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윤동일 (국방부)

 

            전쟁과 스포츠는 흔히 영역을 넘어 상대 영역을 은유한다. 이는 곧 영역 간 유사상과 차이점이 공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포츠는 전쟁에서 유래했지만 본질적으로는 ‘흥겹게 노는 행위(고대 영어의 display에서 유래했다.)’를 통해 부정적인 마음을 없애고, 인간성과 사회성을 완성하기 위한 활동이기 때문에 어떤 측면에선 전쟁과는 다른 성격의 활동으로 보인다. 이런 본질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상반된 의지를 가진 지적(知的)인 상대와 벌이는 무한경쟁 속에서 최고를 추구하는 공통점 때문에 실전에선 서로에게 훌륭한 스승이자 가이드를 제공해 준다. 반면에 상호 경쟁적인 신체활동은 적(enemy)으로부터 생명을 보존(to survive)하기 위한 전쟁과는 달리 서로가 합의한 규칙에 따라 페어플레이 정신을 준수하여 상대방(rival)과 경쟁하고, 비록 지더라도 깨끗하게 승복하며 다음을 기약한다. 전쟁과 마찬가지로 승리(victory)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지만 패했더라도 최선을 다해 겨뤘다면 아낌없는 박수와 찬사를 보내며 경쟁 자체를 즐기는(to enjoy) 행위로 간주하는 것은 둘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따라서 ‘규범성’은 스포츠와 전쟁을 구분하는 특징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특징이 된다.


  앞서 육상 종목에서 최근 발생한 이슈를 사례 중심으로 살펴보았는데 과연 마라톤은 어떨까? 비교적 익숙하지 않은 마라톤의 규칙과 이를 어긴 사례가 있다면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일반적으로 마라톤에 적용되는 규칙과 반칙에 대한 규정은 타 종목에 비해 비교적 간단하다. 아래 표에 보는 것처럼 경기에 준수해야 할 것 3개 조항과 범하지 말아야 할 7개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라톤은 수영처럼 자신만의 코스가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쇼트트랙스케이팅처럼 충돌이 있을 염려도 없는 경기이다. 그저 정해진 코스를 달리기만 하면 되는 경기이기 때문에 이변이 생길 일도 없어 보이는데 사실 올림픽의 역사에는 다른 종목과는 다른 다양한 상황에서의 이변이 많은 편이다. 1904년 제3회 세인트루이스올림픽의 마라톤 경기에서는 미국의 프레드 로쓰가 선두로 메인스타디움에 들어서자 장내는 환성의 도가니로 변하였고, 루즈벨트 대통령의 딸 아리스가 로쓰에게 월계관을 수여하였다. 그러나 로쓰는 반환점인 20㎞지점에서 지나가는 자동차의 도움으로 메인스타디움에 골인한 사실이 폭로 되었고, 본인은 물론 주최국 미국은 곤혹을 치러야 했다. 우승은 그로부터 약 1시간 후 미국의 토마스 힉스가 지칠대로 지쳐서 골인한 덕에 다행히 미국이 금메달을 잃지는 않았다. 1908년 4회 런던올림픽 마라톤에 출천한 이탈리아의 ‘피에트리 도란도’는 결승선 50미터 앞까지 여유롭게 선두로 질주했으나, 긴장이 풀려서인지 점점 휘청거리더니 결승선을 불과 10여 미터 앞두고 쓰려졌다. 이걸 애처롭게 여긴 심판들과 경기진행요원들이 도란도를 부축해서 질질 끌면서 결승선을 통과시켰다. 잠시 뒤에 2등으로 들어온 존 헤인즈가 격렬히 항의해서 도란도는 결국 실격 처리되었다. 기절해 있다가 병원에서 깨어난 도란도는 “나는 다른 사람의 도움 따위는 원하지 않았다.”면서 항의했지만 규정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어설픈 친절이 사람하나 망친 사례로 사진에서 도란도 왼쪽을 부축한 심판은 ‘셜록 홈즈’의 작가 코난 도일이다. 이때 도움을 준 심판들은 미국 선수가 우승하는 것을 두고만 볼 수 없어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이유야 어찌 되었던 그의 행동은 몇 되지 않는 마라톤의 규칙을 어긴 결과로 자국 선수의 실격을 조장한 셈이 되었다.

 

<표 4> 마라톤 규칙 

(1) 경기규칙
  1. 지정된 장소를 달리며,
  2. 참가자는 전문의사의 건강진단서를 제출하여야 하고,
  3. 음식물은 주최 측이 준비하되, 코스의 출발점에서부터 11km의 지점에 준비하고, 5km마다 두도록 되어 있다.
    선수는 자기가 희망하는 음식물을 신청하여 허락을 받으면 지정된 공급소에서 이용할 수 있다.
(2) 반칙에 대한 규정
  1. 다른 주자를 고의적으로 방해하는 행위
  2. 도구를 이용해 편법으로 뛰는 행위(고무줄을 발에 건다던가 하는 행위)
  3. 마라톤을 뛰기 전에 금지된 약물복용 행위
  4. 경기 중 의사나 타인으로부터 응급조치를 받는 행위
  5. 타인으로 부터 도움을 받는 행위
  6. 동반자와 함께 달리는 행위
  7. 자신의 그룹을 벗어나 앞 그룹에서 뛰는 행위 등  이 모든 행위는 실격으로 처리된다. 

 

누구나 한번쯤은 학창시절 체력검정을 포함하여 장거리를 달려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장거리를 달리는 경우 도중에 벌어지는 불의의 사고는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단순히 미끄러지거나 휘청대는 행위조차도 전체적인 리듬을 끊어 버리기 때문에 다시 회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 넘어지기라도 하는 날엔 그야말로 물 먹은 솜처럼 축 늘어진 몸을 빠른 시간에 다시 일으켜 원래의 페이스로 돌아가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것도 종반에 접어들면 더욱 그러하다. 2011년 대구국제육상선수권대회 의 첫 경기로 시작된 여자마라톤은 케냐 선수들의 잔치가 되었다. 40km까지 선두에서 뛰던 키플라갓은 대회조직위원회에서 제공하는 급수대 앞에서 물병을 잡으려다 팀 동료인 체롭과 다리가 뒤엉키면서 땅바닥에 무릎을 찧은 것이다. 체롭은 더 이상 뛰지 않고, 넘어진 그녀에게 다가가 상태를 걱정하면서 도움을 주었다. 규칙상 타인의 도움을 줄 수 없기 때문에 말로 격려와 가이드를 했다. 3위로 뛰던 젭투 역시 키플라갓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넘어진 키플라갓이 다시 일어나 뛰기를 시작하자, 나머지 두 명도 합세하여 무리를 이루어 역주했고, 막판까지 더 이상의 이변 없이 넘어지기 전의 순서대로 골인했다. 결국 케냐가 마라톤 역사상 최초로 같은 국가 선수들이 1위, 2위, 3위를 모두 차지하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이들은 대회전부터 “우리는 한 팀으로 뛸 것”을 선언했으며 이를 행동으로 지켰다. 당시 체롭은 “친구이자 팀 동료인 키플라갓이 쓰러진 것을 보고 그냥 뛸 수 없었다.”고 추월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던 기자들에게 답변했다. 이들의 팀웍과 우정은 결승점에 먼저 도착한 키플라갓이 이어서 도착한 젭투와 체롭을 껴안고 기쁨과 고마움을 나누는 감동의 장면을 연출하였다. 마라톤은 분명 개인경기임에 틀림없지만 이들은 마치 단체경기처럼 팀으로 달렸다.

 

1908년 런던올림픽 마라톤에서 경기진행 요원들이 부축하여 실격한 피에트리 도란도의 골인 장면과 이를 주제로 제작된 영화의 한 장면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1∼3위를 차지한 케냐 여자 마라톤 선수들과 40km지점에서 넘어진 후에도 1위로 골인한 키플라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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