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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영웅들의 감동 스토리- 초인(超人)을 요구하는 마라톤에 불편함은 허용될 수 있나?

 

 

글/ 윤동일 (국방부)

 

        마라톤은 극한의 체력과 정신력을 요구하는 운동이다. 마라토너는 대회 3∼4달 전부터 식이 요법을 병행하면서 하루 수십 킬로미터씩 달리는 지옥훈련을 이겨내야 한다. 또 마라톤은 인간의 몸 전체에 무리가 아닐 수 없다. 너무 많이 뛰면 무릎과 발목이 약해지고 스피드가 떨어지며 결국 선수로서의 생명력이 바닥나게 된다. 이러다 보니 세계 유명 선수들도 통상 공식대회를 15번 정도 참가해 완주한 후에는 은퇴를 하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선수 가운데 공식 대회에 무려 43회나 출전해 41회를 완주한 선수가 있다. 2009년 10월 데뷔 20년 만에 은퇴한 이봉주 선수다. 1990년 전국체전에서 마라토너로 데뷔한 그는 20년 후 같은 대회에서 우승하며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불혹(不惑)을 눈앞에 둔 마라토너의 대회 참가 자체가 뉴스였는데 그는 젊은 선수들을 제치고 우승까지 차지했다. 그는 짝발이면서 평발이다. 마라토너에게 치명적인 신체 조건이다. 왼발이 오른발보다 작아 뛸 때마다 몸이 왼쪽으로 기울고, 평발이라 다른 선수들에 비해 체력 낭비도 심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약점을 의식하지 않았다. 마라톤에서 선천적 천재성보다 후천적 노력이 훨씬 중요하다고 믿고, 달리고 또 달렸다. 그 결과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 2001년 세계 최고 권위의 보스톤마라톤 우승,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및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2연패 등을 이뤄냈다. ‘봉달이’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치열한 승부 근성과 집념으로 유명하다. 한 번도 올림픽 금메달을 딴 적이 없지만 그 덕에 계속 도전해야겠다는 목표 의식을 가질 수 있었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했기 때문에 힘든 훈련도 참았다. “마라톤을 즐기지 못했다면 진작에 은퇴했겠지만 달리는 게 좋아서 그냥 뛰다 보니 20년의 세월이 흘렀다”며 스트레스 해소법조차 가볍게 뛰면서 음악을 듣는 일이라고 말했다. 아직도 국내 남자 마라톤 최고 기록은 2000년 도쿄마라톤에서 짝발과 평발을 가진 그가 세운 2시간 7분 20초에 머물러 있다.

 

 

이봉주 선수(2001년)          에티오피아의 아베베 선수(1960년, 1964년)          탄다니아의 아크와리선수(1968년)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의 고원지대(아비시니아)에 위치하고 있어서 폐활량 키우기에 유리한 지리적 특성 때문에 케냐와 함께 장거리 육상과 마라톤의 강국이다. 선수층은 얇지만 현재 세계 신기록(2시간 3분 39초)을 갖고 있을 정도로 마라톤에 관한 한 자신 있는 에티오피아에는 아프리카 흑인으로는 처음으로 올림픽을 제패한 맨발의 기관차 ‘아베베 비킬라’가 있다. 아베베는 정식으로 훈련을 받은 전문 마라토너가 아니라 그는 황실 근위대에 소속된 군인이었다. 이런 그가 1960년 로마올림픽에 처음 출전해 당시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선수들을 제치고, 그것도 맨발로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하였고, 4년 뒤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준비하던 중 맹장제거 수술을 받았으나 불가능이라 했던 예상을 깨고, 운동화를 신고 마라톤 사상 처음 2연패를 달성했다.(다른 한 명은 1976년과 1980년 올림픽에서 연속 우승한 옛 동독의 발데마르 치에르핀스키이다.) 이 공로로 그는 하사에서 중위로 진급했다. 1968년 세 번째 올림픽 도전에서 그는 여전히 강해 보였다. 그런데 약 17km 지점에서 갑자기 아베베가 길가를 벗어나 경주를 포기했다. 로바 코치는 나중에 기자회견에서 아베베가 경기 전 몇 주 동안 왼쪽 다리 골절상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이 공개돼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아베베의 팀 동료였던 마모 월데 선수는 그의 부상을 알고 있었고, 아베베가 레이스를 포기하고 난 후 마치 그의 거울 속 이미지인양 도로를 질주해 1위로 골인했다. 후에 마모 월데 선수는 그의 우상이었던 아베베에게 그 영광을 돌렸다. 자신이 금메달을 따지는 못했지만 조국의 3연패를 일구며 돌아온 그는 대통령에게 하사받은 고급 승용차를 몰다가 사고로 그만 하반신을 못 쓰게 되었다. 그는 이렇게 올림픽에서 마라톤 도전은 막을 내렸다.

그러나 그의 올림픽 도전이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베베는 불굴의 군인정신으로 “더 이상 내 다리는 달릴 수 없지만 나에겐 아직 두 팔이 있다.“며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장애인 올림픽의 전신이 되는 스토크맨더빌 휠체어 대회에서 양궁과 탁구종목에 출전했고, 탁구에선 정상에 올랐으며 노르웨이 장애인올림픽에서는 썰매경주에서 금메달을 따기도 하였다. 그가 딴 금메달은 모두 네 개로 사고 전에 두 개와 사고 후에 두 개를 따며 불굴의 의지를 가진 인간 승리의 대명사가 되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1968년 멕시코올림픽의 마라톤경기는 한 편의 드라마 그 자체였다. 이 날의 경기는 앞서 부상을 입은 아베베가 레이스를 포기한 반면 팀 동료 웰데가 결승선을 통과했고, 그 뒤를 이어 대부분의 선수들이 모두 골인하면서 경기는 마무리되고 있었다. 어느 취재 기자의 보도기사는 당시의 상황에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이제 관중석엔 불과 수천의 관중들이 남아 있을 뿐이었고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엔 호루라기와 오토바이 소리 그리고 비상등의 불빛이 어둡고 차가운 멕시코시티의 저녁에 스산한 기운까지 느끼게 만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기자들이 다시 몰리면서 「이제 이번 마라톤경기의 마지막 주자가 오고 있습니다.」 라는 장내 아나운서의 발표가 있었다. 탄자니아의 존 스티븐 아크와리 선수가 경기장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의 다리에는 붕대가 감겨져 있었고, 붉은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한 발짝, 한 발짝을 고통으로 비틀거리면서 달리는 그에게 방금 전까지 조용하기만 했던 수천 명의 관중들은 서서히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아크와리는 트랙을 돌면서 고통스런 경주를 계속했고, 관중들의 환호는 점점 더 커져갔다. 그가 다리를 절면서 결승점을 지났을 때, 관중들은 마치 그가 금메달을 딴 것처럼 환호성을 질렀다.”

한 기자는 그의 경기에 대하여 이렇게 적기도 했다. “오늘 우리는 인간 정신의 가장 순수한 것을 형상화 한 아프리카의 한 젊은 마라토너를 보았다. 스포츠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진정한 의미를 부여한 행동이었다. 스포츠는 성숙한 인간이 하는 경기라는 스포츠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주었고, 용기라는 말에 진정한 의미를 부여한 행동이었다. 이 모든 영예를 탄자니아의 존 스티븐 아크와리 선수에게 바친다.” 경기를 마친 후 가진 인터뷰에서 왜 그런 고통을 견뎠는지, 왜 포기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많은 질문을 받았다. 아크와리 선수는 그 질문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으며 “당신들이 이해를 못 하고 있는 것 같다. 내 조국은 나에게 레이스에 출전만 하라고 7,000마일이나 떨어진 이곳까지 보낸 것이 아니라 레이스를 끝내고 오라고 나를 보낸 것"이라며 기자들을 꾸짖는 듯이 대답하고는 치료를 위해 병원으로 실려 갔다.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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