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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잔혹사 : 거리로 쫓겨나야 하는 사람들

                                                                                  글 / 박보현 (한국체육대학교 박사후 과정)


만약 자신이 거주하는 도시에서 올림픽이 열린다면 여러분들은 얼마나 기쁘시겠습니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평생 한번 경험해 볼까 말까한 올림픽 개최도시민이 된다는 것에 감격 또 감격할 뿐만
아니라 큰 자부심 또한 느낄 겁니다. 하지만 세계 축제의 장인 올림픽이 악몽으로 기억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이 악몽이 단지 생활의 불편함이나 약간의 재산상 불이익으로 인한 불편한
심기 차원이 아닌, 삶 자체를 뒤흔들어 버린 악에 바친 경험을 해야만 했던 사람들. 바로 그들은
올림픽만 아니었어도 자신이 살고 있던 집과 마을에서 쫓겨날 필요가 없었던 도시 난민들입니다.

보통 우리는 난민이라 하면 전쟁이나 자연재해로 인해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갈 곳 없는
사람들을 먼저 떠올립니다. 하지만 그런 난민이 세계 평화와 인류의 화합을 노래하는 올림픽
때문에 발생한다면?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기억: 상계동 올림픽
불행히도 대표적인 올림픽 난민은 1988년 서울올림픽 때문에 발생했습니다. 그것도 한 두 명이
아닌 72만 명이나 말입니다. 72만 명이란 숫자는 2009년 현재 제주도 인구 56만 명 보다 16만 명
더 많은 인구수를 의미합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올림픽 때문에 거리로 내쫓겨야만 했었다니,
여러분들은 믿을 수 있으시겠습니까? 하지만 이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이처럼 대규모 도시 난민을 양산한 이유는 도시재개발에 따른 강제퇴거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도시재개발의 대외적 명분은 도시 영세민과 무주책자들의 주거
마련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이유는 올림픽을 보기 위해 대한민국을 찾을 외국인들에게
판자촌을 보여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판자촌뿐만 아니라 허름하고 남루한 도시의 미관은
곧 대한민국의 이미지가 되기 때문에 외국인들에게 발전한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심어주는데
결정적인 하자가 되는 셈이었습니다.

이러한 명분하에 서울 곳곳에서 각종 재개발사업이 추진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곳이 목동과
상계동이었습니다. 목동의 경우, ‘무주택서민을 위한 공영화방식’, ‘서민주택을 대량으로 싼값에
공급’한다는 명분으로「목동 신시가지 조성」사업이 1983년부터 1985년에 걸쳐서 진행되었습니다.
당시 목동은 1970년대 서울 곳곳의 판자촌에서 강제철거 당했던 철거민들이 정착했던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목동 공영개발은 철거민들에 대한 아무런 대책이 없이 이루어졌고, 이로 인해 2년간 1백여
차례의 크고 작은 주민들의 철거 투쟁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철거 투쟁과정은 한국사회에서
‘도시빈민운동’이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목동과 같은 도시재개발
사업으로 인한 철거민 투쟁인 ‘도시빈민운동’은 1983년부터 1988년을 지나 90년대에 이르기까지
서울의 각 빈민지역, 오금동, 사당동, 신정동, 하왕십리, 암사동, 신당동, 양평동, 오금동,
송파·강동지구 등 200여 곳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과 관련해서 가장 황당했던 사람들은 상계동 철거민들이었을 겁니다. 이들
역시 다른 지역 철거민들과 마찬가지로 최소한의 삶의 공간을 보장하라며 철거 투쟁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힘에 겨워 명동 성당을 거쳐 경기도 부천시 고강동 경인고속도로변에 가건물을
짓고 정착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그들이
지은 가건물 옆으로 올림픽 성화가 지나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상계동
철거민들은 성화가 지나가는 단 몇 분을 위해 무려 10개월간 그곳에서 땅굴을 파고 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3년 동안의 상계동 철거민들의 모습은 한 다큐멘터리 감독에 의해
‘상계동 올림픽’이라는 27분짜리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고, 이 다큐멘터리는 일본 야마가타
영화제에 초청되어 많은 외국인들에게도 소개가 되었습니다.


세계 곳곳의 상계동 올림픽
이처럼 올림픽 때문에 거리로 쫓겨나야만 했던 도시 난민들은 단지 대한민국만의 특수한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 아닙니다. 올림픽이 열리는 도시 곳곳에는 이와 같은 ‘상계동 올림픽’
거행되어져 왔습니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으로 인해 624가구 2,000여명의 도시 난민이
발생했으며,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으로 인해 발생한 도시 난민은 11,000여 명에 달합니다.
특히 애틀랜타올림픽으로 인해 거리로 쫓겨나야만 했던 사람들의 대부분은 흑인들이었으며, 
이는 ‘인종청소’의 일환으로 자행된 반인륜적 만행이었습니다. 한 세기 만에 돌아온 2004년
아테네올림픽 또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아테네올림픽으로 인해 강제철거 당한 사람들은
주로 로마계인들로 1만여 명에 달합니다. 이들은 아무런 보상도 없이 자신들의 삶의 터전에서
강제 퇴거 당하고 말았습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의 경우 매월 1만 3천명이 올림픽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도시에서 쫓겨난 가운데 총 150만 명에 이르는 도시 난민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한 올림픽을 계기로 자행된 인종문제는 국제사회의 우려를 낳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2012년 런던올림픽을 앞둔 영국사회도 예외는 아닌 것 같습니다.


올림픽이 도시 난민을 양산하는 이유
이처럼 올림픽이 세계 화합의 장이 되어도 모자를 판에 자국민들을 거리로 내쫓는 주범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올림픽이 도시(재)개발의 근거와 정당성을 끊임없이 찾고 있는
정치 관료들과 자본에게 더할 나위 없는 명분을 제공해 주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올림픽은 세계
각 국에 그 도시를 선전할 수 있는 최고의 장이자, 올림픽을 통해 세계 최고의 도시로 성장할 수
있는 둘도 없는 기회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도시개발을 위한 막대한 예산 투입의
정당성뿐만 아니라 물리적인 강제퇴거의 훌륭한 명분이 됩니다. 올림픽은 개최 도시민들에게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절체절명의 기회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따라서 올림픽
도시 난민 문제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사소한 문제로 전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도시에서 개최되는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서 여러분이
도시의 난민이 되어야 한다면, 기꺼이 국가와 지역의 발전을 위해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으십니까?



 

ⓒ 스포츠 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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