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윤동일

 

군사훈련용으로 개발된 스포츠, 축구이야기

축구의 또 다른 이름 ‘전쟁’- 12번째 선수들의 축구전쟁 ⑤

 

  앞서 소개한 국가대표와 더비팀들을 포함해 세계에 모든 서포터들은 오랜 민족분쟁, 종교갈등, 지역감정, 경쟁관계는 물론이고, 어이없는 오심(誤審)이나 믿었던 자기 팀의 패배로 인한 실망감 그리고 과거에 당한 패배나 수치심에 대한 복수 등 형형색색의 이유로 점잖은 신사의 모습을 버리고 악한 모습으로 변한다. 다른 종목과 달리 오랜 역사를 가진 축구는 태생부터 전쟁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고, 수 만 명이 경기에 동원되기 때문에 다른 종목과는 달리 대형의 안전사고와 대규모 충돌 요인을 많이 내포하고 있다. 그리하여 경기장의 안과 밖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참사에서 한두 명이 아니라, 수 백 명의 사망자와 부상자가 생기기도 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런 서포터들을 ‘훌리건(Hooligan)1)’이라 부르지만 다음에 소개하는 사례를 보면 오히려 ‘광란(狂亂)의 폭도(暴徒)’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린다. 


  여기서 소개할 사례는 지면 관계상 안전사고(선수를 태운 항공기의 추락사고, 부실 공사로 스탠드가 무너져 발생한 인명사고 등)는 생략하고, 경기 도중에 또는  일어난 서포터들의 충돌이나 난동으로 많은 사상자를 낸 참사들만 시대 순으로 정리해 소개하고자 한다. 다만, 여기서 언급하는 더비는 앞서 소개한 내용을 참조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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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훌리건(Hooligan)은 ‘런던의 불량배’에서 유래해 ‘축구 경기에서 난동을 부리는 사람’을

지칭하는 정도로만 이해하고, 지세한 내용은 다음에 소개하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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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2010.06.22일자 경향신문

 

➊ 리마 축구 폭동(Lima football riot)
  이 참사는 역대 가장 많은 인명 피해가 있었던 최악의 난동이다. 1964년 도쿄 올림픽 본선 진출을 위한 지역예선에서 페루는 아르헨티나와 만났다. 페루 리마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이 경기는 원정팀 아르헨티나가 선취골을 넣으면서 무난하게 승리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경기 종료 2분을 남겨 두고, 페루 대표팀에서 극적인 골을 성공시키면서 꺼져가는 불씨를 살렸다. 그러나 이 동점골은 주심이 노골(no goal)을 선언하면서 무효가 되었다. 이를 본 페루 관중들은 흥분했고, 일부 격분한 관중들은 그대로 그라운드로 밀려 내려갔고, 경기장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뒤늦게 투입된 경찰도 이들을 진정시키기에는 부족해 보였다. 관중들은 경기장을 부수며 난동을 피웠고, 급기야는 담장까지 무너뜨리며 경기장 밖으로 몰려 나가 리마 시의 곳곳에서 폭동을 일으키는 폭도가 되어 버렸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정부에선 계엄을 선포하고 군대를 투입해 진압해 버렸다. 이 과정에서 328명의 사상자(부상자에 대한 통계는 정확하지 않음,)가 발생했는데 이 숫자만 보더라도 세계에서 축구로 인해 발생한 사건·사고 가운데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참사임을 알 수 있다. 이 참사는 지역의 이름을 붙여 리마 참사로 부르나, 경기장의 난동에서 시작해 시가지 폭동으로 번졌기 때문에 ‘폭동(riots)’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경기장에 난입하고, 스탠드에서 난동을 부리는 페루 관중들
http://www.sportskeeda.com/2012/12/15/top-5-derby-matches-marred-by-crowd-trouble/
http://www.totalprosports.com/2011/07/11/9-tragic-sports-fan-deaths/

 

 

➋ 푸에르타 도세 참사(Puerta 12)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연고로 하는 최고의 라이벌 보카 후니오르스와 리베르 플라테의 ‘엘 수페르클라시코’ 더비는 1백년 이상 된 유명한 라이벌전이다. 1968년6월 23일 엘 모누멘탈 경기장에서 열린 리그 경기는 득점 없이 무승부로 끝났다. 여느 때와는 달리 아무 일 없이 끝나는 듯 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일이 벌어졌다. 경기가 끝난 후, 2층 스탠드에 서 응원하던 보카의 한 팬이 불붙은 종이를 아래 스탠드로 던졌고, 화재로 번지면서 이를 피하려던 관중들이 출구로 한꺼번에 몰렸다. 그런데 이 출구는 열려 있지 않고, 닫혀 있어서 관중들은 단 한 명도 빠져 나가지 못하고, 나가려는 사람들로 닫힌 출구는 압력이 가중되고 있었다. 결국 12번 게이트는 압시당한 74명의 사상자와 150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지옥으로 변했다. 그런데 희생자들의 대부분이 평균 20세 미만의 청소년과 젊은이들이어서 주변의 안타까움을 더했다. 경찰은 3년 동안 사고 조사를 벌였지만 원인과 책임자를 규명할 수 없었고, 그해 시즌이 끝날 때까지 아르헨티나 축구 협회에 등록된 모든 팀들(68개 팀)의 모금을 통해 희생자 가족들에게 위로금을 지급할 수 있었다. 이 사고는 관중들이 몰려 압사당한 출구(12번 게이트)의 이름을 사용해 ‘푸에르타 도세(Puerta 12)’ 참사로 부르며 다혈질인 국민성 때문에 상대적으로 사건·사고가 많은 아르헨티나 축구 역사상 가장 끔찍한 사고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 참사가 일어났던 12번 출구. 당시 관중들의 난동과 참사를 재현한 사진

http://es.wikipedia.org/wiki/Tragedia_de_la_puerta_12
http://www.futebolportenho.com.br/2010/11/12/supersemana-%E2%80%93-a-tragedia-do-portao-12-crime-futebolistico-ou-politico/

 

➌ 아이브록스 참사(Ibrox disaster)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세계 더비 가운데 가장 오래된 더비라면 단연 스코틀랜드의 올드펌 더비(Old Firm Derby)를 꼽는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오랜 친구란 더비 이름과는 달리 125년 동안 4백 여회의 치열한 매치를 펼쳤다. 태생부터 지역과 종교를 기반으로 한 두 팀의 숙명적인 더비가 그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었는데 어찌 사건·사고가 없을까? 오죽하면 이 두 팀의 경기에는 다음과 같은 룰 아니 룰이 적용된다. 매 경기마다 그라운드에서는 선수들이 몸을 사리지 않고 거칠게 상대를 몰아 부치고, 스탠드에서는 격분한 서포터들이 충돌한다. 그리하여 이 더비엔 선수들의 무자비한 반칙이 난무해 매 경기 당 5∼6회의 경고와 2명 이상의 선수가 퇴장되는 일은 늘 있는 일이다. 경고나 퇴장이 많은 일방은 상대적으로 불리하기 때문에 경기에서 크게 질 수밖에 없는데 상황이 이쯤 되면 진 쪽의 서포터가 가만있지 못한다. 통상은 심판의 편파 판정을 빌미로 그라운드 난입이 이루어지고 이를 저지하는 경찰이나 상대 서포터와 격렬한 몸싸움과 함께 양 팀의 난투극으로 발전하게 된다. 경기에 진 선수들과 서포터들은 와신상담 다음 경기를 기약하며 그 날이 오면 치밀한 계획 하에 지난 패배의 복수하게 된다. 이런 과정의 악순환은 양 팀에겐 적어도 1백년 된 습관이다. 스코틀랜드는 더비의 역사만큼이나 재앙도 긴 역사를 갖고 있다.

 

특히 스코틀랜드의 아이브록스(Ibrox) 경기장은 1902년과 1971년, 두 번의 대형 인명사고가 일어난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첫 번째는 1902년 4월 5일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브리티시 챔피언십 경기에서 일어났다. 전날 내린 폭우 때문에 지반에 약해져 나무로 만든 스탠드(경기장의 서쪽)의 지지대가 무너져 내려 사고가 발생했다. 모두 25명의 사망자와 517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이 경기는 두 팀은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공식 경기로 인정받지 못했다.

 

두 번째는 이로부터 70년이 지난 1971년 1월 2일에 열린 올드펌 더비에서 1차와 마찬가지로 관중들이 몰리면서 스탠드가 무너져 무려 66명의 사망자와 160여 명의 부상자를 낸 것이다. 당시 상황은 약 8만 명의 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셀틱이 1 대 0으로 리드한 채로 경기 종료에 임박해 가고 있었다. 낙담한 레인저스의 서포터들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자리를 떠나 경기장을 빠져 나가고 있었는데 이 때 갑자기 경기장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후반 경기 종료 직전, 레인저스가 극적인 동점골을 성공시킨 것이다. 이미 경기장을 빠져 나온 레인저스의 팬들은 이 감동적인 장면을 보기 위해 다시 경기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13번 통로(Stairway 13)으로 몰려들었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어린 아이를 목마 태운 아버지가 넘어지면서 계단을 가들 매운 사람들이 연쇄적으로 넘어져 또 한 번의 재앙을 맞아야 했다. 이후 이 재앙은 법정으로 보내져 1년간 정밀 조사와 재판을 거쳐 1973년 스포츠 관중들의 안전에 관한 수칙인 ‘그린 가이드(Green Guide)’를 발표하고, 2년 뒤에는 법 제정(the Safety of Sports Grounds Act 1975)의 기초가 되었다. 이런 조치가 취해진 후, 올드펌 더비의 격렬한 난동은 점차 수그러들었고, 결정적으로 다음에 소개할 1990년 ‘테일러 리포트(Taylor Report) 2)’에 이은 제반 조치들이 나오면서 점차 그 회수나 수준이 많이 완화되어 예전만 못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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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원제는‘THE HILLSBOROUGH STADIUM DISASTER’이며

 축구의 참사 원인을 분석해 개선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자세한 내용은 다음에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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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브록스 참사가 벌어진 장소(스탠드와 경기장에 이르는 13번 통로).

아이브록스 참사를 기리는 조각상 : 서포터들이 뽑은 가장 위대한 선수(John Greig)의 조각상에

두 참사의 희생자들의 명단이 새겨져 있는데

매년 이 조각상 앞에서 당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추도식을 갖는다.

http://en.wikipedia.org/wiki/1902_Ibrox_disaster
http://www.dailyrecord.co.uk/news/scottish-news/ibrox-disaster-victims-remembered-41-1112705
http://www.thetimes.co.uk/tto/sport/football/article2860315.ece


 

1980년대의 올드펌 더비의 경기장 난동 장면 : 경기가 끝난 후에도 양 팀의 서포터들은

그라운드에 난입해 상대 선수들과 서포터들을 위협했고,

기마경찰까지 투입해 서포터들과 경찰의 대결이 펼쳐졌다.

물론 사상자의 발생은 숫자가 줄였을 뿐 여전했다.

http://www.youtube.com/results?search_query=Old%20Firm%20Derby&sm=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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