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체육 ]/스포츠사회학 +42

 

 

 

글/ 채관석 (공군사관학교, 대한럭비협회 이사)

 

         국내에서 최초로 대한럭비협회 산하 대학 여자 럭비 팀이 창단된다. 수원여자대학교는 스포츠 레저학과 3명이 럭비 국가대표로 선발됨에 따라 내년 3월에 팀을 정식으로 창단할 예정이라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 여자 럭비는 고교, 대학, 실업에 단 한 개의 팀이 없다. 단지 대한럭비협회에서 자체적으로 여자 국가대표 팀을 구성하여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 2016년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루 올림픽에 대비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가대표 선수 양성이 어려운 시기에 수원여자대학의 럭비 팀 창단 소식은 반가운 사실이다.

 

  럭비는 15인제와 7인제로 경기한다. 15인제 럭비경기는 1924년 파리 올림픽에서도 개최되었던 전통적인 종목인 반면, 7인제는 1976년 홍콩 세븐즈 대회를 시초로 비교적 역사가 짧다. 그런데 15인제보다 훨씬 뒤늦게 시작한 7인제가 2016년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된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가? 더군다나 전통적인 남성스포츠라고 여겨 지는 럭비에서 7인제 여자 럭비가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된 이유가 무엇인가?  

 


 

 

 첫째 이유는 7인제 럭비가 기존의 15인제 럭비의 축소판이기 때문이다. 득점방법, 경기방식 등 모든 경기 규칙이 동일하게 적용된다. 단지 한 팀의 선수가 7명이며 시합시간이 14분이다. 그러나 7인제는 빠르고 순간적인 스피드와 민첩성, 과감한 풋워크(footwork)를 통해 일순간에 상대진영의 게인 라인(gain line)을 돌파하여 득점을 올리고 단시간에 승부를 결정지음으로써 15인제 못지 않는 재미를 주고 있다. 

 

 둘째, 7인제 럭비가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14분간의 짧은 시합시간으로 2-3일내에 모든 경기를 끝낼 수 있기 때문이다. 7인제는 1시간 동안에 4게임이 열리기 때문에 오전에 예선전이 이루어지고, 오후에는 준결승전이 가능하다. 하루 동안 출전하는 모든 팀이 한 장소에서 모여, 한 경기가 끝나자 마자 다음 경기가 즉시 시작되기 때문에 다양한 팀의 경기를 한 번에 관전할 수 있다. 이처럼 14분간의 짧은 경기시간과 승부 결정은 관중들에게 지루함을 주지 않고 더 몰입하여 경기를 관람할 수 있도록 매력을 갖게 한다. 100m × 70m의 크기의 경기장은 14명의 선수가 경합하는 가운데 넓은 공간에서의 스피드와 무한 질주를 보여 줌으로써 경기의 재미를 더해 준다.


  셋째, 세계 럭비의 평등과 여자 럭비의 활성화를 위한 iRB(국제럭비위원회)의 노력의 결과이다. 예전의 럭비는 주로 영연방 국가 중심의 스포츠이자 여자들에게는 제한적인 거친 스포츠로 인식되어 왔다. 힘과 체격을 바탕으로 한 서구인 중심의 스포츠였다. 1987년 럭비 월드컵 탄생과 함께 Rugby Sport for All을 지향하는 iRB는 아시아, 아프리카 등을 포함한 전 세계에 대한 럭비의 보급과 여자 럭비 발전을 위한 대안으로서 7인제 럭비의 발전 전략을 도입하게 되었다. 7인제는 여자들에게 적합한 스포츠로 인식되었고 많은 여자선수들이 럭비를 시작하게 되는 기초가 되었다. 또한 여자 럭비선수의 증가와 함께 여자선수들의 경기력과 체력을 가이드하고 대회 운영 등을 지원하는 여자 럭비 조직이 탄생되었다. 이들은 HSBC 홍콩 국제 7인제 대회, 7인제 월드시리즈 등 국제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함으로써 여자 럭비가 올림픽 종목에 채택되는 기틀을 제공해 주었다. 7인제 여자 럭비는 올림픽 평등 뿐 만이 아니라 럭비에서의 남녀 평등의 이상을 실현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여자 럭비는 아시아 최하위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7인제 경기의 올림픽 채택을 계기로 많은 변화가 이루어 지고 있다. 내년 인천 아시안 게임을 대비하여 강도 높은 훈련을 하고 있다. 그러나 선수 양성이 시급한 실정이다. 여자 럭비에 대한 인식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여자 핸드볼과 하키 등에서 보여주는 투지력과 체력을 고려하여 볼 때, 여자 럭비의 발전 가능성은 무한하다. 단지 이들을 뒷받침할 수 있는 팀과 지원이 필요할 뿐이다. 우리나라도 여자 팀이 창설되고 다양한 7인제 대회개최가 이루어짐으로써 가까운 시일 내에 아시아 강국으로 떠오르기를 발전을 기대한다. 이를 위하여 현재 진행 중인 수원여자대학의 럭비 팀 창설을 기원하며, 아울러 우리나라 럭비 발전을 위한 정책적 지원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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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필(아칸소대 건강과학과 교수)

 

           대한민국 국민은 백의민족, 단일민족이라는 말에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국내체류 외국인 수가 120만을 훌쩍 넘었다. ‘다인종-다문화’시대로 접어든 오늘날, 순혈주의 의식이 반영된 단어들은 이제 대한민국과 어울리지 않는 어휘이다. 법무부는 2040년경에는 외국인 체류자 비율이 9.2%로 늘어나 1,000만에 육박할 것으로 예측했다. 가히 폭발적인 증가세다. 외국인의 증가로 사회적 문제도 증가하고 있다. 매년 5만 건 이상의 크고 작은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 4월 온 국민을 경악케한 ‘수원 토막살인 사건’의 주인공도 외국인 체류자 오원춘이었다. 갈수록 늘어가는 이주민 관련 문제점을 예방하고 그들의 국내정착 및 융화를 위해 정부 및 민간단체가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고 있으나 그 중에서 스포츠 프로그램만큼 활용도가 높은 것은 드물 것이다.


2012년 4월 인천광역시와 SK와이번스는 피부색깔이 다르다는 이유로 소외의 아픔을 겪는 다문화 가정 자녀들을 위해 ‘다문화 유소년 야구단’을 만들었다. 야구 해설가 허구연과 양준혁 역시 성남시와 고양시의 협력을 얻어 다문화 자녀들을 위한 어린이 야구단을 창단했다. 3년 전 전국 최초로 ‘천안다문화가정유소년축구단 ’천다FC가 창단되었고, 박지성, 서정원 등 유명선수 출신들이 다양한 형태의 축구교실을 열었다. 그리고 인천국제교류센터가 운영하는 다문화 가정과 외국인 가정 자녀를 위해 창단한 ‘리틀 비스트 농구단’도 눈에 뜨인다.

 

 

 

 

박수는 인간에게 에너지를 준다.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박수를 치면 박수를 받는 사람만큼 박수를 치는 사람의 정신도 건강해진다. 유명 인사들의 다문화 스포츠 프로그램 가동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러나 중장기적 비전도 없이 산발적 이벤트 수준의 행사라면 의미가 없다. 선진국의 경우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스포츠관련 정책으로 이주민의 사회·문화 적응력을 높이고, 사회적 문제의 예방력을 강화해가고 있다. 스포츠를 통한 다문화 정책은 장기적으로 크게 확장시켜가야 한다. 외국인 범죄가 공단주변에 거주하는 성인 노동자들에 의해 발생하는 점을 감안할 때 유소년 프로그램과 함께 성인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도입해야 한다. 그러나 잊어서는 안 될 것이 하나 있다. 정부나 민간단체가 운영하는 프로그램이 외국인이나 다문화 가정 자녀들만을 위한 것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스포츠 프로그램이 ‘사회적 통합’(social inclusion)을 지향한 것이 아닌 ‘사회적 배제’ (social exclusion)를 지향한 것이라면 없는 것만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문화 가정의 구성원들만으로 운영되는 프로그램은 일반 사회 구성원들과 교류 기회를 축소시킴으로써 ‘사회적 배제’를 조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도 이제 배달민족, 단일민족이라는 단어의 아우라에서 벗어나야 할 시대이다. 스포츠계에서도 우리 땅에 살고 있는 수많은 외국인들을 함께 가는 동료로 잘 안아야 하며, 관련 법령도 시대의 추이에 맞게 개정되어 가야 한다는 것은 외국의 사례가 잘 보여준다. 1999년 독일정부는 ‘독일인 부모에게서, 독일에서 태어난 사람만 국가대표가 될 수 있다’는 규정을 없앴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 출전한 23명 중 절반에 가까운 11명은 이주민 출신의 독일인이었다. 11명은 독일정부의 적극적인 이민자 정책아래 유소년시절부터 체계적으로 스포츠 활동에 참여할 수 있었으며, 상징적인 선수가 루카스 포돌스키와 메주트 외칠이다. 남아공 월드컵에서 ‘게르만 축구’를 버리고 ‘다문화 축구’로 변신한 독일은 아르헨티나를 4-0으로 물리치고 4강에 올랐다. 당시 독일 언론은 “이제야 독일 국기에서 슈바슈티카(나치 십자문양)가 사라진 것 같다,” “사회 전반의 관용과 다문화주의를 한층 끌어올려줄 것,” “독일인들과 이민자들 사이의 정서적 교감이 크게 늘 것”이라고 보도했다. 독일 축구의 예는 스포츠가 인종, 문화, 언어, 민족 간에 존재하는 갈등들을 해소하고 나아가 사회통합에 기여하는 중요한 문화적 기능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스포츠의 문화적 기능은 다양하다. 사회 갈등을 조장하는 역기능적 측면이 없는 것은 아지만 순기능적 측면이 더 많다. 19세기 세계 최초로 학교에 스포츠를 도입한 영국 명문 중등학교 교장들이 스포츠를 파괴주의의 해독제로 보았듯이 스포츠는 범죄 예방 및 사회 적응력 강화에 필수적인 문화이다. 특히 언어, 인종, 문화가 다른 구성원들 간의 정서적, 사회적 통합을 위해서는 스포츠만한 게 없다. 스포츠는 만국공용어와도 같은 특성을 지닌 문화이기 때문이다. 기억해야 할 것이다. “다문화 시대의 에스페란토(Esperanto)는 스포츠(sport)”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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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학수(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 연구소장)

 

        지난 1979년 6월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의 일이다. 박정희 대통령과 주한미군철수와 한국 인권문제를 놓고 격돌해 심기가 불편했던 카터는 김포공항에서 바로 동두천 미군부대로 날아가 숙소에 여정을 풀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지만 잠자리를 한국의 호텔이 아닌 미군부대로 정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카터의 유별난 행동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아침에 미군들과 함께 운동복 차림으로 부대에서 조깅을 즐겼던 것이다.

 

카터가 조깅하는 모습은 국내 신문과 방송 보도로 알려졌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카터가 군부대에서 잔 것보다는 군인들과 같이 조깅을 한 것이 더욱 눈길을 끌었다. 먹고 살기도 힘든 당시의 한국 경제수준에 비추어 볼 때, 미국 대통령이 건강을 위해 공개적으로 군인들과 함께 운동을 하는 모습은 매우 신선하기도 했고 상당히 부러운 것이었다.

 

 

운동은 운동선수들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던 당시, 일반인들이 카터 대통령과 같이 조깅을 생각하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아침 일찍 길거리에서 러닝셔츠차림으로 조깅을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하던 때였으니까 말이다.

 

40여 년이 지나 2차 세계대전 이후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 탈바꿈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성공한 대한민국 사람들은 이제 건강한 인생을 즐기기 위해 운동을 중요한 활동의 하나로 받아들이고 있다. 주말 서울 수도권의 주요 산들은 체력을 다지기 위한 등산객들로 넘쳐나고 한강변 공원과 운동장, 헬스클럽 등에서는 다양한 스포츠 활동을 즐기는 이들이 많다.

 

운동인구가 크게 늘어난 것은 경제적으로 먹고 살만한 수준이 된 것이 주요 요인이다. 영양과다와 비만으로 인해 각종 성인병이 크게 늘어나면서 건강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으며 건강한 생활을 위해선 운동이 가장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 또 런던올림픽 등 각종 올림픽과 월드컵, 아시안게임 등에서 대표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올리며 스포츠에 대한 기대와 참여의지를 갖도록 했다.

 

운동을 하는 데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것이 현대 생활의 추세이다. 주5일 근무제가 확산되면서 샐러리맨들은 주말 시간을 내 운동을 하지만 운동비용으로 적지 않은 돈을 투자하고 있다. 등산용품 비용도 결코 만만치 않으며 골프 등 레저용품 비용은 상당히 고가이다.

 

운동을 하는 데도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경제적인 여건으로 인해 운동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이들이 주변에 많다. 따라서 시간과 돈의 여유가 없어서, 운동에 대한 참여의지 조차가 없어서 운동을 하지 못하는 운동의 소외계층에 대해 관심과 지원 등이 모아져야 한다. 공부에만 내몰리는 학생, 사회적으로 소외된 노인, 장애우, 다문화가정 등은 운동을 할 수 있는 사회적, 경제적 여건 등이 갖춰져 있지 않은 대표적인 계층들이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윤택해졌어도 운동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소외계층에 대한 정책적 지원과 배려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명실상부한 선진국형 복지국가라고 할 수 없다. 운동을 하는 것은 인간이 인간답기 위해 보장받아야 할 인권이자 기본권으로서 민주사회의 중요한 구성요건이다. 각종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가더라도 운동을 하는 기본적인 권리를 부여하는 것도 운동권이 인간의 천부적인 인권이기 때문이다.


요즘 체육계에선 점차 열기를 고조시켜가고 있는 대선에서 체육이 국민의 중요한 활동분야의 하나로 자리 잡도록 하기위해 다양한 정책 개발과 연구를 내놓아 귀추가 주목된다.

 

순수 체육학자들의 연구모임인 신뢰와 공감 포럼(체육)이 29일 ‘운동이 하고 싶다’는 주제로 공개 정책토론회를 개최한 것도 이러한 시도의 일환이다. 포럼에선 ‘모든 사람이 스포츠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는 운동권의 중요성을 실제적인 사례와 정책 중심으로 제시했다. 운동을 통해서 개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건강한 인생을 영위해 나갈 때 개인과 사회, 국가가 발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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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상유 (명지대학교 체육학부 교수)

 

      아이스하키! 빙판위에서 벌어지는 박진감 넘치는 스포츠이다. 남자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해보고 싶은 운동이며, 여자들에게는 막연히 조금 멋있는 운동이라는 인식이 있다고한다.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아이스하키 종목의 존재를 알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국내에서는 인지도에 비하여 전혀 대중화 되지 못한 스포츠 중에 하나이다.

 

아이스하키는 아이스링크에서 스케이트를 신고 스틱, 보호구 등의 장비를 갖추어 팀대팀이 경쟁하는 구기종목이다.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28년이며 같은 해 철도청 및 경성제국대학에서 아이스하키팀을 창설하였다. 다음해 연희전문학교 및 경성사범 등 여러 팀이 창설되었다. 한때는 연대와 고대의 정기전으로 인하여 양대학의 재학생은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많은 관심을 받기도 하였다.

 

북미에서는 미식축구, 야구, 농구와 함께 4대 프로스포츠로서 프로스포츠산업의 한축을 맡고 있다. 국내를 비롯한 아시아에서는 그리 큰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지만 북미나 유럽에서는 상당히 대중화된 스포츠이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개최하는 우리로서는 동계올림픽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아이스하키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2012년 4월 21일 폴란드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디비전 1-그룹 B 대회에서 우리나라가 홈팀인 폴란드를 3:2로 꺾고 사상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하였다. 이 우승으로 우리나라는 디비전 1-그룹 A 대회에 출전권을 얻었다. 여기서 디비전 1-그룹 A 미국의 MLB로 치면 AAA정도로 보면 된다. 현재 그룹A에는 우크라이나, 슬로베니아, 헝가리, 영국, 오스트리아, 일본이 속해있다. 아이스하키의 메이저리그라고 할 수 있는 최상위리그는 세계랭킹 16위까지의 국가들이 출전하는 챔피언십그룹(World Championship)이 있는데 미국, 캐나다, 핀란드, 덴마크, 스웨덴 등이 있다.

 

평창올림픽에서 우리나라가 올림픽에 출전할 가능성은 현재 매우 낮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디비전 1-A에 진출한 것 역시 대부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기 때문에 어떤 변수가 일어날지 알 수는 없다. 아이스하키의 경우 개최국 자동출전의 혜택이 주어지지 않는다. 출전 국가들의 실력이 비슷하기 때문에 실력의 차이가 많은 팀이 출전하기 되면 조별리그에서 골득실의 문제가 발생하기 쉽기 때문이다. 실제로 1998년 나가노올림픽 예선으로 치러진 아시안게임에서 일본은 준우승을 하였지만 개최국으로 자동 진출하게 되었고, 조별리그에서 승리를 얻지 못하였으며, 13-14위전에서 오스트리아에게 1승을 얻었을 뿐이다.

 

소치올림픽에서부터는 총 16개국이 출전하게 되는데 세계랭킹 12위까지는 자동진출하고 나머지는 플레이오프를 통해서 결정이 된다. 최근 세계아이스하키연맹은 우리나라가 2015년 총회이전까지 세계랭킹 18위 이내에 진입하면 출전권을 주겠다고 발표하였다. 흥행을 위해서 개최국의 출전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어드벤테이지를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세계랭킹 18위안에 들기는 쉽지 않다. 2011년 우리나라의 세계랭킹은 31위이다. 이번의 우승으로 20위대 초반으로 진입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나 그 이상의 상승은 쉽지 않다. 18위 이내에 들기 위해서는 과거 러시아의 국가대표들을 많이 배출하였던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은 물론 헝가리, 슬로베니아,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등 유럽의 강호들과 경쟁하여야 한다.

 

현재 대한아이스하키협회는 평창동계올림픽 진출을 목표로 설정하고, 국가대표팀 및 청소년대표의 경기력 향상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 여자대표단의 경우 이미 40여명을 선발하여 태릉선수촌에서 합숙훈련을 진행하고 있으며, 남자의 경우 현 국가대표 이외에 올림픽을 위한 주니어선수들로 구성된 상비군을 선발하여 운영하기로 하였다. 또한 상무팀의 TO확보와 해외우수지도자의 초청을 통하여 경쟁력을 높이고자 노력하고 있다.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또 다른 방법으로 해외우수선수의 귀화가 있다. 국내외에서 활약하고 있는 교포 및 외국 국적의 선수들에게 국내국적을 취득시켜 경기에 출전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귀화만 시킨다고 해결될 문제만은 아니다. 국적을 취득한 뒤 해당국가에서 일정기간이상 뛰어야하는 룰이나, 해외의 대표경력이 있은 경우 타국가의 대표가 될 수 없는 룰 등이 적용될 수도 있다. 또한 확연히 다른 피부와 눈, 머리색 등을 가진 선수가 태극마크를 달고 뛸 때의 이질감 역시 무시할 수 없다. 꼭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 일본축구대표팀의 귀화선수들에게 우리나라 팬들이 많은 비난을 했던 것을 상기해 보아야 한다. 이제 6년 남았다. 실제로 결정이 될 2015년까지는 3년이 남았다. 어떤이들은 진출해도 망신만 당할바에야 나가지 않는 것도 좋다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아이스하키가 올림픽에 정식종목이 된 이래 개최국이 출전하기 못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본선에서 좋은 성적을 얻지 못하더라도 이번에 반드시 출전하여야한다. 올림픽 출전경험은 큰 자산이 되어 우리나라 아이스하키 발전을 이끌 것이다. 따라서 협회, 정부, 체육계 모두 힘을 합쳐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순위

국가명

순위

국가명

1

러시아

21

영국

2

핀란드

22

일본

3

스웨덴

23

폴란드

4

캐나다

24

리투아니아

5

체첸공화국

25

네덜란드

6

미국

26

에스토니아

7

스위스

27

크로아티아

8

독일

28

루마니아

9

노르웨이

29

스페인

10

슬로바키아

30

세르비아

11

벨라루스

31

대한민국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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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가는 2012.10.06 02:55 신고

    글 잘 읽었고 많은 도움 되었습니다.

    5위는 체첸이 아니라 체코겠지요?

 



                                                                                            글/홍은아(러프버러대학교 ph.D)


여자축구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나라 중 하나인 미국에서조차 여자축구 프로화는 쉽지 않아 보인다. 2009년 새로운 이름으로 모습을 드러낸 US Women’s Pro Soccer (WPS) 가 팀 해체 등으로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는 것 (WPS는 8팀 이상으로 리그를 진행하는 규정이 있지만 2011년에는 6팀만이 참가했고 신생구단 매직잭은 한 시즌만에 해체되었다.) 등 넘어야 할 산은 끝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EPL(English Premier League)이 있는 잉글랜드에는 여자 프리미어리그가 있을까? 답은 물론 ’있다’ 이다.

하지만 그 위상과 인기는 남자 축구와 비교가 되지 않기에 The FA는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2011년 4월 The FA Women’s Super League (WSL)를 창설하기에 이른다. 아일랜드 방송사 Setanta의 파산 등의 문제로 한 시즌 늦게 태동한 WSL은 한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다음 시즌을 준비중이다. 리그의 성공을 왈가왈부 하기에는 너무 이른 것이 분명하기에 현 시점에서는 잉글랜드 축구협회(The FA)가 여자축구
흥행을 위해 내어 놓은 고심의 흔적들을 살펴보려 한다.
 


The FA는 수 년 동안 여러 국가, 리그의 사례 분석을 하면서 특히 미국의 실패를 충분히 검토하여 어떻게 잉글랜드에 장기간 지속할 수 있는 최상위리그를 확립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했다.
또한 단순히 한 리그를 벤치마킹하는 것을 지양하고 잉글랜드 축구 문화와 상황에 맞는 ‘현실적이고도 고무적인’ 여러 계획들을 밝혔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차근차근 구단, 리그의 자생력을 높이고 오래 생존할 수 있는 리그를 만들어 여자축구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독자적인 흥행을 이루겠다는 계산이다. 또한 남자축구 구단 및 지역사회와의 파트너쉽을 구축하며 잉글랜드에 적합한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이다. The FA에서는 기존에 있던 여자 프리미어리그 팀에서 WSL로의 진출을 원하는 팀들의 신청을 받았고 재무구조, 홈경기장 상태 등의 엄격한 조건을 충족하는 8개의 팀을 선발, 2년간의 자격(licensing)을 부여했다. 8팀은 아스날, 버밍험, 브리스톨, 첼시, 동카스터, 에버튼, 링컨, 리버풀이다.


잉글랜드 여자축구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가 100명 이상의 관중을 끌어들이기 힘들었다는 점이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The FA에서는 여자축구를 남자축구와 같은 시기에 치루는 것은 경쟁력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여 ‘시즌’을 과감하게 변경한다. (축구는 겨울에, 크리켓은 여름에 하는 스포츠라는 인식이 뚜렷히 잡혀있고 ‘변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잉글랜드 사람들에게 큰 결정이였음에 틀림없다!) 그렇게 해서 WSL은 남자축구가 종반으로 치닫는 4월에 시작해 여름까지 진행되는 것이다. 이는 방송으로 중계, 노출되는 횟수를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실제 ESPN에서는 생방송,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을 편성하며 여자축구 흥행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축구의 질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도 여자팀들은 프리미어리그 팀 조차 전용구장이 없기 때문에 남자 세미프로 팀의 경기장을 일요일에 빌려 쓰는 것이 대부분이다. 토요일에 남자팀들이 뛴 축구장 잔디는 푹푹 파인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장면이었고, 12-2월에는 한파로 경기장이 얼고 갈라지기에 부상위험이 커질 뿐 아니라 축구의 질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였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의 여자축구 관계자들이 실제 지도자를 하거나 아마추어 선수로 뛰고 있는데 이들이 WSL을 관람하거나 시청하게 하기 위해서는 시간 변경이 최선의 방법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 외에 짚어볼 부분에는 WSL가 프로리그가 아닌 세미프로리그라는 점이다. 일부 FULL TIME 선수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선수들은 직업을 가지고 PART TIME으로 축구를 하는 구조이다.
또한 막대한 금액의 중계권, 스폰서와 계약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WSL에서 The FA가 가장 큰 투자자 (investor, 초기 3백만 파운드 투입) 역할을 하고 장기적으로 남자구단 (첼시, 아스날, 리버풀, 에버튼 등), 지역 기업 파트너들과의 프로그램 등을 통해 각 구단들이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갖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한국 WK리그에서 시행되고 있는 드래프트 시스템은 없으며, 구단은 4명의 선수 이상에게 20,000 파운드 이상의 연봉 (약 3,600만원)을 지급할 수 없다는 조건이 있다. 8팀에 기량이 좋은 선수들이 골고루 포진해 팀간 수준차를 최소화하는 것이 리그의 흥행에 도움이 된다는 계산이다. (샐러리캡 도입 여부는 향후 다시 논의될 예정이다) 비유럽 선수의 경우에 구단에서 work permit을 요청해 받아야 하는 것을 제외하고 외국인 선수 영입에 있어서는 다른 제한이 없다.

4-5년이 지난 후 아니 10년 후에도 WSL이 존재하기를 희망해 본다. The FA에서 제시한 리그의 성공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관중 수, 시청자수, 미디어에 얼마나 여자축구 위상을 격상시켰는지, 최고기량을 갖춘 선수들의 유출 방지 (이전에는 영국 출신 선수들이 미국, 스칸디나비아 등으로 나가 기량을 펼쳤다), 리그의 경쟁력 향상 등이다. 이를 위해서는 미디어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할 것이며 ESPN과의 파트너십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여자축구가 재미있는 스포츠라는 인식을 시청자들에게 최대한 빨리 심어 주는 것이 과제일 것이다. 축구=남자 스포츠라는 공식이 여전히 강하게 지배하고 있는 잉글랜드에서 WSL이 성공하게 된다면 이는 세계 여자축구에 또 다른 희망을 심어주는 일이 되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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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홍은아(러프버러대학교 Ph.D)


뉴질랜드에서
9 9 개막한 2011럭비월드컵이10 23막을 내렸습니다.  럭비월드컵은 올림픽, FIFA 월드컵에 이어  번째로 규모가 대회입니다. 20 팀이 5조로 나뉘어 6주간에 걸쳐 열린 월드컵은 세계 럭비 팬들의 잠을 설치게 했습니다. 강팀 (뉴질랜드, 호주, 프랑스, 남아프리카 공화국 ) 약팀 (캐나다, 미국, 일본, 루마니아 ) 수준 차이가 현격히 드러나는 경기도 없지 않았지만
럭비월드컵이
1987 창설되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어느 정도 이해를 해야 부분인 같습니다.
이런 격차를 극복하는 방안을 고안하는 것도 국제 럭비 협회 IRB (International Rugby Board) 핵심 과제일 것입니다.

 


잉글랜드 미디어는 축구,럭비 월드컵 때만 되면 잉글랜드가 당연히 우승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사람들에게 심어줍니다. 이면에는 해당 스포츠 종주국이라는 자존심, 어떻게 보면 자만심이 어느 정도 깔려 있다고 봅니다. 축구에서는 1996 월드컵 우승 (잉글랜드 개최), 럭비에서는 2003 조니 윌킨슨의 드롭골로 극적인 월드컵 우승을 했던 기억이 잉글랜드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박혀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기대가 무너진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이번 럭비월드컵에서도 역시 잉글랜드는 프랑스에 패하며8 징크스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아무도 기대를 하지 않았던 웨일즈가 준결승까지 올라가며 어느 정도 영국인들의 사기를 충전시켰다고 수도 있겠네요. 스코틀랜드가 준결승 진출을 했다면 배가 아파 봤을 잉글랜드인들이지만 웨일즈의  선전은 같이 기뻐해 주는 분위기였습니다(참고로 현재 테니스 랭킹 3위인 안디 머레이 선수가 있는데요. 잉글랜드 사람들은 머레이가 때는 영국인 (British)라고 하고 때는 스코틀랜드인(Scottish) 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합니다!)

대망의 결승전은 6만명이 운집한 가운데 오클랜드 이든 파크에서 주최국 뉴질랜드 (All Blacks, 블랙스라는 애칭으로 불리지요) 유럽의 강호 프랑스의 대결이었습니다. 1 홈에서 개최한 월드컵 우승 이후 24 동안 트로피를 들어올리지 못한 뉴질랜드 선수들은 엄청난 부담 속에 경기에 임했을 것입니다. 주심의 경기 시작 휘슬 뉴질랜드 경기 때면 빠질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전통적인 마오리 댄스인 하카(Hakka)입니다.  경기 시작 우렁찬 목소리로 가슴과 팔꿈치를 치며 혀를 내미는 동작으로 이루어진 하카를 보는 상대편은 기가 꺾이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카가 뉴질랜드 선수들의 단결력을 최고조로 시키는 것에 일조를 한다는 의견과 함께 일각에서는 뉴질랜드 선수들이 하카를 하며 너무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아니라는 우려의 시각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럭비팬들에게 하카는 놓칠 없는 부분임에 틀림 없습니다.

대회 내내 최고 경기력을 보이며 전문가들에게 우승 후보 1위로 거론된 뉴질랜드와 기복이 있긴 하지만 분위기를 타면 무서운 경기력을 보여주는 프랑스와의 결승전, 뉴질랜드의 다소 쉬운 승리가 예상되기도  했지만 스포츠의 결과는 끝까지 지켜봐야 하는 것이겠지요. 손에 땀을 쥐는 후반전, 종료 휘슬과 함께 스코어는 8:7, 1 승리로 블랙스는 엘리트 (Webb Ellis Cup, 럭비 풋볼을 발명한 William Webb Ellis 기림) 들어올렸습니다. 크라이스트처치 지진 등으로 어려운 시간을 견딘 뉴질랜드 국민의 사기를 고양시키는데 역할 했을거 생각합니다.
 

럭비를 보면서 육중한 선수들이 태클을 하며 엉겨 넘어질 사고는 일어날지 않을지 걱정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뉴질랜드의 럭비를 보면 사람들이 럭비에 빠져드는지를 느낄 있습니다.
카터 (Dan Carter) 처럼 체구도 아담한(?) 선수가 예리하고 창조적인 (creative) 패스를 주고 받고 수십 미터를 전력 질주해 트라이(try) 하는 모습이 럭비의 매력을 느끼게 주는 장면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카터 선수는 대회 도중 훈련 과정에서 부상을 당해 중간에 낙오하며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양복 차림으로 시상식에 참여한 카터는 관중들로부터 최고의 환호를 받았습니다 )

 BBC 칼럼에서는  75퍼센트 승률을 자랑하는 뉴질랜드 블랙스의 비결에 대해 취재했습니다. http://www.bbc.co.uk/blogs/tomfordyce/2011/10/why_are_new_zealand_so_good_at.html

핵심은  뉴질랜드 럭비 협회에서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들이 럭비를 접할 있도록 리파 럭비 (Rippa Rugby) 앞장섰다는 사실입니다. 3살짜리 아이도 즐길 있도록 디자인 리파 럭비는 신체접촉을 허용하지 않고 작은 공간이 있는 어느 곳에서나 즐길 있습니다. 필자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허리에 벨트를 매고 거기에 손수건처럼 생긴 것이 달려 있습니다. 상대편이 자신의 손수건을 채어 가는 순간 다른 동료에게 패스를 하는 것이지요. 럭비가 위험한 스포츠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경험을 통해 상당한 재미를 느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리파 럭비라는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뉴질랜드 어디서나 있는 잔디밭에서 연령별로 아이들에게 럭비를 가르치고 거기에다 마오리족 특유의 정신력이 더해져서 뛰어난 선수들을 배출할 있다는 것입니다.

럭비의 최강국하면 주저 없이 1위로 꼽히는 인구 400만명의 뉴질랜드, 그들이 어떠한 연구를 통해 장기적인 계획을 세웠고 시행착오를 거쳐서 오늘날과 같은 결과를 얻었는지 꼼꼼히 살펴보고 배운다면 우리 나라 스포츠 정책 혹은 특정 종목에 적용할 있는 부분이 있을 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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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홍은아 (
러프버러대학교 Ph.D)


11
월이 되면 영국의 정치인, 유명인사들은 물론 일반 사람들도  파피 (poppy: 양귀비) 불리는 빨간 꽃을 옷에 꽂고 다니는 것을 봅니다.  1918 11 11 끝난 1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군인들을 기리는 것을 시작으로 현재는 2 세계대전, (현재까지)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목숨을 잃은 군인들을 생각하고 기념하는 지켜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Veterans’ Day’라고 부르고 영연방 등의 나라에서는 ‘Remembrance Day’라고 부릅니다. 영국에서는 11 11일에 가장 가까운 일요일을 Remembrance Day라고 정하고 있습니다. 날은 2분간의 묵념이 전국에서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파피는 Royal British Legion (로얄 영국 군대) 자선단체 성금 모금을 홍보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2010년에는 무려 3,600 파운드의 성금이 모였고 이는 전사한 군인 가족들의 복지, 부상을 당한 군인들을 위한 재활, 퇴역한 군인들이 사업 자립을 있도록 도움을 주는 여러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11
첫째 열린 프리미어리그에서도 경기 직전 묵념이 있었고 선수들은 유니폼 상의 가운데에 파피가 새겨진 옷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비었습니다. 파피를 두고 세계축구연맹 피파(FIFA) The FA(잉글랜드 축구협회) 한바탕 신경전 벌였는데요. 잉글랜드가 웸블리 경기장에서 친선경기를 하는 11   12 (스페인 ) 15 (스웨덴 )과의 경기에서 상의 유니폼에 파피를 새기고 경기를 해도 되는지를 FIFA 질의를 했고 FIFA에서는 된다고 것이 논쟁의 발단이었습니다. 이유는 FIFA 필수 장비 관련 문구  어떠한 정치적, 종교적 혹은 상업적인 메시지가 유니폼에 들어가는 것을 금한다라고 쓰여 있기 때문이며 파피가 정치성을 나타낼 있고 축구의 중립성을 위태롭게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파피를 허용할 경우 앞으로 다른 나라에서도 피파에 다양한 요구들을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던 것이지요.

소식이 전해지자 데이빗 카메룬 영국 수상과 잉글랜드 축구협회 (The FA) 회장 윌리암 왕자(캠브리지 공작) 피파의 결정에 당황스럽다면서 직접 항의 서한까지 보냅니다. 윌리암 왕자의 대변인에 따르면 편지에는파피는 전쟁에서 우리의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친 군인들을 기념하는 전세계적인 상징을 지니며 정치적, 종교적, 상업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예외 상황으로 고려해 달라라는 글이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윌리암 왕자의 파워 때문일까요? 이튿날 FIFA 절충안을 놓습니다.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11월에 경기를 하는 팀이 착용하는 검은 완장에피를 달도록 허락하는 이지요. 독특한 아이디어는 정식 심판 자격을 가지고 있기도 영국의 보수당 국회위원 크리스 히튼-해리스가 피파 사무총장 제롬 발케에게 제안했다는 이야기가 밝혀지기도 했구요. 2018 월드컵 유치 실패를 겪으며 피파와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했던 잉글랜드로서는 FIFA 바뀐 결정을 환영하면서 놀란 기색을 감추기에 안간힘입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리던 대영제국 (The United Kingdom), 사실 2011 현재와는 전혀 걸맞지 않는 이름인 같습니다. 제조업이 대부분 사라지며 장밋빛 전망을 없게 하는 경제 상황, 과도한 복지제도가 양산하고 있는 여러 부작용, 계속 높아만 가는 실업률 .. 하지만 이들에게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하나가 과거를 소중하게 보존하면서 기념하는 부분입니다. 세계 1,2 대전에서 나라를 위해 희생한 군인들, (지금까지도)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임무를 수행하며 목숨을 바친 군인들을 매년 11 마다 기리고 정신을 스포츠에서도 기념하는 것을 접하며 마음에 잔잔한 울림을 느끼는 것은 비단 저만이 아닐 것입니다.
 
아무리 현재가 중요하고 앞으로 살아 미래 또한 중요하다지만 우리도 1년에 정도는 대한민국을 위해 몸바친 군인, 경찰, 학생을 포함한 일반 국민들을 생각하고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지금 존재한다는 것을 느낄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정부의 역할이겠지만 축구, 야구, 농구, 배구 프로스포츠 차원에서도 어떤 방식으로든 아이디어를 내어 기념하는 방법을 고안해 발전시켜 나간다면 다음 세대를 짊어갈 어린이들은 더욱 자연스럽게 나라를 위한 희생 주는 의미 새기며 자랄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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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론 2011.11.17 14:00 신고

    파피가 정치적이지 않다는 것은 민족주의가 정치적이지 않단 말인가? 영국내 반전주의자들은 레드파피에 저항한다는 의미에서 화이트 파피를 달고 다니는데... 국내 정치인의 현충원 참배, 미국 대통령의 웰링던 국립묘지 참배, 영국의 리멤버런스 데이 행사, 모두 민족주의 및 자신들의 정치적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이다. 프로스포츠에 이러한 행사를 도입하자고? 그리고 그것을 어린이들을 위해서? 스포츠를 정치화 하자는 상당히 위험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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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김세웅 (대진대학교 교수)

  
   최근 우리나라 스포츠계에 온라인과 언론매체를 비롯해 각종 인쇄매체를 뜨겁게 달구는 두 가지 이슈가 있다
. 첫 번째는 이미 작년부터 불거져 있었던 박찬호선수의 한국행, 그리고 두 번째로 이승엽선수의 국내복귀가 그것이다.

이승엽선수의 국내복귀에는 제도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승엽선수의 경우 국내리그에서 9시즌을 활약한 후 정식으로 FA(자유계약선수)자격을 획득하여 일본에 진출했기 때문에 소속팀과 계약이 끝나거나 팀에서 방출 또는 계약파기를 했을 경우 자연스럽게 국내외 어떠한 구단과도 자유롭게 계약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국내복귀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박찬호선수의 경우는 매우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혀져 있다. 결론을 말하자면 박찬호선수가 국내에서 선수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얘기다.

   
    먼저 한국야구위원회
(이하 KBO)해외진출선수의 국내 복귀에 대한 규약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KBO의 야구규약 제 1053항에 근거해서 ‘1999년 이전 해외진출 선수가 국내에 복귀하는 경우 반드시 신인드래프트를 거쳐야 한다.’ 라고 규정되어 있다. 또한 1998년 아마추어 유망주들의 무분별한 해외 진출을 막기 위해 해외파 2년 유예 제도를 만들었다. 이러한 규정은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국내 우수선수의 무분별한 외국진출을 어느 정도의 제도권 내에서 막아보고자 하는 KBO의 자구책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규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2007년 당시 해외파 특별지명제도가 한시적으로 시행되어 몇몇 선수들에게 특혜를 준 모양새가 되었다.

당시 KBO1999년 이후 해외 진출선수 가운데 5년 이상 경과된 최희섭(KIA), 송승준(롯데), 채태인(삼성)7(추신수, 류제국, 이승학, 김병현)에 한해 2년간의 유예기간을 없애고 국내 복귀의 길을 한시적으로 열어준 것이다. 이는 한국 프로야구의 중흥과 발전을 목적으로 KBO이사회에서 협의된 내용이었다. 그러나 총 7명의 선수들이 추첨을 통해서 각 구단이 지명권을 행사하였으나, 추첨결과 한화는 지명권을 갖지 못하였으며, 이러한 내용들이 전제되어 한화는 박찬호의 국내입성을 위해 당시 주어지지 못한 지명권을 행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물론 박찬호선수의 경우 공주고가 한화의 연고지역 이므로 충분히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보여지긴 한다.

박찬호선수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야구선수다. 아니 우리들의 영웅이라고 감히 칭할 수 있겠다.
특히 IMF기간 힘든 우리국민들에게 희망을 던져준 선수, ‘메이저리그 진출 아시아 최다승 투수’, ‘한국인의 자존심’, ‘코리안 특급등의 수많은 수식어가 모두 박찬호선수를 설명해 주고 있다. 또한 올림픽, 아시안게임, 월드베이스볼 클래식 등 국가를 위해 보직에 관계없이 메이저리거의 자존심을 버리고 항상 우리를 즐겁게 해준 선수가 바로 박찬호선수다. 이렇게 국가를 위해 우리국민들을 위해 많은 노력과 헌신을 아끼지 않은 박찬호선수가 이제 외국에서의 선수생활을 마감하고 고국의 프로야구리그에 복귀하려고 하는데 그 현실은 여의치 않다. 이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해외진출선수들이 국내에 복귀하기 위한 제도적인 규약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박찬호선수는 일본 프로야구리그의 오릭스에서 방출된 상태다. 만약 이승엽선수와 같이 FA자격을 가지고 있었다면, 국내에 복귀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지만, 해외파 특별규정에 묶여 있어 박찬호 선수만을 위한 특별법이 만들어지지 않고서는 국내무대에서 활약할 수 없다. 박찬호선수가 국내리그에서 뛸 수 있는 방법으로는 내년 8월쯤에 있을 신인드래프트에 참가하여 지명을 받아 2013년 리그 경기에 참여할 수 있다. 이러한 방법은 절차상 문제는 없지만 2012년 한해를 무적선수로 지내야 한다는 장애요소가 있다. 특히 박찬호선수의 경우 39세의 나이와 신인드래프트에서 유망주를 포기하고 박찬호를 지명하고자하는 모험을 감행할 구단이 많지 않다는 것이 현실이다. 하여 한화구단은 2007년 해외파 특별지명을 행사하지 못하였으며, 연고지역인 한화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하고픈 박찬호선수의 의지대로 박찬호 특별법을 시행하기를 희망한다. 이는 다시 말해 한화가 박찬호를 선택할 경우 미래를 위해 투자해야 할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을 소진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LG에 소속하고 있는 봉중근선수의 경우 1997년 미국에 진출하여 2007년 복귀할 당시 LG1차 지명권을 소진했으나, 그때는 지금처럼 전면 드래프트가 시행되기 전이었고 LG2장의 1차 지명권을 가져 다소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한화의 경우는 현재 팀 전력상 신인지명을 포기하거나, LG만큼 여유가 없는 상태이다.


   그러면 박찬호의 국내복귀에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일까?

해결책은 박찬호선수의 국내복귀에 대한 키(key)를 잡고 있는 KBO의 동의가 있으면 간단히 해결된다. 박찬호선수의 국내 복귀의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것은 야구계의 일반적인 정서이다. 특히 올해 600만관중 동원에 성공했으며, 내년을 700만 관중동원과 프로야구의 흥행의 새로운 도약의 해로 볼 때 이승엽의 국내복귀와 더불어 박찬호의 국내복귀 또한 국내프로야구의 장기적인 관점에서 허용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박찬호 특별법을 만들 경우 한화에게만 특혜를 준다는 비판도 따를 수 있어 KBO의 신중한 입장도 고려해 봐야 할 것이다.

현장의 야구전문가들과 야구팬들은 박찬호의 국내복귀를 반기고 있다. 특히 박찬호가 필요할 때는 박찬호선수에게 애국심을 강요하면서 특별한 선수이기에 무조건 국제대회에 참여를 하게 해 놓고, 이제는 박찬호선수가 선물보따리를 들고 한국프로야구에 복귀하겠다고 하는데 특별법조차 만들어줄 수 없다고 하는 야구인들의 처사는 결코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KBO는 우리들에게 희망을 주었으며 항상 고향 팀에서 선수생활을 마무리 하고픈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박찬호선수가 국내에서 아름다운 야구인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특별한 조치를 취해 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또한 9개 구단(NC 다이노스 포함)대표들과 KBO총재가 모두 동의를 하면 그만이다. 한국 프로야구의 대부분의 비합리적인 제도(: 용병제 확대, 에이전트제도 부분도임 등)들이 그렇게 만들어졌는데 좋은 취지를 가진 박찬호 특별법이라고 그러지 말란 법은 없지 않다.

만약 박찬호 특별법이 만들어지지 못한다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우리들의 영웅 박찬호는 그냥 미국과 일본에서 퇴물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반갑게 맞아주는 이가 없는 처량한 신세에 처해지게 될 것이다. 또한 박찬호 특별법이 어느 한 구단(한화)에게만 이익을 준다는 인식에서 박찬호의 국내복귀를 반대한다면 한국프로야구의 르네상스를 열어가는 지금 시점에서는 구시대적인 발상이라고 밖에 해석할 수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KBO는 꼭 필요하다면 박찬호선수가 국내리그에 들어올 수 있는 예외규정을 만들거나 해당 조항을 삭제하는 것이 국내 프로야구 발전을 위한 선결과제임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또한 항상 어떠한 문제가 발생하고 난 후 임시방편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 보다 비슷한 사례들에 대한 규정을 미리 마련해 두는 것도 KBO에서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일 것으로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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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홍은아 (러프버러대학교 Ph.D)



영국에서
6년 넘게 생활하면서 여러 스포츠를 경험하고 관전하며 TV를 통해 간접적으로 접했습니다.
축구, 크리켓, 럭비, F 1,  락크로스, 넷볼, 농구, 스쿼시, 하키, 승마, 골프, 테니스, 육상, 사이클, 조정, 잔디 볼링, 컬링, 펜싱, 스누커심지어 다트까지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다트를 스포츠에 포함시키는 데 찬성하지 않지만 가끔씩 언론 스포츠 섹션에 당당하게 등장합니다.)  골프와 컬링은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되었고 축구를 비롯해 테니스
, 럭비, 크리켓, 하키, 탁구, 다트, 스누커, 배드민턴 등은 잉글랜드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매 년 12월이면 영국인들이 스포츠를 얼마나 사랑하고 또 스포츠인 (이 글에서는 스포츠인과 체육인을 혼용하겠습니다) 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올해도 참 기대가 많이 됩니다. 그 프로그램은 바로BBC Sport Personality of the Year 우리 말로 하면 ‘BBC올해의 체육인 상정도 되겠지요. 1954년 폴 폭스(Paul Fox)가 시작한 시상식이 매해 규모가 커지며 그 명성은 같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수상자 명단을 보면 참 화려합니다. 바비 무어(축구, 1966 수상 연도), 헨리 쿠퍼 (복싱, 1967 & 1970), 세바스챤 코우 (육상, 1500미터, 1979), 닉 팔도 (골프, 1989), 폴 게스코인 (축구, 1990), 그렉 루제스키 (테니스, 1997), 마이클 오웬 (축구, 1998), 데이비드 베컴 (축구, 2001), 폴라 라디클리프 (마라톤, 2002), 조니 윌킨슨 (럭비, 2003), 켈리 홈스 (육상, 800미터/1500미터, 2004 ), 안드류 필린토프 (2005, 크리켓), 자라 필립스 (승마, 2006), 크리스 호이 (2008, 사이클), 라이언 긱스 (2009, 축구)에 이어 작년 수상한  토니 맥코이 (경마, 2010) 까지.. 축구 선수가 제일 많기는 하지만 다양한 종목의 선수들이 영국의 스포츠 역사에 흔적을 남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작년에는 1위에 경마 선수, 2위에 다트 선수, 3위에 7종 경기 선수 (제시카 에니스, 올 해 열린 대구 세계 육상 선수권에도 출전했었지요.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이 기대되는 선수입니다) 가 올랐는데요.
한국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비인기 종목들이 금은동을 싹쓸이 한 것이 되겠습니다.

            (2009년 축구선수 라이언 긱스(36)가 BBC 가 선정하는 2009년 스포츠 부문 개인상을 수상)

심사 과정을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주요 스포츠 신문, 잡지 에디터들이 회의를 해 한 해 동안 각 종목에서 맹활약했다고 생각하는 10명의 이름을 BBC에 제출하게 되고 (개인이 제출하는 것이 아니고 가디언지에서 10명 추천, 텔레그라프지에서 10명 추천 등등) BBC에서 이를 취합해  최종10명으로 후보를 압축합니다. 시상식을 2주 정도 앞두고 대국민 전화, 문자 투표가 시작되며 최종 수상자 1-3위는 시상식이 진행되는 말미에 결정이 되고 생방송으로 발표가 됩니다.
 
이 외에도 올해의 코치상,
공로상 (작년에는 데이비드 베컴이 월드컵 유치전에서 활약한 공로로 30대에 공로상을 받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올해의 팀 상, 올해의 청소년 (Young) 체육인 상, 해외 체육인 상 등 여러 분야가 있습니다. 또한 이 프로그램에서 공영 방송 BBC의 힘, 저력이 두드러져 보입니다.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를 적절히 조화시키고 스포츠와 연관되는 감동적인 소재를 끊임없이 끌어내며 작품으로 만들어 시청자에게 전달하기에 남녀노소 누구나 이 시상식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지요. 2010년 시상식에 무려 천 이백만명을 TV 앞으로 끌어 올 수 있었던 것은 다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시상식을 보면서 필자가 감동한 이유는 전 스포츠 종목을 아울러 수많은 운동 선수(현역, 은퇴한 선수), 지도자, 스포츠 방송 관계자 등이 한 공간에 모였다는 사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수상 여부에 관계 없이 참석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영광이 되는 시상식이 존재한다는 것, 동료 스포츠인의 활약에 축하를 아끼지 않는 모습 정말 아름다운 장관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스포츠 관련 여러 시상식을 직접 가보기도 했고 언론을 통해 접하기도 했지만 전 종목을 아우르는 화합과 축제의 체육인을 위한 대규모의 시상식, 공중파에 노출이 되며 전 국민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시상식은 아직 없다는 아쉬움이 뇌리 속에 강하게 남았습니다. 


이렇게 스포츠라는 큰 틀 안에서 상대를 존경하고 내 종목이 아닌 다른 종목에 관심을 가지며 교류를 하고 그 시간을 순수하게 즐기는 모습을 시청자들이 볼 수 있기에 영국에서 체육인들이 더욱 대접을 받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 종목의 선수를 보고 스토리를 접하며 시청자들은 평소 관심이 없었던 종목에 대해 하나라도 더 찾아보게 될 것이구요. 이러한 장을 제공해주는 것이 정부, 스포츠 기관, 방송사들의 역할일 것이고 축제를 얼마나 성공적으로 발전시키냐는 것은 체육인들의 의지, 노력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한국에서 현재 열리는 주요 스포츠 단체, 각 언론사별 프로종목 시상식 등을 세어보면 제법 많을 것입니다. 이제는 무분별하게 수를 늘리는 것을 지양하고 진정 역사와 권위를 자랑할 수 있고 체육인의 대축제가 될 수 있는 축제를 겸한 시상식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박지성, 김연아, 박태환, 장미란, 박찬호 선수 등 현역 선수는 물론 차범근, 김응용, 김성근, 허재, 이충희, 신진식, 방수현, 현정화, 유남규, 전병관, 유명우, 이형택, 홍수환, 선동렬 감독 등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고, 유명을 달리한 고 김화집 옹, 최동원, 장효조, 김기수, 김현준 선수 등 우리의 가슴 속에 추억과 감동을 준 그들의 흔적을 같이 새겨보는 장면, 수 십 년 동안 마이크를 잡고 스포츠 현장을 안방에 중계한 서기원 캐스터, 송재익, 임주완, 유수호 아나운서, 우리 곁을 떠난 송인득, 이명용 아나운서 등의 방송을 되돌아보는 장면, 1년에 한 번 같은 장소에 모인 체육인들이 다른 종목 선수들과 교류하고 서로의 활약을 축하해 주는 모습을 보는 것 상상만 해도 흐뭇하지 않습니까?

여기에 보이지 않은 곳에서 묵묵히 유망주들을 키우고 있는 지도자들을 찾아 공로를 인정하고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이 스포츠를 접할 수 있는 방법을 알리는 등 수많은 아이디어를 놓고 고민한다면 정말 의미 있고 후대에 물려줄 수 있는 명품 프로그램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프로그램은 매 년 12월 공중파 (한국 현실상 3사가 돌아가면서 하는 것이 한 방법일 것 같습니다) 에서 황금 시간대에 방영되어야 하겠지요. 2010년 수상자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라이언 긱스가 어렸을 때 부터BBC Sport Personality of the Year프로그램을 보면서 자라왔는데 자신이 이 상을 받게 되어 믿기 힘들다고 연신 강조하더군요. 2020년 즈음에는 대한민국 올해의 체육인 상수상자가 비슷한 소감을 밝히는 것을 상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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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기(숙명여자대학교 체육교육학과 교수)
 

포크송 세대에 가까운 세대에 가까운 사람으로서 지상파 방송에서 송출하는 최근의 음악방송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혹여 부딪힐 지도 모르는 ‘한 곡조’의 기회를 준비하려는 마음으로, 그리고 이제 청소년의 시기로 다가서는 4학년이 된 딸아이와 함께 가끔 방송의 음악이나 예능 프로그램을 접하게 되는 기회가 잦게 됩니다. 예전에 음악을 접할 때는 가수의 외모보다는 리듬과 가사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예전과는 달리 지금 송출되는 음악 방송을 접하게 될 때마다 느끼는 점은 출연하는 가수들 본인들뿐만 아니라, 진행자, 그리고 방청객에 이르는 다수가 방송인들의 외모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특히 그들이 보여 주는 남성적 복근이나 여성적 S 라인과 같은 몸매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듯합니다.


저는 스포츠와 체육 관련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다수 대중의 신체에 대한 관심이 한편으로는 반가우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과 우려의 눈길이 생깁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지금 관심이 1년을 푸르게 보내는 소나무 같은 것이 아니라 4월 한 달, 아니 4월 어느 한 주에 잠시 피었다가 떨어지는 벚꽃 같은 일시적 유행이 될까봐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남에게 보여 지는 이미지 향상을 위한 행동은 내가 보는 것을 향한 행동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더해 신체활동을 하는 ‘나’는 잘 빠진 로봇이 아니라 머리(이성)와 가슴(정서)과 몸(신체)과 영혼을 소유한 완전한 인격체이기 때문입니다. 전인적 인격체인 ‘나’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행할 때 인간일 수 있습니다.

먼저 사람들이 말하는 ‘헬스’라는 단어를 ‘피트니스’라는 올바른 용어로 수정합시다.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피트니스, 스포츠, 체육에 대한 의미를 혼동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스포츠는
문화적 현상으로, 체육은 교육적인 측면에서, 그리고 피트니스는 스포츠와 체육에 포함되는 일부분입니다. 따라서 피트니스는 때로는 건강을 위해 그리고 때로는 체력을 위해 행하는 기능으로서의 부분일 뿐이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스포츠와 체육은 다릅니다. ‘내’가 스포츠와 체육에 참여할 때에는 이성적, 정서적, 신체적, 그리고 때로 그 누구에게 있어서는 영혼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다른 말로 해 볼까요.
완전한 인격적 만남이 없는 신체활동은 훈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수 있다는 말이지요.

최근의 다양한 연구가 신체활동의 신체적 긍정성뿐만 아니라 신체활동과 인지 능력 향상과의 비례적 관련성에 대한 놀라운 결과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신체활동이 뉴런이라 불리는 뇌세포의 증식과 이들 뉴런간의 연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물론 스포츠 활동을 통해 육성되는 리더십, 팀워크, 도전정신, 자기주도성, 페어플레이 정신 등과 같은 사회적 인성에 더해 참여자의 개인적인 성격도 긍정적으로 변화시킨다는 결과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많은 외국 대학들의 입학 기준에 지원자의 스포츠 활동이 중요한 당락 기준의 하나로서 포함된다는 사실은 매우 타당하고 적절하게 보입니다.


이제 여러분 개인 차원으로 돌아가 봅시다. 많은 사람들이 다이어트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이어트 참여 후의 관심 중 하나는 요요현상에 관한 것입니다. 따라서 ‘운동에의 지속적 참여’, ‘효과적인 음식 섭취 방법’에 대한 설명이 넘쳐 납니다. 이제는 조금 다른 관점으로 다가가 봅시다. 스포츠와 같은 신체활동을 접하는데 있어 ‘나’의 정서적 반응이 수반되고 있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져 봅시다.
성취감, 즐거움, 흥미, 대인관계의 정서적 긍정성이 여러분이 참여하고 있는 신체활동의 지속성이나
효과성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살을 빼야지!”라는 사람들의 의식은 보여 지는 것에 대한 ‘나’의 수동적 성향을 지향하게 할 뿐입니다. 이는 신체활동 또는 스포츠의 즐거움과 그를 통한 성취감의 경험이 사람들로 하여금 주체적 인간으로 발전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사회의 관점으로 돌아가 봅시다.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민주적이고 주체적 열정을 소유한 시민의 육성이라는 목표는 겉으로만 보여 지는 6 Pack이나 S-line만을 보유한 사람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또는 스포츠 기능이 월등한 사람만을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시민상은 긍정적 신체활동 또는 스포츠 참여에 있어 신체적, 정서적, 인지적 반응에 충실한 그리고 그에 대한 성찰을 실천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좋아하는 그리고 재미있는 운동을 통해 주체적인 삶을 경험할 수 있도록 여러분을 그리고 여러분의 주변인을 장려 합시다. 운동문화의 환경에 녹아 있는 민주주의적 가치가 체득될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 개인적으로 획득되는 부수적 효과는 체중감소와 건강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사회를 적극적으로 이끌어 가는 주체적 리더의 모습을 표출할 것입니다. 조기 축구를 할 때에도, 강변 걷기를 할 때에도, 동네 한 바퀴 자전거를 탈 때에도 “왜 하는지?” “무엇이 재미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느끼고 실천하고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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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남상우(충남대학교 스포츠사회학 연구실장)

지난 달 헬스클럽에 등록했다. 과거 식스팩을 넘어 에잇팩을 향해 달려가던 나의 완벽한(?) 몸에 피하지방이 쌓이면서 가장 가까운 와이프에게도 무시받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피하지방의 등장으로 나의 식스팩은 그 자취를 감췄고(물론, 힘주면 드러나긴 한다!), 결국 잘 단련된 몸으로 자아정체성이 형성되었던 나로선 거금을 들여 헬스클럽을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운동장을 뛰면 되겠건만, 헬스클럽을 끊으면 사우나도 공짜로 이용할 수 있다는 마케팅의 꼬임에 넘어가기 마련이다(잘 알다시피 대전의 유성온천은 솔직히 괜찮다!).

헬스클럽의 공간사회학
요즘은 헬스클럽 대부분이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많은 고객을 유인한다. 에어로빅이나 요가와 같은 운동에서부터 음악에 맞춰 그 재미없게 타오던 자전거를 타도록 만든 스피닝 싸이클에 이르기까지, 어떻게든 고객이 흥미를 잃지 않도록 무던히 애를 쓴다. 그 옛날 재미없게 무념무상으로 러닝머신 위를 뛰어야 했던 풍경은 다양한 채널을 시청할 수 있는 TV스크린이 설치가 되면서 몇 시간이고 그 재미없는 달리기를 뛰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아무리 이렇게 하더라도 헬스클럽은 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는 운동장소임엔 틀림없다. 막힌 공간에 요즘은 산소방이다 해서 야외에서 뛰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놓았지만, 거의 대다수가 혼자서 운동을 해야 하는 구조에다가 운동의 재미를 느끼는데 절대 필요한 경쟁 같은 것이 개입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가끔씩 러닝머신을 뛰는 옆 사람과 경쟁이 붙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때문에 헬스클럽은 그 공간의 구조에 있어 혼자서도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운동할 수 있도록 형성되어야한다. 자기가 자기 스스로를 채찍질 할 수 있는 그러한 구조.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신발끈을 매고 러닝머신 위를 뛰며, 역기를 들었다 놨다 할 수 있게 만드는 구조. 헬스클럽은 그러한 구조를 모색해야 했고, 이 지점에서 푸코가 말한 자기감시의 메커니즘이 개입된다. 아마도 푸코가 지금의 시대에 헬스클럽을 봤다면, 분명 이렇게 외쳤을 것이다. “오, 벤담의 파놉티콘을 가장 이상적으로 구현한 자기감시의 결정체여!”라고 말이다.

푸코의 눈에 비친 현대사회의 자기계발 담론
푸코의 자기감시와 관련하여 간단하게 몇 마디만 하자. 푸코는 오늘날의 사회가 자기감시의 메커니즘에 봉착했으며, 이를 통해 스스로를 통제하고 규율하며 근대적 주체로 길러진다고 말했다. 즉, 국가나 정부로 대표되는 사회적 권력체가 바라는 주체, 가령 말 잘 듣고, 게기지 않는, 뭐 그런 사람들을 양산하기 위해 스스로가 자신을 다스리도록 만드는 구조라 할까? 가장 대표적으로 ‘자기계발’담론 따위가 거기에 속한다.

오늘날 엄청난 수의 백조와 백수가 양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우석훈의 말처럼, 손에 짱돌을 들며 혁명을 일으키지 않고 토플/토익책을 들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오늘날 많은 직장인들이 퇴근 후 열공을 해야 하는 샐러던트(샐러리맨과 스튜던트의 합성어)가 되어야 하는가? 그러면서도 왜 사회적 구조에 불만을 터트리지 않고 ‘내가 못나서 그래’, ‘내가 노력하지 않아서 그래’라고 자학하는가? 왜 스스로를 옥죄고, 규율하고, 한탄하는가? 푸코의 설명에 따르면 이게 다 권력자가 만들어놓은 일종의 ‘자기 탓하기 담론’ 때문이다. 전문용어로 ‘자기계발담론의 딜레마’

토익 몇 점에 기타 활동 몇몇 등, 스펙의 전형(규범)이 사회적으로 통용되면, 자기 스스로를 거기에 맞추어 평가한다. 일종의 자기감시가 일어나는데, 나는 토익 점수가 이러니까 여기에 더 투자하고, 이건 괜찮으니까 됐고....등등. 보이지 않는 감시주체의 눈을 의식하며 누군가 나를 꾸준히 바라보고(여기에선 스펙이 되겠다) 있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공부에 전념한다. 알아서 제 앞길 찾아가게 만들기 전략!!
 
헬스클럽과 자기감시: 네 몸을 꾸준히 살펴봐!
물론 푸코는 이러한 자기감시의 메커니즘이 파놉티콘이라 불리는 감옥에서 찾았는데, 이 원리는 헬스클럽에서도 그대로 재현된다. 몇 가지만 살펴보자.

우선, 헬스클럽의 벽은 대부분이 전신거울로 이루어져 있다. 왜 그럴까? 자신의 몸을 지속적으로 보면서 자각하라는 뜻에서다. 내 몸에 대한 응시의 권력을 스스로에게 부과함으로써 자신이 몸의 평가자가 되도록 만드는 작업. 그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거울이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어글리한 혹은 세빠지는 외모를 보면서 분발하려 하거나 만족해한다.

여기에 커다란 LCD모니터에 비춰지는 S라인 몸매의 여성모델과 권상우나 비로 대표되는 섹시남의 뮤직비디오가 꾸준히 방영된다. 몸의 기준을 말해주는 것이리라. 비의 복근을 보면서 거울에 비친 내 몸을 본다. 되고 싶은 욕망과, 되기까지의 험난한 여정이 중첩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시점에 다다르기 시작할터. 하고자 하는 욕구가 슬슬 불타오른다. 이 과정에서 여친이나 남친에게 몸매로 고별을 경험했던 이라면, 이건, 100%다.

그 때 중요한 것은 바로 지식의 개입. 여기에서 헬스클럽 강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저렇게 되고 싶으시죠? 그럼 저희가 마련해드리는 프로그램에 참가하세요. 유산소 운동 30분에 근력트레이닝 30분으로 3개월 만에 비의 몸매를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이러한 속삭임 뒤에는 아름다운 복근을 만드는데 필요한 자세와 반복 횟수, 강도, 시간 등, 과학적 지식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다. 그러면서 강사가 가끔씩 웃통을 까준다. “보세요, 저도 이걸 통해 이런 몸을 만들었답니다.” 한 마디 날리는 결정타!

만국의 고객이여, 달려라?!
이와 같은 몇몇 조건으로 헬스클럽이라는 공간은 자기감시의 공간으로 변모한다. 내가 도달해야 할 몸매의 목적지로서 S라인과 복근짱 몸매가 규범(norms)으로서 꾸준히 보여 지고, 그것은 우리들의 시선을 통해 내면화된다. 누구나 되고 싶지만, 아무나 될 수 없는 몸에 대한 욕망. 그 욕망의 규범이 바로 헬스클럽에서 지속적으로 재생산되고 전파되는 것이다.

여기에 꾸준히 자신의 몸을 관찰하고 비교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체중계와 거울! 자기 몸의 생김새를 항상 응시하며 내면화된 사회적 몸의 규범과 비교하도록 만들어준다. 여기에다가 나는 할 수 있다! 라는 자기극복의 사례를 몸소 실천하고 재현한 헬스강사의 몸과 함께 과학적이라 믿어지는 운동시간, 강도, 빈도의 지식체가 개입되면, 비로소 혼자서도 꾸준히 운동을 지속할 수 있는 자기규율의 공간으로서 헬스클럽이 작동된다.

어디 이뿐인가? 여기엔 자기관리가 곧 미덕이라는 사회적 분위기도 한 몫 한다. 체력은 국력이라는 과거 박정희 시대의 모토는 지금까지도 ‘관리는 스펙’이란 변이된 표어로 변태되어 우리의 몸에 투사되시고 있는 것이다. 모든 이들의 스펙 관리에 외모관리까지 넣어야만 하는 오늘날, 그 하나의 장소로서 지켜볼만한 곳이 바로 헬스클럽이라는 사실. 건강을 위한 운동장소가 아닌, 스펙관리를 위한 장소로서의 헬스클럽. 이런 웃기지도 않은 상황이 이젠 너무나 자연스러워진 지금.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할 때가 아니라, 이젠 관리할 때다!!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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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박보현 (한국체육대학교 박사후과정) 


2010남아공월드컵은 첫 원정 16강 지출이라는 성과 말고도, SBS의 독점중계방송, 서울광장을 둘러싼 거리응원 논란 등, 개막전부터 축구 이외의 사회적 논쟁거리를 만들어냈다. SBS는 벤쿠버 동계올림픽에 이어 KBS와 MBC의 법정 소송에도 불구하고 월드컵 독점중계를 강행했고, 2002년 이후 상업성에 휘말린 붉은 악마는 우여곡절 끝에 서울광장을 사수했다.

올림픽과 월드컵때마다 되풀이되는 이러한 상업성 논란은 점점 더 가열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기업들의 입장에서 올림픽과 월드컵의 상업적 가치가 더욱 커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올림픽과 월드컵은 어떻게 자신의 상업적 가치를 높였을까? 그 답으로 미디어의 역할을 지적하는 이들이 많다. 틀린 말이 아니다. 미디어가 동시간대에 올림픽과 월드컵을 전세계에 중계해 줌으로서 올림픽과 월드컵 후원기업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세계사장 곳곳에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기업들로 하여금 올림픽과 월드컵의 공식후원사로 참가하게 만든 당근은 따로 있다. 그 당근이 바로 독점이다. 독점은 아무에게나 그 기회를 주지 않는 것으로, 선택된 기업만이 미디어를 통해 전세계 시장에 자신들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올림픽 불황이 독점을 잉태하다!

70년대 이후 올림픽은 점차 대형화되었고, 개최국은 대회 운영비의 증가로 몸살을 앓게 되었다. 실제로 1976년 몬트리올 하계올림픽 때에는 약 3조 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1980년 캘거리 동계올림픽 때에는 소요된 운영비의 회수가 불가능해 결국 조직위원회가 파산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이렇게 되자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대회의 규모를 줄이는 방법이었고, 두 번째는 스폰서십의 형태로 민간 자본을 도입하는 일이었다. 전자는 올림픽의 축소, 후자는 올림픽이 지켜온 아마추어정신의 파기를 의미하기 때문에 매우 신중한 결정이 필요했지만, IOC는 후자를 선택했다. 이렇게 해서 훗날 올림픽 상업화의 원년이라고 일컬어지는 LA 올림픽이 시작되었다.

피터 유베로스가 위원장을 맡은 이 대회는 시민의 83%가 올림픽 개최를 반대했기 때문에 정부로부터 한 푼의 지원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3억 달러 이상의 흑자를 기록해 종래의 상식을 뒤엎은 그야말로 마술과 같은 성과를 이루어냈다. ‘유베로스 매직(마술)’이라고 불린 올림픽 흑자는 고액의 방송권료, 공식스폰서와 공식 로고 및 올림픽 마크 등 스포츠의 기본상품과 파생상품의 체계적 판매가 낳은 결과이다. 이후 이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 TOP(the Olympic Partners)이라는 패키지 스폰서 시스템이다.

TOP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기업은 스폰서료를 지불하는 대신 올림픽 후원자로 선정되어 자사의 광고와 제품광고에 올림픽 로고와 휘장을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독점은 동일업종 중 하나의 기업에게만 후원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으로, 코카콜라가 공식 후원사인 이상 경쟁업체인 펩시나 일본의 기린음료는 올림픽과 관련된 로고나 휘장을 사용한 광고를 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독점 시스템은 월드컵에도 적용되고 있다. FIFA는 90년 이탈리아월드컵 이후 94년 미국월드컵과 98년 프랑스월드컵을 거치면서 스폰서기업의 독점적 지위보장을 보다 강화는 방향으로 규정을 바꾸어가고 있다. 특히 경쟁기업들의 지능적인 앰부시 마케팅(Ambush Marketing)으로 인한 분쟁과 공식후원기업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함이다.


독점적 지위를 최대한 누려라!


IOC와 FIFA는 이러한 독점적 스폰서십 프로그램을 통해 넉넉한 재정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넉넉한 재정이 올림픽과 월드컵을 유치한 국가에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IOC와 IOC와 FIFA는 수익의 일부만을 대회유치 국가와 도시에 지원한다. 그리고 수입의 대부분을 자신들 조직을 위해 사용한다. 그러나 그 돈의 규모와 사용처는 철저한 비밀로, 조직 내부에서도 회장을 비롯한 몇몇 인사들만 알고 있다.

일년에 수 천 억 원의 비용을 지불하며 IOC와 FIFA로부터 독점적인 지위를 획득한 기업들은 투자한 만큼의 효과를 올리기 위해 자신들에게 부여 받은 독점적 지위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이번 남아공월드컵의 공식 후원사로 참가한 현대자동차의 거리응원은 이를 최대한 활용한 예라 할 수 있다. 현대자동차는 붉은악마와 서울광장의 상징성으로 인해 거리응원에 대한 완전 독점은 하지 못했지만, ‘HYUNDAI FAN PARK’라는 이름으로 올림픽공원에서 거리응원을 자신들의 기획대로 주도하였다.

월드컵 거리응원 장소인 ‘HYUNDAI FAN PARK’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한정된 인원만이 놀이공원에 입장하듯이 줄을서서(좌), 자유이용권과 같은 입장권을 받아 손목에 차야 하고(중), 그리고 응원은 현대자동차 광고물로 둘러싸인 지정된 구역 안에서만 가능하다(우).


독점은 독점 기업에게 큰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으나,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그래서 시장에서 독점은 규제대상이다. 그러나 올림픽과 월드컵은 이러한 독점을 발판으로 그 생명과 권력을 유지해가고 있다. 독점의 대표적 피해는 선택권의 박탈이다. SBS의 독점중계는 경기중계뿐만 아니라 월드컵과 관련한 다양한 정보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도 같이 차단하였다. 또한 거리응원도 독점 기업의 허가 없이는 불가능해져 다양한 응원의 선택권도 침해 받게 되었다.

IOC나 FIFA가 독점 프로그램을 포기하지 않는 한 이러한 기업들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한 마케팅은 더욱 더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켜지고 있다. 어찌보면 지금이 초보적인 단계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기업들의 과도한 독점 마케팅이 노골화 되면 될수록 그 피해는 고스란히 올림픽과 월드컵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을 응원하는 시민들의 몫으로만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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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남상우(충남대학교 박사)
 

명시지와 암묵지

와이프가 잡채를 해준 적이 있다. 정말 맛이 없었다. 차마 대놓고 말은 못했지만. 하지만 이상하게 어머니가 해주시는 잡채는 단시간에 후딱 만들어내시는데도 불구하고 정말 맛이 좋다. 신기하다. 와이프는 장장 6시간의 대작업에도 불구하고 정말 “맛없는” 잡채를 내놓는 반면, 어머니는 주무시다 일어나셔서 대충 하셨는데도 맛이 정말 좋다. 일종의 ‘손맛’이다.

이러한 손맛은 글이나 말로 어떻게 표현하기가 어렵다. 이를 알려면 옆에서 만드는 법이나 간을 보는 법을 따라하고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야만 한다. 이러한 지식을 일종의 ‘암묵지(暗黙知)’라 하는데, 이는 “말이나 글로 설명하기 어려운 지식”으로서 우리는 이와 같은 암묵지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 이 암묵지의 반대가 바로 명시지(明示知)다. 당연지사, 이는 말이나 글로 표현이 되는 지식을 말한다. 매뉴얼이 대표적이다.

세상만사가 비슷하듯 스포츠에서도 이러한 명시지와 암묵지가 공존한다. 노장 선수들이 게임을 풀어가는 방식이나, 노련한 감독이 선수들을 다루는 방식 등이 모두 암묵지에 속한다. 다른 이들은 모르는 자신만의 ‘노하우(know-how)’. 이게 바로 암묵지다. 이는 눈에 보이지 않기에 획득하기 어렵지만, 한 번 획득하고 나면 명시지보다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스포츠 분야에서 밝혀내야 할 암묵지

예전부터 나는 이러한 암묵지에 관심이 많았다. 논문을 처음 쓰려고 하는데, 도대체 아무리 매뉴얼(연구법 서적)을 보고 써도 지도교수가 쓴 것처럼 나오지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지도교수에게 가 “어떻게 쓰면 교수님처럼 써요?”라고 여쭙자 돌아오는 답이 걸작이었다. “자꾸 써봐.” 답이 없다는 것이다. 잘 쓰는 사람 옆에서 배워가며 자꾸 쓰다 보면 는다는 것이 답이었다.

논문 잘 쓰는 것도 일종의 노하우로서, 암묵지 영역에 속한다. 문제는 이러한 암묵지가 사적으로만 전수되고, 공유된다는 사실이다. 물론, 자신만의 노하우는 살아가는데 절실한 일종의 ‘필살기’이니만큼 공적으로 공유되기 어려운 측면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사회적 발전을 위해서 공유화의 노력이 절실하다. 시행착오를 줄이면서 사회적 낭비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고, 노하우가 명시화되면서 또 다른 노하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시너지’ 효과 때문이다.




이 암묵지와 관련하여 스포츠 영역에서 조금 더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스포츠 외교 분야다. 우리에게 가장 취약한 분야가 바로 이 부분인데, 한 예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분야를 얘기해볼 수 있겠다. 물론 무분별한 국제스포츠 유치에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런 분야에 국내 스포츠인들이 많이 진출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굴뚝같다. 국가의 위상을 높이기 때문이라는 그런 이유가 아닌 선진 스포츠시스템과 그것이 어떻게 유지, 발전되는가를 “정치적”으로 체감하여 학습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런 분야로의 진출에 취약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가령 그 동안 정치경제 분야의 인물에 너무 의존하면서 자생력을 기르지 못한 이유도 있을것이고, 스포츠외교의 힘을 간과했던 과오의 이유도 있을 수 있다.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그 쪽 분야로의 진출이 필요함에 합의했다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지 않겠는가? 특히 우리가 그 동안 몰랐던 그 쪽 분야 사람들의 ‘노하우’를 말이다.


암묵지를 명시지로 바꾸는 인터뷰

암묵지로서의 노하우를 알아내는 방법으로 난 인터뷰를 추천한다. 인터뷰(inter-view)란 글자 그대로 ‘안을 본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이 겪어왔던 여러 경험을 직접 볼 수 있다는 말로 치환할 수 있기에 인터뷰는 암묵지에 접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특히 인터뷰를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은, 앞서 우리가 부족하다고 여겨왔던 스포츠 분야의 암묵지를 명시화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지금은 체육계에서 추방당한(?) 김운용 전 IOC위원을 만나 그의 생활 전체를 ‘인터-뷰’ 해보는 작업은 어떨까? “국가의 배신자” 따위에게 뭘 얻을 수 있겠냐고 핏대 세우실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아마 김운용만큼 IOC의 정치학을 경험한 이가 몇이나 있을까? 물론 정치학만을 담아 배우자는 말은 아니니 오해는 마시길. 분명 그만이 아는 국제스포츠외교의 ‘노하우’가 있을 것이고, 그것을 명시화하는 작업은 어려울 수 있을망정 무용하지는 않을 것이란 게 내 생각이다.

여기에 더 나아가 내 경우엔 스포츠사회학자들을 찾아 다니면서 “스포츠사회학자, 스포츠를 말하다”란 주제로 인터뷰 책을 내고 싶기도 하다. 그들이 스포츠를 생각하는 방식, 그것을 지식으로 구조화하는 방식,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방식 등이 궁금하고, 그들만의 노하우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일평생의 여러 목표 중 하나인데, 이 역시 ‘선생(先生)’들의 앞선 ‘노하우’를 명시화하는 작업의 일환이다.


스포츠 분야의 암묵지, 화려하진 않지만 필요한 지식

암묵지는 고상하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오히려 누추할 수 있고, ‘그게 뭐야?’라는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또한 암묵지를 글로 쓴다고 해서 뭐 나아질게 있냐는 반론도 가능하다. 물론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한계를 가진 암묵지이긴 하지만,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보다는 백번 낫다고 보는 게 내 입장이다. 혹시 아는가? 자꾸 연구하며 노력하다 보면 암묵지를 기록하는 더 좋은 방법이 나올지 말이다.

우리들의 공기업은 특히 전임자가 나가고 나면 후임자는 일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정력낭비’의 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이 모든 게 암묵지의 활용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이러한 암묵지를 밝혀내고 기록하며 체계화하는데 사회적 차원의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말로만 지식경제니 지식기반사회니 하지 말고, 당장 우리 주변에 있는 암묵지부터 명시지로 바꾸려 시도해보자. 주변에 정말 선수들을 잘 가르치는 코치나 감독을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리고 기록해보자. 삶이 바뀔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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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남상우 (충남대학교 박사)


여기 한 남자가 있다. 키가 165cm이고 몸무게가 82kg이다. 대충 상상이 갈 몸인데, 의학적(?) 계산에 따르면 이 사람은 비만이다. 지금 당장 체질량지수(BMI) 계산법으로 계산해보라. 자신의 키(m)를 제곱한 값으로 몸무게를 나누면 나오는 값이 30이상이면 비만이다. 이 남자, 30을 넘는다. 비만이다. 먹는 음식 줄이고, 당장 러닝머신 위를 뛰어야 한다.

만약 거부한다면? 그 사람은 비만이 가져올 부정적 영향에 대한 경고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심혈관계질환에서 당뇨의 위험성, 나아가 여러 합병증이 예상된다고 말이다. 비만이 이제는 단순한 몸의 상태를 넘어 ‘질병’으로 승격(?)되었다는 의학적 지식과 더불어, 그러한 경고는 그 사람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의학적으로 ‘잠재적 위험군’으로 분류된 그는, 개인적인 건강의 고민을 넘어 이제 사회적 시선의 문제까지 염려해야 할 처지에 놓인다.


너의 몸을 바라봐!

사우나에 자주 간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 것이 좋아서인데, 가끔 보면 사우나도 재미있는 장소란 느낌이 든다. 특히 탕에 들어가 앉아 있는 사람들은 주변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꾸준히 모니터링 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몸과 비교하는 행위를 지속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가끔씩 뿜어 나오는 한숨과 더불어 뱃살을 움켜쥐는 제스츄어와 함께 말이다. 바야흐로 사우나는 몸을 ‘반성’하는 장소이자, 내 이렇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장소이며, 동시에 이 나이가 되면 다 그런거지 하는 ‘체념’의 장소이기도 하다. 사우나의 사회학!

볼일을 마치고 나온 탈의실 또한 재미있는 공간이다. 자신의 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다양한 장치들이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전신을 비춰주는 거울에서부터, 자신의 현 몸무게 상태를 “계량화”해주는 체중계, 나아가 자신의 키와 몸무게가 과연 “정상”인가를 판단케 해주는 BMI계산판(?)까지 말이다. 알뛰세르의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를 패러디한 “전방위적 감시장치”에 다름 아니다.



 

비단 사우나 뿐 아니라 이러한 감시장치는 학교에도 구축되어 있고, 나아가 자신의 친구들이 보내는 시선까지도 그러한 검열의 도구로 기능한다. 뚱뚱한 것을 마치 죄악시하는 분위기의 만연. 뚱뚱한 것이 무조건 ‘건강의 위험’으로 이어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의 주변에서 뚱뚱하고 비만인 것은 사회적 질시의 대상이 된 듯하다.

비만의 사회적 표상: ‘비만’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나의 경우 키가 180cm에 몸무게가 83kg이다. BMI수치로 따져보면 26쯤 나오면서 경도비만에 해당된다. 하지만 나의 체지방률은 8%로(일반적으로 남성의 경우 10-15%사이면 정상이라 한다), 외관상 전혀 ‘비만스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수치는 나를 ‘경도비만’이라 분류한다. 이 수치가 나의 외모를 배제하고 의학적 판단에 맡겨지면, 나에겐 건강관리에 유념하라는 처방이 내려질 것이다. 먹는 거 하나에도 조심하라는 공포의 조장과 함께 말이다.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비만을 판단하는 기준과 그것이 변천되어 왔던 과정이 유동적임을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아가 비만이라는 ‘현상’이 단지 의학적이고 개인적인 그 무엇이 아닌 사회적으로 구성되었음을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비만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의 궁금증.

그래서 물어봤다. “‘비만’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라고. 그 답이 재미있다. 물론 비만만 물어보지 않고, 비만의 상대적 개념으로서 “‘건강’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도 물었다. 어떤 답변이 나왔을까?

먼저 건강에 대한 답변을 정리해보자면, ‘건강’과 관련된 사회적 이미지는 ‘운동’, ‘날씬함’, ‘계획성’, ‘음식’, 그리고 ‘보기 좋음’로 요약되었다. 이 결과는 결국, 누군가가 “넌 참 건강하게 보인다”라고 당신에게 말했을 때 그 말을 “너는 날씬해서 보기가 좋고, 음식을 절제하여 잘 먹으며 계획적인 삶을 살 뿐 아니라, 운동도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인다”라고 해석하여 받아들여도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비만’과 관련한 답은 어떻게 나왔을까? 조금 절망적이다. 비만에 대해 얼마나 부정적으로 바라보는가를 잘 보여준다. 연구결과는 비만과 관련하여 ‘무절제한 식생활’, ‘뚱뚱함’, ‘위험’ 그리고 ‘무책임함’이란 표상을 보여주었다. 다시 말해 혹자가 “넌 비만아 같아”라고 말한다면, 이는 “넌 아무런 계획 없이 무책임하고 무절제하게 먹어 뚱뚱하고, 그래서 위험해 보인다”란 의미로 치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조금만 뚱뚱해도 비만으로 보고, 그것은 다시 무절제하고, 무책임한 존재로 볼 수 있는 직간접적인 인식의 망이 형성되어 있다는 사실.


비만에 대한 이러한 인식이 가지는 여파

뚱뚱한 것이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시선의 대상이 되어 부정적으로 해석되는 오늘날의 문제는 또 다른 문제를 발생시킨다. 단지 뚱뚱하다는 이유로 무책임하다고 인식됨으로 친구관계가 소원해지고, 학교에서 교사에게 ‘저 애는 무식할 수 있어’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게끔 할 수도 있다.

뿐인가? 체육수업에서도 비만아로 인식되는 애들은 ‘운동을 못할 것’이란 낙인과 더불어 또래관계의 형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많은 연구에서 비만아들이 그 운동능력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체육활동의 장에서 주변화되고 소수자로 취급되는 현상을 밝혀내기도 했다.

혹자는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이는 다시 “개인적인 것은 사회적인 것이다”라고 비틀어 표현해볼 수 있겠다. 바로 비만을 두고 하는 말이다. 단지 개인의 문제로서 받아들여질 몸의 표상이 사회적인 차원에서 그 효과를 파생시키는 것을 과연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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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임수원 (경북대학교 체육교육과 교수)


인간은 생존과 더 나은 삶을 위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삶의 환경을 통제하고 예측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그러나 인간 생명의 한계성이나 제한된 능력으로 인해 그러한 노력은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자신의 초월적인 생존적 상황을 극복하거나 그것에 순응하기 위한 구원방법을
찾게 되면서 나타난 것이 바로 종교이다.

그러면 종교는 인간의 삶에 어떠한 기능을 할까? 아마 두 가지로 대변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하나는
인간의 죽음에 대한 불안을 해소시키는 구원제로서의 기능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구성원들을
결속시켜주는 사회통합 기능일 것이다. 전자는 인간의 삶에 희망을 불어 넣어주고, 후자는 종교가
주는 가치와 신념을 공유함으로써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게 한다.

두 가지 기능 중에서도 사회 구성원을 결속시키고 사회통합에 이바지 한다는 점은 스포츠가 지니는
사회통합 기능과 유사한 특성이 있다. 일찍이 종교의 사회적 기능에 주목하였던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켕은 "종교란 한 사회를 단일한 도덕적 공동체로 결속시키는 성스러운 상징체계"라고
하였다. 말하자면 종교는 사람들로 하여금 사회질서에 순응하게 하고, 사회의 가치와 규범을 사회화
시키는 방식을 통해서 사회통합 기능을 수행한다고 했다. 스포츠 또한 사회통합 기능을 수행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스포츠 활동은 사회화의 한 형태로서 개인을 집단 속으로 집단을 문화의 형태
속으로 통합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익히 아는바와 같이 2002년 한‧일 월드컵 축구에서 우리 국민
모두가 길거리 응원으로 하나가 되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사례나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
때 우리선수들이 선전하는 모습을 TV를 통해 지켜보면서 국민들이 보여주었던 공동체적 연대감
형성은 스포츠가 사회통합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러면 스포츠에서의 사회통합 메커니즘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뒤르켕의 종교분석에서
사용된 개념적 틀을 스포츠 상황에 적용시키면 유용하게 설명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그에
따르면 종교의 구성요소로서 집합표상(collective representation)과 집합의례(collective ritual),
집단의식(collective consciousness)을 들고 있다. 이들 구성요소들이 지니고 있는 의미와 특성은
스포츠 환경에서도 유사하게 드러나고 있다.

집합표상이란 그 집단을 대표하는 상징물로서 스포츠 환경에서는 선수들의 유니폼, 팀 로그,
응원가, 마스코트, 깃발, 응원도구와 같은 것들이 이에 속한다. 또 집합의례란 집단 행사의 절차 즉
과정을 의미한다. 이는 국민의례, 개회식, 폐회식, 선수들끼리의 인사, 치어리드의 응원전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집합의례를 진행하는 동안에 참여하는 성원 모두는 자기 자신의 개성을 잃어버리고
집단무의식의 상태에 들어간다. 이 상태에서 각 개인은 ‘나는 이 구단의 일원’ 이라는 집합의식 즉
집단정체성을 갖게 되는데 그 상태가 바로 집단의식이다. 시합에서 이겨서 헹가래 치는 것, 각종
세레머니 등은 집단의식의 한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그 팀의 선수들은 물론 경기장에서 응원하던
응원단 나아가서는 TV를 통해서 국제간의 경기를 관람하던 관람객들을 포함하는 모든 구성원들은
결속과 통합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 결승전이나 김연아와 일본의 아사다 마오 두 여자
피겨선수의 경기를 지켜보았던 우리 국민들은 동일화 의식과 연대의식으로 결속과 통합을
경험하였다. 

그러면 스포츠를 통한 사회통합은 종교에서의 결속과 통합 기능을 대신할 수 있을까? 오늘날
국 ․ 내외에서 종교간 혹은 종교 내에서의 갈등과 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종교가 진정한 사회통합 기능을 수행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스포츠는 일시적이긴 하나 성,
사회경제적 지위, 신분, 출신성분, 교육정도 및 종교가 이질적인 개인들로 구성된 사회를 한 마음 한
뜻으로 결속시켜 사회적 연대의식을 창출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말하자면 종교가 수행했던
사회통합 기능을 스포츠가 더 명확하게 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1998년 IMF 위기상황에서 박세리,
박찬호 두 스포츠 영웅이 우리 국민들에게 보여주었던 불굴의 정신은 스포츠가 종교보다도
더 이상의 사회적 결속과 통합기능을 지녔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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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의 사회통합??? 2010.04.20 14:49 신고

    무서운 말씀을 하시네. 하나의 종교로 통합된 사회가 얼마나 끔찍한지 몰라서 하는 말씀??

  • paul 2010.04.20 15:44 신고

    체육과 교수라서 그런말하는건 이해하면서도... 굉장히 편협한 가치관을 가지고 계신단 생각드네요. 스포츠나 종교를 사회통합의 목적으로 바라보는건 얇팍한 정치관을 가진 관리들이나 하는것이죠. 또한 스포츠가 종교보다 더 통합기능을 한다고 보시는것도 근시안적이구요. 교수님은 스포츠가 얼마나 지속성을 가지고 그 기능을 수행한다고 보시는지요? 순간 폭발력만 보고 착각하시는건 아닌지... 그냥 글 내리시지요.

  • 지나 가다 2010.04.21 05:23 신고

    이 글의 어떤점이 그렇게 편협하다고 생각하시는 지 전 잘 모르겠네요. 스포츠가 통합적인 기능을 갖고 있는 건 사실이고 우리가 그 부분에 대해 잘 몰랐거나 인식하지 못 하고 있었던 거 아닌가요? 종교가 만일 발명된 것에 불과하다면 오히려 스포츠의 원초적인 형태(놀이 등)가 더 지속적으로 그런 기능을 수행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물론 종교보다 조직적이지도 않고 체게적이지도 못 했겠지만. 댓글쓰는 분들 중에 편협이나 편견같은 단어들을 쓰면서 쿨한 척 하지만 사실은 글쓴이 보다 고민도 안 했으면서 버젓이 단견만을 드러내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 지나가다 보고 댓글 올립니다. 글쓴 분을 모르지만 이런 식의 댓글에 오히려 더 반감이 생기네요.

  • 좋은 글에 공감합니다. 스포츠는 종교는 물론 정치까지도 초월합니다. 이념의 이데올로기로 인해 분단된 조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만 해도 탁구나 축구를 통해서는 하나된 한반도를 경험했습니다. 종교가 평화를 추구하는 것은 사실이나 종교적 신념이란 본질이 매우 편협하여 타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중동분쟁의 원인인 이슬람과 유대교의 대립 역시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보면 씁쓸한 부분입니다.

    이런 점에서 스포츠가 인류의 화합을 도모하는데 훌륭한 도구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사실 정치적으로 스포츠를 이용하는 것이 모두 옳다고 할 순 없지만 그 기능을 생각한다면 적극활용하여 인류의 화합을 위해 쓰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튼 좋은글 스크랩해갑니다.

  • 열혈여아 2010.04.26 09:38 신고

    맨윗분들 좀 확대해석하신듯.. 잠깐 잠깐이지만, 월드컵이나 올림픽을 보면서 저도 글쓴이처럼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 글쓴이는 스포츠가 종교를 대신한다기 보다, 그만큼의 영향력을 가진 도구로서의 매력도를 말한 것같아요.


                                                                             글 / 임수원 (경북대학교 체육교육과 교수)


학원 엘리트 스포츠에서 중도 탈락한 고등학교 선수들은 학교생활에 어떻게 적응할까? 일반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학교생활에서 큰 어려움 없이 학생으로서의 행복권을 추구하고 있을까?
그 해답은 학원 엘리트 스포츠 선수 양성 시스템을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 분야의 최근
연구들에 의하면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부터 선수생활에서 정상적인 수업을 받지 못하고 운동에만
전념해 왔던 선수들은 운동을 그만두고 정상적인 학교생활로 돌아왔을 때 기초학력부진으로 수업,
시험, 진로, 교우관계 등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되고 학교생활에 순조롭게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스포츠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거리가 되고, 스타선수들은 최고의 금전적 보상과 대우를
받으면서 미디어를 통해 대중의 우상으로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스타선수들이 탄생하기까지
그 이면에서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을 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무관심하다.

스포츠의 중요한 속성 중의 하나가 경쟁성이기에 최정상을 향한 치열한 경쟁의 구도 속에서 많은
패자가 생기기 마련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중도탈락자는 어떤 형태로든 경쟁의 낙오자이다.
마치 적자생존이나 승자독식과 같은 정글의 법칙이 통용되는 야수의 세계와도 같다. 승리지상
주의가 만연하는 스포츠 환경에서 중도탈락자가 비일비재하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들은
스포츠에서 낙오되어 일반학생으로 돌아오게 되지만 교실에서 직면하는 스트레스는 그들에게 또
다른 좌절과 절망을 안겨준다. 다음의 인용문은 한 중도탈락 선수가 교실수업에서 경험하고 느낀
실제이다. 

수업시간에 않아 있지만 거의 몰라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종일 앉아 있는 다는 것이 얼마나
힘 드는지 말도 못해요. 자주 치는 시험 때는 더 괴롭습니다. 시험지 받아보면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을 때 절망 많이 하고 운동 했던 것을 후회하게 됩니다(고2, 전 야구선수).

 이러한 예는 어디 이 학생에게만 해당하는 경험일까? 아니면 야구선수 출신에게만 한정된
문제일까? 그렇지 않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부터 운동을 하다 그만둔 우리나라 고등학교
선수들 중 십중팔구가 그렇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이들은 어쩌면 한국 학원엘리트 스포츠 시스템
으로 인한 희생양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누구의 책임이며, 이들은 어디서 그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학교운동부에서 이러한 일들이 흔히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이들을 위한 어떠한 교육적 배려나 조처도 취하지 못하고 경시하고 있다. 대학입시 전쟁이라고
불리어지고 있는 교육환경 속에서 이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좌절을 누가 알아주겠는가?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중도탈락자들은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몸부림치며 신음하고 있다.

중도탈락 고등학생들이 학교생활에서 직면하는 좌절과 절망은 그들이 감당하기에 너무나 벅차다.
오랫동안 선수생활에서의 이질적인 경험과 입시위주의 학교수업 현실 사이에 너무나 높고 큰
괴리의 벽이 놓여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이들은 성장기의 청소년으로서 건전하고 원만하게
성장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학교생활에서 즐거움보다는 고충을, 희망보다는 좌절과 절망을
경험한다. 공부로 인한 좌절과 갈등, 방황 끝에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일종의 낙오자로
 전락하여 한 평생을 떳떳하게 살아가지 못하거나 일탈자로 전락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온전한 99마리의 양을 놔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애타게 찾아 나섰다는 예수의 사랑은 한
마리 한 마리가 모두 소중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포츠 중도탈락자의 경우도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보다 더 소중한 존재이기에 사랑과 보살핌이 절실히 필요하다.

 
만약 중도탈락자가 어느 수준까지의 기초학력을 갖추고 있다면 현재와 같은 어려움을 직면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그 동안 정치논리에 편승되어
실적위주의 가시적인 성과에 치우쳐 온 학원 엘리트스포츠가 내실을 기하고 질적인 발전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2008년 대한체육회에 등록된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의 학생선수만 95,150명이다. 이들에게
학습권을 보장하는 문제가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정상수업, 합숙금지,
지역 리그제 도입, 연 3회 이상 출전제한, 최저학력제 시행, 주말 및 방학 때 시합운영 등과 같은
관리운영체계로의 과감한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학생선수들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지도자나 학부모, 학교장, 교육위원회와 같은 역할 관계자들의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지금과 같은 학원엘리트 스포츠 양성체제에서 김연아나 박태환, 신지애 같은 극소수
스타선수들의 탄생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암울한 음지에서 낙오자로 전락하고 있는 중도탈락
선수들을 위한 교육적 배려와 조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
스포츠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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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생선수는 선수이기 이전에 학생인데,
    학업을 등한시하는 풍토는 늘 불만입니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라도
    운동으로 100% 성공을 보장받는 게 아닌데.
    우리의 교육은 잘하는 사람에겐 축복을 가져다줄 지 모르지만
    소외된 사람들이 더불어 살 수 있는 것과는 멀어져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 BlogIcon JK 2010.04.28 23:47 신고

    200% 공감의 글입니다.
    대한민국의 전 운동선수였던, 그리고 그 학교 운동 시스템의 피해자인 한 청년 입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약 7년간 서울에서 선수생활했네요.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운동을 그만두어일반대학에 진학했죠.
    그나마 단체운동을 해서 어울리는것에 무리가 없었기에 인간관계에서는 이상 없었지만,
    학업에서는 조금 소외받는 감도 있었죠.
    학업에선 그럴수 밖에 없던것이 중학교때는 오전수업만, 고등학교때는 교과서 조차도 받지 않고, 수업에는 들어가본적도 없지요.
    아이러니 하게도 졸업식날에는 개근상과 체육 공로상 까지 주더군요. 씁쓸하죠.
    그래서 이런 행정적인거 하나씩 바꿔보려고 열심히 공부하는 중입니다.
    공부가 힘이라는것을 지금이라도 안게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죠.
    전공공부도,영어도,자젹증도 닥치는대로 하는 중이지요.
    그래도 전 운동선수 였는데 비리비리 하면 안되자나요.
    솔직히 운동하는애들은 다 멍청하다고 하는 말이 듣기 싫어서 더 열심히 하는중 입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높은자리에 계신 선생님들 운동성적 올리기보다는 선수들을 진정한 사람으로 만들수있는 제도를 만들어 주세요^^

    • 운동선수 출신 2010.08.05 01:40 신고

      님의 댓글에도 200% 공감합니다.
      저 역시 운동선수 출신으로써 중학교, 고등학교 운동선수로써 생활하였습니다. 하지만 본문에서 필자가 말했던 바와같이 스포츠의 경쟁성이란 이라는 속성으로 인해 생기는 패자 즉 경쟁의 낙오자로써 운동으로써 대학을 가지 못하였고, 일반대학도 원하지 않는 곳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대학가서 나름 열심히 했고, 운동하는 애들 멍청하다는 소리 안듣기위해 더욱더 말도 잘하고 많이 알기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매학기 단한번도 장학금을 놓쳐본적없고 교수님에게 인정받고 많은 대외활동을 통해 인정을 받는 위치까지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저의 마음속에서는 고등학교를 갈때, 대학을 갈때 경쟁에서 져서 낙오자라는 이름으로 저 자신에게 실망하고 부끄러웠던 그 때의 기억으로 지금도 사실 남에게는 말하지 않지만 부끄럽고 너무나도 제자신이 비참해집니다. 그렇다고 그때 열심히 운동을 하지 않은것도 아닙니다. 쨋든...다만 아쉬운건 그때 하루 종일 운동하는것 말고도 일본이나 미국과 같이 기초학력이라도 쌓을 기회나 혹은 그런 눈높이를 맞춘 교육을 해줬더라면 지금까지 제가 느꼈을 좌절이나 절망감을 조금은 줄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듭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운동하는 선수들에게 보다 다양한 인생의 길을 보여주고 갈수있게끔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 haruna 2010.08.08 22:38 신고

    운동선수 출신인 저도 충분히 공감합니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에 또 자녀가 운동을 하니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진짜 운동하는 선수들에게 필요한 공부가 무엇인지...운동하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기초학력이 무엇일까요? 운동을 하는 학생들은 공부하는 학생들과 똑같은 교육과정과 똑같은 평가를 받고있습니다. 아이들이 공부를 할때 운동을 하는 아이들은 피땀을 흘리면 운동을 합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공부하는 아이들과 똑같은 교육과정과 평가를 받게한다는 현실이 과연 올바른 것일까요? 공부하는 운동선수가 나오지 않는것도 바로 이러한 제대로 된 현실파악이 안되어 그런 선수들을 배출하지 못하는건 아닐까요? 김연아선수나 박지성선수 또한 학교성적을 보면 밑바닥을 기는 일이 다반사였을겁니다. 왜 그럴까요? 운동하는 선수들에게 맞는 교육과정과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그들은 운동을 잘했기에 외국으로진출할 기회가 생기고 잘하는 만큼의 연봉이 뒤따르니 영어도 개인교습을 받을 정도가 되는것이구요...이러한 선수는 운동하는 모든 선수들 중에서 1%에 속할 뿐입니다. 그 많은 시간을 운동에 투자를 했음에도 은퇴를 한 후 본인이 가고자 하는 길을 가는 일은 운동을 할 때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야합니다. 공부할 시간에 운동을 한것인데 왜 그들은 피나는 노력을 다른이보다 더해야 하는것일까요? 9만5천명이나 되는 귀한 인재들이 올바른 교육과정을 거치지 못했기에 그 기회가 박탈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운동선수에게 필요한 교육과정과 그러한 공부를 가르치고 평가를 한다면 중도에 운동을 그만 두더라도 다른 무언가를 시도할 자신감이 사라지지 않을거라봅니다. 지금 우리나라 운동선수들은 대학을 가기위해 정해 놓은 교육과정이 필요한것이 아니라봅니다. 지금의 중고등학교의 교육과정이 우리 선수들에게 필요한것인지 다시한번 행정을 고려해야 할때라고 봅니다. 9만5천이라는 숫자는 적은 숫자가 아닙니다.
    정부나 책입행정 기관에서 조금의 노력이 있다면 중도에 운동을 그만둔 선수라 할지라도 충분히 사회에 한 일원으로 살아가는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지 않을거라 봅니다.
    해보지 못한 공부이기때문에 어떻게 시작하는지도 모릅니다. 외국의 많은 본보기가 있을거라 봅니다. 그런 본보기는 무시한 채 외국엔 공부하는 운동선수가 많은데 우리나라는 없다고 말하는건 어불성설이라봅니다. 그러한 체재를 받아들여 운동만 했던 학생들도 중도포기했을경우 공부하는 학생들과는 다른 길을 또 많은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중도에 운동을 그만 두었다고 그 뒷감당을 선수 본인에게만 묻는다면 너무 무책임한 일 아닐까요? 중도에 그만둔 선수들도 운동을 했을때는 귀한 인재였을겁니다. 부상이든, 그 어떤 이유로 인해 뜻하지 않게 그만 둔 선수가 있다면 그책임을 모두 선수 본인에게만 전가하는 일은 훌륭한 인재를 버리는 일과 같다고 봅니다. 일단 선수들에게 부여되는 교육과정부터 바꿔야 된다고 봅니다. 평가 또한 달라야 된다고 봅니다. 그들도 귀한 우리나라의 인재들입니다.



글 / 임수원 (경북대학교 체육교육과 교수) 

 “도서관에 가서 책 3권을 빌려서 읽었어요. 공부하려고 책을 빌린 것은 아마 태어나서 처음일걸요
” Y대학교 농구부 센터 전00(사회체육과 2학년)은 “서양문화와 봉건제도”라는 주제로 A4용지 3장
짜리 보고서를 쓰느라 1주일을 끙끙됐다. 그는 “뭘 해야 할지 막막해 과목 조교한테 문자메시지로
질문을 보내고, 전화도 여러 번 했다”면서 “운동부가 공부 때문에 질문을 하니까 조교가 신기해
하더라”고 말했다. (KBS 시사기획 쌈, 2007).

위의 진술내용은 학원엘리트 스포츠가 안고 있는 그릇된 현실을 집중 조명하여 ‘죄송합니다, 운동부 입니다’ 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KBS 다큐멘터리의 일부 내용이다. 이것은 여태껏 우리 사회가 학생 선수를 단지 운동만 하는 학생으로 편협하게 바라보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중도포기 대학선수들이 학업과 관련하여 처해있는 실정을 우리사회의 주 문화와 하위문화의 관계
에서 의미 있게 설명해 볼 수 있다.

 
우리사회에서 주 문화는 학생들에게 열심히 공부하여 사회적으로 성공을 하도록 주문한다. 스포츠
하위문화에서도 운동선수들에게 주 문화와 방향은 같으나 그 방식에서 공부가 아닌 운동을 열심히
해서 성공을 하도록 요구한다. 이러한 관계에서 보면 운동을 하여 크게 성공 하거나 프로 팀이나
실업 팀으로 진출하는 선수들의 경우 성공에 이르는 방식은 다르더라도 그나마 주 문화가 요구하는
방향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대학에서 운동을 그만두게 되는 중도탈락 선수들의 경우 오랜 선수생활로 인해 기초학력이
크게 부족하기에 주 문화가 요구하는 성공 방식을 갖추고 그것을 실현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너무나
어렵다. 중도탈락자들은 자신의 진로를 운동이 아닌 학업능력에 의해 결정하고 성취해야 하기에
많은 갈등과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중도탈락자가 아니더라도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계속 운동을 한 선수들의 경우에도 프로팀이나
실업팀으로 진출을 하지 못하면 운동으로 졸업을 했다손 치더라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대학선수들의 프로진출 비율이 매우 낮다는 점을 감안하면 졸업한 많은 선수들이 진로와
관련하여 비슷한 입장에 처하게 된다. 특히 대학에서 운동을 하다가 군복무나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 운동을 그만 두게 되는 중도탈락자들은 자신의 진로와 관련하여 많은 고민과 갈등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면 이들이 갈등을 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다름 아닌 기초학력 부재이다.
운동선수로 대학을 진학한 이들은 기초학력 수준이 갖추어져 있지 않기에 대부분이 학점을
취득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는다. 그들은 대학 졸업장을 받지만 우리 사회의 주 문화에서 요구하는
성공조건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에 직업세계로의 진출에 큰 장애요인이 된다. 여기서의
대학졸업장은 겉치레에 불과하고, 무의미하다.

 
그러면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초등학교 선수에서부터
중․고등학교, 나아가서는 대학선수에 이르기까지 ‘공부하는 선수상’을 정립하여 실행해야 할 것이다.
이들이 대학에서 선수생활을 계속하든 중도에 탈락을 하든 최저학력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최소한의 주 문화가 요구하는 기초학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기초학력을 갖추고 있다면 프로에 진출하지 못한 선수이건 중도탈락한 선수이건 자신이 원하는
분야로 진로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며 진로에 대한 갈등을 없앨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기초학력
수준만 갖추어져 있다면 프로에서 은퇴하는 선수들도 제2의 진로를 모색하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스포츠에서 중도탈락 하여 대학을 졸업하였든 아니면 대학선수로 졸업장을 취득한 경우든
학생으로서의 기본적 소양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면 그 졸업장은 자신의 진로를 모색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은퇴이후의 긴 삶을 보장해 줄 수 있고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가시적인 대학
졸업장이 아니라 기본적 소양을 갖춘 학력일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최근 Y대학교 농구부의 ‘공부하는 운동선수 만들기’프로젝트는 한국 대학
스포츠 변혁의 선두주자로서 ‘대학이 바뀌면 중․고등학교가 따라올 것이고, 결국 한국 학원 엘리트
스포츠가 제자리를 찾게 될 것이라는 철학이 담겨있다. 뿐 만 아니라 이 프로젝트는 한국 학원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의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변화 모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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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박보현 (한국체육대학교 박사후 과정)



연이어 광장이 화제가 되고 있다. 작년 12월 19일은 서울광장 사용 조례를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꾸기 위한 주민발의 청구인 서명 시한이었는데, 집계 결과, 유효청구인수인 8만 968명을 훌쩍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서울시의 서울광장 운영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을 드러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2002월드컵 거리응원을 훌륭히 소화해냈던 바로 그곳이다.





2009년 조성된 광화문광장도 소란스럽긴 마찬가지다. 12월 12~13일에 열렸던 ‘FIS 스노우보드
빅에어 월드컵’ 때문인데, 광화문의 역사성을 무시한 대회 유치, 현 서울시장의 재선 홍보용
행사라는 논란이 크게 일었다. 조성 당시부터 광장이라기보다는 ‘고립된 섬’이라고 비난을
받았던 광화문광장 역시 2002년 한일월드컵 때는 거리응원의 중심이었다. 붉은악마들이 맘껏
뛰어놀던 그 광장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의 광장은 경기장을 대신하며 출발했다. 모두가 경기장에 들어갈 수
없는 대신 광장에 모여 경기를 봤을 뿐인데, 어느 순간 경기장 이상의 스펙타클을 연출하기
시작했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응원의 모습들마저 경기장의 그것을 넘어섰다. 축구경기를 초월한
문화를 시민들이 직접 생산해내면서 광장은 경기장 대신이 아니라 경기장 그 이상의 그 무엇이
되었다. 모두가 거리로 쏟아져 나와 제 나름의 의사를 표출하면서 하나가 되었고 그 집합행동의
경험은 참여와 자발성이라는 시민의식을 한껏 고양시켰다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했다.


그랬던 광장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 2006년 독일월드컵을 앞두고서다. 서울시는 월드컵
거리응원을 위한 서울광장 이용권을 놓고 공개입찰을 붙였다. SKT컨소시움(SKT, KBS, SBS,
조선일보, 동아일보, 서울신문), KTF컨소시움(KTF, 붉은악마, 현대자동차), 문화방송 등
세 주체가 경쟁을 벌였고, SKT컨소시움이 그 주체로 선정됐다. 국가대표 경기를 응원하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누군가가 주도해야 한다면 당연히 붉은악마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시민들은 붉은악마의 컨소시움 참여에 일단 당황했고, 응원을 주관할 수 있는
권리가 사고 팔수 있는 종류의 것인지 생각하며 두 번째 당황했다.
굳이 자본에 그 권리를
넘겨, 보기 드물게 피어나는 시민들의 자발적 문화의 기를 꺾는 이유가 뭐냐는 비판이 제기됐던
것은 당연하다. 비판은 광장이 갖고 있는 역사성 때문에 더욱 증폭됐다. 광화문에서 서울광장으로
이어지는 일대는 8.15광복을 경축하는 인파가 몰려들었던 곳일 뿐 아니라, 4·19의 독재타도
함성이, 6월 민주화항쟁의 메아리가 살아 숨 쉬는 곳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광장은 권력이 행사되는 장이면서, 동시에 그 권력과 맞선 자들이 충돌하는
장이 되어왔다.
반전평화운동의 메카로 불리는 영국의 트래펄가 광장, 프랑스혁명의 정신을
담고 있는 프랑스의 콩코르드 광장, 반파시즘 공화주의를 표방하는 스페인의 까딸루냐 광장,
러시아대혁명의 역사가 펼쳐졌던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 광장 등이 그랬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광화문에서 덕수궁 대한문까지의 공간 역시 좌우로 의정부와
육조 관청이 자리하던 권력의 핵심부이기도 했으나, 동시에 유생들이 상소 형식의 시위를 하고,
서민들이 민생 집회를 열던 공간이기도 했다. 이렇게 대중을 향해, 그리고 대중으로부터 의사를
전달하고 전해 듣던 공간이 현대국가에 이르러서는 소통의 공간으로서 확립된 것이 오늘날의
광장인 셈이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을 앞두고 대한민국의 대표 광장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까? 2002년 6월,
그때와 같은 함성과 퍼포먼스를 보게 될 수 있을까? 2002년의 축제를 재현하는 가장 강력한
조건은 한국 대표팀의 선전이겠지만, 이를 가능케 하는 우선 조건은 스포츠라는 축제를 시민들이
스스로 즐길 수 있도록 판을 잘 벌여주는 일이 될 것이다. 수많은 볼거리와 전시이벤트는
시민들의 즐거움을 배가할 수 있겠지만, 스포츠가 그러했듯이 시민들을 수동적인 객체의
역할로 제한할 위험이 있다. 열려 있으니,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그러한 문화적 환경을 갖추는 것이 오늘날 스포츠가 시민문화와 어우러질 수 있는 전제
조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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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은정보네요 ㅎㅎ 잘보고 갑니다~!

  • 심지어는 피파 자체에서 제동을 걸 수도 있다는 기사가 나오던군요. 모여서 기업 로고나 그런 '홍보'가 이루어 진다면 돈을 내라;;;;라는... 틈새가 조금은 더 좁아 졌습니다 ㅜㅡ

  • 음..'' 2010.03.17 09:54 신고

    붉악의 컨소시움 참여는 skt의 홍보의 장으로 변할것을 우려해서 참여 했던거저..KT쪽의 힘을 빌려서 예전처럼 서포팅 하려구요 물론 패배 했지만요 ;;
    응원을 주관할 권리를 팔려고한건 서울이었고 붉악은 그걸 지키려니 컨소시움에 참여할수 박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글 / 박보현 (한국체육대학교 박사후 과정)




올림픽이나 월드컵과 같은 스포츠메가이벤트가 대외적으로 표방하는 슬로건은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장을 마련
하는 것이다. 그러나 스포츠메가이벤트는 불행히도 국가대항전이라는
속성상 세계평화보다는 국민들로 하여금 자국 팀의 승리에 더욱 더 목마르게 만든다. 이러한
목마름은 국민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드는 묘한 힘을 발휘해 국민통합의 대업을 달성하는데
크게 기여하게 된다. 이는 2002년 한일월드컵의 기억을 떠올린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대회기간 동안 보여준 붉은악마의 카드섹션, 그리고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진 거리응원의 풍경은 우리 국민 스스로를 놀라게 했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부터 찬사를
받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세계 각국으로부터 찬사를 한 몸에 받았던 2002년 한일월드컵의 주역 붉은악마가 2002년
한일월드컵 직후 한국사회를 좌·
우로 갈라놓는 주범으로 지목받았다면 믿을 수 있을까? 오늘날
한국사회의 주요 갈등의 원인 중 하나가 진보와 보수로 나뉜 좌․우 갈등이다. 좌파로 찍힌
진보진형, 우파임을 떳떳하게 자랑하는 보수진형. 이들의 갈등이 어떻게 2002년 한일월드컵과
연관될까? 붉은악마를 대놓고 좌․우 갈등의 주범으로 지목한 사람들은 없다. 그러나 붉은악마가
주도했던 응원문화에 대한 지식인들의 해석과 덧붙임은 한국사회에서 나타나는 갈등의 원인인
진보와 보수의 이념적 차이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보수 긍정의 입장
이들은 주로 붉은악마가 사용한 응원도구들에서 애국적인 경향을 살펴볼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것이 젊은 세대를 다시 국가와 민족이라는 담론영역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했다. 예컨대, ‘태극기’를 일상공간으로 해방시키고 ‘대~한민국’이라는 구호를 혼신을 다해
외치는 군중들의 마음속에 애국심이나 민족을 향한 열정이 자리잡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20대와 대한민국의 뜨거운 포옹’이라는 대표적 보수주의자인 조갑제씨의 표현이 이를 대변한다.

이에 대해 정치적 해석을 거부하는 입장은 ‘태극기’나 ‘대~한민국’이라는 구호를 사용하는 것은
응원대상인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대표성’을 드러내는 가장 상징적인 기호이기 때문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붉은악마가 개별적으로 소속된 구단 서포터즈에서 구단의 응원가를 부르고 구단의
깃발을 흔드는 것과 별다른 의미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진보 긍정의 입장
붉은악마 현상의 대표적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대규모 군중동원의 괴력을 볼 때, 스포츠에 대해
정치적 변혁의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는 긍정적 역할을 부여하는 입장이다. 다음에 제시한
홍성태교수의 글이 이 입장을 대변한다.

‘붉은악마 현상은 통치와 이윤의 논리에 지배되는 우리의 도시 공간에 대한 범국민적 저항으로서
중요하다. 무엇보다 주요 도시의 주요 길거리가 모두 노는 곳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중략)... 국가와 자본과 자동차가 지배하던 도심이 시민의 자발적 열광의 장소로 바뀌었을 때,
이 사회는 더 이상 이제까지 우리가 알던 그 사회가 아니었다.’ 이에 대해 진보 부정의 입장은
사회변혁이라는 것은 결국 고통을 수반하는 작업인데, 놀기 위해 뭉쳤던 월드컵 인파가 그러한
역량으로 쉽게 변화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는가 라는 문제를 제기했다.

진보 부정의 입장
흔히 좌파적인 월드컵 혐오라고 불리는 이러한 평가들은 월드컵 기간에 중요한 사회적 현안과
쟁점들이 월드컵 관련 보도로 일관한 언론들에 의해 묻혀버렸다는 것이 주장의 핵심이다. 가령
인권운동사랑방의 경우 ‘붉은악마를 부추기지 말라’는 논평을 통해 붉은 티셔츠의 물결이 우리
사회의 풀뿌리 민주주의도, 노동자ㆍ노점상의 생존도, 집회ㆍ시위의 자유도 순식간에 삼켜버렸으며,
붉은악마 현상에는 넘실거리는 국가주의와 맹목적 애국심이 있을 뿐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입장에 대해 진보 긍정의 입장은 세상을 병들고 잘못된 것으로만 보는 비관적 시각이
민중의 관점이냐고 물으면서, 고된 노동에서 벗어나 서로 어울려 즐겁게 노는 민중의 삶으로서
붉은악마 현상을 볼 필요가 있음을 주장했다.

정치적 해석은 거부한다
‘붉은악마’ 지도부는 꾸준히 자신들에 대한 정치적 해석을 거부했다. 국가대표팀 서포터즈로서
‘붉은악마’의 출범에는 국내 프로축구 각 구단의 ‘서포터즈’들이 뿌리 역할을 했고, 이들의
연합체로서 붉은악마가 가능하게 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붉은악마’는 사실 ‘국가’라는 집단보다
‘축구’라는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들이 사용하고 있는 응원
아이템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보다 혁신되고 독특한 것이 많기는 하지만, 응원팀과 같은 색의
유니폼을 입는 것, 머플러를 사용하는 것 등의 기초적인 응원 문화는 유럽축구리그에서 가져왔다는
점에서 볼 때도 이들에 있어 국가대표팀을 응원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축구문화 만들기의 일환일 뿐,
그것이 최우선의 가치는 아니라고 말했다. 카드섹션 문구 가운데
‘CU@K리그’는 이러한 그들의 성격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예라는 것이다.

이처럼 붉은악마들은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보여주었던 국민들의 열광적 응원에 대한 정치적
해석을 경계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 특히 거리에서 함께 했던 이들은 이에 동의한다. 하지만,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은 그들의 바람처럼 축구를 축구로 보지 않는다.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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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ㅁ- 2010.03.02 13:55 신고

    2002년 당시 그냥 즐긴거 뿐인데 언론에서는 애국심의 분출이다. 이렇다 저렇다 하면서 갖가지 분석기사를 내놓았죠.

  • 1111 2010.03.02 20:44 신고

    전형적인 물타기 수법이네요...좌우, 진보보수 패를 가른것은 친일파를 뿌리로하는 집단이지요...
    편갈라서 이익본 놈들이 그거 만들어 놓은거지요....다른이유 붙여서 물타기하지 마삼...제생각에는
    기자님도 친일파의 후손?

  • 무식한좌파 2010.03.07 21:47 신고

    축구 시작은 귀족들이 하는 스포츠였지만 현대적인 축구에서 시작을 보면 노동자들의
    스포츠로 대변됨 빳다같은 미국 스포츠는 자본주의적 산물이지만. 축구는 애초에 빳다와 달랐음 단지 EPL 프리메라리가같은 빅리그에서 엄청난 돈으로 선수를 영입하면서 변질되게 되지만.
    한국 K리그는 전혀다른 리그의 형태임.
    축구를 정치색으로 물들일려는 우파와 좌파의 행태는 웃기기만 할뿐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