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윤동일 (국방부)

 

         개인적으로 “인간은 도전할 때 가장 인간다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표현에 동의한다. 이런 측면에서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스포츠는 본질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인간성을 완성하고자 하는 대표적인 영역이다. 아래 표는 앞서 소개한 많은 스포츠 영웅들의 경구들을 정리해 본 것인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새삼스레 그들의 이야기를 되새겨 보는 것은 이를 통해 진정한 스포츠의 진목을 느껴 보고자 함이다.

 

 

스포츠 영웅들의 말 말 말 

- 카로리 타카스(헝가리, 속사권총) 
  : 내겐 아직 왼 손이 남아 있다. 오른손이 했는데 왼손이 못할 이유가 없다.


- 리차드 로스(미국, 수영)
  : 금메달을 따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지 수술이나 받으려고 온 것이 아니다.


- 아베베 비킬리(에티오피아, 마라톤) 
  : 더 이상 내 다리는 달릴 수 없지만 나에겐 아직 두 팔이 있다. 나의 조국이 강인하게 시련을 이겨냈다는 사실을 세계에 알리고 싶었다.


- 알 오터(미국, 원반던지기) 
  : 누군가가 내 갈비뼈를 뽑아내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처럼 고귀한 것은 없다.
   어떤 직업, 아무리 막강한 권력이나 돈도 올림픽의 경험에 비하면 보잘 것 없다.


- 이봉주(대한민국, 마라톤) 
  : 마라톤을 즐기지 못했다면 진작 은퇴했겠지만 달리는 게 좋아서 그냥 뛰다 보니 20년이 흘렀다.


- 피스토리우스(남아프리카공화국, 육상 400m) 
  : 패배자는 경주에서 맨 마지막에 들어오는 자가 아니다. 앉아서 구경만 하고 뛰어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 바로 패배자 이다.


- 아크와리(탄자니아, 마라톤) 
  : 내 조국은 레이스에 출전만 하라고 7000마일이나 떨어진 이곳에 보내지 않았다. 조국은 레이스를 끝내고 오라고 여기에 보낸 것이다.


- 호이트팀(미국, 마라톤/철인3종경기) 
  : 난 아들 없이는 달리지 않는다.(릭 호이트) 단 한 번만이라도 휠체어에 아버지를 태우고 내가 밀어 드렸으면  한다.(딕 호이트)


- 에밀 자토펙(체코, 육상 5천·1만/마라톤) 
  : 우리가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은 그가 4개의 금메달을 따냈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도 평범한 인간이었으며 자유와 존엄성을 위해 온몸을 던진 투사였기 때문이다.(국제육상연맹회장의 애도사)


- 알랑 미뭉(알제리, 마라톤)
  : 식민지 조국 알제리의 국민과 이 기쁨을 나누겠다.


- 손기정(대한민국, 마라톤) 
  : 기쁘기도 기쁘나 실상은 웬일인지 이기고 나니 기쁨보다 알지 못할 설움만이  복받쳐 오르며 울음만 나온다.   남승룡과 함께 사람 없는 곳에 가서 남몰래 서로 붙들고 몇 번인가 울었다. 이곳의 동포들이 축하하는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눈물만 앞선다. 지금 젊은 사람들은 나라 없는 설움에 대해서 모른다. 내가 우승한  뒤 일본 국가가 연주될 때, 나는 고개를 떨궜다.  

 

 

 

카로리 타카스(헝가리) 피스토리우스(남아프리카공화국) 호이트팀(미국)

에밀 자토펙(체코)과 알랑미뭉(알제리) 손기정(대한민국)

 

 

전쟁의 속성을 고려해 볼 때,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신체적 장애는 허용되지 않는다. 각 나라마다 전투군인을 선발하기 위한 조건은 엄격한 신체기준을 포함하여 까다롭고,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의 공무원에게 적용되는 정년은 적용되지도 않는다. 이는 전쟁이 극한의 고통이 수반되고, 이를 굳건히 견뎌야하기 때문이다.


  각색된 내용이기는 하지만 영화 300에서 스파르타의 군인이 되기를 희망했던 꼽추가 등장한다. 그는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며 레오니다스의 근위대에 입대하기를 희망했지만 방패를 들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한다. 고대 전쟁에서 방패는 칼이나 창에 비해 더욱 중요하다. 고대의 전투는 방진(Phalanx) 이라는 밀집대형을 갖추어 집단 대 집단이 격돌하는 전투양상을 보였다. 이 집단대형 안에서 방패의 역할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인접한 전우들의 생명을 온전히 보호하는 데 있다. 다시 말해 고대 그리스의 방패는 전쟁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수단이지만 이보다 집단전투의 대형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 우선이다. 따라서 고대의 전투에 있어 모든 전투원은 잘 쓰는 손과 무관하게 왼손에 방패를 들었고, 오른손에는 창이나 칼을 들었다. 고대의 전사는 전투에서 모두 오른 손잡이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교전하게 되면 두 집단은 서로 엉켜 오른쪽으로 돌게 되는 방향성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중요했던 방패를 들지 못하는 전사란 있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전쟁의 역사 가운데 가장 불굴의 의지로 장애를 극복한 사례가 있다.


  이 이야기는 열국지에 등장하는 마릉전투와 관련된 내용이다. 스승 귀곡자(鬼谷子)의 문하생으로 방연(龐涓)과 함께 수학한 손빈(孫賓)은 스승의 가르침대로 이름을 바꾸었다. ‘손님 빈(賓)’ 자에 ‘달 월(月)’을 합하면 전혀 다른 뜻이 되는데 ‘다리 자르는 형벌’을 의미하는 ‘빈(臏)’ 자로 개명하였다. 결국 그는 친구이자 동문수학한 위(魏)나라 방연의 시기와 질투 때문에 다리를 잘리게 되었고, 옥살이까지 하게 된다. 이 때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 미친 짓을 하게 되었고, 이를 본 방연은 손빈에 대한 경계심을 풀었다. 이 틈을 타 손빈은 스승의 도움을 받아 탈출에 성공하여 적국 제(齊)나라로 도주하였다.

적국의 군사(軍師)가 된 손빈은 이제 방연과의 일전을 위해 말 대신 가마를 타고 출전하였다. 성미가 급한 방연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손빈은 군사들의 야전 아궁이 터를 줄여 나가는 방법(‘감조<減灶>전술’이라 함)을 사용하여 방연의 조바심을 부추겼고, 급기야는 정예 군사를 차출하여 소수의 병력만을 이끌고 추적에 나선 방연을 함정에 빠뜨렸다. 허겁지겁 추격한 방연의 정예군이 도착한 ‘마릉(馬陵)’이라는 분지에는 손빈의 지시대로 모든 나무를 베어 내고 한 그루만 세워 두었고, 껍질을 벗겨 밤에도 쉽게 눈에 띌 수 있도록 하였다. 추격 중에 허허벌판에 우뚝 서 있는 나무 한 그루는 방연의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했고, 여기에 새긴 글씨를 보기 위해 횃불을 들자 손빈이 미리 배치해 둔 궁수들의 수많은 화살이 시위를 떠났고, 방연의 최후는 그렇게 종말을 고했다. 나무에는 어떤 내용이 적혀 있었을까? 내용은 이렇다. “방연이 이 나무 아래서 죽다.(방연사차수하<龐涓死此樹下> - 군사손빈<軍師孫臏>)” 이를 본 방연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이 이야기는 기원전 중국의 전국시대와 진(秦)나라를 배경으로 한 ‘열국지(列國志)’에 등장하는 유명한 ‘마릉(馬陵)전투’로 군인들에겐 ‘감조전술(減灶戰術)’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아마도 손빈은 기원전 전장에서 유일하게 중증장애(두 다리가 잘린)를 딛고 군사(軍師)에 오른 대표적인 인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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