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권순찬

 

 

  지난 8월 27일,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세기의 대결’이 열렸다. 바로 UFC 라이트급 챔피언인 코너 맥그리거가 ‘전설의 무패복서’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와 복싱 경기를 가진 것이다. 종합 격투기 선수가 역사상 최고의 복서에게 복싱 룰로 경기를 신청하였기에 이 대결은 전 세계의 관심을 끌었다. 종합 격투기 선수가 복싱을 한다고 하니 금방 배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할 수 있지만 종합 격투기와 복싱은 엄연히 다른 종목이다. 비유하자면 단거리 황제 우사인 볼트가 중장거리 경기에 나선 거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아무리 UFC 최초로 2체급을 석권한 맥그리거라 하더라도 많은 전문가들이 메이웨더가 무난히 이길 것으로 예상했다. 


  그렇다면 맥그리거는 왜 이런 무리한 도전에 나선 것일까? 그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 맥그리거가 UFC 챔피언임에도 UFC에서 받은 최고 대전료는 300만 달러(약 33억원)였다. 하지만 맥그리거가 메이웨더와의 대결에서 받은 대전료는 3000만 달러(약 340억원)으로 UFC의 대전료보다 10배나 더 많았다. 이외에 유료프로그램시청료 및 입장수익 보너스로 맥그리거는 이 한 경기로 1억달러(약 1,125억원)의 수익을 올렸을 것으로 추산된다. 맥그리거는 얼마 전에도 “난 돈에 욕심이 많다. 억만장자가 되길 원한다”는 말을 할 정도로 돈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메이웨더와 세기의 대결을 벌인 맥그리거. 그의 목적은 오로지 ‘돈’이었다.

(사진출처 = 마르카./http://www.marca.com/en/more-sports/2017/08/15/5992eecf46163fca7e8b4576.html)

 

 

  맥그리거는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종목을 바꿨지만 돈이 아닌 다른 이유로 종목을 바꾼 선수들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이다. 마이클 조던은 농구선수로서 한창 활약하던 1993년 아버지가 살해된 충격 속에 은퇴를 선언한 뒤, 야구선수로 변신하였다. 마이클 조던은 아들이 야구선수가 되길 바랐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야구를 도전하게 되었는데 황제로 군림했던 농구에서와는 달리 야구에서는 평범한 선수였다. 조던은 시카고 화이트삭스 마이너리그에서 뛰었고 야구선수로의 성적은 총 127경기에 출전해 2할2리 3홈런 30도루에 114삼진을 기록했다. 결국 조던은 야구선수 생활을 접고 1995년 NBA로 복귀해 다시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지난 6월에는 이탈리아 축구의 레전드인 파울로 말디니가 49세의 나이에 프로 테니스에 데뷔하여 화제를 모았다. 스포츠 선수로서 ‘제2의 인생’을 꿈꿨던 말디니는 남자프로테니스(ATP) 월드 투어의 한 단계 아래인 챌린지 투어에 속한 대회의 예선을 통과하여 본선에 진출하였다. 자신의 코치인 스테파노 란도니오와 복식으로 출전한 말디니는 본선 1회전에서 토마시 베드나렉(폴란드)-다비드 펠(네덜란드) 조에 0-2(1-6 1-6)로 완패했다. 그는 이 데뷔전을 치른 직후 바로 테니스 선수 은퇴를 선언했다.


  돈이 이유는 아니었지만 조던이나 말디니는 모두 자신의 원래 종목에서 큰 성공을 거둔 스타였기 때문에 이들의 종목 전향은 일종의 ‘외도’ 수준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말 꿈을 위해 종목을 바꾼 선수들도 있다. 지난해 세계최고의 스프린터 중 한 명인 미국의 타이슨 게이가 봅슬레이 선수로 전향하였다. 오랫동안 우사인 볼트의 라이벌로 활약했던 게이는 9초69라는 역대 100m 3위 기록을 보유했음에도 늘 우사인 볼트에 밀려 2인자로 평가되어 왔다.(1,2위 기록을 모두 볼트가 갖고 있다.)  매번 볼트를 넘지 못하거나 부상, 약물복용으로 인한 메달 박탈 등으로 올림픽에 3번이나 출전했음에도 단 하나의 메달도 얻지 못하였다. 결국 게이는 올림픽 메달을 위해 봅슬레이 선수로 평창 올림픽에 도전하기로 결심하였다. 미국의 여자 육상 선수들이 봅슬레이로 전향해 소치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바가 있었기 때문에 게이가 이에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비록 봅슬레이에 입문한지 얼마 되지 않아 국가대표급의 실력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게이의 도전은 도전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이승훈은 종목 전향 후 대성공을 거두었다.

(사진출처 = 파이낸셜 뉴스./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14&aid=0002261995)

 

 

  우리나라에서도 꿈을 위해 종목을 바꾼 선수들이 있다. 대표적인 선수가 스피드 스케이팅의 이승훈이다. 이승훈은 원래 쇼트트랙 선수였다. 2008년 쇼트트랙 세계선수권에 출전하여 3000m, 5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따기도 하였다. 하지만 2009년 4월 밴쿠버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넘어지면서 탈락의 아픔을 겪었고 어떻게든 올림픽에 출전하겠다는 열망 하나로 스피드 스케이팅 대표 선발전에 나서 스피드 스케이팅 대표 선수가 되었다. 쇼트트랙과 스피드 스케이팅은 둘 다 얼음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것이기 때문에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만 쇼트트랙은 순발력과 민첩성을 중시하고 스피드 스케이팅은 근력과 지구력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승훈은 종목을 전향한지 2년도 채 되지 않은 2010 밴쿠버 올림픽에서 금메달 1개와 은메달 1개를 따내는 기적을 이루어냈다. 2014 소치 올림픽에서도 팀추월 은메달을 따낸 이승훈은 내년 평창 올림픽에서도 유력한 메달 후보이다.


  우리나라 육상 단거리 선수였던 여호수아도 꿈을 위해 종목을 전향했다. 육상 단거리 대표선수 중 하나였던 여호수아는 2015년 무릎 수술을 받은 이후 재활을 서두르다가 재차 수술대에 올랐고 무릎의 통증이 햄스트링으로 옮겨가 두 시즌을 흘려보냈다. 육상 커리어에 위기가 온 상황에서 이용 봅슬레이-스켈레톤 총 감독이 봅슬레이로의 종목 전향을 권유했고 오랜 고민 끝에 여호수아는 운동선수로서 목표였던 올림픽 메달을 위해 종목을 전향했다. 현재 여호수아는 평창 올림픽 출전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2014 소치 올림픽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인 박승희는 좀 다른 경우이다. 이승훈이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했던 것과 달리 박승희는 쇼트트랙 선수로 올림픽 정상에 올랐던 선수다. 심지어 박승희는 올림픽 2관왕이었다. 쇼트트랙 선수로 이미 큰 성공을 거둔 상황이었다. 하지만 박승희는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박승희는 이승훈의 영향을 받아 스피드 스케이팅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대표 선수로 발탁되어 현재 내년 평창 올림픽 출전을 위해 월드컵 시리즈에 출전하고 있다. 박승희가 월드컵 시리즈에서 최대한 포인트를 쌓아서 랭킹 20위 안에 진입하게 되면 한국 선수 최초로 쇼트트랙과 스피드 스케이팅 두 종목에서 올림픽에 출전하는 위업을 달성하게 된다.


  현재 스포츠는 매우 상업화가 되었다. 선수들이 프로가 되면서 많은 돈을 벌게 되었고 올림픽의 정신이었던 아마추어리즘이 점점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타이슨 게이, 이승훈, 여호수아처럼 꿈을 위해 과감한 도전을 하는 선수들도 있고 박승희처럼 최고의 자리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선수들도 있다. 결과가 어찌됐든 이들의 도전은 도전 그 자체로 아름답다. 앞으로도 스포츠는 점점 상업화가 되어가겠지만 스포츠가 있는 한 이들과 같은 아름다운 도전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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