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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체육기자의 잊혀진 세계

 

 

 

글/김학수(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 연구소장)

 

          1985년 봄 일간스포츠 편집국으로 첫 출근했을 때의 흥분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어릴 때부터 스포츠를 좋아했던 필자는 스포츠 기자가 돼 신문활자로만 접했던 기라성 같은 스포츠 대기자를 직접 만나게 됐다는 설레임으로 가슴이 뛰고 있었다. 스포츠 기자로서 관심을 갖게 했고, 결국 기자로의 길을 걷게한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동표 선배와 오도광 선배가 그들이다. 두 분은 대한민국 스포츠 기자 1세대로 1969년 국내 최초의 스포츠 전문지인 일간스포츠 창간에 참여했다. 필자가 입사할 당시엔 논설위원과 부국장으로 활동하며 체육계에서는 유명 인사였다. 체육기자의 꿈을 품고 입문한 올챙이 기자가 대선배와 한 배를 타게됐다니 얼마나 감격스러웠겠는가. 그때만해도 스포츠기자는 신문, 방송 합쳐도 수십명에 불과했을 때였다.


오도광 선배는 스포츠 외신담당으로 필자를 비롯한 막내기자들의 기사작성 능력을 거들어주는 멘토였다. 조동표 선배는 한국일보, 일간스포츠 스포츠 부장을 모두 거치고 이미 정년을 한 뒤 계약직으로 논설위원을 하고 있었다. 두 분이 편집국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큰 자랑거리였으며 장차 그들처럼 유능한 체육기자가 되리라는 꿈을 갖도록 해주었다. 오도광 선배는 국내 스포츠 기자로서는 처음으로 ‘오도광 스포츠 칼럼’이라는 전문 스포츠 칼럼을 연재해 많은 고정 독자를 갖고 있었다. 오도광 스포츠 칼럼은 스포츠를 주제로 하면서도 문화, 연예 분야의 사례를 폭넓게 인용해 ‘하이브리드 칼럼’이라는 평을 들었다. 조동표 선배도 오도광 선배와 비슷한 시기에 매주 요일을 다르게 하여 스포츠 칼럼을 연재했다.


필자와 오도광 선배는 각별한 인연이 있었다. 편집국장 석 바로 앞에 독립책상을 갖고 있었던 오도광 선배는 무하마드 알리와 같이 찍은 사진을 책상 바닥에 붙여놓았을 정도로 복싱에 큰 애착을 갖고 있었다. ‘USA 투데이’, ‘성조지’ 등 미국 신문 스포츠면에서 보도된 스포츠 기사, 특히 복싱 기사의 번역일을 필자를 비롯한 동기들에게 지시했다. 백인 헤비급 복서 록키 마르시아노,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 등의 기사를 박스물로 번역, 기사화했던 기억이 있다.

 

 

 


오도광 선배는 경기고, 서울대 사회학과를 거쳐 대학을 졸업하기 전 한국일보에 입사해 신동소리를 들었던 유능한 체육기자였다. 장기영 한국일보 사주가 고졸출신으로 견습기자 시험에서 학력제한을 두지 않아 오도광 선배와 같이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입사한 선배들이 몇 분 있었다. 1960~70년대 최고의 종목이었던 복싱 기자를 했던 오도광 선배는 60년대 경기결과 위주로 쓰던 기사 스타일을 AP, UPI 통신처럼 선수들의 개인적인 스토리와 멘트를 담는 미국식 스타일로 새로운 기사 작성 영역을 개척한 이로 유명했다. 필자가 초년기자때 ‘오도광이 만난 사람’이라는 인물 인터뷰 코너를 연재했던 그는 한번 펜을 들면 일필휘지로 단숨에 원고지를 메워 나가 편집자들을 놀라게 하곤했다. 서울 토박이 출신으로 ‘오또’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던 오도광 선배는 당시 매주 월요일마다 신문이 휴간했던 일간스포츠 ‘월요 산악회’를 조직해 북한산, 도봉산, 관악산 등 서울 인근 산을 편집국 멤버들과 정기적으로 다니기도 했다. 서울 올림픽 보고서 집필을 감수한 오도광 선배의 이름 석자가 올림픽 공원 돌에 각인되어 있다. 대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재미교포 2세인 월터 정씨의 추모비에 그가 쓴 추모문이 새겨져 있는데 말미에 ‘오도광 지음’이란 글귀가 남아 있다.


 조동표 선배는 오도광 선배보다 10여년 위로 필자와는 아버지뻘의 나이차 때문에 거리감이 있었다. ‘조동표 시론’을 매주 연재한 조동표 선배는 사실상 대한민국 스포츠 기자 1호로 해방직후부터 기자생활을 시작해 방송기자를 거쳐 한국일보, 일간스포츠에서 체육기자로 잔뼈가 굵었다. 육상과 농구 전문기자였던 조동표 선배는 후배들이 잘 모르는 취재 정보를 제공하며 체육기자 대선배로서의 역량을 발휘해 주기도 했다. 조동표 선배가 1992년초 일본 벳부 마라톤에서 준우승을 한 황영조의 가능성을 일찍이 알아차리고 필자를 비롯한 후배기자들에게 집중적으로 지면에서 다룰 것을 지시했던 기억이 난다. 조동표 선배는 한국농구 100년사, 한국스포츠 야사 등을 집필해 한국 스포츠의 역사를 기록화했다.


두 선배는 필자가 체육부장, 편집국장을 거칠 때는 이미 현직을 모두 떠났다. 하지만 그들로부터 받은 영향은 취재와 신문제작을 통해서 보이지 않게 나타나곤했다. 그들과 맺어졌던 체육인들의 인맥 도움을 많이 받았고, 취재의 방향을 정하는데도 여러 점을 고려할 수 있었다.


아쉽게도 두 분은 올해 몇 달 간격으로 이 세상을 떠났다. 조동표 선배는 87세의 일기로 올 6월 타계했으며, 오도광 선배도 75세의 나이로 이달 중순 돌아가셨다. 두 선배가 남기고 간 세계는 지금 현재 일선기자로 활동하는 후배들에게는 잊혀진 세계일지 모른다. 하지만 필자에게는 인생의 선배이자 기자의 선배, 같은 신문사의 선배로서 결코 잊을 수 없는 분들이다. 두 선배는 스포츠의 삶을 믿고, 스포츠의 건강성을 추구하며 거시적인 시각에서 스포츠를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비평한 영원한 스포츠기자의 인생을 살았다.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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