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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서 유래한 올림픽의 꽃 마라톤 이야기- 마라톤에 숨은 엄청난 이야기

 

글/ 윤동일 (국방부)

 

 

 

마라톤에 숨은 엄청난 이야기
즐겁게 노는 행위를 통해 인간성과 사회성을 추구하는 스포츠는 평시 전쟁 준비태세를 점검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현대 스포츠의 원형인 고대 올림픽 경기는 종교와 스포츠가 결합된 종합 축제이지만 군사적 측면에서만 본다면 평시의 전쟁 준비태세를 점검하고, 전사들의 전투기술과 능력을 일정 규칙에 따라 견주어 보는 일종의 군사훈련의 시험장이었다. 전장에서 적보다 빨리 원하는 지점으로 이동(육상트랙경기‧스키)하고, 적과 만나면 무찌르고(펜싱‧사격‧활쏘기‧격투종목), 물을 건너(수영‧조정) 성을 공격하거나 방어(육상필드경기)하며 전장에 유용한 말을 다루는 기술(승마‧마장마술‧폴로‧마상격구) 등은 전승을 보장하는 유용한 전투기술들이다. 전장이동기술과 사격 등 전투기술을 혼합한 종합경기(근대5종경기‧바이애슬런)와 ‘올림픽의 꽃’으로 불리는 마라톤(Marathon)과 수영‧사이클‧마라톤을 합친 철인 3종경기 등은 모두 장거리 경주종목들로 전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가운데 마라톤은 실제 있었던 전쟁에서 유래했다는 말을 한 번 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이 전쟁은 지중해의 패권 쟁탈을 위해 중동의 대제국 페르시아가 진출하면서 그리스와 벌인 세 번의 원정 가운데 두 번째 원정에서 비롯되었다.


※ 지금부터 소개할 전쟁 이야기는 역사적 기록에 의해 밝혀진 내용은 아니다.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역사기록은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가 쓴 몇 줄이 고작이다. 그나마도 그가 직접 현장을 본 것도 아니고, 전해오는 이야기와 각종 자료를 참고해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여기에 소개하는 내용은 독일의 군사학자로 프레데릭 대왕의 군사고문을 지낸 델부르크의 연구(그는 직접 현장을 방문해 당시 상황을 가정하고, 지형을 고려해 기동로, 병력배치 등을 재현함으로써 군사사<軍事史>적 가치를 높게 평가받은 바 있다.)를 기초로 작성한 것임을 밝혀둔다.

 

 

 

 ▶페르시아전쟁(BC492-479)
  페르시아와 그리스가 지중해의 패권
  쟁탈을 위해 벌인 전쟁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페르시아의 사신을
  살해하자 페르시아가 원정을 하게 됨.
▶전쟁경과
  -1차원정(BC492)
    : 폭풍우로 실패
  -2차원정(BC490)
    : 마라톤전투 아테네 승리
  - 3차원정(BC480∼479)
    : 테르모필레전투에서 지연(9일)
     → 살라미스 해전에서 아테네 승리
▶페르시아 원정 실패, 그리스 패권 장악
* 마라톤전투 : 마라톤의 유래
* 테르모필레전투 : 영화 ‘300’의 배경으로
  스파르타와 페르시아의 전투

페르시아전쟁(BC492-479)의 개관

 

 

마라톤의 역사적 배경 : 페르시아 전쟁
  마라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대 중동과 아시아 지역의 맹주였던 페르시아와 그리스 간에 벌어진 ‘페르시아 전쟁’에 대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 페르시아 전쟁은 페르시아와 그리스가 지중해의 패권을 두고 기원전 492년에서 479년까지 13년간 지속된 고대 세계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다. 전쟁의 발단은 중동지역에서 세력을 확장한 페르시아가 세계제국을 꿈꾸며 에게해를 넘어 지중해 일대의 그리스 도시국가를 통합하려는 의지를 펼치면서부터였다. 150여 도시국가로 구성된 그리스 지역의 대부분은 이미 페르시아 제국의 영향력에 복속되었고, 기원전 499년부터 493년까지 유일하게 이오니아가 페르시아에 반기를 들어 반란을 도모했지만 결국은 실패로 돌아갔다. 페르시아의 황제 다리우스(Darius) 1세는 반란의 책임을 물어 이오니아를 초토화했고, 계속해서 그리스 쪽으로 진격해 트라키아와 스키타이 그리고 마케도니아를 평정했다. 다리우스 대왕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여세를 몰아 지중해 전역을 자신의 발아래 두기 위해 페르시아의 무적 군대를 진군시켰다. 이제 남은 것은 이오니아 반란에 원정군을 보내며 끝까지 항전을 고집했던 에레트리아와 아테네 그리고 스파르타뿐이었다. 이들을 평정하기 위해 10년 넘게 지속된 페르시아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첫 원정은 기원전 492년 사위인 마르도니오스의 지휘 하에 원정군을 보냈지만 에게해를 건너면서 아토즈 부근에서 만난 폭풍우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회군했다. 이듬 해 다리우스는 다시 사절을 보내 복종에 대한 상징적 의미로 흙과 물을 보내라고 요구했는데 아테네는 사신들을 재판에 세워 사형에 처했고, 스파르타는 한술 더 떠서 우물에 빠뜨려 “거기서 실컷 땅과 물을 퍼 가라.”고 했다. 이에 격분한 다리우스는 에레트리아와 아테네를 우선 제압하기 위해 기병을 포함하여 대군을 이끌고 직접 2차 원정길에 나섰다.

그러나 마라톤(Marathon) 평원에 이르러 아테네의 장군이자 전략가인 밀티아데스(Miltiades)에게 예상치 못한 일격을 당하고는 또 다시 실패하고 만다. 결국 다리우스는 두 번의 원정에 실패하면서 지중해 진출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이어 황제에 오른 크세르크세스는 이집트를 비롯한 주변의 반란국들을 진압한 뒤, 선조들의 염원을 계승하기 위해 지중해로 대규모 원정에 나섰다.

 

페르시아에게는 세 번째가 되는 원정에서 크세르크세스는 막강 육군을 해상으로 투입하여 도시국가를 쓸어버리려는 계획을 갖고 출발했지만 육전이 시작됨과 동시에 테르모필레라는 협곡에서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Leonidas)가 이끄는 소수 정예군(고대 올림픽 종목들을 소개하면서 언급한 것처럼 종교제전에 대한 참가 규정으로 인해 당시 종교제전 중에 있었던 스파르타는 근위병 300명만 보낼 수 있었다.)을 비롯한 그리스 연합군을 만나면서 쉽게 극복하지 못하고 3일의 시간을 지체하더니 급기야는 아테네의 테미스토클레스 계략에 휘말려 협소한 살라미스의 해협에 1천 2백여 척의 주력을 투입하는 실책을 범함으로써 원정의 파국을 맞이했다.

영화 ‘300’의 배경이 되어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한 ‘테르모필레 전투’는 약 7천여 그리스 연합군이 20만명의 페르시아 대육군을 테르모필레라는 좁은 협곡(Hot Gate : 좁은 통로를 의미함)에 몰아넣어 그리스에 시간을 벌어 줌으로써 페르시아의 3차 원정이 파국을 맞게 되는 불씨를 제공했다. 마라톤 평원에서의 패배에 이어 테르모필레에서의 실수가 페르시아가 유럽 진출에 실패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기원전 5세기 중동을 거점으로 세계를 호령했던 페르시아 대제국은 3차 원정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지중해 진출의 숙원을 달성하지 못하고, 그리스에 이어 지중해의 맹주로 새롭게 등장한 신흥국 마케도니아의 도전을 받아 위대한 맞수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다 기원전 330년 알렉산드로스에게 무릎을 꿇고 결국 제국의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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