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엄혁주(고려대학교 강사)

 

       지난 글에서는 회복 탄력성의 정의와 구성요소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았다. 이번 글에서는 현재 초등학교 학생선수들의 회복탄력성에 따른 학교생활 적응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한다.

 

먼저 결과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놀이터로서의 인식 : 경험자아로서의 학생선수
2. 베일린트 신드롬(Balint's syndrome) : 교사와 코치의 불편한 시각
3. 영재인 둔재 : 공부는 못하지만 운동 잘하는 초등학생 

 

초등 학생선수의 학교생활은 운동부 생활과 학습생활을 분리하여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 둘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그 이유는 학생들에게 있어서 학교는 배움의 장이 되고, 초등 학생선수는 학업을 배우고 운동을 배우는 장소가 바로 학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운동을 배우는 장소는 학교 울타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생활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의 장소를 말한다. 이러한 기본 배경을 바탕으로 위의 결과들을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1. 놀이터로서의 인식 : 경험자아로서의 학생선수
심리학자 이면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다니엘 캐니만 교수는 인간에게는 경험자아(experiencing self)와 기억자아(remembering self)라는 분명한 두 존재가 공존한다고 주장한다(김주환, 2011). 경험자아가 현재 자신이 경험하는 것을 느끼는 자아라면, 지나간 경험을 회상하고 평가하는 자아가 기억자아이다.


초등학생들은 자아가 완전히 성숙한 단계가 아니기 때문에 역경과 불행한 경험 그리고 힘들었던 순간을 잘 잊는 경향이 있다. 성인이라면 이러한 경험들이 지속되고 평가하는 기억자아의 성향이 강하지만, 초등 학생선수들은 즉흥적이고 순수한 측면에서 기억자아보다는 경험자아의 성향을 보인다. 즉 그들은 코치로부터 혼나고 운동이 힘들고 하는 상황에서도 그때그때 운동이라는 즐거운 경험을 통해 놀이터와 같은 존재로 인식한다. 다음의 학생선수의 대화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참기 힘들만큼 힘들었을 때요? 글쎄요. 없었던거 같은데요. 음.....(한참 생각한 후에). 아. 맞다. 운동하는데 자꾸 A하고 B가 뒤에서 ‘따보, 따보(시합 중 파울을 표현하는 그들만의 표현)’해서 짜증나서 끝나고 싸웠는데 코치님이 알아서 엄청 맞았어요. 그땐 정말 운동하기 싫어서 그만하고 싶었어요. 근데 자고나면 잊고, 또 운동하러 가지 않으면 심심해요. 저는 여기(운동부)가 놀이터고 다른 애들은 (학교나 공원)놀이터가 놀이터잖아요.(Hsg)


감독님(연구자)! 진짜 A랑 B 때문에 짜증나요. 자꾸 저보고 운동도 못하면서 말만 많다고 다시 전학가래요(일반학생이었다가 테니스를 하고 싶어 전학 온 학생). 지들은 처음부터 잘했나. 정말 힘들어요.
(중간생략)
아니요. 운동은 계속하고 싶어요. 그러면 대학교도 갈 수 있잖아요. 아참 걔네들 좀 혼내주세요. 운동하는 건 재밌는데 걔네들만 없으면 그냥 재밌는데...(Psh).

 

위의 Hsg는 가정생활이 어렵고 힘들지만 회복탄력성이 높은 학생선수이다. 그는 가정생활의 역경과 어려움과 운동 중 다양한 스트레스나 따돌림 속에서도 금방 잊고 운동하는 것을 즐거워한다. 성인의 경우 스트레스가 반복된다면, 즐거운 운동이라고 해도 지속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회복 탄력성이 높은 초등 학생선수들은 부정적인 경험을 오히려 쉽게 잊고(거의 망각 수준으로), 위의 대화에서 처럼 운동의 즐거움이 역경의 경험을 상쇄시키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 운동을 시작한 동기는 대부분 주요타자(부모나 교사)에 의한 권유로 시작했으나 지속이유는 운동의 즐거움이다. 초등 학생선수들은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대학생처럼 운동경력이 그리 길지 않다. 그리고 단순히 운동을 잘하고 싶고 박지성선수와 같은 유명한 선수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진학에 대한 두려움이나 운동을 못해서 낙오되면 안 된다는 생각은 찾아보기 힘들다. 아직 순진한 초등학생인 그들은 당연히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가고 모두가 훌륭한 선수가 될 거라 확신한다.

 

 

2. 베일린트 신드롬(Balint's syndrome) : 교사와 코치의 불편한 시각
베일린트 신드롬은 양측 두정엽 손상으로 인해 한 번에 하나의 사물만을 보게 되고, 그것이 어디 위치에 있는지 판단하지 못하는 증상을 말한다. 이러한 증상은 학생선수를 바라보는 학교 관계자와 지도자 그리고 일반사회의 시각과 일치한다(Balint, 1909).


학습권이 정착된 초등학교 현장은 이러한 베일린트 신드롬과 흡사하다. 학생선수도 일반학생과 같이 공부하고 청소도 하면서 학급의 역할을 다 감당한다. 시합과 대회가 있는 날이면 일반학생들이 부모님과 체험학습을 가는 것처럼 체험학습 신청서를 제출하고 승인을 받아 참석하게 된다. 물론 학생선수는 수업활동 외에 다양한 학교행사(현장체험학습, 수학여행, 운동회, 축제 등)에도 참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선수에 대한 교사, 또래집단은 아직도 그들을 운동하는 우리 반 문제아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코치는 단지 이들을 운동선수로만 인식한다.


이러한 인식은 그들이 수업 중에는 학생의 위치에 있고 운동 중에는 선수로서의 위치에 있으므로, 두 가지 위치를 적절히 수행해 나가는 존재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나 교사와 코치는 자신들의 시각에서만 초등 학생선수를 바라본다.


즉, 담임교사는 운동보다는 학업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고 코치는 학업은 단지 수업시간만 앉아 있으면 되는 것이고 운동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강조는 학생선수들을 수업 중 말 안 듣는 문제아로 낙인찍는 결과를 초래한다. 반면에 코치는 수업시간에 참여하고 또 남겨서 공부시킨다고 불만을 토로하며, 그 불만을 학생에게 표출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임교사와 코치가 자신의 학생선수를 위해 서로의 정보를 주고받으며 소통하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교사는 교사의 시각에서 코치는 코치의 시각에서만 학생선수를 바라본다. 그러는 사이에 중간에 낀 학생선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말도 하지 못하고 끌려 다니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베일린트 신드롬 속에서도 잘 헤쳐 나가는 학생들도 있다.

친구들이 저보고 좋겠다고 해요. 운동하니까 좋겠다고. 근데요 사실 엄청 힘들어요. 학교에서 수업하고 끝나면 운동하러가고 운동 끝나면 또 (영어)학원 가야해요. 그리고 집에 가면 숙제도 해야 하고... 음. 모 그렇죠. 근데 친구들한테 숙제 좀 보여 달라거나 준비물 좀 빌려 달라고 하면 ‘넌 운동부니깐 선생님이 봐주잖아.’그러는데요 사실 (담임)선생님이 봐주는 건 없어요. 똑같아요. 근데 절 좋아해 주시긴 해요. 저도 좋아요 ............(생략). 괜찮아요. 집에 가서 숙제하고 바로자면 되요. 공부도 시험 때는 하면 어느 정도 되요.(Chw)


늦게 운동가면 코치선생님이 혼내기도 하지만 전 상관없어요. 다른 애 들은 운동을 못해서 혼나는데 전 학교에서 늦어서 혼나는 거니까. 그냥 운동 열심히 하면 되요.(Psh)

 

C학생은 다른 학생과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담임교사와의 관계이다. 물론 다른 학생들도 담임교사와 나쁜 관계는 아니다. 그들은 단지 담임교사와 일방적 관계이지만 위의 두 학생은 담임교사와 소통적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C학생이 회복 탄력성이 높게 나온 이유도 바로 교사와 코치의 소통적 관계에 있다.


또한, P 학생선수는 가정환경이 불우한 가운데에서도 운동에 즐거움을 찾고 회복 탄력성 수준도 높다. 어찌 보면 P학생은 운동을 지속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가능하도록 만들어주는 원동력은 개인 안에서 자라고 있는 운동이라는 보호요인이 있기 때문이다. 곤란과 역경에 직면했을 때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려 하고 환경에 적응함으로써 정신적으로 성장해가는 능력, 이것이 바로 회복 탄력성의 능력이다.

 

 

3. 영재인 둔재 : 공부는 못하지만 운동 잘하는 초등학생
일반학생 모두가 공부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공부를 못한다고 문제아도 아니며 학교생활에 적응을 못한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공부는 못하지만 또 다른 재능이 그들 각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학생선수가 바로 그러한 경우에 적합한 예이다. 그들은 공부는 잘 못하지만 - 물론 공부도 잘하는 학생선수도 있다 - 다른 일반학생들과는 다른 운동이라는 재능을 갖고 있다.


흔히 선천적으로 몸이 약한 사람도 꾸준한 자기개발과 운동 습관을 통해 건강한 사람이 될 수 있으며, 음치도 꾸준한 연습을 통해 노래를 잘 부를 수 있다.  운동을 잘 하는 학생선수는 운동에 영재이기 때문에 언제든 노력하면 공부에서도 일반학생 못지않게 잘 할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갖고 있다. 그들에겐 노력, 성실, 자기관리, 집중력, 창의력 등과 같은 영재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생선수들은 이러한 능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아니 발휘할 수 있는지조차 모르고 지나간다. 학생선수들은 운동이라는 인생전반의 목표로 인해 학습에 대한 요구를 무시하려 할 뿐만 아니라 필요성 또한 알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초등학생인 학생선수들은 교사, 부모, 코치 선생님으로부터 대부분의 관리를 받기 때문에 자신의 의사를 주장하기가 쉽지 않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교사, 부모, 코치가 운동과 학업을 강조하다보니 학생선수들은 학업을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으로 받아들였다.


사실, 학생선수를 바라보는 담임교사도 그들 못지않은 고민과 고충을 겪는다. 학생선수들은 그들 나름대로 학업에 무기력하며 그들을 바라보는 교사 또한 무기력함을 느끼긴 마찬가지이다. 학생선수 스스로 운동에서는 영재임을 인식하면서도 공부에 대해서는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자기 스스로도 한 가지 역할에만 다하면 된다는 식의 자기 합리화에 빠져 있는 것이다.


특히, 회복 탄력성이 높은 아동이나 낮은 아동 모두 학습에 있어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힘들어 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음의 사례에서처럼 공부에서도 둔재가 아니라는 자기 확신과 주변인의 도움이 두 가지 역할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사실 시합하고 공부하고 운동하고 너무 힘들어요. 근데 나중에 박지성 선수처럼 되고 싶어요. 공부는 모 그냥해도 중간은 하니깐. 어차피 전 프로선수가 될 거잖아요. (담임)선생님은 운동은 잘 하니까 공부도 좀 더 열심히 하면 된대요..(hsg)

 

운동에서는 영재임에도 학교수업 시간에 그들은 둔재가 되어 있다. 자신도 모르고 교사도 모르고 코치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다. 에미 워너는 자아탄력성에 대한 연구에서 힘든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보이고 미국의 IVY리그에 입성한 사례에 대해 소개하였다. 이러한 성공사례는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보호요인)과 어린 시절에서 청소년 때까지 같이 보내면서 학업과 생활에서 삶과 성공의 의미를 찾고 이를 성취하려는 의욕을 갖게 되면서 나온 결과이다.

 

학업은 학생선수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학생선수들이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면서 받아들이는 역경을 도와주려는 노력이 부족하였다. 이는 학생의 인권, 아동의 인권이 무시된 채 학생선수의 두 가지 역할을 서로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선수 특히 초등학생선수들에게 학습권은 존중받고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이지만 학습권 못지않게 운동권이 보장되어야한다.


뿐만 아니라 회복 탄력성이 고난을 이겨내고 긍정적인 삶의 주요인자가 된다는 점에서 회복 탄력성이 높거나 학업과 운동을 효율적으로 잘 관리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학생선수들을 지도해야 하겠다.

 

 

 


김주환(2011). 회복탄력성. 경기: (주)위즈덤하우스.
Block, J. (2002). Personality as an affect-processing system. Erlbaum, Mahwah, NJ.
Block, J. & Kremen, A. M. (1996). IQ and ego-resiliency: Conceptual and empirical connections and separatenes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70, 349-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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