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체육 ]/체육철학 +72

 

 

글/송형석(계명대학교 교수)

 

 

        스포츠도덕이란 어떤 것일까? 전통적 의미에서 스포츠도덕은 스포츠규칙의 자발적 준수를 의미하였다. 철학자 게르하르트는 스포츠는 규칙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에 선수들이 규칙을 충실하게 지키는 한에서만 스포츠를 한다고 말할 수 있다고 하였다. 즉 스포츠선수는 자신이 참가하는 스포츠경기에서 그것의 구성적 조건인 규칙을 충실하게 준수해야만 스포츠선수라는 것이다. 만일 그가 자신이 참가한 스포츠경기의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는 더 이상 스포츠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나아가 더 이상 스포츠선수도 아닌 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스포츠규칙을 준수하지 않는 모든 선수는 스포츠선수가 아닌 자가 되며 비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자가 되는 것인가?

 

 


만일 스포츠에서 도덕적 선수와 비도덕적 선수의 구별 기준, 참된 의미에서의 스포츠선수와 스포츠선수가 아닌 자의 구별 기준이 규칙의 자발적 준수에 있다면 대부분의 선수들은 비도덕적 선수 또는 스포츠선수가 아닌 자에 속하게 될 것이다. 현대 경쟁스포츠에서 규칙 위반은 예외가 아니라 일상에 속하기 때문이다. 경기 장면을 관찰해보면 규칙 위반은 비도덕적 행위라기보다는 오히려 경기의 일부처럼 보인다. 심판은 규칙을 위반한 선수에게 규칙 위반의 정도에 따라 경고, 패널티 부여, 퇴장 같은 벌칙을 부과한다. 선수들이 위반해도 스포츠선수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하등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 규칙들도 있다. 그래서인지 경기에서 규칙 위반은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이와 같은 현실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전통적 의미에서 스포츠도덕의 준수를 강력하게 주장한다면 그와 같은 주장은 현실을 무시하는 처사이며 잠재적으로 모든 선수들을 비도덕적인 인간으로 만드는 것과 같다.


현실적 스포츠상황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다. 전통적 스포츠윤리는 정정당당한 승리, 스포츠맨십, 페어플레이 등을 강조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상대를 속이는 행위라고 할 수 있는 태권도, 축구, 핸드볼, 농구 등에서 페인트모션은 비도덕적인 행위가 된다. 그러나 현실적 스포츠상황에서 이와 같은 행위는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태권도경기에서 페인트모션, 축구경기에서 파울을 유도하기 위한 과장된 제스처, 하키선수들의 폭력 등은 비도덕적 행위라기보다는 오히려 경기의 일부라는 인상을 준다. 현실적으로 페인트모션을 썼다고 비난을 받거나 제재를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규칙 위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관중들은 적절한 시기에 규칙을 위반한 선수들에게 박수갈채를 보내기도 한다. 물론 모든 규칙 위반에는 그에 상응하는 페널티가 부과되지만 그 이상의 도덕적 비난은 없다. 주지하다시피 경쟁적 스포츠종목들에서 일종의 속임수인 페인트모션은 승리하기 위한 기술의 주요 부분이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스포츠규칙 일반에 대한 절대적 준수를 강조하는 스포츠도덕은 비현실적이다.


한 번 더 강조하지만 전통적 도덕 정의는 스포츠의 도덕을 구별하지 않고 뭉뚱그려 다루었기 때문에 스포츠상황에서 도덕적으로 행위 하라는 요청은 준수하기 쉽지 않은 요청이 되었다. 필자는 여기서 스포츠의 작은 도덕과 큰 도덕의 구별, 즉 경기에서 위반이 어느 정도 용인될 수 있는 규칙과 결코 허용되어서는 안 되는 규칙의 구별을 제안하고자 한다. 위반이 어느 정도 용인될 수 있는 규칙은 스포츠경기에서 구체적인 규칙을 준수하는 일과 관련이 있다. 예컨대 축구경기에서 골키퍼를 제외하고 손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작은 도덕이다. 이렇듯 작은 도덕은 규칙의 존중이나 규칙에 대한 공정한 태도를 의미한다. 한편 경기에서 그 위반이 결코 용인되어서는 안 되는 큰 도덕은 경기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금지된 수단이나 물질을 사용하거나 승부조작에 개입하는 일과 관련된다. 도핑이나 승부조작 금지 요청에 대한 기대는 경기 상황에서의 경기규칙 준수 요청에 대한 기대보다 크기 때문에 전자를 큰 도덕이라고 했고, 후자를 작은 도덕이라고 했다.


도덕 커뮤니케이션은 존중과 무시라는 주도적 코드에 따라 작동하는데, 작은 도덕의 경우 이 코드가 적용되는 대상이 특정 행위 영역에 속한 인격에게만 국한되는 경향이 있지만 큰 도덕의 경우 전 인격과 관련이 된다. 쉽게 말해 한 선수가 작은 도덕을 위반했을 때, 예컨대 경기규칙을 어겼을 때 선수로서 그의 인격에만 파울, 경고, 퇴장 같은 제재가 가해지지만 큰 도덕을 위반했을 때는 선수이자 일반인으로서 그의 인격 전체에 선수자격박탈, 벌금, 사회적 비난, 법적 처벌 같은 제재가 가해진다. 도핑 금지 외에 승부조작 금지도 스포츠의 큰 도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스포츠도덕의 구별은 스포츠의 문제를 조금 더 현실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현재 스포츠에서 가장 논란거리가 되는 것은 큰 도덕의 위반이다. 특히 도핑과 승부조작이 여기에 해당한다. 앞에서 설명하였듯이 작은 도덕의 위반은 경기의 일부로 볼 수도 있다. 작은 도덕의 위반은 경기를 흥미롭게 만들어주기조차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작은 도덕의 위반은 크게 문제시될 것이 없다. 그러나 큰 도덕의 위반은 심각한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흔히 스포츠를 일컬어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한다. 영화나 연극, 소설은 이미 결론이 정해져 있다. 그러나 스포츠에서는 그렇지 않다. 이것이 스포츠를 매력적이게 만든다. 예측을 불허하는 결과, 한 순간에 뒤바뀐 승부는 관중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그러나 만일 승부가 사전에 조작된 것이라면, 승리가 속임수를 동원해서 얻은 것이라면 관중의 실망은 클 것이다. 그에 따라 그들의 스포츠에 대한 관심은 크게 반감될 것이다. 스포츠를 가장 매력적이게 만드는 요인이 사라지기 때문에 스포츠는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이유에서 스포츠단체들은 도핑이나 승부조작 같은 큰 도덕의 위반에 대해 매우 강경한 태도로 반응한다.


만일 우리가 실천해야만 할 도덕을 큰 도덕에만 국한하여 볼 경우에 우리에게 중요한 도덕실천이란 페인트모션을 하지 않거나 경기 중에 파울을 범하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승리하는 그런 행동의 실천에 대한 요구가 아니다. 선수들이 도핑을 하지 않게 만드는 일, 선수들이 승부조작의 유혹을 뿌리치고 여기에 가담하지 않게 만드는 일이 우리의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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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태구 2014.03.04 14:59 신고

    작은 도덕과 큰 도덕 인상적인 설명이네요. 학교현장에서 결국 스포츠맨십의 교육은 작은 도덕의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글 제미있게 보았습니다.

 

 

 

글/송형석(계명대학교 교수)

 

        박근혜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국민행복시대를 열어가겠다고 약속한 이후 사회 곳곳에서 행복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사실 행복은 오래전부터 여러 학자들의 주요 관심 대상이었다. 행복에 대한 초기의 관심은 주로 철학이나 심리학 분야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20세기 이후 행복은 점점 더 경제학의 관심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행복에 대한 경제적 접근법의 대표적 척도는 국내총생산이다. 국내총생산은 최근까지 행복의 또 다른 표현인 삶의 질 또는 생활수준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어왔다. 그러나 경제성장이 항상 국민의 행복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 경제학자 이스털린에 따르면 수십 년간 미국내총생산이 크게 상승했음에도 미국민의 평균적 행복감은 전혀 증가하지 않았다. 우리나라도 지난 50년간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룩하였지만 국민행복지수는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2013 OECD가 발표한 행복지수를 보면 우리나라는 36개국 가운데 26위로 기록되어 있다. 2012년 12월 미국 갤럽이 발표한 국가별 행복도 설문조사에서도 148개국 중 97위에 머물렀다. 이로부터 우리는 국가가 국민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경제 성장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다른 요인들도 함께 고려해야만 한다고 결론 내려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성장 이외에 어떤 요소들을 고려해야만할까?


잠시 1인당 GDP가 2000달러도 안되지만 국민의 97%가 행복한 나라로 알려진 부탄으로 눈을 돌려보자. 부탄의 4대 국왕 지그메 싱기에 왕추크는 이미 1972년 국가발전은 경제발전뿐만 아니라 국민의 삶의 질과 행복감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그리고 그는 국내총생산 대신에 국민행복지수를 국가발전의 지표로 설정하자고 제안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부탄정부는 2008년 11월부터 국민행복지수를 국가 정책의 기본 틀로 채택하기에 이른다. 부탄의 국민행복지수 산출 지표에는 건강, 시간 활용 방법, 생활수준, 공동체, 심리적 행복, 문화, 교육, 환경, 올바른 정치 등 모두 아홉 가지 요인이 포함되어 있다.

 

작년 문화체육관광부가 국민체육진흥공단에 의뢰하여 실시한 국민생활체육 참여 실태조사에서는 사교성, 변화 수용력, 긍정적 인생 관리, 삶의 통제력, 삶의 기본적 욕구 충족도, 주변 친화, 목표달성 노력 등 모두 일곱 가지 요인을 행복지수의 지표로 활용하였다. 한편 미국의 갤럽은 50년 동안 150개국에서 매년 1000명을 대상(총인원 500만 명 이상)으로 행복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요인들을 조사하였으며, 직업적 웰빙, 사회적 웰빙, 경제적 웰빙, 육체적 웰빙, 커뮤니티 웰빙 다섯 가지 요인들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룰 때 사람들은 행복을 느낀다고 결론을 내렸다. 부탄이나 국민체육진흥공단의 행복 지표들은 모두 이 다섯 가지 요인들로 수렴될 수 있다. 따라서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이 다섯 가지라고 결론 내려도 좋을 것이다.

 

 


체육활동 참여는 행복지수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2012년 국민생활체육 참여 실태조사에 따르면 체육활동 참여는 행복지수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인의 평균 행복지수는 10점 만점에 5점대로 나타나고 있는데 비해 체육활동 참여자의 경우 7점대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또한 체육활동 참여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행복지수 또한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부터 우리는 체육활동 참여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준다고 확신해도 될 것이다.

 

그렇다면 체육활동 참여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 체육활동이 신체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놀이적 소통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체육은 무엇보다도 스포츠적 놀이로 이루어져 있다. 놀이는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는 진지성의 세계, 부자유의 왕국, 필연의 원리가 지배하는 노동의 세계와는 다른 시간과 공간을 생성해준다. 철학자들은 이러한 놀이의 특성을 자유성, 무목적성, 독자적 세계 등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반드시 해야만 한다는 부담이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놀이에서 부담 없이 가볍게 만나 함께 즐기며, 쉽게 친교 할 수 있다. 특히 체육은 신체활동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소통이기 때문에 사람들을 더욱 가깝게 만들어준다. 신체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소통은 상호간의 보이지 않는 벽을 쉽게 허물어주고, 거리를 좁혀준다. 그도 나와 같은 종류의 인간이라는 인식을 일깨워주며 상호 이해의 계기를 마련해준다. 집단 구성원의 단결을 도모하기 위한 단합대회도 대부분 함께 음식을 먹는 회식이거나 함께 몸을 맞대고 땀을 흘리는 체육활동 같이 신체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소통 형식을 띠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말도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몸에 의한 또는 몸을 통한 소통은 말이나 글에 의한 소통보다 훨씬 직접적이다. 감정의 전달과 유대감 형성이 훨씬 용이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체육활동은 사회적 웰빙을 위한 이상적 조건을 제공해준다.


체육활동 참여는 육체적 웰빙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인간은 수십만 년 동안 줄곧 신체운동에 크게 의존하면서 살아왔다. 먹이를 구하기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적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하여, 또는 다른 어떤 목적을 위하여 부지런히 신체를 움직여야만 했다. 그러나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현대인들은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생존할 수 있게끔 조건이 갖추어진 사회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그 결과 일상에서 신체운동의 양은 현저하게 줄고 있다. 이렇게 삶의 방식이 변했다고 해도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은 신체를 많이 움직여야만 하는 생물학적 구조자체는 변화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인간은 신체의 기능을 적절하게 유지하고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주기적으로 활발하게 운동해야만 한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신체의 정상적 기능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만큼도 움직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운동이 부족한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운동부족은 이미 많은 의학적 연구에 의해 소위 현대병 또는 성인병의 주요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따라서 현대사회에서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적절한 신체운동이 필요하다. 체육의 핵심인 스포츠는 무엇보다도 신체운동을 핵으로 하는 인간의 활동양식이다. 스포츠를 규칙적으로 수행하게 되면 근육이 굵어지고, 탄력성이 커지며, 수축과 확장의 범위가 커지고 지구력이 강하게 된다. 반복적인 신체훈련을 통해 근육이 굵어지면 에너지원이 되는 물질인 글리코겐, 크레아틴인산, 크레아틴, 아데노신 등이 증가되며, 미오글로빈을 증가시켜 지구력을 증대시킨다. 또한 허파의 크기를 증대시켜 폐활량이 커지며 결과적으로 산소섭취량이 증가되어 에너지 발생이 더욱 활발하게 된다. 또한 대뇌피질의 지각력, 통합능력을 증대시키며 근지각, 자세지각, 운동지각을 개선하여 신경기능을 향상시켜 동작이 민첩하고 정확해진다. 스포츠는 이상에서 열거한 생리적 효과 외에도 영양의 소화, 흡수 능력을 향상시켜 신진대사를 왕성하게 해준다. 이렇듯 체육활동은 육체적 웰빙을 위한 이상적 조건을 제공해 준다.


이외에도 체육활동 참여는 삶의 태도를 긍정적으로 변화시켜 직장생활에 충실하게 함으로써 직업적 웰빙에도 적지 않게 기여한다. 또한 조기축구회나 배드민턴동호회 같이 지역별로 활성화되어 있는 동호회 중심 체육활동은 주민들 상호간의 소통을 촉진시켜주고 지역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켜주며, 지역의 일원이라는 소속감과 유대감을 강화시켜줌으로써 커뮤니티 웰빙에도 적지 않게 기여한다. 이렇게 체육활동 참여는 참여자의 행복지수를 여러 차원에서 높여준다. 그래서 체육활동에 주기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은 행복을 느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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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송형석(계명대학교 교수)

 

 

           근대올림픽이 시작된 이후 경쟁스포츠는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꾸준하게 발전해왔으며, 현대인의 여가생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스포츠는 이 과정에서 아마추어리즘, 스포츠맨십, 페어플레이 같은 가치들을 표방함으로써 사회의 제 영역들로부터 긍정적 평가를 받았으며, 이에 힘입어 언론과 방송 같은 대중매체, 정치, 경제, 학문, 교육 등의 사회영역들과도 튼튼한 연결망을 형성하였고, 이 영역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사회의 필수적인 부분이 되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부터 경쟁스포츠는 그 동안 지녀왔던 긍정적 이미지를 점차 상실하고 있으며, 비판적 학자들과 진보적 언론으로부터 온갖 비리와 기만의 온상으로 지목되고 있고, 다른 사회영역들과 맺었던 협력적 관계도 점차 느슨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경쟁스포츠는 사회의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밀려날 우려가 있으며, 대중과 사회영역들로부터 외면당할 가능성이 높다.


경쟁스포츠가 각종 비리와 기만의 온상으로 지목받고 있는 중요한 이유는 승부조작과 도핑 같은 일탈 행위 때문이다. 특히 도핑은 그동안 스포츠가 지녀왔던 공정하고 건강한 이미지를 한 순간에 무너뜨림으로써 경쟁스포츠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호의를 크게 떨어뜨리고 있다. 도핑스캔들이 일간지와 TV 같은 대중매체를 통해 빈번하게 터져 나오면서 도핑은 우연적이며 일회적인 일탈형식이라는 대중의 믿음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신문구독자들이나 TV시청자들은 이와 같은 깨달음을 통해 공정함이나 건강 같은 긍정적 가치들과 결부되었던 경쟁스포츠를 기만, 약물, 질병, 죽음 같은 부정적 가치들과 결부시켜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여 스포츠의 긍정적 이미지를 자사의 상품 광고에 이용해왔던 기업들은 스포츠에 대한 계속적인 재정지원을 주저하고 있으며, 스포츠의 재현 기능에 기대어 평판과 지지율을 상승시키려고 노력해왔던 정치단체들 역시 스포츠에 무심해지고 있고, 교육 행정가들은 학교체육수업에서 ‘비-교육적’ 경쟁스포츠를 배제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IOC는 이와 같은 위기적 상황을 벗어나고자 도핑과의 전쟁을 선포했으며, 학계, 법조계, 정계, 대중매체 등 사회의 여러 영역들과 협력하여 경쟁스포츠에서 도핑을 근절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그 동안 기울여진 도핑 방지노력은 그다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도핑혐의가 인정된 사이클 황제 랜스 암스트롱

 

IOC가 도핑과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WADA가 창설되었고, 도핑검사기술은 획기적으로 발전했으며, 국가별로 운동선수들에 대한 반-도핑 교육도 강화되었고, 도핑을 자행한 선수들에 대한 처벌 규정도 한층 엄격해졌다. 그러나 도핑적발건수는 오히려 해를 거듭할수록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현재 도핑은 전문적인 선수들의 영역을 넘어서 아마추어선수들과 스포츠동호인들에게까지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다. 지금까지 기울여온 도핑방지노력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동안 학계는 도핑의 원인을 분석하고 방지대책을 마련하는 일과 관련하여 윤리적 차원과 법적 차원에 국한하여 논의를 진행해왔다. 윤리적 차원의 논의는 도핑의 원인을 운동선수 또는 경쟁스포츠관련자 개인의 윤리 의식 결핍에서 찾고, 이들의 윤리 의식을 강화시키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여기서 윤리 의식의 강화는 주로 반-도핑 교육과 반-도핑 홍보를 통해 이루어졌다. 한편 법적 차원의 논의는 운동선수 내부의 감시자, 즉 윤리의식이나 스포츠맨십 같은 운동선수의 양심만으로는 도핑 근절이 어렵다는 판단 하에서 민법이나 형법에 의한 처벌 같은 외적 제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한다고 주장해왔다. 윤리적 차원의 논의와 법적 차원의 논의는 서로 뉘앙스는 다르지만 도핑의 원인과 책임을 철저하게 운동선수나 코치, 스포츠단체 관련자, 스포츠의학자 같은 개인에게 귀속시키는 개인화전략을 구사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개인화전략은 문제의 소재와 책임 전가를 분명하게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이에 근거하여 문제 해결 방법을 쉽게 도출해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유용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복잡하게 얽혀있는 도핑현상을 적절하게 이해하고, 그것에 대한 효과적 방지 대책을 세우기 위한 전략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개인화전략이 가정하고 있는 것처럼 경쟁스포츠의 도핑은 쉽게 이해될 수 있거나 쉽게 설명될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도핑은 다양한 관점들과 이해관계가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매우 복잡한 현상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당신이 축구에 대해 …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가정해보자. … 이제 당신은 … 한 스타디움의 관중석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 주심을 제외하고 모든 선수가 당신에게만 보이지 않는 마법의 외투를 입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 당신은 무엇을 보고 있는가? 검은색 반바지 차림으로 잔디밭을 이리저리 분주하게 뛰어다니며, 노란색 카드를 공중에서 휘두르기도 하고, 호루라기를 부르고, 대화를 하기도 하고(혼잣말?), 욕설을 내뱉고, 주의를 주고, 얼굴을 찡그리고 거친 몸짓을 하는 남자를 보며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는가? … 당신은 그가 나사가 하나 풀리고, 신진대사가 불균형하거나, 또는 정신적으로 뭔가 혼란스러운 사람이라고 추측할 것이다”(박현용 역, 2010)

 

위의 예는 개인의 행위가 심리적 과정보다는 사회적 맥락을 통해서 더 잘 설명될 수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기존의 윤리학 및 법학적 논의는 도핑 같은 일탈행위가 이루어지는 복잡한 사회적 맥락을 행위자 개인의 자유의지에 따른 결정이자 이기적인 동기로 감축시켜 설명한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물론 기존의 논의 가운데는 도핑 같은 일탈행위의 원인으로 경쟁스포츠의 구조적 특성인 승리지상주의를 지목하고 해법으로 그것의 약화 또는 제거를 제안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관점 역시 경쟁스포츠와 연결되어 있는 더 넓은 사회적 맥락들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이해를 돕기 위해 앞의 예를 조금 더 진행시켜보자. 이제 선수들을 가렸던 투명망토가 벗겨졌다고 상상해보자. 이제 당신은 심판의 행동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즉 그가 왜 뛰어다니고 소리치고 인상을 쓰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심판이 특정 팀에게만 유리하게 판정을 내린다는 것을 깨달게 되었다. 그리고 이에 대해 분노하면서 그가 정신이 나갔거나 실수했을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판정실수가 반복될 경우 또 다시 그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렵게 될 것이며, 그에 대해 화를 내거나 자질을 탓할 것이다. 그러나 다음 날 언론 보도를 통해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던 그의 통장에 일주일전 거액의 돈이 입금되었으며, 돈의 출처는 그가 유리하게 판정했던 팀을 후원하는 기업이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면 의심스러웠던 그의 행동들이 이해가 될 것이다.

 

이 예가 말해주고 있듯이 개인의 행동은 행동이 이루어지는 체계의 기대구조에 의해 영향을 받을 뿐만 아니라 그 체계와 구조적으로 연동되어 있는 다른 사회체계(위 예에서는 경제)의 기대구조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도핑 같은 일탈행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핑을 자행한 개별 행위자의 동기뿐만 아니라, 그와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 여러 사회체계들의 관계가 폭 넓게 분석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사회적 맥락들을 충분하게 고려하지 않고 제시된 도핑의 원인 분석과 방지 대책은 설명력이 빈약할 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효과를 거두기도 어렵다. 도핑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개인화전략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금지조처 이외에도 경쟁스포츠와 직간접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사회체계들의 기대구조, 상호침투, 교란 등에 대한 폭넓고 심도 있는 분석이 요구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체계들 상호간의 조정과 간섭 전략을 개발해내는 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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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용 역(2010). 축구의 미학: 세계 석학들 축구를 논하다. 초록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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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준한 2013.05.26 19:25 신고

    사람마다 생각하는것이 다르겠지만 이글 하나를 읽으면서도 여러가지 생각이듭니다.
    그것은과연 도핑이 나쁜것인가 괜찮을것도 같은데 라는 생각입니다.
    요즘에 성폭행범이 활개를 치고 있는데 반해 법적인 제제를 가해도 하루에 하나씩 꼭 기사를 보게됩니다.모든 법은 불법을 막기위한 해결책이라고 하지만 성폭행범들에게 한시간 강의를 해서 '성폭행을 줄일수 있을것이다'라는 생각은 크게 와닫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형시켜야한다. 종신형이다' 라고 하지만 현재 법으로는 이를 막을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의 사고방식, 윤리적, 도덕적 책임을 법으로 막는 다는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인것같습니다. 물론 조금이나마 도움은 되겠지만 말입니다. 이런것도 생각을 해봅니다. 한선수당 도핑횟수를 제한하는 겁니다. 아예 못하게 하지말고 횟수에 제한을 둔다든지 모든선수들에게 도핑을 허용한다든지 다른 방법을 모색해보는것이 좋겠지만 가장중요한것은 현재 사회에서 추구하는 실태에서 선수들에게 윤리의식 굘핍을 보안하여 도핑을 막을 방법을 찾아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쉽게 없애는 방법중하나는 스포츠를 그냥 즐기고 스포츠경쟁사회를 없앤다면 사라질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 안중섭 2013.05.27 18:54 신고

    안녕하십니까 대학원 2학기차 안중섭입니다.
    이 글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스포츠에 있어 악의 축인 도핑에 대해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했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통해서 도핑과 같은 일탈행위가 단순히 개별 행위자의 동기에 의해 자행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한 명의 선수 혹은 심판이 도핑과 같은 일탈행위를 저지르는 상황 그 뒤에는 아주 복잡한 사회체계(사회적 맥락)가 뒷바침되고 있으며, 이를 막기 위해서는 단순히 윤리나 법과 같은 체제적인 부분만을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도핑에 관한 문제는 선수 개개인을 떠나 그 선수의 뒤에 있는 기업 혹은 사회 전체를 아울러 보는 눈을 통해 그에 대한 합당한 처벌 혹은 대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도핑을 자행한 선수의 잘못뿐만 아니라 그 선수가 왜 도핑이라는 악을 선택하게 되었는지를 아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김대원 2013.05.27 22:58 신고

    안녕하십니까. 1학기생 김대원입니다.
    경쟁스포츠가 각종 비리와 기만의 온상으로 지목받고 있는 중요한 이유는 승부조작과 도핑 같은 일탈 행위 때문이다.
    경쟁스포츠의 도핑은 쉽게 이해될 수 있거나 쉽게 설명될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도핑은 다양한 관점들과 이해관계가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매우 복잡한 현상이다.
    도핑 같은 일탈행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핑을 자행한 개별 행위자의 동기뿐만 아니라, 그와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 여러 사회체계들의 관계가 폭 넓게 분석되어야 한다.
    도핑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개인화전략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금지조처 이외에도 경쟁스포츠와 직간접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사회체계들의 기대구조, 상호침투, 교란 등에 대한 폭넓고 심도 있는 분석이 요구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체계들 상호간의 조정과 간섭 전략을 개발해내는 일이 필요하다.


    저 역시 도핑과 일탈행위의 원인과 책임은 개인과 사회 구조 두 곳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윤리적 차원의 논의와 법적 차원의 논의의 무게를 좀 더 높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프로선수들은 2개월에 한번씩 무조건적으로 도핑검사나 약물검사를 주기적으로 받거나, 간접적 내용의 설문지로 성향테스트를 주기적으로 하는것, 법적으로는 벌금과 파직이 아닌 구치소로 형벌을 받는것으로 무게를 주는것입니다.

    그리고, 개인화전략을 기반으로 한다고 하셨는데, 전 개인이 왜 했는지는 궁금해하지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도핑과 승부조작을 한 이유의 최종목적은 최고의 자리를 원하거나 경제적인 문제 때문 일것입니다.
    선수, 심판, 감독 누구이든 이유없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도핑을 하거나 승부조작을 한 순간 뭐든 파직을 시켜야된다고 생각합니다. 각자의 개인적인 사정은 개인의 것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포츠상에서 안된다는 걸 알면서 한다는 것은 다양한 사회체계의 성격과 스포츠맨십, 아마추어리즘 정신이 없으므로 그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경쟁스포츠와 직간접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사회체계들의 기대구조, 상호침투, 교란 등 현재까지 도핑과 관련된 사회체계들의 사건들을 알고 싶고, 체계들 상호간의 조정과 간섭 전략을 개발해내는 일을 진행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 이병규 2013.05.28 18:14 신고

    도핑은 스포츠라는 작은 사회속에서 발생하는 가치, 규범등에 위반적인 행위입니다.
    스포츠에서의 도핑은 공정성이나 선수의 건강, 그리고 그것을 보는 타인들까지도 피해를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스포츠라는 작은 사회속에서 윤리와 법만으로 도핑을 막는다는것은 교실에 떠드는 학생에게 벌을 주는것과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학생에게 벌을 준다면 잠시는 조용할지 모르지만 떠드는 행위를 계속 통제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것은 학생의 사고의 변화, 즉 스포츠라는 사회자체의 가치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거기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며, 스포츠를 가치중심의 문화로 이끌어 나가려면 사회적인 정책과 제도, 그리고 신념같은 부분이 앞서야 할 것이며, 개인의 의지와 가치관들은 많은 교육이 바탕이 되어야 도핑을 예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최승구 2013.05.28 23:27 신고

    안녕하십니까 3학기생 최승구 입니다.
    개인적인 견해로서 저는 꼭 도핑이 나쁘다라고 생각하기에는 부족하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서로 이익만을 추구하게 되는 상황으로서 나쁘다라고 본다면 여태 밝혀지지 않는 불법적인 부분들로 인해 얻은 이익들은 다 무효가 되고 인정하지않아야 되는게 아닌가 합니다.
    이 글을 읽으며 "악법도 법이다." 소크라테스의 명언이 기억이 납니다.
    주관적으로 보았을 때 도핑은 매우 비신사적인 행위지만, 이것 또한 알려지지 않는다면 개인과 사회에 크나큰 이익과 홍보 및 엄청난 흑자 창출을 이끌 것이라 봅니다.
    도핑방지, 윤리, 법안 등 부정적인 시선들로마 보는게 아니라 긍정적인 시선들로 바라본다면, 언젠가는 그 긍정적인 부분으로 인해 비신사적이고 비도덕적인 행위가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라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 마수현 2013.05.29 00:24 신고

    안녕하십니까?

    1학기생 마수현입니다.

    이번게 게재된 교수님의 글을 읽고 느낀 점은 어떤 현상을 관찰할 때 지엽적으로 보

    지 말고 그 현상 뒤에 숨겨진 배경속에서 본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승부조작과 도핑 같은 일탈행위의 책임을 개인에게만 귀속시킨다

    는 것은 우리 모두가 반성해야 되는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화 전략이 계속 되는 한 악순환은 반복될 것이며,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경쟁

    스포츠의 뒤에 숨어 있는 배경을 분석하여 그에 맞는 전략을 개발해야 될 것입니다.

  • 정성원 2013.05.29 10:49 신고

    안녕하십니까. 1학기생 정성원입니다.
    "윤리와 법만으로 도핑 방지는 어렵다!"라는 본문의 글을 읽고 저 역시 도핑문제는 도핑을 한 개인의 선수에게 원인과 책임이 있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아니다 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뒤에는 본문에서 본 축구심판의 승부조작 또는 자사의 이윤을 남기기 위한 기업, 스포츠를 계속적으로 재정지원을 해주는 지지자들을 통해서 승부조작과 도핑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불법을 막기위해 존재하는 법적, 윤리적 차원의 논리를 조금 더 강력하게 대응하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도핑을 해서는 안된다고 더욱 본인들이 잘 알고 있는 선수들을 법적으로 강력하게 대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왜 도핑을 하게 되었는지 그 뒤의 배경을 정확하게 알고 대처를 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경쟁스포츠로 인해서 스포츠의 스포츠맨십, 페어플레이, 아마추어리즘과 같은 가치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그리고 스포츠에서 오로지 일등만 인정해주는 그런 사회적인 인식을 개선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조금더 긍정적인 마인드와 사고를 통해서 선수들이 눈치를 보지않고 편안하게 운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지금 모든 사람들이 해야 할 과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 이재민 2013.05.29 18:47 신고

    근대 올림픽 이후에서 볼 수 있듯이 스포츠는 스포츠맨쉽, 페어플레이등으로 인하여
    긍정적 효과를 통해 사회의 여러 영역과 연계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점들을 잊은채
    단순히 개인의 기록, 명예, 돈 등을 위해 도핑을 하게 됩니다. 물론 개인의 잘못과 사회체계적, 법등의 문제점도 있지만 선수들의 윤리의식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핑을 통해 개인의 이익을 만들 순 있지만 차 후에 문제가 발생하면
    개인의 처벌 및 몰락뿐만아니라 스포츠계 전체에 많은 악 영향을 가지고 오게 됩니다.
    물론 사회에서 경쟁스포츠를 하는 선수들은 어떠한 방법을 써서라도 좋은 성적을 내야만 한다는 인식을 가지게 한거도 있지만 선수들의 의식 부족이 가장 크다고 생각됩니다. 앞으로 윤리와 법 강화 뿐만아니라 스포츠와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 사회체계 등다각적인 면에서 도핑을 줄 일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 우동혁 2013.05.29 23:59 신고

    안녕하십니까! 1학기생 우동혁입니다.
    저는 승부조작과 도핑문제에 대한 뉴스를 항상 그 선수에 대한 원인, 책임, 처벌에 대한 보도만 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 선수에게만 고정관념으로 집중을 하였었습니다. 솔직히 우리가 알고있는 것은 이 선수의 스타성으로 선수만을 알고있고 이 선수의
    에이전트, 연관된 기업, 지원을 해주는 지지자들에 대해서는 모릅니다. 그래서 이 선수가 얼마나 처벌을 받고 있는지, 얼마나 반성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만 볼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법적 처벌 규정이 너무 약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선수나, 연관된 지지자들 및 기업들에게 정말 껌값에 지나지 않는 벌금과 금방 처리할 수 있는 처벌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돈만 내면 끝인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서로 연관된 사회구조체계들이 정말 긍정적 마인드와 경쟁스포츠에서 좋은 것들만 생겨나고 발전될 수 있는 먼가 강력한 처벌규정과 대응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업, 지지자들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되고 그들의 손에 놀아나는 선수들이 아닌 경쟁스포츠에서 정정당당히 승복할 줄 아는 스포츠세계가 만들어 졌으면 좋겠습니다.

  • 정현도 2013.05.30 00:11 신고

    안녕하세요? 저는 4학기생 정현도입니다.
    교수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위의 글 중에서 "개인의 행동은 행동이 이루어지는 체계의 기대구조에 의해 영향을 받을 뿐만 아니라 그 체계와 구조적으로 연동되어 있는 다른 사회체계의 기대구조에서도 영향을 받는다."는 말처럼 이러한 복잡한 관계속에서 문제의 본질, 배경과 이유 관계들이 폭 넓게 이해가 되어야 비로소 문제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개인적인 측면에서 도핑을 한 선수만을 처벌하고 넓은 사회적 맥락들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해결하려 든다면 이같은 현상들이 지속될 것입니다.

    충분한 이해와 노력하에서 선수 자신 스스로의 올바른 윤리판단이 같이 선다면 도핑을 막을 수 있는 최선의 길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올바른 사회적인 체계가 확립될 수 있도록 개인과 사회의 복잡한 관계를 먼저 이해하고 접근한다면 건강한 경쟁스포츠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 강민성 2013.05.30 00:51 신고

    안녕하십니까 1학기생 강민성입니다.

    예전 스포츠는 현대인의 여가생활이라든지 페어플레이, 스포츠맨십 등 긍정적인 평가로 여러 분야 영역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사회의 필수적인 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인 경쟁스포츠는 각종 비리, 승부조작, 도핑 같은 일탈 행위로 스포츠의 건강한 이미지가 퇴색되고 대중의 믿음도 무너져 내렸습니다.
    아무리 윤리 의식이 좋은 선수라 할지라도 도핑은 좋은 성적을 내야하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선수들에겐 ‘악마의 속삭임’처럼 달콤한 유혹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입니다.
    교수님의 글을 읽기 전에는 도핑은 좋은 성적을 내고 싶은 선수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본문 글을 읽고 도핑 같은 일탈행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핑을 자행한 개별 행위자의 동기부여가 아니라 그와 연결되어있는 여러 사회체계들의 관계가 폭 넓게 분석되어야 한다고 생각이 듭니다.
    경쟁스포츠로 인해 선수들은 일등을 할 수 밖에 없는 심적 부담감이 더할 것입니다.
    더 이상 승부조작과 도핑 같은 일탈행위를 한 개인선수의 잘못으로만 보지 말고, 경쟁 스포츠와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되어있는 코칭스태프, 스포츠 관련자, 기업 등이 어떻게 관련 되었는지 파악하고 그에 대한 대책이나 처벌을 해야 승부조작이나 도핑이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 개인에 잘못으로만 치부하게 되면 그 악순환은 계속반복 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 백상우 2013.05.30 10:51 신고

    안녕하십니까 1학기생 백상우 입니다.
    경쟁스포츠가 전 세계로 확산되어 발전함에 따라 현대인들에게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그로인해 대중매체 및 사회적 시선에 의해 경쟁이라는 스포츠요소를 갖춘 경쟁스포츠의 본질과 목적이 점차 위배되었고 현대의 스포츠는 건강함, 공정함, 스포츠맨십과 같은 긍정적 이미지와 결합되어 있지만, 그 속에는 도핑과 승부조작 이라는 현대스포츠의 가치를 훼손시키는 범죄행위가 연결되어 있다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도 도핑을 하는 선수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위 글을 읽고 난 후에는 그 뒤로 배경이 되고 있는 사회적 시선과 끊임없이 자신을 재촉하여 더 많은 성과를 내도록 강제하는 성과사회의 문제가 가장 큰 문제 같았습니다. 위 글에서 알 수 있듯이 도핑 같은 일탈행위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선수들이 도핑을 하겠다는 동기뿐만 아니라, 그와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 여러 사회체계들의 관계를 폭 넓게 분석을 하여 도핑의 원인과 방지 대책을 세워야 조금이나마 도핑이라는 스포츠의 가치를 훼손시키는 범죄행위가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이형섭 2013.05.30 16:03 신고

    안녕하십니까 1학기생 이형섭입니다. 경쟁스포츠가 발저함에따라 현대인들의 여가생활에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스포츠가 그 욕구를 충족시켜왔다. 스포츠의 기본바탕인 페어플레이 스포츠맨쉽과 같은 긍정적인 요인들이 스포츠 발전에 큰 밑거름이 되엇다. 그러면서 대중매채또한 스포츠에대한 관심이 증가하여서 더욱 스포츠가 인기있어졌다. 하지만 경쟁스포츠에는 도핑과 승부조작이라는 어두운 측면이 있다는것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도핑과 승부조작은 범죄를 일으키는 개인에게도 분명한 문제가 있지만 더 큰범위로는 그 선수나 감도들이 속해있는 집단의 이해관계를 생각해보지 않을수 없다. 경쟁스포츠의 목표인 승리가 중요시되면서 이기기위한 방법으로 약물복용이나 승부조작들을 하게된 것이라고 볼수있다. 이것들을 개인이나 스포츠 집단의 도덕적문제로만 여겨서는 안되고 지금 사회가 흘러가는 방향과 또 그 승부를 지켜보는 우리의 자세에서도 반성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도핑과 승부조작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선수 나 감독 개인의 도덕적 가치관확립도 중요하지만 승패만을 중요시 여기는 스포츠체계와 성과위주로 선수나 감독을 판단하는 관점을 함께 변화시켜야만 도핑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김상협 2013.05.30 16:26 신고

    안녕 하십니까 1학시생 김상협 입니다.
    교수님 글 잘읽어습니다.
    승부조작과 도핑을 나쁘게 보고있는 사람중 한사람 입니다.
    하지만 저는 도핑 및 승부조작한 소속단체가 나쁘지만 그보다더 매체(방송&신문)가 더 나쁜것 같습니다.
    이런한 매체는 한사건이 나오면 좋은 내용은 작게 적고 나쁜쪽으로 더 부각 시켜서
    더 악질처럼 만드는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매체가 간섭하고 비판적으로 다가오면 이문제를 해결할수 없다고 봅니다.
    사람들은 좋은것보다 나쁜걸 먼저 습득 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예를들면 외국인 들인 처음 배우는 한국말이 욕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외국인들이 바라보는 욕이 체음에는 재미있고 신기해서 먼저 배우지만 나중에는 이게 안좋은것인지 알고 이해하지만 그래도 습관 처람 사용을 합니다.
    이처럼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시작을 했다가 나중에는 버른 처럼 행동을 하는데 이게 누가 하지말라고 하면 더하고싶다는(청개구리)성격이 큰게 작용을 하는것 같습니다.
    협회나 단체에서 교육을 하고있지만 매체가 조금 더 다른 시각으로 보고 좋은 쪽으로 도와주면 더크고 좋게 효과가 있을것 같습니다.

  • 양세정 2013.05.30 17:11 신고

    안녕하십니까?
    양세정입니다.
    교수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도핑은 개인의 윤리의식에 가장 큰 문제점을 두고 있지 않나 생각했는데 이 글을 읽고 개인의 윤리의식 뿐만 아니라 사회체계와의 관계, 작게는 개인의 사생활 문제까지 관여되어 있다는것을 알게되었습니다. 보통 선수들의 도핑이 확인되고 문제로 떠오르면 사람들의 질타는 고스란히 선수들의 몫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그 속을 보면 오로지 선수 개인의 잘못된 판단뿐 아니라 그 선수가 속해있는 팀과 그 팀의 스폰서가 깊숙히 관여되어 있다는 겁니다. 도핑이라는 문제가 불거져 나올 때마다 선수 개인의 양심이나 가치관만을 문제 삼는것이 아니라 그 뒤의 큰 배경들의 문제를 하나씩 끄집어 내어 해결하고 교육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 서정학 2013.05.30 17:34 신고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1학기생 서정학입니다.
    교수님 글을 잘 읽었습니다. 저도 교수님의 의견처럼 도핑과 승부조작으로 인해서
    지금의 스포츠는 많은 이미지 실추와, 대중에서 많은 실망을 안겨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로 인해 대중에게 외면을 받게 되면, 기업에서의 스폰서쉽도 끊어지게 될것이고, 그렇게 되면 스포츠계의 어려움이 많아질것 같아서 걱정이 앞섭니다.
    그리고 IOC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도핑이 줄지 않고 늘어나는것은, 교수님 말씀처럼 개인화 전력을 기반으로 해서 보다 폭 넓은 방법으로 다가가야할것 같습니다.
    먼저 경쟁스포츠로 인한 선수가 처해진 상황과, 직간접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사회체계들의 기대구조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기울려야할것 같습니다. 이런 사회적 흐름과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다면, 도핑을 하는 선수는 없어지지 않을꺼 같습니다. 그리고 도핑 뿐 아니라 승부조작같은 경우는 선수혼자만의 문제라기 보다는 감독 혹은 팀 전제의 문제가 될수 있고, 함께 고민해야될 문제 인거 같습니다.

  • 허민지 2013.05.30 17:45 신고

    안녕하십니까 1학기생 허민지입니다.

    교수님의 글을 읽으며, 이때까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들을 다른 방향으로 돌아볼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저도 처음 도핑이라는 부분을 접했을 때 당연히 불법적인 것이며, 선수의 과욕으로 발생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글을 읽고 다른 방향으로 접근해 보았을 때 그 선수는 왜 그런 욕심이 생겨나고 불법적이며 자신의 몸을 망치는 행위까지 해야 했을지 그 과정에는 물질만능주의와 승리만이 목표가 되는 메달의 색깔에만 취중되는 사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핑이라는 행위가 단순히 개인의 불법적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의 구조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페어플레이, 스포츠맨쉽, 건강 등 스포츠를 접했을 때 떠오르는 대표적 이미지들이 사회의 기대구조로 인해 부정적으로 변화되어 가는 부분이 안타깝습니다.
    이 문제를 법이라는 도구로 단순히 개인에게 가해지는 처벌로 해결해 나갈 수 있기 보다는 성과주의사회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최규창 2013.05.30 17:49 신고

    안녕하십니까 1학기생 최규창입니다.

    항상 교수님의 글을 읽으며 모든 글의 내용들이 겉보기만이 아닌 한번 더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도핑이 개인만의 이해관계가 아닌 여러 복잡한 관계가 있다는 것에 대해 잠깐 부정적인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도핑을 하게 된 이유는 자신의 승리를 목표로한 것 이기에 지는 경기를 위해 도핑을 하는 선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경쟁적인 사회 구조와 함께 승부조작을 부추기는 주변의 환경과 분위기가 먼저 완화 되면서 분위기를 바꿔나가는 것이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도핑, 승부조작 등 선수 개인과 경기게 개입된 문제만이 아닌 사회적인 면에서 큰 틀안에서 다뤄야 할 문제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조성우 2013.05.30 18:00 신고

    안녕하십니까 3학기생 조성우 입니다.

    항상 사람들은 도핑이라고 하면 나쁜것이다, 그 선수는 추방 당해야 된다고 생각들을 하고있습니다. 저 또한 그런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교수님 글을 읽고 난 후 그 선수만의 잘못이 아닌 성과주의라는 사회적 측면으로 인해 선수 스폰서나 매스컴 등 에서 무언의 압박이 개입이 됐는지를 먼저 찾고 그 해결방안을 마련을 해야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이런 악순환 들이 반복될것이고 도핑 이란 약물복용을 계속 할수밖에 없는 상황이 초래할것입니다.

  • 박병준 2013.06.01 01:07 신고

    안녕하십니까. 체육교육전공 1학기생 박병준입니다.

    이번 주제의 글을 읽고 나서 도핑에 대하여 다시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습니다.
    먼저 스포츠에서 선수들은 왜 도핑을 할까 생각해봤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도핑은 운동선수들에게 마지막 수단이 아닌가 생각해보았습니다.
    인간은 끝 없는 노력을 해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수들은 그 한계 에서 도핑이라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 하고 약물복용 또는 투여하여 자신의 신체적 한계 능력을 뛰어 넘어 스포츠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선수들은 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 스포츠가 지녀왔던 공정하고 건강한 이미지를 한 순간에 무너뜨리고 경쟁스포츠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호의를 크게 떨어뜨리고 있을까 그이유는 바로 현재의 사회와 대중매체 두가지가 선수들을 도핑의 유혹에 빠져들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뭐든지 1등만 인정받고 1등만이 스포츠 세계에서 살아 나갈 수 있습니다. 2등선수, 3등선수는 인정 받지못하는 것이 현실 입니다.
    이러한 사회와 대중매체들이 변화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전세계 스포츠 에서는 도핑이 사라 질 수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스포츠정신에서 도핑은 분명 잘못되고 올바르지않지만, 먼저 우리의 사회와 대중매체의 변화가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송형석(계명대학교 교수)

 

 

             2011년 7월 한 법학도는 스포츠둥지에 투고한 글 「도핑과 lex sportiva(스포츠법률) 흑과 백」에서 “자정능력이 없는 스포츠의 불공정함은 외부의 메스가 필요하다”고 썼다. 이 법학도에 따르면 사람들은 스포츠가 필연의 영역(공적 영역)이 아니라 자유의 영역(사적 영역)에 속해 있기 때문에 스포츠세계에서는 사적 자치를 우선시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사적 자치란 경기장에서 일어난 일은 경기장내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한다는 의미이며, 문제 해결의 기준이 되는 것이 소위 스포츠법률(lex sportiva)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법학도가 보기에 경기장내에서 통용되고 있는 스포츠법률만으로는 경기장에서 일어난 일들을 해결할 수 없다. 도핑 같은 불공정한 행위들이 스포츠의 일상이 된 이유도 스포츠법률에만 의존했기 때문이란다. 따라서 그는 스포츠법률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스포츠의 사적 자치에 반대한다고 하였다.

 

그의 주장을 조금 더 부연하자면 스포츠에서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일반법, 즉 민법이나 형법의 도입을 적극 고려해야한다는 것이다. 스포츠의 문제 해결을 위한 일반법의 도입을 요청하는 법학도의 주장을 접하고 두 가지 의문이 들었다. 첫째, 과연 그가 주장하고 있듯이 경기장 밖의 논리를 경기장 안으로 도입한다면 과연 그와 같은 조처를 통해 경기장내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이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을까? 즉 법이 간섭할 경우에 스포츠에 만연해있는 도핑 같은 일탈행위는 근절될 수 있을까? 둘째, 법이 스포츠에 간섭할 경우에 부수적으로 다른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까? 첫 번째 의문과 관련하여 저자는 법의 간섭으로도 스포츠의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두 번째 의문과 관련하여 저자는 오히려 법의 간섭을 통해 스포츠의 긍정적 이미지가 더욱 크게 훼손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말하겠다.


먼저 첫 번째 관점부터 살펴보자. 법의 간섭을 통해 스포츠의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은 일상적 경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한 사회 내에서 법적 처벌의 수위가 아무리 높아져도 범죄는 사라지지 않는다. 법은 결코 불법을 사라지게 할 수 없다. 오히려 법의 증가는 필연적으로 불법의 증가를 동반한다. 법은 불법과의 차이를 통해서만 자신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법은 사회생활에서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을 과대평가한다. 따라서 문제의 원인과 책임을 행위자 개인에게 귀속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범죄발생율과 사회적 불평등 정도 사이에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경험적 연구결과들은 범죄의 원인이 개별 행위자에게 뿐만 아니라 사회구조에도 있다는 점을 암시해주고 있다. 스포츠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도핑 같은 일탈행위는 법적 제재 조치만으로 방지될 수 없다. 그와 같은 일탈행위의 원인은 행위자 개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범죄 유발을 암묵적으로 조장하는 경쟁스포츠와 그 주변체계들에게 더 큰 원인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은 도핑 같은 일탈행위의 원인과 책임을 오직 행위자 개인에게만 귀속시킨다.

 

 

다음으로 법적 간섭을 통한 스포츠 자체 내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자칫 스포츠의 긍정적 이미지를 더욱 훼손시킬 우려가 있다. 법의 코드에 입각하여 스포츠를 관찰할 경우 불법적 스포츠의 지칭은 필연적이다. 합법의 증가는 불법의 증가를 필연적으로 동반하며, 스포츠가 합법과 연결될 가능성과 함께 불법과 연결될 가능성도 함께 증가한다. 이것은 경쟁스포츠가 법적 커뮤니케이션의 사슬에 등장할 경우에 피할 수 없는 결과이다. 현대 경쟁스포츠는 공정, 건강, 스포츠맨십 같은 가치들과 결합되면서 긍정적 이미지를 갖게 되었으며, 이러한 이미지에 힘입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도핑이나 승부조작 같은 일탈행위로 인하여 경쟁스포츠는 기만, 죽음, 범죄 같은 가치들과 결합되었으며, 그 결과 애초에 갖고 있던 긍정적 이미지가 훼손되고 있다. 이와 같은 경향에 더하여 스포츠를 대상으로 한 법적 관찰이 일상화될 경우 스포츠의 부정적 이미지는 더욱 확산될 것이다. 사회의 기능체계로서 법은 오직 합법과 불법이라는 주도적 코드에 기초하여 스포츠를 관찰하며, 이 과정에서 스포츠와 불법적 이미지의 결합은 필연적이다. 법에 의해 불법적 스포츠가 커뮤니케이션되고, 이로부터 각종 기능체계들의 반향이 뒤따를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법에 의해 지칭된 불법적 스포츠는 대중매체에 의해 스캔들로 부각될 것이며, 다양한 종류의 기고들이 등장할 것이다. 그리고 그 필연적인 결과는 “불법적 스포츠” 커뮤니케이션의 확산이다. 법적 간섭 보다 우선되어야할 것은 스포츠에서 일탈행위를 조장하는 스포츠 내적 및 외적 기대구조들의 완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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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동혁 2013.04.23 23:45 신고

    안녕하십니까~ 1학기생 우동혁 입니다.
    저는 스포츠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은 스포츠 법률에서 전적으로 처리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선수들과 팬들에서의 폭력, 도핑 등 몇 가지에서는 외부의 법을 이용하여 강한 처벌을 내려야 되지만 스포츠 법률에서 처리할 수 있는 일까지 외부의 법을 도입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운전을 하다가 아무런 죄가 없고 잘못한 것도 없는데 순간 경찰을 보면 이상하게 뜨끔하게 됩니다. 이런 조금의 거리감이 있는 외부적 법률이 사소한 것에서도 사람의 마음에 때로는 크게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너무 과도한 외부의 법률까지 이용을 하면 공정, 건강, 스포츠맨십, 팬들의 열광하는 이런 좋은 커뮤니케이션들도 피해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정성원 2013.04.24 14:40 신고

    안녕하십니까 1학기생 정성원입니다.
    저는 스포츠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위들이 스포츠 법률로써 처리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반 민법이나 형사법의 도입과 함께 해결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도핑과 승부조작을 예로 들자면 스포츠 법률로서는 제재를 할 수는 있겟지만 완전히 사라질 수 있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민법이나 형사법을 같이 도입하여 처벌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물론 개별 행위자에게 모든 것을 돌리지만 사회배경이나 사회구조에 있어서 그렇게 만든게 아닌가 한번은 되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스포츠 법률로서만 제재를 가한다면 더욱 도핑이나 승부조작과 같은 일탈행위들이 줄어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스포츠 법률로서 경기장 안에서의 모든행위들을 통제를 할 수 있다면 너무나 좋겠지만 그러기에는 한계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과도한 법률까지 적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스포츠 법률과 일반 민법이나 형사법을 같이 도입하여 적절하게 사용하면 경쟁스포츠에서의 공정, 건강, 스포츠맨십 같은 긍정적 이미지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조민영 2013.04.24 15:05 신고

    안녕하십니까, 1학기생 조민영입니다.
    저 역시 일반법을 시행한다고 해서 도핑, 승부조작 같은 불공정한 행위들이 사라진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일반법을 시행함으로써 스포츠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확산되는 것도 불보듯 뻔한 일이지만, 모든 불공정한 행위들이 스포츠 법률에 의해서 해결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들고 법의 심판없이 사적자치를 우선시해서 스포츠 외적 내적 완화를 기대하는것 역시 어려운 일인 듯 합니다.

  • 최규창 2013.04.24 20:58 신고

    교육대학원 1학기생 최규창입니다.
    스포츠에 불공정한 행위들을 스포츠 법률 안에서만 해결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승리 지상주의로 인해 경쟁 구도가 심해짐에 따라 발생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황금만능주의의 사회적 구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스포츠 법률 안에서 불공정한 행위들을 근절 시킬 수 있는 처벌이 이루어 지고, 처벌을 스포츠 법률 안에서 강화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위의 글에서 보듯이 '법은 결코 불법을 사라지게 할 수 없다. 오히려 법의 증가는 필연적으로 불법의 증가를 동반한다.' 라고 말 한것 처럼 사회적으로 스포츠에 대한 법을 만든다면 그것이 근절 되지는 않고 불법의 증가를 뜻하기에 각 종목의 스포츠 법률 안에서 불공정한 행위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엘리트 선수나 공인으로 있는 스포츠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유년 시절부터의 불 공정한 행위에 대한 정서적 교육이 이루어 지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 조성우 2013.04.24 20:58 신고

    교육대학원 3학기생 조성우 입니다!
    스포츠라는 자체에서 승리지상주의적인 경쟁구도의 요소를 빼버린다면 과연 스포츠로서의 기능을 가질 수 있는가 의심해봅니다.
    일탈행위를 조장하는 스포츠 내적 및 외적 기대구조의 완화도 중요하지만 기대 자체만 완화 해버린 스포츠로는 가치가 급격히 떨어 질 것이다.
    기대감을 낮춘다기 보다 메스컴을 통한 캠패인 및 불법적 스포츠를 막는 국민적인 운동을 조성해야한다.
    그리고 엘리트 선수들의 정신적인 교육을 체계적이고 심도있게 하는것이 불법적 스포츠의 발생을 감소시키는 긍정적인 측면이 되지 않알까 생각합니다.

  • 백상우 2013.04.24 21:22 신고

    안녕하십니까 1학기생 백상우입니다.
    저는 스포츠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위들은 스포츠 법률로써 처리 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경기중에 일어난 일은 경기룰에 따라 중재를 하는 심판이라는 존재도 있기때문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도핑과 승부조작을 예로 들자면 이 문제들은 따지고 보면 경기중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경기전에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경기전에 일어난 일들은 일반법률로써 따져야 될 문제인것 같습니다.경기중에 도핑이나 승부조작이란 사실이 밝혀지면 스포츠 법률로써 제재를 할 수는 있겟지만 이러한 문제들은 사전에 일반법률로엄격히 다스려야 사전에 예방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포츠 경기를 보면 시합중에 비신사적인 행위, 경기룰에 어긋나는행위,들은 경기룰에 따라 페널티가 부여됩니다. 하지만 시합중 선수들간 살인을 저지른다던가 이러한 문제는 없기때문에 일반 민법이나 형법까지 스포츠경기에 도입되야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스포츠법률 에서 룰을 어길시 더많은 페널티를 부여해주고 경기뿐아니라 선수들을 사전에 교육함으로서 문제들을 사전에 예방을 해야된다고 생각합니다.

  • 정현도 2013.04.24 22:34 신고

    안녕하십니까? 4학기생 정현도입니다.
    합법과 불법은 상관관계이며 돈이라는 목적이 스포츠 이미지를 높이거나 훼손시키는 큰 원인이 됩니다. 이러한 문제점은 외부에서 발생되어 내부로 들어오기 때문에 스포츠의 합법, 불법이라는 코드로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만약에 불법이 되는 도핑, 승부조작 등이 민법으로 처리가 될 경우 스포츠의 부정적 이미지 는 더 확산되어 제2의 법에 간섭을 받아 스포츠 내의 자생력, 기반이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스포츠의 문제들이 스포츠의 법안에서 해결되면 가장 좋겠지만 그러지 못한 부분에서는 민법의 강력한 부분을 부분도입하여 스포츠법으로서 처벌이 되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어느 한 곳으로 치우치면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최소화시키면서 말입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이런 불법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구조를 변화시켜야 합니다. 어린선수시절부터 안전한 학습 환경이 보장 되어 인성 및 윤리교육을 바탕으로 한 교육이 철저히 이루어져 스포츠 윤리관을 갖도록 해야 할 것이고, 잘못된 승부 조작이나 도핑 등이 악습 되지 않도록 건강한 스포츠의 근간을 교육시켜야합니다.
    합법-불법의 주도적 코드에 기초하여, 불법적 스포츠의 필연적 근절을 위해 적절한 법의 심판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스포츠 내에서 선수들이 자신의 기량만으로 평가 받을 수 있는 합법적인 구조화를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 마수현 2013.04.25 00:04 신고

    1학기생 마수현입니다.

    법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을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떤 사회든 또는 어떤 분야든 법이 등장하면 그 동안 행해져 왔던 것들은 더욱 더 음성적으로 변해 법의 망을 교묘하게 피해갈 것입니다.

    법률적 마인드(리걸마인드)사고에서는 법적 사고력만이 가장 우선시되고, 그 외의 요소들은 부차적인 것들로 중요시 되지 않습니다.

    법률적 마인드로 스포츠 분야를 바라보고 외부의 메스를 사용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들이 더욱 더 깊은 곳으로 숨어 마치 암세포처럼 더욱 악화될 것입니다.

    마지막 수단인 법...이 전에 근본적으로 스포츠에서 일탈행위를 조장하는 스포츠 내적,외적 기대 구조들을 완화하면서 예방하는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 박준한 2013.04.25 00:31 신고

    2학기생 박준한입니다.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법대생이 쓴글을 반론하는 글을 썼다고 해주신말씀만으로 어떤내용일것인지 생각했었는데 거의 맞아떨어진것같습니다.
    법대생은 스포츠도 민법이나 형법으로 스포츠안의 법을 다스려야한다고 하는데 여기에는 작은도덕과 큰도덕이 적용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스포츠안에는 룰이라는것이있습니다. 선수가 시합중규칙을 어긴다고해서 징역살이를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시합안의 룰이 아닌 큰도덕(예를들면 승부조작)일경우는 얘기가 달라집니다.프로농구팀의 모감독은 형법에 따라 징영2년이라는 구형을 선고받은바 있습니다.
    법대생은 오로지 생각을 스포츠를 자신의 관점에서만 해석을 했기때문에 무조건적으로 법이면 다 해결된다는 생각을 하는것같습니다. 그 생각이 잘못된것은 아니지만 운동을 하는 스포츠관계자들은 다르게 생각을 할수있다는것입니다.
    니콜라스 루만의 사회체계에 따르면 보는관점에 따라 생각하는것도 달라지기 때문에 법을 적용했을때 이런생각 저런생각들이 나올수있을것이고 법대생의 생각에 반론하는 교수님의 생각또한 이차등급관찰에 따라 관찰하는 관찰자중 한명의 생각일것이라고 생각합니다.자본주의 사회의 어쩔수 없는 현상인것같고 정답은 있을수 없고 단지 스포츠하는 선수들이 경기규칙에 맞게 최선을 다해준다면 법은 규칙에 다가서지 못할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 박병준 2013.04.25 00:31 신고

    안녕하십니까 1학기생 박병준입니다.
    제 생각에는 스포츠경기 안에서 이루어 지는 법적인 부분과, 스포츠경기 밖에서 이루어지는 적인 법적인 점을 구분하여,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포츠경기 안에서 이루어지는 선수, 코치, 감독 들이 일으키는 돌발적인 행동은 경기중 경기규칙에 따라 심판이 그에 따르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 옳고, 경기장 밖에서 이루어지는 도핑, 승부조작, 대학입시비리 등은 민법을 통해 그에 맞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옳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구분을 지어 시행 한다면, 현재 우리나라 스포츠에서 발견되고 있는 도핑, 승부조작, 대학입시비리, 선수폭행 이러한 부분들은 하루 빨리 해결 할 수 있을 것 이고, 현재 우리가 스포츠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생각, 이미지를 벗어 날 수 있을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 임종대 2013.04.25 11:04 신고

    1학기생 임종대 입니다.
    스포츠의 사적자치로서 스포츠는 경기가 일어난 경기장 내에서 해결된다고 하였습니다. 불공정한 행위들이 일어나는 이유가 스포츠 법률만으로 해결을 하려한다는 점인데 스포츠는 각 스포츠마다 규칙이있고 룰이 있습니다. 축구경기에서 심한반칙에 범한 선수는 경고또는 퇴장을 적용하므로서 페널티를 주고 심한경우는 심판과 리그관계자들의 협의하에 벌금또는 몇경기 출장 정지라는 벌칙을 주게됩니다. 이런 반칙을 범한 선수에게 스포츠규칙이아니라 민법,형법을 적용할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민법과 형법을 적용하지만 그 적용범위를 정하고 경기장 내부의 문제는 선수들이 경기중에 일어나는 일들뿐이며 도핑과 승부조작등은 이미 경기가 진행되기 전에 발생한 외부에서 발생한 점을 고려한다면 당연히 민법,형법이 적용되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경기의 내부외부를 잘 따져보아 경기내의 경기 규칙의 위반인지 경기외적으로 다른 누군가가 개입하여 이루어지는 불법행위 인지를 잘 따져보고 시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법은 그행위가 정당한지 불법인지만을 보고 판단하기 때문에 스포츠 법률과 잘 ㅅ생각해보고 판단하여 행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안중섭 2013.04.25 11:21 신고

    안녕하십니까 2학기생 안중섭입니다.
    위 글의 법학도가 주장한 내용에 따르면 스포츠에 있어 도핑 같은 불공정한 행위들이 만연하는 이유는 스포츠법률에만 의존했기 때문이며,스포츠법률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스포츠의 사적 자치에 반대한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스포츠의 본래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하고, 그 의미를 훼손하고 있는 것이 생각합니다. 비록 현대 사회의 스포츠가 도를 넘는 경쟁 속에서 의미가 퇴색되어가고 있긴 하지만 스포츠는 경쟁과 유희성을 가진 신체운동 경기라는 의미를 토대로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도핑과 같은 불공정한 행위들이 스포츠에서 만연하는 것은 위 글에서 언급했듯이 운동선수 개인의 문제라기 보다는 경쟁을 부추기고 스포츠 도박과 같은 사회적 배경들이 그 이유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민법의 대상으로 여긴다면 법의 기본 원리에 따라 선수 개개인에게 그 책임을 떠 넘기게 되고 이는 결국 스포츠의 공적 자치를 넓힌다고 한들 해결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스포츠에 민법을 도입하는 것, 즉 스포츠에 공적 자치의 영역을 넓히는 것은 스포츠 본래의 의미를 퇴색시켜 '불법적 스포츠'를 만연케 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 곽푸름 2013.04.25 14:00 신고

    안녕하세요 1학기생 곽푸름 입니다.
    역시나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본문의 마지막내용, '법적 간섭 보다 우선되어야할 것은 스포츠에서 일탈행위를 조장하는 스포츠 내적 및 외적 기대구조들의 완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부분에서 답을내기가 참 어렵습니다.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길은 참 여러가집니다.
    걸어서 한달이 걸려 도착을하느냐,자동차를 훔쳐서 하루만에 가느냐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봅니다... 만약 문제가 시간을 다투는일이라면
    후자의 방법도 고려할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주변에서 손가락질 받습니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피해는 막을수 있습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위해서 지금당장의 피해를 무시할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법적제재로 인한 스포츠 이미지에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두려워해서 지금당장 피해를보는 선수들을 외면할수는 없다고생각합니다.

    내외적 구조의 변화를 유도함으로써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나 그 결과로 가기전까지의 공백을 메워줄 임시방편또한 무시할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얻기위해선 작은부분의 희생을 감수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이병규 2013.04.25 15:32 신고

    안녕하십니까? 대학원생 이병규 입니다.
    스포츠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으며, 규칙요소를 빼버린다면 그것은 놀이에 속한다는 사실을 배운적이 있습니다. 놀이에서 발전한 것은 맞지만 앞서 말했듯 스포츠에는 공정, 건강, 스포츠맨십 같은 가치들과 결합되면서 긍정적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는것은 부정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모든 사회에서 집단을 이룰 때 소수 몇%는 악의 집단을 이룬다고 합니다. 스포츠와 법률이 동반하게 된다면 스포츠의 본질의 의미와는 거리가 더욱 멀어질 것이라 판단되며, 스포츠에 위반되는 행위들은 합법이냐 불법이냐에 관계하는것이 아니라 단지 스포츠에 도덕적 의미를 위반되느냐 안되느냐 이것이 문제의 틀로 기준을 잡아야하며 그에따른 문제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고쳐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앞으로의 스포츠에 또 다른 문제점들을 예방할 수 있는 근본적인 문제가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 정문주 2013.04.25 16:26 신고

    안녕 하십니까? 대학원 1학기생 정문주 입니다.
    법적 간섭을 통한 스포츠 자체 내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자칫 스포츠의 긍정적 이미지를 더욱 훼손시킬 우려가 있다. 법의 코드에 입각하여 스포츠를 관찰할 경우 불법적 스포츠의 지칭은 필연적이다. 합법의 증가는 불법의 증가를 필연적으로 동반하며, 스포츠가 합법과 연결될 가능성과 함께 불법과 연결될 가능성도 함께 증가한다. 이것은 경쟁스포츠가 법적 커뮤니케이션의 사슬에 등장할 경우에 피할 수 없는 결과이다. 라는 이말에 공감을 하고 있습니다. 사회가 사람을 자꾸 불볍적으로 만들어 가며 과정보다는 결과만을 생각하고 그결과를 위해서라면 불법적인 도핑또는 승부조작이 계속 일어 날것입니다. 법적으로 다막는 다고 해서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여러 방법을 도입해서 스포츠 세계에서 불법적인 인들이 살아 졌으면 합니다.

  • 김상협 2013.04.25 16:39 신고

    안녕 하십니까 교수님 1학기생 김상협 입니다.
    저의 생각은 스포츠경기에 이루어지는 법적인 점은 구분하여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복싱경기중에 한선수가 사망을 하였을경우 때른 선수는 승리하고 법적 조치는 없다 하지만 민법 형법으로 가면 피해를 입히면 구속및 벌금 형에 처합니다.
    이처럼 경기에 맞는 규정과 규칙이 있기때문에 저는 구분이 명학하게 되여야 된다고 봅니다.

  • 윤재현 2013.04.25 18:03 신고

    안녕하십니까. 2학기생 윤재현 입니다.
    승부조작, 도핑 등의 불법행위가 스포츠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훼손시킨 점에 대해서는 다른 이견이 없습니다. 하지만, 법학도의 몇 가지 사례를 예로 스포츠법률에 반대한다는 말에는 설득력이 부족한것 같습니다.
    스포츠를 대상으로 한 법적 관찰이 일상화될 경우 스포츠의 부정적 이미지와 더불어 불법적 스포츠 커뮤니케이션은 더욱 확산될 것이며, 제1 제2제의 승부조작 사건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정춘엽 2013.04.29 14:41 신고

    첫째, 법의 간섭이 스포츠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행위자 개인에게만 책임을 묻게하는 일은 좋지 않은 일인것 같습니다.
    둘째, 하지만 부정적인 면을 너무 감추는 일도 스포츠의 발전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긍정적인면과 부정적인면의 커뮤니케이션이 잘 조합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최승구 2013.04.30 11:02 신고

    안녕하십니까 3학기생 최승구 입니다.
    법의 간섭을 통해 스포츠의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점에 동의하는 바입니다.
    스포츠 외적인 부분에서 간섭이 들어 온다면 스포츠 자체의 이미지 훼손 우려가 됩니다. 그렇다고 부정적인 면을 감추려고만 하는 것도 문제는 있다고 봅니다.
    외적 요소가 들어오려면 내적요소와 적절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 져야 하고, 하지만 아무리 긍정적이 커뮤니케이션이 되어도 스포츠의 어두운 면들은 깨끗히 사라지기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선수들의 경각심을 일깨워 선수와 지도자 개개인의 부단한 노력과 스포츠를 지키려는 문화적 마인드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 허민지 2013.05.25 16:51 신고

    안녕하십니까 1학기생 허민지입니다.

    스포츠가 스포츠법률 외의 법으로 간섭받게 된다면 그 법을 피하기 위한 또 다른 불법이 생겨날 것이고, 그것으로 인하여 부정적인면이 노출되면서 스포츠 외의 다른 시선들이 스포츠를 더욱 부정적 모습에서부터 관찰을 시작하게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그 전 글에서 접했던 도핑을 비롯한 모든 스포츠의 불법적인 모습이 개개인의 잘못만으로 판단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습니다.
    스포츠 법률이 아닌 다른 법으로 불법적행위를 한 선수를 관찰하게 된다면 우리사회가 점점 물질만능주의와 승리가 먼저인 사회로 변화해간다는 사실은 인식되어지지 못한채 선수 개인에게 단지 그 불법적행위에 대한 처벌만 내려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된다면 불법적행위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악순환이 계속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스포츠 관한 문제는 법의 간섭보다는 스포츠법률 안에서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글/하남길(경상대학교 교수)

 

 

1876년의 박스 스코어(wikipedia. H. Chadwick)

 

 

1904년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80번째 생일을 맞은 한 언론인에게 50년 동안 야구계에 남긴 업적과 공헌을 되새기며 축하의 인사를 보냈다. 그 주인공은 19세기 미국 “야구의 아버지”로 불리는 스포츠 라이터 채딕(H. Chadwick)이었다. 스포츠의 중심에는 선수가 있었지만 스포츠 역사의 중심에는 저널리스트들이 있었다. 채딕의 업적은 야구 가이드 편찬, 야구 기록의 통계적 정리, 야구의 역사 정립 등이었다. 특히 돋보이는 것은 야구 통계분야의 업적이었다. 야구장에서 “KKK”라는 피켓이나 현수막을 보게 되면 채딕을 떠올리게 된다. 그가 처음으로 스트럭 아웃을 K로 표시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채딕은 1824년 잉글랜드 엑시터에서 출생했다. 12살 때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하여 브루클린에서 소년시절을 보낸 그는 아버지처럼 운명적으로 신문과 잡지에 기고를 하다가 스포츠 전문 기자가 되었다. 1844년부터 기고를 시작한 이래 『뉴욕타임스』를 비롯하여 많은 언론에 야구에 관한 글을 썼다. 1957년부터 『더 뉴욕클리퍼(The New York Clipper)』지(誌)에 야구 기자 및 통계전문가로 발탁되기도 했다. 펜 하나를 도구로 그가 야구 발전에 미친 영향은 매우 컸다. 아마추어 야구 통계학자 겸 야구 전문 라이터로서 글을 통해 야구에 대한 인식을 바꾸었다. 알코올과 도박에 찌든 야구의 정화를 위해 노력했으며, 최초의 야구 가이드  《비들 베이스볼 플레이어(The Beadle‘s Baseball Player)》를 편찬했다.

 

채딕이 야구 역사에서 빛나는 것은 야구 기록의 통계적 정리를 시도한 최초의 기자였기 때문이다. 1861년 『비들 가이드(Beadle guide)』에 유명한 선수의 아웃(outs), 런(runs), 홈런(home runs), 스트라이크아웃(strikeouts) 등에 관한 기록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보였다. 그것이 미국 최초의 야구 기록 데이터 베이스였다. 1867 워싱턴DC 야구클럽의 전국 투어에서 공식 기록 집계를 맡았고, 1874년 잉글랜드 투어에도 참가했으며, 1876년에는 야구의 박스 스코어(box score) 기록 방식을 고안하여 선보였다. 첫 박스 스코어는 9명의 선수를 나열하는 가로 9줄과 9이닝을 표시한 세로 9줄의 격자 표였다. 채딕은 표에 약어를 사용해 기록을 정리하던 어느 날 남들은 영문도 모를 K자를 사용했다. 그것은 스트라이크 표시였다. strike의 과거형인 ‘struck out’의 ‘struck’의 끝 철자 K를 사용했던 것이다. S를 쓰자니 희생타(sacrifice hit) S와 중복되었기 때문이다. 야구의 모든 박스 스코어 구조와 기초적인 포맷이 채딕에 의해 이루어졌고, 그 외 타율, 방어율 등에 관한 통계적 처리도 그가 처음 시도했다.

 

채딕은 야구 발전에 대한 공로로 대통령으로부터 생일 축하 메시지까지 받았고, 1938년 야구 명예의 전당에도 올랐다. 그러나 1908년 사망하기 전까지 깊은 마음고생을 했다. 1860년 정확한 야구 기원설을 제시했으나 학계에서 무시당했고, 1903년 재차 야구는 영국의 라운더스(rounders)라는 놀이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주장했다가 미국 스포츠 국가주의자들로부터 냉대를 받으며 살았다. 1907년 더블데이 야구 창안설이 조작된 것임이 밝혀졌으나 이듬해 그는 죽음을 맞았다. 수많은 업적으로 훗날 미국 야구의 아버지로 불리게 되었으나 KKK라는 용어를 만들어 낸 장본인은 야구기원 논쟁에서는 KK를 당한 야구 타자와도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야구 역사 속에는 KKK를 잡은 투수 같은 존재로 남아 있다. 

 

 

참고문헌
Betts, John R.(1974). America's Sporting Heritage. Reading, MA : Addison-Wesley.
Chadwick, Henry(1901). Old Time Baseball, Outing, XXXVIII (Junly).
Grabowski, John F.(2001). Baseball. San Diego, California : Lucent Books Inc.
Melvin, Adelman(1986). A Sporting Time: New York City and the Rise of Modern Athletics, 1820-70. Urbana, Ⅲ : University of Illinois Press.
Peverelly, Charles A.(1866). The Book of American Pastimes: Containing a History of the Principal. New York: Published by the Au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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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하남길(경상대학교 교수)

 

               2009년 영국의 ‘더 인디펜던트’지에 세계 최고의 남자 바람둥이 스포츠 스타 15명을 선정한 바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탁월한 기량과 출중한 남성적 외모였다. 최고의 바람둥이는 축구시합 중 하프타임을 이용한 섹스스캔들을 일으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 조지 베스트였다. 마돈나와 염문을 뿌렸던 농구스타 테니스 로드맨도 명단에 빠지지 않았다. 테니스 스타 비타스 게룰라이티스도…. 남자 스포츠 종목에서 스타들의 강한 남성성(manliness)은 여성들의 눈길을 끄는 강한 흡인력을 지니며, 그 흡인력은 해당 종목의 상품적 가치를 높여주기도 한다. 반대로 여자 스포츠 시장에서는 스타들의 여성성이 남성성과 같은 상업적 가치를 지니게 된다. 최근 여자판 미식축구, 란제리 풋볼리그나 여자 농구계의 ‘비키니바스켓볼리그(Bikini Basketball League)’의 출범 계획은 이 같은 맥락에서 나온 아이디어일 것이다.

 

 

인터내셔널 비즈니스 타임스(2012. 9. 28)


미국의 여자 프로 농구는 지난 시즌 흥행에 완전 실패했다. 참패의 쓴 잔을 마시던 협회는 고육지책으로 지난 9월 비키니농구협회(Bikini Basketball Association)를 창설했다. 각 지역에 연고를 둔 8개 팀은 마이애미 스파이스, LA아이스, 시카고 디자이어, 미네소타 미스트, 애틀랜타 피치스, 뉴욕 녹아웃츠, 할리우드 하티즈, 올랜도 레이디캣츠 등이다.


BBA의 ‘비키니농구리그’는 여자 선수들의 노출을 통해 남성 팬들의 이목을 끌어보자는 전략적 마케팅이다. 선수들은 비키니 대신 비치발리볼 선수들과 유사한 복장을 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벌써 미국의  농구팬들은 “경기 직후 선수들은 현장에서 유니폼을 서로 바꾸어 입나요?”라는 댓글을 올리며 몸매 노출 소식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BBA는 기존 남자 농구의 경영방식에 여자농구의 여성성을 강조한 위미니지먼트(womanagement) 리더십을 선보인 것이다. BBA는 방송 중계권과 유니폼 협찬 요청이 쇄도하자 희망적인 표정을 지으며, 여론의 향배에 촉각을 세웠다. BBA 수장 맥아더는 건강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자 할 뿐 선수는 외모보다 농구 실력으로 뽑는다고 말한다. 말을 돌려 ‘성(性)의 상품화’라는 비난을 피해보고자 함이다. BBA의 실험이 농구 창안자 네이스미스의 복숭아 바구니 실험처럼 성공으로 끝날지, 실패로 끝날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 소식을 하늘나라의 귤릭(L. H. Gulick, 1865–1918)이 들었다면 냉소를 지을 것임은 분명한 것 같다.


귤릭은 농구 창안을 주도했던 미국의 스포츠 혁명가였다. 하와이에서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던 그는 어린 시절부터 허약했다. 1885년 오벌린 대학생이었던 그는 건강한 신체와 건전한 정신에 의존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을 굳히고, 대학 학업을 포기한 채 체육지도자 강습소로 향했다. 6개월 과정을 마친 그는 다시 뉴욕 의학교로 진학하여 학업을 마쳤지만 의사의 길을 포기했다. 하느님의 일꾼으로 살기로 작정했던 그는 스프링필드 YMCA에서 체육 강사의 길을 갔다.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그는 복음전파를 위해 수단으로 각종 스포츠를 도입하고, YMCA 강당에 청소년들을 끌어 들였다. 그리고 동계 실내 스포츠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제자 네이스미스에게 새로운 스포츠의 창안을 지시하게 되었다. 그 결과로 탄생한 것이 농구였다.


1891년 농구는 남자 청소년들을 위해 고안된 스포츠였으며, 하느님과 청소년들의 소통을 위한 미션이었던 셈이다.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귤릭이 농구 창안을 주도하고, 각종 스포츠 보급 운동을 펼친 것은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을 갖춘 독실한 크리스천을 양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의 뜻은 윗변은 영(spirit), 좌우 빗변은 신체(body)와 정신(mind)을 상징하는 YMCA 역삼각형 휘장에 잘 나타나 있다. BBL의 출범은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귤릭과 네이스미스에게 거의 모독에 가까운 일이 아닐까?

 

 


참고문헌
최현주(2010). 미국 YMCA 스포츠 運動史 연구. 경상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Dorgan, Ethel(1934). Luther Halsey Gulick, 1865~1918. New York : Columbia Univ. Press.
Gerber, Ellen W.(1971). Innovators and Institutions in Physical Education. Philadelphia : Lea & Febiger.
Morse, Richard C.(1918). My Life with Young Men. New York: Association Press.
Peuce, Owen E.(1944). The Hundred-Year Book: A Synoptic Review of Association History. New York: Association Press.
The Watchman 2 (Nov. 1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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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송형석(계명대학교 교수)

 

            흔히들 스포츠는 사회의 거울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스포츠에 그 스포츠가 수행되고 있는 사회의 가치들이 반영되어 있다는 뜻일 것이다. 스포츠가 교육활동과 접목되어 활용될 수 있게 된 데에는 이와 같은 가정이 큰 몫을 하였다. 한 사회에서 다양한 가치들이 생겨나고, 이 가치들은 그 사회에서 수행되고 있는 스포츠에 반영된다. 그리고 스포츠에 참여하는 사회구성원들은 스포츠 사회화과정을 통해 이러한 가치들을 습득함으로써, 이 가치들은 다시 그것이 발원한 사회로 돌아간다. 이렇게 사회의 가치와 스포츠의 가치는 서로 순환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 ‘스포츠는 사회의 거울이다’라는 테제에 함축되어 있다. 그렇다면 사회로부터 스포츠로 유입되고, 스포츠로부터 다시 사회로 복귀하는 가치는 어떤 것일까? 그리고 그것은 누구에게나 권장해도 될 만큼 좋은 가치일까? 먼저 첫 번째 물음부터 살펴보자.

 

스포츠에 내재된 대표적인 가치로 언급되는 것들은 대개 경쟁, 팀워크, 자신감, 자기규율, 건강 같은 가치들이다. 그러나 스포츠참여를 통해 습득되는 가장 확실한 가치는 경쟁뿐이다. 팀워크나 자신감, 자기규율, 건강 같은 가치들은 습득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참가 경험을 통해 오히려 이기적으로 된 이도 있고, 자신감을 잃어버린 이도 있다. 또한 더욱 폭력적이 되거나 건강을 상실한 이도 드물지 않다. 이렇게 볼 때 이 가치들은 스포츠의 구성적 요소라기보다는 우연적 요소일 뿐이다. 반면에 오직 승리에만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스포츠의 특징을 고려할 때 경쟁이라는 가치는 스포츠의 구성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스포츠는 승패를 가리기 위해 인간의 감각기관으로는 도저히 식별 불가능한 근소한 기량 차이까지도 밝혀내는 장비까지 개발하였다. 이렇게 스포츠에서 승리에 대한 관심은 절대적이며, 이로부터 스포츠에 참가하는 자는 누구나 예외 없이 경쟁심이 강화된다.

 

 

이제 두 번째 물음에 대해 알아보자. 경쟁은 좋은 가치일까? 스포츠비판가들은 스포츠에 구성적인 가치인 경쟁을 매우 부정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경쟁은 인간을 소외시킨다고 믿기 때문이다. 즉 경쟁은 누군가를 패배시키고자하는 열망이며, 심한 경우 타인을 해치고자하는 충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아직 가치관이 확고하게 정립되어있지 않은 청소년기에 이러한 가치를 내면화하는 일은 피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이에 근거하여 학교교육에서 경쟁을 부추기는 스포츠를 금지해야한다고 강변하기도 한다. 미국 학교체육에서 시작된 소위 뉴-스포츠운동이라는 것이 이와 같은 경쟁 가치의 비판에서 출발하였다. 정말로 스포츠의 경쟁이 절대적으로 부정적인 것일까?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스포츠의 경쟁은 토마스 홉스가 『리바이던』에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묘사했던 무자비한 경쟁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스포츠상황을 꼼꼼히 살펴보면 경쟁과 함께 또 다른 가치가 경쟁스포츠에 붙박여 있으며, 이 가치는 경쟁이 특정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도록 지휘하고 통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철학자 드류 하이랜더는 『스포츠의 철학』에서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예를 들고 있다.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길거리 농구장에 여러 아이들이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앉아있다. 다른 팀과 경기를 해서 이긴 팀은 계속해서 경기장을 사용할 수 있지만 진 팀은 물러나야 한다. 인종차별주의자인 한 아이는 차례를 기다리는 아이들 중 다섯 명을 추려 팀을 꾸려야한다. 그런데 백인 아이만으로 한 팀을 꾸릴 경우 계속해서 경기장을 차지할 수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흑인 중에 기량이 뛰어난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과연 당신은 실력이 다소 부족한 백인 아이들만으로 팀을 꾸릴 것인가 아니면 마음에 들진 않지만 기량이 뛰어난 흑인 아이들도 함께 섞어서 팀을 꾸릴 것인가?

 

위 물음에 대한 답변은 명백하다. 백인 아이는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기량이 뛰어난 흑인 아이도 함께 섞어서 팀을 꾸려야만 한다. 그래야만 경기를 계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예는 스포츠가 경쟁심을 부추기는 활동이지만 그 밑바탕에는 공정이라는 매우 긍정적인 가치가 깔려 있다는 점을 일깨워주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스포츠의 경쟁을 부정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대인에게 적극 권장할만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치철학자 존 롤즈도 사회 정의의 원리로서 ‘공정한 경기의 이념’을 제안한 바 있다. 우리는 스포츠를 하면서 경쟁심을 갖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갖게 된 경쟁심은 공정성을 그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경쟁심이라는 점을 알아야만 한다. ‘공정한 경쟁’이라는 가치는 무한경쟁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절실하게 요구되는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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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하남길(경상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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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명은 진화한다. 진화의 멈춤은 사라짐이다. 문화도 진화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는 문화는 쇠퇴하거나 사라지게 마련이다. 현존하는 스포츠도 문화적 진화를 거쳐 생명력을 유지한 것들이다. 중세 서민사회의 폭력이 난무했던 몹 풋볼(mob football)은 문화적 진화를 거쳐 럭비풋볼과 사커(soccer)로 남았다. 영국의 라운더스(rounders)는 크리켓과 야구로 남았다. 배구도 끊임없는 문화적 진화의 과정을 거쳤다. 최근 배구경기의 진화 속도를 보면 놀라울 정도로 공격성이 강화되고 있으며, 약 177년 동안 변해온 배구의 진화 과정을 상징하는 용어는 밤베리노(Bomberino)이다.


창안 당시 배구경기의 모습은 단순한 공놀이에 불과했다. 스포츠라기보다는 레크리에이션에 가까웠다. 테니스 네트를 치고 6-9명의 선수들이 공을 튀겨 네트를 넘기기만 하면 되는 놀이였다. 손으로 하는 배드민턴 유형이었고, 그래서 명칭도 민토네트(mintonette)였다. 배구 창안자 모건이 1895년 YMCA 학술회의에서 시연회를 개최할 당시의 발표 내용을 압축, 재구성해보면 초창기 배구의 모습을 쉽게 그려볼 수 있다.

 

여러분! 저가 오늘 소개할 뉴 게임(new game), 민토네트는 체육관이나 강당에서 하기에 딱 좋은 것입니다. 물론 실외에서도 할 수 있습니다. 시합에 뛰는 인원은 제한하지 않아도 됩니다. 민토네트 경기의 방식은 네트를 높게 쳐두고 공이 지면에 떨어지기 전에 손으로 쳐서 넘기만 하면 되는 게임입니다. 이 게임은 테니스와 옛 핸드볼(손으로 벽에 공치기 놀이)의 특성을 혼합한 것이며, 공이 지면에 떨어질 때까지 플레이는 계속됩니다. 게임은 9이닝으로 하되 실점을 했을 경우 ‘서비스 아웃’으로 부르게 됩니다. 

 

모건이 창안한 뉴 게임의 모습은 매우 심플했다. 라켓만 사용하지 않았을 뿐 인도의 민턴(minton) 게임과 유사해서 민토네트라는 명칭을 붙였으나 시연회를 참관한 스프링필대학의 할스태드(D. R. Halstead) 목사가 공이 지면에 닿기 전에 치는 것은 용어상 발리(volley)에 해당됨으로 ‘발리 볼(volley ball)’이란 명칭이 어떠냐며 명칭 변경을 제안했다. 그 이후 명칭은 ‘volley ball’이 되었다가 1952년 volleyball이란 복합명사로 바뀌었으나 초창기 배구는 공격성이 약한 매우 단순한 놀이였다.


창안 당시 배구와 현재 배구의 가장 큰 차이는 공격성이다. 차안 당시 배구 규칙에는 네트 4피트 가까이로 접근이 제한되어 있었다. 스파이크나 블로킹이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게임이 시작되면 공은 오래 동안 공중에 머물렀다. 랠리가 길었던 것이다. 그러나 배구는 종주국이 아닌 외국에서 진화했다. 미군(美軍)이나 YMCA를 통해 해외로 전파된 배구는 점차 공격적인 스포츠로 변했으며, 진화의 근원지는 필리핀과 공구 공산권 국가였다.


미국 배구는 상대편 진영으로 공을 넘길 시도도 하지 않은 채 자기편 진영에서 52번이나 공을 튀긴 경우도 있었다. 필리핀 사람들은 그런 배구를 3번 만에 쳐 넘기도록 규칙을 바꾸었고, 그 규칙은 1922년 공식적으로 채택되었다. 1916년이었다. 필리핀 사람들은 테니스 스매싱을 모방하여 오늘날 스파이크와 같은 밤바(bomba: 폭격) 혹은 킬(kill: 격추)이라는 흥미로운 플레이를 펼쳤다. 그리고 공격자를 밤베리노(Bomberino)라고 불렀다. 그 때부터 배구는 레크리에이션이 아닌 공격성을 띤 스포츠로 발전했고, 공격성이 강해지자 1930년대부터 체코와 소련에서 블로킹 기술이 개발되었으며, 1938년 전미배구협회가 블로킹 규칙을 받아들였다. 배구는 레크리에이션 게임에서 한층 더 공격성이 강한 스포츠로 발전했던 것이다. 오늘날의 배구는 더욱 공격적이 되었다. 후위의 어택라인 침범을 불허하는 규정이 있지만 백어택을 하고, 첫 공은 상대에게 공격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기에 서비스라고 부르지만 스파이크 서비스까지 등장한 것이다. 오늘날 배구계는 밤베리노의 시대이며, 밤베리노는 배구가 공격성이 강한 스포츠로 진화한 과정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역사 용어이다.

 

 

 

 

참고문헌
최현주(2010). 미국 YMCA 스포츠 運動史 연구. 경상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Dearing, Joel B.(2007). The Untold Story of Willian G. Morgan Inventor of Volleyball. Livermore, CA : wingSpan press.
Laveaga, Robert E.(1942). VOLLEY BALL. New York : A.S. Barnes & Company.
Brown, Elwood S. M.(1917). “Volley Ball in the Philippine Islands,” 1917-18 Official  Volley Ball Rules. New York : American Sports Publishing 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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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하남길(경상대학교 교수)

 

 

 

윌리엄 G. 모건

 

 

        야구는 21세기 대한민국의 최고 인기 스포츠가 되었다. 높은 인기 탓에 시즌이 끝난 겨울철에도 스포츠 신문의 머리기사는 인기 야구선수들의 운동화 끈 매는 이야기나 스프링캠프 이야기로 장식되고 있다. 언론이 스포츠의 균형적인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보여주기는커녕 판매부수 경쟁에만 열을 올리다보니 배구나 농구 기사를 보려면 시즌 중에도 신문의 뒤쪽 페이지를 뒤적여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직접 스포츠 참여 인구는 야구보다 배구가 많지 않을까? 배구는 축구와 함께 우리 역사에서 서민과 중산층에게 소중했던 외래 스포츠문화였다. 특히 가난했던 시절의 배구는 네트와 공하나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대표적인 생활체육 종목이었다. 배구 창안자 모건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모건은 어떻게 배구라는 경제적이고, 간결한 뉴 게임(new game)을 창안할 수 있었을까?

 

배구 창안자 모건(W. G. Morgan, 1870-1942)은 뉴욕의 록포트에서 조선업(造船業)에 종사하는 아버지와 신앙심이 깊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강건한 크리스천(Muscular Christian)이었던 모건은 어린 시절 엔지니어가 되는 게 꿈이었으나 다른 길을 택했다. 누구나 한번 쯤 뇌까려봤을 혼잣말, “가지 않는 길을 가리라.” 모건은 이런 독백을 실천하는 삶의 길을 선택했다. 마운트 허몬(Mount Hermon) 재학시절 미식축구 경기를 계기로 농구 창안자 네이스미스의 눈에 띄었다. 그의 권유를 받은 모건은 기독교 복음주의 운동이었던 스포츠 선교의 길을 택하고, 귤릭(L. H. Gulick)이라는 위대한 체육지도자가 머물었던 스프링필드 YMCA로 향했다. 그리고 교육을 받던 그는  농구 창안 실험자 네이스미스를 도우며 전문 체육 강사로서의 역량을 길러갔다.


1894년 모건의 첫 발령지는 메인주(州)의 오번 YMCA이었다. 거기서 1년을 보내고, 이듬해 여름 매사추세츠의 홀리요크 YMCA로 자리를 옮겨 남자 성인반 체육지도를 맡게 된 모건은 방대한 스포츠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복음전파을 위한 스포츠 선교활동에 몸을 던졌다. 바로 그 때였다. 회원 수가 급증하자 모건은 다양한 프로그램의 구안 필요성을 느꼈다. 성인들에게 농구를 시켜본즉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농구는 18명의 선수들이 원숭이처럼 뒤엉키는 럭비 같은 모습이었다. 모건은 새롭고, 덜 격렬한 오락적 게임의 필요함을 절감하게 되었다.


모건은 기도를 하고 뉴 게임 창안에 심혈을 기울였지만 배구와 유사한 어떤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뜻이 있는 자에게 길이 있다”는 믿음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시작은 미미하나 끝은 창대하리라고 믿었다. 경쟁적 형태의 레크리에이션 게임을 구상해보던 그는 농구, 야구, 테니스, 핸드볼(맨손으로 벽에 공을 치던 19C 게임) 등의 요소를 검토하다가 테니스의 라켓, 공, 네트에서 힌트를 얻었다. 그러나 라켓과 작은 공은 제외하고 네트만 취했다. 라켓으로 하는 경기는 좁은 곳에서 여러 명이 즐길 수 없을 것으로 봤다. 그는 테니스 코트보다 작은 직사각형 코트에 6피트 6인치 높이의 포스트를 세웠다. 그리고 손으로 공을 치는 핸드볼의 요소를 가미한 실험을 시작했다. 코트는 농구보다 좁아 많이 뛰어다닐 필요가 없었고, 네트로 인해 농구처럼 격렬한 신체적 접촉을 피할 수 있었다. 한 가지 문제는 공이었다. 농구공을 사용해보니 크고 무거워서 손과 팔이 아팠고, 공의 속도 또한 너무 느렸다. 문제 해결을 위해 송아지 가죽으로 만든 탄력 있고 부드러운 공의 제작을 의뢰하게 되었다.


뉴 게임의 실험을 끝낸 모건은 1895년 스프링필드 칼리지에서 개최된 YMCA 지도자 총회에 보고서를 내고 시연회를 가졌다. 많은 목사들과 체육지도자들의 찬사를 받았다. 당시 미국에서도 학교에 체육이 정규 교과목으로 자리 잡지 않았던 시대였다. 모건은 신앙심으로 인해 남들이 잘 가지 않던 체육 강사의 길을 택했고, 그 결과로 그의 이름은 배구 역사에 영원히 남게 되었다. 끊임없이 진화한 현대 배구의 모습에는 모건의 소박한 아이디어가 녹아 있다. “간단한 장비로 하는 게임(볼과 네트),” “여러 명이 즐기는 게임(팀 스포츠),” “농구보다 덜 격렬한 게임(신체적 접촉 배제),” “실내에서 가능한 게임(실내 스포츠)” 등…….

 

 

 

참고문헌
Arlott, John(1975). The Oxford Companion to SPORTS & GAMES. London : Oxford Univ. Press.
Dearing, Joel B.(2007). The Untold Story of Willian G. Morgan Inventor of Volleyball. Livermore, CA : Winsgpan press.
Emery, Curtis Ray(1953). Modern Volleyball, New York : Magmilan Company.
Morgan, William G.(1917). "How Volley Ball Was Originated." 1917-18 Official Volleyball Rules. New York : American Sports Publishing Co.
Sherrow, Victoria(2002). Volleyball. San Diego, California : Lucent Books i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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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하남길(경상대학교 교수)

 

 

            식견이 부족한 무인들이 권력을 장악하여 나라를 망칠 수 있듯이 문약(文弱)한 지도자가 권력을 장악하여 국가를 망칠 수도 있다. 국운(國運)이 있는 민족은 하늘로부터 문무겸전(文武兼全)의 큰 지도자들을 하사받게 된다. 그들은 숭문사상(崇文思想)을 갖추었으되 천무사상(賤武思想)을 갖지는 않은 자들이며, 정신문화를 중시하였으나 신체문화를 천시하지는 않는 자들이었다. 서구 제국(諸國)이 세계사의 주도권을 장악한 것도, 신체 문화가 앞서 발달된 것도 이러한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선진 제국(諸國)들은 일찍이 체육진흥운동을 펼쳐 국가발전의 기반을 튼튼히 했다.


1960년대부터 본격화된 대한민국의 체육진흥운동도 국가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국민의 역동성을 이끌어냈고, 건강을 증진시켰으며, 자긍심도 높였다. 빛이 있다면 그림자도 있게 마련이다. 스포츠의 정치화는 그림자였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어도 체육과 스포츠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대학 입시 위주의 편향된 교육으로 인해 천시되고 있는 체육의 위상을 재정립해야 하고, 국가의 잠재적 역량 강화를 위해 체육진흥운동은 더 강화되어야 하며, 시대에 걸맞은 체육진흥운동의 방향도 명료하게 설정함으로써 국민의 체육에 대한 의식을 올바르게 일깨워가야 한다.

 

 


체육진흥정책에서 첫째로 강조되어야 할 방향은 스포츠를 통한 역동적 국민성 추구(The Pursuit of Dynamic Nationality through Sports)”이다. 역동적인 국민성은 역동적인 신체문화를 통해서 생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스포츠를 통한 건강과 행복의 추구(The Pursuit of Health and Happiness through Sports)”이다. 21세기 국민체육진흥운동은 국민 복지를 위한 사회운동이 되어야 하며, 국민의 건강과 행복 추구 운동이어야 한다. 스포츠는 국민에게 건강도 선물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스포츠에 몰입하며 얻는 행복감으로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셋째는 스포츠를 통한 인격 함양과 도덕성 제고 추구(The Pursuit of Character Edification and moral improvements through Sports)”이다. 체육진흥운동은 국민의 인격함양과 도덕성을 제고하는 사회운동이 되어야한다. 근대 영국 스포츠교육 운동이 신사의 인격함양 운동이었듯이 우리의 체육진흥운동에도 도덕적 가치 개념을 불어넣어야 한다.

넷째는 스포츠를 통한 건전하고 합리적인 여가 문화의 창달 추구(The Pursuit of Healthy and Appropriate Leisure Culture through Sports)이다.” 국민이 즐기는 오락과 스포츠가 국민성을 결정한다. 건전한 여가 문화가 확산된 나라는 미래가 밝고, 퇴폐적인 놀이 문화가 확산된 나라의 미래는 어둡기 때문이다.

다섯째, 전통 신체 문화의 계승과 창달 추구(The Pursuit of the Continuance and Promotion of Traditional Physical Culture through Sports)이다.” 국가는 정체성을 지녀야 한다. 비록 외래 스포츠가 국민스포츠로 되어 있지만 우리의 정체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 씨름과 같은 전통 문화의 확산을 지원하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

여섯째, 민간체육단체의 육성과 활성화 추구(The Pursuit for the Cultivation and Revitalization of Social Sports Societies)이다. 아직 체육진흥을 위한 중앙정부의 노력도 있어야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민간체육단체를 육성해야 한다. 정부와 민간단체가 연합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고 체육진흥을 꾀해야 한다.


제각기 같은 하루를 살아도 의미를 부여하기에 따라 하루의 의미는 달라진다. 아무리 고급 승용차로 달려도 운전자가 방향을 잘 못 잡으면 달린 거리는 의미가 없어진다. 우리나라에서도 체육진흥운동이 계속되어 왔지만 방향 설정 여부에 따라 그 가치와 결과도 달라질 수 있다.

스포츠를 통한 ①역동적인 국민성 함양, ②건강증진과 행복의 추구, ③인격 함양 및 도덕성 제고, ④건전․합리적인 여가 문화 창달, ⑤전통 신체 문화의 계승과 창달, ⑥ 민간체육단체의 육성과 활성화 등 체육진흥운동의 방향을 뚜렷이 설정하고 홍보할 때 국민의 체육관(體育觀)도 더욱 뚜렷해지고, 구체화되며, 체육진흥운동도 더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

 

 

 

참고문헌
Bett. J R.(1974). America′s  Sporting Heritage, 1850-1950. Reading, Massachusetts : Addison-Wesley,
Ellis, M J.(1973) Why People Play. Englewood Cliffs, N.J. : Prentice - Hall,
Huizinga. John.(1949) Homo Ludens: A Study of the Play-Element in Culture. London : Temple Smith.
Lucas. John A, & Smith, Ronald A.(1978). Saga of AMERICAN SPORT. Philadelphia : Lea & Fobiger.
Rainwater, C E.(1992). The Play Movement in United States. Chicago.
Thomas. Carolyn E.(1983). Sport in Philosophic Contex. Philadelphia : Lea & Febi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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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하남길(경상대학교 교수)

 

철망으로 된 농구 경기장 

 

 

 겨울이 되면 한국의 스포츠 애호가들은 프로 농구를 접하게 된다. YMCA를 통해 도입된 한국 농구는 1997년 프로리그 시대를 맞았다. 지난 15년 동안 한국의 빅포어(Big Four) 스포츠 중 하나로 정착된 농구의 발전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약 120년에 이르는 농구의 진화 과정이 뇌리를 스치면서 ‘케이저(cager)’란 명사가 떠오르게 된다. 케이저란 농구 선수를 뜻하는 속어로 진화가 덜 된 초창기 미국 농구의 모습을 가장 잘 나타내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농구는 미국 YMCA의 우연한 실험 결과물이었다. 1891년 스프링필드 YMCA이었다. 영적인 삶은 신체와 정신의 균형적인 발달에 의존한 것이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YMCA 체육진흥운동을 펼쳤던 귤릭(L. H. Gulick)은 제자 네이스미스(J. Naismith)에게 긴 설명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 내용을 압축하자면 “겨울철에 할 수 있는 흥미로운 실내 게임 하나를 창안해보라.”였다. 다루기 힘든 청소년들에게 흥미로운 놀이가 좋은 처방제가 될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추운 12월이었다. 침대에서 새로운 게임의 창안을 위해 계속 그림을 그려보던 네이스미스는 축구공을 들고 강당으로 나갔다. 골(goal)이 될 만한 물품을 찾던 그는 관리원 스테빈스(Stebbins)에게 8인치짜리 사각형 나무 상자 두 개를 요구했다. 그러나 상자는 없었다. 스테빈스는 상자 대신 복숭아 바구니(basket) 찾아다주었다. 네이스미스는 발코니 난간 테에 밑바닥보다 위쪽이 더 넓은 바구니를 못으로 고정시켰다. 그리고 18명의 학생들이 축구공을 바구니에 던져 넣는 게임을 창안하기 위한 실험을 계속했다. 초기 경기 규칙은 13개 조항이었다. 그리고 이듬해 1월, 9인제 게임을 탄생시켰다.


명칭이 바스켓 볼(basketball)이 된 것은 복숭아 바구니 때문이었다. 당시 교육을 받고 있던 머핸(Frank Mahan)은 네이스미스에게 새로운 게임의 명칭으로 ‘네이스미스 볼(Naismith Ball)'을 제안했으나 네이스미스는 게임의 본질을 흐린다면 거절했다. 그러자 머핸은 바구니와 공으로 이루어진 게임이니 ‘Basket Ball'로 하자고 다시 제의했고, ‘새 게임’의 이름은 Basket Ball이 되었다. 그리고 1921년 이후부터 단어 Basketball로 통일되었고, 동양에서는 대바구니 농(籠)과 공 구(球)를 합성한 농구(籠球)로 번역하게 되었다.


초창기 농구의 모습은 무질서한 놀이의 모습이었다. 패스가 허용되지 않았던 농구 시합은 선수들끼리 뒤엉키기 일쑤였다. 1890년대 중반까지 드로우인 공격 규칙이 없었다. 공이 경기장 밖으로 튕겨나가면 공을 먼저 잡는 팀이 임자였다. 선수들은 공을 잡기 위해 달려가 끝없이 뒤엉켰다. 관중이 부상을 입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본 한 기자가 “하찮은 녀석들이 원숭이처럼 경기를 하고 있으니 우리(cage) 안에 넣어주어야겠다”라는 경멸적인 기사를 썼다. 이 말에 영감을 얻은 최초의 프로팀의 감독이 있었다. 트렌턴 의 감독 파드레츠(F. Padderatz)였다. 그는 선수와 관중이 뒤엉키는 문제 해결을 위해 경기장에 12피트 높이의 울타리를 치는 아이디어를 냈고, 그 이후 농구경기는 철망으로 된 우리 안에서 진행되었다. 당대의 심판 릴리(M. A. Riley)는 “그 우리(cage)가 경기 진행 속도를 높여 관중이 더 즐겁게 볼 수 있게 되었다”라고 평가했다. 그 때부터 농구 선수들은 철망 속에서 경기를 했고, 스포츠기자들은 농구선수를 ‘케이저(cager)’라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철망은 또 다른 문제를 낳았다. 선수 부상이었다. 선수들이 철망에 부딪혀 상처를 입었던 것이다. 결국 철사는 로프로 대체되었다가 관중석이 생겨나면서 로프도 사라지게 되었으며, 우리 안의 농구선수를 칭하던 케이저란 명칭만 역사에 남게 되었다.


케이지 바스켓볼 시대를 거친 농구는 야구보다 60년 뒤에 탄생했지만 문화적 진화 속도와 세계화 속도는 야구보다 더 빨랐다. 스미스대학의 브렌슨(S. Berenson)이 여학생들을 위해 패스를 도입한 이래 럭비경기를 방불케 했던 농구의 모습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리고 6~9명이던 인원도 1900년대부터 5명으로 줄어들게 되면서 농구는 보다 심플한 경기로 변모했다. 1915년까지 YMCA와 미국체육회(AAU)의 농구 규칙이 달랐으나 그해 연합농구위원회(JBC)가 가동되면서 통일된 규칙이 제정되었다. 그리고 1932년 FIBA가 탄생한데 이어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등장했다. 오늘날의 농구의 모습은 농구의 끊임없는 문화적 진화의 결과물이며, 케이저는 농구의 진화과정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역사 용어이다.

 

 

참고문헌
최현주·하남길(2008). 농구의 기원과 문화적 진화. 한국체육사학회지,  13(2), 17-40.
Arlott, John(1975). The Oxford Companion to SPORTS & GAMES. London : Oxford Univ. Press.
Bjarkman, Peter C.(2000). The Biographical History of Basketball. Chicago: Masters Press.
Grabowski, John F.(2001). Basketball. (Sandiego California : Lucent Books Inc..
Hollander, Zander & Alex Sachare(1989). The Official NBA Baketball Encyclopedia. New York: Villard Books.
Naismith, James(1996). Basketball. Lincon and London : University of Nerbraska Press.
Peterson, Robert W.(1990). Cages to Jump Shots. New York : Oxford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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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하남길(경상대학교 교수)

 

          한국의 겨울은 농구와 배구 시즌이다. 농구와 배구는 대한민국의 4대 관중 스포츠, 이를테면 빅포어(Gig Four) 스포츠이다. 미국의 빅포어는 미식축구, 야구, 농구, 아이스하키 등이다. 미국에서 축구나 배구는 찬밥이다. 유럽의 상황은 미국과 또 다르다. 영국이나 영연방국가에서는 전통적으로 크리켓, 럭비, 축구 등이 프로 스포츠 시장의 우량 상품들이었다. 거기서 프로 야구나 농구, 아이스하키는 스포츠팬들의 화제 속에 끼지도 못한다. 축구의 인기야 세계적으로 비슷한 추세지만 미국, 일본, 한국에서는 축구가 야구의 인기에 밀린다. 프로 야구, 농구, 배구 등이 빅포어 스포츠 지위를 확보한 나라 또한 드물다. 아시아에서 한국, 일본, 대만 등만 유사 현상을 보인다. 야구, 농구, 배구가 대한민국 빅포어 스포츠가 된 것은 미국과 일본의 영향 탓이다. YMCA 선교사들이 아시아지역에 이런 스포츠문화를 이식한 탓이다. 그 중에서도 농구와 배구는 혈통까지 꼭 같다. 창안 기관은 YMCA이었으며, 창안 토대 사상과 이론은 ‘강건한 기독교주의(Muscular Christianity: 이하 MC)’와 ‘놀이 이론(Play Theory)’이었다.

  

  미국 스포츠 혁명가 루터 귤릭


농구·배구라는 문화적 상품의 토양 사상이었던 MC란 19세기 영국의 목사이자 작가였던 찰스 킹슬리가 탄생시킨 조어였다. 킹슬리를 비롯한 영국 기독교사회주의 운동가들은 팀 스포츠를 통해 청소년들에게 희생정신과 단체정신(team spirit)을 함양시키고자 했다. MC의 핵심 개념은 남성성(manliness)이었으며, 남성성의 핵심은 팀 스피리트(team spirit)였다. 영국의 교장들은 강건한 기독교주의의 양성을 외치며 학생들에게 크리켓, 조정, 럭비 등과 같은 팀 스포츠를 장려했다.

 

1863년 탄생한 축구(soccer)도 ‘강건한 기독교주의 운동(Muscular Christianity Movement: 이하 MCM)’의 결과물이었다. 영국의 MC사상이 19세기 후반 미국 사회로 확산되자 신앙부흥운동에 실패한 미국 복음주의 운동가들은 MC 사상을 수용하고, 청소년들에게 각종 스포츠를 보급하기 시작했다. 당시 기독교단체인 YMCA의 스포츠 수용은 일요일의 스포츠 참여를 금지했던 '잉글리시 선데이(English Sunday) 전통을 깨는 종교사의 큰 변혁이었다. 반대파 목사들은 오락거리들을 제공하는 것이 YMCA의 존재 이유냐며 반발했다. 찬성파들도 스포츠가 청소년을 크리스천으로 만들기는커녕 YMCA를 세속화시는 것이 아닐지 우려했다.

 

그러나 미국 스프링필드 YMCA에 MCM의 현란한 지휘자 한 명이 등장했다. 미국 스포츠 혁명가 귤릭(Luther H. Gulick, 1865–1918)이었다. 그는 각종 야외활동을 보급하고, 새로운 스포츠 창안 활동을 주도했다. 그의 좋은 참모들도 사상을 공유하고, 뜻을 함께 했다. 농구 창안자 네이스미스(J. Naismith), 배구 창안자 모건(W. G. Morgan) 등이 대표적인 참모들이었다. 귤릭을 비롯한 이들은 모두 복음주의 기독교운동의 사도(使徒)이자 MCM의 사도들이었으며, 농구와 배구는 이 그룹에 의해 탄생했다. MC사상이 농구와 배구 탄생의 토대 사상이었던 것이다.

 


귤릭이 MCM의 선봉에 농구와 배구 창안을 주도하게 된 것은 ‘놀이 이론’에 관한 그의 철학 때문이었다. 당대 유명한 심리학자 스탠리 홀의 친구였던 귤릭은 신체적 레크리에이션 활동이 심성의 계발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믿었다. 그는 어린이를 위한 모래사장, 청소년을 위한 운동장이 장차 민주시민의 자질을 함양할 수 있는 훈련장으로 보고, 놀이의 특성을 지닌 스포츠 활동을 적극 장려하며, 청소년의 공동체 의식 강화나 자기 통제력 함양은 스포츠나 야외활동에 달려있다고 믿었다. 그는 말로만 효용성을 외치는 이론가가 아니었다. 열정적인 실천가였다. 기독교 복음주의 운동의 선봉장이 된 귤릭은 1903년부터 지역 명사들의 후원을 받아 ‘공립학교경기리그(PSAL : Public School Athletic League)’를 창설하는 등 근대 미국 스포츠 혁명을 주도했다. 이 모든 흐름은 놀이의 교육적 가치를 신봉한 귤릭의 체육 철학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농구와 배구는 창안 기관, 창안 배경이 된 사상과 이론이 같은 형제 스포츠이다.

 

 

참고문헌
Gulick, Luther(1898). “Psychological Aspects of Muscular Exercise”, Popular Science Monthly, LIII, (October).
Gulick, Luther(1899). “Psychological, Pedagogical and Religious Aspects of Group Games,” Pedagogical Seminary, VI, (March).
Gulick, L. H.(1899). “The Psychology of Play", Association Outlook, VIII, (February).
Ladd, Tony & James A. Mathisen(1999). Muscular Christianity: Evangelical Protestants and the Development of American Sport. Grand Rapids : Baker Books.
Reeve, Albert B.(1910). “The World's Greatest Athletic Organization,” Outing, LVII, (Octo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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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송형석(계명대학교 교수)

 

             근대 이후 대두되기 시작한 서구의 합리주의가 인간의 삶을 전면적으로 지배하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욕구의 직접적 충족을 추구하는 감성의 기능은 끊임없이 축소되어 왔다. 특히 18세기 이후 서구 사회에 만연된 고전적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는 청교도적 금욕주의를 강조함으로써 인간의 삶에서 감성적이고, 쾌락적인 요소를 철저히 배격하게 된다. 산업이 고도화된 사회일수록 이러한 경향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러나 최근 들어 본능적 욕구를 자유롭게 발산하려는 시도들이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형식으로부터의 탈피, 구속으로부터의 해방, 억압으로부터 자유를 추구하는 본능적 욕구의 노력은 현대 산업사회에서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과열된 소비경향에서, 바뀌고 있는 결혼풍속도에서, 성의 상품화 경향에서, 여가 지향적 삶의 양식 속에서 이러한 경향이 목격되고 있다. 사회 자체가 금욕, 절제, 생산을 미덕으로 여기던 고전적 자본주의체제에서 쾌락, 소비, 레저를 즐기는 후기 자본주의체제로 현저하게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세태를 반영하듯 잘 일하기 위해 노는 것이 아니라 잘 놀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우리는 지성지수보다 감성지수를, 고통스러운 것보다는 쾌락적인 것을, 싫은 것보다는 좋은 것을, 안전한 생활보다는 모험을, 욕구를 참기보다는 분출하는 것을 선호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문화사회학자 슐체(Schulze)는 이러한 경향, 이와 같은 시대적 흐름을 체험사회(Erlebnisgesellschaft)라고 표현하였다.

 


체험사회에서는 육체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한다. 육체는 우리가 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가장 기본적인 지각기관이자 감각기관으로서 모든 체험의 필수적 전제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체험사회에서는 스포츠, 성, 건강 등과 같이 육체를 구성적 조건으로 하는 분야가 매우 중요시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체험사회에서는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하는데 그 이유는 일상생활에서 육체와 육체활동이 점차 의미를 잃어 가면서 다양한 육체활동으로 이루어진 스포츠는 특별한 체험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큰 관심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슐체의 지적처럼 현대사회에서 체험은 점차 높은 가치를 획득하고 있다.

 

스포츠 역시 이러한 경향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 현대스포츠에서 체험, 즐거움, 놀이, 모험 등이 점차 강조되고 있는 경향은 이러한 사회 전반적인 경향의 한 단면이다. 스카이다이빙, 패러글라이딩, 번지점프, 리프팅, 스킨스쿠버, 카빙스키, 스노보드, 암벽등반, 마라톤 등은 추구하는 가치가 지금(now), 여기(here)에서의 특별한 체험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안전한 미래보다는 바로 이 순간을 체험하고 즐기자는 것이 이러한 스포츠의 최고 목적이다. 체내에 축적된 모든 글리코겐을 소진시킴으로써 전혀 생소한 몸의 상태를 체험하게끔 해주는 마라톤을 비롯해서 추락의 공포와 속도감을 동시에 맛볼 수 있도록 해주는 번지점프, 위험스런 장애를 극복하며 성취감을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리프팅, 공중을 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패러글라딩, 바다 속의 새로운 환경을 접할 수 있는 스킨스쿠버, 모험심을 자극하는 암벽등반 등이 이러한 스포츠의 몇 가지 예이다.

 

사회학자 리트너(V. Rittner)는 이런 종류의 스포츠를 체험스포츠라고 명명했다. 체험스포츠는 전통적인 스포츠와 비교할 때 동기와 수행방식에 있어서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전통적인 스포츠가 욕구의 지연된 만족이라는 금욕주의적 태도를 통해 특징 지워질 수 있다면, 체험스포츠는 욕구의 즉각적인 만족이라는 쾌락주의적 태도를 통해 특징 지워질 수 있다. 리트너는 모험을 목적으로 하는 스포츠와 한계 체험을 목적으로 하는 스포츠, 재미와 즐거움을 목적으로 하는 스포츠를 체험스포츠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다. 그에 따르면 체험스포츠에는 체험사회의 근본 원리 세 가지가 내재되어 있다. 그 세 가지 원리란 첫째, 경쟁, 성취 등과 같은 전통적 스포츠규범의 퇴조, 둘째, 스포츠참여자가 갖는 개별적 동기의 전문화 및 자명화, 셋째, 자기 체험을 강화하려는 경향, 즉 오랜 시간이 걸리는 스포츠사회화 또는 조직사회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스포츠의 효과를 직접적으로 향유하려는 경향 등이다. 한 마디로 체험스포츠에서 관건은 재미있는 체험을 쉽고, 직접적으로 맛보는 것이다. 전통적인 스키를 대체하고 있는 카빙 스키나 점차 면적이 넓어지고 있는 테니스 라켓, 또는 번지점프, 패러글라이딩, 급류타기 등과 같이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스포츠는 이러한 경향을 잘 대변해 준다. 사람들은 더 이상 힘들고, 지루하며,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하는 스포츠사회화과정을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초보자수준에서도 쉽게 성공감과 즐거움을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렇게 볼 때 체험스포츠는 욕구의 억압보다는 직접적 충족을 통해 특징 지워질 수 있는 것이다.

 

 

체험스포츠는 늘 “뻔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여러 가지 “색다름”을 체험하게 함으로써 삶에 활력소로 작용할 수 있고, 입시위주의 생활에 빠져 있는 청소년들에게 일상의 지루함으로부터 탈피하여 긴장감을 맛보게 해 줄 수 있으며, 그들에게 다양한 모험 기회를 제공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교육적으로도 가치 있는 활동이다. 이렇게 볼 때 현재 우리 사회에서 점차 그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체험스포츠는 스포츠정책의 차원에서 더욱 권장되고 보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체험스포츠가 가진 역기능적 측면 역시 만만치 않다. 체험이란 철저하게 현재 지향적 개념이기 때문에 체험에 몰입할 경우에 극기, 인내, 근검, 절약 등과 같은 미래 지향적 삶의 태도가 희석될 가능성이 높다.

 

틸레(J. Thiele)는 체험추구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현재 지향적 삶의 태도는 두 가지 대가를 요구한다고 말한다. 물질적 대가와 정신적 대가가 그것이다. 물질적 대가란 체험을 위해 적지 않은 돈이 지불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며, 정신적 대가란 체험 후에 어김없이 찾아오는 정신적 공황 상태를 의미한다. 특히 끊임없이 체험만을 추구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늘 색다르고 강력한 체험을 찾아 나서며, 체험공백기에는 참기 어려운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 체험이 청소년의 교육과 기성세대의 삶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기 위해서는 반성의 과정을 거쳐 체험 주체의 삶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만 한다. 삶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지 못한 체험은 무의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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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박현애(이화여자대학교 및 동대학원 강사)

 

           “그동안의 제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더 이상 스포츠는 신성하지 않습니다.” 런던 올림픽 펜싱 신아람 선수의 멈춰버린 1초에 대하여 이 경기를 중계하던 최승돈 아나운서의 한마디였다. 신아람 선수, 그리고 우리나라 국민들의 분노를 함축할 수 있는 의미있는 멘트일 것이다.

 

 

프로 스포츠의 승부조작 파문, 유명 운동선수 출신 교수의 학위논문 표절 판명과 뒤이은 대필 의혹, 런던 올림픽에서의 오판과 오심, 2012년 한해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이다. 순수한 정신, 고귀함과 정의가 살아있는 스포츠 정신이 이제는 그 존재마저 흔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워진다. 또한 이를 지켜본 이들에게 이러한 일들은 세상에 대한 또 하나의 불신과 부당함으로 비춰졌고 나아가 ‘스포츠마저 부패했는가!’ 하는 조심스런 의심을 살 수 있는 일련의 사건들이었다. 


다분히 충격적인 일들이지만, 어지러운 현재를 사는 현대인에게는 찝찝함은 남으나 이내 잊을 수 있는 사건 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사건들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승부조작 파문에 연루된 한 선수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논문을 표절한 선수는 교수직을 내 놓음과 동시에 국민 스포츠 스타로서의 면모가 추락했다. 심판의 오심에 희생된 선수는 끝내 눈물을 흘렸고, 스포츠에 대한 불신 속에 자신의 오랜 꿈이 기약 없는 ‘다음’으로 유보되었다. 개인에게는 물론 스포츠에도 적지 않은 타격이다.

 

 

인간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스포츠는 현 시대의 많은 특징들을 드러낸다. 의지와 투혼, 규칙안의 평등이 스포츠의 순수한 면을 이야기 하지만, 그 반대편 또한 스포츠에 스며들어 있으며 스포츠라는 프리즘을 통하여 세상에 다시 비춰진다. 가까운 예로 런던 올림픽의 경우만 하더라도 이기기위해서 정정당당한 승부를 피했고, 규칙 테두리 안에서 교묘하게 반칙을 일삼고, 자신의 승리를 위해 반칙의 정도가 상대선수의 선수 생활도 위협할 무자비한 공격을 일삼는 모습을 우리 눈으로 확인했다. 강팀과 만나지 않으려 형편없는 플레이를 펼친 여자 배드민턴이 그랬고, 마찬가지로 런던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선수와 경기한 노르웨이 핸드볼 팀의 잔인한 반칙, 이후 모든 반칙을 잊고 승리에 도취된 그들의 모습을 보며 스포츠 정신을 찾을 수는 없었다. 법의 틈새를 노려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부패와 부정을 일삼는 우리 사회의 단면이 스포츠에서도 자행되고 있음을 목격했다.

 

다소 극단적인 이야기일 수 있으나 현대사회는 지나치게 어지러워졌고, 교활해졌다. 스포츠 또한 교활하고 뻔뻔스러워졌다. 이러한 스포츠 세계에서 살아가는 선수들의 선택은 아마도 더욱 정직하거나 더욱 영악해지는 것 뿐 일 것이다. 부패를 의심하게 되고, 실수일지 모를 판정으로 인한 다른 사람 인생의 희생, 그리고 바등거려도 명쾌할 수 없는 무기력함까지... 그 안에서 앞으로 스포츠는 정직함과 영악함 중에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교과서적인 발상이겠으나 선택은 하나다. 더욱 정직해지는 일이다. 더욱 순수해야 할 것이고 더욱 감동적인 스포츠를 만들기 위해 모두가 애써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스포츠가 숭고한 인간문화로 남는 길일 것이다.

 

배금주의와 물질만능주의, 결과중심주의가 현대사회의 중심 사상이 되었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상업과 경제로 흐르고 있으며 그것만이 목적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전히 스포츠가 정의롭고 순수해야한다고 이야기 하는 이유, 또는 승패나 성과가 아닌 감성적인 측면이 살아있고 스포츠는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고 항변하는 이유는 스포츠는 보는 사람들에게 세상이 아직 정의롭고 공정하며 그래서 순수하다고 믿을 수 있게 해주는 희망의 불씨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타락해서 악취가 나도록 부패했다고 생각되는 세상에 방부제와 같은 존재가 바로 스포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올바른 길, 그리고 희망으로 가는 길은 고속도로도 아니고, 직선거리는 더욱 아니다. 목적지로 가기위해 신호를 준수해야 하고, 다른 차량에 막히기도 하며, 우회하고, 때로는 되돌아가야 한다. 1972년부터 1980년까지 IOC 위원장을 역임한 로드 킬라닌(Lord Killanin)은 “올림픽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비판을 받을 소지가 있다. 그러나 불완전한 부분을 개선해가면서 그 기초를 튼튼히 다지는 일을 꾸준히 해야 한다.”고 이야기 한 바 있다. 부패에서 멈출 것이 아니라 부패한 면이 있다면, 이를 정화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이는 파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재건축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비우기 위해서는 이전에 채워져야 하듯이 정화라는 것은 더럽다는 것을 전제한다. 이미 더러워졌다고 의심된다면, 이젠 정화를 위해 움직일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정화란 갖은 악이 들어있던 판도라 상자 안의 마지막 남은 희망과 같은 것이다.

 

마니 풀리떼(mani pulite), 깨끗한 손을 일컫는 과거 이탈리아 정치계의 부정과 부패척결을 위한 운동이 이제 전 세계의 스포츠에도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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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하남길(경상대학교 교수)

 

 

          국민 여러분! 나는 대통령으로서 체육과 스포츠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깊이 인식하고 있습니다.

체육과 스포츠는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 중요하다는 것은 명료한 진리입니다. 국가와 민족의 장래는 국민성에 달려 있고, 역동적인 국민성 함양에 체육과 스포츠 문화가 중요한 기능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정부는 21세기 버전의 새로운 체육진흥운동을 전개하고 체육교육과 국민생활체육의 강화를 위해 역동적인 국민성 함양 운동을 펼쳐 갈 것입니다.

 

 

 

어느 대통령의 연설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꾸며진 글이다. 그러나 꾸며진 이 연설문 속에 역사적 진실이 담겨 있다. 1831년 영국 민속학자 스트럿트는 “특정 국가의 국민성을 정확히 평가하려면 그 국민의 생활 속에 가장 널리 퍼져 있는 스포츠와 오락을 조사해볼 필요가 있다”라고 했다. 그의 저서 서문 첫줄에 나오는 이 말에는 스포츠가 국민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국민성은 국가 장래를 결정하는 잠재적 요인이며, 서구 선진국들은 체육진흥과 스포츠 활성화 정책을 통해 국민의 역동성을 일깨워왔다.


19세기 독일의 체조운동, 튜른베베궁(Turnbewegung)은 게르만의 기질 강화를 위한 일종의 사회운동이었다. 영미 스포츠의 확산에 결정적 영향을 준 복음주의 기독교도들의 ‘강건한 기독교주의 운동(Muscular Christianity Movement)’은 ‘남성다운 기독교인(manliness Christian)’, 즉 청소년의 남성성(manliness) 강화 운동이었고, 남성성 강화를 위해 각종 팀 스포츠가 장려되었다. 서구의 국민 스포츠 교육 운동에는 적자생존이라는 사회진화론 인식이 강하게 내재되어 있었으며, 영국인의 강인함, 투쟁적 근성, 단결심(team spirit)을 상징하는 럭비풋볼과 조정(rowing), 크리켓 등은 남성다운 스포츠의 대명사였다. 미국의 아이스하키나 농구, 미식축구 등은 미국문화국가주의(Americanism)와 개척정신을 상징하는 스포츠로 발달되어왔다. 통합적으로 역동성의 상징이다.

 

체육과 스포츠 활동이 역동적인 국민성을 길러주는 중요한 교육이요, 문화라면 대통령도 체육과 스포츠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이 정립되어 있어야 한다. 1906년 루즈벨트(T. Roosevelt)대통령의 모습은 미국 대통령의 폭넓은 체육 가치관을 보여주는 예이다. 초창기 대학 미식축구는 너무 거칠고 격렬했다. 경기 중 부상자는 물론 사망자까지 속출하자 미국 사회에 대학미식축구 존폐 논쟁이 격화되었다. 병약한 몸을 스포츠로써 연마해 가며 하버드 대학을 마쳤던 루즈벨트는 하버드․예일․프린스턴 등 대학총장을 초청한 ‘백악관축구회의’에서 “용기․인내․신체적 숙련을 위해 청년들에게 거친 스포츠도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며 논쟁의 종지부를 찍었다. 루즈벨트는 국가의 장래를 위해 역동성을 길러줄 거친 스포츠도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 조선은 지나친 숭문사상(崇文思想)의 팽배로 신체 문화를 천시하게 되면서 국민의 역동성은 약화되었다. 체육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낀 시점은 일제식민지 그림자가 드리운 이후였다. 1906년 최창열은 태극학보(太極學報)를 통해 세계의 문명화된 나라들은 교육에 체육을 도입하여 활발(活潑)한 기력(氣力)을 양육(養育)하였으나 우리는 100여년 이래로 교육의 큰 방침이 문예에 치우쳐 허약한 신체와 기력이 쇠진하여 국권상실의 위기상황에 놓였으니 우리 독립의 기초는 국민에게 체육을 권고함에 있다고 했다. 알긴 알아 다행이었으나 시점 상으로 도둑맞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었다. 대한민국에 역동성이 살아난 것은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의 등장 이후였다. ‘체력은 국력’이라는 슬로건이 나왔고, 국민체조 보급, 체육주간 및 체육의 날 제정 등 다양한 체육진흥정책이 수립되고 추진되었으며, 이러한 체육진흥운동은 국민의 역동성을 일깨웠고, 그 역동성이 한국 근대화의 추진력이 되었다.

 

미래 세계도 역동적인 국민성을 갖춘 국가의 세계가 될 것이다. ‘체력은 국력’이란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21세기 체육진흥운동의 캐치프레이즈로서는 적절치 않다. 체력도 국력의 기반이지만 ‘역동적인 국민성이 국력의 더 큰 국력의 기반이며, 역동적인 국민성 함양을 위해 투지, 인내, 용기, 모험을 필요로 하는 거친 스포츠를 포함하는 다양한 국민생활체육 프로그램을 적극 장려하고, 체육진흥운동의 방향을 ”스포츠를 통한 역동적인 국민성 함양 추구(The Pursuit of Dynamic Nationality Cultivation through Sport)“로 잡아야 한다. 우리나라 대통령 후보들의 체육 가치관은 어떤 것일까? 아마 대한민국 미래의 대통령이 루즈벨트처럼 뚜렷한 체육관(體育觀)을 지닌 인물이라면 대한민국의 역동성은 더 강화될 것이며, 우리 민족의 희망도 더 커질 것이다.

 

 

참고문헌
태극학보 1906. 12. 5
하남길(2007). 국민체육진흥운동의 방향 설정에 관한 시론. 한국체육학회지 46(1). 1-20.
李學來(1990). 韓國近代體育史硏究 서울 : 지식산업사. 39.
Lucas, John A. & Ronald A. Smith(1978). Saga Of American Sport, Philadelphia : Lea & Febiger.
Dunae, P. A.(1975). “British Juvenile Literature in Age of Empire : 1880~1914”, Ph. D. Thesis, Department of History, Victoria University of Manchester. 243.
Mechikoff, Rovert A. & Steven G. Estes.(2003), A History and Philosophy of Sport and Physical Education, New York : McGrowH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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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하남길(경상대학교 교수)

 

 

            5년만의 대통령 선거철이다. 후보 반열에 오른 인물들은 제각기 국정 운영능력과 도덕적 신뢰감을 돋보이게 할 묘안 찾기에 바쁘다. 후보 주변의 전문가 그룹은 보통 사람들의 표심을 자극하는 포퓰리즘 공약을 쏟아낸다. 보통사람의 표가 더 많기 때문이다. 국민 또한 자신의 삶과 직결된 공약에 깊은 관심을 갖게 마련이며, 체육인이 체육정책 공약에 관심을 갖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부각된 체육정책이나 스포츠 복지정책 공약은 잘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 후보군에 스포츠 애호가가 없는 탓일까? 참모진에 체육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자의 부재 탓일까?

 

선진국의 지도자들은 스포츠 애호가가 많았고, 일찍이 체육 진흥 정책과 스포츠 문화 창달 정책을 펼쳤다. 영국 국왕 헨리 8세와 제임스 1세는 탁월한 스포츠맨이었던 탓에 스포츠를 적극 권장했다. 특히 17세기의 국왕 제임스 1세는 《왕의 스포츠 교서》를 내리고, 국민의 건전한 스포츠 참여를 적극 권장했다. 왕실의 운동경기애호주의(athleticism) 전통은 19세기 ‘영국 스포츠 혁명’으로 이어졌고, 스포츠 교육을 통해 형성된 영국 젊은이들의 역동적인 기질은 대영제국 건설의 자양분이 되었다. 섬나라라며 늘 깔보았던 영국이 세계 최강이 된 배경에 스포츠가 있었다는 것을 간파한 프랑스 지도층은 영국 스포츠를 교육체계 속에 적극 수용하는 개혁을 단행했다. 영국이 아닌 프랑스에서 올림픽이 제창되고, FIFA가 탄생한 것도 역사적으로 같은 맥락이다. 20세기 최강국 미국의 대통령들도 스포츠를 더욱 즐겼으며, 체육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케네디대통령의 체육 가치관?

 

 

미국 초대 대통령 워싱턴은 사냥과 승마 광이었다. 2대 애덤스는 세일링, 레슬링, 수영, 스케이팅 애호가였다. 제퍼슨(T. Jefferson)은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라는 존 로크의 충고를 예로 들며 국민에게 체육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가장 뚜렷한 체육 가치관을 지닌 대통령은 케네디(J. F. Kennedy)였을 것이다. 그는 “연약한 미국인(Soft American)”이란 기고문에서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부처는 체육 진흥과 체력 증진이 미국의 기본적이고 일관된 정책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국가 건설에 있어서 정신적, 지적 자질에 건강과 신체적인 활력이 필수적으로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신념이 진리라는 것은 어떤 다른 나라의 역사보다 미국의 역사가 생생하게 증명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 역사에도 문무겸전(文武兼全)의 상징인 정조(正祖)와 같은 훌륭한 국왕이 있었으나 20세기 지식인들이 체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 것은 일제의 조선강점 직전이었다. 민족주의 역사학자 문일평은 체육은 국가의 운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그러나 서양에서 이미 근대 올림픽이 개화했을 무렵 테니스를 접한 황제는 “저렇게 힘든 일을 손수하다니 참으로 딱하오, 하인에게나 시킬 일이지…’ 라며 혀를 찼다. 조선의 문약(文弱)한 전통이 계승되어졌던 대한민국이 1960년대부터나마 체육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군부 정권이 탈정치화 수단으로 스포츠를 이용했다는 비난도 있다. 하지만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체육과 스포츠의 진흥은 국가발전과 국민의 건강, 그리고 국민의 행복지수 제고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으며, 미래에도 체육과 스포츠의 순기능이 유지될 것이라는 점에서 대통령 후보도 체육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는 인물이어야 한다.

 

 

21세기 체육진흥정책과 스포츠 복지정책은 국민성 강화 운동이며, 국민 건강 증진 운동이자 국민의 행복 추구 운동이다. 대통령 후보는 우선적으로 국민의 고달픔이나 일자리 걱정을 해야겠지만 삶의 질과 직결된 국민의 건강과 행복 걱정도 해야 한다. 대통령 후보가 케네디 대통령처럼 체육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갖고 21세기형 체육진흥정책이나 스포츠 복지 정책을 공약으로 낸다면 많은 국민이 행복해할 것이다. 투표권을 가진 많은 국민이 스포츠맨이거나 스포츠 애호가들이고, 자신의 건강과 행복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오동섭 외 2(2001). 체육세계사. 서울 : 형설출판사. 383.
이규태(1969). 개화백경. 서울 : 신태양사. 378-379.
태극학보 1906. 5. 12; 李學來(1990). 韓國近代體育史硏究. 서울 : 지식산업사. 39.
하남길(2007). 국민체육진흥운동의 방향 설정에 관한 시론. 한국체육학회지 46(1). 1-20. 
Adams, J.(1961). Diary and Autobiography of John Adams, L. H. Butterfield, (ed.) Vol. I.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61). 100.
Davis, Thomas R.(1970). "Sport and Exercise in the Lives of Selected Colonial Americans: Massachusetts and Virginia, 1700-1775," Unpublished Ph. D. dissertation, University of Maryland.
Sports Illustrated, 1962.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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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송형석(계명대학교 교수)

 

 

               많은 학자들은 축구가 ‘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 모두에게 그들의 본능 속에 내재한 공격본능과 사회생활을 통해 누적된 울분을 일소시켜주고, 그 결과 가슴속에 품었던 악의를 없애 주며, 결국에는 사람들이 매우 평온한 감정을 지닌 선한 존재로 돌아가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해준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평온한 감정을 카타르시스라고 말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들이 비극을 관람한 후에 갖게 되는 심리상태 또는 정서적 안정 상태를 카타르시스라고 불렀다. 과연 우리는 경기가 벌어지는 축구장이나 TV앞에 앉아서 고대 그리스인들이 비극을 관람한 후에 도달한 안정적 심리상태를 실제로 경험할 수 있을까? 만일 그렇게 된다면 다른 사회 영역에서 공격욕구와 울분의 폭발 가능성이 많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

 

축구는 분명 이런 카타르시스 경험을 제공해 줄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사람들은 축구를 관람하면서 평상시에 가정이나 직장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행동을 거리낌 없이 한다. 목이 터져라 괴성을 지르고, 욕을 해대며, 온 몸을 들썩인다. 그러고 나면 속이 후련해질 수도 있고 울분이나 공격본능이 해소될 수도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에 대한 경험적 연구들은 이와는 다소 다른 결과를 보고하고 있다. 한 마디로 축구의 카타르시스 기능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골드슈타인과 암스에 따르면 직접 경기를 뛴 선수들은 경기 후에 공격성이 많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경기를 관람한 사람들은 오히려 공격성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축구경기를 관람하기 전과 후에 공격성관련 설문지를 작성하도록 요청하였다. 설문지를 분석한 결과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기를 관람한 후에 더 공격적이 된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의 응원팀이 승리했건 패배했건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축구의 카타르시스 기능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광적인 축구팬들의 행패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잘 알려진 현상이다. 영국의 훌리건이나 독일의 슐라하텐부믈러는 경기 중에 또는 경기종료 후에 매우 빈번하게 폭력사태를 일으킨다. 남미의 국가들에서도 축구경기는 곧 잘 관중들을 폭력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가 급기야는 전쟁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1969년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는 제9회 멕시코월드컵(1970년) 지역예선전에서 격돌하였다. 양 쪽 관중간의 싸움으로 수명의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 사건으로 양국은 일주일 동안 국교를 단절하였으며, 온두라스는 그 나라에서 일하고 있던 10만 명 이상의 엘살바도르인들을 추방하였고, 이에 불만을 품은 엘살바도르 군대가 온두라스를 침공했다. 양국 간의 전쟁은 일주일 동안 지속되었고 4천 명에 가까운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러한 불상사는 그 이전에도 있었다. 1964년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페루와 아르헨티나 팀이 격돌했다. 경기 종료 직전 주심이 골을 무효로 선언하자 페루의 관중들은 격분했고 곧 바로 오렌지, 맥주깡통, 각종 잡동사니들이 경기장으로 날아들었다. 소란을 가라앉히기 위해 경찰이 쏜 가스총에 놀란 관중들이 출입구로 몰렸고 소란의 와중에 300명 이상이 사망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관중들의 폭동은 밤새도록 계속되었는데 그 이유는 경찰의 과잉진압 때문이 아니라 심판판정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

 

이렇듯 축구는 관중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해 주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공격욕구를 부추기는 것 같다. 그렇다면 여러 학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카타르시스 이론을 더 이상 신뢰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해 축구 시합이 울분의 치료 작용과 울분의 증폭 작용을 거의 똑같은 비율로 가져온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축구의 의미를 조금 더 포괄적으로 이해할 때 카타르시스 이론은 설득력을 지닐 수 있다. 앞서 소개한 골드슈타인과 암스의 연구는 축구를 단순히 경기장에서 일어나는 사건만으로 제한하였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축구경기가 종료된 후 밤늦도록 가두행진을 벌이거나 호프집에 둘러앉아 경기결과를 놓고 열변을 토하는 뒤풀이행사까지 축구의 범주에 포함시켰다면 연구결과는 분명 다르게 나왔을 것이다.

 

188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영국의 대학들은 규율과 자기통제를 강조했다. 주로 중산층 출신이었던 대학생들은 중고생처럼 취급받았다. 엄한 규율이 지배하는 대학생활에 대한 보상으로서 대학당국은 학생들에게 주말을 이용해 축구경기를 허락하였다. 우리나라의 연고전과 비슷한 이러한 행사를 통해 대학생들은 주중에 억압받아왔던 감정을 합법적이고도 해롭지 않은 방식으로 해소할 수 있었다. 대학의 일상을 지배했던 엄한 규율, 이 과정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축구경기가 열리는 주말을 전후해서 폭발적으로 해소하였던 것이다.

 

 

 

 

학생들은 축구경기가 열리기 전날부터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억압된 감정을 달랬다. 이들은 경기가 열리는 일요일에 경기장에 모여 마음껏 소리 지르며 위스키를 마셨고, 경기가 끝나면 파티를 열었다. 이 기간은 일상과 비교할 때 정서적 타임-아웃, 즉 일상이라는 경기가 잠시 동안 정지되는 시간이었다. 이렇듯 당시의 축구경기는 그것이 동반하는 전야축제와 뒤풀이까지 포함하는 보다 포괄적인 개념이었다. 현대식으로 바꾸어 말하면 경기가 끝난 후에 흥분한 팬들이 일으키는 소요사태와 가두행진도 축구의 범주에 포함시켰다는 뜻이다. 이렇게 축구를 넓은 의미로 이해한다면 카타르시스 이론은 어느 정도의 설득력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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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송형석(계명대학교 교수)

 

 

       스포츠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종목을 꼽으라면 단연코 축구가 첫째일 것이다. 축구의 인기는 FIFA월드컵경기에 대한 우리들의 관심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월드컵경기는 오직 축구 한 종목만을 대상으로 하지만 그 인기는 모든 스포츠를 총 망라하고 있는 올림픽경기를 능가한다. 월드컵경기와 같은 국가 대항전이 아니더라도 유럽,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 등 세계 곳곳에 활성화되어 있는 프로축구리그 역시 그 인기 면에서 다른 프로스포츠종목들을 능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축구가 그토록 인기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축구는 아주 단순하고 원시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어서 우리가 지닌 원초적인 욕망을 가장 잘 채워주기 때문이다.

 

 


육안으로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바이러스에서부터 거대한 코끼리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의 삶은 싸움과 투쟁의 과정이다. 인간 역시 생물의 일종으로서 예외일 수 없다. 인류는 문명을 탄생시키기 이전부터 끊임없이 싸우면서 살아왔다. 생물의 싸움에는 한 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그것은 대부분의 격렬한 싸움이 같은 종간에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왜 같은 종끼리 그렇게 격렬하게 싸울까? 동종간의 싸움은 동족 번식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함께 있으면 싸우니 자연스럽게 서로가 서로를 멀리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각 개체들은 그 종족이 살 수 있는 환경 전반으로 퍼지게 되며, 결국 식량 확보에 유리한 조건이 형성된다. 이외에도 동종간의 싸움은 번식에 있어서 강자에게 우선권이 돌아가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종족의 지속적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약자의 새끼보다는 강자의 새끼가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진화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공격적 성향은 수백만 년이 흐르는 동안 본능으로 굳어졌다. 그러나 이 성향은 인간의 역사에서 끊임없이 억눌리고 억압되어야만 했다. 공격적 욕구의 자유로운 충족은 문명화된 생활과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억압되어야만 하는 본능,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폐기되지 않는 본능은 인위적인 배출구를 통해서라도 발산되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사회적으로 또는 심리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 억압된 공격욕구의 배출방식은 전쟁과 같은 인간 살육방식에서 사냥을 통한 동물 살육방식으로, 동물의 직접 살육방식에서 사냥개를 통한 간접 살육방식으로, 그리고 실제적 살육방식에서 축구, 농구, 사격, 양궁 같은 상징적 살육방식으로 계속해서 진화해왔다.


초기 문명사회에서 공격욕구 분출기제는 매우 폭력적이고 반문명적인 요소를 담고 있었다. 이러한 행위들은 한편으로 환영받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비난을 면하기 위하여 이러한 행위들은 더욱 문명화되어질 필요가 있었다. 공격욕구 배출방식이 문명화되면서 이를 통해 얻어지는 쾌감의 강도가 약화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이 문제에 대해 근대 스포츠는 쾌락의 원천을 다양화하고, 쾌락의 시간을 연장하는 방식으로 자구책을 마련하였다. 이러한 근대 스포츠의 특성을 가장 잘 구현하고 있는 것이 여우사냥이다.


여우사냥은 사냥꾼이 단순히 여우를 잡아 죽이는 활동이 아니다. 여우사냥에서 살육의 주체는 사냥꾼에서 사냥개로 이전된다. 사냥 역시 인간 살육을 대치한다는 점에서 문명화과정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지만 문명화된 사회에서 동물의 직접 살육은 비난받아 마땅한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우 살육의 역할을 사냥개에게 양도한 사냥꾼은 쾌락의 원천을 추적과 관람 행위로 대치하였다. 이 과정에서 쾌락의 강도가 많이 약해졌으며,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쾌락의 원천을 다양화하고, 긴장과 흥분의 순간을 연장시킬 필요가 있다. 여우사냥에서는 여우와 사냥개, 사냥개와 사냥개, 사냥꾼과 사냥꾼이 3중으로 경합을 벌이며, 여우추적을 고의적으로 어렵게 만듦으로써 클라이맥스가 지연되었다.

 

 

 

 

축구도 이 과정을 그대로 밟아가면서 발전해 왔다. 현대 축구의 전신인 민속경기는 무자비한 패싸움을 방불케 했다. 경기의 장소와 시간, 인원을 규정하는 최소한의 규칙마저도 없었던 이 경기에서 매번 부상자들이 속출하였다. 수십 명이 떼를 지어 몰려들어 서로 치고, 차며, 넘어뜨리는 과정에서 팔과 다리가 부러지는 것은 예사였으며, 그 와중에 심각한 부상을 당하거나 사망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 이유에서 국가가 나서서 축구금지령를 내린 경우도 있다. 20세기 들어서 발로 상대방을 걷어차는 행위나 고의적으로 상대방을 잡는 행위 또는 발을 거는 행위가 금지되었으며, 오프사이드 규칙이 강화되었고, 경기 스타일도 공격중심에서 수비중심으로 바뀌었다. 경기의 폭력적이고 역동적인 요소들이 약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보충하기 위해 백 패스한 공을 골키퍼가 잡지 못하게 하거나, 공이 아웃되었을 때 예비로 준비한 공을 신속하게 투입하도록 규칙을 개정함으로써 경기의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했지만 거친 경기에서 기교 경기로의 변화는 막을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구는 다른 스포츠종목들에 비해 여전히 거칠고 원시적인 요소를 더 많이 간직하고 있다. 골프, 승마, 육상과 같은 개인기 중심 경기나 배구, 테니스, 탁구 같은 네트 경기에서는 격렬한 신체접촉이 원천적으로 봉쇄된다. 이에 비해 축구에서는 몸싸움이 기본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태클이 허용되기도 한다. 물론 뒤에서 하는 태클은 철저히 금지되어 있다.


그렇다면 야구나 농구, 하키, 럭비 등은 어떤가? 이 종목들 역시 억압된 욕구의 해방기제로서 기능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효과의 측면에서 축구에는 미치지 못한다. 야구는 목표물을 정확하게 조준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나 정적 동작과 휴지부가 너무 많아서 사냥집단이 목표물을 전력으로 추격할 때 갖게 되는 아슬아슬한 느낌을 주지 못한다. 농구는 빠르고 유려한 동작을 많이 수반하고 목표물을 잡는 최후의 순간에 조준이라는 요소도 구비하고 있으나, 신체적 위험이 너무나 적고 슛의 순간을 ‘최후의 일격’이라고 말하기에는 희소성이 약하다. 하키의 경우 공이 지나치게 작기 때문에 관중이 눈으로 플레이를 신속하게 쫓아가지 못하는 점이 장애요소이다. 럭비는 격렬함이 충분하고 신체적 위험을 수반하는 점에서는 최고 수준이라 할 수 있으나 섬세한 동작이 연속으로 이어지면서 순식간에 목표물에 도달하는 클라이맥스에의 이행이라는 점에서는 역시 약점이 있다.

 

축구의 원시성은 발의 사용에서 극대화된다. 발은 문명화된 손에 비해 여전히 원시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인류학자 르르와-구랑은 인류문명의 기원을 손의 사용에서 찾았다. 손을 많이 사용하는 과정에서 뇌가 발달했고, 뇌가 발달하면서 언어능력이 향상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손은 분명 인간의 신체 중 가장 문명화된 영역 가운데 한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발은 그 쓰임이 대체로 걷기와 서기라는 원시적인 기능으로 제한되어 있다. 물론 무용이나 무술에서 발은 걷기와 서기라는 자연적 기능 이상의 의미를 부여받기도 하지만 손에 비해 여전히 그 쓰임이 매우 제한적이며, 그 상징적 의미 또한 매우 열등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상대를 발끝으로 가리키거나 발로 건드리는 행위 또는 차는 행위는 여러 문화권에서 매우 불미스런 행위로 간주되고 있다. 축구는 아직 원시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발을 주로 사용하는 경기라는 점에서 탈문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축구 이외의 대표적인 구기 종목들에서는 모두 손의 사용이 허용되지만 축구에서만큼은 손의 사용이 철저하게 금지된다. 골키퍼를 제외하고 누구든 손이 공에 닿으면 그 고의성 여부에 따라 곧바로 반칙이 선언된다. 문명의 상징인 손을 묶어두고 원시성의 상징인 발의 사용을 극대화하는 축구는 어느 모로 보나 가장 원시적 속성을 지닌 스포츠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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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송형석(계명대학교 교수)

 

 

        현대 사회에서 스포츠가 사회적으로 큰 의미를 얻어가고 있는 이유를 묻는다면 건강을 빼놓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건강은 체력, 젊음, 힘, 아름다움 등과 함께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가 되었으며, 그러한 과정에서 사람들은 스포츠에 깊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사회구성원들은 스포츠를 체력, 젊음, 아름다움은 물론이고 건강까지도 보장해주는 도깨비방망이 같은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떤 이유에서 스포츠를 하면 건강해질 수 있다고 믿게 된 것일까? 이러한 믿음에 적지 않게 영향을 미친 것은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건강관이다.


이 문장은 근대 유럽인들이 고대 로마의 시인 유베나리스(Juvernal, ca. 58-140 n. Chr.)의 시에서 따온 “mens sana in corpore sano”라는 구절을 직역한 것이다. 근대 유럽인은 mens(mind; 정신, 마음)라는 단어 대신에 anima(soul; 영혼)라는 말을 써서 anima sana in corpore sano라고도 표기했는데 두 문장의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다. 후자의 문장에서 각 단어의 첫 글자를 따서 ASICS라는 스포츠 브랜드가 만들어진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스포츠와 건강의 긍정적 인과관계를 믿는 사람들은 이 구절을 곧 잘 인용하며, 이 말이 얼마나 신뢰할만한 것인지 선전한다.


그렇다면 “mens sana in corpore sano”가 어떻게 ‘스포츠를 하면 건강해진다!’가 되었을까? 앞서 말했듯이 이 라틴어 문장을 직역하면 “건강한(sano) 신체(corpore)에 건강한(sana) 정신이(mens) 깃든다(in)!”가 된다. 이 말을 의역하면 육체가 건강하면 정신도 건강하다가 되고, 그 의미를 재해석하면 육체를 강건하게 만드는 것은 건강을 위한 필수적 전제가 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육체를 강건하게 만드는 데에는 스포츠가 단연 최고이기 때문에 이 라틴어 문구로부터 최종적으로 ‘스포츠를 하면 건강해진다!’라는 명제를 연역해 낼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스포츠를 하면 모든 사람들이 정말로 건강해질 수 있을까? 꼭 그렇지는 않다. 필자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최근 스포츠 활동 중에 심근경색이 원인이 되어 사망하는 사람의 수가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운동을 생활화하고 있는 전문적 스포츠인의 평균연령도 일반인의 평균연령에 비해 6-7년 낮다. 또한 스포츠선수들 중에는 각종 질환에 시달리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의학 및 생리학적 연구자들도 격렬한 스포츠는 건강에 치명적으로 작용하는 활성산소의 발생가능성을 높여주고, 스트레스를 해소시켜주기 보다는 오히려 스트레스를 가중시켜 건강에 마이너스로 작용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필자는 스포츠가 반드시 건강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mens sana in corpore sano”라고 말한 유베나리스는 거짓말을 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의 문장이 근대 유럽인들에 의해 지난 수백 년 동안 오역되어왔을 가능성이 크다. 이 문장은 유베나리스가 지은 356어구로 이루어진 시의 10번째 구절에서 인용된 것이며, 그 원문은 다음과 같다.

 

 

Nil ergo optabunt homines? si consilium via,
permittes ipsis expendere numinibus quid
conveniat nobis rebusque sit utile nostris.
ut tamen et poscas aliquid voveasquid voveasque
… orandum est ut sit mens sana in corpore sano.
portem posce animum nortis terrorecarentem,

 

 

상당히 난해하며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앞의 내용을 제외하고 우리 논의와 관련이 있는 뒤의 내용 만 검토해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건강관과 유베나리스의 본뜻 간에는 상당한 차이가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유베나리스가 지은 시의 원문을 보면 “…orandum est ut sit mens sana in corpore sano”라고 되어있는데 반해서 앞에서 인용한 문장은 “mens sana in corpore sano”라고만 되어 있다. 접속사 “그리고 나서(orandum est)”를 제외하고 "ut sit"가 빠져 있다. 라틴어 "ut sit"은 소망, 바람, 희망 등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소망과 바람의 대상은 일반적으로 현실에 속해 있지 않다. 오히려 현실에 없는 것이 거기에 속하는 경우가 더 많다.

 

 

유베나리스는 단순한 육체적 건강이 정신적 건강, 나아가 건강 전체를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단정하지 않고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게 하소서”라고 말함으로써 소망과 바람을 나타냈던 것이다. 요약해서 말하면 신체적 건강이 정신적 건강, 나아가 건강 그 자체를 보장한다는 생각은 유베나리스의 싯구를 잘못 인용한데서 생겨난 오해일 뿐이다. 그의 싯구를 성급하게 인용한 결과 건강을 이해하는 안목이 매우 좁아졌다.


스포츠와 건강의 관계가 합리적으로 구성되기 위해서는 건강관이 바뀌어야 한다. 즉 기존의 일면적이고 편협한 건강관이 포괄적이고, 조화로운 건강관으로 바뀌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포괄적이고, 조화로운 건강관이란 “ut sit mens sana in corpore sano”이다. 우리는 이 문장에서 “ut sit"과 “mens sana in corpore sano”를 변증법적으로 결합시키고자 했던 유베나리스의 혜안을 읽어낼 수 있다. 육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은 “ut sit mens sana in corpore sano”에서 변증법적으로 만나기 때문이다.

 

 


건강은 육체적인 건사만으로 또는 정신적인 노력만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육체적인 건사와 심리 및 사회적 안녕, 감성적 욕구의 충족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룰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건강에서 중요한 것은 다양한 요인들 간의 조화이다. 유베나리스의 문장에 나타난 “ut sit"는 바로 이와 같은 조화를 찾고자 하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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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송형석(계명대학교 교수)

 


      현대 스포츠는 대개 건강함, 공정함, 스포츠맨십, 평화적 공존 같은 긍정적 이미지와 결합되어 있다. 반면에 도핑은 이러한 가치를 훼손시키는 범죄행위, 어두운 그늘, 암적 존재 같은 부정적 이미지와 연결된다. 이와 같은 스포츠와 도핑의 이분법적 대립구도의 밑바탕에는 지난 세기를 지배해온 면역학적 도식이 자리 잡고 있다. 면역학적 도식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자아와 타자, 생체와 감염바이러스, 아군과 적군, 우리와 그들이 명확하게 분리된다.

 

이런 사회에서 관건이 되는 것은 감염바이러스, 적군, 그들 같은 타자의 침입을 막는 일이다. 이를 위해 면역학적 조처나 군비 증강, 경계 강화 같은 다양한 방어적 노력들이 기울여진다. 만일 방어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타자가 내부로 침투했다면 침투한 타자를 제거하기 위해 각종 노력이 기울여져야 한다. 이러한 제거 노력은 부정의 부정, 즉 부정의 변증법에 그 본질이 있다. 자아는 자기 보존을 위해 자신의 부정을 목적으로 침투한 타자를 다시금 부정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면역학적 도식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도핑을 보는 시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도핑담론은 대개 순수한 스포츠와 추악한 도핑, 내부와 외부, 자아와 타자 같은 이분법적 세계를 전제한다. 이러한 도식에서 스포츠의 순수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도핑은 퇴치시켜야만 할 악성전염병 또는 적군과 동일시된다. IOC가 WADA를 설립한 후 도핑과의 전쟁을 선포한 이유를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전염병이 창궐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 『피로사회』의 저자 한병철(2012, 11)의 말을 들어 보자.

 

우리는 면역학적 기술에 힘입어 이미 그 시대를 졸업했다. 21세기의 시작은 병리학적으로 볼 때 박테리아적이지도 바이러스적이지도 않으며, 오히려 신경증적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신경성 질환들, 이를 테면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경계성성격장애, 소진증후군 등이 21세기 초의 병리학적 상황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전염성 질병이 아니라 경색성 질병이며 면역학적 타자의 부정성이 아니라 긍정성의 과잉으로 인한 질병이다.

 

긍정성의 과잉으로 인한 질병은 타자의 부정성을 물리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면역학적 기술로는 다스려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질병의 결정적 원인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 타자가 아니라 자아에 있기 때문이다. 21세기 초기의 사회는 20세기의 사회와 달리 긍정성의 과잉에 시달리는 사회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인간을 병들게 하는 것은 전염병이나 외부의 적들이 아니라 후기-현대적 노동사회의 새로운 계율이 된 성과주의의 명령이다.

 

현대사회는 끊임없이 자신을 재촉하여 더 많은 성과를 내도록 강제하는 성과사회이다. 성과사회에서는 자신이 주인이자 동시에 노예이며, 착취하는 자이자 동시에 착취당하는 자이다. 현대 스포츠는 이와 같은 성과사회의 전형이다. 현대 스포츠에는 끊임없는 자기갱신과 성과 극대화를 요구하는 원리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올림픽헌장에 명시되어 있는 올림픽표어 보다 빠르게(Citrus), 보다 높게(Altius), 보다 강하게(Fortius)'는 이와 같은 현대 스포츠의 속성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르카프로 대변되는 자기갱신과 성과극대화의 원리는 외부로부터 현대 스포츠에 강요된 이질적 요청이 아니다. 그것은 현대 스포츠 그 자체에 내재된 원리이며, 체계강요(Systemzwang)이다.

 

국제적 차원에서 도핑을 퇴치하기 위한 다양한 예방적 노력이 기울여지고 있음에도 그 노력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도핑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스포츠의 경계를 넘어 사회의 모든 영역으로 그 세력을 확장시키고 있다. 끊임없이 더 많은 성과를 올리기 위해 분투노력하는 현대인은 자연적으로 주어진 자신의 능력에 만족하지 못하고 각종 테크놀로지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키려고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화학적으로 생산된 각종 영양제, 카페인음료, 보약, 비아그라 등은 모두 다양한 분야에서 현대인의 성과를 향상시키기 위해 고안된 물질로서 넓은 의미의 도핑 범주에 속한다.

 

 

 

 

 

면역학적 패러다임은 더 이상 현대 사회를 이해하는 틀로서 적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현대 스포츠와 도핑을 이해하는 틀로서도 적합하지 않다. 다시 한병철(2012, 66)의 말을 들어보자.

 

  약물 금지만으로 몸뿐만 아니라 인간 전체가 하나의 성과기계가 되어 원활한 작동으로 최대의 성과를 산출할 것을 요구하는 사회적 발전 경향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인용문에서 알 수 있듯이 문제의 원인은 개인의 인격적 자질보다는 성과사회 그 자체에 있다. 도핑은 자기갱신과 성과극대화라는 현대 스포츠의 요청을 효율적으로 충족시켜주는 테크놀로지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스포츠단체들과 대중매체의 온갖 추방 노력에도 불구하고 도핑이 여전히 횡행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현대 스포츠는 문제의 원인이 그 자체에 있음에도 그것을 외부로 전이시켜 버렸다. 지금까지 설명이 유효하다면 도핑문제에 접근하는 우리의 방식은 바뀌어야만 한다. 도핑에 대한 비판은 도핑을 자행한 선수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이 아니라 선수들로 하여금 도핑을 하도록 부추기고 강제하는 현대 스포츠의 내적 원리, 끊임없는 자기갱신과 성과극대화 원리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어야만 한다. 이 원리에 대한 근원적 반성과 성찰이 수반되지 않은 개혁적 노력은 그것이 어떤 종류의 것이든 무의미할 수밖에 없다. 싸워야 할 적은 스포츠 밖이 아니라 안에 있다. 스포츠를 개혁하려는 모든 노력은 이러한 명확한 사실의 인식에서 출발해야만 한다.

 

 

참고문헌
한병철(2012). 『피로사회』. 문학과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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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민지 2013.03.27 13:57 신고

    안녕하십니까 체육교육과 허민지입니다.
    이번 글을 통하여 도핑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보여지는 부분만으로 선수 개인의 욕심과 페어플레이 정신에 어긋내는 행동이라 생각 했던 부분에 다른 시각으로 다가가 성과주의와 물질주의에 대해 스포츠 안에서 해결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등만 기억하고 금메달만 알아주는 성과 극대화가 선수들의 훈련과정에서 고통과 인내를 도핑이라는 부분에 의지하게 되게 만드는 성과주의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허민지 2013.03.27 13:59 신고

    안녕하십니까 체육교육과 허민지입니다.
    이번 글을 통하여 도핑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보여지는 부분만으로 선수 개인의 욕심과 페어플레이 정신에 어긋내는 행동이라 생각 했던 부분에 다른 시각으로 다가가 성과주의와 물질주의에 대해 스포츠 안에서 해결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등만 기억하고 금메달만 알아주는 성과 극대화가 선수들의 훈련과정에서 고통과 인내를 도핑이라는 부분에 의지하게 되게 만드는 성과주의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임종대 2013.03.27 14:19 신고

    1학기생 임종대입니다.
    스포츠는 건강함, 공정함, 스포츠맨쉽, 평화적 공존과 같은 이미지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점차 성과주의로 변함에 따라 명예와 부를 바라보고 도핑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도용하는것 같습니다.
    이번글은 마지막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도핑이라는 부분에 대하여 성과주의로 바뀌고 있는 스포츠의 문제를 바라보지 않고 선수들에게 모든 비난이 쏟아 지고있고 저역시 그렇게 생각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글을 읽고 선수뿐만 아니라 성과주의로 바뀌고 있는 스포츠 그 자체에서 문제점을 찾아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박병준 2013.03.27 14:35 신고

    안녕하십니까. 체육교육전공 1학기생 박병준입니다.
    교수님께서 쓰신 도핑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 글 잘 읽었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현재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 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도핑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먼저 보면 도핑에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는데 혈액을 이용한 방법, 약물을 투여하는 방법, 약물을 섭취하는 방법등 여러가지 도핑의 방법이 있습니다.
    올림픽을 비롯해 전세계 스포츠 종목에서는 도핑을 금지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간혹 선수들이 경기력 향상 을 위해 도핑을 하고 경기에 출전하는 경우가 종종 나타나고 있는게 현재의 현실 입니다.
    도핑은 우리의 신체에도 악영향을 주는데, 선수들이 왜 도핑을 하여 조금 더 나은 경기력을 보여 메달을 따기 위하여 그러한 범죄 행위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선수들이 도핑을 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선수가 아무리 열심히 땀 흘려 노력해서 1등을 하지 못 하면 인정 받지 못 하는 사회가 현재 우리나라의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보여지는 현실인거 같습니다.
    사회가 이렇기 때문에 선수들은 어떠한 방법을 써서라도 금메달을 획득하여 사회에 인정받고 자기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 시키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선수들은 자기 자신의 건강과, 정정 당당한 스포츠 정신으로 자기 자신의 노력과 능력을 가지고 서로 경쟁하는 그러한 스포츠 세계가 되었으면 하는 저의 바램입니다.
    감사합니다.

  • 이재민 2013.03.27 16:17 신고

    안녕하십니까 2학기생 이재민 입니다.
    도핑을 보는 또 다른시선에 대한 글을 읽고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예전부터 도핑에 대한 이야기는 항상 끊이질 않고 문제시 되고 있습니다.
    유명 스포츠선수들도 평생 힘들고 어렵게 이룬 자신의 업적을 도핑으로 인해
    한순간에 다 날려버리고 사회에서 나락으로 빠지는 경우를 종종 보았습니다.
    도핑이라는게 그 순간에는 자신을 스포츠선수로서 최고의 능력을 발휘 할 수
    있게 해주지만 다른한편으로는 자신을 최악의 스포츠선수로 만드는 양면성을
    띄고 있는거 같습니다. 저는 글을 읽기전에는 선수들의 욕심, 이기심, 좋은 성과를
    이루기 위해 도핑을 이용한 선수의 잘못만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교수님 글을 읽고 제목그대로 또 다른 시선으로 도핑을 바라보게 되었고
    외적인 부분만이 아닌 성과주의로 바꾸고 있는 현대사회에 대한 내부적인 문제도 무시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정춘엽 2013.03.27 19:02 신고

    도핑은 경기성적은 올릴 수 있지만 선수들의 건강을 해치게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인간의 본래 능력으로 겨루어야 할 스포츠의 가치마저 상실하게 된다.
    땀과 노력이라 할 수 있는 스포츠에서 약물의 힘을 빌린다는 것은 규칙을 어기는
    것으로 스포츠를 즐기고 스포츠 스타를 좋아하는 팬들에 대한 배신이다.
    내부와 외부, 자아와 타자 이든 욕심! 이것이 문제다.

  • 김지현 2013.03.27 20:19 신고

    안녕하십니까. 체육교육 3학기생 김지현입니다.
    지난번 교수님의 글에 이어 이번글을 읽으면서 스포츠와 우리사회와의 관계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의미있는 글읽기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선수들이 자신의 경기력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스포츠 정신을 버리고 선수로서의 양심을 버리며 도핑을 하는데에 비단 선수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현대사회 또는 스포츠내부 의 성과주의도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공감이 되는 바입니다. 예를들자면 국가 대표선수들이 각국의 선수들과 경합을 할때에는 개인의 성과도 중요하지만 나라의 대표로 출전하여 좋은 결과를 얻기를 바라는 선수로서 가지는 부담감과 또 그 소속단체의 이름을 높이기 위하여 이런 불법적인 방법이 행해질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 안타까운일로 이는 출발선상부터 부정출발의 의미와 같다고 생각이 됩니다. 이러한 부정출발이 없으려면 스포츠를 넓은 포용력으로 바라보는것(ex-비록 경기실적은 좋지않으나 최선을 다한 선수를 이해하고 응원하기)과 내부에서는 이러한 스포츠현실(이면)을 바로알고 인식을하여 자구적인 노력을 계속해나가야 한다고 생각이됩니다.

  • 이병규 2013.03.27 20:52 신고

    안녕하십니까? 체육교육 이병규 입니다.

    도핑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스포츠는 규칙과 경쟁이 있으며, 규칙을 위반하면서 경쟁을 이기는 비합리적인 승패가

    나타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그것은 승자만 환영시받는 사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생각 됩니다. 일반적으로 언론에서도 많이 접할 수 있지만 동메달과 은메달 그리고 금메달

    은 서로 다른 이미지를 주고 있으며, 다른 방향으로 이득을 찾기위해 이러한 결과가 나타

    난다고 보여집니다.

    이 문제는 사회성의 부작용도 있지만 도핑의 문제점만을 바라본다면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서 도핑의 하느냐 혹은 안하느냐 이렇게 결정된다고 생각됩니다. 스포츠는 항상

    승패가 따르지만 개인이 어떤부분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도핑이라는

    극단적인 판단을 하기까지 만들어진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점들을 고치려면

    많은 노력과 올바른 인식이 먼저 행해져야 고쳐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금준수 2013.03.27 21:44 신고

    안녕하십니까 체육교육1학기생 금준수입니다.
    이 글을 읽고 나서 도핑에 대한 생각을 다시하게 된 계기가 된거 같습니다.
    이런 도핑의 문제점은 선수 개인의 문제와 선수를 바라보는 사회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수는 개인의 성적을 위해 자기가 속한 단체의 성적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경기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 그리고 자기를 바라보는 여러 시선(국가와 국민의 기대)으로 인해 실력을 발휘 하지 못하고 약물복용으로 인한 경기로 스포츠의 인간적으며 순수하며 면을 박탈시키고 규칙과 규정을 위반 하는 스포츠 정신을 훼손하는 문제점을 남기게 되는거 같습니다.
    이러한 문제점은 선수들은 스포츠의 순수성을 잊지말고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시하여
    실패를 하더라도 오로지 자신의 의지와 능력을 믿고 이를 극복할수 있는 준비가 필요 하며 정책으로는 이러한 문제점을 방지하고 예방하는 정책을 세워야 할것이며... 국민은 선수에 대한 기대보다는 믿음으로 선수를 적극적으로 응원하고 지원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거 같습니다.

  • 정현도 2013.03.27 22:43 신고

    안녕하십니까?! 4학기생 정현도입니다.
    스포츠의 건강한 개념과 뜻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핑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현실, 선수들, 사회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국가대표선수로 발탁되어 몇 십 년을 그 날 만을 위해 준비하지만 아무런 주목과 환영을 받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항상 안타까움이 밀려오곤 했습니다. 너도나도 모든 선수들이 열심히 한 것을 알고 있지만, 성과사회에 무뎌진 우리들은 최고, 1등, 금메달이란 자극적인 수식어가 달려야지만 관심을 갖고 응원을 던지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결코 사회의 탓만이 아니라 선수에게도 있음을 알지만, 남들보다 잘하고 싶은 욕망이 커져 잘못된 선택에 이르게 됩니다. 사람 몸이 천하무적 강쇠가 되는 것도 아니고 기계처럼 잘 짜 맞춰진 스텝에 맞게 움직이는 것도 아닌데 도핑이 이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헛된 기대와 망상을 (성과사회 안에서)하게 되는 겁니다.
    위의 글에서처럼 도핑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껏 연습해온 모든 것들을 도핑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강인한 정신력과 나 자신을 믿고 실천할 수 있어야합니다. 그리고 성과사회에 직면할 때마다 도핑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 관점을 늘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체육을 가르치고 입는 입장으로써 도핑의 잘못된 수렁이에 빠지지 않도록, 그 근본적인 원인이 자신에게 있음을 알려주어야겠다고 생각해봅니다.
    1등만을 바라는 세상이 되었지만 2등도, 3등도 진정한 승자이며 노력하는 모든 이들이 그 노력이 헛된 것이 아님을 알게되는 세상이 올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 양세정 2013.03.27 23:41 신고

    안녕하삽니까? 5학기생 양세정입니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예전 개그프로그램에서 한 개그맨이 유행시킨 말입니다. 이 사회는 너무나도 승자독식의 구조인것같습니다. 스포츠에 있어서는 유독 심한듯합니다. 금메달이 아니면 눈물을 흘릴수 밖에 없는 현실..1등에게 주어지는 찬사와 격려는 그들의 노력에 대한 당연한 대가이기도 하겠지만 1등이 아닌 사람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현실입니다. 개인의 영광도 있지만 나라 혹은 단체를 대표해서 게임에 출전한다면 그 부담은 더욱 커질것이고 그 무게감을 이기지 못해 도핑이라는 선택을 하게될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이유로 선수들 모두가 도핑을 하는것은 아니지만 교수님의 글에서 처럼 성과사회라는 틀안에서 몇몇 선수들이 순수한 스포츠 정신을 뒤로 한채 그런 판단을 해버립니다. 1등도 중요하고 금메달도 좋지만 진정한 과정의 승리자도 많은 환호와 관심, 찬사를 받을 수있는 그러한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 박규나 2013.03.28 04:36 신고

    안녕하십니까.
    체육교육대학원 2학기생 박규나입니다.

    두 번째 과제의 주제로는 도핑을 바라보는 시각을 다룬 글이였습니다.
    분명히 첫 번째 과제의 글보다는 좀 더 접근하기가 쉬운 듯 했는데.. 한 두번 읽고서는 글의 내용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도핑만의 문제는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국한되어 보지말자. 생각을 닫지 말자. 라고 생각으로 몇 번을 더 읽어보았습니다.
    이 글과 인용된 글은 다른 내용과 분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지만 분명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생각을 전달하고자 하는 것 같았습니다.
    오랜 시간 사회가 가진 생각 틀의 변화, 스포츠계의 면역학적인 예를 든 도핑, 즉 현대사회의 패러다임 전환을 예리하게 포착한 점이 그것입니다.
    냉전, 면역학, 규율사회 등 적대성 내지 부정성을 바탕으로 한 과거의 사회에서 현재는 부정성이 제거되고 긍정성이 지배하는 사회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스포츠의 이분법적인 전제들은 예전의 이야기일 것입니다. 성과사회에서의 현대스포츠를 이행하는 선수들은 선수들 자체가 과정이고 결과물이며, 긍정과 부정을 동시에 가지는 성과사회의 예, 일 것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더 나은 성과를 내어야만 하는 목표의식, 열정과 함께 자기갱신의 방법을 부담감과 다른 방향으로도 생각해보는 일이(도핑, 수술 등) 생겨나는 것입니다.

    도핑을 바라보는 시각도 부정적일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단연 선수들의 개인적인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선수들 개인의 내적자아와 외적자아의 충돌 사이에서 외부의 강한 요소들이 내적자아를 강제로 묵살시킨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과 질타는 외부의 요소들이 받는 게 아니라 그것을 시행한 선수들이라는 것입니다.

    성과사회에서의 자기갱신, 성과극대화라는 근원적 반성과 함께 순수한 스포츠, 스포츠의 내적원리, 체계강요를 되짚어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우승과 결과만을 평가하는 사회.
    그 결과를 위해 노력하는 선수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
    도핑을 할 수 밖에 없게끔 만드는 사회원리와 흐름을 외면하는 사회.


    성과사회에서는 성과주체가 발전하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는 것도 좋지만 그 것보다도 먼저 문제점이 어디서부터 나오는지, 그 해결점과 발전 점을 해결하고자 하는 스포츠의 변화된 자세, 면역학적인 시대적 시각이 필요로 한 것 같습니다.

  • 서정학 2013.03.28 11:22 신고

    안녀하십니까? 1학기생 서정학입니다.
    먼저 교수님글 잘 읽었습니다. 평소에 보디빌딩에 관심이 많아서 운동을 즐겨하기도 하고 대회를 구경가기도 하는데, 다른 운동종목보다 유독 도핑에 노출이 되어지는 종목중에 하나가 보디빌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평소에 도핑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였습니다. 먼저 교수님 글을 읽기전에는, 도핑을 하는 선수가 자신의 모자란부분을 약물로 인해서 커버하려는 나약한 사람, 보다 빠른 성과를 내고 싶어하는 조급한 사람 등으로 치부하였지만, 교수님의 글을 읽고 나니 도핑을 하는 사람도 당연히 문제이지만, 성과사회, 우승결과만 평가하고 최고라고 칭하는 사회적 흐름또한 문제가 되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스포츠에 경쟁이라는 구도를 피할수 없는 부분이고 우승을 한 선수 역시 빛나는 영광을 안아야겠지만, 그 나머지 선수들에게도 비추어지고 아름다운 박수를 보낼수 있는 부분들이 먼저 언론에 비추어진다면, 선수들의 조급함과 심리적 부담감을 덜어줄수 있고 선수들의 도핑의 욕망도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그런것들이 모든것들을 바꿀수 없지만, 작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문제에 대해서는 같은 체육인으로써 많은 고민을 하고 성찰해야되는 부분일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 윤문희 2013.03.28 11:34 신고

    3학기생윤문희입니다
    현대사회가 추구하는 일등만 원하는 성과주의의 우리나라,아니 전세계가 일등만 원하는시대가되었습니다.
    모든선수들은 공평하고 공정하게 평등하게 스포츠에 참가 할수있고,동시에 모든 경기 규칙을 지킬의무도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선수본인이나 부모님 코치 감독선생님들이 도핑에대한 인식없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도핑을 범하는 경우가있다는데 있습니다.
    도핑에대한정보부족이나 부주의로인해 도핑방지규정위반으로 제재를받는경우도있습니다.
    도핑은 선수가 운동경기에서 성적을 향상시킬 목적으로 약물을 사용하거나 특수한 의학적 처치를는것입니다.
    운동선수들의 승리에 대한 유혹이나 연봉책정 스포트 라이트등 스포츠 관계자들의 상업적 입장에서 금지약물및 금지 의료행위등을 사용하였습니다.
    스포츠의 본성에 따라 스포츠그자체가 공벙함 경기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도핑은 부정적일일수 밖에 없습니다.
    경기에 참가할수있는 선수의 기본적 권리를 보호하고 선수의 건강,공정성과 평등성을 지켜야 됩니다.

  • 김상협 2013.03.28 11:40 신고

    안녕하십니까. 체육교육대학원 1학기생 김상협 입니다.

    교수님 께서 수요일 까지 올려라고 하셨는데 늦게 올러 죄송합니다.

    이글을 읽고 도핑에 대해서 또한만 생각하고 느끼게 된것 같습니다.
    자신의 선수생활이 망치는줄 알면서도 도핑을 하는 것은 요즘은 많이 살아지고있는것같은데 1등 1등 1등 만 생각하고 환영을 받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과정은 생각하지안고 결과만 고집 하는 사회가 만는 문제은 것 같습니다.
    도핑은 물론 나쁜것이지만 이선수가 도핑을 왜 했을 까는 생각을 안하고 나쁜 쪽으로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을 의지와 상관없이 누군가에 지시에 할수도 있는데 비난의 화살은 선수 한데 가는 것을 보면 안따가운 생각이 든니다.

    문제 해결방향은 선수, 감독, 주변인들 까지 참된 교육을 통해 올바르고 바른길로 갈수있도록 교육을 해야 될것 같습니다.

  • 윤재현 2013.03.28 13:51 신고

    2학기생 윤재현입니다.
    페어플레이 정신에 위배되는 도핑행위는, 스포츠를 사랑하는 많은 대중의 믿음을 저버리는 비겁한 행위입니다.
    선수들의 도핑행위가 단순한 약물투여 행위를 넘어 범죄로까지 인식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도핑 적발 사례는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운동을 천직으로 생각하며 살아온 선수들에게는 1등 즉, 최고가 아니면 인정받지 못한다는 이 사회가 선수들로 하여금 많은 심리적 압박과 부담감으로 작용하면서 그만큼 도핑은 더욱 치명적으로 선수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암을 극복하고 7연패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며 사이클계의 전설이 되었던 랜드 암스트롱, 시드니 올림픽에서 5관왕에 오르며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미국의 육상스타 메리언 존스,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 축구천재 마라도나가 도핑테스트에 적발되어 그것이 그의 마지막 월드컵이 되면서 불명스럽게 은퇴를 하게 된 것, 야구계의 전설 메이저리거인 마크 맥과이어, 새미소사, 배리본즈 등이 상습 금지약물이 폭로되며 많은 야구팬들을 실망시킨 것 등, 역사에 남은 뛰어난 스포츠 선수들이 약물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으로 추락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지켜볼 수 있습니다.
    약물을 통한 경기력 향상능력이 얼마나 큰지는 잘 모르겠지만, 평생의 꿈이 한순간의 실수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걸 선수 본인 스스로가 알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도핑행위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선수들이 어려서부터 도핑행위 범위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이 개선되어야 할 것이며, 프로선수들에게 주기적인 도핑검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정문주 2013.03.28 15:20 신고

    안녕 하십니까 교수님 저는1학기생 정문주 입니다.
    우선 늦게 올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운동을 하면서 도핑에 대해서 많이 듣게 되고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교수님께서 쓰신 글을 보고 좀 많이 부족한것을 알게 되었습니다.그냥 그저 도핑은 나쁜것 승부를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하나? 라는 생각도 하고 했지만 한편으로는 나도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을 한적도 있습니다. 그랬던 제자신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아직 운동세계에서는 그저 보이는 승리 우승만 인정해주는 세상인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둘씩 약물을 섭취하고 페어플레이 정신이 없어 지고 우승이리는 압박감으로 인해 그렇게 행하였던것 같습니다. 그방지를 위해서는 지도자들이 나서서 운동하는 선수들에게 자연스럽게 가르쳐주고 인식을 시켜줘야 할것같습니다. 도핑을 함으로써 경기성적은 올릴 수 있지만, 선수의 신체는 극도로 피로해지고 약물을 습관적으로 사용하게 되면 건강을 해치는 원인이라고 보이며 이러한 의학적인 이유와, 인간 본래의 능력으로써 겨루어야 할 경기장에서 약물의 힘을 이용하려는 그릇된 생각에 대한 도의적인 비판이 대두되어 도핑 금지의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지며 틈틈히 검사를 진행 하여야 할것입니다.

  • 유용재 2013.03.28 16:15 신고

    안녕하십니까 저는 1학기생 유용재 입니다..
    이 글을 읽다 보면 도핑에 대해서 다른 시각으로 한번 볼 수있습니다.
    도핑이라고하면 다들 않좋게 생각하고 도핑을하는 선수에게 비난과 선수자격박탈 등 한 선수의 인생을 끝내버립니다. 과연 도핑을 한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한것인가? 아니면 강요적으로 당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점이 남습니다.
    선수들이 도핑을 하면 안된다는 사실을 알고도 하는것은 도핑을 했을때 그 만큼의 성과가 나온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도핑을 했을때 아무 결과가 바뀌지 않거나 성과가 없다면 할 이유가 없기 떄문입니다.
    사회는 과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결과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성과를 중요시하게 여기기에 선수들의 부담감이나 압박감 주위 시선들 한 선수가 짊어 지고 가기에는 너무 힘들었지 않나 생각합니다.
    도핑이 좋고 나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도핑을 하게 만든 사회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뉴스,신문을 통해 접했던 도핑을 한번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곽푸름 2013.03.28 17:31 신고

    안녕하십니까~
    저는 체육교육 1학기생 곽푸름 입니다.

    선수개인의 약물사용은 여러가지 이유가 존재하지만
    본문은 선수개인의 문제(자기만족,욕심)에 초점을 맞춘것이 아니라
    성과극대화와 그 결과를 얻기 위해서 끊임없이 발전해 나가야만 하는 의무를 선수에게 떠안기는 스포츠(현대스포츠에만 국한된것이 아님)의 병폐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을 읽고 참 공감 되었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스포츠는 과거와 현재를 망라하여 끊임없는 자기갱신과 보다 나은 성과를 내어야하는것은 스포츠의 발전과함께 점점 더 중요해지기는 했으나 과거에도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 들어와서는 부정적인 방법에 의존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이 약물이죠. 약물의 힘은 유전적으로 극복하기 벅찰만큼 강력하기 때문에 그것으로 하여금 이득을 본선수가 생기게 된다면 그이상의 결과를 내기 위해선 너도나도 약물에 손을 댈수밖에 없습니다.
    생계를 위해 운동을 하는 선수는 자기손으로 경구제를 투여하고 주사기를 꽂을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게된다는 것입니다.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말이죠.. 본인의 욕심때문에 이런결과가 초래 되었을까요?

    교수님 의견처럼 이러한 원리들의 반성과 성찰이 부재한 제도적인 개혁은 의미없을 뿐더러 또다른 돌파구(?)가 생길수밖에 없습니다.
    약물이 존재하는 세상에서의 스포츠의 병폐는 스포츠가 없어지거나 약물이 없어지는것 둘중 하나가 아니라면 도핑이라는 문제에서 스포츠는 자유로울수 없을것 같습니다.

  • 조민영 2013.04.03 13:25 신고

    안녕하십니까?1학기생 조민영입니다.

    이 글에도 적혀 있었듯이, 스포츠란 건강, 공정, 스포츠맨십 같은 긍정적인 이미지와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도핑은 부정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핑이란 자신의 힘과 지구력 등 신체적 체력을 자신의 한계치 이상으로 끌어 올려주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운동을 하는 대부분의 선수들은 스포츠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이상향으로 생각하고 경기에 임하지만, 몇몇의 선수들은 자신의 승리를 위해 더 나은 자신을 위해 도핑을 선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분명 스포츠에서 없어져야 할 부분이고, 있어서는 안 될 행동이지만, 이 모든 부분을 이해할 수 있는 맥락은 글의 뒷부분에서 나오게 됩니다. 도핑을 하게 되는 이유는 분명 자기 자신이 선택하지만 이 선택의 과정에는 수많은 사회환경의 영향도 있다고 생각하며 학생들은 더 좋은 실업팀이나, 대학을 위해서이고 실업팀이나 대학 선수들 같은 경우에는 더 나은 미래와, 더 나은 성적이 앞으로의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기 때문입니다. 사회 환경은 누가 열심히 준비했고, 누가 처음 보다 성적이 많이 좋아졌느냐가 아니라, 결과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며, 세계대회인 올림픽의 표어도 보다 빠르게, 보다 높게, 보다 강하게라는 문구를 보게 되면, 이 세상은 결과만을 중시하기 때문에 더 잘하기 위해서, 그리고 부상을 당한 선수들도 미래를 위해서 경기를 포기할 수 없게 되면, 그 순간을 잊기 위해 도핑의 길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가장 가슴에 와 닿았던 부분은 현재 물질 만능주의에서 그 분야의 전문가로써 성과를 내야하고, 또 성과를 냄으로 그 분야에서 인정받고 자신의 물질적 안정을 위해 도핑을 해오는 것 같고, 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 도핑을 하여 1등을 하겠다고 생각하는 선수는 없습니다. 도핑을 바라보는 저희들로써는 과연 운동선수가 도핑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들을 생각해 보게 되면 이 글에서 알려준 것처럼, 분명 이 사회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에 포함된 모든 문제들을 다시한번 생각 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송형석(계명대학교 교수)

 

 

     요즘 스포츠 활동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주말마다 이곳저곳에서 개최되는 마라톤대회는 참가자들로 넘쳐나고, 하루하루 녹음이 짙어가는 산과 계곡은 등산객들로 북적이며, 골목골목 들어선 헬스장과 골프연습장은 시간대를 가리지 않고 회원들로 가득하다. 이렇듯 사람들이 스포츠 활동에 몰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삶이 윤택해지면서 건강에 대한 관심이 각별해졌고, 스포츠 활동이 건강에 필수적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추세에 힘입어 건강은 스포츠 활동 참가의 최고 목적이 되었으며, 이러한 추세에 힘입어 ‘건강스포츠’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그러나 과연 건강만을 목적으로 하는 ‘건강스포츠’는 실제로 건강에 이롭기만 한 것일까?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의 답변이 이중적인 이유는 건강이라는 것이 매우 복합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건강은 단순히 질병이나 이상이 없는 상태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는 상태를 뜻한다. 이러한 건강 규정은 건강을 구성하는 특정 측면의 과잉이나 결핍이 조화를 깨뜨릴 수 있고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말해준다.


건강을 다양한 구성 요소들의 조화로운 상태로 이해할 때 작금의 ‘건강스포츠’ 활동은 참가자들의 건강에 이롭기 보다는 오히려 해로울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건강스포츠’ 활동에서 빈번하게 특정 측면의 치우침을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를 통해 건강을 찾고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신체적인 측면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강하다.

 

사실 스포츠는 근골을 활발하게 움직이는 신체 활동일 뿐만 아니라 타인과 사귀고 소통하는 사회 활동이며, 성취감과 소속감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심리 활동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소위 ‘건강스포츠’에서 이와 같은 스포츠의 복합적 측면들은 단순한 신체 활동으로 축소된다. 스포츠 참여자들의 목표는 오직 한 가지, 평소 자주 사용하지 않는 신체 부위를 열심히 움직이는 일이다. 이들은 건강을 위해 쓰디쓴 한약을 삼키듯 그렇게 트레이드 밀 위에서 헉헉거리며 앞만 보고 달린다. 묵묵하게 달리는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달려야 할 거리와 시간, 그리고 소모시켜야할 칼로리뿐이다. 여기서 즐거움이나 규칙준수, 경쟁, 승리, 타자와의 소통, 성취감 같은 고전적 스포츠사회화 형식들은 철저하게 무시된다. 이런 압축적 스포츠참여과정을 통해 원래 유희여야 할 스포츠, 활동 그 자체가 목적이야 할 스포츠는 노동 활동, 도구 활동으로 변질된다.

 

 

 

 

 

 

노동하는 인간에게 과정은 목표 달성을 위해 감내해야만 할 고통의 시간일 뿐이다. 윙윙거리며 돌아가는 트레이드 밀 위에서의 60분, 그것은 지루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건강을 얻기 위한 일념으로 그 지루함을 인내하며 마치 사무실에서 신경을 곤두세워 업무를 처리하듯 그렇게 기계 위를 달린다. 그러나 신경을 곤두세워 일할 경우 소정의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사무실 업무와 달리 건강은 그것을 얻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의 정도에 필연적으로 비례하지 않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참가자의 의도와는 반비례하는 결과가 야기될 수 있다. 스포츠참가자가 목표 달성을 위해 전심전력하면 할수록 심리적 부담은 더욱 커지고, 몸과 마음은 더욱 경직되며, 그에 따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조화가 깨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건강스포츠’가 애초의 목적과는 달리 건강에 해로울 수 있는 이유를 알아보았다. 최근 마라톤, 등산, 수영 같은 ‘건강스포츠’를 수행하는 중에 돌연사하는 경우가 대중매체를 통해 드물지 않게 보도되고 있다. 돌연사의 가장 큰 원인은 심근경색으로 알려져 있다. 심근경색의 원인이야 사람들마다 상이하겠지만 건강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그로 인한 신체 및 심리적 경직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일 수 있다. 이렇듯 스포츠 활동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위험과 폐해를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스포츠는 건강에 좋다거나 달리기는 보약이라는 생각만 가지고 신체활동만으로 축소된 스포츠 활동에 몰두한다면 이러한 활동은 건강에 득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실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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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박현애(이화여자대학교 및 동대학원 강사)

 

        스포츠에 대해서는 운동감각이라고 불리는 선천적인 운동기능 감각이 없는 경우, 스포츠를 제대로 느끼기란 쉽지 않다. 물론 운동기능적인 감각을 지니고 있는 경우에도 깊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스포츠는 단지 승패로 시작하여 끝을 맺는 일이 되기도 한다.

 

스포츠 활동이란 신체로 행하는 것이고 수행하면서 느껴지는 일련의 활동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1차적 진입 경로일 텐데, 이는 모든 이에게 허용되어 있지 않다. 잘하지 않으면 맛을 모를 것이고, 그 고유의 맛을 보지 못한 이에게 스포츠란 먼 달 구경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한 우리 학교 체육의 구조에서는 더욱이 스포츠 행위를 선천적인 능력으로 치부해버리려는 경향이 짙다. 신체활동의 효율성과 경제성, 그리고 자기 신체의 기계적 활용정도가 목적이 되고 이를 평가하는 구조에서는 스포츠를 알아가거나 나아가서 느끼는 일은 뒷전으로 밀어 놓았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신체를 활용한 행위에서 순간적인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전부이다.

 

 

 

 

스포츠로의 평등한 진입로 – 스포츠 감상

이렇게 스포츠로의 길은 편협한 진입로 외에는 없는 것일까? 물론 스포츠의 문은 여기에서 굳게 닫히지 않는다. 여전히 스포츠는 우리에게 눈에 보이는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고 끊임없이 말을 걸어온다. 다른 문화에 비하여 비교적 빈번히 우리의 일상의 문을 두드린다. 스포츠 행위와 관련되어 있지 않는 일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열려있는 스포츠로의 문은 ‘감상’이다.


월드컵 때면 많은 이들이 광화문 거리로 나오고, 올림픽이면 텔레비전 앞에 모인다. 야구시즌이면 야구에 관한 소소한 일들도 신문과 뉴스를 차지하고, 멋진 스포츠 행위들을 모아놓은 동영상을 보며 경이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이와 같이 스포츠 감상은 원하는 모든 이에게 열려진 스포츠 세계로의 평등한 진입로이다. 깊이 있는 스포츠 감상이 바로 팬임을 자처하며 끊임없이 열광하고 울고 웃는 스포츠만이 지닌 저력의 근원일 것이다.

 

 

스포츠의 단계별 감상법

스포츠를 감상하는 것도 인간이 만든 모든 일에서와 같이 단계별 사고가 요구된다. 그리고 단계별로 상승 이동될 때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고, 비로소 실재에 가깝게 된다.


첫째는 이기고 지는 것에 몰두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감상행위로 느껴지는 첫 번째 단계에 다소 지쳤다면, 그 다음 단계는 수행하는 아름다운(분명한 목적을 달성하려는) 몸의 움직임, 혹은 전체적 스포츠 흐름을 이해하는 과정의 해체와 종합적인 사고일 것이다.

 

이후 더 깊은 이해를 원하는 감상자가 얻을 수 있는 다음 단계는 내적 스포츠의 깊은 이해로서 이는 삶의 응용까지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스포츠 안에서 인생을 보는 것이다. 보다 높은 단계로의 감상이 이뤄질 때, 혹은 이를 원할 때 비로소 스포츠만의 인문적 측면-가끔은 매우 직선적이고 때로는 매우 심오한 깨달음을 주는- 즉 스포츠 세계의 이해와 일상세계로의 반영이 가능하게 된다. 스포츠 세계가 주는 심오한 이야기들은 일상의 복잡하고 민감한 일에 용기를 주거나 도전을 가능하게 하며, 다양한 형태의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리에 쥐가 나 더 이상의 도전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여 끝까지 역도 바를 놓지 않던 이배용 선수의 베이징 올림픽의 순간, 41회의 마라톤 풀코스 완주, 20여년의 마라톤 인생을 거치며 전설이 된 이봉주 선수, 17년째 깨지지 않은 한국 여자 100m 신기록을 보유한 이영숙 선수는 그 과정에서 자신의 기록(한국기록)을 7번이나 갱신해 자신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모습으로 감동을 준다. 또한 위기의 상황에서 위트 있는 플레이로 스포츠의 경쾌함을 주었던 김재박 선수의 모습은 우리의 삶에 대한 모습을 바꾸어 놓기도 한다. 어려운 가운데 힘을 낼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하고, 때로는 침체로 인한 고민의 방에 더 이상 갇히지 않고 위트있게 뛰어오르도록 도와준다.

 

 

스포츠, 의미있는 감상 - 촉수 기르기

스포츠는 보려는 사람에게 더 많은 것을 보여준다. 보려는 이에게 이전에 눈에는 보여도 가슴으로 볼 수 없던, 느낄 수 없던 것들을 조근 조근이 이야기 해준다. 단지 ‘나이만 드는’ 사람과 인생의 깊이가 하나씩 새겨져 ‘나이를 이룬’ 사람들 간에 차이가 있는 것처럼 스포츠는 들여다보는 사람에게는 더욱 풍부한 이야기들을 내 놓는다.

 

보다 깊이 보아야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개인의 독특한 시선, 혹은 심오한 시선으로 파생된 그 안의 울림은 스포츠 감상자를 더 이상 승패에 전전한 우매한 인간군의 무의미한 행위로 만들지 않는다. 하나하나 인간 행위를 통한 창작물로서 다양한 세계로의 문을 열어준다. 이렇게 스포츠 감상에 대한 촉수를 길러서 깊이 들여다보면, 스포츠는 순간과 과정이 고스란히 의미를 가지고 더 많은 이야기를 해줄 것이다.

 

삶이 얼마나 풍요로워질 수 있는지, 그리고 삶의 주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좋을지 해답을 제시해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스포츠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고 행해지는 문화로서 기나긴 역사를 가지고 지금 이 시대에 분명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 진정한 이유일 것이다. 겉으로는 박진감 넘치는 흥분된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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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고문수(인천대학교 강사)




. 들어가는 글 

오늘날 학생들은 지방과 염분 그리고 다량의 당분이 함유된 음식을 섭취하여 예전의 학생들에 비해 비만해지기 쉬운 환경에 있다. 더구나 예전보다 신체 활동량도 현저히 적다. 따라서 이러한 경향을 바꾸고 건강 습관을 길러주기 위해서는 부모, 교사, 지역사회 구성원의 공동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본 필자는 현재의 체육교육과정이 위의 목표 달성을 위한 개혁과 보완에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좀더 활동적이고 건강한 생활방식을 증진시키기 위한 체육교육의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학생들은 가장 활동적인 연령층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놀고, 달리고 깡충깡충 뛰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학년이 올라갈수록 이들은 비활동적으로 되어 점차 체중과다가 되어 간다. 이것은 어찌된 일인가? 어린이가 10세에 이르면 다양한 흥미, 취미가 생기게 되어 신체활동을 멀리한다. 그들은 어린이라는 명칭에 저항하고 어린 시절의 게임, 놀이들을 그만두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부모와 교사는 신체 활동이 목표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달성해야 한다는 것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가령 팀 경기를 통한 경쟁, 패 여부, 검은 띠를 따기 위한 태권도 수련은 이러한 어른들의 잘못된 의식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운동에 타고난 소질을 지니지 못한 학생들은 자신이 무능력하고 각광받고 있지 못함을 느끼면 소극적으로 되기 쉽다. 우리는 이제 10살짜리 꼬마를 운동선수의 축소판으로 대하는 것을 멈추어야 한다. 그리고 자유롭게 움직이고 신체를 통해 표현할 수 있는 학생으로 자라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를 학교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팀 활동 스포츠로 패러슈트를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 패러슈트 활용 사례

 

패러슈트는 참여자 모두에게 신체 각 부위를 다양하게 사용하게 하며 신체의 신경과 근육조정 기능을 향상시킴으로써 높은 운동효과를 제공한다. 정서적사회적으로도 참여자들 간에 신뢰감을 생성발달시키고 개인의 사회적 유대관계를 발전시킨다. 일반적으로 패러슈트는 개인 활동보다는 집단 활동 위주로 운동할 수 있는 교구이며 함께 흔들며 천 아래로 통과하기, 천위에 공들이 춤추도록 하기 등의 다양한 활동을 통하여 사회성, 신체협응, 균형능력 및 시지각 협응향상 그리고 창조성 등을 기를 수 있다. 또한, 패러슈트는 잡고 흔들어야 하기 때문에 손의 근력을 강화시키기에 유용한 측면이 있다.

이에 현장의 교사들은 다음의 열한가지 활동을 토대로 학생들이 체육활동에 즐겁게 참여하는 가운데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는 기틀을 제공해야 한다. 교사들은 각 활동별로 제시된 순서대로 활동을 하고, 그 과정에서 학생들의 모습을 모니터링하고 나서 문제를 정렬해주는 부분에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 이는 교사들이 패러슈트를 활용한 체육수업의 새로운 프로그램의 구안에 시사점을 제공받을 수 있다.

1. 튕기기

첫째, 모든 학생들이 낙하산 손잡이를 하나씩 잡는다. 둘째, 공을 낙하산 위에 올려두고 교사의 구령에 맞춰서 낙하산을 펄럭여 공을 공중 위로 띄운다. 셋째, 공중 위의 공을 다시 낙하산으로 받는다. 넷째, 공 대신 학생 1명을 낙하산 위에 눕혀서 위의 과정을 반복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안전을 위한 배려 사항으로는 주변에 부딪힐 만한 모든 물건들을 미리 처리한다. 또한, 패러슈트 위에 앉아 있는 학생이 바닥에 부딪히지 않도록 바닥에 매트를 설치한다.

2. 폭풍 만들기

첫째, 모든 학생들이 낙하산 손잡이를 하나씩 잡는다. 둘째, 낙하산을 아래위로 움직여 중간 크기의 물결을 만들면서 시작한다. 셋째, 교사의 지도에 따라 학생들이 따라하면서 폭풍이 다가온다고 이야기해 준다. 넷째, 하늘이 어두워지고 바람이 강해지며 파도는 더욱 높아져간다. 이제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파도는 짧고 자주 끊어진다. 폭풍이다. 이제 폭풍이 지나갔다 등의 적절한 이야기로 학생들의 운동 강도를 조절해나간다.

3. 낙하산 당겨 내리기

첫째, 모든 학생들이 손등을 위로 하여 낙하산을 허리 높이에서 움켜잡은 뒤 어깨너비 발 간격으로 선다. 둘째, 모두 낙하산을 머리 위로 들어올린다. 셋째, 신호에 따라 팔과 어깨만을 이용하여 허리로 끌어당겨 내린다. 넷째, 위의 동작을 반복한다.

4. 낙하산 끌어올리기

첫째, 모든 학생들이 손등을 아래로 하여 낙하산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린 뒤 어깨너비 발 간격으로 선다. 둘째, 모두 낙하산을 허리 높이로 천천히 끌어 내린다. 셋째, 신호에 따라 팔과 어깨만을 이용하여 머리 위로 끌어 올린다. 넷째, 위의 동작을 반복한다.

5. 윗몸 감아 일으키기

첫째, 모두 무릎을 구부린 채 앉은 상태에서 낙하산을 허리 높이에서 손들을 위로 하여 잡는다. 둘째, 왼쪽 학생들은 누워 윗몸 일으키기를 한다. 이때 오른쪽 학생들은 몸을 앞으로 내밀어 낙하산을 적당히 느슨하게 해준다. 셋째, 바꾸어 가면서 같은 운동을 반복한다.

6. 손목 돌리기

첫째, 팔을 쭉 뻗은 채 손등을 위로 하여 낙하산을 잡는다. 둘째, 낙하산을 항상 팽팽하게 유지하기 위해 상체를 약간 뒤로 젖힌다. 셋째, 천천히 낙하산을 가운데로 만다.

7. 팔굽혀펴기

첫째, 모두 머리 위로 낙하산을 들었다가 바닥으로 끌어내린다. 둘째, 낙하산 끝자락에 양손을 댄 채 다리를 낙하산에서 멀리 뻗는다. 셋째, 낙하산이 납작하게 가라앉을 때까지 가능한 많이 팔굽혀펴기를 한다.

8. 방울 만들기

첫째, 낙하산을 바닥에 활짝 펼쳐둔다. 둘째, 모두 상체를 숙여 낙하산을 손등을 위로 하며 잡는다. 셋째, 신호에 따라 동시에 모두 낙하산을 위로 펼치며 재빠르게 낙하산 아래로 기어들어가 모여든다.

9. 동굴 탐험

첫째, 낙하산을 잡고 있는 학생들이 낙하산을 아래위로 크게 펄럭인다. 둘째, 모든 학생들이 하나! ! ! 을 크게 외치며 낙하산을 펄럭인다. 셋째, 나머지 학생 중 1명이 !”과 함께 낙하산 위로 부풀어있는 동안에 낙하산 아래로 통과한다. 넷째, 아래를 통과하는 학생을 바꾸어가며 위의 과정을 반복한다. 안전을 위한 배려 사항으로는 학생들이 엇갈려 달려서 부딪히지 않도록 달리는 방향을 한 쪽으로 정해준다.

10. 낙하산 농구

첫째, 학생들이 둥글게 모여서 낙하산을 조그맣게 하여 잡는다. 둘째, 교사가 23m 밖에서 배구공을 높이 던져준다. 셋째, 낙하산을 잡고 있는 모든 학생들이 이동하여 던져지는 공을 받아낸다.

11. 콩주머니를 보내라

첫째, 모든 학생들이 낙하산을 잡고 둘러선다. 둘째, 낙하산 안에 콩주머니를 하나 넣는다. 셋째, 한 학생이 다른 학생의 이름을 호명하면 낙하산을 움직여 콩주머니가 호명된 학생에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한다. 넷째, 콩주머니를 받은 학생은 다른 학생의 이름을 호명한다. 다섯째, 위의 과정을 반복한다.

 

. 나오는 글

 

교사들은 학생들이 본능적으로 신체놀이를 즐기고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므로 체육수업에 있어서 행동변화를 계획하고 새로운 동기부여 전략을 투입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체육교육과정은 활동 수준을 높이기 위한 체력과 관련된 활동들, 즉 장애물 코스, 게임, 체조 등을 포함해 왔다. 그리고 교사들은 단기간에 달성해야 할 목표, 체력 테스트 등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러한 활동들을 가르쳐 왔다.

하지만 대부분의 교사들은 학생들이 평생 체육활동에 가치를 둘 수 있도록 도움을 제공하는 행동기술을 교과과정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다시 말해, 교사는 학생들이 그들의 체력에 대한 관심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학생들에게 발달상 적절한 체력활동 수준을 높이는 모든 신체활동들이 그들의 일생에 걸친 긍정적이며 영구적인 생활방식을 형성하도록 가르칠 수 없을 것이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즐길 수 있는 재미있는 집단 놀이 형태의 신체활동을 통하여 건강한 신체를 기르도록 유도해야 한다. 또한, 교사들은 학생들이 신체활동에서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고, 그들에게 필요한 부분을 메워 줄 수 있는 교육적인 신체활동의 프로그램을 구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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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송형석(계명대학교 교수)


 

체육학이 학문공동체 내에 뿌리를 내린 이후 체육학의 당면문제로서 지적되어온 내용 가운데 한 가지는 이론과 실천의 괴리이다. 이러한 주장에 따르면 체육학자와 체육인은 함께 공조해야만 하는데 실제는 그렇지 못하고 따로 놀며, 그러다보니 체육 이론은 설명력이 약하고 탁상공론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진단으로부터 체육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체육 현장과 더욱더 밀착해야만 하며, 체육학자는 체육인 및 체육단체와 거리를 좁혀야만 한다는 주장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주장에 부응하듯 체육학은 체육 현실과 다양한 방식으로 교류하며 상호 간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고 있다. 예컨대 체육학자 중에는 체육단체가 제공하는 지원금과 연구비를 수주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가 적지 않으며, 어떤 이는 체육단체의 비상근 임원으로 위촉되어 각종 의사결정에 참여하기도 한다. 이들이 수행하는 연구 주제는 대개 경기력 향상과 관련된 내용이거나 체육단체가 추진하는 체육정책을 정당화하는 일과 관련된다. 이와 같은 이론과 실천의 밀착 경향은 체육학분야뿐만 아니라 소위 응용학문으로 불리는 다른 학문분야들에서도 드물지 않게 발견되는 현상이다. 다수의 학자들은 이와 같은 경향을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밀착은 학문의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학문이 적절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대상에 대한 적절한 거리두기가 전제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현대 학문은 점점 더 자신의 전제조건인 대상과의 거리를 잃어가고 있다. 이와 같은 거리의 실종과 거리두기 능력의 상실이 어떤 부정적인 결과를 야기 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학자들이 경고한 바 있다. 거리두기능력을 상실한 학문은 더 이상 학문이 아니다. 거리를 둔 후에나 가능한 지식의 생산이 그러한 학문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학문은 철저하게 현실 종속적이 되며, 더 이상 진리에는 관심이 없다. 그것은 오직 자신의 뒤를 돌보아주는 사회 현실을 선전하고, 정당화하는 일에만 관심이 있다. 제약회사와 밀착된 학문은 그 회사가 생산하는 약품의 효능을 선전하고 정당화하는 일에만 몰두한다. 이 과정에서 약품의 부정적 기능에 관한 데이터는 고의적으로 누락시키거나 삭제시키고, 긍정적 효과만을 부각시킨다. 이들의 관심은 객관적 진리가 아니라 제약회사의 이익 증진이기 때문이다. 정당과 밀착된 학문 역시 그 정당의 정치활동을 선전하고 정당화하는 일에만 관심이 있다. 모든 정치적 결정은 긍정과 부정이라는 양면적 결과를 동시에 생산하지만 이 학문은 자신이 옹호하는 정당의 정치적 결정이 생산한 결과의 양 면 가운데 긍정적인 면만을 부각시켜 다룰 뿐이다. 여기서 우리는 과거로 회귀하는 학문, 역사적으로 퇴보하는 학문을 볼 수 있다. 중세 이후 힘겨운 투쟁 끝에 종교와 정치라는 외압으로부터 독립하여 독자적인 길을 걸어왔던 자유 학문, 고유한 작동논리에 따라 기능하는 자율적 사회체계로 분화한 자유 학문이 다시금 자발적으로 종속의 길로 들어서고 있음을 본다. 돈과 권력의 하수인, 기업과 정당의 하청업자로 전락하는 학문을 본다. 체육학 역시 예외는 아니다.

체육학이 지금까지 추구해온 행로는 한 마디로 실천에 의한, 실천을 위한, 실천의 이론이다. 응용학문으로서 체육학이 표방함직한 슬로건이다. 그러나 진실로 실천을 위한 이론이기를 원한다면 실천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만 한다. 거리두기는 모든 학문의 필수적 전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금의 체육학은 거리두기를 포기한 듯하다. 명성 있는 체육학자들은 대개 학문 외적 이유에서 체육단체와 이권단체, 행정단체 주변을 맴돈다. 이들의 바람은 단 하나, 돈 또는 권력의 획득이 그것이다. 체육관련 단체와 조직으로부터 지원비와 연구비 명목으로 돈을 타내거나 아예 그곳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 각종 의사결정에 참여하며 권력을 행사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학자들에게서 질 높은 학문적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먹이를 던져주는 손은 물지 않는다. 이로부터 체육학의 학문적 중립성이 훼손될 위험이 생겨나게 된다. 이들이 생산해 낸 지식은 객관적이기 어렵다. 그것은 이 단체들의 존재와 활동, 그리고 결과들을 정당화시켜준다는 점에서 편파적이다.

체육실천을 정당화시켜주는 이론으로서 체육학은 여러 가지 복잡성 감축방식을 통해 체육과 체육단체의 기능과 역할을 과대 강조한다. 복잡성 감축방식이란 체육과 체육단체가 야기 시킨 복잡한 결과들 가운데 자신과 체육단체의 입맛에 맞는 결과만을 선택하여 그것이 모두인양 주장하는 방식이다. 학문의 사태관찰도 복잡성감축이지만 서로 사용하는 관찰코드가 다르다. 학문이 진리/비진리라는 이분법적 코드에 의존해서 사태를 관찰한다면, 사태 종속적 학문은 정당성/비정당성, 권력습득/권력상실, 연구비수주(지불)/연구비 비수주(비지불), 높은 반향력/낮은 반향력 같은 구별들에 의존하여 관찰한다. 이러한 학문에게 진리/비진리 코드는 이차적일뿐이며, 이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면만 볼뿐 보고 싶지 않은 면은 외면한다.

체육학이 참된 의미에서의 학문이고자 한다면 하청업자의 역할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특히 테크놀로지의 생산과 무관한 체육인문학은 더더욱 안 된다. 하청업자는 의뢰자의 요청에 근거하여 의뢰자의 관점에서 사태를 관찰하기 때문에 그의 관찰은 객관적이기 어렵다. 하청업자는 의뢰자가 설정한 애초의 목적에 이의를 제기해서는 안 된다. 그럴 경우에 하청이 중단될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그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도록 노력한다. 재판에 이김으로써 의뢰인을 보호하는 것을 최상의 목적으로 삼고 있는 법조인으로부터 정의를 기대하기 어렵듯이 관련영역의 요청에 따라 그것을 정당화하고 감싸주는 학자로부터 진리를 기대하기 어렵다.

기존의 체육학 발전방향 담론이 체육 현장과의 친밀성을 강조하지만 참된 의미에서 학자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대상에 대한 낯설음이다. 체육학계에서 늘 강조하는 현장과의 연관성이나 실용성을 생각하면 이와 같은 진술은 듣는 이를 당혹스럽게 만들 수 있다. 그렇지만 학자에게 낯설음이 필요하다는 말은 쉽게 설명될 수 있다. Stichweh의 말을 빌리자면 학문은 낯설음의 관점이 분화한 것이다. 즉 학문은 일상적인 자명성과 인과관계에 대한 추정을 의심하며 오랫동안 익숙했던 것들을 전혀 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또는 전혀 이해될 수 없는 것으로 취급할 수 있어야만 한다. 스포츠에 대한 낯설음이 스포츠에 대한 무관심 또는 스포츠의 특수성에 대한 무지와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학문의 본분은 정당화가 아니라 회의주의다. 체육학은 이와 같은 회의주의적 관점을 회복해야만 한다. 특히 비-테크놀리적 지식의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체육인문학은 이 점을 명심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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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준수 2013.03.13 13:26 신고

    안녕하십니까 교육대학원 1학기생 금준수입니다.
    이 글의 주된 내용은 물질만능주의와 이기주의로 인한 사회적문제점의 현상을 잘 설명해주는 글 인거 같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오랜 옛날부터 시작하여 경제와 산업이 발전하면서 오늘날 까지 이르게 된 것 같으며 현재 정치, 경제, 사회, 학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간의 가치는 작업의 성과나, 수행능력에 의해 평가를 받으며 이로 인해 스스로를 상품화하는 게 당연시하게 되었고 자신의 무능함을 감추기 위해 자기보다 약한 자를 밟고 일어서지 않으면 안 되는, 즉 개인의 입신양면을 추구하는 사회가 되어 버린 거 같습니다.
    그리고 체육학을 공부하는 학생의 입장에서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문 연구의 목적을 달리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부와 명예 그리고 특정단체의 이익증진을 위한 목적이 아닌 본문에서 나와 있듯이. 체육학자와 체육인 여러 단체와 서로간의 소통과 공유를 통하여 옳고 그림을 판단하여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누구나 유익하게 활용할 수 있는 학문을 연구한다면 부와 명예는 자연스럽게 올 것이며 체육학의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거 같습니다.

  • 임종대 2013.03.13 15:36 신고

    안녕하십니까? 교육대학원 1학기생 임종대입니다.

    현대 사회로 접어들면서 대부분의 분야가 결과 중심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것 같
    습니다. 이러한 현상으로 체육이라는 분야또한 결과가 중요시되고 더나아가서 상업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변화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이에따른 체육학의 이론과 실천의 과제는 결국은 사회적 위치나 금전적인 부분에서 편파적인 결과를 초래하는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체육학자와 체육인의 대립에 서로 학문적 분야에 대하여 공유하며 체육학자 뿐만아니라 체육인도 함께 이론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로간의 이익만 쫒는 것이 아니라 체육이라는 큰 숲을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 허민지 2013.03.13 15:59 신고

    안녕하십니까 교육대학원 1학기생 허민지입니다.
    교수님 글을 읽고 체육인으로써 지금까지 생각해 보지 못한 관점에서 체육과 학문에 대해 생각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금 사회가 이익추구를 위해 부정적인 면을 배제하고 긍정적인면만 보여준다는 부분에서 많이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물질만능주의와 명예, 권력을 위해 학문이 쓰여진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학문이 그 기능을 다하기 위해 거리두기능력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체육과 학문에 다가간다면 더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듭니다. 체육인으로서 저 또한 반성하고 이익보다 학문의 기능과 체육에 기능에 대해 더 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 강민성 2013.03.13 16:09 신고

    체육교육전공 강민성 입니다

    체육학의 이론과 실천을 위해 체육현장과 밀착하면서, 체육학자들은 학문 외적인 이유에서 부정적인 부분은 찾아 볼 수 없고 긍정적인 부분만 부각 시키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돈과 권력에 매수되어 학문을 연구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질 높은 학문을 위해 반성하고 체육학 발전만을 생각하는 학문을 연구해야 합니다.
    물론 체육학자와 체육인이 거리두기는 힘들지만 학자라면 학문에 중립성, 다양성을 위해 점점 노력 해 나가야 합니다.

  • 유용재 2013.03.13 18:15 신고

    안녕하십니까 교육대학원 1학기생 유용재 입니다.
    체육학자와 체육인이 같이 공존 해야하는데 공전하지 못하는 점에서 문제가 있는걸 알았으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위해서 체육단체의 지원와 체육정책을 통해서 해결해 나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체육에 대한 역사와 학문의 바탕으로 명예와 권력 또한 이익을 위해서 하는 것에 대해서 많은 문제점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런한 문제점 들을 변화하기 위해서는 지금 자리 위치에있는 체육학자님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21세기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해결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체육인으로써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많이 부족하다느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양세정 2013.03.13 19:03 신고

    안녕하십니까? 5학기생 양세정입니다.
    교수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제목을 보고 거리두기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도 적당한 거리가 없다면 덮어놓고 맹목적으로 되는것 같습니다. 그런 관계 때문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기도하고 도리에 맞지 않는다는걸 알면서도 어물쩍 넘어가기도 하며 자신에게 해가 되지 않으면 굳이 얼굴을 붉히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기도 합니다. 그런 무책임한 행동때문에 타인이나 공공의 이익에 해가 될수도 있을 것입니다. 인간관계와 마찬가지로 체육 이론과 실천이 순수한 거리를 뒀을때 함께 긍정적으로 공존할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 김기태 2013.03.13 19:27 신고

    안녕하십니까 김기태입니다.
    체육의 본질은 운동을 통한 교육이다. 그러나 이와같은 이상화된 이론을 주장하는 체육학자들과 현실과 타협하여 상업화된 체육계의 괴리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가장 큰 스포츠 이벤트인 올림픽과 프로스포츠들 특히 최근 한국의 4대 메이저 프로스포츠에 승부조작이 있었다는 충격적인 문제가 대두되었다. 근복적인 체육교육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장된 최의창 교수님의 "하나로 체육모형"은 체육 내에서의 지덕체를 강조하며 이론과 실천의 괴리를 타파하기 위한 한가지 방법으로 제시되었다. 하지만 이와같은 이론과 실천의 괴리는 비단 교육이나 엘리트 스포츠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다. 스포츠 현장에서 경영자와 실무자들의 입장 차이도 큰 문제가 된다. 경영자들은 이윤을 위해 체육을 돈을 벌기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그 예이다. 우리 체육인들의 숙제는 진정한 체육의 의미를 이해하고 이론과 실제의 "합의점"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 한미주 2013.03.13 19:40 신고

    안녕하십니까 교육대학원 4학기생 한미주 입니다.
    우선 이런글을 접할수 있는 기회를 주신 교수님께 감사 드림니다.
    저는 태권도를 전공했고,지금은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는 학생으로서 체육인의 자세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할수 있었습니다.
    이 글을 여러번 읽으면서 "돈 또는 권력...라인의 중요성..." 을
    언급한 대목이 제일 가슴에 와닿고, 현 시대의 경기인들에게
    가장 큰 문제점이란 생각이 듬니다. 선수를 먼저 생각하기 이전에...
    심판과 코치의 관계, 코치들간의 관계...
    모두가 학연 혹은 지연으로서 그 벽을 넘지 못하는 과제인듯 합니다.
    현장에서 매번 부딪히면서 고민하는 문제점인데 그 답을 아직 찾지 못해
    늘...안타까워했었던점을....
    이번 한학기동안그 해답을 찾고 진정한 체육 학자의 길이 무엇인지 많이 배우고 노력하겠습니다!
    감사 드림니다^^

  • 조민영 2013.03.13 20:52 신고

    안녕하십니까 체육교육 신입생 조민영 입니다.
    이 글을 읽고 체육학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던 문제점에 대해 알게되고 생각하게 되어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현장에서 활동하는 체육인들과 체육학자들은 공생관계가 되어서는 안되고 적절히 거리를 둘 수 있어야 서로에게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지만 현장의 체육인들은 스스로가 전문인이라 생각하는 요즘 학자들의 지도보다는 자신들의 정책에 대해 정당화하거나 긍정적인 면모만 보여주기를 원하며,학자들도 자신의 부와 명예, 권력을 탐하며 자리보존에 전전긍긍하며 대상의 하청업체에 불과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점에서 피해를 입는 것은 고객과 학습자가 될 것입니다. 고객과 학습자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체육학자와 체육인들의 결탁이 근절 될 수 있는 제도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정현도 2013.03.13 22:34 신고

    안녕하십니까? 교육대학원 4학기생 정현도입니다.
    우선 교수님께서 쓰신 "체육학의 덕목으로서 거리두기"를 잘 읽었습니다.

    글을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며 체육의 정의에 대해 되짚으며 생각했습니다.
    직접 아이들을 가르치고 체육학을 공부하고 배우는 입장으로써 체육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뒤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체육학자와 체육인은 함께 공조해야하며 상호간의 거리를 좁힘으로 인해 현실적으로 체육학의 발전에 일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나타납니다.
    저는 체육학이 돈이나 권력 획득의 목적으로 학문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없게 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변질되어 개인의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해지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위의 예시에서 약품의 부정적 기능에 관한 데이터는 고의적으로 누락시키거나 삭제시키는 행위는 "눈 뜬 장님" 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의미와 목적성을 잊은 채 현실 앞에 무릎꿇고 정당화하는 일은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하는 장님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앞을 볼 수 있어도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앞을 볼 수 있으면 봐야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당연한 원리에도 의미를 상실한 채 현실의 이익을 챙기기에 바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이 순수한 "적정한 거리두기"는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학문의 진정한 의미가 변질되지 않도록 거리를 두고 의심하고 비판하고 되돌아보고 검토해야만 합니다. 적정한 거리두기를 잘하고 있다 생각할지라도 회의적인 관점으로 되짚어보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거리를 두는 것이 매우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생각만큼 현실은 호락하지 않고, 달콤한 권력의 유혹이 이 사이를 좁히기 위해 자꾸 위협하려 들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육인 그리고 체육학을 공부하는 모든 이들이 이를 위해 노력하고 체육학의 참된 의미를 실천해야지만 이 현실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앞이 보여도 보지 못하는 "눈 뜬 장님"이 되지 않도록 체육학의 진정한 의미를 잘 되새기고 실천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교육자가 진정한 교육자의 기본자세라고 생각해봅니다.

  • 이형섭 2013.03.13 23:08 신고

    안녕하십나까 체육교육학과 신입새 이형섭입니다.우선 이렇게 늦은시간에 올리게되서 죄송합니다.

    저는 교수님이 쓰신글을 읽고 체육현장에서 활동하고있는 제자신은 지금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있는지를

    돌아보게되었습니다. 학자와 전문인 이둘사이의 관계는 서로 다른분야의 직업군이아닌 하나의 이상향을향해가는

    동반자의 관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자들의 연구와 현장전문인들의 경험과지혜를 하나로 모을수만있다면

    진정한 의미로써의 체육학이 이루어질수있지만 우리사회가 지향하는 부와명예라는 필요악의 존재때문에 순수한

    의미로서의 체육학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부와명예또한 우리가 누려야할 하나의 필요조건

    이기때문에 학문으로서의 체육과 실천으로서의 체육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않고 공생하면서 인간답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부와명예의 노예가아닌 활용할수있는 방법을 모색해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윤문희 2013.03.13 23:29 신고

    현제 체육학의 문제점은 체육학자와 체육인이 공조하지 못하며 교류가 없다는것입니다.
    실종과 거리두기능력이 상실된 학문은 더이상 학문이 아닙니다.
    명성,부,직위를 쫒는 체육학자들의 객관성은 모호하며 학자들의 부,명성,직위를 뒷받침해주는 단체들의 존재와 활동, 그리고 결과들을 정당화시켜준다는 점에서 편파적입니다.
    체육학은 실천에 의한,실천을 위한,실천의 이론 이라는 슬로건을 갖고있습니다.
    체육학이 참된 의미를 갖고자 한다면 현장과의 연관성이나 실용성을 갖고 연구하며 정당화가 아닌 학문의 본분인 회의주의적 관점을 회복하여여합니다.

    부와 명성이아닌 스포츠 학문으로서의 발전을 도모하며
    체육학의 덕목으로서 거리두기를 통하여 더 객관적인 연구,
    스포츠 인들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하여 주관적 통찰을 꾀함으로서 학자다움을 중요시하고,체육학 발전을 위해 선전해나가야 할것입니다.

  • 김지현 2013.03.13 23:33 신고


    안녕하십니까. 체육교육 3학기생 김지현 입니다.
    우선 이 글을 읽고 체육이라는 학문을 공부하는 학생으로 체육학의 근본정신에 대하여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체육의 이론이 탁상공론이 될 수 밖에없는 이유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온전한 체육학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체육학은 순수한 학문으로서 그 기능을 발휘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 현실에서의 체육학자는 때때로 순수한 학문적 기능보다 경영의 의미를 가지고 체육학을 바라보고 있는 이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체육이라는 학문을 통해 순수한 '보람'만이 아니라 경제적인 수익을 생각하고 이 경제적인 수익이 곧 체육학의 발전이 되리라 생각하는 것이지요. 체육학자로서 학문의 발전을 위해 이상적인 가치와 현실적인 가치를 함께 실현하는것은 위의 본문에서도 알수있듯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 생각됩니다. 체육학문을 배우는 학생으로서 다시금 체육학의 근본, 학자의 자세에 대하여 고민하여보고 중용의 자세로 학문의 본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 이재민 2013.03.14 10:16 신고

    안녕하십니까 체육교육학과 2학기생 이재민 입니다. 체육교육학을 전공하고 있는 학생으로써 체육학에 대해 돌아보고 한번더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예전부터 그래왔지만 체육학과 단체간의 관계가 밀착되어야 발전이 있다는 말씀에 많은 공감을 느낍니다. 거리가 너무 있다보니 체육인과 단체간에 비리 착취 등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생기는거 같습니다. 체육인은 체육인대로 체육학자들은 학자대로 따로 놀게 된다면 지금 현재에 머무르며 발전이 기대 하기 힘들며 나아가 수준 높은 체육학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앞으로 서로간에 교류를 통해 당장의 이익과 권력을 생각하지 않고 멀리보면 함께 공생하는 체육학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 입니다

  • 윤재현 2013.03.14 12:42 신고

    ‘한국체육학회장 선거 대리투표 논란’,
    ‘문대성 IOC위원 논문 표절의혹’
    '그 밖의 체육 안 밖으로 일어나는 파벌싸움'

    모든 학문은 자유를 바탕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사회적 제한이 개입할 수 없지만, 현 시점에서 체육학은 그 본질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체육학자와 체육인간의 상호관계가 체육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부와 명예 돈과 권력 앞에 수단을 정당화 시키고 있습니다.
    체육학을 공부하는 근본적인 목적을 상실한 채, 발전과 협동이 아닌 탈락과 경쟁을 통해 살아남은 존재들이기에 이는 인생의 고비에서 낙오자를 쏟아내는 대한민국 전체 특징이기도 합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입니다. 세속적인 욕망과 비윤리적인 타협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체육학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며 이러한 관행은 계속될 것입니다.
    연구자 역시 어떠한 힘에 의해서도 학문의 자유를 박탈당해서는 안 될 것이며, 스스로 자기 학문의 조건을 개척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할 것입니다.

  • 김상협 2013.03.14 17:53 신고

    송형석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체육교육 1학기생 김상협 입니다.
    교수님의(체육학의 덕목으로서 거리두기)글을 잘 읽었습니다.
    지금 기간계 초등 수업을 하고있어서 그런지 이문장 이 가슴에 와닿아습니다.
    *체육학이 참된 의미에서의 학문이고자 한다면 하청업자의 역할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학교에서 요구 하는 상황 과 제의교육가치관이 맞지 안는 부분이 많이있지만
    저에의견은 반영이 안되는것을 보고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열심히 공부를 하고 많이 느께야 될 것 같습니다.
    한학기 동안 잘부탁드립니다 저도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 권민경 2013.03.14 19:42 신고

    안녕하십니까. 체육교육학과 3학기생 권민경입니다.
    체육학자와 체육인은 실천과 이론처럼 적당한 거리를 두고 공존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것 같습니다. 물질만능주의인 현대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부와 권력의 획들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는데 체육학자들 또한 체육단체의 주변을 맴돌며 학문의 순수함을 잃고 부와 권력을 위해 쫓아가며 그 수단을 정당화시키고 있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자신만의 철학이 있고 비윤리적이라는 것을 알지만 권력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진다면 앞으로의 체육학 발전은 미비할 것입니다. 체육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체육학자와 체육인이 각자의 사명감을 가지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공존하기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입니다.

  • 안중섭 2013.03.15 10:01 신고

    안녕하십니까 체육교육전공 2학기차 안중섭입니다.
    먼저 늦게 댓글을 달게 되어 죄송하단 말씀드립니다.
    위 글을 읽고 참 많은 것을 생각해보고 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체육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또 나아가 체육현장에서 학생들에게 체육을 가르칠 사람으로서 학문으로써 체육학이 가지고 있는 그 학문적 본질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끔 만드는 글이었습니다. 또한 체육학이 학문으로서의 순수함을 잃어버린채 퇴색되어가고 있는 현실을 다시 한번 볼 수 있었습니다.
    이와 함께 이 글을 통해서 많은 체육학을 전공한 사람들에게 학문으로서의 체육학의 본질과, 체육현장에서의 체육학을 본래의 의미를 되살 릴 수 있을까 하는 과제도 던져주는 것 같습니다.
    위 교수님의 글 중 체육학이 참된 의미에서의 학문이고자 한다면 하청업자의 역할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라는 말이 참 와닿습니다. 하청업자가 아닌 체육학의 본질을 스스로 찾아가고 학문에 대해 항상 회의주의적인 관점을 가진 깨어있는 체육인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공부를 하면서 이 점을 잊지 않고 늘 새기며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송형석 2013.03.21 17:53 신고

      본질이라는 말이 조금 신경을 자극합니다. 아무튼 생각한 바를 꾸준히 실천해나갈 수 있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 박병준 2013.03.15 10:07 신고

    안녕하십니까 교육대학원 1학기생 박병준 입니다.
    교수님 께서 쓰신 체육학의 덕목으로서 거리두기 라는 주제의 글 잘읽었습니다.
    이글을 읽고 많은 것 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선 이 글에서는 현재 우리 대한민국의 체육학의 문제점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 하고 있는거 같습니다.
    현재 우리 체육학연구 뿐만 아니라 모든 단체들이 자신들이 소속된 단체의 발전과 물질 적인 부분만 바라보고 연구하지 진정으로 자신들의 분야의 발전을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현재 교사를 꿈꾸는 모든 사람들이 왜 체육교사를 목표로 하냐고 물어본다면 많은 사람들이 체육의 발전과 학생들에게 자기 자신이 가진 지식을 나누어주고 봉사하겠다는 것 이 아니라 교사 라는 직업이 안정적이고 편안하고 연봉이 높아서 교사를 목표로 하고 있다 라고 말 할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의 글처럼 체육학의 참된의미에서 학문의 발전을 생각 한다면 체육학 연구자들과 교사를 목표하고 있는 사람들은 물질적인 부분을 생각하지않고 자신의 발전과 사회에 발전이 될 수 있도록 자부심과 사명감을 가지고 연구하고 공부해야한다고 생각 합니다.

    • 송형석 2013.03.21 17:52 신고

      사고의 응용이 다소 과장되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어쨋든 글이 생각을 자극하여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생각을 촉발시켰다는 점에서는 가치가 있는 글 읽기였다고 생각합니다.

  • 박규나 2013.03.20 12:31 신고

    안녕하세요
    체육교육대학원 2학기생 박규나입니다.
    태권도학과 학부생을 졸업하고 다시 한번 교수님 철학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되어서 너무 좋습니다. 글을 읽는 동안 어떠한 문제점을 제기하고, 어떠한 문제점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학문과 사회기관, 권력과 지식, 부와 명예,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익숙하게 반복되는 현실이라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아차, 그럴 수 있겠군’ 이라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글이 였습니다.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이 제가 전공하였던 태권도 였습니다.
    과연 태권도 학문을 연구하고 있는 연구자들은 태권도의 진정성, 역사, 발전방향, 가치 등 이러한 순수 연구의 목적만 가지고서 연구가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외부의 압력은 없는 것일까, 현장에서 활동을 하는 즉, 보여지는 대외적인 인물들과 경기장 고위관계자들, 이들 또한 시합의 공정성과 경기자체의 퀄리티를 두고만 경기를 진행해 나갈 것인가. 경기를 출전하는 소속팀의 대표들과 선수들 사이의 오고가는 것은 과연 경기능력일 뿐일까,
    1년 365일 중 260일의 전국 모든 경기를 관리하는 독보적인 프로그램 업체는 어떠한 압력도 없었을까, 교수님의 글은 학문이 가진 성격과 학문의 역할만을 이야기해주셨는데, 읽으면서 당연시 여겨지고, 그러려니..라고 생각되던 백그라운드가 하나씩 하나씩 입체적인 물음표로 드러났습니다.

    현장을 중요시 여기는 체육이긴 하지만 그 모든 것의 바탕은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학문이 가진 성격을 파악하고, 학문이 그 원칙의 길로만 간다면..현장과는 거리가 생기겠지만 학문과 현장이 서로서로의 의견을 뒷받침 해주는 역할과 함께 서로의 가치를 상승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또 하나는 교육기관의 모습이 였습니다. 실제로 교육을 이행하는 학교의 실태와 그 학교와 교직원을 아우르는 상위기관인 교육청, 그리고 연구의 연구를 거듭하는 교육연구기관의 의견과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은 조금씩 다르다고 생각됩니다.
    교직원 선생님들은 승진을 하기 위해서는 학교업무 이외에 교육청에서 하는 일도 하여야합니다. 여러 행사와 부장직을 도맡아하며 교육청을 서류업무를 하면서 과연 학생들에게 어떻게 질 높은 교육을 바랄 수 있을까. 선생님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학문을 전달하는 것이 선생님이라는 직업의 목적과 목표,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현장과 밀착되어서 교육을 시행하면 학생들의 사고와 수업방식, 시대의 흐름을 알아서 발전적이기는 하나, 조금씩 그것이 권력의 하수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것 입니다.
    사회의 구조가 그러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였고, 앞으로도 일어날 일이고, 혹시 제가 겪을지도 모른다는 것에 몇 번씩 다시 읽고 보며, 생각이 많아지는 시간이 였습니다.

    학문을 전달하는 학자들뿐 아니라 관련된 모두가 학문의 발전과 투명성을 위해서 생각을 조금만 달리하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가지며..
    저의 미흡하고 부족한 생각을 한 학기간 교수님의 수업과 다양한 생각을 듣고 질문하고 생각하게끔하여,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있는 사고와 생각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 송형석 2013.03.21 17:49 신고

      생각이 깊어졌군요. 글도 좋습니다. 하나를 가르치면 둘을 안다는 옛 말을 떠오르게 하는군요. 응용력이 뛰어납니다. 수업시간에 조금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할까합니다.



글/송형석(계명대학교 교수)


요즘 아이들은 깊게 생각하길 싫어한다. 진지하게 사색하거나, 심각한 이야기를 주고받기보다는 즉흥적으로 행동하고, 농담 같은 가벼운 이야기 나누기를 좋아한다. 고전보다는 만화책을 좋아하고, 명화보다는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영화를 즐겨 관람한다. 내면적 성숙이나 깊이 있는 성찰보다는 외적 치장이나 감각적이고 쾌락적인 것에 관심을 기울인다. 극기와 인내, 협동심과 단결력을 요구하며, 고통스럽고 힘든 체험을 수반하는 신체활동보다는 앉아서 마우스를 클릭하며 손쉽게 긴장감과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컴퓨터게임에 몰두하기를 좋아한다. 신체활동을 수반하는 활동에 참여하더라도 힘들고 어려운 활동보다는 가만히 앉아 속도감을 즐기거나 자극적인 쾌감을 맛볼 수 있는 놀이기구를 선호한다. 그래서인지 힘든 일을 잘 견디지 못하고, 행동방식에 있어 다분히 충동적이며, 몸과 마음이 매우 약하다. 깊게 생각하길 싫어하다 보니 사소한 일로 폭력을 휘두르거나 살인까지 서슴지 않는 아이들이 생겨나고, 힘든 일을 잘 견디지 못하고 충동적이다 보니 순간적인 자해욕구를 억누르지 못해 자살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이와 같은 경향은 기성세대에게서도 발견된다. 예전 같으면 참고 견딜 일로 이혼하거나 별거하는 부부들이 늘고 있으며, 끼어들기, 신호무시, 과속, 경적 등이 교통문화의 일상이 되었고, 조급함, 신경질, 충동적 행위 등이 일상적 행위규범으로 자리 잡았다. 왜 이러한 경향이 나타나는 것일까?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겠지만 여기서는 산업화가 수반한 의식의 압축이란 측면에서 설명해 보겠다.

산업화는 필연적으로 과학과 테크놀로지의 발달을 수반한다. 과학과 테크놀로지의 발달은 인간의 삶에서 공정과정, 즉 프로세스를 현저하게 감축시켜 주었다. 우리들은 과학과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프로세스에 참여하는 수고 없이, 또는 극히 단축된 프로세스에 참여하는 수고만으로도 우리가 원하는 것들을 쉽게 손에 넣거나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지하철이나 버스, 기차, 자가용 같은 교통수단을 이용하여 먼 거리도 손쉽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으며, 자동 냉난방 시스템 덕분에 계절에 구애 없이 언제나 쾌적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음식물을 얻기 위해 직접 농사를 짓거나 사냥을 하거나 낚시를 할 필요가 없게 되었고, 먼 거리를 이동하기 위해 오랜 시간 발품을 팔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렇듯 산업화는 삶의 여러 측면에서 프로세스를 현저하게 감축시켜주었다.

프로세스의 감축은 인간의 생활과 관련하여 두 가지 의미를 갖는데, 그 첫째는 삶의 과정에서 인간의 힘과 수고로움이 크게 덜어진다는 뜻이며, 둘째는 시간이 단축된다는 뜻이다. 인간의 삶에서 힘과 수고로움이 크게 덜어진다는 것은 삶이 편리해졌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한편 시간이 단축된다는 것은 인간적 질이 점차 떨어진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시간의 단축이 인간적 질의 하락으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의 의미, 인간적 질의 의미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흔히 인간이라고 모두 인간이냐? 인간이 되어야 인간이지라는 말을 듣는다. 인간이라면 모두 인간이지 인간이 아닌 인간이 있을까? 모순이 있는 진술같이 들린다. 그러나 이 말의 의미를 곰곰이 숙고해 보면 그리 모순적이지는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전자가 생물학적 의미에서의 인간을 의미한다면, 후자는 그와는 좀 다른 인간을 의미한다. 한 마디로 인간의 인간다움이라는 말에서 인간다움이 갖춰진 인간이 바로 후자의 인간이다. 인간의 인간다움을 결정짓는 요인과 관련하여 교육, 사회화, 문화, 윤리 등 여러 측면에서 답을 줄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의식에 주목하고자 한다. 즉 인간의 인간다움을 결정짓는 요인은 육체 보다 의식이라는 말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어떤 이가 불의의 사고로 오른팔을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그의 모습과 형체가 달라질 텐데 그 때 사람들은 그의 육체적 외양이 변했다고는 말할지언정 그 인간이 변했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이와는 반대로 어떤 사람이 육체적인 외양은 똑 같은데도 어느 순간부터 아주 진지한 사람이 되었다거나 또는 아주 너그러운 사람이 되었다면 그는 동일한 육체의 소유자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달라졌다는 말을 듣게 된다. 이러한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의 인간다움을 결정짓는 요인은 육체 보다는 의식에 있다.

한편 인간의 의식은 시간적 존재이다. 이 말은 인간의 의식이 시간 속에서 자신을 키워 나가면서 생성하고 발전한다는 뜻이다. 쉽게 말하면 우리의 몸은 음식을 먹어야 성장하지만 의식은 시간을 먹어야 성숙해진다는 뜻이다. 터미네이터나 스피드 같이 망막만을 즐겁게 하는 영화와 닥터 지바고 같이 마음 속 깊이 뭉클한 감동을 자아내는 영화가 우리의 의식에 미치는 영향은 분명 다르다. 그 차이를 비교해 보면 의식의 발달과 시간의 관계를 잘 이해할 수 있다. 전자의 경우 영화를 보는 순간순간 각 장면이 제공하는 정보들은 단지 우리의 망막까지만 왔다가 금방 뇌리에서 사라져버리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시각을 통해 우리의 의식으로 들어와 몇 바퀴 회전을 하며 오랜 시간 머물러 있다. 정보가 의식에 머문 시간이 전자보다 후자가 훨씬 많다는 이야기다. 정보가 남아있는 시간이 길수록 의식이 깊어지고 확대되기 때문에 전자보다는 후자의 영화가 의식의 성숙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도스트옙스키나 톨스토이의 명작이 무협지보다 의식 성장에 더 큰 도움을 주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의식은 시간적 존재라는 말, 즉 시간을 먹고 자라는 존재라는 말의 의미를 잘 이해하였을 것이다.


지금까지 내용을 케이블카와 등산에 비유해서 다시 한 번 설명하겠다. 산업화가 수반한 과학기술의 발달로 고산지대에 케이블카를 설치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보통사람들은 물론이고 산에 올라갈 수 없었던 사람들, 특히 신체 허약자나 장애인도 케이블카를 이용하여 손쉽게 정상에 올라 멋진 조망을 즐길 수가 있게 되었다. 프로세스가 단축되었고, 그 결과 삶이 편리해졌으며, 짧은 시간 내에 원하는 것들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산업화가 가져다준 긍정적인 측면이다. 그러나 케이블카가 설치되면서 걸어서 등산하는 풍습이 없어졌고, 그 결과 등반 과정 중에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졌던 상호 부조의 우정, 노력, 인내심, 용기와 같은 덕의 함양을 위한 훈련이 사라졌다. 또한 케이블카를 타고 가며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만을 편안하게 구경할 뿐, 고통과 인내의 과정을 체험하며 보다 깊이 생각하고 고뇌하는 기회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케이블카의 설치로 말미암아 인간의 의식이 보다 확장되고 성숙될 수 있는 기회가 축소된 것이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등산 같은 체육활동은 케이블카라는 과학기술에 의해 사상된 프로세스를 복원시켜 줌으로써 덕의 함양을 위한 훈련 기회와 압축된 의식을 다시 확장시켜 줄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줄 수 있다. 비단 등산만이 아니다. 축구, 농구, 배구 등의 구기, 태권도, 유도, 씨름, 검도 등의 투기, 그리고 육상과 체조 등의 스포츠는 아직 기술적 연관에 의해서 프로세스가 사상되지 않은 영역들이다. 우리들은 이와 같이 프로세스가 사상되지 않은 활동을 직접 행함으로써 기쁨과 고통을 맛볼 수 있고, 땀을 흘리면서 보람을 느낄 수도 있으며, 성취감이나 패배감을 맛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경험은 문명화된 사회에서 과학기술에 의해 사상된 프로세스를 다시 복원시켜 준다는 점에서 활동 그 자체로서 교육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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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3

  • 김동현 2012.02.06 14:06 신고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또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케이블카가 등산이라는 운동을 저하시켰다는 것보다, 등산이라는 운동을 싫어하던 사람도 케이블카를 통해 보여지는 산의 경치를 통해 한번쯤 산에 올라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면에서 산업화도 신체활동을 도모해주지 않을까요?

  • 송형석 2012.02.17 16:06 신고

    김동현님 말씀도 일리는 있습니다. 영상기기의 발전으로 스포츠를 안방에서 즐길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스포츠를 하게 된 이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 보다는 반대의 경우, 즉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운동기회가 줄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운동부족이 원인이되어 발생하는 각종 현대병이 이에 대한 명백한 증거는 아닐까요?

  • 체육활동의 필요성에 관하여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글이네요. 정말 좋은 글입니다. 그렇지만 체육의 중요성이 증가하는 것에 비해 교육제도는 점점 산으로 가는 것 처럼 보입니다.




글/최의창(서울대학교 교수)


체육하는 우리에게 낯익은 표현이 한 가지 있다. <더 빨리, 더 높이, 더 강하게>라는 표어다. 천 육백년 만에 다시 시작된 근대 올림픽의 모토로 사용된 유명한 문구다. 인간이 지닌 스포츠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는 노력을 짧고 강하게 표현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구호다. 상대를 이기고 자신을 극복하도록 최고조의 기량을 폭발시키라는 주문이다. 이 말의 로마어 표기는 <Citius, Altius, Fortius>. CAF라고 줄여서 부르기도 하며, 우리나라에서는 고급 스포츠브랜드의 명칭으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이 문구는 <스포츠 경기에서 중요한 것은, 인생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것이다>라는 쿠베르텡의 유명한 연설 구문과 함께, 스포츠의 진정한 정신을 드러내어 알려주는 대표적인 표현으로 사랑받고 있다. 더욱 더 빨리 달리고, 더욱 더 높이 뛰어오르고, 더욱 더 강하게 밀어붙이는 노력의 과정을 통해서 스포츠의 수월성을 높이고 최고의 경기력을 발휘하자는 것이다. 상대와의 멋진 경쟁을 통해서 각자가 지닌 탁월성을 최고조로 높이고 자신을 더욱 더 개발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렇긴 해도, 스포츠가 지향하는 바가 경기력 향상에만 놓여있는 것은 아니다. 스포츠는 다른 방향으로도 마음을 둔다. 그리고 그 방향은, 겉으로만 본다면, 경기력 향상과는 정반대쪽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여, 스포츠는 운동안 심화라는 방향을 지향하기도 한다. 스포츠는 시합에서 이기는 것으로만 그 본래적 목적이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스포츠는 경기를 어떻게 바라보고 실행하게 되느냐의 차원도 얻고자 한다. 얼마나 잘 하느냐만이 아니라, 어떻게 잘 하느냐도 눈여겨본다. 스포츠는 멋진 플레이, 아름다운 경기, 올바른 대적 등과 같은 진선미적인 가치를 추구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스포츠의 최초 중흥기였던 고대 그리스 시대에서 추구되었던 한 가지 체육의 이상은, 아주 멋진 발음을 지닌, “아레테”(arete)라는 가치였다. 아레테란 어떤 활동이던지 그것의 기술적 최고 상태를 말한다. 그리고 그것을 펼쳐내는 사람의 인격적 덕스러움을 함께 의미한다. 그리하여 아레테란 한 사람이 지닌 기능적 차원과 심성적 차원의 최고 상태를 동시에 갖춘 이상적인 가치로서 추구되었다. 아레테는 스포츠의 장면만이 아니라, 교육, 정치, 경제, 의료, 군사 등 인간 활동의 모든 영역에서 최고의 가치 가운데 하나로서 추앙되었다.

스포츠의 장면에서 아레테는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을 제대로 멋있게 올바로 실행해내는 것을 의미한다. 우승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우승이 정정당당히 얻어지는 것을 뜻한다. 가장 많은 득점을 해서 최고의 골게터가 되어야 하되, 멋지고 당당하게 득점을 얻어내는 것을 말한다. 우승하지 못했더라도 자신이 지닌 최상의 기량의 펼치고 최선을 다 한 것에 스스로 만족해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스포츠기량과 스포츠맨십이 하나가 된 플레이를 펼쳐내는 것을 이야기한다. 동양식으로 표현하면, 스포츠 아레테는 기와 도의 통합을 추구한다고 할 수 있다.

나는 기능적 방향으로 내치닫는 스포츠를 르까프 스포츠”(Le CAF sport)라고 부른 적이 있다. 르카프 스포츠는 기술적으로 더 잘 하는 것을 추구하는 스포츠다. 상대를 누르고 승리와 우승을 쟁취하기 위한 경기능력 증진으로 모든 것을 가늠하는 스포츠를 말한다. 골을 더 많이 넣고, 더 큰 홈런을 때리고, 더 높이 뛰어 오르는 스포츠를 지향한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르까프 스포츠를 다대고 스포츠”(多大高 스포츠)라고 부르기도 한다. <더 많이, 더 크게, 더 높이>를 부르짓는 스포츠다. 표현이 약간 달라서 그렇지 <더 빨리, 더 높이, 더 강하게>를 외치는 올림픽 모토와 한 가족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기량과 심성의 합일을 추구하면서 아레테를 지향하는 스포츠를 아레테 스포츠”(Arete sport)라고 부른다. 아레테 스포츠는 기술적 차원과 심성적 차원이 하나가 되는 것을 희망한다. 어떻게든 상대방을 이기는 것보다 멋있게 시합하는 것을 가치롭게 여긴다. 관중에게 맹렬히 추앙받는 것보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우리 편은 물론 상대편도 함께 승리하기를 기대한다. 스포츠가 좀 더 참되고, 좀 더 선하고, 좀 더 아름다운 것이 될 수 있도록 바란다. 이런 차원에서 나는 아레테 스포츠를 진선미 스포츠”(眞善美 스포츠)라고 일컫기도 한다.

다대고 스포츠와 진선미 스포츠는 수퍼마켓에서 파는 두 개의 물건처럼 서로 다른 진열대에 놓여 있는 상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이 둘은 하나의 물건이다. 하나의 물건을 부르는 두 가지 명칭이다. 이 둘은 하나의 실재이다. 하나의 실재가 드러내는 두 가지 상태다. 예를 들어, 우리에게는 농구가 있다. 이것을 내가 어떻게 이해하고 바라보는 가에 따라서 나에게는 다대고 농구와 진선미 농구가 주어지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농구를 실천하는 가에 따라서 나는 르까프 농구를 하던가 아레테 농구를 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농구를 구분하는 것은 그것을 이해하고 실행하는 사람의 마음과 행동의 수준과 방식이다. 르까프 스포츠와 아레테 스포츠는 한 가지 스포츠의 두 측면을 부르는 이름들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가 스포츠를 배울 때 우리는 르까프적 차원과 아레테적 차원을 동시에 배울 수 있다. 내 개인적 체험으로는 전자에 초점을 맞춰서 배운 적이 훨씬 더 많고, 그것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며 앞으로도 그다지 바뀔 것 같지는 않은 상황이다. 욕구충족과 승리쟁취가 일상생활의 일차 기준인 현실 세계에서는 다대고와 르까프가 발등의 불이고, 진선미와 아레테는 강 건너 불에 불과할 뿐이다. 전자는 시급한 진화의 대상이고 후자는 느긋한 구경의 대상일 뿐이다. 일상의 스포츠에 있어서 대다수의 지향은 르까프 방향으로 쏠려있기 마련이다. 이겨야 기쁘고 얻어지는 것이 있고 뿌듯하지, 지게 되면 많은 것이 부정적인 색채를 띠게 된다.

현실이 그렇기는 해도, 다대고 스포츠가 기쁨만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르까프의 방향으로 돌진한 한국 스포츠가 보여주는 양면성을 한 번 보라. 올림픽에서의 상위성적, 피겨와 골프에서 세계적 스타선수의 등장, 국제대회의 유치 등등 참으로 대단한 성취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와 함께 끊이지 않고 드러나는 감독의 선수()폭행, 선수의 승부조작, 심판의 편파판정, 임원의 비리월권 등등 참으로 대단한 창피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것은 진선미와 아레테의 정신이 스포츠 세계의 전 영역에서 전혀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기는 것과 최고가 되는 것만이 대세인 한국 스포츠계는 아레테와 진선미의 가치를 높이 쳐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대고가 승하면 진선미가 패하고 르까프가 진하면 아레테가 퇴하게 되는 것이 세상지사다.

공인된 스포츠 강국에 이미 진입한 우리에게는 이제 그동안 소홀히 해왔던 스포츠의 소중한 가치를 되돌아보아야 하는 의무가 있다. 이기는 것, 잘 하는 것을 넘어서는 가치를 되찾아내야 하는 책임이 있다. 그 가치는 바로 아레테요 진선미다. 한국 스포츠는 이제 아레테 스포츠를 지향하고 진선미 스포츠를 추구해야 하는 시점에 도달해있다. 금메달과 우숭컵의 찬란함에 넋놓고 혼뺏기기를 멈추고, 스포츠맨십과 스포츠문화와 스포츠정신을 고양시키고 향상시키는 일에 기운을 쏟는 일을 시작해야 하는 때이다. 이것이 우리가 스포츠 강국의 지위에 머물지 않고, 스포츠 부국, 스포츠 선진국의 품위에 오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 길은 어디에 있나? 어떻게 그 길을 찾아 나서는가? 나는 그 길이 교육에 있다고 확신한다. 아레테 스포츠를 지향하는 스포츠 부국으로의 길은 바로 스포츠 교육의 힘으로 닦아야 한다. “스포츠를 가르치고 배우는 일”(코칭)을 제대로 잘 해내는 것이야 말로 르까프 스포츠 나라에서 진선미 스포츠 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는 첩경인 것이다. 스포츠 게임강국에서 스포츠 문화부국으로 성숙할 수 있는 정도인 것이다. 어린이들에게, 청소년들에게, 어른들에게, 노인들에게, 선수들에게, 감독들에게, 정치인들에게, 행정가들에게, 어머니들에게, 아버지들에게 스포츠를 제대로 가르치고 배우게 하는 것이야말로 스포츠선진국의 국민들이 되게 하는 것이다.

고대 이래로 진선미의 가치는 교육을 통해서만 인간에게 학습되었다. 다대고의 가치는 본능의 강화로 적절히 충족될 수 있다. 하지만, 참됨과 올바름과 아름다움의 가치는 의도적으로 가르치는 교육적 조처 없이는 사람에게 갖추어지지 않는다. 인도에서 발견되었다는 늑대소년은 교육을 통해서야 인간소년으로 다시 설 수 있게 된 것이다. 네 발로 있다가 두 발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를 온전한 인간으로 탈바꿈시킨 것은 진선미의 가치들이다. 다대고와 르까프만을 강조하면 우리 앞에 등장하는 인물은 살벌한 스포츠 정글에서 자라나 생존본능으로 가득한 맹수의 눈을 가진 스포츠 늑대소년과 소녀들일 것이다.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 그것은 바로 참다운 운동의 아름다움을 가르치는 아레테 스포츠 교육인 것이다.

아레테 스포츠 교육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단적으로 말하여, 그것은 인문적 방식으로 한다. 인문적으로 스포츠 교육하기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그것은 스포츠를 가르치고 배울 때, 인문적 지혜와 서사적 체험을 동반하도록 하는 것이다. 인문적 지혜와 서사적 체험은 무엇인가? 그것은 스포츠를 내용으로 하는 스포츠 문학, 스포츠 예술, 스포츠 종교, 스포츠 역사, 스포츠 철학적 지혜와 체험들을 함께 맛보는 것이다. 야구 게임을 배우면서 야구시, 야구소설, 야구자서전, 야구에세이, 야구회화, 야구음악, 야구조각 작품들을 음미하고 감상한다. 야구와 기독교, 야구와 불교, 야구와 신앙에 대해서 깊이 성찰하면서 깨달음의 체험을 추구한다. 야구 시합을 하면서 듣기와 보기와 읽기와 그리기와 생각하기와 느끼기 등 전신체적 정서반응을 도모한다. 스포츠의 인문적 체험과 인문적 지혜의 스포츠적 활용을 통해서 스포츠를 배우는 사람의 내면과 외면에 참됨과 올바름과 아름다움을 심어줄 수 있게 된다.

르까프 스포츠와 아레테 스포츠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하나의 동전이 지니고 있는 두 측면이다. 그동안 앞면만 주시했다면, 이제는 뒷면도 보아야 할 때다. 화폐가 액면가만큼 가치로우려면 양면이 다 제 형상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스포츠로 국격을 드높이기 위해서는 진선미 스포츠에 대한 인식이 절대적이다. 우리에겐 그것을 볼 수 있는 마음의 눈, 안목이 필요하다. 나는 그 안목을 운동안이라고 부르며, 그 시력을 밝게 만드는 것이 바로 스포츠의 진선미적 차원을 더욱 깊게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스포츠를 <더 참되게, 더 올바르게, 더 아름답게 하는 일> 즉 운동안을 심화시키는 일은 인문적 스포츠교육으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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