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체육 ] +104

 

 

 

글/ 김학수(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연구소장)

 

 

 

‘공부를 하고 싶다’


 ‘운동의 천국’ 미국 대학 스포츠 선수들이 공부를 더 시켜달라고 들고 일어섰다. 미국 대학스포츠가 학습권 보장을 요구하는 학생선수들의 법정 투쟁으로 골머리를 썩고 있다. 지난 2월 미국 스포츠 명문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서 일부 학생선수가 법정 소송을 제기했다. 평범한 대학 선수들이 아닌, 마이클 조던과 같은 최고 농구 선수들을 배출한 대학에 재학중인 선수들의 학습권 보장 요구에 학교 당국은 크게 당황하고 있는 모습이다.

 

 전 여자농구 선수 라산다 맥켄츠와 미식축구선수 데본 램세이 등 2명은 노스캐롤라이나대학 운동부가 선수들의 학습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고 있다며 주법원에 정식 고소장을 제출했다. 이에 따르면 선수들은 ‘종이수업’을 받으며 열악한 교육 환경 속에서 경기력향상을 위한 훈련에 많은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는 주장이다.

 ‘종이수업’은 교수들의 수업 지도를 받지 않고 학기말 레포트로 대체하는 것을 일컫는다. ‘종이수업’은 정상 학생의 경우 거의 인정되지 않으며 학생 선수가 대부분 이수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들은 정상 수업이 아닌 불충실한 ‘그림자 커리큘럼’ 때문에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 규정이 정한 교육프로그램혜택을 받지 못해 학습능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고 호소했다.

 

 

 수년전 대학선수들의 초상권 사용료를 NCAA에 요구한 오배넌 소송의 변론을 맡은 마이클 하우스펠드를 변호사를 선정한 이들은 NCAA도 회원 대학들의 관리 감독에 소홀했다며 함께 제소를 했다. 이들의 변론을 맡은 변호인측은 둘의 소속학과인 아프로-아메리칸 연구학과의 다른 동료 운동선수출신들의 증언 등을 확보, 재판에 제출할 예정이다. 하지만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과 NCAA측은 학생 선수들의 주장에 대해 자신들은 책임이 없다고 주장, 팽팽히 맞서 있다.


다른 대학들은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는 1부 디비전 선수들이 이들의 법정 투쟁에 동참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미국 전역 350여개 대학에서 수 만명의 선수들이 일제히 연대해 투쟁에 나서면 미국 대학스포츠는 종잡을 수 없는 혼돈으로 빠져들 우려도 결코 배제할 수 없다.

 

 마이클 하우스펠드 변호사는 오배넌 소송처럼 이번 사건이 미국 대학스포츠에 새로운 역사적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는 대학교의 파행적인 학사운영을 감시하기 위한 별도의 독립위원회 설치를 강력히 요구한다. 독립위원회선 학생선수들이 부당한 커리큘럼 강요로 인해 희생양이 되지 않게하고, NCAA가 대학졸업후의 취업에 기여하고 있다는 광고문구처럼 대학 졸업후의 취업률을 중점적으로 관리해 나가는 것을 주요 활동으로 삼을 계획이라고 한다. 그동안 제대로 학교 수업을 받지 못한 전·현 학생선수들은 적절한 손해배상을 통해 금전적으로 보상을 받도록 한다는게 그의 계획이다.


 지금까지 미국대학스포츠는 학생선수들이 돈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대학과 NCAA를 위해 경제적 착취를 당하며 희생양이 됐다는 지적이 많이 나왔다. 남자대학농구와 미식축구에서 방송 중계권료로 막대한 돈을 챙긴 미국 대학과 NCAA는 아마추어라는 명분을 내세워 실제적으로 돈을 벌게하는 주역으로 뛰는 선수들에게 일부 장학금을 지급하는 수준에 그치고 별도의 연봉이나 봉급은 주지 않는다. 따라서 외면적으로는 대학스포츠의 청결성과 순수성을 지킨다는 대의명분 속에서 프로스포츠팀 못지않은 엄청난 돈을 챙긴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수년전 대학농구 스타플레이어로 활동했던 오배넌 소송은  학생선수들의 불만이 표면화된 대표적인 예이다.

금년 말 연방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이루어진 오배넌 사건은 대학과 NCAA 등이 선수 이름, 이미지, 상표권 등을 임의로 사용해 막대한 수입을 올리면서도 선수들에게는 별도의 금액을 지급하지 않는 현 NCAA 규정에 이의를 제기, 법정 소송으로 문제 해결을 의뢰했다. 이 사건은 대학과 NCAA의 압도적인 권위와 명예 앞에 독자적인 행동을 하지 못하고 소외됐던 대학 학생 선수들이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를 처음으로 요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미국 대학스포츠는 우리나라 대학 스포츠와 운영과 환경 등에서 많이 다르지만 공부하는 공간이라는 대학의 공통된 사명을 생각해본다면 학생 선수들의 요구 사항들은 시사하는바가 적지않다. 우리 대학생 선수들도 함께 겪고 있는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학 스포츠팀들은 수년전부터 선수들의 학습활동을 확대하기위해 축구, 농구, 배구 등에서 토너먼트 방식이 아닌 홈 앤드 어웨이 방식의 리그전으로 대회를 치르며 학원스포츠의 정상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주중에는 오후 3시이후에 경기를 펼치고, 주말이나 방학 때를 활용해 대회를 갖는다. 하지만 아직까지 선수들은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는 변화된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수업에 참여하는 시간이 주어져도 그 시간을 운동하는데 쓰거나 개인적으로 피로를 푸는 시간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홈앤드 어웨이 대회의 행정· 재정적 지원을 하고 있는 대학스포츠 총장협의회 관계자는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는 학생 선수상이 정립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하지만 아직은 운동만을 우선시 하는 대학스포츠의 오래된 관행들이 남아있다”며 말했다.


 미국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프랭크 부르니는 지난 2월 ‘대학의 귀중한 가치’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 다닐 때, 자신의 스승인 영문학 교수가 “ 대학을 가는 것은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데 있다. 테니스를 하든, 어떤 운동을 하든 근육을 기르는 것이 필요하듯이 대학에서 학생들은 생각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만 제대로 된 인간의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한 말을 인용했다. 대학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운동과 비교해 설명한 내용이었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대학생 운동 선수의 밝은 미래를 위해 좀 더 안정된 학습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학생들은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주역으로서 소중하게 가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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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백진선 (서울대학교 글로벌스포츠매니지먼트 전공)

 

 ‘스포츠’라 하면 치열한 승부와 승리를 위해 경쟁하는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경쟁 위주인 시각에서 벗어나 스포츠를 통해 세계 평화 증진을 위하여 노력하는 국제기구가 있다. 이는 ‘Peace and Sport’로 지난 2007년 설립되었으며 모타노 알베르 2세 모나코 국왕 및 국제올림픽 위원 등이 포함된 대사가 스포츠를 바탕으로 평화를 도모하는 활동들을 하고 있다.

이 조직은 피스 & 스포츠 국제포럼, 세계 챔피언들의 재능나눔 프로그램인 ‘Champions for Peace’, 연간 수상식, 다양한 국제이벤트 후원 등을 하며 범세계적으로 스포츠와 평화라는 가치를 높이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사업 중 필자는 연간 진행되는 ‘피스 & 스포츠 국제포럼’을 소개하고자 한다. 체육인재육성재단에서 주관하는 여성스포츠 리더양성과정 및 국제스포츠인재 전문과정의 현장실습 일환으로 여성스포츠 리더양성과정의 김나라와 이희문, 국제스포츠인재 전문과정의 홍정호와 김흥수, 윤지섭은 체육인재육성재단 인재육성팀 양구석 팀장과 정재형 과장 인솔 하에 포럼에 참석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포럼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프로그램이 진행되며, 어떻게 스포츠와 평화를 위해 다가가는지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관심 있는 주제를 선택하여 조별로 토론하는 워크숍

첫 날에 진행되었던 워크숍으로 주제는 크게 2가지로 나뉜다. 워크숍 A는  ‘평화를 위한 도구로서 지식과 경험의 교환’이고, 워크숍 B는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수단으로써 스포츠를 통해 전달되는 가치’를 다루었다. 필자는 워크숍 A에 참여하여 어떠한 내용들이 다루어지는지 살펴보았다. 진행 방식은 4명의 연설자가 워크숍 1의 주제와 관련된 사례나 의견을 먼저 발표하고 발표를 마친 후 6명~7명 단위로 소그룹을 만들어 각자 의견을 토론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토론을 마친 후 각 소그룹에서 어떠한 내용들을 다루었는지를 요약 발표하였다.

 

이 워크숍에서는 다양한 사례를 통하여 평화와 스포츠를 구축할 수 있는 역량에 관하여 중점을 두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면 ‘우리가 단순히 스포츠를 하는 것을 넘어서 확장시키기 위한 지식으로 어떤 방법이 있을까?’, ‘경기장 내 선수들과 지역 사회들 사이에 대화를 어떻게 이룩할 수 있는가?’, ‘어떻게 우리가 모든 지역사회 활동가들을 지식 교류에 포함시키게 하고 참가를 고무시킬 수 있는가? 를 다루었다. 이러한 질문들을 바탕으로 각 기관이나 나라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책들을 공유하였다. 따라서 조지아에서는 소년원 안에서 스포츠 대회를 운영하여 스포츠 참가를 독려한 프로그램, 잠비아에서는 국가에서 학교 체육 중심으로 재능 나눔 관련 프로그램, 일본 쓰쿠바 대학교 교수진들은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교육프로그램 기획 등을 발표하였다. 따라서 스포츠와 평화는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실질적으로 이를 위해 어떠한 환경 여건을 구축시켰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워크숍 A에서 열띤 조별 토론을 하고 있는 참가인사들, 출처 : Peace and Sport>

 

 

다 함께 참석하며 논의하는 전체 회

이번 피스앤 스포츠 국제 포럼에서는 정부, 국제기구, 비정부기구, 민간부문, 그리고 학계 등으로부터 700명 이상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참가하였다. 그리고 사흘 동안 스포츠가 전 세계의 평화를 구축시키고 실질적으로 기여를 가져올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를 공유하였다. 이는 대규모로 진행되는 전체 회의를 통하여 더욱 구체화 시켜졌다. 전체회의는 이틀 동안 오전과 오후로 진행되며 참가 인사들이 한 자리에 모여 발제자의 발표를 듣고 다함께 패널 토의를 진행하였다.

 

가장 흥미로웠던 발표는 단연 2개로 꼽을 수 있다. 이는 ‘Sport, a peace-building tool at the service of governments’에서 마영삼 외교부 본부대사가 발제자로 한국사례를 소개한 것이다. 북한과의 합동 국제 탁구대회 참가를 통하여 남북한 간의 교류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를 통하여 남북의 해빙모드 조성, 그리고 월드컵의 붉은악마 등 국내에서 평화의 도구로써 스포츠가 영향을 미친 사례를 소개하였다. 이 발제는 스포츠를 바탕으로 평화를 구축한 설득력 있고 구체적인 사례로 다가와 큰 이목을 끌었다. 그리고 주목을 받은 발제로는 북한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손광호 부상/차관의 발제였다. 이때 다룬 내용으로는 북한에서 국민들을 위하여 체육은 권장하고 있으며 체육 시설을 또한 확충 중이라고 하였다. 또한 스포츠를 통해 여러 나라와 친선을 강화하고 있으며 교류를 원하는 국가나 기관 모두 적극적으로 환영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전체 회의를 통해서 스포츠의 평화를 결속시키게 하는 사례들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례들이 참가 인사들에게 큰 귀감이 되고 있다는 것을 실제로 느낄 수 있었다.

 

                

<각 국에서 모인 참가 인사들이 전체회의 참석 중, 출처 : Peace and Sport>

 

 

참가한 주요 인사들을 만날 수 있는 칵테일 파티 및 네트워킹

본 포럼의 목표 중 하나는 이 포럼을 통하여 긍정적인 변화를 도모하고 효율적인 네트워킹 및 협력 플랫폼의 결과로, 파트너십을 만들어내는 시너지 효과를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발제하고 토론하는 프로그램만 진행하는 것이 아닌 인적 네트워킹을 구축할 수 있도록 오프닝 디너, 칵테일 파티, 네트워킹, 갈라 디너를 마련하였다. 
이러한 시간을 통하여 국제 및 국내 참가 인사들을 만날 수 있는 장이 되었다. 국제 인사로는 H.E. Mr. Levan Kipiani 조지아 체육 및 청소년 장관, 피스앤 스포츠 설립자 조엘 부조 회장, Bernard Lapasset 국제럭비연맹(IRB)회장 등을 뵐 수 있었다. 그리고 국내 참가 인사로는 마영삼 외교부 본부대사, 장은경 외교부 3등 서기관, 이정우 문화체육관광부 국제체육과장, 이강은 문화체육관광부 주무 담당관, 국제스포츠 외교 연구원장 윤강로 원장 등을 직접 뵐 수 있었다. 
  
이번 칵테일파티 및 네트워킹에서는 여성스포츠 리더 양성 과정을 통해 배웠던 글로벌 매너, 글로벌 식사문화를 각 국의 스포츠 분야 내 고위 관리자분들을 만나며 함께 체득해볼 수 있었던 자리였다. 국내 과정에서 지식만 배우고 그쳤다면 스쳐갔을 법이지만 이번 국제포럼을 참가하면서 실질적으로 배울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따라서 국내에서 쉽게 뵐 수 없는 분들을 만나고 대화하며 공식적인 국제 행사 참가하면서 필요한 부분들을 경험해볼 수 있었다.

 

 

<피스앤 스포츠 설립자 조엘 부조 회장과 네트워킹을 갖는 인사들, 출처 : Peace and Sport>

 

 

이 밖에 피스앤 스포츠는 평화와 사회 안정에 기여한 기관과 인물에 수여하는 시상식을 진행하며 실질적인 수행을 위한 동기를 부여하였다. 이렇게 3박 4일 동안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피스앤 스포츠는 기존의 수익 증대 및 승리만을 위해 스포츠를 발전시키려는 관점에서 벗어나 더 넓은 스포츠의 관점을 제시한다는 것을 느꼈다. 이는 경기 신기록만을 추구하는 전통 방식에서 벗어나 스포츠의 가치를 고양시키는 데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스포츠 전공자로서 매번 전공 관련된 지식만을 바라보고자 했던 협소한 시각에서 벗어나 좀 더 포괄적인 시각으로 스포츠를 바라보게 된 계기를 만들 수 있었다. 또한 이번 기회로 체육인재육성재단 지원을 받아 참석하게 된 국제포럼을 통하여 더 큰 무대의 도전을 준비할 수 있도록 열정을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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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학수 (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연구소장)

 

지난 9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2020 하계 올림픽 개최지로 일본 도쿄가 선정됐을 때, 북한이 도쿄를 지지했다는 사실은 놀랄만한 일이었다. IOC 위원들의 비밀투표로 진행된 개최지 선정에서 도쿄가 1,2차 투표까지 가는 치열한 경쟁 끝에 스페인 마드리드, 터키 이스탄불을 제칠 수 있었던 것은 북한의 지지표가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도쿄를 지지한 것은 일본의 지지통신이 한 북한 관계 소식통이 IOC 총회에서 북한 장웅 IOC 위원이 도쿄에 투표했으며 복수의 아프리카 국가도 북한의 주선으로 도쿄에 표를 던졌다고 밝히면서 드러났다.

내부적으로 핵개발을 추진하며 대외적으론 일본에 공격적인 자세를 취했던 북한이 도쿄를 지지한 것은 전혀 예상 밖의 일이었다. 국제스포츠 행사 문제를 정치적인 복선을 깔고 결정한 것인지 대단히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마도 도쿄 올림픽 개최와 관련해 일본에 적극 협력함으로써 양국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제스처가 아니겠는가 추측을 해볼 뿐이다.

 

이에 반해 한국의 도쿄 지지여부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야당인 민주당 박병석 의원 과 일부 시민단체 등이 “일본이 방사능 대책을 적극적으로 내놓지 않으면 도쿄 올림픽 유치를 반대해야한다”는 성명서와 주장들을 내놓았으나 한국 표의 향방이 찬, 반 어디로 갔을지는 알 수가 없는 일이다. IOC 위원들이 철저히 비밀을 지키고 있는데다 국가적으로 노출을 꺼리기 때문이다. 다만 남북한의 정치적, 외교적 분위기가 미묘한 상황에서 치러진 올림픽 개최지 투표였던 만큼 양측의 입장이 반영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추론을 할 뿐이다. 

 

 

 

한국과 일본은 올 초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수십 년 동안 보기 힘든 냉랭한 관계를 보이고 있다. 고질적인 독도 영유권 문제와 방사능 유출문제까지 겹쳐 반한 감정이 크게 고조되고 있고 일본서도 일부 배타적 국수주의자들이 ‘혐한 시위’를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경제적으로 일본을 통해 신기술을 전수받고 스포츠 부분서도 활발한 교류를 통해 서로 필요한 이웃으로 여겼던 시절이 언제 있었느냐는 듯, 서로 냉담한 반응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도쿄 올림픽 유치가 결정된 만큼 한국으로서는 도쿄 올림픽이 가져올 득실을 차분하게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선적으로 기대되는 긍정적인 효과를 거론해본다면 올림픽 성적과 경제적인 이익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1984년 LA 올림픽이후 세계 10강의 위치를 확실하게 굳힌 한국은 도쿄 올림픽서도 큰 이변이 없는 한 경기력을 이어나갈 것으로 보인다. 시차 적응에 어려움이 없고 훈련 환경적응에도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도쿄는 거리상 유럽과 미주지역보다 훨씬 유리한 지리적 여건을 갖추고 있어 한국 선수들이 컨디션 조절이 용이하다. 도쿄에는 많은 한국음식점들이 있어 선수들이 먹는 문제도 큰 불편함이 없다. 경제적으로도 한국은 도쿄 올림픽에 참가하는 각국 선수단의 훈련장소로도 활용될 수 있어 지자체에게 적지 않은 반사이익을 선사할 것으로 보인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도 올림픽이 시작되기 전 20여 곳의 지자체들이 외국 대표팀의 전지훈련장으로 장소를 제공해 적지 않은 수입을 올린 적이 있다. 또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과 연계해 올림픽 특수 관광을 활용할 수 잇다는 이점도 있다. 2002 한일월드컵 때 많은 외국인 응원단이 한국과 일본을 도시에 방문해 메가이벤트를 즐겼던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도쿄 올림픽은 평창 동계올림픽에도 호재인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좋은 약도 과다복용하면 독약이 될 수 있는 법.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을 수 있다. 1964년 도쿄 올림픽을 통해 세계적인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한 바 있는 일본은 오랫동안의 경제침체를 딛고 2020년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다시 한 번 세계 경제대국의 면모를  꿈꾸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본이 경제적으로 재기에 성공하면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국가로 성장한 중국과 일본의 침체로 반사이익을 챙긴 한국이 직접적으로 타격을 입을 공산이 크다. 아베 수상은 도쿄 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뒤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삼아 15년간 지속된 디플레이션을 불식시키겠다.”고 선언했다. 이럴 경우 삼성전자, 포스코 등 한국의 대표적인 회사들이 일본의 전통적인 전자 및 철강회사들의 위협에 노출될 수 있다. 특히 일본은 애국주의를 확산시켜 재무장화한 군국주의로 치달을 가능성도 결코 배제할 수 없다.

 

스포츠적인 측면서도 일본은 개최국의 위세를 떨치기 위해 경기력 향상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유도, 수영, 체조 등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일본은 한국의 금메달 전략에 위협을 가하며 스포츠 전력 판도를 뒤바꿀 공산이 있다. 유치전부터 우려한 방사능 문제도 악재이다. 오랫동안 몸에 누적돼 암과 각종 질환을 유발하는 방사능에 대한 공포는 한국민들에게는 일본에 대한 감정을 크게 악화시킬 수 있다. 도쿄 올림픽 유치는 방사능 문제를 표면적으로 더욱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할 소지가 있다.

 

따라서 한국은 도쿄 올림픽 유치를 긍정적, 부정적인 양 측면에서 주시해 바라보고 만반의 대책과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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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오화석(서울대학교 법과대학원)

 

 

              지난 2월 6일, 세계최대규모의 카지노, 스포츠배팅 박람회인 ICE:Totally Gaming 이 열리는 영국 런던으로 향하는 비행기안에서 놀랄만한 뉴스를 접하였습니다. CNN뉴스보도로 유럽공동경찰의 수사에 따르면 월드컵 예선, 유럽 챔피언십등의 경기를 포함하여 약 650여건 이상의 축구경기에서 승부조작(Match Fixing)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는 내용입니다. 2년전 한국 프로축구도 선수승부조작 파문의 격랑을 겪은 터라 사건의 전모에 대한 유럽공동경찰의 발표가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유럽 축구 승부조작 관련 CNN뉴스화면 캡쳐

 

승부조작-스포츠배팅-국제범죄조직의 연결고리

한국도 합법적인 승부맞추기 복표사업(스포츠토토사업)을 국민체육진흥공단 독점으로 시행하고 있지만 영국만 해도 스포츠복권은 민간사업자간에 경쟁적으로 이루어 지고 있습니다. 무수한 경우의 수에 따라 공정한 확률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당연히 조작된 승부대로 막대한 판돈을 배팅하면 예상치 못한 승률에 따라 더 큰 배당을 기록하게 됩니다. 한번의 축구경기로 국내, 온라인, 국제 복권 등 돈을 거는 장소와 판돈의 향방은 그 규모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커진 만큼, 한 경기 한 경기의 승부결과는 그만큼 상상을 초월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Betradar 사가 제공하는 스포츠통계가운데 F1 Korea 관련 정보

 

이번 Totally Gaming 런던 박람회에서도 아이폰, 아이패드등 모바일 기기를 통한 국경을 넘나드는 스포츠배팅의 규모가 상당히 커지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Betradar 와 같은 스포츠통계를 생산하는 B2B 정보회사는 이미 글로벌화가 완료되어, 한국의 경우, 배드민턴 선수들의 해외 오픈 경기 결과까지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온라인 스포츠배팅의 경우, 영국과 아일랜드 사이에 있는 Isle of Man, 구 유고슬라비아 국가중의 하나인 Montenegro 와 같이 국가사업으로 세금우대와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여 온라인 스포츠배팅의 해외투자자를 유치하고 법정지국으로 나서는 실정입니다. 2월말에는 영국령 Jersey 섬(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있는 섬으로 유럽연합에 포함되지 않는 영국령입니다.)도 총독(Governor)의 수차례의 거부 끝에 가까스로 온라인 배팅관련 새 법안이 통과되기도 했습니다.

 

ICE:Totally Gaming 게임쇼의 Booth 광고판

 

여기에 승부조작은 투기목적으로 막대한 돈을 한쪽에 걸어 판돈을 챙기고, 이에 국경을 넘나드는 국제범죄조직의 자금이 투입되어 짭짤한 수익을 맛본 국제범죄조직이 다시 선수들을 협박하여 승부조작을 강요하는 악순환에 국제스포츠계가 우려를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2012년 자크 로게 IOC위원장은 올해의 스포츠계의 화두는 불법스포츠도박과의 전쟁이라고 할만큼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작년 IOC 가 불법 스포츠도박에 대처하는 국제공조를 위한 국제회의를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Law Accord 의 올해주제도 역시 승부조작과 국제적 정책협력과 수사공조

매해 혹은 2년에 한번씩 개최된 Sportaccord(구 GAISF) Convention 기간을 전후하여 세계각국의 변호사와 스포츠정책 관련인사들이 모이는 Law Accord 가 열립니다. 올해는 5월 27일 스포츠어코드의 공식 개막을 이틀 앞두고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그 막을 열게 됩니다. 역시 올해의 핵심주제는 전세계적으로 만연된 승부조작을 규제하기 위해 국가간 정책 및 수사공조에 맞춰져 있습니다. 앞으로 스포츠 국제형사분야에 있어서는 반도핑국제규약과 같은 도핑과의 전쟁과 아울러 불법 도박과의 전쟁이 큰 이슈가 될 것은 분명합니다.

 

 

ICE:Totally Gaming 런던 게임쇼 입구에서

 

 

불법 스포츠배팅은 국제공조 없이는 발본색원이 애초부터 불가능한 힘겨운 싸움입니다. 마침 새정부는 온라인 기반의 ICT(정보기술산업)융합과 문화콘텐츠 산업에 큰 관심을 보여왔고, 이미 정부인수위원회에 게임분야의 전문가들이 청년위원으로 활약할 만큼 한껏 기대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규제개혁과 완화에 대한 기대심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지켜야 할 것에 대한 빗장이 자칫 장밋빛 청사진에 홀려 쉽게 열리지는 않을 지 사뭇 걱정이 앞섭니다. 불법 스포츠도박과의 전쟁에서 ICT 분야에서 특히 LTE 실용화와 정보고속도로 인프라에 앞선 우리나라의 경우 모바일과 온라인 스포츠배팅에서 국제적인 규제협력에 앞장서지 않으면 자칫 불법 ‘하우스’의 온상이 될 수 있음을 정책당국자는 깊이 인식해야 할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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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오화석(서울대학교 법과대학원)

 

 

 

중국 상해에 이어,  UAE 수도 아부다비, CAS의 Hearing Center 유치

한국이 한참 맹추위속에서도 귀성과 귀경길에 오르던 지난 설연휴에 저는 프랑스 파리에 있는 국제상업회의소(ICC)에서 주최하는 국제모의조정대회의 자원봉사자로 일했습니다. 이번대회의 가장 많은 재정적후원을 제공한 공식스폰서로 바레인의 BCDR (Bahrain Court of Dispute Resolution) 이 참여하였습니다.

 

 ICC 대체적분쟁해결(ADR)센터 팀장 Hannah Tuempel 과 함께

 


중동의 각국이 이미 국제상사중재의 세계적인 기관들을 등에 업고 중재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바레인의 BCDR은 미국의 AAA(국제중재협회)와 제휴를 맺고 있으며, 이미 두바이에 설치된 DIAC 는 런던중재법원(LCIA) 과 협력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중재기관 전쟁은 스포츠중재에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84년 설립이후 줄곧, 뉴욕과 시드니에만 대륙별 사무소를 두고 있던 스포츠중재재판소(CAS) 가 지난 1년새 중국 상해와 UAE의 수도 아부다비에 각각 Hearing Center 를 설치하는 것에 합의하였습니다. 각각 국가적인 유치활동을 통해 얻은 성과물입니다.


Hearing center는 중재과정에서 중재인과 의뢰인, 그리고 상대방측이 만나 증인 출석, 증거제출등으로 집중심리를 하는 공간입니다. 대한상사중재원 안건형 차장의 말을 빌리자면, 국제중재가 가지는 단심제의 특성상 약 2주정도의 집중심리가 이루어지고, 따라서 하나의 convention사업으로서 국제적으로 인기가 있는 Hearing center 는 그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국대륙에서 한해 이루어지는 중재건수가 10만건에 육박한다는 통계가 중국 중재기관인 CIETAC 에 의해 보고되고 있지만, 국제중재 분야에서는 이 숫자를 곧이 곧대로 믿지는 않습니다. 건수만을 놓고 볼 때, 단연 세계 1위이지만, 중재판정에 있어서의 신중성(prudence)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입니다. 홍콩과 치열한 국제중재의 패권다툼을 하고 있는 상해는 스포츠중재의 세계최고 기관인 CAS의 Hearing Center 를 유치함으로서 홍콩과의 경쟁에서 전방위적인 공세를 펼치고 있습니다.

중동의 공세도 만만치 않습니다. 쿠웨이트가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의 본청을 자국에 건립하고 OCA가 쿠웨이트를 본부의 영구적인 소재지로 선언하는가 하면, 2022년 월드컵을 한국, 일본을 제치고 카타르가 따내기도 했고, 국제중재에 있어 한국과 같이 신생국가나 다름없는 UAE 가 국가적인 사활을 걸고 CAS의 Hearing Center 를 유치한 것은 의미심장한 부분이 있습니다. 특히 토후국인 UAE는 두바이 정부와 아부다비 정부가 서로 다른 자치권을 가지고 있어 UAE 의 발전 경쟁에 나선 대표적인 이들 두 정부가 막대한 오일달러를 쏟아 부으며 전세계의 경제와 문화의 블랙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두바이가 경제와 산업으로 주목받았다면, 아부다비는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박물관 분관 유치, 세계최초의 페라리월드 건립등 문화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여기에 스포츠분야에서 Hearing center 설치로 화룡점정을 이룩했다고나 할까요?


중동과 중국의 스포츠중재의 패권다툼을 지켜보면서 동, 하계올림픽에서 최근 괄목할 만한 성과를 올리고, 국제대회유치에 있어, 동하계올림픽과 IAAF 세계육상,월드컵까지 유치한 세계 7번째 국가로서 소위 그랜드슬램을 이룩한 한국은 멀리 갈 것도 없이 아시아에서부터 스스로의 역할과 리더십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다가오는 5월 말이면, 대한변호사협회와 서울시의 협력으로 서울 시청 옆에 국제중재센터가 개관합니다. 내년 아시안게임과 2018년 동계올림픽기간중 임시중재재판부를 운영해야하는 우리로서는 유치이후의 유산(legacy)을 고려한 장기적인 안목에서 스스로 배우고 얻은 경험들을 지속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운영의 묘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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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오화석(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세상에 한 영혼이라도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지금이야 이러한 생각에 모두가 동의하겠지만 인종차별의 역사는 가깝게는 20년 전, 구 유고 보스니아 내전 당시로만 거슬러올라가도 그 참혹함을 들여다 볼 수 있으리라.

 

필자가 미 연방하원의회에서 인턴을 하던 때였다. 미의회 의사당의 거대한 돔아래 중앙 지하공간은 마치 돌로 지은 지하성당(crypt)과 흡사한 석조아치 양식으로 되어 있다.  상원의회와 하원의회를 가로지르는 이 지하공간을 지나다 보면, 길 한편에 한 외국인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그의 이름은 라울 발렌베리(Raoul Wallenberg)라고 했다. Raoul Wallenberg 은 스웨덴 사람인데, 미국 정치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공간에 외국인의 흉상이 이채롭기만 하다. 그 흉상을 도드라지게 소개하는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장 톰 랜토스 의원의 부인이다. 해마다 대한민국 국회에서 8명을 선발하여 미국 연방하원의회와 인턴 교환교류가 있는데, 톰 랜토스 의원의 부인은 항상 한국 출신 인턴들을 대동하고 연방의회 건물을 설명해주는 가이드 역할을 아무 조건없이 맡아주고 있다. 그녀 역시 톰 랜토스 의원의 보좌관으로 연방하원의회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기도 했다.

 

라울 발렌베리를 추모하는 미국 발행우표, 사진출처: www.umich.edu

 

 

톰 랜토스 의원과 그의 부인은 모두 유태계 미국인이다. 이들은 모두 헝가리에서 태어났다. 홀로코스트 박해시절, 톰 랜토스라는 청년은 한 스웨덴 외교관에 의해 목숨을 건져 미국까지 건너와 버클리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의회 외교의 수장인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위원장이 된다. (미국의 대외관계는 의회의 몫이다. 다만 미국 헌법상 국무부에 의회의 권한을 위임한 것이다. 여전히 조약비준권은 상원의 고유한 권한으로 남아있는 것이 의회 외교권의 흔적이기도 하다.) 그 스웨덴 외교관이 바로 Raoul Wallenberg 이다. 이미 영화로도 널리 알려진 유태인 구명 기업인인 오스카 쉰들러(Oscar Schindler) 말고도 인종청소라는 폭압앞에 헌신적인 구명활동을 한 외국인이 또 한명 있었다.

 

Raoul Wallenberg 는 사실 평생을 호의호식할 수 있는 스웨덴 최고 기업집단과 관련이 있다.  스웨덴 최고의 갑부가문인 Wallenberg 가문의 일원이기도 했다. Wallenberg 가문은 은행으로 시작해 현재도 스웨덴 GDP 의 40% 를 생산한다. 한때는 세계 3대 이동통신회사였던 Eriksson 과 자동차그룹까지 거느리고 있었다. 애초부터 가문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의도하에서 유태인 구명운동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오랫동안 두드러지게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사회적 책임을 실천해온 가문의 기풍에서 발현된 자연스러운 사명감이라고 설명한다고 해서 지나치지는 않을 것이다.

 

2012년 라울 발렌베리 탄생 100주년 기념 스웨덴 발행우표, 출처: www.kofiannanfoundation.org

 

 

스포츠계에서도 독일계 유태인이면서 홀로코스트의 직격탄을 맞은 여자 펜싱선수가 있었다. 그녀는 Helene Mayer 로 1930년대 당시 세계 최고의 여류검객이었고, 세계 선수권자 였다. 1933년 나치가 집권하게 되면서 그녀는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그러나 36년 베를린 올림픽 개최국으로서의 성적을 중시하던 나치정부는 유태인인 그녀를 다시 불러들여 독일국적으로 뛰게 했다. 당시 펜싱종목중 foil 에만 여자금메달이 걸려 있었다. 그러나 정작 올림픽 무대에서 헝가리 선수에게 지고, 은메달 획득에 만족해야 했다. (당시 헝가리는 1차 세계대전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공화국에 속해 있었고, 오스트리아는 올림픽 이후, 1936년 독일과 합병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대독일이라고 볼 수 있다.)

 

시상대에 오른 Helene Mayer 가 국기가 올라가는 장면에서 오른팔을 펴서 어깨위로 치켜드는 특유의 나치식 경례를 하는 장면에서 시선이 멈춘다. 정말로 존경하는 마음에서 ‘Heil’ 을 외쳤는지 의심이 든다. 마치 슬픈 표정아래 올리브나무 묘목으로 가슴에 달린 일장기를 가린 고 손기정 옹의 사진이 오버랩 되는 듯 하다. 독일정부는 1972년 뮌헨에서 다시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1968년 Helene Mayer 를 기리는 우표를 발행했다. 자국민이었지만,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박해했고, 그래서 본국을 떠나야만 했던 선수에 대한 사과의 표시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1968년 헬렌 마이어 기념 독일 발행 우표, 출처: http://en.wikipedia.org

 

 

많은 사람들이 박해에서 살아 남아, 훌륭한 족적을 남기면서 그 과정에서 인류애를 잃지 않았던 사람들을 생생하게 증언해주었고, 스포츠분야에서도 이러한 인물열전을 통해 스포츠가 정치에 의해 오염되었던 시기에서도 스포츠맨십을 잃지 않은 진정한 영웅들이 있다. 전쟁, 1936년의 독일, 1992년의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1984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를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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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오화석(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수도권 최초의 경전철인 용인경전철이 용인에 있는 모 테마파크와 연계한 관광레저 경전철로서 올 4월부터 가까스로 개통된다는 소식입니다. 관광레저 경전철로 탈바꿈하려는 시도의 배후에는 경전철 투자자인 (주)용인경전철에게 용인시가 물어주어야 하는 약 5천억원대의 배상금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경전철 개통과 관련한 용인시와 운영주체와의 분쟁은 국내법원이 아니라 프랑스 파리에 소재한 국제상업회의소(International Chambers of Commerce, 약칭 ICC) 산하 국제중재법원에서 단 한번의 판정으로 승부가 결정되었습니다.

 

 

 

 상거래와 관련된 분쟁에서 시간이 기회비용으로 지출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보니, 상거래 계약을 체결함에 있어서 계약을 체결하는 당사자들이 분쟁이 발생할 때, 미리 법원이 아닌 중재(arbitration)로 해결하겠다는 조항을 계약서상에 넣기도 합니다. 상거래 중재의 특징중의 하나는 단 한번의 판정으로 그친다는 것입니다. 진 쪽은 더 할말이 없는 것이죠.

 

 불리한 판정이 내려진 당사자가 ‘꼼짝없이’ 중재판정을 따라야 하는 이유는(물론 실제 집행에 있어 법원절차인 중재판정이의의 소송을 할 수도 있습니다.) 당사자들이 중재를 하기로 미리 합의를 한데다가 심지어는 중재인을 당사자들이 직접 선택하여 추천하였기 때문입니다. ‘말을 바꾸지 말라’ 라는 법언은 고상한 말로는 금반언(estoppel)이라하는데, 스스로 보기에 가장 공정할 것 같은 중재인마저 선임한 상황에서 중재판정에 대해 법적구속력이 있는 것으로 약속했으면 이에 따라야 하는 것이죠. 한편으로는 중재가 1심이라는 특징은 장점이 될수도 단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단판승부에 모든 것을 다 걸기 때문입니다.

 

 국내 스포츠중재를 위임받아 스포츠중재자문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는 대한상사중재원 진흥전략팀 김성룡 과장과의 인터뷰에서 국내중재의 경우 다툼이 생기는 액수가 2억원 미만일 때 중재의 시작단계에서 한번의 심리, 최종판정까지 7개월미만, 다툼의 액수가 2억원 이상의 경우, 7개월에서 9개월이 소요된다는 점을 언급하였습니다. 우리나라 법원에서의 삼심제도가 아무리 빨리 진행되더라도 중재의 단심 소요기간에 비해서는 당사자가 불복하는 한 재판이 최종확정되기까지는 중재보다 더 오래걸릴 수 밖에 없습니다.  

 

 국제적인 재판 외 분쟁해결제도(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용어는 ‘ADR’ 이라고 한다.)에 있어 상소심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판정부의 구성에 있어 중재와 유사한 형태로 진행되는 WTO 분쟁해결패널의 경우 상설 상소기구가 있어 불복할 수 있는 제도가 있습니다.


스포츠중재에서는 스위스 로잔에 있는 스포츠중재재판소(CAS)가 존재하고 CAS의 결정에 불복하는 경우 스위스연방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CAS의 중재판정에 대한 불복절차로서의 상설상소기구가 마련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스포츠중재에 있어 대륙별 스포츠중재기관이 있고, 이에 대한 최종 상소기구로서 로잔의 CAS 를 거치게 하는 방법으로 스포츠중재에서도 상소기구를 설치하는 것을 조심스럽게 주장하고자 합니다. 아시아대륙에서는 앞으로 다가올 인천아시안게임부터 CAS가 임시중재(ad hoc arbitration)판정부를 설치할 예정이지만, 작년 대만 태권도 양수쥔 선수 파동과 관련하여 보듯이, 스포츠관련 분쟁이 발생하면 종목별국제연맹, 국내연맹, 메가이벤트조직위원회(통상, 'OCOG'의 약어로 칭함) 들 중에서 누구를 상대로 중재 혹은 이의신청에 회부할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고 통일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안적인 포럼(forum)으로서의 중재의 매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스포츠중재가 활성화되고 자리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아시아 지역 역내중재기구를 마치 스위스 로잔 CAS 중재로 나아가는 전단계로 볼 것이 아닌, CAS 운영에 있어 과도하게 유럽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스포츠와 지역특색을 감안해서, CAS의 대안이 되거나 매력적인, CAS와 대등한 단계에서의 분쟁해결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해나간다면 아시아 지역에서의 스포츠중재기구를 설치하는 것도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를 비롯한 스포츠 관련 당사자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조심스러운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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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백종석

 

              흔히들 ‘통역’이라 하면 원어민 수준의 외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능력으로 생각하기 십상이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고, 따라서 영국을 떠나기 전, 영국 생활을 마치고 돌아올 때 기대되는 나의 영어 능력으로 통역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그 정도 수준으로도 통역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 20대 후반에 외국에 나간데다 4년이 채 안 되는 해외 체류기간으로도 통역 일을 할 수 있었던 까닭은 향상된 내 영어 실력보다는 다른 쪽에 더 큰 이유가 있었다.

 

ⓒ백종석

 

 

3년 전인 지난 2009년 겨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첼시 FC에서 지도자 연수를 하셨던 국내 지도자 선생님을 도우며 한달 동안 개인 통역을 맡았던 것이 통역에 대한 공식적인 첫 경험이지만 1대 1로 통역을 하는 것이 아닌 여러 사람들 앞에서 공식적인 강의를 동시통역한 것은 2010년 11월에 파주에서 열린 2010/11 1차 AFC P급 지도자 교육과정이 처음이었다. 귀국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영어에 대한 감은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최상위 축구 지도자 과정답게 수강생으로 오셨던 분들의 유명세는 나로 하여금 부담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이론강의나 실기수업 모두 마찬가지로 영국인 강사 분께서 두세 문장을 말씀하시면 내가 곧바로 치고 들어가 빠르게 풀어내어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는데 그 기라성 같은 분들이 모두 내 입을 쳐다보는 것 같았다. 아니, 실제로 그랬다. 내가 어떻게 통역을 하는지에 따라 이 중요한 과정의 성패가 갈린다는 생각에 처음에는 긴장도 많이 하고 실수도 했던 것 같다. 워낙 집중도가 필요한 일이라 원래 협회에서 통역을 맡고 계신 과장님과 교대로 일을 했는데 초반에는 더러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많이 조언해주시고 도와주신 덕분에 3주 가까이 되는 기간 동안 큰 사고없이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 후 현장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다 1년 뒤 다시 같은 선생님들 앞에서 3차 교육과정에 대한 통역을 맡았고 싱가포르에서 1년 지내다 이번 겨울, 그 다음 기수의 새로운 선생님들과 1차 교육을 함께 했다. 3년에 걸쳐 세 번의 같은 과정을 거치며 통역에 대한 능력도 더 자연스러워졌음을 느꼈다. 개인적으로 나 역시 그 분들과 같은 수업을 듣게 되는 셈이었던 터라 더할 나위 없는 공부와 경험이 되었음은 당연했다.

 

스스로 꼽는 내가 이 일을 생각보다 잘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이 분야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테크닉’과 ‘스킬’처럼 축구에서는 뜻이 구분되지만 한국말로는 딱히 달리 표현하기 쉽지 않은 것처럼, 영국에서의 지도자 과정을 통해 습득하고 익숙해져 있지 않았더라면 빠른 순간에 적절하게 풀어내기가 힘들었을 만큼 축구 관련 표현과 용어들은 축구에 특화된 것들이 꽤 있었다. 또한 전술적인 상황이나 공과 선수들의 움직임에 대한 표현, 그리고 훈련 시 사용하는 은어에 가까운 표현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영어에서의 표현을 직역하기 보다는 우리가 쓰는, 그래서 지도자 분들이 더 이해하기 쉬운 한국식 표현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공을 가진 우리 편 선수에게 상대 수비수가 다가갈 때 경고해줄 수 있는 말, 공을 흘린다거나 슛하는 척 하면서 접는 동작, 수비 라인을 전체적으로 올리거나 내리는 상황, 수비 시 넓게 벌어져 있는 선수들을 안으로 좁힌다거나 공격수가 수비수를 상대로 등을 지는 표현, 훈련의 구성이나 방법, 성격 등에 따라 구분되는 훈련의 종류들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요새는 중계를 통해서도 핸들링, 센터링, 루즈타임 등 과거 정체가 불분명하거나 의미가 통하지 않는 용어들의 사용을 지양하는 추세인데 강의 도중, 아무래도 영어식 표현을 한국말로 그대로 바꾸기 힘들다거나 한국어의 문법적 특성 때문에 영국에서 쓰는 표현이 아니지만 이미 한국식으로 통용되거나 대체된 표현들을 유연하게 통역해야 하는 상황이 더러 생겼다. 강의 중에 강사님이 ‘백포’라고 설명하시면 내가 ‘포백’이라고 단어의 순서를 바꿔서 말한다거나, ‘헤더’라고 표현하시면 한국적 의미인 ‘헤딩’이라는 단어로, ‘코너’라고 말씀하시면 ‘킥’을 덧붙여 ‘코너킥’으로 통역했던 것은 비록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강의를 듣는 지도자 선생님들께서 더 알아듣기 쉽도록 나름대로 노력한 부분이다.


강의를 통역하는 것은 결국 외국어를 듣고 이해한 후 한국말로 표현해 내는 것이기 때문에 해당 외국어를 말하는 것보다는 듣고, 이해하는 능력이 우선이고 이를 바탕으로 얼마나 완성된 문장으로 만들어내 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그렇기에 (외국어)말하기보다는 듣기가, 듣기보다는 (한국어)말하기가 중요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강의가 몇 시간에 걸쳐 이어지면 집중력이 약해지고 놓치는 부분이 생기는데 이 때에는 듣기도 듣기지만 (한국어)말하기 능력이 매우 중요해진다. 순간 놓치는 부분이 있었더라도 그 단어나 표현이 전체적인 맥락에서 그리 중요한 부분이 아니라면 자연스러운 진행을 위해 강사에게 되묻지 않고 이해한 것으로부터 부드럽게 포장해 말을 만들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상황은 최소화 시켜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가끔씩 생기는 이러한 상황에서의 순발력과 위기관리(?) 능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강사의 말하고자 하는 의도와 맥락을 이해하고 있는지, 내가 말하고 있는 문장의 완성도는 높은지, 주술관계는 들어맞는지 등 단순히 몇 문장씩 따로 떨어뜨려 통역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흐름을 따라가며 직역이 아닌 약간의 의역으로 한국말 자체를 잘 꾸미는 것이 중요하다. 결과적으로 수강생들이 듣는 것은 영어가 아니라 내가 말하는 한국말이기 때문이다.

 

해당 분야의 지식과 경험, 언어와 문화적 차이를 해석해 의역할 수 있는 융통성, 설사 놓치는 부분이 있더라도 전체적인 문장을 잘 만들어낼 수 있는 순발력. 이 세 가지가 영어 실력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특정한 분야의 통역을 할 수 있는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전문 통역사는 아니었지만 축구 지도자 교육에 대한 통역만큼은 영어실력이 비슷하다면 다른 어떤 사람과도 경쟁력을 갖추었다고 생각한다. 외국에서 무언가를 공부하고 경험했다면, 그곳에서 익혔던 언어와 지식을 나와 같은 방법으로 써먹을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다. 축구가 아닌 다른 종목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스포츠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영어를 잘 한다고 어떤 분야에서나 통역을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영어실력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어느 정도’라는 것이 생각보다 낮다고 말하고 싶다. 유학을 하며 그 나라의 언어를 공부하는 까닭은 언어의 습득 그 자체보다는 해당 학문에 더 쉽고 깊게 다가가기 위한 수단이자 도구로서의 기능이 크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꼭 통역의 역할을 맡는 것이 아니더라도 외국어를 통해 느끼고 이해하는 바를 한국어로 받아들여 제 3자에게 쉽게 전해 줄 수 있다면, 외국에서 힘들게 공부한 보람이 훨씬 크지 않을까? 지식과 경험의 전파와 공유는 물리적으로 떨어진 두 곳 사이의 학문적, 문화적 간극을 좁혀줌은 물론 그 분야를 발전시키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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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백종석

 

           싱가포르의 덥고 습한 날씨를 맞이한지 벌써 10개월이 지났다. 이곳 축구의 수준, 문화, 환경 등은 내가 그 전에 보고 듣고 경험하며 기준을 삼은 것들과는 사뭇 달랐다. 한국보다 여러모로 낮은 평가를 받는 곳이지만 외국 프로축구팀의 코치로 일하게 된 것에 대해 처음에는 무척이나 설레었고 나름대로 자부심과 함께 책임감도 느꼈다. 물론 지금도 유효한 감정들이다. 다만 한 시즌을 마치고 나니 그러한 감정들과 이를 기반으로 한 실천적 노력들이 이곳의 축구문화와 한국의 그것 사이의 간극을 보다 명확히 해주었을 뿐, 좁혀주는 데는 큰 역할을 해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왜 그랬는지, 내가 가진 역량의 부족함은 차치하고 싱가포르 축구의 환경적, 문화적 요인들을 위주로 그 이유를 얘기해보고, 한 시즌 동안 지내면서 느낀 싱가포르 축구에 대한 개인적인 소고를 풀어보고자 한다.

 


리그시합 날 워밍업 ⓒ백종석

 

 

먼저 싱가포르 프로축구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 싱가포르 프로축구 1부 리그는 한국의 K리그나 일본의 J리그처럼 ‘S리그’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며 현재 총 13개 팀이 참여하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외국계 팀이 세 팀이나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J리그 알비렉스 니가타의 싱가포르 위성팀인 ‘알비렉스 니가타 싱가포르’를 필두로 올해부터 참여한 브루나이 최고 명문 ‘브루나이 DPMM’ 그리고 말레이시아 U-23 대표팀 격인 ‘하리마 무다’가 그들이다. 작년과 재작년에는 프랑스 선수들로 구성된 ‘에토르’라는 팀이, 2007년부터 2009년까지는 한국 선수들로 구성된 ‘슈퍼레즈’라는 팀이 리그에 참여한 것에서 보듯 다른 나라 문화권의 팀이 리그에 참여하는 보기 드문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특히 올해부터 말레이시아 ‘하리마 무다’가 S리그에 참여하는 동시에 S리그 올스타급 선수들 위주의 단일팀이 말레이시아 리그에 참여함으로써 일종의 맞교환 형식을 통해 마케팅 효과를 노리기도 했다. 용병은 아시아쿼터제 없이 4명 보유 및 동시 출장을 보장하고 있어 외국인 용병들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편이고 국가대표팀의 경우 동유럽이나 중국 등에서 귀화한 선수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는 등 싱가포르라는 국가가 다문화에 기인한 것처럼 축구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러한 점들이 싱가포르 축구의 한계를 구분 짓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화, 인종의 다양성은 곧 여러 가지 종교(무슬림, 흰두교, 카톨릭, 개신교 등)가 공존한다는 뜻이며 특히 무슬림의 라마단 기간에는 낮에 음식을 먹지 못하는 선수들을 위해 경기 시작 시간을 평소 저녁 7시 45분에서 8시 반으로 늦추기도 한다. 영어가 공용어이긴 하지만 ‘싱글리시’라는 독특한 악센트와 고유의 표현들이 존재하고 말레이어와 중국어도 쓰기 때문에 서로 모국어 수준의 의사소통이 힘든 경우가 있다. 아무래도 선수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데 미묘하게 모자란 요인들이다.

 

팀 당 선수 연봉 총액의 상한선을 두는 샐러리 캡 제도가 존재하는 것도 눈여겨볼만한데 외국인 용병 선수들에게 돈을 많이 주면 상대적으로 로컬 선수들의 연봉이 낮아질 수밖에 없고 모든 선수들이 적은 금액의 동일한 승리수당을 받기 때문에 프로선수로서 경기에 몰입하는 정도가 떨어진다는 느낌이다. 경기장이 구단소유가 아닌 점은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내가 일한 홈 유나이티드 축구단의 경우 한 달 내에 운동장을 사용할 수 있는 숫자가 20일 정도로 제한되어 있다는 점은 프로팀으로서 이해하기 힘들었다. 언급하기 민감하지만 사회주의 성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듯한 제도들이라고 생각한다.

 

 

ⓒ백종석

 

 

개인적인 관점에서 리그 수준을 평가하자면 S리그 선두권 팀들은 내셔널리그 중위권, 나머지 팀들은 내셔널리그 하위권 혹은 그보다 조금 아래라고 본다. 기대했던 것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인 것은 리그 수준과 선수 개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그들의 훈련 태도였다. 보통 선수들은 최대치에 가까운 운동량을 부여 받았을 때 그걸 극복하고 이겨내려는 자세가 일반적인데 소수의 선수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힘들거나 어려운 운동을 이겨내려는 의지가 부족했다. 시즌 초 조금 어려운 수준의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훈련진행이 느려져 프로그램을 바꾸기도 했지만 여유를 갖고 자세히 설명해주면 곧잘 따라오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 모습에서는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기술적인 부분이나 체력적인 부분에서 본인들의 한계치에 도달해야 하는 훈련을 시킬 때 지도자 입장에서 아쉬운 태도로 다가왔다. 운동선수로서 성공하려면 어렵고 힘든 운동에 적응하고 이겨내려는 습관을 갖춰야 하는데 유소년 시기에 비교적 단순하거나 쉬운 훈련만 한 것 같았다. 덥고 습한 날씨 탓이 크다고 생각하지만 좀 더 발전하기를 원한다면 변화와 변혁을 통한 체질개선이 필요할 것이다.  

 

학교와 지역 사회와 연관된 소셜 프로그램들은 생각보다 해보려는 노력들이 있었다. 구단 차원에서 주기적으로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며 클럽 산하 유소년 팀들도 한국에 비해 수준이나 환경은 떨어지지만 구색은 갖춰져 있다. 가끔 S리그 선수들을 돌아가며 행사에 초대하거나 선수단 전체가 소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요청이 있는데 귀찮을 수는 있겠지만 팬들과 지역 주민들에게 구단을 더 알리고 다가갈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중 숫자는 아쉬운 수준이다. 홈 관중은 올 해 가장 많은 관중이 왔을 때가 3500명이었는데 평균은 1000명이 안 되어 보였고 500명 이하로 올 때도 더러 있었다.

 

 

ⓒ백종석

 


분명 어떤 의미에서는 단순히 “수준이 낮다”라는 표현이 적절하겠지만, 나는 그 전에 “문화의 차이가 수준에 영향을 미친다”라고 말하고 싶다. 날씨와 신체적 상태는 물론이고 나라의 역사, 교육 및 정치상황에 기인한 국민성도 싱가포르 축구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축구는 세계적인 스포츠다. 잉글랜드 축구협회가 제일 낮은 급의 지도자 라이선스를 줄 때 하는 얘기가 축구에 대한 자유와 평등이다. 나이, 인종, 국적, 성별, 종교, 장애에 상관없이 축구는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고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싱가포르에서 프로리그와 유소년 축구가 운영되는 모습에서 이곳 사람들 역시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축구를 즐기고 있음을 느낀다. 기술적인 발전과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 일선 지도자의 표면적인 역할이지만 지속시켜온 문화의 차이를 느끼고 할 수 있을 거란 구체적 자신감이 들 때쯤 한 시즌이 지나갔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 있지만 다른 문화권과 환경에서 다른 수준의 축구를 현장에서 경험했다는 점, 그리고 그렇게 쌓인 자산들이 다음 단계에서 소중히 쓰일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에 올 한해는 최대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싱가포르 축구와 한국이 다른 점이 있는 만큼, 한국과 다른 축구 선진국들과의 차이 역시 있을 것이다. 그 차이를 이해하고 좁히는데 올해의 경험이 좋은 약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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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교윤 (국제농구심판)

 

 

      입대를 10일정도 남겨두고 농구장을 찾았을 때 게임을 뛰는 선수들이 아닌 그 중심에 당당히 서있는 심판(Referee)의 모습에 매료된 그 순간을 단,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었다. 우선 스포츠가 좋았고, 우리 생활에 법이 있듯이 스포츠에서도 정해진 룰을 잘 지키게 도와주는 심판이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아주 빠른 경기진행 속에서 경기를 주도하고 통제해야하고, 감성적,  즉흥적 판단이 아니라 "룰" 과 "상식"에 기초한 합리적, 이성적 결정과 순전히 자기의 판단에 의하여 경기를 지휘하고, 독자적 결정(judge)을 하는 모습이....

 

그리고 제대 후 바로 실행에 옮겼다.
2001년 대한농구협회 심판학교 6기. 공인자격증 2급 취득후 이듬해 대한농구협회 경기부에 들어가 테이블 오피셜에 대한 전체적인 것을 배우며 간간히 심판도 보면서 1급 취득 후 조금 안되서 심판부에 들어가게 되었다.

 

 

 

감독이 선수의 의도와 행동을 알고 있어야 흐름(Flow)을 관리(control)하듯 심판 또한 자신을 컨트롤 할 수 있어야, 심판다운 심판이 될 수 있다는 소신을 가지고  2006년 6월, 6년간 KBA(대한농구협회)에 몸담고 있으면서 코치․감독과 같은 교육자로 충실하였고, 시그널․규칙정신 등 기초적인 부분에 중점을 두었다.

 

심판부에 들어와서 심판 내․외적 생활은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심판이라는 보편적이지 않은 특수성 때문일까? 나의 노력은 다른 모습으로 비춰지기 쉬웠고, 하루종일 다른 심판의 모습만 보는 날이 허다했으며, 심판은 3~4일에 1경기 정도로, 잡일이 나의 일과 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틈날 때마다 아르바이트를(노동일․스킨스쿠버․장사 등)하며 생활비를 마련하였지만 심판을 하고자 하는 꿈이 있었기에 그것은 힘들기 보다는 하나의 과정으로 생각되었다. 그 보다 나를 가장 힘들게 하였던 것은 곱지 않은 시선이었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 아울러 ‘좋은 심판이 될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마저 들게 하였고 누구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었기에 이해 할 수는 없었지만 나의 부족함 이라 받아들이고 심판 보는 것에만 “열정”을 다 하였다.

 

심판이 되기 전에는 스포츠를 보면 그 누구보다 미칠 듯이 환호 하였던 나,  up․down이 심하여 스스로를 컨트롤 하기도 힘들었던 나에게 심판이 된 후  농구가 아닌 다른 종목을 보게 되어도 심판이 공평한지 선수나 팀을 차별하지는 않고 똑같은 기준으로 보고있는지를 보게 되었고, 그 후 자연스럽게 스포츠가 다른 시야로 비춰졌으니 '심판'이라는 것으로 인해 내 삶의 모든 것이 바뀌는 계기가 되었지 않나 싶다. 남들보다 특별하지도 많이 배우지도 않았던 ‘최교윤’ 이라는 사람에게 말이다.

 

 

 


3~4년이 지났을까...그러다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흔히 말하는 빅경기에 심판을 보게 되었고 과감하게 감독 T-Foul(테크니컬파울)을 주면서 흔들리지 않은 모습에 많은 경기와 결승전 심판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너무나 즐거웠고 남들이 알아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보람을 조금씩 찾아갈 수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하다보니 2005년 12월 2일 농구대잔치 결승전을 보고난 후 처음으로 재정되었던 (사)대한농구협회 최우수심판상을 수상하여 황금휘슬을 받는 일도 있었다. 정말 꿈같은 날이었고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러던 중에 IWBF(대한휠체어농구협회) 휠체어 농구심판[2005년~현재]을 시작하였고, 또한 2004․2005년 전국 아디아스 길거리 3대3농구 심판팀장으로 일하게 되었으며 2005년 아시아 3대3 농구대회 심판팀장으로 일하는 행운도 있었다. 언론과 인터뷰도 했었으니 촌놈이 출세했다는 표현이 맞을 듯  싶다. 또한 선수들이 31~34도 되는 실외코트에서 뛰는 모습을 보면서 "경기가 심판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심판이 경기를 위해 존재 한다"는 사실을 느끼고, 부족함을 배울수 있었다.

 

그러던 중에 2006년 6월 KBL프로 심판모집이 있었고 아울러 국제심판을 응시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같은 날 시험이 있었다. 어느 쪽이고 된다는 보장도 없었지만 어느 한쪽은 분명 선택해야만 했다. 보름을 잠도 못자고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덜컥 KBL심판에 합격을 하였고, 모든 선수들이 프로선수를 바라듯 나 또한 프로심판으로 3년의 생활은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NBA출신 심판의 교육과 비디오분석을 통해 다시 상황을 되짚어 보고, 경기를 하면서 일어나는 상황에 대해 토론하는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을 통해 지식을 쌓을 수 있었으며, 다른 세계에 온 것처럼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들이였다. 심판능력도 향상되는 시간이기도 했고 그 시간 자체만으로도 좋았으나,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프로심판 생활이었다. 2009년 8월에 프로심판을 나오게 되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아픔과 목표를 동시에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럴수록 숨 길 수 없었던 세계(?)에 대한 욕심! 항상 내 가슴속에 있었던 “국제 심판”이었다. 국제심판이 되기 위해 2009년12월 KBA(대한농구협회)에 복귀하였고, 미군부대 심판과 외국인 학교리그 심판[2009년 여름~현재]까지 볼 수 있었으니 좋은 기회가 아니었나 싶다. 2011년 1월에 국제농구심판 FIBA마크를 달게 되었다. 합격 결과를 20일이 지난 뒤 우연히 새벽에  WWW.FIBA.COM 홈페이지를 통해 나의 사진과 이름을 확인하고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 때를 잊을래야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얼마 뒤, 지난해(2011년)에도 좋은 기회가 있었다. 중앙 아시아 챔피언쉽대회와 FIBA 국제 클럽선수권대회 “중립국심판”을 보았으며 동아시아대회 심판을 보기도 하였다.

 

 

 

 

"나의 꿈인 올림픽․세계선수권심판"을 목표를 두고 있는 나에게 가장 큰 어려움이 닥쳤으니 그것은 바로 언어, 영어였다. 국제대회 나가서 좀 더 자유롭게 영어를 구사 할 수 있다면 보다 많은 기회가 있었을텐데하는 아쉬움이 커져서 공부를 시작했다. 진도를 나가려해도 의지가 부족해서인지 원을 돌듯 돌고 있었고, 유독 어학만큼은 마음대로 되지가 않았다. 학원을 다니려 해도 주4~5회 매번 같은 시간에 다녀야 하니 전국대회 등 불규칙적인 스케줄에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 독학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알았고 정체기가 길어졌을 무렵, 체육인재육성재단의 국내연수 과정을 알게 되었고, 초급-중급-상급 체계가 잡혀 있으니, 더 없이 좋은 기회라 판단되어 지원하였다. 열정이 보였는지 너무도 감사하게 기회를 얻게 되었다. 10개월 코스에 모든 것을 배울 수는 없지만, 체육인재 육성재단 정동구 이사장님을 비롯하여 기회를 주신 분들께 감사할 따름이다. 제 22회 FIBA 아시아 U18세 남자농구 선수권대회 심판으로 가면서도 수업에 빠지는게 아쉬울 정도였으니 말이다.

 

나 최교윤은 그랬다. 농구심판을 하면서 많은 지적도 받고, 능력이 부족하다고 들으면서도 농구 선수출신이 아니라는 사실이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은 틀리지 않았다. 이런 상황들로 인해 더욱더 매진 할 수 있었으며 그 많은 과정을 겪으면서 지금의 “국제심판 최교윤”이 될 수 있었다. 조금씩 즐기던 운동이 생활의 일부가 되어 스트레스와 사춘기의 유혹들을 해소해 줄 만큼 운동을 좋아했었다. 97년, 37일간 전국일주 하이킹과 98년 백두대간 단독 종주(57일) 그리고 5번의 42.195km 마라톤을 완주하면서 나를 다스리는 법을 배웠고, 이렇게 그 무엇으로도 살수 없는 경험을 통해, 나태하지 않으려 했던 이때의 도전정신이 지금의 나를 만들지 않았나 싶다. 나의 부족함을 알기에 계속 도전 할 것이며, 지금 나는 “올림픽․세계선수권심판” 이라는 또 하나의꿈을 위해 ing 중이다.


 

심판은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다. 중압감과 부담감 때문에 코트에 서기를 꺼려했다면 결코 “심판”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나를 믿고 있다.

I think there is no best referee.
I think if people can trust in that referee.

최고의 심판은 없다고 믿는다. 

신뢰 받을수 있다면 그것이 최고의 심판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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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조종환(법무법인 거인대표 변호사)

 

사안 1) A는 B체육협회 산하 C 위원회(위원장 D)의 위원이다. 그런데 A는 C위원회가 주최하는 세미나에서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D의 지시를 따르지 않아, C 위원회의 업무상 질서를 문란하게 하였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았다. 그런데 B체육협회 내부의 법제상벌위원회에서 D가 위원으로 참석하여 A에 대한 징계를 심의, 의결하였다. 과연 A에 대한 징계는 적법한 것일까.

 

사안 2) B 체육협회는 A에게 징계통보를 하면서 재심사요구 및 이의신청을 할 수 있음을 명시하지 않았다. 과연 A에 대한 징계통보는 적법한가.

 

 

 

 

 

대한체육회 법제상벌위원회 규정 제18조는 ‘위원이 징계사유와 직접 관련이 있을 때에는 법제상벌위원회의 심의 또는 의결에 참가할 수 없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B 협회는 대한체육회 산하 가맹 경기단체이기 때문에 대한체육회 법제상벌위원회 규정이 적용됩니다. 

 

위와 같은 규정의 취지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징계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그 징계사유에 관계 있는 자를 배제하고자 함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징계사유와 관계 있는 자’라 함은 피징계자와 이해관계를 같이 하거나 징계혐의 사유의 피해자를 가리킨다고 해석하여야 할 것입니다.

(대법원 1995. 4. 28. 선고 94다59882 판결 참조)

 

그렇다면 위 사례와 같이 D 위원장의 지시불이행 행위를 징계하는 취지는 위원장의 지휘•감독권을 확립하고자 함에 있다고 할 것이므로 위원장 D를 징계혐의 사유의 피해자라 볼 여지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건 징계절차에서 D가 법제상벌위원회의 위원으로 출석하여 의결한 것은 공정하고 합리적인 징계권을 보장하기 위한 위 규정의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입니다.

 

사안 1과 관련하여 B협회의 징계는 A의 제척, 기피신청권을 침해하여 위법한 것입니다.

 

 

 

한편, 법제상벌위원회 규정 제20조 제2항은 ‘징계통보서에는 징계재심사 및 이의신청 기한과 방법 등을 명시하여 통보하여야 한다’고, 제21조 제1항은 ‘당해단체 위원회의 징계심사 결과에 이의가 있을 때에는 재심사를 요구할 수 있다’고, 제22조 제1항은 ‘당해단체의 재심사 결과에 이의가 있을 때에는 대한체육회에 이의를 신청할 수 있다’고 각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규정의 취지는 징계절차에 있어 B협회 자체적으로 뿐만 아니라 최종적으로 B협회의 상급단체인 대한체육회의 심사를 거치도록 두터운 불복절차를 보장한 것입니다.

 

사안 2와 관련하여 B협회가 이를 고지하지 않은 것은 재심요구권 및 이의신청권을 침해하여 위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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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철원

 

 

 

 

  한때는 빙상 국민영웅이었으나 지금은 자신의 소식을 숨긴 채 운동에만 전념하는 한 선수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2006년 토리노 동계 올림픽, 한 선수는 자신의 두 번째 올림픽을 위해 이를 악물고 달려왔습니다. 김동성과 함께 출전했던 지난 2002년 솔트레이크 올림픽에서는 쓴 맛을 봤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는 토리노에서 압도적인 기량으로 금메달만 3개를 획득하며 세계 최고 선수로 인정받게 됐습니다.

 

 

2010년 국가대표 선발전 당시 안현수 (c) 이철원

 

 

이후, 그 선수는 대표팀 훈련 중 큰 부상을 입게 되고 오랜 시간 재활에 매달리게 됩니다. 과거부터 지속된 빙상 파벌 싸움의 한 가운데서 오랜 시간 마음고생을 하던 이 선수는 재활 후 국가대표 선발전에 다시 도전했지만 아쉽게도 훈련부족을 이기지 못하고 한 등수 차이로 태극마크 재획득에 실패했습니다.

 

소속팀인 성남시청이 해체되는 불운까지 겹친 쇼트트랙 황제는 계속되는 파벌 논란과 자비 훈련을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러시아 행을 택하게 됐습니다. 계속해서 스케이팅을 하고 싶었던 그에게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을 유치한 러시아가 자국 선수들의 기량향상을 위해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두가 알듯이 그의 국적변경을 놓고 많은 비난 여론이 일었습니다. 네티즌들의 주된 비난 이유는 올림픽 메달리스트로서 연금을 받은 선수가 국적을 변경한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 이유는 병역기피였습니다. 하지만, 이미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금메달로 병역면제를 받은 그에게 병역논란은 무의미한 것이었고, 연금역시 자신의 젊은 날을 바쳐 국가의 스포츠 발전에 헌신했던 그가 당연히 받았어야 될 보상이었기에 이 논란은 그저 한낱 ‘악플러’들의 힐난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논란을 뒤로하고 러시아행을 택한 쇼트트랙 황제안현수를 러시아 모스크바 크리라츠코예 빙상장에서 우연히 만나게 됐습니다.

 

러시아에서 열린 스피드스케이팅 올라운드 세계선수권대회에 한국팀 통역으로 참가했던 필자는 물론, 김민섭 대표팀 코치와 이승훈 선수 역시 예상하지 못했던 만남이었습니다. 시합 마지막 날, 안현수는 예고도 없이 빙상장을 방문하였고, 이십 여분의 짧은 시간동안 대화를 나누고 사라졌습니다. 한국체육대학교 선후배 사이로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김민섭 코치와 이승훈도 어느 순간 안현수와 연락이 끊겨서 그의 근황을 알지 못했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안현수는 모든 것과의 연을 끊은 채 러시아에서 운동에만 집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절친한 선후배 사이인 이승훈이 그의 새로운 연락처를 물어봤을 때도 그는 그저 문자메세지 연락처만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아직까지는 자신의 소식이 국내에서 논란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그의 의견을 존중하고자 그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고, 사진 촬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안현수는 국내에서보다 한결 밝아지고 심리적으로 안정된 모습으로 러시아 생활을 해나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한 포털 사이트에서 안현수의 러시아 이름 빅토르 안을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안현수 매국노가 나옵니다.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스포츠 영웅을 매국노로 만들어버린 것은 파벌싸움이나 소속팀 해체가 아닌, 한때 그를 열렬히 응원하던 우리들이지 않을까요?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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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망이 2012.12.01 18:05 신고

    안현수선수가다른거신경안쓰고운동에만전념했음좋겠네요 잘보고갑니다^^

    • jpgking 2012.12.01 21:06 신고

      좋은 포스팅 절 보고갑니다.
      누가 감히 그를 매국노라 부를 수 있을까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 희망이님, jpgking님~응원 감사합니다. ^^

  • 화이팅 2013.02.04 22:36 신고

    안현수선수 옛날이나지금이나 항상당신을응원합니다!!안현수선수화이팅 빅토르안화이팅!!

  • 장용호 2013.10.02 20:55 신고

    최고의 선수를 귀화하게 만드는 연맹과 나라가 한심하네요 안현수 선수 화이팅 금메달 따버려요

  • 2013.10.06 16:35 신고

    지꿈 위해서 나라를 버리는건 아니라고봅니다
    아무리 사정이 그래도 지 여태까지 키워주고
    올림픽 삼관왕까지 만들어준 고국과 많은 성원을 보내준 국민들을 버린다는건 있을수 없는일입니다..
    매국노 빅토르 나올때마다
    야유는 못할망정 환호해주는 국민들보면 참 한심합니다..

    • 2013.10.07 01:26 신고

      난 니가 더 한심하다 멍청한것아 너가 저 입장이되봐야 그런소릴안하지 ㅉㅉ 미련한것

    • ㅅㅂ 2013.11.13 00:55 신고

      원래 이나라에서 운동하는게 힘들단다. 구타에 폭력에 갈굼에 ...... 운동선수를 심부름꾼으로 알어 러시아는 운동선수 복지 존나게 잘되잇다....모르면 좀 닥치자 빡치니까

    • ㄱ.ㅅ 2013.11.17 02:35 신고

      지꿈위해 나라를 버렸다라고 밖에 생각 못하시는지..나라와 국민을 버린게 아니라 한국 빙망계가 안을 저리 만든거죠. 도데체 매국노에 뜻은 알고 말하는건지..원..

  • 신림동 2013.10.06 17:29 신고

    매국노는무슨 그렇게 만든게누군데... 저같아도 귀화합니다

  • 박미현 2013.10.06 19:21 신고

    저도 안현수선수의 갑작스런 러시아귀화 소식에 엄청 놀랐던 기억이 나네요. 온국민의 사랑을 받고있는 선수가 그런 결정을 하기까지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지 맘이 아파요..
    우리에게 큰 기쁨과 용기 많이 주셨으니 러시아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며 행복하시길 바래요~
    저는 안현수선수를 한국인으로 똑같이 응원하고 금메달의 영광을 함께 나누고 그럴거에요~ 화이팅입니다!
    참! 오늘 경기 모습 보면서 오랜만에 뵈어서 정말 좋았어요~^^

  • 화난 2013.10.07 18:07 신고

    우죽하면 그런결정을 했을지....
    가슴으로 느껴지네요!!
    하긴 관리소홀로 국보도 태워먹는 나라에서....
    국보급 사람인들 제대로 지켜주겠냐구요

  • c.y.g 2013.11.19 23:12 신고

    기사 똑바로 올려라 매국노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황제 스케이터를 놓친거다 빙상연맹 반성해라 기자 니네들도 말은 바로해

    • 2013.11.20 09:06 신고

      기사 제대로 읽어보셔야할듯요..매국노라고 한게 아니라 기자가 빙 돌려서 님이 말한대로 말한거잖아요. -_-

  • 매국노 2014.02.09 20:49 신고

    매국노 맞음 안현수 본인도 결국 02년에 한체대파벌덕에 대표선발전 다끝낫는데 낙하산으로 올림픽승선해서 단체전은물론 개인전까지 뛴 케이스는 파벌특혜아님?? 그리고 기득권 뺏기니까 개인의 이익을 위해 러시아로 내뺀게 잘한거임??

    • 2014.02.19 00:52 신고

      2002년에 안현수는 고등학생이였죠 한체대도 비한체대도 소속되지않은 고등학생이였습니다

  • 빅도르 2014.02.15 22:52 신고

    메시도스페인귀화안했는데 빅도르

  • 2016.08.21 10:49 신고

    이미 금메달 리스트로 군면제 받은 상황에서 파벌 싸움에 감금, 폭행, 훈련열외, 저같아도 다른나라 귀화 선택했을겁니다. 빅토르 안 놓치고, 김연아 은퇴하고 빙신 연맹 끝.

  • 뽀빠이 2017.01.04 22:02 신고

    안현수를 갈대 없게 만들어서. 러시아가 조건 주니깐 러시아로 간것같습니다. 즉ㅈ안현수를 러시아로 뺄로거 한것 같네요. 노무현 정권때 우리나라 기술을 중국 정부가 달라고 해서. 쌍용차, 현대전자, 하이디스 중국에 팔았습니다. 그것때문에 중국이 세계에서 2번째로 돈 잘벌죠

/ 이철원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은 절친했던 벨기에 출신 작가 요스 드콕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모호하면 모호할수록 대화는 풍요로워 진다.” 라는 말을 남겼다. 요스 드콕은 불어로, 백남준 자신은 영어로 말을 하였는데 서로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으면서도 상대방의 말에 대해 집중하고 관심을 가지다보니 서로 하는 말을 이해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스포츠’ 라는 분야에서 ‘국가’ 간의 경계가 뚜렷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아무리 뛰어나고 출중한 실력을 가진 선수가 있더라도 모국의 선수가 아니면 굳이 경기를 챙겨볼 만큼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모국의 선수들이 세계로 진출하기 시작했고 인터넷과 케이블 TV의 보급으로 사람들은 모국 선수뿐만 아니라 자신이 응원하는 해외 팀과 선수를 챙겨보기에 이르렀다. 국가 간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구분선’ 자체가 모호해진 것이다.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의 표현을 빌리자면 “국가 간의 경계가 모호해지면 모호해질수록 스포츠 문화는 풍요로워진다.” 라는 것.

 

그렇다면 이런 글로벌 스포츠화가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지금이야 새벽까지 밤새워가며 프리미어리그 축구나 메이저리그 경기를 시청하지만 불과 10여년 전만해도 우린 메이저리그에 어떤 유명한 선수가 있는지, 어떻게 경기를 하는지 몰랐었다. 정확히 말해서 별로 관심이 없었다. 한국 출신 선수도 없었을 뿐더러 시청할 방법도 매우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큰 세계를 정복하기 위한 야심을 갖고 있었던 박찬호를 통해 우린 ‘한국의 스포츠’가 아닌 ‘세계의 스포츠’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박찬호의 성공으로 인해 한국의 수많은 운동선수들은 한 단계 높은 수준의 해외 리그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실제로 수많은 선수들이 해외리그에서 성공적인 결실을 거두게 됐다.

선천적으로 월등한 신체조건을 가진(그래서 도전해볼 엄두도 못 냈던) 서양 선수들과 몸을 부딪혀가며 경쟁하다보니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그로인해 좋은 결과물이 탄생하기도 하였다. 해외 스카우터들이 한국의 유망주들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종목의 한국 선수들이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활약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글로벌 스포츠문화가 관람객 입장에서 주체로 발전해 나가게 된 시초는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최근까지도 글로벌 스포츠를 받아들이는 입장이었다. 스포츠 선진국들의 경기력과 문화를 보며 즐거워하고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과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을 통해 입장이 바뀌게 되었다. 특히, 아시아인들에게는 불가능의 영역이었던 스피드스케이팅 10,000M와 선천적으로 불리한 스피드스케이팅 남,녀 500M에서, 금발의 서양 선수들이 우승을 차지했던 피겨스케이팅에서 한국선수들이 금메달을 차지하며 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했어도 한국의 스케이트 대표 선수들과 감독들은 매년 해외로 전지훈련을 나가서 그들과 함께 훈련하며 훈련방법을 배워왔다. 하지만 지난 올림픽이 끝난 뒤 전 세계의 스케이트 팀들이 한국 선수들의 훈련방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그 방식을 배우고 싶어 했다. 또한, 전 세계의 유명 인사들이 ‘퀸’ 김연아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가지게 됐으며, 심지어 ‘타임’지에서 선정한 세계 히어로 100인 부분에서 2위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물론, 아직까지 한국의 전반적인 스포츠 문화 수준은 선진국에 비해 많이 뒤처지는 것이 사실이기에 여전히 많은 것을 도입하고 받아들여서 익혀야하지만 지난 올림픽을 계기로 우리의 스포츠 문화도 해외로 수출되기 시작했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어 보인다.

‘동물농장’, ‘1984년’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설을 쓴 조지 오웰 은 텔레비전의 일방적인 소통 기능으로 인해 1984년에 세계는 멸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그의 말처럼 매체를 통한 일방적인 정보전달은 군부독재와 같은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우려들은 인터넷과 위성중계의 발달로 깔끔히 해소되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좁은 우물을 벗어나 큰 세계로 달려 나가려고 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스포츠 문화도 마찬가지이다. 과거, 국민들의 눈과 귀를 돌리기 위해 프로야구를 만들었지만(일방적 소통) 국민들 스스로 스포츠 문화를 발전시켜나가면서 긍정적인 방향(쌍방소통)으로 달려 나왔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진출과 박지성의 프리미어리그 진출로 인해 우리는 ‘글로벌 스포츠 세계’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들의 선진 팬 의식, 경기력, 스포츠 행정 등 한 차원 높은 수준의 글로벌 스포츠 문화를 접하게 됨으로써 적극적 참여와 소통의 의식이 생기게 된 것이다.

비록 우리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해외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자국의 스포츠 문화에 대해 무조건적인 비판을 가하게 되는 부작용도 생겼지만 우린 분명 박찬호와 박지성 같은 글로벌 스포츠 스타를 통해 알게 모르게 한 단계 더 성숙해졌을 것이다.

‘개인의 발전은 국가의 발전과 불가분의 관계’이듯 글로벌 스포츠 문화의 영향으로 인해 우리들 스스로도 발전하였으며 그만큼 국가적으로도 발전하게 되었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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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오화석(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그 인기와 선수의 수준에서 남미와 함께 지구상에서 쌍벽을 이룬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유럽 프로축구리그는 개별국가의 프로리그뿐만 아니라, 유럽챔피언스리그 결승전까지 전세계로 생중계되어 국가대표팀 대항 A 매치나 국가대항 축구 월드컵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유럽의 프로페셔널 구단은 역내 출신 선수들 뿐만 아니라, 역외의 선수들까지도 활발하게 영입하여 국경을 넘어 경쟁하고 있다. 국가리그 단위로, 예컨대, 프랑스의 Ligne 1 (1부리그)에서 서로 다른 팀에서 그 팀의 승리를 위해 활약하는 한국선수들을 만날 수 있고, 클럽팀이 참가하는 UEFA(Union Europeenne Futbol Association, 유럽축구협회) Champions league에서 국경을 넘어 경쟁하기도 한다. 예컨대, 프랑스 1부리그의 발랑시엔(Valencienne)과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아스날(Arsenal)이 경기를 가지는데, 발랑시엔에 영국국적의 선수가, 아스날에 프랑스 국적의 선수가 만나는 특별한 인연을 맺는다. 유럽내의 축구클럽이 성적과 구단의 여건에 따라 선수를 영입, 방출하거나 거꾸로 선수입장에서 이적하는 일이 다반사가 되면서 국경을 넘은 선수의 이적, 그리고 비유럽연합 가입국 출신 선수의 이적시 역내로의 진출이 자유로운지의 여부등이 문제시 될 수 있다. 이러한 유럽리그의 자유로운 선수이적을 가능하게 했던 판결중에 Bosman 판결을 소개하고자 한다. 
  


BOSMAN 판결

 장 마크 보스만(Jean Marc Bosman)은 벨기에 출신 프로축구선수 였다. 1988년부터 1990년까지 벨기에 1부리그 FC 리에주(Liège)에서 뛰었다. 계약 만료를 앞두고, 당시 벨기에 축구협회(Union Royale Belge des Societes de Football Association) 상 이적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당시 협회규정상 선수가 소속 구단을 떠날 경우 훈련비 혹은 이적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Bosman 은 프랑스 2부 리그 US 덩케르끄(Dunkerque) 에 접촉했지만 이적이 성사되지 않았고, 이적기한이 만료되어 벨기에 축구협회는 Bosman 이 RC 리에주의 요청으로 한 시즌동안의 경기출전을 금지했다. 사실상 일시적인 자격정지인 셈이었다.

Bosman 은 1990년 8월 벨기에 민사법원에 고소장을 냈다. 그가 낸 소송은 Belgian Football Association v. Jean-Marc Bosman, R.F.C. de Liège v. Jean-Marc Bosman and others, UEFA v. Jean-Marc Bosman 총 세가지 였으며, 1990년 당시, 벨기에와 같은 유럽공동체(EC) 회원국이 유럽공동체 설립하는 조약상의 해석에 대하여 유럽공동체의 최고 사법기관인 유럽사법법원(ECJ)에 의견을 묻는 선결적 부탁(preliminary ruling)이라는 제도가 있다. 벨기에 리에주 상소법원은 ECJ 에 이 선결적 부탁을 통해 선수이적을 제한하는 당시 FIFA 규정 17조가 유럽공동체조약에 어긋나는 지에 대한 ECJ의 판단을 구하였다.

 

 1995년 12월 15일 ECJ의 선결적 부탁에 대한 해석은 다음과 같다.

 ⅰ) 유럽공동체설립 조약 48조의 해석상, 회원국 국민인 프로축구 선수가 특정단체와의 계약이 만료되었을 때, 그 회원국의 단체가 이전 단체에 이적비, 훈련비, 기술개발비등을 지불하지 않는다면 다른 회원국내 단체에 소속될 수 없도록 강제하는 스포츠연합의 규칙이 적용되는 것은 유럽공동체설립조약에 맞지 않는다.

ii) 유럽공동체 회원국의 축구협회가 조직한 경기에 다른 회원국민의 프로선수가 참여함에 있어 그 수를 제한하는 축구협회의 규칙은 유럽공동체설립조약 48조에 부합하지 않는다. 

Bosman 판결에 따라 당시까지 국내 법원에 계류중이던 사건을 포함하여 이후의 모든 사건에 선수의 자유로운 역내이동이 가능해진 셈이다. 이에 따라 유럽내 뿐만아니라 FIFA 는 선수이적에 관한 조항을 2001년에 개정하여 비유럽권에까지 자유이적 적용이 확대된 만큼 Bosman 판결은 유럽스포츠법을 글로벌 스포츠법으로 지평을 넓힌 기념비적 판결이라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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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오화석(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필자는 2011년 7월 스포츠분야에 있어 영국 최고의 대학인 러프버러대학교를 방문하여 스포츠사회학 연구소에서 박사후 과정을 밟고 있는 Borja Garcia 박사와 함께 유럽연합 스포츠정책에 대한 의견을 나눌 기회를 갖게 되었다. Borja Garcia박사는 2010년 내한하여 유럽의 스포츠거버넌스에 대한 발표를 한 바도 있다.

                                           (러프버러 대학 내에 위치한 영국 스포츠연구소)

유럽연합의 일관된 스포츠정책 만들기작업은 199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5년 Bosman 판결이후 구단들의 요구로 유럽연합내에서 스포츠분야에 대한 통일된 원칙을 제시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게 된다. 특히 유소년 시절부터 장기간 인재를 발굴하고 투자하여 성인 무대에 출전시키는 유럽 프로축구구단의 성격상 자기 구단이 투자한 선수가 갑자기 다른 구단으로 이적한다고 할 때, 투자비용에 대한 손실이 크기 때문이었다. 유럽연합의 유럽 스포츠 모델(European model of sport) 구축 시도는 1998년과 2007년 크게 두차례의 보고서와 백서가 각각 발표되면서 본격화 되었다.

 (1) 1998년 헬싱키 스포츠 보고서의 발표
 유럽연합의 주요 기관중의 하나인 유럽이사회(European Council)는 1998년 있었던 ‘유럽연합의 스포츠에 관한 헬싱키 회의’ 의 결과물로 99년도에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이 보고서에는 Bosman 판결이 가져온 유럽내 파장에 대한 문제의식을 지적하고 있었는데 특히, Bosman 판결때문에 기존 규정들이 폐지되고, 대체 규정을 아직 정립하지 못한 단계에서 유럽 내 스포츠클럽이 직면한 어려움으로써 구단과 선수의 부익부 빈익빈을 꼽았다. 프로선수를 일찍 발굴하여 양성하는 기관을 운영했던 구단들은 구단내에서 오랫동안 공들인 선수들이 댓가를 지불하지 않고 헌신짝 버리듯 구단을 떠나는 상황에서 스타플레이어로만 이적료가 모이고, 재정이 튼튼한 구단만이 이러한 스타플레이어를 영입하여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된다는 논리였다. 

(2) 2007년 유럽연합 스포츠백서
약 10년간에 걸쳐 통일된 원칙을 내놓고자 노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스포츠리그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힘으로써 한두가지의 유럽의 스포츠를 구조화하는 것이 쉽지 않는 의견이 모아졌다. 위에서 언급한 헬싱키 보고서에서 새로운 모델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냈다면, 10년뒤에 발간한 백서에서는 이를 포기하고 세분화된 분야별로 유럽의 스포츠모델과 관련한 그간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① 국경을 넘는 선수의 자유이동과 국적과의 관계 재정립

연고를 기반으로 하는 프로구단은 각기 오랜 역사와 전통에 기반하고 있고 그동안 나름의 문화를 일구어 왔으며, 지역에 연고를 둔 EU 시민들의 자기지역의 구단에 대한 응원과도 연계되어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이들 구단 선수들이 국가대표에 뽑힘으로써 ‘국가대표’라는 개념이 시민들의 정체성 뿐만 아니라 생활체육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유럽연합 조약이 금지하는 국적상 차별이란, ‘회원국간의 자유 이동과 거주, 그리고 고용, 임금 및 노동과 고용에서의 다른 조건’과 관련된 것이며 특히 선수가 구단에 속하는 것도 선수가 구단이 설립된 국가내에서 효과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의 주된 행정기관중의 하나인 유럽위원회(European Commission)는 선수의 이적과 고용분야에서의 차별철폐를 위해 노력하고 유럽연합법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내에서 ‘A매치’를 위해 자국민을 대표선수로 뽑는 권한과, 차별철폐를 준비하는 기간동안 잠정적으로 활동 외국인 선수의 수를 제한하거나 행동원칙을 실행하기 위한 준비기간을 두는 것에 대해서는 제한적으로 인정할 것이다.

② 선수이적료의 투명성을 위한 노력

 유럽위원회는 2001년 FIFA의 국제 이적규정개정이 EU 법의 요건을 충족시키면서 스포츠구단간의 정정당당한 경쟁을 할 수 있게끔 하는 선례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선수이적에 파생적으로 일어나는 자금의 흐름도 적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선수이적과 관련한 자금이동의 투명성을 증진하기 위하여 선수이적과 관련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효과적인 시스템에 노력할 것이라고 한다.

③ 비유럽연합 출신 선수에 대해서도 인권의 차원에서 보호할 것

 유럽으로 이적한 해외파 선수들(특히 아프리카 등 저개발국가 선수를 중심으로)이 때로는 경기에 주전으로 출장하지 못하고 불법체류나 인신매매등의 비정상적인 지위로 내몰리곤 한다. 이는 분명 유럽연합이 지향하는 가치에도 반하는 만큼, 이문제의 해결을 위해 인권의 차원으로 접근할 것이다. 위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유럽위원회가 특히 나서서 고용현장에 몸담고 있는 청년들을 보호하기 위한 입법으로서 ‘지침(Directive)’을 지속적으로 마련할 것을 보고서에서 말하고 있다. ‘지침’이란 ‘유럽연합의 회원국이 추구하여야 하는 정책목표를 제시하고 회원국들로 하여금 국내입법을 통하여 그 수단을 마련하게 하는 것’이며 당해 사안에 대한 개별적 적용이 다른 입법형식과 다른 특징이다.

(3) 마치며
Bosman 판결로 인해 촉발된 유럽의 일관성있는 스포츠정책 만들기 작업은 10여년 간의 논의 끝에 2007년 백서를 발간하면서, 크게 국적문제, 선수이동, 비유럽권선수에 대한 보호로 크게 세 부분에 대한 문제의식을 세분화하면서 발전해왔다. 비록 통일된 지침을 발간하지는 못했지만, 지속적인 지침형성을 위한 모멘텀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러프버러에서 Borja 박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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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홍완식, 유럽연합의 입법에 관한 연구, 월간 법제, 2004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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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오화석(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메가이벤트의 개최시기가 다가오면서 대회를 기념하는 각종 기념물들이 속속 세상에 그 모습을 나타내곤 한다. 올림픽의 경우 기금을 부가하여 우편요금에 부가금이 첨부된 기념우표를 시리즈로 발행하는 경우가 많고 기념주화도 발행되는 경우가 많다. 기념우표와 기념주화의 경우 발행계획단계에서 수집가의 손에 들어가기까지 적지 않은 기간이 소요되는데, 여러 가지 문제 중에서도 도안의 저작권 문제가 쟁점이 되는 가장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이다.

혁신적인 도안, 그러나 세상에 태어나지 못한 대한민국 F1 그랑프리 기념우표

전남 영암에서 최근에 끝난 2011 F1 그랑프리가 201010월 우리나라에 처음 개최되면서 20101월 우정사업본부가 발표한 2010년 우표발행계획상으로는 1종의 우표가 발행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통상 우표발행의 경우, 다음 해 계획이 전년도 상반기 우정사업본부 우표발행 회의에 의해 결정되며 특정 이벤트에 대한 발행을 희망하고, 발행종수를 제안하더라도 그대로 결정되지는 않는다. (런던올림픽이 열리는 올해에는 수영과 양궁을 도안으로 하는 런던올림픽 기념우표 2종을 포함해 총 17회에 걸쳐 54종의 우표발행계획이 발표되었다.) 물론 밴쿠버 올림픽에서의 우리 선수단의 선전으로 세계 5위의 성적을 내며 이를 기념하고자 올림픽이 끝나고 2010년도 발행계획 외의 우표발행이 이루어진 적도 있다.

F1 기념우표의 경우 펄럭이는 검은 체크무늬 깃발을 연상시키며 우리나라 우표발행사상 처음으로 물결이 흐르는 듯한 유선형 우표로 디자인되었지만, 1022일 발행 예정일을 앞두고 F1 대회 직전에 우정사업본부 측에서는 F1 대회의 세계본부 격이라 할 수 있는 FOM(포뮬러원매니지먼트) 사와의 저작권 문제로 우표발행을 취소한 적이 있다.

반면 2011년에 열린 대구 IAAF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경우 2종의 우표뿐만 아니라 99% 순은의 기념주화 1종이 성황리에 발행된 바 있다. 우표 도안은 동양적인 붓터치로 달리는 주자의 역동성을 표현함으로써 아시아의 를 한껏 고양시키는 디자인이 채택되었다. 이는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공식포스터와도 Look and Feel 을 통일시킨 디자인이다. (공식포스터 역시 붓으로 결승선을 끊는 스프린터의 모습을 담았다.)

                                         (사진출처: 인터넷우체국, http://www.epost.kr)


기념우표를 발행하는 우정사업본부는 지식경제부 산하의 공기업이며 기념주화의 경우 발행처는 한국은행인데 우표와 주화의 도안은 발행기관의 배타적 소유물이어야 한다
. 그런데 IAAF 의 로고등이 도안에 들어가는 경우 이들 도안의 배타성 문제가 저작권상의 쟁점이 된다. IAAF 와 같은 메가이벤트 주최기관의 경우 당해 이벤트의 로고가 함부로 사용되지 않도록 철저히 로고를 관리하고 있으며 세부 디자인 규정을 두어 TM(등록상표) 표시방법등과 같은 구체적인 사항을 꼼꼼하게 지시하고 있다. IAAF 와 같은 메가스포츠이벤트의 로고 역시 양도가능하지 않으며 계약에 따라 배타적 사용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국가에 귀속되어야 하는 우표 및 주화 도안과 도안 속에 혹시 삽입될 수 있는 IAAF 와 같은 로고사이에 배타적 저작권의 귀속여부에서 충돌이 발생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협상을 통해 조율하는 일에는 저작권을 포함한 국제적인 지식재산권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F1 그랑프리의 경우 2016년까지 개최가 예정되어 있는 만큼 한국의 브랜드가치를 고양하고 대회의 역동적 이미지를 담은 기념수집물이 발행되어 F1 개최의 긍정적 효과를 더욱 배가하기를 기대해본다.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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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오화석(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필자는 3일간 강릉, 평창 일원에서 개최된 한국스포츠엔터테인먼트법학회 연례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하였다. 두 도시 모두 명실 공히 각각 빙상경기 및 선수촌, 그리고 설상경기와 본부호텔을 품에 안을 올림픽 개최도시로 거듭나게 된다. 우리나라와 지형적 조건이 유사하고 동일한 아시아권으로서의 경쟁력을 비교하고자 07/08시즌과 08/09시즌에 각각 일본 나가노 및 하쿠바(98년유치)와 삿포로(72년유치) 및 아사히카와를 방문한바, 우리가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그리고 올림픽 이후를 염두에 두면서 짚어 넘어가야 할 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강릉에 들어서니 높이 솟은 강릉시청을 중심으로 깔끔하게 정돈된 도시가 과히 평창동계올림픽의 빙상경기장으로 손색이 없을 정도다. 동해안으로 들어서면 하슬라 박물관 호텔 방향 정동진까지 넓게 펼쳐진 도시가 도시형 동계올림픽 개최장소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이웃 일본에서 72년에 유치한 삿포로 동계올림픽의 경우, 도시형 동계올림픽의 개최장소로서 비견할 수 있을 만하다. 일본의 경우 행정조직이, 1(도쿄도)1(북해도) 2(오사카, 교토) 43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중 1도는 북해도를 의미하고 북해도의 중심도시는 삿포로다. 삿포로는 19세기 말 메이지유신이후 일본의 근대화과정에서 개발이 시작된 홋카이도의 도청소재지이다. (일본은 메이지유신이후 폐번치현으로 중앙집권화를 이루었지만, 홋카이도는 도()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삿포로는 1972년 동계올림픽을 유치함으로서 오늘날과 같은 도시기반을 갖추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정도로 도시성장에 있어 올림픽의 역할이 크다. 올림픽 개최당시 시설들이 시내 안쪽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나, 육상자위대 주둔지에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건설하여 선수촌으로 활용했던 점등이 이를 말해준다고 본다.

                                            (삿포로 올림픽 선수촌 역 앞 지하철)

필자는 미야지시마 스키점프대와 반케이(Bankei) 스키장, 그리고 올림픽선수촌 지역을 다녀왔다. 도시지역답게 이러한 경기장과 올림픽 선수촌 모두 지하철로 연결이 된다. 동계기간동안 폭설로 인한 교통문제 역시 지하철로 극복할 수 있는 점도 강점으로 작용했을 듯하다. 삿포로의 1월 폭설은 우리의 평균적설량과 비교하여 상상을 초월하는데, 올림픽 선수촌 옆 공원에서는 1월이면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시민들에게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대여해주고, 자연설이 두텁게 덮인 공원에서 자유롭게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도심 한복판 공원에서 즐길 정도다. 이러한 겨울 기후를 감안할 때, 지하철은 도심교통의 획기적 해결책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삿포로 시내에는 엔산공원을 중심으로 양 쪽 언덕에 각 1개소씩 두 군데의 스키점프장이 있고, 미야지시마 스키점프대와 같은 고원에 위치한 경기장도 엔산공원역에서 버스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이미 삿포로 올림픽이 끝난지 40여년이 지났지만, 필자가 방문한 현재도 활발히 점프경기 일정이 잡히는 것을 보면, 동계 종목이 상당히 생활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미야지시마 스키점프대, 필자가 바라보는 쪽 오른 편 건물을 동계스포츠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시사점

두 도시 모두 영토 북부 변경지대에 자리 잡고 있어서 군사시설이 많은 편이고, 72년 삿포로 올림픽 선수촌의 경우 육상자위대 주둔지를 활용한 바 있다. 강릉 올림픽에서도 도시개발에 있어 군사시설 관련 제한이 풀릴 지 귀추가 주목되는 부분이다. 서울에서의 접근성 제고를 위해 동서고속철도를 조기 개통하게 될 예정이지만 시내수송에 대한 대책역시 강릉이 떠안아야 할 과제이다. 도로교통외에는 경기장 간, 혹은 경기장과 선수촌간 연결망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올림픽 기간 중 수송상 교통체증 문제가 강릉이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 여겨진다. 빙상경기를 위한 다수의 경기장이 건설될 예정인데, 아이스하키 리그 연고지 활용이나 생활체육 캠프 등으로 하드웨어 구축에 있어 올림픽 이후의 소프트웨어도 신경 써서 고려해야 할 점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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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오화석(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프랑스에서 대륙법 과정 여름학기를 참석할 때였다. 파리는 한창 혁명기념일(Bastille Day)의 불꽃놀이가 있을 즈음, 브뤼셀로 향할 준비를 다 마치고 단 4시간여라도 눈을 붙이려고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61Gare du Nord(북역)에서 출발하는 브뤼셀 기차를 타고 한 시간여를 잠깐 졸았을까, 1시간 20분 만에 브뤼셀 중앙역에 닿았다.

1. 스포츠외교관의 산실: Billet Latour 과 현재 IOC위원장 두명을 배출한 나라

지금까지의 IOC 위원장은 1대 디미트리우스 비켈라스(그리스), 2대 피에르 드 쿠베르탱(프랑스), 3대 빌레 라투르(벨기에), 4대 지그문트 에드스트롬(스웨덴), 5대 에버리 브런디지(미국), 6대 킬라닌 경, 7대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스페인) 그리고 현 8대 자크 로게(벨기에) 8명이다. 이 중 두명이 벨기에 출신이다. IOC 뿐만 아니라, 필자는 1999IOC 총회 때2002FIFA 월드컵 당시 공항영접 자원봉사를 했는데, 2002년 월드컵 당시 24명의 FIFA 집행위원 중에는 벨기에 출신의 Michel D'hooghe 위원도 있었다.

여기에, 스포츠중재분야의 상설법원격인 스위스 로잔의 Court of Arbitration for Sport 의 이사회는 ICAS(International Council of Arbitration for Sport) 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5명의 이사회 집행임원과 16명의 위원만 위촉이 된다. 이중에도 역시 벨기에 출신 위원이 있는데 Frans Meulemans 이다. 스위스 못지않게 다수의 스포츠외교관을 배출하는 나라다.

2. 벨기에 법체계와 스포츠중재

마침 도착시간이 도시근무자의 출근시간과 겹쳐, 빠른 걸음으로 우리로 치면 대법원, 고등법원, 지방법원이 함께 있는 'Palais de Justice' 에 출근하는 사람들을 마주칠 수 있었다. 벨기에는 2003년 세계에서 네덜란드 다음으로 두 번째로 동성혼을 법정혼인으로 성문화할 만큼 법문화에 있어 실용적이다. 8시부터 일반 공개하는 Palais de Justice 의 모습이 실용적인 벨기에 법문화를 단적으로 드러내는데, 파기원(Cour de Cassation)에 들어서니, 프랑스 파리의 같은 이름으로 서있는 Palais de Justice 의 파기원내부에서 봤던 화려함은 이곳에서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벨기에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유럽이사회의 본부가 위치한 만큼 다수의 글로벌기업들의 유럽 본사가 위치하여 이곳에서의 국제중재도 활발하며, 이러한 국내에서 축적된 중재경험과 Bernard Hanotiau 와 같은 세계적인 중재인들의 뒷받침으로 벨기에 올림픽 위원회도 필자가 이전에 소개한 프랑스 올림픽 위원회와 유사하게 조정절차와 중재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3. 브뤼셀 자유대학 옆에 위치한 국제대학스포츠연맹

1920년 하계올림픽을 개최했던 안트워프(불어로는 앙베르라 읽는다)가 위치한 벨기에의 북부는 네덜란드 계의 언어를 쓰고, 벨기에 남부는 왈루니(Wallonie)라는 프랑스어계 방언을 쓴다. 벨기에 중심부에 위치한 브뤼셀은 네덜란드 계와 프랑스어 계가 공존하고 있다.

19세기에 설립된 브뤼셀 자유대학(Libre Unversité de Bruxelles)은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 사용자간의 다툼으로 1960년대에 동일한 이름으로 언어에 따라 두 개의 서로다른 대학으로 분리되었다. 7월인데도 가을을 재촉하는 듯한 촉촉한 비가 브뤼셀을 적시는 아침, 캠퍼스에 도착하니 마침 9시가 다되어, 다들 강의실에, 도서관에, 행정관등 자신의 위치에 찾아가는 발걸음이 빨라진다. 마침 여름학기를 하고 있었고, 대학 안에는 프랑스어를 더욱 널리 보급하고자 미디어 도서관, 그리고 인문과학(Science Humaine) 도서관등이 이미 문을 열었다. 한국 혹은 파리의 대학도서관과 다른 점은 별도의 학생증검사를 하지 않는다. 옥스퍼드나, 파리는 도서관에 있는 책을 보는 곳이라면, 브뤼셀 자유대학 도서관은 한국과 유사하게 공부를 하는 곳이 먼저 눈에 띈다. 더욱이, 학내에 파리에서는 좀처럼 찾을 수 없는 무료 wifi망이 구축되어 있고, 외국인도 자신의 이름, 국적, 주소만 등록하면 사서를 만나서 거쳐야 하는 절차 없이 바로 온라인상에서 아이디, 패스워드를 받을 수 있다. 프랑스어계 자유대학이 위치한 Ixelles 언덕의 오른편으로 있는 숲속에 최근에 이전한 국제스포츠연맹(FISU)의 본부가 있다.

                                                 (사진 설명: 브뤼셀 자유대학에서)

4. 유럽연합 스포츠정책을 위한 유럽 올림픽위원회 브뤼셀 사무소

유럽연합의 운영에 관한 조약(유럽연합법 분야에서 약칭으로는 리스본 조약이라 통칭한다.) 512편에서는 유럽연합 스포츠진흥에 관한 기본법적 성격의 조항을 담고 있다.

1항에서는 기본원칙의 성격으로, 연합은 스포츠의 특별한 특징, 그 자발적 활동에 의거한 구조 및 그 사회적, 교육적 기능을 고려하면서 유럽적 스포츠 관심분야의 진흥에 기여한다.”

2항에서는 지향하는 가치를 열거하여, 스포츠경기의 공정 및 개방성의 촉진, 스포츠에 책임있는 단체간 협력의 추진 및 남녀스포츠선수, 특히 젊은 남녀스포츠선수의 심신의 건전성을 확보함으로써 스포츠의 유럽적 특성을 발전시킨다.” 고 천명하고 있으며 이를 실천하기 위한 행동원칙(mandate) 로서 4항에서 본 조에 규정된 목표의 달성에 기여하기 위하여 유럽의회 및 이사회는 보통입법절차에 따라 경제사회위원회 및 지역위원회와 협의 후 회원국 법과 규정의 조화작업을 제외한 촉진조치를 채택한다.” 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의 행정부에 해당하는 집행위원회와 각국 정부수반 회의체인 유럽이사회 (European Council)및 회원국 장관급 회의체인 이사회’ (Council)와의 협력을 위해 본래 이태리에 본부를 두고 있는 EOC(유럽올림픽위원회)는 두 유럽연합 건물이 위치한 라운드 어바웃 길 건너편에 브뤼셀 분소를 두고 있다.

                                          (사진설명: 유럽올림픽위원회 브뤼셀 사무소)


유럽의 영세중립국으로서 다수의 국제스포츠기관을 유치한 스위스뿐만 아니라, 유럽의 3대강국인 프랑스-독일-영국 사이에 위치한 벨기에(브뤼셀에서 파리, 런던, 독일의 쾰른은 모두 초고속열차로 2시간 거리이면 닿는다.)는 지정학적 경험을 살려 전 세계무대로 하는 스포츠외교 인맥과 유럽연합을 아우르는 스포츠진흥정책의 메카로, 그리고 국제대학스포츠연맹 본부라는 인프라까지 골고루 갖추어져 있다. 경상남북도를 합한 면적에 1천만 명의 인구를 보유한 벨기에가 축적한 유산은 13억의 중국과 12천의 일본 사이에서 결코 작지 않은 면적에 상당한 인구력을 보유한 대한민국이 앞으로 아시아지역, 더 나아가 세계스포츠무대에서 추진해야 할 전략적 위상을 시사 하는 바가 적지 않으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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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오화석(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1924년 프랑스 샤모니(Chamonix)에서 열린 첫번째 동계올림픽이후 개최도시를 크게 구분한다면, 크게 타운형과 도시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본다. 타운형이라 하면, 천혜의 자연조건을 바탕으로 동계스포츠인프라가 구축된 유치도시라고 개념화 할 수 있겠다. 한편 도시형이라하면, 이미 거대도시규모의 인구와 일반도시기반 시설, 산업을 바탕으로 잘 알려진 도시이미지를 활용하는 유치도시이다. 지난 22년간 5차례의 올림픽을 분류해보면, 도시형은 1988년 캐나다 알버타주의 주도인 캘거리, 2002년 몰몬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솔트레이크시티, 그리고 2006FIAT 의 본사가 있고 이태리 북부 자동차 산업의 요충지인 토리노가 있었다.

나가노의 경우 나가노 현청이 위치한 나가노 시에서 실내링크경기와 봅슬레이를 운영하였고, 하쿠바와 시가고원에서 각각 스키점프와 알파인경기등이 개최되었다. 방문했던 20085월은 올림픽을 개최한지 20주년이 되는 해로서 나가노올림픽의 유산(Legacy)에 대한 재조명행사가 연중 개최되고 있었다. 필자는 나가노시내 엠 웨- 실내빙상장과 하쿠바에 위치한 핫포오네 스키장을 직접 경험해 보기로 했다. 하쿠바의 경우 중심도로와 평행하게 달리는 JR동일본철도를 축으로 남북으로 10여개의 스키장이 모여있어서 스키장간에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타운형의 약점인 숙박시설을 해결하기 위해 올림픽직전 부동산 붐이 일었고 다수의 숙박시설이 분양되었는데 올림픽이 끝나고 부동산가격이 폭락하면서 마을 경기에 악영향을 주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평창의 강점과 약점

알펜시아를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바이지만, 무엇보다도 국내최대규모의 Y 리조트와 연담화 되어 있다는 점은 상당한 강점으로 인정받을 만하다. 경기시설의 연담화는 동계올림픽 유치뿐만아니라 성공적인 평가의 중요한 요소로서 이동성과 접근성에서 경쟁력이 있다. 나가노 현 하쿠바에 위치한 핫포오네와 하쿠바고류(Hakuba 47)스키장이나, 홋카이도 니세코 스키장의 경우도 다수의 경기장이 연담화되어 있다. 이는 올림픽 이후에도 시너지효과를 통한 경제성확보에도 유리할 수 있다. 이제 알펜시아가 좀 더 주목해야 할 점은 꿈의 리조트를 만드는 것이다. 음식, 쇼핑, 축제, 당장은 올림픽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을 것 같아도 전반적인 매력도를 높이는 중요한 요소중의 하나이다.

                          (2010년 동계올림픽 기간중 휘슬러 빌리지를 가득메운 올림픽 관광객들)

일본은 64년 동경올림픽을 유치하면서 미소의 나라라는 이미지를 심었고 친절을 삿포로에 활용했을 것이다. 말하자면 부드러움이 자연스럽게 포섭적 권력이 되는 소프트파워(Soft Power)을 구축하였다. 98년도에는 일본의 알프스+스시(sushi)로 대표되는 고급 일본문화 가 이국적이면서도 올림픽운동의 가치를 구현하는 데 작용했을 것이다. 필자가 2009년 코펜하겐 올림픽 콩그레스 개회식날 회의장을 찾았을 때 억수 같은 비바람에 짐을 들고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숙소인 공항유스호스텔 덴마크 친구들에게 날씨를 물어보니 코펜하겐은 10월 초에 이미 겨울이라는 것이다. 아차 싶었다. 부산이 코펜하겐과 올림픽 콩그레스 유치 결선에서 고배를 마셨을 때 올림픽 패밀리들에게 한국의 가을 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한국의 음식 이 얼마나 맛있는지, IOC 포럼 직후 열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어떤 배우를 만날 수 있는지, 해운대에서 어떤 쇼핑을 즐길 수 있는지, 이런 것들을 전달하지 못했던 것이 패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코펜하겐의 10월은 쌀쌀한 초겨울이었음에 반해 우리는 2008년 부산 IOC 포럼때 날씨덕을 보면서 완벽하게 치루지 않았던가.

                                          (요트를 타고 부산 앞바다에서 바라본 해운대)

수도권의 한 스키장은 여름을 활용하여 록 페스티발을 주최하여 이미 자리잡았고, 원래 대관령은 하계 클래식 음악캠프로 음악영재와 애호가 사이에는 이미 정평이 나있기는 하다. 국제적인 경쟁력있는 한국의 아이콘과 연계된 겨울 축제가 자리를 잡는다면, 이 역시 2018년이 오기전에 평창의 매력도를 높여 올림픽 기간과 그 이후에도 꾸준히 평창이 꼭 가보고 싶은 곳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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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조종환(법무법인 거인대표 변호사)




   계약은 서로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두 당사자
(경우에 따라 3이상의 당사자가 있을수 있다) 사이에 권리의무를 정한 것이다. 스포츠선수(감독, 코치를 포함한다)도 계약내용에 따라 일정한 권리와 의무가 인정되고 있다. 그리고 계약기간의 경과로 인하여 계약의 효력이 종결됨에 따라 이러한 권리와 의무는 소멸하는 것이 원칙이다. , 계약기간은 적어도 당사자의 권리가 일정기간까지 보장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물론 계약 당사자 일방의 책임있는 사유로 계약이 해지 또는 해제될 경우는 제외한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계약서에 규정되지 않은 사유, 다른 말로 하면 아무런 이유도 없이 계약이 종결되는 경우가 발생하곤 한다. 위 사례에서 B 감독은 단지 A팀의 성적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자진사퇴하였지만 B감독이 체결한 계약서에는 ‘A팀의 성적이 좋지 않을 경우에 B감독이 자진사퇴하여야 한다거나 계약이 종결된다는 조항은 없었다.



또한 C코치는 계약서도 체결하지 않았지만 계약서를 작성하였다고 하더라도 체육부장의 눈에 어긋났다는 이유로 계약이 종결되었다는 내용은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보다시피 계약서상의 계약기간은 적어도 그 기간 동안은 계약서에 규정된 권리가 보장되고, 본인의 잘못과 무관하게 계약기간 이전에 계약이 종결되지 않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만약 이러한 계약기간 이전에 계약이 일방적으로 종결된다면 계약의 부당한 종결을 이유로 상대방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손해배상액은 계약기간까지 받을 수 있는 급여가 될 것이다.

 

C코치의 경우에는 계약서도 체결하지 않아 계약기간이 없다고 볼 수 있다. 이 경우에는 C코치의 지위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계약기간이나 신분상의 지위가 달라진다고 볼 여지가 있다. , C 코치가 단순한 계약직인지, 교직원에 준하는 지위를 받는 지위인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어느 경우이던 C 코치가 3년이 넘게 대학교 태권도팀의 코치로서 일정한 급여 및 4대 보험 혜택을 받았다면 정당한 사유도 없이 재계약 불가의 통지를 받아서는 안 될 것이 명백할 것이다.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기 위해 계약서를 확실하게 작성할 필요가 있다. 권리는 스스로 지키는 자만이 보호받을 수 있다. 아직 우리 사회는 당연히 인정되어야 할 권리를 보호하기에는 벅차 보이기 때문이다.

 

Tip) 가능하다면 계약서를 작성할 것.

계약서에는 계약기간을 명시할 것

만약 계약기간 이전에 일방적으로 계약이 종결되었을 경우에는 손해배상 외에 위약벌을 규정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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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오화석(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1.
올림픽휴전은 고대올림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올림픽에 참여한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올림픽(당시 이외에도 이스트미아, 네메아 등 3개의 다른 제전행사가 있었다.) 경기가 있는 동안 휴전을 서약하였고, 이를 고대그리스어로 Ekkekeiria 라고 한다.


(고대올림픽당시 도시국가간 휴전을 선포하는 원반을 들고 있는 사제, 1960년 로마올림픽을 기념하여 그리스가 발행한 기념우표 도안, 출처: www.greekstampstore.com)

2. 올림픽휴전 initiative ioc 가 주도하는 유일한 평화이니셔티브

올림픽 휴전 이니셔티브가 다시 각광을 받을 수 있도록 기여한 자는 현 그리스 총리인 파빤드레우 총리이다. 현 파빤드레우 총리의 아버지가 총리로 재직하던 시절에 외무부 장관이었던 그는 IOC와 손잡고 올림픽휴전센터를 창설하였고, 올림픽 휴전센터는 스위스 로잔과 그리스 아테네에 두고 있다.

국제적으로는 모나코의 알베르2IOC위원이 주도하며 매년 12월 열리는 Sport for Peace 포럼과 중동 문제해결을 위해 동분서주 하던 고 후세인 요르단 국왕시절의 스포츠와분쟁해결포럼이 있었는데,
이들 스포츠를 통한 평화이니셔티브가 출범하기 전까지 올림픽휴전운동은 정부조직과 국제민간단체(필자 주: IOC는 스위스 국내법에 기인한 사단이며 국제기구가 아니다.)가 협력한 첫 번째 행동이었다.

필자는 2009년 그리스 정부장학생으로 체류하면서 아테네에 있는 상설센터를 방문하여 당시 Syrigos 사무총장과 환담을 가진 적이 있다. 그는 아테네 법대를 졸업한 변호사로서, 특히 한반도의 휴전선 정세에 대한 최근까지의 이슈를 훤히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도 올림픽 휴전의 담론에 기여한 바가 있는데, 올림픽휴전센터에서 주관한 세미나에 김정길 회장이 대한체육회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김상우 전 KOC 명예총무가 한국의 경험을 발표한 적이있다.

3. 올림픽 휴전은 어떻게 진행?

실제로 1998년 나가노 올림픽 기간을 전후하여 당시 걸프전 이후에도 후세인 정권이 버티고 있던 이라크가 쿠르드 지역에 대한 대량살상행위(genocide)를 자행하자 쿠르드 지역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미국은 비행금지구역(no-fly zone) 을 설치하였고, 이 비행금지구역 밖으로 출격하는 이라크 공군기에 대한 공격이 있었다. 나가노 올림픽부터 올림픽 휴전에 대한 유엔 결의안이 통과되면서, 3일간 미군의 공습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4.
실질적인 신자유주의로 나아갈 가능성

현실주의, 자유주의, 신현실주의, 신자유주의, 구성주의등의 국제정치를 바라보는 렌즈 중에서 신자유주의적 시각은 국제적인 레짐’(regime)을 형성하고 그 레짐에 따라 행동하는 국가는 보상과 혜택을 받고, 레짐에 따르지 않는 자는 레짐에 참여한 국가들로부터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레짐이 사실상 구속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라는 이론을 전개한다.

올림픽 휴전과 관련한 그간의 저간을 살펴보면, 물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을 하루 앞두고, 200887, 러시아가 구 소련연방에서 독립했던 그루지야 內 南 오세티야 공화국을 침공함으로서, 이러한 결의안을 무색하게 했던 사례는 없지 않다. 그러나 여전히 국제사회는 러시아가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의 개최국으로서, 유엔의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서 국제사회에 책임있는 일원으로 행동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는 만큼, 이러한 국제사회의 압박이 일방적으로 무시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제한적으로 나마 올림픽 휴전은 국제사회의 평화에 기여하는 바가 점차 넓어질 것이다.


(그리스 어학연수 시절, 수백년간 바위위에서 그리스정교회를 지킨 유적지 메테오라’(Meteora)에서)

5. 한반도 상황과 우리가 지구촌에 기여할 수 있는 일들

올림픽을 위한 화해운동을 논하면서 한반도를 빼놓을 수는 없다. 냉전의 와해과정에서 일본 지바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남북한 단일팀을 형성하여 여자탁구 단체전에서 난공불락으로 여기던 중국팀을 꺾었던 전설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명승부이다.

IOC홈페이지는 20111017일자로 런던올림픽기간중의 올림픽휴전 결의안 채택을 소개하면서

(유엔 결의안 전문은, http://www.olympic.org/Documents/Olympic_Truce/2011/OT_Resolution_ENG-17_OCT_2011.pdf )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 남북한이 하나로 개막식에 입장한 내용을 역시 강조하고 있는 점을 보아서도 한반도 화해에서의 올림픽이 기여해온 점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탈냉전 시대에 여전히 냉전의 잔재가 남아 있고, 지구상 그 어떤 지역보다도 재래식 무기와 현실주의 사고가 지배적인 동북아국제관계에서 최근의 양상은 정치라는 상부정치(high politics) 스포츠라는 하부정치(low politics) 를 지배한다는 점을 재확인시켜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현 정부들어서 북경 올림픽의 남북한 공동응원열차 추진사업이 무산되었다던가, 박왕자씨 피격사건과 천안함 사태이후로 경색된 남북교류가 그 출구의 시기를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이후 지난 1987년 사마란치 당시 IOC위원장의 중재로 양궁, 탁구의 북한개최 중재안에도 불구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북한이 또 다시 동계올림픽 일부종목의 북한 개최의 명분을 들고 나오기도 한다.

우리 역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개최하는 국가로서 올림픽 휴전(truce) 혹은 정전(armistice)이 아닌 올림픽 종전(cease of war)을 이룩하는 첫 번째 국가가 된다면 어떨까?

1988년 서울올림픽을 경제발전의 기회로 삼았다면 30년후에 유치한 평창 동계올림픽을 평화번영의
찬스로 활용하기를 기대해 본다
.



※ 참고문헌 : 대한체육회 90년사 1, 388페이지, 대한체육회,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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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김범식(성균관대학교 교수)

스포츠 국제개발이란 선진국이 스포츠를 통하여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운 후진국과 개발도상국을
지원하기 위한 해외정책이다
.

  
한국도 스포츠 국제개발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대한체육회는 미래의 세계스포츠 리더라는 비전과 올림픽운동 확산을 목적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국가들에게 경기 용품 및 시설 지원을 다양하게 원조하고 있다. 태권도 전문인력파견사업은 안보와 국제 정세를 파악하기 위한 목적으로 대한태권도연맹이 중심이 되어 국내에서는 문체부, 외교부, KOICA, 국정원, 세계태권도평화봉사재단과 유대를 갖고, 국제적으로는 IOCOlympic Solidarity Program과 세계태권도연맹의 WTF-KHU Partnership Taekwondo Training Program 등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외국과 비교할 때 한국의 스포츠 국제개발은 국제사회의 요구보다는 국익을 앞세우거나 올림픽유치 또는 태권도를 중심으로 한 단기적이고 정략적인 성격이 강했다
. 따라서 한국의 스포츠 국제개발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스포츠 활동을 통해 수원국 국민들의 질병예방 및 건강 증진, 여성의 양성평등의 가치 확산, 스포츠의 산업적 가치 활용, 전쟁과 갈등의 해소 등 전 지구적인 협력체계 구축에 기여하는 스포츠개발 사업으로 전환하여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평창의 드림 프로그램(Dream Program)은 동계스포츠가 발전되지 못한 나라의 청소년에게 동계스포츠 체험을 제공하여 UN의 천년개발목표(Millenium Development Goals: MDGs)를 실천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연 110-15일간 총 7회 개최하였다. 동계스포츠 프로그램으로 스키(알파인, 스노보드)와 빙상(피겨, 쇼트트랙, 아이스하키, 컬링)을 알펜시아, 용평, 보광 휘닉스파크, 강릉 빙상장, 태릉 등에서 실시하고, 동계올림픽시설 견학, 문화탐방, 문화체험, 레크리에이션 등을 실시하였다.

참가인원은 7년 동안 42개국 806(지도자 197, 선수 609: 남자 430, 여자 366)으로, 아시아(15개국, 290), 유럽(9개국, 194), 아프리카(12개국, 199), 중남미(6개국 123) 등에서 참가하였다.
그중에는 인도의 만걀 스탄진”, 몰도바의 브라이 일리애8개 국가 12명의 선수는 자국의 주니어
대표 또는 국가 대표가 되어 각종 국제대회에 나가는 성과를 거두었다
.

드림프로그램은 IOC, 국제스키연맹(FIS), 국제빙상연맹(ISU)이 극찬하는 국제공인 동계 스포츠 체험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동계스포츠의 저변확대와 세계청소년의 우호 증진은 물론 세계평화에 기여한다는 점을 인정받고 있다. 동계스포츠 불모지에 올림픽 정신을 구현한 <세계 유일의 특별이벤트>, <Super Nice 평창>으로 대한민국과 평창의 신뢰도와 진정성도 높이 평가 받고 있다.

다만 운영의 측면에서 볼때 국내 초청으로 끝나지 않고 한국민을 해당 지역에 지도자로 보내 양국간의 상호이해를 증진하고, 참여자의 리더쉽 훈련을 강화하는 영국의 IDEALS 방법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또한 이제까지는 강원도와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가 단독으로 실시하고 있었지만, 향후 IOC,
국제동계스포츠기구, 대한민국정부, 대한체육회, NGO, 각국 협회와 공동프로그램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올림픽 운동의 선도적 실천을 위해 보다 더 많은 초청국가와 청소년들에게 동계스포츠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동계종목 활성화 및 스포츠와 문화, 관광을 접목한 새로운 개념의 스포츠 국제개발 전략을 전개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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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오화석(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스포츠중재
, 스포츠조정하면, 대부분 제일 먼저 떠올리는 국제기관은 스위스 로잔에 있는 Court of Arbitration for Sport (이하, 'CAS' 라 한다.) 일 것이다. 스포츠둥지에 게재된 글을 통해서도 이미 소개된 바 있는 이 상설중재법원은 1984년에 설립되었는데, 주로 국제경기연맹(IFs), 올림픽을 비롯한 메가 스포츠이벤트와 관련한 선수가 연루된 분쟁에 국한하여 관할을 부여하는 협정에 의거해서 분쟁을 해결한다. 그러다 보니, 스포츠미디어와 같은 스포츠 대회와 연관되지만, CAS가 다루지 않는 스포츠관련 분쟁에 대해서는 그 다툼의 양 당사자가 같은 국가 출신이라면 당사자가 속한 국가의 법원이나 국내 분쟁해결기관에 부탁하여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글로벌시대라는 말이 더 이상 어색하지 않은 지금 시대에,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을 실시간으로 시청하는 시대에 중계 판권이 국제적으로 천문학적인 액수로 거래되는 현상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스포츠분야의 국제거래의 빈도나 그 계약 액수가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는 현실에서 이에 대한 국제분쟁해결수단으로서 최근 각광받고 있는 또 하나의 국제중재기관으로 WIPO중재조정센터를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가
WIPO 중재조정센터를 접하게 된 계기는 WIPO 가 전세계 10개국에서 매년 동일한 커리큘럼으로 진행하는 2주간의 Summer School 이었다. 스위스 제네바에 소재한 WIPO (세계지식재산권기구)는 국제연합(UN)산하의 전문기관이며 1945년 출범한 UN 에 앞서 12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WIPO 중재가 특히 각광받는 분야는 인터넷 주소 분쟁해결이다. 글로벌 기업들의 인터넷도메인을 개인이 미리 사들여 글로벌 기업에 비싼 값에 되팔기 위해 이른바 주소사냥에 나서는 것을 방지하고자, 주소명칭에 진정한 관련성이 있는 기업과 주소를 소유한 당사자와 분쟁이 발생하면 WIPO 인터넷 주소 중재제도는 공공정책상 도메인 등록 취소결정을 내린다.

스포츠 분야는 비단
Nike 와 같은 글로벌 스포츠기업 뿐만 아니라, 국제경기연맹 (세계레슬링연맹, www.worldwrestlingfederation.com), 프로리그 명문구단,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 www.realmadrid.org), 메가 스포츠이벤트(월드컵축구, www.worldcup2002.com, f1 레이싱, www.f1.com)에서 스포츠 스타까지 망라한다. 특정 스포츠스타의 몸값이 천정부지에 오르자, 스포츠 스타의 이름으로 도메인을 등록하였다가 스포츠스타가 WIPO 도메인 분쟁을 통해 주소를 되찾는 사례가 다수 있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마이클 오언 (www.michaelowen.com) 사건이다.

WIPO 중재조정센터가 중재와 조정을 다루는 분야를 새로 개척하면서, 특히 지적재산권 관련 엔터테인먼트 분야를 강화하고 있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와 WIPO 가 공동으로 주최한 WIPO 중재조정관련 세미나에서 WIPO 중재조정센터의 팀장을 맡고 있는 한국인 민은주 박사는 엔터테인먼트 분야가 전체 WIPO 중재에서 10%를 차지하고 있다고 언급하였다.

(사진설명: WIPO 분쟁조정센터에 부탁된 분쟁의 분야별 비율, 출처: 문화체육관광부-WIPO 합동 주최 세미나)

WIPO 중재는 크게 일반중재와 신속중재(expedited arbitration) 가 있다. 일반중재에 비해 신속중재는 중재인수를 1명으로 (일반중재는 3) 하고, 명칭그대로 일반중재에 비해 기간을 단축하는 것이 다른 국제중재기관과 차이가 있는 방식이다. 중재신청이 들어오면 중재신청 접수일로부터 20일 이내에 상대방이 답변서를 제출해야 하고, 중재신청에 대한 답변서를 제출하고 절차를 종결하는데 까지 3개월 이내에 실시하고 있다. 절차 종결일로부터 1개월 이내에 최종중재판정이 나오는 점을 감안하면 모든 중재절차를 거치는 기간은 5개월밖에 걸리지 않는다. 이는 WIPO 일반중재가 규정상 약 1, 국제 상거래 분쟁이 통상 2년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신속성을 그 강점으로 꼽을 수 있겠다. WIPO의 경우 특정 산업분야에 맞게 조정과 중재를 단계별로 사용하는 방식을 협정을 통해 설계를 하기도 하는데, 예컨대 엔터테인먼트분야에서의 특정 분야 협회가 WIPO와 협정을 체결하여 조정-신속중재제도를 도입하는 방식이다.
 
스포츠 미디어 분야에서 WIPO를 통해 해결한 국제분쟁은 유럽의 스포츠협회와 아시아의 방송회사간의 방송판권계약 분쟁을 예로 들수 있다.

(사진설명: 유럽스포츠협회와 아시아 미디어 회사간의 WIPO 일반중재사례, 출처: 문화체육관광부-WIPO 합동 주최 세미나)

WIPO 중재조정을 소개하면서 끝으로 얼마전 전국체전에서의 불미스러운 판정시비로 모처럼 비인기종목에 모인 관심이 시들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필자는 앞서 프랑스 스포츠분쟁해결제도를 소개하면서, 선수와 협회와의 분쟁해결은 조정으로 해결한다는 점, 선수와 협회의 상생을 위해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다는 점을 언급한 바 있는데, 지난 전국체전 판정문제를 통해 선수와 협회 분쟁에 있어, 방금 소개한 조정-신속중재방식을 활용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하고 조심스레 생각을 모아 보았다. 여기서 조정과 중재의 차이점을 짚고 넘어가고 자 하는데 조정은 조정내용이 양 당사자에게 구속력이 없지만, 중재의 경우 중재판정이 양 당사자를 구속한다. 이점을 감안할 때, 조정을 통해서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양 당사자가 중재에 부탁하는 대신, WIPO의 신속중재처럼 그 절차를 간소화하여 합의에 이르는 방식이 적절할 것이다.

이를 통해 선수에게는 자신이 지정한 중재인을 선임하여 중재과정에서 협회와 대등한 입장에서 문제를 풀 수도 있지만, 그에 앞서 역시 자신이 지정한 조정인을 통하여 분쟁의 초기단계에서 원만한 합의 도출을 시도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라고 본다.


※ 참고문헌
1)WIPO,
중재조정센터:21세기를 위한 분쟁해결, WIPO, 4p

2)Ian Blackshaw, Sport, Mediation and Arbitration, T.M.C. Asser Press, 2009, 221-222p, 51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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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조종환 (법무법인 거인 대표 변호사)




장면 1 2010 e-sports 승부조작 사건이고, 장면 2 2011년 프로축구 승부조작사건이며,
장면 3은 미국 1919년 월드시리즈에서 화이트삭스 선수들이 승부조작한 사건(블랙삭스 사건)이다.

스포츠는 경기결과를 예측할 수 있지만 정해진 것은 아니다. 아무리 실력에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경기 종료의 부저가 울릴 때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 진정한 스포츠 정신이기 때문이다
.

스포츠가 산업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스포츠베팅 산업의 필요성과 규모도 커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스포츠베팅에서 발생하는 재원 중 상당부분이 비인기 스포츠 및 스포츠 선수 육성에 활용되기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베팅은 경기결과를 사전에 알 수 없고 심지어 스포츠 당사자 상호간에 있어서도 그 결과가 불확실하다는 전제
(승패의 우연성)에서 이루어진다. 승패의 우연성은 당사자에 있어 주관적으로 불확실하면 족하고 객관적으로 불확실할 필요는 없으며 승패는 당사자 상호간에 전부 우연임을 요한다.
스포츠베팅은 우연한 승패에 대하여 돈을 걸고 그 결과에 따라 일정한 수익 또는 손실을 보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승패의 우연성이 없다면, 스포츠 선수가 이미 경기결과를 알고 있었다면 어떻게 될까. 주식시장에서 내일 주가를 알 수 있다면 백만장자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스포츠베팅에서도 경기결과를 알 수 있다면 쉽게 돈을 벌 수 있을 것이고, 이를 모르고 베팅을 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돈을 잃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와 같은 사안에 대하여 스포츠선수들에게 사기도박죄, 경기 주최사의 업무를 방해하였다는 업무방해죄, 부정한 청탁을 받고 임무에 위배하여 경기에 운영하였다는 점에서 배임수재죄
처벌받았다
. 특히 스포츠 선수는 자신의 능력과 기능을 최대한 발휘하여 신의와 성실로 선수활동을 수행할 임무가 있음에도 이를 위배하였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블랙삭스 사건에서 미국 법원은 선수들과 도박사들이 유죄가 되려면 월드시리즈의 승부를 뒤엎기로 공모한 의도가 단순히 져주려는 데 있지 않고 대중을 기만하려는 데에 있었다는 것이 증명되어야 하는데 그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하여 무죄를 선고하였다.

 

승부조작은 형사적 처벌이 문제가 아니라 스포츠 정신을 모욕하는 것이다. 물론 승부조작에 가담하게 된 선수들이 현실에서 정상적인 대우를 받지 못한 것도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포츠선수 개개인의 의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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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오화석(중앙대학교 법학전문 대학원)

19998월의 어느 뜨거운 여름날, 지중해의 아테네는 아침 7시부터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신
햇살이 비친다
그래도 그리스는 참 살만했다. 물가도 비싸지 않았다. 아테네에서 고대 올림피아까지 야간버스를 타고 갔는데 우리돈으로 당시에 2만원이 채 되지 않았다. 5시간 거리였는데도 말이다.
사람들은 다혈질이다. 운전하다가도 욱하면 차세우고 버스기사든 택시기사든 가릴 것없이 한바탕 싸우고, 거기에 승객들도 거든다. 특유의 손바닥 제스쳐도 있다. 그런데 정은 참 많은 사람들이다.
어찌보면 한국사람들 같다.

이런 그리스가 연일 디폴트 위험에 시달리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를 한바탕 겪은 우리로서는 남의 일같지 않은 관심을 기울일 수 밖에 없는 것이 베이징 나비의 날개짓이 멕시코만의 허리케인을 가져온다는 나비효과 얘기만큼이나 그리스의 경제상황으로 우리의 주가와 환율이 요동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스의 문제점은 아마도 이 네가지로 집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 No산업

발칸반도에 위치한 구유고연방 국가들이 최근에는 슬로베니아를 위시하여 다수가 유럽연합에 가입하였다. 이 들 나라를 지나다 보면 유난히 포도밭이 많다. 보스니아에서는 (아직 유럽연합가입국도 아닌데) 유럽연합에서 기후와 토양에 맞게 포도주양조산업을 프로젝트로 진행한다고 했다. 유럽 연합 차원에서 공장과 산업을 재배치하는 동안, 유럽연합내에서도 저임금노동자들이 고임금을 지급하는 국가로 이동하는 소셜덤핑(Social Dumping)이 진행되었고, 그러다 보니, 국내소비재 산업을 중심으로 경쟁력을 잃어 그리스는 산업이 남아 있지 않다. 그리스의 소매점은 이미 프랑스계 carrefour 의 패권으로 넘어간지 오래다.

2. 고물가

2001.1.1일자로 그리스는 유로화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명목상 그리스 화폐단위인 드라크마는 남아있다 그러나 고정환율제도로 340.75 드라크마가 1유로로 고정되어 유로화만 시장에서 통용된다. 그런데 슈퍼마켓에서의 물건값이 유로화로 매겨지면서, 1유로, 2유로처럼 계산이 편한 가격으로 소리소문없이 바뀌어 전체적으로 물가가 2-3배 폭등하는 양상이 전개되었다. 99년도와 2000년에 그리스를 방문하고 유로화가 도입된 후 2년이 지난 2003년에 방문했을 때, 갑자기 오른 물건값에 당황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단적인 예가 고속버스비다. 아테네에서 6시간 거리인 이오아니나를 가는데, 버스비로만 65천원을 냈다. 예전에 고대 올림피아를 방문할 때(5시간)에 비하면, 4배정도 오른 셈이다.

3. 관료제

그리스의 근무시간은 낮이 덥기 때문에 보통 7시에서 8시에 업무를 시작하고, 은행처럼 오후 2시에 끝나는 분야도 있지만, 대개 4시전후로 마감을 한다. 행정관료제로 느끼는 피로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필자는 그리스 정부 장학금으로 이오아니나 대학에서 2달간 어학연수를 하고, 이 기간동안 정부로부터 생활비를 받기로 되어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열린 오리엔테이션에서 언제 생활비가 지급되냐고 물었더니, 곧 지급된다는 담당교수님의 답변이 있었는데, 5주가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었다. 결국은 떠나는 날이 돼서야 학교로부터 용돈을 받았는데, 학교측의 설명은 정부로부터 아직 돈이 안나와 학교재정에서 먼저 지급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담당교수님의 설명이 아마 내년이 되어야 정부로부터 돈이 나올 것이라 했고, ‘이게 그리스라고 했다 .

4. 국방비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김형국 교수는 인구가 15백만인데 국방비 수입으로만 세계5위의 군사비를 지출하는 그리스의 비대칭적 국방재정운영을 지적하였다. (아마 우리나라가 43백만의 인구로 국방비 지출 세계4위권일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는 분단국은 아니지만, 주변국들과의 국경, 종교 갈등이 있다. 가장 최근의 국경분쟁은 싸이프러스를 두고 그리스와 터키가 충돌하여 싸이프러스는 그리스계의 남싸이프러스와 터키계의 북싸이프러스로 분단되어 있다. 국제사회에서 승인된 남싸이프러스는 유럽연합에 가입했다. 그런데다가 그리스 동쪽 코모티니 주변지역은 모슬렘이 많이 거주한다. 터키와 국경충돌이 일어나면 이들과 국경 밖 터키군이 합세하여 영토를 뺏길까봐 노심초사한다. 그래서 인지 그리스 남자들은 1년간 의무 복무를 해야 하고, 독일이나 이탈리아의 징병제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훈련의 강도가 높은 편으로 알려져 있다. (필자의 두 그리스 친구가 그리스 군대 얘기를 들려주는데, 우리나라 군대 내무반에서 있는 일도 그리스에서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나름 그리스가 고민할 수 밖에 없는 국방비 부담의 지정학적 원인은 여기서부터 배태하고 있다.

그나마 그리스는 터키와의 대결에서 세력균형(Balance of power) 을 찾는 방법으로 1973년 유럽연합에 가입했다.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에 있어서도 그리스는 싸이프러스 문제를 지렛대 삼을 수 있다. 유럽연합의 입장에서도 갈등의 불씨가 상존하는 발칸문제를 특정 정치, 안보공동체의 내부문제로 삼아 갈등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삼는 것이다.

아테네 올림픽 조직위원회 통역봉사자 당시 탁구대표팀과 함께 아크로폴리스에서
(사진 맨 왼쪽이 필자)

그리스정부와 아테네시는
2004년 하계올림픽을 개최하면서 막대한 재정부담을 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떤 다른 나라보다도 올림픽의 발상지인 만큼 그리스에는 올림픽관련 재단및 단체들이 다수 설립 운영되고 있는데 이들 단체의 사업에도 디폴트위기로 직격탄을 맞은 모양이다. 2010년은 재정위기로 IOA(국제올림픽아카데미)중의 Graduate Seminar 가 취소되었다. IOA재정은 IOC와 그리스정부가 부담한다. 이외에 아테네에는 올림픽 휴전센터가, 그리고 IOA 올림픽 교육학 석사과정은 펠로폰네소스 대학에 본부가 있다.

그리스는 현재 대바겐세일중이다. IMF201111월분 집행액 약 80억 유로(110억 달러)가 예정되어 있는데, 11월 중순이면 그리스의 외환보유고가 바닥을 드러낼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이들 바겐세일에 올림픽 관련 문화재나 유적이 개인의 손에 넘어가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미 19세기에 아테네 파르테논신전의 대리석 조각이 영국 엘긴 경에게 팔려 그 대리석이 지금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이를 반환하기 위한 그리스 정부와 국민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를 보건대, 국제올림픽위원회가 올림픽관련 유적과 문화재가 개인의 손에 넘어가는 것은 아닌지 관심있게 지켜볼 사명이 있고, 차제에 올림픽위원회의 이름으로 이들 유적에 대한 관리권 혹은 소유권을 받는 것도 올림픽을 영구적으로 보호, 육성하는 차원에서 도움이 되는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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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오화석(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일본 스포츠중재재판소는 요요기 제
2체육관내에 있다. 요요기 제2체육관은 요요기 제1체육관과 더불어, 1964년 동경 하계올림픽의 주요 실내경기장으로 사용되었다. 이 지역은 제2차 대전 종전후 미군 주둔지로 활용되었고, 그 이전에는 메이지신궁을 참배하러 오는 배참도’(오모테산도) 지역이었다.
일본 정부가 올림픽을 유치하면서 이 지역에 당시로서는 최첨단의 건축기술을 활용한 소라 형태의 은빛 지붕을 가진 현대식 체육관을 건축하였다.
(
그리고 일본 우정성은 요요기 체육관을 도안으로 한 올림픽 기념 우표를 발행하기도 했다.)

로 앞 건물은 기시 체육회관이고, 요요기 체육관과 가장 가까운 전철역은 JR 야마노테(山手)선의 하라주쿠 역인데, 이 역에서 JR 주오(中央)선으로 한정거장만 이동하면 도쿄 올림픽 당시 주경기장으로 활용된 도쿄국립경기장이 위치하고 있다.

                                                            (요요기 제2체육관)

두 개의 경기장 모두 올림픽 이후 스포츠관련기구 혹은 기념사업의 장소로 활용되고 있는데, 이곳 요요기체육관에 스포츠중재재판소가 위치하는 것이나, 도쿄국립경기장에는 일본 스포츠박물관이 있는 점이나, 모두 대회 후 경기장 활용방안으로서 귀감을 삼을 만한 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요기 체육관에서 메이지신궁을 끼고 좌측으로 돌면, 동경올림픽 당시 선수촌이었던 지역이 현재는 청소년 교육센터로 바뀌어, 일본 각지의 청소년 교육을 위한 합숙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일본 스포츠중재재판소의 사무국은 30여평의 공간에, 그리 크지 않은 규모로 자리하고 있었다.
설립당시부터 와세다의 법과대학 교수님께서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ASSER 연구소 내 국제스포츠법센터의 연구사업에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일본의 스포츠중재현황을 알리는데 일조하였고, 해마다 ASSER 연구소에서 발간되는 단행본의 한 chapter 로서 일본의 스포츠중재를 쓰시기도 했다. (ASSER 연구소에서 가장 최근에 발간된 Sport, Mediation and Arbitration(2009)의 경우, 중국의 스포츠중재가 한 chapter 로 실렸다는 점에서, 한국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지 않나 싶다.)

 

                                              (일본스포츠중재기구의 사무실 내부 모습)

일본 스포츠중재기구의 설립근거는 일본 국내법상 재판외분쟁해결수단의이용및촉진에관한법률 제5조에 근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