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임성민

 

 

“운동하는 놈이 운동만 잘하면 됐지. 공부는 해서 뭐 해”

 

  내가 운동할 때는 주위에서 이런 말을 하던 시대였다. 부끄럽지만 난 고등학교 3년 내내 단 한 번도 수업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 같은 반 친구가 누구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시간에 운동을 하거나 숙소에서 잠을 잤다. 때론 오락실에서 신나게 조이스틱을 두드린 적도 있었다. 그때는 우리 학교 축구부 누구나 다 그랬다. 그냥 운동만 열심히 하면 그걸로 족했다. 그래도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인생의 황금기를 너무 허무하게 흘려 보냈다. 공부도 친구도 아무것도 얻은 게 없이 말이다.

 

  운동선수의 삶은 달콤한 유혹이다. 성공하면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거머쥔다. 그래서 너도나도 이 도박판에 판돈을 밀어 넣는다. 그 순간 모두가 잭팟의 주인공을 꿈꾼다. 하지만 운동으로 성공하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 초등학교 때 축구를 시작해 프로선수(K리그 클래식)가 될 확률은 0.8%. 내셔널리그, K3를 포함해도 약 3%에 불과하다. 지금도 많은 학생선수와 학부모들이 이런 무모한 확률의 도박에 모든 걸 건다.


  좋다. 실력이 특출나거나 천운을 타고나 0.8% 안에 들어간다고 치자. 그렇다 해도 진짜 고수들과의 진검 승부는 그때부터 시작이다. 프로에는 전국에서 날고 기는 타짜들이 다 모인다. 게다가 국내 타짜들 보다 더 뛰어난 외국인 선수들도 으르렁거린다. 이런 무시무시한 정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펼치다 대부분의 선수가 1~2년 안에 강제 퇴거 조치를 당한다.

 

준비 없는 은퇴는 치명적이다. 아무런 준비 없이 운동 하나만 보고 달려온 선수들은 은퇴할 즈음에 서야 뭔가 잘못됐다는 걸 인지한다. 사회라는 또 다른 정글에 나가 싸울 무기가 변변치 않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해 남들은 최첨단 스텔스 폭격기와 미사일로 무장했는데, 은퇴 선수들은 딱총 한 자루로 싸우니 게임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나서 '학창 시절에 왜 공부를 하지 않았을까', '왜 준비를 하지 않았을까' 땅을 치며 후회한다. 나도 20대 중반에 아무 준비 없이 은퇴를 했다. 10년 이상 신었던 축구화를 갑자기 벗고 나니 할 게 없었다. 뭘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눈에 보이는 건 캄캄한 암흑이었다. 

 

결국 교육이 답이다. 지금은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교육의 중요성을 모르는 선수와 지도자들이 많다. 험난한 경쟁 사회에서 낙오자가 되지 않으려면 교육이 필요하다. 은퇴 후 삶을 왜 준비해야 하는지 어떻게 진로 설정을 할 것인지 학생 선수들에게 일깨워줘야 한다. 그래야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거듭날 수 있다. 세상을 바꾸는 건 사람이지만 사람을 바꾸는 건 교육이다.

 


By failing to prepare, you are preparing to fail
준비를 실패하면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다
- 벤자민 프랭클린 –

 

 

※ 본 교육은 대한체육회가 주관한다. 대한체육회가 양성한 선수출신 전문강사들이 학교에 직접 방문해 은퇴 후 성공적인 사회진출을 도모할 수 있도록 진로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학생선수들에게 운동과 학업의 병행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자존감을 고취해 스스로 목표 설정을 할 수 있도록 동기 부여를 해주는 것이 이 교육의 주된 목표다.

 

 

 

 

 

 

운동하면서 공부하는 게 너무 힘든 아이들


“얘들아 요즘 열심히 공부하고 있지?”

“선생님, 공부할 시간이 없어요 운동하느라 너무 피곤해요.”

“그래. 나도 안다. 얼마나 힘드니. 새벽에 운동하랴. 오전 오후에 수업 들으랴. 수업 끝나면 또 운동하랴. 때로는 저녁에 개인운동까지. 운동만 해도 힘들어 죽겠는데 이 와중에 공부까지 하라니.”

 

 

<성재 학생의 발표 동영상>

 

 

  이렇게 아이들이 힘들어서 공부를 소홀히 하고 싶어 할 때쯤, 2002월드컵 영웅 이영표 해설위원을 불러낸다. 나보다 이영표 같은 슈퍼스타가 말해주는 한마디가 아이들에게 훨씬 강력한 동기부여를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영표 위원은 “학창시절에 공부와 운동을 병행 하는 건 힘든 일이다. 하지만 오히려 안 힘들면 그게 더 이상한 거다. 지금 힘들다고 느껴진다면 아주 잘하고 있는 중이다”라고 말한다.

 

 

<초중고 선수들에게 들려주는 이영표의 축구이야기 영상>

 

 

  요즘 운동부 대부분은 정규수업을 다 받고 훈련에 참여한다. 어떻게 보면 내가 운동했을 때가 더 편했던 것 같다. 그때는 학업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운동만 하면 됐으니까. 좋다. 그럼 편했다고 그게 정상인가. 완벽한 비정상이었다. 학생이 공부를 우선시 해야 하는 건 당연지사인데 우리나라의 엘리트 체육 시스템이 이런 비정상화를 조장했다. 물론 엘리트 시스템 덕에 메달도 많이 땄다. 하지만 그 부작용으로 인해 수많은 운동선수들이 은퇴 후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축구부도 전교 1등 한다
  운동하며 공부도 하고 책까지 읽는 건 무척 힘든 일이다. 그래도 그걸 이겨낼 수 있어야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거듭날 수 있다. 이렇게 힘든 상황 속에서도 운동과 학업의 놀라운 성취를 이룬 친구가 있다.

 

  대동세무고 3학년 염철현 학생은 지난 중간고사에서 전교 1등을 했다. 축구부가 전교 1등을 하다니. 살다 살다 이런 특이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수업 후 철현이를 만나 그 동안 무엇을 어떻게 해서 그 비결을 물어봤다.

 

  “제가 축구를 4학년 때 시작했는데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공부를 게을리 해 본적이 없어요. 좋은 성적을 받는 조건하에 축구를 하겠다고 부모님과 약속했거든요.” 

 

  철현이 부모님은 처음에 철현이가 축구 하는 걸 심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들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그 대신 조건을 걸었다. ‘기말고사 전과목 100점’. 철현이는 이 기회를 살려 진짜 기말고사 전과목 모두 100점을 맞아 축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제가 좋아하는 축구를 계속 하려면 좋은 학업성적을 유지해야 했어요. 그래서 아무리 몸이 피곤해도 공부를 열심히 할 수 밖에 없었고요. 그리고 제 주변에 계신 축구부 감독님, 학교선생님, 체육부장님들이 공부 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셨어요. 중학교 때는 전교 2등까지 해봤고 고등학교 와서도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하다 이번에 처음으로 1등을 했어요.”

 

  대동세무고 체육부장 선생님은 “철현이는 밤늦게 까지 교실에서 공부한다. 학구열이 대단한 아이”라며 칭찬했다.

 

 


<3학년 1학기 중간고사 1등한 염철현 학생의 성적표>

 

 

  그 순간 철현이가 뛰어난 학업 성취를 했기에 운동실력은 그리 뛰어나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만큼 운동과 학업 모두 좋은 성과를 내기가 말만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 주장이었어요. 서울시대표로도 뽑혔었고요. 전국대회에 나가서 3위, 주말리그 준우승도 했어요. 그리고 고등학교에 와서는 1학년 후반기 때부터 제가 주전 골키퍼로 뛰었습니다.”

 

 

<서울시 대표 선발, 서울시대표 VS 일본 동경시대표>

 

 

  만약 철현이가 공부만 잘하고 운동은 못했다면 전교 1등이라는 성적은 빛이 바랬을 것이다. 하지만 운동 실력도 이렇게 출중하니 철현이의 학업 성취가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운동하느라 몸이 피곤할 때가 많죠. 그럴 때는 공부를 좀 소홀히 하고 싶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럴 때마다 제 꿈을 생각해요. 지금 조금 힘들어서 쉰다면 나중에 꿈을 이루지 못했을 때 큰 후회를 할 것 같아요. 지금 잠깐의 나태함이 미래에 영향을 미칠 거라는 생각을 하면 열심히 안 할 수가 없어요.”

 

공부를 하면 운동실력이 정체될까

  일부 지도자와 선수들은 ‘한창 운동할 나이에 공부에 시간을 많이 투자하면 운동실력이 발전하지 않는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공부하는 걸 탐탁지 않게 여긴다. 이런 생각에 대해 철현이는 단호하게 본인의 주장을 펼쳤다.

 

  “공부와 운동을 같이 해서 운동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건 다 핑계라고 생각해요. 저는 지금껏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면서도 실력이 발전했거든요. 팀 성적도 좋았고요. 고등학교 와서는 오히려 공부 양을 늘렸음에도 더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공부든 운동이든 자기가 집중해서 노력하는 것만큼 나오는 것 같아요.” 

 

  철현이의 목표가 궁금했다. 이렇게 운동도 공부도 열심히 하는 사람은 분명 자신의 확고한 목표가 있기 마련이다.

“일단 프로선수가 되고 국가대표가 될 거에요. 그 후 은퇴를 하면 체육행정가나 교수가 되어서 우리나라의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을 바꿔보고 싶어요. 제 주변 선배들 보면 좀 안타까울 때가 있어요. 운동만 하다가 대학교 가서 그만두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럼 그때부터 뭘 해야 될지 모르더라고요.”

 

철현이가 운동과 공부 2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부모님의 꾸준한 관심과 독려.
2 지도자와 학교선생님의 도움과 배려.
3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 

 

  철현이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학부모의 관심과, 지도자와 선생님의 도움, 본인의 노력이 합쳐져야 공부하는 운동선수가 계속 나올 수 있다. 앞으로 이와 같은 사례가 많이 나와서 은퇴선수들이 사회의 리더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염철현 학생의 인터뷰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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