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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학수 (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연구소장)



지난 5일 심장병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뜬 포르투갈의 ‘흑표범’ 에우제비우의 부고를 전하는 미국 뉴욕 타임스 기사에서 눈에 확 들어온 문장이 있었다. 

“Eusebio played down racial and national politics, praised others and denied stories about him that could have been turned into legend."

이 문장은 에우제비우는 인종과 민족적인 정치를 작게 다루고, 상대 선수를 칭찬하며 전설이 될 수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부인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게다. 1960년대 펠레와 함께 세계 축구를 호령했던 슈퍼스타였던 그의 새로운 면을 알게 한 부분이다.


기사 작성자인 뉴욕 타임스의 원로 칼럼니스트 조지 벡시가 에우제비우를 뛰어난 축구실력 뿐 아니라 따뜻한 인간애를 지닌 이로 평가한 것은 아주 신선한 의미로 다가왔다. 벡시는 에우제비우가 생전에 훌륭한 인품을 보여주며 여러 번 자신의 소신과 의지를 밝혀  부고 기사에서 충분히 인종주의와 식민주의를 싫어했다고 써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1968년부터 뉴욕 타임스에서 스포츠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벡시는 축구, 농구, 권투 등 다양한 스포츠에 관한 기사를 써오며 전문적이고 날카로운 안목을 보여 왔는데, 이번 에우제비우 부고 기사 역시 베터랑 저널리스트다운 수준 높은 글이었다. 


보통 스포츠팬들이나 저널리스트들이 사실보다는 서사적인 무용담이나 이야기를 더 좋아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선수를 넘어서 한 인간의 인생철학에 대한 세부적인 일면을 상세하게 보여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벡시가 얼마나 철저하게 취재를 했으며, 선수에 관해 많은 자료를 갖고 있는 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월드컵 축구대회를 8번이나 취재를 한 바 있는 벡시는 다른 어느 매체도 범접하지 못하는 뉴욕 타임스의 자랑인 부고기사(Obituary)에서 에우제비우에 대한 심도 깊은 기사를 쓰는 역량을 발휘하는 개가를 올린 것이다. 벡시의 부고 기사를 통해 천부적인 재능과 실력, 의지 등을 갖춘 위대한 축구스타인 에우제비우는 비단 스포츠에서 이기고, 지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인생의 가치를 추구한 이로 스포츠사에 결코 잊을 수 없는 불멸의 스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 같다.


벡시의 기사를 보면서 필자를 비롯한 국내 스포츠 저널리스트들은 자성의 기회를 가져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기사 각도와 보도방법 등에서 큰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다. 국내 언론들은 에우제비우에 대한 부고기사를 대체적으로 선수활동 경력 등에 초점을 두고 보도했다. 1960∼70년대 펠레와 함께 세계 최고의 공격수로 이름을 날린 전설적 인물로 1942년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모잠비크에서 태어났으며 1960년부터 15년 동안 포르투갈 벤피카에서 활약하고 무려 11차례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어냈고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9골을 터뜨리며 포르투갈의 3위 달성을 이끌었다는 정도의 내용이었다. 

좀 더 자세한 기사는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북한과의 준준결승에서 전반 25분까지 0-3으로 뒤지다 혼자 4골을 터뜨려 5-3의 극적인 역전승을 이끌었고, 1970년도 한국을 방문해 35m 대포알 같은 프리킥 슛을 성공시켜 당시 대표팀 골키퍼 변호영이 “그의 슛은 내가 겪은 가장 무서운 것이었다.”고 했던 것을 소개하는 정도였다. 모 신문에서는 그의 자서전 ‘내 이름은 에우제비우’의 일화 등을 소개하며 ‘헝그리 정신’을 극복한 스포츠 스타의 상징으로 뻔한 스토리를 전했다.


이 정도로 그에 대한 부고기사를 처리하는 게 과연 합당한 것인가. 50대 이상들에게 유세비오라는 영어식 발음으로 더 많이 알려졌던 1970년대 펠레와 함께 국내에서  최고의 세계 스포츠 스타로 인기를 한몸에 받았던 에우제비우라는 점을 고려할 때, 뭔가 아쉬운 부분이 많다.

1991년 포르투갈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 남북청소년 단일팀이 출전했을 때, 필자를 비롯한 많은 국내 보도진이 에우제비우를 포르투갈 현지에서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당시 에우제비우는 벤피카 유소년 축구팀을 지도하는 고문을 맡았는데, 대회 스폰서인 코카콜라 측의 주선으로 한국 보도진과 격의 없이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차돌같이 단단한 몸이지만 키는 다소 작았다. 실제 축구선수로서 그의 키는 175cm 정도이지만 탄탄한 근육질로 체격이 더 커 보였다. “북한전이 내 인생에서 최고의 경기였으며 그 경기를 통해 축구선수로서 정점을 찍었다”며 에우제비우는 인터뷰한 기자들과 일일이 개인적으로 사진을 찍어주는 친절과 아량을 베풀었다.


(지난 1991년 포르투갈 세계청소년 축구선수권대회 취재갔을 때 에우제비우와 찍은 모습. 에우제비우는 세계축구를 호령한 슈퍼스타였지만 다정다감한 이웃 아저씨같이 좋은 인상과 마음씨를 가졌다. ⓒ김학수)



에우제비우가 국내 보도진에게 다시 얼굴을 보인 것은 2002년 한· 일 월드컵 때였다. 포르투갈 TV 해설자로 방한한 에우제비우는 예선에서 한국과 한 조에 속한 포르투갈에 대한 전력을 묻는 국내 언론 취재진에게 전문적인 코멘트를 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불가능한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던 북한과의 잉글랜드 월드컵 8강전에서의 인상적인 경기를 기화로 세계축구의 ‘흑표범’으로 불렸던 에우제비우는 다른 어떤 선수들보다 많은 얘깃거리를 가졌던 스타였다. 1960년대 유럽축구무대에서 드물었던 흑인선수로서 세계적인 스타로 첫 주목을 받았으며 훨씬 연봉을 많이 주는 이탈리아에서 활동하지 않고 고국처럼 여겼던 포르투갈 축구를 지켰다. 경기가 끝나면 상대 선수들의 뺨을 만져주고, 포옹하는 따뜻한 우정을 주고받았던 그는 미국 프로야구 최초의 흑인 선수 재키 로빈슨에 비교되기도 했고, 글로벌 스타로 크게 성공한 디디에 드로그바의 롤모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가난, 흑인, 식민주의를 극복한 한편의 인간승리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그의 삶에 가려져있던 개인의 이면들을 국내 언론들은 제대로 들춰내지 못했다. 특히 남북한과 깊은 관련이 있는 위대한 축구 스타 에우제비우의 부고를 접하면서 느낀 점은 앞으로 국내 언론들이 좀 더 심층적이고 다양한 관점으로 선수의 인간적인 부분에 대한 기사를 많이 취급해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선수이기 이전에 인간이 먼저라는 사실을 에우제비우는 이 세상을 떠나면서 말을 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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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2014.01.21 15:15 신고

    글쎄요, 물론 부고기사가 남북한관련, 기록관련해서 뉴스가 나왔지만

    제가 읽은 기사중에서
    에우제비오에 대해서 축구선수의 인간적인 면에 대한 기사도 많았습니다.

    아래와 같이 링크합니다

    http://mnews.joins.com/news/article/article.aspx?total_id=13573945

    http://www.fourfourtwo.co.kr/interview/interview_view?idx_B=1140&RNUM=72

    http://m.sports.naver.com/worldfootball/news/read.nhn?oid=032&aid=0002427879

    한국 저널리스트들은 획일성에 대해서 비판하시는데 뉴욕타임즈의 백시같은 저널리스트들이 나오려면 한국스포츠언론이 어떻게 하면 더 심층적일수있는지 방법론을 제시해야되는거아닐까요?


글/김학수 (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연구소장)



스포츠는 언듯보면 속도를 경쟁하는 듯이 느껴진다. 육상 트랙종목의 경우 빠른 스피드를 앞세워 출발지점에서부터 도착지점에 누가 빨리 가느냐로 승부가 갈라진다. 비록 육상이 아니더라도 순간 스피드를 활용해 힘과 탄력을 발휘할 경우, 어떤 종목이든 유리할 수 있다. 속공이나 돌파후에 빠르게 이어지는 농구의 레이업슛, 네트 옆으로 낮은 토스에 이어 신속하게 이루어지는 배구의 속공, 순간 스피드를 이용해 화려한 공중묘기를 선보이는 체조와 피겨스케이팅 등. 스포츠 종목들은 속도의 경기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잔잔히 살펴보면 스포츠는 ‘빠름’ 보다는 ‘느림’쪽에서 참 묘미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전체적으로 빠른 동작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 하나의 몸 동작이 이어져 만들어진다. 스피드는 완벽한 신체동작이 전제가 됐을 때만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겉과 속이 다른 스포츠가 갖고있는 역설이다.


히딩크 감독이 2002 한일월드컵 축구 대표팀을 이끌었을 때이다. 월드컵이 열리기 1년전 유럽 원정에 나선 한국팀은 체코팀에 5-0으로 대패했고, 한국에서 열린 컨페더레이션컵서 1998 프랑스 월드컵 우승팀인 프랑스에게 5-0으로 완패했다. 큰 점수차로 패배한 히딩크 감독에게 ‘오대영’이라는 닉네임이 따라붙었다. 한국팀의 패인을 전반적으로 분석한 히딩크 감독은 한국축구의 최대 강점인 특유의 스피드가 오히려 최대 문제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경기 초반 오버페이스를 할 정도로 죽어라고 뛰어다니는 한국 선수들은 경기가 거듭될수록 스피드가 뚝뚝 떨어져 스피드 안배를 철저하게 하는 유럽팀들에 맥없이 무너졌던 것이다. 일순간 빠른 축구를 한 것처럼 보였을 뿐, 경기 전체적으로는 오히려 ‘굼벵이 축구’를 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 선수들이 유럽 선수들에 비해 결코 빠른 축구를 하는게 아니다”며 “한국축구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필요할 때 스피드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 축구의 문제점을 간파한 뒤 스피드 완급을 조절하는 훈련에 돌입했다. 공격수들은 무리하게 스피드를 앞세워 돌진하지 않도록 했으며 수비수도 볼만 쫓느랴 체력을 소모하지 않도록했다. 전체적으로 스피드와 체력안배를 조절할 수 있었던 한국축구팀은 월드컵 직전 유럽팀과 대등한 전력을 확보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세계축구에서 특급공격수로 인정받고 있는 메시 등의 플레이를 자세히 보면 왼발, 오른발로 툭툭치며 느릿하고 정교한 발기술로 현란한 개인기를 발휘한다. 상대 수비수가 급하게 달려들다가 어느 순간 개인기에 말려들어 헛발질을 해대며 수비가 뻥 뚫리는 경우가 많다. 메시 같이 테크닉이 뛰어난 공격수들은 상대 수비수의 발동작을 보며 볼컨드롤을 엇박자로 구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속도전을 펼치는 마라톤도 엄밀히 보면 제 페이스를 얼마나 잘 지키느냐가 승부의 관건이다. 세계 최고의 기록을 갖고 있는 선수일지라도 초반부터 질주하는 경쟁자를 따라가다가는 오버페이스로 곤두박질치는 수가 많다. 따라서 느린 거북처럼 컨디션을 꾸준히 이어나가야 자기 기록을 낼 수 있고,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다. 


내년 2월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맞붙게될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의 라이벌 대결도 어떻게 보면 느림의 승부가 될 듯하다. 2010 밴쿠버 올림픽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던 김연아는 예술적 표현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아사다의 도전을 뿌리칠 수 있었다. 한 발을 들고 나비처럼 활짝 몸을 펼치는 빙판 연기는 마치 슬로우 비디오를 보는 것 같았으며 공중에서 연속 도는 회전묘기는 탁월한 표현력으로 압권을 이루었다. 이에반해 아사다는 빠른 스피드와 트리플 악셀 연기를 펼쳤으나 예술적 표현력에서는 김연아보다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김연아와 아사다의 결정적인 차이는 고도의 기술을 얼마나 잘 표현하는가에서 갈렸다. 김연아는 세부 동작 하나 하나를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했던 반면, 아사다는 마치 벼락치기 공부를 한 수험생마냥 모든 동작을 마치 암기해서 하는듯한 부자연스러운 동작을 보였던 것이다. 





밴쿠버 올림픽 우승이후 한때 부상 등으로 인해 은퇴를 결심했던 김연아가 세계 선수권대회 우승에 이어 최근 골든 스핀 오브 자그레브에서 다시 정상을 차지하며 건재를 과시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이 갖고있는 느림의 내공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소치 올림픽서도 김연아가 빠른 스피드를 앞세운 아사다보다 속내를 드러내보이는 진짜 실력을 보여준다면 올림픽 2연패를 차지할 수 있다고 본다.


우생마사’(牛生馬死)란 사자성어가 있다. 홍수 때 말은 발버둥치며 물길을 거슬러 헤엄치다 힘이 빠져 죽지만 소는 물에 몸을 맡긴 채 둥둥 떠다니다가 살아남는다는 뜻이다. 일이 꼬이더라도 무리해서 억지로 풀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무조건 앞만보고 빨리 달린다고 스포츠에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스피드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연스럽고 정밀하게 구사하는  테크닉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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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학수(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연구소장)



“스포츠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하나요?”


한국체육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에서 실시하는 스포츠 언론교실 학생들이나, 대학교와 대학원 스포츠 관련학과에 재학 중인 학생들에게 주로 받는 질문이다. 30여 년간 스포츠에 대한 글을 써온 필자만이 갖고 있는 특별한 글쓰기 원칙이 있지 않을까 해서다. 글쓰기에 고민하는 학생들이면 이러한 물음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제대로 된 스포츠 글쓰기를 가르쳐주는 데가 별로 없어 학생들의 고민은 좀처럼 해법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이럴 때 필자가 내놓는 대답은 “글쓰기에 왕도는 없다”라는 것이다. 글쓰기는 수학문제나, 과학 공식처럼 딱 떨어지는 정답을 제시하기가 어렵다. 보편타당하고 객관적인 글쓰기 모형을 제시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만의 독특한 글쓰기 패턴과 비법들을 갖고 있어 한마디로 “글쓰기가 이렇다”고 말하기 힘들다. 


일반적인 글쓰기와 달리 스포츠 글쓰기는 에세이나 소설, 시와 다르다. 글 쓸 대상이 정해지면 자신이 갖고 있는 생각을 감상적으로 쓰는 문학적인 글과는 판이하다. 스포츠 글쓰기는 보통  대중을 상대로 하기 때문에 일단 언론적인 글쓰기 형태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어떠한 틀을 잡고 설명 하기는 힘들지만 나만의 글쓰기 원칙 같은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보통 학생들이 스포츠글쓰기에 대한 질문을 해오면 내가 지키는 글쓰기 원칙 등에 대해 대략적으로 얘기 해준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몇 가지가 있다. 먼저 이슈, 전문성, 재미 등이 글감을 고를 때의 고려대상이다. 매일 매일 벌어지는 스포츠 현장에서 대중들의 관심을 끌려면 이슈가 될 수 있는 이야기나 화제여야 한다. 따라서 자신만의 관심사가 아닌, 대중들의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는 것을 글쓰기 목록에 가장 중요하게 올린다. 쓸 만한 이슈가 선정되면 전문성 있는 글을 쓰는 게 필요하다. 전문성을 확보하는 방법은 다양한 정보 찾기를 통해 비판 및 대안을 제시하는 일이다. 필요한 정보를 찾는 것은 주로 인터넷 검색, 언론 기사 참고, 내가 읽은 책과 지식 등을 활용해서 이루어진다. 


일단 이슈나 얘기 등이 선정되면 이를 재미있게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다. 스포츠 자체가 흥미와 재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딱딱하고 건조한 방식으로 글이 쓰인다면 대중적인 스포츠글로서는 낙제점이다. 야구에서 투수전으로 진행되는 단조로운 경기나, 축구에서 골이 터지지 않는 수비공방전이 펼쳐진다면 얼마나 재미없는지를 스포츠팬이라면 다 알 수 있듯이 스포츠글도 어려운 전문용어를 남발하거나 설명식의 글을 써서는 읽는 이의 시선을 받기가 어렵다.   

글감이 결정된 후는 글 쓸 때의 전체적인 구조를 잡는다. 대개가 이야기의 개인화를 거쳐 일반화, 개인화하는 형식을 밟아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주제와 관련된 개인적 경험이나 관련된 이야기 등을 먼저 소개한 뒤, 정보에 대한 분석과정과 비판 및 대안 등을 제시하는 것으로 글이 이어진다. 예전에는 먼저 주제와 관련해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리드(전문)를 세우고 이어서 순차적으로 중요한 내용 등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최근에는 개인화한 에피소드나 소재 등을 먼저 소개하는 것이 훨씬 많아지는 추세이다. 이는 현대사회가 거대해지고 복잡해지면서 여러 다양한 현상 등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작고 단순한 문제들로부터 풀어나가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방법론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 필자가 쓴 칼럼 ‘군대클래식(armed force)과 군대스리가의 차이’라는 글을 쓸 때를 설명하자면, 페이스북에 미국 대학농구 개막전이 한국에 있는 미군기지 평택의 캠프 험프리에서 개최된다는 사실을 지인을 통해 알게된 후 인터넷 사이트 구글 검색으로 보충적인 정보를 얻었다. 다양한 언론 기사와 경기 내용 등을 접한 뒤, 한국군에서 이와 같은 대형 스포츠 이벤트가 가능한지의 여부를 평소 알고 지내는 군 장성을 전화 인터뷰를 통해 확인한 뒤 대안 등을 제시하는 칼럼을 쓸 수 있었다.


얼마 전 모 스포츠포럼지에 실린 ‘9월이면 생각나는 스포츠거인-박세직 전 서울올림픽 조직위원장’의 기획기사는 먼저 박세직 위원장에 대한 원고제의를 받은 뒤 박세직 위원장이 서울올림픽 개막식에서 어떤 모습으로 비쳐졌는지를 당시 신문을 포함한 언론 등의 보도를 참고했으며 구체적인 그의 개인적인 특징을 전문에 담고 유가족과의 전화인터뷰도 시도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우렁찬 목소리에 늠름하고 당당한 자세, 국제신사다운 세련된 매너, 외국인도 놀라는 영어실력. 1988년 9월17일. 서울올림픽 개회식에서 개회사를 했던 박세직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라는 전문으로 시작하는 A4 2장짜리 글이 완성됐다.



수 십 년간 반복해서 해와도 항상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 스포츠글쓰기이다. 이슈를 잡아야 하고, 살아있는 정보 등을 분석해 비판과 대안 등을 제시해야 하는 스포츠글쓰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스포츠글쓰기를 계속 하는 것은 그만큼 의미가 크고 값어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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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학수 (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연구소장)

 

 

최근 사이클 원로인 이달순 수원대 명예교수의 팔순잔치와 출판기념회에 참석했을 때, 선배 여성 언론인들과 한 테이블에 앉게되는 기회가 있었다. 70대로 이미 고희를 넘긴 이들은 남승자 전 KBS 보도주간, 윤호미 전 조선일보 부국장, 이정희 전 연합뉴스 고문 등이다. 여성 언론인이 아주 드물었던 1960~80년대 방송, 신문, 통신 등에서 투철한 기자정신과 실력을 갖고 언론계서 최고위직에까지 올랐던 입지적적인 여걸로 소문난 분들이다.
한국 최초의 여기자인 추계 최은희 사업회 회원이기도 한 이들은 기자사회서 여기자들을 위한 롤모델이 됐으며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최은희 선생의 장남인 이달순 명예교수의 팔순잔치의 초대에 응한 것도 이들이 적극적인 대외활동을 하고 있다는 방증인 셈이다.

 

언론계선 이들의 빼어난 활약에 영향을 받은 때문인 듯, 여성에 대한 ‘유리천장’이 많이 얕아졌다. 필자가 언론계에 입사했던 1980년대 초중반만해도 신문, 방송, 통신사 등에 매년 사별로 여기자가 1명 정도 합격하는 정도였으나 30여년이 지난 지금은 남성을 초월, 여초(女 超)현상이 굳어졌다. 각 언론사별로 합격자의 절반이상이 여성이라는 얘기일 정도이니까 말이다. 남성들이 강세를 보였던 체육부 기자도 여성들이 현저하게 늘어났으며 무거운 장비를 들고 다니는 카메라 기자도 여성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사법고시, 외무고시에 이어 언론고시에서도 여성들의 진출이 대거 늘어나는 추세가 대세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여성들이 언론고시에서 좋은 성적을 보이는 것은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성으로 작문에서 빼어난 능력을 보이고 영어 등 외국어 실력에서도 남성을 크게 앞서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최고의 학문을 연구하는 대학서도 여성교수가 최근들어 크게 늘어나고 있는 분위기이다. 한국엘리트 체육의 산실인 한국체육대만해도 여성교수 채용이 확대되면서 실력있는 여성들이 이론과 실기교수로 여러 명 발탁됐다. 여자 단거리 육상 국가대표 출신인 김경숙 교수가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대학원장에 취임해 주목을 받았으며 유도 국가대표 조민선 등 비롯한 경기인과 전문 연구분야와 교양과목 등에서도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이미 교수 연구동은 각 층별로 여성 교수들을 위한 전용 화장실을  남성교수들과 동등하게 운영하고 있을 정도이다. 아직은 남성 교수들이 훨씬 많은데도 불구하고서도 이같은 여성교수들에 대한 배려를 하는 것은 여성교수들의 입지가 그만큼 강화됐다는 의미이다.

 

정부, 언론, 학계 등 많은 영역에서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나 정작 스포츠계서는 아직도 유리천장이 두껍게 처져있는 모습이다. 지도자, 주요 체육단체 임원, 국제대회 선수단장 등에서 여성들은 크게 배제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한체육회장을 비롯한 대한체육회 가맹 경기단체장에서 여성 회장은 전무하며 각종 국제대회에도 여성이 단장을 맡는 경우도 전례가 거의 없다. 여성 종목의 지도자도 대부분 남성들이 도맡아 하고 있다. 체육인재 육성재단의 자료에 따르면 역대 올림픽 국가대표 지도자 및 본부임원에서 여성의 비율은 지도자 4.4%, 임원 19.5%로 남성에 비해 월등히 낮다. ‘마초문화’로 대표되는 스포츠분야에서 유독 여성들의 존재감이 미약한 것은 오랫동안의 관행이었다. 올림픽 전체 메달의 32.4%를 여성들이 획득했으나 여성들의 스포츠계 진출은 미미한 상태였다.

 


이러한 남성지배의 스포츠문화는 남녀 동등체제로 이루어지는 국제스포츠계의 추세에 역행할 뿐 아니라 한국스포츠 발전에 기여한 여성 스포츠인의 노력을 경시하는 것이다. 2012 런던올림픽을 기점으로 올림픽 종목에서 남녀간 종목에 균형을 이루었다. 즉 남성만의 스포츠는 올림픽에서는 이제 볼 수 없게 된 시대가 온 것이다. 축구, 복싱, 유도, 레슬링, 스키점프, 역도 등 예전 남성만의 종목들이 모두 여성 부문을 채택해 정식 종목으로 운영하고 있다. 따라서 지도자 및 경기단체 임원 등서도 여성들에게 문호가 활짝 열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성 스포츠리더가 필요한 것은 남녀간의 성적 균형을 맞춘다는 의미뿐 아니라 여성만의 특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일로 받아들여진다. 열린 사고방식을 갖고 미래지향적인 여성들은 기본기에 충실하면서 착실하게 성장을 시켜 안정된 기량을 갖춘 선수를 키울 수 있는 역량은 남성들에 결코 못지않다는 분석이다.

 

일부 남성 지도자들은 지도자 자질을 갖춘 여성을 찾기 힘들다며 여성 스포츠 리더의 육성에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여성 스포츠 리더는 여성 스포츠 뿐 아니라 남성 스포츠의 질적인 성장에도 적지않은 도움과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게 여성 스포츠 전문가들의 얘기이다.

                                         김나미 체육인재육성재단 사무총장

 

스키 국가대표 출신으로 체육인재 육성재단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김나미 국제 바이애슬론 부회장은 “여성 스포츠 리더가 많이 육성돼야한다. 여성들의 장점들을 많이 활용해 스포츠서도 균형적인 발전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했다.

 

무릇 세상의 이치는 음양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말한다. 남성만의 사회도, 여성만의 사회도 참다운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스포츠의 다양성과 독특성을 살려나가기 위해선 여성 스포츠 리더의 육성과 참여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스포츠 발전을 이루는 길이며, 안정된 사회와 국가로 나아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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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ㅇ 2017.04.03 15:33 신고

    전체적으로 인터넷 보급으로 인해 해외 수준높은 리그를 쉽게 접하며 점차 시청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지는 것이 국내 모든 스포츠가 내재하고 있는 문제인데, 국내 남성 스포츠보다도 더 경기수준(일부는 아기자기함에서 매력을 찾습니다만 결과적으로 여성 스포츠의 한계를 극명히 드러낸다고 봅니다)이 떨어지는 여성 스포츠는 프로로써 존재의의가 있을까요? 그저 정치적인 이유로 존재한다고밖에 안 느껴집니다. 유리천장이라고 하기엔 여성스포츠 대부분이 너무 매력이 없지요.

 

 

글/김학수(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 연구소장) 

 

 

            아침에 학교에 들어서면 인조잔디 구장에서 한체대 여대생 축구선수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고 비지땀을 흘리며 훈련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여자 축구의 수준도 나날이 높아져 웬만한 남자선수들을 방불케한다. 공중에서 몸싸움을 하며 헤딩볼을 처리하는 선수가 있는가하면 날렵하게 몸을 날려 슬라이딩 헤딩슛으로 골문을 가르기도한다. 20대 초반에서 10대 후반의 여자 몸으로 남자들도 결코 하기가 쉽지 않은 거친 축구를 하는 것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가녀린 여자로써 남자와 똑같이 축구를 해도 과연 몸이 괜찮을까 걱정도 들었다.


마침 미국의 인터넷 미디어 ‘허핑턴 포스트’가 최근 ‘내 아내와 내가 딸에게 축구를 그만두게 한 이유’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해 축구 선수의 헤딩과 뇌손상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기사에 따르면 ‘팬리그를 위한 스포츠 정책’ 책임자인 켄 리드는 축구가 소녀의 뇌에 아주 해로운 운동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13살의 막내딸을 설득해 축구를 그만두게 했다고 밝혔다. 리드는 “축구를 하면서 단기간 또는 장기간 뇌손상을 입을 수 있는 위험은 축구가 주는 혜택보다 훨씬 크다고 판단해 축구를 계속 하고 싶어하던 딸을 다독거려 다른 여러 종목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미국 유소년 스포츠에서 뇌손상을 당하는 선수는 미식축구 다음에 축구가 두 번째로 많다.대부분 축구선수 뇌손상은 선수끼리의 충돌이나 선수가 맨 땅에 부딪혔을 때 발생한다. 하지만 정작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외형적인 뇌손상 자체 보다는 연습때나 경기에서 헤딩을 하면서 누적되는 잠재적인 뇌손상이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뇌연구소 케빈 구스키에비츠 박사에 따르면 장기적인 뇌손상은 뇌진탕 진단의 숫자보다는 잠재적인 뇌손상의 숫자와 더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즉 오랫동안 뇌손상에 노출이 될 경우 뇌진탕의 상태가 크게 악화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 의학협회 저널’에 발표된 논문에서 하버드 대학의 한 연구원은 축구선수와 수영선수의 뇌를 비교한 결과, 수영선수에서는 나타나지 않은 뇌 회백질의 변화가 축구선수에서 감지됐다고 밝혔다. 캘리포니아 홈볼트주립대에서 행한 연구에서는 축구경기중 헤딩을 가장 많이 한선수는 헤딩을 전혀 하지 않은 선수들보다 인지능력이 떨어졌으며 두통, 어지럼증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검증결과를 발표했다.


‘뇌 저널’은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뇌 트라우마-뇌진탕과 잠재적인 뇌손상-이며 대부분의 뇌손상은 선수들 사이에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오랫동안 잠복해있다 누적적인 피해를 가져온다”고 최근 연구를 밝혔다. 규칙적인 축구헤딩이 뇌손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주도한 마이클 립톤 박사는 “축구 헤딩은 뇌 신경섬유질을 찢는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지속적으로 헤딩을 하게된다면 뇌조직의 퇴화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높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보스톤대 메디컬센터 뇌질환 트라우마센터 공동소장인 신경외과 전문의 로버트 칸투 박사는 14세 이하의 유소년들은 축구에서 헤딩하는 것을 금지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축구가 신체에 미치는 안전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비단 젊은 선수들이나 유소년만은 아니다. 스칸디나비아 축구클럽에서 은퇴한 프로축구 선수들의 연구 조사에서 기억감퇴에 문제를 갖고 있는 선수들이 발견됐다.


대부분의 스포츠 종목처럼 축구서도 선수들이 운동중에 부상을 당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부상부위가 인체에서 가장 중요한 뇌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뇌부상은 무릎, 발목,어깨, 등 부상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신체 활동의 모든 것을 이끄는 뇌는 인간에게는 핵심적인 부위이다.


리드는 자신의 글에서 “ 유소년들에게 팀스포츠는 신체적인 향상, 팀워크, 리더십, 극기, 몰입, 배려 등 다양한 장점과 가치를 키울 수 있게 한다. 축구 말고 다른 종목에서도 얼마든지 이러한 점을 배울 수 있다”며 딸이 축구를 그만두게 한 명분과 당위성을 강조했다.


우리 여자축구 선수들은 헤딩과  뇌손상의 상관성에 대한 이러한 연구결과들에 대해 어떤 느낌과 생각을 갖고 있을까. 설마 이기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몸을 던지는 수십년전의 남자축구 선수들과 같은 행태로 운동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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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 2013.09.13 22:30 신고

    타당성이 있는 연구결과인가요;
    뭔가 재밌는 이야기네요.
    헤딩하면 머리나빠지니 딸 축구안시켰다니;

  • 2013.12.01 08:32 신고

    참나 그럴거면 축구를 없애버리던지ㅡㅡ

  • 아무리 2013.12.15 23:53 신고

    그래도 복싱만 하겠나요

  • hw 2014.01.02 15:55 신고

    Head Games이라구요 운동선수의 뇌손상에 대해 다룬 다큐멘터리 있습니다. 이 다큐보면 축구에대한 뇌손상도 american football 만큼 심각하다고 나오네요.

 

 

글/김학수(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 연구소장) 

 

 

          1981년 서독 바덴바덴 IOC 총회에서 88 서울올림픽을 유치하는데 성공한 우리나라는 7년간의 준비기간 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공동유치를 명분으로 집요하게 개최방해책동을 벌인 북한의 악의적인 행위뿐 아니라 국내의 불안한 정쟁으로인해 올림픽 반납설까지 나돌았을 정도였다. 전두환 정권의 권위적인 통치로 인해 민주화를 요구하는 야당과 민주투사, 학생 등이 주축이 돼 서울올림픽 개최 반대를 주장하기도 했다. 이른바 올림픽의 ‘저주’라고 할 수 있었다. 올림픽의 저주란 올림픽을 유치한 나라가 개최준비를 하면서 정치,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는 현상을 말한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동서화합을 이뤄낸 성공적인 대회로 인류사에 빛나는 업적을 세웠지만 하마터면 올림픽의 저주 덫에 걸릴 뻔했다.

 

 


브라질과 터키가 올림픽의 저주에 시달리고 있다. 2016년 리오데자네이루 올림픽과 2014년 월드컵을 유치한 브라질은 열악한 공공서비스와 관리들의 부패를 비난하는 반정부 시위가 6월 한달동안 이어졌다. 상파울루에서 시작된 반정부 시위는 빠른 속도로 브라질 전역으로 확산됐다. 시위는 올림픽 개최 반대로 이어졌다. 세계 최대 축구경기장 중 하나인 마라카나 스타디움 재건축계획은 많은 공사비가 든다는 이유 등으로 심각한 여론 반대에 봉착했다. 마라카나 스타디움을 쇼핑과 엔터테인먼트 허브로 바꾸는 계획이 개인 컨소시엄으로 진행돼 추악한 ‘정경유착’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또 빈민가인 ‘파벌라스’에 대한 재개발은 거주자들이 이주하기도 전에 공사에 들어가 물의를 빚었고, 토종 인디언들이 수십년간 거주해온 마라카나 스타디움 옆 인디언 박물관의 철거도 논란을 일으켰다. 올림픽 유치준비 때문에 이루어지는 전반적인 도시 재건축에 반대하는 시위자들은 진압경찰의 최루가스와 고무탄 발사에도 굴하지 않고 거리 곳곳에서 반대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터키도 브라질과 시위 양상이 비슷하다. 이스탄불 도심 재개발 문제가 발단이 된 터키 시위사태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모른다. 이스탄불 도심에 위치한 탁심 광장 인근의 작은 공원을 재개발해 쇼핑몰을 조성하려던 시 당국의 계획에 일부 환경단체 회원들이 반발하면서 불이 붙었던 시위는 2020 하계올림픽 유치를 목표로 잡은 에르도간 정부의 발목을 붙잡았다. ‘이스탄불 2020 : 함께하는 다리’라는 캠페인으로 올림픽 유치에 나선 에르도안 정부는 신공항 건설, 흑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새 운하 건설, 세 번째 보스포러스 다리 건설 등 대대적인  도시 기반시설 확충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던 터였다.


군부독재와 정정불안으로 오랫동안 위기기간을 보냈던 브라질과 터키는 지난 10년동안 정치와 경제분야에서 많은 진전을 보이면서 민주주의의 진보와 시장의 발전을 이룩한 대표적인 신흥국이었다. 경제가 성장하고 국가 위상이 높아진 브라질과 터키는 국민적 통합과 국가적인 자신감을 입증해 보이기위해 회심의 카드로 빼어든게 올림픽과 월드컵과 같은 메가스포츠이벤트 유치였다.

하지만 서울올림픽 때의 우리나라가 그랬던 것처럼 두 나라도 민생과 국정에 대한 불만과 불안이 권위적인 통치행위에 대한 반감과 함께 고개를 들면서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들었다. 미국, 일본, 영국, 독일 등의 선진국과 달리 신흥국들은 정치, 경제적으로 불안한 요인들을 안고 있어 올림픽과 같은 대형 스포츠 이벤트를 유치할 때 잠재해있던 국가적인 문제들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개최한 그리스는 무리한 올림픽 시설투자와 과소비 등으로 인해 국가재정적자 심화를 초래해 국가위기사태를 초래했으며 유럽 재정위기, 나아가 글로벌 경기침체를 낳게했다.


2011년 세 번째 도전 끝에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우리나라는 올림픽 저주의 참화를 빚지 않기위해서 정치, 경제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어야 할 것이다. 정치적인 안정을 도모하고 과다한 경기장 건립 등을 피하며 경제적으로 무리가 없는 올림픽을 치러야한다. 우리나라는 이미 올림픽의 저주를 한 번 겪었던만큼 내공과 면역성도 충분히 갖춰져 만반의 대비를 잘하면 그렇게 넘기 힘든 벽도 아닐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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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학수(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 연구소장) 

 

 

       1905년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확인한다. 조선은 일본이 지배할 것을 승인한다’는 조항으로 유명한 카스라-태프트 밀약을 체결한 미국의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전 대통령은 1910년 미국 프로야구 시즌오픈 이벤트로 워싱턴 그리피스 스타디움 관중석에서 역사적인 첫 시구를 한 인물로 알려져있다. 존 에프 케네디 전 대통령의 할아버지인 전 보스턴 시장 존 피츠제랄드는 1912년 펜웨이파크에서 벌어진 첫 프로야구 경기에서 시구를 맡았으며, 뉴욕시장이었던 알 스미스는 1923년 구양키즈 스타디움 개장경기에서 시구 행사의 주인공이 됐다.

 

 


야구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투구인 시구(First pitch)는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지금과 하는 형태가 많이 달랐다. 초기에는 스탠드에서 행사가 이루어져 현재와는 많이 다른 느낌을 준다. 근엄하고 무게있는 표정의 대통령을 비롯한 명사들이 스탠드에서 공을 던지면 필드에 있는 선수들이 이를 받는 식이었다.


시구는 그동안 많은 변화를 겪었다. 시구가 언제부터 지금처럼 투수 마운드에서 하게된지는 명확하지는 않다. 아마도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쳐 진행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할 뿐이다. 스탠드에서 투수마운드로 시구 방법이 바뀐 것은 관중들에게 흥미와 관심을 좀 더 이끌어 내기 위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관중석에서 그저 볼을 던지는 것보다는 선수들처럼 마운드에서 서서 실전처럼 하는 것이 관중들에게 더욱 어필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부 전통주의자들은 이러한 변화에 거부반응을 보였지만 대중적인 분위기로 향하는 시대의 흐름을 거역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미국 프로야구의 시구 행사의식을 제대로 벤치마킹한 나라는 한국이었다. 한국 프로야구는 1982년 3월27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린 MBC 청룡과 삼성 라이언즈의 개막적 시구로 역사적인 막을 올렸다. 군부쿠데타로 정권의 기반을 마련한 전두환 전 대통령은 국민의 관심을 사기위해 프로야구를 탄생시켰으며, 첫 시구를 직접 던졌다.


시구는 대통령, 시장 등 정치인이나 군 장성 등 정치 사회적으로 유력인사들이 수십년간 도맡아 해왔으나 요즘에는 스폰서들을 위한 마케팅 기회로 간주돼 이벤트성으로 변했다. 권력자보다는 연예인부터 지역 사회 봉사자까지 다양한 보통사람들이 참여하는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됐다.


주로 밤경기에 시구행사를 하는 미국 프로야구는 영화배우, TV 진행자, 스폰서 대표, 각종 이벤트 당선자 등에게 시구 기회가 주어진다. 지난 해 LA 다저스 스타디움서는 TV쇼 진행자 베어 그릴스가 볼에 불을 붙여 시구를 하는 포퍼먼스쇼를 해 인기를 끌었다. 예전 점잖고 엄숙한 표정으로 임했던 권위적 행사의 시구와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미국 프로야구의 대부분 팀들은 외야석 A보드나 스코어보드에 광고를 하는 스폰서들을 유치하기위해 시구 행사를 활용하기도 하며, 시즌 티켓 보유자, 대량으로 티켓을 구입한 회사나 학교 대표자들에게도 시구 기회를 주고 있다.


한국 프로야구도 이벤트성 시구를 하는 것은 미국과 흡사하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정치, 경제인들이 시구를 맡았던 것이 대부분이었으나 2000년대 이후 시구를 하는 이들이 인기 여자 연예인, 스포츠 스타, 레이싱 걸, 지역 영웅 등으로 다양한 직업인들로 퍼져 나가고 있다. 탤런트 홍수아는 시구를 통해 눈길을 모은 대표적인 연예인이다. 홍수아는 2005년 7월8일 잠실 두산-삼성전 시구자로 나서 미니스커트와 하이힐 대신 캐주얼복에 운동화를 신고 야무진 시구를 던져 팬들을 놀라게했다. 이때 그의 피칭을 두고  ‘개념 시구’라는 말이 생겼다. 홍수아가 성공적으로 시구를 한 뒤 리듬체조 요정 손연재, 레이싱 모델 이수정 등이 역동적인 투구로 시구를 던져 많은 관심을 끌었다.


지난 해에는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하바드대 교수가 방한중에 한화-LG 잠실전 시구자로 나서고 싶다고 스스로 자원 했으며 소방대원, 만학도 부부 등도 시구자로 나서기도 했다.


권위와 명예의 상징에서 보통 사람들의 무대가 된 시구의 변화된 시대상에 거부하는 한 팀이 있다. 전통의 명문 뉴욕 양키스이다. 뉴욕 양키스는 올 정규 시즌전 시구 세리머니를 줄였다. 한 시즌 10~20회로 제한한 것이다. 한 시즌 팀경기가 162회나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10차례 경기에 한 번 정도 시구를 하는 셈이다. 뉴욕 양키스가 제한적으로 시구를 하기로 한 것은 시구를 소중한 명예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란다.


미국과 한국 프로야구의 많은 팀들이 시구의 대중화를 이끌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전통을 꼿꼿이 지키는 팀도 있다는 사실은 특기할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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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학수(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 연구소장) 

 

               20여년간 스포츠 기자를 하면서 많은 기자회견을 취재했다. 기자회견장의 모습은 대체로 비슷했다. 회견장 기자석에 앉아 인터뷰를 하는 감독이나 선수의 말을 주의깊게 듣고, 취재 노트에 적으며 필요한 질문을 직접했다. 기자회견은 말 그대로 기자들을 회견장으로 초청해 일련의 정해진 절차에 따라 인터뷰 당사자가 여러 메시지를 직접 밝히는 방법이다. 인터뷰어의 일거수 일투족에 기자들의 관심이 쏠릴 수 밖에 없다. 기자회견에서 나온 말들은 언론 보도를 통해 독자나 시청자들에게 주요 이슈가 된다. 1988년 서울올림픽, 2000년 시드니 올림픽,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1990년 북경 아시안게임,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등을 현장에서 취재기자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메달리스트 등과 기자회견을 가졌다.

 

 

 


올 초 대한농구협회 홍보이사를 맡게되면서 전직기자에서 홍보담당자로서 역할이 바뀌었다.  스포츠 취재를 하던 기자에서, 기자들의 취재편의를 지원하는 홍보맨으로 상황이 180도 변한 것이다. 지난 16일부터 22일까지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벌어진 제3회 동아시아 남자농구선수권대회는 1995년 아시아 남자농구선수권대회 개최 이후 18년만에 열리게 된 성인 남자농구 국제대회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도 홍보 담당자로서 처음 갖는 데뷔무대였다.


특히 한국, 중국, 일본, 대만, 홍콩, 마카오, 몽골 등 7개국이 참가한 동아시아 남자농구대회는 규모가 작은 국제대회이기는 하지만 올초 방열 회장 체제로 새롭게 바뀐 농구협회 집행부가 처음으로 치르는 대회였던만큼 성공적인 개최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또 프로농구의 인기에 가린 아마농구의 존재감을 국제대회를 통해 널리 알리는 것이 필요했다.


국제대회가 성공하기 위해선 한국의 우승과 함께 신문, 방송 등 언론에서 대회를 적극적으로 보도하는 것이 홍보의 최대 목표였다. 따라서 홍보담당자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홍보담당자는 인터뷰 대상자를 선정하고 취재기자들을 위한 브리핑과 기자회견을 준비하는 게 주요 업무이다. 경기전 취재나온 미디어 기자들의 상황을 미리 파악하는 것으로 기자회견의 준비작업이 시작된다. 이번과 같은 국제대회의 경우 많은 국내외 기자들이 취재를 온다. 실제로 대회 기간중 한국과 일본, 중국, 대만 서울특파원, 홍콩 기자 등이 취재를 했다.


기자실 바로 옆에 위치한 기자회견장은 기자들이 편히 취재를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드는데 가장 신경을 썼다. 적절한 조명, 충분한 전기코드, 대회 로고와 스폰서 로고가 새겨진 백드롭, TV 카메라 기자들의 촬영위치 등은 주요 체크 대상이었다. 기자회견장 자리는 테이블과 의자를 두 줄로 이어서 배치를 했으며 인터뷰어 테이블과 홍보담당자 테이블을 전면에 놓았다.


실제 기자회견을 할 때는 홍보담당자, 기자, 선수단 통역 등이 함께 참여했다. 경기가 끝나기 직전, 기자들로부터 인터뷰 대상자를 추천받아 각국 선수단 통역에게 이를 전달해줘 기자회견장에 참석토록 했다. 기자회견은 진 팀, 이긴 팀 순서로 따로 따로 진행했다. 진 팀을 먼저 해야 기자회견이 무리없이 이루어지는 그동안의 경험 때문에 순서를 그렇게 정했다. 만약에 이긴 팀을 먼저 기자회견을 하게되면 진 팀은 기다리지않고 체육관을 떠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 참고가 됐다.

  
기자회견에 참석하는 인터뷰어는 감독과 그날 활약이 많은 선수로 구성됐다. 기자들은 국내 신문, 방송, 인터넷 스포츠 미디어 기자와 이 대회를 위해 방한한 일본, 중국, 홍콩 기자들로 짜여졌다. 보통 기자회견은 홍보담당자가 감독과 선수들에게 경기 분석과 평가에 대한 브리핑을 요청한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는 순서로 진행됐다. 한국팀 기자회견에는 한국 기자와 한국팀과 경기를 했던 외국팀 기자들이 참석했다. 기자들의 질문은 경기 안팎의 팀과 선수 문제, 개인 선수들의 컨디션, 프로농구와의 연계성 등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내용이 주를 이뤘다.


많은 기자들이 질문을 할 수 있도록 시간 할애에 신경을 썼다. 기자회견 시간은 아무래도 한국팀이 가장 길어, 20여분 안팎이 걸렸다. 외국팀 기자회견은 한국팀의 절반 정도인 10여분 남짓했다.


 홍보 담당자는 기자회견을 어느 시점에서 끝내야 할 지를 재빠르게 감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자들 질문이 끊어지다가 이어지기도 하고, 한 기자가 자주 질문을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홍보 담당자가 기자들의 질문을 유도하면서 적절하게 임기응변을 발휘하는게 필요하다. “더 이상 질문이 없습니까? 그러면 오늘 기자회견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멘트가 기자회견의 마무리 발언이다.


기자들이 개별적으로 경기직후 팀 관계자들을 먼저 취재하는 것을 막는 것도 홍보 담당자에게 중요한 일이다. 추가적으로 취재할 것이 있으면, 공식적인 기자회견 다음에 개별적으로 시간을 할애해 취재토록 유도했다.


홍보담당자로서 언론 환경이 예전 취재기자를 할 때와는 엄청 변했다는 것을 실감했다. 인터넷 스포츠 미디어 기자들, 그 중 ‘점프볼, ’바스켓 코리아‘ 농구 전문 미디어, ’OSEN' 등 스포츠 미디어 등 많은 인터넷 기자들이 실시간으로 기사와 사진, 인터넷 중계 등을 생생하게 보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경기기사, 인물 기사, 경기장 안팎 표정, 선수단 움직임과 전력 분석 등 다양하면서도 심층적인 기사를 다루었다. 신문, 방송이 주도하던 언론이 인터넷 미디어로 점차 옮겨가고 있음을 확인케 해주는 대목이었다. 조선, 중앙, 동아 등 메이저 신문과 스포츠 신문 등은 준결승, 결승 기사를 보도했지만 농구기사의 주류는 인터넷 미디어 기자들이 이끌었다. 외국의 언론환경도 우리와 비슷해 보였다. 일본, 홍콩, 중국 기자들은 주로 인터넷 농구 전문 사이트 기자들이었다. 

2백자 원고지로부터 기사를 쓰기 시작해, 컴퓨터 자판으로 두들겨 기사를 보내던 스포츠 취재 기자 20년을 정리하고 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 연구소장으로 스포츠 미디어의 여러 현상 등을 연구하면서 스포츠 홍보 전문가로 처음 치러본 첫 농구 국제대회는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새로운 관점을 갖게 해주었다. 기자의 시각으로 한쪽 방향만 봤던 일방향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기자시절 경험을 되살리며 기자들이 많은 기사를 쓸 수 있도록 좋은 여건과 환경을 마련해주는 양방향적인 자세가 홍보담당자에게 필요한 역량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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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학수(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 연구소장) 

 

 

경기중 평생 장애를 안고 살 수도 있는 부상을 당한 대학선수의 치료는 언제까지 가능할까.
지난 9일 미국대학농구 랭킹 1위 루이빌 대학을 최종 우승팀으로 가려낸 2013 NCAA(미국 대학스포츠 위원회) 대학농구 선수권대회에서 루이빌 대학 2학년생 가드 케빈 웨어의 발목부상 치료책임을 놓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미국인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3월의 광란’ 대학농구대회에서 부상사고가 발생한데다 부상 정도가 심각했기 때문에 큰 관심을 모았다.  


8강전서 불의의 부상을 당한 웨어는 결승전에서 미시간대를 82-76으로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한 루이빌 선수들이 서로 포옹하며 스크럼을 짜고 환호하는 모습을 멀쭉이 지켜봐야했다. 공중에서 형형색색의 색종이가 날리는 가운데 스크럼 대열 끝에서 지팡이를 짚고 서 있었다. 웨어는 비록 부상 때문에 결승전에서는 뛰지 못했지만 “모두가 잘 해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8강전에서 발생한 웨어의 부상장면은 너무나 섬뜩한 광경이어서 큰 충격을 주었다. 팀 동료들과 코치는 부상당한 웨어를 보고 눈물을 흘렸으며 TV 중계 카메라는 충격적인 부상 모습을 직접 노출하지 않고 회피하기도 했다. 웨어는 곧 병원으로 이송돼 무릎관절 봉합수술을 받았다.

 

 

 


루이빌 대학 관계자는 “웨어는 개인적으로 가족보험을 들어놓았고 학교도 보험적용혜택을 줄 수 있어 병원비용 조달에는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웨어는 루이빌 대학을 떠나면 부상과 관련한 치료비용을 직접 부담해야할 것 같다. 대학팀이나 NCAA 의료보험규정에는 대학선수들이 일단 대학을 떠난이후에는 만성적인 부상으로 인한 치료비에 대해서는 부담의무가 없다고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는 소속 선수가 아니여서 대학에서 부상선수 치료비를 부담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루이빌 대학 관계자는 웨어에 적용될 수 있는 보험 조건 등에 대한 세부 사항을 밝히기를 거부했으며 NCAA도 특정 선수의 의료부담조건에 대해 말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선수들의 복지와 인권을 전담하는 전국대학선수협의회장 라모기 후마는 “웨어의 부상은 대학선수들이 얼마나 취약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며 “만약 소속팀을 떠나면 모든 의료비용은 자기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웨어와 같은 경우를 당한 선수의 예는 또 있다. 남가주대에서 1998년부터 2001년까지 미식축구팀 수비수로 4년간 활약했던 밥 데마스는 경기중 십자인대가 끊어지고 목과 어깨에 부상을 당했다. 현재 필름제작자와 파트타임 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데마스는 아직도 부상당한 무릎이 정상이 아니어서 많은 통증을 느끼고 있으나 대학측으로부터 어떠한 치료비용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데마스는 “대학들은 선수는 종업원이 아니라 노동자에게 주어지는 보상 등을 줄 수가 없다고 둘러댄다. 그러나 대학스포츠는 많은 이익을 내는 비즈니스로 대학 선수들도 노동자와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NCAA 1부리그 톱 그룹의 대학팀들은 농구 프로그램 참가를 통해 일년에 4천만달러(400억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이 부상을 당할 경우 일반 학생들과 똑같은 의료혜택을 제공할 뿐이다. 선수들이 일반 학생들에 비해 부상의 고위험군에 노출될 수 있으며, 특별한 외과치료, 장기간의 회복기, 자기공명테스트의 값비싼 검진 등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선수들에게 일반적인 의료보험이 적용된다.


캘리포니아 의회는 지난 해 대학선수들의 불평등한 의료복지를 개선하기위해 학생 선수권리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에 따르면 년간 1천만달러(1000억원) 이상의 방송 중계권 수입을 올리고 있는 4개 캘리포니아대학들은 부상으로 인해 장학금 혜택을 받지 못한 선수들에게 부상 전과 똑같이 장학금을 지급하고 전 선수들에게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했다. 대학 선수들이 노동자와 비슷한 대우를 받도록 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만했다.


NCAA의 장학금 규정은 선수들에게 불리하게 적용되는만큼 이에 대한 개선의 목소리가 높다. 선수가 외부 직업을 갖거나 개인적인 활동을 할 경우 년간 장학금 혜택에서 불이익을 주고 있는 현재 규정을 바꿀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대학들의 선수 복지 문제를 살펴보면서 한국 대학의 상황을 알아봤다. 미국과 사정은 비슷했다. 우리나라 대학은 미국과 같이 선수들에 대한 상해보험을 대학별로 가입해놓고 있다. 선수가 부상을 당할 경우 대학에서 비용을 부담하는 경우가 많으며 큰 부상은 학교 보험과 함께 선수 개인 상해보험으로 치료비용을 대체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양대 배구팀 박용규 감독은 “경기중이나 훈련중 선수들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 학교의 경우 학교에서 상해 보험을 들어놓고 있고 병원도 운영해 선수 치료에 큰 어려움은 없다”며 “ 졸업 이후에도 영향을 줄 큰 부상을 당한 선수가 아직 없어 이에 대한 치료 문제는 거론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미국 스포츠나 한국 스포츠 모두 선수들을 위한 복지 문제에 좀더 적극적인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 대학이 돈 때문에 부상선수의 건강과 미래에 부담을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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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 난감한 문제네요.
    선수들에게 몸은 상당히 중요하지만 더욱더 중요한건. . 하고싶은걸 못하는게 더 마음 아플것입니다. 게다가 치료비까지 가중된다면.....
    어느쪽이든 입장이 명확히 있기때문에 정말어려운 결정일거 같네요.
    생각하게 만드는글 잘 보고 갑니다.

    • 맞아요~아빠생각님 :)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건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하는 거겠죠.
      운동선수로서의 생활도 그렇고, 은퇴 후에도 문제가 될테니까요.
      선수에 대한 배려와 복지와 필요해보입니다.
      앞으로도 자주 놀러오셔서 생각을 공유해주세요! ^^

  •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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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합니다.

 

 

 

글 / 이종세(용인대학교 객원교수)

 

 

 

샛별 성지훈(남자), 김성은(여자) 두각
2013 서울국제대회에서 개인기록 크게 단축

 

한국마라톤에도 ‘봄’은 오는가.
 기록 기근에 허덕이던 한국마라톤이 모처럼 기지개를 켰다. 그 무대는 지난 3월17일 서울 광화문~잠실 주경기장 간 42.195km 코스에서 열린 2013년 서울국제마라톤 겸 제84회 동아마라톤대회. 한국마라톤의 기대주 성지훈(22 ․ 한국체대)과 김성은(24 ․ 삼성전자)이 각각 2시간12분53초와 2시간27분20초로 자신의 최고기록을 경신하면서 국내 남녀부 1위에 올랐다. 특히 이들은 자신의 개인기록을 앞당기며 우승해 더욱 돋보였다.

성지훈은 2011년 자신의 첫 풀코스(서울국제마라톤) 도전에서 세운 최고기록 2시간18분27초를 5분34초나 단축했고 김성은 역시 2010년 서울국제마라톤에서 수립한 2시간29분27초의 개인기록을 2분7초 경신했다. 국내 남자부 2위를 한 김영진(30 ․ 삼성전자)도 2분58초 앞당긴 2시간13분49초, 남자부 3위인 신예 오진욱(21 ․ 한국체대) 역시 6분32초를 단축한 2시간14분9초를 기록했다. 국내 여자부 2위를 마크한 김선애(35 ․ 합천군청) 또한 2시간36분41초로 자신의 기록을 1분4초 줄였다.

 

 

2013 서울국제마라톤 국내 남자부 우승을 차지한 성지훈(한국체대). 그는 자신의 최고기록을 5분34초나 앞당겨 한국마라톤 기대주로 떠올랐다. <스포츠동아 제공>

 

 

 성지훈, 사실상 국내 1인자…김영진 오진욱 김선애도 기록 경신 성공 
 성지훈의 이번 대회 기록은 지난해 서울국제마라톤에서 정진혁(23 ․ 한전 ․ 당시 건국대)이 수립한 2시간11분48초(2012년 국내 랭킹 1위)에 1분5초 뒤진다. 하지만 정진혁은 최근까지 족저근막염 등 부상으로 정상적인 컨디션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2010년 광저우 아시아 경기대회 남자마라톤 우승자인 지영준(32 ․ 코오롱)은 현역선수 가운데 최고인 2시간8분30초의 기록을 갖고 있으나 부상 등을 이유로 2011년부터 3년째 마라톤대회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사실상 국내 제일의 현역마라토너로 성지훈을 꼽는 이유다. 여기에 성지훈의 1년 후배로 이번 대회에서 자신의 기록을 무려 6분 이상 단축하며 3위에 오른 오진욱도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보였다.

 

 

2013 서울국제마라톤 겸 제84회 동아마라톤 국내 남자부 1위를 차지한 성지훈(한국체대·왼쪽)과 지도자상을 받은 정남균 한국체대 코치. 정코치는 2000년 이 대회 국제 남자부 우승 주역이다.<동아일보 제공>

 

 ‘용장 밑에 약졸 없다’ 2000년 우승자 정남균코치, 성지훈 오진욱 지도 
 이들은 모두 2000년 서울국제마라톤에서 1997년과 1999년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인 스페인의 아벨 안톤 등을 꺾고 우승한 한국체대 정남균(35)코치의 지도를 받고 있다. 2008년부터 한국체대 선수들을 지도하고있는 정코치는 “성지훈, 오진욱 두 선수 모두 부상이 없고 뛰어난 지구력이 강점이다. 스피드만 보완하면 2시간 10분 벽도 돌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성지훈은 5,000m 14분34초87, 10,000m 30분38초24가 최고기록으로 스피드를 보강해야한다는 지적을 받고있다. 최경렬 대한육상경기연맹 전무와 김복주 한국체대 교수는 “이들 선수가 내년 3월 서울국제마라톤에서 2시간 8, 9분대를 뛰어낸다면 9월의 인천아시아경기에서 우승도 바라볼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1958년 도쿄(이창훈) 1982년 뉴델리(김양곤) 1990년 베이징(김원탁) 1994년 히로시마(황영조) 1998년 방콕(이봉주) 2002년 부산(이봉주) 2010년 광저우(지영준) 등 7차례 아시아경기 남자마라톤에서 우승했다.       

 

 

2013 서울국제마라톤 국내 여자부 1위를 차지한 김성은(삼성전자). 그는 2시간27분20초를 기록, 1997년 권은주가 수립한 한국기록 2시간26분12초에 1분8초차로 다가섰다.<스포츠동아 제공>

 

 

 국내 여자부 우승 김성은, 16년 묵은 한국기록 경신 가능성 가장 높아
 지난해 런던올림픽에서 2시간46분38초의 부진한 기록으로 107명의 완주자 가운데 96위에 그쳤던 김성은. 그가 이번 대회에서 자신의 기록을 2분 이상 단축하면서 국내 여자부 2연패(국제부문 4위)에 성공했다. 김성은이 이번 대회에서 기록한 2시간27분20초는 1997년 권은주가 수립한 한국기록(2시간26분12초)과는 불과 1분8초 차. 거리로는 300여m다. 정윤희(30 ․ K-water) 임경희(31 ․ SH공사) 이선영(29 ․ SH공사) 최경희(32 ․ 경기도청)등 선배들과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16년 묵은 한국여자기록의 경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선수다. 김성은은 지난해 12월 새로 부임한 황규훈 감독의 지도아래 제주에서 70일간 하루 3시간씩의 강훈을 소화해내면서 기량이 크게 늘었다는 평가다. “종전에는 25km지점부터 힘들었는데 훈련량을 늘린 결과 이번 대회에서는 35km지점에서도 견딜만했다.”는 것이 김성은의 말이다. 대한육상경기연맹 부회장도 맡고있는 황규훈 감독은 “현재 한국 남녀선수의 기록으로 미루어볼 때 13년째 깨지지 않고 있는 이봉주의 남자 한국기록(2시간7분20초)보다는 권은주의 여자기록 경신 가능성이 훨씬 높다.”면서 그 중심에 김성은이 있음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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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합니다.

 

 

글/김학수(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 연구소장) 

 

 

              ‘헉! 헉’ 대는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와 ‘뽀드득! 뽀드득’ 하며 코트에 밀려서 나는 운동화 소리를 뚫고 ‘삐~익’ 심판의 휘슬소리가 울린다. 심판은 파울선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파울사인을 한다. 중요경기가 벌어지면 심판은 더욱 자주 휘슬을 불어제낀다. 승부에 예민해진 선수들의 플레이가 거칠어지면 파울은 더 많아지게 마련이다. 여기에다 응원단의 음악소리와 고함소리, 경기장의 잡음 등에 파묻히면 심판이 힘껏 분 휘슬도 거의 들리지 않는다. 이쯤되면 ‘농구장인지, 공연장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농구경기장에 가면 한번쯤 경험해 봤을 상황이다.


어수선한 가운데 휘슬 하나를 갖고 경기의 조정자 역할을 해야하는 심판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군대 시절 장교로 복무하면서 병사들과 구보를 할 때, 호루라기를 입에 물고 구보대열을 이끈 개인적 경험이 있었던만큼 그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잘 알고 있다. 병사들은 그냥 뛰기만하면 되지만, 인솔 장교는 호루라기를 불며 병사들의 상태까지 살펴야 해 그만큼 더 힘이 달리게된다.


농구심판의 경우도 구보뛰며 사병들을 이끄는 장교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체력적으로 나이가 어린 선수들 못지않게 많이 뛰어야 하고 순간 순간 휘슬을 불어 판정을 내려야한다. 비지땀을 쏟아가며 휘슬, 파울선언, 경기 속개 등을 해야하는게 심판들의 모습들이다. 휘슬은 선수들에게는 권위의 상징이지만 심판들에게는 고행과 번민의 상징이다.

 

 


심판들에게 필수항목인 휘슬이 건강에 해를 줄 수 있다는 보도가 나와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휘슬을 부는 심판들의 청력이 정상인들에 비해 크게 나빠질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고 최근 미국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고교농구심판 나단 윌리엄스와 그레고리 플래미 서부 미시간대 청각학과 조교수가 공동연구해 지난 1월 직업과 환경건강 저널에서 발표한  ‘스포츠 심판의 청각 상태 : 청력 건강에 악영향을 주는 휘슬’ 이라는 논문에서 이같은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보도에 따르면 연구조사한 심판들의 절반이 심판을 본 후 귀에서 울음현상이 있거나, 이명 증세를 보였다고 밝혔다. 이러한 귀울음증세는 일시적으로 나타나기도 하나, 계속 소음에 노출될 경우 고질적인 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귀울음 증세는 청력 상실을 가져올 수 있으며, 증세가 심각해질 때까지 감지돼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이 논문에서 “스포츠 심판은 초기 청력손상을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윌리엄스는 심판들사이에서 스스로 보고된 청각이상증세에 주목하면서 나이가 많은 심판들은 청력 상실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며 젊은 심판들은 일반인들에 비해 청력 상실을 우려했다. 플래미 교수는 “스포츠 이벤트는 휘슬을 비롯해 많은 소음에 노출돼 있다. 관중 고함, 요란한 음악소리, 장내 방송 등 많은 소음등이 사람들의 청력에 영향을 미친다”며 “귀는 결코 휴식을 취할 틈이 없다. 소음 피해는 다만 축적될 뿐이다. 심판의 경우 날카로운 휘슬소리는 권장 소음수치를 넘어서 청력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선수들과 관중들도 비록 심판들에비해 적지만 소음 피해를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윌리엄스는 강한 볼타격이 이루어지는 배구가 아마도 가장 큰 소음피해를 야기시킬 수 있다며 소음의 크기가 청력이상의 원인으로 보고 있지만 소음의 지속적인 영향도 결코 만만치 않은 피해를 준다고 경고했다.


보통 휘슬은 104에서 116데시벨 정도의 수치를 보이고 있는데 경기 진행을 위해 이 정도의 소리가 필요치 않으며 신기술을 활용하면 심판들이 귀를 째는 ‘삐~익’하는 휘슬소리를 내며 심판을 보지 않을 수 있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기세환 한국여자농구연맹(WKBL) 심판위원장은 휘슬소음피해와 관련한 미국측 연구결과에 대해 “국내서는 휘슬 소음이 심각한 피해를 준다는 것을 결코 생각해 본적이 없다. 보통 1쿼터에 20여 차례, 1경기에 80여 차례 휘슬을 불지만 심판들이 이것 때문에 청력이 나빠졌다는 말을 주위에서 들어보지 못했다”며 “하지만 많은 경기를 계속적으로 보다보면 휘슬 부는 것이 어느 정도 청력에 영향을 줄 수 있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아파트 층간의 소음이 살인까지 부르는 이웃간의 큰 싸움으로 번지는 우리 나라에서 아직 경기장 휘슬 소음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별반 신경을 쓰고 있지 않지만 앞으론 미국과 같이 건강상의 문제로 다루게 될 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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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현 2015.02.28 09:55 신고

    층간소음에는 두꺼운 슬리퍼가 제격이면서,얇은 슬리퍼로는 층간소음에 효과를 볼 수 없다고 하고요.

 

글 / 이종세(용인대학교 객원교수)

 

 

 

 

사상 첫 국가대표 출신 대한체육회장 탄생
경기단체 회장도 절반 물갈이…26명 신임
임기 4년 체육 단체 회장 선거 결산

 

사상 첫 국가대표 선수출신 대한체육회장의 탄생. 대한체육회 가맹 52개 경기단체 가운데 26개 단체 회장의 물갈이. 지난 2개월간 체육계를 강타한 대한체육회 회장 및 가맹 경기단체 회장 선거 열풍이 마침내 막을 내렸다. 지난 1월7일 대한역도연맹을 시작으로 55개 대한체육회 가맹 경기단체가 회장선거에 돌입, 복싱 스키 택견 등 3개 단체를 제외한 52개 단체가 회장을 뽑았고 2월22일에는 마지막으로 신임 대한체육회 회장을 선출했다. 2017년 2월까지 임기 4년의 대한체육회 회장과 가맹 경기단체 회장을 선출한 2013년 체육단체 회장 선거를 결산해본다.

ⓒ대한체육회

 

김정행 용인대 총장, 이에리사 의원 28대25로 누르고 대한체육회장 당선
이번 선거의 최대 하이라이트는 누가 우리나라 ‘체육 대통령’인 대한체육회의 수장이 되느냐였다. 사상 첫 국가대표 선수출신의 대결. 유도의 김정행 용인대 총장(70)과 여자 탁구의 이에리사 새누리당 국회의원(59)이 펼친 한판 승부가 바로 그 것. 이번 선거는 최초의 성(性) 대결, 또 같은 대학(용인대) 총장과 교수의 정면 승부였다. 김정행 후보는 지난 1월11일 6회 연속 대한유도회 회장 당선이라는 진기록을 세웠으나 이번 선거를 앞두고 사퇴했으며 이에리사 후보 역시 2월5일 휴직중인 용인대 교수직을 사임했다. 이번 선거 투표인은 52개 경기단체 대표(대의원)와 문대성 IOC 위원, 김영채 대한체육회 선수위원장 등 모두 54명. 1차 투표 결과는 김정행 후보가 28표, 이에리사 후보가 25표. 무효 1표로 김후보의 당선. 만일 김후보가 27표를 얻었을 경우 과반수(28표)에 미달, 결선 투표를 해야 했었다.
당초 지난 16년간 대한체육회 부회장을 역임한 김후보의 일방적 우세가 예상됐지만 막판 이후보가 새누리당 국회의원과 재벌기업이 맡고 있는 경기단체들의 지지표를 다수 확보하면서 3표차까지 따라 붙었다.
군소 경기단체의 후원에 힘입어 가까스로 1차 투표에서 당선이 확정된 김정행 신임회장은 선거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후보를 지지했던 분들과도 화합하면서 한국체육을 이끌어 가겠다.”면서 “내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종합 10위안에 들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선거 종반 무서운 뒷심을 발휘하면서 김후보를 추격했던 이에리사 의원은 “경기인의 마음과 실제 투표자의 마음은 다를 수 있다.”고 아쉬워하면서 “체육인들이 잘  하실 분을 뽑은 것이니 그 뜻을 받아들이겠다.”고 결과에 깨끗이 승복했다.

 

축구 정몽규, 허승표에게 역전승…농구 방열도 국회의원 2명 제치고 당선 
대한체육회장 선거 못지않게 52개 경기단체 회장 경선도 많은 화제를 뿌렸다. 육상 빙상 등 26개 단체는 회장이 유임했으나 50%인 축구 야구 등 26개 단체는 새로운 회장이 선출됐다. 내년 소치 동계올림픽과 인천 아시안게임,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을 앞두고 절반의 회장이 물갈이 된 것이다. 축구와 농구에서는 극적인 반전이 이어졌다.
연간 1천억 원의 예산을 주무르는 축구협회의 경우 1월28일 정몽규 프로축구연맹 총재(51)가 1차 투표에서 24표 가운데 7표에 그쳐 8표를 얻은 허승표 피플웍스 회장(67)에게 뒤졌으나 결선투표에서 15표를 기록, 9표에 그친 허후보를 제치고 제52대 축구협회 회장에 당선됐다. 현대산업개발 회장으로 사촌인 정몽준 전 축구협회 회장(62)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정후보는 1차 투표에서 3위를 한 김석한 후보(59)가 6표를 얻어 하마터면 결선진출도 하지 못하고 탈락할 뻔 했다. 1표가 기사회생의 발판을 마련해 주었고 결선투표에서 김후보의 표를 거의 흡수, 기적같은 역전승을 거두었다.
제32대 회장을 뽑는 농구협회 선거에서도 이변이 연출됐다. 농구 대표선수와 감독을 역임한 방열 건동대 총장(72)이 지난 9년간 농구협회 회장을 맡아온 4선의 이종걸 민주통합당 국회의원(56)과 현재 한국농구연맹(KBL) 총재인 3선의 한선교 새누리당 국회의원(54)을 가볍게 누르고 경기인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농구협회 수장 자리에 올랐다. 지난 2월5일 열린 회장 선거 1차 투표에서 방 열 후보는 예상을 깨고 21명의 대의원으로부터 과반수가 넘는 12표를 얻어 일찌감치 당선을 확정지었다. 한선교 의원은 5표, 이종걸 의원은 4표에 그쳤다. 방회장은 2009년에도 회장선거에 출마했으나 3위에 머물러 낙선했다. 방회장은 이번 선거에서 ‘정치인은 여의도로, 농구인은 농구장으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대의원들의 표심을 공략한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회장 당선자 60대가 25명으로 최다…기업인 34명 정치인 8명 경기인 6명
이번 선거 당선자의 연령대별 분포는 60대가 25명으로 가장 많고 50대가 13명, 70대가 10명, 40대가 4명 순이다. 우방우 수상스키협회 회장이 76세로 최고령이며 검도의 이종림, 댄스스포츠의 권윤방 회장이 각각 74세로 뒤를 잇고 있다. 최연소 회장은 양궁의 정의선 회장으로 43세, 다음은 빙상의 김재열 회장으로 45세, 컬링의 김재원, 카누의 이학재 회장은 각각 49세 동갑. 
직업별 분포를 보면 16명의 재벌그룹 오너를 포함, 34명의 기업인이 회장에 당선됐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양궁)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탁구) 최태원 SK그룹 회장(핸드볼)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아이스하키) 구자열 LS그룹 회장(사이클) 김재열 삼성엔지니어링 사장(빙상)등이 대표적이다.
전 현직 국회의원은 8명으로 새누리당의 이병석(야구) 김태환(태권도) 홍문표(하키) 김재원(컬링) 이학재(카누) 민주통합당의 신계륜(배드민턴)회장 등 6명이 현직이며 새누리당의 임태희(배구) 유준상(롤러) 회장은 전직이다.    
그러나 경기인 출신 회장은 이종림(검도) 방 열(농구) 윤영일(정구) 박승한(씨름) 주원홍(테니스)회장 등 6명에 불과하다. 기타 직종은 4명.

 

 

 

 2013년 경기단체 회장 당선자 현황

단 체

이름(나이)

구분

비 고

육 상

오동진(65)

유임

삼성전자 임원

축 구

정몽규(51)

신임

현대산업개발 회장

테 니 스

주원홍(57)

신임

서울시 체육회 실무 부회장 / 전 국가대표팀 감독

정 구

윤영일(72)

신임

()신성기업 전무이사 / 전 국가대표팀 감독

탁 구

조양호(64)

유임

한진그룹회장

핸 드 볼

최태원(53)

유임

SK그룹 회장

역 도

류원기(66)

신임

영남제분 대표이사

복 싱

 

 

대한체육회 관리 단체

빙 상

김재열(45)

유임

삼성 엔지니어링사장 / 평창 올림픽조직위 부위원장

유 도

김진도(63)

권대

() 기풍 대표이사 / 대한유도회 부회장 5회 연임

체 조

정동화(62)

유임

포스코건설 부회장

사 이 클

구자열(60)

유임

LS그룹 회장

농 구

방 열(72)

신임

건동대 총장 / 전 농구남자대표팀 감독

배 구

임태희(57)

유임

전 대통령실 실장 /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

씨 름

박승한(61)

신임

영남대 생활과학대 교수 / 씨름 선수 출신 박사 1

럭 비

신정택(65)

신임

세운철강 회장 / 한국해양구조협회 초대회장

레 슬 링

최성렬(53)

신임

()기륭전자 회장

수 영

이기흥(58)

유임

()우성산업개발 대표이사/런던올림픽 한국선수단장

야 구

이병석(61)

신임

새누리당 국회의원 / 국회부의장

스 키

 

 

회장선출 위한 총회 미개최

승 마

신은철(66)

유임

한화생명 대표이사

아이스하키

정몽원(58)

신임

한라그룹회장 / 전 대한아이스하키협회 부회장

하 키

홍문표(66)

유임

새누리당 국회의원

검 도

이종림(74)

신임

전 대한검도회 부회장, 전무

궁 도

조종성(66)

유임

팍스코리아나 21 이사장 / ()한국금속인쇄 회장

사 격

김현중(63)

신임

한화건설 대표이사 부회장

펜 싱

손길승(72)

유임

SK텔레콤 명예회장

태 권 도

김태환(70)

신임

새누리당 국회의원

배드민턴

신계륜(59)

신임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조 정

추성엽(58)

신임

() STX 대표이사

롤 러

유준상(71)

유임

새누리당 상임고문 / 전 국회의원

요 트

박순호(67)

유임

세정그룹 회장

볼 링

김길두(64)

신임

다이아몬드 호텔 대표이사/전 전남 볼링협회장

양 궁

정의선(43)

유임

현대자동차 부회장/정몽구 전 양궁협회장 장남

카 누

이학재(49)

신임

새누리당 국회의원

골 프

허광수(67)

신임

삼양인터내셔널 회장/ 허정구 전 골프협회장 3

근대5

이지송(73)

신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

수상스키

우방우(76)

유임

() 금양상선 회장 / 전 부산시 체육회 부회장

산 악

이인정(68)

유임

() 태인 대표이사 아시아 산악연맹 회장

보디빌딩

장보영(60)

신임

아시아 보디빌딩 연맹 상임부회장

세팍타크로

고석구(65)

신임

() 신우엔지니어링 대표이사

수 중

이병두(64)

유임

1997년 세계수중연맹 이사

우슈 쿵푸

이윤재(65)

유임

전 대한체육회 사무총장

소프트볼

양동석(57)

신임

() 청암산업 대표이사/전 대한장애인 야구협회장

봅슬레이

강신성(56)

유임

() 정원산업개발 회장

컬 링

김재원(49)

신임

새누리당 국회의원

철인3

김진용(58)

신임

() 삼성출판사 대표이사 / 동호인 출신 회장

바이애슬론

배창환(63)

유임

(주 창성 회장/아시아 바이애슬론 초대회장

스 쿼 시

김원관(52)

유임

() 성광 부사장

당 구

장영철(65)

유임

전 서울시체육회 상임부회장

택 견

 

 

회장선출 위한 총회 미개최

공 수 도

정도모(69)

유임

국제통상 대표 / 공수도연맹 창설자

댄스스포츠

권윤방(74)

유임

서울대 명예교수 / 여성 / 4회 연임

루 지

정재호(62)

유임

() 고려당 대표이사

바 둑

허동수(70)

신임

GS칼텍스& GS에너지 이사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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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학수(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 연구소장) 

 


               40여년전 중고생시절 체육시간에 빠지지 않았던 것이 올림픽의 기원에 대한 얘기다. 고대 그리스에서 제우스신을 위한 제전의식으로 시작된 올림픽 경기에서 레슬링은 죽은 전사들의 넋을 기리는 운동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종목이라는 설명이었다. 근대 올림픽을 창시했던 쿠베르탱남작이 1896년 제1회부터 레슬링을 핵심종목으로 정했던 것도 고대 올림픽 정신을 살리자는 취지였다는 것이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레슬링에서 양정모가 대한민국 건국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땄을 때, 전 국민이 감격한 이유는 세계를 제패했다는 것과 함께 레슬링이 올림픽에서 차지하는 오랜 전통과 역사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레슬링은 올림픽의 긴 역사와 함께 한국인들에게도 의미가 깊고 친숙한 종목이다.

 

 76몬트리올 올림픽 양정모 선수 ⓒ대한체육회

 


레슬링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의해 올림픽 종목에서 제외된다는 난데없는 소식을 듣고 올림픽의 전통과 역사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하는 충격과 실망감을 금할 수 없었다. 레슬링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마지막 올림픽 종목으로 경기를 가진 뒤 2020년 올림픽에서는 퇴출될 예정이라는게다.


IOC 15인 집행위원회에서 비밀투표로 결정된 레슬링 퇴출 결정은 오는 5월 2020년 올림픽에서 채택될 26번째 종목선정에서 뒤집어 질 수도 있어 결론이 난 것은 아니다. 레슬링에 대한 최종 결정은 2020년 올림픽 개최지를 확정할 오는 9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열리는 제125차 IOC 총회에서 이루어지게 되는데, 전망은 매우 불투명하다.


IOC의 레슬링 퇴출 결정으로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있게(Citius, Altius, Fortius)’라는 올림픽 정신은 이제 크게 흐려질 수 밖에 없다. 레슬링이 올림픽 종목에서 제외된 것은 IOC가 지나치게 상업주의에 물들어있기 때문이다. IOC 최대 젖줄인 TV 중계권료를 더 벌어들이기 위해 세계 TV 시청자들에게 관심과 호응을 받지 못한 종목으로 레슬링을 지목했던 것이다.


최근 수년간 올림픽 규모를 줄여 참가선수수를 1만500명 정도로 제한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는 IOC는 좀 더 많은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을 TV 시청자로 끌어들이기 위해 현 시대에 맞는 올림픽 종목들을 부각시키고 싶어했다. IOC는 보는 재미가 떨어지고 아마추어 역사만을 갖고 있는 레슬링이 축구의 리오넬 메시, 농구의 르브론 제임스, 골프의 타이거 우즈같은 슈퍼스타도 없으며 요즘 젊은이들에게 인기있는 프로레슬링보다도 인기가 없다고 보았던 것 같다.    


하지만 레슬링은 스포츠의 원초적인 면을 가장 잘 간직한 최고의 명예로운 종목의 하나이다. 용맹스럽기로 이름난 고대 그리스 스파르타전사로부터 현대의 정부관료, 사업가, 군인, 노동자 등에 이르기까지 레슬링은 용기와 의지력, 인품 등 인간의 기본적인 소양등을 쌓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고교 시절 레슬링 선수로 활동했으며 대한레슬링 협회 회장등을 지내고 현재 IOC 위원인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대표적인 예이다.


IOC는 상업주의를 추구하며 많은 변화와 혁신을 추구해 왔다. 그러나 올림픽의 근본 정신까지 훼손하면서 올림픽의 전체적인 모양을 바꾸려 해서는 안된다. TV 시청률을 높이기위한 목적으로 레슬링을 올림픽에서 사라지게 하는 것은 올림픽의 역사와 전통을 없애는 것과 다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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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교체육과 생활체육으로 관심받지 못하고 극소수의 엘리트선수들만이 참여하는 '그들만의 리그'로 한정되어있기에 많은 국민들이 태권도의 잔류에 안도하고 레슬링에 대해서는 큰 주목을 하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IOC의 상업화에 대한 문제도 있으나, 전 세계인들의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현재 상황으로 인한 미디어 노출의 제한과 이것을 누구보다도 빠르게 파악하고 있는 IOC에 의해서 이러한 결정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 최은수 2013.02.18 12:48 신고

    역사와 전통.
    간직하고 지켜야 할게 맞지만 내세울게 그것 밖에 없다면 사라져야 하는것도
    순리인듯 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보는 것에 재미를 찾지 못하고 하는 사람들마저 한정되어서 퍼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할겁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 조차 친숙하게 사람들에게 다가서려는 노력이나 흥미를 유도하기 위한 시도조차 없는데 어찌보면 퇴출이 당연한것 같습니다.

 

 

글/김학수(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 연구소장)

 

        스포츠에 대한 글을 마음껏 써 보고 싶다는 그의 버킷리스트를 듣고 모두들 놀랐다. 77세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결코 식지않는 배움의 열정을 보이며 손자뻘되는 대학생들과 함께 교육생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젊은이에 결코 뒤지지 않는 학구욕을 보인 그는 자신의 소개와 교육 참가 소감을 밝히며 만족감과 행복감으로 넘쳐 보이는듯했다. 만학도의 진정성 있는 모습에 감복한 대부분의 교육생들은 존경의 박수를 보냈다.

 

 

지난 14일 한국체육대 본관 모 강의실에서 열린 예비 스포츠 저널리스트를 위한 1차 언론교실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한 김종철씨는 단연 화제의 주인공이었다.  30여명의 교육생 가운데 최연장자인 그는 맨 앞자리에 앉아있다가 자신의 소개 순서가 되면서 강단에 올랐다. 그는 “나이와 상관없이 스포츠와 관련한 글을 제대로 써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신문에서 스포츠 언론교실 교육생 모집 공고를 보고 뒤도 안돌아보고 신청했다”며 “독학으로 스포츠 글쓰기를 하고 있었는데 이번 교육이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근 스포츠 블로그를 만든 그는 언론교실에서 배운 스포츠 글쓰기와 취재, 편집 등의 스포츠 저널리스트의 전문적 기술을 잘 활용해 블로그를 보기좋게 꾸며보겠다는 계획이다. 체육의 중요성을 잘 모르는 일반 대중에게 자신이 갖고 있는 체육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간결하고 쉽게 설명하는 글을 많이 써 볼 참이다. 

 


 서울체고 축구 및 사이클 감독을 지내며 30여년간 체육교사로 활동한 바 있고, 서울시 교육청 장학사, 교육과학부 파견근무 등 체육교육자로서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는 그는 대단한 향학열을 보이기도 했다. 1967년 경남대 상학과를 졸업한 뒤 고려대 교육대학원, 서울시립대 경영대학원 석사를 이수하고 숭실대 대학원 박사과정도 수학을 한 바 있다. 오랫동안 교육계에 봉직하면서 그는 체육교사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운동을 한다고 하면 무조건 무식하게 보는 경향이 많았다. 체육교사도 공부를 하지 않아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는 인식들이 있었다. 이러한 잘못된 풍토는 운동을 하는 사람 스스로 자초한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주위로부터 ‘꼴통’소리를 듣지 않기위해서 시간이 나면 공부를 하려고 노력했고, 지금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을 맍이 갖는다”고 말했다.


그는 스포츠가 과거에 비해 모든 면에서 크게 확대되고 발전하고, 인터넷 환경에 의해 언론도 많은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요즘, 새롭게 공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갖고 언론교실 교육을 충실히 받을 각오이다.
 “전반적인 커리큘럼을 신문사, 방송사 전현 부장님과 국장님들이 강사로 직접 나서 지도하기 때문에 경험적이고 실제적인 강의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이론적으로 하는 여느 미디어 강의와는 달리 실용적인 부분이 많다. 충실히 배우기만 하면 스포츠 저널리스트로의  꿈을 이루며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겠다”고 기대했다.
같은 나이의 어르신들에 비해 월등한 건강과 체력을 갖고 있어 직접 차를 운전하고 다니면서 수업에 참여할 그는 “젋은 대학생들과 같이 공부를 하면 몸과 정신도 훨씬 젋어질 수 있겠다”며 “부족한 것은 대학생들에게 배우고, 인생의 선배로서 상담이 필요하면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고 밝혔다.


일부 교육생들은 “경기침체 속에 취업난이 심각해지면서 취업과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이른바 ‘3포세대’가 만연하고 있으나 어르신같이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열심히 사시는 모습에 놀라움과 감탄을 금치 못했다”며 “훌륭한 분과 함께 공부를 같이 하게 돼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입을 모았다. 황혼기의 나이에 새롭게 스포츠 저널리스트로서의 삶에 도전하는 그에게 많은 교육생들이 큰 자극과 격려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한국체대 산학협력단 산하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 주관으로 국대 대학으로서는 처음으로 마련된 스포츠 저널리스트 전문교육 프로그램인 제 1회 언론교실은 14일부터 다음달 18일까지 매주 월, 수, 금요일 저녁 수업이 진행된다. 총 교육시간은 30시간이다. 스포츠 미디어 이론은 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초빙교수)이, 스포츠 저널리스트 세계에 대한 교육은 정영재 중앙일보 체육부장, 김유석 SBS 스포츠부 선임기자, 한광섭 MBC 스포츠 캐스터, 손상진 전 KBS 스포츠 본부장, 김창율 스포츠 코리아 대표가 각각 맡으며,  △글쓰기 △기사 작성 △취재 인터뷰 △스포츠 칼럼쓰기 등 스포츠 미디어 실제 입문교육은 장환수 전 동아일보 체육부장, 유병철 일요신문 편집위원 등이 지도한다.


제 1회 언론교실에는 한체대, 고려대, 한양대, 순천향대, 해외대학 등 체육계열 대학생과 홍익대, 서울시립대 등 스포츠 미디어에 관심이 많은 일반학과 대학생들이 참가하고 있다. 대학 스포츠 전공학과에 진학해 스포츠 저널리스트의 꿈을 갖고 있는 고교생 1명도 교육생에 포함돼 있다.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는 지난 해 체육인재육성재단의 지원을 받아 스포츠 방송 해설자 교육을 위한 스포츠 미디어 아카데미를 실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핸드볼 임오경, 홍정호, 조은희, 차재경. 레슬링 박장순, 사격 김일환, 이종현, 배구 신선호 등이 교육을 수료해 런던올림픽 TV 방송과 각종 방송 미디어에서 뛰어난 해설역량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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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학수(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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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1301040600026&sec_id=510201&pt=nv

 

 

         새해 벽두 한 스포츠 신문에 실린 사진이 눈에 확 띄었다. 잠실구장에서 손에 든 태극기를 바라보며 오는 3월 월드베이스클래식(WBC)에서 활약을 다짐하는 두산 투수 노경은의 모습이다. 간단해 보이는 이 한 장의 사진에서 중요한 의미를 읽을 수 있었다. 태극기에 경의를 표하는 이 사진은 국가에 대해 충성하며 선수로서 뛰어난 경기력을 발휘해 WBC에서 야구 한국의 면모를 과시해 보이겠다는 뜻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신문이 WBC에 출전하는 대표팀 에이스로 주목받고 있는 노경은에게 자의적인 모습으로 태극기 세리모니를 연출한 것은 국민들에게 뜨거운 감동을 주었던 수년전의 명장면을 연상시키기 위함이다. 2006년 3월15일 미국 애너하임 에인절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제1회 WBC 8강 한· 일전에서 한국은 마무리 투수 오승환(삼성)이 1점차 리드를 지켜 숙적 일본을 2-1로 누르고 4강진출을 확정했다. 이때 서재응(KIA)은 태극기를 마운드에 꽂은 뒤 환호했다. 이 장면은 한국야구가 세계 중심에 섰다는 의미로 외신을 타고 전 세계에 강렬한 인상을 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재응의 태극기 세리머니는 WBC 4강 단골 세리모니가 됐다. 3년 뒤 2회 대회에서도 봉중근(LG)이 샌디에이고 펫코파크에서 일본을 누르고 4강 진출을 확정짓자 똑같은 세리머니로 결승진출을 자축했다.


야구팬들을 열광케 했던 태극기 세리모니의 재현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기위해 이 신문은 상징적 이미지 연출을 시도했다. 이미지 연출을 한 것은 스포츠 저널리스트들이었다. 사진 및 취재기자들은 혹독한 한파가 몰아친 지난 연말 잠실구장에서 아직 눈이 남아 꽁꽁 얼어붙은 마운드에 노경은을 불러서 태극기를 잡게했다. 특히 이 신문의 사진기자는 2013년 야구계의 최대 화두가 될 WBC 대회에서 한국의 영광 재현을 기대하며 노경은에게 태극기 세리모니를 하게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사진을 보면서 25년전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새해 이맘 때가 떠올랐다. 일간스포츠 체육기자였던 필자는 서울올림픽 금메달 유망주였던 탁구의 현정화, 양궁의 김수녕 2명과 함께 사진기자를 대동하고 강화도 마니산 정상 참성단으로 갔다. 1면 톱 사진을 찍기위해서였다. 마니산은 우리 민족의 신화적 인물 단군 왕검이 하늘에서 내려온 것으로 알려진 영적인 산으로 전국체육대회 성화를 매년 참성단에서 채화하고 개천절에 제전을 올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두 금메달 기대주가 이러한 마니산의 정기를 받아 서울올림픽에서 금메달 고지를 밟아야 한다는 절절한 국민적 소원을 담기위해 참성단 사진 이미지가 필요했던 것이다. 울퉁불퉁한 비탈길과 계단을 비지땀을 쏟으며 올라간 뒤 대형태극기를 들고 참성단 위에서 우뚝 선 현정화, 김수녕의 상징적인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고 이 사진은 새해 일간스포츠 1면을 크게 장식했다. 현정화, 김수녕은 사진의 상징적 효과가 주효했던지, 서울올림픽에서 나란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태극기 세리모니가 어떤 진정한 사실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경우는 드물다. 대개 자의성과 당위성의 차원에서 행해지는 하나의 담론적 행위인 경우가 많다. 다소 과장된 행동을 하면서도 태극기 세리모니는 정당화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노경은, 현정화 등의 경우 모두 작위적으로 연출된 사진들이었지만 독자들에게 크게 무리한 느낌을 주지 않으리라는 판단하에 이루어졌다. 국가를 위해 충성을 하고 애국을 한다는데 같은 한국사람이라면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공식 행사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도 하지않고 애국가도 부르지 않는 일부 종북 좌파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하지만 애국심에 호소하는데 태극기를 활용하는 행동은 사실 여러 각도에서 분석, 해석, 비판을 받아야 한다. 태극기 세리모니가 도를 넘어설 경우 맹목적, 배타적 애국주의를 지칭하는 쇼비니즘, 국수주의로 변질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2012년 런던올림픽 축구 3~4위전에서 일본을 물리치고 한국이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2-0으로 승리하면서 동메달을 획득한 이후 박종우가 한 관중이 들고 있던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한국어 문장과 태극기가 그려진 피켓을 건네받고 세리모니를 하게되면서 큰 물의를 빚었다. 박종우의 세리모니는 독도는 한국의 영토로 일본이 어떠한 논의와 주장을 펼쳐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사실을 축구라는 스포츠의 한일 경기를 통해 밝히려고 했던 것이다.  IOC는 올림픽 이념에 위배되는 정치적 문구를 사용했다며 그의 시상식 불참을 권고하였고 대한체육회는 이에 수긍하고 박종우에게 시상식에 참석하지 말 것을 지시했었다. 박종우의 예는 태극기 세리모니를 첨예한 외교적 이슈와 결부시켜 행했던 것으로 이것이 가져온 파장은 단순한 세리모니보다 훨씬 컸다.


태극기 세리모니 사진의 조작적 이미지와 진정한 이미지는 그 이미지가 어떤 가치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느냐에 따라 여러 각도로 해석이 가능하다. 태극기 세리모니가 지시하는 이미지는 일단 결정적인 의미를 유보하고 현상 뒤에 숨은 이미지의 의미작용을 잘 파악하는데 주력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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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종세(용인대학교 객원교수)

 

 

 

체육회장 • 58개 경기단체장 선출 싸고 치열한 득표전
대한체육회 박용성 회장 재선 여부 최대 관심사
축구 등 약 20개 경기단체도 도전과 수성으로 팽팽히 맞서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의 재선은 가능한가. 제52대 대한축구협회 회장은 누가 될 것인가. 계사년 새해 벽두부터 체육계는 제38대 대한체육회 회장과 대한체육회 가맹 58개 경기단체 회장선거에 온통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13년은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과 브라질 월드컵을 1년여 앞둔데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하계올림픽을 준비하는 첫해. 1월말까지 경기단체별로 4년 임기의 회장을 뽑은 뒤 이들 경기단체 대표들이 2월22일 역시 4년 임기의 차기 대한체육회장을 선출하게 된다. 해방이후 신익희, 조병옥, 이기붕, 이철승, 노태우, 정주영 등 정재계 거물들이 맡아왔던 대한체육회장. 과연 누가 한국체육 수장의 영예를 차지할까? 아울러 연간 1천억 원의 예산으로 살림규모가 대한체육회에 버금가는 축구협회도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2009년 제37대 박용성 대한체육회장 취임식ⓒ대한체육회

 

 

대한체육회 회장

박용성 정몽준 유정복 김정행 조양호 이에리사 등 후보 거론
2009년 2월 제37대 회장에 취임한 박용성회장의 재선 여부가 최대 관심사다. 박회장은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우리나라를 사상 처음 종합5위로 끌어 올린 장본인. 한국은 금 6, 은 6, 동 2개 등 모두 14개의 메달을 따 아시아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박회장은 2012년 런던하계올림픽에서도 밴쿠버에 이어 한국이 종합 5위를 차지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대회에 앞서 현지에 한국선수 전용 훈련장을 운영, 금13, 은 8, 동 7개로 모두 28개의 메달을 따내 원정올림픽 사상 최고의 성적을 올린 것.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우리나라가 종합 4위를 차지하기는 했으나 역대 대한체육회장 어느 누구도 이루지 못한 동하계올림픽 연속 종합 5위의 쾌거를 이룩했다. 박회장은  또 2011년 7월, 2018 동계올림픽의 평창 유치를 성공시켰다.

그러나 이 같은 공로에도 불구, 박회장이 이번 선거에서 재선된다는 보장은 없다. 정치권의 영향을 피할 수 없는 우리나라 특유의 상황 때문이다. 물론 회장은 55명의 정 가맹단체(준 가맹단체는 제외) 대표와 한국의 IOC(국제올림픽위원회)위원 등 모두 58명이 투표, 선출하도록 돼있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도 국가 최고 통치권자의 의중이 매우 중요하다. 박용성 회장도 지난해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대한체육회장은 체육회 예산의 대부분이 국고인 만큼 정부측과 호흡이 잘 맞는 인사가 맡아야할 것”이라고 밝힌바 있다.

그러나 국가 최고 통치권자가 이번 선거에 엄정중립을 지킬 경우 많은 후보들이 난립, 예측불허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2009년 경선에는 사상 최다인 8명의 후보가 출마했었다. 이번 선거에 출마가 예상되는 후보는 박회장외에 용인대 총장인 김정행 대한유도회장, 대한탁구협회를 맡고있는 조양호 한진그룹회장,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최측근인 유정복 국민생활체육회 회장, 국제축구연맹 부회장을 역임했던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 여자탁구 세계선수권자였던 이에리사 새누리당 국회의원 등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

 

 

대한축구협회 회장

김석한 안종복 윤상현 정몽규 허승표 등 5파전 양상
1월28일 치러질 제52대 대한축구협회 회장 선거는 5파전 양상. 출마를 공식선언한 후보는 김석한 전 중등학교 축구연맹 회장, 안종복 남북체육교류협회 회장, 윤상현 새누리당 국회의원,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허승표 피풀웍스 회장(이상 출마 선언 순) 등 5명.  각 시도협회 대표 16명과 산하 연맹(프로, 실업, 초등, 중등, 고등, 대학, 여자, 풋살) 대표 8명 등 24명의 대의원이 투표할 이번 선거는 한 후보가 과반(13표)의 지지를 얻어야 당선된다. 축구협회는 연간 예산이 1천억 원인데다 축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도 높아 회장자리 역시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지난해 11월19일 맨 먼저 출사표를 던진 김석한 후보는 조중연 현회장의 연임을 위해 뛰었으나 조회장의 출마포기에 따라 ‘축구 대권’에 도전하게 됐다. 2005년부터 4년간 중등학교 축구연맹회장을 역임하는 등 그동안 축구발전을 위해 애써왔다.

1월3일 출마를 선언한 안종복 후보는 경신고와 고려대를 거친 청소년 국가대표 선수출신. 1980년대 초반 대우구단 실무자로 프로축구계에 발을 디딘 이래 구단 사무국장, 단장을 지냈으며 시민구단 인천 유나이티드를 창단, 단장과 사장으로서 국내 프로축구사상 처음으로 흑자를 구현한 주인공이다.
1월4일 세 번째로 경선에 뛰어든 윤상현 새누리당 국회의원(인천 남구을)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공보단장과 수행단장을 지낸 최측근으로 8년째 인천시 생활체육 축구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다. 윤의원은 “축구계 개혁과 축구인들의 화합을 이끌겠다”고 다짐했다.
1월7일 2011년부터 맡아오던 프로축구연맹 총재직을 사임하고 출마를 선언한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은 정몽준 축구협회 명예회장의 사촌동생. 그는 1994년부터 울산 현대, 전북 현대를 거쳐 현재 부산 아이파크 구단주를 맡고 있다. 그는 "변화와 혁신으로 한국 축구를 다시 업그레이드 할 때"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출사표를 낸 허승표 피플웍스 회장은 축구계의 ‘영원한 야당‘으로 불리고 있다. 1997년에 이어 2009년에도 회장직에 도전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조중연 회장과 맞붙은 4년 전 경선에서는 10표를 얻기도 했다.

 

 

여타 경기단체 회장

야구 이병석 씨름 이철우 확정적…약 20개 단체는 유동적 
대한체육회에 따르면 축구 등 58개 경기단체 가운데 3분의 1인 약 20개 단체가 회장의 자진 사퇴 등으로 경선이 불가피하다. 야구와 씨름은 각각 새누리당 이병석, 이철우 국회의원의 선출이 유력한 상황이다. 그러나 아이스하키는 현 부회장인 정몽원 한라그룹회장이 회장직에 도전, 1월25일의 총회 결과를 보아야한다. 스키 역시 윤세영 SBS회장의 처남인 변탁 회장이 물러가고 윤회장의 아들인 윤석민 SBS홀딩스 부회장이 유력하나 일부 스키인들이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둑협회도 조건호 현 회장이 사퇴하고 허동수 한국기원 이사장이 뒤를 이을 가능성이 크다. 태권도는 지난 달 경남지사에 당선된 홍준표 회장의 거취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농구 역시 이종걸 회장의 진퇴가 불투명하다. 그러나 배드민턴, 검도, 카누, 볼링 등은 회장 경질이 분명하지만 아직 누가 후임을 맡을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체조와 근대오종은 각각 포스코와 LH공사에서 맡고있어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사고단체로 낙인찍혀 아직 총회 날짜도 잡지 못한 복싱은 후임 회장 선출이 어려운 상황이며 세팍타크로도 직무대행체제를 벗어나 새로운 회장의 영입이 가능할지 모호하다. 우슈도 1월18일의 총회 결과에 따라 회장이 바뀔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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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종세(용인대학교 객원교수)

 

 

 

“비전문가 낙하산 인사…이제 그만” 박근혜 당선인, 후보시절 이어 다시 강조 
 체육관련 기관 단체도 전문가 기용 절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낙하산 인사’ 근절 의지가 예사롭지 않다. 박 당선인은 12월25일 최근 이루어진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와 관련, “이는 국민과 차기 정부 모두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라며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못 박았다. 이명박 정부를 겨냥한 것이다. 박 당선인은 제18대 대선을 40여일 앞둔 지난 11월6일에도 “부실 인사(人士)가 아무런 원칙 없이, 전문분야와 상관없는 곳에 낙하산으로 임명되는 관행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는 내용의 정치쇄신 공약을 발표했었다. 비전문가의 낙하산 인사를 뿌리 뽑으려는 박 당선인의 굳은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그렇다. 이제 체육계에도 전문성이 결여된 대선 유공자들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 요직을 차지하는 인사(人事)가 사라져야한다. 인사가 만사(萬事)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박 당선인의 낙하산 인사에 대한 최근 행보는 매우 바람직하다는 평가다.

 

 

박근혜의 국민행복캠프 공식사이트(Flickr)

 

 

‘인사가 만사’… 지연 학연 혈연 배제한 공정 인사 다짐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가. 일제치하의 질곡, 국토분단의 시련, 6.25전쟁의 폐허를 딛고 지난 6월 세계 7번째로 20-50클럽에 가입한 국가다. 국민소득 연 2만 달러와  인구 5천만 명을 넘어선 나라는 전 세계 237개국 가운데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등 6개 국 뿐이었다. 그 반열에 한국이 오른 것이다. 또 스포츠분야는 어떤가.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이어 2012년 런던 하계올림픽에서 거푸 금메달순위 세계 5위에 오른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그런 나라가 정치 분야만큼은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난장판 국회를 비롯해 대통령 친인척의 비리와 소득의 양극화, 각종 부정부패 등이 고개를 숙일 줄 모른다. 이는 적재적소에 전문가를 배치하는 공정 인사, 지연 학연 혈연을 배제한 탕평 인사를 외면한 결과에서 찾을 수 있다. 박 당선인의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비전문가가 ‘연줄’만 믿고 독선과 자만으로 일관하다 갈등과 부작용을 빚는 구태가 사라져야 하는 이유다. 

 

대통령 임명직 3천여 개 추정…그동안 ‘무늬만 공모제’
 대통령중심제인 우리나라는 사실상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가 3, 4천개에 이른다는 추정이다. 물론 선발위원회, 심사위원회, 추천위원회 같은 공식 기구에서 후보자를 공모, 추천하면 대통령이 최종 결정하는 형식을 취하지만 사전에 임명권자의 의중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체육계의 경우도 문화관광부장관과 차관을 비롯 국민체육진흥공단, 대한체육회, 국민생활체육회 등의 책임자나 감사 등 임원의 선임에 국가 최고통치권자의 ‘뜻’이 반영되는 경우가 많았었다. 대한체육회나 생활체육회는 선거에 의해 회장이 선출되지만 후보나 투표권자나 모두 청와대의 풍향에 촉각을 곤두세워 온 것이 사실이다.

 

역대 문체부장관 26명중 경기인 출신 없어…외국 사례 부러워
 한국스포츠를 총괄하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는 1982년 체육부라는 이름으로 출범, 체육청소년부, 문화체육부, 문화관광부 등으로 명칭이 바뀌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초대 노태우 장관부터 최광식 현 장관까지 26명의 역대장관 가운데 경기인 출신은 단 1명도 없다. 다만 6대 조상호, 7대 김집, 23대 김종민 장관 정도가 체육행정을 경험한 인사였다. 속성상 장관후보가 집권 여당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감안하더라도 전문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지적을 면할 수 없다. 브라질의 펠레, 독일의 프란츠 베켄바워, 프랑스의 미셀 플라티니, 영국의 세바스찬 코 등 스타플레이어 출신들이 체육장관이나 월드컵 또는 올림픽 조직위원장에 기용되는 외국의 사례가 부럽기만 하다. 
 문체부 산하 기관, 단체인 국민체육진흥공단이나 대한체육회, 국민생활체육회도 전문가가 배제된 인사 사례가 적지 않다. 임명권자나 집권 여당이 대선 캠프의 공신들에게 전문성은 고려하지 않고 전리품을 배분하듯 ‘자리’를 나누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해당분야 비전문가로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인사들의 공통점은 대통령과 동향이거나 대선 유공자인데 체육과의 거리는 먼 사람들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내부 승진은 거의 기대할 수 없어 조직의 사기 저하는 물론이고 업무의 효율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2013년은 리우올림픽 준비 첫 해…박 당선인 약속이행 기대
 2013년 계사년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준비 첫 해이자 한국스포츠의 새로운 출발점이다. 문체부장관과 체육공단 이사장이 바뀌고 4년 임기의 대한체육회장과 축구 야구 등 57개 경기단체 회장도 뽑아야한다. 공교롭게 박근혜 정부의 출범과 시기가 맞아 떨어진다. 후보시절 ‘약속 대통령’을 표방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비전문가 낙하산 인사 근절’ 약속이 이루어질지, 아니면 초심을 잃고 실망만 샀던 전임 대통령들의 전철을 밟을지 그 귀추가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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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학수(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 연구소장)

 

 

                  2012년도 어느덧 노루꼬리만큼 짧게 남았다. 12월들어 송년모임을 갖자는 연락이 자주 오는 것을 보면 또 한 해를 보내게 됐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맘 때면 대학 졸업반 학생들은 큰 장애물을 맞닥트린다. 최근 극심한 취업난으로 젊은 학생들의 고민은 더 깊어진 것 같다.

진로를 놓고 고민하던 대학 졸업반 학생이 내 연구실을 찾았다. 체육을 전공하는 이 학생은 스포츠 저널리스트가 되기 위해선 어떤 준비를 해야하는지를 문의했다. 체육 관련 직업을 찾는 일반 학생들에 비해 다소 이례적이었다. 운동 신경이 좋아 웬만한 스포츠는 다 잘한다는 학생은 스포츠 저널리스트가 꼭 되고 싶다고 했다. 질문의 요지는 신문방송학과를 전공하지 않아도 스포츠 저널리스트가 될 수 있는가였다. 물론 내 대답은 당연히 “할 수 있다”였다.

 

이 학생처럼 스포츠 미디어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라면 미래에 훌륭한 스포츠 저널리스트가 되겠다는 꿈을 한번쯤 가져봄즉하다. 이러한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를 해야한다. 먼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저널리즘 공부와 병행해서 특별한 전문분야를 습득하라는 점이다.

 

30여년전 필자가 스포츠 기자로 입문할 때만해도 스포츠 상식만 갖고도 충분했다. 복잡한 농구룰, 생소한 골프 용어 등을 알지 못해도 스포츠 기자가 되는데 큰 문제가 없었다. 글쓰기 능력과 어느 정도의 스포츠 상식만 확보하면 있으면 됐다. 당시 스포츠 기자중에는 체육학과 출신이 거의 없었다. 신문방송학과, 국문과, 사학과, 영문과 등 인문· 사회과학 전문 출신이 많았다. 스포츠 기자가 되는 데 체육 전문 지식이 그다지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이 많이 변했다. 스포츠 영역도 전문화, 세분화가 이루어지며 전문성을 갖춘 저널리스트가 아니면 경쟁력을 갖추기 힘든 시대가 됐다. 과거처럼 스포츠 상식만 갖고 활동하던 저널리스트가 버티기 힘든 상황이 된 것이다. 좋은 스포츠기자가 되려면 전문분야를 훤히 꿰고 있을 정도의 스페셜리스트가 돼야한다. 복잡다단한 스포츠 현상을 제대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적 시각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피상적으로 보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자신의 의견인양 전하는 종전의 스포츠 기자들은 일단 전문가를 빰칠 정도로 많은 정보를 접하며 눈높이가 크게 높아진 수용자(독자나 시청자)를 만족시킬 수가 없다.


예전에도 전문가에 못지않은 스포츠 기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학창시절 태권도 선수로도 활동한 바 있던 모 선배기자는 경기인 못지않은 전문성과 지식을 갖고 태권도 행정가와 일선 지도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 정보와 기사를 제공했다. 아이스하키 선수출신 선배기자는 후배 선수들의 어려움을 다른 이들보다도 잘 이해하고 공감이 가는 기사를 작성하고 협회 행정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운동 생리학 박사출신 기자는 육상 선수의 운동량과 체력소모에 대한 기획기사를 시리즈로 연재해 스포츠 과학을 전공하는 연구자들에게 귀감이 되기도 했다.


전통적인 신문, 라디오, TV가 주도하던 올드 미디어 시대가 인터넷, 컴퓨터, 페이스북, 트위터, 유투브 등 뉴미디어 시대로 바뀌면서 미디어의 지형도 크게 바뀌었다. 상식에 근거해 판단하고, 해석하는 거시담론보다는 세분화하고 파편적인 미시담론쪽으로 대중들의 정서가 흘러가게됐다. 컴퓨터를 통해 온갖 정보를 쉽게 접하게되면서 과거와 같은 상식적인 기사는 수용자의 환영을 받지 못한다.
 
스포츠 기사의 경우 다양한 스포츠 안팎의 이야기를 전문적인 시각을 담아 보도해야 기사의 완성도와 이용자의 만족도를 충족시킬 수 있다. 예를들어 스포츠 평론가나 칼럼니스트가 되려고 한다면 전문분야로 스포츠 법이나 스포츠 의학 등을 전공하면 심층적인 진단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프로 선수의 계약과 스포츠 마케팅권리에 대한 다양한 법적 분쟁에 대한 전문가적 견해를 가져야 하며, 선수들의 부상과 약물 복용등과 관련한 제반 스포츠 의료 사고나 일탈행위에 날카로운 비평과 매스를 가해야 한다. 스포츠 경기 취재를 위해서도 많은 변화가 불가피하다. 경기력 위주의 취재를 하던 방식에서 탈피해, 경기중 선수들의 심리적인 측면과 경기 이면의 부분까지 세밀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식견과 지식이 확보되지 않고서는 좋은 기사를 작성하기가 힘들다.


미디어 빅뱅, 컨버전스시대를 맞아 스포츠 저널리스트들이 다양한 매체를 직접 컨트롤 수 있는 실무적인 전문성도 쌓아야한다. 종전처럼 신문기자와 방송기자가 분리된 형태로 활동하던 것과는 달리 카메라, 마이크를 직접 사용하고 영상 편집도 함께 할 수 있는 다용도의 멀티 스포츠 저널리스트 세상이 곧 다가올 것이다. 


앞으로 스포츠 세계가 더욱 전문화, 세분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스포츠 저널리즘 분야도 스포츠 지식과 정보를 훤히 꿰고 있고 다양한 매체를 활용할 수 있는 전문가 저널리스트가 활개를 치게 될 것은 분명하다. 스포츠 저널리즘의 세계에 새로 뛰어들 미래의 스포츠저널리스트들에게는 새로운 기회의 장이 마련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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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학수(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 연구소장)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인 박찬호의 은퇴가 최근 스포츠계의 큰 관심사이다. 신문과 방송 등은 미국과 일본을 거쳐 한국까지 이어져온 19년간 그의 화려한 프로야구 인생을 조명했다. 박찬호는 말 그대로 대한민국 스포츠에서 가장 성공한 선수의 대명사였다. 미국 프로야구서 LA 다저스를 시작으로 17년동안 아시아 최다승인 124승을 올렸던 그의 기록은 당분간 깨지기가 힘든 대단한 것이었다. 많은 야구팬들이 그의 은퇴를 아쉬워하는 것은 그의 선수생활이 워낙 출중했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 최고의 미국 프로야구 무대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주고 한국 야구에 큰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그의 모습은 팬들의 기억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특히 필자가 박찬호의 은퇴를 지켜보면서 섭섭하기도 하면서 다소 서운한 느낌이 드는 것은 전성기 때의 기억이 워낙 강렬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지난 해 일본을 거쳐 고국인 한국에 복귀한 박찬호는 5승10패에 그쳐, 전성기 때의 위용을 보여주지 못했다. 한국에서의 활약에 많은 기대를 했던 필자를 비롯한 팬들은 그의 성적에 큰 실망감을 느꼈다. 추락한 모습에서 전성기 때를 찾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명성을 쌓는데는 20년이라는 세월이 걸리지만, 명성을 무너뜨리는 시간은 단 5분도 걸리지 않는다. 그것을 명심한다면 네 행동이 달라질 것이다”라고 한 미국의 세계적인 사업가 워렌 버핏의 유명한 말처럼 박찬호는 올해 한국에서 메이저 리거의 화려한 명성이 초라한 성적으로 무너져 내렸다. 명성을 지키기 위해 좀 더 다르게 행동을 했어야 했는데, 그의 몸과 마음은 이미 전성기 때의 그것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사실 그의 은퇴는 부와 명성을 얻은 뒤 찾아오는 당연한 과정일 수 있다. 그러나 시기와 방법적으로 다소 잘못된 코스를 선택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미국무대에서 은퇴를 했다면 팬들사이에 그는 ‘영원한 메이저리거’로 아름답게 기억됐을 텐데 말이다. 박찬호는 은퇴직전까지도 선수생활에 대한 미련을 거두지 못하고 깊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올해 한국에서의 활동에 불만족스러워하며 내년에는 더 잘 할 수 있지않을까하는 생각도 가졌었다는 것이다.


박찬호는 원래 눈물이 많은 선수로 알려져있다. 감정의 흐름을 잘 타는 성격 탓이다. 3년전인 지난 2009년 1월,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하며 많은 눈물을 쏟았던 것은 유명하다. 제2회 WBC가 열리기 직전이었던 당시, 필라델피아로 이적한 상황이었다. 그는 “솔직히 자신이 없다. 새로운 팀에서도 잘하고 국가대표팀에서도 잘 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은퇴를 선언하면서 눈물을 보였다. 30일 은퇴 기자회견에서도 눈시울을 뜨겁게 붉히며 선수 마감의 아쉬운 미련을 밝혔다. 감성적인 세태의 영향으로 남자들도 눈물이 많아지는 분위기이지만 중요 고비때마다 흘리는 그의 눈물은 큰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1998년 여름, LA 다저스 소속으로 활동하던 박찬호의 경기를 LA 다저스 스타디움에서 직접 본 적이 있었다. 미국 프로야구 경기장을 처음 찾은 필자는 엄청난 스타디움 규모, 주차장 크기에 놀랐으며 이러한 좋은 여건에서 에이스로 활약하는 그의 활약에 한국인으로서 큰 자부심과 긍지를 느낄 수 있었다. 당시 한국은 외환위기로 IMF의 체제속에서 어렵게 경제를 이끌어가던 시점이어서 미국에서 스포츠를 통해 한국인의 우수성을 과시하는 그의 모습에 많은 팬들과 미국 교포들도 큰 위로와 힘을 받았다.


사실 박찬호가 1994년 처음으로 LA 다저스와 입단계약을 맺을 때만해도 그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야구전문가들조차 반신반의했었다. 150km의 강속구 위력을 갖고는 있으나 컨트롤 불안으로 한양대에 재학중이면서도 최고 투수 대우를 받지는 못했을 정도였다. 다저스 입단이후 2년간 마이너리그로 밀려나 고난과 역경의 시간을 보냈던 박찬호는 1997년부터 2001년까지 5년간 최전성기를 맞았다. 연평균 15승을 거뒀고, 2000시즌에는 18승을 수확하며 메이저리그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대투수가 됐다.


박찬호의 전성기는 한국 스포츠 언론에 새로운 전기를 만들어주는 계기가 됐다. 사상 처음으로 박찬호의 활약상을 현지에서 직접 취재하기 위해 메이저리그 특파원을 파견하게 된 것이다. 일간스포츠의 후배기자 장윤호가 1호 특파원으로 파견된데 이어 스포츠 서울 문상열기자, 스포츠 조선 민훈기 기자, 스포츠 투데이 구자겸, 성일만 기자가 미국 현지에서 활동했다. 메이저 리그 특파원은 특파원의 꽃이라할 수 있는 워싱턴 특파원에 못지않은 인기와 명예를 스포츠 기자들에게 안겨주었다. ‘박찬호 특파원’으로 불리기도 했던 메이저리그 특파원들은 박찬호 뿐 아니라 미국 프로야구에 대한 상세한 기사를 보내 한국 야구팬들의 수준을 크게 향상시켜 주었다.


박찬호의 고액 연봉은 항상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2001시즌 후 FA자격을 얻고 5년 6500만달러라는 대박계약을 터트렸다. 언론들은 “박찬호, 하루 5천만원씩 번다”라는 큼직한 활자를 1면에 뽑기도 했다. 하루 5천만원씩을 번다는 사실 자체가 일반인들에게는 입이 턱 벌어질 정도의 천문학적인 숫자였으니까. 미국에서 큰 돈을 벌은 그의 재테크 관리도 큰 관심을 끌었다. 서울 강남 신사동의 10층짜리 빌딩을 매입, 수백억원의 이익을 남긴 그의 재테크 비결은 한동안 많은 사람들의 화제를 낳았다.


아마도 미국 프로야구에서 활약했던 그의 선수생활이 팬들의 가슴에 더욱 새겨진 것은 세계최고라는 미국 무대에서의 성공기, 돈, 개인적 생활 등이 어울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오늘의 박찬호를 있게한 메이저리거의 모습을 팬들은 더 그리워할 수 밖에 없다.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서 멋있게 은퇴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생기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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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종세(용인대학교 객원교수)

 

 

 

조중동,국제마라톤 기록경쟁도 뜨겁다
선두 동아에 중앙, 조선 거센 도전…근소한 격차 뒤집힐 수도

 

국내 신문시장의 ‘빅3’ 조 중 동 3대 일간지가 펼치는 자존심 대결.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가 개최하는 국제마라톤대회의 기록경쟁이 뜨겁다. 동아마라톤으로 불리는 서울국제마라톤이 선두자리를 지키고 있으나 중앙일보 주최 중앙서울마라톤과 조선일보 춘천국제마라톤의 도전 또한 만만치 않다. 이들 3개 신문이 아프리카 흑인 선수들을 앞세워 벌이는 마라톤 선두다툼이 침체 상태의 한국마라톤을 되살리는 중흥의 밑거름으로 작용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케냐의 에루페(오른쪽)가 쾀바이(케냐) ⓒ동아일보

 

중앙마라톤, 동아에 13초 뒤져…호시 탐탐 기록 추월 노려
 2012년 국내개최 국제마라톤대회는 11월4일 중앙서울마라톤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그런데 마지막 대회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케냐의 제임스 킵상 쾀바이(29)가 2시간05분50초의 기록으로 우승했기 때문이다. 그는 2009년 로테르담 마라톤에서 2시간04분27초의 좋은 기록으로 2위를 했으나 작년 중앙서울마라톤에서는 2시간08분15초의 부진한 기록으로 우승, 주위의 실망을 샀다. 하지만 지난 3월18일 동아일보의 서울국제마라톤에서 윌슨 로야니에 에루페(24 ․ 케냐)에 이어 2시간06분03초로 2위에 올라 가능성을 보였고 이번 중앙서울마라톤에서 2시간05분50초의 기록을 세움으로써 대회의 위상을 크게 높였다. 이로써 중앙서울마라톤은 역대 세계 9위의 우승 기록을 보유한 서울국제마라톤의 대회기록(2시간05분37초)에 13초차로 따라 붙어 국내 1위 자리도 넘볼 수 있게 됐다. 

1999년 하프코스대회로 출범, 2002년 풀코스대회로 변신한 중앙서울마라톤은 2시간08분13초(2006년 ․ 제이슨 음보테 ․ 케냐)가 대회기록으로, 매년 2시간8분대나 9분대를 기록했을 뿐 한번도 2시간6분대나 7분대에 진입하지 못했었다. 특히 2010년에는 조선일보 춘천국제마라톤이 2시간07분54초(벤자민 콜룸 ․ 케냐)의 기록으로 중앙서울마라톤을 밀어내고 서울국제마라톤에 이어 국내개최 마라톤 대회기록 2위로 올라섰다. 그러나 이번 쾀바이가 대회기록을 2분23초나 앞당김으로써 중앙서울마라톤은 단숨에 국내개최 대회기록 2위 자리를 되찾게 됐다.

 

조선마라톤도 동아에 86초차 접근…언제든 선두 진입 가능
 그동안 2시간9분대에서 2시간19분대를 오가며 중앙서울마라톤의 기록에도 미치지 못했던 조선일보 춘천국제마라톤도 2010년 코스 개선 등을 통해 2시간7분대 진입에 성공한 뒤 작년에는 2시간07분03초(스텐레이 비웟 ․ 케냐)의 우승 기록을 작성, 2시간6분대 진입을 눈앞에 두기도 했다. 이 기록은 당시 국내대회 최고기록인 서울국제마라톤의 2시간06분49초(2010년 ․ 슬리베스터 테이멧 ․ 케냐)에 14초 뒤진 것. 이에 따라 올해 2시간5, 6분대 진입을 노린 조선일보는 지난4월 대구국제마라톤에서 2시간07분57초로 우승했던 케냐의 데이비드 켐보이 키엥(29)을 초청, 기록 경신에 도전했다.

하지만 더운 날씨 등으로 그의 우승 기록은 2시간10분05초에 그치고 말았다. 현재 조선일보 춘천국제마라톤 대회기록은 서울국제마라톤 대회기록에 1분26초 뒤지고 있다. 하지만 올해 중앙서울마라톤에서 대회기록을 2분23초 단축한 것을 감안하면 조선일보 춘천국제마라톤도 국내개최 마라톤대회 최고기록 경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평가다.

 

동아는 국내대회 최고기록 계속 경신…2시간4분대 진입 계획
 올해 83회 대회를 치른 동아일보의 서울국제마라톤은 1994년 포르투갈 마누엘 마티아스가 2시간8분대에 진입한 뒤 2004년 2시간7분대(거트 타이스 ․ 남아공), 2010년 2시간6분대(테이멧 ․ 케냐), 2012년 2시간5분대(에루페 ․ 케냐)를 기록, 국내개최 국제마라톤의 최고기록을 계속 경신해 나가고 있다. 서울국제마라톤은 여자부도 2시간19분51초(2006년 ․ 저우춘슈 ․ 중국)의 국내대회 최고기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서울국제마라톤도 중앙서울마라톤과 조선일보 춘천국제마라톤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어 언제 국내대회 기록 1위의 자리를 내줄지 모르는 상황. 올해 2분23초를 단축한 중앙서울마라톤에는 13초, 작년 2시간07분03초를 기록한 조선일보 춘천국제마라톤에는 1분26초 앞서있지만 1, 2분의 격차는 쉽게 뒤집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서울국제마라톤은 내년 대회에서 2시간4분대 진입을 전제로 다양한 전략을 마련, 중앙과 조선의 도전에 대비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2007년 창설한 경주국제마라톤이 올해 2시간06분46초의 좋은 기록을 내 조선일보, 중앙일보와의 기록경쟁에서 다소 유리한 입장.

 

 

케냐 3인방, 내년 조중동 대회 참가 전망…대리전 양상 띨 듯
 올해 동아일보는 윌슨 에루페를 서울국제마라톤과 경주국제마라톤에 내세워 2시간5, 6분대의 기록을 수확했고 중앙일보는 제임스 쾀바이를 중앙서울마라톤에 초청, 2시간5분대의 기록을 얻어냈다. 하지만 조선일보의 데이비드 키엥은 2시간10분을 넘겨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들 케냐 3인방은 내년에도 조 중 동 3개 일간지의 마라톤대회에 참가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들의 치열한 기록경쟁이 한국마라톤 중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다. 우리나라 육상계는 올 남자 최고기록이 2시간11분48초(서울국제마라톤 ․ 정진혁 ․ 건국대)에 머문 한국마라톤이 2시간5, 6분대의 흑인 선수들과의 경쟁을 통해 재기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자사 종편으로 마라톤 중계 움직임…TV조선 올 대회 생방 성공
 한편 작년 12월 종합편성 채널을 개국했던 조 중 동 3사는 그동안 KBS나 MBC에 의존해오던 중계방송을 자사 종편으로 대체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조선일보의 TV조선은 지난10월 춘천국제마라톤을 성공적으로 생중계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러나 동아일보의 채널A와 중앙일보의 JTBC가 내년부터 자사 마라톤대회를 생중계할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KBS는 11월4일 중앙서울마라톤을, 이에 앞서 MBC는 3월의 서울국제마라톤과 10월의 경주국제마라톤을 각각 생중계했었다. 

 

2012년 국내개최 국제마라톤 우승 기록

날 짜

대회 이름

우승자

기 록

0318

서울 국제

윌슨 로야니에 에루페(케냐)

2시간0537

1104

중앙 서울

제임스 킵상 쾀바이(케냐)

2시간0550

1021

동아 경주

윌슨 로야니에 에루페(케냐)

2시간0646

0408

대구 국제

데이비드 켐보이 키엥(케냐)

2시간0757

1028

조선 춘천

데이비드 켐보이 키엥(케냐)

2시간1005

 

동아 조선 중앙 마라톤 연도별 우승 기록

<2003년~2012년>

연도

동 아

조 선

중 앙

2012

윌슨 에루페(케냐)

2:05:37

데이비드 켐보이 키엥(케냐)

2:10:05

제임스 킵상 쾀봐이(케냐)

2:05:50

2011

압델라힘 굼리(모로코)

2:09:11

스탠레이 키플레팅 비웟(케냐)

2:07:03

제임스 킵상 쾀바이(케냐)

2:08:50

2010

슬리베스터 테이멧(케냐)

2:06:49

벤자민 콜룸(케냐)

2:07:54

데이빗 켐보이 키엥(케냐)

2:08:15

2009

모세스 아루세이(케냐)

2:07:54

무르게타 와미(에티오피아)

2:09:50

프란시스 라라발(케냐)

2:09:00

2008

새미 코리르(케냐)

2:07:32

조르헤 키마니(케냐)

2:19:01

솔로몬 몰라(에티오피아)

2:08:46

2007

이봉주(한국)

2:08:04

빅토르 망구쇼(케냐)

2:14:01

조슈아 첼랑가(케냐)

2:08:14

2006

제이슨 음보테(케냐)

2:11:41

엘리자 무타이(케냐)

2:13:46

제이슨 음보테(케냐)

2:08:13

2005

윌리엄 킵상(케냐)

2:08:53

엘리자 무타이(케냐)

2:09:27

윌리엄 키플라가트(케냐)

2:08:27

2004

거트 타이스(남아공)

2:07:06

엘리자 무타이(케냐)

2:14:31

로스쿠토브(에스토니아)

2:09:34

2003

거트 타이스(남아공)

2:08:42

엘리자 무타이(케냐)

2:13:54

로스쿠토브(에스토니아)

2:09:15

 

 

지난3월 서울국제마라톤에서 2시간05분37초의 대회 최고기록으로 우승한 케냐의 에루페(오른쪽)가 쾀바이(케냐)와 선두를 다투고 있다. 쾀바이는 2시간06분03초로 2위에 머물렀으나 11월 중앙서울마라톤에서는 2시간05분50초의 기록으로 우승했다. 에루페는 10월 동아일보 경주국제마라톤에서도 2시간06분46초로 정상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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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학수(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 연구소장)

 

 

              지난 11월 4일 오전. 뉴욕의 심장 센트럴파크에는 수천명의 마라톤 애호가들이 울긋불긋한 조깅복 차림으로 모여들었다. 청명한 가을 날씨속에 마라톤을 하기 위해서였다. 일부는 이날 경기를 ‘음지의 레이스(shadow race)' 또는 ‘지하의 마라톤(underground  marathon)'이라고 불렀다. 많은 이들은 이 대회를 어떻게 불러야할지 몰랐다. 공식 대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가 있고 세계적으로도 가장 큰 규모인 뉴욕 마라톤대회가 대회 직전 전격 취소됐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마라토너들은 아쉬움속에 ’그들만의 마라톤‘을 뛰었다. 뉴욕 마라톤 대회의 시설들은 철거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센트럴파크 서쪽에 설치된 파란색과 오렌지색의 골인라인에는 간이 화장실과 오렌지색 매대, 기자석 등이 있었다. 비록 대회는 취소됐지만 조직위 사람들은 경찰에게 마라톤을 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했으며, 경찰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날 센트럴파크 공원 주위를 뛴 마라토너들은 진짜 대회에 참가한 기분으로  손뼉을 치고 환호하며 즐거워하는 모습들이었다. ‘아버지를 사랑합니다’라고 쓴 플래카드를 가슴에 단 어린이, 미리 제작된 뉴욕마라톤 참가 셔츠를 입고 걷는 여성들도 있었다. 골인지점 앞에서 많은 참가자들은 팔을 번쩍 들어 완주의 기쁨을 나타냈으며 카메라폰과 비디오폰으로 연신 찍기에 바빴다. 비록 정식 대회는 아니었지만 마라톤을 하면서 모두들 흥분하고 행복해하는 모습들이었다.

 

뉴욕 마라톤대회 취소 전후의 과정은 스포츠 PR의 위기관리 사례를 잘 보여준 것으로 연구를 해볼만하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그 위기를 극복하고 효과적으로 상황을 반전시키는 것이 스포츠 PR의 위기관리법이다. 뉴욕 마라톤대회는 갑작스런 외부환경의 변화로 인해 대회 개최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했다. 뉴욕을 비롯한 미국 동부지역을 강타한 허리케인 샌디로 인해 엄청난 피해가 발생하면서 ‘하느냐, 마느냐’로 논란을 빚게됐다. 샌디는 뉴욕 주위의 도시를 일순간에 황폐화시켰으며 도시 교통체계를 마비시켰다. 뉴욕시 사망자만 40명이 넘고 수십만 가구가 정전상태에서 생활에 큰 불편을 겪었다.


뉴욕시와 대회조직위는 샌디 엄습직후 고통을 겪은 이재민들에게 통합된 힘을 보여주기 위해 정상적으로 대회를 개최한다는 입장이었다. 마이클 블롬버그 뉴욕 시장은 샌디 피해직후 어려운 시기에 희망을 주기위해 노력하는 시의 능력을 통합의 상징으로 보여주자고 밝혔다. 1970년이후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는 뉴욕 마라톤대회는 2001년 9‧ 11 테러 때도 열렸을 정도였으니 대회 개최 의지의 열정은 남다를 수 밖에 없었다. 이번 뉴욕 마라톤 대회의 경우 4만7천여명의 참가선수, 8천여명의 자원봉사자, 1천명의 대회 관계자와 2백만명의 TV 시청자들은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줄 수 있는 호재였다. 대회 참가자들이 자선기금을 마련해 경제적으로 곤경에 빠진 이재민을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다는게 대회 개최 찬성측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대회 개최 반대의 주장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뉴욕 시민들과 마라톤 구간에서 피해를 당해 깊은 시름에 빠진 사람들을 맞닥트려야 하는 많은 대회 참가자들은 대회 개최를 반대했다. 반대자들은 파괴된 도시 기능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투입되어야 할 경찰력과 소방인력이 대회 개최에 동원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발끈했다.


블롬버그 시장 등 뉴욕시관계자와 마라톤 조직위 관계자들은 여론이 악화되자 대회 이틀전인 2일 대회 취소를 전격 결정했다. 뉴욕 타임스 등은 많은 참가자들이 대회 취소의 충격속에 이를 일찍 결정하지 않은 뉴욕시를 성토하고 있다며 시리즈 기사를 내보냈다. 뉴욕 마라톤 취소로 충격에 빠진 것은 이미 뉴욕에 도착한 4만명의 참가자들이었다. 거액의 돈을 들여 미 전역과 세계 각국에서 날아 온 참가자들은 크게 낙담하는 표정들이었다. 뉴욕시와 대회 조직위측은 시와 대회의 이미지를 관리하는데에만 신경을 씀으로해서 실책을 하게 됐다. 여론의 향방을 사전에 미리 충분히 읽지 못했고, 대회 주최측의 입장에서만 판단했던 것이다. 좀 더 종합적으로, 거시적으로 대회 개최 문제를 검토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뉴욕 마라톤 대회 취소 과정을 지켜보면서 2001년  9‧ 11 테러 여파로 취소됐던 LPGA CJ 나인브릿지 골프대회가 떠올랐다. 당시 체육부장으로 근무하던 스포츠 투데이가 LPGA로부터 5년간 운영권을 따내 한국 제주도에서 첫 대회를 준비중이던 때 9‧ 11 사태가 터졌다. 이때 미 LPGA는 선수들의 안전을 이유로 대회 취소를 일방 통보했다. 그동안 많은 노력을 해왔던 대회 주최측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느닷없이 일어난 일에 당황했다. 부랴 부랴 신문에 대회 취소 사실을 보도하고 관련 스폰서측에 정중히 양해를 구해야 했다.


이처럼 정해진 대회가 자연 재해 및 큰 사건 등으로 큰 위기를 맞는 경우가 스포츠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이럴 때 적극적인 PR 활동으로 일방적으로 흘러가는 여론을 막아야한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홍보활동으로 조속한 사태해결에 신경을 써 관련된 이들로부터 신뢰성 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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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종세(스포츠동아 이사)

 

 

 

 

대한육상경기연맹, 케냐 윌슨 에루페 귀화 추진 움직임
빠르면 2014 인천아시아경기부터 참가 가능성

 

           까만 피부의 아프리카 선수가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이나 아시아 경기의 마라톤 레이스를 펼친다면….

우리나라에도 흑인 국가대표 마라토너가 탄생할 수 있을까. 침체에 침체를 거듭하고 있는 한국 마라톤이 케냐선수를 귀화시켜 국가대표로 기용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내 마라톤 활성화를 위한 고육지책의 일환이다. 이미 카타르 바레인 등에서는 귀화한 케냐나 모로코 선수들이 아시아경기대회 육상에서 금메달을 따내고 있고 다민족으로 구성된 미국은 물론 독일 일본의 경우도 많은 종목에서 귀화선수들이 국가대표로 활약하고 있다. 빠르면 2014년 인천아시아 경기대회, 늦어도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태극마크를 달고 레이스를 펼칠 마라토너. 그는 바로 올 서울국제마라톤과 경주국제마라톤에서 거푸 우승한 케냐의 윌슨 로야나에 에루페(24)다.

 

지난 10월21일 2012 경주국제마라톤에서 1위로 골인하는 윌슨 로야나에 에루페 ⓒ동아일보

 

 

올 서울 ․ 경주국제마라톤 우승한 24세의 신예…2시간05분37초 최고기록 보유 
에루페 그는 누구인가

 그는 1988년생으로 1m75에 61kg의 체격. 작년 봄 케냐 뭄바사 마라톤대회에 데뷔, 2시간12분47초의 기록으로 1위에 오른 이후 4번의 풀코스 대회를 잇달아 석권한 무쇠다리다. 작년 10월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타고 우리나라 경주국제마라톤에 나선 에루페는  난코스의 어려움에도 막판 스퍼트로 2시간09분23초를 기록, 첫 해외 원정을 우승으로 장식했다.


그로부터 5개월. 그는 올 3월18일 열린 서울국제마라톤에서 한국 마라톤 대회사상 가장 좋은 기록인 2시간05분37초의 대기록을 수립했다. 이 기록은 11월1일 현재 역대 세계51위(이봉주의 한국기록 2시간07분20초는 229위)이며 올해 세계 랭킹은 16위, 그리고 올 각종 국제마라톤대회 우승 기록으로는 7위다. 특히 가장 지칠 수밖에 없는 35~40km구간에서 14분11초, 마지막 2.195km에서도 6분12초의 놀라운 뒷심을 발휘했다.

 

 

 

<에루페 풀코스 마라톤 우승 기록>

대 회

기 록

비 고

  2011 뭄바사

2시간1247

풀 코스 첫 도전

2011 경 주

2시간0923

해외대회 첫 참가

2012 서 울

2시간0537

대회최고기록 수립

2012 경 주

2시간0646

경주대회 2연패

 

지난 3월18일 2012서울국제마라톤에서 우승테이프를 끊는 윌슨 로야나에 에루페

 

 

풀코스 4번 뛰어 모두 우승한 불패의 주인공…뛰어난 후반 스퍼트 주무기  
 에루페는 지난 10월21일 열린 2012 경주국제마라톤 역시 2시간06분46초(역대 세계 160위)로 이 대회를 2연패, 한 시즌 두 번  우승의 진기록을 세웠다. 올 경주마라톤에서도 30~35km구간은 14분33초, 35~40km구간은 14분20초, 마지막 2.195km는 6분19초에 주파, 막판에 강한 면모를 다시 한번 입증해 보였다. 


특히 올 시즌 봄과 가을 두 차례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 두 번 모두 2시간06분46초 이내의 기록을 작성한 마라토너는 전 세계에 에루페를 포함, 6명뿐이다.

 

 

카타르 바레인 등 ‘귀화 용병‘ 수두룩…미국 독일 일본에도 많아
외국의 ‘귀화 용병’ 사례

2006년 12월10일 도하 아시아경기대회 남자마라톤에서 2시간12분44초로 우승한 카타르의 무바라크 하산 샤미(카타르)는 케냐 출신의 ‘귀화 용병’. 그는 2007년 오사카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마라톤에서도 준우승했으며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에서는 한국의 지영준(금메달)과 경합을 벌이다 동메달을 땄다. 2006년 도하 아시아경기에서는 2005년 케냐에서 카타르로 귀화한 다함 나짐 바샤이르가 남자 1,500m에서 3분38초06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중동의 바레인 역시 모로코에서 귀화한 다레크 무바라크 살렘과 하산 마부브가 각각 2006년 도하 아시아경기 남자 3,000m장애물경기와 남자 10,000m에서 우승했다. 또 모로코 출신인 바레인의 라쉬드 람지는 2005년 헬싱키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800m와 1,500m에서 금메달을 땄으나 도하 아시아경기 1,500m에서는 카타르의 바샤이르에 뒤져 은메달에 그쳤다.


 여러 나라 민족으로 구성된 미국의 경우 어느나라 보다 귀화한 국가대표가 많다. 한때 세계마라톤 기록(2시간05분38초)을 보유했던 할리드 하누치는 모로코 출신이며, 2007년 오사카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마라톤에 미국대표로 뛰었던 음바락 후세인 등도 케냐 출신이다. 2008년과 2009년 런던마라톤 여자부를 연패한 독일의 이리나 미키텐코 역시 카자흐스탄 출신. 육상은 아니지만 일본의 경우 1994년 라모스, 1998년 로페즈, 2002년에는 산토스 등 브라질 출신 선수들을 귀화시켜 월드컵 축구대회 국가대표 선수로 기용했다.

 

 

등록선수 모두 1백여 명 불과한 최악의 상황…기록도 남녀 모두 중하위권  
한국마라톤 현실

1936년 베를린올림픽(손기정 우승, 남승룡 3위)과 1950년 보스턴 마라톤(함기용 우승, 송길윤 2위, 최윤칠 3위)에 이어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황영조 우승)과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이봉주 2위)에서 주목을 받았던 한국마라톤이 침체의 늪에 빠진 것은 1997년 이후. 지난 16년간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이렇다 할 기록은 물론 동메달 하나도 따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
특히 지난해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남자부는 정진혁이 2시간17분04초로 23위, 여자부는 김선경이 2시간37분05초로 28위에 그쳐 국민들에게 큰 실망을 안겼다.


 한국마라톤은 올 들어서도 부진을 면치 못했다. 85명이 완주한 8월의 런던올림픽 남자부에서 이두행이 2시간17분19초로 32위, 장신권은 2시간28분20초로 73위, 정진혁은 2시간38분45초로 82위에 머물렀다. 107명의 선수가 완주한 여자부에서도 정윤희가 2시간31분58초로 41위, 임경희가 2시간39초03초로 76위, 김성은이 2시간46분38초로 96위를 마크했다. 남녀 대표 6명이 모두 완주한 것만도 다행이었다.


 올 국내에서 개최된 국제대회에서도 외국선수들은 세계적인 기록을 쏟아 냈으나 한국선수들은 기대이하였다. 서울국제마라톤(3월18일)에서는 정진혁이 2시간11분48초, 김성은이 2시간29분53초, 대구국제마라톤(4월8일)에서는 이두행이 2시간14분05초, 임경희가 2시간32분49초로 각각 남녀부 1위를 했다. 경주국제마라톤(10월21일)에서는 오서진이 2시간17분02초, 최보라가 2시간40분20초, 춘천국제마라톤(10월28일)에서는 박주영이 2시간19분49초, 박유진이 2시간42분55초로 국내 남녀부 1위를 각각 기록했다. 11월4일 열린 중앙마라톤에서도 김영진과 최경희가 2시간17분00초. 2시간39분19초로 각각 남녀부 우승을 차지했다.


한마디로 현재 한국마라톤은 최악의 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 1백여 명 이상의 남녀 엘리트선수가 참가하던 국내대회에 남자 20~30명, 여자 6~8명이 참가할 만큼 선수난에 허덕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기록이나 아시아 기록은 물론 한국기록 경신도 까마득한 실정이다. 이봉주의 남자기록 2시간07분20초(역대 세계229위)는 12년 넘게 요지부동이며 권은주의 여자기록 2시간26분12초 역시 15년 동안 깨지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마라톤은 “이제 더 이상 추락할 곳도 없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2012 국내개최 국제마라톤대회 한국 우승선수 기록>

날짜

대회

남 자 부

여 자 부

03/18

서울

정진혁(건 국 대) 2시간1148

김성은(삼성전자) 2시간2953

04/08

대구

이두행(고양시청) 2시간1405

임경희(SH 공사) 2시간3249

10/21

경주

오서진(체육공단) 2시간1702

최보라(경산시청) 2시간4020

10/28

춘천

박주영(한국전력) 2시간1949

박유진(삼성전자) 2시간4255

11/04

중앙

김영진(삼성전자) 2시간1700

최경희(경기도청) 2시간3919

 

 

 

본인의 의사 중요…한국실업팀 입단 후 대한체육회 심사 등 절차 거쳐야
귀화 가능성과 득실

 대한육상경기연맹은 작년부터 3번이나 우리나라 국제마라톤에 참가, 모두 우승한 에루페를 한국에 귀화시켜 마라톤 활성화의 기폭제로 삼으려는 움직임이다. 대한육상경기연맹의 고위관계자는 최근 “국내마라톤 활성화를 위해 에루페의 귀화를 조심스럽게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에루페를 귀화시켜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에 내보낼 경우 우승가능성이 매우 높고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도 메달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에루페가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에서 우승할 경우 국내 마라톤 붐 조성에도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990년대 황영조 이봉주 김재룡 김완기 등이 기록경쟁을 벌이면서 올림픽과 아시아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냈고 한국 남녀기록도 잇달아 경신됐으며 마라톤 붐도 일어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시민마라톤인 마스터스마라톤이 처음 시작된 것은 1994년 황영조 등이 한창 활약했을 때였다. 현재 4~5백 만 명으로 추산되는 한국 달리기 동호인의 급속한 증가의 시발점이 바로 이 시기였다.

 

 

 

 

 


 그러나 에루페의 귀화가 쉽지만은  않다. 먼저 에루페 본인의 의사가 매우 중요하며 에루페가 귀화 의사를 밝히더라도 그를 받아 줄 국내 실업팀이 있어야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해당 실업팀과 에루페가 상당한 액수의 계약금에 합의해야하는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 이어 대한체육회가 에루페 귀화에 따른 심의를 통과시켜야한다. 대한체육회는 지난여름 프로축구 전북의 에닝요 귀화요청을 부결시킨바 있다. 그러나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규정에는 에루페가 한국에 귀화, 2014년 인천아시아경기에 참가해도 문제가 없다. 종전에는 귀화한지  3년이 지나야 국가대표선수로 뛸 수 있었으나 전 소속국가에서 국가대표선수로 뛰지 않았을 경우는 귀화한 나라에서 바로 국가대표선수로 활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케냐 현지에서 에루페를 발굴, 조련해온 오창석 백석대 스포츠과학부 교수는 “아직 대한육상경기연맹으로부터 공식적인 제의를 받은 적이 없다. 제안이 오면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이다”고 말했다. 오교수는 “에루페가 귀화해 국내 선수들과 합동훈련할 경우 유 무형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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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흑인 최초로 태극만크를 단 마라톤 선수가 탄생할 수 있을 지 기대가 되네요~!
    에루페 선수의 귀하를 통해 우리나라마라톤이 활성화 됬으면 좋겠습니다^^

    • Mr.Zon 님~ 조금은 침체되어 있는 우리의 마라톤이 활성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많은 분들이 마라톤 대회에 참여하고 있지만, 선수는 부족한 실정이니까요 ^^

  • 개인적으로 국가대표만큼은 순혈주의를 유지했으면 하는 한사람입니다.
    편협한 시각일지는 몰라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선수는 흑인이든 백인이든 혼혈이든, 귀화인이 아닌 한국인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도플갱어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가대표가 한국인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귀화선수에 대한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고, 조금은 어렵고도 민감한 부분이네요 ^^ 모두의 공통된 기대는 마라톤에 대한 관심의 증가로 선수들도 많이 증가해서 다시 예전처럼 뛰어난 기록도 나와서 마라톤이 활성화되었으면하는 바램입니다 :)

    • 순혈주의라니... 나찌의 베를린 올림픽 생각이 ㅠㅠ

 

 

 

글/김학수(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 연구소장)

 

          1985년 봄 일간스포츠 편집국으로 첫 출근했을 때의 흥분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어릴 때부터 스포츠를 좋아했던 필자는 스포츠 기자가 돼 신문활자로만 접했던 기라성 같은 스포츠 대기자를 직접 만나게 됐다는 설레임으로 가슴이 뛰고 있었다. 스포츠 기자로서 관심을 갖게 했고, 결국 기자로의 길을 걷게한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동표 선배와 오도광 선배가 그들이다. 두 분은 대한민국 스포츠 기자 1세대로 1969년 국내 최초의 스포츠 전문지인 일간스포츠 창간에 참여했다. 필자가 입사할 당시엔 논설위원과 부국장으로 활동하며 체육계에서는 유명 인사였다. 체육기자의 꿈을 품고 입문한 올챙이 기자가 대선배와 한 배를 타게됐다니 얼마나 감격스러웠겠는가. 그때만해도 스포츠기자는 신문, 방송 합쳐도 수십명에 불과했을 때였다.


오도광 선배는 스포츠 외신담당으로 필자를 비롯한 막내기자들의 기사작성 능력을 거들어주는 멘토였다. 조동표 선배는 한국일보, 일간스포츠 스포츠 부장을 모두 거치고 이미 정년을 한 뒤 계약직으로 논설위원을 하고 있었다. 두 분이 편집국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큰 자랑거리였으며 장차 그들처럼 유능한 체육기자가 되리라는 꿈을 갖도록 해주었다. 오도광 선배는 국내 스포츠 기자로서는 처음으로 ‘오도광 스포츠 칼럼’이라는 전문 스포츠 칼럼을 연재해 많은 고정 독자를 갖고 있었다. 오도광 스포츠 칼럼은 스포츠를 주제로 하면서도 문화, 연예 분야의 사례를 폭넓게 인용해 ‘하이브리드 칼럼’이라는 평을 들었다. 조동표 선배도 오도광 선배와 비슷한 시기에 매주 요일을 다르게 하여 스포츠 칼럼을 연재했다.


필자와 오도광 선배는 각별한 인연이 있었다. 편집국장 석 바로 앞에 독립책상을 갖고 있었던 오도광 선배는 무하마드 알리와 같이 찍은 사진을 책상 바닥에 붙여놓았을 정도로 복싱에 큰 애착을 갖고 있었다. ‘USA 투데이’, ‘성조지’ 등 미국 신문 스포츠면에서 보도된 스포츠 기사, 특히 복싱 기사의 번역일을 필자를 비롯한 동기들에게 지시했다. 백인 헤비급 복서 록키 마르시아노,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 등의 기사를 박스물로 번역, 기사화했던 기억이 있다.

 

 

 


오도광 선배는 경기고, 서울대 사회학과를 거쳐 대학을 졸업하기 전 한국일보에 입사해 신동소리를 들었던 유능한 체육기자였다. 장기영 한국일보 사주가 고졸출신으로 견습기자 시험에서 학력제한을 두지 않아 오도광 선배와 같이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입사한 선배들이 몇 분 있었다. 1960~70년대 최고의 종목이었던 복싱 기자를 했던 오도광 선배는 60년대 경기결과 위주로 쓰던 기사 스타일을 AP, UPI 통신처럼 선수들의 개인적인 스토리와 멘트를 담는 미국식 스타일로 새로운 기사 작성 영역을 개척한 이로 유명했다. 필자가 초년기자때 ‘오도광이 만난 사람’이라는 인물 인터뷰 코너를 연재했던 그는 한번 펜을 들면 일필휘지로 단숨에 원고지를 메워 나가 편집자들을 놀라게 하곤했다. 서울 토박이 출신으로 ‘오또’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던 오도광 선배는 당시 매주 월요일마다 신문이 휴간했던 일간스포츠 ‘월요 산악회’를 조직해 북한산, 도봉산, 관악산 등 서울 인근 산을 편집국 멤버들과 정기적으로 다니기도 했다. 서울 올림픽 보고서 집필을 감수한 오도광 선배의 이름 석자가 올림픽 공원 돌에 각인되어 있다. 대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재미교포 2세인 월터 정씨의 추모비에 그가 쓴 추모문이 새겨져 있는데 말미에 ‘오도광 지음’이란 글귀가 남아 있다.


 조동표 선배는 오도광 선배보다 10여년 위로 필자와는 아버지뻘의 나이차 때문에 거리감이 있었다. ‘조동표 시론’을 매주 연재한 조동표 선배는 사실상 대한민국 스포츠 기자 1호로 해방직후부터 기자생활을 시작해 방송기자를 거쳐 한국일보, 일간스포츠에서 체육기자로 잔뼈가 굵었다. 육상과 농구 전문기자였던 조동표 선배는 후배들이 잘 모르는 취재 정보를 제공하며 체육기자 대선배로서의 역량을 발휘해 주기도 했다. 조동표 선배가 1992년초 일본 벳부 마라톤에서 준우승을 한 황영조의 가능성을 일찍이 알아차리고 필자를 비롯한 후배기자들에게 집중적으로 지면에서 다룰 것을 지시했던 기억이 난다. 조동표 선배는 한국농구 100년사, 한국스포츠 야사 등을 집필해 한국 스포츠의 역사를 기록화했다.


두 선배는 필자가 체육부장, 편집국장을 거칠 때는 이미 현직을 모두 떠났다. 하지만 그들로부터 받은 영향은 취재와 신문제작을 통해서 보이지 않게 나타나곤했다. 그들과 맺어졌던 체육인들의 인맥 도움을 많이 받았고, 취재의 방향을 정하는데도 여러 점을 고려할 수 있었다.


아쉽게도 두 분은 올해 몇 달 간격으로 이 세상을 떠났다. 조동표 선배는 87세의 일기로 올 6월 타계했으며, 오도광 선배도 75세의 나이로 이달 중순 돌아가셨다. 두 선배가 남기고 간 세계는 지금 현재 일선기자로 활동하는 후배들에게는 잊혀진 세계일지 모른다. 하지만 필자에게는 인생의 선배이자 기자의 선배, 같은 신문사의 선배로서 결코 잊을 수 없는 분들이다. 두 선배는 스포츠의 삶을 믿고, 스포츠의 건강성을 추구하며 거시적인 시각에서 스포츠를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비평한 영원한 스포츠기자의 인생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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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학수(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 연구소장)

 

 

            사상 처음으로 우주에서 세기적인 고공강하를 실행, 성공했던 오스트리아 스카이다이버 펠릭스 바움가르트너의 이야기가 세계적인 흥분과 놀라움을 더 크게 전해줄 수 있었던 것은 유튜브의 생생한 중계 덕분이었다. 유튜브는 바움가르트너가 준비단계에서부터 헬륨 열기구를 타고 지상으로부터 39km 지점으로 도약하는 단계, 성층권에서 점프후 음속 돌파를 하며 최종 지상으로 착지하는 순간 등 전 과정을 실시간으로 동영상 처리했다. 만약 이러한 과정들이 생생하게 중계가 되지 않았다면 그의 세계적인 고공강하는 그렇게 큰 감동을 주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강하가 성공했을 때, 세계를 하나로 연결한 유튜브로 중계된 동영상은 세계 각 매스미디어와 소셜미디어들에 의해 대대적으로 전해질 수 있었다.

 

미국시간으로 10월 14일 일요일이었다. 유튜브의 동영상은 특별한 이벤트에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것은 축구, 미국 대통령 후보 토론회, 일요일 브런치 등이 아니었다. 사상 처음으로 인간이 기구를 타지 않고 맨몸으로 벌이는 우주고공강하쇼였다.  ‘레드불 스트레토스’라는 프로젝트이름으로 명명된 바움가르트너의 우주강하가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생중계될때 또 다른 역사적인 기록이 세워졌다. 8백만. 전 세계에서 유튜브에 동시 접속한 사람 숫자였다. 금년 1차 미국 대선후보 토론회와 런던올림픽에서 유튜브는 백만명 정도의 접속수를 기록했지만 우주강하가 이를 가볍게 넘어선 것이었다. 물론 공식발표된 숫자는 아니었지만 이 정도의 접속수가 이루어졌다는게 유튜브의 설명이었다.

 

 

영상보러가기! http://www.youtube.com/results?search_query=Felix+Baumgartner

 

 

인류 첫 우주강하는 개인에 의해 손쉽게 성공된 것이 아니었다. 유튜브가 생생한 중계를 위해 레드불과 긴밀한 공조체계를 이루었던 것이다. 공조체계의 핵심은 카메라와 동영상과 오디오 중계방식이었다. 레드불은 강하가 어떻게 진행되는가를 여러 각도에서 카메라에 포착, 영상으로 찍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삼았다. 우주선에서 다양한 카메라 운용 경험을 갖고 있는 플라이트라인 필림사가 맡은 카메라 작업은 사전에 극한의 저온과 고온, 고압 등 특수조건에서도 견딜 수 있도록 했다. 특수처리한 카메라 9대를 그의 우주복과 캡슐안에 설치했다. 또 헬리콥터를 띄워 공중에서도 고화질의 영상을 찍도록 했다.

 

영상과 오디오 중계방식은 리델 커뮤니케이션스사가 담당했다. 생생한 카메라 작동과 끊어지지 않는 오디오 연결을 위해 ‘디지털 비디오 루터’라는 방식을 채택, 운영했다. 지상에선 어떠한 정보의 손실이 발생하지 않도록 풍부한 광섬유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100개의 무선 리시버와 10개 채널이 운영됐으며 영상은 24시간 네트워크체제가 가동됐다. 광섬유 네트워크는 결과적으로 빠른 데이터 전송과 무난한 실시간 전송을 이루는데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이다.

 

바움가르트너의 우주강하쇼 실시간 중계는 유튜브와 레드불 프로젝트팀이 이뤄낸 기술적 성과였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유튜브라는 뉴미디어 매체가 아니었다면 그의 역사적인 도전은 생생하게 전 세계인들에게 전파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유튜브의 위력은 이미 다양한 영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국제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가  순식간에 전 세계로 유포될 수 있었던 것도 유튜브로 인해 가능했다. ‘강남스타일’은 최근 유튜브 조회수가 5억건을 넘어섰다. 유튜브는 이미 음악, 문화, 스포츠 등에서 컴퓨터를 사용할 줄 아는 이라면 누구나 동영상을 올려 몇 분 안에 수백만명이 볼 수 있도록 해 뉴미디어의 총아로 자리매김했다. 유튜브의 강점은 콘텐츠 접근성이 용이하고 영상의 호환성이 매우 높아 이용자가 다양한 포맷으로 영상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무료 동영상 공유사이트라는 점도 큰 매력이다. 

 

유튜브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유비쿼터스 미디어로서 앞으로 그 영역을 더욱 확장시켜 나갈 것으로 보인다. 기존 공중파나 케이블 TV가 무거운 ENG 카메라와 중계 장비 등으로 각종 대회, 국제 회의, 멀티 쇼 등 ‘큰 그림’을 전달하는데 주력했다면 유튜브는 개인들이 직접 만드는 ‘작은 그림’도 언제든지 영상으로 제작, 공유할 수 있는 강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유튜브를 통해 스포츠에서도 앞으로 어떠한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지 누구도 예측하기가 힘들다. 그만큼 풍성한 가능성이 유튜브 앞에 놓여져 있는 셈이다.


 바움가르트너의 우주고공강하 성공을 계기로 앞으로 유튜브와 여러 과학기술이 접목을 이뤄 일반인들도 상업적인 우주 고공강하를 하게 될 날도 멀지않은 것 같다. 유튜브 동영상에 오른 개인의 우주 고공강하 동영상을 자랑삼아 이야기 할 날이 성큼 성큼 다가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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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학수(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 연구소장)

 

 

      ‘비운의 복서’ 김득구의 이야기가 미국에서 책으로 출간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스포츠 칼럼니스트 마크 크리에겔이 김득구와 레이 맨시니의 죽음의 경기와 그 이후를 다룬 ‘착한 아들’이라는 제목으로 18일 출간한 책의 주요내용을 소개하는 특집기사를 인터넷판에 보도했다. 특집기사 제목은 ‘ A Step Back(한발 물러섬) ’. ‘Families Continue to Heal 30 Years After Title Fight Between Ray Mancini and Duk-koo Kim(가족들이 김득구와 레이 맨시니의 경기이후 30년동안 상처 치료를 계속하고 있다’는 부제를 붙인 이 특집기사는 인터넷 웹 페이지 8장에 이를 정도로 장문으로 구성돼 있다.

 

 

 


1982년 11월13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시저스 팰리스 특설링에서 벌어진 김득구와 레이 맨시니의 WBA 라이트급 챔피언 타이틀전은 14라운드까지 이뤄진 치열한 승부 끝에 김득구의 죽음이란 비극적 결말로 끝났다. 이 경기를 본 필자를 비롯한 모든 한국인들의 기억속에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비운의 라운드로 자리잡았다. 김득구는 맨시니에게 턱을 강타당한 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5일간의 뇌사상태 끝에 생을 마감했다. 김득구는 사후 가족들의 동의를 얻어 장기를 기증, 잔잔한 감동을 주기도 했다. 김득구의 비극은 그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김득구의 어머니는 그후 3개월 뒤 자살했고, 경기 심판이었던 리처드 그린도 7개월뒤 자살했다.


김득구 스토리는 지난 2002년 곽경택 영화감독에 의해 배우 유오성을 주연으로 한 ‘챔피언’이라는 타이틀로 영화화됐었다. MBC에서 지난 해 창사 50주년 특집 다규멘터리 ‘14라운드’라는 제목으로 한국서 책으로 출간된 적이 없었던 만큼 미국에서 책이 나온다는 것은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다. 칼럼니스트 마크 크리에겔은 백인복서로는 드물게 큰 성공을 거둔 맨시니와 김득구의 죽음의 대결에 초점을 맞춰 책을 구성했다.


이 기사는 맨시니의 최근 생활, 김득구의 삶과 사랑, 복서생활, 죽음의 라운드 이야기, 김득구 가족과 맨시니의 만남 등을 책의 내용에서 발췌해 상세하게 보도했다. 전형적인 ‘헝글리 복서’인 김득구의 불우한 가족사와 힘겨운 성장과정, 가슴아픈 사랑이야기 등이 눈길을 끌었다. 2살 때 아버지를 잃은 김득구는 재가한 어머니와 함께 5살도 채 되지 않아 두부행상을 했던 양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등짐을 메고 무작정 가출, 휴전선에서 18km 정도 떨어진 동해안 최전방마을인 가난한 어촌 반암에 새 둥지를 틀었다. 어머니가 새 양아버지를 만나 ‘김’씨 성을 갖게 된 김득구는 14살에 반암을 떠나 서울로 상경한 뒤 다리 밑에서 생활하며 밤장수, 볼펜 장수 등으로 어렵게 생활했다. 김득구는 밑바닥 생활속에서 복싱을 통해 가난에 대한 분노를 삭이고 성공을 해야한다며 야망을 키워나갔다. 김득구는  동아 체육관에서 김현치 관장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갖고 3년 간 아마추어 활동을 하다 1978년 4라운드 판정승으로 프로 권투계에 데뷔했다. 밤낮 없는 연습과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을 통해 한국 라이트급 챔피언, 동양 라이트급 챔피언이 되며 승승장구를 했다. 그러던 중 체육관 옆 사무실을 다니던 운명의 여인 이영미씨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비밀 약혼식을 올린 김득구는 그로부터 1년 후, 유복자를 두고 맨시니와의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위해 미국으로 날아갔다.


이 기사는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맨시니와 김득구의 유복자 아들 김지환과 그의 부인 이영미씨와의 극적인 만남을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이들의 만남은 2011년 6월 23일 미국에서 이루어졌다. 영화제작자로 활동중인 맨시니가 초청을 해 가능했던 것이었다. 맨시니는 자신의 자서전을 위해 김득구 유가족이 인터뷰를 응해준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미국 방문을 주선했다. 극적인 만남은 맨시니의 집에서 행해졌다. 맨시니와 그의 가족들은 김득구의 링사고 당시 7개월 유복자였던 김지환씨와 그의 어머니를 만났다는 것에 크게 감격스런 표정이었다.


맨시니는 김득구의 아들이 29살로 어엿한 청년으로 잘 자라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현했다. 맨시니는 “당신들을 직접 만나니 행복하다. 치과의사과정을 밟고 있을 정도로 훌륭하게 자란 아들이 자랑스럽다. 김득구는 내 가슴속에 항상 남아있고, 그동안 많은 악몽도 꿨다. 이제는 어느 정도 그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고 김득구의 유가족들에게 말했다. 


김지환씨는 “맨시니가 아직도 예전의 경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며 편안한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들었다. 이제는 맨시니도 가정을 갖고 아들과 딸 자녀들을 두며 단란한 가정을 이끌어 가고 있는만큼 부담감에서 벗어났으면 한다. 특히 맨시니 자녀들에게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며 과거의 상처로 고통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맨시니 가족을 위로했다. 맨시니는 큰 딸 니나는 전문대학교에 다니는 학생으로 레스토랑 관리업무를 배우고 있으며 아들 레이 레이는 고등학교에서 농구선수로 활동중이라고 소개했다.

30년이 지난 충격적인 김득구의 링 사망 사건을 소재로 살아있는 그의 유가족까지 찾아서 인터뷰를 하며 고통과 상처의 치유과정을 소개한 미국 스포츠 칼럼니스트의 치열한 정신을 높이 평가할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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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 마라토너 정진혁, 삼성 입단제의 뿌리치고 한전과 계약
육상계, “신선한 충격…선수들 장래 위해 바람직한 선택”

 

 

 

 글 / 이종세(스포츠동아 이사)

 

 

 

 

 

거액의 계약금보다는 평생직장을 택했다. 

 

2012 런던올림픽 남자 마라톤 국가대표 정진혁(22 ‧ 건국대 4년)이 수 억 원의 계약금을 제시한 삼성육상단의 제의를 뿌리치고 최근 계약금 없이 4천만 원의 연봉만 주는 한국전력 육상단(단장 ․ 신창환)과 입단계약을 체결, 육상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해 서울국제마라톤에서 2시간09분28초의 기록으로 전체 2위(국내 1위)를 차지, 지영준(31 ‧ 코오롱 ․ 2시간08분30초)에 이어 국내 현역선수 랭킹 2위에 오른 정진혁. 그는 지난해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이어 올 서울국제마라톤에서도 국내선수 1위를 지켜 사실상 한국마라톤의 간판스타로 자리매김했다.


 때문에 이봉주의 은퇴로 전력에 공백이 큰 삼성육상단을 비롯 코오롱 등 실업팀들이 작년부터 정진혁의 영입을 위해 많은 공을 들여왔다. 하지만 스카우트 비용이 한 푼도 없는 공기업 한전의 경우는 언감생심 정진혁의 영입을 꿈꿀 수도 없었다. 한전은 규정상 삼성, 코오롱 등 실업팀처럼 스카우트 비용이 없어 아예 고졸 출신만 뽑고 대졸 선수의 영입은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1962년 4월에 창단, 50년 전통을 지닌 한전육상단은 이상훈, 이창훈, 이명정, 유명종, 김차환, 최경렬, 김재룡, 백승도 등이 1960년대부터 1990년대 까지 한국마라톤을 호령했으나 코오롱과 제일제당 동양나일론 등 실업팀이 창단되면서 밀리기 시작했고 2000년대에는 재벌 기업 삼성이 육상단을 창단하면서 더욱 위축, 겨우 명맥만 이어왔다. 이는 회사 사정상 몇 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이르는 선수 스카우트 비용을 마련할 수 없어 우수선수를 뽑지 못했기 때문. 다만 장점이라면 공기업이어서 선수은퇴 후에도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러나 황금만능주의, 배금주의의 풍조가 만연한 요즘 세태에 평생직장보다는 당장 몇 억 원의 계약금을 받기위해 많은 우수선수들이 한전 같은 공기업보다는 삼성 등 실업팀을 선호해왔다.

 

 

 지난해 3월 서울국제마라톤에서 2시간09분28초의 기록으로 전체 2위(국내 1위)를 차지한

정진혁이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스포츠동아 제공>

 

 

삼성육상단 작년부터 계약금 3억원 제의…연봉 4천만원의 한전에 입단 
사실 삼성육상단은 지난해 3월 서울국제마라톤에서 2시간05분30초의 최고기록을 보유한 모로코의 압델라힘 굼리(36)와 접전을 벌이다 17초차로 2위에 머문 정진혁에 대해 3억 원의 계약금을 제시하며 입단을 권유했었다. 지난 2000년 6월 코오롱팀을 이탈한 이봉주 선수와 오인환 감독 등 코칭스태프를 패키지로 영입해 육상단을 창단했던 삼성은 이번에도 정년을 앞둔 황규훈 건국대감독을 함께 받아들이기 위한 작업을 병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작 본인인 정진혁의 생각은 달랐다. 우선 3억 원이란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삼성에 입단했을 경우 각종대회에서 성적을 올려야하는 부담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고 무엇보다 현역 은퇴 후 안정적인 직장을 보장받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2009년 삼성에서 은퇴한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를 비롯 많은 삼성 육상단 출신 선수들이 현역에서 물러난 뒤 마땅한 생업을 찾지 못한 것을 눈여겨보았던 것이다. 고민하던 정진혁은 자신의 진로 결정을 아버지 정범석씨(58 ․ 충남 예산군 광시면 서초정리)에게 위임했고 아들의 의중을 꿰뚫은 정씨는 수소문 끝에 지난 4월경 58세까지 정년이 보장되는 한전육상단에 아들을 입단시키기로 했다. 이에 따라 지난달 13일 정진혁은 계약금 없이 연봉 4천만 원을 받는 조건으로 한전과 입단 계약을 체결한 것.

 

 

정진혁 부친, “거액의 계약금은 선수에 부담…은퇴 후 평생직장 보장도 안돼” 
 정범석씨는 “내 입장에서는 진혁이가 마음 놓고 훈련할 수 있는 팀을 찾아야했다.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부담스러운 선수생활을 하다 은퇴하면 갈 곳이 없는 것보다 평생직장을 찾다 보니 한전으로 가게 됐다.”며 “진혁이가 고교시절에도 한전이나 조폐공사를 가고 싶다고 했었다.”고 설명했다.


 한전육상단의 최경렬감독은 “우리는 사규상 그동안 선수들에게 단 한 푼의 계약금도 줄 수 없어 고졸유망주만 선발, 현재 7명의 선수가 있는데 전혀 예상치 않았던 진혁이가 입단해 육상단 전체가 상당히 고무돼있다.”면서 “스포츠에 관심이 많은 김중겸 한전사장님이 육상단 사기 앙양을 위해 힘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진혁의 한전육상단 입단과 관련, 육상계는 “실업팀이 50개가 넘어 우리나라보다 마라톤 저변이 넓고 수준도 한 단계 위인 일본의 경우 대졸 선수들이 거의 평생직장으로 진로를 결정, 은퇴 후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면서 “정진혁이 계약금 욕심을 버리고 공기업으로 간 것은 후배들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선택이다.”고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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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race 2012.07.24 12:59 신고

    전 선수는 아니지만 체육관련전공자로서 주위에 운동을 중간에 그만두거나 은퇴시 다른 직업. 진로를 찾지못하고 도퇴되는 사람들을 몇몇 보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정진혁 선수의 결정이굉장히 현명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 grace님~ 맞습니다 :) 은퇴선수들을 위한 지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정진혁선수도 은퇴 후가 보장되는 길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은퇴선수 지원에도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

  • famer 2015.09.07 21:50 신고

    정진혁 선수 런던 올림픽 이후 소식이 궁금했는데 한전에 입사했다니 고맙군요. 기본 스피드는 있는 선수이니 은퇴 전에 한국신기록 작성해주면 좋겠어요.
    창원 64세 농부가.

 

 

 

 

글/김학수(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 연구소장)

 

 

        지난 30년간 스포츠 미디어 환경은 크게 변화했다. 대학 졸업 후 스포츠 전문 기자로 처음 활동할 때인 1980년대 초반만해도 신문과 방송이 스포츠 미디어의 대표적인 매체였다. 당시 스포츠 정보를 접하기 위해선 직접 경기장을 찾아가거나, 신문과 방송의 보도를 활용해야만했다. 극히 일부만이 경기를 현장에서 즐길 수 있었고, 대부분이 신문과 방송에서 보도하는 스포츠 컨텐츠를 이용했다. 스포츠 정보의 유통 통로가 이처럼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신문과 방송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저녁 무렵, 술자리에서 거나하게 취한 젊은이들이 일련의 스포츠 정보를 놓고 서로 자신들이 맞다며 ‘내기 대결’을 벌이다가 기사마감이 한창인 신문사 편집국으로 전화를 걸었던 일이 많았다. 정확한 정보를 전해주면 “와, 내가 맞았다”며 좋아하는 육성이 전화선으로 타고 들려왔다. ‘신문에서 보았다’면 모든 것이 통하던 시절이었다.

 

정보를 독점하던 신문과 방송은 일종의 권력기관과 다름없었다. 권력의 ‘제 4부’라고 했을 정도로 언론의 사회적 영향력은 엄청나게 컸다. 언론의 힘에 매료된 대학생들은 인기가 높은 언론사 입사를 위해 수백대 일의 경쟁을 뚫어야했다. 입사시험을 ‘언론고시’라고 불렀을 정도였다. 기자 최종 합격자 명단이 신문 1면에 발표됐을 때의 짜릿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히 남아있는 것은 특별한 선택을 받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스포츠 기자들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부와 마찬가지로 대부분 서울의 유명 대학 졸업자가 대부분이었다. 스포츠 기자가 되기 위해 체육 전공학생이 상식, 국어, 영어, 논술 등으로 이루어진 입사시험을 통과하기가 매우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실제로 당시 체육학과 출신으로 스포츠 기자를 했던 이는 극히 드물었다.

 

 

 

30년 후 오늘날 스포츠 미디어의 모습은 어떠한가?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 뉴미디어의 등장으로 신문과 방송이 ‘언론의 황제’ 자리에서 이미 밀려난지 오래다. 신문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하며 방송도 점차 영향력을 상실해 생존의 몸부림을 벌이고 있는 모습이다. 다매체, 다채널 시대가 가져온 변화상이다. 1990년대 이후 인터넷과 모바일 등을 활용한 뉴미디어가 계속적인 확산양상을 보이며 신문과 방송을 이미 추월했다. ‘종합 정보 유통회사’라고 할 수 있는 네이버, 다음 등 포털 사이트들은 신문과 방송의 매출을 훨씬 넘어섰다. 네이버의 경우, 1등 신문 조선일보와 1등 방송 KBS의 매출을 합친 것보다 매출이 월등히 많다.
 
이 같은 뉴미디어의 강세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신문과 방송 이용자들이 점차 줄어들고, 뉴미디어 이용자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에서 이를 잘 알 수 있다. 오늘날 10대와 20대  젊은이들은 신문을 거의 보지 않고, 방송도 일부 엔터테인먼트 프로와 스포츠 프로 등만을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반해 페이스북, 트위터, 아이팟, 인터넷 TV 등을 통해 음악과 스포츠 등을 즐기며 뉴미디어에 크게 의존하는 것이다.

 

변화된 미디어 환경은 스포츠 미디어 형태도 바꿨다. 신문은 뉴미디어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온라인 뉴스서비스를 크게 강화하고 오프라인인 신문 부분의 영역을 크게 축소시켰다. 이러한 변화는 기자의 인적 자원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매출 감소로 신문 부분이 축소돼 전체적인 기자수도 많이 줄었다. 스포츠 신문의 경우 전성기 때 200여명이던 기자들은 50여명 안팎으로 줄어들었다. 종합지의 경우도 뉴미디어에서 쏟아내는 각종 스포츠 정보 등의 영향으로 스포츠 취재기자들의 비중이 예전만 못해 점차적으로 인원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다.

 

방송의 경우도 점차적으로 이용자들이 줄어들고 케이블 TV, 인터넷 TV 등으로 이용자가 대체되면서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다. 방송 스포츠 취재기자와 제작진도 이러한 변화의 파도에 휩쓸려 갈 수 밖에 없다. 앞으로 이용자들의 관심이 뉴미디어에 쏠리게 되면 기존 방송체계도 큰 변화가 불가피하다. 

 

이같은 신문과 방송의 대내외적 변화는 다양한 전문 인력풀의 필요성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체육계열 대학생들에게 높은 벽이었던 언론사 진출의 문호가 크게 열리게 된 것이다. 신문과 방송의 시대에서 벗어나 다매체, 다채널 미디어 환경에서 전문성을 확보한 체육계열 전공학생들의 활용도가 아주 높아졌다. 기존 신문과 방송뿐만 아니라 OSEN, 마이데일리, 조이뉴스, 노컷뉴스 등 온라인 미디어가 많아져 미디어에 관심이 많은 스포츠 전공학생들에게 좀 더 넓은 기회가 주어지게 되었다. 스포츠 리포터, 카메라 취재기자는 물론 스포츠 라이터, 인터넷 스포츠 방송 제작자, 스포츠 방송 전문 해설자, 스포츠 미디어 웹 디자이너 등 다양하게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렸으며, 실제로 이러한 부분으로 이미 진출해 있다. 파워블로그, 미니 홈피, 1인 미디어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체육 전공 학생들에게 더 없이 좋은 여건이다.

 

예전에는 신문과 방송 기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려운 입사시험을 통과해야 했지만 이제는 전문성만 충분히 갖추면 각종 뉴미디어에서 활동할 수 있는 스포츠 전문직으로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체육인재육성재단에서 스포츠 미디어 아카데미를 올해 처음으로 운영하고 다양한 미디어 인턴십을 운영하고 있는 것도 체육전공 학생들이 미디어로 진출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한국체육대학교가 체육인재 육성재단과 공동으로 운영하는 스포츠 미디어 아카데미의 경우 1기 교육과정 30명 모집에 90명이 몰려 3대1의 높은 경쟁률을 보여, 체육 관계자들의 미디어에 관한 높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미디어를 통해 말하고, 듣고, 쓰며, 분석하는 전문성이 가미된 다양한 역량을 과시할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난 스포츠 관계자들이 많다는 반증이다. 

 

스포츠 미디어, 이제 체육 전공 대학생들에게도 한번 도전해볼만한 분야가 됐다. 스포츠 미디어 분야를 전공하는 학자로서 학생들에게 “신문과 방송 뿐 아니라 뉴미디어의 세계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라. 그러면 기회는 열릴 것이다”고 강조하고 싶다. 앞으로 스포츠 미디어 시장은 마당이 넓고 할 일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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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체육을 전공하는 젊은이들에게 상당한 도전을 줄 만한 내용이군요! 감사합니다!

  • 체대출신 2012.08.14 10:57 신고

    체대 출신으로 위에 언급된 매체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 내용중 어떻게 취업을 해야 할지를 언급해 주시시 않으셨네요.
    그저 새로운 미디어가 나왔다고 전망이 밝다고만 하신 것 같은데.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제가 입사할 당시도 그렇고 현재의 상황도 그리 좋은편이 아닙니다.
    오히려 저 같으면 후배들이 이 길로 들어오는 것을 말리고 싶습니다.
    더 정확한 판세를 판단 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글/김상유 (명지대학교 체육학부 교수)

 

        올해 여름에 가장 기대가 되는 것은? 여름휴가? 나에게 가장 기대가 되는 것은 2012년 런던하계올림픽이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런던올림픽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2012년 7월27일부터 8월12일까지 17일간 전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이 신사의 나라 런던에서 개최된다. 런던은 1908년 4회 대회와 1948년 14회 대회에 이러 이번이 3번째 개최이다. 4회 대회는 우리나라가 광복 후 최초로 대한민국의 이름을 걸고 출전한 첫 대회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깊다.

 

 올림픽은 개최지인 영국이나 가까운 유럽뿐만 아니라 북미,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전 세계인의 축제이다. 특히 올림픽의 경우 단일종목으로 치러지는 월드컵과 달리 농구, 축구, 태권도, 수영, 육상 등 26개의 다양한 종목이 치러지기 때문에 더욱 다양한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2008년 베이징에서는 정식종목이 28개이었으나 우리나라가 금메달을 따낸 야구와 소프트볼이 제외되어 26개 종목이 되었다. 세부종목은 육상이 47개로 가장 많고, 수영 34개, 레슬링 18개 등이다. 대부분의 구기종목은 남녀 2개의 종목으로 나눠지며, 우리나라의 태권도는 8개의 종목으로 나눠진다.

 

 이런 올림픽을 즐기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경기장을 찾는 것이다. 즉 올림픽이 열리는 영국 런던을 방문하여 자신이 원하는 종목의 경기를 직접 관람하는 것이지만 실제로 그러한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TV와 인터넷 같은 미디어를 통하여 올림픽을 시청한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중계방송은 대회기간동안 전세계 누적시청자수가 47억 명에 달하였을 정도로 많은 인기를 구가하였다.

 

 

 

 

이번 런던올림픽도 그 이상의 시청자수를 기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경우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TV를 통하여 올림픽을 시청할 것이다. 그런데 지난 2월 방송통신위원회는 스포츠 중계권 관련 분쟁의 예방과 해결을 위해 ‘보편적 시청권 관련 금지행위 세부기준’ 고시 제정안을 확정하여 발표하였다. 이미 2007년에 재정된 실시되고 있는 내용을 보강하여 고시한 것이다. ‘보편적 시청권’이란 올림픽이나 월드컵과 같이 국민의 관심이 매우 큰 스포츠경기의 방송을 모든 국민이 시청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지만 경제논리에 비춰보면 당연하지 않은 이야기가 될 수 도 있다.

 

이미 지난 2010년 SBS가 벤쿠버 동계올림픽과 남아공월드컵을 단독으로 중계방송을 하면서 우리는 보편적 시청권에 대한 많은 논란을 겪었다. SBS는 월드컵뿐만 아니라 2010년 동계올림픽과 2012년 하계올림픽에 3,300만 달러를 지불하고 독점중계권을 확보하였다. 논란의 중심은 과연 SBS가 전 국민이 모두 시청할 수 있는 방송매체이냐는 것이다. SBS에 따르면 2010년 올림픽과 월드컵의 경우 전국적으로 92%이상의 가구에서 시청이 가능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수치는 무료시청이 가능한 공중파뿐만 아니라 지역민방, 케이블, IPTV 같은 유료방송도 포함한 수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료시청권 만을 집계한다면 상당부분 줄어들 여지가 있다. 만약 보편적 접근권을 지키려는 노력이 없고 일부 국가와 같이 누구나 중계권을 독점할 권리를 같게 된다면 우리도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보기위하여 수천원에서 수만원을 지불해야 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일부 국가에서는 복싱과 같은 몇몇 스포츠는 PPV(pay per view)와 같은 시스템을 이용하여 경기당 수만원에 일부계층에게만 제공되어지고 있다. 우리가 간혹 공중파를 통해서 무료로 시청할 수 있는 복싱의 빅매치들은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PPV를 통해서 많은 비용을 지불하여야함 시청할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단기간에는 스포츠에 많은 수익을 올려줄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팬층이 줄어드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보편적 시청권은 원래 유럽에서 많은 논의가 이루어졌다. 미국과 같이 넓은 영토를 가진 나라의 경우 공중파보다는 케이블이나 지역방송사 같은 유료방송이 많이 발전되어 있기 때문에 보편적 접근권에 대한 논란이 일지 않았지만 유럽의 경우 1980년대 이후 상업방송사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보편적 시청권의 문제가 불거졌다. 현재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보편적 시청권을 법제화하여 실행하고 있긴 하지만 최근 개정 또는 삭제의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바로 소비자의 선택의 권리를 주어야 하며, 시장의 원리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 때문이다. 이미 유럽에서는 많은 빅리그들이 가장 비싼 중계료는 제시하는 유료채널에 중계권을 판매하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이들의 경기를 보기 위해서는 비싼 유료채널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리에게 인기가 높은 맨유의 경우 시청비용의 상승에 대한 반발로 일부팬들의 시청거부 운동이 전개되고 있기도 하다.

 

지난 2010년 SBS의 단독중계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SBS의 단독중계로 인하여 인기경기만 중계함으로서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었으며, 오히려 스포츠이외의 다른 정규프로그램이 방송됨으로서 비스포츠팬의 볼 권리를 충족시켜주었다는 의견도 있었다. 특히 많은 여성시청자들에게 호의적인 반응이 있었다.

사실 이러한 공중파 방송사들의 갈등은 지난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었다. 외환위기 시기에 박찬호와 박세리의 선전은 국민에게 큰 힘이 되었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시청률 또한 함께 상승하였다. 처음에 3개 방송사가 사이좋게 방송을 나누어 진행하였으나, 인천지역의 케이블방송사인 경인방송이 공중파방송사를 따돌리고 독점중계계약을 따내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이후 2000년에 MBC가 코리안풀(방송3사가 공동중계권을 위해 만든 조약)을 파기하고 2004년까지의 MLB의 독점중계권을 따냈다. 이에 대한 징계로 SBS와 KBS는 국내 프로야구, 프로농구, 프로축구를 독점계약하여 MBC를 철저히 배재하였다. 2006년에는 KBS가 스포츠 마케팅 업체인 IB스포츠를 통하여 AFC, MLB, WBC 등의 중계권을 계약했으나 타사의 반발에 균등분배하기도 하였다. 이후에도 3사는 많은 스포츠이벤트에서 합의를 무시하고 자사의 이익을 위하여 업무를 추진하였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국익이나 시민의 볼 권리 보다는 자신의 이익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KBS는 시청료를 징수하는 공영방송이지만 MBC와 SBS는 엄밀히 말하면 상업방송사이다. 따라서 SBS의 입장 역시 이해가 간다. 또한 그동안 당연시하였던 자신들의 권리를 빼앗긴 것으로 생각하는 MBC나 KBS의 반응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공중파 방송 3사가 그동안 국익과 국민을 위하여 방송을 제작해 왔는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공영방송이든 상업방송이든 주파수 무료사용 등 공중파로서 많은 혜택을 받은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공중파로서의 소임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번 런던올림픽은 3사가 순차적으로 합동생중계를 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앞으로 보편적 접근권이 계속해서 지켜질지는 알 수 없다. 누구나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권리와 스포츠를 통하여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권리 중 어떤 것이 더욱 중요한지는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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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학수(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 연구소장)

 

 

   이번에도 ‘금녀원칙’은 깨지지 않았다. 화사한 봄꽃이 만발한 꿈의 무대에서 여성평등의 새 싹은 끝내 움트지 못했다. 지난 8일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끝난 올 첫 메이저대회인 마스터스 골프토너먼트에서 바라던 첫 여성회원의 탄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여성회원이 유력시됐던 I.B.M. CEO 버지니아 로메티(54)는 18번홀 주변에서 관중속에 섞여 경기를 참관한 모습이 미국의 주요 언론에 사진과 함께 보도됐다. 여성회원이 됐으면 그린자킷을 입고 시상대에서 우승자와 함께 자리를 했었을 터였는데 오거스타 골프클럽의 여성 회원 불허방침은 종전처럼 철옹성이었다.


 올해 대회서는 여느 해보다도 여성 회원을 허용하라는 목소리가 거세게 들렸다. 마스터스대회 3대 스폰서의 하나인 I.B.M CEO가 여성이었던 탓이었다. 마스터스 골프토너먼트는 AT&T와 엑슨 모빌과 함께 오랫동안 마스터스 토너먼트 스폰서를 맡았던 I.B.M CEO에게 회원자격을 부여해 시상식에서 그린자킷을 입고 참여토록 했던게 관례였다.

 

애당초 I.B.M CEO가 남성이었으면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올 초 로메티가 사상 처음으로 여성 CEO로 임명되면서 그녀의 오거스타 회원자격여부가 큰 관심을 모았다. 오거스타는 그동안 단 한 명의 여성도 회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원칙을 철저하게 지켜왔지만 올해는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 지난 1990년대 처음으로 흑인에게 회원자격을 부여할 정도로 엄격한 회원자격룰을 적용해왔던 오거스타 골프클럽은 올 마스터스 대회를 앞두고 미국 각계의 거센 압력을 받았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오거스타 골프클럽이 이제는 여성들에게도 회원자격을 허용해야한다”며 ‘금녀원칙’을 깰 것을 촉구했다. “내 경우도 어머니, 할머니, 아내, 딸 등 여러 여성들이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여성들이 50% 이상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는 미국에서 오거스타 골프클럽은 남자 편향의 회원운영을 이제 지양해야한다”고 말했다. 공화당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 미트 롬니와 전 대통령후보였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아리조나주)도 오바마와 같은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오거스타 골프클럽측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빌리 페인 회장은 대회 직전 공식 기자회견에서 “개인 회원권문제는 골프장측이 얘기할 수 없는 개인적인 일이다”며 거론 자체를 회피했다. “첫째, 우리는 개인적인 문제를 언급하지 않는다. 둘째, 특히 특정인의 이름이 거명될 때도 말하지 않는다”며 개인적인 문제임을 분명히 했다.
비단 오거스타 골프클럽만 ‘보이클럽’을 고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스포츠에서 아직도 ‘금녀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배타적인 운영을 하는 곳이 여러 군데 있다. 대표적인 것이 사우디 아라비아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올 여름 런던 하계올림픽에 여성 선수들의 참가에 대해 지원금을 주지 않기로 했다. 사우디 아라비아 체육성 장관이며 국가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인 나와프 빈 파이잘 왕자는 “여성 스포츠 활동은 존재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여성 스포츠 정책에 어떠한 변화도 없을 것이다”고 못박았다.

 

IOC도 금녀의 공간인 ‘보이클럽’으로 유명하다. 스포츠라는 이름으로 단합과 독재가 합법화된 IOC는 여성들의 진입을 막기위한 장벽으로 둘러져있다.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IOC 위원장시대였던 1981년에야 처음으로 여성 IOC 위원이 탄생했다. 지금은 IOC 부위원장이 여성이 맡았고 국제경기연맹회장도 영국의 앤 공주, 스페인의 필라 공주 등이 이끌고 있는 등 전체 IOC 내에서 여성 위원이 16% 정도이나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차별 금지법 조항을 두고 있는 IOC는 지난 1970년부터 1991년 남아공화국을 아르파헤이드(인종차별정책) 때문에 참가자격을 금지시킨 바 있지만 막강한 오일달러를 앞세우며 여성 스포츠를 차별하는 사우디 아라비아에 대해선 이렇다할 제재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사실 오거스타 골프클럽은 하나의 개인골프장의 문제만이 아니다. 오거스타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개인골프장으로서 상징적 의미가 아주 크다. 따라서 오거스타는 ‘금녀원칙’을 깨고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생각을 바꾸고 세계 스포츠의 한 축인 골프에서 선도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게 대체적인 판단이다.


이번 마스터스 대회를 참관한 관중들 사이에서도 오거스타의 기존 전통이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사우스 캐롤라이나 대학 신입생인 줄리안 헤이어스는 “남자들이 먼저 시작한 오거스타의 역사를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여성들은 스포츠에서 차별을 받으면 안된다고 말한 것은 바람직하며 오거스타도 실제적인 사회적 규범에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오거스타 골프클럽을 비롯해 남자들만 바글바글 거리는 ‘보이클럽’들이 날로 커져가는 여성파워의 파고 앞에 얼마나 버틸 수 있을 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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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김학수(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 연구소장)

지난 1월 85세로 작고한 미국 대학축구의 전설적인 명장 조 패터노 감독은 세상에 특별한 발자취를 남겼다. 미국 대학스포츠에서 도덕성의 상징이자 펜실베이니아의 얼굴이었던 패터노 감독은 미국 역대 대학축구 최다승 감독으로서, 스포츠지도자 가운데 최고의 교육자로서, 많은 기부금을 낸 인간주의자로서 미국인들로부터 큰 어른으로 존경을 받았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서 60여년 재임동안 통산 409승을 거두고 37번의 볼 대회 우승을 차지하고 82년과 86년 전미 대학미식축구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던 명장이었다. 지난해 말 제리 샌더스키 전 미식축구팀 수비코치의 아동 성폭행 사건에 책임을 지고 불명예 퇴진을 했지만 패터노 감독은 대학농구의 ‘위대한 코치’ 존 우든 전 UCLA 감독(2010년 타계)과 함께 최고의 지도자로 추앙을 받았다.

 

[조 패터노 감독]

패터노 감독이 교육자로서 학생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는 이야기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는 패터노 감독의 리더십을 높이 평가해 커뮤니케이션 학부의 스포츠 저널리즘과목으로 ‘조 패터노, 커뮤니케이션과 미디어’라는 강좌를 운영했다. 패터노 감독은 이 강좌에서 자신이 추구했던 커뮤니케이션 목표와 방법, 미디어와의 관계 등에 대해 오랫동안 직접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를 했다. 패터노 감독은 인간 중심의 확고한 교육철학을 갖고 교육자로서도 여러 활동을 했다. 지난 1973년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졸업식에서 미식축구코치로서는 처음으로 초청연사로 축하연설을 했다. 이는 그가 많은 학생들에게 존경 받을만한 지도자였음을 입증해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졸업 연설은 명연설로 많은 이들에게 뜨거운 감동을 안겨줬다. 지난 해 타계한 스티브 잡스의 스탠포드대 졸업식 연설과 함께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연설문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의 연설문 전문을 오랜만에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았다. ‘Success without honor is an unseasoned dish; it will satisfy your hunger but it won’t taste good.‘(명예없는 성공은 밥고픔으로 허기를 때우겠지만 좋은 맛을 느낄 수 없다) ‘Do the little things right and the big things will take care of themselves.’(조그만 일들을 올바르게 하면 큰 일은 스스로 이루어질 것이다)라는 두 문장은 감동적이었다. 첫 번째는 돈에 흔들리지 말라는 가르침이고 두 번째는 너무 큰 것만을 쫓지말고 작더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집중하라는 뜻이다.
감동을 주는 내용은 계속 이어졌다. ‘We hope you have loved each other because a little bit of you is inside one another. John Steinbeck said in “Grapes of Wrath,” “Maybe man doesn’t own his own soul, only a piece of a big man.”
I cannot adequately describe to you the love that permeates a good football team, a love of one another. Perhaps as one of my players said, “We grow together in love—hating the coach.'(여러분들이 서로 사랑하기를 희망한다. 여러분들의 조그마한 부분도 다른 사람 마음 안에 자리잡고 있다. 소설가 존 스타인벡은 ‘분노의 포도’에서 ‘아마도 사람들은 자신만의 마음을 가질 수가 없으며 단지 큰 사람의 일부분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좋은 미식축구팀에 배어있는 사랑을 여러분에게 적절하게 묘사할 수는 없다. 아마도 나의 선수들중 한명이 말했듯이 ‘우리는 코치를 미워하면서 서로 사랑을 키워나가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돈만을 쫓는 황금만능주의가 판을 치는 미국에서 그는 아마추어의 순수성을 지키려했던 참다운 지도자였다. 그 자신도 한때 올 수퍼볼에서 우승한 뉴욕 자이언츠와 맞붙었던 미식축구 명문 프로팀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에서 수백만달러의 연봉제의로 뜨거운 러브콜을 받았으나 명예를 소중하게 여기며 대학감독의 자리를 꿋꿋하게 지켰다. 선수와 팀을 그냥 성적만을 올리기 위한 피상적인 대상물로 간주하기보다  참다운 교육을 실천하기위한 목적의 일환으로 모든 것 하나 하나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지도자였다.

패터노 감독이 철학자와 같은 면모를 보이며 인간의 가치를 소중히 하는 교육을 강조할 수 있었던 것은 중고등학교시절 운동을 하면서도 그리스, 로마 고전문학 전공 공부를 열심히 하며  인문학적인 소양을 잘 쌓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어떻게 이상적으로 살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브라운대에서 쿼터백과 수비수로 활약하던 패터노 감독은 대학 졸업 무렵 보스턴대 로스쿨에 진학할 계획이었으나 브라운드 립 엥글 감독이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감독으로 자리를 옮기자 그를 따라가면서 기나긴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와의 인연을 맞게됐다. 예일대 감독제의를 거절한 패터노 감독은 1966년 엥글 감독이 은퇴하면서 뒤를 이어 감독자리에 올랐다.

감독으로 오랫동안 재임하면서 탁월한 팀성적을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패터노 감독이 성적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있다. 승부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어서 승부 그 자체 보다 어떠한 가치를 추구했느냐가 정작 중요하다는 말이다. 1989년 정규시즌전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그의 일면이 잘 나타나 있다.
“A hard-fought, well-fought, hairline-close game is as classical in sports as tragedy in theater. A tragedy usually ends with the stage strewn with bodies from both sides of a struggle, and you can’t tell who won and who lost. Victory is contained within defeat, and defeat is contained within victory. That’s the way it is in the best of games. What counts in sports is not the victory but the magnificence of the struggle.”(비극적인 연극처럼 스포츠도 극적인 상황이 많다. 격전을 치르고, 절대절명의 승부도 펼쳐진다. 비극이 이긴 자와 진 자 양쪽의 많은 희생자로 끝을 맺듯 스포츠도 누가 이기고 진 것을 단언하기가 어렵다. 승리 안에 패배가 있고 패배 안에 승리가 있다. 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승리가 아니라 투쟁의 장엄함이라는 사실이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캠퍼스에 세워진 그의 동상 앞에는 많은 조화가 놓여져 있으며 추모하는 학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우리나라 스포츠에서도 패터노 감독과 같이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참다운 지도자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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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냥 2012.07.26 03:51 신고

    이 글은 수정이나 삭제가 시급해보이는데요. 패터노 감독은 2002년부터 2011년까지 조 샌더스키 코치가 아동성추행을 하는걸 알면서도 학교의 명예에 실추가 될까하며 묵인햇죠. 기부를 얼마나 햇던간에 미국판 도가니라 불리는 사건에 대한 글은 일언반구 없으신체 이 글을 올리시는건 아니라구 생각하네요. 특히 2011년에 이 사건이 이미 이슈화됫고 기사화 대서 여러번 다뤄졋는데. 2012년 3월에 2012년 1월에 사망한 그를 추모하는듯한 글을 올리신다면...

  • 음냥 2012.07.26 03:52 신고

    앗 실수..제리 샌더스키에요 조 샌더스키가 아니라

  • 지나가다 2012.09.21 11:36 신고

    그렇습니다. 엄청난 벌금과 함께 감독 자신의 승리 기록도 함께 없어진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잘 알려진 사건인데 스포츠 언론정보 소장님이 모르실리는 없을텐데요..

  • 지나가다 2012.09.21 11:36 신고

    그렇습니다. 엄청난 벌금과 함께 감독 자신의 승리 기록도 함께 없어진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잘 알려진 사건인데 스포츠 언론정보 소장님이 모르실리는 없을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