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윤동일


군사훈련용으로 개발된 스포츠, 축구이야기

- 축구의 발전은 더비에서 비롯되었다 (2)


2. 총성 없는 전쟁, 축구 라이벌전

오늘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더비(derby)의 시작은 19세기 중반 영국의 작은 도시 더비(Derby)에서 기독교 사순절 기간에 성베드로(St Peters) 팀과 올세인트(All Saints) 팀이 격렬한 축구경기를 벌인 데서 유래됐다. 앞서 언급한 7개의 더비를 차례대로 소개하고자 한다.




①스페인의 엘 클라시코(El Clásico) 


스페인 명문구단으로 카스티야를 대표하는 레알 마드리드 CF(Real Madrid Club de Fútbol, 1902년 창단)와 FC 바르셀로나(Futbol Club Barcelona, 1899년 창단)의 경기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는 더비 중의 더비이다. ‘고전의 승부’라는 더비 이름에 걸맞게 110년이 넘는 유서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1902년 스페인 국왕컵대회에서 만나 첫 경기를 가진 이래 2012년까지 220회 이상의 맞대결에서 승부를 다퉜다. 양 팀의 로고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국왕 알폰소 13세가 너무 좋아한 나머지 자신의 왕관(문양)과 호칭(‘레알’은 영어로 ‘royal’ 즉, 왕이 인정한 팀을 의미함.)을 하사할 정도로 레알 마드리드는 왕정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지만 바르셀로나는 사정이 달랐다. FC바르셀로나의 회장은 카탈루냐 출신의 좌익 성향 정치인으로 반란까지 일으켰던 프랑코의 정적이었기 때문에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바르셀로나는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심지어 그들의 언어도 쓰지 못하는 상황까지 몰렸는데, 한 때 팀 이름도 카스티야식으로 강제 개칭해야만 했었다. 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두 팀의 경쟁은 팀의 색깔, 선수 구성, 구단 경영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상반된 성격을 보였다. 왕실의 팀, 레알은 막강한 중동의 오일달러를 기반으로 호나우두, 베컴, 호날두로 이어지는 톱 플레이어들을 영입해 평균 연봉이 세계 1위인 ‘우주 방위군’ 클럽이 되었다. 반면, 바르샤(Barca : 바르셀로나의 애칭)는 레알처럼 스타를 영입하는 것이 아니라 리오넬 메시처럼 유소년을 키워 스타로 만드는 시스템을 갖고 있으며 팬 17만 명 모두가 주주인 ‘시민 구단’으로 광고도 받지 않는 진정한 스포츠클럽임을 자랑으로 생각했다. 물론 지금은 외부 스폰서십을 받아 달라졌지만 적어도 2006년까지는 바르셀로나 시민들의 모금을 통해 운영되는 클럽이었다. 이 두 구단은 최근 포브스에서 실시한 세계적인 스포츠 클럽의 평가 1위와 3위를 차지한 바 있다. 잘 아는 맨유는 오랜 1위 자리를 내주고 2위로 밀려 났다.



②스코틀랜드의 올드펌더비(Old Firm Derby)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우(Glasgow)를 연고로 하는 셀틱FC(Celtic Football Club) 와 레인저스FC(Rangers Football Club) 간의 라이벌전이다. 올드 펌(Old Firm)이란 ‘오랜 친구’란 의미이지만 두 팀의 경기는 절대 친구 같지 않다. 레인저스는 스코틀랜드 북부 고산지대에 사는 소년들이 당시 글래스고우에 유명한 럭비 팀의 이름을 따서 1870년대에 만든 팀이지만 셀틱은 아일랜드에서 이주한 공장 노동자(특히, 조선업)들이 1887년에 만든 팀이다. 뭔가 이 두 팀은 탄생부터가 심상치 않다. 모든 것이 생소한 이주민들에게 셀틱은 유일한 희망이자 자랑거리로 모든 아일랜드인들의 구심점이 되었다. 반면 땅주인 스코틀랜드인들은 이주민들이 자기 땅에서 사는 것도 배가 아픈데 축구로 기고만장해지는 모습을 더 이상 봐 줄 수가 없다며 레인저스를 적극 지지하면서 아일랜드 대 스코틀랜드의 대결 구도는 형성되었다. 여기에 종교적 갈등이 둘 사이의 경쟁을 더욱 부추겼는데, 셀틱 서포터들은 아일랜드계 가톨릭 신자들이 주를 이루고 있으나 레인저스의 서포터들은 스코틀랜드계 개신교 신자들이 대부분이어서 이들의 충돌은 불을 보듯, 빤한 일이었다. 예를 들어, 셀틱 서포터들은 경기 때마다


 아일랜드의 국기를 흔들지만 반대로 레인저스 서포터들은 영국의 국기를 흔들어 댄다. 이런 서로의 반감 때문에 매 경기마다 선수는 물론이고 서포터즈의 충돌은 당연한 일이었으며 심지어 목숨을 잃는 경우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스코틀랜드의 자랑이다. 이 두 팀이 거둔 성적은 프리미어리그 우승 97회, 컵 우승 68회, 리그 컵 우승 41회로 ‘물반 고기반(실제 두 팀이 우승 아니면 준우승을 번갈아 하는 경우가 많았다.)’으로 부를만하다. 이들의 더비는 스코틀랜드에서 프리미어리그가 시작된 것이 1888년이니 아마도 여기서 소개한 더비 중 가장 오랜 더비로 생각된다. 무려 125년 동안 400회가 넘는 더비를 해 왔다니 놀랍기만 하다. 헌데 최근 무슨 일인지 두 팀의 경기를 볼 수 없다. 알고 보니, 레인저스가 사기를 당해 지난 2012년 6월, 프리미어리그에서 퇴출당해 그동안 두 팀의 더비를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이 때 당한 사기로 영국 국세청이 레인저스의 세금 채납액을 회수하기 위해 대물변제 조치를 취하면서 해단 절차에 들어갔고, 140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스코틀랜드의 최고 명문 축구 클럽 레인저스 FC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셀틱의 팬들 중 일부는 레인저스를 원숭이에 비유하는데 부르고, 레인저스가 강등된 것을 'Monkeys Gone', 레인저스가 없는 SPL을 가리켜 'No More Monkeys'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행히 새로운 레인저스가 4부 리그에서 뛰고는 있지만 이 팀이 연속 승격을 한다고 해도 2016-17 시즌이 되어서야 프리미어리그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벌써부터 올드펌더비가 그리워지려 한다.



③머지사이드더비(Merseyside Derby) 

잉글랜드 머지사이드 주의 리버풀을 연고지로 한 리버풀 FC(Liverpool Football Club, 1892년 창단)와 에버튼 FC(Everton Football Club, 1878년 창단)의 경기로 1892년 처음 시작한 두 팀의 더비는 잉글랜드에서는 가장 오랜 더비이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격렬한 경기를 자랑한다. 두 팀의 만남은 좀 특별하다. 1892년 에버튼이 땅주인과의 마찰로 지금의 리버풀 소재의 구디슨 파크로 홈구장을 옮겼고, 이어서 같은 연고지(안필드)에 리버풀이 창단해 자리를 잡으면서 두 팀의 더비는 시작됐다. 이 더비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가운데 가장 거친 경기로 유명하다. 특히, 가장 많은 퇴장 기록은 그들의 자랑이기도 하다. 1992년 잉글랜드 프로축구가 EPL로 재탄생한 이후 총 31차례 격돌한 두 팀의 더비 매치에서 무려 16명이 퇴장 당한 기록은 단연 톱이다. 실제 이 두 팀의 경기 사진들을 살펴보면, 다른 더비에 비해 선수들이 엉켜있거나 경고 또는 퇴장 카드를 받는 장면이 유독 많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아래 중앙의 사진은 제라드가 악동 시절에 퇴장당하는 모습(제라드는 선수 기간 중, 두 번의 퇴장 당했는데 이 사진은 1999년으로 추정함.)이다. 또 서포터즈의 반응도 유별났는데 에버튼의 한 선수가 특점에 성공한 후, 리버풀의 서포터즈 앞에서 멋진 세리모니를 했다가 피자와 오물을 뒤집어 쓴 사례도 있었다. 이 거친 더비의 별명에는 특이한 것이 하나 있다. 팬들 가운데는 이 두 팀 모두를 지지하는 가족 서포터들이 많이 있다고 해서 ‘Friendly Derby’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고 있다. 아래 오른쪽 사진은 에버튼 서포터의 한 청년이 리버풀을 응원하는 노인을 부축(An Evertonian helos a Kopite down the stairs.)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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