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트로의 쿠바 스포츠, 어떻게 흥하고 망했는가

#김학수소장






지난 26일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정치가이면서 혁명가였다. 1959년 쿠바 혁명의 영웅 체 게바라와 같이 게릴라전을 펼치며 친미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리고 공산독재정부를 세운 카스트로는 49년간 공산주의이념 아래 쿠바를 통치했다가 2008년 2월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에게 국가평의회 의장직을 넘겨줬다.


카스트로에 대한 평가는 쿠바 혁명 영웅과 독재자로 서로 엇갈린다. 미국과의 오랜 대립으로 쿠바인들이 경제난으로 어려움을 겪게했다는 비판을 받지만, 무상의료와 무상교육 등의 평등정책을 실시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에게 지지를 얻기도 한다. 스포츠에서도 그의 공과가 나눠진다. 스포츠로 쿠바의 힘을 과시하기도 했다가, 체제의 취약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1970년부터 30여년간 쿠바는 소련, 동독과 함께 세계스포츠의 우등생이었다. 미국을 이기기 위해 안간 힘을 썼던 쿠바는 스포츠를 ‘미국 타도’의 전위부대로 활용, 큰 성과를 거두었다.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 등에서 많은 메달을 따내며 소련, 동독 등과 함께 사회주의국가의 위세를 떨쳤다. 1천1백만 쿠바 국민들은 미국의 경제봉쇄로 생활적으로 궁핍한 삶을 살았지만 쿠바가 배출한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 들을 통해 국가의 자부심을 느꼈다.







세계 남자육상 높이뛰기의 최고수 하비에르 소토마요르, 세계 복싱의 철권 테오필로 스테벤손, 무적의 야구팀과 여자배구팀이 쿠바 스포츠를 대표했다. 소토마요르가 1993년 넘은 2m45는 22년째 인류가 중력과의 싸움에서 기록한 최고치로 아직도 남아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높이뛰기선수인 소토마요르는 1999년 코카인 복용으로 팬암대회 금메달을 박탈당했고, 2001년 도핑테스트에서 스테로이드 양성반응이 나오자 은퇴를 했다. 스테벤손은 각각 올림픽 3관왕에 오르며 펠릭스 사본과 함께 국가영웅으로 대접받았다. 쿠바복싱은 1972년 뮌헨올림픽부터 복싱 금메달 32개를 휩쓴 세계적 복싱 강국이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무려 7체급을 석권했다. 쿠바야구팀은 1961년부터 2005년까지 세계선수권대회 18차례 우승, 1992년부터 2004년까지 올림픽 금메달 등을 획득하며 세계 최강의 면모를 보였으며 여자배구도 1990년대 부동의 세계챔피언이었다.


쿠바가 스포츠에서 위력을 떨치게 된 것은 국민이 건강하고 행복하기 위해선 스포츠가 중요하다는 국가지도자 카스트로의 통치철학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카스트로 체제에서 쿠바국민들은 95퍼센트가 각종 스포츠활동에 참여했다. 5세부터 체육교실 수업을 받으며 할머니들도 태극권으로 건강을 관리했다. 스포츠에 대한 그의 열정은 젊은 시절 운동선수를 한데서 비롯됐다는 것이 그의 여러 회고록에서 소개됐다. 쿠바혁명 성공한 수개월후인 1959년 7월24일, 카스트로는 아바나의 한 야구장에서 ‘수염부대’로 알려진 ‘로스 바버도스(Los Barbudos)’로 불린 혁명군팀 투수로 출전, 군경찰팀을 맞아 한 이닝 또는 두 이닝을 던지며 두 명의 타자를 삼진아웃시켰다고 알려졌다.


‘아바나의 자부심-쿠바야구의 역사’를 쓴 쿠바 출신의 미국 예일대 문학부 교수 로베르토 곤잘레스는 “카스트로는 여러 볼을 던졌다. 타자들은 무리하게 휘둘렀으며 지도자에게 스스로 삼진아웃을 당하는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카스트로는 1954년부터 1960년까지 미국 프로야구팀 신시내티 레즈의 트리플 A팀인 하바나의 슈가 킹 팀 경기를 자주 보는 야구팬이기도 했다고 곤잘레스는 덧붙였다.







하지만 카스트로가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출신이었다는 주장은 일부 역사학자들이 “사실이 아니다”며 부인한다. 여러 조사를 통해 카스트로는 어릴 적 좋아했던 스포츠는 농구였다는 주장도 나온다. 6피트 2인치(185cm)는 6피트 3인치(187cm)로 키가 큰 그는 농구를 통해 예측, 스피드, 신체재주 등을 익혔으며, 이를 혁명에 필요한 기술들과 비슷했다고 말한 것으로 그의 전기작가 태드 스줄이 말했다.


카스트로는 야구, 복싱 등에서의 성공으로 미국에 도전하고 국민들에게 국가적 자부심을 심어주었다. 하지만 국제적인 고립과 어려운 경제난은 야구 우수선수들의 미국망명, 경기장의 황폐화과 운동장비부족을 초래하며 체제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쿠바와 미국은 국교 정상화를 했지만 아직도 경제적 봉쇄는 여전하다. 국가재정난의 피해는 여러 체육시설에서 나타난다. 수영장에 물이 없고, 전기부족으로 야구가 야간경기를 제대로 할 수 없으며, 일부 야구장은 볼부족으로 파울볼이 나면 경기를 중단해야 할 정도이다. 체육관 지붕은 비가 오면 물이 새 레슬링 매트가 젖어서 훈련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지난 3월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1959년 쿠바 혁명이후 처음으로 아바나를 방문, 야구 시범경기를 참관하는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 됐다. 하지만 카스트로는 당시 미국과의 해빙무드에 대해 불만족한 표시로 “미국이 우리에게 어떠한 것도 주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야구선수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참가하고, 오랜 병상에서 아디다스 운동복을 입으며 스포츠를 통해 소통하는 이미지를 보였던 쿠바 국가통치자 카스트로는 저 세상으로 가면서 그의 평가는 역사적인 일로 남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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