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출처 : arnoldpalmer.com

 

 

 

근대 스포츠산업의 창시자, 아놀드 파머

 

지난 25일 87세로 타계한 아놀드 파머는 한 시대를 풍미한 최고의 골퍼이면서 근대 스포츠 산업의 창시자였다. 화려한 선수 경력을 갖고 있던 파머는 최고의 골프 브랜드였다. 근대 스포츠 산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골프산업은 파머 이전과 이후로 나눈다. 파머 이전에는 극소수가 즐겼던 골프가 파머의 등장을 계기로 대중과 호흡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파머 이전 바비 존스, 월터 헤이건, , 샘 스니드, , 벤 호건 등이 있었지만 그들은 위대한 골퍼로 남았을 뿐이다. 파머는 대중과 함께 하고 대증과 즐기고 대중을 리드한 카리스마 넘친 골퍼이자 비즈니즈맨이었다.

 

마스터스 4회, US오픈 1회, 브리티시 오픈 2회 우승, PGA 투어 61회 우승 등의 화려한 성적을 낸 그는 30대부터 골프마케팅에 눈을 떴다. 같은 골프클럽멤버이자 친구였던 변호사 마크 맥코믹과 에이전트 계약을 맺었다. 맥코믹은 각종 계약의 법률 자문을 응해주면서 파머와 본격적인 스포츠 에이전트 런칭 사업을 시작했던 것이다. 이것이 현대 스포츠 에이전트의 효시인 IMG의 출발이었다. 파머라는 골프의 대중스타 탄생은 현대 스포츠 에이전트라는 새로운 영역을 만들었던 것이다.

IMG는 파머와의 계약을 디딤돌로 삼아 세계적인 스포츠 매니지먼트 회사로 도약했다. 타이거 우즈, 마리아 사라포바 등 수많은 글로벌 스타들을 매니지먼트하고 올림픽과 메이저리그에 여러 스포츠 마케팅을 적용하며 최고의 회사로 자리잡았다.

 

1980년 파머는 IMG의 에이전트 앨래스터 존스톤으로부터 결별을 통보받았다. 당시만해도 파머를 브랜드로 하는 여러 골프용품이 아시아지역에서 많은 팔리고 있었지만 IMG는 파머의 이미지를 더 이상 끌고 나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IMG는 좀 더 장기적인 목표를 세우지 않고서는 파머 브랜드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킹’ 파머의 글로벌 이미지를 위해서는 좀 더 많은 스토리를 만들어야 했으나 나이 등으로 인해 쉽지 않았던 때문이었다. 그러한 결정은 내심 파머를 실망시켰다.

IMG는 지난 60년간 미국과 전 세계에 수백개의 회사들에게 파머 브랜드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했다.

파머는 벤처 사업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지난 1965년 라이벌 잭 니클러스와 미국 올랜도 베이힐 클럽에서 벌어진 시범 경기에서 65타를 기록 한 뒤 그 골프장을 직접 인수, 유명 골프 리조트로 만들었다. 올랜도 베이힐 클럽은 메이저 대회를 빼고 가장 주목받는 PGA대회를 열며 명성을 높였고, 내장객들을 위해 파머가 직접 사진을 찍고 함께 코스를 도는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사상 처음으로 골프 TV 채널을 창립한 것도 그의 뛰어난 사업 수완을 엿보게 해주는 대목이다. 그는 케이블 방송 사장 조 깁스를 처음 만났을 때만해도 골프 채널에 대해 별반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나 깁스의 끈질긴 설득으로 마침내 결정, IMG로 창립 계획을 주도하도록 했다. 최근 자신의 자식뻘보다 어린 골프 채널의 여성회장 마이크 맥칼리의 후견인 역할을 해주었다.

 

파머는 또 골프코스 설계자로 활동하며 전 세계에 300개 이상의 골프 코스를 설계했으며 미국 플로리다에는 여성과 어린이들을 위한 ‘아놀드 파머 메디컨 센터’를 설립했다.

한때 더 이상 어필이 되지 않으리라던 그의 이미지가 수년전 새로운 제품으로 다시 살아났다. 파머라는 이름으로 명명된 음료, 차가 10대와 20대의 젊은이에게 인기리에 팔리고 있는 것이다. 그가 골프 선수로 활동하던 시절을 보지 못했던 젊은이들은 파머를 골프 선수가 아닌 음료 사업가로 기억할 가능성도 많다. ‘아니의 군대(Arnie's Army)’로 불린 많은 열광적인 팬들의 사랑은 그의 타계에도 불구하고 결코 사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파머는 죽어서도 ‘살아있는 전설’처럼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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