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김학수

 

 

 

  한국과 일본 야구의 초창기 모습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최고 인기스포츠가 된 오늘날에는 상상하기 어려울 지 모르나 발상지 미국으로부터 건너 올 때의 모습은 적어도 스포츠라는 의식 보다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외계 문화’를 보는 듯 했다. 그 때의 모습을 살펴 보는 것은 한·일 야구가 그동안 어떻게 변했는가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한국과 일본에 야구에 들어 올 때의 상황은 영화, 책 등에서 주로 확인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보성고 운동장에서 열린 야구 경기. 지금의 조계사 자리이다.

사진출처=<보성백년사>

 

 


  먼저 한국야구. 한국야구의 기원은 지난 1905년 미국인 질렛트가 황성기독교청년회(YMCA) 회원들에게 지도한 데서 비롯됐다. 최초의 야구경기는 1906년 2월11일 황성기독청년회원과 덕어(德語·독일어)학교의 두 팀이 훈련원 마동산에서 가졌다. 지난 2002년 제작한 스포츠영화 ‘YMCA 야구단’은 신문물인 야구에 눈뜬 양반 자제 호창(송강호 분)과 신여성 정림(김혜수 분)의 연정을 매개로 당시의 모습을 잘 재현했다. 역사적인 사실과 가공의 인물을 잘 가미시키면서 이 영화는 근대 야구의 초창기 상황에 관한 많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당시 과거제도가 폐지되면서 할 일없는 선비들은 서당을 운영하면서 밀려드는 세계의 새로운 문물에 본격적으로 눈을 떴다. 쇄국정책으로 폐쇄됐던 문호가 열리면서 야구 등 각종 스포츠의 도입에 선도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다. 영화 ‘YMCA 야구단’에서 정림(김혜수 분)이 “운동 좋아하십니까” 묻자, 호창(송강호 분)이 몸을 쓰는 활동은 낮은 신분의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듯 “나 선비 올시다”며 점잖함을 빼면서도 야구에 관심을 보이는 장면이 나온다. 양반의 ‘에고’가 흔들리면서 야구를 통해 보편적인 평등 의식이 싹트는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조선 시대 철저한 계급의식을 갖고 살았던 선비들이 새로운 세계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을 야구 등 근대스포츠의 도입을 통해 느끼게 됐다. 야구는 주로 학교의 교외활동의 일환으로 보급되면서 일제시대에 점차 대중화되었다.

 

 

 

 

영화 ‘YMCA 야구단포스터.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일본 야구는 우리나라보다도 훨씬 빠른 1872년 도쿄 카이세이 아카데미 영어교수 미국인 호레이스 윌슨에 의해 학교스포츠로 처음 소개됐다. 첫 성인야구팀은 1878년 창설된 심바시 선수클럽이었다. 일본 언론은 도쿄 이치코 고등학교팀이 1896년 요코하마에서 벌어진 경기에서 요코하마 컨트리클럽 외국인팀을 물리친 것을 특보로 전하면서 학교스포츠로서 야구가 인기를 얻는데 이바지했다. 야구가 대중들의 주목을 받게 되면서 소설가를 비롯한 일부 지식인들은 외국문화의 무분별한 도입을 걱정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일본의 국민작가 나쓰메 소세키는 1905년 발표한 그의 대표작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야구에 대한 인상기를 비유적인 표현을 담아 적었다. 당대 교양주의의 중심으로서, 지식인이 비판적 교양인이라는 관념을 뿌리내리게 한 그는 야구를 우세한 군사력을 보유한 서양의 신문물로 간주하며 군사적인 매개물로 비유하는 표현을 썼다.

 

 

일본 국민작가 나쓰메 소세키 대표작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사진출처=<네이버 도서>

 


  "일렬종대로 늘어선 전원이 함성을 질렀다. 일렬종대에서 오른쪽으로 약간 떨어진 운동장 쪽에는 포대가 요충지를 차지한 채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한 장군이 와륭굴을 향한 채 커다란 나무공이를 들고 대기하고 있었다. 이와 10미터 간격을 두고 또 한 사람이 서 있고, 나무공이 뒤에 또 한 사람이 서 있는데 이 사람은 와륭굴을 향하고 우뚝 서 있다. 이처럼 일직선으로 나란히 맞서고 있는 것이 포대다. 어떤 사람의 주장에 따르면, 이는 베이스볼 연습이지 결코 전투준비가 아니라고 한다. 나는 베이스볼이 뭔지 모르는 문외한이다. 그러나 듣자 하니 이는 미국에서 수입된 유희로, 오늘날 중학 이상의 학교에서 행해지는 운동 중에서 가장 유행하는 것이라 한다. 미국은 이상 야릇한 것만 생각해내는 나라라서 포대로 착각하는 것도 당연하고, 이웃에 폐를 끼치는 유희를 일본인에게 가르쳐줄 만큼 친절했는지도 모른다."


  나쓰메가 소설적인 재미를 위해 야구를 군사적인 면으로 부각시키려 했을 수도 있다. 야구장 마운드를 ‘포대’로, 타자를 ‘장군’으로 각각 묘사함으로써 일본이 미국 페리 함대의 ‘흑선’에 의해 개항된 이후 만연화되는 서양문화에 수입을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나쓰메의 시각은 점차 밀려드는 서구의 물결에 대비해 일본인의 주체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스포츠는 사회의 거울이라고 한다. 사회의 여러 가치를 스포츠가 반영해 보여주기 때문이다. 오래 전 사회를 지금의 시각으로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한국과 일본의 초창기 야구 모습은 그 당시 사람의 생각과 관점이 담겨있는 듯하다. 당시 한국과 일본의 지식인들은 근대화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면서도 주체적인 민족의식을 결코 잃지 않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었다.


  스포츠는 시간에 따라 변한다. 현재 야구는 한국과 일본 모두 초창기 때와는 많이 달라져 있다. 모두 프로화에 성공하며 양국 최고 인기스포츠로 자리잡았고, 발상지 미국에 못지않은 실력을 갖출 정도가 됐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 야구는 스스로 성장했다기 보다는 현명하고 영리한 양국민들의 주체적인 의식과 뜨거운 관심에 힘입은 바가 크다는 것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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