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만 같았던 3일간의 프로농구연맹(KBL) 심판 도전기 - 1일차

엄세훈 기자







2016년 5월 27일, 프로농구연맹 누리집에서 2016-2017 시즌 남자 프로농구에서 활약할 심판 공개모집 글이 올라왔다. 신임심판모집은 1차 서류 심사와 2차 2일간의 교육, 3차 면접 경기규칙TEST 실기TEST 체력TEST 순이었다. 모집 글을 보자마자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저번 시즌 고양 오리온 농구단에서 일하면서 코트 앞에서 본 프로심판은 너무나 멋있어 보였다. 관중들에게 비난 섞인 야유도 받았지만 휘슬 부는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다. 한 번 하늘 높은줄 모르고 도전해보고 싶었다. ‘도전’은 20대 청춘의 특권이라고 하지 않는가. 1년에 한 번 밖에 뽑지 않는 프로농구연맹 심판이었다. 현재 학교스포츠클럽에서 심판을 보고 있고 대한농구협회 1급 심판자격증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서류통과에는 살짝 자신이 있었다.


작년에는 여자농구연맹(WKBL)이 공개적으로 심판 트라이아웃을 열었는데 올해는 개별적으로 뽑는다는 걸 느꼈다. 작년에는 한 친한 선배가 심판에 지원했는데 아쉽게 떨어졌었다. 소정의 서류를 갖춰 전자우편으로 신임심판 모집에 지원했다. 지원하고 작년에 프로농구연맹 심판에 지원한 대한농구협회 선배 심판에게 전하니 선배 왈, “니가 무슨 프로농구연맹 심판이냐? 지원하지마. 서류에서도 떨어질걸?”라고 우려 섞인 시선을 보냈다.

‘뚜루루루···뚜루루루···’ 학교스포츠클럽 심판을 보러 지하철에 탑승하는 중 02-2106-XXXX이란 번호로 전화가 왔다. ‘왠 갑자기 02로 시작하는 번호지?’ 전화를 받는데 밝은 목소리의 한 여자 분이 말했다. “한국프로농구연맹 신임심판 서류모집에 합격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예정대로 이틀 간의 교육을 받으실 것이며, 마지막날 신임심판 모집 시험이 있습니다. 계획표는 전자우편으로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뛸 듯이 기뻤다.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심판인 장준혁 심판을 볼 수 있는 건가? 과연 ‘아마추어’와 달리 ‘프로’의 세계는 어떤 곳일까?” 이상향으로 생각 됐던 프로심판의 모습이 궁금했었는데 거기서 교육을 받는다니 꿈만 같았다.

하늘의 별을 딴다는 마음으로 지원했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되고 싶었다. 이왕 준비하는 거 제대로 준비하자고 생각했다. 시험 준비를 위해 프로농구연맹 누리집에 들어가서 규칙을 확인했다. 웹 누리집에 규칙서가 있긴 있는데 프린트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국제농구연맹의 규칙이랑 똑같기 때문에 국제농구연맹 누리집에 들어가서 2010년에 바뀐 로테이션, 메카닉, 규칙을 프린트해서 교육 전날까지 꾸준히 공부했다. 교육 전날 평소에 가깝게 지내는 대한농구협회 심판 A에게 우연히 전화를 하게 됐다. “머리 깔끔히 자르고! 프로농구연맹은 아마추어와 달리 살벌한 세계야! 노력하면 안되는 건 없으니까 잘 하고~” 순간 긴장감이 팍 들었다. 과연 프로농구연맹은 어떤 곳일까 궁금증이 증폭됐다.






대망의 6월 14일(화) 교육날의 화창한 아침이 밝았다. 설렘 반, 두려움 반의 마음을 가지고 신사동에 있는 KBL 사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첫째 날 일정은 오전 9시 반부터 5시까지, 오전에는 프로농구연맹 사옥에서 3심 메카닉 이론을 수업하고 오후에는 체육관에서 실기가 예정됐다. 시간약속을 평소에 소중히 생각하고 있었기에 넉넉히 9시에 교육장소에 도착했다. 이어 바로 프로농구연맹 심판교육을 맡고 있는 장준혁 심판부장이 왔다.

장준혁 심판은 모르는 대중들이 없을 정도로 굉장히 유명한 심판이다. 프로농구연맹이 출범한 97년도부터 심판을 보기 시작해서 구단 감독들이 뽑는 정규리그 심판상 8회 중 6번이나 수상할 정도로 감독,선수들에게 인정받는 기량이 출중한 심판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해 NBA 서머리그에 가서 심판을 보기도 했다.

교육생은 총 4명. 오리엔테이션으로 장준혁 심판부장이 인사말을 건넸다.


“저는 20년 동안 심판을 본 사람입니다. 예전에 생활체육에서 심판을 봤을 때 아침 9시에 대회를 나가서 저녁 9시까지 쉬지 않고 심판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심판’이란 직업에 대해 애정이 남다릅니다.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 ‘심판’ 생각 밖에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전화번호부에 저장돼 있는 사람들도 몇 명 없습니다. 시즌 중에는 심판이 1번이고 가족이 2번입니다. 무엇보다 그 누구보다도 농구를 사랑합니다. ‘20년’ 동안 심판을 보다 보니 심판이 잘 되는 길, 안 되는 길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닙니다. 사람이 사람의 행동을 판정하기 때문에 오심이 나올 수는 있지만 그것 또한 ‘비겁한 변명’입니다.”

이어 이재민 경기본부장의 환영사와 당부의 말이 이어졌다.


이재민 경기본부장은 1996년부터 2003년까지 KBL 경기운영팀장, 기획팀장, 경기/홍보팀장 등을 맡았으며, 대한농구협회 국제이사(2004~2010년), 동아시아농구연맹 사무총장(2006~현재) 등을 맡았다. 미국, 스위스 금융업계에서 일하다 1997년 공채 1기로 KBL에 입사한 농구계의 엘리트이다.

“구단뿐 아니라 기사도 내고 은퇴선수들에게 홍보를 많이 했는데 이번 신임심판 모집에 지원을 많이 안했습니다. ‘심판’이란 직업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가 상당히 강해 크게 각광받지 못하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지난해 경기본부를 따로 출범시켜 심판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려고 노력했습니다. 2013년 심판캠프 이후 이렇게 신임심판을 모집하는건 처음인데 교육을 받은 후 어느정도 수준에 맞는 심판을 선발할 것입니다. 올해를 기준으로 지속적으로 이러한 기회를 열 생각입니다. 신임심판은 여러 명이 될 수도 있고 한 명도 안 뽑힐 수 있습니다. ‘심판’도 엄연한 직업입니다. 신임심판의 보수는 대략 2000만원 이상 기본급이 주어집니다. 기본적으로는 대한농구협회 1급 심판자격증이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후 장준혁 심판부장의 3심 메카닉 강의가 이어졌다. 아마추어 농구경기 같은 경우 경기 수가 워낙 많다 보니 심판이 2명일 때도 있고 3명일 때도 있지만 프로경기의 심판은 무조건 3명이다. 그렇다면 3명이서 심판을 보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즉 한명이 파울을 불고 리포팅을 한 다음 어디 위치로 이동해야하는지 알아야 한다. 또, 각 심판마다 담당구역이 있고 때로는 한 발 물러나고 어느때는 한 발 앞으로 나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메카닉이다. 필자는 국제농구연맹 누리집에 있는 2010년에 바뀐 3심제 메카닉만 알았는데 이날 처음으로 2015년에 메카닉이 개정 됐는지 처음 알았다.

“위치는 과학이고 판정은 예술입니다!” 장준혁 심판부장은 위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칠판에 그림으로 그려 설명했다. 어느 위치에 따라 오픈 앵글(잘 보이는 위치)이 될 수도 있고 클로즈 앵글(사각의 위치)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이어 심판이 파울을 분 후 위치가 바뀌는 경우 12가지를 스피드하게 설명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집중하자고 생각했다. 필자 포함 모든 교육생들은 귀를 쫑긋 세우며 열심히 메모했다. 이후 장준혁 심판부장은 알기 쉽게 예를 들어주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자 이 종이가 있습니다. 바로 교육생들 얼굴의 코 앞에 종이를 빠르게 좌우로 흔들어 볼께요. (한 명씩 종이를 얼굴 앞에 흔든다) 형태가 무엇인지 잘 안 보이시죠? 그러면 이렇게 해보겠습니다. (3m 뒤에서 종이를 좌우로 흔든다) 이러면 종이에 뭐가 있는지 잘 보이시죠? 심판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로 앞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볼 경합 상황이 아닐 경우 선수들과 가까이 있을 때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서 멀리서 보면 더욱 잘 보입니다. 그래서 시즌 중 경기장 가서 심판들이 잘하는지 보려고 가까운 1층 플로어석이 아닌 제일 높은 위치에 앉습니다.”


순간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왔다. 축구심판과 같이 가까이에서 보는게 최고인 줄 알았었는데 농구심판은 그게 아니었다. 한 발자국만 뒤로 가도 많이 보이고, 잘 보인다는게 매우 신기했다. 심판끼리 의사소통하는 용어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설명했다.

10분 쉬는 시간 중 교육생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과연 어떤 사람이 프로 심판에 지원했는지 궁금했다. 한 명은 대한농구협회 심판교실 19기 출신으로 현재 협회에서 심판을 보고 있었다. 나이가 어렸지만 프로 심판을 하고 싶다는 패기가 있었다. 농구를 진짜 좋아해 지원했다고 한다. 키는 185cm가 넘어보였다. 반가운 얼굴의 지원자가 눈에 띄었다. ‘로버트 토마스’라는 미국 심판으로 필자랑 같이 종로 YMCA 전국직장인농구대회에서 심판을 봤었다. 그는 기혼자로 아내가 한국인이다. 얼굴을 서로 알았기에 웃으면서 인사했다. 그는 친구 가운데 세계적인 인도네시아 국제심판도 있다고 한다. 커미셔너도 있고 본인을 우리나라 국제심판들이 다 안다고 했다. 다른 한 명은 건국대학교 선수출신으로 한 농구부 Assiant(어시스던트) 코치를 하다 작년 시즌 KBL 신인선수 드래프트에까지 참가했던 분이였다. 지금은 보건소에 근무중인데 3일 연차를 내고 지원했다고 한다. 지원동기를 물으니 프로에 대한 갈증을 느껴 지원했다고 한다. 모두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있었다.


이론교육이 끝나고 점심식사를 다같이 먹었다. 그 후 체육관으로 이동해 실기를 준비했다. 체육관에 들어서니 저번 시즌 프로 심판들이 몸을 풀고 있었다. 거기에는 올림픽에 우리나라 대표로 나가는 국제심판, 국제농구연맹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가는 국제심판도 있었다. 교육생들도 스트레칭을 했다. TV에서만 본 기라성 선배 심판들을 보니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섰다. 그러면서도 선배 심판들 앞에서 내가 심판을 보고 평가 받는다는게 정말 설렜다. 빨간색, 파란색 유니폼으로 나눠서 입은 걸 보니 기존 심판들은 경기를 하고 교육생들이 심판을 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장준혁 심판부장은 교육생들을 따로 불러 심판 메카닉에 대해 6가지 정도 직접 코트에 나와 지도했다. 트랜지션 상황에서 심판이 왼발을 먼저 움직여야할 때, 골밑 쪽에서 심판이 반대편으로 로테이션을 할 때의 시선 처리, 볼을 선수한테 주고 나서의 심판 움직임, 백코트에서 프런트코트로 골밑 심판이 되었을 때 달리는 방법 등 여러 가지를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 후 4쿼터로 경기에 들어가 돌아가면서 심판을 봤다. 선수는 프로농구연맹 심판들이 뛰었다. 콜(휘슬을 불어 판정하는 것)을 할때마다 경기에 뛰는 선배 심판들이 교육생들에게 “굿 콜!” “이 부분은 이 심판 시야에서 보이지 않아요” “더 빨리 움직여야 됩니다”등 모두 독려와 따뜻한 격려의 말을 건넸다. 애매한 판정이 일어난 순간에는 장준혁 심판부장이 경기를 멈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런 점이 잘못됐다고 조목조목 조리있고 살갑게 설명했다. 경기가 끝나고는 한 명씩 잘 안된점을 피드백 해주었다. 어느 순간 실기 시간인 2시간 반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 탑승하면서 더 잘할 수 있진 않았을까, 너무 많이 놓치진 않은지 조금은 걱정스러운 마음도 있었지만 ‘프로심판’이란 가슴벅찬 심정은 감출 수가 없었다.


오후 6시에 집에 온 후 도서관에 가 노트에 필기된 3심제 로테이션을 복습했다. 오늘 실기를 하면서 로테이션이 너무 안됐다. 국제농구연맹 누리집에 있는 3심제 자료도 계속 공부했다. 집에 돌아오고 컴퓨터를 키자, 리우올림픽 출전티켓이 걸린 2016 리우올림픽 여자농구 세계예선전 우리나라와 나이지리아의 경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그 경기를 보는데 이상하게 선수들과 스코어에는 눈에 안 들어오고 심판만 계속 보였다. 심판의 움직임에만 눈이 따라갔다. “아 저 심판도 내가 배운 걸 하네?” “저 심판은 스텝을 저렇게 밟는 구나” 마음만은 벌써 세계적인 국제심판이었다. 내일 있을 교육을 위해 10시에 일찍 침대에 누웠다. “내일은 어떤 교육이 기다리고 있을까?”라는 두근거림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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