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고 +124

 

글 / 임성민

 

 

“운동하는 놈이 운동만 잘하면 됐지. 공부는 해서 뭐 해”

 

  내가 운동할 때는 주위에서 이런 말을 하던 시대였다. 부끄럽지만 난 고등학교 3년 내내 단 한 번도 수업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 같은 반 친구가 누구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시간에 운동을 하거나 숙소에서 잠을 잤다. 때론 오락실에서 신나게 조이스틱을 두드린 적도 있었다. 그때는 우리 학교 축구부 누구나 다 그랬다. 그냥 운동만 열심히 하면 그걸로 족했다. 그래도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인생의 황금기를 너무 허무하게 흘려 보냈다. 공부도 친구도 아무것도 얻은 게 없이 말이다.

 

  운동선수의 삶은 달콤한 유혹이다. 성공하면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거머쥔다. 그래서 너도나도 이 도박판에 판돈을 밀어 넣는다. 그 순간 모두가 잭팟의 주인공을 꿈꾼다. 하지만 운동으로 성공하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 초등학교 때 축구를 시작해 프로선수(K리그 클래식)가 될 확률은 0.8%. 내셔널리그, K3를 포함해도 약 3%에 불과하다. 지금도 많은 학생선수와 학부모들이 이런 무모한 확률의 도박에 모든 걸 건다.


  좋다. 실력이 특출나거나 천운을 타고나 0.8% 안에 들어간다고 치자. 그렇다 해도 진짜 고수들과의 진검 승부는 그때부터 시작이다. 프로에는 전국에서 날고 기는 타짜들이 다 모인다. 게다가 국내 타짜들 보다 더 뛰어난 외국인 선수들도 으르렁거린다. 이런 무시무시한 정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펼치다 대부분의 선수가 1~2년 안에 강제 퇴거 조치를 당한다.

 

준비 없는 은퇴는 치명적이다. 아무런 준비 없이 운동 하나만 보고 달려온 선수들은 은퇴할 즈음에 서야 뭔가 잘못됐다는 걸 인지한다. 사회라는 또 다른 정글에 나가 싸울 무기가 변변치 않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해 남들은 최첨단 스텔스 폭격기와 미사일로 무장했는데, 은퇴 선수들은 딱총 한 자루로 싸우니 게임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나서 '학창 시절에 왜 공부를 하지 않았을까', '왜 준비를 하지 않았을까' 땅을 치며 후회한다. 나도 20대 중반에 아무 준비 없이 은퇴를 했다. 10년 이상 신었던 축구화를 갑자기 벗고 나니 할 게 없었다. 뭘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눈에 보이는 건 캄캄한 암흑이었다. 

 

결국 교육이 답이다. 지금은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교육의 중요성을 모르는 선수와 지도자들이 많다. 험난한 경쟁 사회에서 낙오자가 되지 않으려면 교육이 필요하다. 은퇴 후 삶을 왜 준비해야 하는지 어떻게 진로 설정을 할 것인지 학생 선수들에게 일깨워줘야 한다. 그래야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거듭날 수 있다. 세상을 바꾸는 건 사람이지만 사람을 바꾸는 건 교육이다.

 


By failing to prepare, you are preparing to fail
준비를 실패하면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다
- 벤자민 프랭클린 –

 

 

※ 본 교육은 대한체육회가 주관한다. 대한체육회가 양성한 선수출신 전문강사들이 학교에 직접 방문해 은퇴 후 성공적인 사회진출을 도모할 수 있도록 진로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학생선수들에게 운동과 학업의 병행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자존감을 고취해 스스로 목표 설정을 할 수 있도록 동기 부여를 해주는 것이 이 교육의 주된 목표다.

 

 

 

 

 

 

운동하면서 공부하는 게 너무 힘든 아이들


“얘들아 요즘 열심히 공부하고 있지?”

“선생님, 공부할 시간이 없어요 운동하느라 너무 피곤해요.”

“그래. 나도 안다. 얼마나 힘드니. 새벽에 운동하랴. 오전 오후에 수업 들으랴. 수업 끝나면 또 운동하랴. 때로는 저녁에 개인운동까지. 운동만 해도 힘들어 죽겠는데 이 와중에 공부까지 하라니.”

 

 

<성재 학생의 발표 동영상>

 

 

  이렇게 아이들이 힘들어서 공부를 소홀히 하고 싶어 할 때쯤, 2002월드컵 영웅 이영표 해설위원을 불러낸다. 나보다 이영표 같은 슈퍼스타가 말해주는 한마디가 아이들에게 훨씬 강력한 동기부여를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영표 위원은 “학창시절에 공부와 운동을 병행 하는 건 힘든 일이다. 하지만 오히려 안 힘들면 그게 더 이상한 거다. 지금 힘들다고 느껴진다면 아주 잘하고 있는 중이다”라고 말한다.

 

 

<초중고 선수들에게 들려주는 이영표의 축구이야기 영상>

 

 

  요즘 운동부 대부분은 정규수업을 다 받고 훈련에 참여한다. 어떻게 보면 내가 운동했을 때가 더 편했던 것 같다. 그때는 학업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운동만 하면 됐으니까. 좋다. 그럼 편했다고 그게 정상인가. 완벽한 비정상이었다. 학생이 공부를 우선시 해야 하는 건 당연지사인데 우리나라의 엘리트 체육 시스템이 이런 비정상화를 조장했다. 물론 엘리트 시스템 덕에 메달도 많이 땄다. 하지만 그 부작용으로 인해 수많은 운동선수들이 은퇴 후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축구부도 전교 1등 한다
  운동하며 공부도 하고 책까지 읽는 건 무척 힘든 일이다. 그래도 그걸 이겨낼 수 있어야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거듭날 수 있다. 이렇게 힘든 상황 속에서도 운동과 학업의 놀라운 성취를 이룬 친구가 있다.

 

  대동세무고 3학년 염철현 학생은 지난 중간고사에서 전교 1등을 했다. 축구부가 전교 1등을 하다니. 살다 살다 이런 특이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수업 후 철현이를 만나 그 동안 무엇을 어떻게 해서 그 비결을 물어봤다.

 

  “제가 축구를 4학년 때 시작했는데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공부를 게을리 해 본적이 없어요. 좋은 성적을 받는 조건하에 축구를 하겠다고 부모님과 약속했거든요.” 

 

  철현이 부모님은 처음에 철현이가 축구 하는 걸 심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들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그 대신 조건을 걸었다. ‘기말고사 전과목 100점’. 철현이는 이 기회를 살려 진짜 기말고사 전과목 모두 100점을 맞아 축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제가 좋아하는 축구를 계속 하려면 좋은 학업성적을 유지해야 했어요. 그래서 아무리 몸이 피곤해도 공부를 열심히 할 수 밖에 없었고요. 그리고 제 주변에 계신 축구부 감독님, 학교선생님, 체육부장님들이 공부 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셨어요. 중학교 때는 전교 2등까지 해봤고 고등학교 와서도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하다 이번에 처음으로 1등을 했어요.”

 

  대동세무고 체육부장 선생님은 “철현이는 밤늦게 까지 교실에서 공부한다. 학구열이 대단한 아이”라며 칭찬했다.

 

 


<3학년 1학기 중간고사 1등한 염철현 학생의 성적표>

 

 

  그 순간 철현이가 뛰어난 학업 성취를 했기에 운동실력은 그리 뛰어나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만큼 운동과 학업 모두 좋은 성과를 내기가 말만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 주장이었어요. 서울시대표로도 뽑혔었고요. 전국대회에 나가서 3위, 주말리그 준우승도 했어요. 그리고 고등학교에 와서는 1학년 후반기 때부터 제가 주전 골키퍼로 뛰었습니다.”

 

 

<서울시 대표 선발, 서울시대표 VS 일본 동경시대표>

 

 

  만약 철현이가 공부만 잘하고 운동은 못했다면 전교 1등이라는 성적은 빛이 바랬을 것이다. 하지만 운동 실력도 이렇게 출중하니 철현이의 학업 성취가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운동하느라 몸이 피곤할 때가 많죠. 그럴 때는 공부를 좀 소홀히 하고 싶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럴 때마다 제 꿈을 생각해요. 지금 조금 힘들어서 쉰다면 나중에 꿈을 이루지 못했을 때 큰 후회를 할 것 같아요. 지금 잠깐의 나태함이 미래에 영향을 미칠 거라는 생각을 하면 열심히 안 할 수가 없어요.”

 

공부를 하면 운동실력이 정체될까

  일부 지도자와 선수들은 ‘한창 운동할 나이에 공부에 시간을 많이 투자하면 운동실력이 발전하지 않는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공부하는 걸 탐탁지 않게 여긴다. 이런 생각에 대해 철현이는 단호하게 본인의 주장을 펼쳤다.

 

  “공부와 운동을 같이 해서 운동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건 다 핑계라고 생각해요. 저는 지금껏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면서도 실력이 발전했거든요. 팀 성적도 좋았고요. 고등학교 와서는 오히려 공부 양을 늘렸음에도 더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공부든 운동이든 자기가 집중해서 노력하는 것만큼 나오는 것 같아요.” 

 

  철현이의 목표가 궁금했다. 이렇게 운동도 공부도 열심히 하는 사람은 분명 자신의 확고한 목표가 있기 마련이다.

“일단 프로선수가 되고 국가대표가 될 거에요. 그 후 은퇴를 하면 체육행정가나 교수가 되어서 우리나라의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을 바꿔보고 싶어요. 제 주변 선배들 보면 좀 안타까울 때가 있어요. 운동만 하다가 대학교 가서 그만두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럼 그때부터 뭘 해야 될지 모르더라고요.”

 

철현이가 운동과 공부 2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부모님의 꾸준한 관심과 독려.
2 지도자와 학교선생님의 도움과 배려.
3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 

 

  철현이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학부모의 관심과, 지도자와 선생님의 도움, 본인의 노력이 합쳐져야 공부하는 운동선수가 계속 나올 수 있다. 앞으로 이와 같은 사례가 많이 나와서 은퇴선수들이 사회의 리더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염철현 학생의 인터뷰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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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성민

 

 

“운동하는 놈이 운동만 잘하면 됐지. 공부는 해서 뭐 해”

 

  내가 운동할 때는 주위에서 이런 말을 하던 시대였다. 부끄럽지만 난 고등학교 3년 내내 단 한 번도 수업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 같은 반 친구가 누구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시간에 운동을 하거나 숙소에서 잠을 잤다. 때론 오락실에서 신나게 조이스틱을 두드린 적도 있었다. 그때는 우리 학교 축구부 누구나 다 그랬다. 그냥 운동만 열심히 하면 그걸로 족했다. 그래도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인생의 황금기를 너무 허무하게 흘려 보냈다. 공부도 친구도 아무것도 얻은 게 없이 말이다.

 

  운동선수의 삶은 달콤한 유혹이다. 성공하면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거머쥔다. 그래서 너도나도 이 도박판에 판돈을 밀어 넣는다. 그 순간 모두가 잭팟의 주인공을 꿈꾼다. 하지만 운동으로 성공하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 초등학교 때 축구를 시작해 프로선수(K리그 클래식)가 될 확률은 0.8%. 내셔널리그, K3를 포함해도 약 3%에 불과하다. 지금도 많은 학생선수와 학부모들이 이런 무모한 확률의 도박에 모든 걸 건다.


  좋다. 실력이 특출나거나 천운을 타고나 0.8% 안에 들어간다고 치자. 그렇다 해도 진짜 고수들과의 진검 승부는 그때부터 시작이다. 프로에는 전국에서 날고 기는 타짜들이 다 모인다. 게다가 국내 타짜들 보다 더 뛰어난 외국인 선수들도 으르렁거린다. 이런 무시무시한 정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펼치다 대부분의 선수가 1~2년 안에 강제 퇴거 조치를 당한다.

 

  준비 없는 은퇴는 치명적이다. 아무런 준비 없이 운동 하나만 보고 달려온 선수들은 은퇴할 즈음에 서야 뭔가 잘못됐다는 걸 인지한다. 사회라는 또 다른 정글에 나가 싸울 무기가 변변치 않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해 남들은 최첨단 스텔스 폭격기와 미사일로 무장했는데, 은퇴 선수들은 딱총 한 자루로 싸우니 게임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나서 '학창 시절에 왜 공부를 하지 않았을까', '왜 준비를 하지 않았을까' 땅을 치며 후회한다. 나도 20대 중반에 아무 준비 없이 은퇴를 했다. 10년 이상 신었던 축구화를 갑자기 벗고 나니 할 게 없었다. 뭘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눈에 보이는 건 캄캄한 암흑이었다. 

 

  결국 교육이 답이다. 지금은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교육의 중요성을 모르는 선수와 지도자들이 많다. 험난한 경쟁 사회에서 낙오자가 되지 않으려면 교육이 필요하다. 은퇴 후 삶을 왜 준비해야 하는지 어떻게 진로 설정을 할 것인지 학생 선수들에게 일깨워줘야 한다. 그래야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거듭날 수 있다. 세상을 바꾸는 건 사람이지만 사람을 바꾸는 건 교육이다.

 

 


By failing to prepare, you are preparing to fail
준비를 실패하면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다
- 벤자민 프랭클린 –

 

 

 

※ 본 교육은 대한체육회가 주관한다. 대한체육회가 양성한 선수출신 전문강사들이 학교에 직접 방문해 학생선수들의 은퇴 후 성공적인 사회진출을 도모할 수 있도록 진로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학생선수들에게 운동과 학업의 병행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자존감을 고취해 스스로 목표 설정을 할 수 있도록 동기 부여를 해주는 것이 이 교육의 주된 목표다.

 

 

 

© kvrkchowdari, 출처 Pixabay

 

# 운동선수의 뻔한 진로
  오늘은 운동선수의 진로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이다.

  잠깐 여기서 진로의 사전적 의미를 알아보자. 진로(進路)는 한자의 나아갈 진(進)자와 길로(路)자를 합쳐 앞으로 나아갈 길을 의미한다. 간단히 말하면 어떤 인생을 살 것 인가에 대한 계획을 세워보는 것이다. 학생선수의 진로 계획은 일반 학생과는 너무나 다르다. 일반 학생들은 자신의 적성과 흥미에 따라 진로 계획을 세우기 때문에 다양한 길을 갈 수 있다. 반면 학생선수들의 진로는 무척 단조롭다. 운동에 발을 들여놓은 그 순간부터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고 봐야 한다.


1 대학교 진학 → 2 프로 / 실업 진출 → 3 은퇴 → 4 지도자 / 자영업

  우리나라 운동선수 대부분이 이런 길을 걸어왔다. 선배들이 이런 길을 닦아왔으니 후배들도 그 길을 자연스럽게 따라갔다. 2014년 대한체육회와 조선일보가 공동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은퇴운동선수의 진로는 지도자와 자영업의 비율이 압도적이었다. 사실 이 자료가 아니더라도 고개를 돌려 은퇴선수들이 하고 있는 일을 찾아보면 비슷한 답이 나온다.

 

 


대한체육회 조선일보 공동 설문조사

 

 

# 지도자 or 자영업
  지도자 비율이 높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평생 운동만 해왔기에 다른 걸 하고 싶어도 사회에 나가면 경쟁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너도나도 은퇴하고 나면 지도자 자리부터 알아본다. 그나마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게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도자 취업 시장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괜찮은 자리는 국가대표 타이틀을 달아본 선수들이 이미 다 차지하고 있다. 국가대표를 해보지 못한 20대 초중반의 은퇴 선수들은 보통 초등학교나 중학교 코치부터 시작하는데 이들을 보통 새끼 코치라고 부른다. 처우는 월 150만원 이하가 대부분이다. 내가 아는 후배는 월급 50만원 받으며 지도자 일을 시작했다. 게다가 그나마 남은 지도자 자리도 거의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언제 짤릴지 모르는 상황에 놓여 있다. 

 

  자영업의 비율은 지도자를 넘어선다. 괜찮은 지도자 자리는 이미 포화 상태이기에 여기서 탈락한 선수들은 자영업 시장으로 눈을 돌린다. 100만원 받고 지도자 할 바에야 어디 가서 다른 일을 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 맨땅에 헤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다. 은퇴 선수들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역량을 갖추지 못했기에 취업보다는 자영업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 이게 바로 은퇴 운동선수들이 눈앞에 마주한 현실이다.

 

 

발표지도 ⓒ임성민

 

 

# 발표는 너무 힘들어
  본론인 수업 얘기로 다시 들어가 보자. 진로에 대해서 글로 써보고 직접 발표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에게 발표를 해보라고 하니 무척 힘들어했다. 선수생활을 하면서 앞에 나와서 발표해 본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얘들아 아무리 잘 나가는 선수도 30대 중반이면 은퇴하잖아. 그러니 너희들이 은퇴 후 해보고 싶은 일을 한번 써봐. 그걸 바탕으로 발표할거야. 단 선택할 때는 크게 3가지 정도를 생각해야해.

1. 좋아하는 일인지
2. 잘할 수 있는 일인지
3. 앞으로 전망이 밝은 일인지

"다 썼어? 발표 해 볼 사람?" 선뜻 나서는 친구들이 없다. 이럴 때는 어쩔 수 없이 지목해야 한다. 뒤쪽에 앉은 가장 산만한 아이를 불러냈다. 그 많은 사람 중에 왜 나냐는 표정이었다.

"저는 축구 코치가 되고 싶습니다" 예상은 어느 정도 했지만 발표를 하는 아이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너무 없었다.

"발표 할 때는 큰소리로 자신감 있게 해야지. 그래야 너 이야기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여주지." 이렇게 말을 해도 아이의 시선은 계속 땅으로 꺼지고 목소리는 기어 들어갔다.

"좋아. 얘들아 이렇게 답변해보자.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합니다'라고 말했을 때에는 그 이유를 설명 해줘야 해. 그래야 좀 더 설득력 있는 답변이 될 수 있어. 예를 들어 저는 은퇴 후 축구 코치가 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축구를 좋아합니다. 또한 지금까지 제가 해왔던 축구를 가르친다면 익숙한 일이라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발표하고 있는 아이들 ⓒ임성민

 

 

  발표력은 성공적인 사회 생활뿐만 아니라 대학교 생활에 있어서도 필수 요소다. 이제 대학에서도 예전처럼 운동부라고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최순실 정유라 부정입학 여파로 운동선수들에게도 일반 학생들과 똑같은 잣대를 들이댄다.

 

  게다가 2017년부터 최저학력제, 소위 ‘C제로 룰’을 시행하고 있다. 평균학점이 C제로 미만인 선수들은 경기에 출전할 수 없는 규정이다. 올해 연세대 축구부는 28명의 학생 중 14명이 C제로 룰에 걸리자 아예 U리그 참가를 포기했다. 이렇듯 운동부 선수들도 각종 수업 과제 제출은 물론 발표도 많이 해야 한다. 발표를 잘 하는 선수들은 분명 학점 취득에 유리한 시대에 접어들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건 대학생이나 직장인들에게도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나는 운동선수라서 발표 같은 건 못해도 괜찮다'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어려워도 자꾸 해봐야 는다. 어렵다고 안 하면 평생 못한다. 처음부터 베테랑이 어디 있나. 부끄러워도 꾸준히 발표를 하다 보면 점점 익숙해진다.

 

  비록 짧은 교육 기간이지만 아이들이 점점 발표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가려고 한다. 계속 질문을 던지고 좋은 답변이 나오도록 유도하면 분명 말하기 실력이 향상된다. 그래서 아이들이 대학에 가서 "아 그때 임선생님과 같이 했던 발표 시간이 많은 도움이 되었어"라고 말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인터뷰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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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우효동

 

                                                    

                                       그림 1.                                                                     그림 2.

     

                         

 

  이야기 하나, 초당 7만 장을 찍고 적외선을 감지하는 특수 카메라를 통해 테니스 스윙이 시작되어 끝날 때까지 관절 각도와 속도를 분석한다. 피부 표면에 붙인 작은 조각들은 언제, 얼마나 힘을 쓰고 있는지를 측정해 훈련 참여자가 적절하게 힘을 사용하고 있는지 혹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지는 않는지 분석한다. 뿐만 아니라 군용 레이더와 같은 기능을 가진 탄도추적시스템은 공의 회전과 속도, 높이, 각도, 궤적 등에 대한 정보를 분석해 얼마나 멀리 또 정확하게 날아가는지 판단한다.

 

  이야기 둘, 분석된 자료들은 인공지능 컴퓨터에 의해 자동으로 음성, 이미지의 형태로 변환되어 훈련 참여자에게 제공되고, 여기에는 부족한 부분과 보완해야 할 부분, 향후 연습방향 등이 전부 포함된다. 이때, 인공지능 컴퓨터는 최대한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비교해 테니스에 대한 모범답안을 도출하고 이를 고려한 피드백을 참여자에게 전달한다.

 

  스포츠과학이 낮선 사람들은 마치 먼 미래의 일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첫 번째 이야기는 현재 실험실에서 전문운동선수들의 동작을 분석할 때 사용되는 장비들에 대한 설명이다. 비록 아직은 해당 장비들이 고가인데다가 운용에 어려움이 있어 대중화되지는 않았지만, 기술의 발전과 적용속도를 생각하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지는 않다. 또한 이미 예상했겠지만, 두 번째 이야기는 미래를 가정하여 꾸며낸 이야기다. 하지만 인공지능에 대한 수많은 전문가들의 전망을 살펴보면 이 또한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향후 고급 스포츠기술의 대중화가 이루어지고, 또 인공지능 컴퓨터와의 결합이 이루어지면 스포츠현장에는 과연 어떤 영향을 미칠까? 먼저, 기술과 인간이 공존하게 될 교육현장을 한 번 비교해보자.

 

 

                                그림 3.                                                                그림 4.

      

 

 

인공지능 : “뒤에서 라켓을 조금 더 내리고, 이때 손목의 각도를 20cm 아래로 내리세요!” “힘을 좀 빼고, 부드럽게 하셔야 합니다. 힘을 쓰는 순간을 2초 더 늦추세요!” “자꾸 네트에 걸리죠? 조금 더 높게 보고~ 공에 회전을 30% 정도 더 주시면 되요! 무릎을 아래로 30cm 더 구부리고요!”

 

지도자 : “

 

  애석하지만, 운동기술에 대해 분석하고 조언하는 것에 관해서는 미래의 인공지능 컴퓨터가 사람보다 나으면 나았지 더 못할 것 같지는 않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피사리데스와 스티글리츠, 초대형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의 저자인 유발 하라리 교수 등 언제부터인가 전 세계 내로라하는 석학들이 입만 열면 하는 얘기가 있다. 가까운 미래에 과학기술의 발달이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할 것이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과연 스포츠 현장에서는 어떨까? 과학기술의 발전이 스포츠 지도자들의 자리를 위협하는 날이 올까? 결론부터 말하면, 10년 간 엘리트 선수로 활동했고, 8년 간 스포츠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는 필자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지금부터 필자는 어째서 미래에도 스포츠 지도자들이 굳건히 건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지 살펴보자.

 

 

                                      그림 5.                                                        그림 6.

   

                                                                                                   

 

  첫째, 모든 사람은 성별부터 나이, 신체능력, 추구하는 스타일까지 완벽하게 다르다. “21세기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의 테니스 동작은 너무나 아름답고 훌륭하기에 로저 페더러 처럼 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 이는 일부는 맞고, 일부는 완전히 틀린 이야기다. 근처 테니스장을 지나가다 노란 공이 너무 예뻐 큰 맘 먹고 시작한 30대 주부, 몇 년 전 다친 무릎이 아직 완전하지 않은 40대 남성,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과 같이 모여 경기를 하는 데 자꾸만 실수가 나와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연습하고 싶은 50대 남성은 페더러의 동작이 아름답고 훌륭해보일지언정 결코 그와 같이 되고자 하는 노력을 하고 싶지도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이 즐기고자 하는 테니스, 그들이 할 수 있는 테니스는 각도와 속도, , 높이에 있지 않다. 즐거운 경험, 본인의 신체 상태에 맞는 적당한 운동 강도, 본인의 부족함을 보완할 수 있는 맞춤형 운동까지 그 주제와 내용이 천차만별이다. 이는 다시 말하면, 모든 사람은 운동에 참여하는 이유가 다르고 시작점이 다르며 목표가 다르다는 것으로, 주어진 모든 정보를 종합하고 적절하게 대응하여 최적의 판단을 내리는 것은 분명 인공지능이 아닌 인간이 더욱 잘 할 수 있는 일이다.

 

 

                                     사진 7.                                                   사진 8.

   

                                                                                                                                                   

 

  둘째, 스포츠 기술에는 완벽한 하나의 정답이 있을 수 없다. 앞서 언급했던 페더러의 방식이 훌륭하다고 평가받을 수는 있지만 누구나 따라야 할 정답으로 받아들여질 수는 없는데, 나달이나 조코비치 등 다른 훌륭한 모범 답안이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의 정답을 인정하고 거기에 초점을 맞춰 교육을 진행한다고 해도 관절가동범위나 근력, 유연성 등의 차이로 인해 결코 같은 결과가 도출되지 않는다. 이로 인해 현장의 지도자는 본인의 레슨회원을 페더러나 나달처럼 만들기보다 자신의 경험을 녹여내 그 사람만의 정답을 만들어 나간다. 반면 최적의 값을 설정하고 지금 앞에 있는 사람이 해당 값으로부터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 편차를 측정한 뒤, 그것을 줄여나가고자 하는 과학적 접근은 매번 새로운 정답을 만들어 가는 일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무엇보다 저마다 각기 다른 정답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대단히 과학적이지 않다!). 그러나 완벽하게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의 정답을 강요하는 건 체형이 각기 다른 사람들에게 한 사이즈의 옷을 입혀야 하는 것과 같다. 인공지능 컴퓨터가 인간처럼 절충하고 타협하여 각기 다른 사람에 맞는 여러 가지 정답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가정하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으나 과연 어디까지 해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림 9.                                                                       그림 10.

 

 

 

  셋째,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분석내용을 습득해야 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스포츠교육은 무엇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바로 적용되지 않는다. 분석과 조언을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깨달음은 그리 오랜 시간 지속되지 않는다. 입력한 대로 바뀌고 잊어버리지 않는 건 인간이 아닌 로봇이나 가능한 일이다. 실제 스포츠 현장에서는 뭔가 되는 것 같고 완전히 감을 잡은 것 같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잊어버리고 또 다시 되찾고 잊어버리는 일들이 수없이 반복된다. 결국 수없이 많은 반복을 통해 몸에 완전히 익히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자신의 것이 되는데, 그 과정은 생각보다 느리고 요원하다. 이러한 과정에 필요한 것은 분석결과가 아닌 따뜻한 말 한마디와 감정적 배려, 바로 사람의 공감능력이다.

 

  그렇다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사회의 바람직한 스포츠 지도자란 어떤 능력을 가진 사람일까? 20여 년 간 스포츠 현장을 경험했던 필자는 이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그림 11.                                         그림 12.

   

 

 

  첫째, 세심한 관찰자이자 사람과 상황을 모두 고려하는 면밀한 설계자

지도자들은 관련된 지식을 알고 이를 회원들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끝낼게 아니라 회원 각자의 관심과 수준에 따라 지도하는 내용과 방식을 달리 설계해야한다. 20대 학생, 30대 주부, 40대 직장인, 60대 은퇴자 등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전해야 할 내용이 달라지고, 어떤 목적으로 운동에 참여하는지도 고려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레슨회원의 신체상태가 어떤지, 감정적으로는 어떤지를 반영해서 교육진행 계획을 조절해야 하고, 교육진행에 따른 회원들의 반응을 살펴 미래의 교육목표와 강도를 조정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림 13.                                                                               그림 14.

    

 

 

  둘째, 기술과 사람을 조율해 최적의 결과를 이끄는 탁월한 협상가

나날이 발전하는 과학적 분석을 교육내용에 반영하되, 저마다 다른 신체능력과 목표를 반영해야 한다. 이때 많은 경험을 지닌 지도자의 시선과 조언은 정성적인 과학의 일부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분석과 평가는 어디까지나 현재상태가 어떤지, 어떤 기술적 특성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과 앞으로 어떤 정답을 만들어 가면 좋을지 고민하는 참고자료가 되어야 하며, 지도자는 기술과 사람의 관계에서 균형을 잡고 양측을 적절히 조율해 그 사람만의 정답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림 15.                                                    그림 16.

     

 

 

 

  셋째, 오랜 친구 같은, 편안한 감정적 동반자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인공지능이 탄생해도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배우는 것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작은 성취에 기뻐하고 때로는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아 좌절하기도 하는 감정곡선을 갖는 것이 사람이다. 따라서 바람직한 지도자란 단지 분석하고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먼저 다가가 귀를 기울이고 감정적인 부분들까지 함께 어루만지는 소통과 공감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를 넘어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해 유발 하라리 교수는 자신이나 타인의 감정을 인지하고 잘 다스려 원하는 것을 이루어 내는 감정지능이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의 강점으로 중요하게 될 것이라고 전한 바 있다.

 

 

                                                               그림 17.                                            그림 18. 

         

 

 

  자연선택 과정에서 분자들이 단계적으로 증가하고 통합된 수십억 년의 산물이자 춤추는 수 십 억 개의 세포들 내의 도로를 따라 미끄러지는 유액과 화학물질로 구성된 창조물, 그리고 수조개의 시냅스들간의 대화가 동시에 이루어지고 미크론 두께의 회로를 가진 커다란 계란 모양의 조직이 현대과학에서는 꿈도 못 꿀 알고리즘으로 운영되는 기계, 셀 수 없이 많은 뉴런의 활동들, 또한 셀 수 없이 많은 신경 다발들의 움직임, 눈에 보이지 않는 크기의 입자들이 존재하는 이것은 다름아닌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인코그니토 중, 데이비드 이글먼).

 

  많은 사람들이 과학기술의 발전과 인공지능의 등장이 미래에 엄청난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인간의 존재 또한 그 자체로 신비하고 위대한 존재임이 틀림없다. 비전공자로서 인공지능과 과학기술에 대한 지나친 비약을 했다는 생각이 없지 않지만, 오랜 시간 스포츠지도 현장에서 보고 느꼈던 것들을 정리하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스포츠 지도자들이 어떤 일들을 해왔고 또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그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했다. 과연 과학기술과 인공지능의 발전이 스포츠 현장에 어떤 변화를 불러오게 될까.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분명 사람과 기술이 한데 어우러진, 오늘보다 더 발전된 모습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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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학수

 

 

경기 중인 타이거 우즈의 모습 (출처 : pixabay)

 

 

  타이거 우즈가 처음 프로무대에 섰을 때, 세계 골프계는 경악했다. 19974월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마스터스대회에서 우즈는 2위보다 무려 12타차나 앞서며 프로 첫 우승을 차지했다. 골프에서 흑인은 안된다는 백인들의 고정 관념을 일거에 무너뜨리고 골프의 구세주로 전격 등장했던 것이다. 우즈에게 골프를 하게 한 그의 아버지 얼 우즈조차 선택된 사람이라고 아들을 말하며 그동안 어떤 사람도 하지 못한 성과를 올렸다고 극찬했다. 골프전문가들은 당시 우즈 전성시대를 점치며 그를 범접할 선수가 등장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우즈가 주요 대회를 석권해 나가자 여러 대회 골프장들은 좀 더 길고, 까다롭게 코스를 개조했으나 그의 강세는 좀처럼 꺾일 줄 몰랐다. 코스를 힘들게 하면 다른 선수들은 더욱 악전고투했던 반면, 우즈는 탁월한 경기력으로 유유자적, 우승행진을 이어 나갔던 것이다. 마치 공원에서 편하게 산보하듯이 우즈는 우승컵과 상금을 휩쓸었다.

 

  골프는 선수들이 장비를 갖고, 대회 운영자들은 핀위치를 쉼없이 조정하는게 가능한 대표적인 인공스포츠이다. 게임을 때로는 쉽게도, 어렵게도 할 수 있는 종목이다. 우즈의 일방독주를 막으려 했던 것은 종목의 특성을 살려 경기의 재미와 흥행을 이끌어 내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즈의 신들린 경기력 앞에서는 인간의 인위적 조정도 결코 쉽지 않았던 것이다. 우즈가 나중 무너진 것은 여자 문제 등의 복잡한 사생활과 나이, 부상 등이 겹치면서였다.

 

  골프에 비해 다른 종목들은 움직일 수 있는 여지가 골프만큼 많지 않다. 예를 들어 육상은 팬들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서 신기록 작성을 기대하고 있지만 인간의 육체적 한계 때문에 여의치 않다. 최고기록이 깨지는 속도는 점차 무뎌지고 있으며 기록순위도 근소한 차이로 이루어진다. 신기록이 많이 나올수록 기록의 정직성에 대한 의심이 늘어나는 게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육상은 인간의 탁월함을 겨루는 대표적인 종목이다. 가장 강하고, 가장 빠르고, 가장 멀리, 가장 적합한 승자를 가리는 순수한 경쟁스포츠이다. 최고의 성취를 위해 부자연스러운 방법을 동원하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루어졌던 일이다. 따라서 부정한 행위를 단속하기 위한 연맹체 등의 노력도 함께 따랐다.

 

 

 

2013 런던올림픽에서 경기 후 세레머니를 하고 있는 우사인 볼트 (출처 : wikipedia)

 

 

  현재 세계 단거리 1인자 우사인 볼트는 별난 선수라고 할 수 있다. 폭발적인 질주를 전매특허로 내세운 볼트는 보통의 스프린터보다 키가 월등히 크다. 높이가 단점이 될 수 있지만 그는 묘하게도 이를 잘 극복했다. 볼트는 전에 볼 수 없었던 방법으로 인간 역사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로 올림픽을 3연패했다. 볼트 이전 최고의 육상선수로 불렸던 1936년 베를린올림픽 4관왕 제시 오웬스가 현존한다하더라도 볼트에게는 기록상에서 밀려 1인자 자리를 결코 넘볼 수 없을 것이라는게 국제육상전문가들의 가정이다.

 

  스포츠는 사실 순수 인간적인 능력을 향상시키고 부정한 행위는 방지하는 이중적인 기준에 의해 발전했다. 이를 주도해 나간 것이 슈퍼스타들이었다. 하지만 과학적 기술의 발달로 인해 인공적인 기술의 접목이 점차 늘어나면서 스포츠 자체를 파멸시킬 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1920년대와 1930년대는 경기력 향상을 위해 수주에서 많게는 수개월간 훈련을 하는 것 자체를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행위로 받아들이고 대회 당일날 순수하게 누가 더 나은 가를 겨루는 것이 진정한 스포츠라고 인식하던 고전적인 시대였다. 지금은 훈련이 경기력 향상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좋은 것으로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었다.

 

  우즈, 볼트 등 최고의 선수들은 과거보다 훨씬 강한 존재들이다. 초인간적인 선수들은 완벽을 추구하며 각본없는 스포츠의 드라마를 새롭게 쓰고 있다. 이들은 어떻게 보면 별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적인 노력에 의해 슈퍼스타의 입지에 오른 이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과 경탄의 대상이 된다. 마이클 조던, 펠레, 타이거 우즈 등은 한때 신과 같은 경이의 대상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들은 보통 사람들과는 분명 다르다. 하지만 앞으로 기술적 진보 속에서 엘리트 선수들은 결코 일반인과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서 있을 지도 모른다. 인공적인 장점을 추구하며 스포츠가 창출할 수 있는 가치가 있다면 그 가치를 기반으로 새로운 스포츠 형태가 탄생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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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학수

 

 

 

  2017 FIFA U-20 월드컵 대회 개막을 며칠 앞두고 모 대학교 체육관련과목 수업 때 축구선수인 한 학생에게 스페인의 세계적인 명문구단 바르셀로나에서 활동중인 이승우, 백승호 선수가 국내 선수와 어떤 점이 다르냐?”라고 물었다. 학생은 화려한 개인기와 폭발적인 돌파력, 높은 골결정력으로 상대 선수들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자신감있게 경기를 풀어가는 담대한 모습이 인상적이다라며 만약 두 선수가 국내서 선수생활을 계속했다면 지금과 같은 능력을 갖추지 못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코치의 철저한 통제하에 훈련과 실제 경기를 해야하는 국내 환경에서는 개성이 강한 이승우, 백승호가 나오기 힘들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2017 U-20 월드컵 아르헨티나 전에서 골을 넣고 세레머니를 하는 백승호(오)선수와 축하해주는 이승우(왼)선수 (출처 : KFA)

 

  이번 대회 아르헨티나와의 예선전에서 이승우는 역동적이고 빠른 돌파력과 개인기를 보여주었다. 하프라인부터 치고 들어가 수비수 4명과 골키퍼를 제치고 골을 넣었다. 백승호는 아르헨티나 경기에서 페널티킥을 골키퍼와 반대방향으로 차넣어 상대의 허를 찌르는 심리전술에 강한 일면을 과시했다. 백승호는 페널티골을 기록한 뒤 양 손가락으로 네모 모양을 그리는 멋진 골 세리모니를 했는데, 이는 조 추첨식에서 아르헨티나가 한국과 같은 조에 속한 것을 기뻐했던 마라도나를 상대로 마치 그거 뽑고 좋았죠하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해주었다.

 

  한국축구에서 둘은 많은 무리 속에서 고고한 빛을 발하는 군계일학과 같은 존재이다. 둘은 예전 한국 선수들에게서 볼 수 없었던 자유분방한 플레이를 펼쳤다. 공이 발에 붙어 다니는 듯한 드리블과 거친 야생마처럼 몰아붙이는 스피드를 구사하는 둘의 모습을 보노라면 마라도나와 메시같은 세계 정상급 선수들의 경기와 흡사하다는 느낌을 준다. “한국 선수 같지 않다는 말을 팬들로부터 듣는 것은 한국축구에서 보지 못했던 새로운 스타일의 축구를 하기 때문이다.

 

  둘이 국내 한국선수들과 다른 감각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일찍이 명문 바르셀로나에 입단해 부모님의 강력한 관심 속에 기본기를 착실히 배우며 경쟁력을 높였기 때문이다. 이승우의 아버지는 안양의 유소년클럽에서 형을 따라 축구를 배워 두각을 나타내던 그를 포천에 있는 김희태 축구학교, 홍명보 감독이 운영하는 수원 FCMB로 보내 축구를 가르쳤다. 이승우는 열 세 살이던 2011년부터 바르셀로나 유소년팀에서 축구를 익혔다. 2009년 초등학교 시절 18경기에서 30골을 넣으며 차범근 축구대상을 수상하는 등 빼어난 유망주로 일찍이 재능을 발휘한 백승호는 2010년 수원 삼성 유소년팀인 매탄중에서 잠시 뛰다가 바로 바르셀로나 유소년팀으로 이적했다. 백승호의 아버지 백일영 연세대 체육교육과 교수는 필자와 ROTC 동기로 훈련이 세기로 유명한 특전사에서 함께 근무했었다. 백승호는 테니스 선수출신인 아버지의 운동소질과 어머니의 자상한 뒷받침으로 부모의 DNA를 잘 이어나가는 유망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바르셀로나의 유소년 육성시스템은 둘을 화려하게 꽃피웠다. 라 마시아(La Masia· 스페인어로 농장이라는 뜻)라고 불리는 육성시스템은 선수 이전에 사람이 되야한다는 원칙을 갖고 인성과 자기개발을 위한 교육에 주력하면서 축구는 하루 1시간 반 정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방법을 고수하는 것은 학교생활을 제대로 해야 창의적 축구를 할 수 있다는 실천 목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바르셀로나는 유망주 시절부터 즐겁게 축구를 익히게 하면서 드리블, 패스, 트래핑 등 기본적인 기술을 터득토록 한다. 패스 위주의 정교한 스페인 축구 티카티카(스페인어로 탁구공이 왔다갔다한다는 의미)’를 몸에 자연스럽게 배어들도록 하는 것이다. 한국의 축구환경처럼 코치가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며 체력적으로 강한 면을 요구하는 것과는 아주 비교된다.

 

  메시, 사비 에르난데스, 퓨욜 등 축구 레전드들이 바르셀로나의 장기간에 걸친 집중 교육으로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일찍이 유망주로 발탁된 선수들이 오랜 시간을 두고 철저한 훈련시스템에 의해 관리되며 자신들의 기본 소질 뿐 아니라 숨은 재능까지 찾아내 슈퍼 선수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기본과 원칙을 소홀히 하고, 이기는데 필요한 기술과 전술을 배우는 한국 축구의 교육 생태계와 개성을 존중하며 가치있는 축구선수를 키우는 바르셀로나 육성시스템에서 두 나라의 축구 실력차만큼 축구 문화가 크게 다르다는 것을 실감케 한다.

 

  기본기에 충실하고 다양한 규율속에서 축구 재능을 향상시키는 이승우와 백승호가 메시에 못지않은 세계 축구의 지존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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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성민

 

 

“운동하는 놈이 운동만 잘하면 됐지. 공부는 해서 뭐 해”

 

  내가 운동할 때는 주위에서 이런 말을 하던 시대였다. 부끄럽지만 난 고등학교 3년 내내 단 한 번도 수업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 같은 반 친구가 누구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시간에 운동을 하거나 숙소에서 잠을 잤다. 때론 오락실에서 신나게 조이스틱을 두드린 적도 있었다. 그때는 우리 학교 축구부 누구나 다 그랬다. 그냥 운동만 열심히 하면 그걸로 족했다. 그래도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인생의 황금기를 너무 허무하게 흘려보냈다. 공부도 친구도 아무것도 얻은 게 없이 말이다.

 

운동선수의 삶은 달콤한 유혹이다. 성공하면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거머쥔다. 그래서 너도나도 이 도박판에 판돈을 밀어 넣는다. 그 순간 모두가 잭팟의 주인공을 꿈꾼다. 하지만 운동으로 성공하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 초등학교 때 축구를 시작해 프로선수(K리그 클래식)가 될 확률은 0.8%. 내셔널리그, K3를 포함해도 약 3%에 불과하다. 지금도 많은 학생선수와 학부모들이 이런 무모한 확률의 도박에 모든 걸 건다.

 

  좋다. 실력이 특출나거나 천운을 타고나 0.8% 안에 들어간다고 치자. 그렇다 해도 진짜 고수들과의 진검 승부는 그때부터 시작이다. 프로에는 전국에서 날고 기는 타짜들이 다 모인다. 게다가 국내 타짜들 보다 더 뛰어난 외국인 선수들도 으르렁거린다. 이런 무시무시한 정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펼치다 대부분의 선수가 1~2년 안에 강제 퇴거 조치를 당한다.

 

  준비 없는 은퇴는 치명적이다. 어느 사회든 준비가 안된 사람은 찬밥 신세다. 아무런 준비 없이 운동 하나만 보고 달려온 선수들은 은퇴할 즈음에 서야 뭔가 잘못됐다는 걸 인지한다. 사회라는 또 다른 정글에 나가 싸울 무기가 변변치 않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해 남들은 최첨단 스텔스 폭격기와 미사일로 무장했는데, 은퇴 선수들은 딱총 한 자루로 싸우니 게임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나서 '학창 시절에 왜 공부를 하지 않았을까', '왜 준비를 하지 않았을까' 땅을 치며 후회한다. 나도 20대 중반에 아무 준비 없이 은퇴를 했다. 10년 이상 신었던 축구화를 갑자기 벗고 나니 할 게 없었다. 뭘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눈에 보이는 건 캄캄한 암흑이었다. 

 

  결국 교육이 답이다. 지금은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교육의 중요성을 모르는 선수와 지도자들이 많다. 험난한 경쟁 사회에서 낙오자가 되지 않으려면 교육이 필요하다. 은퇴 후 삶을 왜 준비해야 하는지 어떻게 진로 설정을 할 것인지 학생 선수들에게 일깨워줘야 한다. 그래야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거듭날 수 있다. 세상을 바꾸는 건 사람이지만 사람을 바꾸는 건 교육이다.

 


By failing to prepare, you are preparing to fail
준비를 실패하면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다
- 벤자민 프랭클린 -

 

 

 

※ 본 교육은 대한체육회가 주관한다. 대한체육회가 양성한 선수출신 전문강사들이 학교에 직접 방문해 은퇴 후 성공적인 사회진출을 도모할 수 있도록 진로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학생선수들에게 운동과 학업의 병행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자존감을 고취해 스스로 목표 설정을 할 수 있도록 동기 부여를 해주는 것이 이 교육의 주된 목표다.

 

 

 

은퇴 후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있는 아이들 ⓒ임성민

 

 

  초침이 2시를 가리키자 축구부 학생들이 하나둘씩 강의실로 내려왔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동기 부여를 해줘야 할지 가슴이 뛰었다. 그 동시에 막중한 책임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고등학교 운동선수들에게 '은퇴 후 인생'이라는 단어는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강의를 통해 한두 명이라도 미래의 대해 깊이 고민한다면 그건 성공이었다. 나도 축구 선수였고 다양한 스포츠 분야에서 일을 해왔다는 소개를 하니 학생들이 좀 더 친근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 같았다. 

 

  "여러분 이 교육의 목적은 은퇴 후의 삶을 미리 생각해보고 지금부터 조금씩 계획을 세워 보는 거야." 학생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들의 표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고등학생들에게 은퇴는 말도 안 되는 단어다. 이 나이 때 선수들 모두 손흥민처럼 유럽에 나가 휘황찬란한 미래를 꿈꾼다. 그러니 은퇴가 도대체 무슨 말인가. 은퇴는 꿈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래도 아이들에게 교육을 해야 한다. 운동과 학업을 병행해야 하는 그 이유를 조금이라도 마음에 와 닿게 해줘야 한다. 그래야 조금 더 일찍 준비할 수 있다. 그 동시에 아이들의 꿈을 꺾으면 절대 안 된다. 꿈은 꿈대로 쫓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학업과 적성 개발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줘야 한다.

 

 

 

은퇴 후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발표 ⓒ임성민

 

 

  “만약 여러분이 부상이나 기타 이유로 운동을 그만두게 된다면 뭐 할 거야?”

  “요리사요, 전 동물 사육 사요, 김치 판매요.” 예상외로 다양한 답변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요즘 아이들의 생각은 확실히 내가 운동했을 때와는 달리 자유분방했다. 시대가 변한 만큼 아이들의 생각도 많이 열려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입을 떼지 못했다. 그래서 몇몇 아이에게 질문을 던졌더니 “글쎄요. 생각해 본 적 없는데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찌 보면 당연한 대답이었다. 아직도 많은 학생선수들은 은퇴 후 뭘 해야 할지 깊이 고민해 보지 않는다. 지도자도 학부모도 은퇴 후 삶의 대해서 아이들에게 적극적으로 교육을 하지 않는 것 같아 보였다. 

 

  “안타깝지만 너희들 중에 프로나 실업선수가 될 확률은 10% 미만이야. 자 여기 대한체육회 체육정보센터 통계자료 보이지. 여기 32명이 있으니까 직업 운동선수가 될 확률은 많아야 3명 정도 되겠네.” 그러자 몇몇 아이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특히 3학년 아이들이 조금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느낌이었다. 사실 축구 선수만 놓고 보면 10%가 아니라 약 3%. K리그 1부 리그인 'K리그 클래식'은 0.8%까지 줄어든다. 하지만 0.8%라고 하면 너무 사기를 꺾는 것 같아서 전 종목을 조사한 대한체육회 수치를 인용했다. 

 

"선생님도 너희들 모두 국가대표가 되고 스타가 됐으면 좋겠어.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아." 

그렇다. 현실은 생각보다 냉정하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일찍 운동과 학업을 병행해야 하는 이유를 느끼게 해줘야 한다.

2시간 동안 다양한 통계와 시청각 자료를 통해 아이들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했다. 강의가 마음에 와 닿았는지  1학년 1명, 2학년 1명, 3학년 1명이 나를 찾아왔다.

 

  “선생님, 대한축구협회는 어떻게 들어가요? 뭘 준비해야 하나요? 협회에서는 무슨 일을 하죠?”

 

  의외였다. 이런 질문을 받을지 생각지도 못했다. 그래서 축구협회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것저것 설명해줬다. 미래 진로에 대해 이 정도만 관심을 갖게 해준 것 만도 대성공이었다. 아이들에게 "운동해서 피곤할 텐 데 강의 듣느라 수고했다"라고 했더니 "아니에요. 아주 유익한 내용이었습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남은 5회의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어떤 도움을 줘야 할까. 이게 내게 남겨진 가장 중요한 숙제다.

 

 

 

동영상 : 대동세무고 주장 오지훈 인터뷰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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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학수

 

 

출처 :  Obama White House Archives

 

 

 

 

  세계 어느 대통령이건 대통령의 중요한 역할로 국민과의 소통을 잘 하는 것을 꼽는다. 대통령이 국민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국민들의 의견과 비판을 직접 들을 수 있고, 이를 대통령의 정책에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국민과의 만남이 대통령 동정의 최우선 순위로 여겨지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대통령이 스포츠 스타나 우승팀을 초청, 성대한 환영식을 갖는 것도 국민들에게 자신의 대중적인 존재감을 알리는 홍보 방법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가 가장 성공한 미국에서 대통령이 집무실인 백악관에서 스포츠팀과 공식 만남의 행사를 갖는 것은 매우 오랜된 전통이다. 남북전쟁 직후인 1865년 8월30일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앤드류 존슨 대통령은 브루클린 애틀랜틱스와 워싱턴 내셔널 아마추어 야구팀을 백악관으로 초청했다. 존슨의 뒤를 이은 율리시스 그란트 대통령은 1869년 첫 프로야구팀인 신시내티 레드 스토킹스를 초대팀으로 불렀다. 첫 월드시리즈 우승팀이 백악관을 방문한 것은 1924년 워싱턴 시네이터로 우승 다음 해인 1925년 캘빈 쿨리지 대통령의 초청에 의해서였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1963년 1월 NBA 우승팀 보스턴 셀틱스를 사상 처음으로 백악관으로 초청했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1976년 4월 NCAA 남자농구 우승팀인 인디애나 대학팀을 처음으로 초청했으며, 지미 카터 대통령은 1980년 2월 슈퍼볼 우승팀으로는 처음으로 피츠버그 스틸러스와 월드시리즈 우승팀 피츠버그 파이어러츠를 동시에 초청하는 행사를 가졌다.


  로날드 레이건 대통령은 미국 프로스포츠 우승팀을 정규 백악관 이벤트로 만들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1987년 2월 뉴욕 자이언츠의 라인배커 해리 카슨으로부터 쿨러에 담은 팝콘을  건네받아 그 유명한 게토레이 (Gatorade) 행사를 연상케했다. 다음 해 슈퍼볼 우승팀 워싱턴의 와이드리시버 리키 샌더스에게 레이건 대통령은 패스하는 모션을 보여주기도했다. 1991년 6월 조지 부시 대통령은 NHL 우승팀 피츠버그 펭긴스를 처음으로 백악관으로 초청했다.


  뒤늦게 백악관의 초청을 받은 팀들도 있었다. 1985년 NFL 우승팀 시카고 베어스는 2011년 10월 오바마 대통령의 초청으로 백악관을 방문했다. 1986년 2월 우주왕복선 챌린저호의 폭발사고로 백악관 행사가 취소됐던 시카고 베어스는 '시카고 명예시민' 오바마 대통령의 특별 배려로 때늦은 행사를 갖게됐던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당시 "내가 대통령이 되는 것만큼 시카고 베어스팀에게 백악관을 방문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백악관 방문행사는 운동선수가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고 말했다.


  매년  수많은 프로 우승팀, 전국대회 우승팀과 주요 대학팀들이 백악관을 방문한다. 최근 퇴임한 오바마 대통령은 조지 부시 대통령이 만든 NCAA 남녀 우승팀 방문행사의 전통을 계속 이어 나갔다. 많은 팀들은 워싱턴을 방문할 때 지역봉사 활동을 같이 하기도 한다. NFL 볼티모어 레이븐스는 워싱턴 지역 고교팀에 미식축구 장비를 제공했고, NBA 샌안토니오 스퍼스는 부상군인들과의 만남행사를 가졌다. 미국여자축구팀은 청소년 건강 클리닉을 열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 시절 백악관 대변인을 지냈던 프랭크 베네네티는 "각종 대회에서 우승한 챔피언팀들이 백악관을 방문할 때, 대통령은 국가와 사회를 위해 기여한 그들의 공로를 축하한다"며 "대통령의 바쁜 일정 속에서 경기장 안팎에서 국민적 화합을 이끄는데 기여한 챔피언팀들을 축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여러 스포츠팀의 백악관 방문행사에 개인적인 이유나, 대통령과 정치적인 견해를 달리하는 선수들이 불참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지난 19일 올 슈퍼볼 우승팀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MVP 톰 브래디를 비롯 대니 아맨도라 등 간판 스타들이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이 초청한 백악관 방문행사에 빠져 논란을 빚었다. 쿼터백 톰 브래디는 가족문제를 이유로 들어 불참했으며, 아맨도라는 장례식 참가로 인해 참가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도 1991년 시카고 불스를 처음으로 NBA 우승으로 이끈 뒤 팀과 함께 백악관에 초대받았으나 골프를 즐기느랴 불참하기도 했다.


  대개 개인적인 사정으로 불참하지만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지지하지 않기 때문에 백악관 행사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었다. NHL 보스턴 브루인스 골리 팀 토마스는 2012년 1월 스탠리컵 우승 후 백악관 초대 행사를 거부하면서 "연방정부가 인권, 자유, 시민의 사유재산권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다. 이것은 정치나 당의 문제가 아니다. 내 의견으로는 양당 뿐아니라 국가적으로도 많은 책임이 있다"고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밝혔다. 2013년 슈퍼볼 우승팀 볼티모어 레이븐스의 하바드대학출신 센터 매트 버크는 오바마 대통령의 계획된 부모에 대한 복지정책의 지지를 거부하면서 백악관 행사에 불참했다.


  대한민국 대통령도 스포츠팀이나 국가대표 선수들의 청와대 방문행사를 갖는다. 올림픽, 아시안게임, 유니버시아드 등에서 국위를 선양한 대표선수들이나 특별한 활동을 한 프로스포츠 스타들을 청와대로 초청, 격려행사를 벌인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 초청 행사를 청와대에서 가졌다. 이 행사에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 파면의 원인제공을 했던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가 승마 단체전 금메달리스트로 참석했다는 것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 행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숨은 조력자 최순실의 관계가 드러난 계기가 됐던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과 스포츠인들의 만남은 개성과 자유를 존중하고 이견과 비판을 허용하는 민주적인 장치로서 국민들에게 군림하는 것이 아닌, 진솔하게 다가서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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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학수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 안에 송재 서재필(1864~1951) 선생 동상과 독립문이 함께 세워져 있다. 말쑥한 양복 정장차림에 코트를 걸치고 훤칠한 키에 탄탄한 몸매. 우뚝 선 채 입을 앙다물고 있는 그의 동상에서 시대의 선각자로서의 호연지기를 느끼게 한다. 서재필 동상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신문인 독립신문을 오른손에 쥐고 독립문을 향해 손을 들고 있는 모양새이다. 이같은 모습은 서재필 선생이 독립신문, 독립문과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독립신문 창간자로 독립협회를 주도하고 국민적 계몽의 씨앗을 뿌리고 애국지사와 국민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아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을 본 떠 독립문을 건립하도록 했다.

 

어릴 적 서울 시내에는 많은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광화문 이순신 동상, 남산공원 백범 선생 동상, 안국동 로터리 민영환 선생 동상 등 주요 로터리나 공원, 광장 등에 역사를 빛낸 위인들의 동상이 우뚝 서 있었다. 민족주의 사관과 국가주의를 통치이념으로 삼은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통학을 하면서 서재필 선생 동상과 독립문을 보며 자연스럽게 구한말 역사공부를 했던 것이 떠오른다. 버스를 타고 등하교 때 보게 되는 서재필 선생 등의 기념물은 구한말의 시대적 상황과 역사속의 인물을 어렴풋이 알게 했다.

 

서재필 선생과 독립문은 한국 근현대사의 상징적인 존재이다. 그는 구한말 가장 깊고 폭넓은 삶을 살았다. 그의 생애는 금맥같은 스토리로 웅대한 스케일의 TV 대하드라마 같은 일대기로 점철됐다. 갑신정변 쿠데타 주역, 무인, 연설가, 독립투사, 기업인, 의학자, 언론인·. 특히 그는 한국인 최초의 서양의사이며 첫 미국 시민권자였다. 1884년 개화와 부국강병을 도모하기 위해 김옥균 등과 함께 약관의 나이로 갑신정변을 주도했으나 실패한 뒤 역적으로 몰려 생면부지의 땅 미국으로 망명해 낯선 영어를 익히며 한국인 최초로 서양의사가 됐다.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한 필자 예를 들지 않더라도 이 정도의 역사적 사실은 웬만한 한국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을 듯하다. 하지만 최근 언론인 출신 고승철씨의 장편 소설 서재필을 읽으면서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알고 흥분을 금할 수 없었다. 그가 체육인이었다는 사실이다. 서재필 선생의 행적을 사료와 증언에 따라 재구성하고 확인되지 않은 대목은 문학적 상상력으로 채운 소설 서재필에서 그가 체육인이었다는 사실이 세세하게 잘 설명돼 있었다.

 

  고승철씨는 책머리말에서 서재필은 자전거를 처음 갖고 와 탔고 야구도 최초로 보급했다. 아마 골프도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치지 않았을까하며 그가 체육인임을 분명히 밝혔다. 서재필 선생이 체육인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아마도 이 책을 통해서 처음이 아닐까 싶다. 한국체육사의 최고 전문가 이학래 전 한양대 교수의 대표적인 책 한국현대체육사에도 서재필 선생의 체육활동 경력은 전혀 언급이 없었다.

 

소설에서 미국 해리 힐먼 고등학교 재학 시절 서재필 선생은 야구에 뛰어난 솜씨를 보였다. 제구력이 뛰어난 투수로 활약하며 학교 대표로 이름을 날렸다. 교장 부인의 친정아버지 권유로 골프를 치기도 했다. “힘껏 휘둘렀으나 허공을 치고 말았다. 얼굴이 뜨거워졌다. 곰곰 따져보니 검법원리와 같다. 기를 모으려면 인위적인 힘을 넣어서는 안된다. 단전으로 호흡하며 골프채를 살며시 들어 올렸다 일순간 쉬는듯하다가 채를 경쾌하게 휘둘렀다. 원심력을 이용했다. 휘익! 바람을 가르며 공이 솟아 250야드나 날아갔다.”(188) 야구경기장면도 소개했다. 갑신정변으로 미국으로 망명한 뒤 대학을 졸업하고 사면을 받아 귀국한 서재필 선생이 1896년 배재학당에서 아펜젤러 목사와 학생이었던 이승만 전 대통령과 야구를 하는 모습이었다. “서재필이 투수를, 아펜젤러가 포수를 맡아 공을 던지고 받았다. 학생들이 돌아가며 배트를 쥐고 타자 역할을 맡도록 했다. 이승만은 배트를 열심히 휘둘렀으나 번번이 헛 스윙했다. 소박하나마 이것이 이 땅에서 야구가 처음 소개되는 광경이었다.”(285)

 

1945년 해방 후 미군정의 고문으로 특별 귀국한 서재필 선생은 좌우익 대립이 극심한 소란한 정치집회는 참석을 거절하는 대신 체육단체에서 초청하면 기꺼이 응했다. 대한체육회가 창설될 때 고문으로 모시겠다는 제의가 들어와 흔쾌한 수락했다.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야구대회에서 시구를 맡기도 했다. 투수마운드에 서재필이 야구 모자를 쓰고 올라서자 2만여 관중이 우레 같은 박수를 쳤다. 여든이 넘은 노인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그의 몸은 유연했다. 힐먼 고등학교에 다닐 때 배운 투구 포즈를 잊지 않았다. 글러브에 공을 서너 번 툭툭 던지고 꺼낸 다음 오른팔을 쭉 뻗어 우아한 포즈로 공을 던졌다.” (429) 서재필 선생은 의사 경험을 토대로 마라톤 선수 최윤칠(1950년 보스턴마라톤 3)의 과학적인 근육 관리를 지도했으며, 김계현 전 야구대표팀 감독에게 미국 야구 이론책을 건네주기도 했다.

 

서재필 선생의 체육인 활동 경력은 체육인들에게 새로운 감동과 흥미를 느끼게 하며 역사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는 귀중한 사료이다. 뒤늦었지만 체육인으로서의 재발견을 기화로 서재필 선생에 대한 체육인으로서의 삶을 새롭게 조명할 것을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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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체육이 ‘PL(Physical Literacy)’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김학수소장

 

 

"내가 알아야 할 도덕과 의무는 골키퍼를 통해 배웠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소설가 알베르 카뮈가 한 유명한 말이다. 실존주의 작가였던 카뮈는 원래 축구선수였다 17세 때까지 프랑스령 알제리의 지역 축구팀에서 골키퍼로 뛰었다. 결핵을 심하게 앓지만 않았으면 그는 작가의 길보다는 축구선수의 길을 선택했을 것이라고 생전에 말했다. 축구를 통해서 그는 기회와 평등의 개념을 배웠고, 규칙이라는 틀 안에서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을 익힐 수 있었다. 카뮈는 축구에서 경험했던 여러 철학적, 사회적 생각과 개념들을 대표작 ‘이방인’, ‘페스트’, ‘시지프스 신화’ 등에 담아 현대 사회의 대표적인 ‘지성’이 됐다.

 

최순실씨의 체육계 이권개입과 그의 딸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승마 입시비리 논란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체육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잘못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부끄러움과 함께 실망감이 들었다. 카뮈와 같은 운동선수 출신의 지성의 출현은 기대하기는 거의 힘들고, 현 체육계를 더 나쁘게만 하지 않았으면 하는 자조적인 생각을 갖게 했다.

사실 그동안의 우리 체육의 행태를 지켜 봤을 때, 최순실씨 모녀가 행한 일탈된 모습은 예상가능했던 일이었다. 승리 지상주의와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하며 이기기 위해 탈법, 불법, 부정을 서슴치 않는 체육계의 혼탁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최순실씨 일가 사건은 체육계의 보이지 않는 부분이 드러난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체육계의 비리가 터질 때 마다 체육인들 대부분은 죄인이 된 기분이 들었다고 얘기한다. 체육의 기본과 원칙을 무시하고 승부조작, 편파판정, 폭력 등에 연루된 체육인들이 적발되면서 안겨준 실망감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체육인들은 한국체육에 대한 문제점을 치유하기 위한 자성의 목소리를 내면서 이제는 근본적인 시스템과 의식의 개혁이 필요한 때라는데 뜻을 같이한다. 박주한 대한체육회 학교체육위원장(서울여대 체육학과 교수)은 “그동안 우리 체육은 성과주의 위주로 성장해 엘리트스포츠에서 국위선양을 하며 민족적 자부심을 키우는데 기여했다”며 “하지만 선진국과 비교해볼 때 인간에 대한 관심을 소홀히 하고, 개인의 신체를 소중히 가꾸는 문화를 등한시 했다”고 말했다. 체육을 육체와 정신을 함양하는 인간의 근본적인 가치에 기여하는 것으로 보다는 결과 위주의 성과로만 활용했다는 설명이다.

 

최근 일부 체육학자들이 요즘 영국, 캐나다,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 선진국에서 행하고 있는 ‘PL(Physical Literacy)’에 관심을 갖는 것은 우리 체육의 기본 틀을 바꿀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PL 개념을 주도적으로 연구하는 최의창 서울대 교수는 최근 한국체육학회보에 기고한 글에서 “우리 체육은 0세부터 100세까지 이르기까지, 학교체육, 생활체육, 전문체육을 관통해서 한국체육의 핵심적 줄기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정신이 필요하다“며 “PL을 국민체육진흥의 새로운 지향처를 찾는 GPS로 활용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최 교수는 기고글에서 21세기로 넘어오면서 기존의 낡은 체육 패러다임을 대체할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점에서, 새롭게 이끌어갈 효과적인 개념으로 PL이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신체활동은 소설을 읽고 음악을 듣는 것처럼 교양인으로서 반드시 수행할 수 있어야 하는 것으로 점차 인식되어가고 있는게 세계 선진국들의 추세이다. 체육은 건강을 유지하고, 질병을 예방하고, 무엇보다도 즐거움과 행복감을 만끽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원천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PL’은 곧 사람들이 보통의 삶을 살기 위해서, 그리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글을 다룰 수 있는 리터러시나 셈을 할 수 있는 ‘뉴머러시(numeracy)’처럼, 신체활동과 연관된 리터러시를 말한다. 피지컬 리터러시 없이는, 건강하고 행복한 생활의 기대나 희망이 많이 축소될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현대인들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PL 개념의 도입을 강력히 주장한 최 교수는 “PL은 다양한 차원에서 개념화되고 적용될 수 있는 아이디어다. 이념적 차원에서 기존 패러다임을 대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일 수도 있고, 평생체육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체계적인 틀일 수도 있다. 또는 개인의 기본운동능력과 건강을 향상하는 구체적 방법들일 수도 있으며 이념적 수준, 정책적 수준, 방법적 수준 각각에서 다양하게 PL을 개념화하고 실용화시킬 수 있다”며 우리 상황에 맞게 여러 분석과 정책적인 결정을 통해 적용해 가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PL 개념은 그동안 많은 적폐가 누적돼며 부정적인 모습을 보였던 우리 체육계에게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수 있는 좋은 기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체육을 부의 성공과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수단으로 삼았던 우리 체육이 앞으로 PL 개념의 적극적인 도입과 활용을 통해 개인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이 정착되는 문화를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수십년 후 우리 체육이 카뮈같이 인류 정신의 위대한 유산을 남길 위인을 만들어 내는 마당이 될 줄 누가 알겠는가. 이제는 최순실씨 등 체육을 농단한 이름들을 잊어버리며 구시대의 잔재를 딛고 새로운 자세로 매진해 나가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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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여파, 한국스포츠 어떻게 변하나

김학수 소장

 

 

 

 ▲ '부정청탁금지법, 대한민국 스포츠를 관통하다!'라는 주제로 열린 2016 제2차 스포츠정책 포럼에서 주요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다사다난했던 2016년이 노루꼬리만큼 짧게 남았다. 올해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이슈로는 최순실 국정농단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과 함께 이른바 '김영란법(부정청탁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을 꼽을 수 있다. '최순실 박근혜 게이트'에서 과거 음험한 부정의 역사를 보았다면 '김영란법'에선 미래를 밝힐 희망의 역사를 엿보게 해준다.

김영란법은 지난 9월28일 발효됐다. 이 법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 만연한 지나친 접대문화, 부정청탁 등으로 얼룩진 공직사회의 부정부패를 없애고, 투명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사회정화를 목적으로 제정됐다. 언론인과 교직원을 포함한 공직자가 직무 관련성이 있는 이들에게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 10만원까지만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이를 위반할 경우 법적인 처벌을 하도록 했다.

 

법률이 시행된 지 두 달이 지난 현재, 우리 사회 전체적으로 크고 작은 변화가 일고 있다. 직장인들의 회식문화가 간소화됐고, 공직사회에서 불필요한 청탁과 민원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체육계도 결코 예외는 아니다. 선후배 관계의 정과 의리가 두터운 체육계이지만 법 시행이후는 자칫하면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는 행동들을 삼가는 모습이다.

체육학계와 언론계, 경기인들의 모임인 스포츠포럼 21(상임대표 임태성 한양대 에리카챔퍼스 예체능대학장)은 9일 오후 손기정기념관 2층 세미나룸에서 이학래 한양대 명예교수, 이태영 한국체육언론인회 자문위원장, 박영옥 한국스포츠개발원장, 조현재 전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 등 많은 내외귀빈이 참석한 가운데 '부정청탁금지법, 대한민국 스포츠를 관통하다!'는 주제로 2016 제2차 스포츠정책 포럼을 개최했다.

 

김정효 서울대 강의교수는 주제발표에서 김영란법은 우리 사회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공직문화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김영란법은 공정성이라는 스포츠의 본연의 가치를 회복할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며 " 이런 가치를 제대로 확립하지 못하면 스포츠는 이류의 문화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헀다. 그는 김영란법 시행으로 학생선수의 육성 시스템이 학교가 아닌 외부의 스포츠클럽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으나 이를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정착시켜 나간다면 새로운 스포츠문화가 자리잡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종합토론에서 김택천 방산고 수석교사는 '학생선수 육성및 지도자 수당'과 관련해, 학원스포츠의 구조적인 취약점이 김영란법 시행이후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선될 수 있도록 체육인 모두가 적극적으로 학생선수 육성과 지도자 수당등 운동부 운영 전반에 대해 합리적이고 내실화를 꾀할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을 주문했다.

송명근 대한체육회 학교스포츠부 부장은 '학교스포츠클럽 및 생활체육분야의 명과 암, 그리고 대안'이라는 제목의 토론에서 "김영란법이 체육계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그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불공정한 관행과 청탁을 타파하고, 과거의 성찰을 통해 발전적인 체육계의 변화를 도모하자는 것"이라며 "이제 과거의 부패와 비리의 사슬을 끊고 공정한 사회, 건강한 대한민국을 건설하는데 스포츠가 앞장설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 토론자들이 다양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세 번째 토론자 임승엽 고려대 국제스포츠학부 교수는 '학생선수 학습권에 대한 명과 암, 그리고 대안'의 토론에서 2013년 미국 테네시 주립대 교수로 재직하던 때의 경험을 소개하면서 "학생선수 학습권의 관리 상황은 미국과 한국이 너무나 다르다. 미국은 제도와 규정에 따라 학생선수들의 학습권이 보장된 반면, 한국은 학칙과 규정이 학생선수의 학습권 박탈의 제도적 근거로 악용된다"며 "김영란법 시행이 학생선수들의 학습권에 기여를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대학교육으로부터 이탈하거나 기피현상 등도 나타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영재 중앙일보 스포츠부 선임기자(이학박사)는 스포츠와 미디어와 관련한 영향에 대해 언급, 일선 취재 현장에서 식사제공 등 취재편의 제공이 거의 사라졌으며 앞으로 미디어간에도 탄탄한 네트워크를 만들고 스토리를 생산하기 위한 경쟁이 더욱 치열하게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원재 세계태권도연맹 수석컨설턴트는 스포츠단체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해 "사회적 거래비용을 줄이려는 김영란법이라는 대증요법의 등장으로 '굿 거버넌스'라는 스포츠의 가치를 보호하고 고양하는 원인요법이 병행될 때, 스포츠 조직의 자치성이 더욱 힘을 얻을 수 있다"며 "이렇게 된다면 스포츠 조직은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더욱 수월해 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용식 가톨릭관동대 스포츠레저학과교수는 스포츠 정책과 관련해 체육계 변화에 맞추어 정책수단으로서 전문스포츠클럽제도 도입, 체육특기자제도 개선 등을 제안했으며 김은경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김영란법이 스포츠 분야에서 순기능으로 작용한다면 스포츠 정책의 독점성을 배격하고 정책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개방성과 투명성을 유지하며 전반적인 부조리를 개선해 스포츠계의 반부패지수가 크게 개선될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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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기 태권도, 각종 세계대회에서 항상 효자종목 노릇을 톡톡히 해온 종목이 바로 태권도이다.

 

그러나 최근 태권도가 전 세계에 보급됨에 따라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영광을 기대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남자부에선 이란, 터키 등 과거 전투민족이라 불리운 오스만 투르크족의 계보를 이은 국가들의 강세가 무섭고,

 

여자부에선 중국을 비롯한 여러 아시아국가와 뛰어난 신체조건을 앞세운 유럽선수들의 추격이 무서울 지경이다.

 

과거와 다르게 이제 우리 선수가 국제무대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이젠 우리 선수가 국제무대에서 1회전 탈락이라는 결과표를 받아드는 것도 큰 이변이 아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체념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니라고 본다.

 

우리나라는 과거만큼 전 체급에서 압도적인 기량으로 세계를 호령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꾸준히 슈퍼스타의 계보를 이어오고 있는 선수들이 대거 있다.

 

현재 한국체대 교수를 역임하고 계신 정국현 교수와 현재 엔터테이너로 활동인 이동준씨가 80년대 전세계를 호령했다.

 

특히 정국현 교수는 미국의 스티븐 로페즈가 5회 연속 세계선수권 제패라는 금자탑을 쌓아올리기 전까지 최초로 세계선수권을 네 번이나 제패한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슈퍼스타였다.

 

90년대하면 단연 중량급의 김제경 전 선수를 꼽을 수 있다.

 

당시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제패하고, 세계선수권까지 제패한 김제경은 많은 유망주들의 꿈이었다.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2000년 대 들어서는 정말 많은 슈퍼스타들이 쏟아져 나왔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의 영웅이자 제왕 김제경의 실질적 후계자라 불리운 김경훈,

 

여자부에선 마찬가지로 시드니에서 여왕의 자리에 오른 정재은, 이선희를 시점으로 수많은 스타들이 배출되었다.

 

2004년엔 화끈한 뒤돌려차기로 전 세계의 찬사를 받은 문대성 전 의원이 있었고, 여자부에는 장지원이 있었다.

 

그리고 이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 불리어도 부족함이 없을 선수가 등장한다.

 

올림픽 3회 출전에 올림픽 2연패라는 대업을 달성한 여제 황경선이다.

 

아마 2000년 대를 대표하는 선수를 꼽으라면 단연 황경선을 꼽을 것이다.

 

2000년 대 후반들에서는 전세계적으로 태권도가 평준화 되기 시작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과 2009년 세계선수권 이후로 타 국가에서 세계적인 선수가 우리 대한민국 선수들의 아성을 점점 위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접어든 2010년 대, 이제 더 이상 태권도는 우리 대한민국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그러나 우리 태권도계에는 항상 영웅이 존재했다.

 

가장 대표적인 계보가 남자 중량급 계보라고 할 수 있는데, 김제경-김경훈-문대성-차동민 순으로 이어지고 있다.

 

차동민은 리우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선수생활 은퇴를 선언했다.

 

이제 우리는 차동민의 뒤를 이을 선수를 찾아야 한다.

 

과거 문대성의 뒤를 이을 선두주자로 차동민, 남윤배, 허준녕 등 훌륭한 유망주들이 경쟁했던 것처럼 이제 차동민의 후배들이 경쟁할 차례다.

 

경량급 역시 다르지 않다.

 

아직 이대훈, 김태훈이 건재하지만 하루빨리 우수한 후배선수들이 활약해 주어야 할 것이다.

 

 

이대훈이 처음 국가대표가 된 것이 2010년이다.

 

벌써 7년 째 세계정상을 지켜오고 있다.

 

이젠 후배들이 이대훈을 위협해야 할 것이다.

 

이대훈의 계보를 이을 선수로는 단연 삼성에스원의 김석배가 손에 꼽힌다.

 

실력으로는 이미 이대훈과 호각을 다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앞으로 더욱 성장해 이대훈의 계보를 이어 더욱 큰 선수로 활약해 주길 기대해본다.

 

 

2000년 대 들어서는 황경선이 대한민국 태권도가 여전히 세계최강임을 세계에 널리 알렸고,

 

2010년 대 들어서는 이대훈, 김태훈이 그 역할을 대신 하고 있다.

 

과연 이 뒤를 이을 선수는 누가 될 것인가?

 

4년 뒤에 열리게 될 2020도쿄올림픽에서 다시 한 번 세계최강 태권도 강국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각인시켜줄 선수는 누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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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기 한국농구연맹 총재, 농구할배의 무한도전 이야기

#김학수 연구소장








김영기 한국농구연맹 총재, 농구할배의 무한도전 이야기




1956년 11월 호주 멜버른 올림픽이 열렸다. 김영기 한국농구연맹총재(KBL)는 당시 고려대에 재학중이던 19세의 농구선수로 대표팀의 일원으로 멜버른 올림픽 본선경기에 나섰을 때를 두고 두고 잊을 수가 없다. 첫 올림픽 경기라는 설레임과 부담감이 들었으나 1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잘 갖춰진 올림픽 주경기장을 보고 저절로 감탄사가 새어나왔다. 제대로 된 울타리와 관중석도 없이 바람만 불면 흙먼지가 자욱이 날리는 서울의 초라한 경기장과 비교해보면서 가난한 조국이 원망스러웠다. 한창 젊음이 피어나기 시작할 때, 멜버른의 추억은 잊지못할 경험으로 남았다. 멜버른은 농구 선수 김영기를 꽃피우게 한 첫 무대였으며, 본격적인 해외의 꿈을 갖게한 도시였다.


한국농구의 ‘살아있는 역사’ 김영기 총재가 최근 깜짝놀랄 일을 냈다. 80세의 김영기 총재는 백남철(75) 전 KBL 임원, 정영환(74) 전 신보창투 사장, 이병천(71) 전 신보창투 부사장, 김선욱(71) 전 예당엔터테인먼트 부회장, 예월수(71) 전 신보에이드 사장 등 과거 신용보증기금에서 함께 지낸 동료들과 함께 ‘할배들의 무한질주’라는 해외여행기 책을 출간했다. 김영기 총재등 6명은 지난 2004년 5월 캐네디언 로키, 2005년 6월 미국 서부 그랜드 서클, 2006년 9월 호주 오션 코스트, 2010년 4월 하와이, 2012년 9월 투르 드 알프스, 지난 5월 유레일 배낭 여행을 즐겼다. 직접 운전하며 움직인 거리는 무려 2만4400㎞에 이른다. 70~80대의 농구인 등이 농구관련이 아닌 순수한 여행기를 출간했다는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벌써 6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갔네요. 멜버른에 가면 꼭 멜버른 올림픽 주경기장을 들릅니다. 그때마다 주경기장을 보면서 옛날을 생각해보게 됩니다”고 김영기 총재는 오래전의 감회를 말했다.


김영기 총재는 외국에 나가기 어려웠던 대학생 시절부터 농구선수로써 세계 곳곳을 다녔다. 올림픽에는 국가대표로 두 번 참가했다. 1964년 도쿄올림픽서는 득점 2위를 기록하는 영광을 누렸다. 지도자로서는 1970년 방콕아시안게임서 첫 금메달 획득을 이끌었으며,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과 1988년 서울올림픽 유치시키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파란만장한 스포츠 인생을 살았던 김영기 총재는 화려했던 과거의 영화만 쫓는 늙은이로 머무는 것이 싫었다. 80순의 나이에 KBL 총재를 다시 맡은 것도 새로운 열정을 보이기 위함이었다. 농구 후배와 직장 후배들과 함께 더 큰 세상을 찾아 직접 운전대를 잡고 해외여행에 나서기로 한 것도 50년전 젊은 시절의 꿈을 다시 꾸고 싶어서였다.


김영기 총재 등은 10년도 넘은 오래 전, 마포의 어느 설렁탕 집에서 농구와 같은 신용보증기금에서 함께 한 멤버들이 만나 ‘실버’로서 한번 일을 크게 벌이자는데 입을 모았다. 6명이 모여 세상 곳곳의 절경을 직접 찾아다니기로 하고 원정단 이름을 ‘할배원정단’으로 명명했다. ‘할배들의 열정, 끝모르는 도전’을 모토로 여행사에서 운영하는 패키지 해외여행보다는 직접 코스와 일정을 짜 떠나는 ‘셀프 로드트립’을 하기로 한 것이다.


팀으로 하는 자유여행이었던만큼 팀원들의 임무와 세부적인 규칙이 필요했다. 최연장자인 김영기 총재가 단장을 맡아 전체적인 운영을 이끌기로 했고, 백남철씨는 규율과 음식담당, 정영환씨는 기획과 숙박담당, 이병천씨는 수송과 교통, 김선욱씨는 조사및 안전담당, 예월수씨는 사진및 총무 담당을 각각 책임졌다. 여행의 기본 방향으로 세 가지를 정했는데, 첫째 저비쾌유(低費快遊), ‘비용은 싸게 그러나 재미있게’, 둘째 이타준칙(利他準則), ‘상대방을 배려하고 규칙을 지키는’, 셋째 유락산호(裕樂山湖), ‘여유롭게 자연을 즐기자’가 그것이었다. 여행중에 지켜야 할 네 가지 행동 요령도 정했다. 첫째 시간 엄수. 아침 6시 기장, 저녁 11시 취침하기로 하고 여행은 해지기전까지 마치고 숙소에 들어가기로 했다. 둘째 식사. 아침과 점심식사는 각장 알아서 하기로 했다. 셋째 운전. 자동차 운전은 1시간30분마다 교대로 하며 고대할 다음 운전자는 조수석에 앉아서 운전자의 졸음을 예방하고 다음 교대를 대기한다. 넷째 의사결정. 의사결정은 다수결과 복불복 추첨을 원칙으로 했다. 행동 요령을 제대로 지키지 않을 경우 단장을 비롯한 누구든 벌금을 내고 잘 한 이는 상금도 주기로 했다.


호주에서 주유소 300m 앞에서 기름이 떨어져 ‘할배’들이 직접 차를 밀고 갔던 일, 케이블카 안에서 우유팩이 터져 테러범으로 몰렸던 일, 맡겨놓았던 배낭이 송두리째 사라졌던 일, 여권을 잃어버렸을 일 등 가는 곳마다 우여곡절을 겪고 사고를 치기도 했지만 ‘할배’들은 12여년동안 계획했던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김영기 총재는 “헤밍웨이의 만년의 작품 ‘노인과 바다’처럼 우리 늙은이들도 과거에만 갇힌 채 살 수는 없다”며 “6번의 도전은 매번 꿈을 찾아 나서는 기회였고 모두 이루어냈다. 늙었다고 낙담하고, 힘들다고 포기하면 그건 죄악인 것이고 그건 삶의 방식이 아니다”고 말했다. 김영기 총재는 앞으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여행의 꿈을 꾸고 배낭을 챙겨 떠날 생각이다. (글/ 김학수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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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트로의 쿠바 스포츠, 어떻게 흥하고 망했는가

#김학수소장






지난 26일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정치가이면서 혁명가였다. 1959년 쿠바 혁명의 영웅 체 게바라와 같이 게릴라전을 펼치며 친미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리고 공산독재정부를 세운 카스트로는 49년간 공산주의이념 아래 쿠바를 통치했다가 2008년 2월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에게 국가평의회 의장직을 넘겨줬다.


카스트로에 대한 평가는 쿠바 혁명 영웅과 독재자로 서로 엇갈린다. 미국과의 오랜 대립으로 쿠바인들이 경제난으로 어려움을 겪게했다는 비판을 받지만, 무상의료와 무상교육 등의 평등정책을 실시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에게 지지를 얻기도 한다. 스포츠에서도 그의 공과가 나눠진다. 스포츠로 쿠바의 힘을 과시하기도 했다가, 체제의 취약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1970년부터 30여년간 쿠바는 소련, 동독과 함께 세계스포츠의 우등생이었다. 미국을 이기기 위해 안간 힘을 썼던 쿠바는 스포츠를 ‘미국 타도’의 전위부대로 활용, 큰 성과를 거두었다.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 등에서 많은 메달을 따내며 소련, 동독 등과 함께 사회주의국가의 위세를 떨쳤다. 1천1백만 쿠바 국민들은 미국의 경제봉쇄로 생활적으로 궁핍한 삶을 살았지만 쿠바가 배출한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 들을 통해 국가의 자부심을 느꼈다.







세계 남자육상 높이뛰기의 최고수 하비에르 소토마요르, 세계 복싱의 철권 테오필로 스테벤손, 무적의 야구팀과 여자배구팀이 쿠바 스포츠를 대표했다. 소토마요르가 1993년 넘은 2m45는 22년째 인류가 중력과의 싸움에서 기록한 최고치로 아직도 남아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높이뛰기선수인 소토마요르는 1999년 코카인 복용으로 팬암대회 금메달을 박탈당했고, 2001년 도핑테스트에서 스테로이드 양성반응이 나오자 은퇴를 했다. 스테벤손은 각각 올림픽 3관왕에 오르며 펠릭스 사본과 함께 국가영웅으로 대접받았다. 쿠바복싱은 1972년 뮌헨올림픽부터 복싱 금메달 32개를 휩쓴 세계적 복싱 강국이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무려 7체급을 석권했다. 쿠바야구팀은 1961년부터 2005년까지 세계선수권대회 18차례 우승, 1992년부터 2004년까지 올림픽 금메달 등을 획득하며 세계 최강의 면모를 보였으며 여자배구도 1990년대 부동의 세계챔피언이었다.


쿠바가 스포츠에서 위력을 떨치게 된 것은 국민이 건강하고 행복하기 위해선 스포츠가 중요하다는 국가지도자 카스트로의 통치철학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카스트로 체제에서 쿠바국민들은 95퍼센트가 각종 스포츠활동에 참여했다. 5세부터 체육교실 수업을 받으며 할머니들도 태극권으로 건강을 관리했다. 스포츠에 대한 그의 열정은 젊은 시절 운동선수를 한데서 비롯됐다는 것이 그의 여러 회고록에서 소개됐다. 쿠바혁명 성공한 수개월후인 1959년 7월24일, 카스트로는 아바나의 한 야구장에서 ‘수염부대’로 알려진 ‘로스 바버도스(Los Barbudos)’로 불린 혁명군팀 투수로 출전, 군경찰팀을 맞아 한 이닝 또는 두 이닝을 던지며 두 명의 타자를 삼진아웃시켰다고 알려졌다.


‘아바나의 자부심-쿠바야구의 역사’를 쓴 쿠바 출신의 미국 예일대 문학부 교수 로베르토 곤잘레스는 “카스트로는 여러 볼을 던졌다. 타자들은 무리하게 휘둘렀으며 지도자에게 스스로 삼진아웃을 당하는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카스트로는 1954년부터 1960년까지 미국 프로야구팀 신시내티 레즈의 트리플 A팀인 하바나의 슈가 킹 팀 경기를 자주 보는 야구팬이기도 했다고 곤잘레스는 덧붙였다.







하지만 카스트로가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출신이었다는 주장은 일부 역사학자들이 “사실이 아니다”며 부인한다. 여러 조사를 통해 카스트로는 어릴 적 좋아했던 스포츠는 농구였다는 주장도 나온다. 6피트 2인치(185cm)는 6피트 3인치(187cm)로 키가 큰 그는 농구를 통해 예측, 스피드, 신체재주 등을 익혔으며, 이를 혁명에 필요한 기술들과 비슷했다고 말한 것으로 그의 전기작가 태드 스줄이 말했다.


카스트로는 야구, 복싱 등에서의 성공으로 미국에 도전하고 국민들에게 국가적 자부심을 심어주었다. 하지만 국제적인 고립과 어려운 경제난은 야구 우수선수들의 미국망명, 경기장의 황폐화과 운동장비부족을 초래하며 체제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쿠바와 미국은 국교 정상화를 했지만 아직도 경제적 봉쇄는 여전하다. 국가재정난의 피해는 여러 체육시설에서 나타난다. 수영장에 물이 없고, 전기부족으로 야구가 야간경기를 제대로 할 수 없으며, 일부 야구장은 볼부족으로 파울볼이 나면 경기를 중단해야 할 정도이다. 체육관 지붕은 비가 오면 물이 새 레슬링 매트가 젖어서 훈련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지난 3월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1959년 쿠바 혁명이후 처음으로 아바나를 방문, 야구 시범경기를 참관하는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 됐다. 하지만 카스트로는 당시 미국과의 해빙무드에 대해 불만족한 표시로 “미국이 우리에게 어떠한 것도 주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야구선수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참가하고, 오랜 병상에서 아디다스 운동복을 입으며 스포츠를 통해 소통하는 이미지를 보였던 쿠바 국가통치자 카스트로는 저 세상으로 가면서 그의 평가는 역사적인 일로 남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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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민을 하나로 만든 시카고 컵스의 108년만의 우승

#김학수 교수

 

 

 

 

 

대통령도, 국민도 모두 하나가 됐다. 축하의 목소리를 내는 데는 여당과 야당이 따로 없었다. 지독한 앙숙관계를 이루었던 라이벌도 축하 대열에 합류했다. 108년만에 감격적인 월드시리즈 패권을 차지한 미 프로야구 시카고 컵스의 우승이야기다.

지난 4일(이하 미국시간) 미국 시카고 거리는 시카고 컵스 우승퍼레이드를 보기 위해 무려 500만명의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아마도 미국 역사상 최대 인파가 아니었나 싶다. 제2차세계대전 종전일인 1945년 8월14일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열린 종전기념행사(수병과 간호사의 키스 사진으로 유명하다), 1963년 11월25일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 장례식 등의 현대 미국 역사를 대표하는 행사도 이만큼의 인파를 기록하지 않았다.

 

 

 

 

 

시카고 abc방송은 “이 인파는 2008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시카고 그랜트파크에서 당선 수락 연설 할때 인파(25만명)의 20배에 달한다”고 알렸다. 또 “북미 아이스하키리그(NHL) 블랙혹스의 2013년 스탠리컵 우승 기념 퍼레이드에 약 200만명, 또 다른 시카고 연고 메이저리그구단인 화이트삭스의 2005년 월드시리즈 우승 퍼레이드때의 175명을 훨씬 뛰어 넘었다”고 했다.

미국 중서부에서 가장 큰 도시인 시카고는 인구가 270만명으로 미국 도시로는 세 번째로 많다. 시카고 인근 일리노이주 광역까지 합치면 95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우승인파 500만명은 시카고뿐 아니라 인근 일리노이주, 기타 다른 도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합쳐진 숫자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개인주의, 자유주의가 팽배한 미국 사회에서 한꺼번에 수백만의 인파가 몰린다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국토가 넓고, 주택들도 도시 외곽으로 퍼져있는 방사형 구조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많은 군중들이 한꺼번에 운집하기는 쉽지않다.

 

역사의 한 획을 긋는 기록적인 인파는 많은 미국인들이 시카고 컵스의 우승을 얼마나 목말라 기다려왔는 지를 입증했다. 시카고 컵스는 그동안 ‘염소의 저주’, ‘검은 고양이의 저주’ 등 온갖 괴담이 시달리며 1세기 이상 월드시리즈 우승기회를 잡지 못했다. 1907년과 1908년 연속 우승한 이후 단 한번도 우승을 하지 못했다. 1945년까지 35년동안 7번이나 지구 우승을 차지하고 월드시리즈에 진출했으나 7번 모두 고배를 마셨다. ‘염소의 저주’는 시카고 컵스를 악령처럼 따라 다녔다. 1945년 월드리스지 경기에 빌리라는 사람이 염소를 데리고 시카고 컵스 경기장을 들어 가려다 실패하자 “다시는 이곳에서 월드시리즈가 열리지 않을 것”이라며 저주를 퍼부으면서 징크스에 시달렸다.

 

 

 

 

컵스는 이후 69년 동안 월드시리즈에 한 번도 진출하지 못했다. 1969년에는 2위와의 승차를 17.5경기까지 벌려놓으며 1위를 달렸지만 9월10일 뉴욕 메츠 원정경기에서 경기 도중 검은 고양이가 경기장에 나타나는 일이 벌어졌고, 거짓말처럼 이후 급격한 슬럼프와 함께 결국 2위로 주저앉아 시즌을 끝내고 말았다. ‘염소의 저주’에다 ‘검은 고양이의 저주’까지 징크스로 작용하며 우승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컵스팬이나 미국 야구팬들은 그동안 컵스가 우승을 차지해 새로운 야구 역사가 펼쳐지기를 간절히 염원했다. 올해 마침내 바라고 바랬던 꿈이 실현됐다. 컵스는 지난 3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홈구장 프로그레시브필드에서 열린 월드시리즈 7차전에서 10회 연장 끝에 8대7로 승리, 시카고 전역뿐 아니라 미국 전체를 광란의 도가니에 빠뜨렸다. 컵스가 감격적인 우승을 차지하던 날, 예년 같으면 쌀쌀했을 시카고 날씨조차도 훈훈해져 하늘도 컵스의 우승을 축하해주는 듯했다.

 

컵스의 우승은 야구를 통한 통합을 이루며 미국의 진정한 힘을 느끼게 해주었다. 시카고 라이벌팀인 시카고 화이트삭스 광팬인 오바마 대통령은 “It happened: @Cubs win World Series. That's change even this South Sider can believe in. Want to come to the White House before I leave?(그것이 일어났습니다 : 컵스가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했습니다.사우스 사이더(화이트 삭스 홈구역)가 믿을 수 있는 변화입니다. 내가 그만두기 전에 백악관에 올래요?)라고 트위터를 보내 컵스의 우승을 축하했다.

지난 2005년 월드시리즈 우승 경험이 있는 화이트 삭스팀도 “Congtats, @Cubs, on bringing another #WorldSeries Championship to the city of Chicago! (또 다른 월드시리즈 선수권을 시카고로 가져온 것을 축하해요!”라는 메시지를 트위터에 띄웠다.

 

컵스의 우승은 시카고 시민들의 사기를 높여주었을 뿐 아니라 미국인들에게 국가의 힘을 확인하는 기회가 됐다. 컵스는 올 시즌 젊음과 스포츠맨십, 깨끗한 플레이를 펼치며 야구의 재미를 한껏 높여주었다. 미국 야구팬들은 컵스 경기를 보고 미국인으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대통령을 비롯한 열렬한 화이트삭스팬들조차도 컵스의 승리를 축하하며 컵스팬들과 공감과 연대의 시간을 가졌다.

컵스를 통해 미국 야구는 ‘신의 한수’를 보여주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온 나라가 어수선한 한국 사회는 컵스의 우승을 통해 미국의 진정한 힘이 무엇이며, 민주주의가 어떤 것인가를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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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서 드론 활용하기

#김학수교수

 

 

 

 

지난 13일, 서울 상명대 상명아트센터 대신홀에서 ‘창조국방과 드론의 군사적 운용 모색’이라는 학술 세미나가 열렸다. 세미나는 35년전 군에서 같이 근무했던 예비역 장군출신인 박종선 상명대 군사학과 석좌교수(상명대 안보통일연구소장)의 초청을 받아 갔다. 이날 김요한 전 육군참모총장, 이종명 새누리당 국회의원 , 김종희 상명대 부총장 등 군, 정계, 학교관계자와 김종성 국방과학연구소 박사 등 전문가들이 참석, 새로운 분야로 떠오른 드론에 대한 관심을 반영했다.

 

이날 발표자들은 미국 방위산업 컨설팅 업체인 틸그룹의 전망 자료를 인용, 전 세계 드론 시장의 규모는 2010년 약 52억달러에서 2024년에는 약 115억달러까지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직까지 군사분야 이외의 공공분야에서 드론의 운용이 활성화되지 않았지만 미국의 경우, 공공기관에서 업무수행을 위해 향후 5년간 빠른 속도로 드론을 도입해 사용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드론의 공공 활용분야로 국경 정찰, 환경감시, 재난구조, 및 제공 제공, 경찰 공무수행 등을 꼽았다.

 

드론은 국내 스포츠에서도 다양하게 운영하며 빠른 성장 속도를 보이고 있다. 요즘 축구, 야구, 골프 등 야외 경기종목에서는 캠카메라를 탑재한 드론이 다양한 공간과 각도에서 촬영을 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본다. 축구 경기장에서 선수들의 전술적인 움직임과 개별 동작들을 잡기 위해 경기장 상공에서 그라운드 방향을 향해 여러 대의 드론들이 빙글빙글 돈다. 골프장에서는 예전 고정 카메라를 타워크레인에 장착, 선수들의 플레이를 제한적으로 찍었으나 이제는 드론을 활용하게 됨으로써 선수들을 다양한 시각에서 볼 수 있게 됐다. 또 넓은 골프장의 홀별 전경을 드론으로 사전 촬영, 동영상으로 제공할 수 있게 됐다.

 

드론의 등장으로 종전 ‘볼 수 없었던 장면’을 볼 수 있게 됐다. 마치 스타크래프트 게임처럼 선수들이 개미처럼 공방전을 벌이는 모습을 한 눈에 즐길 수 있으며, 골 득점 등 결정적인 장면 들을 입체적으로 흥미있게 시청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최근에는 서울 광나루에서 드론 레이싱 대회까지 열려 드론을 경기종목으로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관심이 확산되고 있기도 하다. 드론 레이싱은 미국 ESPN TV가 최신 ‘미디어 스포츠’ 종목으로 채택, 정규 리그 중계권 계약을 체결,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드론 레이서들은 3D 입체 고글형 선글라스를 장착하고 레이싱을 펼친다.

 

 

 

 

 

스포츠에서 드론의 활용은 지난 1960년대 TV에서 ‘슬로우 모션’ 기술의 등장으로 스포츠 중계의 새 장을 열었던 것 만큼이나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슬로우 모션’ 기술은 시청자들에게 선수들의 플레이 동작을 정밀하게 보여줌으로써 스포츠의 묘미를 높여주는데 크게 기여했었다. 전문가들은 드론이 공간의 제약이라는 한계를 해소시킬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어 ‘슬로우 모션’ 기술 도입 때보다 더욱 생생하고 역동적인 장면들을 잡아 스포츠의 보는 재미를 더 높여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예전 신문에서 스포츠 기자로 활동했던 때, 신년 특집을 위해 강화도 마니산에 올라 사진기자와 함께 일출 사진을 찍으며 고생했던 적이 있었다. 아마도 요즘같으면 산에 올라가지 않고 드론을 띄워 여러 방향에서 다양한 사진을 힘들이지 않고 손쉽게 찍었으리라. 드론의 등장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기자들의 취재에도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음을 실감한다.

드론은 장비 기술에 따라 천차만별의 가격대를 이루고 있다. 수만원대부터 수천만원대의 드론이 스포츠 현장에서 사용된다. 보통 TV 방송 중계용으로는 고성능 카메라를 장착한 드론을 운용하고, 보통 일반적인 사진 촬영에서도 쓰이기도 한다.

앞으로 드론은 인공지능과 결합하는 등 기술적 발전으로 영상 촬영, 콘텐츠 제작, 드론 자체를 이용한 스포츠까지 등장할 전망이다. 드론의 활용성을 높이기 위해 무제한적인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며 더욱 고도화된 영상과 컨텐츠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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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가 복지, 스칸디나비아 3국의 교훈

#김학수교수

 

 

 

 

 

▲ 스포츠 포럼 21세기 주최, ‘북유럽 국가들의 스포츠문화를 조명하다’ 국제정책 포럼에서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학자들과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지난 197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스웨덴의 진보경제학자 군나르 뮈르달은 스웨덴을 포함한 노르웨이, 덴마크 등 스칸디나비아 3국이 국민 모두가 잘 사는 복지국가가 된 이유를 논증적으로 설명했다. 사회민주주의자임을 자처했던 그는 세계 각국의 경제문제 분석을 통해 “정부가 나서서 빈곤의 확대 재생산 악순환 고리를 끊어줘야 복지국가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해법을 실천한 스칸디나비아 3국은 공공서비스 제공 확대, 고용 극대화, 교육여건 개선, 보편적 복지 확대 등을 통해 세계가 부러워하는 모범 복지국가로 자리잡았다.

북유럽 국가들은 스포츠에서도 복지국가를 이룩했다. 스포츠를 국민 복지와 사회통합의 중요한 요소로 인식하고 스포츠를 통한 국민들의 삶의 질 향상 뿐 아니라 사회참여율까지 증가시켜 사회통합을 실천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스포츠 분야에서 미국과 영국, 독일 등 스포츠 선진국과는 다른 독특한 시스템과 문화, 정책 등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엘리트 위주의 성장정책에 주력했던 한국스포츠의 구조와는 아주 다른 방식이어서 국내 스포츠 학자들에게도 관심의 대상이 됐었다.

지난 10월14일 서울 중구 손기정기념관에서 열린 스포츠포럼 21세기(상임대표 임태성 한양대 교수) 주최한 북유럽의 스포츠 문화에 관한 국제정책포럼은 한국스포츠 발전에 새로운 지향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었다.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는 스포츠 강국은 아니다. 지난 8월 2016 리우올림픽에서 덴마크 28위(금 2, 은 6, 동 7개), 스웨덴 29위(금 2, 은 6, 동 3개), 노르웨이 74위(동 4개)의 성적을 올린 것에서 보듯 금 9, 은 3, 동 9개로 8위를 차지한 한국보다 뒤졌다. 하지만 ‘스포츠 강국에서 스포츠 선진국’으로의 목표를 내걸고 체육단체 통합이후 대한체육회의 역할과 향후 거취에 고민하는 한국에게 북유럽 3국의 실제 사례는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날 포럼은 ‘북유럽 국가들의 스포츠 문화를 조명하다’라는 주제로 울릭 바그너 남덴마크 대학 교수, 하켄 라르손 스웨덴 건강·스포츠과학대 교수, 엘사 크리스티안센 남노르웨이 대학 교수가 각 국가의 스포츠문화에 대한 주제로 발제를 했다.

 

 

 

 

▲ 울릭 바그너 남덴마크 대학 교수가 덴마크 스포츠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바그너 교수는 덴마크의 ‘스포츠와 교육시스템’ 발표에서 “덴마크에서 체육수업은 수학 등 일반 수업보다 가벼운 과정이다. 스포츠 재능을 키우는 것은 전문 스포츠 협회에서 한다”며 “국민들은 스포츠와 운동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높은 참여율을 보인다”고 말했다. 바그너 교수는 운동선수의 학업과 관련, “덴마크는 한국처럼 ‘운동-학업 병행제’ 대신 학업을 직업교육으로 대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덴마크의 운동선수 교육 프로그램은 일명 ‘김영란법’ 시행으로 출석과 시험이 대폭 강화된 한국의 운동선수들의 대체 방안으로 한번 검토해볼하다.

라르손 교수는 ‘스웨덴의 스포츠 문화’ 발제에서 “스웨덴의 스포츠 접근방식은 아동과 청소년의 스포츠 참여제고에 있으며, 이로인해 90%의 아동과 청소년이 스포츠클럽에 활동하고 있다”며 스포츠는 경쟁보다는 참여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컴퓨터 게임과 전자오락 등으로 청소년들이 운동을 할 기회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한국에서 스웨덴과 같이 청소년 스포츠를 강조하는 조직적인 체계를 한번 시도하면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크리스티안센 교수는 ‘노르웨이 대학스포츠 문화의 이해와 탐색’ 발표에서 “노르웨이 사회의 평등주의 본질은 엘리트 문화를 지향하지 않는 것이다”며 “이러한 점은 신체활동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모든 학교와 클럽에서 경쟁을 피하는 운영을 대부분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우리나라 스포츠 정책은 일본, 미국, 영국, 독일 등 스포츠 선진국을 중심으로 엘리트스포츠 위주로 운영됐다. 단기간에 기적적인 성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운동과 공부의 부조화 등 여러 폐단도 낳았다. 북유럽 국가들의 스포츠 운영 사례를 접하는 귀중한 기회를 통해 앞으로 우리나라 스포츠의 새로운 지향점이 모색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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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만에 만난 두 팀, LG와 KIA가 보여준 축제의 진수 

#배정호기자









14년 만에 KIA 타이거즈와 LG 트윈스가 가을 야구에서 만났다. KBO 리그를 대표하는 두 팀의 축제는 성공적이었다.

LG와 KIA는 지난 11일과 12일 2016 타이어뱅크 KBO 리그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경기했다. LG(MBC 청룡 포함)와 KIA(해태 타이거즈 포함)가 가을에 만나는 것은 4번째다. KIA는 1983년과 1997년 LG를 물리치고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지만 2002년에는 LG에 져 한국시리즈 문턱에서 좌절했다. 10일 열린 미디어데이에서 부터 양 팀 선수들은 치열한 신경전을 펼쳤다. 특히 2002년 신인이었던 박용택의 도발이 대표적이었다.






“2002년 입단 후 KIA와 플레이오프에서 좋은 기억이 있다. 5차전에서 멀티 홈런을 포함해 4타점을 기록하며 시리즈 MVP를 차지했다.”

KIA 주장 이범호도 “(박)용택이 형이 도발하시고 포장을 잘한 것 같다”고 웃었고 KIA 에이스 투수 양현종은 “구장만 잠실이지 분위기는 광주 홈 경기라고 생각한다”며 받아쳤다.




▲ 1차전 : 분위기 잡은 헥터, 그리고 최고령 세이브로 마무리한 임창용  

KIA는 10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LG와 2016 KBO 와일드카드 결정 1차전서 7이닝 2실점(1자책점)을 기록한 선발투수 헥터 노에시의 호투와 중심 타선에서 2타점을 합작한 김주찬, 이범호의 득점권 집중력을 앞세워 4-2로 이겼다. 끝까지 손에 땀을 쥐는 경기였다. LG는 2-4로 뒤진 9회말 선두 타자 박용택이 내야안타로 추격의 불씨를 살렸다. KIA 김기태 감독이 마운드로 올라와 선수들을 모았다.






“긴장하지 마. 내가 책임진다.”

이후 마운드에 오른 임창용은 루이즈 히메네스를 투수 병살타로 돌려 세운 뒤 후속 채은성을 범타로 잡아 포스트시즌 최고령 세이브 기록을 갈아 치웠다.








임창용은 경기 후, 

“파란 유니폼만 입다가 빨간 유니폼을 입고 뛰니까 감회가 새로웠다. 오늘(10일) 지면 끝이었다. 무조건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등판할 수 있게 만들어 준 선수들에게 고맙다. 긴장감에서 야구를 할 수 있다는 게 행복했다. 팔이 빠지더라도 막고 싶었다” 고 말했다.


경기가 끝나고 복도에서는 두 팀 선수들 사이에서 인사말이 들려왔다.

 “내일 또 보자.”





▲ 2차전 : LG 주장 류제국의 역투, 남자 둘의 진한 포옹

LG 트윈스가 11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6 타이어뱅크 KBO 와일드카드 결정 2차전 KIA 타이거즈와 경기에서 1-0으로 이겼다.

9회 말 LG 정상호가 우전 안타로 출루한 뒤 대주자 황목치승과 교체됐다. 황목치승이 도루로 2루를 밟았다. KIA는 손주인을 고의4구로 걸렀다.LG 문선재가 주자의 진루를 위해 희생번트를 시도했으나 포수 파울플라이로 잡히며 1사 1, 2루가 됐고 KIA는 외국인 선발투수 지크 스프루일을 마운드에 올렸다.







안익훈 타순 때 서상우가 대타로 나섰다. 서상우가 우전 안타를 터뜨리며 1사 만루 기회를 이어갔고 김용의가 중견수 희생플라이로 끝내기 타점을 올리며 LG를 준플레이오프 무대에 올린 주인공이 됐다. 마운드에선 류제국의 호투가 눈부셨다. 류제국은 2차전 8이닝 동안 116구를 던지면서 1피안타 3볼넷 6탈삼진 무실점으로 KIA 타선을 눌렀다. 몸에 맞는 공 3개가 있었지만, 위기마다 땅볼을 유도해 실점을 피했다.

경기 후 LG 양상문 감독이 류제국을 불렀다.






그리고 류제국의 볼에 뽀뽀했다. “제국아 넌 최고다.”




정규시즌 4위로 마친 LG는 1승 1패로(4위 어드밴티지) 준 PO에 진출했고 현재 넥센 히어로즈와 플레이오프 티켓을 놓고 경쟁 중이다. LG는 16일 포수 유강남의 2점 홈런에 힘입어 넥센은 4-1로 물리쳤다. 18일 경기에서 1승만 추가하면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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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라멜라를 감쌌던 손흥민, 대표팀에선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다 



[영상] 라멜라를 감쌌던 손흥민, 대표팀에선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다 




손흥민이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손흥민의 활약에 영국 언론들도 그를 주목하고 있다. 지난 2일 손흥민은 영국 런던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 열린 2016-17시즌 프리미어리그 7라운드 맨체스터 시티와 경기에서 시즌 2호 도움을 기록했다. 


리그 정상급 팀인 맨체스터를 상대로 손흥민은 주눅 들지 않았다. 최전방 공격수로 출전한 그는 맨체스터 수비진을 집요하게 괴롭혔다. 









토트넘이 2-0으로 앞선 후반 20분 주심은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손흥민의 경기력으로 비췄을 때 그가 키커로 나설 확률은 꽤 높았다. 손흥민이 공을 들고 가려는 모습까지 카메라에 잡혔다. 하지만 키커는 손흥민이 아닌 라멜라였다. 라멜라는 실축했다. 


10분 뒤 EPL 현지 중계에서 볼 수 없었던 장면을 송출했다, 페널티킥을 놓고 손흥민과 라멜라가 의견 차이를 보이는 장면이었다. 손흥민은 키커로 나서겠다고 라멜라에 말했지만, 라멜라는 자기주장을 계속했다. 손흥민은 황당하다는 몸동작을 취했다. 







라멜라의 행동에 한국 팬들이 크게 뿔났다. 몇몇 성난 팬들은 라멜라의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노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하지만 정작 손흥민은 라멜라를 감쌌다. 맨체스터 시티 경기를 마치고 손흥민은 곧바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도착 후 손흥민은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카타르전 공식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라멜라에 대한 질문이 빠지지 않았다.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들은 답변이었다. 손흥민은 라멜라를 감쌌다. 그는 “공격수라면 누구나 골 욕심을 당연히 내야 한다. 페널티킥을 차기 위해 라멜라에 (공을) 달라고 했던 것은 사실이다. 페널티킥은 넣을 수도 있고 못 넣을 수도 있다. 라멜라가 주눅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손흥민은 이날 훈련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다. 약 한 시간 동안 진행된 훈련에서 분위기 메이커 노릇을 톡톡히 했다. 주장 기성용과 슈틸리케 감독은 “손흥민이 맹활약하고 있다. 손흥민의 좋은 몸 상태가 대표팀까지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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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온이 올라가면 그라운드 난투극 늘어난다.

# 김학수 박사

 

 

 

 

 

 

우리 속담에 날씨와 관련된 것으로 ‘뜨거운 봄볕은 며느리를 쬐이고 선선한 가을볕은 딸을 쬐인다’는 말이 있다. 전통적으로 시어머니가 며느리보다 딸을 더 아끼고 위한다는 것을 계절의 날씨에 비유했다. 가을볕보다 봄볕에 살갗이 더 잘 타고 거칠어지는 것을 알고 며느리보다 딸을 더 위하는 보통 사람들의 정서를 표현했던 것이다.  이 속담은 실제로 상당히 타당성이 있다는 것이 과학적 조사를 통해 입증됐다. 인간은 기온이 오를 때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잘 움직이지 않고 신체적, 정신적으로 적지않은 나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새로운 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미국 하버드 대학교 경제학 박사과정생인 한국계 박지성씨는 460만회의 뉴욕 고등학교 수학능력시험에서 기온 스트레스가 학업성취도에 유의한 영향을 주었다고 최근 논문에서 밝혔다. 지금까지 기후에 관한 연구는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인한 해수면 상승, 태풍, 산성비, 기근과 농작물 피해 등 기상 이변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박지성씨의 연구는 인간의 몸과 정신에 기온 변화가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지를 밝혀줘 상당히 의미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기온 스트레스는 단기적으로 시험성적을 떨어뜨리며, 장기적으로는 학업성취도를 저하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화씨 90도(섭씨 32.2도)를 기록한 날 시험을 치른 학생들은 화씨 72도(섭씨 22.2도) 때 시험을 본 학생들보다 12%의 성적 부진을 보였다. 결과적으로 대학 입학을 좌우하는 수학능력시험에서 더운 날 시험을 본 학생이 시원한 날 시험을 본 학생보다 훨씬 나쁜 날씨 운 때문에 손해를 본 셈이다.

 

 

 

 

 

 

기온 스트레스는 학업 뿐 아니라 스포츠 경기에서도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무더운 날 투수들은 상대의 공격에 예민해진 나머지 상대 타자 몸에 공을 던지는 경향이 많다는 것이 통계학적 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지난 2010년 듀크대, 텍사스 공대 연구대들은 57,293게임의 메이저리그 경기를 전수 조사해 온도와 타자가 투수에게 볼을 맞는 가능성과의 상관성과 충돌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에서 투수들이 타자 몸을 맞추는 빈볼시비는 경기 초반 상대 타자들에게 자주 안타를 내주고 온도가 높을 때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밝혀냈다. 연구결과는 높은 기온은 상대 타자가 빈볼에 맞아 감정을 폭발시켜 투수를 비롯한 상대 팀 선수들과 난투극을 유발할 가능성이 증가한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벌어진 최악의 난투극 사건들도 기온 스트레스에 의해 설명이 가능할 것 같다. 지난 수십년간 빈볼에 의해 초래된 난투극이 무더운 여름에 대부분 벌어졌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그라운드 난투극으로 기억되는 게 국민타자 이승훈 충돌 사건이다. 2003년 8월9일 LG 서용빈 타석에서 몸쪽으로 오는 공을 붙이자 묘한 분위기가 흐르게 되고 잠시후 삼성 이승엽과 LG 서승화 사이에서 욕설이 난무했다. 마침내 이승엽과 서승화는 한방씩 주고 받게 된다. 그후 동료들의 만류로 상황종료가 됐다.

 

기상 관측이래 가장 무더운 여름을 보냈던 올해에도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빈볼 난투극이 벌어졌다. 지난 6월22일 SK 외야수 김강민과 LG투수 류제국이 빈볼시비 끝에 서로 주먹을 휘두르다가 퇴장당했다. LG가 7대4로 앞선 5회 LG류제국 투수가 던진 공이 SK 김강민의 옆구리에 맞은 뒤, 두 선수는 말다툼 끝에 주먹다짐을 벌였고 두 팀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몰려나와 경기가 5분 이상 중단됐다. 결국 김강민과 류제국은 시즌 1, 2호 퇴장 선수의 불명예를 당했다.

비단 지구 온난화 현상에 따른 기온 변화이겠지만 뉴욕의 고등학생 학업성적이든, 미국 메이저리그나 한국 프로야구 선수들의 그라운드 빈볼 사건이든 궁극적으로 문제는 기온변화에 어설프게 대처하는 사람이 더 문제인 것이 아닐까 싶다. 기온 변화에 감성을 자제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한다면 학업성적저하도, 그라운드 난투극도 벌어지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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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출처 : arnoldpalmer.com

 

 

 

근대 스포츠산업의 창시자, 아놀드 파머

 

지난 25일 87세로 타계한 아놀드 파머는 한 시대를 풍미한 최고의 골퍼이면서 근대 스포츠 산업의 창시자였다. 화려한 선수 경력을 갖고 있던 파머는 최고의 골프 브랜드였다. 근대 스포츠 산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골프산업은 파머 이전과 이후로 나눈다. 파머 이전에는 극소수가 즐겼던 골프가 파머의 등장을 계기로 대중과 호흡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파머 이전 바비 존스, 월터 헤이건, , 샘 스니드, , 벤 호건 등이 있었지만 그들은 위대한 골퍼로 남았을 뿐이다. 파머는 대중과 함께 하고 대증과 즐기고 대중을 리드한 카리스마 넘친 골퍼이자 비즈니즈맨이었다.

 

마스터스 4회, US오픈 1회, 브리티시 오픈 2회 우승, PGA 투어 61회 우승 등의 화려한 성적을 낸 그는 30대부터 골프마케팅에 눈을 떴다. 같은 골프클럽멤버이자 친구였던 변호사 마크 맥코믹과 에이전트 계약을 맺었다. 맥코믹은 각종 계약의 법률 자문을 응해주면서 파머와 본격적인 스포츠 에이전트 런칭 사업을 시작했던 것이다. 이것이 현대 스포츠 에이전트의 효시인 IMG의 출발이었다. 파머라는 골프의 대중스타 탄생은 현대 스포츠 에이전트라는 새로운 영역을 만들었던 것이다.

IMG는 파머와의 계약을 디딤돌로 삼아 세계적인 스포츠 매니지먼트 회사로 도약했다. 타이거 우즈, 마리아 사라포바 등 수많은 글로벌 스타들을 매니지먼트하고 올림픽과 메이저리그에 여러 스포츠 마케팅을 적용하며 최고의 회사로 자리잡았다.

 

1980년 파머는 IMG의 에이전트 앨래스터 존스톤으로부터 결별을 통보받았다. 당시만해도 파머를 브랜드로 하는 여러 골프용품이 아시아지역에서 많은 팔리고 있었지만 IMG는 파머의 이미지를 더 이상 끌고 나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IMG는 좀 더 장기적인 목표를 세우지 않고서는 파머 브랜드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킹’ 파머의 글로벌 이미지를 위해서는 좀 더 많은 스토리를 만들어야 했으나 나이 등으로 인해 쉽지 않았던 때문이었다. 그러한 결정은 내심 파머를 실망시켰다.

IMG는 지난 60년간 미국과 전 세계에 수백개의 회사들에게 파머 브랜드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했다.

파머는 벤처 사업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지난 1965년 라이벌 잭 니클러스와 미국 올랜도 베이힐 클럽에서 벌어진 시범 경기에서 65타를 기록 한 뒤 그 골프장을 직접 인수, 유명 골프 리조트로 만들었다. 올랜도 베이힐 클럽은 메이저 대회를 빼고 가장 주목받는 PGA대회를 열며 명성을 높였고, 내장객들을 위해 파머가 직접 사진을 찍고 함께 코스를 도는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사상 처음으로 골프 TV 채널을 창립한 것도 그의 뛰어난 사업 수완을 엿보게 해주는 대목이다. 그는 케이블 방송 사장 조 깁스를 처음 만났을 때만해도 골프 채널에 대해 별반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나 깁스의 끈질긴 설득으로 마침내 결정, IMG로 창립 계획을 주도하도록 했다. 최근 자신의 자식뻘보다 어린 골프 채널의 여성회장 마이크 맥칼리의 후견인 역할을 해주었다.

 

파머는 또 골프코스 설계자로 활동하며 전 세계에 300개 이상의 골프 코스를 설계했으며 미국 플로리다에는 여성과 어린이들을 위한 ‘아놀드 파머 메디컨 센터’를 설립했다.

한때 더 이상 어필이 되지 않으리라던 그의 이미지가 수년전 새로운 제품으로 다시 살아났다. 파머라는 이름으로 명명된 음료, 차가 10대와 20대의 젊은이에게 인기리에 팔리고 있는 것이다. 그가 골프 선수로 활동하던 시절을 보지 못했던 젊은이들은 파머를 골프 선수가 아닌 음료 사업가로 기억할 가능성도 많다. ‘아니의 군대(Arnie's Army)’로 불린 많은 열광적인 팬들의 사랑은 그의 타계에도 불구하고 결코 사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파머는 죽어서도 ‘살아있는 전설’처럼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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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국가대표’ 리우올림픽 해단식에서 나온 재미난 풍경들 

# 배정호기자

 

 

 

 

 

 

 

 

지난 8월 24일 이른 아침부터 인천국제공항 C게이트앞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공항 앞 도로에는 대형 중계차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 사다리를 끌고, 카메라를 들고, 많은 취재진도 하나 둘 씩 장비를 챙기며 모이기 시작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금메달 9개 은메달 3개 동메달 9개로 종합 8위에 오른 한국 선수단이 귀국했다. 정몽규 선수단장과 최종삼 총감독을 비롯한 한국 선수단 본진이 지난 24일 귀국했다.

 

 

 

 

 

 

 

레슬링에서 투혼으로 동메달을 딴 김현우가 태극기를 들었다. C번 게이트 문이 열렸고 카메라 플래시가 쏟아졌다. 국민들과 선수 가족들은 박수로 국가대표를 맞이했다. 김현우의 표정은 밝았다. 김현우가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게 신기한 듯 미소를 지었다.  가장 인기가 높았던 선수는 역시 손연재. 그는 꾸밈없는 모습으로 팬들 앞에 섰다. 한국 선수단 스태프들도 손연재에게 셀카를 요청했다.

 

선수단은 사전에 마련된 밀레니엄 야외 홀로 자리를 옮겼다. 보안은 철저했다. 대한체육회의 사전 출입증을 받은 그 누구도 해단식 행사장에 들어올 수 없었다.

행사는 정확히 9시 45분에 시작됐다. 선수들이 도착하고 남은 시간은 약 30분. 사전에 입국했던 양궁 국가대표팀과 펜싱의 박상영, 사격의 진종오도 자리를 채웠다. 진종오 옆에는 양궁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2관왕을 차지한 장혜진이 앉았는데 재밌는 상황이 발생했다. 진종오가 장혜진에게 “잠시 금메달을 보자”는 동작을 취했고 장혜진이 금메달을 꺼내 들었다.

 

 

 

 

 

 

 

 

진종오가 갑자기 금메달 크기가 달라 보인다며 웃었다. 장혜진이 고개를 끄덕였고 서로의 금메달을 잠시 바꿔서 목에 걸었다. 해단식 사회를 맡은 김현욱 아나운서 뒤로는 김현우의 어머니가 꽃다발을 들고 서 있었다. 김현우는 어머니가 반가운 듯 계속해 대화를 나눴다.

 

KBS 중계차 메인 PD의 콜을 시작으로 해단식은 시작됐다. 최종삼 총감독의 2016년 리우올림픽 보고에 이어 메달리스트들의 소감 발표가 계속됐다.

가장 먼저 진종오가 마이크를 잡았다. 진종오는 “다음 올림픽인 2020년 도쿄올림픽에 참석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며 올림픽 4연속 금메달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정신으로 감동을 준 레슬링 김현우와 리듬체조 손연재는 “끝까지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다”고 말했고 팬들의 박수가 이어졌다.  IOC 위원으로 당선된 전 탁구 국가대표 유승민은 “먼저 투표를 해준 선수단께 감사를 드린다. 선수위원 자리는 봉사하는 자리다. 한국 체육 발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당선 소감을 밝혔다.

 

 

 

 

 

 

약 1시간 동안 해단식 및 기자회견이 끝나고 선수들은 흩어져 가족 및 지인들과 축하 인사를 나눴다. 이 때 재미난 장면들이 많이 나왔다. 어깨 부상에도 값진 동메달을 따낸 김현우의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보였고 김현우는 “울지마”라며 어머니를 꽉 껴안았다.

 

 

 

 

 

 

 

‘하면 된다’로 신드롬을 일으킨 박상영은 팬들의 셀카 요청에 “앞머리가 이쁘진 않지만 찍겠습니다”며 해맑게 웃었다. 이어 한국체육대학교 관계자가 박상영에게 ‘하면 된다’의 구호를 복창해보자고 부탁했다. 그것도 영어로.  박상영의 얼굴이 빨개졌다. 하지만 금새 해내고야 말았다. 그는 “국민들에게 큰 힘이 됐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정말 영광이고 앞으로 더욱 발전하는 선수가 되겠다”며 웃었다.

 

 

 

 

 

 

 

양궁 대표팀 선수들이 “햄버거를 먹고 가자”고 떼를쓰자 문형철 총 감독은 “이 난리통에 무슨 햄버거냐. 저녁에 회식이나 하자”고 말했고 팬들은 크게 폭소했다. 

가장 인기가 높았던 손연재가 취재진과 약 20분동안 긴 대화를 주고 받았다. 높은 인기에 모든 팬들에게 사인을 해줄 수 없었던 손연재도 어린아이의 부탁은 거절하지 못했다. 결국 손연재는 가장 늦게 인천국제공항을 빠져나갔다.  한편 한국 선수단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금메달 9개 은메달 3개 동메달 9개로 종합 8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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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은 국가적 변화의 매개자

#김학수 연구소장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세계적인 휴양지 코파카바나 해변은 리우 올림픽 기간 내내 브라질 특유의 흥취와 열기를 내뿜었다. 비치발리볼과 바이애슬론이 열린 코파카바나 비치는 관중들로 발디딤 틈이 없었다. 올림픽 시작전 오염된 물, 슈퍼 박테리아, 바다 위에 각종 쓰레기가 둥둥 떠다니는 '금단의 땅'으로 세계 주요 언론에 의해 보도됐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역대 올림픽은 시작 전 대부분 부정적인 상황으로 채색됐었다. 하지만 올림픽이 막을 올리면 언론의 보도와는 맞지 않게 돌아간다. 준비된 스케쥴에 따라 착착 일정이 진행되는 것이다. 멀리는 북한의 안보위협이 극심했던 1988년 서울올림픽이 그랬고, 가까이는 이슬람 과격 테러분자들의 도발이 예상됐던 2012 런던올림픽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올림픽 전 호들갑을 떨던 언론의 가락대로 움직이지 않은 것이다.


언론들은 올림픽 준비 상황을 올림픽 자체로 보지 않고, 리우 올림픽처럼 사회 경제적인 환경 요소 등을 중시하고 여기에 초점을 두며 각종 보도를 한다. 올림픽을 올림픽 경기 위주로 접근하지 않고 전체적인 국가적 환경과 조직력 등에 주목하는 것은 올림픽에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기 때문이다. 이번 리우 올림픽서 언론의 부정적인 보도에 놀란 세계적인 골퍼 로리 매킬로이, 밥 왓슨 등 주요 선수들이 대거 출전하지 않았다.

2016 리우 올림픽은 성공적인 대회로 평가를 받기는 어렵겠지만 비교적 균형잡힌 운영을 했다는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당초 낮은 기대치를 넘어서 대회 시작부터 폐막할 때까지 큰 잡음없이 진행을 했다는 것이다. 이는 브라질 자국민은 물론 외국인들이 느끼는 평가이다. 한국선수단 임원으로 참가했던 남상남 한국체육학회장은 " 지카바이러스 공포, 치안부재 등으로 많은 걱정을 했다. 그러나 리우 현지에 도착하니 알려진 것과 달리 올림픽을 치르는데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며 "워낙 최악의 올림픽이라는 소문이 나서 그런 지 생각 한 것보다 전반적으로 잘 진행됐다"고 말했다.







최악의 경제적인 여파 탓에 많은 경기장 관중석이 비고, 올림픽 분위기가 가라앉으며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각 국제경기단체로부터 안전 문제 등과 관련한 여러 주문을 받기도 했으나 리우 올림픽은 여느 올림픽과 다르지 않게 무리없이 소화했다. 이번 리우 올림픽 개최국 브라질을 비롯한 많은 IOC 회원국은 올림픽이 메가 스포츠이벤트이지만 국내에서 변화를 이끄는 매개자 역할을 하는데 중점적인 목표를 둔다. 7년전 미국 시카고를 제치고 올림픽을 유치할 때만해도 브라질은 호경기로 국가 재정이 안정된 수준이었다. 아마존의 수림 등 천혜의 자연 환경을 갖추고 있는 브라질은 올림픽을 유치해 도로, 지하철 등 각종 도시 기반 시설 들을 확충하며 국가적인 발전의 기회를 삼고자 했다. 하지만 갑작스레 찾아든 세계 경기의 불황의 직격탄을 맞고 이번 올림픽 개최를 위해 재정적인 어려움을 크게 겪었다. 개, 폐회식 비용을 런던 올림픽에 비해 크게 줄이며 긴축운영을 했던 브라질은 간판 종목인 남자축구와 남자배구에서 우승, 국민적인 단합을 이끌며 새로운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브라질은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앞으로 관광붐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있다. 리우데 자네이루의 특별한 도시 풍광, 코파카바나 해변의 환상적인 분위기가 전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또 새로운 지하철 라인과 개선된 교통 시스템, 올림픽 기간 많은 찬사를 받았던 퍼블릭 골프장과 현대식 경기장 등은 올림픽이 낳은 유산으로 앞으로 브라질 사회, 경제, 문화적인 환경 조성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 올림픽은 영원히 계속되는 대회는 아닐 것이다. 고대 올림픽이 700여년 이어지다 중단됐듯이 현대 올림픽도 인류 평화에 기여하고 각 국 발전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 전제될 때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다. 리우 올림픽 폐막식에서 다음 대회지로서 아베 일본 수상이 직접 올림픽기를 인계받은 2020년 도쿄 올림픽은 재정적인 문제를 갖고 있지만 무난하게 준비작업에 들어갔으며 2024년 올림픽은 미국 LA와 프랑스 파리가 유력한 후보지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모양새다. 올림픽이 국가의 변화를 주도하는 매개체로서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정치인들은 올림픽을 통해 국가 이미지를 높이려고 한다. 하지만 이번 리우 올림픽의 묘미를 가장 느끼게 해 준 것은 육상의 우샤인 볼트, 골프의 박인비와 같은 선수들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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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색이 스포츠 언론인 출신이고, 스포츠 미디어 전공자인데도 불구하고 2016 리우올림픽에서 직접 TV 생중계를 끝까지 본 것은 딱 두 번에 그쳤다. 한국과 온두라스의 축구 8강전, 여자골프 최종 4라운드 였다. 12시간의 시차로 대부분의 경기가 한 밤 중이나 새벽에 열렸고, 유례없는 폭염이 이어진 때문이었다. 2주간이나 계속된 올림픽 경기를 열대야의 한증막 더위 속에서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대신 간편하고도 다양한 방법으로 올림픽을 즐겼다. 올림픽 기간 중에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면 먼저 스마트폰 포탈사이트에서 올림픽 최신 경기 결과를 확인했다. 포탈 사이트에는 경기 중요 장면을 편집한 2~3분 길이의 하이라이트 영상이 많았다. 하이라이트에는 보고 싶은 경기나 메달이 결정되는 중요 순간 장면 등이 담겨 있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에는 우리나라 선수단은 물론 각국 주요 선수들의 근황들이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아마 대부분의 국민들도 이번 리우올림픽은 필자와 같은 방법으로 한국 선수단의 올림픽 소식을 접했을 것이다.

이번 리우올림픽에서 미디어 이용패턴이 많이 달라졌다. 올림픽을 즐기는 방식이 디지털과 SNS로 옮겨갔다. 이는 TV 시청율 저하를 통해 확연하게 나타났다. 그동안 올림픽은 TV를 통해 보는 즐거움이 컸다. 이번 리우올림픽에서는 TV 이용에서 큰 변화가 생겼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국선수단 경기 가운데 가장 시청률이 높은 경우 동시 중계 채널을 합산해 전국 기준 30% (닐슨 코리아 조사) 수준에 그쳤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여자 역도 장미란의 금메달 획득 경기가 기록한 61.7%(이하 수도권 기준)는 물론 2012 런던올림픽 여자 양궁 기보배의 금메달 경기가 기록한 40.4%와도 거리가 있는 것이다. 국내 지상파 방송 3사는 이번 리우올림픽에서 시청률 저조와 광고수주 부진으로 깊은 한 숨을 토해내는 분위기이다.


이러한 TV 시청률 부진은 국내만의 문제는 아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최대 올림픽 중계권사인 미국의 NBC 방송도 마찬가지였다. 시차가 미국 동부기준으로 한 시간 밖에 나지 않아 런던올림픽 때보다 시청률이 많이 상승할 것으로 기대했던 NBC는 오히려 런던때보다 저조하게 나타나자 크게 울상을 짓고 있다. 프라임 타임 시청자 평균수가 2천5백40만명으로 런던때 3천1백만명보다 18% 급락했다. 온라인 스트리밍과 케이블 TV 네트워크를 포함해 2백만명 정도가 더 시청한 것으로 집계됐지만 전체적으로 TV 시청률조사에만 근거한 런던올림픽에 비해 많이 못미친 것이다.

NBC는 리우올림픽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IOC, 주요 국제경기단체 등과 협의해 미국 TV의 프라임 타임에 맞춰 경기종목 배정과 경기시간 조정 등을 선택했다. 육상, 수영, 다이빙, 체조, 농구 등 미국이 강세를 보이는 종목 등에서는 NBC의 요구에 의해 주요 선수들의 경기시간이 맞춰졌다.  NBC는 비록 올림픽 시청률은 떨어지긴 했지만 프라임타임에서 다른 CBS, ABC 등 경쟁사 들보다 앞서면서 ‘투데이 쇼’ ‘NBC 나이트리 뉴스’ 등 자사 프로그램의 18~34세의 젊은층 그룹의 시청률을 주도해 나갈 수 있었다는데 만족했다.









이번 리우올림픽의 미디어 판도변화를 보면서 앞으로 6년간 세 번 연속 아시아지역에서 열리는 동하계 올림픽의 미디어환경의 변화에 큰 관심이 모아질 것으로 보인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2020 도쿄 하계올림픽,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등이 이어지게 되는데 막대한 중계권료를 내는 방송사들은 이번 리우 올림픽의 시청률 부진이 앞으로 아시아지역에서의 올림픽에서도 계속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아직은 확실하지는 않지만 미디어 이용자들이 미디어 이용을 어떻게 할 지, TV 시청률이 얼마나 떨어질 지, 새로운 ICT기술이 등장할 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특히 120억달러(약 13조5000억원)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입해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부터 2032년 올림픽까지 중계권을 확보한 미국 NBC 방송은 날로 발전하는 새로운 디지털 기술과 함께 미국 뉴욕기준으로 13~14시간의 시차를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을 지 여부가 관건이다.

NBC 방송은 1988 서울올림픽 때는 가장 인기가 있던 남자육상 100m 결승을 한국시간으로 오전에 갖도록 경기시간을 조정, 미국 시간 프라임 타임에 맞춰던 경험이 있었던만큼 대부분의 주요 경기시간을 미국 시간대에 유리하게 편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다. TV 매체의 영향력이 점차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모바일과 SNS을 많이 이용하는 네티즌들은 미국 NBC 프라임타임에 맞춰 올림픽 경기 시간을 조정하는 것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를 점차 키워나가고 있다. 미래의 올림픽 중계는 정해진 시간에 한 자리에 모여 즐기기 보다는 모바일로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언제든지 미디어 컨텐츠를 소비하는 추세가 증가함에 따라 TV 방송을 위주로 한 현재의 방송 형태에는 적지않은 변화가 이루어질 전망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등 아시아지역에서 열릴 3개 동하계올림픽에 어떻게 미디어 빅뱅이 이루어질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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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올림픽 판박이인 리우올림픽, 불안한 올림픽을 성공적인 올림픽으로

#김학수 교수






88서울올림픽 직전 세상은 올림픽 열기속으로 점차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서울을 세계로’, ‘세계는 서울로’라는 캐치플레이즈는 평화와 인류애를 담은 올림픽 정신을 잘 구현했으며, 국민들은 올림픽을 서울에서 열게 된 것에 대한 민족적인 자부심과 긍지로 넘쳐났다. 하지만 대회를 준비하는 서울올림픽조직위 관계자들은 대회가 임박해오면서 오히려 불안한 모습이었다. 겉으로는 단군이래 최고의 민족적 잔치를 개최하게돼 축제 분위기를 보여야 했으나 실제로는 팽팽한 긴장감과 초조로 ‘과연 이 행사를 잘 치를 수 있을까’하며 노심초사하는 상황이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돌발적인 일이 발생해 서울올림픽이 화를 당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최대 복병인 북한의 변수,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의 집단 불참 가능성 등 대외적인 요인에다 불안한 국내 정쟁에 따른 소요및 시위사태 발생 문제, 안전 문제 등 대내적인 요인 등까지 겹쳐 마치 칼날 끝에 선 기분이었다. 

스포츠 기자 4년차에 접어든 필자는 회사에서 야근할 때마다 AP 통신 등 세계적인 외신이 전하는 기사를 챙기는 게 주요한 일이었으며, 서울올림픽 분산 개최를 요구한 북한의 방해책동과 안전및 보안문제는 취재 항목에 빠지지 않았다. 실제로 당시 미국 언론을 비롯한 외신들은 서울올림픽 수개월전 “서울올림픽이 제대로 열릴 수 있을 지 모르겠다”는 보도를 했으며, 정상 개최가 어려운 이유들로 대내외적인 여러 요인들을 들었다. 당시만해도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국제적인 신임도와 신뢰성이 낮아 한국에 대한 기사는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인 기사들이 주를 이루었다. 서양인 관점에서는 야만인과 같은 개고기 식성 문화, 학생들의 소요 사태와 군부의 동요, 북한의 도발 위험등이 상존한 한국은 문명의 아이콘으로 추앙받았던 올림픽 개최와는 거리가 있는 나라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당시 노태우 정부는 서울올림픽 안전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주기 위해 군인과 경찰 등을 총동원, 테러위협과 안전 문제에 철저히 대비했고 경기장 시설과 대회운영에 총력을 기울였다. 한강변에 88올림픽 도로를 신설했으며, 경기장으로 이어지는 주요 도로를 시원스럽게 뚫었다. 서울올림픽을 올림픽만 치르는 게 아니라 한국 자체의 위상을 높이는 기회로 삼고자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수십만명의 봉사자들과 운영 요원들로 ‘다이나믹 코리아’의 이미지를 참가국에 심어주려 노력했다.

이러한 준비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불안하게 준비했지만 서울올림픽은 역대 최고의 올림픽이라는 찬사를 받았다.걱정했던 문제들은 다만 기우에 그쳤고, 대회 준비에 쏟았던 노력은 빛을 발휘했던 것이다.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장(IOC) 등 국제스포츠 관계자들은 “서울올림픽은 세계 평화에 크게 이바지 했다. 훌륭한 대회 준비로 역대 어느 올림픽보다 성공적인 대회였다”며 치켜세웠다. 한국의 치안을 믿지 못했던 러시아는 인천 앞바다에 선수단을 싣고 온 전용 선박을 정박시켰으나 나중에는 수준급 보안에 만족해 했었다.






개최국 한국은 서울올림픽에서 역대 4위라는 최고의 성적을 올렸을 뿐 만 아니라 국민들은 홀짝제 승용차 운행에 자발적으로 참여했으며,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밝고 희망찬 이미지를 전하는데 앞장섰다. 지하철, 도로, 버스 등의 대중교통을 이용해 많은 외국 선수들과 관계자들이 서울 거리를 즐거운 표정으로 돌아다니는 모습 들이 한국 언론에 자주 보도됐다. 필자는 88서울올림픽이후 90년 북경아시안게임, 98년 방콕아시안게임,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만난 여러 국가의 선수단 관계자와 각국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서울올림픽 최고”라는 말을 많이 듣고 기분이 우쭉해진 경험이 있었다. 서울올림픽은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데 엄청난 효과가 있었다.


개최를 눈앞에 둔 리우올림픽은 30여년전 서울올림픽 형편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국제사회가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국내외적 상황이 복잡하고 만만치 않은 초긴장 상태로 올림픽을 열게 되기 때문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심각한 경제난과 정쟁 불안, 자카 바이러스에 테러 걱정까지 겹쳐 정상 개최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브라질은 2008년 금융위기 극심한 경제위기를 겪어 한때 올림픽 개최가 불가능하지 않느냐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리우올림픽에 소요되는 약 12조원의 예산은 최악의 경제위기에 빠진 브라질 정부를 더욱 곤경으로 밀려넣었다. 주요 경기장 시설도 예산부족으로 최종 단장에 어려움을 겪었다. 대통령 탄핵사태이후의 혼란한 정치 상황도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올림픽을 주관하는 체육부 장관조차 최근 3명이나 교체됐을 정도이다. 이런 상황에서 모기가 매개하는 것으로 알려진 자카 바이러스 공포는 올림픽 참가자들을 불안케 한다. 야외에서 경기가 벌어지는 골프에서는 세계 상위랭킹인 로리 맥길로이 등 주요 선수들이 불참을 선언, 혼선을 초래케 했다. 테러 위협에도 비상령이 내려졌다. 극도의 치안 불안을 보이는 리우는 지난 5년간 발생한 살인사건 희생자수가 무려 1천5백여명에 이른다. 최근에는 마약범과의 전쟁을 치르며 경찰, 군이 대대적인 수색작전에 나서기도 했다. 브라질 정부는 이번 올림픽 기간중 8만오천여명의 군인과 경찰을 곳곳에 배치, 안전 확보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계획이다.








서울올림픽 때도 그랬지만 성공적으로 대회를 개최하려는 브라질 정부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참가 각국 선수단과 각국 언론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다. 미국농구팀은 모기를 피하기 위해 항구에 1만6천7백톤급 크루즈 선을 띄울 계획이고 영국 대표팀은 모기가 접근하기 어려운 고층에 선수단 숙소를 배정하기로 했다. 호주 선수단은 마지막 단장이 덜 댄 숙소에 불만을 품고 선수촌을 퇴촌하기도 했다. 한국선수단도 자카 바이러스 등 여러 병에 대비해 예방주사를 맞고 모기장과 모기채를 갖고 떠나는 등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는 모습이다.


 리우올림픽은 설상가상으로 약물복용제재강화에 나선 국제올림픽위원회와 각 국제연맹 등의 방침으로 도핑전력이 있는 러시아 선수 등이 참가하지 못하게 돼 경기 내용면에서도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한국 언론을 비롯한 각국 언론들은 내우외환으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는 리우올림픽의 실상을 잇달아 보도해 가뜩이나 힘든 리우올림픽을 더욱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브라질 당국자들은 세계언론이 리우올림픽의 상황을 과장하게 보도하는 측면이 있다며 리우올림픽을 디딤돌로 삼아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다고 한다.


리우올림픽이 30여년전 동병상린의 서울올림픽처럼 남미 사상 최초로 열리는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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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계올림픽은 왜 7, 8월에 집중해 열리나

#김학수 교수








궁금했다. 4년마다 한번씩 열리는 올림픽이 여름에 많이 열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날씨 좋은 봄이나 가을 대신에 무더위와 장마 등이 빈번한 여름철에 해야 올림픽이 더 유리한 것일까? 처음에 올림픽을 보면서는 여름에 열리는 불문율이 있다는 것을 잘 몰랐다. 바쁜 일상으로 올림픽을 잊고 지내다가 여름 휴가 때 열리는 올림픽을 보면서 4년이란 시간이 또 지났음을 아는 이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수십년간  올림픽이 여름철에 많이 열린다는 것을 알고는 아주 신기하면서 의문이 생겼다. 

그동안 하계올림픽은 본격적인 현대올림픽의 골격을 갖춘 1932년 LA올림픽 이후 아시아에서 열린 1988년 서울올림픽(9월15~10월1일)과 1964년 도쿄올림픽(10월10~24일) 등 두 번의 올림픽과 1968년 멕시코 올림픽(10월12~27일), 1956년 멜버른올림픽(11월22~12월8일) 등 4개 대회를 빼고는 여름철인 7,8월에 집중해 열렸다.  

리우올림픽은 오는 8월6일부터 22일까지 또 다시 한 여름철에 벌어진다. 남미대륙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리우올림픽은 남반구 계절로는 사실 겨울에 열리는 것이다. 북반구와 계절이 정 반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의 주요 국가들이 북반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세계인들의 대부분의 관점에서는 보면 리우올림픽은 엄연한 하계올림픽이다.


그동안 하계올림픽은 한 여름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비지땀을 쏟으며 질주하는 젊은 세계 남녀 청춘들이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불굴의 정신력과 인내력을 발휘해 많은 감동을 선사했다. 가마솥 더위에 숨이 끊어질듯한 고통과 아픔을 참고 견디며 결승선을 향해, 승리의 고지를 향해 달려야 하는 것은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라면 넘어야 할 벽이자 숙명이다.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고 할까. 뜨거운 더위를 경기력으로 맞서는 선수들의 투혼이 있기에 하계 올림픽은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더위와 싸우며 아름다운 감동과 소설보다 더 풍성한 스토리를 전해주는 하계올림픽을 보면서 세계 스포츠팬들은 무더운 더위를 이겨낸다.










여름은 자연상으로 동식물이 번성하는 시기이지만 인간에게는 더위와 폭우 등으로 고통스런 계절이다. 학문을 배우는 학생들은 여름에 방학이라는 휴식기를 갖고 더위에 지친 심신을 달래며, 성인들은 여름 휴가로 일시적으로 무거운 노동의 짐을 덜어낸다. 여름철에는 스님들조차 탁발을 하지 않고 ‘안거(安居)’라는 수도를 한다. 여름에는 벌레들이 성하기 때문에 스님들은 살생계를 범할까 봐 나돌아다니지를 않고 ‘하안거(夏安居)를 한다고 한다. 

건강을 위해 보양과 수양을 하고 휴식을 취하는 한 여름에 젊은 청춘의 선수들이 올림픽 무대에서 뜨거운 승부를 펼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비인간적인 모습일 지 모른다. 하지만  올림픽이 고대 그리스에서 신앞에서 경쟁보다는 화합과 배려, 단결을 통해 인류 평화를 기원하는 제례 행위의 형식으로 열렸다는 역사적 기원을 생각한다면 올림픽 자체는 애초 인간적인 영역을 넘어서는 무대라고 할 수 있다. 인간들이 펼치는 비인간적인, 신적인 제전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초인간적인 선수들이 벌이는 무한 경쟁의 무대였기 때문에 세계인들이 뜨거운 환호를 보내지 않았을까 싶다.


올림픽의 여름 개최결정은 선진국의 영향이 컸다. 프랑스 쿠베르탕에 의해 고대 올림픽 정신을 부활할 목적으로 창시된 근대올림픽이 지속적인 형태를 갖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1896년 아테네 대회부터 1928년 암스테르담 대회까지는 대회가 4월부터 10월사이에 열렸고, 대회 기간도 2개월씩이나 진행됐으며 무계획적인 행사들이 많았다. 하지만 한국인의 첫 올림픽 참가였던 1932년 LA올림픽서부터 체계를 갖추기 시작하면서 대부분 7, 8월에 대회를 치르게 됐다. 참가국과 선수수가 늘어나고 경기종목이 증가하면서 정례적인 대회 일정이 필요하게 됐기 때문이다. 특히 TV 등 방송매체의 영향력이 커지고 중계권료의 비중이 커지면서 올림픽 일정은 여름철로 고정화하는 경향을 보였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올림픽 규모의 확대로 올림픽 개최국의 비용부담이 늘어나게 됨에 따라 TV 중계권료가 올림픽 재정의 최대 수입원으로 자리잡으면서 미국 NBC 방송사 등 미국 거대 방송사의 영향력에 의해 올림픽 일정을 7, 8월 사이로 결정했다. 물론 1988년 서울올림픽과 2000년 시드니올림픽과 같은 예외가 있었지만 미국과 유럽의 프로스포츠 종목들의 하한기를 올림픽 개최 적기로 선택, 올림픽 중계 효과를 톡톡히 살리려했다.


개최시기가 선진국 주도로 결정된 올림픽은 어떻게 보면 선진국들의 잔치라고 할 수 있다. 1976년 양정모가 레슬링에서 첫 금메달을 따기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선진국들의 올림픽 잔치를 한 여름에 끈적끈전한 땀을 흘리며 찜찜하게 지켜봐야 했다. 하지만 1984년 LA올림픽이후 본격적인 올림픽 금메달 수확에 나선 한국은 4년마다 가슴 벅찬 금메달 소식을 전해주고 있다. 한 여름의 올림픽 열기를 이어나가며 한국은 지난 30여년간 초고속 성장을 거듭하며 세계 10대 스포츠강국으로 자리를 잡았다. 리우올림픽에서 더위와 모기가 매개하는 자카바이러스와 싸우며 뜨거운 금메달 경쟁을 벌일 대한민국 선수단의 한여름 승전보가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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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여자농구의 전설, 팻 서민감독, 우리 마음속에 잠들다. 

#이영미 박사






필자는 ESPN 앱을 통해서 스포츠계의 뉴스를 받아보곤 한다. 그러던 중, 2016년 6월 말이 되면서 필자의 핸드폰 알림에 부쩍 늘어난 공지가 있었다. 그것을 볼 때마다 마음이 한구석이 먹먹해 지는 그런 뉴스. 그것은 다름 아닌 팻 서밋(Pat Summitt)감독이 위중하다는 뉴스였다. 이 글을 접하는 스포츠 둥지 독자들 중 그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사실상 필자도 체육인재육성단의 해외연수생으로 미국의 테네시대학에서 공부할 기회가 없었다면 모르고 지나쳤을 그녀를 우선 소개한다.


 

  


       < 팻 서밋 감독 >    < NCAA 감독들의 승수>




팻 서밋 감독은 테네시대학(The University of Tennessee)에서 1974년부터 2012년까지 무려 38년 동안 Lady Vols라는 닉네임을 가진 여자농구팀의 감독을 했던 분이다. 농구 국가대표였던 필자의 지인이 연수를 위한 미국 비자 인터뷰할 때의 일화를 얘기하자면, 테네시대학에 연수를 간다고 했더니 담당영사가 대뜸 테네시대학은 여자농구가 매우 유명하니 가서 배울 것이 많을 것이라고 조언해 주었다고 한다. 이는 매우 많은 미국인들이 그녀가 38년간 이끌었던 테네시대학의 여자농구팀을 기억하기에 해준 조언이라 미루어 생각해본다. 그녀가 이룬 기록들 중 눈에 띄는 것은 통산 1,098승 208패라는 놀라운 기록이다. 이 기록이 별로 놀라움에 와 닿지 않는다면, 다음과 같이 짚어보면 가늠해 볼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보통 미국대학농구의 한 시즌 경기가 30여 경기인 것을 감안하면 더욱 놀라운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전미 대학스포츠협회(NCAA ; National Collegiate Athletic Association)의 정규리그를 거쳐 플레이오프 및 파이널에 진출하면 경기수가 늘어나기에 가능했던 기록이기도 하지만 매년 평균 약 29게임을 승리하고 매년 6게임 이하로 패했다는 기록은 실로 대단하지 않은가? 이러한 승률에도 불구하고 단지 7번의 NCAA 우승과 1번의 전국 대회 우승을 하였다는 사실은 우승이 매번 쉽게 Lady Vols에게 돌아가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기도 한다. 작년 우승팀이자 올해 NBA 파이널에서도 정규시즌 연승을 달리던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가 2연패 달성에 실패한 것만 보아도 승률 좋은 팀이 꼭 우승을 한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그녀가 이끌던 시절의 Lady Vols의 승률은 8할대 였다고 하니 최강팀으로 미국영사가 그들을 기억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듯 싶다. 통산 2번째를 달리고 있는, '코치 K'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듀크 대학교의 마이크 슈셉스키(Mike Krzyzewski) 감독은 2016년 현재 1043승을 기록 하고 있지만, 쉽사리 그녀의 기록을 넘어선다고 장담할 수 는 없는 상황이다.


테네시대학의 농구경기장에는 그간 이루었던 7번의 NCAA 우승 연도가 새겨진 배너와 영구결번 선수들의 저지가 경기장 상단에 자리 잡고 있다. 아래 번호 중 3번인 캔디스 파커는 덩크하는 여자선수로 유명한 현재 WNBA의 최고 미녀스타이며, 24번의 타미카 캐칭스는 우리나라에서 외국인 선수로 4시즌을 활약하였고 소속팀이었던 우리은행이 3번의 우승을 하는데 크게 기여한, 자타공인 WNBA의 전설적인 스타이다, 최근 그녀는 통산 7천 득점 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22번인 홀리 월릭은 팻 서밋 감독의 후임으로 테네시 대학 여자농구팀을 이끌고 있다. 실로 대단한 선수들을 많이 배출한 농구 명문팀 인 것이다.


 


  


       <NCAA 우승년도> <영구결번 선수들의 저지 >




2011년 8월에 그녀는 언론을 통해 미국을 다시 한번 놀라게 했다. 그것은 그녀가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고 투병중이라는 사실을 밝힌 것이었다. 59세라는 실로 젊은 나이였기에 주변인뿐 아니라 본인도 받아들여지기 힘든 상황이었을 것이라 미루어 짐작해 본다. 그러나 그녀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치료에 대한 강한 의지와 함께 알츠하이머 치료와 예방을 위한 팻 서밋 재단을 설립하였고 Lady Vols는 2012년까지 이끌었다. 은퇴 후에도 팻 서밋 재단을 통한 알츠하이머 예방과 치료를 위한 활동을 열심히 했다고 한다. 필자는 2015년 테네시대학 연수시기에 종종 농구경기를 관람할 기회가 있었다. 그 중 한번은 그녀가 경기장에 나와서 경기를 관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끝까지 관람이 여의치 않았는지 3쿼터 종료 후 경기장을 떠나는데 갑자기 관객들이 일제히 기립박수를 치며 그녀가 경기장을 떠나는 모습을 격려하고 응원하는 모습을 보았고 그녀 또한 옅은 미소를 띄우며 관객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아주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찡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 테네시 대학의 농구 경기장 바닥에 새겨진 팻 서밋 알츠하이머 재단 >




 

팻 서밋 감독은 36명의 WNBA 선수를 배출했다. 테네시대학 출신의 WNBA 선수들은 전통적으로 비시즌(WNBA는 겨울이 비시즌)에 모교를 방문하여 은사들을 찾아 뵙고 후배들과 함께 운동하며 조언을 해준다고 한다. 앞에서 잠시 언급했던 한국 여자 농구팬에게도 잘 알려진 타미카 캐칭스 역시 2015년 겨울에 테네시 대학을 찾았다. 때마침 우리은행에서 4년 동안 타미카 캐칭스와 함께 선수생활을 했던 김은혜 선수도 테네시 대학에서 연수중 이어서 그들의 조우가 이루어 질 수 있었다. 몇 년 만에 만난 팀 메이트 간의 반갑고 정겨운 대화 중 팻 서밋 감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니 타미카는 그녀와의 대학시절에 대한 추억들을 들려주었다. 김은혜 선수의 '팻 서밋 감독이 타미카를 잘 기억하고 있냐'는 질문에는 눈시울이 붉어지며 기억을 하며 반겨주실 때도 있고, 잘 기억을 못할 때도 있다는 대답에 우리도 함께 숙연해졌었다. 그녀의 스승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며 타미카 캐칭스가 무척 그녀를 존경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 타미카 캐칭스의 졸업식 > < 필자, 타미카 캐칭스, 김은혜 선수 >



필자가 타미카 캐칭스의 최근 뉴스 기사를 검색하던 중 발견한 "2015년에 그녀를 방문 했을때 그녀는 '나를 늘 기억해 줘'라고 했다"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팻 서밋은 알츠하이머로 희미해지는 기억 앞에서 사람들이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 했던 것일까? 만약 그녀가 그런 두려움이 있었다면 그것은 그녀의 기우였다. 그녀가 사망한 6월 28일에는 각종 스포츠 관련 사이트에서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뉴욕양키즈는 다음날 경기에서 그녀를 추모하지 않고서는 경기를 시작할 수 없다하여 추모시간을 가진 후 경기를 하였다. 또한 그녀의 제자인 캔디스 파커는 현재 WNBA에서 맹활약 중인데, 경기 후 인터뷰에서도 눈물을 쏟아내며 그녀를 추모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만나 뵌 적 없고 먼발치에서 바라만 본 필자도 그녀를 생각하면 마음이 짠한데 그녀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 슬픔을 어찌 말로 표현 할 수 있을까 싶다.



< 뉴욕 양키스 경기 전 추도 모습, 출처: 포커스 뉴스 >


 

  


<전 농구 국가대표 김은혜 선수의 SNS 추모의 글> < 팻 서밋 감독 사후 그녀를 기리는 많은 사람들>




 

최근 '디어 마이 프렌드'라는 드라마가 화제였다. 노인인구가 늘어나는 일어나는 일들과 여러 인물들을 보여준 것이었는데, 필자는 그 중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인물을 보며 팻 서밋 감독을 생각하곤 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의 두려움과 온전한 정신일 때의 고뇌를 보며, 두려움과 함께 너무 슬픈 병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진단을 받고 5년이라는 짧은 시간 후에 사망에 이른 그녀를 보며 너무 빨리 생을 마감했음을 안타까왔다. 그녀가 보여준 38년간 팀을 이끈 리더쉽과 카리스마, 알츠하이머 진단 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준 용기와 의지, 또한 그녀에게 보내준 스포츠 영웅에 대한 미국인들의 예우를 보며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필자는 그녀가 단지 대기록을 만들어낸 감독이기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최고의 전성기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주저앉고 싶은 힘든 병을 만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세상에 내어놓고 극복하고자 하는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받고 더욱 존경을 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생존하고 있는 동안에 세워진 동상이 그러한 존경심을 보여주는 반증이라 생각된다. 일면식도 없이 먼발치서 단 한번 뵈었던 그런 분이지만 그녀의 일화들을 통해 외경심을 갖게 되는 그런 분이다. 그녀는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롤 모델로 기억 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것 이라는 생각을 하며 추모의 글을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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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의 영혼을 맑게 하는 프로스포츠

김학수교수








미국의 대표적인 블로그 뉴스매체인 허핑턴포스트의 스포츠 섹션에 올라있는 한 글이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허핑턴포스트 스포츠 섹션은 다양한 전문가들의 글이 많이 올라와 자주 찾아 들어가 보곤하는데, 마침 한 기사가 꽂혔다.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우승은 영혼을 위해 좋다(The Cleveland Cavaliers'Win Is Good For The Soul)'이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오하이오주에서 낳고 자라고 클리블랜드에 살고있는 라부엘 이트먼이라는 미디어관련 여성 사업가가 쓴 이 글은 제목에서 풍기듯이 상당한 감정적이고 가슴에 와 닿는 문체로 ’농구킹‘ 르브론 제임스가 맹활약한 클리블랜드의 우승 뒷이야기를 열혈팬의 시각에서 묘사했다.


농구팀, 야구팀, 미식축구팀 등 클리블랜드를 연고로 한 3개 프로스포츠팀의 지난 역사와 올해 NBA서 농구팀이 극적으로 우승하기 까지의 역경과 시련의 이야기를 극적으로 표현했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스포츠팬이라고 다 같은 스포츠팬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홈팀에 대한 절절한 애정과 관심이 상식을 넘어 삶의 자양분일 뿐아니라 정신적인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경지에까지 올라섰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클리블랜드 스포츠팬들은 지난 52년동안 세 프로스포츠팀과 길고 지루한 길을 함께 해왔다. 농구, 야구, 미식축구팀들이 연달아 패하는 것을 오랫동안 지켜봤다. 1995년 미식축구팀 클리블랜드 브라운스가 연고지를 볼티모어로 이전했을 때, 2010년 오하이오의 영웅 르브론 제임스가 “내 재능을 마이애미 히트에 쏟아붓고 싶다”고 TV 생방송에서 발표하며 전격적으로 팀이적을 단행했을 때, 클리블랜드팬들은 매우 분개했었다. 팬들은 TV 카메라 앞에서 르브론 제임스의 저지를 불태우고 분노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필자인 이트먼은 이러한 순간을 ‘난장판(hot mess)'라는 극단적인 용어로 표현했다.






패배, 당혹감, 실망의 감정은 클리블랜드 스포츠팬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는 개인적으로도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집단적으로로까지 감성을 공유하며 큰 영향을 미쳤다. 클리블랜드에서 스포츠는 가장 큰 행사였을 뿐아니라 스포츠팬들에게는 삶 자체였다. 스포츠를 사랑하고 좋아하는 클리블랜드 시민들은 승리를 위한 행진곡이 울리기를 간절히 원했다. 남에게 보이고 으스대기 위한 것보다는 사람들의 영혼에 울림을 주며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승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는 1주전 마침내 NBA 챔피언쉽을 차지하면서 클리블랜드 역사상 가장 달콤한 승리를 홈팬들에게 선사했다. 캐벌리어스는 NBA 결승전사상 처음으로 1승3패의 절대열세를 뒤엎고 마이클 조던에 버금가는 ‘레전드 슛터’ 스테판 커리가 이끄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를 4승3패로 극적으로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하는 실현불가능한 신화의 주인공이 됐다.


이트먼은 “우리는 이 순간을 간절히 기다렸다. 그것은 초현실적인 순간이었다. 르브론 제임스가 ‘팬들과 함께 살고 함께 죽는다’고 한 말처럼 우리는 그들과 함께 했으며 그들의 저지를 입고 브랜드를 구매했다”며 농구팀에 대한 강렬한 애정을 표시했다.

올해 NBA 우승은 단순한 프랜차이스팀과 르브론 제임스, 구단의 우승 그 이상이었다. 이트먼에 따르면 캐벌리어스의 우승은 팬들에게 올바른 방향을 향해 살아갈 힘을 주었으며 중요한 클럽에 같이 속해있다는 연대감을 주었다고 한다. 이트먼은 “우리는 따뜻한 해변과 월스트리트 같은 돈많은 장소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서로가 중요하다는 것을 세계에 알리기를 원한다”며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앞으로는 공유의 가치를 갖고 슬기롭게 잘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록 한 열성팬의 글이었지만 그 내용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스포츠는 팬들에게 오락과 즐거움을 선사하면서 한편으로는 영혼의 감동을 주기도 한다는 것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스포츠에 대한 사랑은 피상적인 열광과 환호를 넘어서 정신의 자유를 만끽시키는 ‘플라토닉 러브’로 승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우리 프로스포츠도 팬들과 신뢰와 교감을 쌓으며 정신적으로 성숙하는 문화를 만들어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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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와 영국의 축구 민족주의

김학수 교수





오늘날 세계 최고의 사회학자인 영국의 앤서니 기든스는 축구를 좋아하던 학생시절 석사논문을 축구에 대한 사회사에 관한 것으로 집필했다. 어릴 적부터 축구에 대한 많은 애정을 갖고 있었던 그는 석사논문에서 중상층 스포츠인 럭비는 원래는 경쟁적이지 않았던 반면 하층계급 스포츠인 축구는 매우 경쟁적이었다고 설명했다. 부르주아는 일에서 개인적이고 경쟁적이기 때문에 스포츠에서는 정반대를 원한 반면, 노동계급은 집단 작업환경에서 개인주의를 내세울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경쟁적인 축구를 원하게 됐다는 것이다. 집단주의 성향을 보인 노동자층이 축구에 열광적인 이유를 이론적으로 밝혔다.


서구에서 가장 먼저 산업혁명에 성공한 영국은 산업혁명의 여파로 도시화, 산업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시민들의 여가와 건강을 도모하기 위하여 다양한 스포츠를 고안해 현대스포츠의 본고장이 됐다. 3천년전 중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축구는 1863년 영국에서 현대화된 규칙을 제정,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로 자리잡게됐다. 비용도 들지 않고 볼과 평평한 운동장만 있으면 가능하고, 골키퍼를 빼고는 손을 쓰지 않고 볼을 골네트 뒤로만 보내지 않으면 되는 간단한 규칙으로 많은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축구는 세계화에 성공했지만 불행히도 종주국 영국에서 홀리간을 중심으로 폭력과 외국인 혐오의 극단성과 폐쇄성을 자주 드러내며 세계화에 거꾸로 가는 모습을 보였다. 최근 유로 2016에서 팬들사이에서 집단 난투극이 벌어지고 경기장으로 불폭탄이 난무하는 불상사가 연출된 것은 축구에서 형성된 상대에 대한 적대감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를 잘 보여주었다.


영국축구는 프리미어리그를 세계 최고의 프로축구로 자리잡게 했지만 한편으로는 홀리간들의 잦은 난동으로 세계 축구팬들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많이 남겼다. 훌리간들의 대부분은 하층계급인 노동자들과 청소년들로 민족주의와 집단주의 성향을 보이며 극한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수일 전 세계 경제를 공항상태로 몰아넣은 영국의 유럽연합탈퇴(브렉시트·Brexit)는 대단히 충격적인 일이다. 주목할 점은 세계화 시대에 역행하는 영국의 브렉시트의 배경으로 축구가 작용을 했다는 것이다. 축구를 좋아하는 영국의 하층계급들이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에 찬성표를 대거 던졌기 때문이다. 브렉시트를 통해 표출된 반이민 정서와 기득권층에 대한 분노와 불만, 실망, 세계화에 대한 거부감 등은 축구에서 나타나는 훌리간들의 감정과 일맥 상통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세계경제에 엄청난 파장을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브렉시트를 결정한 것은 영국축구에서 벌어진 그동안의 여러 상황들을 더듬어보면 어느정도 예견할 수 있었던 일이다. 영국축구는 해외 식민지를 통해 각국으로 축구를 전파시켰으면서도 국내적으로는 지극히 폐쇄적인 환경을 유지했다. 종족주의, 인종주의, 계급주의 등이 축구팀, 축구선수, 축구관중 등에서 나타나며 세계화에 대한 신화를 깨뜨렸다. 






지난 2001년부터 8개월간 축구의 본고장 영국과 브라질, 그리고 내전으로 멍든 발칸반도의 국가 등 세계축구의 현장을 답사한 뒤 ‘축구는 어떻게 세상을 설명하는가:그럴듯하지 않은 세계화이론’(How Soccer Explains the World:an Unlikely Theory of Globalization, 하퍼콜린스 간, 2004)을 펴낸 바 있는 미국의 정치전문 칼럼니스트 프랭클린 포어는 영국에서 축구는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단순한 스포츠 경기가 아니라 때론 사회 계층과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대신하며, 종교보다 더 독실한 믿음을 강요하기도 하는 등 그야말로 삶의 방식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책에서 그는 영국의 홀리건 이야기의 상세한 내용을 전했다. 1999년에 셀틱과 레인저스의 더비 경기 후에 발생한 사건기록은 역시 영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칼 맥그래오티라는 사람은 석궁에 가슴을 찔렸고, 토마스 맥파든이란 사람은 가슴, 배, 사타구니를 칼로 찔렸고 살해됐다. 이렇게 과격한 공격이 오가는 이유로 종교를 들었다. 레인저스의 응원단은 대부분 개신교 신도들이며, 셀틱은 가톨릭였다. 페니안의 피가 우리의 무릎을 적시네 라는 노래를 부르며 응원하는 레인저스의 응원단은 1920년대에 KKK단의 지부를 설립하기도 했다. 같은 도시에 적을 둔 라이벌간의 경기는 영국 축구 리그의 또 다른 볼거리지만, 셀틱과 레인저스는 종교라는 원인 때문에 단순한 적의 그 이상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개신교와 가톨릭, 경제적 차이 등의 환경은 셀틱과 레인저스의 경기가 스포츠로 끝나지 않는다. 팀의 승리는 곧 종교의 승리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세계 축구의 본고장인 영국축구는 종족주의, 종교주의 등 세계화의 부정적인 측면을 내부적으로 오랫동안 키워왔으며 홀리간을 중심으로 자라는 이탈된 민족주의가 급기야는 국민적인 감성으로 자리를 잡아 이번 브렉시트를 통해 그 이면의 모습이 수면 밖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브렉시트파동을 통해 축구에 대한 세계화의 역풍을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업다. 축구는 전 세계 어디서나 인류의 사랑을 받는 글로벌한 종목이기 때문이다. 국제축구연맹 회원국은 현재 210개국으로 유엔(UN) 가입국(193)보다 많은 세계 최대의 단체로 이념, 종교, 인종을 초월해 세계화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축구가 단일화된 언어로 세계인들의 소통과 공통 이해의 기회를 만들며 세계평화와 인류발전에 많은 역할을 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영국이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했지만 이에 관계없이 영국의 프리미어리그가 멋진 경기로 세계인들의 사랑을 계속 받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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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정치적 고립

#축구는 속성상 글로벌 종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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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의 혁명, 스포츠 산업의 큰 변화를 가져온다





글 김학수




지난 3월 구글 딥마인드사가 개발한 바둑 소프트프로그램 ‘알파고’가 세계바둑 최고수 이세돌을 4-1로 꺾은 것은 인공지능의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알파고의 성과는 최근의 비약적인 과학적 기술의 진보로 가능했다. 1993년 미국의 컴퓨터학자 버너 빈지는 ‘싱글레러티(Singularity)'라는 개념을 통해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며 인간과 경쟁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으로 예상했다. 인간과 기계가 결합하여 미래에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특이한 시점인 ’싱글레러티‘시대가 펼쳐질 것이라는 점이다.


기계적 학습에 의해 패턴인식기술이 날로 향상되며 컴퓨터가 마침내 우주의 원자만큼 많은 경우의 수를 갖고 있다는 바둑에서 인간을 상대로 승리를 함으로써 앞으로 본격적인 인공지능의 시대를 맞게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 법률, 의료, 재무 등에서뿐 아니라 스포츠에서도 인공지능을 통해 많은 변화가 일어날 전망이다.


삼성그룹은 최근 신입사원 인적성검사시험에서 인공지능과 관련해 온라인 투자자문서비스인 ‘로보어드바이저’를 활용하는 문제를 출제했다. 인공지능이 본격적인 화제로 등장하면서 기업들도 큰 관심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마침 봄 학기 중간고사를 맞아 인공지능과 관련한 시험문제를 모 대학 학생들에게 출제했다. 문제는 인공지능 기술이 스포츠산업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였다. ‘스포츠산업정보론’이라는 과목에서 강의 시간에 말한 사례와 일화를 중심으로 학생들이 상상력과 창의성을 발휘해 답변을 작성하도록 했다.


예상했던대로 서술형 시험의 내용은 다양했다. 운동 선수 경험이 있거나 현재 운동 선수로 활동하고 있는 학생, 운동을 하지않고 공부만하는 학생들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에 펼쳐진 인공지능의 세상을 여러 시각으로 다루었다. 학생들은 대체적으로 스포츠서비스업, 스포츠시설업, 스포츠용품업 등 스포츠 산업에서 전반적으로 큰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스포츠서비스업 가운데 경기분야에서 인공지능은 이미 많은 변화를 가져 왔으며, 앞으로 변화의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라는데 의견을 모았다. 인공지능에 의해 분석된 수많은 데이터가 제공되면서 실전에서 과학적인 정보를 본격 활용하며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것이다. 이른바 ‘알파고 감독’, ‘알파고 선수’의 탄생을 예고했다.


육상 장거리 선수생활을 했던 한 학생은 인공지능기계가 마라톤에서 페이스메이커하는 상황을 설명했다. 얇은 선수층으로 세계수준과 큰 차이를 보이는 한국마라톤이 새로운 도약을 하기 위해선 선수들간의 경쟁력을 높여주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페이스메이커의 운영을 인공지능기계의 발전으로 기계가 대신 해주는 상황을 예상했다. 상위랭커의 마라토너들도 경기에 들어가면 오버페이스로 무리한 경기운영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인공지능의 발달로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일정한 속도로 페이스를 유지해 나가는 과학적인 운영을 하는게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신의 영역’인 마라톤 1시간대 돌파도 인공지능이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으로까지 전망했다. 프로스포츠와 같은 단체 경기에서는 현재보다 훨씬 수준높은 경기력이 인공지능에 의해 펼쳐지리라는 분석도 내놓았다. 수많은 정보의 활용으로 선수들의 몸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효율적인 전략과 개인적 기량을 구사, 최고의 경기력을 생산하게 되며, 훈련서도 여러 가지 인공지능을 활용하리라는 점이다. 따라서 ‘제2의 메시’, ‘제2의 호날두’, ‘제2의 커리’ 등과 같은 선수가 쉽게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농구선수로 활동하고 있는 학생은 이미 야구 피칭머신과 같은 공을 쏘아주는 기계가 등장해 훈련하는 방식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 기계는 선수가 쏜 공을 다시 패스해 줄 뿐만 아니라 선수가 쏜 슛의 수, 골인한 수까지 정확하게 알려준다고 한다. 부족한 개인기술, 기본기, 스킬 등을 익히게 하는 스킬팩토리도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스킬팩토리의 활용으로 드리블, 슛, 패스 등에서 선수의 기량을 크게 향상시켜 나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직 비싼 기계값 때문에 대중화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기술적 발달에 의해 일반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인공지능의 다양한 기술과 방법 등을 활용해 정확하게 불공정하거나 오심으로 생긴 심판들의 판정을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이끌어낼 수 있으리라는 것도 언급했다. 이른바 ‘알파고 심판’까지 예상한 것이다.

고객의 측면에서도 많은 변화를 예고했다. TV 등 미디어를 통해 경기장에서 경기를 보던 것을 넘어서 고글 하나만 착용해도 실시간으로 라이브 경기를 보는 게 가능하며, 선수들과 같이 고객들이 직접 경기를 뛰는 듯한 생동감있는 컨텐츠를 직접 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사물인터넷, VR(가상현실) 등과 같은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인공지능은 더욱 많은 변화를 가져오리라는 예상이다. 고객들의 다양한 정보를 담은 센서 하나로 경기장 주차문제, 티켓 판매, 심지어는 화장실 이용문제까지 고객 중심적으로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미 수원 KT위즈 야구장에서는 VR을 통해 경기 생중계 장면을 실제로 고객들에게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많은 돈이 들어가는 경기장 건설에서도 인공지능은 건설비용을 크게 절약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실내온도와 습도 조절 등을 통해 에너지 소모를 줄이고 태양광 등 무상 에너지를 활용하면서 에너지 이용효과를 극대화시키며 고객들이 아늑하게 경기를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시설 등을 갖춰놓으리라는 예상이다.


스포츠용품업에서는 3D프린팅의 기술적 발달로 소비자가 의류, 스포츠 기구류 등을 직접 생산하며 소비자가 생산자가 되는 ‘프로슈머’의 세상이 활짝 열리리라는 전망도 빠지지 않았다.

인공지능의 발전은 앞으로 스포츠 산업에서 많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 번 기술적 발달이 이루어지면 폭발적으로 빠른 속도로 기술적 향상이 이루어진다는 무어의 법칙처럼 광범위하고 예상치 못한 분야에서 인공지능이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하지만 빌 게이츠, 스티븐 호킹, 엘런 머스크 등과 같은 과학자와 기술자들은 인공지능의 고삐풀린 성장은 인간의 영역을 침범함으로써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인간과 인공지능은 협업과 학습을 통해 인간이 좀 더 나은 삶을 영위하는 데 이바지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게 대체적인 학생들의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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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이 뼈를 튼튼하게 하지 않는다

뼈에 대한 오해와 진실






글 김학수



운동이라고 하면 무조건 몸에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마치 운동을 몸을 지키는 ‘수호천사’ 쯤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운동매니아’들이 대부분인 이런 사람들은 매일 걷기, 달리기 등으로 몸 건강을 지키느랴 여념이 없다.


운동이 몸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맞지만 운동효과를 맹신 하는 것은 좀 생각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싶다. 지나친 운동으로 몸을 상하기도 하고, 잘못된 정보와 지식으로 심각한 부상을 입기도 하니까 말이다.


운동과 뼈에 관해 일반인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도 그 중 하나이다. 운동을 하면 뼈가 튼튼해지고 좋아진다는게 그동안의 통설이었다. 하지만 이는 허구인 것으로 드러났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건강코너에서 ‘ 운동이 강한 뼈를 만드는 길이 아니다(Exercise Is Not the Path to Strong Bones’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적절한 운동이 뼈의 양을 늘리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은 맞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그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은 뼈를 강하게 만들기 위해 걷기를 하거나 근력운동을 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뉴욕타임스의 보도는 이들에겐 ‘아닌 밤중에 홍두깨’격이라고 들릴 수 있겠다. 운동을 할 지, 말 지 고민해야 할 판이다.






많은 공중건강 관계자, 인터넷 건강사이트 등은 뼈가 약해지는 것을 막아주고 뼈를 튼튼하게 하기위한 운동처방을 권유하고 있다. 하지만 골다공증 연구자들은 이러한 운동처방은 의학적 연구결과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충고한다. 누구 말을 믿어야 할 지 헷갈리지 않을 수 없다.


뉴욕타임스 기사는 5번 마라톤 완주기록을 갖고 매일 운동을 하는 기나 코라타라는 이름의 필자가 썼다. 그는 이 기사를 읽고 사람들이 운동을 할 필요가 없다는 느낌을 갖게 되기를 원치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실제로 뼈와 운동간의 상관성에 대해 정확하게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기사를 쓰게 됐다고 했다. 기사에서 “운동은 확실히 신체에 여러 긍정적인 효과를 주지만 골절을 막을 정도로 충분하게 뼈를 강화시켜 주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특히 그는 성인들을 대상으로 체중부화운동은 뼈 형성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분명히 했다.





많은 사람들은 오랜 침대생활을 하는 환자, 무중력 상태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우주인들의 경우 뼈양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여러 학자들의 발표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뼈 강화에 대한 운동처방은 이러한 것에서 비롯된 추론에서 나오지 않았는가 여겨진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끌어당기는 중력효과는 뼈 근력에 필요한 듯 하나, 뼈 자체가 중력의 힘으로 생기는 것인가에 대해선 과학자들도 확실한 연구결과를 갖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는 설명이다.


대부분의 과학적 연구들은 매일 걷기는 뼈 건강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 것으로 밝혀냈다. 과학자들은 성인들이 체중부하운동을 통해 뼈밀도를 증가할 수 있는 지를 밝혀내기 위해 영상의학장비 ‘DEXA'를 통해 X선을 뼈에 투사해 운동 전후의 밀도변화를 측정했다. 결과는 1% 이하의 극히 미세한 변화만이 감지됐을 뿐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예상했던대로 침대생활을 오래한 환자나 우주인들의 경우 뼈 손실이 있다는 것을 DEXA는 확인했다. 하지만 사람이 걷거나 달릴 때 뼈가 생성되는 여부에 대한 어떠한 증거도 확인할 수 없었다는게 기사의 내용이었다.







분석을 위해 43건의 사례와 4,320명의 연구 참가자가 운동과 뼈밀도의 상관성관계를 밝히기 위해 참여했으며 “운동은 뼈밀도에 매우 적게 통계적으로 효과를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는 설명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뼈가 성장하는 어린이들이나 청소년의 경우 운동이 뼈 형성에 직접적인 도움을 준다고 이해하고 있는 것은 맞다고 밝히면서 뼈 성장이 멈춘 성인들에게 운동은 별 효과가 없다고 그는 덧붙였다.


뼈와 운동간에 상관성에 대해 기존의 오해가 바로 잡히며 앞으로 운동효과에 새로운 시각들이 많이 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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