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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만 같았던 3일간의 KBL(한국프로농구연맹) 심판 도전기 – 3일차

꿈만 같았던 3일간의 KBL(한국프로농구연맹) 심판 도전기 – 3일차

엄세훈 기자





대망의 3일차, 마지막 날이었다. 마지막 날은 체력테스트-실기테스트-면접-경기규칙 테스트 순으로 진행된다. 많이 긴장이 되지는 않았다. 실기,필기 등 공부할 자료는 많이 가져왔지만 지금 봐서야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1일차, 2일차에 배웠던 것들을 다시금 머릿속에 되새겼다.

체력테스트를 위해 기존 심판들이 줄자로 정확히 20m를 재고 테이프를 일자로 쫙 붙였다. 거리는 베이스 라인부터 반대편 3점슛 라인 가운데에서 약간 멀었다. 혹시라도 쥐가 나면 안되기 때문에 충분히 스트레칭을 했다. 특히 햄스트링 부분을 많이 풀어줬다. 런닝도 하면서 몸에 열을 나게 했다. 미국 심판 ‘로버트 토마스’는 전날 자기는 너무 힘들다고 엄살을 부렸지만 교육생 4명 모두 무사히 86회를 통과했다. “파이팅!”이라 외치는 선배 심판들의 격려의 박수소리가 크나큰 힘이 됐다.


이어 실기테스트가 진행됐다. 심사위원은 프로농구연맹 김대영 감독관과 장준혁 심판부장이 진행했다. 4쿼터로 지난 실기 수업과 마찬가지로 기존 프로심판 10명이 경기를 하고 교육생들이 심판으로 들어갔다. 어느 순간보다 이 순간만큼은 정신 바짝 차리고 집중하자고 생각했다. 김대영 감독관은 중간에 교육생들을 모두 불러놓고 “다들 휘슬을 너무 불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휘슬을 많이 불어야 된다. 긴장하지 말고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뽐내기 바란다.”라는 덕담을 건넸다. 한 명이 쉬고 있을 때는 김 감독관은 교육생에게 “로테이션 할때는 골밑에 있는 심판이 빨리 앞으로 넘어와야 돼.”라고 아버지처럼 친절히 알려줬다. 김대영 감독관님과 장준혁 심판부장의 말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명심했다.





실기시험이 끝나고 오후에 면접이 이어졌다. 면접은 이재민 본부장과 장준혁 심판부장이 진행했다. 교육생들 모두 격식있게 정장을 입었다. 면접질문은 자기소개, 프로농구연맹 경기, 심판에 대한 관심도(비판을 해도 좋다, 아주 솔직하게), 심판에 대한 애정, 친구는 누가 있는지, 술은 얼마나 하는지, 대한농구협회 심판자격증은 소지하고 있는지, 각자 개별 질문이 이어졌다. 이재민 본부장은 면접을 마치면서 “관중, 언론들이 더 성숙한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부분을 충족시키지 못한 프로농구연맹에 책임이 있습니다. 더 노력하고 발전할 것입니다.”라고 무겁게 입을 뗐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자유롭게 하라는 말에 한 명씩 대답했다. 내 답변의 차례가 왔다.


“3일동안 교육받은게 황홀했습니다. 찬란했고 대한농구협회 심판부가 아닌 저에게 이 기회는 정말 소중했고 귀중했습니다. 교육이 대한농구협회와는 또다르게 굉장히 체계적이었습니다. 심판을 더 잘보고 싶은 마음이 강했고 심판에 대한 굶주림이 있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프로농구연맹 심판에 안 뽑히더라도 내년에도 이런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경기규칙 테스트는 앞서 장준혁 심판부장이 말한 대로 심판용어 10문제를 ‘주관식으로 서술하시오.’ 였다. 시험문제를 보니 정말 부장님께서 알려주신 것들로만 10문제가 나왔다. 공부를 했기 때문에 아는 것이 꽤 있었고 최선을 다해서 필기 시험을 치뤘다. 시험시간은 20분 안으로 이뤄졌다. 그 후 장 부장의 문제의 답과 구체적인 피드백이 있었다.


경기규칙 테스트가 끝나고 장준혁 심판부장은 이제 헤어지는 마지막 자리인데 어떤 질문을 해도 좋다고 이야기했다. 한 교육생이 장준혁 부장의 취미가 무엇인지 궁금해했다. 장 부장은 ‘농구’가 아닌 ‘수영’이라고 답했다. 물이 좋다고 했다. 또 다른 교육생은 시즌 중 일과가 궁금증을 던졌다. 그러자 가슴이 먹먹한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아침 7시에 출근을 합니다. 전 날 있었던 모든 경기를 모니터링해요. 거기서 심판 교육이 될만한 자료는 따로 뽑습니다. 그리고 무엇이 잘 됐나 안 됐나 모든 경기 보고서를 작성하고요. 집에 들어가면 저녁 9시 40분에서 10시 사이입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5시에 일어나는 일상을 반복합니다.”

나는 여자농구연맹(WKBL)의 한 심판은 인터뷰에서 “‘심판’이란 직업을 극한직업이라 표현했다.”라는 말을 인용해 ‘심판’이란 직업의 만족도에 대해 물었다.


“일반 생활체육이나 심판들과 달리 농구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도 KBL 심판이라 하면 누가 무시를 안합니다. 만족도? 행복합니다. 농구 보는 것도 좋아하고 누구보다 농구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또, 프로에서 심판을 본다는 것은 정말 흡족한 일입니다. 20년간 심판부에 있으면서 심판끼리 서로 평가 하며 사이가 멀어진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심판은 동료가 평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심판은 관중, 선수들, 구단, 연맹이 평가합니다. 남을 지적하기 보다 본인 스스로 잘보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본인 스스로 잘 보면 자연스럽게 모든 사람들이 인정해줍니다. 그게 참 된 심판의 지름길입니다.”

언론사의 모 기자는 농구라디오에서 스폰서를 맡은 기업에게 휘슬을 잘 불어준다는 의혹을 제기한 적이 있다. 장 부장은 한마디로 논란에 대해 일축했다.





“스폰서콜? 이런건 전혀 없습니다. 기자들, 관중들이 색안경을 끼고 보니까 그런 것입니다. 우승은 하늘이 열심히 훈련하고 잘한 팀에게 줍니다. KCC가 스폰서 타이틀을 맡았다고 해서 그런건 전혀, 일체 없습니다.”


이렇게 황홀했던 3일 간의 교육이 모두 끝났다. 프로농구연맹 사옥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오면서 마음 한구석이 휑~했다. 심판을 처음 시작할 때가 생각난다. 대한농구협회 심판부에 못 들어가고 좌절을 맛봤다. 심판을 보고 싶었기에 무작정 YMCA에 전화해 4명과 전화통화의 우여곡절 끝에 처음은 1심으로 심판을 보게 됐다. 담당 선생님은 심판 보는 모습이 괜찮아 보였는지 2심으로 심판을 보게 했다. 너무 기뻐 나를 가르쳤던 선배에게 전화해 자랑했던 기억이 난다. 경기는 아침 9시 부터 오후 8시 20분까지 9경기. 심판을 잘 보고 싶어 아침 9시에 도착해서 8경기는 경기부(타이머, 기록원)를 하고 나머지 1경기는 심판을 봤다. 매주 일요일 12시간을 그렇게 보내고 선수들한테 질타를 받아도, 손가락질을 받아도 코트에서 휘슬을 물때가 가장 행복했다. 처음은 손에 쥐어진 돈은 없었지만 바로 다음주에 2만 5천원이란 돈을 받았다. 그 돈은 너무 아까워 쓰지 않고 따로 모아놨다.


지친 일상에 활력을 얻었고 3일 내내 가슴이 뛰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농구심판인 장준혁 부장에게 교육을 받으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느꼈다. 그는 나에게 ‘별’이었다. 별처럼 신기했고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마음씨는 비단결처럼 고왔고 심판보는 방법 뿐만 아니라 인생을 어떻게 살아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것도 배울 수 있었다. 여태껏 느껴 보지 못한 따뜻함을 느꼈고 자만하지 않고 겸손해 지는 법을 배웠다. 그는 예전 바비 레이저의 팁인 오심사건, 송창용의 신의 발 등 안 좋은 일도 있었지만 문득 김용택 시인의 문구가 떠오른다. “슬픔 없이 어찌 좋은 사람이 되겠는가.”


이제 내 눈에는 ‘심판’밖에 보이지 않는다. 프로심판은 될 수 없어도 프로심판의 마음가짐은 느낄 수 있었다. 한국프로농구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큰 리그인 미국프로농구연맹(NBA)도 마찬가지다. 프로심판은 대중들에게 칭찬을 받지 못하는 직업이다. 무관심 혹은 비난만이 있을 뿐이다. 한 경기에서 ‘오심’을 한 번도 하지 않는 법, 인공지능 ‘알파고’ 같이 무수히 많은 경우의 수를 읽어 최선의 판정을 하는 법은 이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그들이 지금 이 순간 코트에서 휘슬을 물고 뛰는 이유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답을 찾아가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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