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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더비 매치, 축구의 묘미를 높인다

세계적 더비 매치, 축구의 묘미를 높인다

 

글 / 김신범(연세대학교 스포츠응용산업학과)


   스포츠의 재미를 배가시켜 주는 요인들이 여러 가지 있다. 팀의 역사, 선수의 눈물겨운 이야기, 헝그리 정신, 스포츠맨십… 그 중 가장 직접적으로 관중을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요소는 바로 ‘더비(Derby)’의 재미다. 더비의 사전적 의미는 ‘동일 지역/문화 내의 스포츠팀들끼리 하는 시합이나 경기’를 말한다. 즉, 더비매치는 연고가 같은 두 팀이 치르는 라이벌전을 뜻하는 용어다.

 

더비매치는 어디에서 처음 시작됐나

 

(영국 더비 지도/ 출처 : SW Electrical)

 

   최초의 ‘더비매치’는 19세기 중반 영국의 작은 도시 더비(Derby)에서 시작됐다. 기독교 사순절 기간에 성 베드로(Saint Peter)와 올 세인츠(All Saints)팀이 축구경기를 하던 데서 유래되어 지금에 이르게 됐다. 최근에는 일련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팀들 간의 경기도 더비라고 부른다. 이때의 공통점은 주로 역사적/문화적인 연관성을 가진 경우가 다수다. 재미있는 축구 더비의 역사, 네 가지 대표적인 더비 매치를 통해 알아봤다.


1. 노스웨스트 더비(Northwest Derby)

 

(노스웨스트 더비/  출처 :  Sepakbola.com)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더비 경기 중 하나인 노스웨스트 더비는 영국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리버풀FC의 대결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1878년, 리버풀FC는 1982년에 각각 창단됐다. 2018년 7월 기준 통산 80승 55무 66패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우세하다.

 

   1830년 두 도시를 잇는 철도가 완공된 이후 맨체스터와 리버풀은 경제 협력도시의 역할을 서로 감당해 왔다. 맨체스터는 원자재를 사들여 공산품을 만들어 리버풀 항구를 통해 무역을 시도했으며, 그로 인해 리버풀 역시 호황을 맞게 됐다. 하지만 1893년 맨체스터에서 리버풀로 이어지는 맨체스터 운하(Manchester Ship Canal)가 완공된 이후, 맨체스터는 더 이상 리버풀 항구를 통해 물건을 사고팔지 않았다. 새로 만든 운하를 통해 직접 거래가 가능해진 것이다. 이로 인해 리버풀 사람들은 경제적 타격을 입었으며, 서로에 대한 적대감을 키우게 됐다. 경제적인 이유로 발발된 더비 분위기인 것이다.

 

   노스웨스트 더비에서 가장 유명했던 사건을 꼽자면 역시 11/12시즌 10월 리버풀 홈에서 있었던 패트리스 에브라와 루이스 수아레스의 충돌일 것이다. 그들은 경기중 몇 차례 충돌했는데, 수아레스가 에브라를 향해 “검둥이(Negro)”라는 발언을 했고, 화가 난 에브라가 “뭐?(What?)”라고 강하게 반응하자 수아레스는 “난 검둥이랑 말 안 섞는다(I don’t speak to negro)”라며 조롱했다. 이 사건으로 수아레스는 리그 8경기 출장 금지와 벌금 약 7,000만원의 징계를 받게 됐다.


2. 올드펌 더비(Old Firm Derby)

 

(올드펌 더비 사진/ 출처 : Daily Mirror)

 

   올드펌 더비는 1888년 시작된 세계 최고 매치 중 하나다. 올드 펌(Old Firm)이라는 말은 ‘오랜 동료’라는 뜻이며, 스코틀랜드 글래스코를 연고로 하는 셀틱 F. C.과 레인저스간의 라이벌 매치다. 레인저스는 1872년, 셀틱은 1887년 각각 창단됐다. 2015년 기준 통산 159승 96무 145패로 상대전적은 레인저스가 우세하다. 리그 우승횟수 역시 셀틱 45회, 레인저스 54회로 레인저스가 앞선다.

 

   셀틱과 레인저스는 역사적·정치적·민족적·종교적 등 다면적인 갈등을 바탕으로 서로간의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다. 셀틱의 서포터들은 아일랜드계 가톨릭 신자들이 주를 이룬다. 그에 반해 레인저스 서포터들은 개신교 신자들이 절대다수다. 이런 이유로 양 팀 서포터 사이에 폭력사태가 많이 일어난다. 셀틱 서포터들은 경기 때마다 아일랜드의 국기를 흔들지만, 반대로 레인저스 서포터들은 영국의 국기를 가지고 응원한다.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1971년 1월 2일, 두 팀의 경기 중에 일어났던 올드펌 참사를 꼽을 수 있다. 당시 지고 있던 레인저스가 동점을 기록했는데, 흥분한 팬들이 경기장에 몰리고 결국 66명의 사망자와 15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던 비극이다.


3. 밀라노 더비(Milano Derby)

 

(밀라노 더비 사진/ 출처 : MYMI)

   밀라노 더비는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 밀라노 시를 연고로 하는 인터밀란과 AC밀란간의 라이벌 매치다. 데르비 델라 마돈니나(Derby della Madonnina)라고 부르기도 한다. AC밀란은 1899년, 인터밀란은 1908년에 각각 창단됐다. 2017년 기준 77승 66무 75패로 인터밀란이 우세하다. AC밀란 리그 18회, 인터밀란 리그 18회 우승으로 트로피 수는 동률이다. AC밀란은 노동자 계급, 인터밀란은 신흥 자본가 계급이 팀 컬러에 반영되어 있으며, 유니폼 색 역시 이를 상징하는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각각 정해져 있다.  

 

   04/05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8강전, 두 팀간의 경기 중 인터밀란 팬이 던진 폭죽에 AC밀란 골키퍼 디다가 맞았던 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두 팀의 팬들은 필요 이상으로 흥분하지 않고 경기가 정리되고 재개되는 것을 기다리는 성숙한 면모를 보여줬다. 다행히 디다 역시 별다른 부상 없이 경기에 계속 임할 수 있었다.


4. 엘 클라시코(El Classico)

 

(엘 클라시코 사진/ 출처 : Okdario)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더비매치로, 이는 1902년부터 이어진 전통 있는 라이벌 경기다. 바르셀로나는 1899년, 레알 마드리드는 1902년 각각 창단됐다. 누가 과연 세계 최고의 팀인지 말할 때 세계 많은 팬들의 의견이 둘로 갈린다. 통산 109승 58무 96패로 바르셀로나가 근소한 우세에 있다.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한 카스티야는 정치적으로 막강한 힘을 가진 왕국이었고,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한 카탈루냐는 예전부터 지중해 무역을 통해 상업적으로 번성했던 왕국이었다. 1469년, 거대한 정치권력을 가진 카스티야 왕국은 다른 나라들을 삼켜가며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단일 스페인 왕국을 세워갔다. 하지만 유난히 민족성이 강했던 카탈루냐는 통합 이후에도 끊임없이 독립국가로 존속하고 싶어 했다. 정권을 잡은 카스티야는 항상 카탈루냐를 눈엣가시로 생각했다. 그 첨예한 갈등이 축구로 치환돼 지금에 이르는 것이다.

 

   세계 스타들만을 영입하여 호화군단, 이른바 ‘갈락티코(Galactico)’ 팀을 만들었던 은하수 팀 레알 마드리드, 그리고 자신들만의 축구철학을 바탕으로 백년지대계의 유스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바르셀로나의 대립은 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최근 십여 년간 세계 최고의 선수로 군림하고 있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리오넬 메시가 각각의 팀에서 상징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그 갈등은 더 고조됐다. 다음 시즌부터는 레알 마드리드의 에이스였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유벤투스에서 뛰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 클라시코는 여전히 세계인들의 열화와 같은 관심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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