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윤동일 (국방부)

 

        1936년 LA 올림픽 육상 5000m 결승 경기에서 핀란드의 라우리 라티넨과 미국의 랄프 힐이 접전을 벌였다. 결승선을 얼마 남겨놓지 않고 라티넨이 한 발 앞서 달렸고 그 뒤를 힐이 바짝 추격했다. 힐이 사력을 다 해 라티넨을 앞서려고 바깥쪽으로 빠져 나오려는 순간이었다. 라티넨이 힐의 앞을 가로 막는 것이었다. 멈칫하던 힐은 다시 방향을 고쳐 안쪽으로 추월하려 했다. 그러자 라티넨이 또 그 쪽으로 몸을 트는 것이었다. 주춤할 수 밖에 없는 힐이었고 그렇게 라티넨과 힐은 거의 동시에 골인했다. 사진 판독 결과 라티넨의 우승으로 결정이 났다. 그러나 관중석에서 야유의 함성이 이는 것이었다. 달리기 경주에서 앞지르려는 선수의 길을 막으면 실격으로 처리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관중들이 라티넨의 우승을 비난하는 것이었다. 마지막에 힘이 달려 비틀거렸을 뿐인 라티넨은 관중들이 왜 소란을 피우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필름을 보고서야 당시의 상황을 알게 된 라티넨은 얼굴이 붉어졌다. 분명한 진로 방해였던 것이다. 라티넨은 그 즉시 힐에게 달려가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했다. 그러나 힐은 오히려 민망해 하며 라티넨의 우승을 축하해 주는 것이었다. 곧 이어 시상대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진풍경이 펼쳐졌다. 자신이 우승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라티넨은 힐을 한사코 맨 윗자리로 밀었고, 힐은 어림없다는 표정으로 사양하는 것 아닌가. 이 둘의 실랑이를 관중석에서도 다 볼 수 있었다. 당시 메인스타디움에서 관전하던 모든 관중들은 이 들의 아름다운 스포츠 정신에 뜨거운 박수와 갈채를 보냈다. 


  2004년 아테네국제육상선수권대회에서 남자 마라톤에서 결승점을 눈앞에 두고 넘어져 우승을 놓친 유명한 사례가 있다. 브라질 선수 리마는 결승점 4Km를 남겨 두고 선두를 달리다 한 아일랜드 종말론자에게 밀쳐 넘어졌다. 그대로 속도를 유지하면 우승은 문제없는 상황에서 벌어진 이변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4년을 준비해 금메달을 눈앞에서 놓친 것이다. 아니 도둑 당했다는 것이 옳을지 모르겠다. 화가 날 법도 하건만, 결승점에 도착한 그는 얼굴에 천진난만한 웃음과 멋진 세리모니를 보여 주었고, 시상대에서 그렇게 고대하던 금메달이 아닌 동메달을 목에 걸고도 그 어떤 원망이나 몸짓도 없었다. 후일 아일랜드 정부는 그를 초청하여 국민적 사과와 함께 국빈의 예우를 보여 주었다. 아래 사진에 보는 것처럼 은메달도 아닌 동메달을 목에 걸면서 보여준 밝은 모습은 개인적으로 모든 스포츠에서 성공했던 그 어떤 선수보다 행복한 모습 그 자체로 쉽게 잊혀 지지 않는 역사적인 장면으로 기억한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마라톤에서 관중이 뛰어 들어 역주하는 반다라이 리마를 방해하는 장면과 3위로 골인하면서도 천진난만한 모습을 잃지 않는 그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다음 내용은 앞서 소개한 랜스 암스트롱의 사례이다. 최근 금지약물 복용으로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그의 이야기 가운데 2003년에 열린 ‘투르 드 프랑스대회’는 유난히 특별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사이클 구간 독주 경기로 피레네 산맥을 횡단하는 코스를 20구간으로 나누어 20일 동안 경기가 치러지며 각 구간의 기록을 합산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개인독주 경주다. 당시 15일까지 선두를 달리던 랜스 암스트롱은 응원을 나온 꼬마 아이의 가방을 피하려다 넘어지게 되었다. 당시 2위로 불과 15초 차이로 뒤를 쫒던 독일의 얀 울리히는 암스트롱 때문에 만년 2인자로 있었기에 이 불의의 사고는 그에겐 곧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만년 2위에서 1위로 우승을 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무슨 일인지, 그는 추월하지 않았고, 오히려 암스트롱이 다시 일어나 레이스를 재개할 때까지 페달을 멈추고는 기다려 주었다. 결과는 암스트롱이 1위, 얀 울리히가 2위를 차지했다.

 

경기가 끝난 후, 울리히의 입장을 잘 알고 있었던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그는 기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물론 나는 기다릴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불운을 이용하여 이 경주에서 승리하였다라고 한다면 그러한 경주는 승리할 가치가 없었을 것입니다." 당시 이 장면은 세계에 알려졌고, 우리나라의 한 시인(박노해)은 “1위로 달리던 암스트롱이 응원하는 아이의 가방을 피하려다 그만 넘어져 나뒹굴었습니다. 겨우 15초차로 뒤쫓던 독일의 울리히 선수는 만년 2위의 한을 벗어 던질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멈췄습니다. 암스트롱이 다시 일어나 달리기 시작할 때까지 그는 묵연히 멈춰서 있었습니다. 숨 가쁘던 피레네 산맥도 멈출 줄 모르고 질주하던 지구 위의 사람들도 울리히와 함께 숙연히 멈춰선 것만 같았습니다.”라고 표현했다. 만년 2인자의 자리를 선택한 울리히야 말로 진정한 스포츠맨십을 보여 준 귀감이 되었다. 랜스 암스트롱은 암 선고를 받고도 긴 투병생활과 함께 7연패의 위업을 달성하며 당대 최고의 선수로 평가되었고, 얀 울리히는 평생 동안 염원했던 정상의 자리를 정도(正道)가 아니라 하여 스스로 포기했다. 이 날의 경기는 두 선수에게도 변화를 주었는데 그동안 서로에게 정상의 자리를 노리는 라이벌의 관계를 뛰어 넘어 진정한 평생의 친구이자 동반자가 되었다.

 

암스트롱의 역경 스토리는 1996년 고환암과 세포 종양 선고를 받으면서 시작하여 수술과 화학요법을 병행하면서 1999년부터 2005년까지 7연패의 위업을 달성했고, 기간 중 ABC, AP통신, ESPN, Sports Illustrated 등이 주관하는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다. 그는 2005년 투르 드 프랑스를 마지막으로 은퇴한 후, 2007년 자신이 설립한 재단 활동에 몰입했는데 앤드레아 애거시, 무하마드 알리, 앤드레아 예거, 알론조 모닝, 제프 고든 등의 유수의 스포츠 스타들과 함께 재단(Athletes for Hope)을 확대했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2008년 현역에 다시 복귀하여 2009년 투르 드 프랑스 대회에 출전하여 그간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3위를 차지하는 놀라운 기록을 보였다. 다음은 그의 인터뷰 내용이다. “죽음의 문턱까지 다가가 보면 주변의 모든 것들이 깨끗하게 정리가 되면서 그 다음에 찾아오는 것은 찬란하게 빛나는 깨달음이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실감하고 나면, 매일 아침 신선한 기분으로 깨어나 내게 특별한 또 하루의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활기차고 목적의식이 뚜렷한 하루하루를 이어가자고 다짐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누가 내게 오로지 사이클에만 매달려 장대비 속에서도 여섯 시간씩 높은 산을 오르내리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면, 그게 바로 내 대답이다.” 얼마나 진한 감동의 순간인가? 이것이 다른 영역과 구별되는 스포츠의 진정한 힘일 것이다.

 

 

2003년 투르 드 프랑스대회에서 넘어진 랜스 암스트롱(미국, 사진의 왼쪽)을 기다려 준 얀 울리히(독일, 사진의 오른쪽)가 레이스를 마치고 악수를 나누고 있다. 이 대회를 계기로 둘은 진정한 친구가 되었고, 독일의 얀 율리히는 암스트롱 못지않은 세계적인 관심과 주목을 받았다.

 

스포츠의 본질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최고가 되기 위해 정진하는 자기 자신과 그리고 대적한 라이벌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한다. 그러나 경쟁에 비겁한 방법은 허용되지 않으며, 비록 라이벌에 비해 부족하더라도 인정되는 수단과 방법으로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결과는 그 다음의 문제인 것이다. 전쟁에서의 적은 영원히 그 적대감정이 지속되지만, 스포츠에서 건전한 경쟁을 겨루었다면 경기 후에는 모두가 친구이며 동반자이다. 그리하여 스포츠에서는 승자만 칭송받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한 패자에게도 아낌없는 박수와 무한의 후원을 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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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태승 2013.08.28 21:45 신고

    그 간의 글들 중 기억에 남는 씨리즈를 다시 읽어봤습니다.
    스포츠둥지 윤동일님께서 요즘에 많이 바쁘신가보네요.
    글들이 1달 가까이 올라오지 않는 것을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