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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사회와 체험스포츠

 

 

글/송형석(계명대학교 교수)

 

             근대 이후 대두되기 시작한 서구의 합리주의가 인간의 삶을 전면적으로 지배하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욕구의 직접적 충족을 추구하는 감성의 기능은 끊임없이 축소되어 왔다. 특히 18세기 이후 서구 사회에 만연된 고전적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는 청교도적 금욕주의를 강조함으로써 인간의 삶에서 감성적이고, 쾌락적인 요소를 철저히 배격하게 된다. 산업이 고도화된 사회일수록 이러한 경향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러나 최근 들어 본능적 욕구를 자유롭게 발산하려는 시도들이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형식으로부터의 탈피, 구속으로부터의 해방, 억압으로부터 자유를 추구하는 본능적 욕구의 노력은 현대 산업사회에서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과열된 소비경향에서, 바뀌고 있는 결혼풍속도에서, 성의 상품화 경향에서, 여가 지향적 삶의 양식 속에서 이러한 경향이 목격되고 있다. 사회 자체가 금욕, 절제, 생산을 미덕으로 여기던 고전적 자본주의체제에서 쾌락, 소비, 레저를 즐기는 후기 자본주의체제로 현저하게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세태를 반영하듯 잘 일하기 위해 노는 것이 아니라 잘 놀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우리는 지성지수보다 감성지수를, 고통스러운 것보다는 쾌락적인 것을, 싫은 것보다는 좋은 것을, 안전한 생활보다는 모험을, 욕구를 참기보다는 분출하는 것을 선호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문화사회학자 슐체(Schulze)는 이러한 경향, 이와 같은 시대적 흐름을 체험사회(Erlebnisgesellschaft)라고 표현하였다.

 


체험사회에서는 육체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한다. 육체는 우리가 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가장 기본적인 지각기관이자 감각기관으로서 모든 체험의 필수적 전제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체험사회에서는 스포츠, 성, 건강 등과 같이 육체를 구성적 조건으로 하는 분야가 매우 중요시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체험사회에서는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하는데 그 이유는 일상생활에서 육체와 육체활동이 점차 의미를 잃어 가면서 다양한 육체활동으로 이루어진 스포츠는 특별한 체험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큰 관심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슐체의 지적처럼 현대사회에서 체험은 점차 높은 가치를 획득하고 있다.

 

스포츠 역시 이러한 경향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 현대스포츠에서 체험, 즐거움, 놀이, 모험 등이 점차 강조되고 있는 경향은 이러한 사회 전반적인 경향의 한 단면이다. 스카이다이빙, 패러글라이딩, 번지점프, 리프팅, 스킨스쿠버, 카빙스키, 스노보드, 암벽등반, 마라톤 등은 추구하는 가치가 지금(now), 여기(here)에서의 특별한 체험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안전한 미래보다는 바로 이 순간을 체험하고 즐기자는 것이 이러한 스포츠의 최고 목적이다. 체내에 축적된 모든 글리코겐을 소진시킴으로써 전혀 생소한 몸의 상태를 체험하게끔 해주는 마라톤을 비롯해서 추락의 공포와 속도감을 동시에 맛볼 수 있도록 해주는 번지점프, 위험스런 장애를 극복하며 성취감을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리프팅, 공중을 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패러글라딩, 바다 속의 새로운 환경을 접할 수 있는 스킨스쿠버, 모험심을 자극하는 암벽등반 등이 이러한 스포츠의 몇 가지 예이다.

 

사회학자 리트너(V. Rittner)는 이런 종류의 스포츠를 체험스포츠라고 명명했다. 체험스포츠는 전통적인 스포츠와 비교할 때 동기와 수행방식에 있어서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전통적인 스포츠가 욕구의 지연된 만족이라는 금욕주의적 태도를 통해 특징 지워질 수 있다면, 체험스포츠는 욕구의 즉각적인 만족이라는 쾌락주의적 태도를 통해 특징 지워질 수 있다. 리트너는 모험을 목적으로 하는 스포츠와 한계 체험을 목적으로 하는 스포츠, 재미와 즐거움을 목적으로 하는 스포츠를 체험스포츠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다. 그에 따르면 체험스포츠에는 체험사회의 근본 원리 세 가지가 내재되어 있다. 그 세 가지 원리란 첫째, 경쟁, 성취 등과 같은 전통적 스포츠규범의 퇴조, 둘째, 스포츠참여자가 갖는 개별적 동기의 전문화 및 자명화, 셋째, 자기 체험을 강화하려는 경향, 즉 오랜 시간이 걸리는 스포츠사회화 또는 조직사회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스포츠의 효과를 직접적으로 향유하려는 경향 등이다. 한 마디로 체험스포츠에서 관건은 재미있는 체험을 쉽고, 직접적으로 맛보는 것이다. 전통적인 스키를 대체하고 있는 카빙 스키나 점차 면적이 넓어지고 있는 테니스 라켓, 또는 번지점프, 패러글라이딩, 급류타기 등과 같이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스포츠는 이러한 경향을 잘 대변해 준다. 사람들은 더 이상 힘들고, 지루하며,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하는 스포츠사회화과정을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초보자수준에서도 쉽게 성공감과 즐거움을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렇게 볼 때 체험스포츠는 욕구의 억압보다는 직접적 충족을 통해 특징 지워질 수 있는 것이다.

 

 

체험스포츠는 늘 “뻔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여러 가지 “색다름”을 체험하게 함으로써 삶에 활력소로 작용할 수 있고, 입시위주의 생활에 빠져 있는 청소년들에게 일상의 지루함으로부터 탈피하여 긴장감을 맛보게 해 줄 수 있으며, 그들에게 다양한 모험 기회를 제공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교육적으로도 가치 있는 활동이다. 이렇게 볼 때 현재 우리 사회에서 점차 그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체험스포츠는 스포츠정책의 차원에서 더욱 권장되고 보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체험스포츠가 가진 역기능적 측면 역시 만만치 않다. 체험이란 철저하게 현재 지향적 개념이기 때문에 체험에 몰입할 경우에 극기, 인내, 근검, 절약 등과 같은 미래 지향적 삶의 태도가 희석될 가능성이 높다.

 

틸레(J. Thiele)는 체험추구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현재 지향적 삶의 태도는 두 가지 대가를 요구한다고 말한다. 물질적 대가와 정신적 대가가 그것이다. 물질적 대가란 체험을 위해 적지 않은 돈이 지불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며, 정신적 대가란 체험 후에 어김없이 찾아오는 정신적 공황 상태를 의미한다. 특히 끊임없이 체험만을 추구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늘 색다르고 강력한 체험을 찾아 나서며, 체험공백기에는 참기 어려운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 체험이 청소년의 교육과 기성세대의 삶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기 위해서는 반성의 과정을 거쳐 체험 주체의 삶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만 한다. 삶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지 못한 체험은 무의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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