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여자농구의 전설, 팻 서민감독, 우리 마음속에 잠들다. 

#이영미 박사






필자는 ESPN 앱을 통해서 스포츠계의 뉴스를 받아보곤 한다. 그러던 중, 2016년 6월 말이 되면서 필자의 핸드폰 알림에 부쩍 늘어난 공지가 있었다. 그것을 볼 때마다 마음이 한구석이 먹먹해 지는 그런 뉴스. 그것은 다름 아닌 팻 서밋(Pat Summitt)감독이 위중하다는 뉴스였다. 이 글을 접하는 스포츠 둥지 독자들 중 그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사실상 필자도 체육인재육성단의 해외연수생으로 미국의 테네시대학에서 공부할 기회가 없었다면 모르고 지나쳤을 그녀를 우선 소개한다.


 

  


       < 팻 서밋 감독 >    < NCAA 감독들의 승수>




팻 서밋 감독은 테네시대학(The University of Tennessee)에서 1974년부터 2012년까지 무려 38년 동안 Lady Vols라는 닉네임을 가진 여자농구팀의 감독을 했던 분이다. 농구 국가대표였던 필자의 지인이 연수를 위한 미국 비자 인터뷰할 때의 일화를 얘기하자면, 테네시대학에 연수를 간다고 했더니 담당영사가 대뜸 테네시대학은 여자농구가 매우 유명하니 가서 배울 것이 많을 것이라고 조언해 주었다고 한다. 이는 매우 많은 미국인들이 그녀가 38년간 이끌었던 테네시대학의 여자농구팀을 기억하기에 해준 조언이라 미루어 생각해본다. 그녀가 이룬 기록들 중 눈에 띄는 것은 통산 1,098승 208패라는 놀라운 기록이다. 이 기록이 별로 놀라움에 와 닿지 않는다면, 다음과 같이 짚어보면 가늠해 볼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보통 미국대학농구의 한 시즌 경기가 30여 경기인 것을 감안하면 더욱 놀라운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전미 대학스포츠협회(NCAA ; National Collegiate Athletic Association)의 정규리그를 거쳐 플레이오프 및 파이널에 진출하면 경기수가 늘어나기에 가능했던 기록이기도 하지만 매년 평균 약 29게임을 승리하고 매년 6게임 이하로 패했다는 기록은 실로 대단하지 않은가? 이러한 승률에도 불구하고 단지 7번의 NCAA 우승과 1번의 전국 대회 우승을 하였다는 사실은 우승이 매번 쉽게 Lady Vols에게 돌아가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기도 한다. 작년 우승팀이자 올해 NBA 파이널에서도 정규시즌 연승을 달리던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가 2연패 달성에 실패한 것만 보아도 승률 좋은 팀이 꼭 우승을 한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그녀가 이끌던 시절의 Lady Vols의 승률은 8할대 였다고 하니 최강팀으로 미국영사가 그들을 기억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듯 싶다. 통산 2번째를 달리고 있는, '코치 K'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듀크 대학교의 마이크 슈셉스키(Mike Krzyzewski) 감독은 2016년 현재 1043승을 기록 하고 있지만, 쉽사리 그녀의 기록을 넘어선다고 장담할 수 는 없는 상황이다.


테네시대학의 농구경기장에는 그간 이루었던 7번의 NCAA 우승 연도가 새겨진 배너와 영구결번 선수들의 저지가 경기장 상단에 자리 잡고 있다. 아래 번호 중 3번인 캔디스 파커는 덩크하는 여자선수로 유명한 현재 WNBA의 최고 미녀스타이며, 24번의 타미카 캐칭스는 우리나라에서 외국인 선수로 4시즌을 활약하였고 소속팀이었던 우리은행이 3번의 우승을 하는데 크게 기여한, 자타공인 WNBA의 전설적인 스타이다, 최근 그녀는 통산 7천 득점 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22번인 홀리 월릭은 팻 서밋 감독의 후임으로 테네시 대학 여자농구팀을 이끌고 있다. 실로 대단한 선수들을 많이 배출한 농구 명문팀 인 것이다.


 


  


       <NCAA 우승년도> <영구결번 선수들의 저지 >




2011년 8월에 그녀는 언론을 통해 미국을 다시 한번 놀라게 했다. 그것은 그녀가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고 투병중이라는 사실을 밝힌 것이었다. 59세라는 실로 젊은 나이였기에 주변인뿐 아니라 본인도 받아들여지기 힘든 상황이었을 것이라 미루어 짐작해 본다. 그러나 그녀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치료에 대한 강한 의지와 함께 알츠하이머 치료와 예방을 위한 팻 서밋 재단을 설립하였고 Lady Vols는 2012년까지 이끌었다. 은퇴 후에도 팻 서밋 재단을 통한 알츠하이머 예방과 치료를 위한 활동을 열심히 했다고 한다. 필자는 2015년 테네시대학 연수시기에 종종 농구경기를 관람할 기회가 있었다. 그 중 한번은 그녀가 경기장에 나와서 경기를 관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끝까지 관람이 여의치 않았는지 3쿼터 종료 후 경기장을 떠나는데 갑자기 관객들이 일제히 기립박수를 치며 그녀가 경기장을 떠나는 모습을 격려하고 응원하는 모습을 보았고 그녀 또한 옅은 미소를 띄우며 관객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아주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찡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 테네시 대학의 농구 경기장 바닥에 새겨진 팻 서밋 알츠하이머 재단 >




 

팻 서밋 감독은 36명의 WNBA 선수를 배출했다. 테네시대학 출신의 WNBA 선수들은 전통적으로 비시즌(WNBA는 겨울이 비시즌)에 모교를 방문하여 은사들을 찾아 뵙고 후배들과 함께 운동하며 조언을 해준다고 한다. 앞에서 잠시 언급했던 한국 여자 농구팬에게도 잘 알려진 타미카 캐칭스 역시 2015년 겨울에 테네시 대학을 찾았다. 때마침 우리은행에서 4년 동안 타미카 캐칭스와 함께 선수생활을 했던 김은혜 선수도 테네시 대학에서 연수중 이어서 그들의 조우가 이루어 질 수 있었다. 몇 년 만에 만난 팀 메이트 간의 반갑고 정겨운 대화 중 팻 서밋 감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니 타미카는 그녀와의 대학시절에 대한 추억들을 들려주었다. 김은혜 선수의 '팻 서밋 감독이 타미카를 잘 기억하고 있냐'는 질문에는 눈시울이 붉어지며 기억을 하며 반겨주실 때도 있고, 잘 기억을 못할 때도 있다는 대답에 우리도 함께 숙연해졌었다. 그녀의 스승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며 타미카 캐칭스가 무척 그녀를 존경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 타미카 캐칭스의 졸업식 > < 필자, 타미카 캐칭스, 김은혜 선수 >



필자가 타미카 캐칭스의 최근 뉴스 기사를 검색하던 중 발견한 "2015년에 그녀를 방문 했을때 그녀는 '나를 늘 기억해 줘'라고 했다"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팻 서밋은 알츠하이머로 희미해지는 기억 앞에서 사람들이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 했던 것일까? 만약 그녀가 그런 두려움이 있었다면 그것은 그녀의 기우였다. 그녀가 사망한 6월 28일에는 각종 스포츠 관련 사이트에서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뉴욕양키즈는 다음날 경기에서 그녀를 추모하지 않고서는 경기를 시작할 수 없다하여 추모시간을 가진 후 경기를 하였다. 또한 그녀의 제자인 캔디스 파커는 현재 WNBA에서 맹활약 중인데, 경기 후 인터뷰에서도 눈물을 쏟아내며 그녀를 추모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만나 뵌 적 없고 먼발치에서 바라만 본 필자도 그녀를 생각하면 마음이 짠한데 그녀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 슬픔을 어찌 말로 표현 할 수 있을까 싶다.



< 뉴욕 양키스 경기 전 추도 모습, 출처: 포커스 뉴스 >


 

  


<전 농구 국가대표 김은혜 선수의 SNS 추모의 글> < 팻 서밋 감독 사후 그녀를 기리는 많은 사람들>




 

최근 '디어 마이 프렌드'라는 드라마가 화제였다. 노인인구가 늘어나는 일어나는 일들과 여러 인물들을 보여준 것이었는데, 필자는 그 중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인물을 보며 팻 서밋 감독을 생각하곤 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의 두려움과 온전한 정신일 때의 고뇌를 보며, 두려움과 함께 너무 슬픈 병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진단을 받고 5년이라는 짧은 시간 후에 사망에 이른 그녀를 보며 너무 빨리 생을 마감했음을 안타까왔다. 그녀가 보여준 38년간 팀을 이끈 리더쉽과 카리스마, 알츠하이머 진단 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준 용기와 의지, 또한 그녀에게 보내준 스포츠 영웅에 대한 미국인들의 예우를 보며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필자는 그녀가 단지 대기록을 만들어낸 감독이기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최고의 전성기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주저앉고 싶은 힘든 병을 만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세상에 내어놓고 극복하고자 하는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받고 더욱 존경을 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생존하고 있는 동안에 세워진 동상이 그러한 존경심을 보여주는 반증이라 생각된다. 일면식도 없이 먼발치서 단 한번 뵈었던 그런 분이지만 그녀의 일화들을 통해 외경심을 갖게 되는 그런 분이다. 그녀는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롤 모델로 기억 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것 이라는 생각을 하며 추모의 글을 접는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Comm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