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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의 진화와 케이저

 

 

 

글/하남길(경상대학교 교수)

 

철망으로 된 농구 경기장 

 

 

 겨울이 되면 한국의 스포츠 애호가들은 프로 농구를 접하게 된다. YMCA를 통해 도입된 한국 농구는 1997년 프로리그 시대를 맞았다. 지난 15년 동안 한국의 빅포어(Big Four) 스포츠 중 하나로 정착된 농구의 발전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약 120년에 이르는 농구의 진화 과정이 뇌리를 스치면서 ‘케이저(cager)’란 명사가 떠오르게 된다. 케이저란 농구 선수를 뜻하는 속어로 진화가 덜 된 초창기 미국 농구의 모습을 가장 잘 나타내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농구는 미국 YMCA의 우연한 실험 결과물이었다. 1891년 스프링필드 YMCA이었다. 영적인 삶은 신체와 정신의 균형적인 발달에 의존한 것이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YMCA 체육진흥운동을 펼쳤던 귤릭(L. H. Gulick)은 제자 네이스미스(J. Naismith)에게 긴 설명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 내용을 압축하자면 “겨울철에 할 수 있는 흥미로운 실내 게임 하나를 창안해보라.”였다. 다루기 힘든 청소년들에게 흥미로운 놀이가 좋은 처방제가 될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추운 12월이었다. 침대에서 새로운 게임의 창안을 위해 계속 그림을 그려보던 네이스미스는 축구공을 들고 강당으로 나갔다. 골(goal)이 될 만한 물품을 찾던 그는 관리원 스테빈스(Stebbins)에게 8인치짜리 사각형 나무 상자 두 개를 요구했다. 그러나 상자는 없었다. 스테빈스는 상자 대신 복숭아 바구니(basket) 찾아다주었다. 네이스미스는 발코니 난간 테에 밑바닥보다 위쪽이 더 넓은 바구니를 못으로 고정시켰다. 그리고 18명의 학생들이 축구공을 바구니에 던져 넣는 게임을 창안하기 위한 실험을 계속했다. 초기 경기 규칙은 13개 조항이었다. 그리고 이듬해 1월, 9인제 게임을 탄생시켰다.


명칭이 바스켓 볼(basketball)이 된 것은 복숭아 바구니 때문이었다. 당시 교육을 받고 있던 머핸(Frank Mahan)은 네이스미스에게 새로운 게임의 명칭으로 ‘네이스미스 볼(Naismith Ball)'을 제안했으나 네이스미스는 게임의 본질을 흐린다면 거절했다. 그러자 머핸은 바구니와 공으로 이루어진 게임이니 ‘Basket Ball'로 하자고 다시 제의했고, ‘새 게임’의 이름은 Basket Ball이 되었다. 그리고 1921년 이후부터 단어 Basketball로 통일되었고, 동양에서는 대바구니 농(籠)과 공 구(球)를 합성한 농구(籠球)로 번역하게 되었다.


초창기 농구의 모습은 무질서한 놀이의 모습이었다. 패스가 허용되지 않았던 농구 시합은 선수들끼리 뒤엉키기 일쑤였다. 1890년대 중반까지 드로우인 공격 규칙이 없었다. 공이 경기장 밖으로 튕겨나가면 공을 먼저 잡는 팀이 임자였다. 선수들은 공을 잡기 위해 달려가 끝없이 뒤엉켰다. 관중이 부상을 입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본 한 기자가 “하찮은 녀석들이 원숭이처럼 경기를 하고 있으니 우리(cage) 안에 넣어주어야겠다”라는 경멸적인 기사를 썼다. 이 말에 영감을 얻은 최초의 프로팀의 감독이 있었다. 트렌턴 의 감독 파드레츠(F. Padderatz)였다. 그는 선수와 관중이 뒤엉키는 문제 해결을 위해 경기장에 12피트 높이의 울타리를 치는 아이디어를 냈고, 그 이후 농구경기는 철망으로 된 우리 안에서 진행되었다. 당대의 심판 릴리(M. A. Riley)는 “그 우리(cage)가 경기 진행 속도를 높여 관중이 더 즐겁게 볼 수 있게 되었다”라고 평가했다. 그 때부터 농구 선수들은 철망 속에서 경기를 했고, 스포츠기자들은 농구선수를 ‘케이저(cager)’라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철망은 또 다른 문제를 낳았다. 선수 부상이었다. 선수들이 철망에 부딪혀 상처를 입었던 것이다. 결국 철사는 로프로 대체되었다가 관중석이 생겨나면서 로프도 사라지게 되었으며, 우리 안의 농구선수를 칭하던 케이저란 명칭만 역사에 남게 되었다.


케이지 바스켓볼 시대를 거친 농구는 야구보다 60년 뒤에 탄생했지만 문화적 진화 속도와 세계화 속도는 야구보다 더 빨랐다. 스미스대학의 브렌슨(S. Berenson)이 여학생들을 위해 패스를 도입한 이래 럭비경기를 방불케 했던 농구의 모습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리고 6~9명이던 인원도 1900년대부터 5명으로 줄어들게 되면서 농구는 보다 심플한 경기로 변모했다. 1915년까지 YMCA와 미국체육회(AAU)의 농구 규칙이 달랐으나 그해 연합농구위원회(JBC)가 가동되면서 통일된 규칙이 제정되었다. 그리고 1932년 FIBA가 탄생한데 이어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등장했다. 오늘날의 농구의 모습은 농구의 끊임없는 문화적 진화의 결과물이며, 케이저는 농구의 진화과정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역사 용어이다.

 

 

참고문헌
최현주·하남길(2008). 농구의 기원과 문화적 진화. 한국체육사학회지,  13(2), 17-40.
Arlott, John(1975). The Oxford Companion to SPORTS & GAMES. London : Oxford Univ. Press.
Bjarkman, Peter C.(2000). The Biographical History of Basketball. Chicago: Masters Press.
Grabowski, John F.(2001). Basketball. (Sandiego California : Lucent Books Inc..
Hollander, Zander & Alex Sachare(1989). The Official NBA Baketball Encyclopedia. New York: Villard Books.
Naismith, James(1996). Basketball. Lincon and London : University of Nerbraska Press.
Peterson, Robert W.(1990). Cages to Jump Shots. New York : Oxford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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