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윤동일

군사훈련용으로 개발된 스포츠, 축구이야기

축구의 또 다른 이름 ‘전쟁’- 12번째 선수들의 축구전쟁④


축구 전쟁은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이는 잘못된 것이다. 축구 전쟁은 그라운드에서 뛰는 11명의 선수들로 한정되지 않고, 경기를 관람하는 스탠드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경기장 밖에서도 벌어진다. 축구를 논할 때 서포터들의 집단응원은 빼놓을 수 없는 좋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일반적으로 이들의 승부는 경기 성적에 반영되지 않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결정적인 호기를 제공하기도 하고, 승패와 직결되기도 하며 극단으로 흐를 경우, 오히려 이긴 쪽에 더 불리한 조치가 따르기도 한다. 비록 직접적이지는 않아도 간접적으로나마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은 물론이고, 심판들에게도 심리적인 영향을 미쳐 승패를 좌우하는 큰 변수로 작용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들은 선수들과 같은 유니폼을 입지만 그라운드에서 뛸 수는 없다. 그래서 이들을 그라운드에서 뛰지 않는 또 다른 선수라는 의미로 ‘12번째 선수’라 부른다. 

오늘날 국가대표팀을 포함해 클럽팀은 물론이고, 심지어 어지간한 아마추어 팀들도 응원단(서포터즈)을 조직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통상 이들에게도 한둘의 라이벌은 있고, 이 둘의 한 판 승부는 그라운드에서 펼치는 경기와 비교해 절대 뒤지지 않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들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치열하다.


축구의 기원을 언급하면서 이미 축구가 전쟁에서 유래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축구의 서포터 역시 전쟁의 산물이라는 상상도 가능하지 않을까? 지금부터 세계적인 축구강국들의 서포터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9. 미국

앞서 소개한 스코틀랜드의 ‘타탄 아미(The Tartan Army)’처럼 서포터 이름에 군대라는 이름을 쓰는 나라가 하나 더 있다. 미국 대표팀의 서포터인 ‘샘스 아미(Sam’s Army)‘가 그것이다. ‘샘(Sam)’은 새무얼(Samuel)의 애칭으로 한국의 철수나 영희처럼 아주 흔한 이름이기 때문에 미국 또는 미국인을 상징하는 단어로 쓰인다. 여기에 좀 더 강렬한 이미지를 부여하기 위해 ‘군대(Army)’라는 단어를 합성해 만든 애칭이다. 상대적으로 축구의 역사가 짧은 미국에서 축구는 찬밥신세인 것이 사실이나 점점 축구의 저변이 확산되면서 축구인구도 늘고 있는 추세다. ‘엉클 샘(Uncle Sam)’ 역시 미국을 지칭하는 일상의 용어지만여기엔 여기엔 이미지가 있다. 17세기 미국 군대에 고기를 납품했던 사무엘 윌슨을 모델로 만든 이미지가 19세기 영국으로 건너가 한 만화가에 의해 풍자적(존 다니엘은 염소수염을 추가해 좀 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강화했다.)으로 변형된 것이 ‘엉클 샘’이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창작 의도를 몰라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반응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이 이미지는 결정적으로 1차 세계대전에 미국이 참전을 결정하면서 청년들의 군 입대를 독려하기 위해 만든 모병(募兵) 포스터에 손가락으로 보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근엄한 모습으로 등장시켜 더욱 유명해졌다. 그리고 샘스 아미의 이름과 엠블럼(축구공 위에 별과 줄이 그려진 모자가 씌워져 있다.)은 이 ‘엉클 샘’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것이다. 샘스 아미의 서포팅은 회원들에 대한 통제 없이 온라인(www.sams-army.com)을 통해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그룹별로 하기 때문에 구심저이 없고, 다소 산만하여 우리처럼 조직적인 것은 볼 수 없지만 참가하는 개개인의 메이크업은 볼만하다. 특히, 내브래스카 주에서 주로 활동하는 ‘아메리칸 아웃로(American Outlaw) 6)’와 함께 ‘캡틴 아메리카’나 ‘엘비스 프레슬리’와 같은 미국의 영웅들을 상징적으로 묘사하거나 얼굴 또는 온몸에 성조기를 그리는 등의 다양한 퍼포먼스를 연출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도 약 1백 여 명의 회원들이 이태원의 한 카페에 모여 친목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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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어메리칸 아웃로(American Outlaws)는 네브래스카의 링컨시의 지역 서포터로 얼굴에 미국 국기를 그리고 응원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국가 대표팀 경기에선 샘스 아미와 떨어져 앉기도 한다. 굳이 둘을 구분하자면 샘스 아미가 전국구라면 아메리칸 아웃로는 지역구를 대표하는 서포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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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조기를 들고 응원하는 미국의 서포터 ‘샘스 아미(Sam’s Army)’와 1차 세계대전 당시 군 입대를 독려하는 포스터에 그려진 ‘엉클 샘(Uncle Sam)’의 근엄한 모습. 성조기를 얼굴과 몸에 그리고 국기를 몸에 감은 채 응원하는 모습



10. 일본

일본의 서포터는 한·중·일 3국 가운데 가장 먼저 결성되었다. 이탈리아의 울트라와 구분해 붙인 ‘울트라 니폰(Ultra Nippon)’은 1992년 히로시마에서 열린 아시아컵대회에서 일본이 우승한 후 본격적으로 결성되었다. 해외에서 열리는 월드컵 본선 경기에 가장 많은 서포터를 보낼 수 있는 나라로 세계 최강 브라질 다음에 꼽힌다. 어떤 원정 경기든 일본의 서포터가 수적으로 밀리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삼국 중 역사도 깊고 숫자(해외원정에 많은 관중석을 차지할 수 있음을 의미함.)도 많지만 울트라 니폰은 붉은악마나 치우미에 비해 조직력이나 서포팅의 다양함도 떨어진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우선 그들은 회원제가 아니다. 국가 대항전 때마다 자발적으로 모여서 응원하는 전통을 고수하고 있어서 다소 결속력이 느슨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다보니 서포팅에도 영향을 미친다. 지난 2002년 보여준 다양한 응원가(붉은악마처럼 응원가를 창작하지 않고, 이미 유행된 곡에 가사만 붙여 부르는 정도다.)도 점점 그 숫자가 줄고 있는 추세다. 일본에선 이런 추세라면, '박수 세 번'에 '니폰'을 외치는 서포팅만 남을 것이라는 쓴 소리도 있다고 한다. 게다가 아래 사진은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울트라 니폰의 서포팅인데 과거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 제국군대의 상징인 ‘욱일승천기(旭日昇天旗, 일부에서는 사무라이기라고도 부른다.)’ 를 몰래 숨겨 들여 와 서포팅 사이에 슬그머니 내걸기도 한다. 일본의 이런 행위는 이제 더욱 과감해져 선수들의 공식 유니폼7)으로도 제작해 올림픽에도 내보는 등 그 수위가 점점 높아만 가고 있다. 이와 같이 일본 서포터의 편향된 성향은 많은 관중석을 점유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축구 팬들에게 특별한 감동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반감만 불러 일으켜 세계인으로부터 외면당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어째든 일본은 축구 실력이나 서포팅 면에서나 중국과 함께 우리의 라이벌인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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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2012년 런던올림픽에선 체조 선수들에게 욱일승천(旭日昇天)기를 모티브로 한 유니폼을 입히는 등 우경화 상징들을 노골적으로 전면에 부각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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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팀의 대형 유니폼을 내걸고 응원하는 일본의 서포터 울트라 니폰(Ultra Nippon).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응원석에 슬그머니 내걸린 욱일승천(旭日昇天)기.



11.중국

중국의 서포터는 한·중·일 3국 가운데 가장 늦게 결성되었다. 지난 한일월드컵 개최를 불과 6개월을 앞둔 2001년 12월에 당시 대한축구협회장(정몽준)과 붉은악마의 임원 3명을 초대한 가운데 전국에서 자생적으로 만든 크고 작은 14개의 서포터 조직을 하나로 모아 결성식을 마쳤다. 그들이 결성한 조직은 ‘치우미(球迷<구미>)’로 불리는데 ‘공에 미친 사람들’ 즉, ‘축구에 미친 사람들의 모임’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당시 결성식에서 밝힌 포부 가운데 기억에 남는 내용이 있다. “내년 대회에서 중국팀의 성적 8)을 어느 정도로 기대하는가?”라는 질문에 “우리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응원한다면 16강도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며 선전(善戰)을 장담하는 한편, 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해 “한국에서의 숙박이나 교통 문제만 해결된다면 축구 팬 100만 명이 한국으로 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는 인터뷰(2001.12.28.일자 문화일보 사설에서 발췌)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중국 서포터의 장점이자 힘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2013년 기준으로 13.6억 명의 중국 인구 가운데 치우미 회원은 무려 1억 명에 이른다. 이 정도면 2013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인구(5.1천만 명)의 두 배나 되는 숫자다. 위의 인터뷰 내용은 전체 치우미 회원 중 1%만 보내겠다는 것이며 이도 한국에서 숙소와 교통편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자존심 상하지만 사실이다. 물론 전 인구의 70%가 서포터임을 자랑하는 터키도 있기는 하지만 이 정도 숫자에는 미치지 못한다. 1억 명 가운데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서포터의 숫자만 대략 7∼8천만 명 정도로 추산하니 중국은 그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서포터'를 가진 나라임에 틀림없다. 이들의 서포팅은 숫자에 의존하는 인해(人海)전술을 구사하는 인민전쟁과 유사하며 이는 후발주자인 치우미의 가장 큰 무기이기도 하다. 붉은 색으로 가득한 스탠드에 대형 응원기와 국기도 내걸고 열광적인 응원과 특유의 함성 “짜이요(파이팅)”를 보내면 정말 위협적이다. 게다가 그들은 한국전에서 사용했던 꽹과리 9)도 동원하고, 황금색과 순백색의 용 인형까지 만들어 다양한 서포팅을 하고 있다. 잘 아는 바와 같이 중국팀은 한국과 29번을 싸워 단 한 경기만 이겨 본 팀이다. 따라서 중국인들은 언론으로부터 “공한증(恐韓症)에 시달린다.”는 표현까지 들어야 하는 국가 대표팀에게 치우미가 언젠가는 12번째 선수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비록 경기 성적은 미치지 못하지만 서포팅만큼은 붉은악마를 벤치마킹한 이래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세계 정상을 향해 도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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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약 200개 가 조금 넘는 피파 회원국 가운데 중국팀의 랭킹은 대략 100위권에 있어 최다의 인적자원을 가진 현대축구의 발상지인 중국의 위상에는 많이 부족해 보인다.

9) 사실 서포팅에 타악기 이상 가는 악기는 없다. 개인적인 경험에 비춰보면 가장 적합한 악기는 북으로 사람의 심장소리와 닮아 선수나 서포터 또는 관중까지 사로잡을 수 있다. 북이 나와 동료의 마음을 하나로 잡아 준다면 꽹과리는 반대다. 이는 북에 비해 화려한 소리를 내어 축제나 잔치에 많이 동원되지만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만들어 이미 전쟁에선 우군이 아닌 적군의 심리를 분열시키는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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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유니폼을 입고, 붉은악마의 서포팅을 벤치마킹(출범 초창기)해 간혹 우리와 잘 구분되지 않는 중국의 서포터 치우미(球迷). 자국에서 벌어진 경기에선 대형 오성홍기를 내거는 것에서 더 나아가 서포터와 관중들이 함께 오성홍기를 인계하며 스탠드를 따라 돌리는 서포팅도 보여준다.



12. 대한민국 

'붉은 악마'는 1995년 PC통신(하이텔)을 기반으로 한 축구 동호회를 중심으로 결성된 대한민국의 공식 서포터다. 붉은 악마란 이름은 1983년 멕시코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 붉은 유니폼을 입고 4강에 오른 우리 팀을 외국 언론들이 ‘붉은 악령(Red Furies)’이라고 부른 것을 다시 국내 언론사들이 ‘붉은 악마(red Devils)’로 표기했는데 이를 서포터의 애칭으로 사용한 것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붉은 악마(Red devils)’는 우리들에게는 물론 세계인들에게도 강동의 대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잠깐 당시의 기록을 살펴보면, 그저 경이롭기만 하다. 조별 리그에서 3·4위전까지 치룬 7경기에 붉은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이나 거리에서 응원한 인원은 대략 2,331만 명에 이르고, 한 경기당 평균 333만 명이나 응원에 참여한 것이다.(정태환<2002년>의 자료를 참조해 재작성한 것임.) 

이 숫자는 전체 국민의 절반이 기꺼이 붉은악마가 되었고, 매 경기마다 경상남도 도민 전체가 경기장을 찾고, 거리로 나선 셈이다. 이런 폭발적인 응원은 세계 그 어디서도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기록이다. 매번 본선 본선에 나가 단 1승도 하지 못하던 대표 팀의 선전에 전 세계가 놀랐고, 대형 국기나 치우천왕의 깃발을 앞세우고, 붉은 유니폼과 태극무늬로 통일한 붉은 악마들의 힘찬 응원가와 구호 그리고 세련된 서포팅에 세계는 전율했다. 태극전사들의 4강 신화는 붉은악마가 그 원천이었다. 이들의 서포팅 역시 당시의 대표팀처럼 지칠 줄 모르는 강인한 체력과 불굴의 정신력 위에 거친 플레이로 무장한 잘 훈련된 전사들의 모습과 매우 흡사했다. 붉은 악마들은 경기 시작 한두 시간 전부터 응원을 시작해 경기가 끝날 때까지 선 채로, 응원가를 부르고 박수와 함께 ‘대∼한민국’ 구호를 외치며 함성을 질렀다. 단 한 순간이라도 노래나, 구호, 함성이 끊기는 법은 없다. 붉은 악마는 대한민국을 하나로 만드는 구심점이 되어 대표팀의 승리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비록 적이라도 페어플레이에 박수를 보내며 결과와 관계없이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무한의 신뢰와 격려를 보냈다. 당시 여러 외신에서 소개한 세계 축구 전문가들의 이야기는 종합해보면 다음의 두 가지였다. 그들은 먼저 이구동성으로 “한국 응원단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는 한결같이 “한국 축구의 4강 신화는 아마도 여기서(붉은악마와 거리응원) 나온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뭔가 큰일을 낼 것 같은 기대는 아쉽게도 한 여름 밤의 꿈처럼 사라졌지만 붉은악마와 거리응원의 저력은 우리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2002년 월드컵의 붉은악마들의 서포팅. 숙적 일본과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내걸리는 대형 응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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