시 없이는, 건강하고 행복한 생활의 기대나 희망이 많이 축소될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현대인들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PL 개념의 도입을 강력히 주장한 최 교수는 “PL은 다양한 차원에서 개념화되고 적용될 수 있는 아이디어다. 이념적 차원에서 기존 패러다임을 대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일 수도 있고, 평생체육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체계적인 틀일 수도 있다. 또는 개인의 기본운동능력과 건강을 향상하는 구체적 방법들일 수도 있으며 이념적 수준, 정책적 수준, 방법적 수준 각각에서 다양하게 PL을 개념화하고 실용화시킬 수 있다”며 우리 상황에 맞게 여러 분석과 정책적인 결정을 통해 적용해 가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PL 개념은 그동안 많은 적폐가 누적돼며 부정적인 모습을 보였던 우리 체육계에게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수 있는 좋은 기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체육을 부의 성공과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수단으로 삼았던 우리 체육이 앞으로 PL 개념의 적극적인 도입과 활용을 통해 개인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이 정착되는 문화를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수십년 후 우리 체육이 카뮈같이 인류 정신의 위대한 유산을 남길 위인을 만들어 내는 마당이 될 줄 누가 알겠는가. 이제는 최순실씨 등 체육을 농단한 이름들을 잊어버리며 구시대의 잔재를 딛고 새로운 자세로 매진해 나가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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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여파, 한국스포츠 어떻게 변하나

김학수 소장

 

 

 

 ▲ '부정청탁금지법, 대한민국 스포츠를 관통하다!'라는 주제로 열린 2016 제2차 스포츠정책 포럼에서 주요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다사다난했던 2016년이 노루꼬리만큼 짧게 남았다. 올해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이슈로는 최순실 국정농단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과 함께 이른바 '김영란법(부정청탁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을 꼽을 수 있다. '최순실 박근혜 게이트'에서 과거 음험한 부정의 역사를 보았다면 '김영란법'에선 미래를 밝힐 희망의 역사를 엿보게 해준다.

김영란법은 지난 9월28일 발효됐다. 이 법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 만연한 지나친 접대문화, 부정청탁 등으로 얼룩진 공직사회의 부정부패를 없애고, 투명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사회정화를 목적으로 제정됐다. 언론인과 교직원을 포함한 공직자가 직무 관련성이 있는 이들에게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 10만원까지만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이를 위반할 경우 법적인 처벌을 하도록 했다.

 

법률이 시행된 지 두 달이 지난 현재, 우리 사회 전체적으로 크고 작은 변화가 일고 있다. 직장인들의 회식문화가 간소화됐고, 공직사회에서 불필요한 청탁과 민원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체육계도 결코 예외는 아니다. 선후배 관계의 정과 의리가 두터운 체육계이지만 법 시행이후는 자칫하면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는 행동들을 삼가는 모습이다.

체육학계와 언론계, 경기인들의 모임인 스포츠포럼 21(상임대표 임태성 한양대 에리카챔퍼스 예체능대학장)은 9일 오후 손기정기념관 2층 세미나룸에서 이학래 한양대 명예교수, 이태영 한국체육언론인회 자문위원장, 박영옥 한국스포츠개발원장, 조현재 전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 등 많은 내외귀빈이 참석한 가운데 '부정청탁금지법, 대한민국 스포츠를 관통하다!'는 주제로 2016 제2차 스포츠정책 포럼을 개최했다.

 

김정효 서울대 강의교수는 주제발표에서 김영란법은 우리 사회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공직문화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김영란법은 공정성이라는 스포츠의 본연의 가치를 회복할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며 " 이런 가치를 제대로 확립하지 못하면 스포츠는 이류의 문화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헀다. 그는 김영란법 시행으로 학생선수의 육성 시스템이 학교가 아닌 외부의 스포츠클럽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으나 이를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정착시켜 나간다면 새로운 스포츠문화가 자리잡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종합토론에서 김택천 방산고 수석교사는 '학생선수 육성및 지도자 수당'과 관련해, 학원스포츠의 구조적인 취약점이 김영란법 시행이후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선될 수 있도록 체육인 모두가 적극적으로 학생선수 육성과 지도자 수당등 운동부 운영 전반에 대해 합리적이고 내실화를 꾀할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을 주문했다.

송명근 대한체육회 학교스포츠부 부장은 '학교스포츠클럽 및 생활체육분야의 명과 암, 그리고 대안'이라는 제목의 토론에서 "김영란법이 체육계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그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불공정한 관행과 청탁을 타파하고, 과거의 성찰을 통해 발전적인 체육계의 변화를 도모하자는 것"이라며 "이제 과거의 부패와 비리의 사슬을 끊고 공정한 사회, 건강한 대한민국을 건설하는데 스포츠가 앞장설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 토론자들이 다양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세 번째 토론자 임승엽 고려대 국제스포츠학부 교수는 '학생선수 학습권에 대한 명과 암, 그리고 대안'의 토론에서 2013년 미국 테네시 주립대 교수로 재직하던 때의 경험을 소개하면서 "학생선수 학습권의 관리 상황은 미국과 한국이 너무나 다르다. 미국은 제도와 규정에 따라 학생선수들의 학습권이 보장된 반면, 한국은 학칙과 규정이 학생선수의 학습권 박탈의 제도적 근거로 악용된다"며 "김영란법 시행이 학생선수들의 학습권에 기여를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대학교육으로부터 이탈하거나 기피현상 등도 나타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영재 중앙일보 스포츠부 선임기자(이학박사)는 스포츠와 미디어와 관련한 영향에 대해 언급, 일선 취재 현장에서 식사제공 등 취재편의 제공이 거의 사라졌으며 앞으로 미디어간에도 탄탄한 네트워크를 만들고 스토리를 생산하기 위한 경쟁이 더욱 치열하게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원재 세계태권도연맹 수석컨설턴트는 스포츠단체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해 "사회적 거래비용을 줄이려는 김영란법이라는 대증요법의 등장으로 '굿 거버넌스'라는 스포츠의 가치를 보호하고 고양하는 원인요법이 병행될 때, 스포츠 조직의 자치성이 더욱 힘을 얻을 수 있다"며 "이렇게 된다면 스포츠 조직은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더욱 수월해 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용식 가톨릭관동대 스포츠레저학과교수는 스포츠 정책과 관련해 체육계 변화에 맞추어 정책수단으로서 전문스포츠클럽제도 도입, 체육특기자제도 개선 등을 제안했으며 김은경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김영란법이 스포츠 분야에서 순기능으로 작용한다면 스포츠 정책의 독점성을 배격하고 정책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개방성과 투명성을 유지하며 전반적인 부조리를 개선해 스포츠계의 반부패지수가 크게 개선될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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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기 태권도, 각종 세계대회에서 항상 효자종목 노릇을 톡톡히 해온 종목이 바로 태권도이다.

 

그러나 최근 태권도가 전 세계에 보급됨에 따라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영광을 기대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남자부에선 이란, 터키 등 과거 전투민족이라 불리운 오스만 투르크족의 계보를 이은 국가들의 강세가 무섭고,

 

여자부에선 중국을 비롯한 여러 아시아국가와 뛰어난 신체조건을 앞세운 유럽선수들의 추격이 무서울 지경이다.

 

과거와 다르게 이제 우리 선수가 국제무대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이젠 우리 선수가 국제무대에서 1회전 탈락이라는 결과표를 받아드는 것도 큰 이변이 아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체념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니라고 본다.

 

우리나라는 과거만큼 전 체급에서 압도적인 기량으로 세계를 호령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꾸준히 슈퍼스타의 계보를 이어오고 있는 선수들이 대거 있다.

 

현재 한국체대 교수를 역임하고 계신 정국현 교수와 현재 엔터테이너로 활동인 이동준씨가 80년대 전세계를 호령했다.

 

특히 정국현 교수는 미국의 스티븐 로페즈가 5회 연속 세계선수권 제패라는 금자탑을 쌓아올리기 전까지 최초로 세계선수권을 네 번이나 제패한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슈퍼스타였다.

 

90년대하면 단연 중량급의 김제경 전 선수를 꼽을 수 있다.

 

당시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제패하고, 세계선수권까지 제패한 김제경은 많은 유망주들의 꿈이었다.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2000년 대 들어서는 정말 많은 슈퍼스타들이 쏟아져 나왔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의 영웅이자 제왕 김제경의 실질적 후계자라 불리운 김경훈,

 

여자부에선 마찬가지로 시드니에서 여왕의 자리에 오른 정재은, 이선희를 시점으로 수많은 스타들이 배출되었다.

 

2004년엔 화끈한 뒤돌려차기로 전 세계의 찬사를 받은 문대성 전 의원이 있었고, 여자부에는 장지원이 있었다.

 

그리고 이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 불리어도 부족함이 없을 선수가 등장한다.

 

올림픽 3회 출전에 올림픽 2연패라는 대업을 달성한 여제 황경선이다.

 

아마 2000년 대를 대표하는 선수를 꼽으라면 단연 황경선을 꼽을 것이다.

 

2000년 대 후반들에서는 전세계적으로 태권도가 평준화 되기 시작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과 2009년 세계선수권 이후로 타 국가에서 세계적인 선수가 우리 대한민국 선수들의 아성을 점점 위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접어든 2010년 대, 이제 더 이상 태권도는 우리 대한민국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그러나 우리 태권도계에는 항상 영웅이 존재했다.

 

가장 대표적인 계보가 남자 중량급 계보라고 할 수 있는데, 김제경-김경훈-문대성-차동민 순으로 이어지고 있다.

 

차동민은 리우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선수생활 은퇴를 선언했다.

 

이제 우리는 차동민의 뒤를 이을 선수를 찾아야 한다.

 

과거 문대성의 뒤를 이을 선두주자로 차동민, 남윤배, 허준녕 등 훌륭한 유망주들이 경쟁했던 것처럼 이제 차동민의 후배들이 경쟁할 차례다.

 

경량급 역시 다르지 않다.

 

아직 이대훈, 김태훈이 건재하지만 하루빨리 우수한 후배선수들이 활약해 주어야 할 것이다.

 

 

이대훈이 처음 국가대표가 된 것이 2010년이다.

 

벌써 7년 째 세계정상을 지켜오고 있다.

 

이젠 후배들이 이대훈을 위협해야 할 것이다.

 

이대훈의 계보를 이을 선수로는 단연 삼성에스원의 김석배가 손에 꼽힌다.

 

실력으로는 이미 이대훈과 호각을 다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앞으로 더욱 성장해 이대훈의 계보를 이어 더욱 큰 선수로 활약해 주길 기대해본다.

 

 

2000년 대 들어서는 황경선이 대한민국 태권도가 여전히 세계최강임을 세계에 널리 알렸고,

 

2010년 대 들어서는 이대훈, 김태훈이 그 역할을 대신 하고 있다.

 

과연 이 뒤를 이을 선수는 누가 될 것인가?

 

4년 뒤에 열리게 될 2020도쿄올림픽에서 다시 한 번 세계최강 태권도 강국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각인시켜줄 선수는 누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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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기 한국농구연맹 총재, 농구할배의 무한도전 이야기

#김학수 연구소장








김영기 한국농구연맹 총재, 농구할배의 무한도전 이야기




1956년 11월 호주 멜버른 올림픽이 열렸다. 김영기 한국농구연맹총재(KBL)는 당시 고려대에 재학중이던 19세의 농구선수로 대표팀의 일원으로 멜버른 올림픽 본선경기에 나섰을 때를 두고 두고 잊을 수가 없다. 첫 올림픽 경기라는 설레임과 부담감이 들었으나 1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잘 갖춰진 올림픽 주경기장을 보고 저절로 감탄사가 새어나왔다. 제대로 된 울타리와 관중석도 없이 바람만 불면 흙먼지가 자욱이 날리는 서울의 초라한 경기장과 비교해보면서 가난한 조국이 원망스러웠다. 한창 젊음이 피어나기 시작할 때, 멜버른의 추억은 잊지못할 경험으로 남았다. 멜버른은 농구 선수 김영기를 꽃피우게 한 첫 무대였으며, 본격적인 해외의 꿈을 갖게한 도시였다.


한국농구의 ‘살아있는 역사’ 김영기 총재가 최근 깜짝놀랄 일을 냈다. 80세의 김영기 총재는 백남철(75) 전 KBL 임원, 정영환(74) 전 신보창투 사장, 이병천(71) 전 신보창투 부사장, 김선욱(71) 전 예당엔터테인먼트 부회장, 예월수(71) 전 신보에이드 사장 등 과거 신용보증기금에서 함께 지낸 동료들과 함께 ‘할배들의 무한질주’라는 해외여행기 책을 출간했다. 김영기 총재등 6명은 지난 2004년 5월 캐네디언 로키, 2005년 6월 미국 서부 그랜드 서클, 2006년 9월 호주 오션 코스트, 2010년 4월 하와이, 2012년 9월 투르 드 알프스, 지난 5월 유레일 배낭 여행을 즐겼다. 직접 운전하며 움직인 거리는 무려 2만4400㎞에 이른다. 70~80대의 농구인 등이 농구관련이 아닌 순수한 여행기를 출간했다는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벌써 6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갔네요. 멜버른에 가면 꼭 멜버른 올림픽 주경기장을 들릅니다. 그때마다 주경기장을 보면서 옛날을 생각해보게 됩니다”고 김영기 총재는 오래전의 감회를 말했다.


김영기 총재는 외국에 나가기 어려웠던 대학생 시절부터 농구선수로써 세계 곳곳을 다녔다. 올림픽에는 국가대표로 두 번 참가했다. 1964년 도쿄올림픽서는 득점 2위를 기록하는 영광을 누렸다. 지도자로서는 1970년 방콕아시안게임서 첫 금메달 획득을 이끌었으며,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과 1988년 서울올림픽 유치시키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파란만장한 스포츠 인생을 살았던 김영기 총재는 화려했던 과거의 영화만 쫓는 늙은이로 머무는 것이 싫었다. 80순의 나이에 KBL 총재를 다시 맡은 것도 새로운 열정을 보이기 위함이었다. 농구 후배와 직장 후배들과 함께 더 큰 세상을 찾아 직접 운전대를 잡고 해외여행에 나서기로 한 것도 50년전 젊은 시절의 꿈을 다시 꾸고 싶어서였다.


김영기 총재 등은 10년도 넘은 오래 전, 마포의 어느 설렁탕 집에서 농구와 같은 신용보증기금에서 함께 한 멤버들이 만나 ‘실버’로서 한번 일을 크게 벌이자는데 입을 모았다. 6명이 모여 세상 곳곳의 절경을 직접 찾아다니기로 하고 원정단 이름을 ‘할배원정단’으로 명명했다. ‘할배들의 열정, 끝모르는 도전’을 모토로 여행사에서 운영하는 패키지 해외여행보다는 직접 코스와 일정을 짜 떠나는 ‘셀프 로드트립’을 하기로 한 것이다.


팀으로 하는 자유여행이었던만큼 팀원들의 임무와 세부적인 규칙이 필요했다. 최연장자인 김영기 총재가 단장을 맡아 전체적인 운영을 이끌기로 했고, 백남철씨는 규율과 음식담당, 정영환씨는 기획과 숙박담당, 이병천씨는 수송과 교통, 김선욱씨는 조사및 안전담당, 예월수씨는 사진및 총무 담당을 각각 책임졌다. 여행의 기본 방향으로 세 가지를 정했는데, 첫째 저비쾌유(低費快遊), ‘비용은 싸게 그러나 재미있게’, 둘째 이타준칙(利他準則), ‘상대방을 배려하고 규칙을 지키는’, 셋째 유락산호(裕樂山湖), ‘여유롭게 자연을 즐기자’가 그것이었다. 여행중에 지켜야 할 네 가지 행동 요령도 정했다. 첫째 시간 엄수. 아침 6시 기장, 저녁 11시 취침하기로 하고 여행은 해지기전까지 마치고 숙소에 들어가기로 했다. 둘째 식사. 아침과 점심식사는 각장 알아서 하기로 했다. 셋째 운전. 자동차 운전은 1시간30분마다 교대로 하며 고대할 다음 운전자는 조수석에 앉아서 운전자의 졸음을 예방하고 다음 교대를 대기한다. 넷째 의사결정. 의사결정은 다수결과 복불복 추첨을 원칙으로 했다. 행동 요령을 제대로 지키지 않을 경우 단장을 비롯한 누구든 벌금을 내고 잘 한 이는 상금도 주기로 했다.


호주에서 주유소 300m 앞에서 기름이 떨어져 ‘할배’들이 직접 차를 밀고 갔던 일, 케이블카 안에서 우유팩이 터져 테러범으로 몰렸던 일, 맡겨놓았던 배낭이 송두리째 사라졌던 일, 여권을 잃어버렸을 일 등 가는 곳마다 우여곡절을 겪고 사고를 치기도 했지만 ‘할배’들은 12여년동안 계획했던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김영기 총재는 “헤밍웨이의 만년의 작품 ‘노인과 바다’처럼 우리 늙은이들도 과거에만 갇힌 채 살 수는 없다”며 “6번의 도전은 매번 꿈을 찾아 나서는 기회였고 모두 이루어냈다. 늙었다고 낙담하고, 힘들다고 포기하면 그건 죄악인 것이고 그건 삶의 방식이 아니다”고 말했다. 김영기 총재는 앞으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여행의 꿈을 꾸고 배낭을 챙겨 떠날 생각이다. (글/ 김학수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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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트로의 쿠바 스포츠, 어떻게 흥하고 망했는가

#김학수소장






지난 26일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정치가이면서 혁명가였다. 1959년 쿠바 혁명의 영웅 체 게바라와 같이 게릴라전을 펼치며 친미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리고 공산독재정부를 세운 카스트로는 49년간 공산주의이념 아래 쿠바를 통치했다가 2008년 2월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에게 국가평의회 의장직을 넘겨줬다.


카스트로에 대한 평가는 쿠바 혁명 영웅과 독재자로 서로 엇갈린다. 미국과의 오랜 대립으로 쿠바인들이 경제난으로 어려움을 겪게했다는 비판을 받지만, 무상의료와 무상교육 등의 평등정책을 실시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에게 지지를 얻기도 한다. 스포츠에서도 그의 공과가 나눠진다. 스포츠로 쿠바의 힘을 과시하기도 했다가, 체제의 취약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1970년부터 30여년간 쿠바는 소련, 동독과 함께 세계스포츠의 우등생이었다. 미국을 이기기 위해 안간 힘을 썼던 쿠바는 스포츠를 ‘미국 타도’의 전위부대로 활용, 큰 성과를 거두었다.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 등에서 많은 메달을 따내며 소련, 동독 등과 함께 사회주의국가의 위세를 떨쳤다. 1천1백만 쿠바 국민들은 미국의 경제봉쇄로 생활적으로 궁핍한 삶을 살았지만 쿠바가 배출한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 들을 통해 국가의 자부심을 느꼈다.







세계 남자육상 높이뛰기의 최고수 하비에르 소토마요르, 세계 복싱의 철권 테오필로 스테벤손, 무적의 야구팀과 여자배구팀이 쿠바 스포츠를 대표했다. 소토마요르가 1993년 넘은 2m45는 22년째 인류가 중력과의 싸움에서 기록한 최고치로 아직도 남아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높이뛰기선수인 소토마요르는 1999년 코카인 복용으로 팬암대회 금메달을 박탈당했고, 2001년 도핑테스트에서 스테로이드 양성반응이 나오자 은퇴를 했다. 스테벤손은 각각 올림픽 3관왕에 오르며 펠릭스 사본과 함께 국가영웅으로 대접받았다. 쿠바복싱은 1972년 뮌헨올림픽부터 복싱 금메달 32개를 휩쓴 세계적 복싱 강국이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무려 7체급을 석권했다. 쿠바야구팀은 1961년부터 2005년까지 세계선수권대회 18차례 우승, 1992년부터 2004년까지 올림픽 금메달 등을 획득하며 세계 최강의 면모를 보였으며 여자배구도 1990년대 부동의 세계챔피언이었다.


쿠바가 스포츠에서 위력을 떨치게 된 것은 국민이 건강하고 행복하기 위해선 스포츠가 중요하다는 국가지도자 카스트로의 통치철학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카스트로 체제에서 쿠바국민들은 95퍼센트가 각종 스포츠활동에 참여했다. 5세부터 체육교실 수업을 받으며 할머니들도 태극권으로 건강을 관리했다. 스포츠에 대한 그의 열정은 젊은 시절 운동선수를 한데서 비롯됐다는 것이 그의 여러 회고록에서 소개됐다. 쿠바혁명 성공한 수개월후인 1959년 7월24일, 카스트로는 아바나의 한 야구장에서 ‘수염부대’로 알려진 ‘로스 바버도스(Los Barbudos)’로 불린 혁명군팀 투수로 출전, 군경찰팀을 맞아 한 이닝 또는 두 이닝을 던지며 두 명의 타자를 삼진아웃시켰다고 알려졌다.


‘아바나의 자부심-쿠바야구의 역사’를 쓴 쿠바 출신의 미국 예일대 문학부 교수 로베르토 곤잘레스는 “카스트로는 여러 볼을 던졌다. 타자들은 무리하게 휘둘렀으며 지도자에게 스스로 삼진아웃을 당하는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카스트로는 1954년부터 1960년까지 미국 프로야구팀 신시내티 레즈의 트리플 A팀인 하바나의 슈가 킹 팀 경기를 자주 보는 야구팬이기도 했다고 곤잘레스는 덧붙였다.







하지만 카스트로가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출신이었다는 주장은 일부 역사학자들이 “사실이 아니다”며 부인한다. 여러 조사를 통해 카스트로는 어릴 적 좋아했던 스포츠는 농구였다는 주장도 나온다. 6피트 2인치(185cm)는 6피트 3인치(187cm)로 키가 큰 그는 농구를 통해 예측, 스피드, 신체재주 등을 익혔으며, 이를 혁명에 필요한 기술들과 비슷했다고 말한 것으로 그의 전기작가 태드 스줄이 말했다.


카스트로는 야구, 복싱 등에서의 성공으로 미국에 도전하고 국민들에게 국가적 자부심을 심어주었다. 하지만 국제적인 고립과 어려운 경제난은 야구 우수선수들의 미국망명, 경기장의 황폐화과 운동장비부족을 초래하며 체제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쿠바와 미국은 국교 정상화를 했지만 아직도 경제적 봉쇄는 여전하다. 국가재정난의 피해는 여러 체육시설에서 나타난다. 수영장에 물이 없고, 전기부족으로 야구가 야간경기를 제대로 할 수 없으며, 일부 야구장은 볼부족으로 파울볼이 나면 경기를 중단해야 할 정도이다. 체육관 지붕은 비가 오면 물이 새 레슬링 매트가 젖어서 훈련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지난 3월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1959년 쿠바 혁명이후 처음으로 아바나를 방문, 야구 시범경기를 참관하는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 됐다. 하지만 카스트로는 당시 미국과의 해빙무드에 대해 불만족한 표시로 “미국이 우리에게 어떠한 것도 주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야구선수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참가하고, 오랜 병상에서 아디다스 운동복을 입으며 스포츠를 통해 소통하는 이미지를 보였던 쿠바 국가통치자 카스트로는 저 세상으로 가면서 그의 평가는 역사적인 일로 남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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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민을 하나로 만든 시카고 컵스의 108년만의 우승

#김학수 교수

 

 

 

 

 

대통령도, 국민도 모두 하나가 됐다. 축하의 목소리를 내는 데는 여당과 야당이 따로 없었다. 지독한 앙숙관계를 이루었던 라이벌도 축하 대열에 합류했다. 108년만에 감격적인 월드시리즈 패권을 차지한 미 프로야구 시카고 컵스의 우승이야기다.

지난 4일(이하 미국시간) 미국 시카고 거리는 시카고 컵스 우승퍼레이드를 보기 위해 무려 500만명의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아마도 미국 역사상 최대 인파가 아니었나 싶다. 제2차세계대전 종전일인 1945년 8월14일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열린 종전기념행사(수병과 간호사의 키스 사진으로 유명하다), 1963년 11월25일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 장례식 등의 현대 미국 역사를 대표하는 행사도 이만큼의 인파를 기록하지 않았다.

 

 

 

 

 

시카고 abc방송은 “이 인파는 2008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시카고 그랜트파크에서 당선 수락 연설 할때 인파(25만명)의 20배에 달한다”고 알렸다. 또 “북미 아이스하키리그(NHL) 블랙혹스의 2013년 스탠리컵 우승 기념 퍼레이드에 약 200만명, 또 다른 시카고 연고 메이저리그구단인 화이트삭스의 2005년 월드시리즈 우승 퍼레이드때의 175명을 훨씬 뛰어 넘었다”고 했다.

미국 중서부에서 가장 큰 도시인 시카고는 인구가 270만명으로 미국 도시로는 세 번째로 많다. 시카고 인근 일리노이주 광역까지 합치면 95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우승인파 500만명은 시카고뿐 아니라 인근 일리노이주, 기타 다른 도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합쳐진 숫자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개인주의, 자유주의가 팽배한 미국 사회에서 한꺼번에 수백만의 인파가 몰린다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국토가 넓고, 주택들도 도시 외곽으로 퍼져있는 방사형 구조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많은 군중들이 한꺼번에 운집하기는 쉽지않다.

 

역사의 한 획을 긋는 기록적인 인파는 많은 미국인들이 시카고 컵스의 우승을 얼마나 목말라 기다려왔는 지를 입증했다. 시카고 컵스는 그동안 ‘염소의 저주’, ‘검은 고양이의 저주’ 등 온갖 괴담이 시달리며 1세기 이상 월드시리즈 우승기회를 잡지 못했다. 1907년과 1908년 연속 우승한 이후 단 한번도 우승을 하지 못했다. 1945년까지 35년동안 7번이나 지구 우승을 차지하고 월드시리즈에 진출했으나 7번 모두 고배를 마셨다. ‘염소의 저주’는 시카고 컵스를 악령처럼 따라 다녔다. 1945년 월드리스지 경기에 빌리라는 사람이 염소를 데리고 시카고 컵스 경기장을 들어 가려다 실패하자 “다시는 이곳에서 월드시리즈가 열리지 않을 것”이라며 저주를 퍼부으면서 징크스에 시달렸다.

 

 

 

 

컵스는 이후 69년 동안 월드시리즈에 한 번도 진출하지 못했다. 1969년에는 2위와의 승차를 17.5경기까지 벌려놓으며 1위를 달렸지만 9월10일 뉴욕 메츠 원정경기에서 경기 도중 검은 고양이가 경기장에 나타나는 일이 벌어졌고, 거짓말처럼 이후 급격한 슬럼프와 함께 결국 2위로 주저앉아 시즌을 끝내고 말았다. ‘염소의 저주’에다 ‘검은 고양이의 저주’까지 징크스로 작용하며 우승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컵스팬이나 미국 야구팬들은 그동안 컵스가 우승을 차지해 새로운 야구 역사가 펼쳐지기를 간절히 염원했다. 올해 마침내 바라고 바랬던 꿈이 실현됐다. 컵스는 지난 3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홈구장 프로그레시브필드에서 열린 월드시리즈 7차전에서 10회 연장 끝에 8대7로 승리, 시카고 전역뿐 아니라 미국 전체를 광란의 도가니에 빠뜨렸다. 컵스가 감격적인 우승을 차지하던 날, 예년 같으면 쌀쌀했을 시카고 날씨조차도 훈훈해져 하늘도 컵스의 우승을 축하해주는 듯했다.

 

컵스의 우승은 야구를 통한 통합을 이루며 미국의 진정한 힘을 느끼게 해주었다. 시카고 라이벌팀인 시카고 화이트삭스 광팬인 오바마 대통령은 “It happened: @Cubs win World Series. That's change even this South Sider can believe in. Want to come to the White House before I leave?(그것이 일어났습니다 : 컵스가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했습니다.사우스 사이더(화이트 삭스 홈구역)가 믿을 수 있는 변화입니다. 내가 그만두기 전에 백악관에 올래요?)라고 트위터를 보내 컵스의 우승을 축하했다.

지난 2005년 월드시리즈 우승 경험이 있는 화이트 삭스팀도 “Congtats, @Cubs, on bringing another #WorldSeries Championship to the city of Chicago! (또 다른 월드시리즈 선수권을 시카고로 가져온 것을 축하해요!”라는 메시지를 트위터에 띄웠다.

 

컵스의 우승은 시카고 시민들의 사기를 높여주었을 뿐 아니라 미국인들에게 국가의 힘을 확인하는 기회가 됐다. 컵스는 올 시즌 젊음과 스포츠맨십, 깨끗한 플레이를 펼치며 야구의 재미를 한껏 높여주었다. 미국 야구팬들은 컵스 경기를 보고 미국인으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대통령을 비롯한 열렬한 화이트삭스팬들조차도 컵스의 승리를 축하하며 컵스팬들과 공감과 연대의 시간을 가졌다.

컵스를 통해 미국 야구는 ‘신의 한수’를 보여주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온 나라가 어수선한 한국 사회는 컵스의 우승을 통해 미국의 진정한 힘이 무엇이며, 민주주의가 어떤 것인가를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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