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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의 음악과 월드컵의 음악

군인의 음악과 월드컵의 음악

 

글/ 김학수 (한국체육대학교)

 

   군인은 사기를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사기에 죽고 사기에 산다. 군인의 사기를 북돋워주는데는 음악이 크게 기여한다. 군인은 힘찬 아침 기상 나팔 소리에 벌떡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고, 조용한 저녁 취침 나팔 소리에 잠자리로 들어간다. 사열과 행진에는 군악대의 경쾌한 음악이 연주되고, 전사자의 장례식에는 장엄한 장송곡이 울려 퍼진다.

 

   수년 전 전방 부대에서 지인인 사단장 부부와 같이 식사한 뒤 뒤풀이에서 그의 색소폰 연주를 듣는 기회가 있었다. 군대 시절 부중대장으로 근무할 때, 중대장으로 함께 군복무를 한 인연이 있던 사단장은 전방 부대 지휘관으로 자주 이동을 하면서 관사에서 밤에 시간이 날 때면 혼자 색소폰을 불며 군인으로서의 고독과 힘든 삶을 이겨내고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색소폰으로 멋들어지게 부는 그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마치 이순신 장군의 유명한 시 '한산섬 달 밝은 밤에'를 연상케 했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적에 어디서 일성호가(一聲胡茄)는 나의 애를 끊나니'라는 시다. 적정을 살피면서도 일성호가, 즉 한 곡조의 피리소리에 깊은 인간적인 감성을 느끼며 고민하는 이순신 장군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었다.

 

   전쟁터에서 음악의 힘은 소총과 대포 이상의 역할을 했다. 한반도의 운명을 바꾼 역사적인 1894~5년 청일전쟁에서 한 일본군 병사 나팔수가 평양성 전투를 치르다가 나팔을 끝까지 입에 물고 전사해 일본의 전쟁영웅이 되기도 했다. 6·25 전쟁에서는 중공군이 수많은 군사를 투입시키는 '인해전술'을 펼치며 '돌격 나팔'로 전투를 독려한 것은 한국군 전사에 유명한 일화이다.

 

   군인을 통해서도 보았듯이 음악은 스포츠, 특히 축구 월드컵에서도 국가대표팀의 승부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때였다. 개최국 한국은 예선전부터 승승장구했다. 폴란드를 2-0, 미국과 1-1로 비긴 뒤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포르투갈을 1-0으로 물리치자 한국 국민은 폭발적으로 열광했다. 서울을 비롯해 전국의 주요 도시 거리는 '대~한~민~국'을 연호하며 '오, 필승 코리아' 응원가를 부르는 태극전사 응원단으로 넘쳐났다. 16강전, 이탈리아전, 8강전 스페인전에서 잇달아 승리하자 국민들의 기쁨은 더해 갔으며, 응원가 소리는 한층 더 우렁차게 메아리쳤다.

 

   응원가는 대표팀의 월드컵 성적과 비례 관계에 있었다. 대표팀 성적이 좋으면 응원가가 많이 불렸고, 대표팀 성적이 안 좋으면 응원가도 잦아들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박지성이 이끈 대표팀이 해외 월드컵 사상 처음으로 16강전에 진출했을 때, 2002년 때에 못지않은 응원가를 들을 수 있었다. 특히 요란한 소리로 '부부젤라'를 불어대며 광적인 응원을 한 남아공 응원단에게 배워 부부젤라를 응원도구로 활용한 태극전사 응원단의 모습은 이채로웠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선 대표팀이 멕시코, 스웨덴에게 잇달아 패배하며 응원가 소리가 수그러들었다가 전 대회 우승팀이자 세계랭킹 1위인 독일을 2-0으로 완파하자 침통해있던 거리 응원단들은 '오, 필승 코리아' 응원가를 목청껏 불렀다.

 

   월드컵은 궁극적으로 축구 대회인만큼 음악과 직접 연관성이 없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대중이 모이고, 함께 환호하고 즐기며 좋아하는 월드컵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차이를 넘어 축구를 통해 하나가 되는 축제의 장으로서 응원가, 율동, 춤 등의 형식으로 표현되는 음악은 결코 빠질 수 없는 요소이다. 매 대회마다 월드컵은 자체 공식 노래를 제작, 지정하고 있으며, 참가팀들은 자국의 국가나 응원가 등으로 국민들과 팬들과 일체감을 형성한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선  태극전사 '붉은 악마' 응원단은 전통악기 꽹과리와 장구를 두드리며 응원가를 불렀고 일본 응원단도 여러 타악기들을 사용해 열성적으로 응원을 했다. 프랑스, 브라질, 벨기에, 아르헨티나 등 여러 응원단들도 트럼펫과 드럼을 치며 자국 선수들의 사기를 북돋웠다.

 

   월드컵에서 음악은 경기 결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지는 않았지만 작으나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하다. 만약 음악이 없이 90분 내내 초조하게 잔뜩 긴장하면서 경기만을 지켜본다고 가정하면, 월드컵이 얼마나 삭막할 지 상상만해도 끔찍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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