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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서 유래한 올림픽의 꽃 마라톤 이야기- 마라톤에 숨은 엄청난 이야기(2)

 

글/ 윤동일 (국방부)

 

 

 

2. 마라톤에 숨은 엄청난 이야기


 마라톤 평원에서의 대격돌, 마라톤전투!
  그리스 정벌을 위해 다리우스는 정예군 4만 명을 태운 페르시아 함대를 이끌고 에게해를 넘어 지중해를 향해 진격해 오고 있었다. 당시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거대한 제국 페르시아에 대부분이 미리 겁을 먹고, 항복한 상태였다. 용맹한 전사들의 나라, 스파르타도 종교제전(카르네이아)과 지역내 반란 진압을 이유로 적시 참전이 불가능함을 통보해 온 상태였다. 많은 도시국가들 가운데 오직 아테네만이 ‘결사항전’과 ‘항복’을 두고 원로원에서 격렬한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대부분의 주화(主和)파는 비굴하지만 페르시아의 대군을 당해낼 수 없다며 전쟁은 피하고 항복을 주장했지만 장군이자 전략가였던 밀티아데스를 주축으로 한 주전(主戰)파들은 싸워 보지도 않고 항복할 수 없다며 결사항전을 주장했다.

시시각각으로 페르시아의 위협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원로원은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격론으로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이 때 싸워 보지도 않고 항복할 수 없다고 생각한 밀티아데스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그는 원로원에 “우리가 지게 되면 그때 성문을 열어도 늦지 않다.”는 비장한 메시지를 남기고 아주 비밀스럽고 급작스럽게 소집된 5천여 명의 자원병들만을 이끌고 페르시아군의 예상 상륙지점으로 향했다. 에레트리아를 지원하기 위해 동원되었던 다른 도시국가들과 플라타이아인들이 합세하여 가까스로 1만 명의 군사를 동원할 수 있었다. 아테네의 양분된 상황을 비교적 잘 파악한 다리우스의 작전계획은 이러 했다. 그는 아테네의 중심지인 팔레론을 직접 지향하지 않고, 병력을 둘로 나누어 1차로 마라톤에 상륙하여 아테네의 주력을 유인한 후, 예비대를 주력이 빠진 팔레론으로 진격시켜 아테네 원로원을 접수한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당시 다리우스의 전략은 아테네의 상황과 군사적 능력을 감안해 볼 때 매우 탁월한 선택으로 군사전략적 측면에서도 매우 높게 평가된다. 최종의 군사목표에 직접적으로 압박을 가하지 않고, 상대가 반드시 응할 수밖에 없는, 비교적 원거리에 위치한 마라톤을 1차 목표(이를 ‘대용목표’라 한다)로 선정함으로써 상대의 전력과 노력을 분산시키고, 가장 최소한의 전투와 희생으로 궁극적인 목표(팔레론)를 달성한다는 전략은 매우 탁월했었다. 전쟁의 오랜 역사 가운데 가장 탁월한 전략으로 평가되는 ‘간접접근(Indirect approach)' 방식을 구사한 것으로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는 고대에 간접전략을 처음 사용한 군사적 천재였던 셈이다.

 

  마라톤 평원에서의 전투 경과는 대략 이렇다. 아래 전투 상황도에 보는 바와 같이 2만 5천명의 페르시아군과 1만여 명의 아테네군은 바다에 수직으로 포진했다. 병력면에서 우세한 페르시아군은 중앙에 정예보병이 위치했고, 좌·우익에 궁수와 방패병들을 균등하게 배치했다. 반면 열세한 아테네군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측면을 감안해 당시 보편적인 전투대형을 포기하고, 새로운 전투대형을 갖췄다. 앞서 페르시아군의 대형처럼 정면과 좌우 측면의 전투밀도를 균등하게 유지하는 것이 전장의 상식이었으나 아테네의 밀티아데스는 중앙의 병력을 줄이고 좌우 측면의 병력을 더욱 보강했다. 그리하여 중앙군은 일반적인 8열에서 4열로 줄여 편성했고, 여기서 절약한 병력을 양 측익에 배치해 평소 보다 두 배로 증강해 상대적인 편성을 맞췄다.

전투가 시작되자 정면의 우세한 페르시아중앙군은 아테네군의 정면을 쉽게 돌파했고, 열세한 아테네군은 페르시아의 중앙군에 밀려 후방으로 후퇴하는 듯 보였다. 초전의 승리도 잠시, 중앙에서의 성공에 도취된 페르시아군이 돌파구를 확장하고, 아테네군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기 위해 더 많은 전력을 투입하는 동안 측익의 변화는 심상치 않았다. 먼저 페르시아군의 우익이 아테네군에 의해 붕괴되기 시작했고, 이어서 좌익도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중앙군의 전진과 양 측익의 후퇴로 전선은 자루의 형상을 띄게 되자, 이번엔 자루처럼 생긴 포위망에 갇힌 페르시아군을 격멸하기 위한 아테네군의 반격이 이어졌다. 전황의 불리함을 인식한 페르시아군의 주력은 전투대형이 와해되어 도주했고, 아테네군의 추격이 시작되었다. 습지로 패주한 페르시아군의 대부분은 아테네군의 추격에 전멸 당했고, 바다를 향해 도주한 잔병들은 정박한 함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전투의 결과로 페르시아군은 약 6,400여명이 전사한 반면, 아테네의 피해는 고작 190여명에 불과했다. 참고로 전투현장을 답사해 전투장면을 재현한 델브루크에 의하면 아테네군이 선택한 마라톤 평원의 폭은 1.6km에 불과하여 정상적인 병력배치가 불가하여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매복의 형태로 배치할 수밖에 없었고, 이를 본 다리우스 대왕은 소수인 아테네군의 비정상적인 병력배치를 가볍게 보고는 쉬운 승리를 장담했다. 정면의 중앙군은 밀렸지만 좌우 경사로에 매복한 측익에 의해 바위나 통나무를 굴려 내리면서 기습적인 타격을 가함으로써 페르시아는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살육당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페르시아의 완패는 전장평가의 차이에 기인한 문제로부터 기인되었다고 볼 수 있다.

 

 

 

 
 ▶마라톤전투(BC492)
  페르시아왕 다리우스의 2차 원정에서
  아테네군과 치른 육상전투
▶전력비교(페르시아 : 아테네 = 4 : 1)
  -페르시아군(다리우스1세)
    : 2.5만명, 경보병, 궁수, 기병
  -아테네군(밀티아데스)
    : 1만명, 중보병, 창병, 기병 없음
▶전투경과(아테네군 중심)
  -중앙을 뒤로 물려 페르시아군 유인
  -좌·우익을 포위
  -정면견제와 양익포위로 페르시아군을
    격멸, 페르시아군 퇴각
▶전투결과 : 아테네군 승리
▶전투피해(추정)
  -페르시아군 : 6,400여명 전사
  -아테네군 : 190여명 전사
※지중해의 지배권을 유럽이 장악
  최초 간접접근전략, 양익포위전술 구사

미리톤전투(BC490)의 개관

 

 

 페르시아 주력에 상당한 피해를 입히면서 마라톤 전투에서 승리를 얻기는 했으나 페르시아의 함대가 출발하는 것을 막지 못했던 밀티아데스의 고민은 이제부터였다. 이 함대가 만약 변변한 군대 하나 없었던 아테네의 심장부를 직접 공략한다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아테네 점령을 위해 해상에서 대기 중인 페르시아군(1.5만)에게 하시라도 성문을 열고 항복할 준비가 되어 있는 원로원에 승전보를 알려 ‘항복하지 말고 항전(抗戰)’할 것을 알려야만 했다.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그가 택할 수 있었던 것은 단 한 가지 뿐 이었다. 가장 빨리 달릴 수 있는 자를 선발해 승전보와 장군의 항전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가장 발이 빠른 전령(傳令, 명령을 전달하는 병사)으로 하여금 “우리가 이겼으니 페르시아 군이 공격해도 절대 항복하지 말고 지켜라. 그리고 우리가 배후에서 협격하면 이길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도록 했다. 국가의 안위가 달린 승전의 메시지를 갖고 달리기 위해 선발된 전령, 피디피데스(전령의 이름이나 달린 거리 등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분분하다.)는 마라톤으로부터 아테네에 이르는 거리를 쉬지 않고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달렸다. 이처럼 절박한 상황이 그로 하여금 죽기를 각오하고 달리게 한 이유였다.

밀티아데스는 마라톤에서 승전의 기쁨을 누릴 여유가 없었다. 그는 잔여 병력들을 이끌고 서둘러 아테네로 돌아와야 했다. 해상에 정박해 있는 페르시아 해군과 마라톤에서 도주한 적의 육군이 아테네를 공격한다면 지금의 노력도 수포로 돌아갈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와 아테네군 모두는 무장을 고쳐 입고, 달리기 시작했고, 페르시아가 공격하기 이전에 아테네에 도착했으며 페르시아 함대는 완전히 철수했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승전보를 알린 것도 말고도 아테네 중장보병들의 빠른 이동속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당시 아테네군 중장보병의 약 32kg의 갑옷을 착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를 착용한 채로 마라톤 평원에서 약 1.5∼2km를 거의 달리는 속도로 공격해 페르시아 육군을 격멸하고,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전열을 정비한 후, 마라톤에서 아테네까지 무려 33km의 거리를 빠른 보속으로 돌아와 페르시아의 상륙에 대비할 수 있었다.

이는 이미 기원전에 아테네군의 전령과 중장보병이 보여 준 능력은 오늘날까지 역사상 존재했던 그 어떤 군대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수준이었다는 점에서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유추해 보건대, 늘 상대적으로 열세한 전력을 가지고도 결정적인 승리를 쟁취한 배경에는 고대 올림픽을 통해 달리기를 기본으로 체력을 단련하고, 전장에서 필요한 다양한 전투기술을 습득했다는 것이다. 무기나 전투 장비를 개발하고, 체계적인 군사훈련을 통해 개인 및 조직의 전투기술을 연마하는 것과는 별개로 운동을 통해 단련한 강한 신체의 덕을 톡톡히 본 것 같다. 특히, 마라톤 전투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갑옷을 입은 채로 아니면 적어도 중장보병들이 들었던 방패를 휴대한 채로 달리는 경기가 있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어찌 되었건, 페르시아는 마라톤 전투에서 패한 후로부터 약 10년 동안 그리스에 대한 그 어떤 야욕도 갖지 못했다.

 

 

승전보를 전하는 전령(올리비에메르송 작)     마라톤전투의 아테네군 전사자 무덤     피디피데스의 청동상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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