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김학수

 

 

  ‘가을 야구시즌이 돌아왔다. 미국, 일본, 한국 등 이른바 야구 삼국에서 정규 시즌을 마치고 최종 승자를 가리는 플레이오프가 한창이다. 이 맘때 야구장의 모습은 상쾌한 한 밤의 수채화와 같다. 화려한 불빛, 짙은 갈색의 잔디속에서 하얀 공이 날아가고 깨끗한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필드와 다이아몬드를 질주하는 멋진 장면을 연출한다. 친구, 연인, 가족들이 올망졸망 모이는 야구장은 낭만과 추억의 장소이다. 서로의 감성을 확인하고 삶의 즐거움을 느끼며 흘러가는 시간을 되돌려 야구장에서 수놓아진 희미한 추억의 그림자를 떠오르기도 한다.

 

  사실 야구(野球)’라는 용어 자체에는 낭만의 이미지가 숨어 있다. 한문으로 들을 의미하는 ()’와 공을 표현하는 ()’를 합성해 들에서 공을 갖고 하는 종목이라는 뜻이다. 거친 운동의 세계를 감성적인 언어로 잘 포장했던 것이다. 일본에서 유래된 야구라는 용어의 역사를 더듬어보면 문학가들의 섬세한 정서를 찾을 수 있다.

 

일본 도쿄의 대표적인 공원인 우에노 공원에 야구라는 용어를 만들어 전파시킨 메이지 시대의 대표적인 국민 문학가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시비에는 시키의 대표적인 하이쿠(俳句) ‘春風やまりをげたき가 새겨져 있다. 우리 말로는 봄 바람, 공을 던지고 싶은 풀밭이라는 뜻이다.

 

일본 도쿄 우에노 공원 옆에 자리잡은 일본 메이지 시대의 대표적인 시인 마사오카 시키를 기념하는 야구장

 

 

  들과 공을 합성시킨 마사오카 시키의 문학성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와 함께 메이지 시대의 낭만주의 문학을 이끌었던 시키는 1888니혼신문에 쓴 베이스볼이라는 문장 속에서 야구 술어를 번역했다. 타자, 주자, 직구, 사구 등이 그것이며, 이미 오늘날까지 일본과 한국에서 쓰는 용어들이 시키에 의해 만들어졌다.

 

  당시 후쿠자와 유키치와 모리 아리노리와 같은 메이지 초기의 사상가들은 밀려드는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며 체육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됐다. 이들은 부국강병책의 일환으로 개인의 신체는 곧 국가의 신체라는 국가주의적 관점에서 여러 용어들과 개념들을 주체적으로 만들었다.

 

  야구라는 용어는 시키의 필명 마사오카 노보루에서 노보루의 일본어 발음 ()’보루(ball의 일본식 발음)를 절묘하게 묶어 만들어졌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일본 야구 초창기 선수로서 활약했던 마사오카 시키는 고향인 시코쿠 마쓰야마에 야구를 전파하고 그 묘미를 세상에 널리 알렸다. 시키의 야구 전파에 영향을 받아 시코쿠의 여러 도시들은 이후 일본 야구를 대표하는 많은 선수들을 배출해 야구의 고장으로 명성을 날렸다.

 

  시인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제시하고 평상시에 쓰는 말로 표현해야 한다는 사실주의 표현을 고수한 그는 도쿄제국대학에서 공부를 하면서도 결핵으로 약해진 자신의 몸을 추스르기 위해 야구라는 운동을 즐기면서 야구에 문학적 감성을 불어넣기 위해 힘을 썼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절친한 친구 나쓰메 소세키도 그의 건강을 걱정하면서도 자산의 문학 작품 대표작 나는 고양이로 소이다에 야구를 서양 문화의 대표적인 요소의 하나로 소개하기도 했다.

 

  야구가 만들어진 역사를 살펴보면 일본 근대 문학가들의 섬세하고 감성적이면서도 국가를 개화시키려는 의지를 느낄 수 있다. 미국에서 건너 온 베이스볼을 받아들이며 새로운 문물을 일본인의 관점에서 내재화시켜 국민들이 이용토록 했기 때문이다.

 

  일본과 같이 정신적인 영역을 중시하는 동양국가이면서도 중국은 일본과 다른 정서를 갖고 있었다. 야구를 봉구(捧球)’라고 표기하는데 막대기 봉를 치는 경기라는 뜻이다. 지적인 낭만을 느낄 수 없고, 눈에 보이는 현상대로 이름을 붙였다. 한국은 1905년 미국인 선교사 질레트가 황성기독청년회 회원들로 구성된 YMCA야구단을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야구가 소개됐는데, 그 당시에는 야구를 타구(打球’)라고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봉구와 비슷한 의미의 단어였다. 한국은 일본이 합병한 이후 일본인들이 만든 야구라는 말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됐으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국내 야구팬들이 야구 용어에서 유래된 지적 낭만을 느끼며 올 가을 야구의 묘미를 더 흠뻑 즐겼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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