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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거미' 야신과 '검은 표범' 에우제비우가 만났을 때

'검은 거미' 야신과 '검은 표범' 에우제비우가 만났을 때

 

 

  한 시대에 일어나는 큰 사건들은 역사적 의미와는 별개로 많은 이들에게 개인적인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오는 6월 2018 FIFA 러시아 월드컵 개막이 다가오면서 50대 이상의 열혈 국내 축구팬들은 러시아와 관련한 월드컵 역사와 관련해 아마도 러시아의 전설적인 골키퍼 '검은거미' 레프 야신(1929 ~ 1990년)의 이야기를 생각할 것이다. 1960년대와 70년대 초중고시절 동네 공터나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공을 찼던 필자도 그런 세대이다.  

 

  어릴 적 동네축구에서 당대 세계 최고의 골기퍼였던 야신을 흉내내며 골키퍼를 스스로 하겠다고 자청하는 얘들이 많았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 때 TV방송과 신문 등에서 야신을 극찬하는 내용을 많이 내보낸 것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비록 소련이 공산권으로 우리에게는 적성국가였지만  세계 최고의 골키퍼라는 화려한 명성을 누리고 있었던만큼 꼬맹이 축구팬들에게 우상화된 존재로 부각됐다.

 

  그는 1956년 스웨덴 월드컵, 1962년 칠레 월드컵,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 연속 소련 국가대표팀으로 출전, 골키퍼로서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며 국내 축구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펠레, 베켄바우어, 에우제비우 등과 함께 그는 1950년대와 60년대를 빛낸 대표적인 세계적인 축구 슈퍼스타였다. 그는 1963년 골키퍼로서 현재까지 유일하게 세계 축구 최고의 상인 '발랑도르'를 수상했다. FIFA는 지난 1990년 그의 타계이후 고인의 화려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월드컵 대회때마다 고인의 이름을 딴 '야신 상'을 제정, 시상하고 있다. 실점률과 슈팅방어 횟수, 페널티킥 허용률 등을 종합산정해 수상자를 선정하는데,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첫번째 수상자는 벨기에의 미셀 프로 이돔메 였고 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는 프랑스를 정상으로 이끈 파비앵 바르테즈가 받았다.

 

  FIFA 공식 웹사이트인 'FIFA.com'을 검색해보면 야신과 한국 축구팬에게 잘 알려진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득점왕 '검은 표범' 에우제비우와의 기사를 만날 수 있다. '검은 거미와 검은 표범이 만났을 때(The spider against the panther)'라는 제목의 기사이다. 이 기사는 1960년대 세계 최고의 선수였던 야신과 에우제비우의 맞대결과 인간적 관계 등을 자세하게 전해 주었다. 축구에서 세계 최고의 방패와 창이 격돌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야신과 에우제비우는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3, 4위전에서 맞붙었다. 8강전 준준결승에서 페널티킥으로 2골, 필드킥으로 1골 등을 넣으며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5-3으로 북한을 꺾었던 포르투갈의 에우제비우는 준결승에서 잉글랜드의 골키퍼 고든 뱅크스를 상대로 페널티골을 기록했으나 1-2로 패배, 3, 4위전에서 소련의 야신과 만났다. 야신과 에우제비우는 런던 웸브리구장에서 8만 8천명의 관중이 들어찬 가운데 격돌한 3, 4위전에서 페널티킥으로 정면승부를 펼쳐야 했다. 전반 12분 포르투갈은 잉글랜드 심판 켄 대그널에 의해 선언된 페널티킥을 에우제비우에게 맡겼다. 에우제비우는 연이은 경기에서 페널티킥을 성공시켰지만 야신을 상대로 잔뜩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노련한 야신은 매우 차갑고 냉정하게 맞섰다. 에우제비우가 찬 공은 슬라이딩하는 야신의 손을 넘어 그물망 상단에 꽂혔다. 둘은 서로 포옹하며 격려했다. 결과는 포르투갈이 에우제비우의 페널티킥 선제골을 발판으로 삼아 2-1로 승리를 거두었다.

 

  둘은 3년전에도 웸블리 구장에서 잉글랜드 협회 100주년 창립기념경기에서 잉글랜드와 맞서는 연합팀의 일원으로 푸스카스 등 비 잉글랜드의 세계적인 선수들과 함께 출전했다. 에우제비우는 "우리는 경기전에 슛과 페널티킥 등을 주로 연습했다. 그는 모든 것을 막아냈다"고 회상했다.

 

  야신과 에우제비우는 이후에도 자주 교류를 가졌다. 야신은 1971년 은퇴경기에서 10만명의 관중앞에서 펠레, 베켄바우어 등과 함께 에우제비우를 추천하기도 했으며, 에우제비우가 소속한 포르투갈 벤피카팀을 방문, 경기를 갖기도 했다. 둘은 서로 만날 때마다 깊은 우정을 나눴다.

 

  1990년 3월 러시아 드니프로팀이 러시아 우크라이나 드니프로 메테오르 스타디움에서 유럽컵 8강 2차전 벤피카와 경기를 하기 직전 야신이 61게로 타계했다는 소식이 스피커를 통해 발표됐다. 이 순간 방송 카메라는 한 벤피카팀 임원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맞췄다. 그 임원은 슬픔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에우제비우였다. 그는 친구를 잃었지만 페널티킥으로 맺어진 야신과의 추억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 1986년 한쪽 다리를 잃고, 말년에는 위암 투병을 했던 야신은 선수 생활 동안 총 270회 페널티킥 중 150회를 막아내 56%의 세이브율을 기록하며 철벽 수문장의 실력을 보여주었다. 야신은 생전 "세계 최초의 우주인 유린 가가린이 우주에서 날고 있는 것을 보는 즐거움을 넘어서는 세상에서 가장 볼만한 거리는 내가 페널티킥을 막는 것이 유일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2018년 FIFA 러시아 월드컵에서 '신의 손'으로 불렸던 야신의 축구 역사를 새롭게 이해하면서 월드컵의 묘미를 즐길 수 있기를 기대한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3, 4위전에서 포르투갈의 '검은 표범' 에우제비우가 소련의 명골키퍼 야신의 거미 손을 뚫고 페널티킥을 성공시키고 있다. 사진은 FIFA.com 제공>

 

 

<선수 시절의 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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