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윤영길(한국체육대학교 교수,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

 

         유로 2012 경기 분석을 위해 폴란드와 우크라이나를 오갔다. 유로 2012에는 메시를 제외한 2012년 축구를 상징하는 모든 선수를 볼 수 있다는 즐거움이 있다. 현란한 기술과 정확한 연결, 그리고 상식을 넘어선 플레이들이 90분 내내 펼쳐지는 감동의 장이다. 바르샤바 국립경기장의 웅장함과 도네츠크 경기장을 둘러싼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축구에 모두를 건 것 같은 유럽의 아저씨들, 아저씨들 옆에서 함성과 비명을 질러대는 유럽의 아가씨들까지.... 유로 2012에서 축구는 축구가 아니다.

 

 UEFA 유로 2012에서 우승을 차지한 스페인 UEFA

 

 

기분 좋은 변화
이 대회에서 관중을 위한 UEFA의 배려를 보게 된다. 프로 스포츠는 결국 경기력이라는 상품을 판매하는 활동이다. 유로 2012의 경기 전 행사를 보면서 지금까지 우리 프로 스포츠는 선수님들께서 관중에게 한수 보여주시는 행사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기 2시간 전부터 경기 전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전통을 기반으로 한 공연과 양국의 서포터가 응원전을 펼칠 수 있도록 세 명의 아나운서가 운동장의 양팀 서포터석 앞과 중앙에서 프로모션을 하고 있다. 공연과 응원전은 물론, 20분(25분, GK) 워밍업 시간에 선수를 보고 이 과정에서 관중은 경기를 기다리면서 지루할 사이가 없고 배려 받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소비자인 관중에게 선수는 경기를 제공하는 소프트웨어, UEFA는 경기 환경을 조성하는 하드웨어가 되어 가치 있는 상품으로 소비자를 만족시키고 있다.

 


승리에서 의미로
이제 스포츠에서 가치가 중시되고 있다. UEFA 역시 RESPECT, RACISM 등의 문제를 이번 대회에서 강조하고 있다. 또한 6심제를 채택해 페널티에이리어에 한명씩의 심판을 더 배치했다.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 축구를 위시한 스포츠의 변화를 예견할 수 있게 해준다. 앞으로 스포츠는 공정하고 상대를 존중하고, 혹 부정한 방법으로 이득을 얻은 선수나 팀은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방향으로 변해갈 것이다. 이는 SNS의 활성화나 영상의 정밀성 증가와 관련되어 결국은 평가받기 때문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스포츠계 내부의 전략과도 맥을 같이한다. 2010월드컵 예선의 앙리와 1986년 마라도나의 손은 같은 손이지만 한손은 신의 손이었고, 한손은 저주받은 손이었다. 이렇게 세상은 같은 과정이나 결과에도 세상의 변화를 반영한 기준으로 다른 평가를 하고 있다.


이 문제는 스포츠의 다음 이데올로기인 승부조작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지금까지 스포츠에서 도핑은 스포츠의 근간을 흔드는 중차대한 사건으로 다루어져 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도핑의 문제보다 승부조작이 스포츠의 근간을 흔드는 중차대한 사건으로 다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도핑은 개인 차원의 성격이 강한 문제인데 반해 승부조작은 스포츠 시스템 전반의 기반을 흔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정성, 존중, 인종차별 등의 문제를 공론화해서 결국 승부조작 방지 등 가치의 문제에 관심을 환기시키는 차원까지 연결시킬 수 있을 것이다. UEFA의 RESPECT 캠페인은 결국 스포츠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고 사회, 문화적인 변동까지를 읽은 현명한 대응이다. 하지만 승부조작의 문제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만큼 쉽게 통제되지는 않을 것이다.

 


축구는 선수를 통해 생명을 확인시키고
경기를 보면서 축구를 단순히 신체 능력을 겨루는 활동으로 제한하는 생각이 얼마나 근시안적인지 스스로 깨닫게 된다. 경기에 몰입하고 있는 선수를 보면서 문득 리차드 도킨슨의 이기적 유전자가 떠올랐다. 우리 몸은 유전자를 전달하는 도구라는 구절에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기는 했지만 이내 멋진 생각이라고 감탄했던 그 기억과 경기에서 플레이를 전개하는 선수가 겹쳐졌다. 우리 몸이 유전자를 전달하는 도구인 것처럼 선수는 축구를 완성시키는 조직이나 기관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축구는 축구 자체로 생명이 있어 경기장에 뛰고 있는 선수의 플레이 방식과 내용에 따라 다른 모양으로 경기장에서 스스로를 완성시킨다. 그리고 완성된 형태는 모방이나 복제가 불가능하다.


유로 2012에서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의 축구로 구분된다. 첫 번째 유형은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처럼 패스를 연결해 기회를 만들고 공격을 진행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선수가 눈에 드러나 보이지 않는 팀이다. 특히, 스페인 팀에 주목하면 스페인 축구는 마치 신체의 일부를 미끼로 이용하는 동물과 유사성이 발견된다. 스페인 미드필더가 공을 잡으면 사비, 알론소, 이니에스타 같은 선수가 쉬지 않고 볼을 주고받으면서 연결한다. 상대선수가 패스 연결을 추적하다 수비의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 여지없이 오른쪽 공간으로 공격이 시작된다. 동물들이 사냥을 하듯 아주 빠르게.....


다른 유형의 팀은 포르투갈이나 잉글랜드처럼 전방에 드러난 선수에게 연결해 공격을 진행하는 팀이다. 루니나 호날두 같은 선수에게 집중적으로 공을 연결해 기회를 만들려고 하지만 루니나 호날두에게 볼이 연결되기 쉽지 않다. 그리고 루니나 호날두에게 연결되는 통로를 차단해버리면 결국 공을 받기 위해 자기 진영으로 내려오고, 자기 진영으로 내려와서 공을 받으면 득점 가능 상황과는 거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 언제나 그렇지만 드러나 보이는 위험은 치명적인 위험이 아니기 때문에 스페인이나 이탈리아가 포르투갈이나 잉글랜드보다 좋은 성과를 거두게 될 것이다. (스페인이 7월2일 우승했다.)

 


유로의 시사
스페인 축구는 흥겹게 춤을 춘다. 이탈리아 축구는 거미줄을 만들고, 독일 축구는 계산중 이다. 포르투갈 축구는 유혹한다. 이렇게 축구가 생명력을 가지고 경기장에서 자신의 존재를 강변하고 있다.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은 미드필더가 중심을 잡고 있고 포르투갈은 라니나 호날두가 앞에서 유혹한다. 분명한 사실은 좋은 미드필더가 있어야 살아남는다는 점이다. 물론 포르투갈처럼 공격수가 힘을 발하기도 하지만 한계가 있을 것이다. 미드필더가 좋은 팀을 만들고 미드필더가 강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축구 밖에서도.....


군대 이야기, 축구 이야기, 그리고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는 우리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정말 재미없는 축구가 아니라 여성들이 경기를 볼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축구의 매력은 아날로그이다. 야구처럼 디지털이 아니어서 경기를 보다 카톡을, 문자를 하는 순간 골이 나기도하고 중요한 상황이 연출되기 때문에 경기에 주의를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그 상황은 다음 상황이 진행되고 있어 설명이나 반복이 불가능하다. 경기에 몰입해 긴장감을 유지하다 골이 터지면 응축된 에너지가 분출되기도 하고, 응원하는 팀이 위험한 순간을 모면하면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축구를 모르면 아쉽지만 에너지 분출도, 카타르시스도 경험할 수 없다. 그 많은 아가씨들이 경기 장면에 환호와 비명을 지르고, 아저씨들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에너지를 분출하는 관중석이 행복해보였다.

 


이제 스포츠에서 승리라는 유일 가치는 유효성을 상실해가고 있다. 배려를 즐길 수 있는 유로 2012의 감동이 남는다. 유로2016은 무엇을 남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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