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윤동일


군사훈련용으로 개발된 스포츠, 축구이야기

축구의 또 다른 이름 ‘전쟁’ - 12번째 선수들의 축구전쟁 ②


축구 전쟁은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이는 잘못된 것이다. 축구 전쟁은 그라운드에서 뛰는 11명의 선수들로 한정되지 않고, 경기를 관람하는 스탠드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경기장 밖에서도 벌어진다. 축구를 논할 때 서포터들의 집단응원은 빼놓을 수 없는 좋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일반적으로 이들의 승부는 경기 성적에 반영되지 않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결정적인 호기를 제공하기도 하고, 승패와 직결되기도 하며 극단으로 흐를 경우, 오히려 이긴 쪽에 더 불리한 조치가 따르기도 한다. 비록 직접적이지는 않아도 간접적으로나마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은 물론이고, 심판들에게도 심리적인 영향을 미쳐 승패를 좌우하는 큰 변수로 작용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들은 선수들과 같은 유니폼을 입지만 그라운드에서 뛸 수는 없다. 그래서 이들을 그라운드에서 뛰지 않는 또 다른 선수라는 의미로 ‘12번째 선수’라 부른다. 

오늘날 국가대표팀을 포함해 클럽팀은 물론이고, 심지어 어지간한 아마추어 팀들도 응원단(서포터즈)을 조직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통상 이들에게도 한둘의 라이벌은 있고, 이 둘의 한 판 승부는 그라운드에서 펼치는 경기와 비교해 절대 뒤지지 않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들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치열하다.


축구의 기원을 언급하면서 이미 축구가 전쟁에서 유래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축구의 서포터 역시 전쟁의 산물이라는 상상도 가능하지 않을까? 지금부터 세계적인 축구강국들의 서포터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➊ 잉글랜드 

축구 종가 잉글랜드는 아주 매력적인 서포터를 가지고 있다. 19세기 근대축구의 기틀을 잡고 처음 경기를 시작했을 당시 만해도 대부분의 관중들은 여유가 있는 고상한 귀족들이었기 때문에 경기장은 조용하고 품위 있는 사교장 같은 분위기였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 축구 대중화와 함께 중산층과 노동자 계층으로 확산되면서 전체 축구 인구가 늘어나자 경기에 뛰지 못하는 선수들과 애초부터 응원에만 관심 있던 계층들이 합세해 경기장은 관중들로 북적였고,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는데 이 때부터 조직적인 응원이 시작됐다.

처음으로 응원가를 만들어 합창하면서 서포팅을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후반 영국의 리버풀FC로 알려져 있으며 그 이후로 관중들은 유니폼을 함께 입고, 스카프를 흔들거나 초대형 깃발로 응원석을 뒤덮는 응원을 보이기 시작했다.(민학수<2002>의 내용을 재구성한 것임.)

당시 리버풀FC 3)의 서포터인 ‘더콥(The Kop)’은 같은 지역 출신의 세계적인 록 밴드 ‘비틀즈’의 노래들 중에서 선곡해 합창으로 들려줌으로써 선수들의 사기를 올리고 힘을 북돋아 주고자 했다. 물론 경기장에서 노래를 부른 일은 이전에도 몇 번 있었지만, 경기장 안에서 단체로 노래를 부른 일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더콥은 ‘노래하는 서포터4)’라는 애칭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더콥의  잉글랜드는 별도의 응원 도구 없이 육성과 박수만으로 응원하는 전통이 생겼다. 그래서 1980년대부터 잉글랜드 전역에서 결성된 응원단 ‘풋볼 서포터스 페더레이션(Football Supporters’ Federation)’은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의 서포터에 비해 많은 치장을 하지 않으며 아무런 반주 없이 손장단에 맞춰 응원가를 합창하고, 힘찬 구호를 외치며 함성을 보내는 등 단조로워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구 종가의 명성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응원을 보고 있으면 상대 팀과 선수들 그리고 응원단까지 압도해 버리는 카리스마와 힘이 느껴진다. 물론 상대 선수에게 보내는 야유도 당하는 입장에선 심각하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본선에서 파라과이와의 경기에서 결승골5)은 서포터가 넣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데 이들이 응원가로 부르는 노래가 무려 1천곡이 넘는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는 그들의 국가 ‘신이여 여왕을 구하소서(God Save the Queen)’를 비롯해 비틀즈나 엘튼 존의 노래도 있다. 

가장 인기 있는 응원가는 잉글랜드 축구 선수들을 기리는 ‘월드 인 모션(World in Motion)’이나 한 때 영국 음반 차트 1위에 오른 ‘스리 라이언스 송(Three Lions’ song)’도 있다. 육성과 손이 전부인 그들의 서포팅에 중요한 것은 깃발이다. 아래 2006년 독일월드컵 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잉글랜드의 관중석에는 다양한 국기가 내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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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리버풀FC는 최초의 조직적인 서포터, 축구장 난동과 두 번의 대형참사, 더비 등 잉글랜드 축구역사와 문화 형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4) 당시 러버풀FC의 서포터 더콥(the Kop)이 잘 부른 노래는 1963년에 발표된‘You'll never walk alone.’였는데 이유는 가사가 마치 더콥의 서포터 정신을 대변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에 더콥의 주제곡처럼 자주 애창되었다. 그리하여 안필드(Anfield)에 위치한 홈 경기장의 정문(상클리 게이트)에 그리고 1992년부터 클럽의 엠블럼에도 위의 문구를 새겨 넣었다.

5) 본선에서 만난 잉글랜드와의 첫 경기에서 파라과이는 전반 시작 3분 만에 중앙선을 조금 넘어선 지점에서 파울로 프리킥을 허용했다. 키커는 당시 주장이자 오른발 프리킥의 마술사 데이비드 베컴이었고, 그의 프리킥은 198cm의 장신 포드 피터 크라우치의 머리를 벗어났지만 뒤에서 달려들던 파라과이 주장(가마라가)의 머리에 맞고 골로 연결됐다. 결국 파라과이는 어이없는 실수를 만회하지 못하고 0-1로 패하고 말았다. 필자가 다시 봐도 베컴의 프리킥이 위협적이었다고 보기는 어렵고, 오히려 스탠드의 대부분을 점유한 잉글랜드 서포터들의 함성과 야유 때문에 실점했다고 하는 것이 훨씬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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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게오르기우스의 십자가를 나타내는 국기를 내세워 열광적인 서포팅을 자랑하는

 ‘잉글랜드의 축구 서포터 연합(Football Supporters’ Federation)‘



➋ 스코틀랜드

스코틀랜드의 서포터는 독특하게도 서포터 이름에 잉글랜드와의 오랜 악연이 담겨져 있다. 서포터의 공식 명칭은 잉글랜드 군대를 무찔렀던 스코틀랜드의 자랑스러운 군대 ‘타탄아미(Tartan Army)’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만큼 스코틀랜드인들은 잉글랜드의 지배를 치욕으로 생각하고, 잉글랜드를 상대하기 위해서라면 숙적 아일랜드와의 연합도 불사할 만큼 깊은 원한을 갖고 있다. 

서포터들의 복장은 대표팀의 컬러인 전통 체크무늬(tartan) 킬트(quilt)를 입고, 경기장에서 백파이프를 불며 성 안드레아(St. Andrea)의 십자가 깃발(스코틀랜드의 국기)을 흔들며 열성적인 응원을 펼친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소개한 셀틱FC와 영국 전체에서 가장 오래고, 거친 올드펌더비(Old Firm Derby)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주한 아일랜드인과의 심한 종교 갈등과 지역 경쟁 등 포함해 첨예한 대립관계에 있어 둘 사이의 경기는 매번 난동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철전지 원수인 이 두 팀이 어깨동무를 한 채 한 목소리로 응원하는 모습을 아주 드물게 볼 수 있는데 스코틀랜드나 아일랜드가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거나 그들의 숙적 잉글랜드 대표팀과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두 앙숙은 말 그대로 오랜 친구가 되기도 한다. 

물론 경기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전의 경쟁 관계로 다시 돌아간다. 스코틀랜드인들은 나라의 독립을 지켜낸 푸른 제복의 전사들이 응원하기 때문에 천하무적이 되기를 기원하는 것 같다. 참고로 필자가 아는 한, 세계 국가대표 팀의 서포터에 군대 이름을 붙인 사례는 스코틀랜드 말고도 한 팀이 더 있다. 이 사례는 뒤에서 자세히 소개하겠다.



전통의 체크무늬 킬트(quilt)를 입고 응원하는 스코틀랜드의 서포터 타탄아미(the Tartan Army)



➌ 아일랜드 

최근 아일랜드 대표팀은 2012년 유로대회에 이어 2013년 브라질월드컵 지역예선에서도 국민의 간절한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물론, 죽음의 조에 편성된 탓도 있겠지만 1승도 하지 못하고 전패의 성적으로 무기력하게 탈락하고 만 것이다. 대표팀의 성적이 이런데 서포터가 힘이 날 리 만무하다. 

하지만 아일랜드의 서포터(RISSC : the Republic of Ireland Soccer Supporters Club)들은 아무리 대표팀이 많은 스코어 차이로 지고 있을 때나 이미 탈락이 확정된 후 남은 경기를 치러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절대 자리를 뜨지 않고, 더 큰 목소리로 목이 터져라 응원가를 부르며 독특한 서포팅으로 선수들을 독려한다.

특히, 경기에 지고 있을 때 팬들이 선수들을 위로하기 위해 부르는 응원가는 아일랜드의 자존심을 상징한다. 이 노래는 잉글랜드의 지배를 받았던 민족의 설움을 달래고, 서양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정신을 그리고 있으며 1840년대에 찾아온 대기근을 극복해가는 불굴의 의지 등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져 있다. 1870년대에 만든 이 곡(피터 세인트 존 작곡, 아덴라이의 평원<Fields of Athenry>)은 지난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때부터 아일랜드 팬들이 선수들에게 불러 주기 시작했는데 마치 우리의 ‘아리랑’과 유사한 곡으로 생각하면 무리가 없을 듯하다. 또한 아일랜드의 서포팅은 ‘포즈난(Poznań) 응원’으로 부르는 독특한 응원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응원은 서포터들이 ‘경기장을 등지고 어깨동무를 한 채 펄쩍펄쩍 뛰면서 하는 응원’으로 폴란드의 포즈난을 연고로 하는 레흐포즈난(Lech Poznań) 팀의 서포터들이 가장 처음 시작한 것이 원조다. 

이후 셀틱FC의 서포터들이 따라 했고, 후일 국가대표 경기에서도 연출하면서 유럽과 세계에 전파되었다. 다소 의아한 것은 경기를 보지 않고 응원한다는 것은 팀의 승리를 확신하거나 예상되는 경우에나 가능한 얘기인데 본래 의도와 아일랜드 대표팀의 상황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일랜드 서포터들은 경기 승부와 관계없이, 오히려 더 절망적인 상황이 전개될수록 포즈난 응원에 더 많은 힘을 준다. 그리하여 그라운드를 등진 채 어깨동무를 하고선 아덴라이 평원의 노래를 목청껏 부르며 대표팀과 선수들에게 무한의 신뢰와 사랑을 보내는 모습은 아일랜드 서포터의 새로운 아이콘이 되었다. 최근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의 위업을 달성하기는 했지만 내내 부진한 경기로 일관했던 우리 대표팀을 위해 붉은악마도 이 서포팅을 도입했는데 이를 계기로 ‘아시아의 아일랜드 서포터’에 비유되기도 한다.



녹색의 아일랜드 서포터(the Republic of Ireland Soccer Supporters Club / RISSC) 와 이들이 경기에 질 때면 어김없이 모두가 뒤로 돌아 어깨동무를 한 채로 뛰며 노래 부르는 ‘포즈난(Poznań) 응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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