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윤동일


군사훈련용으로 개발된 스포츠축구이야기

축구는 영국에서 처음 시작한 것일까?


축구의 기원②-2 서양 : 중세의 공놀이


고대 그리스의 공놀이는 로마군을 통해 철저하게 전투성으로 무장했고이런 성향은 중세를 거치면서 더욱 증폭되어 유럽의 각지에 전파되었으며 그 결과 놀이라 부르기 어려운 수준의 과격한 격투경기가 도처에서 성행했다이런 현상은 그리스나 이탈리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바다 건너 잉글랜드도 마찬가지였으며 심지어 예술을 사랑하는 프랑스도 예외는 아니었다그리고 재능이 있는 특정 소수가 아니라 마을 등 공동운명체의 구성원 전체가 참가하는 집단 경기로 발전했기 때문에 이를 통칭해 집단축구(Mob Football)’라고 부른다중세 유럽인들을 열광시켰던 집단축구는 지역이나 시기와 상관없이 역사적으로 전쟁에 뿌리를 두고 있어 실제 전투를 모방하거나 전투 상황을 상정한 경기였다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조금 과장해 표현하면 고대의 공놀이는 중세에 비하면 오히려 일정한 형식에 맞춰 추는 집단 군무나 제례를 연상할 정도였다.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가면서 축구는 폭발적으로 확산되었다비교적 얌전했던 고대 공놀이는 점차 과격한 격투경기로 변모했고급기야는 거의 모의전투’ 아니 전투 그 자체로 부를 수 있을 만큼 격렬한 경기가 되어 버렸다이렇게 된 배경엔 로마군의 역할을 도외시 할 수 없다로마가 전쟁을 통해 대제국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점령지에 주둔한 로마군의 전쟁방식이 가미되어 더욱 치열한 스포츠가 되었다결국 로마제국의 시기(43~410)에 로마 군인들이 유럽 전 지역에 주둔하게 되면서 각지에 축구를 전파했고그 결과 나라마다 각양각색의 축구경기가 생겨난 것이다로마의 속주가 된 영국에서는 같은 섬나라임에도 불구하고잉글랜드에서는 마을 전체가 참가하는 쉬로브타이드 풋볼(Shrovetide Football)’을 즐겼고아일랜드에서는 독특한 민속경기 게일릭 풋볼(Gaelic Football)’이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였다물론 이들의 경기방식은 같은 축구지만 전혀 달랐다이탈리아에서는 칼치오(Calcio)’라 하여 규칙의 제한 없이손과 발 등 신체를 사용하여 상대방 골문에 득점하는 경기를 즐겼고프랑스에서는 추수 후에 밀기울이나 건초 등을 채운 공을 신체의 모든 수단을 동원해 상대 진영에 옮겨 놓는 경기인 (Soule)’이 성행했다.



1.잉글랜드의 쉬로브타이드풋볼(Shrovetide Football)

잉글랜드의 쉬로브타이드풋볼은 비교적 간단했다양 팀은 서로 맨몸으로 출전해 돼지 방광 같은 것에 공기를 채운 공을 서로 합의된 지점으로 옮기는 쪽이 이기도록 한 것 이외에는 특별한 경기규칙이 없었다규칙에 제한이 없으니 그 치열성은 가히 짐작되는 부분이다인원도 제한이 없어 마을 대항전의 경우 한 팀이 무려 500명이나 됐다는 기록도 있으며 목사나 신부도 예외일 수 없었다놀라운 것은 주먹과 발로 차는 것은 물론물어뜯거나 눈을 찌르는 행위도 허용됐는데 쇠붙이나 돌멩이를 휴대하지 않는다면 모든 행위가 가능했다당시엔 골대가 없었으니 서로 합의된 지점(Goal)을 마을마다 있는 교회로 정하고여기서 시작해 광장을 지나 골목골목을 누비며 상대편 교회에 공을 들여놓으면 시합은 끝난다경기시간 제한도 없고서든데스(득점과 함께 경기가 끝나는 방식)로 진행됐기 때문에 무득점이면 이틀 이상 지속되는 경우도 있었다교회의 의미를 잘 생각해 보면 여기를 허용한다는 것은 마을로써는 더할 수 없는 수치로 인식했기 때문에 소속이나 단결 정도에 따라 경기는 전쟁 수준으로 발전되기 십상이었다이로 인해 한 경기에서 수십 명의 부상자는 물론이고심지어 사망자도 속출했으나 그 중독성은 더욱 증폭됐다이를 심각하게 여긴 황실에서는 무려 42번이나 법으로 금지했지만 그 뿌리를 뽑을 수는 없었다신사의 나라 영국에서 이런 야만적인 경기가 성행했다는 점은 아이러니지만 돌멩이나 무기를 휴대하지 않는다면 오심 논란이나 승패에 대한 항의경기몰수 등 그 어떤 추잡한 행위도 존재하지 않았다이런 관점에서 역설이지만 축구를 가장 신사적인 경기라 규정할 수 있는데 신사의 나라 영국의 이미지와 가장 잘 어울린다고 할 수 있다.


   잉글랜드의 쉬로브타이드 풋볼(Shrovetide Football)



2.아일랜드의 게일릭 풋볼(Gaelic Football)

잉글랜드에 쉬로브타이드 풋볼이 있다면 아일랜드에는 게일릭 풋볼이 있다이 경기는 아일랜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로 꼽히는 이 경기는 케이드(caid)로 알려진 중세의 민속경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경기방식을 보면 쉬로브타이드 풋볼이나 현대의 축구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다른 경기와 달리 한 팀의 선수는 25명으로 제한하고경기 중에는 당연 손의 사용은 허용되었으나 공을 손으로 던지는 행위는 금지되었다다만손이나 발로 드리블을 하거나 상대방의 골문을 향해 주먹으로 공을 치거나 펀트하는 것은 허용했다득점은 골포스트의 크로스바 위로 넘기면 1골포스트와 크로스바 사이의 골 망에 넣으면 3점을 얻도록 하고 있어 럭비와 유사한 차등 득점을 적용하고 있는 셈이다게일릭 풋볼은 풋볼이라는 이름을 붙여 축구로 위장했지만 축구와 럭비 두 종목을 합친 특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고좀 더 엄밀하게 말하면 럭비에서 분기(分岐)된 경기로 보는 것이 옳다물론 경기 사용구는 타원형의 럭비공이 아닌 축구공처럼 둥글 것을 사용한다.



  

아일랜드의 게일릭 풋볼(Gaelic Football)



3.이탈리아의 칼치오(Calcio)

이탈리아는 12세기 경 부터 중북부의 많은 도시가 자치도시로 독립되었는데 이 도시들은 주변의 농촌지역까지 관장하면서 도시국가로 발전되었다이런 이탈리아의 도시국가 중심의 시스템은 이후 이탈리아가 통일(1871)되기까지 끊임없는 전쟁과 함께 지역감정의 원인이 되었으며 유달리 강한 승부욕과 응원문화를 가진 배경이 되기도 했다어쨌든 14세기에 들어 피렌체를 중심으로 칼치오 경기가 행해졌는데 이 경기는 도시 축제의 일부로 행해졌다경기 방식은 시나 행정구에서 선발된 양 팀 선수 100여 명이 양 팀의 중앙 지점에서 경기를 시작하고자기 팀의 지역 경계선을 골로 사용하는 방식이었다비록 통일된 이후에도이탈리아 국민들에게 있어 축구란 단순한 운동경기가 아니라 도시와 도시간의 대항전 성격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이런 경쟁심이 배가되어 경기의 치열도는 극에 달했는데 아래 사진에 보는 것처럼 선수들이 공을 차거나 들고 뛰는 행위 말고도 공과 무관하게 상대 선수와 힘겨루기를 하거나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은 물론이고심지어는 주먹다짐을 교환하거나 발로 차는 행위까지도 허용되었다칼치오의 경기 모습을 보면 오늘날 가장 격한 스포츠로 인정되는 럭비와 흡사한 것처럼 보이나 오히려 럭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거친 경기였다칼치오에 대한 이탈리아인들의 관심과 자부심은 남다른데 오늘날 프로 축구팀들의 이름에서도 그 흔적을 엿볼 수 있다예를 들면 우디네세 칼치오’, ‘칼리아리 칼치오’, ‘카타니아 칼치오’ 등은 모두 중세에 집단 축구 칼치오를 즐겨 했던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탈리아의 칼치오(Calcio)



4.프랑스의 술(Soule)

프랑스에서는 술이라는 축구경기를 즐겨 했다이 경기는 19세기까지 브르타뉴와 피카르디 지방에서 성행하였고 공업화 이전에 농촌사회에서 행해지던 공동체 의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경기 방식은 양 진영의 선수들이 밀기울이나 건초더미를 채운 버드나무 가지로 만든 공인 술(soule)을 모든 신체적 수단들을 동원하여 상대 진영에 옮겨다 놓는 경기였다아래 삽화에서도 보듯이 이 경기 역시 로마나 영국에서와 마찬가지로 프랑스 군대에 보급돼 군사훈련을 위한 정식 과목으로 채택했음을 알 수 있다.  


  

프랑스의 술(Sou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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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기사: www.sportnest.kr/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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